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보수는 어떤 인적 쇄신을 해야 하는가

박준섭 변호사최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국 사건 이후에 27%까지 올라갔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다시 20% 가까이로 떨어졌다. 여기에는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논란이 악재로 작용한 면도 있다. 국민들은 민주당의 경제정책의 실패 등 총체적인 실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유한국당 등 보수당에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이는 보수의 부활이 결코 상대방의 잘못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것이다.결국 보수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보수통합, 보수의 가치의 재정립, 인적쇄신이 필요하다. 인재영입 1호인 박찬주 대장은 자유한국당이 인적쇄신을 하면서 어떤 인재를 보수의 미래의 대표로 이해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되었다. 그는 군관료이고 대장으로 경력의 마지막에까지 도달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실여부를 떠나 권위주의적 처신이 문제되었고, 군사정권 시절에 인권침해가 논란이 되었던 삼청교육대를 교육의 장소로 인식하고 있어서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지에 뒤처져 보였다. 이번 일을 통해 국민들은 더이상 권위주의적인 인물이 보수의 대표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 안보와 산업화의 성과뿐만 아니라 인권과 민주주의 등 현대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관료출신을 주로 공천하는 것이 왜 문제가 될까.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썼던 1919년 당시에 독일은 참의원(국회의원)을 주로 행정부의 차관 출신으로 충당했다. 그 당시에는 국가정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관료밖에 없었다. 따라서 국가정책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다시 소환한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현재까지 차관출신 국회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이 시스템의 약점은 입법부가 행정부의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소위 통법부로 전락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행정부입법이 다수를 이루고 국회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거수기 역할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가정책을 입안할 국회의원을 관료 출신들이나 명명가들로 채워서는 안 된다. 아직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정책을 이해하고 입법할 능력이 있는 비관료 출신 정치가들로 채워서 이들이 입법활동을 하면서 성장하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독일과 같은 정치 선진국처럼 십대 때부터 정당활동을 하면서 국가정책을 이해하도록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미약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정당에서 정책으로 무장된 당원들을 키워야 한다. 이들이 자라서 구의원, 시의원도 되고, 구청장, 국회의원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정당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기초가 생기고, 선진화된 입법부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있다. 이번에 보수혁신을 위하여 인적쇄신을 하면서 관료출신 의원을 배제하고 다시 다른 관료출신으로 채우는 물갈이는 보수의 미래를 위한 인적 쇄신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9-11-26

영국보수당의 교훈-보수 통합해야 산다

박준섭 변호사1815년에 제정된 영국의 곡물법은 곡물가격을 유지해서 지주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하는 법이었다. 1845년에 아일랜드에서 발생한 감자마름병에 의한 기근은 전적으로 농업에 의존하면서 수백만명이 감자로만 연명하고 있던 아일랜드 주민을 100만명 이상이 굶어 죽게 하는 역사상 대참사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영국의 필 수상은 곡물법을 폐기하는 결단을 하면서 무역을 제한하는 관세들을 대부분 철폐하고 자유무역체제로 돌입하었다. 보수당은 필을 좇아 곡물법 폐지에 찬성한 사람들과 반대한 사람들로 나뉘어 싸웠다. 찬성파들은 자유무역주이자들로, 반대파들은 보호무역주의자들로 남았다. 보호무역주의자들이 지주계급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상대파가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을 줄이려는 공장주들의 탐욕을 도울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 결과 보수당은 필 지지파와 보호무역파라는 두 당파로 분열되었고 필 자신은 실각하였다. 그 후 보수당은 1846년부터 1874년까지 오랜기간 거의 정권을 잡지 못했다. 박지향 교수는 ‘정당의 생명력’에서 보수당이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 곡물법을 둘러싼 논란은 보수당이 더 이상 과거의 좁은 지지기반에 의존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둘째, 유권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정당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분열해서는 안된다는 것, 셋째 보수당이 영국의 미래와 그것을 위한 보수당의 역할에 대하여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 즉 단순히 정적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으로 지지를 모을 것이 아니라 보수당 스스로 확고한 비전과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이 이 모든 일을 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벤저민 디즈레일리였다. 그는 앞에 언급한 것 모두를 실천하였고 마침내 집권에 성공하였다.       자유한국당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두고 분열했다가 실권했다. 아직도 보수가 왜 괘멸당할 수준으로 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편의 잘못만 이야기 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보수대통합을 공론화하면서 통합논의가 시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시시비비가 아직도 걸림돌이지만, 보수의 철학이 인간의 불완전성을, 비록 의회의 탄핵의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쉬운 부분은 있지만 전통과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의 관점에서 이제 넘어서야 한다.만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염두에 두고 현재 분열되어 있는 각자의 당의 기득권만 생각하면서 통합하기를 꺼린다면, 국민들은 분열되고 갈라진 보수를 국민을 위한 정당들로 생각지 않을 것이고, 곧 다가올 총선에서 보수·우파정당을 결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의 이해찬 의원이 말했던 20년 장기집권이 허언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 자신이 받은 소명에 따라 보수통합의 십자가를 지는 길은 보수의 미래를 연 디즈레일리에게 이르는 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2019-11-11

‘타다’사건이 의미하는 것

박준섭 변호사검찰이 ‘타다’를 불법으로 결론짓고 기소를 하였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타다를 비롯한 플랫폼 업계 및 택시 업계 사이에, 나아가 신산업과 기존의 산업 사이에 경쟁과 출동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며 이의를 제기하였다. 차량 공유 서비스 ‘타다’에 대한 법적 쟁점은 타다가 운전기사를 관리·감독하는 주체로서 여객운수사업법상의 사업자에 해당하여 면허를 받아야 하는 사업자인지, 아니면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상의 예외규정에 따라 면허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느냐이다.검찰은 ‘타다’가 승객과 운전기사를 단순히 연결만 하는 사업이 아니고 택시와 유사한 서비스로 본다. 검찰은 ‘타다’와 ‘타다’운영사 ‘쏘카’가 드라이버를 지정된 시각에 출근시키거나, 앱을 통해 승객과 운전자를 연결한 뒤 앱에 저장된 승객의 신용카드 정보로 결제되도록 한 것은 운전기사를 관리·감독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있는 11인승 이상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차하는 사람은 운전기사를 알선할 수 있다는 예외규정에 따라 사업을 적법하게 해온 것으로 주장한다. 흔히 알려져 있듯이 독일의 해석학 이론서에 의하면 예외 조항이라고 해서 항상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외 규정도 확대해석을 하거나 유추적용 등 의미를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예외조항에 근거를 둔 사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불가능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형벌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형벌법규의 명확성이라는 죄형법정주의원칙이라는 산도 넘어야 한다.우리는 이 사건이 법적용에 대한 문제라는 인식을 넘어 이번‘타다’사건으로부터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미래를 선도적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라는 인식이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에 독일 등 서구로부터 일본이 배워온 법체계를 거의 그대로 계수하면서 근현대를 만들어 왔다. 이 법체계는 인간의 자연적 자유를 인정하면서도 국가가 규율하고자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를 한 뒤 예외적으로 이를 해제하여 허가하거나 아예 특별한 권리를 만들어 특허를 주는 방식으로 규율해 왔다. 이제 새로운 문명의 시대인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법적 규율을 어떻게 새롭게 할 것인지는 과거와 달리 이제 배워올 곳이 없다. 아직 우리보다 이 분야에 약간 앞선 나라가 있어서 참고할 법률이나 법적 규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세계도 아직 실험적 법률을 만들면서 탐색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신산업에서 규율하는 입법은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영역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미래와 함께 세계의 미래도 책임진다는 새로운 지혜와 사명감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번 ‘타다’사건이 신산업과 구산업의 이해충돌, 플랫폼 사업자와 택시운전면허 사업자, 택시운전자들의 이해충돌을 넘어 대한민국이 이제 선도자로서 세계의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상징적 사건이 되기를 바란다.

2019-11-05

교육개혁, 또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아닌가?

박준섭 변호사지난 25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 결과가 발표됐다. 자사고, 외고, 국제고를 2025년도 고교학점제 도입과 함께 일괄 일반고로 전환하고, 수시비율이 높은 서울 소재대학은 정시 수능 전형비율을 상향조정할 방침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서울권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정시 40%선을 맞출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이러한 정책방향은 깜깜이로 상징되는 수시입시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시 뿐만 아니라 정시 입시제도도 모두 불공정하다. 정시는 어릴 때부터 좋은 학원에서 선행과 무한반복으로 연습한 강남의 아이들에게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시의 불공정성은 조국장관 사태에서 얼마나 불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었는지 국민들이 여실히 확인했다. 수시제도가 그동안 많이 개선됐다지만 깜깜이로 상징되는 불공정성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현재의 수시와 정시라는 틀에서 개혁의 방향을 맞추고자 한다면, 오히려 수시의 지방균형, 지역균형선발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강남과 비강남,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나누고 비수도권도 교육우세지역을 나누어 지역균형선발 비율을 획기적으로 70∼80%로 늘리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교육우세지역의 인구가 기존에 성과가 낮은 학교를 찾아 분산될 것이고, 그러면 강남 집값도 상당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또 지방균형발전에 가장 유효한 정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제도 시행 초기에는 학교마다 격차가 있겠지만 차츰 평준화되어 갈 것이다. 실제 지방균형선발로 입학한 학생들이 대학 3, 4학년에 이르면 성취도에 격차가 없다는 보고도 있다. 지방균형 선발도 학교에서 특정학생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등 불공정 시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해 국제적 기준으로 엄격하게 내신을 평가하는 방안이 함께 도입되면 이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 방안은 미래의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교육제도개혁도 동시에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지금의 상태에서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하는 정부안은 강남쏠림 현상이 심해져 강남 집값은 더 인상될 것이다. 교육부가 강남과 비강남 사이의 실질적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눈감은 채 자사고와 외고 등의 형식적 차이만 보려고 하니 사태가 더 꼬이는 것이다. 외고, 과학고 등 특목고의 문제는 선행학습과 스펙으로 무장된 부유층이 아니라 학습능력은 있으나 가난한 인재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는 학교로 만든다면 전혀 문제가 없다.문재인 정부의 정책목표는 공정인데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개혁의 결과는 대한민국을 강남중심의 더 불공정한 사회로 만들 것이다. 정책목표와 정책시행결과 사이의 불일치가 또 한 번 일어날 것같다. 문재인 행정부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개혁을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2019-10-29

조국 장관 사퇴가 남긴 것

박준섭 변호사조국 장관이 전격 사퇴했다. 그동안 광화문 광장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조국 사퇴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시위가 여러 차례 열렸다. 조국 전 장관은 촛불시위가 ‘주권자인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제는 우리가 촛불민심의 의미에 대하여, 광장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 과연 촛불 민심은 주권자 자체인가 아니면 주권자의 또 다른 대표인가.그러나 광장의 민주주의가 주권자의 의사라고 규정한 곳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우리 헌법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입각하여 대통령과 입법부를 국민의 대표로 뽑고 입법부에게 법률을 만들게 하고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에 법률의 집행을 맡겼다. 입법부가 만든 법률에 의하여 지배하여야 한다는 헌법이념은 독재자의 자의(恣意)에 의한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고안해 낸 근대헌법의 지혜이다. 근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현대에 와서는 국민이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실현할 더 나은 대안은 없고, 이것이 최선의 지혜이다.먼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의 촛불시위를 생각해 보자. 이것이 미래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문제의 핵심은 촛불민심이 아니라 의회의 탄핵소추의결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인용이라는 헌법적 절차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절차 등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우리는 전통과 제도와 국가의 권위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이를 긍정하고 다음의 역사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조국장관과 관련된 촛불시위는 그 명분이 아무리 검찰개혁의 지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촛불의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주권자의 의사와 동일시 될 수는 없다. 사실 서초동 촛불시위는 문재인 대통령 행정부와 여당 그리고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 집단의 의사표현에 불과해 보인다. 그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다. 조국 장관의 검찰개혁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검찰개혁이 아니라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국민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등 보수적 정파와 시민들이 조국 장관에 반대하는 시위를 대규모로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촛불은 갈라졌다. 결국 광장의 촛불은 국민의 민의가 아니라 특정 정파들의 의사표현일 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광장촛불의 진실은 여기에 있다.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두 눈을 부릅뜬 파수꾼처럼 지켜보아야 한다. 조국 장관도, 지난 주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도 스스로 주권자의 의사를 빙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여론의 다수가 이끌어가는 폭정의 위험성을 지적하였다. 우리의 소중한 민주주의의 촛불이 포퓰리즘의 회오리에 꺼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밝히는 지혜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10-15

진보 386세대 그들은 누구인가

박준섭 변호사386세대는 60년대에 태어나서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일컫는다.386세대는 20대 때 독재에 대항하면서 목숨을 걸고 지하활동과 야학, 학회활동을 통하여 조직력을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들과 연대해 마침내 절차적 민주주의를 성취했다.어떤 사람들은 과거에는 6·3세대와 민청학련, 긴급조치 세대가 민주화 선배세대로 있었고, 같은 시대에는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87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으므로 민주화의 영광의 열매를 386세대가 독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기도 한다.그러나 386세대는 도시 빈민 및 노동자계층과 중산층의 연대를 통해 민주화를 주도적으로 이끈 세대만은 분명하다. 그들 가운데 진보진영은 집단적으로 공장으로 진출해 스스로를 ‘하방’ 시키면서 평등을 몸소 실천한 세대이다. 이들은 산업화 과정에서 독재화된 권력에 대항하면서 러시아와 중국, 북한으로부터 들여온 혁명적 사회주의를 이념적 도구로 사용했다. 이 세대는 90년대 구 소련이 몰락하자 집단적으로 전향하거나 전환했다.1997년 IMF를 통하여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선배들은 주류에서 탈락됐고, 그들의 후배들은 아직 주류로 진입하지 못하면서 생긴 공백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그들은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이었으나, 역설적이게도 IMF사태 이후의 신자유주의 97경제체제가 그들을 일찍 사회의 주류에 올려놓았고 이후로도 20년 동안이나 기득권을 유지시켜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진보 386세대는 노무현 행정부 때 국가정책의 결정권을 행사했으나, 정책적으로 무능하다고 의심받았고 패권적 권력을 추구하다가 몰락해 스스로 ‘폐족’선언을 하면서 사라졌다가 10년만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사건 때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 국민들은 산업화, 민주화가 성취된 이후에 이명박, 박근혜 행정부의 10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기에는 너무 수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이었으며, 무능하고 욕심 많은 집단의 정체나 퇴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진보 386세대를 다시 소환했다.이제 국민들은 광복 된지 70년이 지난 우리나라가 산업화·민주화를 거치는 동안에 왜곡된 국가구조를 그들이 새롭게 혁신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국민들은 이번 조국 장관의 임명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뒤에 있는 그림자를 슬쩍 보았다.니체의 말처럼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 버린 386세대라는 괴물의 그림자를. 평등과 기회균등을 외치면서도 자신이 가진 모든 기득권을 사용하여 자신의 권리로 만드는 탐욕을 부렸으며 어쩌면 이제는 낡은 사상과 방법일 지도 모르는 것을 옳다며 자신들의 장기인 조직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움만 일삼는 괴물 말이다.국민들은 이제 자신들이 기득권자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윤리를 통해 절제하고 희생하는 법을 모르는 괴물을 통제하고 다스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09-18

한반도 미래를 위한 한국 기독교의 소명은

박준섭 변호사필자는 지금부터 10여 년 전에 영국이 낳은 세계적 신학자 니콜라스 토마스 라이트의 ‘역사적 예수의 도전’이라는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책의 결론부에서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는데 이미 세속화된 세상은 더 이상 신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종교개혁시대에 루터와 캘빈 등 개신교도들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 아래 새롭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근대세계를 설계하고 만들어 가는데 기여했던 것처럼 자신은 앞으로 곧 다가올 미래의 새로운 세상에 기독교인이 다시 기여하기 위해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성경을 다시 읽는다고 했다.필자는 그때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이 오고 있다는 것과 기독교가 그것을 준비한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4차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상어처럼 돼 버렸고 4차 산업혁명이 가지고 올 문명사적 변화, 곧 근·현대가 끝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것이 이제는 당연하게 들리는 시절이 됐다. 최근에 그는 바울신학을 다룬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라는 두 권의 대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필자는 그가 1세기 기독교로 돌아가 새로 성경을 읽으면서 얻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독교적 비전을 무엇인지 알려고 기다려오던 중이었다. 그는 미래를 위한 바울의 의도들을 헬라어로 카탈라게, 즉 화해라는 단어로 제시했다. 그는 고린도후서 5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기독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고 서로, 그리고 피조세계와 화해하라고 하는 임무를 맡겼다고 했다.종교개혁 이후에 기독교는 인본주의와 협력과 경쟁을 하면서 근·현대를 만들어 왔다. 그들이 만든 세상은 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개인의 발견이었고 이를 근거로 주체인 자신들을 넘어 세계로 확장하는 역사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서구는 계몽주의·자본주의를 확장하기 위해 식민지 경쟁을 하다가 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고, 자본주의, 사회주의가 냉전의 대립 속에서 경쟁했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에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민족과 종교갈등으로 여전히 세계는 곳곳에서 전쟁 중이다. 세계는 이제 다가올 문명이 타자를 배제하면서 자기를 확장해 나가는 문명은 아니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다.과연 한국기독교 교회는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위해서 대한민국과 세계에 어떤 기여를 하여야 할까? 한국 기독교는 먼저 어떠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화해의 정신으로 남한의 좌우대립, 진보·보수의 분열과 갈등을 멈추게 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나아가 반드시 남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것을 성취해 냄으로써 다음 문명의 비전이 화해라는 것을 세계에 분명히 제시하는 선도국가가 돼야 한다.이는 한반도가 지난 세기에 식민지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험을 동시에 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남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대표되는 근대화를 이뤄낸 곳이다). 또 그 이념갈등으로 전쟁까지 하고 이념의 대립이 끝이 난 시대에 아직도 한반도 이념으로 분단돼 근대의 이상과 모순과 미래의 가능성을 모두 품고 있는 용광로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루는 사건이 과거가 지나가고 새로운 미래가 도래했다는 하나의 문명사적 사건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새로워진 기독교 정신으로 여기에 기여해야 한다.한기총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일련의 사건들은 한국기독교가 이 미래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근대 초기에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의 희망 공간이었다. 그 곳에서 민족의 지도자들이 키워졌고 그들이 우리 근대를 만드는 중심축들이 됐다. 한국 기독교가 가진 모든 누추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선배세대들이 그들 시대에 기여한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위해 한국 기독교가 더 위대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2019-06-26

누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가?

박준섭 변호사자유한국당 지도부가 몇 주간 장외투쟁을 하였다. 연동형비례대표제에 관한 선거법개정 등 패스트 트랙으로 상정한 법률 때문이다.이를 두고 여야4당은 이제 장외투쟁은 과거의 투쟁방식이고 반민주적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본질은 그것이 아니다.여야 4당의 의원수가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의회로 들어가서 논의를 진행해 봐야 선거법개정안이 통과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이런 상황에서 여야 4당이 형식적인 다수결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자유한국당을 비민주적인 행태라고 압박하는 것은 잘못된 프레임에 가둬 놓은 채 악의적인 비방을 하는 것에 가깝다. 오히려 현대 민주주의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여야4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더 문제 일수 있다.그것은 현대의 민주주의는 다수의 절대주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형식적 다수가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 평등, 정의와 같은 실질적인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민주주의의 본질은 정치적 의사형성의 개방적 과정에 있다.다수는 절대적 최종적 진리임을 주장할 수 없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순간의 우위’에 불과 하다.이는 다수이기만 하면 어떤 내용이라도 상관없다는 상대적 민주주의를 취했던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 전체주의 나찌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던 역사로부터 우리는 뼈저리게 배웠고 현대는 그런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번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개정은 소수당의 의원수가 느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통령제 권력구조의 변동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소수의석을 가진 다수당이 난립하게 됨으로써 우리 헌법상의 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될 것이다.의원내각제 요소가 부각되면 현실적으로 대통령제가 아니라 이원집정부제로 운영해야 할 수도 있다. 현행헌법의 해석상으로 이것이 가능하기는 하겠지만, 국민들이 과연 원하고 있는가. 국민들에게 선거법개정이 이런 권력구조변동을 초래한다는 것을 제대로 알리기는 하였는가.지금의 여야4당이 확보한 “순간의 우위”인 다수만으로는 지속적으로 헌법상의 국가권력구조에 영향을 미칠 선거법개정을 하기에는 실질적인 관점에서 보면 민주적 정당성이 미약하다.거부권 정치가 여전한 현실에서 연정과 협치를 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리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다음 총선을 앞두고 개정이후의 사항들이 구체적으로 합의도 되지 않은 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준비도 부족한 상황에서 국회의석의 1/3이 넘는 제1야당이 반대하는 선거법개정을 다수의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자유, 평등, 정의를 지향하는 현대의 민주주의이념에 반한다.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은 그들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해 준다.그들은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보이지 않는 규범’에 의존한다고 하면서, 비록 이러한 규범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시민사회에서 널리 존중 받는다고 한다.그들은 영국왕이 총리를 임명할 권한을 갖지만 스스로 임명하지 않고 하원의 다수당의 대표에게 총리를 맡겨온 것과, 미국이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을 때에도 두 번의 임기만 허용하였던 임기제한규범도 예로 든다.우리나라는 민주화 이후에 수 십년간 선거법이 일방적으로 강행처리 된 적이 없었다.문재인 대통령도 야당시절에 ‘선거법은 경기의 규칙이다. 지금까지 일방의 밀어붙이기나 직권상정으로 의결된 전례가 단 한 차례도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선거법 개정은 합의에 의해 처리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과거부터 존재해 왔다는 의미이다.이제 여야4당은 자유한국당을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세력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자신들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잘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2019-05-28

피렌체와 파리 그리고 문화·예술의 도시, 대구

박준섭 변호사메디치가는 15세기에 모직물 공업조합과 금융업을 통하여 부호가문이 되었고 당시 공화정이었던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르네상스의 움직임은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등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먼저 일어났지만 그 중에서도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이끈 중심이었고 메디치가는 그 피렌체를 만들었다. 메디치 가문의 시조인 코시모는 동서양을 합하고 세계제국의 수도가 되고 싶어 했다. 코시모는 찬란하던 고대 로마의 부활이라는 큰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인문주의 운동과 예술의 부흥을 실천했다. 또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는 플라톤 아카데미를 만들어 인문주의운동을 후원하였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선발하여 위대한 화가의 길을 걷게 했다. 그가 문예 부흥에 투자한 금액은 40만 프로란에 달하는데, 이를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3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주문한 예술품들로 도시 곳곳이 가득 채워졌다. 피렌체는 당대 유럽최고의 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르네상스의 기원을 돌아볼 때 반드시 가봐야하는 세계적 도시가 되었다.또 파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비하여 예술의 변방이었다. 프랑스를 중앙집권국가로 만든 루이14세가 국가적 차원에서 예술을 집중육성하면서 파리 예술은 압축성장을 하였다. 그는 르네상스에 이어 바로크 예술을 창조함으로써 예술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따라잡기 위하여 로마에 아카데미 본원을 설립했다. 그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재를 선발하여 교육시켰고 뛰어난 화가를 선발하는 살롱전도 열었다. 그 결과 로마에서도 인정받는 수준급 화가들이 배출되었다. 루이 14세는 이탈리아 유학파인 르브륑으로 하여금 베르사이유 궁을 건축하게 하였다. 르브룅은 총길이 670m에 달하는 이 궁을 지으면서 전쟁의 방, 대계단, 거울의 방의 상들리아, 천정화 등을 기획하여 만들었다. 파리는 드디어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물과 예술품을 갖게 되었다. 근대 프랑스의 패스트팔로업 문화정책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혁명기를 지나 나폴레옹의 시대에 이르자 로마의 수준이 근접하게 되었다. 그러나 파리의 살롱전 출신의 예술가들은 로마와 비슷한 작품을 만들어낼 뿐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 그저 로마와 비슷한 그림을 만들 뿐 파리는 로마를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다.형식화되고 보수화된 파리의 살롱전에서 낙선한 화가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자 나폴레옹 3세는 1863년에 결국 낙선한 작품들만 모아서‘낙선전’을 열었다. 낙선전에 출품한 마네를 비롯한 작가들이 후에 모네, 르누아르 등 인상파화가라고 불리는 작가들이 되었다. 쏟아지는 눈부신 빛의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파리는 마네와 모테, 세잔 르누아르로 시작하여 고호, 고갱에 이르는 고난의 긴 여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미래를 제대로 창조할 수 있었고 세계 예술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대구는 언제부터인가 문화·예술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미술관, 음악당, 도서관 등 다른 도시에 있는 모든 건축물이 대구에도 다 있지만 어디를 돌아보아도 세계적으로, 아니 전국적으로 내세울만한 건축물이 하나도 없다. 뛰어난 예술품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메디치가가 한 시기에 현재돈으로 3천억원을 예술에 투자한 것과 루이 14세가 관주도로 예술을 진흥한 이후에 인상파의 혁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제 대구시는 예산부족만을 탓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 공공건축물에 예산을 집중투입하고, 예술품을 적극 구입하여 예술가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여야 한다. 유럽역사의 교훈으로부터 그들이 한 자원과 집중과 열정의 몰입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이때에 대구시가 진정한 문화·예술의 도시가 되기 위하여 메디치 가문과 루이 14세가 되는 현대적 모습이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할 때이다.

2019-04-10

공공도서관, 도시의 거실이 되어야 한다

박준섭변호사필자의 어린 시절 도서관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때는 새벽부터 줄을 서야 도서관 자리를 겨우 얻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의 작은 공간에서 모두들 수험서를 펴고 공부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빌 게이츠의 말을 빌자면, 적어도 어린 시절 나를 키운 마을 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 아니라 책으로 가득 찬 캐비닛 몇 개를 가지고 있던 교회였다. 나중에 대학의 도서관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면서 법서를 읽었고, 신학책, 철학책과 역사책도 읽었다. 도서관의 오픈된 서가에서 읽던, 아니 읽고 싶던 책들은 ‘세상을 향해 열린 나만의 창’이 되어 주었다.최근 몇 십년 동안에 공공도서관은 전통적인 도서관 개념에서 탈피하여 현대적으로 변화되었다. 영국은 18∼19세기 근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근대국가 건설에 필요한 지식과 도덕성을 갖춘 국민형성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공공 도서관을 설립을 계획하고 1850년 세계최초로 공공도서관법을 제정했다. 이후로 공공도서관은 백과사전적 ‘지식의 공간’과 ‘정보와 지식의 접근’이라는 개념을 전제로 민주주의 의사결정에 참여를 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형성을 뒷받침하는 계몽주의적 공공성에 가장 중요한 시설기반이 되었다.그러나 이런 공공 도서관의 근대적 이념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이르자 시민들의 다양한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영국 등 유럽에서도 1990년대 이후 도서관 이용율 감소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새로운 도서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공공 도서관을 일상의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는 매력적인 디자인 공간을 통해서 생활밀착형 소통과 공유를 촉발하는 지역 커뮤니티의 거점시설로 바꾸는 것이다.이제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일 뿐만 아니라 광장이기도 하고, 거실이자 발코니이기도 하여야 한다.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며, 음악 카페이기도 하고 전시장이기도 하고 소통의 장도 되어야 한다. 바로 복합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공공이론가인 켄 워폴(Ken Worpole)은 바람직한 공공도서관의 모습을 ‘도시의 거실’에 비유한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도 이미 바뀌고는 있지만 공공 도서관의 정책을 이제 더 적극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우선 수준높은 공공디자인을 감각을 가지고 도서관 건축을 하여 ‘와우(WOW) 효과’를 높여야 한다. 공공건물인 도서관을 지으면서 건축 디자인적으로 뛰어나게, 책상과 책장 등 비품을 고급스럽게 갖추고 예술품을 전시하는 것에 드는 비용을 아까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뿐만 아니라 특히 가난한 어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디자인감각과 예술적 감각을 배우고, 수준 놓은 문화를 누리면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자비로 얼마든지 좋은 곳에서 좋은 것을 배우고 누릴 수 있지만 가난한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얻기가 어렵다. 그러니 복합문화공간인 공공 도서관에 머무르면서 자연스럽게 수준이 높아지도록 해야 한다.또 공공 도서관 건축이 바로 사회·문화적 도시재생과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도서관 자체로도 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의 일상과 연결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침묵의 원칙이 지배하는 경건하고 규범적인 공간이 아니라 먹고, 떠들고, 놀며 지식과 경험을 소통하고 교환하는 지식의 시장이 되어야 한다. 뿐만아니라 도서관과 주변의 시장, 광장, 아파트, 상가 등과 연속적 연결성이 아우러 지도록 해서 도서관이 ‘지붕덮힌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한다.대구에 대표도서관이 새롭게 지어진다. 세련되게 디자인된 새 도시의 거실에서 시민들과 아이들이 최고 수준의 문화와 예술을 즐기고 교육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9-03-12

한국당은 산업화·민주화의 전통 속에서 재건돼야

박준섭 변호사최근에 5·18민주화운동으로 시끄럽다.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투입된 살인폭동으로 폄훼한 지만원을 국회에 초청해 발언한 것은 물론이고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을 계기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이들이 당대표와 최고위원에 출마한 이들이라는 점에서 자유한국당 자체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이 발언들은 5·18민주화운동의 정통성을 결정적이고 치명적으로 훼손하는 발언이어서 결국 보수당인 자유한국당이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의 문제로도 직결되고 있는 상황이다.자유한국당이 보수통합을 통해 범보수를 재건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에 보수주의의 그릇에 아무 가치나 담을 수는 없다는 여론이 들끓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이는 자유한국당이 전체주의국가로 갈 수밖에 없는 인민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 헌법상의 민주주의의 내용으로 결코 담을 수 없다고 민주당 정부에 대해 단호하게 말하는 것과 같다.우선 북한군의 5·18민주화운동 광주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다. 최근까지 밝혀진 여러 가지 신뢰할 만한 자료들에 의하더라도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이희성과 보안사 정보처장이었던 권정달은 검찰 조사 시에 북한군의 개입사실이 정확한 원인분석에 의한 결과는 아니라고 진술한 바 있다. 대표적인 보수논객인 조갑제 씨조차도 그의 저서에서 직업적 관찰자로서 지역과 좌우를 무시하고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면서 북한군의 광주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자유한국당이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보수당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민주화 전통을 스스로 훼손하는 것이라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보수당의 전통이 산업화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연합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수당은 초기에 산업화세력이 자유를 유보하고 산업화를 추진하는 정책을 펴다가 산업화를 어느 정도 이룬 다음에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이 합류했다. 이후 김영삼은 보수당의 당수가 되어 활동하다가 집권하게 되면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고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하나회를 해체하는 등 민주주의를 확고히 했다. 그 이후에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우리는 지금까지 보수당이 산업화세력만 대변하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해 오지 못한 것처럼 오해하고 보수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이바지한 측면을 소홀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아마 김영삼 대통령의 경제실정으로 인해 국민이 겪어야 했던 IMF의 고통이 너무 커서 민주주의의 공이 잘 안 보였던 측면도 작용했을 것이다.그러나 이제는 보수당이 현대사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실현에 기여한 점을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때가 됐고 우리나라의 보수당이 산업화의 전통과 민주화의 전통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국민의 정당’이었다는 것을 인식할 때도 도래했다는 평가다.역사는 국가공동체의 영광의 이야기, 희생의 이야기, 해방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선배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인해 한사람당 연소득이 70달러도 안되던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로 성장한 이야기는 하나의 영웅들의 이야기이고 외국에서도 회자되는 하나의 신화이다. 마찬가지로 4·19의거, 5·18민주화운동, 명예로운 87체제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희생과 성취의 이야기 또한 후세대에게 끊임없이 들려 줄 자랑스러운 현대의 신화이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생각할 때 민주주의실현에 기여해 온 자유한국당이 5·18민주화운동의 가치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히 거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2019-02-25

한국 대기업, 우리의 멋진 맏아들 되기를 바라며

박준섭변호사제일모직은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대구 침산동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모직공장이다. 지금은 이곳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서 있다. 여기는 작지만 컨벤션센터도 있고 혁신가를 키우는 강의실과 사업장도 있다. 야외에는 공연장과 꽤 근사한 식당과 카페도 있다. 창조경제 혁신센터의 한 부분에는 오래된 건물이 리모델링돼 사용되고 있다. 이곳은 바로 제일모직 기숙사로 사용되던 곳이다.여직원의 기숙사는 이병철 회장이 제일모직 공장을 지으면서 특별히 관심을 둔 곳이다. 그는 1천명이 넘는 여직원을 위해 모든 기숙사에 스팀난방을 하고 목욕실, 세탁실, 다리미실, 휴게실도 만들도록 했다. 복도에는 오래된 소나무인 회나무를 깔았다. 좋은 나무를 사다 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연못과 분수도 만들었다. 공장 전체를 마치 잘 다듬어진 정원으로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훗날에는 여직원의 가족이 면회오면 기념촬영을 하도록 전속 사진사까지 따로 두었다고 한다.이병철 회장이 제일모직의 기숙사를 만들면서 이처럼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와세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여공애사’라는 책 때문이다.‘여공애사’는 말 그대로 여공의 슬픈 생활을 그린 것이다. 호소이 와키조가 쓴 이 책은 1925년 출간되자마자 일본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당시 일본의 공장에서 일하던 여공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12시간 노동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잔업도 했다. 작업장의 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해서 공장 안은 옷감을 다리는 스팀으로 숨이 턱턱 막혔고, 온종일 서서 일했다. 작업도중에는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한 사람에게 마련된 기숙사의 공간은 다다미 한 장 크기였다고 한다. 그녀들의 식사는 밥에 된장국과 채소반찬이 전부였고 점심은 비료로 쓰던 정어리와 청어였다. 그들은 가혹한 노동과 영양부족으로 병에 걸려 죽거나 대부분 폐병에 걸렸다. 도망가던 여직원은 다시 잡혀왔고 일부는 투신자살했다.우리의 젊은 세대는 우리 근대화 과정에서 자본을 축적하면서 정경유착, 관치금융, 노동착취 등을 통해 대기업이 왜곡된 부를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구는 은과 노예의 삼각무역,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지배, 전쟁을 통해 자본을 축적했고 오늘날의 선진국이 됐다. 우리를 식민지배했던 일본도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제일모직 기숙사는 우리나라 대기업이 어떤 마음으로 직공들을 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포스텍의 이진우 교수는 우리의 대기업은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볼 때 국민의 맏아들과 같은 의미라고 했다. 우리의 윗세대는 맏아들이 잘되면 온 가족이 잘될 것으로 생각했고 맏아들을 우선 교육시키고 지원했던 시절을 살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도 정부가 지불보증을 서고 온 국민이 적극적으로 희생하며 집중 지원한 맏아들이었다. 그것은 맏아들이 잘되면 국민이 잘되게 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대기업이 맏아들 역할을 하고 빚을 갚아야 할 시기가 왔는데 IMF사태가 터졌다. 대기업의 재산은 세계로 팔려나갔고 주식은 세계의 자본이 나눠 가졌다. 맏아들인 대기업은 맏아들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세계화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지금 우리의 대기업은 모순과 혼돈 속에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우리의 맏아들이다.지금 현대자동차가 수소자동차를 혁신의 주력으로 삼겠다고 한다.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가와 국민은 우리나라 전체가 수소자동차의 테스트베드가 되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세계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상응해 현대자동차의 오너와 노동조합은 기업이 독립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국민과 세계에 동시에 걸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회적 약속을 해야 한다. 그것은 최고의 혁신기업이 돼 모든 열정과 지혜를 다해 맏아들의 역할을 확실히 하겠다는 것이다.

2019-02-12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더 나은 민주주의 보장할까

박준섭변호사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산하 자문위원회는 지난 9일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의원정수를 360석으로 확대하는 권고안을 제시했다. 자문위원들은 의견서를 통해 비례성과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사실상 적극적이지 않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사활을 건 모습이다. 소수 야 3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소극적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에 부패한 거대정당의 기득권 지키기라고 몰아가고 있다.그러나 야 3당의 주장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도의 도입으로 비례성과 대표성이 높아진다고 당연히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일까.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찬성하는 입장은 이 제도의 장점으로 사표방지, 비례성, 대표성 강화 등을 든다. 현행 우리의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도가 다수의 표를 얻은 1인이 당선되고 다른 후보자는 낙선하기에 이른바 사표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다수대표선거제도는 다수결의 원리가 선거제도상에 실현된 것이다. 다수대표제가 의회 내의 안정적인 다수세력을 형성해 정국의 안정적인 운영을 도모하고자 하는 선거제도다. 대의제 원리는 국민들로부터 대표가 명령적 위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 이익의 관점에서 일할 수 있도록 무기속 위임을 하는 제도이다. 이런 점에서 다수대표제는 비례대표제도보다 우리 헌법상의 대의제 원리와 더 조화로운 제도이다. 대의제 이념의 관점에서 보면, 유권자가 한 투표가 사표가 되더라도 선출된 대표가 표를 준 사람이나 지역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이익의 관점에서 대표하므로 사실 사표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또 비례대표제는 다수세력의 형성이나 다수의 지원에 의한 효과적인 정책수행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이나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오래전부터 1선거구에서 1인을 뽑는 다수대표제를 통해 다수를 형성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더 민주적이고 다수대표제는 덜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투표의 비례성이 높은 제도이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이 아닌 정당의 보스나 당 관료들이 다수의 비례대표 의원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민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우리 정당의 현실은 정당별 비례대표 선정, 순위 결정 과정 등에 있어 국민의 뜻이 반영되지 않고 지도부 뜻에 좌우된다. 공천헌금, 특별당비, 밀실야합, 뒷거래 등 늘 잡음이 나오지 않았던가.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총 의석을 배분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다당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안정적 다수를 확보한 정당이 없을 가능성이 있고 현실적으로 독일은 연정을 계속해오고 있다.이상적인 논리로 포장돼 있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논의의 냉정한 현실은 야 3당이 비례대표제를 통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게 해달라는 것에 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제도의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 속에서 질문할 때이다. 아직 거부권 정치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에서 소수당인 야 3당에게 국정의 캐스팅 보트를 주는 것이 합의의 정치로 가는 민주주의의 진전일까.합의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난립한 정당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정국이 불안정할 경우에 국회해산제도가 없는 헌법하에서 어떻게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가. 다당제가 된 결과, 야권을 분열시켜 오히려 정권 교체가 어려워지지 않을까. 야 3당은 국정에 동참해 운영할 실질적 수권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 정당들은 독일처럼 수천 페이지에 이르는 연정합의서를 만들고 이를 합리적으로 이행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모든 것에 대답하고 실천할 준비가 되었는가.

2019-01-17

연동형 비례대표제, 의원 증원 없이 도입 가능할까

박준섭변호사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선거제도 개혁 합의문을 발표했다.그러나 여당과 야당인 자유한국당 및 나머지 야 3당 간에 합의문의 해석 차이가 드러나는 등 이에 대한 찬반양론이 거세지고 있다.현행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와는 별도로 전국 단위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둬 별도로 선출하는 방식이다.지역구 의원선거에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채택한 결과 당선된 후보자에 대한 투표만 유효하고 나머지 투표는 사표가 되는 결과가 발생하고 정당에 대한 득표율과 정당이 차지하는 전체 의석수 차이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 결과 양당제의 거대정당이 의석을 독식하고 국민이 투표한 결과가 비례적으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정당 득표율에 완전히 연동시키는 비례대표제가 대안으로 거론됐다.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역구 당선자와 비례대표 당선자를 각각 따로 뽑아 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전체의석을 정당의 득표율과 연동해 결정하는 방식의 의석 배분제도다.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당에 정당별 득표율만큼 의석을 우선 배분하되 그 당이 지역구에서 선출된 의석수가 배분된 의석수보다 모자랄 경우 비례의석으로 충원한다.가령 A당이 30%의 표를 얻어 선거에서 전체 의석 100석 중 총 30석을 할당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이 당이 지역구에서만 25석의 의석을 획득했다면 A당이 나머지 5석은 비례대표명부의 순서대로 비례의석을 충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의원수가 불안정적으로 증가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독일식 제도를 도입했을 때 국회의원 정수가 불확정적으로 증가하는 이유는 바로 ‘초과의석’과 ‘균형의석’ 때문이다.예를 들어 A당이 30%의 표를 얻어 전체 의석 100석 중 총 30석을 할당받았고 지역구에서만 35석의 의석을 획득했다면 이는 민의를 과다하게 대표한 5석의 ‘초과의석’이 발생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의회는 35석이 30%만큼 대표할 수 있도록 다른 당들에 ‘균형의석’을 배분한다. 전체 의석수를 늘려 35석이 30%만큼의 비율이 되도록 다른 당들에 ‘균형의석’을 배분하여 재조정하는 것이다.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의원수를 불안정하게 증가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나라는 소위 균형의석을 인정하지 않거나 늘리더라도 약 30석 정도 범위에서 늘리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결국, 우리식 연동형 비례대표를 만들자는 것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비례성을 약화시키는 것이다.이 입장에 서더라도 지난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100석을 기준으로 권역별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을 권고한 것에서도 보듯이 지역구 의석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대폭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점에서 지역구 후보가 동시에 권역(우리는 광역)별 비례대표 후보가 될 수 있는 소위 이중등록제를 통해 일정부분 없앨 수 있겠으나, 현역 지역구의원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에 따라 의원수 증가의 또 다른 문제점은 돈이다. 의원 수가 늘어나면 세비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비판이 거센 이 문제에 대해 현재의 세비의 총액을 기준으로 증가한 의원에게 안분해 세비를 지급함으로써 세비를 실질적으로 동결하자는 의견도 있다.그러나 공무원의 봉급에 연동된 의원보좌관의 급여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결국, 보좌관의 수도 줄여야 하는데 현실에서 개별 국회의원의 입법역량이 감소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넘더라도 과제는 또 남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필연적으로 초래될 다수 정당이 다수 의원을 가지고 난립하는 상황에서 현행 헌법상의 대통령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다.

2019-01-03

완전한 CVID없이 평화협정은 안 된다

▲ 박준섭변호사국책연구원인 통일연구원은 지난 12일 정전협정을 대체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협정’ 초안을 공개했다. 국책 연구기관 차원에서 평화협정 초안 전문을 발표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지만 평화협정을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과 맥이 닿아 있다. 이 초안은 협정 체결 시점에 대해 “북한의 비핵화 약 50% 달성 시점”이라면서 이를 2020년 초반으로 가정했다. 통일원이 작성한 초안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비핵화 단계에 이르면 ‘유엔사 해체 후 한반도 평화관리위원회로의 전환’, ‘미·중 핵무기 한반도 전개·배치 금지’ ‘외국군과 대규모 연합 훈련 금지’를 시행하도록 했다. 또 ‘미국은 조선(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하고 어떠한 형태의 무력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하며, 조선도 미국에 대해 동일하게 확약한다’, ‘당사자들은 유엔 안보리의 모든 제재가 해제될 수 있도록 공동으로 노력한다’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북핵에 대한 원칙은 ‘CVID’여야만 한다. 즉, 완전(Complete)하고 검증(Verifiable)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Denuclearization)여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보유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문제다.정책 결정자는 정책을 결정할 때에 사안에 대한 여러 가지 상반되는 이익을 고려해 형량하여 결정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에 대하여 일방에게 하나의 이익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 당사자 사이에서 여러 이익들이 충돌하고 있다. 때문에 여러 상충하는 이익들을 조화롭게 형량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현대국가의 정책결정자의 능력의 표지이다.충돌하는 이익들을 형량하는 원칙 가운데 ‘침해강도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침해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위험성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인정해 주는 조건은 엄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핵폐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유엔사 해체, ‘미·중 핵무기 한반도 전개·배치 금지’, ‘외국군과 대규모 연합 훈련 금지’, ‘미국의 조선(북한)에 안전 보장을 제공’등의 선조치가 이뤄지면 북한의 핵보유에 의한 지위는 확고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것도 북한의 체제보장 및 경제제재는 해제된 상황에서 말이다. 북한의 핵위협은 현존하고 급박하면 아주 위험한 것이므로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에는 그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기 때문이다.김정은 정권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한 후 미국의 공격으로 순식간에 몰락할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현실은 카다피나 후세인의 몰락은 물론 러시아에 영토 일부를 유린당한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대가의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그 위험을 떠안을 수는 없다. 이것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핵폐기를 위한 이행과정에서 평화협정 등 어떠한 명목으로도 북한의 체제보장,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경제 제재의 완화, 미군주둔의 문제를 양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적어도 아직까지는 냉정한 현실은 몇 번의 정상회담과 실제 쓸모가 별로 없어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움직여야 할 때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핵폐기 직전의 단계이어야 한다. 이때 우리는 북한에게 신뢰를 담은 선물을 줄 수 있다. 그것은 완전하며,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안전보장, 즉 ‘CVIG(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이다.

2018-12-14

마이스터고를 생각하다

▲ 박준섭 변호사독일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루터는 중요하다. 루터는 중세의 끝자락에 종교개혁을 통해 헤라클레스가 돼 세속화라는 근대로의 문을 열어젖혔다. 루터는 ‘모든 사람이 사제’라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면서 인간이 하는 모든 직무나 일은 신학적으로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했다. 그때까지 중세의 사회질서는 이중적 계급으로 영적 신분인 사제계급과 세속적 신분인 평신도로 구분됐다. 그러나 루터는 두 왕국이론을 가지고 종교권인 교황권으로부터 세속적 영역을 분화시켰다. 세 신분론을 주장하면서 세속적 영역인 정치적 영역과 세속적으로 노동하고 생산하는 경제적 신분을 분화시켰다. 세속적·경제적 신분은 다시 다양한 직업으로 분화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루터가 말하는 직업은 Beruf(소명)가 됐다. 이를 번역하면 ‘신의 부름’이라는 뜻이다. 곧 직업은 신이 불러 맡긴 성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세속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로 종교적 색채가 소멸했기 때문에 현대에 직업을 선택하고 거기에 헌신하고 그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개인의 문제가 됐다. 하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모든 직업이 고귀한 것이라는 명제는 남아 있다. 독일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직업에 빌둥(Bildung)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빌둥에는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라는 소설을 보면, 청년 빌헬름이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통해 빌둥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주인공 빌헬름은 유복한 상인의 아들이었으나 연극에 빠져 유랑극단을 따라간다. 이것을 계기로 넓은 세상에 던져진 채 갖가지 인간관계에 휩쓸리게 되고 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인생의 여러 가지 모습을 경험하게 된다. 괴테는 이 실패의 과정을 통해 빌헬름이 한사람의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참된 인간이 되는 길, 이 과정이 빌둥이다. 이후 빌둥은 헤겔, 훔볼트, 하이데거 등을 거치면서 독일교육철학의 핵심이 됐다.이런 역사적·철학적 기반을 가진 독일사회는 사회의 구조의 면에서 우리와 선명한 차이가 난다. 가장 큰 차이점은 독일에서는 한 개인이 어떤 직업교육과정을 선택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지속 가능한 삶이란 독일 학생이 직업교육학교를 졸업하고 직업 훈련을 거쳐 직업을 가진다고 가정했을 때, 자신의 소득으로 평생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사회적 지위에서도 존중을 받는다는 의미다.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개인이 직업교육을 받고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안정적인 삶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사회적 인식도 좋지 않고, 불안한 고용 환경과 저임금 문제와 중소기업 사업장의 작업환경 자체가 좋지 않다. 우리가 실업계고를 기피하고 인문계고로 진학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사회의 절대적인 인문계 선호는 이런 사회·경제적 구조를 따져 보았을 때는 학부모의 합리적인 선택에 따른 것이라 할 수밖에 없다.우리나라에서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를 차용한 마이스터고가 현재 성공적이지 못한 이유는 이런 역사적·철학적·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만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독일의 교육철학의 형성과정을 통해 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하나는 마이스터고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직업인이 되더라도 사회에서 계층적 차별이 없고 정상적인 경제적·문화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직업인이 그 직업을 통해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인격의 완성에 이를 수 있도록 사회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줘야 한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근대에 있었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적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직업제도와 교육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8-12-07

교육개혁, 어떤 인재로 키울지 목표부터 정해야

▲ 박준섭변호사2018년도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수능 이후에 영국 대학생도 틀리는 영어문제가 있다며 수능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인재로 키울 것인가 하는 목표 설정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때다.흔히 이상적인 교육개혁의 모델이라고 알려진 핀란드의 교육개혁의 핵심은 공동체와 평등이다. 핀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에 패전한 나라다. 핀란드 국민은 전쟁이 남긴 폐해와 막대한 배상금을 강인한 공동체 정신과 협동으로 극복하면서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냈다. 핀란드 교육의 핵심 철학인 ‘공동체에 기반을 둔 평등’은 이러한 역사적 산물이다. 오늘날 핀란드는 나이, 거주지, 경제여건,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시민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을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이를 위해 핀란드의 학교는 학생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심리상담, 보건, 영양, 특수교육을 제공하는 토털복지기관이 됐다. 또 핀란드 학교는 학생 자신의 학습능력 페이스에 맞춰 교육받고 진학할 기회를 준다. “천천히 배워도 괜찮아,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 속에서 학생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해 충분히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게 된다.그러나 핀란드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생각할 점이 있다. 그것은 얼마간이라도 교육의 질을 희생해서 만들어내는 평등이 대한민국의 인재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핀란드는 혁신가가 나오기 어렵다’는 핀란드 내부의 비판은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우리의 국가현실에서 탁월한 혁신가를 억제하면서 평등을 지향하는 교육은 어떤 문제가 있을까. 지금 우리는 수출주도형 산업으로 산업화를 이뤘고 앞으로도 4차산업 중심의 산업으로 전환해야 하는 절실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 우리는 자원도 많이 없고 인구도 충분하지 않아 내수시장도 크지 않다. 세계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살아갈 방법이 없는 나라다. 우리는 다음 4차산업 혁명시대에 맞춰 혁신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창의적인 혁신가가 필수적인데 혁신가를 키우는데 약점이 있는 교육제도는 우리에게 치명적이다.미국은 공교육개혁을 하면서 차터스쿨, 마그넷 스쿨, 바우처제도 등을 도입한 공교육에 자유와 경쟁의 논리를 적용했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인재를 양성하는 특별한 엘리트 교육을 제공한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사립대학의 학비를 웃돌 정도로 학비가 비싸지만 이미 성공한 졸업생과 기업인이 기부금을 통해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육기회를 주고 있다. 미국식 방법은 돈도 많이 들고 자본주의에 대한 문화적 성숙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아직 실현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과 교육의 질을 동시에 잡자는 미국의 교육정책은 입시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자사고, 특목고를 없애고 교육평준화를 이뤄야 한다는 우리의 교육정책을 되돌아 보게 한다.우리는 싱가포르로부터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에게 집중 투자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 싱가포르는 철저한 엘리트 및 성과주의에 입각해 우수한 학생들을 구분해 내는 일종의 선별적 교육 과정을 가지고 있다. 식민지로부터 막 해방된 싱가포르는 그들의 자원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효과적으로 인재를 키워야 했다. 싱가포르는 국제화된 인재로 키우기 위해 외국유학까지 지원한 후 인재들에게 의무적인 공무원복무 등 최고의 능력으로 공공에 봉사하게 한다.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국가 전체적인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교육개혁의 출발점이다. 우리 산업구조의 현실과 자원이 한정적인 점을 고려해 선별적·집중적 교육도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선별적 교육은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에게도 실질적 기회의 균등이 지켜지도록 세심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 국가에 의해 가난하다고 소외되지 않고 혁신가로 길러진 인재가 성숙한 시민의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나라, 이런 나라의 인재와 시민을 키우는 것이 교육개혁의 목표가 돼야 한다.

2018-11-30

천재화가 李仁星의 반환을 꿈꾸며

▲ 박준섭 변호사대구가 낳은 천재화가 이인성은 17세 때인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선하고 스무살엔 특선하면서 화려하게 등장했다. 수십개의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했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해 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파의 화풍을 감각적으로 소화했다. 1932년 요미우리 신문엔 ‘조선의 천재 이인성’이라는 기사까지 실릴 정도로 근대 대구가 낳은 천재화가였다. 많은 천재의 삶이 그렇듯 천재의 마지막은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나 말요? 나? 천하의 나를 모르오?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나를 모르오? 난 이인성이오. 천하의 천재 이인성이오”. 서울의 한 거리의 통금 시간, 길을 막아선 치안대원은 어이가 없었지만 취객의 기세가 하도 등등해 집으로 보내준다. 그러나 치안대원은 그를 뒤쫓아가 고위층 인사인 줄 알았더니 고작 화가라며 쫓아가 총을 쏜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벌어진 총기 오발 사고다.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이 이야기가 소설가 최인호가 ‘누가 천재를 죽였는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슬프고도 어이없는 이야기다.대구 산격동에 이인성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이인성 사과나무거리’가 있다. 최근에는 대구시가 이인성(1912∼1950)이 살던 대구 집을 복원하기로 했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인 1920년대 6년간 살았던 대구 중구에 있는 고택(120여㎡)이다.이인성의 집은 100여 년간 집 주인이 여러번 바뀌면서 기존 ‘L’ 형태의 집이 ‘ㄷ’ 형태로 바뀐 상태다. 대구시가 이인성 고택을 복원할 때 너무 원형의 복원만 고집하지 말고 인접공간과 지하 등을 이용해 건축디자인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으로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옛집만 덩그러니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또 최근에 이인성 고택복원과 주변에 도심재생 소식 이후 마음에 걸리는 기억이 있다. 그가 남긴 작품 약 200여 점 중에서 1960년대 초 한국미술협회 등이 연 ‘한국현대미술가유작전’에 전시된 작품 60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화백 사망 후 설원식 전 대한방직 회장이 이 그림들을 이인성 미술관을 만들겠다며 가져갔다고 이 화백의 아들은 말했다. 정당한 매매계약으로 인한 점유인지에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1960년대 초에 한국 최초의 근대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여론이 일자 정부는 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첫 단계 사업으로 한국현대미술가 유작전을 개최했다. 이때 대한방직은 근대미술관 건립을 위한 스폰서 기업이었지만 미술관 건립은 자금난 등을 이유로 무산됐다. 미술관 건립 논의가 무산되는 와중에 이인성의 작품 다수가 대한방직가(家)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미술계 인사들의 전언이라고 언론이 보도한 내용이다.작품 중에는 ‘실내’(1935년 작), ‘겨울풍경’(1947년 작), ‘들국화’(1947년 작) 등이 포함돼 있고 감정가만 총 3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겨울풍경’의 경우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작품이 훼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보관상태로 보면 다른 작품들도 과연 보존이 제대로 됐는지 의문이다.이제는 이인성의 작품을 어두운 지하실 창고에서 꺼내 다시 대구시민의 품으로 되돌려받아야 한다. 이는 이인성의 유족도 바라고 있다. 실제 그의 작품이 대구에 돌아온 전례가 있다.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구 명덕초등학교에서 빌린 ‘사과나무’가 바로 그것. 지역을 다니면 곳곳에 이인성을 기념하면서 작품의 사진을 걸어놓고 전시하는 곳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인성이 시민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겠지만 문화도시 대구를 표방하는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민낯인 것같아 민망할 때가 많다. 이것이 과거 근대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대구의 시민들이 ‘바로 지금’ 이인성 화백의 그림의 반환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림이 반환되는 날, 우리는 죽은 이인성이 아니라 살아있는 이인성을 대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2018-11-23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다시 생각한다

▲ 박준섭변호사문재인 정부가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을 경질한 후 소득주도성장을 계속 추진할 뜻을 밝혔다. 문 정부의 경제정책은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요약될 수 있다.소득주도성장은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나날이 양극화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경제적 지위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하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론이라기보다 분배론에 더 가깝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의 증가가 경제 전체적인 소비로 이어져 투자와 생산, 고용이 확대되고 이것이 다시 국민의 소득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결국 문재인 정부도 분배는 하나의 과정이고 결국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은 저소득층의 소득의 격차를 완화하고 불균형을 보완하는 분배정책으로 자리를 잡아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게 되면 소득주도성장정책을 통해 성장을 이루려고 국가경제구조가 흔들릴 정도의 무리한 정책방안을 구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또 문 정부의 혁신성장은 기업의 혁신을 촉발해 경제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산업에 의한 성장이 고용없는 성장, 성장률의 하락으로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기업가정신과 창조적 파괴, 혁신을 통해 새로운 경제성장을 이루자는 내용이다. 다분히 슘페터의 영향이 느껴지는 대목이지만 혁신성장이 약간의 강조점만 다를 뿐 과연 창조경제와 무엇이 다른가하는 것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혁신성장의 최대 걸림돌은 우리 기업들이 별로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선진국으로부터 기계를 수입해 선진국이 이미 제조하고 있는 제품을 변형하는 수출방법으로 성장해 왔다. 중소기업도 대기업 벤드화로 종속돼 있어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할 역량이 미약하다. 지금의 상황에서 첨단자동차, 바이오 등 첨단산업 영역에서 혁신적 기술을 갑자기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우리가 혁신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소위 혁신적 개념설계를 스스로 할 수 있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문제는 혁신성장의 어려움이 큰 현실에서 기존의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 산업구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다. 공정경제의 관점에서 대기업을 하청기업과 국민에게 갑질하는 적폐로만 봐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우리가 일본을 따랐던 방식 그대로 답습하는 중국에게 빠르게 추격당하고 있다. 우리는 전자, 화학, 조선, 자동차 산업이 무너진 다음에 혁신적이고 공정성에도 문제가 없는 멋진 기업이 저절로 남아 있을 것으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그때는 산업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몰락한 대한민국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를 지탱해주는 산업기반은 실제로 적폐대상으로 분류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혁신성장이 금방 이뤄질 것으로 생각하면서 공정경제를 이유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우리가 대기업중심의 산업구조를 혁신해 나가고 또 혁신성장도 이루기 위해 일정기간 대기업의 경쟁력을 더 유지시켜주는 정책이 절실하다. 친노동정권인 문 정부가 나서서 노동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동계를 설득해 개혁해야 한다. 독일은 사민당의 슈뢰더 정부 주도 하에 2002년 하르츠 개혁을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였다. 물론 이때 독일은 탄탄한 사회안전망이 있었다. 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실업자 등 저소득층의 소득보장과 분배분제를 위한 정책을 구사해야 할 곳은 바로 이 지점이 돼야 한다. 공정경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의 문제만 적용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노동자 사이에도 적용돼야 한다. 대기업의 경쟁 확보를 위한 노동의 유연화와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서 소득정책과 공정경제, 그리고 장기적으로 산업구조혁신과 혁신성장을 위한 기반형성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해야 할 경제정책이 아닐까.

2018-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