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사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 20일 대구를 찾아 “대구경북에 책임감과 관심을 갖고 교류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총리가 되면 이 지역 기업인들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수성구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DIP)에서 열린 ‘인공지능 대전환(AX) 간담회’에서 대구·경북(TK)지역 정보통신 기업인·전문가들과 만나 “총리가 되면 바로 대구경북에 못 올 가능성이 있어 조금 더 자유로운 입장일 때 와서 인사를 드린다”며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수성알파시티는 영남권 AI 연구개발의 허브로서 바이오, 로봇 등 지역특화산업을 AI 융합산업으로 전환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면서 “이곳이 대한민국, 더 나아가 세계의 AI 발전에 중요한 기반 지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말한 것처럼 수성알파시티는 수도권 이남 최대 ICT 집약 단지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업인 스스로 클러스터를 구축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취임 직후에는 이곳을 ABB(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산업 허브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구상이 실현되려면 수조 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향후 국비 확보가 관건이다. 김 후보자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이 안동 출신임을 언급하면서 “대통령이 원래 갖고 계신 대구경북에 대한 관심을 제가 잘 알고 있고,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입장에서 이 지역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TK지역은 지금 6·3 대선 이후 정치적 소외감이 아주 강하다. 여야가 뒤바뀌는 정치 지형 속에서 정권과의 소통 채널이 거의 없어 각종 국책사업 추진과 국비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지역 25명의 지역구 국회의원 중 여당 의원은 비례대표인 임미애 의원(의성)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이런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바쁜 가운데서도 대구를 찾은 김 후보자가 TK지역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약속한 것은 무엇보다 다행으로 여겨진다.

지난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기상청은 올 장마는 7월 말까지 이어지고 장마 기간 많은 비와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했다. 지난 주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충청지역에 170mm 가까운 폭우가 내리고 전국에서 인명피해는 없으나 공공시설과 옹벽 붕괴와 같은 비 피해가 일어났다고 밝혔다. 경북 봉화 석포면은 이틀간 130mm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문경 동로, 상주 은척면에서도 100mm 이상의 비가 내렸다. 기상청은 대구와 경북 곳곳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다. 주말 시작한 장맛비로 나무가 쓰러지고 낙하물이 발생하는 피해가 잇따랐다. 올해 장마도 지난해처럼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돌발 폭우가 예상된다고 한다. 이상기후로 갑자기 많은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하고, 지역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것이란 전망이다, 지구온난화로 빚어지는 지구촌의 이상기후는 예측불허 날씨로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다 폭우가 쏟아지는가 하면 곳에 따라 40도가 넘는 극한 폭염이 발생해 인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변화무쌍한 기후변화에 대응할 선제적 대책 마련이 급하다.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재해는 어쩔 수 없지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는 막아야 한다. 2022년 힌남노 태풍으로 포항에서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인명을 잃은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일어났다. 특히 올 봄 발생한 산불로 안동시 등 경북 도내 5개 시군은 산사태나 매몰 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 많다. 장마철 폭우로 2차 피해를 입는 일은 없도록 사전에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행정당국만 믿고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주민 스스로가 재난 의식을 갖고 장마철 집중호우에 대비해야 한다. 실시간 기상 특보를 확인하고 대피로와 대피소도 사전에 파악해 두어야 한다. 침수로는 우회하고 물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7월 말까지 장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태풍도 찾아올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경북 도내 산불 피해지역과 재난 위험지역에 대한 사전 안전 점검을 철저히 해 비 피해를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칼럼

포항의 ‘핫 플레이스’, 호미곶에 관해서 떠도는 풍문 중에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일곱 차례나 답사하기는 쉽지 않은데, 순전히 발품을 팔아 다녀야 했던 당시에 일곱 번이나 이곳에 왔다고? 사이버 공간 곳곳에 기정사실처럼 설명하고 있는 기사 하나를 예로 들면 이렇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호미곶과 죽변 두 곳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동해로 튀어나왔는지를 재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일곱 차례나 오갔다고 한다. 그 결과가 대동여지도에 정확히 반영되어 호미곶이 더 튀어 나오게 그려졌음은 물론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포항 호미곶과 울진 죽변 중 어느 곳이 동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알아보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무려 일곱 번이나 왕래했으며, 호미곶이 더 튀어나왔음을 확인하고는 지도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죽변에서 호미곶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일곱 번이나? 그리고 수백 리 떨어진 두 곳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어떻게 측정하지? 등등의 의문이 들지만 ‘의지의 한국인’ 김정호라는 사람 앞에서 의심은 묻히고 만다. 사실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1967년에 발간된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의 ‘일월향지(日月鄕誌)’에 처음 언급되었다. 이 책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라는 꼭지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김정호는 조선 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호는 고산자(古山子)이고 예산인이며 출생과 사망은 상세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워 힘써 공부하여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여러 차례 잡학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신분이 미천하여 급제하지 못하였다. 후에 느낀 바가 있어 응시를 포기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지리학을 후진에게 가르치고 편의를 제공하고자 순조 말년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청구선표도(靑丘線表圖)라는 우리나라 지리원도(地理原圖)를 제작하여 나라에 바치니 순조가 표창하였다. 후에 3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것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전 23권 15책인데, 이를 천하에 공포하니 사계가 극찬하였다. 대원군 섭정시에 쇄국정책을 시행하자 이 저술이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이라 하며 판각을 압수하여 불태우고 김정호를 체포하여 투옥하니 옥사하였다. 김정호의 유적을 살펴보면, 죽변갑(竹邊岬)과 장기갑(長鬐岬)에서 여러 날 체류하며 죽변갑과 장기갑 중에서 어느 갑이 더 돌출하였는가 살피면서 장기 죽변 사이를 7회나 걸어서 오고갔다 한다.“ ‘일월향지’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장기갑(현 호미곶)과 죽변 중 어디가 동해 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월향지’의 저자 박일천은 어디에 근거하여 자신의 책에다 이렇게 썼을까?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때 있었던 김정호의 활약상은 육당 최남선이 처음 꺼냈다. 최남선은 1925년 동아일보에 ‘고산자를 회(懷)함’이라는 글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으며,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랐고, 수십 년을 떠돌아다녔다고 적었다. 아마도 최남선은 김정호 개인의 노력을 부각시키려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듯한데, 이후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어린이잡지를 통해 더 극적인 내용으로 각색되었고, 이것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 실리면서 김정호에 대한 상식으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대동여지도를 본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을 누설한다며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둬 죽게 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김정호의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의 과정은 최한기가 쓴 ‘청구도제’, 신헌이 쓴 ‘대동방여도서’에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열람하였다,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다.”는 등의 기록에 전하는데,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0년대말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은 최남선이 퍼뜨려 교과서에까지 실린 김정호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일월향지’에다 적었다. 다만 여기서는 ‘백두산 일곱 번 등정설’이 ‘장기갑 일곱 번 답사설’로 바뀌었으며, 장기갑과 죽변갑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할 목적으로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자신의 상상력까지 보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사실처럼 인식됐고, 조선 중엽 격암 남사고가 이곳을 호미등이라 함으로써 오늘날 호미곶으로 부르는 단초가 됐다는 설과 함께 호미곶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할 때 아무리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봐야 하고,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라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를 바로 잡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인사청문회의 뒷맛은 대부분 참담하다. 근엄하고, 고결한 척하던 고위 인사들이 한 꺼풀만 벗기면 왜 모두 그 모양인지…. 물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야당이 억지로 문제 삼는 일이 다반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싸고도 말이 많다. 국민의힘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보면 버는 돈보다 지출이 터무니없이 많다. 지난 5년간 최소 5억 원을 수입보다 더 많이 썼다고 한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중국 칭화대 학위를 취득이나 아들의 특수학교 전·입학, 유학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2억 원이 넘는 유학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교육 철학을 거슬러, 도덕적 문제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가 안고 있는 의문일 수 있다. 그 대응 과정이 더 문제다. 무엇보다 본인의 태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차분하게 설명하는 게 정도다. 그런데 정작 의혹에 대한 해명이 본질을 피하고, 구차하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 동정심을 구하려 한다. ‘표적 사정’은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굳이 비리를 들춰낸다는 뜻이다. 혐의를 사실이라고 믿게 한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부인했다. 세금 추징과 과징금 부과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세무 당국이 봐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탈세해도 눈감아주는 게 정상인가. 불평하기에 앞서 세금을 추징당했다면 국민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도리다. 그는 ‘노부부 투서 사건’을 “정치 검찰, 쓰레기 지라시 협잡 카르텔에 의한 허위 사실”이라고 비난했다. 노부부가 그런 내용을 유서에 남겨도, 검찰과 언론이 모른 체 했어야 하나.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자 “누가 질문했느냐?”, “어디 채널이냐?”라고 추궁했다. 정치적 공격이라는 다른 틀(프레임)로 의혹을 덮어버렸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청문회 증인·참고인을 모두 거부했다. 민주당은 처음에 ‘윤석열·한덕수·김문수’를 증인으로 요구했다. 그래 놓고 김 후보자를 검증할 증인은 모두 거부했다. 김 후보자의 가족과 전처까지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제외했는데도, 다른 증인들을 모두 거부했다. 자신이 있다면 해명할 수 있는 자리인데, 굳이 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아직도 특검을 밀어붙이는 김건희 여사 전례를 봐도,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은 통용되기 어렵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인사청문회법을 바꾸겠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개인 비리와 도덕성에 대한 청문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능력 위주로 공개 검증하자는 대안도 나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총리와 장관들 청문회를 앞둔 이 시점에 “빠르게 개정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속 보이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허위 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 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관련 조항을 아예 삭제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가 정당한 입법이라고 생각하겠나. 김 후보자는 자신을 가장 아프게 공격하고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윤재관 조국혁신당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검증받을 좋은 기회 얻기를 덕담한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주 의원에게 “70억 원 재산 형성 과정을 소명해 보라”라고 공격했다. 정당하게 모아도 자산이 많으면 죄악이고, 가난하면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청문회는 국민을 향한 검증이다. 의혹 해명은 국민을 향해 하는 것이다. 때 묻은 정치인끼리 짜고, 같이 해 먹는걸 ‘관행’이라고 덮을 일이 아니다. 김 후보자는 벌써 총리 행보다. 부처 보고를 받고, 재난상황실과 현장을 다닌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임명 동의안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선가 의혹 해소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망신 한번 당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나. 아무리 관행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사과는 사실 확인이 먼저다. 청문회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의심을 풀어주는 자리다. 아무리 총리 후보자라도 국민 앞에서는 좀 더 겸손하기를 기대한다.

회사원 J 씨의 비혼식이 열린다. MZ세대에서 요즈음 늘어나는 추세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어디 이뿐인가? 인구가 줄어든 농촌 지역에선 콩나물이 사라졌다. 어린이집은 매년 폐원이 속출한다.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걸 왜 새삼 거론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구 4000만 명 이상 국가 중 0~14세의 유소년 비율은 우리나라가 10.6%로 미국의 17.3%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어쩌면 저출산이 문제라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붓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국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출산율 하락은 국가의 모든 문제가 섞여서 나타난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청년층은 높은 결혼식 비용과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질 좋은 취업 자리는 부족하고 취업 후도 일자리가 불안하고 높은 사교육비는 한국을 아이 없는 사회로 내몬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활력을 잃고 한은의 거듭된 금리 인하에도 소비는 위축되고 내수는 바닥 모를 침체의 늪에 빠졌다. 고령화로 복지 부담은 늘어나는 데 이를 떠받치는 청년층은 점차 줄어든다, 이에 따라 지방 소멸과 지역 불균형 문제는 커져만 간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내어놓는 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주위만 맴돌고 있다. 이제는 출산율을 회복해도 인구감소는 일어난다. 한국의 인구 유지에 필요한 70만 명의 인구는 이제는 넘볼 수 없는 수치가 되었다. 현재의 출생률이 유지되더라도 매년 50만의 인구가 감소한다. 가임 여성 인구는 해마다 줄어든다. 앞으로 몇 년이 중요하다. 어쩌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 기간 안에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출산율 하락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출산율 하락으로 고민한다. 비교적 성공한 해외의 정책을 살펴보면 일본의 ‘2 지역 거주인구 대책’이 관심을 끈다. 도시와 농촌의 2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거주지 이동 고속버스 비용 지원, 거주지 내 지역대학 연계 지역 아카데미 프로그램 마련, 온천 활용 건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두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1유로 프로젝트’도 빈집 문제 해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탰고,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정책도 프랑스의 인구 증가를 낳은 성공적인 정책이다. 기술자나 노동 인력이 많이 몰리는 국가의 이민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체의 자녀 출산 1인당 1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지금이 출산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급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두가 출산 증가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 시간이 해결의 마지막 기회이다. 우리나라와 각국의 좋은 정책을 모으고 보완하여 해결해야만 한다. 시간을 놓치면 어떠한 처방도 효과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정부 부처의 명칭은 조직 개편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바뀐다.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경되었다. 더 극적으로 명칭이 변경된 부처는 행정안전부다. 김대중 정부 때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서 행정자치부라고 한 것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 때는 안전행정부로 다시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행정안전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변경된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은 이미 2022년 대선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니 당연한 변화다.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보면 여성가족부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5년 김희정 여가부 장관이 양성평등가족부나 양성평등청소년가족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2023년 김도읍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9명이 발의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원들은 제안이유에서 ‘헌법 제36조제1항’에서 ‘양성의 평등’이라고 되어 있고, 양성평등기본법이 이미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법률에서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혼란이 생긴다면서 양성평등으로 통일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7월, 황유정 국민의힘 시의원이 발의한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 전부개정 조례’가 통과되었다. 그 내용은 김도읍 의원의 발의한 법률안과 일맥상통한다. ‘성평등 기본조례’의 명칭을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변경하고, 조례 각 조항의 ‘성평등’이라는 용어도 ‘양성평등’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황유정 시의원은 “본 조례가 헌법에 명시된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례이기 때문에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용어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도읍 의원이나 황유정 시의원의 발의 취지를 보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할 때 성소수자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을 보면 정말 개정법안이 단순히 표현의 일관성만 주장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글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2021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주권정부가 굳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차별금지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이라는 단어에는 남녀뿐 아니라 동성애까지 포함한 다양한 성이 포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동성애 차별 금지다. 이 법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의를 거듭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 움직임에 대해서도 기독교에서는 성평등가족부라는 명칭은 차별금지법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면서 양성평등가족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 정해진 평등 이념에 따르면 모든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양성이라고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12·3 내란 전에 내가 즐겨 보고 들었던 유튜브는 ‘국뽕’과 관련된 것이었다. 근현대 문학 작품과 이름난 무협지 낭독을 듣기도 하고, 영화도 더러 보았지만, 역시 주류는 국뽕이었다. 나처럼 나이 먹은 자들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체화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와 민족, 역사와 위인들에 관한 내용을 반강제로 읽고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보탠 원인 제공자는 내가 다닌 대학의 분위기였다. 모든 사안에 ‘민족’을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기묘한 대학에서 나는 10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시간강사와 연구소 간사로 살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의 깊은 곳에는 민족혼이나 강렬한 자주적 역사의식이 자리한다. 혹자는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살아간다. 각설하고, 얼마 전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국민총생산과 군사력, 외교적 영향력, 기술력, 문화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도이칠란트의 뒤를 이어 세계 6위 강대국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7위부터 10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언론 보도를 보다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야, 이게 정말 실화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라는 사실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국방력 이외의 주요 요소를 고려해서 선정한 강대국 6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던 터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 105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이 60년 뒤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군사력, 문화와 예술의 나라가 된 것이다. 정말 경이로운 사변(事變)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경제적인 성공만이 아니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성장도 현저하다. 항상 우리를 얕잡아본 일본도 우리보다 12년이나 늦은 2009년에서야 정권교체에 도달했다. 1951년 10월 1일 영국 ‘더타임스’에 실린 ‘한국의 전쟁과 평화’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의 폐허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성장하는 걸 기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우리의 저력에 새삼 가슴 뻐근하고 어깨가 절로 으쓱한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내란수괴를 비롯한 내란 잔당과 그 수하 떨거지들의 협잡과 망발이 아직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구 삼류 언론과 정치검찰, 극우에 기대서 생명줄을 연장하려는 얍삽한 정치인들과 그 세력이 한여름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다. 사적(私的)인 이익과 대물림, 편법과 불법, 무법과 탈법, 초법(超法)과 무소불위로 무장한 자들의 약탈 만행! 만약 반민특위가 성공했다면, 5·16 군사쿠데타와 1980년 광주학살과 1990년 3당 야합이 없었다면, 716호의 부패와 타락, 503호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12월 3일 계엄과 내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높이 날아올랐을 것이다. 국뽕의 기억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대구와 경북에서 올 첫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기상청은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 사이 대구의 밤 기온이 25.7도를 기록해 열대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항(26.4도), 경산(25.9도) 구미(25.5도) 등 경북의 주요 도시에서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열대야는 밤 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무더위를 보일 때를 이르는 말로 올해는 전국적으로 작년보다 일주일 이상 빠르게 열대야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여름철이 되면 우리나라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주 강할 때는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고온다습한 무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게 된다. 밤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초열대야라고도 부른다. 보통 7~8월에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나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선 6월 중에 열대야가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열대야 일수도 점차 늘어나 작년 제주에선 연속 45일 열대야를 기록했다. 매년 기록이 경신될 정도로 무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은 올 여름도 무덥고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질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조사에 의하면 무더위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며 공격적으로 만들어 이 시기에 범죄 발생이 높아진다는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여름 열대야 극복을 위해 규칙적인 가벼운 운동을 하고, 과식이나 야식 등은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열대야로 이어질 무더운 여름이 이제 본격 시작된다. 각자가 건강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최신 오피니언
특별기고

소멸 위기의 농촌, 지속가능한 희망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농촌은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같은 문제들은 더 이상 도시만의 고민이 아니다. 농촌은 그 최전선에서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미비, 그리고 인구소멸이라는 다중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우선 농촌은 인구 구조 자체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8세, 70세 이상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반면, 농업의 미래를 이끌 청년층은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 이유는, 주거, 교육, 육아, 의료, 교통 등 일상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착을 꿈꾸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 여기에 농업의 수익성 저하도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 시장 개방, 기후변화는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농업 도입은 대규모 농장에 유리하게 작동하면서 소규모 영세농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농업 내 양극화는 심화되고, 농촌 사회의 불균형은 커져간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동체의 해체와 문화의 소멸이다. 농촌은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세대 간 삶의 방식과 전통이 이어지는 터전이었다. 그러나 마을 단위 공동체가 해체되며 세시풍속, 지역 축제, 전통 기술 등 고유한 문화자산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화는 기억이고, 정체성이다. 그 상실은 곧 지역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경고다. 이제 농촌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농촌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생명산업의 기반이자, 생태적 균형과 정서적 치유를 제공하는 미래 자산이다. 농촌을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청년이 머무르고 싶고, 꿈을 꿀 수 있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귀농·귀촌 지원을 넘어 농업 창업 지원, 주거 안정, 교육과 육아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착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유기농업 확대, 로컬푸드 시스템 구축, 스마트팜 기술 보급 등을 통해 수익성과 환경보전을 함께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농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미래 산업으로 전환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셋째, 농촌에 맞는 복지체계를 갖춰야 한다. 고령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에서는 의료, 돌봄, 이동 등 일상 복지 서비스가 절실하다. 도시 중심의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맞춤형 복지가 필요하다. 넷째, 지역 문화자산을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교육 콘텐츠나 관광 자원으로 재창출 가능한 경제적 자산이다.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농촌’을 만들어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농촌의 미래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 지금 우리가 농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촌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2025-06-19

사설

새 정부의 민생, 물가안정에서 시작해야

물가가 너무 올랐다는 말이 실감 나는 요즘이다. 마트나 식당이든 어느 곳에 가든 오르지 않은 물가는 없다. 지난달 통계청은 국내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 올랐다고 발표했으나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5년간 전체 소비자물가는 16% 상승하는데 그쳤는데, 외식물가는 25%가 올랐다. 직장인이 점심 메뉴로 즐겨 찾는 김밥, 떡볶이, 햄버거, 자장면, 갈비탕 등은 모두 30%가 넘게 올랐다. 최근 배추와 달걀값이 연일 오르면서 서민들이 물가를 걱정하고 있다. 특히 배추는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작년의 금 배추 사태가 재연되는 것이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 유통공사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1766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9%가 올랐다. 국민의 식재료인 달걀값도 폭등했다. 여름철 폭염으로 산란계 생산성이 저하되고 충청권에서 집중 발생한 고병원성 인플루엔자(AI)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국내 소비자 물가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는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가격이 상향됐다. 한번 올라간 물가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아 2%대로 안정됐다는 정부 발표와는 달리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최근 중동지역에서 발발한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물가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하반기에도 소비자 물가가 1%대 후반으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중동지역 갈등에 따른 국제 유가 변동, 미국의 관세정책 등이 변수로 남아 있어 물가 관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물가가 오르고 불안하면 국민의 삶은 고통스럽기 마련이다. 특히 서민층일수록 물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삶이 팍팍해진다. 새 정부는 민생을 최우선으로 삼고 경제회복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물가안정을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특정품목의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현재 우리 물가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2025-06-19

사설

TK신공항 건설은 이재명 정부 핵심과제다

재원 마련 문제가 불투명해지고 있는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 사업을 이재명 정부 주도로 추진해야 한다는 정책세미나가 그저께(18일) 국회에서 열렸다. 세미나는 대구지역 국회의원 12명 전원과 TK신공항 건설예정지인 의성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박형수 의원(의성·청송·영덕·울진)이 공동 주최했다. 지난 16일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를 결정하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출범하면서, TK신공항 건설사업이 반드시 핵심과제에 포함돼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에 열린 세미나다. 세미나에는 정치권 외에도 국방부, 대구시, 도심 군공항 이전을 함께 추진하는 광주·수원시 관계자들과 한국공항공사 임원, 공항 건설업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대구시는 2030년 개항목표인 TK신공항 착공을 위해 정부에 11조 5000억 원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 지원을 요청해 놓았지만, 아직 아무런 답변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TK신공항의 적기 개항을 지역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재원마련 방법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박찬대 민주당 전 원내대표도 대선기간중 대구에 와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공자기금 유치에 나섰지만 기획재정부가 공자기금 운영 목적에 맞지 않고, 기부 대 양여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했다“면서 TK신공항 사업비를 대구시가 자체 조달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앞으로 새 정부가 사업방향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TK신공항 건설이 표류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날 세미나에서 강대식(대구 동구·군위군을) 대구시당 위원장과 주호영(대구 수성구갑) 국회부의장이 밝힌 것처럼, TK신공항 건설사업은 60년 이상 K2 비행장 주변에 거주하면서 전투기 소음으로 고통을 겪은 대구 동구 주민들의 애환을 고려해보면, 한시라도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다. 새 정부는 대구시가 이미 제출해둔 공자기금 신청서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전향적인 지원책을 내놓길 기대한다. 이재명 정부도 대구시 재무역량만으로 13조원이 들어가는 신공항 건설 비용을 감당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25-06-19

팔면경

의료 불평등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한 비용이 연간 4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보고서는 지역민 가운데 수도권과 지역 간의 의료격차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81.2%에 달했다. 새롭다고 할 통계 자료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울과 지방간의 의료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실망스럽다.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나라 안에서 서울과 지방간의 심각한 의료격차와 이로 인한 비용 발생이 수조 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국가정책의 부재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고질적 병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조사 결과는 있었다. 서울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암환자 3명 중 1명은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했고, 특히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서울로 향하는 환자 비율이 높다고 했다. 또 지방에 거주하는 암환자가 서울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내는 비용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준다는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지방과 서울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빈익빈 부익부가 극으로 치닫는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가난해지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비단 경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거와 교육, 의료, 문화 전 분야에서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언제 개선이 될까. 정부는 이런 통계를 보고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9

호남에서 보내온 서신

한국의 살 길, 농촌의 살 길, 청년의 살 길

일본은 한국에 찾아오는 문제를 10년 정도 일찍 겪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사례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2015년 5월 미국의 유력 신문 ‘워싱턴 포스트’에 ‘과소화와 고령화 추세에 맞서는 작은 마을’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변’은 이렇게 해외 미디어에도 소개되었다. 그 이변은 이제 ‘마을 만들기’ 주류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농촌 살리기에 무엇을 할 줄 몰라 헤매고 있는 한국도 배울 바가 많다. 가미야마(神山)는 도쿠시마 현 도쿠시마시 중심부에서 하천을 따라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438번 국도를 차로 달려 마지막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면 45분쯤 지나 도착할 수 있다. 해발 약 1000m 높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총 면적의 83%가 삼림이다. 10여 년 전 방문을 해보니 소백산의 품안에 안긴 경북 청송·울진이나 마이산에 둘러싸여 있는 전북 진안·장수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였다. 마을에는 1급 하천 아쿠이 강이 흐르고, 시코쿠 12대 명소인 가미야마 온천이 있지만 그 외에 이렇다 할 관광지는 없다. 특산물로는 라임의 일종인 스다치 생산량이 일본 1위이지만 예전부터 마을을 지탱해왔던 임업은 이젠 찾아볼 수도 없다. 1955년 여러 촌(村)이 합병하여 형성된 가미야마는 당시 인구가 2만 명이었으나, 2015년 조사에서는 약 5300명으로 줄어들어 거의 4분의 1로 감소했다. 고령화율은 48%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과소화 마을이다. 일본 내에서는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가미야마에 도시로부터 청년들이 속속 이주하고 있다. 2008년부터 8년 동안 최소 91세대, 161명이 넘게 이주했다. 그것도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등 창의적인 직업의 청년들이 많다. 더 특이한 것은 IT 벤처 기업이 계속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기업들이 가미야마에 분소 격인 위성 사무실을 만들거나 아예 새로운 본사를 만들기도 하는 데 그 수가 2011년 이후 16개를 넘었다. 가미야마는 2015년 지방 재생 전략 수립을 계기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알차게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푸드허브 프로젝트(Food Hub Project)‘는 지산지식(地産地食) 원칙을 기반으로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먹거리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농업 재생의 중요한 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편백과 삼나무 같은 지역에서 자란 나무를 활용해 목수가 주택 단지를 조성하며, 쇠퇴한 임업을 부흥시키고 건설 인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목적의 주거지를 만들어 마을을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지역 농업고등학교는 미래 리더를 양성하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정부, 민간, 주민, 이주자가 협력하여 진행되며, ‘가미야마 연대 공사’와 같은 기관은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한 시골이 어째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관계자들은 직접 방문해 보시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2025-06-19

남광현의 이슈 브리핑

‘땅꺼짐 관리’

도시의 빠른 성장과 함께 수십 년 된 상·하수도, 지하철과 같은 지하 인프라는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와 같은 극단적인 날씨 현상은 지반의 안정성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2019년부터 현재까지 땅꺼짐 사고가 급증했으며, 그 중 대구시는 특히 하수도 노후화로 인해 땅꺼짐 사고 발생 위험이 커졌다. 예를 들어, 대구 동구의 한 도로에서 2024년 여름, 직경 50cm의 땅꺼짐 사고가 발생하여 차량 통행에 큰 차질을 빚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례 없는 극심한 폭우로 지반을 더욱 약화시켜 이러한 사고를 촉발하고 있다. 따라서 대구와 경북 지역은 이러한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고 관리할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땅꺼짐 사고 또는 싱크홀(sinkhole)이란 지하공간의 침하나 파손으로 인해 지반이 급격히 내려앉는 현상이다. 이는 상·하수도관의 파손, 과도한 지하수 유출, 불법적인 지하 개발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낡은 상·하수도 시설은 지속적인 노후화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는 지하 공간 모니터링 시스템(GPR), 3D 지하공간 모델링, 실시간 침하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있다. 이러한 기술은 지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는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과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지하공간 관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도로 지하공간을 탐사하는 차량을 도입해 도심 내 땅꺼짐 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 또한, 미국 플로리다주는 싱크홀 보험 제도를 의무화하여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신속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는 3D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구축해서 지하시설의 안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역시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조건과 도시의 노후 인프라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접경 지역에서는 지하수와 상·하수도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여 위험 요소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구경북은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첫째, 노후 상수도 및 하수도 시설을 조기에 교체하고, 지반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대구와 경북 지역의 지하공간 개발을 체계적으로 규제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세밀한 지하공간 안전 점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을 설계하고,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순히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넘어, 대구·경북 지역의 기후변화 적응력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제는 ‘땅꺼짐 관리’ 정책의 질적·양적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6-19

노병철의 요지경

선 넘은 요즘의 성(性)

나도향의 ‘뽕’이나 ‘물레방아’ 소설을 우리는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다. 인간들의 도덕의식 무너지고, 성 윤리가 없어지는 현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1925년에 발표된 글이니 그 당시 사람들의 성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00년이 흘렀다. 지금의 성 풍속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달라진 성 풍속도를 반영하는 수필 작품은 나온 게 있을까? 아직 중세 암흑시대의 문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타 문학적 장르에 비해 수필의 영역에선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어 파격적인 수필을 읽을 수는 없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이에 오직 결혼에만 불을 밝힌 기집애들이 쓸 만한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새벽 도서관에 한 번도 간 적도 없고, 독서는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로 대신하고, 자기 계발은 성형외과 드나드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여자애들이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이게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전 드라마 대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그 많던 싱아(괜찮은 남자)는 누가 다 먹었단 말인가? 라면서 여자 주인공들이 치고받던 대화이다. 2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여전히 ‘내숭’을 떨어야 하고 ‘얌전한 척’해야 했고 어떻게 하면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 후 연애의 낭만성과 고상함, 우아함은 이미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선을 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미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완전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다. 기존 연애에서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롯이 남녀의 심리와 육체를 가지고 게임을 벌이면서 서로를 탐하고 충돌하는 심리적 정치학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마치 그 옛날 ‘사랑과 전쟁’이라는 불륜 프로그램보다 더 진보한 폭로물이 여기저기서 방송되고 있음은 이미 안방에서 그런 정도의 남녀 관계물이 용인되는 시점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도덕적 사고방식을 아주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 결혼 이데올로기에서의 순결 의식과 배타적 소유욕, 청교도적 성 의식을 일순간에 비웃는다. 70년 전 피임방법이 개발되면서 혼전 성관계가 자유로워지고 섹스와 출산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므로 해서 여자들의 성에 대한 개념은 급속히 바뀌고 만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성들만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디에도 ‘책임’이란 의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롯이 쾌락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겪고 상상하는 사랑의 패턴이 완전히 뭉개지고 이런 고루하고 진부한 사랑은 신파적 사랑으로 치부되면서 케케묵은 사랑 레퍼토리만 쌓여 있는 내 머리에 혼란이 온다. 생각은 ‘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고 나가기엔 주위의 싸늘한 시선으로 인해 아직 상당히 춥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애들에게 어른으로서 해줄 말도 생각이 안 난다. 어지간해야 말이 통하지. /노병철 수필가

2025-06-19

이우근 시인과 박계현 화백의 포항 메타포

고인돌과 놀았다

고인돌 옆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밤을 세웠다 고인돌은 지상의, 별의 자리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헛된 욕망에 불구하다 누군들 불멸을 꿈꾸지 않으랴 그러나 권력은, 혹은 인생은 야비하고 무모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고인돌이었다 저 장엄한 것이 이슬보다 쓸모없다 잡풀에 희롱당하고 비에 젖어 후줄근하다 빛나는 죽음은 없다 주검만 잠시 있을 뿐 그마저도 사라진다 종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칠성재 마루 고인돌 옆에서 잠을 청한다 옛사람의 근본을 추적하여 오늘 우리의 터전의 발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만 지금은 내가 불멸의 고인돌이다 자기의 자리에서 생(生)을 노련하고 집요하게 노려보는 것이, 긴 호흡 내쉬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새벽이 되면 집으로 갈 것이다 그래, 오늘 살아 있어 미래를 전망하고 성찰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해서 눈부시게 찬란하다 고인돌과 종일 잘 놀았다. … 내가 이 고인돌을 보러 갔을 때, 입구의 안내판은 누가 발로 찼는지 찢어져 있었다. 대체로 관리가 무성의해 보였다. 멋쩍은 미필적 실수, 행정력의 부재, 그 무엇이라도. 비교해 보니 강화도와 연천 전곡의 고인돌은 제법 대접을 잘 받는 듯 싶었다. 그러나 칠성재의 그 고인돌은 푸대접 받는 그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쨌거나!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6-18

Essay

순두부찌개

멀리 사는 딸네 식구가 간만에 집에 온다. 누나가 온다는 소식에 아들도 오겠다고 한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하나같이 “엄마가 손수 끓인 순두부찌개”라고 했다. 때마침 길 건너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다행이다. 장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로 향했다. 김이 나는 두부 모판 옆에 봉지 두 개가 서 있다. 두붓물에 잠긴 순두부의 따뜻함과 몽글한 순도가 마음에 든다. 냉장고를 뒤져 양파를 다듬고 당근을 깎는다. 파와 고추 곁에 잘게 썬 애호박을 담는다. 조갯살을 넣을까 하다가 딸과 아들의 입이 기억하는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꺼낸다. 고추기름을 만들고 고기부터 볶기 시작했다. 빨간 국물을 보는 순간, 차고 방에서 만났던 그녀가 떠오른다. 손이 저절로 옛 기억의 맛을 쫓아가고 있다. 30년 전, 남편의 첫 사업 부도로 나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유치원생인 딸과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의 오후를 미술학원에 맡기며 내가 간 곳은 수학 학습지 사무실이었다. 오전에 전화로 학부모를 먼저 설득해야 했고, 오후에는 학생의 학습 수준에 맞게 수업 단계를 정해 선생님을 배치해 주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던 그날, 아들 녀석이 눈 뜨자마자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칭얼거렸다. 기어코 눈물 콧물이 범벅된 녀석을 선생님 손에 넘기고 돌아섰다. 아이는 얼굴을 창문에 붙이고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단계별 학습지가 담긴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나왔다. 빗속을 걸어 미리 약속한 주소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주소지를 들고 간 곳은 가정집 차고지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이었다.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곳에 학생의 엄마가 홀치기 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일에 방해될까 봐 한참 비속에 서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들어서자, 그녀가 반갑게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리라던 그녀는 재바르게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학습지 가방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허둥거렸다. 내 등 뒤로 학교에서 돌아온 남자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빗물에 젖은 발을 씻고 들어오는 아이와 함께 얼떨결에 나도 둘레 밥상 앞에 앉았다. 갓 지은 밥을 세 그릇 올린 그녀는 가운데에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 냄비를 놓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내게 그녀는 매일 아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새 밥을 짓는다고 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따뜻하게 배부터 채워야 한다며 웃었다. 고추기름에 어우러진 찌개를 보자, 아침도 먹다 만 내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내 숟가락은 염치도 없이 들락거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허기진 마음까지 몽글해졌다. 상을 물리고, 학습지를 풀던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동글납작한 아이를 보자, 유리창에 코를 문대며 울던 아들이 생각났다. 나는 애써 웃으며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막힌 곳을 뚫어주자, 아이는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그녀는 멀찌감치 앉아 홀치기를 하며 웃었다. 학습지 하는 아이를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순두부찌개 요리법이 적힌 종이를 받아왔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그녀가 말한 순두부를 샀다. 나는 그녀의 솜씨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 밥상에 올렸다. 찌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남편과 아이들이 이내 밥 한 그릇과 찌개 그릇을 비우고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국물까지 마신 아들이 나를 보며 웃었다. 어스름 속에 비가 그치고 있었다. 그 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순두부찌개를 끓인다. 고추기름을 내면, 오랜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갓 지은 밥 냄새를 맡고, 돼지비계가 뜬 순두부찌개를 떠먹는다. 세월이 흠씬 지나버린 지금도 그 둘레밥상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모인 밥상이 시끌벅적하다. 딸과 아들의 숟가락이 찌개냄비에 먼저 간다. “바로 이 맛이야.” 조미료를 넣지 않은 자리에 뭔지 모를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아들의 말에 딸이 “정성”이라며 맞장구친다. 정성보다 허기진 내 마음을 채워주었던 그녀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순두부찌개가 맛있는 밤이다. /윤명희 수필가

2025-06-18

한방산책

다한증과 자율신경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땀을 흘린다. 이는 체온을 조절하고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지나치게 많은 땀을 흘리거나, 더운 상황이 아님에도 땀이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한 체질이 아니라 다한증이나 자율신경실조 같은 병적 상태로 볼 수도 있다. 여름철에는 이러한 증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특히 더위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쉽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운이 부족해 땀구멍을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져 발생하는 기허형 다한증과 열이 많은 체질이 더욱 과항진 되어 땀이 나는 열독형 다한증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처럼 스트레스를 받아 열이 훅 오르면서 땀이 나는 음허형 다한증이 있다. 기허형은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치고 땀이 나며 땀을 많이 흘린 후엔 머리가 어지럽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호소한다. 열독형은 평소에도 땀이 많긴 하지만 열이 과항진 되면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나서 일상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이다. 밥을 먹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체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으로 인한 다한증은 열이 순간 오르면서 땀이 훅 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의 경중에 따라 하루 수차례에서 수십 차례 발생하고 이런 경우는 수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두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귀결되며 치료는 각 증에 맞게 자율신경을 회복하는 한약과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약침을 쓰면 해결할 수 있다. 기운이 허한 사람은 황기나 인삼같은 약재를 써 기력을 보충하고 빠져나간 땀을 보충할 진액을 생성한다. 열이 많은 사람은 석고나 황련을 써서 처방을 해 몸의 열을 식히고 심장의 열을 식힐 수가 있다. 화병 같은 스트레스 관련은 치자나 시호를 이용해서 처방을 하면 불면과 가슴 두근거림 열이 훅 뜨면서 땀이 나는 증상 등을 개선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약침요법도 병행할 수 있다. 우리 척추는 오장육부와 대응이 되는데 실제 흉추에서 나오는 신경은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이 신경에 약침을 놓으면 오장육부의 상태를 개선시킬 수가 있다. 이와 함께 경동맥 밑에 있는 성상신경과 근처의 부교감 신경에 약침을 놓아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생활 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덥다고 차가운 음료나 냉방을 과도하게 이용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약해져 체온조절과 열 배출에 어려움을 겪어 다한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실내 온도는 외부와 5도 이상 차이 나지 않도록 하고 반신욕이나 족욕을 통해 체온을 안정시키고 하루 30분 가량의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통해 몸의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여름은 단순히 더운 계절이 아니다. 몸 안의 열과 수분, 기혈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다. 땀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율신경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이 계절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고유한 치료의 원리가 있다. 기와 음을 보하며 교감과 부교감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섬세한 한방적 접근이야말로 여름철 다한증과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6-18

이정옥의 신황금기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면 한 그릇 밥을 먹는다. 어른 몫의 공기밥 하나를 거뜬히 다 먹는다. 숙주나물, 호박나물, 콩나물에 가지 반찬까지 갖은 채소 반찬을 즐겨 먹는 손자는 학교 급식 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도맡아 듣는다고 했다. 매운 김치도 곧잘 먹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자랑하곤 했다. 한식당엘 가면 된장찌개와 배추나물을 제 앞에다 끌어다 놓고 먹는 어른 식성의 아이는 된장에 밥을 말다시피 먹고는 빈 그릇을 보이며 한 공기를 더 시켜 달라기도 한다. 어릴 때 고기를 즐겨 먹지 않아 애태우던 식성도 변해, 이제는 성인 한 사람 몫의 고기도 너끈히 먹어 치운다. 오늘 저녁 차려준 만둣국을 맛나게 다 먹고는 국물에 밥 말아 먹어도 돼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아침을 차려 주면 마다하지 않고 다 먹고 학교 간다며 제 엄마도 흐뭇해 자랑하곤 한다. 많이 잘 먹으니 또래보다 좀 작은 몸이 이제 쑥쑥 커지려나 기대가 잔뜩 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아이의 사회도 확장되는 것도 알겠다. 최근 매일 하굣길을 도와주면서 아이의 일상을 더 가까이 관찰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나온 손자는 운동장을 거쳐 정문까지 오면서 만난 거의 모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몸 부딪쳐 장난치고 얘기를 하는 걸 멀찍이서 본다. 2학년인 손녀는 내 손 꼭 잡고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는데, 큰 아이는 다르다. 손자는 이제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휴대폰으로 만날 시간을 약속해 정하고, 심지어는 우리집에까지 와서 하루종일 놀기도 한다. 게임기만 가지고 놀길래 체스와 퍼즐을 줘도 저희끼리 잘 논다. 스스럼없이 할머니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는 게 흐뭇해 같이 놀러도 가고 밥까지 차려준다. 제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손자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사촌누이 정도의 가족이 아이의 사회 영역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제 친구를 디딤돌 삼아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단단히 발 디뎌 걸어가겠지 싶다. 아이가 자라면 부끄러움도 자라는가 보다. 학교에 가지고 가는 물병이나 우산 취향이 싹 바뀌었다. 손녀는 분홍의 인형 그림 있는 물병, 손자는 파란색 로봇 그림의 물병이었다. 우산도 장화도 남녀 구분이 확실했었다. 어느 비오는 날 하굣길에 무늬 있는 우산을 가져다줬더니 유치하고 부끄럽다며 쓰지 않으려 해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원래 네 것이었잖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젠 검정우산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며 제 엄마도 웃는다. 하루는 내 옷매무새에 깜짝 놀라며 얘기하는 말에 내가 되려 놀랐다. 민소매 위에 재킷을 입었던 내가 차 안에서 잠시 재킷을 벗고 있었다. 재킷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민소매 차림의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지르듯 말한다. 할머니 옷이 왜 그래? 빨리 옷 입어···. 그리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부끄럽단 말이야···. 얼른 재킷을 둘러 걸치며 헛웃음을 삼켰다. 아이가 크면서 부끄러움도 알아 커지는 것 같다. 어딘가서 배운 짧고 야트막한 상식 자랑에 맞장구를 쳐주었더니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랑 지적 수준이 맞아서 좋아···. 자라는 손자의 지적 수준에 맞춰 주려면 할머니의 공부도 끝이 없으려나 싶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6-18

사설

스쿨존 시간제 속도제한, 교통의식이 관건

대구에서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시간제 속도제한이 본격 시행될 전망이다. 만식이법 제정으로 시행된 어린보호구역 속도 제한은 너무 낮은 속도와 사고가 나면 운전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돌아오는 문제 등으로 운전자간에 상당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이런 논란 해소 등을 이유로 경찰은 2023년 9월 전국 8곳을 시간제 속도제한 시범지역으로 지정하고 시범운영 해왔다. 지금은 자치단체별로 시간제 속도제한 지역을 넓혀가는 추세다. 경북서는 작년 9월 구미에서 처음으로 시범 운영에 들어갔으며 대구는 북구 신암초등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시범 적용되고 있다. 대구시자치경찰위원회는 최근 어린이보호구역 시간제 속도제한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를 두 차례 벌이고 제도 도입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자치경찰위원회는 두 차례 조사에서 시민의 80% 이상이 시간제 속도제한에 찬성함에 따라 내년부터 대구지역 스쿨존 13곳을 추가로 선정할 계획이다. 후보지 선정에 앞서 대상지에 대한 도로구조, 사고이력, 차량 및 어린이 통행량, 학부모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어린이보호구역 시간제 속도제한이 시행되는 곳엔 현재 시속 30km인 제한속도가 보행자가 적은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는 시속 50km까지 허용된다. 설문조사에서 시간제 속도제한을 도입하자는 여론이 많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식이법 제정 이후에도 어린이 교통사고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보험개발원 발표에 의하면 작년 스쿨존 어린이 피해 교통사고는 172건으로 전년보다 5.5% 증가했다. 차량이 늘고 도로 여건과 교통시설이 이에 못따라 가 교통사고는 매년 20만건 이상 발생한다. 스쿨존 시간제 속도제한이 허용되더라도 교통법규를 지키려는 운전자들의 안전의식이 잘 유지되어야 소기의 목적도 달성될 수 있다. 정책이 바뀌면 시민의 혼란도 불가피하게 생길 수 있다. 제도 변화에 대한 홍보와 교통 표지판의 획기적 정비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교통흐름 개선과 어린이 안전을 지키는 두 가지 효과를 이루도록 신중한 준비와 결정이 필요하다.

2025-06-18

팔면경

질문은 기자의 존재 이유

각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기자란 ‘묻는 사람’이다. 배우는 연기를 함으로써,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찰은 도둑을 잡아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럼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증명 방식이다. 그게 무시무시한 권력자건 파렴치한 범죄자건 취재 대상 앞에서 묻는 걸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잘 묻고, 상대로부터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끌어냈던 여성 기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인도의 간디, 중국의 등소평, 리비아의 카다피,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이 그녀의 질문 앞에서 쩔쩔맸던 사람들. 한 명 예외 없이 세계적 거물임에도 팔라치의 질문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물으면 혹시 그들이 화내지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없었다면 팔라치가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도 ‘기자의 한 전범(典範)’으로 기억될 까닭이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의 과거와 관련된 껄끄러운 질문을 한 기자가 김민석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인신공격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기자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자란 묻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니. 대장장이가 칼을 만든다고 “그 칼에 의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칼을 만드냐”고 질타하는 건 얼마나 무지한 짓인가. 기자에게 “왜 묻느냐”고 난리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18

사설

국힘 김용태·송언석 충돌, 언제 정신차릴까

국민의힘 ‘5대 개혁안’ 추진을 놓고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송언석 신임 원내대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쟁점이 되는 개혁안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와 ‘대선 후보 교체 시도 파동 당무감사’다. 김 위원장은 “이달 말까지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해 개혁안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송 원내대표는 “혁신위 구성을 먼저 해서 개혁안 추진 문제를 추후 논의하겠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당선 직후에도 “김 위원장의 쇄신안에 대해서는 여러 의원의 견해가 다르다. 추후 꾸려질 혁신위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했었다. 당내 친윤계 출신 구(舊)주류 지원을 받아 선출된 송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이 제안한 개혁안에 대해 제동을 걸면서 두 사람이 충돌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혁신위를 비롯한 당내 특위 구성은 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고 비대위 의결도 거쳐야 한다. 김 위원장이 브레이크를 걸면 혁신위 출범이 불가능한 것이다. 송 원내대표의 의중대로 김 위원장이 임기(6월 30일)를 마치고 물러난 후 혁신위가 구성되면, 5대 개혁안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다. 혁신안 중 ‘대선 후보 교체 시도 관련 당무감사’는 구주류 세력의 핵심 의원들이 사정권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의원 다수도 김 위원장의 개혁 드라이브를 외면하면서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는 모습이다. 이러니 SNS에서는 국민의힘이 ‘영남자민련’ 또는 ‘친윤 어게인’으로 쪼그라든다는 비판이 쇄도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김 위원장이 요구하는 개혁의 길로 갈지, 아니면 ‘친윤 어게인’으로 돌아갈지 많은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힘이 민심을 고려한다면, 김용태 위원장이 제안한 ‘5대 개혁안에 대한 전 당원 여론조사’를 수용하는 것이 맞다. 김 위원장은 여론조사 결과 당원들이 개혁안에 반대하면 개혁안을 철회하겠다고까지 약속했다. 취임 직후 “수도권 민심을 얻겠다”고 포부를 밝힌 송 원내대표가 한식구인 당원 여론조사마저 주저하는 이유를 국민은 훤히 알고 있다.

2025-06-18

오그러네

고층 아파트와 멈춰 선 제철공장

포항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진다. 구도심이든 신도심이든 어디를 가도 고층 아파트가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분양홍보 현수막이 요란하고 카페 골목에는 젊은 얼굴들도 간간이 보인다. 겉보기에 포항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그럼에도 발밑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최근 현대제철 포항 제2공장이 조업을 중단했다. 공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수익성 악화 속에 멈추고 말았다. 지역고용에 직결되는데도 공장 가동중단은 너무도 조용히 이뤄졌고, 조업 재개의 기약은 오리무중이다. 이는 상징적이다. 철강산업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포항이 더 이상 과실을 누릴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스코라는 ‘산업수도’의 심장 외에도 현대제철이라는 대형 플레이어가 존재하던 포항의 산업 지형에 틈이 생긴 것이다. 포항은 너무 오랫동안 철강 한 우물만 파왔다. 철강으로 번 재정이 도시 인프라를 일으켰고 지역 대학과 병원, 학교와 상권을 지탱해 왔다. 지금은 글로벌 철강 수요가 꺾이고 탄소중립 규제는 산업 자체를 흔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구조 전환전략은 수도권과 세종, 충청권에만 집중되는 양상이다. 현대제철의 침잠은 예사롭지 않다. 포항은 점점 ‘철강 다음’이 필요해지는 도시지만, 아직 그 해답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 두려운 바는 도시의 인구구조다. 포항의 인구는 50만 아래로 떨어졌고 청년층의 유실이 멈추지 않는다. 교육과 일자리, 문화와 경제 인프라 모두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 도시의 쇠퇴는 예정된 수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규아파트 단지는 속속 들어서고, 부동산 개발은 활기를 띤다. 산업이 줄어드는데, 왜 주거는 늘어나는가. 개발 논리의 비틀림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도시의 미래보다 눈앞의 단기수익에 매달리는 구조가 혹 아닐까.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았지만 도시는 분양가에 집착하고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린다. 대학은 지역과의 소통이나 연계가 없고 청년대학생들은 수도권만 바라본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의 균형발전과 혁신을 말하지만, 그 메시지가 지역의 현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역에서는 변함없이 정당 간 정치싸움과 예산 따내기 공방이 계속된다. 위기를 본질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지역의 위기를 ‘철강의 일시적 부진’으로만 여긴다면 더 큰 위기가 엄습할 터이다. 포항은 산업전환과 도시 재설계라는 이중과제 앞에 섰다. 철강을 넘어서는 산업기반을 어디까지 확보하고 유치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지역의 대학과 기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포항이 기른 청년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한 계획과 협력, 실천과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관심과 투자에만 턱을 괴고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지자체, 기업, 대학, 시민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가닥은 ‘삶의 질’이다. 청년이 지역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건 일자리만이 아니다.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교육과 돌봄, 젊은 세대가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공간, 노년 세대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도시의 경쟁력을 만든다. 포항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가능성을 미래가치로 만들려면 온 도시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장규열 고문

2025-06-18

지난연재 목록보기 keyboard_arrow_d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