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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상도지리지’ 발간 600주년 기념 특별전

국립대구박물관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오는 2월 22일까지 조선시대 지리지(地理誌)를 주제로 한 특별전 ‘사람과 땅, 지리지에 담다’를 전시하고 있다. 이번 특별전은 올해로 발간 600주년을 맞은 ‘경상도지리지’의 탄생을 기념하고자 마련됐다. 전시장에서는 ‘세종실록지리지’와 ‘대동여지도’,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상도지리지(모사본)’, ‘대구달성도’, ‘대구부읍지’ 등 87건 198점의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전시를 통해 조선시대 국가 통치의 기반이 된 자료는 물론 옛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도 살펴 볼 수 있다. 1부 전시 ‘사람과 땅’에서는 선조들이 땅 위에 새긴 삶의 흔적들을 살필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425년 세종의 명으로 편찬된 ‘경상도지리지’다. 이는 경상도의 사회·경제 상을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지리지로 당시의 행정구역, 연혁, 지세, 인구, 세금, 특산물 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가로 45㎝, 세로 85㎝ 크기에 달하는 경상도지리지는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인 서지학자 마에마 교사쿠가 그 무게를 달아봤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방대한 분량이다. 또한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명시한 ‘세종실록지리지’와 더불어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공개되며, 암행어사가 휴대했을 법한 소형 지도 등 실용적 유물도 만날 수 있다. 2부 ‘숫자로 보는 국가’는 조선이 철저한 기록과 통계의 나라였음을 보여준다. 관람객들은 각종 인구·토지·군사 지표를 통해 조선의 국가경영 방식을 가늠할 수 있다. 당시의 주민등록등본 격인 ‘준호구(准戶口)’ 및 각 고을의 토지와 세금 등 상세한 통계를 담은 ‘읍지(邑誌)’가 눈길을 끈다. 특히 왕과 일부 대신만 열람할 수 있었던 일종의 ‘국정 빅데이터’인 ‘만기요람’에는 국가의 재정부터 무기고의 칼과 총의 개수까지 정밀하게 기록돼 있다. 이 밖에도 산송(묘지 소송)을 위해 그린 ‘산도(山圖)’와 토지 매매 문서 등은 당시 땅을 둘러싼 치열한 사회상을 반영한다. 노비에게 몰래 땅을 팔아먹은 스님을 고발하는 문서도 보인다. 3부 한글 지도첩 ‘전지도’는 독도를 ‘방산도’로 표기했다. 한자 ‘우산도(于山島)’의 ‘우(于)’자를 ‘방(方)’자로 오독해 기록한 흔적이라 한다. 또한 지도의 거리 기점을 한양이 아닌 대구로 삼은 ‘해좌일통전도’도 볼 수 있다. 또 고산자 김정호의 대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공간도 볼 수 있다. ‘대동여지도’는 물론, 대동여지도보다 7000여 개의 지명이 더 수록된 ‘동여도’, 그리고 대동여지도 제작의 기반을 다진 필사본 지도인 ‘동여’를 만날 수 있다. 4부 ‘사람과 삶의 흔적’은 기록의 행간에 스며든 삶의 모습들을 조명한다. 시문과 인물, 고적 자료를 중심으로 땅을 터전 삼아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옛 사람들의 생생한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한편 박물관 측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한 해설 QR코드, 시청각 장애인을 위한 촉각 체험물과 수어 해설 영상, 전시장 중간의 퀴즈 코너 등을 마련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1-04

대구에도 힐링하기 좋은 대나무 숲길이 있다

대나무 숲길이라 하면 으레 울산이나 담양 등을 떠올린다. 우리 대구에도 대나무 숲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았다. 2호선 강창역과 대실역 사이 강창교 아래 울창하게 뻗어있는 대나무 숲이 있다. 대실 역에 내려 시내 강창교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닿는다. 이곳은 달성군이 지난 2021년 코로나19에 지친 주민들의 힐링을 위해 야심차게 조성한 ‘죽곡, 댓잎 소릿길’이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대나무가 많아 지명도 죽곡(대실)이다. 아쉽게도 숲길이 강창교 다리 아래에 숨어 있어 자동찻길로는 잘 보이지 않아 시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4년 전 설치 당시에 총 길이 800미터에 대나무 8000본을 심었지만 지금은 수십 배에 이르는 울창한 대나무 숲으로 변모했다. 주위에 대구 12경으로 유명한 강정보와 물 문화관 디아크가 있어 하루 코스의 힐링 장소로 안성맞춤이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조깅 장소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입구 문주에 ‘죽곡 댓잎 소리길’이란 글자가 기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바람에 댓잎이 내는 ‘싸그락 싸그락’ 소리 들으며 좌우에 우거진 대나무숲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치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까마득하게 길게 뻗은 숲길이 꽉 막혔던 내 마음을 뻥 뚫어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더욱이 맨발 길로 조성돼 있어 직접 맨발로도 걸어보았다. 땅의 기운이 온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좌우에 대나무로 엮어 만든 울타리가 정감을 느끼게 했고 길을 가다 힐링 장소로 설치한 조형물들이 이색적이었다. 군데군데 대나무 침대, 대나무 의자가 있어 죽림욕을 즐길 수 있게 하여 기자도 한번 침대에 누워 보았다. 온몸을 대나무 숲에 맡기니 내가 주인처럼 느껴졌다. 숲속 작은 광장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조형물 팬더 가족이 정답게 앉아있고 작은 음악회라도 펼칠 수 있는 연단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단 둘아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앙증맞은 독서대가 있어 앉아 보기도 했다. 입구에 마련된 쉼터에는 ‘당신의 뱃살은 표준입니까?’라는 뱃살 측정대가 나이 대 순으로 만들어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찌든 마음을 식힐 수 있고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2호선 역세권에 있는 ‘죽곡 댓잎 소릿길’을 시민들이 많이 이용했으면 한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1-04

“지나온 굽이길, 한 권의 유산이 되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며 노년의 삶의 질과 자아실현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평범한 어르신들의 인생을 기록으로 남긴 뜻깊은 결실이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대구 비원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은 구랍 29일 복지관 대강당에서 ‘나다운 삶을 위한 치유 글쓰기’ 자서전 교실 평가회 및 책 발간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2025년 1·2기 과정에 참여한 네 분의 어르신이 5개월간의 글쓰기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삶을 담은 자서전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단순한 프로그램 종료를 넘어, 평생을 가족과 사회를 위해 살아온 어르신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보고 기록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나다운 삶을 위한 치유 글쓰기’는 어르신들이 기억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며 정서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도록 돕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특히 과거를 회상하고 이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이 인지 기능을 자극해 치매 예방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수업은 작법 기술보다 삶 그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어르신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생업의 현장, 기쁨과 아픔이 교차했던 인생의 굽잇길을 원고지 위에 한 줄 한 줄 풀어냈다. 지난 5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긴 여정은 방종현 지도교수와 김윤숙 강사의 세심한 지도 속에 진행됐으며 처음에는 글쓰기를 어려워하던 참여자들도 점차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열었다. 교실은 어느새 배움터를 넘어 공감과 연대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완성된 자서전을 손에 쥔 네 분의 어르신은 깊은 감회를 전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남길 수 있어 보람차다”, “과거를 정리하며 나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잊고 지냈던 기억이 되살아나 삶이 단단해졌다”는 소회는 글쓰기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삶을 치유하는 과정임을 보여줬다.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함께한 은윤수 사회복지사는 “글쓰기를 통해 어르신들이 자부심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방종현 지도교수 역시 “자서전은 문장력이 아니라,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용기로 완성된다”며 “이번 발간은 노년의 삶 또한 존중받고 기록돼야 할 소중한 역사임을 일깨운다”고 평가했다. 비원노인복지관은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어르신들의 삶과 경험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도록 기록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 줄의 기억에서 시작해 한 권의 인생으로 완성된 이번 자서전 교실은, 노년기 역시 여전히 성장하고 기록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임을 증명하며 지역사회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장혜숙 시민기자

2026-01-04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한국인은 왜 ‘삼세판’에 목숨을 거는가

한국인의 삶은 ‘3’이라는 숫자의 거대한 그물망 속에 놓여 있다. 단순한 숫자의 나열을 넘어, 3은 우리 민족에게 우주를 이해하는 틀이자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법칙이며, 나아가 삶의 고비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심리적 지지대 역할을 해왔다. 흔히 쓰이는 ‘삼세판’이라는 말 속에는 한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두 번의 우연에 기대지 않으며, 세 번의 과정을 통해 정당한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우리만의 독특한 철학이 담겨 있다. 우리 조상들은 우주의 근본 원리를 ‘천지인 삼재(天地人 三才)’에서 찾았다. 하늘(天)과 땅(地),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人)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세상이 온전해진다고 믿었다. 이는 단지 추상적인 관념에 머물지 않고 우리네 인생관으로 확장되었다. 인생을 전생, 금생, 후생의 ‘삼생(三生)’으로 나누어 바라본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생이 다소 고달프더라도 다음 생이라는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는 여유, 그것은 3이라는 숫자가 주는 구원이기도 했다.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 역시 3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는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면 친가, 외가, 처가(혹은 시가)라는 ‘삼족(三族)’의 관계망이 형성된다. 과거 대역죄인에게 내린 ‘삼족을 멸한다’는 형벌은 3이 한 개인을 둘러싼 완결된 세계를 의미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종교와 사상 또한 마찬가지다. 유교의 도덕적 뼈대인 ‘삼강(三綱)’, 불교의 ‘삼존불’과 ‘삼매경’,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이르기까지, 3은 성스러움과 진리를 상징하는 숫자로 군림해 왔다. 아이의 탄생 순간부터 3의 서사는 시작된다. 아이를 점지하는 ‘삼신할미’의 존재와 출산 후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며 산모와 아이를 보호하는 ‘삼칠일(21일)’의 관습은 과학적 회복기와 맞물려 3이 생명의 숫자임을 증명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으로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작심삼일’이라는 인간적인 빈틈을 허용하는 것 역시 3이 가진 묘한 매력이다. 사흘을 넘기지 못하는 의지력을 탓하기보다 3이라는 마디를 통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는 셈이다. 국가 운영과 법치에도 3의 원리는 엄격하게 적용된다.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정승’ 체제는 오늘날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으로 이어졌고, 사법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삼심제도’는 억울함이 없도록 세 번의 기회를 보장한다. 놀이문화에서도 단판 승부보다는 ‘삼판양승’을 선호하는 것이 우리네 정서다. 한 번의 승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세 번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승자를 가리는 문화는 공정함과 끈기를 동시에 존중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일상의 의식주와 예술적 균형에서도 3은 빛을 발한다.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식습관, 제사 때 술을 세 번 올리는 헌작, 빛과 색의 삼원색이 조화되어 만물의 색을 만들어내는 원리가 그러하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 “하나, 둘, 셋!”을 외치는 짧은 순간은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찰나의 집중력을 상징한다. 솥발이 세 개일 때 지형에 상관없이 가장 완벽한 수평을 잡듯, 3은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가장 견고한 안정을 찾아내는 마법의 숫자다. 유비가 제갈량을 영입하기 위해 세 번 찾아간 ‘삼고초려’나, “참을 인(忍) 자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는 격언은 3이 인내와 진심의 척도임을 보여준다.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된 3·1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3인,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세삼창’의 울림 역시 우리 민족의 정기가 3이라는 숫자와 결합할 때 얼마나 큰 폭발력을 갖는지 상기시킨다. 결국 3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삶의 방식 그 자체다. 하나는 외롭고 둘은 대립하기 쉽지만, 셋이 모이는 순간 비로소 안정적인 삼각형의 구조가 완성된다. 치우치지 않고, 넘치지 않으며,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 균형점. 우리가 오늘도 회식 자리에서 “딱 세 잔만!”을 외치고(비록 그것이 삼차까지 이어질지언정),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삼세판’의 기회를 꿈꾸는 것은 3이라는 숫자가 가진 무한한 포용력과 회복 탄력성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3은 한국인에게 가장 완벽한 삶의 핑계이자, 끝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희망의 마침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1-04

명량해협 울돌목에서 성웅 이순신을 만나다

울돌목에서 나라를 위해 고뇌하는 이순신을 만난다. 그의 손에는 예외 없이 들고 있는 익숙한 장검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지도를 움켜쥔 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극도로 불리한 조건 앞에서 분노보다 책임을 먼저 떠안았던 장수. 끝없이 고뇌하는 그의 뒷모습은 4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순간에도 묘하게 든든함을 준다. 13척의 배로 130여 척의 적선(敵船)과 맞서야 했던 그의 시선은 바다를 두려워하지도 얕보지도 않는다. 포항에서 남해 끝 전남 진도군까지 다섯 시간을 달린다. 선뜻 나서기 쉽지 않은 거리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전시를 본 후 명량대첩의 현장인 울돌목에서 그와 마주하고 싶다는 일념이 먼 거리를 감내하게 한다. 울돌목은 변함없이 거친 조류에 바닷물이 뒤집히며 용트림을 한다. 직접 함선을 건조하고 군량미 조달과 부상병, 피난민까지 먹여 살리며 전투에 임했다는 이순신은 국내에서 가장 작은 동상으로 돌아와 당시 형용할 수 없이 급박했던 상황을 재현한다. 전율이 인다. 이순신의 기운이 감도는 진도군과 해남군을 둘러보기 위해 관광지도를 펼친다. 누구는 위태로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지도를 움켜쥐었고 누구는 저 하나 삶의 무게를 덜고자 지도를 펼친다. 가까이 벽파정에 오르니 ‘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가 눈에 들어온다. 거북이 등에 우람히 올라선 비석은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다는 듯 우리 땅, 우리 바다를 향해 우뚝 서 있다. 나란히 서서 바다를 보니 그냥 뭉클하다. 이어 찾아간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은 계절마다 나타나는 시간이 달라 겨울에는 보기가 힘들다며 4월 축제를 기약하라는 안내를 듣지만 섭섭지 않다. 바닷길이 열린다는 앞바다에 고깃배들이 장난감처럼 옹기종기 떠 있는 평화스러운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신비스럽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세방낙조로 향하는 길, 차창 너머로 언뜻 스친 팽목항. 이 바다에서 또 다른 잊지 못할 희생과 마주한다. 먹먹해져오는 가슴을 달래고자 잠시 들러 그들을 위해 묵념을 올린다. 날씨가 흐려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없었지만 아쉽지 않다. 해비치 카페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녹이며 바라 본 서해바다는 일몰 없이도 매우 아름답다.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과 소치 허련의 운림산방에서 그들의 정신세계를 탐하고, 법정 스님 생가 터에서 스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나무의자에 잠시 앉아 마음의 짐 덜어내 본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끝없이 이어지던 겨울 햇살 먹은 배추와 파, 당근, 시금치들을 완도군 오일장에서 만난다. 남도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이미 재료에서 완성된 느낌이다. 차 트렁크가 넘치도록 장을 본다. 진도를 떠나기 전 다시 찾은 울돌목. 급히 흐르는 조류는 여전히 무섭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순신의 고뇌하는 동상을 본다. 장검을 움켜쥐고 광화문을 늠름히 지키는 거대한 동상만큼이나 지도를 움켜쥐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이 작은 동상의 뒷모습에서도 위풍당당의 전율이 같은 무게로 흐른다. 남도의 바다는 그렇게 오늘도 역사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을사년 한 해가 저물고 병오년 새해가 밝았다. 역사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삶 속에서 계속 숨 쉰다. 울돌목에서 만난 이순신의 고뇌는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크고, 그리고 깊게 숨을 고르며 이순신 장군의 후손답게 당당히 새해를 향해 걸음 내딛는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6-01-01

자연이 만들어준 행복, 가족과 함께한 울진 여행

지난 주말 엄마가 계속 타고 싶어했던 울진죽변스카이레일을 타기 위해 경북 울진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동선은 죽변스카이레일에서 시작해 성류굴을 거쳐 국립해양과학관으로 이어졌다. 첫 목적지는 울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죽변스카이레일이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에 날씨가 많이 추울거라 예상하고 단단히 준비해갔지만, 다행히 춥지도 않고 쨍쨍하게 날씨가 좋았다. 기다림 끝에 드디어 스카이레일에 몸을 실었다. 죽변스카이레일은 죽변승차장에서 출발해 하트해변 정차장을 지나 봉수항 정차장에서 방향을 바꿔 돌아오는 코스로 운영된다. 레일 위를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울진의 해안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특히 하트해변은 이름 그대로 하트 모양을 닮은 해안이라 연인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근남면에 위치한 성류굴이다. 울진의 대표적인 자연 명소인 성류굴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빚어낸 종유석과 석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석회암 동굴이다. 은은한 조명 아래 드러난 종유석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굴 안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자연이 만든 조각 전시장을 천천히 관람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천장에서 자라 내려온 종유석과 바닥에서 솟아오른 석순,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 만든 석주들은 오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곳곳에서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성류굴의 매력은 단순히 보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동하다 보면 통로가 갑자기 좁아지거나, 몸을 낮추고 오리걸음으로 지나가야 하는 구간도 등장한다. 어른에게도, 아이에게도 작은 모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동굴 탐험이라는 말이 어울릴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동굴 관람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다음 목적지를 정하는 데에는 성류굴 안내지가 도움이 되었다. 안내지에는 울진을 대표하는 여행 코스가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중 ‘국립해양과학관’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바닷속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정보를 확인한 뒤,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국립해양과학관은 ‘미래동물: 대멸종 너머의 생명’을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명이 어떤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영토인 독도를 주제로 한 영상도 상영 중이어서, 해양 주권과 역사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전시 관람을 마친 뒤, 전망대로 향했다. 이곳에는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하는 ‘바닷속’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실제 바다가 그대로 펼쳐지는 구조다. 이날은 파도가 심해 시야가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과 유리벽 주위에 붙어 있는 불가사리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유리창 앞에 모여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수족관이 아닌, 실제 바다를 그대로 마주한다는 점이 흥미를 더했다. 울진에서 보낸 하루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스카이레일에서 내려다본 바다, 성류굴에서 만난 자연의 시간, 그리고 국립해양과학관에서 상상해 본 미래의 바다까지.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자연과 사람, 그리고 가족이 함께 호흡하는 시간이었다. 울진은 여전히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 다시 방문하고 싶은 지역이 되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6-01-01

가을 냉이, 그 뜻밖의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냉이 찜이 식탁 위에 올랐다. 12월 아침의 매서운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그 구수하고 향긋한 내음, 입안에 한 술 머금는 순간 흙이 품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듯하다. 올해 우리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 대신 초록빛의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가을 내내 사과나무 사이사이 지천으로 널린 냉이가 우리를 불렀다. 그렇게 우리는 냉이를 캐느라 11월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봄이면 바구니를 들고 들판을 누비던 시간이 어느덧 40여 년이 흘렀다. 3월 10일이 노동절이던 젊은 날, 우리는 시부모님과 아이들 손을 맞잡고 들로 나갔다. 팔공산 수태골 자락과 군위 제2석굴암 언저리의 논밭을 누비며 들꽃처럼 웃던 아이들의 모습, 봄볕에 반짝이며 웃음소리 가득 담던 어머님과 무뚝뚝한 아버님의 미소까지, 그 풍경들은 아직도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밖으로 나가 들녘을 마주하면, 어른·아이 모두 하하 호호 크게 웃으며 한마음이 되었다. 땅을 밟고 흙냄새를 맡으며 나물을 캐던 그 순간순간이 우리 가족에게 축제였다. 해마다 봄이면 쑥이며 냉이며 달래를 캐서 가족의 밥상에 올리는 일이 연례행사였다. 친정엄마가 “봄나물은 보약”이라며 우리에게 매년 먹이던 것처럼, 나도 봄이면 들로 나가 나물을 캐고 정성으로 다듬고, 들깻가루와 콩가루로 풍미를 더 해 음식을 만들었다. 그 자연의 보약 밥상을 한 해도 거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3월 25일,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우리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생활 터전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것을 정리하는 사이 봄날은 어느새 저만치 가버렸다. 봄을 그렇게 보내 버린 아쉬움 때문일까. 올가을 사과밭은 온통 냉이밭이 되었다. 한 해의 가족 건강을 책임지던 봄나물이 가을의 선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과수원을 둘러보던 남편은 싱글벙글 콧노래를 불렀다. 그날부터 11월은 냉이 캐기의 연속이었다. 낮엔 사과밭에서 농부가 삽으로 냉이를 캐고 아내는 옆에서 흙을 털었다. 저녁엔 밤늦도록 거실에서 고단하게 나물을 다듬었다. 손끝이 새카맣게 물들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했다. 딸에게 주고, 이웃의 새댁도 주고, 대구의 지인들에게 함께 나누리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냉이를 가장 좋아하시는 어머님은 손이 고단해도 무침과 국을 끓이겠다며 한 포기, 한 포기 정성으로 손질하셨다. 냉동실에 가득 쟁여 둔 냉이 봉지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는 들나물일지라도 나에게는 자연과 가족을 잇는 소중한 삶의 산물이다. 나는 천상 농부의 아내인 모양이다. 들에서 나는 나물을 사랑한다. 고기반찬이 없어도 살 수 있을 듯하다. 봄날의 연두와 가을의 황금빛 들녘, 싱싱한 무청과 배춧잎의 푸른빛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특히, 추위 속에서 고개를 살짝 내민 초록빛 냉이는 그 어느 것보다 나를 행복하게 한다. 올봄 만날 수 없었던 그 작은 행복이 가을에 다시 왔다. 얼려두었던 냉이 한 봉지를 꺼낸다. 멸치 육수를 곱게 우려내고, 냉이에 고소한 콩가루를 입힌다. 채 썬 무와 냉이를 냄비에 담고 자작하게 육수를 부어 끓인다. 냄비 옆을 떠나지 않고 불을 살핀다. 잠깐 한눈을 팔면 물이 넘친다. 김이 오르면 뚜껑을 열고 육수를 조금 더 부어 정성을 보탠다. 그렇게 구수하고 향긋한 냉이 찜이 완성된다. 자연이 차려준 소박한 밥상 앞에서 농부도 그의 아내도 행복한 아침을 온전히 누린다. 산불이 훑고 간 자리에 다시 돋아난 저 초록빛 생명, 가을 냉이가 건네는 이 뜻밖의 위로 덕분에, 우리는 다시금 내년의 봄을 꿈꿀 기운을 얻는다. /손정희 시민기자

2026-01-01

몸살엔 ‘갈비탕’···맑고 깊은 전통한식 보양국물

몸이 으슬으슬 소리를 낸다. 겨울이라고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더니 감기 몸살이 시작되었다. 이럴 때는 뜨거운 국물을 먹고 땀을 쫘악 흘려줘야 한다. 여러 국물 요리가 있지만 즐겨 먹는 음식은 갈비탕이다. 화담면옥으로 전화를 걸었다. 집 주소를 부르기도 전에 ㅇㅇ하이츠죠? 하며 반가이 맞는다. 갈비탕과 닭볶음탕 보내 드릴까 묻는다. 단골이라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물어오니 함께 웃었다. 오늘은 직접 가게에 방문했다. 가게 앞이 너른 주차장이라 차를 대기 편한데 점심도 저녁도 아닌 오후 4시라 우리뿐이다. 오후 햇살이 덜 비치는 자리에 앉아 늘 먹던 갈비탕과 닭볶음탕을 시켰다. 전화번호는 기억하지만, 우리 가족의 얼굴은 모를 것 같아 자주 시키던 ㅇㅇ하이츠이에요 하니까,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주문이 잘 못 가서 늦었는데 화도 안 내서 너무 감사했다며 주방에 있는 주인장에게 우리 이야기를 전하러 달려갔다. 우리 아파트 근처에 이름이 비슷한 단지가 또 있다. 그래서 가끔 우리 갈비탕이 그곳으로, 또 그 집 짜장면이 우리 집에 도착해 벨을 누른다. 그날은 닭볶음탕이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아 혹시 하고 전화하니 다른 곳에 가져다 놓았다고 했다. 다 식었으니 새로 가져오겠다는 걸 그냥 주세요 했다. 배가 고프기도 했고 식었으면 데워 먹어도 될 일이었다. 그날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직원분이 실수였는데 가볍게 넘어가 줘서 고맙다며 음료수를 서비스로 내왔다. 몸이 안 좋아 뜨끈한 탕으로 덥히려고 갔다가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갈비탕에 관한 기록은 1890년대의 궁중 연회 상차림에 보이나, 갈비는 그보다 먼저 고려시대 말부터 먹은 것으로 추측한다. 쇠갈비를 5∼6㎝로 토막 내서 맹물에 넣고 뼈에 붙은 고기가 떨어질 정도로 연하게 흐물흐물해지도록 푹 곤다. 이것을 곰국과 같은 방법으로 조미하여 간장으로 끓이는 경우가 있고, 그대로 국물과 함께 떠서 파 다진 것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는다. 모든 뼈의 성분이 함께 우러나서 국물이 맑으면서도 맑은장국과는 달리 색다른 별미가 있다. 맑은장국이란 간장으로 간을 해 국물이 맑다. 옛 기록에 보면 ‘가리탕’이라고도 부른다. ‘가리탕’은 한 번 삶은 고기를 건져 내고 삶은 국물을 바쳐서 그 국물에 양념하여 맑게 끓인 탕이다. ‘맑은장국’은 고기를 기름에 볶아 끓인 탕으로, 국물 맛을 시원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를 넣는다. 며칠 전 증조부 제사에 오르는 국을 이렇게 맑게 끓였다.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애느타리버섯 데치고 숙주나물도 한번 데쳐서 고기와 무가 끓어 넘칠 때 섞었다. 마지막에 대파를 넣으면 완성이라 갈비탕처럼 맑아 시원하다. 화담면옥의 또 다른 별미는 닭볶음탕이다. 메뉴에는 ‘닭도리탕’이라 적혔다. 도리가 일본어로 ‘새’를 이르니 닭을 두 번 연속해서 부르는 것 같아 볶음 탕으로 해야 옳다. 이름은 그렇게 적어도 맛은 일품이다. 양도 그득해서 둘이 먹다가 남은 걸 포장해 와야 했다. 집에서 주문하면 다음 날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 먹으면 또 새로운 맛이다. 가성비 짱이라 단골이 되었다. 보통 면옥이란 이름의 가게는 냉면 맛집이다. 화담면옥도 갈비탕 베이스에 냉면이라면 믿고 먹어도 될 것이다. 실내가 넓어서 단체 손님들이 즐겨 찾고,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를 위해 놀이방도 있다. 미리 예약하고 가면 음식이 금방 나온다. 갈비탕을 먹고 나면 원두커피가 할인되니 더 좋다. 물론 카운터에 믹스 커피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브레이크타임이 없어서 점저도 가능한 집이다. 포항시 북구 장량로 115, (054)253-3400.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30

글이 주는 기쁨을 잃어버리지 말자

어느 시인의 글을 읽다 마음이 찡해졌다. 가난한 소년 시절 아궁이에 군불을 땔 때 열기로 데워진 무릎을 가만히 안고 있는 동안 어떤 느낌이 찾아왔다고 했다. 무어라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 느낌, 말로는 설명할 수는 없는 느낌. 무언가 아른아른하면서도 따듯한 느낌. 어른이 된 후 힘든 세상과 맞부딪쳐야 할 때면 그때의 그 느낌이 서늘해진 가슴에 다시 온기를 준다고 했다. 그 느낌에 공감하는 건 어린 날 나도 똑같은 체험을 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글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느낌을 같이 느꼈기 때문이다. 모두 다 보여주는 화면이 아닌 글을 통해 그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닐까. 글을 읽으면 작가의 체험에 동화되어 잊고 있었던 사물의 본질을 일깨우게 된다. 더 나아가 인간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정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된다. 현대사회는 이제 영상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거의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있다. 어느 곳을 가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멀어지면 불안감을 느낀다. 특히 자극적인 짧은 영상에 노출된 사람들은 지그시 긴 영상을 보는 것조차 견디지 못한다. 그러니 긴 문장의 글을 읽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은 더 문제다. 지금 40~50대가 자랄 때만 해도 과잉행동장애는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ADHD가 흔한 증상이 되었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못하고 과잉 자극에 노출되었다는 결과이리라. 학생들의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말도 자주 언급된다. 글을 통해 좀 더 천천히 세상을 보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할 듯하다. 단순히 글자를 아는 것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 말고의 글 읽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화면 속의 가상 세계에서만 살지 말고 내 눈 앞에 펼쳐진 진짜 세상을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요즘은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사진 찍고 영상 찍기에 바쁘다. 그렇기에 생생한 세상을 내 눈으로 보는 것을 놓치고 만다. 조금만 주의 깊게 바라보면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있다. 그건 꼭 대단하고 벅찬 것만이 아니다. 무심코 내다본 창밖 저녁놀이 눈부시게 아름다울 때, 부풀었던 꽃망울이 밤사이 활짝 피었을 때, 굳은 땅에 연초록 새싹들이 오밀조밀 앙증스럽게 돋아날 때 바로 그런 때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으나 신이 곳곳에 숨겨둔 위로의 손길을 발견하는 때가. 마치 엄동설한 십 리 산길을 걸어온 내 언 발을 꼭꼭 주물러 주던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은 위로이다. 새해에는 짧은 글이라도 그 감동을 글로 쓰고 글을 읽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독서하는 일을 목표로 삼아도 좋겠다. 자극적인 영상에서 잠시 벗어나 글이 가지는 위로와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12-30

이동 노동자들도 따뜻한 겨울 되기를

겨울이 본색을 드러냈다. 거리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목도리와 장갑, 모자로 온몸을 꽁꽁 감쌌다. 어둠이 내린 도로 위의 자동차 불빛도 추위에 확연히 줄어든 모습이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차들 사이로 배달 오토바이, 택배 차량이 눈에 들어온다. 차들 사이를 급히 빠져나가는 모습이 추운 날씨에 괜히 마음이 쓰일 때가 있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본 도로 위의 환경미화원도 마찬가지다. 도시와 시민의 일상을 빛내주는 이들의 일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 길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하루에도 수없이 택배차들이 드나든다.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하다 보면 문 앞마다 택배 상자들이 한두 개쯤 놓여 있는 걸 보는 건 어렵지 않다. 문 앞에 쌓인 상자를 볼 때면 우리의 일상이 택배나 배달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택배를 많이 이용하는 편은 아니다. 배달 음식도 거의 즐기지 않으니 배달시킬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 어쩌다 피자나 치킨을 시킬 때가 있다. 주문하고 문 앞까지 배달 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그럴 때면 시민기자가 거주하는 동네 골목과 아파트를 누비는 택배 아저씨를 떠올렸다. 얼핏 생각해 보아도 십 년은 훨씬 넘게 한 지역을 담당하고 계신 것 같다. 다른 택배 아저씨는 몇 번 바뀌어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말이다. 보통의 키에 마른 몸인데 나이가 있어서인지 특별한 표정의 변화 없이 묵묵히 일하는 분이다. 택배사의 파업이 있을 때도 이분의 택배만큼은 멈춤이 없었다. 그래서 주문한 물건이 아저씨의 택배차에 실리기를 바랐다. 날씨가 덥거나 추워져도 혼자서 일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부인과 함께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택배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아저씨를 볼 때마다 마음속에선 여러 번 상이라도 주고 싶었다. 거리의 환경미화원과 아파트 청소를 하시는 아주머니도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가는 길에 늘 마주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안에서 청소도구함을 옆에 두고 일을 하고 계시면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한다. 늘 열심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쉬는 주말이면 뭔가 더 지저분해 보인다. 하지만 다음날 청소 아주머니의 손길을 거치면 말갛게 세수한 얼굴처럼 엘리베이터 안은 깨끗해졌다. 아주머니의 노고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이처럼 시민들의 일상을 소리 없이 이어주는 건 비단 택배나 배달 오토바이, 환경미화원뿐만이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의 길 위에선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고 있다. 대리기사, 주차요원도 누군가를 위해 길 위에 ‘서’ 있다. 이들에겐 길이라는 바깥이 자신들이 삶을 살아가는 터전이다. 이들을 위해 최근 포항에서도 ‘이동 노동자 쉼터’를 만들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지난 5월에 영일대해수욕장에 만든 간이 이동 노동자 쉼터를 시작으로 지난달에는 폭염과 추위를 피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세 곳 (상대동, 오천, 장량)이 더 생겼다. 포항시 관계자는 “아직 초창기라 이용률이 높지 않다. 그렇지만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 길 위에 선 이들에게 잠시 지친 몸을 쉬게 해주는 이동 노동자 쉼터. 이들에게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마음까지도 쉬어갈 수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12-30

겨울철 별미 과메기 택배시켜 먹으면 어떨까

예로부터 동해에서는 청어잡이가 활발해, 겨우내 청어가 많이 잡혔다. 청어가 너무 많이 잡혀서 다 팔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말렸다. 마침 겨울이라 얼었다 녹았다 하며 꾸덕꾸덕해진 청어의 껍질을 벗기고 먹어보니 맛이 좋았다. 그때는 청어의 눈을 솔가지에 꿰어서 말렸는데. 이를 관목(貫目)이라 했다. 관목의 ‘목’을 포항지방에서는 방언으로 ‘메기’라고 하기 때문에 ‘관메기’라고 하다가 ‘ㄴ’이 탈락되어 과메기가 됐다고 한다. 지금은 청어보다 꽁치를 많이 사용하는데 청어는 두꺼워 말리기에도 더 기술이 필요한 때문이다. 꽁치는 냉수성 어종이라 바닷물 온도가 15도 가량인 곳을 찾아다니며 사는데, 꽁치는 계절에 따라 지방 함량이 다른다. 여름에는 10%, 가을에는 20%, 겨울에는 5% 정도가 된다.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지방 함량이 가장 높아지는데 이때 과메기는 지방이 많아 제맛이 난다. 왜 동해안 과메기가 맛이 좋을까? 과메기는 꼬들꼬들하게 건조해 줘야 최상의 맛을 낸다. 바람, 온도, 바닷물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포항지방의 바닷바람은 백두대간을 넘어온 북서풍으로 습기가 적당하여 맛을 내는데는 최상이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면 겉마르게 되고 비린 맛이 나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지방과 수분이 너무 빠져 나갈 수 있다. 기온은 영하 4도에서 영상 10도가 최적이다. 꽁치의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고 난 뒤 자체에 염분이 스며들게 바닷물에 3회 정도 세척 하는 것이 최적의 염도다. 과메기를 맛있게 먹으려면 뼈를 발라내고 껍질을 벗긴 과메기에 초고추장이나 된장을 뭍혀 생미역, 마늘 편, 실파, 풋고추, 등을 김이나 배추에 싸서 먹으면 된다. 포항지방에서는 묵은김치의 고추가루를 빨아내고 싸서 먹기도 한다. 과메기를 많이 먹으면 어린이는 성장에 좋고, 성인은 피부 미용에도 좋다. DHA와 오메가 지방산의 양이 본래의 재료보다 증가한 때문이다. 또,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의 비율이 이상적이고 아스파라긴산이 있어 숙취 해소에도 좋다. 과메기는 고혈압, 동맥경화, 뇌졸중 등 성인병을 예방하고 피부미용, 노화 방지, 빈혈에도 효과적이다. 연말과 새해에 집콕 하면서 택배를 신청하면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도 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소상공인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난리인데 나라 경제도 생각하면서 오늘은 과메기 한번 시키면 어떨까?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28

올해의 사자성어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생각하며 한해를 되돌아 본다

교수신문은 지난 8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면서 변한다”는 뜻의 변동불거(變動不居)를 선정했다 이 사자성어를 추천한 양일모 서울대 교수는 “지난 연말 계엄령이 선포됐고 올 봄에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을 탄핵했다. 결국 정권이 교체됐고 계엄의 실체를 둘러싼 공방으로 여야는 내내 치열하게 대결했다”며 “세상을 농락하던 고위급 인사들이 어느덧 초췌한 모습으로 법정을 드나들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교수회는 2위로 천명미상(天命靡常)을 뽑았다. ‘하늘의 뜻은 일정하지 않다’는 뜻을 가진 사자성어로 세상과 민심의 변화에 순응하지 않으면 천명이 옮겨간다는 의미다. 3위는 추지약무(趨之若鶩)이다. ‘오리 떼처럼 우르르 몰려 다닌다’는 의미의 추지약무는 사실 검증보단 감정적 반응이 앞서며 국론이 출렁이는 불안정성 심화의 세태를 꼬집었다. 4위는 ‘입에는 꿀이 있고 배 속에는 칼이 있다’는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교수들은 이 사자성어를 통해 정치권에서 비롯된 사회적 가치와 이념에 대한 관점의 분열로 의견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5위는 강약약강(强弱弱强)이 선정됐다. 힘의 격차가 이전보다 더 벌어져 불평등이 심화하는 구조적 문제를 언급했다. ‘변동불거’는 주역(周易) 해설서인 계사전에 나오는 구절로 변화의 불확실성과 유동성,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강조한다. 다만 변화가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계절의 변화, 경제의 호·불황처럼 단순한 시작과 끝이 아니라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 되는 반복과 순환의 원리가 있다는 것이다. 차면 기울고 비우면 채워지는 자연의 도리에 따라 세상도 변화한다. 인간은 이런 변화 속 이치를 상기하며 적응해야 한다고 주역에선 이른다. 2024년에는‘도량발호’(跳梁跋扈)가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도량발호는 권력을 가진 자가 높은 곳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의 사람들을 함부로 짓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날뛰는 모습을 뜻하는 고어”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는데 20여 년 간 뽑힌 올해 사자성어 중 희망적인 건 하나도 없다. 2026년을 보내고 마칠 때 올해의 사자성어가 희망적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국민 모두가 힘 모아 내년에는 희망적인 사자성어가 선정되기를 기대해 보면서 한해를 마무리해 보자. /안영선 시민기자

2025-12-28

사문진 나루터와 대구의 콩팥 달성습지를 다녀오다

20일 오전 10시에 사문진 나룻터에 일행들이 모였다. 달성습지 올레길과 방부제로 만든 나무테크 길을 걸으면서 낙동강 상류 쪽으로 도보로 달성습지 생태학습관을 다녀오기로 했다. 금호강과 낙동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에 생성된 생태 자연 달성습지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구라리에 있다. ‘달성습지 생태학습관’은 2019년 9월 개관했다.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대구 생태관광의 1번지로 자리를 잡았다. 일반 관람객은 물론 유치원생, 초중고·대학생까지 단체로 찾아와 생태교육을 배우고 있다. 달성습지의 대표 깃대종은 ‘맹꽁이와 흑두루미’다. 생태관 입구의 포토존에 기념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맹꽁이는 2011년쯤 이곳이 국내 최대의 서식처이자 산란지임이 밝혀지면서 유명해졌다. 맹꽁이 축제가 열리면서부터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 2년 전부터는 “생물 다양성 축제”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달성습지의 생태모니터링 결과, 동식물을 통틀어 전체 56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분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식물류로 297개 분류군이다. 그 뒤를 이어 조류, 어류, 곤충을 포함한 동물류 순으로 생물 다양성이 확인됐다고 한다. 흑두루미는 1970-80년대에 몇백 마리씩 날아와 쉬어가던 중간 기착지였으나 공단이 들어서고 인간의 개입이 늘면서 점차 그 수가 줄었다. 현재는 대부분 순천만 쪽으로 쉼터가 옮겨졌다고 한다. 옛 명성을 회복을 위해 지금은 다시 달성습지를 찾아오라는 염원을 가지고 쉼터와 먹이활동을 유도하고 습지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뜻에서 생태관 외관은 날개를 펼친 흑두루미 형태로 조성했다. 생태관을 중심으로 낙동강 방향으로 테크길로 조성한 생태로를 걷다 보면 배를 타지 않고도 마치 배를 타고 가는 듯한 느낌으로 화원동산과 사문나루에 이르게 된다. 이동 중에는낙동강변 하식애(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생성된 절벽)의 대표 수종인 모감주와 회양목이 자생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각종 철새들과 강 위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을 감상할 수 있다. 낙동강 생태로 끝에 도달하면 화원동산을 만난다. 그곳에는 삼국시대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무덤군이 몇 군데 남아있다. 불로동 고분군과 고령의 가야 고분군과 같은 소규모 고분군이다. 신라시대 35대 경덕왕이 아홉 번을 다녀갔다는 구라리의 무지개샘의 전설 이야기도 이곳에서 들었다. 사문나루터는 조선시대 배 300척이 오가며 곡식, 소금을 비롯해서 문물이 유입되던 장소다. 1900년 3월 선교사가 들여온 최초의 피아노에 관한 스토리는 ‘귀신통 납시오’라는 창작 뮤지컬로 제작되었고, 이를 인연으로 매년 100대의 피아노 콘서트도 달성에서 열린다. 유네스코가 지정 음악도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일들이다. 생태관 오른쪽 방향에는 갈대 억새의 명소인 대명유수지다. 관광객이 끊이지 않아 주변에 광장주차장을 별도 조성했다. 일행은 사문나루터에서 1만2000원(휴일 요금)을 내고 ‘달성호 유람선’을 탔다. 이 배는 낙동강의 여덟 개 보 중 길이가 가장 긴 강정고령보까지 오간다. 낙동강과 금호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절경과 산과 물의 조화를 사진 한 장에 담았다. 비슬산의 기운과 낙동강의 풍경 속에 역사와 자연생태, 문화가 어우러진 생태관광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8

[시민기자 단상] 크리스마스 유감

매년 12월이 되면 거리나 공원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고 연말 분위기를 띄운다. 크리스마스가 우리의 삶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연말 행사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교회나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점등식을 하고 이 땅에 평화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반인이 더 신나고 마음이 들뜨는 것은 좀 아이러니하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앞 다투어 공원마다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나 불빛 장식물을 설치하고 있다. 물론 주민 복지와 연말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주민이 원하는 문화행사를 지원한다고 하지만 좀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 생각도 있다. 물론 연말을 맞이하여 독거노인이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나눔 행사를 유도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대구시 만촌동 어느 대형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성탄절 축하 예배에서 특별 헌금을 전액 사회에 기부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기자는 성탄절이 본래의 가치가 많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 지을 수 없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거리나 백화점 등 많은 사람이 붐비는 곳에 나가보았다.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텅 비어 있다. 땡그랑 땡그랑 울려보지만 동전 하나라도 넣는 손길을 보기 힘들다. 그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지만 차갑게 외면당하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천 원짜리 한 장 넣을 수는 없을까. 얼마 전 어느 독지가가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외투를 사서 보내주었는데 그걸 되팔아서 외투보다 더 급한 식사를 해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인가. 크리스마스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야 할 때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는 크리스마스가 먹고 마시며 즐기는 행사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갈수록 크리스마스 트리가 대형화하고 거리 구석구석 넘쳐나고 있다. 성탄절이 무엇인가. 이 땅에 사랑과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날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도 겉으로 보이는 찬란한 트리 불빛 아래 사진이나 찍고 끝나서야 되겠는가. 경제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고 눈 한번 지그시 감고 지나서야 되겠는가. 이럴 때 일수록 구제는 더 필요하다. 엄동설한에 내 이웃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때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는 금년도 모금 계획을 발표하고 내년 1월까지 불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해 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냉혹하게 자선냄비를 뿌리치지 말고 누구나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2-28

한국화가 정혜숙을 만나다

비단과 한지의 결을 따라 모란이 피어난다. 선덕여왕의 이야기 속 꽃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귀와 평화를 주는 현대의 모란으로 재탄생 시킨 정혜숙 화백. 정성으로 피워낸 붉고 푸른 에너지가 당신의 삶을 환하게 비추길 바란다는 화가의 작품 속에선 그녀의 열정이 가득하다. 그녀를 만난 건 지난 18일부터 2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4층에서 열린 지아트마켓에서였다. 모란을 주테마로 작업 중인 작가답게 벽면들이 모란으로 가득하다. 정 화백의 모란들은 화려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붉은 모란에서부터 오묘한 색을 띄는 모란까지 모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중 검은 배경에 빛이 나는 듯한 꽃잎을 가진 모란 그림이 있어 작가에게 기법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보통 종이나 비단에 물과 색을 올리는 반면 이 그림은 색을 가진 종이의 물을 빼냄으로 색다른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독특한 자신만의 방법을 연구 중이라며 바탕 색지에 따라 다른 색이 나타난다고 한다. 오묘한 느낌에 빠져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모란들 사이 눈에 띄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단순한 붓놀림으로 그려진 듯 하지만 현장 느낌이 물씬 나는 탑그림이다. 깜깜한 밤 크고 둥근 달 아래 탑이 놓여있다. 달빛이 탑과 댓잎을 감싸듯 비추고 있다. 각각의 다른 존재는 이질감 없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다. 원래 하나의 생명이었던 것처럼. 김시습의 마음을 담은 듯 용장사지 3층 석탑은 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그림 속에 존재한다. 어느 정도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그림을 시작한 계기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림을 시작한 건 마흔 즈음이었다. 삶이 어둡게만 느껴지고 다음날 아침 눈뜨기조차 괴로웠던 시기였다. 그런 마음을 마냥 덮어두고 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삶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그리고 만난 스승이 고 정담 조필제 선생이다. 조필제 선생은 생전 지역에서 부드러운 이미지와 인품으로 후배들에게 존경받던 분이다. 또한 제1회 신라미술대전 대통령상 수상자이며 모란 그림 전문가다. 여담이지만 대통령상은 1회를 시작이며 마지막으로 없어져 조 선생은 유일한 대통령상 시상자이기도 하다. 시민기자도 선생께서 생전 건강하실 때 우연히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인심 좋은 동네 할아버지처럼 늘 웃고 계셨다. 도인 같던 스승에게 매일 같이 사는 게 힘들다며 넋두리했다. 그때마다 10년만 더 견뎌보라 하셨다. 50즈음엔 반드시 세상이 달라져 있을거라 단단히 말씀하셨다. 마치 예언이 이루어진 것처럼 50즈음 마음도 삶도 달라졌다. 그러다 조필제 선생께서 작고하셨고 존경하고 의지하던 스승의 죽음은 정 화백에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그때까지 쉬엄쉬엄 취미처럼 하던 그림을 전문적으로 해야겠다 마음먹었고 허만욱 교수를 만나 대학원 2년 동안 수업을 들었다. 그렇게 더 단단해져갔다. 지금도 기일이 되면 옛 스승을 찾는다. 마치 스승이 앞에서 듣고 있듯 그간의 달라진 작품 결과물들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안부도 전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먼저 현재 경주 선도동에서 운영 중인 일우갤러리는 전문적 갤러리의 모습보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놀이터 같은 공유공간으로 유지하길 원한다. 그리고 작업에서는 큰 욕심 없이 모란을 잘 그리고 싶다 했다. 돈보다 곧은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로 남는 게 그녀의 꿈이다. 화사하면서 강렬한 모란을 닮은 정 화백의 맑은 꿈을 응원한다. /박선유 시민기자

2025-12-25

송년회 풍경이 말해주는 달라진 술 문화

12월이 되니 어김없이 송년 모임이 이어진다. 직장 회식은 물론 각종 동호회와 소모임까지 총회, 송년회, 망년회를 들먹이며 다사다난했던 을사년 한해를 마무리 하는 분위기다. 이런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지만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부어라 마셔라’ 가 당연시되던 술 문화 어디가고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진 모습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방송대 총 동문 송년회. 많은 인원이 함께할 수 있는 널찍한 횟집 식당에서 맛있는 회를 앞에 두고 건배사가 이어진다. 동문회장의 건배사에 맞춰 들어 올린 저마다의 잔에는 소주도 있고 맥주도 있고 음료와 물도 있다. 이미 술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에 익숙한 듯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권하는 사람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없다. 포항영상문화포럼 송년파티는 또 다른 풍경이다.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와인 잔을 들고 가볍게 건배한다. 붉은 와인 잔이 맑게 부딪히는 소리를 배경으로 한 해를 정리하는 대화가 이어진다. 취하기 위한 술자리가 아니라 분위기를 나누는 시간이 중심이 된다. 송년모임에 술이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는다. 기성세대들에게 술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자 사회생활의 필수 요소였다. 회식자리에서 상사가 권하는 술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였고 즐기기보다 취하기 위해 마셨다. 식사보다 술이 우선이었고 폭음으로 2, 3차는 기본이었다. 잔이 비워지기 전에 다시 채워지는 술자리는 늘 시끄럽고 분주했다. 술을 거절하는 행동은 무례함으로 여겨졌고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사회성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건강이 무참히 학대받던 시대의 단면이다. 그러나 이제 술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달라졌다. 마시지 않는 선택 또한 존중받고, 술을 마셔야 친해진다는 공식은 힘을 잃었다. 더불어 ‘술 마셔서 그랬다’는 변명도 더 이상 쉽게 용납되지 않는다. 술은 이제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은 존재가 된다. 취함보다는 맛과 향, 다음날 컨디션을 중시하는 문화로 옮겨가며 ‘음주 강요’는 외려 문제행동으로 인식된다. 코로나 이후 회식 자체가 줄어들며 술자리는 저녁식사나 카페모임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늘었다. 이는 단순한 음주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상명하복과 연장자 중심에서 벗어나 수평적 조직을 지향하면서 더 이상 술을 통한 통제나 강요가 정당화 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술을 덜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음주 관련 사고와 폭력, 범죄가 줄어들고 사회적 비용까지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다. 밤 10시만 넘어도 골목식당들은 불이 꺼지고 빛을 잃은 거리는 한산해진다. 손님이 없으니 택시도 귀하다. 그나마 남아있는 야간 택시조차 취객보다는 카페 손님을 선호한다. 얼마 전 늦은 밤까지 술자리를 가진 지인이 택시를 잡지 못해 결국 집까지 운동 삼아 걸었노라 허허롭게 웃던 그 모습은 달라진 밤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건강과 직장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술 문화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선택적으로 마시는 문화가 이미 뿌리를 내렸고 세대가 바뀔수록 더욱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술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자리, 송년회 풍경이 말해주듯, 음주문화의 변화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25

12월, 문학의 온기로 채운 겨울문학제

한해의 결실을 매듭짓는 12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한국수필문학관 ‘2025 겨울문학제’는 한 해 문학적 여정을 되돌아보는 풍성한 자리로 열렸다. 문학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필자에게 이 행사는 놓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난 12월 11일, 한국수필문학관 산하 수필창작아카데미, 대구에세이포럼, 수필알바트로스, 수필세계작가회 등 네 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였다. 동인지와 개인 수필집들이 세상에 첫선을 보였고, 그동안 갈고닦은 성취를 서로 축하하는 자리에는 100여 명의 문우가 모여 성황을 이뤘다. 1부는 공도현 작가의 사회로 문을 열었다. 홍억선 관장은 개회사에 이어서 새로 출간된 책들을 하나씩 소개하며 세심한 해설을 전했다. 제자들의 글을 자식 살피듯 세세히 짚어 주시는 관장의 말에 아직 읽지 못한 문장들이 머릿속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이어 지난 한 해 각종 수상자가 소개되며 축하의 박수가 이어졌다. 대구수필가협회 문학상을 받은 엄옥례 작가를 비롯해 아카데미 회원들의 대외 문학지 등단과 공모전 입상자들의 성과가 언급되었다. 필자 또한 청송 객주문학제에서의 작은 결실이 이름으로 불리는 수줍은 기쁨을 누렸다. 동료들의 성취에 아낌없이 쏟아지는 박수 소리는 겨울바람을 녹일 만큼 뜨겁고 다정했다. 2부는 변미순 작가의 진행으로 수필세계 신인상과 문학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수필세계 신인상은 상반기 박인규·윤시오 작가와 하반기 박정애 작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문학상은 쉼 없이 작품 활동에 정진하며 수필집을 펴낸 조현태 작가가 받았다. 참석자들은 부러움과 함께 진심 어린 박수로 축하를 전했다. 이어진 축하 무대에서 조영애 문우가 선보인 수필 낭송은 이날의 백미였다. 목소리가 잠겼다고 수줍어하던 자칭 ‘백발의 소녀’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깊은 울림을 전하며 장내를 고요한 감동으로 물들였다. 3부 친교 시간에는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황무선 문우가 부르는 ‘소양강 처녀’가 흐르자 필자와 조영애 문우는 참지 못하고 무대 위로 올라가 응원의 춤사위를 보탰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선배 작가들이 망설임 없이 노래와 춤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정적인 문인이라는 편견은 보기 좋게 깨진 무대였다. 객석에서도 들썩들썩 몸을 흔들었고, 오색 풍선과 환호로 가득했다. 글을 쓰는 열정만큼이나 삶을 즐기는 에너지 또한 남달랐다. 선후배가 따로 없었다. 모두가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이었다. 흥겨운 무대가 끝나자 사진 촬영과 식사가 이어졌다. 작가들의 질서 정연한 태도가 눈에 띄었다. 행사가 모두 끝난 뒤에는 또 한 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글 잘 쓰는 이들은 마음 씀씀이도 따뜻한 것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뒷정리에 나섰다. 잔반 처리와 테이블 정리 등 소란했던 홀은 순식간에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끝까지 남은 이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앉아 차를 나누며 관장님과 소회를 나누었다. 대명도서관에서 수필 수업을 하던 시절부터 2004년 ‘수필세계’ 창간, 2015년 전국 최초로 단일 문학 장르관인 ‘한국수필문학관’ 건립까지 관장의 집념은 숭고할 만큼 꾸준했다. 그 꾸준한 마음을 스펀지처럼 온전히 빨아들이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가운 겨울 공기는 선명한 각오로 가슴 안에 파고들었다. 무심히 흘려보낸 한 해를 되돌아보며, 필자는 더는 망설이거나 갈등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새겼다. 쓰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의 길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함께. /손정희 시민기자

2025-12-25

“메밀묵 사려어~~”···'까묵까묵'한 그리움의 한 조각

메밀묵 사려어~~ 묵 먹을래? 친정에서 연락이 왔다. 힘들게 뭐 하러 묵을 쒔냐 했더니 친구분이 메밀묵을 쒀서 나눈 것을 내게 또 나누려고 연락이 온 것이다. 양념장까지 만들어 완벽한 세트였다. 단단하고 간이 딱 맞아 겨울밤 훌륭한 간식이었다. 요즘에는 들리지 않지만, 어린 시절 겨울밤이면 “메밀묵 사려어~ 찹쌀떠억!” 골목길에 울리던 소리다. 하지만 부모님이 뛰어나가 사 오신 적이 없다. 묵은 만들어 먹는 것이지 사 먹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안동에서는 설에 메밀묵 많이 해 먹었다. 친구 인숙이네 할매는 시골 밭에 항상 메밀을 심으셨다. 그 밭을 집터로 샀다가 안 짓는 바람에 땅이 척박하니까 메밀을 심으셨다고. 놋 양푼에 한가득 만들어서 추운 설날에 식혜랑 메밀묵이랑 콩인지(강정)랑 항상 먹었다. 양념장에 참기름을 듬뿍 넣어서 묵 위에 한 숟갈 얹어서 숟가락으로 잘라서 먹었다. 그 메밀 향 가득한 맛! 그리고 그땐 멸칫국물이 어딨었나, 물에 김치 쫑쫑 썰어 넣고 백솥에 끓여서 마지막에 메밀묵 두껍게 채 썰어서 시원하게 먹던 그 묵사발도 아주 맛났다. 인숙이가 결혼하고 몇 해는 설에 가면 항상 싸주셔서 귀한 줄도 모르고 먹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아주 사무치는 그리움의 한 조각이 되었단다. 고향 떠나 태안 살 때 동네에서 겨울이면 가끔 두부며 메밀묵 팔던 할머니가 계셔서 사 먹어 봤는데 기름을 한 숟갈 넣는다는데 그 향긋하고 깔끔한 메밀묵 맛이 아니더라며 묵 이야기에 엄마 보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메밀묵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비율이 중요하다. 냄비에 메밀가루 1컵에 물 4컵을 넣어서 가루가 뭉치지 않게 잘 저어서 섞어준다. 물의 양이 많으면 묵이 물러지고 적으면 딱딱하고 푸석해진다. 파는 가루 중에 메밀 함량이 낮은 가루는 묵이 안 된다. 중불로 바닥에 눋지 않게 저어가면서 끓여준다. 다 끓였다고 바로 식혀버리는데 이게 실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겉만 굳고 속은 흐물거리게 된다. 뚜껑을 덮고 10분 정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꼭 거쳐야 쫀득하고 탱글탱글한 묵이 완성된다. 다 익은 메밀묵을 그릇에 부어서 냉장고에 넣어 2~3시간 식혀준다. 이런 복잡한 과정이 까다롭다면 맛집을 찾아가면 된다. 자명에 안동식으로 묵을 만들어 묵밥, 묵비빔밥, 묵한접시, 여기에 연잎밥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는 집이 있다. 가게 이름이 메밀꽃이라 정직하다. 토요일 오후 2시에 도착하니 조용했다. 혹시 브레이크타임인가 싶어 여쭈니 평일에는 오후 3시~5시까지 브레이크타임이지만 주말엔 쉬는 시간이 따로 없고 손님이 오시면 대접한다고 했다. 묵밥+연잎밥 세트와 묵비빔밥을 주문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손님이 우리뿐이라 벽에 걸린 민화와 창가의 다육이 구경도 하고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장사한 사장님의 이야기도 엿들었다. 그러는 동안 작은 김치전 두 장이 접시에 담겨 나왔다. 늦은 점심이라 맛있게 해치웠다. 묵밥은 따뜻한 국물이었고, 비빔밥은 정갈하게 새싹 등으로 꾸민 꽃밭 같았다. 함께 나온 공기밥은 노란색을 띠어 무엇을 넣어서 밥을 했냐고 물으니 치자 물이라고 했다. 묵을 먹다가 나중에 밥도 말아 먹었다. 연잎밥은 찰기가 돌아 든든했다. 반찬으로 삼색나물과 각종 장아찌까지 함께 먹으니, 입이 깔끔해져 끝까지 맛있었다. 묵 한 접시는 집에 돌아와 늦은 밤 간식으로 엄마 친구분 솜씨로 채웠다. 지난가을에 통도사 메밀밭에서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혀 하얬었다.’라는 구절을 되뇌었었다. 오늘 밤 또 읊어 본다. 메밀꽃: 경북 포항시 남구 연일읍 자명로 302, 전화 (054)277-5922. /김순희 시민기자

2025-12-23

의성 성냥공장에서 열린 김진우 기획전 ‘진화의 불씨’

의성군 의성읍에는 한때 지역 경제를 떠받쳤던 성냥공장이 있다. 1954년 문을 연 ‘성광성냥공업사’다. 1970년대 전성기에는 하루 1만5000갑의 성냥을 생산하며 연 매출 6억 원 이상을 기록했고, 공장 직원만 162명에 달했다. 마을 인력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 단촌과 안동 일직까지 통근버스를 운행할 정도로, 성광성냥공업사는 의성을 대표하는 향토기업이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2013년 5월에 경상북도 산업유산 향토뿌리기업으로 지정되었으나 성냥 산업 쇠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 그해 11월 휴업을 하게 된다. 2013년 영업이 끝날 때까지 성광성냥공업사는 우리나라의 마지막 성냥 생산 공장이었다. 이후 고(故) 손진국 대표가 토지, 공장 건물 13개 동과 기계, 설비를 의성군에 기증하고 폐업하게 된다. 현재 이곳은 의성군이 부지를 매입해 ‘의성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을 추진 중이며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2025년 12월 현재 ‘산업의 기억이 고요히 잠든 공간’에서 불씨의 잔향을 발견한 김진우 작가의 전시 ‘진화의 불씨’가 열리고 있다. 성냥공장은 폐업 이후에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무실에는 고 손진국 대표의 명패가 놓인 책상이 있고 폐공장엔 아직 성냥 머리를 얻지 못한 나뭇개비가 잔뜩 쌓여있고 각종 기계와 공구가 있다. 축목에 두약을 찍고 건조하던 ‘윤전기’는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성냥 제조 기계로, 근현대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이 모든 사물은 작품의 배경이 되고 함께 조화를 이룬다. 철, 스테인리스스틸, LED, 우레탄, 에나멜 등의 재료로 완성한 설치 작품은 상징성을 더한다. 사라진 산업의 흔적을 탐사하고 불씨의 진화를 시각화한 ‘의성탐사선’과 ‘성냥나무’가 그것이다. 드로잉과 설계도면은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성냥공장의 기계 부품인 볼트, 너트, 용수철과 빗자루, 망치, 낫, 톱, 드릴, 타커 등에 성냥개비에 두약을 입히듯 노랑 페인트를 입힌 오브제가 눈길을 끈다. 낡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로 까마귀 소리가 들리고 폐공장 전시장 안 프레스, 밀링, 공갑기 사이의 다양한 오브제는 명랑한 기운을 뿜어낸다. 이 작품 ‘진화의 불씨’는 작가가 많이 고민하고 마지막에 현장에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시간이 퇴적된 공간에 예술의 두약이 입혀지니 낡고, 깊고 그윽한 멋이 난다. ‘안전제일’ 문구가 남아 있는 공장 벽면에는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고 지붕에는 18미터 높이의 ‘성냥나무’가 우뚝 서 있다. 성냥개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김진우 작가는 전시 설명을 통해 “공장 건축물의 흔적과 나무 형상이 만나 산업의 기호가 생명의 상징으로 재구성되었다”며 “불을 만들기 위해 잘려 나간 나무가 이제는 스스로 불씨를 품은 생명으로 되살아난다”고 말했다. 설치미술가이자 엔지니어인 김진우 작가는 폐공장에서 온기와 미래, 생명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전시는 ‘The Spark of Evolution’ 즉, 진화(鎭火)가 아닌 진화(進化)의 의미를 뜻한다. 산불로 침체된 지역에 희망의 불씨를 점화한 이번 전시는 내년 1월 10일까지 계속된다. /백소애 시민기자

2025-12-23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다. 학교의 아이들은 겨울방학을 기다리고 여러 단체에서는 그간의 성과를 돌아보며 시상식으로 한 해의 마침표를 찍는다. 평생학습에 참여하는 시민들도 종강을 맞아 작품 전시회를 열고 내년 학기를 계획하기도 한다. 지난 19일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인문학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맞아 모임에서는 강사님을 모시고 나를 돌아보는 글쓰기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강사는 회원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글이라는 도구로 잠시 꺼내 보는 시간이라고 말을 시작했다.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만큼만, 쓰고 싶은 만큼만 해도 된다고 덧붙였다. 글쓰기 주제는 열한 가지 중 자신에게 맞는 한 개를 골라서 쓰면 됐다. 강사의 말이 끝나자 회원들은 준비한 A4용지와 연필로 자신의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노트북 타자 소리 대신 오랜만에 듣는 연필의 사각사각 소리가 조용한 강의실을 가득 채웠다. 이날 함께한 여덟 명의 회원 중 한 사람도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집중하는 모습에 강사는 조용한 응원의 눈빛을 보냈다. 오십여 분의 시간이 지나자, 한 사람씩 자신이 쓴 글을 읽는 시간을 가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회원들 앞에서 읽자니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각자가 쏟아낸 이야기에 공감을 자아냈다. 십 대를 포함해 육십 대까지의 다양한 연령대 회원들이 쓴 이야기는 한 걸음 더 서로를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먼저 시민기자 차례였다. 곧 지천명(知天命)을 앞두고 그간의 삶을 응원하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나에게 편지를 쓸 거라고 했다. 오십 대의 중년 여성 회원은 지금의 나를 만든 가장 큰 영향력은 아버지였다고 한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그럴 땐 하늘을 보며 마음속에서 불러보는 아버지에 대해 썼다. 남편으로서는 별로였지만 초등학교뿐인 학력에도 자식들에겐 더없이 다정했고 배움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셨다고 했다. 역사에 대해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육십 대 남성 회원은 자신이 왜 역사에 관심이 생겼는지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시절, 세상 재미있는 게 없었다. 그중 역사 수업에 흥미를 느껴 역사학과에 진학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또 한 분의 여성 회원은 여러 나이대를 거치면서 이제는 삶이 잘 마무리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짧은 이야기를 했다. 사십 대 남성 회원은 자기관리 실패로 몸무게가 100kg 넘게 나간 때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나머지 가족들을 힘들게 한 게 미안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을 끄는 건 열다섯 살 중학생이었다.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지만 당당하게 자신이 쓴 이야기를 펼쳤다. 지금 나이에 다시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 삶의 의미에 대한 거였다. 어릴 때는 남이 해주는 선택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나가는 선택이 더 의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쫑긋하며 듣다가 이야기를 마치자 큰 박수를 보냈다. 글쓰기와 발표까지 하고 나니 어느새 두 시간을 꽉 채웠다. 회원들은 자신의 지난 이야기가 살짝 부끄럽기도 했지만, 글쓰기 시간을 경험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강사는 “한 번의 글쓰기로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글쓰기는 바쁜 일상에서 과거의 나를 만나고 현재의 나를 이해하는 도구다. 앞으로도 내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가 계속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허명화 시민기자

2025-12-23

수필사랑문학회, 제122차 수필산책

수필사랑문학회(회장 정근식)는 지난 20일 경주시 양남면 주상절리 일원에서 제122차 수필산책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회원 24명이 참여해 겨울 바다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주상절리의 장엄한 풍광을 감상하며 수필 창작의 소재를 발굴하고, 회원 간의 친목과 문학적 교감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수필산책은 격월로 진행되는 수필사랑문학회의 정기 프로그램으로, 자연과 역사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현장에서 느낀 감흥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창작 중심의 활동이다. 이날 회원들은 동대구역에서 열차를 타고 울산 태화강역에 도착한 뒤 관광버스로 이동해 주상절리에 이르렀으며, 출렁다리를 건너 읍천항 산책로를 걸으며 작품과 문학에 대한 담소를 이어갔다. 행사를 이끈 정충양 수필가는 “수필사랑문학회가 매월 두 차례 이상 활발한 토론을 이어가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원동력은 유적지와 관광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창작의 씨앗을 발굴하려는 노력에 있다”며 “이러한 현장 중심의 활동이 회원들의 작품 세계를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정근식 회장은 “수필사랑문학회는 앞으로도 수필산책을 비롯한 다양한 문학 행사를 지속적으로 운영해 회원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수필문학의 저변 확대와 문학적 성장을 위해 힘써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2-21

대구 중구노인복지관, ‘2025 중구건강대학 졸업식’ 개최

중구노인복지관(관장 장윤영)은 지난 12일 중구노인복지관에서 ‘2025 중구건강대학 졸업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는 한 해 동안 배움에 매진한 60여 명의 어르신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지난 학기의 성과를 함께 돌아보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됐다. 졸업식에는 재학생과 졸업생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식전공연을 시작으로 인사말, 재학생들의 수기문 발표, 직접 제작한 영상 시청, 졸업장 및 우희삼 학생회장을 포함한 개근상 시상, 단체 사진 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식전공연은 허정현 가수가 밝고 활기찬 가요로 행사 분위기를 고조시켰며,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어 진행된 수기 발표에서는 정유자 씨와 정희락 씨가 지난 한 학기 동안의 배움과 성장 과정을 진솔하게 전해 참석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홍보부장 여기학씨가 제작한 활동 영상을 함께 시청하며, 학기 동안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아울러 2학기 커리큘럼과 연계해 제작된 문학집도 배부돼 참여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2학기에 중구건강 대학에 출강한 강사진은 최고의 실력을 가진 교수진으로 유명하다. 행정학박사이자 작가 김창규의 초고령사회 어찌할 것인가,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정우락 교수의 조선시대 선비들의 놀이와 풍류, 독서치료사 신지원의 책을 통한 마음 다스리기, JD 스토리 교육 문화연구소 이정도 대표, 낭독의 즐거움 (시낭송), 대구대 인문학연구원 배지연 연구교수의 권정생 ‘강아지 똥’을 통해 본 나에 대한 사랑, 이경식 작가의 내 인생의 일기(자서전 쓰기),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교육학과 박상영 교수의 시조 한 편, 인생을 담다( 박인로와 조선의 시인들),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김성택 명예교수의 문학과 예술의 고향, 프로방스로 여행하기, 대구교대 윤리교육학과 장윤수 교수의 논어 평범과 일상을 강조한 고전, 라온인재양성 교육원장 강양수 웃음치료사의 웃음을 통한 마음 치유책과 마음 치유,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허정애 교수의 역경을 넘어선 삶,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중심으로, 고려대 인문대학 설중환 명예교수의 김시습의 ‘금오신화’와 마음의 평화 얻기 등이 있다. 중구노인복지관 관계자는 “2026년에도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한 노년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즐겁고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1

대구사진작가협회 연말 결산 대규모 사진축제 성료

대구사진작가협회 (지회장 이호규)는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2층 전시실에서 ‘제12회 대구사진페스티벌’과 ‘제16회 포트폴리오 특별기획전’,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 공모전’을 통합 전시하는 대규모 사진축제를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번 행사는 사진예술의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국내외 사진작가 간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대구사진페스티벌’ 작품전에는 곽인숙, 권인순, 노재승, 박은주, 이경숙, 이재생, 이호경, 하의종 등 8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동시대의 감성과 사진의 예술성을 담아낸 작품을 선보였다. 초대전으로 일본 교토사진가회의 나카무라 세츠야 (일본 오사카대학 사진학과 졸업), 히라이 투요시 (주식회사 아텍 대표이사), 후쿠다 쇼이치 (교토사진가협회 창립회원), 코바야시 사다히로 (일본사진가협회 회원) 등 추천작가 4명의 작품 12점이 전시됐다. 국제 교류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제35대 대구시지회 임원 14명의 작품도 참여해 총 28점의 작품이 선보였다. ‘제16회 포트폴리오 특별기획전’에는 김정애, 김정현, 오덕환, 이원희, 이종우, 한향자 등 6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개별 작품을 넘어 작가의 작업 세계와 사진적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작품을 전시해 관람객의 시선을 모았다. 또 전국에서 64명이 참여한 ‘제39회 대구전국사진촬영대회 공모전’의 입상작도 동시에 전시됐다.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금상 박은혜 (북치는 여인), △은상 권오호(여인의 한풀이), 이해용(촬영1), △동상 김계연(비누방울 놀이), 김홍숙(찰나), 최상호(무희의 시선) △가작 신호억(나도 기장이야), 유재희(우아하게), 이영애(10월의 선물), 임영필(가을여인), 장운록(포즈) △장려상 권순임( 각설이), 노은정(유혹), 박나윤(웃음으로 달리다, 우리가족), 이경미(흥겹게), 허봉희(천사처럼) △입선작 강경임(날아라 고무신) 외 47점 선정됐다. 이날 작품전에는 최미경 대구시 문화예술정책과장,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정일균 문화복지위원회 의원, 이창환 대구예총 회장, 강정선 대구예총 수석부회장 등 지역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 축하를 했다. 대구사진작가협회 이호규 지회장은 “이번 통합 전시는 지역 사진예술의 현재를 시민과 나누고, 국내외 교류를 통해 사진문화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라며 “사진을 통해 시대와 인간, 지역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마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2-21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말꼬리 잡기

컴퓨터는 세상과 통하는 나의 창이요 날마다 열리는 ‘희로애락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곳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전원을 켜는 일이다. 이메일 확인, 카페 출석 체크, 신문 헤드라인까지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주무르는 느낌!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세계 일주를 하는 셈이다. 요즘은 특히 내가 가입한 카페의 ‘말꼬리 잇기’ 코너에 푹 빠져 있다. 이 코너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말 달리기 경기장’이다. 누군가가 던진 말의 꼬리를 붙잡고 나는 말머리를 만들며 질주한다. 어찌 보면 말의 줄다리기요, 또 어찌 보면 말장난의 향연이다. 예를 들어 어부바-바이오-오렌지-지필묵-묵사발 식이다. 묵사발에서 ‘발로 차지 마!’라고 이어가는 회원도 있고, ‘발끝에 피어나는 봄’으로 시인처럼 쓰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말의 무한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는 신개념 놀이문화다. 회원들은 대부분 실명이 아닌 닉네임을 사용하는데, 이 닉네임들이 또 기가 막히다. ‘물레방아’, ‘굼뜬 소’, ‘군자 향’, ‘수선화’, ‘바람의 언덕’, ‘등등. 이쯤 되면 카페라기보다 조선시대 시문(詩文)모임 느낌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말 달리기’는 시작되었다. 회원 ‘대봉 군자 향’이 퀴즈를 하나 냈다. “달 밝은 밤에 대봉 군자 향이 빗자루로 마당을 쓸다 말고 갑자기 캄캄한 밤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선 모습을 여섯 글자로 묘사하시오!” 맞추면 상품이 있다고 하자 순간, 모두의 손가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건 퀴즈인가, 수수께끼인가, 아니면 문학평론인가. 어떤 이는 ‘서울대 인문계 2025학년 수시 논술 문제 같다’고 하고, 다른 이는 정답 ! ‘달 어디로 갔노’ 하며 외친다. ‘달이 밝디 마는’, ‘와이리 어둡노’, ‘멍청한 군자 향’, ‘상품에 눈멀어’ 등등. 차라리 국립국어원에서 회수해 가야 할 해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달 밝다’ 했다가 ‘캄캄하다’고 하니, 논리적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지만, 이 코너에선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바보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 문제는 스님이 화두로 잡고 십 년은 정진해야 풀릴 문제”라고까지 했다. 출제자는 거기에 또 한마디 얹는다. “문제가 어려웠다면, 여러분 수준 탓이 아닐까요?” 그 말에 카페는 조용한 분노(?)와 유쾌한 웃음이 동시에 터졌다. 분명 기분 나쁜 말인데도, 다들 웃고 넘어가는 걸 보니, 이곳 사람들은 참 너그럽다. 마침내, 한 회원이 ‘쓸데없는 사람’이라는 여섯 글자를 올렸다. 정답이었다. 순간, 카페 전체가 뒤집어졌다. 그 정답은 철학적이면서도 해학적이고, 군자 향의 내면을 절묘하게 저격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답을 맞힌 회원의 닉네임은 ‘바람의 언덕’이었는데, 정답자는 일부러 ‘바람난 언덕’이라고 발표했다. 이쯤 되면 유머인지 모욕인지 헷갈리지만,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이곳은 그 어떤 말도 유희가 되는, 말의 자유국이다. 사실, 끝말잇기라는 게 시시콜콜한 말 따먹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언어 감각을 키우고, 발상의 전환을 배우며, 창의성을 기르는 훈련이다. 한마디로 ‘말장난’을 가장 진지하게 하는 곳이다. 어쩌면 작가 지망생, 시인, 개그맨의 전초기지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이 창(窓)을 연다. 오늘은 또 어떤 말꼬리를 잡을까? 어느 회원이 ‘사이다’ 같은 말로 나를 웃게 만들까? 농담 따 먹기라 해도 좋다. 그 가운데서도 순 기능은 있으니까.

2025-12-21

땅속에 잠든 가락국의 시간을 찾아서

김해의 땅속에는 여전히 가락국의 오래된 시간이 숨 쉬고 있다. 구지봉에서 분성대, 봉황대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 신화와 역사가 잔향처럼 피어오르며 현재의 풍경과 포개진다.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 너머로, 오래전 사람들의 기운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다가온다. 구지봉은 6가야 시조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곳이다. 하늘에서 여섯 개의 알이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여전히 봉우리의 기운처럼 남아 있다. 정상 동편에는 남향으로 자리한 수로왕비릉이 펼쳐지고, 능선은 거북의 목처럼 서쪽으로 뻗어 ‘구지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복원된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 남방식 고인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원전 4세기 추장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이 고인돌의 윗면에는 한석봉의 글씨로 알려진 ‘구지봉석’이 새겨져 있다. 맞은편 비석에는 ‘대가락국태조왕탄강지지’라는 문구가 또렷해, 신화적 탄생의 무게를 전한다. 그 앞에 서니 오래된 시간의 여운이 조용히 마음속으로 번져왔다. 1976년 봉우리 중앙에 세워졌던 여섯 개의 알과 아홉 마리 돌거북 조형물은 지금 수로왕릉 연못가로 옮겨져 있다. 그런데 원래 위치에 두는 것이 역사성이 더 있을 것 같다. 육란의 석조상이 모여 있는 모습에서 설화가 세월을 넘어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분성대는 가락국의 또 다른 중심지다. 지금의 연화사가 자리한 이곳은 2008년 ‘김해객사 후원지’로 지정되었으며, 한때 중궁전이 있던 터로 알려져 있다. 허왕후가 가져온 파사석탑을 세우기 위해 호계사가 세워졌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지금은 궁궐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 ‘가락고도궁허’ 비만 외롭게 서 있다. 비석 뒷면에는 윤용구가 글을 짓고 김문배가 1928년에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앞에 서자, 사라진 궁궐의 자리는 오래된 빈터처럼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적막 앞에 서니, 태풍 사라호로 집터를 잃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잿빛 잔상처럼 떠올랐다. 역사와 개인의 기억이 한순간 겹친다. 봉황대는 회현리 패총과 함께 사적 제2호로 지정된 유적지다. 구릉을 오르니 김해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곳이 오랜 세월 주거지이자 대외 교류의 창구였음을 실감하게 된다. 1991년부터 2000년까지의 발굴 조사에서는 도랑과 집터, 고상 가옥의 흔적이 드러나며, 이곳이 한때 교류와 생활이 뒤섞여 흐르던 터였음을 확인하게 했다. 외부 침입에 대비하면서도 무역 활동을 위한 저장과 집배송 기능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봉황대는 허왕후를 맞이하기 위해 수로왕이 신귀간에 명해 머물게 했다는 승점의 자리로도 추정된다. 서편 기슭에 복원된 고상 가옥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요하게 재현하며, 유적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가락국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세월 속에 많은 것이 사라졌지만, 구지봉의 설화와 분성대의 궁궐, 봉황대의 삶의 터전은 여전히 땅 아래 깊은 호흡을 간직하고 있다. 그 위를 걷는 일은 오래된 시간과 오늘의 내가 마주하는 일이다. 과거는 멀리 있지 않았다. 땅의 기억 위에서 현재의 내가 다시 세워지는 순간이 김해의 시간 속에 조용히 깃들어 있었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12-21

아홉문중이 세운 배산임수의 대구 이락(伊洛)서당

대구시 달서구 파호동에 위치한 이락서당은 한눈에 봐도 풍수지리상 딱 맞아 떨어지는 맞춤형 가옥이다. 배산임수(背山臨水)는 풍수지리의 근본이듯이 이락서당이 서있는 자리는 뒤로는 궁산(弓山)을 베고 앞으로는 금호강과 낙동강을 바라본다. 풍수(風水)가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에서 볼 때 이곳은 명당임에 틀림없다. 서당 북쪽은 영귀대(詠歸臺)라는 푸른 절벽이 금호강을 안고 궁산을 짊어지고 있는 모습인데, 절경 중의 절경이다. 이락서당은 이름부터 특별하다. 이락(伊洛)은 금호강의 옛 이름 이수(伊水)와 낙동강의 옛 이름 낙강(洛江)을 딴 이름이다. 서당의 구조는 마루를 중심으로 동서 양 쪽에 방이 하나씩 배치된 형태이다. 동쪽 방은 모한당, 서쪽 방은 경미재라 이름을 붙였다. 모한은 한강 정구 선생을 존숭한다는 뜻이며 경미는 미락제 서사원 선생을 공경한 뜻이라 한다. 이락서당은 대구시민이면 누구나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대구지하철 2호선 강창역에서 도보로 5분이면 족하다. 외지에서도 대구외곽고속도를 타면 서울, 부산 등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면 서당이 궁산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락서당은 낮에 봐도 고풍스런 모습이 아름답거니와 밤에 보는 야경은 옛 궁궐을 연상할만큼 아름답다. 조선시대에는 육지보다 강을 이용한 이동이 편리했던 점을 감안하면 발아래 금호강이 흐르고 육안으로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낙동강이 합수하니 이보다 더 교통이 편리한 곳이 또 있었을까 싶다. 이곳의 지명 또한 강창이니 그 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들을 가득 실은 배들이 줄을 이어 서울로 떠나가는 광경을 이락서당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이락서당은 조선 후기 1789년에 착공하여 이듬해 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대구, 칠곡, 성주의 향촌 아홉 문중에서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과 향촌 사회의 교화를 위해 뜻을 모아 정구 선생과 서사원 선생이 활동하던 곳인 이 파산(파호동 옛이름)에 서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아홉 문중은 서재의 성주도씨, 덕산의 밀양 박씨, 묘골의 순천 박씨, 남산의 달성 서씨, 수성의 일직 손씨, 슬곡의 광산 이씨, 상지의 광주 이씨, 하당의 전의 이씨, 원대의 함안 조씨 등이다. 이락서당은 낮에는 새로 난 고속도로와 지하철 2호선과 유유히 흘러가는 금호강과 낙동강을 바라보며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휘황찬란한 밤 불빛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지는 않을까. 서당은 노후화로 보존 및 안전을 위해 2010년에 중건하였는데 서당 건립에 참여한 아홉 문중이 설립 당시의 정신을 바탕으로 ‘이락서당 규약’을 제정하여 현재까지도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향촌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락서당은 향토 문화유산으로도 가치가 높다하겠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2-21

구룡포 과메기, 겨울 해풍을 품은 자연의 맛

추워진 날씨, 그 찬기를 그대로 품어버린 과메기. 맛이 최고다. 이 별미는 동해 겨울바다의 햇살과 해풍 그리고 말리는 시간의 흐름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올해 꽁치가 예년에 비해 씨알이 굵다더니, 매년 타지 사는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보내는 과메기가 올해는 유난히 더 쫄깃하고 맛있단다. 야금야금 가격이 올라 여기저기 선심 쓰기에 많이 부담스러워졌지만 그래도 겨울 별미가 주는 행복을 택배에 실어 보낸다. 이제 과메기 하면 포항 구룡포가 연상될 만큼 겨울을 대표하는 지역 특산품이 된 지 오래다. 겨울 음식은 대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국물이 대표한다. 뜨거운 불에서 갓 나온 따끈한 군고구마나 후루룩 마시는 뜨끈뜨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이 추위를 이기는데 최상이다. 그러나 겨울바다의 해풍을 그대로 품은 과메기도 뜨끈한 국물만큼이나 겨울 식탁을 행복하게 한다. 낮에는 햇살이, 밤에는 동해의 해풍이 번갈아 말리는 이 생선은 자연 숙성식품이다. 기온이 낮고 습도가 적은 겨울이라야 비린내 없이 쫀득한 식감이 제대로 살아난다. 자연의 온도와 바람이 생선 속 지방을 천천히 녹이고 다시 굳히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과메기 특유의 풍미가 깃든다. 구룡포 바다의 햇살과 해풍 그리고 적당한 시간의 건조과정이 조미 역할을 하며 비린 생선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맛있는 생선요리가 된다. 지금은 ‘꽁치 과메기’가 일반적이지만 애초 과메기는 청어였다. 1960~70년대 청어 어획량이 줄면서 자연스럽게 꽁치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두 생선은 지방 함량이 달라 건조시간에 다소 차이를 보이지만 겨울 해풍과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맛이라는 점에서 과메기의 본질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겉은 살짝 마른 듯 꾸덕꾸덕하지만 속은 촉촉하게 살아 있어 씹을수록 고소한 기름이 배어 나오는 특유의 감칠맛에 물미역이나 돌김, 생마늘, 초고추장과 함께 먹으면 향이 부드럽게 잡혀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한번 맛 들이면 겨울마다 찾게 되는 중독성이 있지만 자연 숙성에서 오는 특유의 생선 향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기도 하다. 과메기가 이제는 단순한 지역 명물에서 겨울을 상징하는 전국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는다. 냄새를 줄인 초보자용 과메기. 밀키트형 제품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데다 포장기술의 발전과 온라인 유통 확대로 인해 점점 더 계절의 보편적인 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바람과 햇살이 천천히 만들어 주는 자연의 맛이다. 빠름이 미덕이 된 시대지만 자연건조의 시간이 필요한, 느림으로 완성되는 풍미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 한 조각 속에는 겨울 바다의 공기. 포항의 해풍. 그리고 시간이 만든 깊이가 고스란히 담긴다. 과메기는 결국 겨울이라는 계절이 직접 빚어낸 가장 자연스러운 선물이다. 주문 전화를 하니 주문량이 너무 많아 순차적으로 보내다보니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답변이 온다. 냉동 꽁치를 해동시키고, 손질하고, 말리는 전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다보니 밀려드는 주문에 덕장 안 외국인 근로자들의 손길도 따라 바쁘다. 겨울 바다와 지역의 삶이 담긴 구룡포 과메기.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소문난 식당에서 대기하듯 별미에 대한 기대감으로 소소한 즐거움이 인다. /박귀상 시민기자

2025-12-18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 즐거운 동기 모임

11월 마지막 주에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작년에 첫 모임을 연 이후 올해 두 번째 모임이다. 장소는 캠핑장과 함께 운영하는 펜션이었다. 모교에서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었다. 식사를 위한 각종 식자재와 조리도구들은 식당을 운영하는 회장이 도맡아서 준비했다. 바리바리 준비물을 싣고 회장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친구들도 하나 둘 달려왔다. 제주 친구가 보낸 새콤한 귤은 우리보다 먼저 펜션에 도착해 있었다. 고향을 지키며 사과 재배를 하는 친구 둘은 맛난 문경사과를 한 박스씩 들고 왔다. 포항 친구는 겨울 별미인 과메기를, 안동에서 온 친구는 안동식혜를 들고 왔다. 문경 봉천사에서 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친구는 배추와 김치, 참기름, 쌈장 등을 푸짐하게 싸 왔다. 펜션 마당에 바비큐 숯불이 피워지고 잘 숙성된 고기가 구워졌다. 맛있게 구워진 고기와 생배추와 고들빼기김치 등으로 푸짐한 저녁상이 준비되었다. 오래전 꼬맹이 때의 추억들이 불려 와 정겨운 대화들이 이어졌다. 그때 코흘리개 아이들은 먼 시간을 건너와 벌써 머리 희끗한 중년이었지만 마음은 해맑은 그때의 마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화합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식전 공연으로 해금 연주가 있었다. 해금이 내는 고요한 음률이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음으로는 여성 동기들의 댄스 시간이었다. 의정부 친구가 준비해온 알록달록 가발과 재미있는 선글라스를 장착했다. 노래 ‘유난이다’에 맞춰 마구 막춤 퍼레이드를 벌였다. 다음으로 마종기 시 ‘우화의 강’ 시낭송 타임을 가졌다. 시가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같은 고향 같은 학급에서 만나 6년을 함께 공부하고 순수했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의 인연을 생각했다. 이어서 즐거운 게임 시간이었다. 빙고 게임에 당첨되어 경품을 탄 친구는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운동회를 떠올리게 하는 게임도 하며 여러 가지 책임과 살아내는 무거움 따위는 다 던져버리고 어린 시절의 해맑음으로 돌아간 즐거운 시간이었다. 제주에 사는 친구가 늦은 시간에 서울에서 택시를 타고 문경까지 달려온 것은 어느 모임에도 없을 역대급 사건이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천년고찰 대승사를 방문했다. 점심 식사는 고향에서 축산업을 하는 친구가 송어회를 샀다. 각종 채소를 채 썰어 신선한 송어회와 초고추장에 비벼 먹는 비빔 송어회는 문경의 유명한 맛이다. 바쁘고 숨차게 달리기만 하다가 잠시 여유를 가지고 친구들과 만남을 갖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고 겉모습은 이제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들이지만 마음은 순수했던 시골 초등학교 학생들 그대로였다. 그 시절 때 묻지 않았던 동심이 가득했던 때로 되돌아가 마음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동기들 모두 몸 건강히 내년에도 즐겁게 만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동기 모임을 마쳤다. /엄다경 시민기자

2025-12-18

비원뮤직홀이 지역 주민들에게 전한 클래식의 온기

도심 속 아담한 공연장 대구 비원뮤직홀에서 3주간 총 세 차례의 공연을 잇따라 관람하며 음악으로 일상을 가득 채웠다. 각 공연마다 다른 동반인과 함께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11월 22일 열린 ‘듀오 보체 시리즈 2 – 박소영 & 석정엽 듀오 리사이틀’은 소프라노 박소영과 테너 석정엽의 탄탄한 호흡과 연기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혼자 찾은 공연이었지만, 두 성악가의 풍성한 울림이 홀을 가득 메워 외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앙코르는 원래 한 곡만 예정되었으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즉흥적으로 추가 곡을 선보여 관객들의 감동을 배가시켰다. 11월 28일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콰르텟 아프로디테’ 콘서트를 찾았다. 창단 2년 차인 ‘아프로디테’는 팀명 선정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남자들이 ‘아프로디테라면 우리 공연은 절대 안 갈 거다’라고 했지만, 우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겠다는 뜻으로 이름을 고수했다”는 말에 관객석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지휘자 김성진의 세심한 해설 덕분에 브람스와 슈만의 음악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왔고, 특히 마지막 곡인 브람스 ‘피아노 사중주 1번’은 네 연주자(바이올린 조혜우, 비올라 배은진, 첼로 홍승아, 피아노 이윤수)의 완벽한 호흡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남자친구는 “첼로의 매력에 새로 눈떴다”며 감탄을 전했다. 12월 6일은 엄마와 함께 ‘EZ클래식: 더 캔들라이트’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 전부터 설치된 수많은 촛불이 관객들을 맞이했고, 작은 불빛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려는 관객들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으로 순간을 담았다. 진행을 맡은 EZ CLASSIC 권은지 대표는 “화려한 조명 대신 은은한 촛불이 빚어내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껴보자”라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연주된 곡들은 대부분 대중에게 친숙한 클래식 명곡으로, 평소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엄마도 편안히 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연말 정취를 물씬 풍기는 영화 ‘나 홀로 집에’ OST와 앙코르로 연주된 크리스마스 캐럴은 가족과 연인 단위 관객들에게 따뜻한 여운을 선사했다. 공연 후 엄마는 “연주자들이 짧은 시간 동안 20여 곡을 연주하느라 팔이 아프지 않을까 걱정됐다”며 웃음이 묻어난 소감을 전했다. 비원뮤직홀은 지역 주민에게 수준 높은 공연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공연은 인터넷 예매로 관람했지만, 세 번째 공연에서는 예매에 실패해 당일 현장에서 대기하다가 취소표를 받아 관람했다. 예매 경쟁이 치열하지만 현장에서의 기회도 열려 있어 다양한 시민들이 공연을 접할 수 있게 됐다. 비원뮤직홀 홈페이지에서 공연 정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매주 다채로운 공연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니 정보를 미리 살펴보고 관람해 보시길 추천한다. /김소라 시민기자

202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