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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구시, ‘제54회 어버이날 기념식’성황리 개최

대구시는 지난 8일, IM뱅크 제2본점 대강당에서 어르신에 대한 깊은 감사와 공경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제54회 어버이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기념식은 점차 희박해져 가는 경로효친 사상을 고취하고, 우리 사회의 뿌리인 어르신들의 헌신에 보답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대구시가 주최하고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지역 금융기관인 iM금융그룹과 iM사회공헌재단의 전폭적인 후원이 더해져 더욱 풍성하고 내실 있게 꾸며졌다. 이날 행사장에는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을 비롯하여 이재화 대구시의회 부의장, 하중환 운영위원장, 이종익 대한노인회 대구시연합회장 등 주요 내빈들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지역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어르신들이 주인공으로 초청되어 자리를 빛내며 행사의 의미를 더했다. 기념식의 하이라이트는 평소 지극한 효심으로 부모를 봉양하거나, 묵묵히 사회봉사를 실천하며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들에 대한 시상식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상과 대구광역시장상을 수여받은 수상자들의 사연이 소개될 때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전용만 대구광역시노인종합복지관장은 인사말을 통해“오늘의 대한민국과 대구시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힘든 시절을 인내하며 자녀들을 길러낸 부모님들의 무한한 희생과 사랑 덕분”이라며, “이번 기념식이 단순한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금 새기고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소중한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내빈들은 축사를 통해 어르신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실질적인 복지 향상을 약속했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격려사를 통해 “어르신들이 흘린 땀방울은 대구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강조하며, “대구시는 어르신들이 단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의 어른으로서 존중받고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시는 일자리 확충, 건강 증진 프로그램 다양화, 노인 여가 시설의 현대화 등 다각적인 노인복지 정책을 더욱 촘촘하게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고령화 시대에 발맞추어 지역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는‘대구형 노인복지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어르신들이 소외되지 않고 행복한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을 지속할 방침이다. 행사는 기념식을 마친 후 참석한 어르신들을 위한 다채로운 축하 공연과 나눔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한 어르신은“많은 사람이 모여 우리를 축하해주고 격려해주니 큰 위로와 자부심을 느낀다”며 소감을 전했다. 어버이날 기념식은 효(孝)라는 전통적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자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대구시는 앞으로도 어르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세대 간 공경과 사랑이 넘치는‘어르신이 행복한 도시 대구’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설 것으로 약속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09

두류은빛복지관 어버이날 기념 孝 나눔행사

두류은빛복지관(관장 김진홍)은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7일 복지관 4층 평생학습실에서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2026 두류은빛 효(孝) 나눔 행사’를 개최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해 孝“라는 따뜻한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다채로운 특별 공연이 펼쳐져 어르신들에게 큰 웃음과 감동을 선사했다. 식전 공연으로 에어로폰 연주자 김준우의 감미로운 선율이 행사의 서막을 알렸으며, 이어 두류 KCC스위첸 어린이집 4세반 원아들의 앙증맞은 재롱잔치가 펼쳐져 어르신들의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띄게 했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내빈들과 어르신이 함께 마음을 나누는 ‘카네이션 퍼포먼스’가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이태훈 대구달서구청장, 정창근 달서구의회 부의장, 김용판 전 국회의원, 나채인 신흥장학회장이 어르신들과 짝을 이뤄 건강·행복·감사·사랑의 의미가 담긴 화분에 대형 카네이션을 직접 심으며 존경과 공경의 마음을 전했다. 초대가수 황태자의 에너지 넘치는 무대로 행사장의 열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으며, 모든 행사가 마무리되고 어르신들에 대한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은 ‘효(孝) 나눔 물품키트‘를 전달하여 어르신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지역사회의 각계각층의 따뜻한 후원의 손길이 모여 그 의미를 더했다. ▲신흥장학회 ▲미로카페자원봉사회 ▲개인후원자 이우석, 황계화, 소춘선 ▲ 두류은빛 가요교실 회원일동 ▲달서초등학교 샤프론 봉사단 ▲카카오 같이가치의 지원이 있어 더욱 풍성한 나눔이 가능했다. 김진홍 관장은 “지역사회의 따뜻한 관심과 후원 덕분에 어르신들께 잊지 못할 어버이날의 추억을 선물할 수 있었다.”며, “오늘 행사의 주제처럼 어제보다 오늘 더 어르신들을 공경하며, 앞으로도 어르신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내실 수 있도록 두류은빛복지관이 든든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5-09

저녁노을 비끼는 사유의 밥상

휴식으로 하루를 채웠다. 늘씬하게 뻗은 소나무 숲을 거닐며 솔향을 음미하다가 ‘알바로 시자’의 스케치와 가구, 저서를 둘러보며 휴식할 수 있는 요요빈빈으로 들어갔다. 탁자와 소파는 모두 창을 향해 열렸다. 클래식이 고요히 흐르고 창밖에 천천히 흔들리는 소나무, 낮게 나는 제비와 산비둘기가 오르막을 오르던 목마름을 씻게 했다. 승효상, 최욱, 박창렬 등 대표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물에 올라 한참 물오른 사유원의 봄을 만끽했다. 오후 3시, 제일 높은 곳 카페 가가빈빈 앞에 마련된 곳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10분 전 공연장 앞자리에 가 앉았다. 계절의 여왕답게 걷기에 좋을 만큼의 햇살과 앉으면 볼에 스치는 싱그런 봄바람이 여기에 오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하게 만든다. 정각이 되자, 보랏빛 한복을 곱게 입은 공연자가 나와 인사를 한다. 장구를 치며 부르는 노랫가락이 마이크 없이도 골짜기 전체를 채운다. 얼쑤~,좋다~, 이쁘다를 외치다가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손까지 흔들며 같이 공연에 참여했다. 저녁 예약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근처 봉우리가 무슨 산인지 알려주는 첨단에 오르고, 자그마한 교회에 들어 잠시 기도를 하고, 한옥 대청에 올랐다. 산등성이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만 보를 걸었기에 다 같이 마루에 등을 대고 누웠다. 뒤꼍에 핀 모란이 시들어가면서도 마지막 남은 향을 풍긴다. 바람결에 실려 온 수수꽃다리, 산사나무의 향까지 맡으며 눈을 감고 사색에 잠겼다. 여기는 그러라고 만든 곳이니까. 느티나무 우거진 한유시경으로 내려갔다. 경치와 낙조가 아름다운 사담 다이닝에서 헤드 셰프가 정성껏 조리한 특선 코스요리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다. 예약해야 맛볼 수 있다. 예약자 이름을 묻기에 거기까지 우리를 태워 가고 예약하는 수고로움을 담당한 순혜언니 이름을 대니 다섯 명 자리라며 창가 명당을 내준다. 연두연두한 느티나무 숲이 연못에 드리운 게 바로 보였다. 코스의 처음은 새우와 아보카도가 어우러진 샐러드였다. 상추 한 송이를 속살이 보이게 조리해서 돌돌 말린 새우를 잘라 함께 먹으니 상큼했다. 작게 썬 사과가 풍미를 더했다. 뒤에 나온 빵으로 아보카도 소스를 발라 먹으니 잘 어울렸다. 두 번째는 브라타치즈와 살사 베르데, 여러 치즈 중에 제일 내가 좋아하는 치즈이다. 동그랗게 입을 앙다문 것을 칼로 살살 달래 열면 부드럽게 스윽 풀어지는 폼새도, 짜지 않은 그 맛도 일품이다. 그러니 꿀과 레몬에 절린 방울토마토를 감싼 하몽 위에 올려 한입 가득 먹으니 간이 딱이었다. 먹으며 보니 저녁 햇살이 능수벚나무 사이로 비낀다. 이제 본식 소고기 안심스테이크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고기 굽기를 어떻게 할지와 마지막 코스의 차를 커피와 케모마일 중에 고르라고 했다. 고기는 미듐으로, 커피가 고팠지만 저녁 잠자리를 위해 케모마일로 정했었다. 서빙된 스테이크는 사유원 숲의 풍경을 접시에 분재로 담아 놓은듯하다. 아스파라거스도 얌전하고 감자와 양파는 먹기 전에는 감자와 양파로 보이지 않았다. 후식은 모과 치즈케이크와 말차 젤라토다. 우리가 간 날은 5월 2일이라 분홍빛 모과꽃이 거의 다 지고 한 두 송이만 남아 있어서 아쉬웠다. 다음에 올 때는 모과꽃이 만발할 시기를 잘 골라 와야겠다. 사유원은 아름드리 모과나무가 산 하나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카페엔 모과로 만든 차 종류가 다양했고 다이닝 코스에도 모과로 만든 치즈케이크가 나왔다. 내 입맛에는 약간 텁텁해서 말차 젤라토가 없으면 먹기 힘들었다. 뒤이어 나온 케모마일은 물 양이 부족했다. 하지만 창밖 한창 물오르는 느티나무 풍경이 부족한 맛을 충분히 채웠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06

길 위에서 마주한 필리핀의 일상

사흘간 머물렀던 사가다를 떠나며, 2000여 년의 시간을 품은 바나우에 계단식 논을 다시 떠올린다. 그러나 그 장엄했던 풍경보다 외려 고산족 사람들의 밝은 표정이 더 오래 남는다. 바기오로 가는 길,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오르니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곳에서도 평지처럼 다랑논과 밭이 이어진다. 작은 마을들과 곳곳에서 열리는 소박한 축제들이 스쳐 지나간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저 멀리에는 다랑 밭에서 수확한 감자를 어깨에 짊어지고 나른다. 고단해 보이기보다 오히려 평화롭다. 딸기밭을 지나다 차를 세우고 딸기를 살 수 있냐고 물으니 익은 것을 직접 따 준다. 크기가 작고 단맛은 덜하지만 신맛이 산뜻하다. 그들에게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끈기와 삶의 무게가 배어 있다. 바기오에 도착하니 공기는 여전히 선선하다. ‘여름수도’라 불리는 이 도시는 산악지대 특유의 여유와 활기가 느껴진다. 긴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니 야경이 화려한 번햄파크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 이 공원에서 ‘제4회 국제 식품 및 공예 엑스포’가 한창이다. 형형색색의 먹을거리와 공예품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져 밤공기를 채운다. 한쪽 무대에서는 포크기타 공연이 이어진다. 필리핀 명곡 ‘아낙(Anak)’을 신청하니 흔쾌히 불러주고 이어 노사연의 ‘만남’을 부른다. 이국 낯선 곳에서 목청 높여 따라 부른다.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마음으로 그 분위기를 즐긴다. 그 순간, 문화는 낯섦의 경계를 조건 없이 허물어준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다음날 루손섬 북부 산악지대를 떠나 서부 해안으로 이동한다. 수많은 섬들이 모여 있는 ‘헌드레드 아일랜드’에 들러 잠시 스노클링을 즐긴 뒤, 일몰을 보기 위해 서둘러 볼리나오로 향한다. 이곳은 굳어진 산호 지형 위로 어른 무릎 높이의 얕은 바다가 넓게 펼쳐져 있어 파도 없는 평온한 물결이 아름답다. 서쪽바다로 길게 돌출된 지형은 우리 지역 포항 구룡포를 닮아있다.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이곳, 잔잔한 물결 위로 붉은 빛이 스며든다. 숨을 죽인 채 바라본다. 그 어떤 말로도, 그 잔잔한 바다에 번지던 아름다운 석양의 깊이를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다. 다음날 아침, 뗏목을 타고 동쪽 바다로 더 나아가 맞이한 일출 역시 장관이다. 짧은 순간이 긴 여운을 남긴다. 볼리나오에서 앙헬레스 클락으로 향한다.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서린 ‘사맛산 바탄전투 전쟁기념관’을 들리는 9시간의 긴 여정이다. 이동거리가 길고 도로 사정은 좋지 않지만 그마저 여행의 일부라 여기며 즐긴다. 클락 도착 후 인근 푸닝온천과 ATV 투어 중 마주한 아이따족 사람들. 화산재가 흐르는 계곡물에서 빨래를 하고, 자갈밭 위에 널어 말리는 그들의 낯빛에 즐거움이 묻어난다. 여행은 결국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마주하는 일이다. 온천에서 만난 아이따족 직원의 말에는 타갈로그어와 영어가 자연스럽게 섞인다. 필리핀의 언어는 오랜 시간 스페인과 미국의 영향 속에서 타갈로그어를 기반으로 한 필리핀어와 일상적으로 스며든 영어가 함께 쓰이고 있다. 많은 이가 이곳을 어학연수지로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에 내리자 공기부터 다르다. 포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차창 밖으로 사월의 연두 빛이 곱다. 길 위에서 마주했던 순간들이 일상의 틈 사이에 조용히 머문다. 낯선 곳의 긴 여정에 도움 준 이대우 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06

내 몸에 대한 뒤늦은 예우

혈액검사 결과지를 손에 쥐었다. 의사 선생님은 고지혈증 약을 성실히 먹지 않은 것 같다며 엄한 표정을 지으셨다. 공복혈당 101은 그나마 괜찮았으나, 당화혈색소 수치가 문제였다. 6.4에서 6.6으로, 다시 6.8로 3개월마다 계단을 오르듯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당뇨병 진단을 내려야 할지 선생님의 고민도 깊어 보였다. 다행히 혈관 벽은 깨끗하다며 다시 3개월의 유예 기간을 주었다. 이제부터는 약을 거르지 않고, 하루 20~30분은 반드시 걷기로 했다. 저녁에는 과일과 탄수화물을 절대 입에 대지 말라는 경고도 새겼다. 주 1회 정도는 내가 사는 대구를 벗어나 낯선 풍경 속에 나를 세워두려 한다. 혈관 속 찌꺼기뿐만 아니라 마음의 앙금까지 풀어버리는 일이 몸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조언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처음 고지혈증 진단을 받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다만 은행에 근무할 때였으니 최소 28년 전의 일이다. 당시엔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술을 즐기는 편도 아니고 빼빼 마른 내가 고지혈증이라니 그저 믿기지 않아 웃으며 지나쳤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건강검진 때마다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니 운동하라는 처방이 따랐지만 깊이 생각지 않았다. 본격적인 경고등이 켜진 건 10년 전쯤이었다. 의사는 피가 걸쭉하다며 약을 처방했다. 그때도 심각성을 몰라 약을 먹다 말다 했다. 그 결과 5년 전 검사에서도 차도는 없었다. 부지런히 복용하라는 말만 들었지, 그 뒤에 숨은 위험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러다 24년, 공복혈당까지 높아져 당뇨 전 단계가 되었다. 고지혈증에 당뇨까지, 이제는 탄수화물을 줄이고 관리해야 한다는 소리에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진단이 믿기지 않아 지인이 추천한 병원을 찾았다. 새로 만난 의사는 당뇨는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며 꾸준히 운동하라고 했다. 또한 고지혈증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닥칠 위험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고지혈증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혈관질환과 직결되는 위험요인임을 깨달았다. 약을 꾸준히 먹자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는 안정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찾아왔다. 다리와 발에 쥐가 나고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아팠다. 의논 끝에 약을 바꾸자 증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의문이 생겨 정보를 찾아보았다. 스타틴 계열의 약이 근육통이나 기억력 감퇴, 심지어 혈당 수치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혼란이 밀려왔다. 계속 먹어야 할지, 끊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끝내 마주한 결론은 명료했다. 약으로 인한 미미한 불편함보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 닥칠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이었다. 약은 단순히 숫자를 낮추는 도구가 아니라, 무너지기 쉬운 나의 미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나는 기꺼이 그 안전장치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저녁 식탁에서 탄수화물과 과일을 치우고, 단백질과 채소의 정갈한 맛에 익숙해지려 한다. 매일 운동화 끈을 묶는 일, 일주일에 한 번 낯선 길 위에 서는 일. 그것은 병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오랫동안 방치했던 내 몸에 대한 뒤늦은 예우다. 비록 수치는 높아졌으나 혈관 벽은 여전히 깨끗하다는 의사의 말이 희망의 불씨가 된다. 3개월 뒤, 다시 진료실 문을 열 때는 내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기를 소망한다. 마른 나무를 다시 단단하게 가꾸는 일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06

(시민기자 단상)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

신라사에는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 인물이 많다. 그러나 김유신 장군의 여동생들은 사서 속에 이름과 삶의 자취가 남겨진 인물이다. 삼국유사와 화랑세기에는 보희, 문희, 정희 세 자매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 조에 나오는 보희와 문희 자매의 일화는 이렇다. 어느 날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선도산에 올라 소변을 보았더니 온 서라벌이 가득 찼다는 꿈이다. 왕후가 될 길몽으로 해석되었음에도 보희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를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샀다. 한 번의 교환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게 된다. 얼마 뒤 정월 오기일, 김유신은 김춘추와 축국을 하다가 일부러 그의 옷고름을 밟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와 여동생에게 꿰매게 했다. 처음에는 보희를 부르려 했으나 그녀가 사양하자, 문희가 나섰다. 단정히 차려입은 문희는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맸고, 그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게 된다. 이후 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잉태한다. 김유신은 이 일을 빌미로 동생을 벌하겠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덕만공주가 남산으로 행차하는 때를 맞춰 뜰에 장작을 쌓고 불을 피우자, 공주는 연기의 까닭을 물었다. 곁에 있던 김춘추는 그 일이 자신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고 급히 달려가 문희를 구했다. 마침내 문희는 김춘추와 혼례를 올렸다. 훗날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왕후, 문명왕후가 되어 7남 1녀를 두었다. 화랑세기에는 그 뒷이야기도 전한다. 꿈을 팔았던 보희는 문희가 왕후가 된 뒤 후회했으나 다른 사람과 혼인하지 않고 있다가 훗날 김춘추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으면서 ‘영창부인’이 된다. 보희도 두 아들을 두었다. 언니와 동생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왕실과 인연을 맺었다. 또 다른 여동생 정희도 신라 왕실과 깊은 관련을 맺었다. 그녀는 김달복과 혼인해 흠신, 흠운, 흠돌을 두었다. 딸 흠신은 보로전군에게 시집가 두 딸을 낳았고, 흠운은 요석공주의 첫 남편으로, 655년 백제 조천성을 공격하다 전사했다. 흠돌은 문무왕 때 장군으로 활약했으나 훗날 반란을 일으켜 목숨을 잃었다. 정희의 자녀들 역시 신라 정치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것이다. 김유신의 세 여동생은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았다. 문희는 왕후가 되었고, 보희는 후궁이 되었으며, 정희는 자녀를 통해 신라 왕실과 혈연을 이었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운명을 넘어 신라 왕실과 국가사의 흐름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는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심각한 현실 앞에 서 있다.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드는 시대에, 세 자매의 이야기는 가정과 후손, 그리고 사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한 나라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가문과 나라를 생각하며 역사를 이어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라가 천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려운 시기다. 국민 각자가 자신의 일에 충실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6-05-05

(가정의달 특집) 군 제대와 공무원 시험 합격

대한민국의 한 아들로서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이제야 어머님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크게 변해 있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와 해외로 떠났고, 나라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군 복무 동안 어머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불효자였습니다. 죄송한 마음을 안고 집안일을 돕던 중, 공직자를 공개경쟁 시험으로 선발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마침 영양군에서도 시험 공고가 나왔고, 저는 이것이 제 길이라 여겼습니다. 지역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삶이야말로 제가 가야 할 길이라 믿었습니다. 책을 구해 들고 마을 앞 솔밭 동산의 약천정에 올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남포등과 촛불을 밝히며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오직 한 길만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한 시간이었습니다. 합격자 발표 날, 면사무소 친구와 함께 숨죽여 기다리던 중 내무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명단을 확인하니 제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곧장 집으로 달려가 어머님께 알렸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 손을 꼭 잡으시며 “그렇게 애쓰더니 해냈구나.”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그날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어머님께 기쁨을 드렸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머님, 고맙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임용을 앞두고 인연을 만나 청송 진보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첫딸이 태어나 기쁨이 더해졌습니다. 이후 대구시로 전출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어머님의 곁을 떠나는 아쉬움 속에서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맡은 바 책임을 다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행정사무관 승진 시험에 합격하였고, 가장 먼저 어머님께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어 아버님 묘소에 가서도 “둘째 아들이 사무관이 되었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어머님의 건강은 점차 나빠졌습니다. 더 잘 모시지 못한 마음에 조급함이 커졌습니다. 1993년에는 아버님의 뜻을 기려 약천정 뒤뜰에 예술추모비를 세웠고, 어머님께서도 불편한 몸으로 그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84세의 나이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야 효도를 해보려 했건만 너무도 빨리 떠나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어머님을 보내드린 뒤 저는 마음을 다잡고 공직에 더욱 매진했습니다. 감사과장과 도시정비과장, 수성구청 총무국장과 행정관리국장을 맡으며 책임을 다했습니다. 2003년에는 영양군 수비면 고향에 아버지의 뜻을 기리는 금경연화백예술기념관도 세웠습니다. 공직을 마친 뒤에는 지역의 권유로 구의회 의원에 출마하여 주민들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지역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탰습니다. 그 모든 길 위에는 언제나 어머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함께했다고 믿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시절 저를 키워주신 어머님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어머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지난날이 후회스럽습니다. 부디 이 못난 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며 다시 말씀드립니다. 어머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훗날 저도 어머님 곁으로 가게 된다면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를 다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때까지 부디 주님 곁에서 평안히 계시기를 빕니다. 무술년 오월 불효자 막내 태남 올림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2026-05-05

김수로왕릉, 김해박물관 등 가야 역사 현장 찾아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현장학습으로 지난달 29일 가야 역사의 현장, 경남 김해시를 다녀왔다. 고속도로 차창 가에 펼쳐지는 새하얀 이팝나무의 꽃잎을 바라보며 일흔을 훌쩍 넘긴 시니어 학생들은 오늘 체험학습 현장을 떠올리며 기대에 차 있었다. 오늘 공부할 학습 현장은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 왕릉, 허황옥 왕비릉, 동림사, 은하사, 김해박물관, 대성동 고분군이다. 이번 현장학습은 고대왕국인 가야의 태동과 몰락에 이르기까지 건국 시조와 관련한 인물들, 그들이 쓰던 유물과 유적들을 살펴보는 역사 현장의 시간이다. 먼저 관람한 곳은 은하사다. 이 절은 인도 사람 허 왕비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건립한 절이다. 멋진 바위와 울창한 나무들을 자랑하는 신어산을 배경으로 아늑하게 자리 잡은 이 절은 작지만 아름다웠다. 우리 조상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에 절을 짓고 수행하는 지혜를 가졌다는데 이곳에 오니 그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이 절은 다른 절과 달리 대웅전이 무척 작았다. 마침 주지 스님이 불공을 드리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경내에 조금 떨어진 곳에 소원바위가 있었는데 바위가 마치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손자, 손녀의 학업을 위해 소원을 빌기도 했다. 다음 코스는 동림사다. 이 절 역시 은하사를 지었다는 장유화상이 건립한 절이다. 그는 고향 인도 아유타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며 신어산에 들어와 수행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보면 서쪽에 은하사가 있고, 동쪽에는 동림사가 같은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절은 은하사보다 경내가 좁았으나 대웅전이나 부속 건물이 웅장하였다. 다음 코스는 허황옥 왕비능이다. 은하사와 동림사에서 내려와 복잡한 시내를 거쳐 왕비능에 도착하였다. 경주 등지에서 보는 왕릉과는 달리 크기나 모양이 가야국 특유의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학생들은 반별로 삼삼오오 짝지어 추억 사진을 찍기에 바빴다. 2천 년 전 인도라는 타국에서 한 공주가 왕비로 시집온 것을 두고 갑론을박도 벌어졌다. 왕비가 좋더라도 고향과 부모 형제를 버리고 왔으니 얼마나 외로웠을까, 일국의 국모로 살다가 죽어서 왕비 능에 묻혔으니 괜찮은 삶은 아닐까 하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왕비능을 관람하고 김해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의 규모가 어마어마하여 놀랐다.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역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유물들이 잘 정비되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 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보는 학습을 할 수 있어 흐뭇했다. 수요반 설화자 팀장은 “이번 김해 현장학습이 싱그러운 녹음 속에서 삼림욕을 즐기는 동시에 가야시대로 돌아가 우리나라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유익한 학습이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5-05

공항 검색대를 울린 신종악기 에어로폰

2026년 봄, 김 여사는 해외 출국길에서 벌어진 소동이 공항 한복판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영국에 거주 중인 딸을 만나기 위해 출국 수속을 밟던 그는, 예상치 못한 ‘연주 시험’에 직면했다. 문제의 발단은 검색대였다. 검색요원이 그의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유심히 살피더니 확인을 요청했고, 가방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에어로폰’. 전자관악기인 에어로폰을 처음 본 검색요원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이거··. 총기 아닙니까?” 이쯤 되면 에어로폰은 억울할 법도 하다. 소리를 내기 위해 태어났건만, 등장하자마자 ‘위험물’로 분류되었으니 말이다. 순간 당황한 지인은 “악기입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의심은 깊어졌다. “악기가 왜 이렇게 총처럼 생겼죠? 그럼···. 한번 불어보시죠.” 이쯤 되면 상황은 단순한 보안 검색을 넘어 ‘즉석 오디션’에 가까웠다. 문제는 지인의 실력이었다. 에어로폰을 배운지 겨우 한 달. 공연은커녕 계명 연습이 전부인 수준이었다. 그는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갑자기 국제무대 데뷔를 하게 된 셈이다. 하지만 선택지는 하나였다. 불지 않으면 압수, 불면 망신.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잠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 그는 숨을 고르고, 인류가 공유하는 가장 안전한 멜로디를 꺼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그 단순함이 오히려 설득력이 되었던 걸까. 공항 한복판에 울려 퍼진 가장 순수한 음계, 이 단순한 음계가 울려 퍼지는 순간, 분위기는 급변했다. 검색대는 공연장이 되었고, 주변 사람들은 관객이 되었다. 조금 전까지 의심하던 눈빛은 어느새 감탄으로 바뀌었다.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검색요원마저 감탄을 감추지 못하며 “생각보다 잘하시네요!” 라는 반응을 보였다. 총기로 오해받던 물체는 순식간에 문화가 되었고, 의심은 감탄으로, 검문은 공연으로 바뀌었다. 긴장으로 시작된 순간은 어느새 유쾌한 공감의 장면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일화는 한편으로는 공항 보안의 엄정함을, 다른 한편으로는 낯선 사물에 대한 인간의 직관적 경계심을 동시에 보여준다. 에어로폰과 같은 신종 악기가 아직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점도 그 배경에 놓여 있다. 익숙하지 않음은 때로 오해를 낳고, 그 오해는 확인이라는 절차를 통해 해소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단지 웃음거리 이상의 의미다. 기술과 창의가 결집 된 현대의 산물들이 때로는 의도치 않게 불필요한 긴장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인간적인 유머로 완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보안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영역이다. 물건의 외형이 특정 위험 요소를 연상시키는 경우라면, 과연 악기는 어디까지 악기답게 생겨야 하는가.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는 것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그날 공항에서 울려 퍼진 것은 단순한 음계가 아니었다. 낯섦을 웃음으로 바꾸는 인간의 여유, 그리고 긴장을 풀어낸 에어로폰의 소박한 소리였다. 결국 가장 평화로운 ‘증명’은, 도레미 한 소절이면 충분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5-05

죽순문학회, 81년의 뿌리와 결실을 기리다

죽순문학회(회장 문성희)는 창립 81주년 및 기관지 ‘죽순’ 창간 80주년을 맞아 지난 1일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대구 달성 토성마을 다락방 2층에서 오는 10일까지 이어진다. 창립 기념전은 회원들의 육필 시 원고전과 홍익 화가 안남숙 작가의 초대전 ‘마음의 풍경’을 함께 마련해 문학과 미술이 조화롭게 만나는 뜻깊은 자리로 꾸며진다. 지난주 열린 개막식에는 회원과 시민 등 50여 명이 참석했으며, ‘죽순 왕대의 꿈을 안고 부르는 노래’라는 주제로 열린 시화전은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번 행사는 달성토성마을 골목정원운영위원회, 비산2·3동 주민자치위원회, 달성토성마을협동조합, 대구서구문화원이 후원했으며, 정지홍 낭송가가 총괄기획을 맡아 행사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문성희 회장은 인사말에서 죽순문학회의 유구한 역사와 시대적 사명을 강조했다. 그는 “광복의 기쁨 속에서 이윤수 시인을 비롯한 뜻있는 문인 7인이 죽순문학회를 창립하고, 1946년 5월 1일 ‘죽순’ 창간호 1000부를 발간했다”며 “전국 최초로 달성공원에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시비를 세워 이상화의 빛나는 시업 정신을 기려왔다”고 밝혔다. 이어 “그 숭고한 문학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죽순문학회의 찬란한 역사를 후세에 온전히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남숙 홍익화가는 축하 인사에서 “문학은 마음의 언어로 시대를 기록하고, 그림은 말로 다 담지 못한 감정을 색채와 여백으로 남긴다”며 “시와 그림이 함께 숨 쉬는 이번 전시가 바쁜 삶 속에서 잠시 마음을 쉬어가는 따뜻한 쉼터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이어 최용택 주민자치위원장의 환영사와 김기한 달성토성마을 협동조합 이사장, 장사현 영남문학 예술인협회 이사장의 축사가 이어지며 죽순문학회의 역사적 가치와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손수여 국제대구펜문학 전 회장의 이윤수 시인 및 ‘전선시첩’ 관련 해설과 정이랑 회원의 여는 시로 문을 연 행사는 다채로운 공연으로 풍성함을 더했다. 이어진 제2부에서는 김도향('우물'), 장사현('벚꽃 터널 아래서') 등 회원들의 육필시 낭독이 차례로 소개되며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또한 특별공연으로 소프라노 이은경씨와 류소희씨의 향가가 무대를 수놓았다. 마지막 순서로 김미정의 닫는 시 ‘곁’이 낭송되며 기념행사는 막을 내렸다. 이번 기념행사는 단순한 축하의 자리를 넘어, 광복과 함께 태동한 지역 문학사의 맥을 되새기고 미래 세대에 계승할 문화적 유산을 확인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5-03

사문진 나루터에서의 문학 기행

영남 물류의 관문이었던 사문진 나루터가 문학 기행을 통해 다시 깨어났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람의 기억을 되살리는 공간으로 주목을 받았다. 신현식 교수가 이끄는 용학도서관 수필반 회원 20여 명은 최근 달성군 화원읍 사문진 나루터 일원에서 봄 문학 기행을 진행했다. 우천 예보로 한 차례 연기된 일정이었으나, 이날은 청명한 날씨 속에 진행돼 참가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었다. 사문진 나루터는 조선시대 낙동강 수운의 중심지로, 세곡과 생필품이 오가던 대표적 물류 거점이었다. 나룻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생활의 통로였으며, 상인과 나그네가 모여드는 교류의 장이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던 삶의 흔적들은 오늘날 지역의 중요한 역사 자산으로 남아 있다. 참가자들은 유람선을 타고 낙동강 물길을 따라 이동하며 옛 나루의 흔적을 체감했다. 갑판 위에서는 연신 셔터 소리가 이어졌고, 강바람을 맞으며 일상의 피로를 털어내는 모습이 역역했다. 유람선은 교각 아래를 지나 송해공원 방향으로 운항하며 강 양편의 풍경을 한눈에 담게 했다. 사문진은 근대문화 유입의 통로로서 색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00년대 초 서양 선교사들에 의해 피아노가 이곳을 통해 대구로 들어왔으며 이를 처음 접하는 주민들은 ‘귀신 통’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 나루터 인근에는 이를 기념하는 피아노 조형물이 설치돼 방문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유람선 체험 이후 일행은 달성습지 일대를 따라 조성된 데크길을 걸으며 생태탐방을 이어갔다. 약 1.2km 구간의 습지는 수달과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생태 공간이다. 한때 맹꽁이 서식처로 유명해 축제가 열리기도 했던 지역이다. 전국에 습지는 창녕 우포 늪 등 26개가 분포되어 있는데, 달성군 습지는 2019년도에 등록됐다. 참가자들은 해설을 통해 습지의 생태적 가치와 보전 필요성에 대해 이해를 높였다. 이어 생태기념관에서는 시 낭송과 오행시, 육행시 발표가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작품을 공유하며 문학적 교류의 시간을 가졌고, 즉석에서 창작된 작품들도 이어지면서 현장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이 시간이야말로 문학 기행의 의미를 깊게 한 자리였다. 이번 기행은 사문진 나루터의 역사성과 달성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동시에 조명한 자리로 평가된다. 참가자들은 “강과 나루에 얽힌 이야기를 몸소 체험하며 문학적 영감을 얻은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때 수많은 배가 드나들던 사문진 나루터는 이제 유람선과 산책로로 그 역할이 바뀌었지만, 물길 위에 쌓인 시간과 기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5-03

불효자식이 되어 떠난 월남전 참전기

어머님, 이 불효자식이 뒤늦게 붓을 들었습니다. 생전에 끝내 전하지 못했던 참회의 말을 이제야 꺼내려 하니, ‘어머님’ 세 글자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곁에 계셨다면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을 터인데, 이제는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로 남아 그저 서럽기만 합니다. 당시 저는 대구 제2군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비교적 안정된 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관의 신임도 받았고, 제대까지도 불과 6개월 남짓 남은 상태였습니다. 그대로라면 무사히 군복을 벗고 어머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머나먼 월남의 전황은 점점 격해졌고, 젊은이들은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습니다. 젊은 혈기와 시대적 소명이라는 명분에 이끌려, 어머님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파월 지원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것이 자식으로서 얼마나 큰 불효였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출정을 앞두고 강원도에서 특수훈련을 받던 중, 짧은 휴가를 얻어 고향을 찾았습니다. 어머님은 “왜 또 왔느냐”고 물으시면서도 정성껏 밥상을 차려주셨습니다. 저는 차마 전쟁터로 간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잠시 쉬러 왔습니다”라고만 둘러댔습니다. 밥을 먹는 내내 목이 메어 한 숟가락 삼키기도 힘들었습니다. 끝내 진실을 숨긴 채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만 남기고 돌아섰습니다. 그날 어머님이 흔드시던 손길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습니다. 4주 훈련은 혹독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고된 훈련 속에서도 저는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그리고 월남으로 떠나던 날, 산골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눈발 속에서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군용열차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 전우들과 작별할 때, 저는 끝내 눈물을 삼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전장에 대한 두려움이자, 어머님을 두고 떠나는 아들의 뒤늦은 회한이었습니다. 부산 제3부두는 환송 인파로 가득했습니다. 태극기가 나부끼고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 퍼졌지만, 수송선에 오르는 장병들의 마음에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출항 사흘째, 대만 해협에서 만난 태풍은 인간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했습니다. 거센 파도 속에서 저는 오직 어머님을 떠올리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도착한 퀴논항은 숨이 막힐 듯한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완전무장을 한 채 내려선 그곳은 이미 전쟁터였습니다. 저는 기갑연대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밤낮없이 이어지는 포성과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그 속에서도 저는 매일 어머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온 편지를 통해 어머님께서 뒤늦게 제 참전 소식을 아시고 통곡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저는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매일 편지에 번호를 매겨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저는 살아 있습니다’라는 말을 대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밤이 되면 별을 바라보며 어머님을 떠올렸습니다. 그 생각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수많은 포화 속에서도 저는 기적처럼 살아남았습니다. 귀국 명령을 받던 날,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어머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고국에 돌아와 대구를 거쳐 고향 집 앞에 섰을 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님, 다녀왔습니다.” 그 한마디를 전하는 데, 참으로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잡는 순간, 저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저를 품어주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험한 세월을 견디게 한 것은 제 힘이 아니라 어머님의 사랑과 기도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한 불효자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머님, 이 늦은 사죄를 부디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근심 없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죄송합니다.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2026-05-03

(이사람) 문인화전 연 문영삼 화백

문인화는 전문적인 화가가 아닌 시·서·화에 능한 선비들이 취미나 수양의 일환으로 그린 그림을 말한다. 양반 사대부 계급에서 발전한 화풍으로 그림의 기술보다 그린 사람의 정신과 교양을 더 중시하는 그림이다. 문인화 작가로 잘 알려진 천곡 문영삼 화백의 문인화전이 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다. 경남 합천 출신의 문 화백의 천곡갤러리는 경남 합천군 묘산면 가산 2길 56-3에 자리하고 있다. 문인화의 관록 작가 문영삼 화백을 만나보았다. 이번 개인전은 2009년 대구미술인상 수상기념 문인화전과 2022년 대구아트페스티벌에 이어 세 번째 개인전이다. 작가가 서화에 관심을 두고 시작한 것은 70여 년 전이다. 그는 “유년기 한학자인 조부 밑에서 '명심보감' ‘천자문’ 등 한문을 공부하면서 붓글씨를 배운 것이 이 길로 들어서게 된 동기“라고 했다. 청년기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서예를 연마하면서 필력을 더욱 견고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 지역에서 내노라 하는 대가들을 역방하며 다양한 서체를 익혔다. 서예를 연습하면서 어느 정도 운필 능력이 향상되자 어깨너머로 봐왔던 문인화 그림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시절 대구 문인화단은 학습 자료가 매우 부족하던 시절이라 어렵게 판교(板橋) 정섭(1693~1765)의 도록을 구하여 독습하기도 하고, 난초는 원정(園丁) 민영익(1860~1914)의 화집을 구해 독학했다고 했다. 포화(1832~1911)와 오창석(1832~1911)의 화집도 구해 사숙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난초가 보이자. 하차해 눈으로 익히다가 다음날부터 다시 그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난초를 익혔다고 한다. 나중에는 작가가 직접 난초를 재배했던 일화도 있다. 그는 지금은 정신집중을 위한 명상(冥想)을 통해 문인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열정을 쏟는다고 한다. 그는 2009년 한국문인화협회전(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등 단체전에도 40여 회에 걸쳐 참여했다. 또 전국 문인화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으로 활약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 화백은 한국문인화협회 부이사장과 대구지회장을 역임했고 죽농사단자문위원, 22대, 23대 대구미협 부회장도 역임했고 대구대학교 교육원의 강사로도 지냈다. 수상 경력도 다양하다. 2009년 대구미술인상, 한국예단 초대작가 초청전, 우수작가상, 한국예총회장상, 친환경미술협회 초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그는 “군자의 뜻에 누가 될까 두렵기도 하지만 이 길이 나의 소명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계속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번 전시회에 90여 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5-03

산을 일군 사람들···필리핀 고산족의 다랑논

필리핀의 전통 다랑논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국제 유가 급등으로 항공편마저 불안정한 시기지만 다행히 예정대로 출발한다는 소식에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새벽 1시 클락 공항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날 루손 섬 코르디예라 산맥 깊숙이 자리한 작은 마을 사가다를 향해 다시 12시간의 여정을 이어간다. 구불구불 험준한 산길을 끝없이 오르자 어둠 속 산골 마을에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더운 나라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밤공기가 차고 맑다. 긴 여정의 피로감이 한순간에 씻기는 기분이다. 이튿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 계단식 논이 보이는 바나우에 전망대를 찾는다.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펼쳐진 다랑논은 그 자체로 장엄하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미가 시야를 압도한다. 바요마을, 말리꽁 등 해발 1600미터를 넘나드는 깊은 산골 곳곳에 자리한 끝없이 이어지는 다랑논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이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다랑논은 단순한 농업 공간이 아니다. 옛날 이푸가오족은 외부의 위협을 피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터전을 잡고, 자연의 물길을 이용해 논을 일구며 정착한다. 이후 다른 부족들이 이 기술을 배우며 산속으로 들어오자 물을 둘러싼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난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기에 부족 간 적개심을 품을 만큼 충돌이 격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이들은 공동체를 지키며 고유한 농경문화를 지켜 왔다. 지금도 이곳의 농사는 자연의 순환에 의존하는 전통 방식을 따른다. 다슬기 같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며 해충을 억제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손으로 모를 심고, 산에서 흘러든 물을 의지해 벼를 키운다. 이들에게 계단식 논은 단순한 농지가 아니라 삶의 뿌리이자 생명 그 자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와~!’ 탄성이 절로 난다. 한쪽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원주민이 관광객과 사진을 찍으며 소소한 수입을 얻고 있다. 고산족 풍의 상점에서 손님을 맞는 아기 띠 두른 소녀. 품안의 아기를 가리키자 “시스터”란다. 눈빛이 순박하다. 힘겨운 농사일에 비하면 비교적 수월한 수입일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단순히 경제적 기준으로만 판단하기는 어렵다. 굽이굽이 이어진 산길을 따라 자리 잡은 집들. 뒷마당은 아찔한 절벽이다. 견고해 보이지 않는 집들도 적지 않아, 보는 이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일상은 이어진다. 마을이 생겨나고 시장도 열린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과 행복을 만들어간다. 계단식 논은 험준한 지형 덕분에 식민지배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도시로 떠나는 인구가 늘면서 이 소중한 유산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다. 사가다에 거주 중인 한국인 지인의 소개로 현지 시장의 저녁 초대를 받는다. 그들은 자녀가 한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하고 있었고, 한류의 영향이 이 깊은 산골까지 스며들었음을 실감한다. 물을 머금고, 바람을 견디며, 오랜 시간을 품어온 다랑논. 척박한 환경을 견뎌 낸 그들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그 여운을 안고 우리는 다시 또 다른 풍경을 향해 길을 나섰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9

두류공원, 시간의 결을 밟다

지난 25일 오후 2시, 답사학교 북성로대학의 대구 두류공원 답사가 있었다. 올해 첫 일정에 설레는 마음으로 모임 장소인 두류도서관에 들어섰다. 작년 10월 달성습지 답사 이후 오랜만에 마주한 반가운 얼굴들, 새로 합류한 이들과 기존 회원들의 짧은 인사가 오가며 답사는 시작되었다. 두류도서관 1층에 자리한 ‘범사 이상희 문고’는 교수님의 설명으로 대신했다. 이상희 전 대구시장이 기증한 7만2000여 권의 장서 가운데는 한국에 단 세 세트뿐이라는 ‘루브르박물관일서’와 1910년대 초반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춘향전’과 ‘심청전’ 등 ‘딱지본’ 소설 등 쉬이 볼 수 없는 귀한 도서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도서관 앞뜰에서는 1983년 무장 간첩이 대구 미문화원에 설치한 폭발물을 신고했다가 현장에서 폭발에 휩쓸려 숨진 고(故) 허병철 군의 추모비 앞에서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어서 새롭게 정비되어 시민들의 쉼터로 재탄생한 2·28 자유광장으로 향했다. 계단을 통해 3층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공원은 아래에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83 타워가 솟은 이랜드 쪽이 두류산이고, 문화예술회관 방향이 금봉산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저마다 간직해온 공원에서의 추억을 하나씩 꺼내어 나눴다. 2·28 기념탑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걸음이 느려졌다. 명덕네거리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탑이라는 설명과 함께, 1960년 2월 28일 대구 고등학생들의 외침이 다시 소환되었다. 그 외침이 마산 3·15 의거와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는 흐름을 되짚었다. 탑 뒤쪽도 찬찬히 살펴보다가 유치환의 비문을 읽었다. 그동안 스쳐 지나쳤던 이곳이 대구 정신의 뿌리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길 건너 인물 동산에서는 대구를 빛낸 근대 인물들의 흔적을 만났다. 백기만, 이장희, 이상화, 현진건의 문학비를 살펴보며 근대 문인들의 숨결을 느꼈다. 마침 이상화와 현진건 선생의 83주기 추념식 준비가 한창이었다. 시집 한 권 남기지 못한 고월 이장희와 상화 시인이 친구 백기만의 노력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는 대목에서 우정의 깊이를 가늠해 보았다. 화가 이인성의 인물상을 거쳐 대구사범학생독립운동 기념탑도 둘러보았다. 뜨거운 한여름 같은 열기를 식히려 카페에서 잠시 차를 마신 후, 우리는 다시 신록이 우거진 길을 지나 코오롱 야외음악당의 축제 열기 속으로 들어갔다. ‘2026 파워풀 K-트로트 페스티벌’의 환호성과 4월의 신록에 취한 사람들의 표정이 한데 어우러져 공원은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어느덧 성당못에 다다르니 40여 년 전 벤치에 앉아 나눴던 젊은 날의 기억이 잔잔한 물결처럼 밀려왔다. 연못 주변은 이제 어르신들의 공간이 됐지만, 연둣빛 나뭇잎과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는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공간은 변해도 감각은 남아서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안병근 올림픽기념 유도관’ 앞에 섰다. 한국 유도의 역사를 담은 이곳은 평소에는 체육 공간이지만, 유사시에는 추모의 장소로도 쓰인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답사는 다시 2·28 자유광장 뒤편으로 돌아오며 마무리됐다. 이번 두류공원 답사는 공간 속에 켜켜이 쌓인 시간과 기억을 따라 걷는 여정이었다. 대구의 중심에 이토록 넓고 귀한 공원이 있다는 사실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이번에 미처 가보지 대구대표도시숲과 금봉산 오솔길은 조만간 홀로 찾아 고요히 마주하며 공원의 가치를 다시금 음미해 보고 싶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9

‘비구니 수련 도량’ 석남사를 가다

울산시 울주군 석남로 557, 석남사가 위치한 주소다. 가지산에 자리한 석남사는 비구니 도량 사찰로 잘 알려져 있다. 주차장에서 700여 미터 걸어 들어가면 사찰 건물이 나타난다. 걷는 내내 양쪽에서 오랜 나무들이 초록 그늘을 만들어주고, 더불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더없이 평화롭다. 계곡을 이루는 널찍한 바위들은 지역 화백들의 그림 속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사찰로 향하는 길 자체가 하나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길을 걷다 보니 중간중간 일제강점기 때 이뤄진 송진 채취로 깊게 상처 입은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라 잃은 아픔은 사람만이 겪은 게 아니었다. 도려내듯 움푹 파인 상처를 갖고도 잘 살아남아 준 나무들이 장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어느덧 입구에 도착했다. 연꽃이 조각된 반야교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자 대웅전 앞을 단단히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이 보였다. 곧 있을 석가탄신일을 준비하려 매달린 고운 연등이 가득이다. 바람에 살짝 흔들리는 연등이 경내를 더욱 따뜻하게 물들인다. 석남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6년(824)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재건됐으나 6·25전쟁으로 다시 폐허가 됐다. 이후 1957년 인홍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크게 증축돼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대웅전 삼층석탑 역시 임진왜란으로 기단만 남아 있었으나 1973년 인홍 스님의 원력으로 다시 세워졌고, 탑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 정갈하게 잘 정리된 경내를 돌아보다 승탑으로 이어진 길을 찾았다. 대웅전 뒤쪽 언덕에는 높이 약 3.5미터의 승탑이 자리하고 있다. 한켠에 가득 핀 고운 철쭉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승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승탑은 보물 제369호로 지정돼 있다. 올라가는 길 또한 풍경이 아름답기로 잘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팔각형 받침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올렸고 머리장식도 잘 남아 있다. 제일 아래 받침돌에는 사자와 연꽃 문양이 장식돼 있다. 탑신석인 몸돌에는 신장과 문비가 조각돼 있다. 아이와 함께 손을 모으고 탑 주위를 한 바퀴 돈 뒤 한켠에 놓인 벤치에서 숨을 골랐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넓게 펼쳐진 기와들이 장관이다. 멋진 풍경에 사진기를 들이대 보지만 그 느낌이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우측으로 돌아가자 극락전이 보인다. 극락전 앞에는 3층 석탑이 있다.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 석탑이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있다가 극락전 앞으로 옮겨졌으며 9세기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너비와 높이가 줄어들어 안정적인 형태를 보인다. 상륜부 일부는 최근 복원됐다.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잘 보여주며 울산시 유형문화유산 제5호로 지정돼 있다. 석탑 외에도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수조 또한 귀중한 문화재다. 길고 각이 없이 둥글게 다듬어진 수조는 화강암을 통째로 깎아 만들었다. 길이 2.7m, 높이 0.9m, 너비 1m, 두께 14cm로 꽤 큰 규모다. 지금도 물을 담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사찰 관람은 무료이며 개인 차량 이용 시 상가 입구에 위치한 유료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무인으로 운영되며 한 대당 4000원으로 카드 결제가 이뤄진다. 조용히 머물며 사색하기 좋은 공간이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9

[가정의달 특집] 팔순에 불러보는 사모곡 ‘어머님 전상서’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이 이어져 한달 내내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달이기도 합니다. 수필가이자 금경연 예술관장인 금태남씨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편지로 썼습니다. 팔순의 세월을 지나며 비로소 가슴 깊이 불러보는 ‘어머님’의 이름. 금태남의 ‘어머님 전상서’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한 아들의 늦은 참회와 그리움이 담긴 이 글이 독자 여러분께 깊은 울림으로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제 나이 팔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철이 드는 모양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참으로 부족하고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창밖 풍경을 보며, 이제는 곁에 계시지 않는 어머님께 늦은 사죄의 글을 올립니다. 오늘은 늦은 봄의 길목입니다. 개나리는 이미 노란 웃음을 거두었고, 벚꽃은 바람결에 흩날려 봄의 끝자락을 고합니다. 은은히 번지는 아카시아 향기와 대지를 적시는 봄비 속에서 저는 문득, 따스했던 어머님의 품을 떠올립니다. 어머님, 제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뎠던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 최부잣집 넓은 기와집 뜰에서 저는 첫 울음을 터뜨렸지요. 어머님께서는 저를 잉태하신 열 달 동안, 매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김유신 장군 생가의 우물물을 길어다 드셨다지요. 무려 사십 리가 넘는 험한 길을 오가며 태중의 자식을 위해 지극정성을 다하셨던 그 사랑을 생각하면, 이제야 가슴 깊은 곳이 저릿하게 사무쳐 옵니다. 경주 교촌과 반월성의 기운을 품고 태어난 평온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미술 교사였던 아버님께서 제가 세 살 되던 해, 고향인 영양군 수비면의 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시며 우리 가족은 정든 경주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원망 섞인 마음으로 묻고 싶었습니다. 왜 그 험한 길을 선택하셔야 했느냐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홀로 계신 할머니를 모시려는 아버님의 깊은 효심이 있었습니다. 수비면 사택에서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다섯 남매를 건사하시랴, 병약해지는 아버님을 수발하시랴 하루하루 전쟁 같은 날을 보내셨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끝내 무심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서른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고, 기둥이 무너진 집안에 남겨진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시집오시던 날의 꿈은 얼마나 푸르렀습니까. 대구사범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상하며 장래가 촉망되던 화가 아버님과 백년가약을 맺으셨으니, 어머님의 가슴은 희망으로 가득 찼을 터입니다. 그러나 그 화려했던 예술가의 꿈은 산산이 부서졌고, 설상가상으로 큰딸과 막내아들마저 병으로 잃으셨지요. 이어진 6.25 전쟁의 비극은 우리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피란길에 오르던 날, 어머님께서는 혹여 자식들이 굶을까 쌀을 볶아 두 주머니 가득 나누어 주셨지요. “헤어지더라도 이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거라.” 그 떨리는 음성에는 절박한 기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없던 저는 그 깊은 뜻을 모른 채 길가에서 친구와 장난을 치며 그 귀한 양식을 홀랑 다 먹어버렸습니다. 이제 와 복기해 보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자식의 배고픔보다 앞선 어머님의 처절한 당부를 저는 너무 가볍게 여겼던 것입니다. 모진 풍파 속에서도 어머님은 아버님의 유작만은 결코 놓지 않으셨습니다. 미완의 그림들을 명주보자기에 싸서 애지중지 지니고 다니셨지요. 하지만 전쟁의 포화 속에서 작품들은 훼손되어 갔고, 결국 어머님은 북받치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작품들을 불태우셨습니다. 그날의 불길 속에서 타오른 것은 단순히 그림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버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자식들을 지켜내야 한다는 독한 다짐이 함께 타올랐을 것입니다. 밤이면 아이들이 깰까 봐 장독대 뒤에 숨어 남몰래 흐느끼시던 어머님. 어둠 속에서 홀로 삼키던 그 눈물은, 우리 가족이라는 작은 배를 띄워 올린 보이지 않는 강물이었습니다. 전쟁 후에도 어머님은 남의 밭을 매는 품팔이와 감자 농사로 모진 목숨을 이어가셨습니다. 당신의 고통을 가슴 깊은 무덤에 묻어둔 채 오직 자식들을 위해 가시밭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어머님, 이제야 비로소 깨닫습니다. 그 신산했던 세월 전부가 저희를 살리기 위한 어머님의 거대한 기도였음을 말입니다. 그 눈물겨운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 늦어버린 고백이지만, 이제라도 고개 숙여 나직이 불러봅니다. 어머님, 참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정리=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8

청라언덕에 울려 퍼지는 봄의 교향악

우리나라 대표 가곡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대구 중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을 찾았다. 마침 봄기운이 완연한 때라, 청라언덕에서 느낀 봄은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청라는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로 ‘푸른 담쟁이’를 뜻한다. 마침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하는 대구문화재지킴회(회장 김홍렬) 회원 40여 명이 이곳을 찾았고, 시민기자도 함께 동행했다. 한갑록 해설사의 설명을 요약해봤다. ‘동무생각’은 1922년 발표되고, 노래비는 2009년, 이곳에 세워졌다. 노랫말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이곳이다. 작곡가 박태준(1901∼1986)이 작곡했다. 선생은 대구에서 태어나 계성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숭실전문학교 교수, 연세대 음대 학장, 한국음악협회장, 예술원 종신회원 등을 지냈다. 이 곡은 지금도 음악 교과서에 실려 널리 불리는 가곡이다. 그는 이외에도 동요와 가곡 150여 편을 남겼다. ‘동무생각’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이렇다. 박태준이 계성학교 재학시절 이웃 신명학교 여학생을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이은상에게 들려주었더니 이은상이 그 첫사랑의 이야기를 노랫말로 쓴 것이다. 이은상은 박태준과 마산 창신학교에 함께 근무하던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 그의 사촌 여동생을 박태준에게 소개하여 이은상과 박태준은 처남 매부 사이가 되었다. 또 청라언덕은 대구 중구 ‘근대골목’ 투어에서 첫 번째 구간이다. 2021년 대구시 수돗물 명칭에 공모에서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청라수도 청라언덕에서 따왔다. 또 이곳에는 선교사 마사 스윗즈가 거주하던 주택을 선교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24호)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선교사 본 챔니스가 거주하던 곳은 의료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25호)으로 바꿨고, 여기에는 청진기, 최초의 피아노 등이 있다. 선교사 블레어가 살았던 곳은 교육·역사박물관(대구시 유형문화재 26호)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라언덕은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3·1운동이 일어난 만세운동길과 통한다. 계단이 90개라 90계단이라고도 불린다. 길옆에는 당시 현장과 생활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대구 하면 사과라 할 정도로 대구는 옛날부터 사과 산지로 유명했다. 대구 최초의 사과나무가 청라언덕에 있다.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72그루의 사과나무 중 마지막 남은 한 그루다. 강춘화 회원은 “대구가 사과로 유명해진 것도 선교사 덕분이었고 재중원이라는 대구의 최초의 병원을 세운 분도, 대구 최초 피아노도 선교사에 의해 들어왔으니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4-28

(이사람) 황통주 전 청도군자원봉사센터장

40여 년을 오직 봉사 외길 인생을 살아온 황통주 전 청도군자원봉사센터장은 지난 18일 청도군민체육센터 대회의실에서 수백 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자서전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이날 회의실 입구에는 청도불교신도회 봉사단원 수십 명이 주황색 유니폼을 입고 축하객을 맞이했고, 적어도 400~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회의실은 축하객으로 꽉 찼다.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닌 평범한 청도 주민 한 사람의 자서전 출판기념회에 깜짝 놀랄 만큼의 축하객이 모인 것이다. 기념회에 참석한 사람들조차 놀란 눈치였다.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로 고고장구팀 공연과 색소폰 합주 등 각종 퍼포먼스가 이어진 뒤 본 행사를 진행했다. 이중근 전 청도군수는 축사를 통해 “과거 자신의 재임시절, 저자가 청도군자원봉사센터장을 맡아 열심히 봉사활동을 펼친 결과, 경북은 물론 전국 자원봉사센터 활동 평가에서 최우수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고 회고하고 그의 봉사활동의 공로를 칭찬하며 자서전 출간을 축하했다. 황통주 저자는 인사말을 통해 “이 자서전은 평생을 살아온 청도의 향토사이며 지역민 한분 한분이 모두가 주인공”이라며 “오늘 기념회도 그동안 함께 봉사해온 이력을 되짚어 보는 것 외에 다른 뜻은 없다”고 했다. 그가 봉사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1985년 청도읍사무소에서 만난 농아인들 때문이다. 민원 업무 차 읍사무소에 들렀는데 농아인 몇 명이 직접 지은 쌀과 농산물을 경운기에 잔뜩 싣고 와 자기들보다 더 어려운 나환자촌에 보내 달라는 것을 보고 자신도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이종학 (사)한국농아인스포츠 회장은 “농아인 쉼터 설치, 농아인 친목회 설립 지원, 농아인 체육대회, 자연보호운동, 후원금 지원 등 저자가 물심양면으로 많이 도와줘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그 외에도 고향 청도를 위해 봉사한 실적은 너무 많다. 현재 청도군 불교사암연합회 신도회장을 맡아 해마다 열리는 청도 유등제를 개최하고 있다. 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청도군협의회 자문위원, 청도청년회의소 회장, 청도군 장애인연합회 후원회장(15년), 청도군 사회복지사협회장, 청도군자원봉사센터장(11년)을 역임했다. 그는 봉사활동의 보람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으나 “시각장애인 부부 칠순잔치, 다문화가정 친정 부모 초청, 이호우 시인 시비 제막, 독거노인 칠순잔치, 행복마을 가꾸기 사업, 필리핀 이미용 전문 봉사단 활동, 등은 특별히 기억나는 행사”라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4-28

현풍 100년 도깨비시장, 색소폰 선율로 하나 되다

대구 달성군 현풍읍의 전통시장인 현풍 100년 도깨비시장이 음악으로 물들며 장날의 열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지난 25일 장날을 맞아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과 소담회 회원들이 펼친 이날 공연은 시장을 찾은 주민과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붙잡으며 화합의 장을 연출했다.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회장 서정구)은 달성군 현풍읍에서 창단된 지 20년의 전통을 지닌 시니어 음악 동호회다. 최상국 전 달성군의회의장을 비롯해 음악을 사랑하는 60~70대 회원 2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달성군의 대표 행사인 참꽃축제와 벚꽃축제, 군민체육대회 등 각종 지역 행사에서 활발한 공연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정기적인 봉사 공연과 ‘찾아가는 음악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날 무대에는 소담회 회원들과 함께해 공연의 깊이를 더했다. 1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소담회는 현풍 출신의 한대곤 가수 겸 드러머와 박순우 아코디언 연주자, 이철호 기타리스트 등이 참여해 ‘청춘의 봄’, ‘청춘 등대’ 등 추억의 가요를 선보이며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펼쳐진 색소폰 마운틴 앙상블 전원의 ‘색소폰 메들리 퍼레이드’는 시장 전체를 하나의 무대로 만들었다. 관객들은 연주에 맞춰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화합의 시간을 만끽했다. 이번 공연은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8

아름다운가게 대구 수성점 22주년 기념행사

비영리 공익법인 여성과 도시와 함께하는 아름다운가게 대구 경북본부 대구 수성점(매니저. 박성주)은 지난 25일 개점 22주년 기념식을 지역 주민과 회원들의 참여로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번 22주년 행사에는 여성과 도시 회원들이 의류, 가전, 잡화, 도서 등 총 342점을 기부해 자원순환의 의미를 더했다. 이날 행사에는 지역 주민 등 229여 명이 찾아와 구매가 곧 나눔이 되는 아름다운가게에서 판매 중인 의류, 생필품, 도서 등을 다양한 가격으로 구매하며 착한 소비에 함께했다. 여성과 도시는 이날 행사 판매수익금 전액을 아름다운가게로 전달, 수익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에 지원할 예정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자원 재순환을 통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더불어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돕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역 주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물품 기부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에는 기부 천사, 구매 천사, 활동 천사, 등 3대 천사가 활동하고 있다, 아름다운가게는 2002년부터 전국 지역단위 아름다운가게를 운영해 얻은 수익금을 각 해당 지역의 소외계층을 돕고 환경을 보호하는데 지원하고 있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6-04-28

어떤 만두를 좋아하나요

고기만두 김치만두도 고르기 힘든데, 군만두를 시키면 찜만두를 빼놓긴 아쉽다. 짜장면을 먹으려면 얼큰한 짬뽕 국물이 아쉽고, 찍먹이냐 부먹이냐 다툴 시간에 탕수육 한 점 더 먹자는 실속파도 있다. 그렇게 늘 선택해야 할 때면 어떤 선택이 가장 옳은 일일지 고민하게 된다. 메뉴는 열 가지도 넘는데 두세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으니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은 늘 배달시켜 먹다가 직접 가서 보글보글 끓여 먹는 전골이 땡겨서 가게로 갔다. 우리 집에서 걸어서 갈 거리에 있다. 오래전부터 장사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자세히 살피니 벽에 1996년부터라고 적혔다. 와아···. 30년을 손만두를 빚으셨구나. 가게 안쪽에서 열심히 빚는 모습이 보였다. 대식가인 남편과 아들이 함께라 먹고 싶은 메뉴 다 시켜도 되니 좋았다. 자리에 앉아서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계산까지 한다. 일단 만두전골(전골은 기본 2인분이다.)을 누르고 난 후 손가락이 멈췄다. 나에게 어떤 만두가 제일 맛있느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군만두이다. 특히 코끼리만두의 군만두는 피가 얇아 기름에 구워도 딱딱하기보다 포삭한 느낌이라 입천장이 긁히진 않는다. 군만두도 시키고 싶지만, 비빔만두에 채소 무침이 함께 나오니까 칼칼한 쫄면도 빼고 비빔만두 하나만 시켰다. 이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 중에 어떤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춰봅시다 딩동댕동! 김치만두로 정했다. 더 시키려는 남편을 만류하며 전골에 공기밥도 먹어야 하고, 마지막에 후식으로 볶음밥도 먹으려면 참아야 한다고 아들이 강조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시키자며 씨익 웃었다. 계산을 내가 한다고 하니 이참에 더 시키고픈 얼굴이다. 남편만 매장 방문이 처음이다. 가까운 곳에 이런 맛집이 있었느냐고 놀란다. 코끼리만두의 한 가지 단점은 주차장이 없다는 것. 그래서 멀리서 방문하는 사람들은 포항 북부 바닷가 영일대해수욕장에 자리한 공영주차장을 이용하고 걸어오면 된다. 걸어오기에 멀다 싶으면 근처 골목길에 눈치껏 대야한다. 들어가며 간판을 보니 빛이 바랬다. 붓글씨로 쓴 듯한 ‘코끼리만두’는 만두에 진심이라는 듯 점잖다. 밑에 ‘직접 빚은 만두전문점’이라고 작게 설명이 붙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가게는 자리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전골이 끓기 기다리는 동안 배달주문이 끊임없이 울렸다. 고기와 버섯을 먼저 먹고 만두 하나씩 앞접시에 덜어와 후후 불어서 맛보았다. 속도 알차다. 원산지 표시를 보니 만두소에 들어간 돼지고기와 배추와 고춧가루까지 모두 국내산이다. 사이드로 나오는 반찬까지 모두 국산이다. 전골의 맨 위 소고기도 한우였다. 십여 년 전 시댁에서 어머님을 위한 만두를 만들었다. 고기는 닭도 돼지도 오리도 못 드시고 소고기만 드셔서 소고기를 구워 먹을 만큼 샀다. 부추만 넣는 간단한 만두 레시피였다. 만두소에 두부, 신김치 같은 채소를 잔뜩 넣으면 고기가 기본만 들어가도 양이 그득하지만, 부재료가 부추가 다였으니 고깃값이 많이 들었다. 만두피를 반죽해서 얇게 밀어야 하는데 홍두깨가 없어 보온병으로 밀고, 동그랗게 찍어낼 때는 주전자 뚜껑으로 눌렀다. 만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소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잘게 썰고 뒤섞느라 어깨가 아프지만 피를 얇게 밀면 빚다가, 또 국물 속에서 익다가 터지기 일쑤라 적당히 두꺼워야 한다. 작게 빚어야 하니 빚는 시간도 만만찮아 가족이 다 모여서 큰일 치르듯 해야 한다. 그러니 자주 해 먹기 힘들어 맛집 리스트를 작성한다. 리스트 중에 우리 집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 코끼리만두이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십이령 봉화 상무사 유적 ‘조령성황사의 가치와 보존’

봉화 상무사는 조선시대 봉화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보부상단을 일컫는 명칭이다. 조선의 보부상은 전국적으로 존재했던 행상인 집단으로, 각 지역 오일장을 기반으로 상권을 형성하고 유통 질서를 일정 부분 관리해 왔다. 보부상 조직은 시대에 따라 제도적으로 변화했다. 1866년 보부청을 비롯해 1883년 혜상공국, 상리국 등으로 명칭과 운영 체계가 바뀌며 중앙의 관리 아래 조직화됐다. 이후 대한제국 시기인 1899년에는 상무사가 설립되면서 봉화 지역 행상단은 봉화상무사로 명칭이 바뀌어 활동하게 된다. 상무사는 중앙에 사장을 두고, 각 도 관찰사가 분사장을 맡았으며, 군·현 단위에서는 군수와 현감이 분사무장 역할을 수행하는 구조였다. 그 아래 공사원, 장무원 등이 임명됐고, 각 지역 임방에는 반수와 접장을 두는 등 비교적 체계적인 조직 운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04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보부상단과 상무사는 점차 해체되었고, 시장 유통 구조에서도 배제되며 기능을 상실했다. 1920년 이후 일부 잔존 조직들이 조선총독부에 탄원하면서 충청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명맥만 유지됐고, 현재는 문서, 인장, 현판, 비석 등으로 흔적이 남아 있다. 봉화상무사의 활동 흔적은 십이령(울진 두천리)과 봉화·울진을 잇는 고갯길 일대에 집중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울진 두천리의 내성행상불망비 2기와 십이령 샛재의 조령성황사는 대표적 유적이다. 그리고 보부상합동위령비, 차정서, 토지 이관문서, 토지대장 등과 함께 16개의 현판이 남아 봉화상무사의 조직과 활동을 보여주는 핵심 사료로 평가된다. 내성행상단이 관할하던 시장 권역은 봉화군과 울진군 두 지역으로, 울진의 현내장·매야장·흥부장과 봉화의 내성장·장평장·춘양장·소천장·후평장 등을 포함했다. 이들은 울진의 해산물과 봉화의 곡물·특산물을 교환하는 상호 교역 구조를 형성했다. 십이령 열두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 길목 중 하나인 샛재 조령성황사는 보부상들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고 선대 제사를 지내던 제소였다. 제단에는 ‘조령성황신위’ 위패가 모셔졌으며, 보부상들이 전용으로 사용한 성황당이었다. 조령성황사 내부에는 1868년 ‘중수기’를 비롯해 1878년 ‘개와시’ 등 현판이 남아 있으며, 반수·접장·공원 등 직책과 인명이 기록돼 조직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이 현판들은 봉화 보부상의 역사와 활동 시기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다. 조령성황사에 남아 있는 16개 현판은 186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기록으로, 봉화 보부상단의 활동과 조직 변화를 보여주는 희귀 자료다. 그러나 상당수는 노후화가 진행돼 보존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십이령 고갯길은 외씨버선길과 동서트레일, 울진 금강송 숲길과 연결되며 탐방객이 찾는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조령성황사 역시 개방되어 있으나, 출입과 이용 방식에서 본래 성격이 훼손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보부상은 한때 전국 8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던 평민 상인 조직으로 독자적인 규율과 윤리, 의례를 갖춘 상업 공동체였다. 그러나 현재는 그 문화와 풍속이 역사 기록 속에만 남아 점차 잊혀지고 있다. 십이령 보부상의 핵심 유산인 조령성황사와 관련 유물은 조선 후기 상업사와 민중 경제사의 중요한 증거로, 체계적인 보존과 문화재적 관리가 요구되며 관계 기관의 관심이 필요하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만난 필사의 힘

필사는 베껴 쓰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좋은 문장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문장 안에 오래 머물고 싶어 감탄이 옅어지기 전에 하는 게 바로 필사다. 누군가는 필사를 통해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가 일어나기 쉽지 않아서다. 작가를 꿈꾸는 한 지인이 도서관 수업에서 지난 일 년간 필사한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랑삼아 보여 주었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필사를 꾸준히 해온 그 시간에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 문학기행으로 간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도 필사의 힘을 마주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소설 ‘태백산맥’을 읽지 못하고 문학관을 다녀온 게 아쉬웠다. 핑계지만,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읽으려고 미루어둔 것이기도 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 정도다. 문학관 일대는 작은 동네였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문학관은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우리 현대사를 말하기 위해 제석산의 흙을 깊숙이 파내 지어서였다. 대신 날개처럼 보이는 유리 모양 탑은 새 희망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문학관 앞에 서니 정면에는 조정래 소설가의 사인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은 옹벽이 보였다. 이 옹벽은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염원을 고구려벽화로 표현했다. 문학관은 건축에서조차 소설의 내용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마 다른 문학관이었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관 근처에서는 소설 속에 나온 현 부자네 집과 소화네 집이 있었다. 현 부자네 집은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마당 가운데 길을 막고 꽃과 나무가 심겨 있어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전시실은 소설가 조정래의 커다란 힘이 저절로 느껴졌다. 문학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문학이 된 힘이었다. ‘태백산맥’이라는 책 표지 모형부터 4년간의 취재, 6년간의 집필에 쏟은 정성이 한눈에 보였다. 그중 시작을 알리는 1, 2, 3권은 6년 중 3년에 걸쳐 집필해 서두에 많은 시간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무대인 벌교,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전시실 한쪽에 우뚝 솟은 작가의 육필 원고였다. 빛바랜 갈색의 원고지는 사람 키를 훌쩍 넘겼다. 무려 1만6500매라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의 완성본이 되기까지 버려진 원고지는 이보다 더 많았겠다 싶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보다 더 놀랍다.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본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태백산맥’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들이 엄청나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문구 아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필사본 전시실이 하나였는데 하나가 더 늘어났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을 보니 일흔이 넘은 고령의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이 있었다. 필사를 매일 3~4시간씩 20개월에 걸쳐서 했다고 한다. 작가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태백산맥’의 진정한 독자임을 스스로 증명한 거였다. 순간, 이런 행운을 누리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싶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필사본 전시실엔 두 칸이 빈걸 보니 저 안에 직접 필사한 ‘태백산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7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산책) 이팝나무

여인의 마음을 한껏 달뜨게 하던 벚꽃이, 소리도 없이 떠나버리고 이제 다른 풍경이 들어섰다. 가로수마다 하얀 것이 수북이 매달려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막 지은 쌀밥이 가지마다 봉긋하게 얹힌 듯하다. 바라만 보아도 어쩐지 속이 든든해지는 착각이 든다. 이팝나무는 참으로 솔직한 나무다. 이름부터가 숨김이 없다. 배고픈 시절 사람들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꽃이 피면 스스로를 감추지 않는다. “나는 쌀밥이다” 하고, 가지마다 대놓고 밝힌다. “이밥에 고깃국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팝나무라는 이름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입하에 피는 나무라 하여 ‘입하목’이 ‘이팝’이 되었다는 말도 있고, 꽃이 만발하면 풍년이 들어 쌀밥을 먹게 된다는 믿음에서 ‘이밥나무’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꽃이 피면 나무 전체가 하얀 쌀밥처럼 보여 그렇게 불렸다는 설명이다. 자연이 지어낸 한 그릇의 밥, 그것이 바로 이팝나무다. 그러나 이 꽃이 피는 시절은 공교롭게도 보릿고개다. 일 년 중 가장 허기진 계절, 뒤주는 비고 아직 수확할 것이 없다. 그런 때 산과 들에는 쌀밥 같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그 풍경이 과연 아름답기만 했을까. 어떤 이에게는 꽃구경이 아니라 견디기 힘든 고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눈으로는 배부르고, 속은 더욱 비어가는 시간. 사람들은 그 꽃을 바라보며 허기를 달래고, 또 허기를 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팝나무는 어쩌면, 배고픔이 만들어낸 집단의 환영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이밥에 고깃국”은 삶의 가장 소박하면서도 간절한 소망이었다. 지금은 넘쳐나는 음식 속에서 칼로리를 따지고, 쌀밥을 멀리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 쌀밥 한 공기는 곧 삶의 품격이었고, 부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벼슬을 해야 임금이 내리는 흰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여, 쌀밥을 ‘이(李)왕조의 밥’, 곧 이밥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밥 한 그릇에도 신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던 시대였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의 길은 길고도 고되다. 볍씨를 뿌리고, 모를 키우고, 물을 대고 빼고, 다시 논으로 옮겨 심는다. 그리고 김을 매고 또 맨다. 초벌, 두벌, 세벌···. 풀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그렇게 자란 벼를 베고, 타작하고, 정미소에서 껍질을 벗겨야 비로소 하얀 쌀이 된다. 그 수많은 손길을 ‘여든여덟 번’이라 하여, 쌀 미(米) 자에 팔(八)이 겹겹이 들어갔다고도 한다. 한 숟갈의 밥에는 그만큼의 땀과 시간이 스며 있다. 그래서일까, 이팝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은 유난히 애잔하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아이의 무덤에, 살아생전 먹지 못한 쌀을 함께 묻었더니 이듬해 그 자리에서 하얀 꽃이 피어났다는 전설. 꽃은 눈부시게 희지만,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먹먹하다. 배부름을 향한 간절함이 결국 꽃으로 피어난 셈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더 아프다. 제사를 준비하던 며느리가 밥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려다 밥알 몇 알을 입에 넣는다. 그것을 본 시어머니는 크게 노하여 며느리를 쫓아낸다. 제삿밥은 어떤 경우에도 손대지 말아야 할 신성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함을 풀 길 없던 며느리는 끝내 뒷산에서 생을 마감하고, 이듬해 그 무덤가에 하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팝나무의 흰빛은 단순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사연과 눈물까지 품고 있는 색이다. 세월은 흘러, 이팝나무의 의미도 조금씩 변해갔다. 배고픔의 상징이던 쌀밥은 더 이상 귀한 음식이 아니게 되었고, 사람들은 꽃을 보며 침을 삼키기보다 청소를 걱정한다. “꽃이 너무 많이 떨어져 지저분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한때는 풍년을 기원하며 바라보던 꽃이, 이제는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나무도 시대를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팝나무 앞에 서면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한 끼의 밥, 그 속에 담긴 수고와 시간, 그리고 오래전 사람들의 허기와 소망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얀 꽃잎이 바람에 흩날릴 때, 그것이 단순한 꽃비가 아니라 기억의 낱알이라면, 세상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 배부른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 말을 웃으며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따뜻한 세상이 아닐까?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6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복원은 언제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매년 문화유산 20~30건을 중점 관리 대상으로 정해 구조 안전, 보존과학, 생물 피해 상황을 확인한 뒤 ‘양호’ ‘경미 보수’ 등 등급을 나눠 평가한다. 최근 2025년 중점관리 대상 문화유산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하면서 국보 13건, 보물 11건 등 24건을 점검한 결과 ‘경주 불국사 대웅전(보물)’, ‘안동 법흥사지 7층전탑(국보)’, ‘강릉 보현사 낭원대사탑비(보물)’ 3건의 문화유산이 수리가 필요한 등급을 받았다고 했다. 불국사 대웅전은 작년 2월 천장 일부에 문제가 발견됐고, 2023년 점검에서도 건물 부재 일부에서 파손·간격 벌어짐·처짐 등이 확인됐다. 올해 연말쯤 가설 덧집을 먼저 짓고 기와부터 걷어가면서 내부 상태를 보고 해체 수리 범위를 결정할 것이라며 공사 기간은 2~3년 걸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함께 같은 등급을 받은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도 이참에 제대로 수리 및 복원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통일신라시대 전탑은 경북 안동에 여러 기가 현존한다. 안동시 법흥동에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운흥동에 보물 ‘안동 법림사지 오층전탑’, 일직면 조탑리에 보물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이 자리하고 있고,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사찰에도 보물 ‘송림사 오층전탑’이 자리한다. 안동시 일직면 ‘안동 조탑리 오층전탑’은 사과나무를 베어내고 말끔하게 수리했으며,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도 수리해 팔공산 자락 송림사 대웅전 앞에 의젓한 자태를 돋보이고 있다. ‘법흥사지 7층전탑’은 1단의 기단 위로 7층으로 쌓은 높이 17m, 기단 너비 7.75m로 우리나라 최고 전탑이다. 기단 각 면엔 화강암으로 조각된 팔부중상(八部衆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붙였고, 동쪽 면에는 1층 몸돌에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을 만들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계단을 만들어 누가 봐도 으뜸을 보인다. 그런데 감실을 향하는 계단은 시멘트 구조물에, 기단의 각면에 조각된 팔부중상과 사천왕상 위로 1층 몸돌까지 사방 전체가 경사진 시멘트 구조물이다. 그간 중앙선 철길 영향으로 탑신과 시멘트 틈에 쇳물이 누렇게 베여 현존하는 전탑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시대 전탑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보존돼 왔다. 원래 시멘트 바른 자리에는 화강석과 감실 계단석이 있었으나 주변 건축의 부재로 썼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아직 행방이 묘연해 70년 넘게 지금 모습이다. 게다가 서쪽 면의 기단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상에 시멘트를 바른 석축이 흉하다. 정밀 추적 조사를 통해 원형 복원이 아쉽다. 덧붙여 문화재당국에 바람이 있다면 안동읍지 ‘영가지’에 나오는 법림사 전탑은 법흥사지 전탑과 함께 7층으로 탑 위에 금동장식이 있는 유서 깊은 전탑이다. 명나라 군에 의해 철거돼 지금은 5층만 남아 있다. 일제가 중앙선 철로 부설 때 절터 일대를 성토해 ‘법림사지 오층전탑’과 ‘당간지주’만 남긴 남쪽은 콘크리트 옹벽, 서쪽은 흙으로 둑을 쌓았다. 전탑은 또 지표보다 40cm 정도 더 푹 꺼진 자리에 현존한다. 구 안동역사 주변에 법림사지를 되찾아 오층전탑 일대를 원래대로 복원해 법흥사지 칠층전탑을 아우른 통일신라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면 어떨까 싶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6-04-26

대구 서구 비산노인복지관 개관

대구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이 1년여 공사 끝에 지난 23일 개관식을 가졌다. 총사업비 163억원이 투입돼 5층 규모로 건립된 비산노인복지관은 지역 어르신들의 삶을 보듬을 배움과 쉼터로서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이날 개관식은 시설 개소식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의미 있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장에는 류한국 대구 서구청장과 정영수 대구 서구의회 의장을 비롯해 지역 정치·행정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 대한노인회 서구지회 윤진 회장, 대구광역시사회복지협의회 강영신 이사장, 대구노인복지관협회 김진홍 회장 등 사회복지계 주요 인사와 지역 주민 200여 명이 함께해 개관을 축하했다. 행사의 시작은 비원노인복지관 어르신들로 구성된 ‘더조은소리 하모니카팀’의 연주였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선율이 강당을 채우자, 마치 지나온 세월의 이야기가 음악이 되어 흐르는 듯했다. 개관식은 개회선언과 내빈 소개, 경과보고, 인사말과 축사 순으로 진행되었고, 특히 다섯 개의 바람개비 퍼포먼스가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대구 서구 곳곳에 자리한 다섯 곳의 노인복지관들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로 권역별 복지 인프라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은 2025년 1월 첫 삽을 뜬 이후 약 1년 여의 시간을 거쳐 올 3월 완공되었다. 총 16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 공간은 연면적 2021㎡ 규모로, 단순한 복지시설을 넘어 ‘삶의 쉼터’이자 ‘배움의 터전’으로 설계되었다. 1층에는 누구나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북카페와 정보화 교육장이 자리하고, 2층에는 사무실과 강의실이 들어섰다. 3층은 따뜻한 식사가 오가는 식당과 다양한 프로그램실로 꾸며졌으며, 4층에는 강당과 탁구장, 건강증진실이 마련되어 활기찬 노년을 지원한다. 5층의 다목적 공간은 세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처럼 층마다 담긴 기능은 어르신들의 하루와 삶의 흐름을 세심하게 배려한 결과물이다. 쉬고, 배우고, 움직이며, 서로를 만나는 모든 순간이 이곳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된 것이다. 류한국 서구청장은 축사를 통해 “권역별 노인복지관 조성의 결실로 다섯 번째 복지관이 문을 열게 되어 매우 뜻깊다”며 “접근성이 뛰어난 이 공간에서 어르신들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 운영을 맡은 사회복지법인 금화복지재단 신경용 대표도 깊은 책임감을 전했다. 그는 “이곳이 어르신들이 편히 쉬고, 배우며,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개관식의 마지막은 테이프 커팅과 시설 라운딩으로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새로 문을 연 공간을 둘러보며, 앞으로 이곳에서 펼쳐질 수많은 이야기들을 조용히 그려보았다. 웃음이 머무는 자리, 배움이 이어지는 교실, 건강한 움직임이 흐르는 공간,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따뜻한 만남의 장면들이 그려졌다. 서구 비산노인복지관의 개관은 단순한 건물의 완성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 사회가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삶의 방향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봄날에 문을 연 이 공간이 계절을 거듭할수록 더 깊은 온기를 품고, 많은 이들의 삶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4-26

천년의 뿌리를 잇는 품격의 결집, 종친회

최근 대구 시내 한 식당에서는 경주 손씨 대구종친회 제61차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70여 명의 종친이 참석해 선조의 유훈을 되새기고, 문중의 정체성과 문중의 사회적 기여와 미래를 함께 모색했다. 대구종친회 손수여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종헌(宗憲)의 깊은 의미를 환기시키며 숭조정신의 실천”을 강조했다. 그는 서기 32년, 육부촌 6성의 득성조이자 문의왕으로 추봉된 시조 구례마 할아버님의 후손으로서, 단순한 혈연적 연대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사명에도 충실해야 함을 역설했다. 아울러 경주·밀양·평해를 본관으로 하는 손씨가 동일한 시조와 중시조 효자공 손순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 뿌리임을 상기시키며, 종친 모두가 자긍심과 책임의식을 함께 지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천년고도 경주와 양동마을이 지닌 역사적 가치 또한 깊이 조명됐다.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이들 지역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경주 손씨를 비롯한 명문가 집성촌의 정신과 전통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유산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대종손 손성훈은 격려사를 통해 경주 육부전 상량문에 기록된 구례마 시조의 위업을 인용하며, 그 역사적 위상을 다시금 일깨웠다. 무산대수촌장으로서 손씨 성을 하사받고, 구미산신인으로서 충렬공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기좌명공신으로서 문의왕에 봉해진 사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후손들이 지켜야 할 정신적 유산임을 강조했다. 그는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경주 손씨 후손으로서 긍지와 책임을 함께 지니고, 전통을 계승하는 구심점으로 더욱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동음회를 비롯해 경주·부산·울산·포항 종친회 회장단이 참석해 덕담이 이어졌으며, 지역을 넘어선 종친 간의 연대와 화합을 공고히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총회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 선조의 얼을 계승하고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함께 모색하는 정신적 결집의 장이었다. 경주 손씨 대구종친회는 앞으로도 전통의 계승과 시대적 책임을 조화롭게 실천하며, 문중의 품격과 위상을 더욱 높여갈 것을 약속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6-04-26

작은 마당, 사계절을 품은 소우주

열 평 남짓 작은 마당이 사계절을 품는다. 매일 같은 자리 같은 풍경인 듯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제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요란하지 않지만 작은 생명들이 꼬물꼬물 쉼 없이 움직인다. 4월이 깊어 봄 한복판에 이르면 작은 이별들이 보인다. 연보랏빛의 고운 자태로 봄을 알리던 깽깽이풀은 금세 꽃잎을 떨어뜨리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할미꽃도 미련 없이 머리를 풀어 헤친다. 화려함은 잠시뿐, 그제야 잎을 내며 생명은 또 다른 시간을 이어간다. 꽃들뿐만이 아니다. 이슬 맺힌 거미줄, 깽깽이 씨앗을 나르는 개미, 배양토를 빚는 지렁이 그리고 바삐 날아다니는 벌 나비까지 작은 마당에서 꼬물거리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서두름도 머뭇거림도 없다. 도심 속 작은 공간에서도 자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겨울 끝자락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20여 년 전 양지바른 곳에 할미꽃이, 반그늘 자리에는 깽깽이풀이 각 한 포기로 터를 잡았는데 지금은 제법 군락을 이룬다. 스스로 번식하며 자리를 넓혀가는 모습이 때로는 대견하다. 마당 한편을 차지한 수사해당이 벚꽃 못지않은 화려함으로 마당을 환히 밝히는 이 봄, 번식력 강한 국화는 이미 부지런히 잎을 키우며 가을을 준비한다. 긴 여정이 봄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오월이 오면 찔레꽃이 피어난다. 그 은은한 향은 언제나 유년시절을 주저 없이 소환하고, 작약의 단단한 꽃봉오리가 갑자기 툭! 터지듯 피어나는 그 순간은 마주할 때마다 놀랍다. 유월이 되면 마당의 중심은 수국이 차지한다. 토질과 햇빛의 노출 정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수국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이렇게 계절은 꽃을 바꾸어 가며 마당을 채운다. 제한된 공간에서도 사계절은 분명하게 흐른다. 춘하추동, 나고 자라고 거두고 감추는 순서를 어기지 않는다. 게으르지도 조급하지도 욕심을 내지도 않는다. 그러나 햇살이 닿는 자리와 그늘진 자리를 두고 보이지 않는 경쟁이 벌어지고, 어디선가 날아온 씨앗이 터를 잡으면 원래 있던 꽃들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하얀민들레, 초롱꽃, 사랑초, 꿀꽃, 백리향, 기린초까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생명들이 비좁은 마당에서 영역 다툼을 한다. 식물의 삶에서도 약육강식은 존재하고, 그 또한 자연의 질서 속에 스며 있다. 봄꽃과 가을꽃은 삶의 방식이 서로 다르다. 봄꽃은 겨우내 포근한 대지의 품속에서 준비한 꽃봉오리를 아직 찬 기운이 남은 세상 밖으로 밀어 올린다. 그렇게 올라온 꽃이 이내 씨앗을 품기 시작하면 그제야 잎을 낸다. 그래서 봄꽃의 개화는 짧고 강렬하다. 반면 가을꽃은 봄부터 잎을 내고 여름 내내 뜨거운 햇빛을 즐기며 천천히 준비한다. 긴 시간을 들여 꽃봉오리를 키운 뒤 가을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잎을 낸다. 그래서인지 개화 기간이 봄꽃보다 길다. 충분히 준비한 만큼 오래 머문다. 작은 마당에 터 잡은 생명들은 조용하지만 결코 단조롭지 않다. 꽃이 피고 지는 때를 알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삶.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단단한 삶일지도 모른다. 작고 소박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이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작은 마당을 ‘소우주’라 부른다. 그리고 오늘도 그 안에서 세상의 시간을 배운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

봄날, 재즈로 물든 무대···'카리나 네뷸라 공연'

지난 11일 대구 서구문화예술회관에서 따스한 봄의 기운과 함께 카리나 네뷸라의 공연 ‘JAZZ CIVAS’이 서구 구민들을 찾아왔다. 이번 공연은 각기 다른 음색을 지닌 네 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한 무대에 올라 피아노, 기타, 베이스, 드럼과 어우러지며 다채로운 재즈의 매력을 선보였다. 재즈를 접해본 적 없던 시민기자에게 이번 공연은 새로운 음악적 관심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첫 무대를 장식한 카리나 네뷸라의 신입 멤버 임채희를 시작으로 김민희, 박라온, 그리고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말로까지, 각자의 개성과 색깔이 또렷하게 드러나는 무대가 이어졌다. 임채희의 무대는 재즈의 첫 경험을 신선하게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맑고 깊은 음색으로 곡의 감정을 섬세하게 끌어올리며, 자신만의 색을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히 멜로디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곡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정서를 입체적으로 표현해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냈다. 이어진 김민희의 무대는 한층 더 성숙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A Weaver of Dreams’와 ‘Spring Can Really Hang You Up the Most’ 두 곡을 통해 잔잔하고 편안한 음색을 선보이며 관객들의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감쌌다. 특히 두 번째 곡에 앞서 봄에 싹을 틔우는 새싹을 응원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계절의 따뜻한 기운을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담아냈다. 또한 그는 “함께 술자리를 즐기던 친구지만 같은 무대는 처음”이라며 임채희를 다시 소개해 관객들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 두 사람은 ‘Just in Time’을 함께 부르며 비슷한 음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듀엣 무대를 선보였다. 악기와 목소리가 하나처럼 어우러지는 순간, 두 사람의 목소리 또한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졌다. 김민희의 소개로 이어진 박라온의 무대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천사의 목소리’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맑고 청아한 음색은 가볍고 투명하게 공간을 채우며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마지막 무대는 ‘스캣의 여왕’이라 불리는 말로가 장식했다. 김민희는 그녀를 소개하며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 보컬 음반 부문 수상 이력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식어보다도, 실제 무대 위에서 마주한 그녀의 존재감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었다. 힘 있는 목소리와 리듬감 있는 몸짓, 그리고 넘치는 자신감으로 채워진 무대는 단숨에 공연장의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말로와 박라온의 듀엣 무대 이후, 네 명의 아티스트는 다시 한 무대에 올라 ‘Danny Boy’, ‘Happy’, ‘Spain’을 함께 그리고 번갈아 부르며 서로의 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무대는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였다. 관객들 역시 단순히 공연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박수와 몸짓, 그리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공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재즈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이번 카리나 네뷸라의 공연은 봄날의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재즈가 가진 매력을 한껏 전해준 무대였다. 서로 다른 색을 지닌 목소리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이 밤의 기억은, 관객들에게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