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폭염 등으로 고수온주의보가 작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발령됐다. 경북 동해안도 지난 1일 경주, 포항, 영덕, 울진 등에 고수온주의보가 발령돼 양식 어가들이 비상이다. 작년 여름은 경북 동해안에서만 300만 마리의 어류가 폐사하는 등 역대 최고 수준의 고수온 피해가 발생했다. 강도다리, 넙치 등 고수온에 취약한 어종에서 주로 발생했고, 많이 발생한 날은 하루 20만 마리가 폐사한 사례도 있다. 피해액이 31억원에 다달았다. 포항에서는 육상양식장 40곳 가운데 32곳이 피해를 입었다. 고수온주의보는 수온 표층온도가 28도 이상 지속될 경우 경보단계로 격상되는데, 올해는 역대급 폭염이 예상돼 양식장마다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는 이런 양식 어가들의 사정을 고려,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어류폐사 피해 최소화를 위한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식어가에 대한 방제장비나 물품 등을 지원하고 시설 현대화와 보험료도 지원한다. 포항시의 이같은 선제적 지원은 바람직하다. 사후 지원보다 예방적 효과로 거두는 실익이 크기 때문이다. 여름철만 되면 발생하는 동해안 고수온 피해는 반복적으로 일어나면서 근본적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양식농가의 영세성과 비용 등이 뒤따르지 못하는 것이 원인이지만 대체로 단기적 처방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은 탓이다. 고수온에 따른 물고기 피해는 기후변화 등으로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보다 근본적 대책을 세워 피해를 줄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육상 양식장을 운영하는 모 대표는 “장비보다 운영비가 더 부담스럽다”고 말하고 “냉각기와 산소공급 장치를 돌리려면 전기요금이 문제”라고 했다. 포항만 해도 액화 산소공급기 등 2000대 가까운 방제장비가 어가에 있으나 어가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농업처럼 어가에도 특례요금을 적용해주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한 일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고수온에 대응하는 양식기술 개발이나 대체 어종개발도 좀더 적극적으로 추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 들어 5명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 건설)에 대해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 보고하라”고 지시하자, 해당 기업은 물론 국내 전 건설업계가 초긴장 상태다. 포스코이앤씨 측은 “연이은 산재사고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하면서도, 대통령 입에서 면허취소 발언까지 나오자 임직원과 그 가족, 하청업체, 주식투자자, 본사가 있는 포항시민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최고수위의 처벌을 언급한 것은 산재사고의 경각심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실제 면허취소가 되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근로자 사망 사고로 건설 면허가 취소된 전례는 없다. 지난 2022년 근로자 6명이 사망한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 때에도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대한 면허 취소 논란이 있었지만, 올 5월 서울시로부터 영업정지 1년 처분을 받는 선에서 종결됐다. 포스코이앤씨는 국내외 주택·건설 공사와 포스코그룹의 주요 인프라 건설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만약 면허가 취소되면 사회·경제적인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6월 현재 재직하고 있는 직원이 6153명이고 협력사도 2000여 개다. 전국 아파트 건설 현장이 100여 곳에 달하고, 해외영업장도 다수여서 회사가 문을 닫으면 그 충격은 엄청날 것이다. 포스코이앤씨는 특히 포스코그룹의 명운이 걸린 포항제철소 LNG발전소와 수소환원제철 부지 조성 공사도 곧 시작해야 한다. 중대 산업재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려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에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다만 우리 건설업계 전반에 상존하는 구조적인 현안을 무시하고 해당 기업만 일벌백계식 처벌을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건설업도 그렇지만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상시근로자 5인 이상 국내 제조업체 대부분은 매일 산재 발생 위험성을 안고 가동된다. 이 모든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면허를 취소하거나 사장을 처벌하면, 어느 누가 기업을 운영하려 하겠는가.
두 개의 잔혹한 이야기가 들렸다. 육십 대 초반의 한 남자는 자기 생일날 며느리와 손주가 보는 앞에서 자기 아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러고는 이야기한다. 이혼한 아내가 너무 미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싶었고 그래서 택한 방법이 아내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죽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유였다. 아내가 그렇게 미웠으면 그냥 아내에게 총을 쏘면 될 일인데 왜 자식에게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일까. 눈앞에서 할아버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어린 손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단 말인가. 이런 일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삼십 대 초반의 남자 이야기다. 젊은 나이에 객기를 부리다가 사업에 실패했다. 재기를 위해 처가의 돈을 많이 빌렸다. 하지만 계속된 사업 실패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고 장인의 돈 독촉은 연일 계속되었다. 급기야 이혼 이야기까지 나오고 말았다. 그러자 이 남자는 모든 사업자 명의를 자신의 아내에게 다 돌려버리고 모든 빚을 그쪽을 향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내가 자는 방문 앞에서 목을 매고 죽어버렸다. 밤이 새도록 남편의 시체를 방문에 걸어 놓고 잔 셈이 되었다. 아침에 잠에서 깬 아내는 방문에 목을 매 죽어 있는 남편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일이 있은 지 꽤 되었지만, 아내는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참으로 독한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장인을 향한 보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참으로 끔찍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찌 인간으로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다. 최근 이야기 두 개를 뽑았을 뿐이지 비견한 사례는 셀 수도 없이 많다. 분명히 이 사회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대 사회에 부모라는 개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개념이 있을까? 가족이란 개념은 전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예를 든 두 남자는 지네 부모에게 증오의 표출 방법으로 아주 잔혹하게 남을 짓밟는 것만 배웠지,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눈곱만치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는 무조건 옳고 남이 다 잘못했다는 지극히 이기적 사상관으로 세상을 살아온 것이다. 자기 잘못은 도외시 한 체 남에게 상처받는 것을 못 참고 분노 조절 장애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자격지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대충 넘어갈 성질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존경받는 어른이 없어진 지 오래다. 어른이 없어지니 전부 어른 행세를 한다. 나이가 조금 먹었다 싶으면 안하무인처럼 행동하고 아무 날이나 걸림이 없다. 이러니 젊은이들조차 예의는 사라지고 몰염치만 남았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할 종교 성직자들은 정치 놀이에 여념이 없고 납골당이나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국민정신 건강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사랑으로 남을 보듬어주는 정(情)이 없어졌다. 남에게 절대 지지 않으려고 죽기 살기로 악다구니처럼 살아가는 군상들이다 보니 남에 의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힘은 사라지고 복수의 칼날만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있는 느낌이라 갈수록 세상살이가 피곤해진다. /노병철 수필가
우리 집 고양이들에겐 저마다 사연이 있다. 첫째 ‘마루’는 어느 식당에 출몰한 쥐잡이용으로 용인5일장에서 삼천 원에 팔려 왔고, 둘째 ‘보리’는 꼬리가 잘려 피투성이가 된 채 길 한구석에서 울고 있었다. ‘셋째’ 용이는 내가 다니던 문학관 주변을 맴돌며 방문객들의 손길과 발길질을 번갈아 맞고 있었고, 넷째 ‘송이’는 구내염에 시달리며 아파트 단지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막내 ‘핑코’는 자기가 골목대장인 줄 알았지만 산책 나온 개들에게 종종 쫓겨 다니곤 했다. 마루, 보리, 용이, 송이, 핑코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나의 소중한 가족들이다. 나도 내가 고양이 다섯의 ‘집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도 가끔은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나는 동물을 좋아해 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이 아이들은 우연히 내게 찾아왔고, 각자를 마주한 순간들이 너무 절박했다. 내가 손을 내밀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첫째가 온 지 9년, 막내가 온 지도 벌써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나는 반려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됐다.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철학자인 도나 해러웨이는 개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반려종 선언(2003)’을 제시한 바 있다. 대체로 “우리는 서로를 위태롭게 만들고 남의 살점으로 존재하며 서로 먹고 먹히고 소화불량에 걸리며 살다 죽는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종이 서로 반려가 되어 살아가는 일은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창발적 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반려종’은 당연히 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려종이 존재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개의 종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반려종은 관계가 존재론의 최소 단위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해러웨이는 자신과 반려견 사이의 대화와 훈련 경험을 통해 소통과 조율을 오가며 ‘서로 만들어가는 존재’가 됐다고 말한다. 개와 인간이 서로에게 의미 있는 타자로 존재할 수 있는 윤리를 알게 됐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애정 관계가 아닌 정치적이고 철학적으로 사유되는 관계라고 말한다. 결국 ‘반려종 선언’은 인류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비인간 간의 관계를 재구성할 것을 요청하는 의제라 할 수 있다. ‘필멸’이라는 우리 삶의 조건에서는 ‘생명 우선’이 아닌 ‘지속 우선’의 태도가 수립돼야 하며, 다른 종 간의 상호의존적 관계 맺기 만이 기후 위기와 생태적 재난 시대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죽여도 되는 종’을 끊임없이 지정해 왔다. 가령 ‘침략종’이 그렇다. 이들은 서식처나 생태 복원을 구실로 죽여도 되는 존재로 숨어 살게 된다. 이는 “특정 생명체를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생명체를 위한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을 위한 결정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리는 것은 아닌”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근대의 생명정치가 살 가치가 있는 종과 그 외부의 타자를 구분하는 사고에 기초한다면, 그리하여 그러한 인식에 입각하여 나치의 ‘인종청소’가 시행된 것이라면, 특정한 국면에서는 우리 자신조차 ‘죽여도 되는 종’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반려란 지속가능한 생태를 함께 이루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해러웨이만큼이나 우리집 다섯 고양이가 그 사실을 내게 알려줬다. /허민 문학연구자
갓을 쓴 바위란 뜻의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곳은 전국에 여러 곳 있다. 예컨대 충주시 동량면 조동리에 있는 바위는 모양이 갓을 쓰고 있는 것과 닮아 이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갓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동네 이름도 여기서 유래돼 관암(冠巖) 마을이다. 목포시나 경기도 양주, 서울 우면동, 공주시, 보령시 등에도 갓바위란 이름을 가진 마을이나 바위가 있다. 그러나 경북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갓바위의 인지도에 밀려 대부분의 갓바위들은 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팔공산 갓바위는 팔공산 봉우리의 하나인 관봉 정상부에 있는 높이 5.48m의 불상이다. 9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머리 위에 씌인 갓모양의 바위는 그 이후인 고려시대에 따로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후덕하고 무뚝뚝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1965년에 문화재 당국이 보물로 지정한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이 특별히 유명한 것은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불교 신도이든 그렇지 않든 소원을 빌러오는 사람들이 연중 끊이질 않는다. 한해 250만명이 찾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갓바위 부처님에 대한 가도가 영험한 모양이다. 수능시험 100일을 맞은 이번 주에도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 많은 기도객이 몰렸다고 한다. 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산을 올라 기도하는 이들의 정성이 놀랍다.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盡人事待天命)고 했다. 각자가 바라는 소원은 다르나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은 믿고 싶다. /우정구(논설위원)
“나중에 양육비를 안 주면 어떡하죠, 변호사님?” 10년 넘게 이혼전문 변호사로 일하며 필자가 의뢰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이다. 실제로도 힘들게 협의이혼이나 재판이혼을 하고 나서도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양육비를 받지 못해 고생하는 의뢰인들이 많다. 이혼 소송의 의뢰인이 다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한 소송의 의뢰인이 되기도 한다. 민법 제913조에 의해 부모는 자녀를 보호하고 교양할 권리·의무가 있으므로 이혼하고 자녀를 키우지 않고 있는 부모에겐 양육비 지급 의무가 지워지는 것이다. 양육비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주는 것으로 정해진다. 그런데 이렇게 정기적으로 보내야 하는 양육비를 3번 이상 안 보내면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 감치는 30일 이내의 기간 동안 채무자를 교도소 등 장소에 구금시켜 놓는 것이다. 양육비 채무자가 정기적 급여를 받는 근로자인 경우 양육비 채권자가 다니는 회사에 직접 양육비를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회사가 채무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떼서 양육비 채권자에게 직접 보내준다. 이것이 양육비 직접지급명령 제도이다. 양육비 미지급자에겐 출국금지 처분과 운전면허정지 처분도 내려질 수 있다. 나아가 양육비 채무자의 이름과 나이 직업, 주소 근무지 등을 공개하는 신상정보공개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고 양육비를 일시금으로 지급해야 하거나 법원에 양육비 지급을 담보하기 위한 일정 금액의 담보금을 공탁해야 할 수도 있다. 형사처벌도 된다. 양육비 미지급에 따른 감치 결정을 받고도 1년 동안 여전히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양육비를 안 주다간 전과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떤 금전채무도 이런 많은 제재 수단을 가지는 것이 없다. 아이들의 생계, 기본권과 관련된 양육비 채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강제 수단들이 있으므로 사실 정상적 경제활동을 하는 비양육자들은 양육비를 잘 보낸다. 문제는 자기 이름으로 받는 급여도, 자기 이름으로 된 재산도 없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경제활동을 하며 사는 비양육자들이다. 그 자들에 대해서도 감치와 형사고소 등 위 수단들을 취할 수 있겠지만 여기엔 알아볼 시간과 노력, 또 법률 비용이 든다. 양육비를 못 받으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대부분은 생계를 꾸리는 데 바쁜 사람들이기에 양육비를 받기 위한 강제수단이 많다는 법률 정보를 정확히 알기 힘들거나 알아도 법률 비용을 쓸 여유가 없다. 몰라서 못하고 알아도 못한다. 정부와 법원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이다. 부모 명의 회사에 다니며 떵떵거리며 살면서도 양육비를 보내지 않고 있는 남성에 대해 감치 결정을 받았지만 법원은 감치 집행에 너무나 소극적이었다. 특히 대상자의 소재가 불분명하면 감치 집행이 거의 불가능했다. 모든 사회적 문제가 그렇겠지만 특히 양육비 이행 문제에서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제도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양육비 이행을 위한 강제수단과 제도들이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실무 집행자들의 의지와 노력이 더해졌으면 한다. /김세라 변호사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필연적으로 죽어가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살아갈 많은 날들 매우 눈부셔요 당신의 나날은 더 아름다워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성실하려 해요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지 않아요 잘 살길 바라는 것은 잘 죽기 위함이에요 항상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어요 교만은 지금의 자살이에요 지금 당신 옆의 모든 존재에 대해 모든 것을 허락할 것을 맹세하면 어떨까 해요 지금 눈앞의 손해보다 양보가 큰 이득이었어요 물러섬이 나아감보다 좀 낫더라고요 나는 미처 몰랐어요, 앞 사람의 어깨를 보는 것. 좋더라고요 비빌 언덕의 환한 햇살, 너무 따스하지 않아요? 나 역시 중요하지만 남들도 모두 중요해요 남루한 어깨동무, 타박타박 걷는 길 그냥 가만히 가요 사람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요 북천숲에 앉아서 그런 생각을 해요 발전적이지 않아 제자리 지키면 오히려 발전적이에요 누가 뭐래도 상관 없어요 나무와 숲이니, 모두가 두루뭉술하니, 손해 볼 일 없으니 그러한 가능성에의 지향적 삶이 궁극의 길일 거예요. …… 정말 모르고 살았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모든 것임을. 몰랐다. 면피가 아니라 무지의 극점(極點)에서 세상의 부분을 설파하려 했다. 무모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죄질이 나쁜 교조적인 관념의 세계에 숨어, 무한의 삽질을 하며, 나무 한 그루 못 심었다는 것이다. 적당하게 살아야 했다. 깨달음 혹은 각성은 강요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다. 불구하고, 구업(口業)의 악업을 일상으로 저질렀다. 문제는, 그것이 지속적이며 세속적이라서, 습관화되어, 무감각하게, 덧칠하기 때문에, 더욱 두렵다. 그러나 삶은 명랑하다. 그렇다고 믿고 나를 개조해야 한다. 북천숲의 나무들은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걸음을 따르지 못한다.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초록바람이 살랑거리는 오후였다. 포항성모병원의 뒷마당에 조성된 ‘루이 델랑드 치유의 정원’을 거닐었다. 표지판에는 루이델랑드 신부님이 어린아이를 안고 계신 사진이 실려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의 고아를 안고 계신 것만 같아 내 가슴이 감동으로 뭉클했다. 치유의 정원 안에서 나무들과 어우러진 조형물 ‘기도하는 사람’을 만났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조용히 하늘에 가 닿을 것 같았다. 그 따스한 분위기에 스며들어 나의 소망도 한 줄 기도문이 되어 내 안에 울려 퍼졌다. 환한 빛이 몸에 깃든 듯 마음이 평온해졌다.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소로 향했다. 이 땅에 뿌리 내린 한 영혼의 이야기를 더듬듯 떠올리기 시작하면서 걷는 언덕길은 성스러웠다. 신부님께서는 1895년 프랑스 노르망디의 바람 많은 연안에서 태어나셨다. 그가 수평선 너머에 있는 머나먼 나라 조선 땅에 발을 디딘 건 1923년이었다. 겨우 스물여덟의 나이에 부산에 도착하셨다. 조선은 식민지의 불안 속에 있었지만, 신부님께서 내딛은 소명의 발걸음은 분명했다. 그 후의 삶은 말보다 조용한 손길로 채워졌다. 다른 나라에서 종교를 위해 헌신한다는 것은, 그 땅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1935년 여섯 명의 동정녀와 ‘삼덕당(三德堂)’이라 불리는 초가집에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다. 소박한 집에서 싹튼 마음은 훗날 ‘예수성심시녀회’라는 이름으로 꽃피웠다. 기도보다 더한 기도는 삶이었고, 강론보다 더한 복음은 나눔이었다. 신부님은 이듬해 할머니 두 분과 두 명의 고아를 맞아들여 새로운 삶의 식탁을 꾸리셨다. 배고픈 아이에게 밥을 주고, 길 잃은 이에게 등을 돌리지 않으셨다. 그렇게 ‘성모자애원’이 세워졌다. 오직 사람을 품는 마음만으로 시작된 보금자리였다. 삶의 주변부에 있던 이들을 자애롭게 끌어안으셨다. 그리고 1950년 3월 포항으로 향하셨다. 보다 깊은 헌신을 향한 발걸음이셨다. 낯선 바닷바람 속에서 익숙한 사랑의 언어로 병든 이들을 어루만졌고, 흙먼지 나는 길 위에서도 사람들의 눈을 마주 보며 걸으셨다. 한국전쟁 뒤에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고아들을 품으셨다. 이름조차 없는 아이들,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울던 아이들, 신부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묘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신부님은 끝내 고향땅으로 돌아가지 않으셨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에 묻혀 흙이 되셨다. 신부님의 삶은 영웅적인 장면들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은 반복된 하루 속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비우는 자세 속에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총을 들었지만, 신부님께서는 세상을 껴안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주셨다. 문득, 신부님께서 수십 년 전에 돌보았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다. 그가 바라보았던 아이들의 눈빛, 노인의 주름진 손, 고요한 죽음 앞에서의 기도가 아직도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신부님을 떠올려 보면,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대단한 영웅이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굶고 있는 자에게 한 끼를 나누는 일, 고통과 눈물 속에 머물러 있는 자에게 등을 두드려 기운을 북돋아 주는 일, 자존감이 낮은 이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관심의 목소리를 전하는 작은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나는 루이 델랑드 신부님의 이름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를 바랐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 지역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헌신하신 이분의 행적이 더 넓게, 더 깊게,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묘비에 새겨진 이름 위로 햇살이 살며시 내려앉았다. 어쩌면 신부님께서는 지금도 이 자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묵념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종교를 증명하신 당신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사람의 사랑이 바다를 건너왔다. 그 뿌리는 이 땅에 내려져 영원히 꽃이 되었다. /정미영 수필가
지난달 21일 신청이 시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영향이 지역 상권에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 업종은 소비쿠폰 효과로 매출이 늘어났지만, 소비쿠폰이 지류(종이) 상품권 없이 카드 형태로만 지급되면서 노점상이나 골목상권 등에서는 특수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일 기준 소비쿠폰은 국민의 93.6%인 4736만명에게 지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신용데이터(KCD)가 소비쿠폰 배포가 시작된 한 주(7월 21∼27일) 동안 전국 소상공인 38만여 개 사업장의 카드 매출을 분석한 결과, 안경원 업종 매출이 전 주 대비 56.8%나 상승하며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패션·의류업 매출도 28.4% 늘었으며, 면 요리 전문점(25.5%), 외국어학원(24.2%), 피자(23.7%), 초밥·롤 전문점(22.4%), 미용업(21.2%), 스포츠·레저용품(19.9%) 등도 매출액 증가 폭이 컸다. 본지 기자가 포항지역 전통시장을 취재했더니, 정육점·건어물점 등의 매출이 특히 상승했다고 한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20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소비쿠폰이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지원금으로 고기를 사는 손님이 꽤 늘었다”고 했다. 반면 생활·편의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농촌지역은 읍면 소재지까지 이동하기가 어렵고 마땅한 사용처도 없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지역에서는 소비쿠폰 지급률도 낮다고 한다. 정부는 농가가 주로 이용하는 농자재 업체나 주유소에서도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이번 소비쿠폰 지급이 소상공인 매출에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다행이다. KCD는 특히 서비스업 매출의 경우 비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폭이 컸다고 분석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도 마찬가지지만, 앞으로 다양한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들이 비수도권 지역을 우선 고려해 추진되면 효과를 극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소비쿠폰 지급이 물가상승의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정부가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2025-08-06
고려나 조선처럼 왕이 통치하던 때가 시대적 배경인 영화나 드라마를 가끔 본다. 전제 군주제에서의 왕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위상이 달랐다. 선거가 아닌 혈통을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된 왕은 그 자체가 곧 국가였으니. 왕의 뜻에 반한다거나 칙령을 거부하며 다른 견해를 내놓는다는 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반드시 ‘바른 말’을 하며 왕에게 저항하는 신하가 한둘은 있기 마련. 대체로 보아 그런 자가 충신인 경우가 흔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왕은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인간사 전체를 매번 합리적으로 꿰뚫는 존재가 아니다. 그도 때론 실수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며, 이성이 아닌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왕에겐 간언(諫言)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신하가 필요한 법. 현대사회로의 변화는 지난날 왕이 가졌던 힘의 대부분을 대통령이나 내각책임제의 총리에게 이양시켰다. 대통령 역시 왕처럼 실수와 오판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 오판과 실수를 재고하거나 고치라고 충언할 수 있는 장관과 차관이 필요하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자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전 국방장관 김용현과 전 행안부장관 이상민은 구속됐고, 또 다른 전 국방장관 이종섭은 ‘호주로 도망친 사람’이란 오명 속에 있다. 전 법무장관 박성재와 전 외교장관 조태열 역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딱한 처지다. 그들의 오늘이 이 지경인 건 권력자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기만 했을 뿐, 한 번도 간언하지 않았던 게 이유가 아닐지. 대통령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말할 용기가 없다면 장관직은 사양했어야 옳다. 허니, 장관들의 수난시대는 자업자득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극장가에 ‘다양성’이 사라졌다. 이름난 배우, 검증된 감독, 흥행 공식에 충실한 영화들이 멀티플렉스를 독점한다. 대작 영화 한 편이 개봉하면 전국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잠식하는 ‘스크린 독과점’은 낯익은 풍경이다. 저예산 영화들이 설 자리는 갈수록 좁아진다. 다양성을 지우는 통에 영화산업 전체의 창의성과 생명력을 갉아먹는 구조적 병폐가 생겨버렸다. 경직된 산업구조 한복판에 끈질기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가 있다. 독립영화. 대규모 자본, 물량공세 마케팅과 화려한 스타시스템과는 한참 먼 자리에서 독립영화는 우리가 미처 주목하지 못한 삶의 숨결과 세상의 맥박을 포착한다. 노년과 어린이, 장애인과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와 환경 이슈 등 비주류 목소리와 소외되던 이야기가 들린다. 자본논리로는 성립되지 않을 실험과 시도들이 영화라는 그릇 안에서 호흡한다. 독립영화가 모두를 구원하겠나.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상영 기회도 매우 제한적이다. 홍보력도 미흡하고 유통망도 답답하다. 관객과의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 인내와 집요함이 필요하다. 그런 자리에 영화 본연의 정신, 곧 사회와 인간을 사유하고 질문하는 예술로서의 독립영화가 살아 숨 쉰다. 독립영화는 ‘가능성’의 씨앗이다. 낯선 감독과 작가, 배우들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다. 봉준호, 박찬욱, 김보라, 윤단비 등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이들 역시 독립영화현장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갈고닦았다. 독립영화는 한국영화산업의 최전선이자 미래를 담보하는 인큐베이터다. 상영작 리스트를 살피면, 상업영화관의 그것에 못 따라갈 까닭이 없다.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전국에 흩어진 독립영화전용관들이 실마리가 아닐까. 포항에도 소중한 공간이 있다. ‘인디플러스포항’. 수도권 집중 문화 지형에서 포항은 소외된 도시다. 영화산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인디플러스포항’은 도시에 문화적 숨통을 던진다. 놀랄만큼 낮은 관람료 삼천오백원은 가격정책을 넘어, 넓게 열린 문화공간을 지역에 선사하겠다는 선언이다. 상영되는 영화들은 하나같이 속깊은 생각거리와 오래 남을 여운을 남긴다. 극장일 뿐 아니라 영화를 매개로 지역문화 생태계를 새롭게 짜겠다는 움직임이다. 어려움도 크다. 관객 기반이 취약하고 운영수지는 바닥이다. 전국의 독립영화관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 상황에서 ‘인디플러스포항’이 걸어가는 길이 험난하다. 그런 판에 이 극장의 존재가치는 오히려 높다. 개별 독립영화가 만드는 파장이 소박하지만, 다른 시선, 다른 감각, 다른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힌다. 예술의 역할이며 영화의 본질이 아닐까. 산업은 성장을 목표로 수익을 겨냥한다.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어야 하고 공감을 나누고 연민을 실어야 한다. 독립영화는 영화의 본질을 되새기며 최선을 다한다. 상영관 인디플러스는 영화의 다짐과 기억을 지역에서 살아있게 한다. 상업영화만큼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도, 우리 삶의 여러 가닥과 높낮이를 돌아보게 하는 잔잔한 매력과 스토리의 벅찬 감동이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할리우드의 영광이 저물어 간다는 소식도 있다. 독립영화가 영화로의 관심을 불러 모을지 누가 알겠나. 우리가 그 문을 두드려야 하는 이유다. /장규열 본사 고문
제철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다. 대한민국을 경제 강국으로 이끈 대표 산업이라는 데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제철을 산업의 쌀로 부르는 것도 제철산업이 가진 산업 영향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제철은 자동차, 조선, 전자제품, 건설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관련 기업들의 성장과 경쟁력을 견인했다. 포항은 포스코와 함께 성장한 철강도시다. 세계 최고 철강기업인 포스코를 비롯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수많은 철강 관련 기업들이 포진해 포항의 경제를 리드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위기가 닥치면서 철강업 중심의 포항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 현대제철 등 대기업의 공장 일부가 가동을 멈추고, 포항철강공단 내 기업의 가동률도 70%대로 떨어졌다. 이런 여파로 지역 상가에도 찬바람이 불어 상가 공실률이 4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50% 관세와 중국의 저가공세로 위기에 몰린 철강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최근 국회가 철강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특별법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의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으로 위기에 빠진 포항지역 철강산업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철강산업은 미국의 고관세 등 어려워진 글로벌 시장 환경문제뿐 아니라 안으로는 탈탄소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도 주력해야 한다. 탄소중립의 대전환을 위한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지속 가능한 제철산업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다. 지난 5일에는 산업부 관계자와 전문가로 구성된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 민관합동실사단이 포항을 찾았다. 실사단은 지역경제의 종합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 선제지역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산업부는 지난 5월 석유화학산업단지가 있는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여수시는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의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국가 기간산업인 철강산업의 위기 타개를 위해 포항도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마음이 시리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 같지만 실제 몸이 차가워지면 감정도 함께 차가워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요즘처럼 스트레스가 많고 식습관이 불규칙하며 냉음료를 자주 먹는 환경에서는 속까지 냉해진 사람들이 꽤 많다. 겉은 멀쩡한데 손발이 차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유 없이 불안하거나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 중 많은 경우가 바로 몸이 차고 혈액순환이 안되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의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단순히 몸이 찬 체질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오장육부가 약해지고 균형이 맞지 않으면 몸의 중심과 에너지를 담당하는 장부가 허약해지고 냉해졌을 때 기혈이 제대로 돌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내 몸의 오장육부에서 말초 혈관까지 순환이 떨어지고 몸의 대사가 전체적으로 느려진다. 이런 상태가 오래되면 몸이 계속 긴장된 상태로 유지되고 자율신경계는 점점 균형을 잃게 된다. 결국 교감신경은 계속 흥분돼 있고 부교감신경은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 이게 바로 몸이 차가운 사람에게서 감정 기복이 심하게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다. 현대의학에서도 이런 연관성에 주목하고 있다. 체온이 낮으면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기분 조절 물질의 생성이 줄어든다. 또 위장 운동이 느려지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그래서 몸이 많이 차가운 사람들은 소화도 잘 안 되고 장도 예민하고 항상 몸이 무겁고 피곤하다. 계절마다 감기에 걸리고 몸살이 온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감정이 자꾸 가라앉고 불안해지기 쉽다. 실제로 몸이 차갑고 가슴이 답답한 여성 환자들 중에는 불면· 불안장애·공황장애까지 겪는 경우도 꽤 많다. 이럴 때는 단순히 마음을 다스리는 상담이나 정신과 약만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은 육체가 좋아지면 안정된다. 즉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감정도 안정된다. 한방에서는 속을 데우는 약재들과 함께 기혈 순환을 돕는 치료를 병행한다. 예를 들면 건강, 육계, 황기 같은 따뜻한 성질의 약재들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몸의 활력이 살아나고 기분도 같이 살아난다. 여기에 복부 찜질, 좌훈, 뜸 같은 물리적인 자극을 함께 하면 더 효과가 좋다. 몸이 많이 찬 사람일수록 치료는 일정 기간 꾸준히 받아야 하고 생활 습관도 함께 교정해줘야 한다. 음식도 매우 중요하다. 몸이 찬데도 찬 음료나 아이스크림을 자주 복용하고 찬 샐러드나 생과일을 자주 먹는 식습관은 냉증을 더 심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따뜻한 생강차나 계피차를 커피 대신 마시고 익힌 채소와 따끈한 국물 요리처럼 몸을 데워주는 음식 위주로 복용하는 것이 좋다. 식사량은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단백질 위주로 먹는 것이 좋고 식후 간단하게 30분 정도의 동네 산책과 함께 잠을 자는 시간은 규칙적으로 맞춰야 한다. 감정이 흔들릴 때 무조건 ‘내 멘탈이 약해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기 전에 몸 상태를 먼저 점검해보는 게 좋다. 몸이 아프고 찬 상태면 마음도 자연스럽게 시들해지고 감정 기복도 심해진다. 반대로 몸을 따뜻하게 돌보고 순환을 살려주면 마음도 다시 온기를 되찾는다.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몸을 돌보는 게 곧 감정을 돌보는 길이고 내 삶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70년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여학생도 교련 교육을 받았다. 남학생들은 얼룩무늬의 특별히 제작된 복장이 따로 있었으나 우리 여학생들은 체육복을 입고 교련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식 제식훈련을 하고 열병식 같은 것도 했다. 대학교에서도 흰 바지에 보라색 티셔츠를 입고 적십자가 새겨진 흰 응급가방을 메고 열병식을 했다. 총검술을 배우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의 경우 응급처치·붕대법·간호법 등을 배웠다. 유사시에 여학생을 간호인력으로 지원한다는 가정이었을 것이나 학생으로서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곤욕이었다. 불평만큼이나 당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비례적으로 컸다. 응급처치법은 몇몇 학생들을 뽑아 시범적으로 가르쳤는데 그 학생들이 인공호흡법을 시범하면서 질색했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난 겉옷을 벗어 두 개의 막대에 걸어 응급용 들것을 만든 시범을 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그때 배운 붕대매듭법만은 지금도 요긴하게 쓰긴 한다. 교련은 일제강점기에도, 광복 후에도 실시하였다고 하며, 1950년대에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가 60년대 말부터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엄연한 필수 교과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의 학생 대상 군사교육이었던 셈인데, 더러 개그 프로에서 그 시절을 풍자하거나 추억하는 소재로 소비되는 걸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다. 최근 들어 개인적으로나 공익적으로도 요긴한 응급처치법 중에 심폐소생술에 관심을 가졌다. 40여 년 전 교련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었다. 대학 재직 중에 이따금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특강이 몇 번 있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배울 기회를 놓쳤다. 일상적으로 위험에 노출돼 있는 요즘, 심폐소생술은 필수적으로 배워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대구 팔공산 기슭에 안전테마파크가 있어 손주들과 가끔 놀기 삼아 가는데, 그곳에서 대구시응급의료지원단을 찾아보라고 들었다. 홈페이지 상단에 심폐소생술 교육 신청을 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잘 보이게 있었다. 팝업창에는 대구 심정지 환자 수,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를 가르쳐주는 그래프가 그려져 있어 경각심을 준다. 2023년 기준 심정지 환자 수가 1113명, 심정지 환자의 발생 장소 중 가장 많은 곳이 집(68.3%)이라고 하니,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배워 두어야 할 심폐소생술이었다. 첫 번째 신청 시에는 집 가까운 수성보건소 교육은 신청 마감이었다. 나와 같은 교육 희망자가 많은가 보았다. 매월 한 달 전에 신청자를 모집한다는 걸 알고, 미리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가 6월 첫날 신청하고, 지난 7월 23일, 수성보건소에서 2시간의 기본 교육을 받았다. 20명 가까운 교육신청자 중엔 유치원 교사나 아파트 관리원 같은 필수 교육이수자도 있었다.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을 실습했다. 내친김에 7월 1일엔 8월의 심화1과정을 신청해 두었고, 8월 첫 주엔 9월의 심화2과정을 신청할 작정이다. 과정의 차이 유무는 모르겠으나 일단 배워두면 스스로 든든할 것 같아서이다. 손주에게 자랑했더니 수영 시간에 모두 배웠다면서 가슴압박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 사용법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손주와 종종 복습하며 몸에 익힐 생각이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휴가철, 짧은 여행을 다녀오자는 말에 가족들과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무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에 지쳐갈 때쯤 창밖으로 복숭아밭이 펼쳐졌다. 장호원, 예전부터 복숭아로 유명하다는 말을 들어 아이들이 어릴 때 일부러 복숭아를 사기 위해 몇 번이나 들렀던 곳이다. 들판 끝에 자리한 직판장 간판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잠시 발길을 멈췄다. 햇볕 아래 노랗고 붉게 익은 복숭아들이 상자에 담겨 줄지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파지 복숭아’라고 적힌 상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곳곳에 상처가 나 있었다. 비닐에 잘 덮여 있는 상품 복숭아와는 달리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눌린 자국에 거뭇한 흔적도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상품으로는 팔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껍질 아래 단맛이 풍겨져 나왔다. 낙과처럼 땅에 떨어진 복숭아가 아니라 어쩌면 풍성하게 익어 스스로 무게를 못 이긴 열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볼품없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끌렸다. “겉은 좀 그래도 속은 멀쩡해요.” 상인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파지복숭아 다섯 상자를 사서 차에 올랐다. 상자 안의 복숭아는 상처투성이였다. 표면은 부드럽기보다는 거칠고 울퉁불퉁했다. 연한 황도빛 위에 붉은 기운이 번졌지만 군데군데 멍이 들고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떤 건 껍질이 살짝 벌어져 속살이 보이기도 했고 어떤 건 꼭지 주변이 눌려 검게 변해 있었다. 송진처럼 굳은 진물이 마른 채 매달려 있기도 했다. 손에 쥐자 복숭아 특유의 솜털이 손끝에 부드럽게 스쳤다. 눈으로는 상처가 먼저 보였지만 코끝에는 단내가 먼저 스며들었다. 숙소로 와 파지 복숭아를 조심스레 깎았다. 칼이 껍질을 따라 들어가자 표면의 상처 아래서 뜻밖에도 말갛고 단단한 속살이 드러났다. 붉은 빛이 번진 살결은 탱탱했고 칼끝에 단물이 묻어났다. 상처 난 껍질을 벗겨내자 복숭아 특유의 맑은 향이 방 안에 퍼졌다. 벌레 먹은 부분이나 검게 변한 자리를 도려내고 나니 그 안은 상처 하나 없던 것처럼 투명하고 순했다. 첫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깜짝 놀랐다. 달고, 시고, 향긋하고, 입 안 가득 과즙이 흘렀다. 겉모습만 보고 맛을 짐작했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속내였다. 복숭아는 여전히 제 계절의 한복판에 있었다. 복숭아 하나를 앞에 두고 나는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문득 사람도 이 복숭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누구나 겉모습에 조금씩 주름이 생기고 빛이 바래진다. 하지만 살아온 시간만큼 그 속은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향기롭게 익어간다. 언뜻 보기엔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의 바람에 겉껍질은 거칠어졌을지 몰라도, 그 껍질 아래에는 계절을 견디며 은근히 익어온 속내가 있다. 손끝으로 조심히 벗겨낼 줄 아는 이에게만 드러나는 말간 진심과 묵직한 내공이 있다. 그런 사람은 껍질 너머로도 빛을 머금는다. 언젠가 친구가 말했다. “요즘은 거울 보기가 싫어. 피부도 푸석하고 눈가에 잔주름이 너무 많아.” 그때 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 주름 속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었겠니. 아이 키우며 울고 웃은 날들, 남편과 싸우고 화해한 날들, 일하고 지치고 다시 일어난 날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나는 파지복숭아를 먹으며 내 삶의 파지들을 떠올렸다. 실수로 넘어졌던 날들, 오해받고 상처 입었던 시간들, 몸과 마음이 지쳐 도망치고 싶었던 밤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단맛이었음을 다시 되새김한다. 내 안에 스며든 날것의 시간들, 그것이 나를 ‘속이 꽉 찬 사람’으로 만들어 갔다. 나이 든다는 것은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 상처를 껍질 삼아 속을 지켜내는 일이기도 하다. 내면을 지키기 위해 감당한 바람과 비, 기꺼이 받은 햇살이 내 삶을 익혀간다. 하지만 조금 시들어도 괜찮다. 조금 눌리고 찢겨도 괜찮다. 그 속이 얼마나 깊고 넉넉한지를 알기에. 복숭아를 깎으며 나는 나를 깎았다. 단단한 씨를 피해 조심스레 칼질을 하다 보니 내 안에도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꼈다. 아프고 힘들었던 시간이 도려내지지 않는 단단함으로 남았다는 것을. 익어간다는 것, 그것은 단맛을 품는 일이다. 삶의 모든 계절을 통과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특권, 파지 복숭아에 담긴 인생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달콤했다. /김경아 작가
2025-08-05
6월 10일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는 세찬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날의 목적지는 교토국립박물관이지만, 그 전에 기요미즈데라와 주변의 골목길인 샨넨자카와 니넨쟈카를 먼저 가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샨넨자카 돌계단에 앉아 바라보는 야사카 오층탑을 좋아합니다. 6세기 말 쇼토쿠 태자가 만든 후에, 1440년에 재건되었다는 이 목탑을 바라볼 때면, ‘정말로 내가 교토에 왔구나’라는 실감이 들고는 합니다. 이날은 우산을 받쳐 든 사람들로 인해 무척이나 붐볐지만, 오래된 집들과 탑의 검은 빛만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습니다. 샨넨자카를 내려와 1.3km 정도 떨어진 교토국립박물관으로 가기 위해, 구급맵을 켜자 근처에 귀무덤(코무덤)이라는 지명이 나타났습니다. 순간적으로 저는 이 무덤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베어간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임을 직감할 수 있었는데요. 코무덤(귀무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인 도요쿠니 신사 앞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 일대30만 평은 과거 도요토미의 ‘성역’이었다고 하네요. 죽어서 신이 되고자 한 도요토미는 산정에 특별한 방식의 무덤을 만들고, 그 산기슭에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도요쿠니 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는 높이 19미터의 대불까지 있었다고 하는데요. 오늘날 일본에서 크기로 유명한 도다이지 대불이 15미터이고 가마쿠라 대불이 11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이 대불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이라는 ‘타자’가 생생하게 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무거워진 심신을 추스르며, ‘일본, 미의 도가니:이문화 교류의 궤적’이라는 전시가 열리는 교토국립박물관에 도착했습니다.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 개최를 기념하여, ‘문화 교류’라는 키워드로 일본 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였는데요. 이 전시에서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부터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의 회화, 조각, 묵적, 공예품 등 200점의 문화재를 엄선하여 일본 미술의 빼어남을 전세계인에게 발신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포인트는 수백 점의 작품 하나하나가 이문화와의 교류로 창조된 것이며, 일본 미술의 고유성이란 동서고금의 다양한 문화를 녹여낸 ‘도가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시는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 ‘제1부 동아시아 속 일본의 미술’, ‘제 2부 세계와 만난 일본의 미술’, ‘에필로그:문화의 벽을 넘는 것은 누구인가?’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롤로그:만국박람회와 일본 미술’이었는데요. 일본은 만국박람회에서 미술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1900년의 파리만국박람회에서는 일본의 첫 번째 미술사 책을 프랑스어로 화려하게 만들어 전시했는데요. 이듬해인 1901년에는 이 책의 일본어판이 간행되었고, 이후 일본의 공식적인 미술사로 자리잡아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일본 미술사는 근대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예술은 한국, 중국, 유럽 등의 ‘다른 문화’와 교류하며 형성된 것임을 수백점의 예술품들은 실물로서 증명해 보이고 있었는데요. 특히 한국과의 교류는 6세기 중반 무렵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것, 임진왜란 당시 한반도의 도자기 기술이 서일본 각지에 뿌리내린 것, 에도시대(1615-1868)에 조선통신사와의 교류로 수많은 시와 회화 등이 탄생한 것 등이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전시의 키워드가 ‘이문화 교류’여서인지, 관람객 중에도 외국인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어쩌면 일본 예술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란 결국 다른 문화와의 교류를 통해서만 꽃피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예술(창조)의 본질이 새로움에 있다면, 그 새로움은 분명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교토 국립박물관을 나오며,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조선인들의 코무덤이 떠올라 마음이 계속 무거웠습니다. 다음날인 6월 11일에는 나라국립박물관에 갔는데요. 이곳에서는 개관 130주년을 맞아 ‘초국보:기도의 휘황함’이라는 전시가 펼쳐졌습니다. 이때의 ‘초(超)국보’라는 의미는 ‘매우 뛰어난 보물’이라는 의미와 함께, ‘시대를 넘어(超)’ 선조들로부터 전해진 마음과 그 마음을 계승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람객이 어찌나 많은지 인파(人波, 사람의 물결)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였는데요. 출렁거리는 인파에 몸을 싣고 수백 점의 ‘초국보’를 관람했습니다. 고대의 수수께끼를 온전히 품고 있는 ‘칠지도’를 실물로 보고, 작년 호류지에서 저를 눈물짓게 했던 ‘백제관음’을 유리창 없이 직접 바라보며 커다란 감흥에 젖어든 시간이었습니다. 6월 12일에는 오사카시립미술관의 ‘일본국보전:일본의 국보, 오사카에서 빛나다’를 보러 갔는데요. 평일임에도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입장까지 무려 1시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135점의 국보를 소개하는 이 전시회에서는, 특히 오사카와 관련된 국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한 파리만국박람회 등에 출품된 쇼조칸 소장의 작품을 따로 전시하여 만국박람회와 국보의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간사이에서 보낸 3박 4일은 일본인들이 수천년에 걸쳐 낳은 최고의 보물에 둘러싸여 보낸 황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돌아오는 도쿄행 신칸센에서까지 코무덤(귀무덤)이 환기시킨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번민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글·사진=이경재(숭실대 교수)
갈수록 삼복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밤새 집중호우가 남부지역에 많은 양의 비를 뿌리면서 바짝 달궈진 대지가 좀 식혀지는가 싶었는데, 비가 그치기 무섭게 염천에 폭서로 작렬하니 과연 여름날의 기세가 예외없이 등등하기만 하다. 더욱이 일부 지역에서는 폭우 피해가 속출해서 안타깝기만 한데, 고온다습으로 눅눅하고 꿉꿉한 무더위에 불쾌지수마저 올라갈 정도니,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더위를 참고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더위를 피하거나 묵묵히 참으며 여름나기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더위에 정면으로 맞서서 오히려 더위를 즐기며(?) 당당하고 거침없이 여름날을 보내면 어떨까? 이를테면 열(熱)은 열(熱)로써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측면에서, 더위 속에 거침없이 뛰어들어 땀을 흠뻑 흘린다든지, 아니면 아무리 더워도 뜨거운 차를 마시며 담담히 더위를 재운다든지 하는 등의 방식으로 더위를 떨치며 물리친다면 한결 개운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필자는 후자의 방식을 선호하기에, 이른 아침부터 더위를 무릅쓰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포항철길숲과 도심을 가로 질러 영일대해수욕장을 거쳐서 한걸음에 다다른 곳이 포항시 북구 여남항이었다. 그곳에는 이른 아침부터 챙이 넓은 파란색 모자를 쓰거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곧장 어깨띠를 두르고 피켓과 비닐봉지를 나눠 들고는 삼삼오오 동료, 가족들과 함께 바다 옆으로 난 둘레길로 이동해 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여남 해안에서 죽천으로 이어지는 영일만 북파랑길(호랑이 등오름길) 2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단순히 걷는 것만이 아니라 포항 해상 스카이워크를 지나가면서 관광객이나 시민들에게 해양환경의 중요성과 일회용품 줄이기, 플라스틱 사용 감축 등의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는 환경 캠페인을 펼치고 있었다. 또한 바다와 인접된 해안둘레길과 방파제 주변 곳곳에 파도로 떠밀려온 폐어구나 해양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활동까지 실시하며 ‘바다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을 펼치는 이들은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 단원들과 가족들이다. 지난 2022년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한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은 포항의 천혜의 절경을 갖춘 204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환경정화와 해양환경 보호, 바다사랑 캠페인 활동 등으로 꾸준한 자원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18년만에 지난 7월 재개장한 포항 송도해수욕장을 비롯 영일대해수욕장과 월포ㆍ화진ㆍ도구ㆍ구룡포 등 6개 지정 해수욕장이 있는 포항은 한 해 평균 400만 명의 전국 피서객이 몰리는 ‘국민 휴양지’인데, 그에 걸맞게 해양환경을 지키고 가꾸는 봉사단의 손길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참으로 고무적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포항의 영일만관광특구 일원이 최근 해양수산부로부터 ‘복합 해양레저관광도시’ 사업 대상지로 선정, 동해안 해양관광의 새 시대를 열 기반이 마련돼 그 어느 때보다도 해양환경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옷이 땀으로 젖는 찜통더위에도 이열치열로 아름다운 해안선을 가꾸고 지켜가는 포스코 해양환경지킴이봉사단의 작은 손길이 전국 관광객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1세기의 현대인은 ‘생각정리 스킬’이 중요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 지혜롭게 사는 길은 다양한 정보에 대한 정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큐레이션(Curation)해 정리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단순한 요약이 아닌 융합을 해야 한다. 융합을 할 때는 데이터와 정보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이런 지식을 경험과 합쳐 지혜로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인 ‘다보스포럼’에서 2020년 발표한 ‘직장인들이 가져야 할 역량’ 1위가 ‘복합적 문제해결 능력’이고, 2위는 비판적 사고, 3위는 창의성이다. 지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앨런켄트로의 지식삼각형(Knowledge triangle)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삼각형을 피라미드라고 생각했을 때, 1층은 데이터, 2층은 정보, 3층은 지식, 4층은 지혜다. 데이터, 정보, 지식, 지혜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모두 다르다. 데이터는 의미 없는 기록이다. 데이터를 의미 있게 분석한 것을 정보라고 부른다. 그것을 모으고 구조화 해서 이용할 가치가 있게 되면, 이것을 지식이라고 한다. 지식이 경험과 만나 통찰력이 생기면 마침내 지혜가 된다.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축적하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패턴화된 지식을 갖게 된다. 지식과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지혜가 되어 어떤 문제 상황에서도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지혜를 가리켜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는 패턴화된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령, 피자집을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가정하면, 매일 쌓이는 영수증은 의미 없는 숫자일 뿐이고 각각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루 매출 데이터가 모이면 피자집 하루 평균 매출이라는 정보가 도출된다. 이 피자집 하루 평균 매출은 50만원인데 어제 매출은 100만원이었다. 갑자기 왜 2배가 되었을까? 분석해보니, 어제는 눈이 와서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피자를 많이 시킨 결과였다. 이후 눈 오는 날에는 10% 할인하는 ‘스노 쿠폰’을 발급하여 매출액이 2배 늘어나는 결과를 얻었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피자집 사장은 매출 상승 요인을 생각하다가 날씨와 영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벚꽃계절에는 ‘벚꽃 나들이 쿠폰’을 지급하는 등 계절마다 피자 특별 수요를 파악하고 지혜롭게 대응하여 연간 매출을 크게 올릴 수 있었다. 요즘 세상에 정보와 지식은 차고 넘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빅데이터 시대라고 하지만, 수많은 정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정보는 네이버와 챗GPT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생각을 잘 선별하고, 정리하고, 연결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생각정리 스킬’이고, 누구든 갖추어야 할 역량인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가치창출을 더하는 ‘데이터-정보-지식-지혜’의 ‘생각정리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그 역량에 따라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현대인의 삶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정치인에게는 예외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과유불급으로 설명했다. 옛 성현들의 남긴 말들이 때때로 살아가는 데 지혜가 될 때가 있다. 권력 다툼을 하는 정치인은 물론이요, 한 나라의 국왕도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유불급의 속 뜻은 과도한 행동이나 욕심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새로운 당 대표에 선출된 정청래 의원의 정치적 행보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과거 정치 발언 등으로 미뤄보아 당의 운영이 강경 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야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지가 특별히 이목을 끄는 대목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국내 다수의 언론들은 그에게 정치 투쟁보다 정치 복원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여당 대표로서 협치와 국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줄 것을 충고한 것이다. 그러면서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독주를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의 말도 덧붙였다. 그럼에도 신임 정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야당과는 악수도 않겠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위헌 정당 해산법 발의와 검찰, 언론, 사법개혁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대학 시절 미 대사관저 점거 농성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고, 이재명 당 대표 당시 핵심 검투사 역할을 맡았던 당내서 소문난 초강경파다. 그에게 과유불급이란 성현의 말이 통할지 지켜 볼 일이다. /우정구(논설위원)
30여 년 전 부산을 통해 국내에 처음 유입된 소나무 재선충병이 국내 산지를 초토화 시키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와 이상고온 현상이 잦아지면서 매개충의 활동기가 빨라지고 서식 지역이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소나무의 생육 여건은 오히려 더 나빠져 피해가 줄지 않고 있는 상태다. 당국의 보다 정밀한 대책이 필요하다 하겠다. 산림청에 의하면 국내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는 2024년 기준으로 90만 그루였으나 올해는 140만 그루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피해지역도 12곳이 늘어 154곳에 달했으며 경북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체 피해면적의 4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중 포항, 경주, 안동 등은 극심지역으로 분류되는 곳이다. 특히 포항은 도시 전체가 소나무 재선충병에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사 취재팀 보도에 의하면 동해면과 호미반도를 지나 장기면과 북구 기계면, 신광면에 이르기까지 소나무 재선충병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각에서는 포항에서는 이제 소나무가 사라져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털어놓기도 한다. 또 지금은 방제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회의론도 나오고 있다. 산림청은 소나무 재선충의 번식을 막기 위해 올 상반기에만 감염 우려 목을 포함 261만 그루에 대한 방제를 실시헸다고 한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역대급 재정이 투입된 것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소나무 재선충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재선충병을 막을 특효약이 없는데다 30여 년 번진 재선충병을 하루 아침에 박멸할 수도 없다. 더 이상 확산되지 않는 것만해도 다행으로 여길 판이다. 수종 변경 등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태계 변화에 따른 방제시스템을 개발하고 재선충병 방제에 대한 주민들의 감시체제와 의식 계몽도 함께 전개해 나가야 한다. 지구온난화 이후 세계는 산림자원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 추세다. 재선충병을 막는 것이 곧 우리나라 산림을 보존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언론개혁을 주도할 특위 위원장에 ‘강성’ 최민희 의원(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을 임명했다. 정말 ‘전광석화’처럼 언론개혁을 추진할 모양이다. 최 의원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의 전신인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가 1985년 창간한 월간 ‘말’의 1호 기자다.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민언련 사무총장, 상임대표 등을 지내며 민언련의 ‘대모’로 불린 인물이다. 정 대표는 최근 “언론개혁은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과 언론중재법이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1대 국회에서 유야무야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임기 시작 다음 날 곧바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에 손해액의 3배 이내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 내용이다. ‘악의’는 “허위 사실을 인지하고 피해자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힐 목적”으로 정의했다. 언론사 사회부에 오래 몸담은 기자들은 한 번씩 경험해 봤겠지만, 필자도 1980년대 경찰서를 출입하면서 언론중재위에 제소당한 적이 있다. 출입처 관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취재 과정에서 경찰이 확보한 피해자의 일기장 내용 일부를 기사에 언급한 것에 대해 유족 측이 명예훼손 혐의로 중재위에 제소한 것이다. 정정보도를 하는 선에서 매듭이 지어졌지만, 중재위의 조정과정을 뒤돌아보면 지금도 아찔하다. 만약 정 대표가 발의한 언론중재법이 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하면 기자들의 취재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중재위는 지난 6월 13일 언론중재법 제정 20주년 학술세미나에서 “2010년부터 청구건수가 2000건을 넘었고, 2016년부터는 3000건을 넘어섰으며 2020년부터는 4000건 내외의 사건이 청구되고 있다”고 했다. 중재위 제소건수가 계속 늘고 있다는 말이다. 언론중재위의 ‘언론관련 판결분석보고서’에서도 2005년 30건에 불과했던 배상 건수가 매해 증가세를 보이다가 2022~2023년에는 각각 80건을 넘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미디어오늘은 “손해배상 건수가 많아졌다는 것은 언론 상대 소송이 그만큼 빈번해진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신문협회는 지난 6월 1일 발행한 신문협회보에서 “언론에 대해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하고, 정정보도 시 원 보도의 크기 및 분량으로 게재하도록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대표적인 언론 규제 법안으로 폐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선 정 대표를 비롯해 언론개혁을 중대한 개혁 과제로 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철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급한 일 아니니까 나중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추진 의사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만약 권력을 견제해온 유일한 도구인 언론이 권력자들의 부정부패에 대해 ‘언론중재법’이 무서워 침묵을 선택하게 되면, 우리사회는 친여권 매체들이 매일 만들어 내는 ‘창문’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비율이 63.3%를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 4일 나왔다. 이번 조사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국민의힘에 대한 민심 이반이 가속화하고 있는 대구·경북(TK)의 정치 성향 변화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20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 TK에서는 ‘잘한다’(56.8%)가 ‘잘못한다’(37.2%)를 거의 20%p 앞섰다. 같은 영남권인 부산·울산·경남(PK)에서도 ‘잘한다’(62.2%)가 ‘잘못한다 ’(34%)를 압도했다. 전국적으로는 ‘잘한다’가 63.3%, ‘잘못한다’가 31.4%였다. 보수성향 응답자를 제외하고 모든 연령, 직업군에서 긍정평가가 우세했다. TK지역 정당별 지지율은 민주당(48.1%)이 국민의힘(38.0%)을 10.1%p 앞섰다. TK지역에서 국민의힘이 오차범위를 넘어 민주당에 뒤진 것은 이례적이다. PK지역에서는 민주당이 21.4%p 차로 국민의힘을 제쳤다. 보수성향이 강한 70대 이상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7.5%p 앞섰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번 조사를 분석해 보면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상태다. 어떤 지역, 어느 연령대 할 것이 없이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여론 흐름이 이대로 가면 TK지역에서도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야당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이 이처럼 심각한 이유는 국민의힘 구성원이 더 잘 알 것이다. 여전히 당을 늪에 빠트린 친윤(윤석열)계가 주류세력으로 남아 혁신위의 일거수일투족을 방해하고 있으니 국민이 가까이 갈래야 갈 수가 없다. 이 상태로 가면 앞으로 국민의힘 지도부가 어떤 말로 민주당을 비판하더라도 국민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는 정청래 대표 체제 후 ‘입법독주’에 나선 민주당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은 전당대회 레이스 기간 중 국민의힘이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지 못하면 당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우리나라 여름휴가 트렌드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인터넷 검색으로 저비용으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지자체는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지자체마다 지역 상징성과 어우러진 지역 내 관광지를 조성하고 있지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 하는 곳이 많다. 지난 3일 경남에 있는 한 지역의 A 랜드마크 관광지에 다녀왔다. 여름휴가의 최고 성수기 기간이었지만, 이곳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임대가 적혀있거나 일찍 문 닫은 상점들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특히 지역을 대표한다는 호텔에선 100여 개의 객실 중 예약된 곳은 7개 객실뿐이었다. 찾은 사람이 적음에도 호텔 숙박비는 성수기라는 이유로 평소보다 비싸게 받았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 비해 서비스와 인근 인프라는 가격에 대한 의구심 마저 들게했다. 인근에서 10여 년째 영업을 하고 있다는 한 상인은 “날이 갈수록 이곳으로 휴가를 오는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며 “매년 같은 콘텐츠가 되풀이되고, 관리가 부실하다 보니 다시 찾는 이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에서도 랜드마크 조성에 실패한 사례가 있다. 최근 대구 달서구에서는 10억 원을 들여 도시철도 2호선 용산역 광장의 ‘하이로프 클라이밍장’을 조성했지만, 개장 석 달 만에 휴업에 들어가 ‘예산 낭비’ 논란이 커졌다. 달서구는 수요 예측 실패와 홍보 부족을 원인으로 꼽았지만, 현장을 가본 이들은 부족한게 더 많다고 말한다. ‘하이로프 클라이밍장’ 하나만으로는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하이로프 클라이밍장’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다른 편의시설들이 있어야 한다. 저렴한 가격으로 편하게 이용할 수 있고, 다른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사람이 몰리는 세상이다. 상징성만 입혀 ‘빛 좋은 개살구’를 빚은들 운영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최근 트렌드인 야외 캠핑이나 박물관 투어 등이 알찬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간송미술관, 대구과학박물관 등의 시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오토캠핑장의 경우 예약을 하기 힘들 정도로 인기다. 그만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게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투자만이 능사가 아니다. 조성해놓은 관광지를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지자체마다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만 소비자의 빠른 트렌드 변화에 맞춰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