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사회

늘 그리움 속에 사는 시인, 가우 박창기

시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누군가는 언어로 산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사랑으로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가우 박창기 시인은 “그리움으로 산다”고 말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한 인간의 진솔한 고백과 마주하게 된다. “늦었지만/ 나, 속 털겠네/ 가진 게 없어/ 남길 것은 없지만/ 속 썩인 거/ 미안하다 말하기/ 더 사랑하지 못한 것까지/ 미워해 달라 말하기···.” 시 ‘돌아가는 길’의 한 대목이다. 아내를 향한 참회의 고백이자 언젠가 하느님 앞에 설 날을 준비하는 한 영혼의 고해성사처럼 읽힌다. 박창기 시인은 1990년 첫 시집 ‘창 밖에 내리는 별빛’을 펴낸 이후 지금까지 무려 16권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하루 한 편의 시를 쓰자’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여 년 넘게 시를 써온 셈이다. 그의 문학 인생은 단순히 시를 쓰는 데 그치지 않았다. 1996년 동인들과 함께 포켓시집 ‘주머니 속의 행복’을 발간하며 지역 시문학 보급에 나섰고, 이후 계간 ‘詩하늘’로 발전시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청년 시절 그는 한때 시와 결별을 결심했다. 군 입대를 하루 앞두고 집 마당에 구덩이를 파고 습작 노트를 모두 태워버리며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다시 시의 길로 이끌었다. 결국 그는 평생 시를 쓰는 시인이 되었고, 열여섯 권의 시집을 남겼다. “내가 기다리는 것은 그리운 본향을 만나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은 사랑하는 임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시 ‘나와 임은’은 신앙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귀향에 대한 갈망이 담긴 작품이다. 그의 시에서 ‘임’은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하느님이며, 인간 존재를 품어주는 절대적 사랑의 상징이다. 교직에서 정년퇴임한 뒤 그는 아내와 함께 청도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막상 살아보니 낭만만 있는 삶은 아니었다. 도시와 떨어진 생활은 예상보다 불편했고, 특히 운전을 하지 못하는 아내를 홀로 두고 외출할 때면 늘 마음이 무거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던 중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그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백신 후유증으로 투병하던 아내가 폐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했던 반려자를 먼저 보내고 그는 홀로 남게 되었다. 청도 집 마당에는 그가 심은 나무와 꽃들이 자라고 있다. 벌과 새가 찾아드는 작은 낙원이 되었지만 정작 그 풍경을 함께 나눌 아내는 곁에 없다. 그래서 그의 시는 늘 빈자리를 향한다. 채워질 수 없는 그리움을 품은 채 오늘도 시를 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유아세례를 받고 다섯 살 무렵부터 성당 마당에서 뛰놀며 자랐다. 예수님과 성모님, 그리고 하느님은 그의 평생의 벗이자 그리움의 대상이 되었다. 박창기 시인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어는 사랑이고 신앙이며 그리움이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 고향을 향한 그리움, 그리고 궁극적으로 하느님을 향한 그리움이 그의 시를 이루는 뿌리다. 박창기 시인을 만나며 시민기자는 문득 ‘시인은 무엇을 남기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재산과 명예는 세월과 함께 희미해지지만, 진심이 담긴 언어는 오래도록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다. 박 시인의 시는 화려한 기교보다 삶 속에서 길어 올린 사랑과 상실, 신앙과 기다림의 기록이다. 특히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뒤에도 절망에 머무르지 않고 그리움을 시로 승화시키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준다. 세월은 육신을 늙게 할 수 있어도 시인의 마음까지 늙게 하지는 못한다. 오늘도 그는 한 편의 시로 사랑을 기억하고 삶을 성찰하며, 우리에게 그리움의 소중한 가치를 전하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6-09

이사람) ‘팔공산에 살어리랏다’ 출간한 산중식당 김태락 옹

대구의 명산 팔공산 자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산중식당’에 들어서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풍모의 노신사가 취재진을 맞는다. 대기업 창업주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자태와 또렷한 음성의 주인공은 최근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전적 기록을 담은 저서 ‘팔공산에 살어리랏다’를 세상에 내놓은 김태락(89) 옹이다. 문학 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고령이 무색하게 여전히 사업체를 리드하는 그를 만나 반세기를 이어온 팔공산의 역사와 그의 유구한 인생철학을 들었다. 김태락 옹이 팔공산에 터를 잡은 것은 10살이던 1940년대 후반. 경주 건천에서 기념품 판매를 하던 부모님을 따라 길도 없고 하늘과 산밖에 보이지 않던 팔공산 오지 ‘절골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부모님은 동화사 입구에서 기념품을 팔며 생계를 잇고, 소년 김태락은 2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날만 새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를 한가득해 나르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백안동까지 6km, 때로는 아양교까지 왕복 몇 시간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그 모진 세월이 지금의 그를 키운 자양분이 됐다. 국립공원 승격과 행정 난맥상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평생을 팔공산 지킴이로 살아온 만큼, 최근 팔공산이 대한민국 제23호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것에 대한 그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지역 원로로서의 깊은 우려와 책임감이 교차한다. 국립공원이 돼야 마땅하다고 앞장서서 활동해 왔지만, 막상 승격되고 나니 주민들의 고충이 너무 컸다. 특히 대구시의 행정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것을 꼬집었다. “국립공원공단과 구청이 서로 책무를 미루는 난맥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주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는 1980년대 초 관선 이상희 대구시장 시절, 주민들과 소통하며 팔공산 자연공원을 체계적으로 개발했던 때를 회상하며, 현 행정 당국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 현실에 탄식했다. 침체한 로컬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팔공산의 상징인 ‘봉황’을 스토리텔링하여 조형물을 세우는 등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락 옹이 운영하는 ‘산중식당’은 기념품점으로 시작해 1987년 현재의 향토 음식점으로 바꾸어 반세기 동안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구시 지정 ‘산나물 향토 음식 시범업소 1호’라는 타이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평생을 지켜온 어머니의 유훈이 있다. 처음 식당을 하려고 비빔밥을 만들어 올렸을 때, 어머니께서 ‘솜씨가 없으면 꺼리라도 좋아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그 말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자식들에게 가업을 물려준 지금도 그는 식자재만큼은 최고급을 고집한다. 곤드레나물은 강원도 횡성 생산 농가에서 직송받아 전용 냉동고에 보관해 사용한다. 또한, 한 번 상에 나간 음식은 젓가락을 대지 않았더라도 전량 폐기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보이지 않는 주방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짓을 하면 고객이 먼저 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팔공산이 인생에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내게 팔공산은 엄마 품과 같습니다. 모든 먹고 입는 것을 해결해 준 은혜로운 산이지요. 죽어서도 뼈와 영혼마저 이곳에 묻히고 싶습니다.” 이유 있는 대가의 묵직한 울림. ‘팔공산에 살어리랏다’라는 아홉 글자 속에는 한 남자의 인생과 대구의 영산 팔공산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2026-06-09

창립 127주년 맞은 계명대학교

지역의 사학 명문 계명대학교(총장 신일희)가 1899년 제중원 개원을 시작으로 올해 창립 127주년을 맞았다. 개교기념일인 지난달 20일 아담스 채플 대예배실에서는 창립 127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기념식에는 정순모 학교법인 계명대학교 명예이사장, 김남석 이사장, 이재하 총동창회장, 신일희 총장을 비롯해 교내 구성원 7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국민의례, 기도, 유공자 포상, 총장 기념사, 총동창회장 축사 순으로 진행됐다. 계명대는 창립 127주년을 맞아 우수한 교육·연구 성과를 이룬 교수와 직원 69명에게 계명금장, 공로상, 업적우수상, 모범상, 출판문화상, 학생지도 우수교수상 등을 수여하며 대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렸다. 신일희 총장은 기념사에서 “우리는 인공지능 확산과 사회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며 “계명대학교는 AI 네이티브 대학으로의 전환을 통해 교육·연구·의료 전반의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을 향한 책임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미래를 만들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재하 총동창회장은 “동문과 구성원의 헌신 속에서 성장해 온 계명이 앞으로도 AI 시대를 이끌 인재 양성의 중심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계명대학교는 구한말 당시 제중원을 운영하던 선교사들이 의료 활동과 더불어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를 설립하였는데 ‘계명’은 이들 학교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대학의 역사를 보면, 1899년 제중원 창립, 1954년 5월 20일 계명기독학관으로 개관하여 1955년 계명기독학교, 1956년 계명기독대학, 1965년 계명대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고, 그 후 문교부 지정 실험 대학 사업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 1978년 드디어 종합대학교로 승격했다. 1996년에 대학행정본부를 대명동 캠퍼스에서 현재의 성서캠퍼스로 이전하여 30년이 되었다. 그동안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나라를 위하여’라는 이념 아래 학문적 성취와 인성 함양을 아우르는 교육을 실천해 왔으며, 지금은 ‘실천적 지성의 빛으로 미래를 여는 글로벌 브릿지 대학’이라는 2030 비전을 발표하였다. 계명대학교는 캠퍼스 전체가 한 장의 그림 같다. 건물 모양과 색상이 통일되어 질서 있고 단과대학마다 장독대 설치, 꽃밭 조성, 벽면 담쟁이 넝쿨, 건물마다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싸여 잘 조성된 공원보다 더 아름답다. 최근에는 달서구와 협력하여 뒷산인 궁산에 편백누리숲 조성 사업을 마무리 하였다. 총 면적 10헥타르에 3000 그루의 편백나무를 식재하여 궁산 일대 녹지 환경을 개선하고 학생과 지역 주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성서에서 미래로, 새로운 100년을 위해 도약하는 계명대학교의 비전이 성공하길 바란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6-09

(시민기자 단상) 문학기행이 남긴 유쾌한 성찰

지난 4월, 대구문인협회 회원들과 함께 3박 4일간 다녀온 일본 문학기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정이었다. 일본 하이쿠 문학 박물관을 둘러보고, 눈앞에 우뚝 선 후지산의 장엄함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경험은 문학적 감수성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여행의 감동과는 별개로, 또 하나의 ‘현대적 체험’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출입국 절차라는 이름의 긴 여정이다.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일이지만, 해외로 나가는 길목에서 마주하는 입국·출국 절차는 여전히 쉽지 않은 관문이다. 코드 확인, 지문 인식, 소지품 검사 등 철저한 보안은 시대적 요구이자 필수적인 과정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주는 피로감 또한 가볍지 않다. 특히 이번 일정처럼 3박 4일을 빠듯하게 소화한 뒤 맞닥뜨리는 공항의 긴 줄은, 여행의 여운을 음미하기보다 현실로 단번에 끌어내리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이미 지친 몸과 노쇠한 다리는 잠시만이라도 의자에 앉고 싶은 소박한 바람을 되뇌고 있지만,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그 순간,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일본 전통 시 형식인 하이쿠가 떠올랐다. 5·7·5의 짧은 호흡 속에 감정과 상황을 압축해 담아내는 그 형식이야말로, 이 난감한 심정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적절했기 때문이다. “공항 티켓/ 이게 다인데/ 자꾸 보여달라면/ 홀랑 벗을까?” 짧지만 솔직한 이 한 편의 하이쿠는, 공항에서의 경험을 유머와 자조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반복되는 확인 절차 속에서 느끼는 소소한 답답함과 이를 웃음으로 넘기려는 인간적인 여유를 오롯이 담았다. 물론 엄격한 보안 절차는 우리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누구도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 과정이 여행자의 피로와 불편이 조금 더 세심하게 배려될 수 있다면, 공항은 단순한 통과 지점을 지나 또 하나의 즐거운 기억의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거창한 데서만 태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긴 줄 속에서, 때로는 지친 다리 위에서, 그리고 때로는 “한 번 더 보여달라”는 말속에서도 피어난다. 그날 공항에서 태어난 한 편의 하이쿠는 말해주고 있다. 여행의 진정한 여운은, 풍경이 아니라 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김윤숙 시민기자

2026-06-09

이달의 등대

포항에 사는 사람의 특권이라면 언제든 바다를 옆에 끼고 해파랑길 따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는 것. 달리며 보는 바다 풍경은 언제 봐도 탄성을 부른다. 윤슬로 가득한 아침 바다, 서해안과는 다른 은은한 핑크색의 노을 지는 해변, 날씨에 따라 변하는 바다 빛깔을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항구마다 우뚝 솟은 등대를 보는 맛도 남다르다. 그중에 이달의 등대로 뽑힌 등대만 찾아보아도 며칠은 걸린다. 이달의 등대는 해양수산부가 역사적·조형적 가치가 있는 등대를 매월 선정해 소개하는 제도다. 2019년 1월부터 매월 이달의 등대를 선정해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해양관광 신규 수요 창출을 위해 전국의 특색 있는 등대를 선정한다. 오늘 소개할 곳은 2023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꼭두의 계절’ 촬영지이자 2025년 1월 이달의 등대로 선정된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 358-4번지 척사항 북방파제에 있는 성덕대왕신종 등대다. 척사항 등대는 멀리서 봐도 눈에 뜨이는 빨간색이다. 등탑 높이 10m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빨간색 불빛이 5초 간격으로 반짝이며, 감포 일대를 지나는 선박의 안전 길잡이 역할을 한다. 경주 동해안 최대의 항구인 감포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척사 어촌마을이 있다. 항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오류 해변의 백사장이 마치 비단을 펼쳐 자로 잰 것과 같다 하여 ‘척사(尺沙 )’라 불린다. 캠핑장이 있는 오류 해변과 사진 명소인 송대말 등대 사이에 자리하여 아직은 덜 알려져 조용하다. 작은 항구인 척사 방파제 끝에 경주만의 특색을 살린 이색적인 등대가 보였다. 성덕대왕신종 종각의 형태를 본떠 만든 등대가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19년 낡은 철제 간이 등대를 철거하고 새로 설치한 등대이다. 붉은색 등대 기둥은 종을 매다는 종각 역할을 하고 종각 안에 아담한 성덕대왕신종 조형물이 걸렸다. 가까이에서 살피면 비천상도 똑같이 재현되었다. 빨간 계단을 밟으며 올라 비천상을 어루만지며 등대를 한 바퀴 돌았다. 종 사이로 멀리 한옥 등대 송대말 등대가 보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신라시대의 귀한 보물 성덕대왕신종을 보는 경험은 신선했다. 매일 낮 12시 정각과 오후 6시에는 40초간 울리는 종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 종소리에는 어민들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어 더 뜻깊다.(경주국립박물관에 가면 매시 정각, 20분, 40분에 녹음된 소리를 들려준다.) 가까이에 있는 송대말 등대와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음각 기법으로 형상화한 감포항 등대까지 함께 둘러보시기를 추천한다. 이달의 등대로 뽑힌 특이한 모양의 등대 중에 야구 관련된 것이 있다. 이곳에서 일출이 유명하다. 부산 기장군 칠암항(칠암리) 일대에 있는 야구공·배트 모양의 등대를 배경으로 해돋이를 찍은 사진이 많이 SNS에 올라온다. 야구등대와 인근 갈매기등대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구도가 자주 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높다. 또 근처에 서암항 젖병등대도 가볼 만하다. 2009년에 부산이 저출산 도시로 선정되면서 출산 장려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다. 등대를 잘 보면 겉면에 아기들이 손도장 찍은 걸 장식했다. 크기도 모양도 앙증맞게 생겼다. 그 맞은 편은 닭벼슬등대다. 청렴을 다짐하는 청렴실천 다짐길을 만들면서 다짐길 끝에 등대가 위치하고 이 등대는 계단을 통해 등대 위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다. 기장 대변항의 월드컵기념등대는 공인구인 피버노바를 품고 있다. 대변외항남 방파제동단등대는 마징가Z 모양, 대변외항남 방파제서단등대는 태권V등대 모습이다. 해파랑길을 따라 포항의 등대박물관을 보고, 영덕으로 가서 대게발로 감싼 창포말등대를 보는 것도 추천한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8

인생 오후의 행복을 묻다···함께 늙어가는 행복, 봉화의 세 부부 이야기

고령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묻는다. “70세 이후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긴 지금, 은퇴 이후의 삶은 단순한 여생이 아니라 또 하나의 긴 인생이다. 그러나 현실 속 노년은 결코 녹록지 않다. 노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고독과 경제적 부담, 그리고 건강 문제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가 단절되면 정신적 고립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귀농·귀촌과 전원생활은 새로운 노후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불편함도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할 사람과 공동체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행복한 노후의 핵심은 돈이나 건강만이 아니라 사람과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을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경북 봉화에는 행복한 노후의 한 모델을 보여주는 세 부부가 있다. 봉화에서 인생의 오후를 함께 보내고 있는 권씨 부부, 정씨 부부, 유씨 부부는 각각 20년, 15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봉화에 정착했다. 이제 이들의 나이는 모두 70대에 접어들었다. 세 부부는 서로 15~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 하루를 함께 보낸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저녁 식사까지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온 만남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들의 일상은 평범함 속에 행복의 비결이 숨어 있다. 각자 작은 텃밭을 가꾸며 농사를 짓고,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도와준다. 농번기에는 일손을 보태고, 생활 속 어려움이 있을 때는 경험을 나누며 해결책을 찾는다. 서울에서 내려와 낯선 시골에 정착하는 일은 외롭고 쓸쓸할 수 있었지만, 이들은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관계를 통해 어려움을 이겨냈다. 성격과 개성은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온 시간이 어느덧 10여 년을 넘어섰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은 반드시 함께 챙긴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 식사 자리를 마련하면 모두 모여 축하를 나누고, 칠순과 같은 특별한 날에는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 평소에도 근교 여행이나 걷기 여행을 함께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다. 이들이 누리는 삶은 도시에서는 쉽게 얻기 힘든 여유와 공동체의 따뜻함이 있다. 전원생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경제적 부담이 적다는 점이다. 시골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생활이 가능하며, 작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된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텃밭을 가꾸며 몸을 움직이는 적당한 노동은 삶에 활력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노후의 가장 큰 적은 질병보다도 고독이라는 말이 있다. 봉화의 세 부부는 서로의 친구이자 이웃이며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재산이 아니라 함께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쁨과 어려움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는 사실이다. 70세 이후 행복한 삶의 조건은 의외로 단순할지 모른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경제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함께할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봉화에서 살아가는 세 부부의 모습은 초고령사회가 찾아야 할 노후의 한 모델이 되고 있다. “행복한 노후는 어디에 사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8

삼의정에 되살아난 규방의 물결

초여름의 녹음이 짙어가던 5월 31일, 내방가사문학회(회장 권숙희)는 경북 경산에 자리한 초계정씨 옥곡파 문중의 유서 깊은 공간 삼의정(三宜亭)을 찾아 뜻깊은 내방가사 발표회를 열었다. 감룡문을 지나 삼의정에 들어서는 순간, 정자에 걸린 ‘삼의정’ 현판은 마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의 문처럼 다가왔으며, 그 안에는 조선시대 선비 문화와 여성 문학의 숨결이 조용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디지털 문명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기록문화의 가치를 되새긴다는 점에서, 이날 행사는 내방가사 낭독을 넘어 우리 정신문화의 뿌리를 되돌아보는 귀중한 자리였다. 식전 행사로 펼쳐진 오카리나와 에어로폰 연주는 행사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이어 정원엽 경산근대문화유산보존회장은 경산의 근대문화유산과 내방가사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심도 있는 해설을 들려주었다. 그는 내방가사가 단순한 규방 문학이 아니라 여성들의 삶과 감정, 시대정신이 담긴 생활 기록문학임을 강조하였다. 또한 조선 후기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한글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를 기록하고 전승해왔다는 사실은, 우리 기록문화사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고 설명하였다. 특히 이날 소개된 ‘습례국(習禮局)’ 체험은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이정선 이사의 설명 아래 진행된 AI 활용 체험학습은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의 새로운 만남이라는 점에서 더욱 뜻 깊었다. 습례국은 20세기 초 유학자 탁와(卓窩) 정기연 선생이 고안한 한글 놀이판으로, 제사상 차리는 법과 유교 예절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생활 교육 자료이다. 본행사는 권숙희 회장의 작품 풀이 및 해설이 있었다. 초계정씨 경산 옥곡파 문중이 소장한 가사집은 ‘효행가’, ‘백발가’, ‘노부인가’, ‘노부인답가’ 네 편 모두 작자 미상으로 경주 최씨, 최이현의 뛰어난 필체로 필사한 작품이다. 경산지역 방언이 많은 게 특징이며 2022년 11월 세계기록문화유산아시아태평양지역 목록에 등재된 작품이다. 그는 1918년 16세에 정도만(鄭道萬)과 혼인하였으며 유작으로는 세계기록문화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된 내방가사 ‘사향가’, ‘효행가’ 외 서신 목록을 남겼다. 이차환은 1956년 정장열과 결혼하여 유작으로는 세계기록문화유산 아태목록에 등재된 ‘일여가’를 남겼다. ‘사향가’, ‘효행가’, ‘일여가’ 원본은 국립한글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낭독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세월 속에 묻혀 있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오늘의 공간으로 다시 불러내는 생생한 문화 계승의 현장이었다. 이날 회원들은 각 작품을 나누어 맡아 정성스럽게 낭독을 이어갔다. 가사 중 ‘효행가’는 최옥분·곽남숙·안자숙 회원이, ‘백발가’는 김복숙·심수영 회원이 낭독했다. 이어 ‘노부인가’는 이순오·조애숙 회원, ‘노부인 답가’는 유정자·오인경·김윤숙 회원이 맡았으며, ‘사향가’ 중 ‘사향곡’은 권영숙·이윤지·권숙희 회원이 깊이를 더했다. 또한 ‘계여사’는 최순자·김영옥·허순남 회원, ‘규희가’는 김경옥·이선화·김영이 회원이 각각 맡아 무대를 가득 채웠다. 삼의정 정원에 세워진 탁와 정기연 선생의 시비 또한 이날 행사의 의미를 더욱 깊게 하였다. ‘문안의사중근살이등박문(聞安義士重根殺伊藤博文)’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소식을 듣고 지은 한시로, 나라를 잃어가던 시대 지식인의 비분강개와 민족정신을 담고 있다. 문화와 문학은 단지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이 아니라, 시대의 정의를 지키고 민족의 혼을 이어가는 정신의 기록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어 일행은 성암칠절비와 우경제를 둘러본 뒤 삼성현역사문화공원과 제석사를 찾아 경산이 배출한 원효, 설총, 일연의 정신세계를 되새겼다. 이는 단순한 답사를 넘어 우리 역사와 사상의 뿌리를 체험하는 의미 있는 여정이었다. 문화유산은 오래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권숙희 회장을 중심으로 한 내방가사문학회의 활동은 매우 뜻깊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한 문학 활동을 넘어, 사라져가는 여성 기록문화를 되살리고 우리 민족의 정신적 유산을 후대에 전하는 문화적 사명이라 할 수 있다. 문화는 후세에 전하려는 사람들의 헌신이 있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김윤숙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8

깐딴떼 파밀리아 우리 가곡 부르기 10주년 공연

황옥섭 교수가 이끄는 가곡 동호인 모임 ‘깐딴떼 파밀리아’의 10주년 기념 공연이 5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3시, 대구 중구 반월당 네거리 광개토병원 17층 문화홀에서 120회 행사로 개최됐다. 우리 가곡 부르기 공연은 지난 2016년 팔공산 자락 동구팔공문화원에서 첫걸음을 뗀 이후, 동구 신도시를 거쳐 2023년 지금의 반월당 광개토병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7년간 지역민들의 문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는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예술인과 문인들이 피난을 와 전란의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킨 국민가요와 음악의 산실이다. 특히 한국 가곡의 효시인 ‘동무 생각’과 ‘고향 생각’ 등 수많은 명곡이 탄생한 ’가곡의 도시'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로 선정된 대구의 이러한 남다른 역사적 배경은 황옥섭 교수가 가곡 사랑을 실천하게 된 원동력이다. 계명대학교와 경인교육대학교 외래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고 있는 성악가 베이스 황옥섭 교수는 점차 청소년들과 젊은 세대에게 잊혀져가는 우리 가곡의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껴왔다. 이에 뜻을 함께하는 국내 성악가 및 동호인들이 만나 깐딴떼 파밀리아를 결성했다. 그것이 벌써 1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이날 행사는 10주년이라는 기념비적인 날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이 만석을 채우지 못해, 행사를 준비한 봉사자들의 정성과 노력에 비하면 다소 아쉬움은 있었다. 그러나 무대 위 열정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첫 무대는 전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지원부장을 역임한 바리톤 임익선이 장식했다. 그는 푸시킨의 시에 곡을 붙인 ‘사노라면'을 피아니스트 양채은의 반주에 맞춰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열창으로 객석으로부터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어 시 낭송가 성동요양원 원장인 여상조 시인이 한복 차림으로 무대에 올랐다. 신동호 시인의 ‘봄날 피고 진 꽃에 대한 기억’을 낭송하며 객석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여 낭송가는 이원수 선생의 동시이자 국민 가창곡인 ‘엄마야 누나야’ ‘찔레꽃’을 관객들과 함께 합창하는 가운데 1절과 2절 사이에 시 낭송을 곁들여 무대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렸다. 여기에 깐딴떼 파밀리아를 이끄는 베이스 황옥섭 교수가 ‘청산에 살리라’를 부르며 무게감을 더했고, 계명대 성악가 출신의 베이스 최동수, 대구예술대 음악가 출신 김종철은 클라리넷 독주 ‘쉬리’를 연주했다. 마지막 무대에는 여성 4인조 헤세드 하프단은 김종환 작사·작곡 ‘바램’을 연주해 한마당 축제 무드가 되기도 했다. 총 11명의 출연진이 다채로운 연주로 10주년의 무대를 풍성하게 빛냈다. 황옥섭 교수는 “매월 행사 때마다 관객들이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한결같이 물품을 찬조해 주신 ‘대양제면 소포 국수’ ‘풍국면 다복면’ ‘정성 제과 존디기’ 회사 대표님, 그 외 돋보기, 음료 다과 찬조금 등으로 꾸준히 협조해 주신 후원자분들께 마음 담아 깊이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오늘은 오시지 못해도 10년 동안 자리를 지켜주시고 봉사로 무대를 빛내주신 출연자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적이 가능했다”며 두 손 모아 고마움을 표했다. 깐딴떼 파밀리아는 앞으로도 회수를 더 해 가면서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3시를 우리 가곡 부르는 날로 진행한다. 가곡의 날로 각인되는 그날까지 이들의 열정이 줄곧 이어지길 기대한다. /유무근 시민기자

2026-06-07

소통과 화합의 장 마련한 대구노인대학 총학생회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관장 전용만) 노인대학 총학생회(회장 차세희)는 지난 5일 경산시 남천면 일원에서 노인대학 각 반 회장단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6년 노인대학 총학생회 봄 야유회’를 개최했다. 이번 야유회는 노인대학을 대표하는 각 반 회장단이 한자리에 모여 상호 교류와 친목을 다지고, 노인대학 운영 활성화와 발전 방향을 함께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특히 학생회 임원진과 각 반 회장들이 평소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의견을 공유하고, 회원들의 목소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뜻깊은 시간으로 진행됐다. 이날 참석자들은 자연이 어우러진 남천면 일대를 함께 둘러보며 화합의 시간을 가졌으며, 이어진 간담회에서는 상반기 학사운영 현황을 점검하고 오는 2학기 운영 계획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었다. 또한 각 반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치활동 사례를 소개하며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회원 참여 확대와 소통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갔다. 특히 회장단은 노인대학이 단순한 여가·취미 활동 공간을 넘어 어르신들의 평생학습과 사회참여를 지원하는 지역사회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 회원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학생회 중심의 자치활동을 더욱 활성화하여 어르신 스스로 복지관 운영에 참여하는 문화를 확산해 나가기로 했다.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 노인복지대학을 담당하고 있는 김태령 복지사는 “현재 노인복지대학은 상·하반기 2학기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건강·교양·취미·문화 분야 등 총 61개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배움과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평생학습을 통한 자기계발과 활기찬 노후생활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참석한 회장단들은 “노인대학은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공간인 동시에 친구를 만나고 삶의 활력을 얻는 소중한 공동체”라며 “앞으로도 회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더욱 즐겁고 유익한 노인대학을 만들어 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차세희 총학생회장은 “노인대학의 발전은 회원 여러분의 관심과 참여에서 시작된다”며 “각 반 회장단이 회원들과 복지관을 연결하는 소통의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더욱 활기차고 행복한 노인대학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전용만 관장은 “노인대학 회장단은 회원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복지관과 이용자를 이어주는 중요한 리더”라며 “앞으로도 이용자 중심의 운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회장단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구시노인종합복지관 노인대학은 평생교육 프로그램과 다양한 취미·여가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자치활동을 적극 장려하며 회원 주도의 참여 문화를 확산시키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노인복지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활기찬 노인대학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을 다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6-07

울산 여시바윗골 동학 교주 최제우를 찾아서

대구문화유산지킴회 회원 42명은 지난달 28일 상주동학문학제가 주관하는 수운 최제우의 유허지 여시바윗골 초당(울산)과 동학관, 그리고 태화강 국가 정원을 다녀왔다. 유네스코 등재를 목적으로 하는 상주동학문화제는 올해 10회째로, 경상북도와 상주시 후원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는 ‘수운의 발자취 디카 글에 담다’를 주제로 학술대회와 수운 최제우 유적지 탐방 등으로 다양하게 준비를 했다. 첫 번째로 지난 5월 21일 동학발상지 용담정(경주)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문지회원들과 희망자들이 수운의 수도처인 여시바윗골을 다녀왔다. 3번째 행사는 이달 11일 수운의 피화처 은적암(남원), 4번째는 수운의 순교지인 대구의 관덕정과 경상감영공원의 옥터, 그리고 달성공원의 동상을 둘러볼 계획이다. 여시바윗골로 출발하던 날, 버스에 탑승한 상주동학문화재단 김문기 이사장은 인사말을 전한 뒤 이날 행사 일정과 동학 교주 최제우에 대해 설명했다. 최제우는 동학(천도교)의 창시자 겸 제1대 교주로 호는 ‘수운(水雲)’이다. ‘경주 최부자집’의 비조인 최진립의 7대손이다. 족보에는 최진립의 맏형 최진흥의 7대손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6대조 최동길이 본래 최진립의 넷째 아들로 후사가 없던 큰아버지 최진흥의 양자로 입적되었기 때문이다. 최제우는 순조 24년(1824) 10월 경상도 경주부 현곡면 가정리에서 아버지 최옥(崔鋈)과 셋째 부인인 어머니 곡산 한씨(谷山 韓氏)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옥은 일찍이 정실부인 연일 정씨, 둘째 부인 달성 서씨 등과 혼인하여 두 딸을 두었으나 아들을 낳지 못하여 결국 첫째 남동생 최규(崔珪, 1770-1841)의 장남 최제환(崔濟寏)을 입양했는데, 최제우는 그 후 후실 곡산 한씨를 들여 낳은 자식이다. 그의 아명은 최복술(崔福述)이고 초명은 최제선(崔濟宣)이다. 수운은 10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7세에는 아버지도 여의었다. 이후 1842년 19세, 경상도 울산도호부(현 울산광역시) 출신의 월성 박씨와 결혼하였으나 일정한 생계 방편이 없었다. 31세까지 10년 이상 전국 각지를 유랑하며 유불선(儒佛仙), 서학(西學), 무속(巫俗), ‘정감록’과 같은 비기도참사상 등 다양한 사상을 접하는 동시에 서세동점과 삼정문란(三政紊亂)이라는 이중의 위기에서 고통 당하는 민중의 참담한 생활을 직접 체험했다. 32세에 수운은 우연히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비서를 얻어, 신비 체험을 한 끝에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 근처에 있는 천성산 자연 동굴에 들어가 49일 기도를 했다. 36세가 되던 해에 오랜 유랑 생활과 처가살이를 청산하고 고향 용담으로 돌아와 정착하였다. 고향에 정착한 지 1년 뒤, 1860년 수운은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기에 이른다. ‘천사문답(天師問答)’이라고 불리는 하늘님과의 문답 끝에 1860년(철종 11년) 천주 강림의 도를 깨닫고 동학을 창시하였다. 최제우는 자신의 신내림이 꿈은 아닌가 하면서 1년을 다시 수행하고서 그때 얻은 가르침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철종 12년 6월부터 비로소 본격적으로 동학의 주문과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포교하기 시작했다.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철종 13년 경주부 관아에 체포됐으나 제자들이 탄원으로 석방된다. 이후 동학 활동을 지속했다가 철종 14년에 다시 체포되었다. 최제우는 체포된 채로 압송되어 경기도 과천현까지 갔다가 철종이 갑작스럽게 승하하여 조정이 혼란해진 탓에 다시 경상도 대구도호부에 있던 경상감영으로 이감되었다. 해가 바뀌어 고종 1년(1864) 음력 3월 10일 경상감영 관덕정 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41세로 제자들과 함께 순교하였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 여시바윗골에 도착하여 을묘천서 유래를 듣고 도시락을 먹었다. 도시락은 비빔밥에 된장과 물도 같이 들어 있었다. 끼리끼리 모여서 소풍을 온 기분으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대화강 국가정원에도 들렀다. 이솔희 상주동학사무국장(시조시인)의 차근한 안내에 모두 감동들 했다며, 수고의 박수를 보냈다. 또 황태원 문화재지킴회부회장(82)은 오늘 좋은 공부였다며, 행사를 주관한 단체에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즐겁게 공부한 하루였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6-07

1만명의 대구지역 외국인 근로자의 고충해결사

최근 대구시가 조사한 통계에 의하면 외국인 주민은 6만1554명이며 그중 근로자 수는 9897명이며 유학생이 8709명이다. 결혼 이민자만도 5838명에 이른다. 외국인 노동자의 약 93%가 제조업 등 생산직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 구·군별 외국인 주민 수는 다음과 같다. 총 6만1554명 중에서 달서구 1만9092명, 달성군 1만3147명, 북구 1만584명, 서구 5417명, 동구 4680명, 수성구 3417명, 남구 2929명, 중구 1363명, 군위군 925명이다. 달서구, 달성군, 북구가 많은 이유는 성서공단을 비롯한 세 지역에 분포한 공업단지 때문이다. 1만 명에 육박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생산 현장에서 대구 경제에 큰 힘을 보탠다. 최근에는 경북 농촌 지역에서도 각 시·군별로 농촌 인력 부족의 해결책으로 외국인 근로자를 많이 유치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시군 자체가 동남아 국가의 지방자치단체와 결연을 맺어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해결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손 부족에 대해 해결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사업주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질 낮은 근로조건 제공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몇 개월 전에는 기자와 잘 알고 지내는 한 외국인 근로자가 남구 대명동 지하주차장 설치 공사에 참여하고 3개월간 임금을 수령하지 못해 하소연해온 적이 있다. 그동안 지방노동청이나 관계 기관에 호소했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1만 명 대구시내 외국인근로자들의 이러한 고충을 해결해 주는 기관이 있어 단숨에 찾아가 보았다. 대구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센터장 김덕환)가 바로 그곳이다. 이 센터는 대구시 달성군 다사읍 달구벌대로 863, 진광타워 8~9층에 있다. 고용노동부 및 대구광역시로부터 위탁받아 한국노총 대구지역본부와 대구경영자총협회에서 공동 운영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2호선 대실역 부근이라 성서공단 및 달성군 등지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용하기 용이하다. 센터가 하는 일은 문화적 차이 및 언어소통 한계 등으로 한국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와 그들을 고용한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고충상담·언어지원·교육지원·문화행사 지원 및 각종 정보제공을 한다. 또 이를 통해 고용시장 안정 및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 및 생활권 신장에 도움을 준다. 센터 조직은 크게 ‘상담통역팀’과 ‘운영·교육팀’으로 나뉜다. 상담통역팀은 출입국 및 체류 관련 사항, 임금체불 등 노동 고충 상담을 비롯해 심리·정서적 지원과 생활 정보를 제공한다. 운영·교육팀은 센터 전반의 운영과 더불어 한국어·정보화·산업안전·법률·귀국의식·정신건강 증진 교육을 담당하며, 한국문화탐방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대실역은 매주 일요일마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무리를 지어 북적이고 있다. 외국인지원센터는 그들의 권익보호와 고충을 덜어주는 창구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대구시내 외국인근로자 1만 명 시대에 이들이 안전하게 근로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들의 권익뿐 아니라 땅에 떨어진 대구 경제를 일으키는 데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대구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가 널리 알려져 많이 이용되길 바란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6-07

형산강변을 황금빛으로 물들인 큰금계국의 두 얼굴

포항 형산강변을 따라 펼쳐진 노란 꽃물결이 올해도 초여름을 화사하게 맞이하고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황금색의 군락은 마치 누군가 정성껏 꾸며놓은 정원처럼 아름답다. 도로변, 하천변, 공원과 산책길까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이는 이 꽃들은 어느새 우리나라 초여름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오월의 햇살과 어우러져 황금빛을 띠며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금계국의 무리 속에는 신기하게도 다른 식물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참 화사하다”고 감탄만 하기에는 주변을 점령하듯 영역을 넓혀 가는 모습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많은 사람이 이 꽃들을 금계국으로 부르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생태계에 위해(危害) 우려가 있는 외래식물 ‘큰금계국‘이다. 큰금계국은 씨앗뿐 아니라 뿌리로도 번식하기 때문에 한번 자리 잡으면 제거가 쉽지 않다. 일부 전문가들은 큰금계국을 토종 식물의 서식 공간을 잠식할 우려가 있는 외래식물로 지적한다. 결국 자생식물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생태계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외래식물을 이야기할 때 흔히 생태계교란종을 떠올린다. 단순히 외국에서 들여와서가 아니라 외래생물 가운데 토착 생태계를 위협하거나 균형을 무너뜨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을 말한다. 큰금계국의 원산지는 북아메리카다. 꽃이 크고 화려하며 관리가 쉽다는 이유로 과거 전국 곳곳에 대규모로 심어졌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이 도로변 경관 조성이나 하천 정비 사업에 경쟁적으로 활용하면서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별다른 관리 없이도 번식하니 행정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식물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속도로와 강변을 따라 펼쳐지는 노란 꽃물결은 장관이다. 그러나 특정 식물이 지나치게 우세한 환경이 되면 벌과 나비가 특정 꽃에 집중되면서 인근에 자생하는 토종 식물의 수분 기회가 줄어든다. 이는 결국 자생식물의 감소로 이어지고, 곤충과 새, 작은 동물들 역시 기존의 먹이와 서식지를 잃게 된다. 눈에 띄지 않을 뿐, 생태계 변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어릴 적, 가을이면 등굣길 양쪽으로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한들거렸다. 친구들과 씨앗을 훑으며 재잘거리던 추억속의 코스모스는 다양한 들꽃들과 어우러져 나름의 색들로 물들어 가는 가을 들녘 풍경을 만들었다. 지금처럼 한 종이 넓은 공간을 독차지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렇다고 큰금계국 자체를 미워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무분별한 확산과 관리 부족에 있다. 경관 조성을 위해 식물을 활용하더라도 토종 식물과의 균형을 고려하여 번식 범위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일상 속 관심도 중요하다. 생태계에 위해를 줄 우려가 있는 외래식물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고, 대규모 군락이 확산되는 지역은 지자체 관리 여부를 관심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 꽃씨가 옷이나 신발에 붙어 다른 지역으로 퍼지지 않도록 털어내는 작은 행동 또한 생태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작은 관심이 자연환경을 지키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황금빛으로 물든 강변은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한 종의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생명이 함께 어우러질 때 완성된다. 황금빛 초여름 풍경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그 뒤에 숨은 생물다양성의 가치도 함께 지켜져야 한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3

토요시민콘서트, 뮤지컬 명곡으로 시민들과 호흡

지난달 30일, 대구 2·28기념공원에서 대구시립예술단의 토요시민콘서트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대구시립극단이 무대에 올라 뮤지컬 갈라 콘서트를 선보이며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주말을 맞이하여 동성로를 방문한 시민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선사했다. 대구시립예술단은 대구광역시가 운영하는 공공 예술 단체로, 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 극단, 무용단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단체로 구성되어 있다. 각 단체는 공연과 창작 활동을 통해 대구 시민들에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참여하는 토요시민콘서트는 야외 상설공연으로 그 장소를 찾은 시민 누구나 수준 무료로 높은 공연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날 공연은 대구시립극단이 준비한 뮤지컬 명곡들로 꾸며졌다. 공연의 시작은 프랭크 와일드혼의 뮤지컬 ‘더 라스트 키스’ 수록곡 ‘내일로 가는 계단’이 장식했다. 희망찬 선율로 막을 열어 관객들에게 앞으로 펼쳐질 공연을 더욱 기대하도록 했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조너선 라슨의 뮤지컬 ‘렌트’ 대표곡 ‘날 받아들여 아님 떠나’가 공연되며 강렬한 에너지와 감성을 선보였다. 배우들의 풍부한 표현력과 가창력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또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명작 뮤지컬 ‘캣츠’의 대표곡 ‘메모리’가 울려 퍼지며 공연장의 분위기는 한층 깊어졌다. 많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곡인 만큼 무대가 끝난 뒤 큰 박수가 쏟아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역사적 의미를 담은 창작 뮤지컬 곡들도 함께 선보였다. 삼일절 기념공연 ‘다시 찾은 봄’의 수록곡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광복절 기념공연 ‘그날이 오면’의 ‘광복 그리고 내일로’가 무대에 오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정신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공연 후반부에는 뮤지컬 ‘올슉업’의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네요’와 뮤지컬 ‘킹키부츠’의 ‘네가 힘들 때’가 이어지며 관객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동을 전했다. 특히 친숙한 멜로디와 배우들의 열정적인 무대는 시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냈다. 공연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공연을 보러 온 시민들에게 직접 찾아가 안내 책자를 나눠주기도 하고, 배우들은 곡이 마칠 때마다 공연을 관람하는 시민들과 인사를 전하고 소통을 하며 무대와 객석의 거리가 보다 가깝게 느껴지게 하였다. 때문에 관객들은 보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대구시립극단은 1998년 창단되어 고전, 현대극과 창작극까지 다양하게 지역주민들에게 선보이며 지역 공연예술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번 토요시민콘서트에서도 뮤지컬이라는 대중적인 장르를 통해 시민들과 더욱 가까이 호흡하여 시민들이 보다 쉽게 공연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 토요시민콘서트는 상반기 4월부터 이어져왔고 7월 4일까지 수성못 수상무대, 2·28기념공원, 반계근린공원, 28아트스퀘어, 사문진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하반기 9월 5일부터 10월 17일까지 동대구역 광장, 28아트스퀘어, 대구도서관, 수성못 수상무대, 2·28기념중앙공원에서 공연 예정이다. 시민들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3

길을 돌아서니 생명이 보였다···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을 다녀와서

경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찾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월항면 선석산 자락 태봉 정상에는 세종대왕의 왕자 18명과 손자 단종의 태가 19기의 석물 아래 잠들어 있다. 생명을 점지한 최고의 명당이라 불리는 이곳을 벌써 네 번째 찾았다. 그동안은 늘 태실이 있는 봉우리만 올랐다. 탁 트인 능선 위에 호위하듯 놓인 태실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곳에 온 목적을 다한 줄 알았다. 산 아래 태실을 관리하던 사찰 선석사가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둘러볼 생각조차 못 했다. 이번 네 번째 여정에서 뜻밖의 우회로로 진입해 마주한 풍경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태실 옆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주차장 앞으로 ‘생명문화공원’과 그 품에 안긴 ‘태실문화관’이 있었다. 그 규모에 동행한 이들 모두 “이곳에 이런 공간이 있었나?”라며 눈을 크게 떴다. 부끄럽게도 네 번을 올 동안 나 역시 까맣게 몰랐던,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해설사의 설명은 더욱 인상 깊었다. 조선 왕실이 아기의 태를 얼마나 신성하게 여겼는지, 왜 성주가 태실의 명당으로 선택되었는지,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 겪은 수난 등 서사가 가슴에 와닿았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탯줄을 100번 씻어 항아리에 담고 봉안했던 왕실의 의례는 단순한 풍습이 아니라 생명을 향한 깊은 존중의 표현이었다. 이야기는 서늘한 역사의 그늘로도 이어졌다. 단종을 지키려다 무너진 다섯 왕자의 태실은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석물이 파괴되어 산 아래로 내던져졌다. 훗날 가봉된 세조의 태실 앞에는 거대한 거북 좌대의 비석이 세워졌다. 같은 공간에 남겨진 두 흔적은 인간의 영욕과 권력의 무상함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해설사는 최근에 흥행했던 ‘왕과 사는 남자’의 영향으로 태실을 찾는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해설사의 웅숭깊은 설명을 마음에 채우고 다시 올라간 태실은 이전 세 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은 만큼 느껴진다고 했던가. 우람한 소나무 사이 늘어선 19기의 태실은 더는 차가운 화강암 덩어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600년 전에 울음을 터뜨렸던 아기 왕자들의 숨결이었고, 생명을 귀하게 여겼던 선조들의 따스한 체온이었다. 동행자들 역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돌 하나, 풀 한 포기도 예사롭지 않다”라며 연신 깊은 감탄을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에 자그마한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처럼 태실의 계단만을 헐떡이며 오르는 수많은 이들이 스쳤기 때문이다. 태실의 초입이나 계단 입구에 ‘태실에 오르기 전 생명문화공원과 태실문화관을 먼저 만나보세요’라는 작은 안내판 하나만 다정하게 서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 친절한 문장 한 줄이 있었다면 더 많은 방문자가 이 풍성하고 고귀한 생명의 이야기를 온전히 가슴에 담아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오지랖 같은 아쉬움이 스쳤다. 그 아쉬움 끝에 성주가 왜 스스로 ‘생명문화도시’라 부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 삶의 시작을 품은 태실, 삶의 흔적을 간직한 한개마을, 그리고 삶의 마지막을 기리는 선석사까지. 성주는 단순히 참외의 고장이 아닌 인간의 일생을 품은 생명의 고장이었다. 문화관을 거쳐 올라간 네 번째 걸음에서야 나는 비로소 성주가 품은 세계관을 읽어냈다. 다음에 이곳을 찾는 누군가가 있다면 태실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보다 먼저 생명문화공원의 우회로를 걸어보라고 권한다. 그 길 끝에서 성주는 오래된 유적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고장으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3

(이사람) “노인복지관 옆에 살아야 해요”

대구시 서구 비산동에 위치한 비원노인복지관에는 어르신들의 일상을 더욱 따뜻하게 이어주는 한 복지사가 있다. 현장에서 늘 밝은 미소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맞이하는 이남경 복지사다. 최근 복지 현장을 취재하던 중 만난 이 복지사는 첫인상부터 수더분하고 따뜻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어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생활 가까이에서 복지를 실천하고 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이남경 복지사는 자신의 하루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나이 들면 병원 옆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에요. 이제는 노인복지관 옆에 살아야 한다니까요.” 아침 일찍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 한 어르신의 유쾌한 농담에 복지관 안에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 복지사는 “그 한마디가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는 층마다 돌며 어르신들에게 안부를 묻는 일로 시작된다. 이날도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마친 한 어르신이 손을 꼭 잡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복지관과 협약된 병원에 다녀왔는데, 비원복지관에서 왔다고 하니 치료비 혜택도 받고 직원들도 참 친절하게 대해주더라고요.” 이어 어르신은 “젊어 직장 다닐 때나 복지 혜택을 누리는 줄 알았는데, 나이 들어서도 이런 든든한 울타리가 있다는 게 참 고맙다”고 말했다. 이남경 복지사는 그 순간 복지의 진짜 의미를 다시 느꼈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전해드린 작은 정보 하나가 어르신들의 삶 속에서 실제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낀다”며 “복지는 거창한 사업보다 생활 가까이에서 필요한 정보를 연결해 드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제 노인복지관은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어르신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작은 관심과 다정한 연결 하나가 외로운 노년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만난 이남경 복지사의 하루는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 곁에 가장 낮은 자세로 머물며 작은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그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 복지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늘도 비원노인복지관에서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복지가 이어지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6-02

미국에서 날아와 공군전우회에 장학금 희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빨간 마후라 출신의 남희수씨(공군사관학교 11기)가 LA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대구공군전우회 보라매 장학재단에 장학기금을 전달해 화제다. 지난달 19일 대구시내 모 식당에서는 대구공군전우회 장학재단 권태정 이사장과 임원들이 모여 수십년만에 대구에 온 공군전우 남희수씨와의 만남으로 화제가 만발했다. 남씨는 권태정 이사장과 공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이나 미국으로 떠난 뒤 한 번도 대구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 다만 권 이사장이 대구공군전우회 보라매 장학재단과 전우회 소식을 미국에 있는 남씨에게 꼬박 꼬박 보냄으로써 서로 간에 안부 정도는 아는 사이다. 남씨는 1940년생으로 86세다. 충남 대전에서 4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나 그곳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63년 2월에 졸업 후 김해 비행학교에서 초등비행 과정을 거쳐 대구로 이동 중고등비행 과정을 수료했다.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김포, 광주, 수원 기지를 전전하였고, 1970년에는 미국 특수 작전 과정과 오키나와 및 필리핀 특수 생환훈련 과정도 이수하였다. 중위 때인 1967년 F-5A로 서해 대간첩선 격침 공로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가정 사정으로 1976년 조기 전역하였다. 곧 바로 일반 민간 비행 조종 항공사 대신 동아그룹에 합류해 국내 파트에서 실무를 익힌 후 중동요원으로 파견되었다. 파견 근무 후 영국 런던으로 가서 동아건설의 최초 해외사무소를 직접 개소 운영한 바도 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하여 호텔 매니저와 트럭 트레일러 운전사 등 온갖 갖은 고생을 겪으며 미국 생활에 적응했다. 지금은 LA 남쪽 오렌지카운티 부에나파크시티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주 3회 새벽 반쪽 골프를 하며, 베이글 숍에서 커피 마시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가 국내에 들어오게 된 것은 대전에 거주하는 누나의 딸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기회에 대구에 있는 권태정 이사장과 공군 전우들을 만나보고 작지만 장학금도 전달할 생각으로 대구를 찾았다. 남씨는 미국에 거주하면서도 과거 공군보라매 장학회에 몇 차례 장학금을 전달한 바 있다. 참석자들은 빨간 마후라 출신의 공군 조종사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전우들과의 우정을 잊지 않고 있는 그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6-06-02

과일 이름 하나로 성주군을 국내외에 알리는 ‘성주 참외’

여름 과일 참외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생산되었다고 하는데,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일대이며 박과 식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의 농서에도 재배기록이 남아있으며 ‘참외’라는 이름에는 참된 외(瓜)라는 뜻이 담겨 있고, 여러 외 중에서 가장 달고 향기로운 과실이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오늘날 경상북도 성주군은 전국 참외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의 참외 주산지이다. 과일은 같은 씨앗이라 하더라도 토질과 기후가 다르면 맛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성주군은 낙동강 유역의 비옥한 충적토와 풍부한 일조량, 가야산과 금오산의 사이에 비교적 큰 일교차를 갖춘 분지 지형이다. 낮에는 햇살이 당도를 높이고 밤에는 서늘함이 향을 모으는 곳이라 참외의 생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 한다. 연간 생산액은 약 7000억 원에 이른다. 1970~80년대부터 비닐하우스 재배가 본격화되면서 성주군은 참외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했다. 시설재배가 계절과일이라는 단어를 무색하게 하면서, 추운 음력 설 때부터 전국에 모습을 드러내는 노란 상자에는 ‘성주참외’라는 이름이 없으면 안 될 만큼 주산지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주고 있다. 참외 한 알은 가벼울지 모르겠지만, 한 알이 나오기까지 무거운 시간이 담겨있다. 추운 겨울에도 견딜 수 있게 관리하는 어려움은 물론이고, 수분의 관리, 수정 시기의 조절과 흠집 하나 없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은 농부들의 땀과 수고가 묻어 있다. 성주 참외는 지역특산물이 되기까지 성주에 사는 많은 농부들에게는 한세대의 생업이었고, 이제는 또 한세대의 희망이 되어간다. 해마다 축제와 체험 행사를 통해 어린아이들은 우리 고장 ‘성주’의 이름을 배우며 자란다. 농업이 산업을 넘어 공동체의 자부심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과일의 이름이 한 지역의 이름을 지켜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함과 달콤함이 한입 가득하다. 그 속에는 통계로 환산되는 생산액과 재배면적이 아니고 한 고장이 지켜온 성실함의 시간이 녹여져 있다. /석종출 시민기자

2026-06-02

(시민기자 단상) 기본을 지키자

기본이 무엇인가. 우리는 기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기본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사물이나 현상, 이론, 시설 따위를 이루는 바탕이라고 씌어 있다. 사장이 사원들을 모아놓고 기본에 충실히 하라고 훈시한다. 그러면 ‘기본에 충실하라’는 뜻은 무엇일까. 사전적인 뜻으로 풀이하자면, 시작부터 기초를 배우고 행동하라는 뜻이다. 즉, ‘기본을 먼저 익히고 실천하라’는 의미다. 사소한 일이라도 대충 하지 말고, 작은 것에서부터 정성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도 설명된다. 모두가 맞는 말이다. 최근 안전공단에 오랫동안 근무한 강사가 노인대학에 와서 안전에 대해 강의했다. 기본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렸다. ‘기본에 충실하라’는 뜻은 한마디로, 해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너무나 간단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일상생활에 있어서 기본에 충실하고 있는가. 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겠다. 사소한 일이지만 내게도 며칠 전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일어났다. 녹색 신호등이 노란색으로 바뀔 무렵 속력을 내어 직진하는데 갑자기 유턴 차량이 급하게 들어와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번질 뻔했다. 노란 불이 들어오면 정지해야 하는 교통 규칙을 서로가 순간적으로 망각한 탓이다.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게 아니다. 직진하는 차량도 유턴하는 차량도 신호등만 볼 게 아니라 전방 주시를 잘해야 했다. 우리가 기본을 지키지 않아 발생하는 사고는 너무나 잦다. 겨울철이면 산불이 일어나고 여름철이면 홍수와 사태로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잃는다. 정부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을 고시하여 홍보하고 있지만 회사에서 일어나는 화재나 낙상 사고 등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지난번 발생한 대전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 사고만 하더라도 화재경보기만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인명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소에 화재경보기가 작동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해야 하는 기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건설 현장과 엘리베이터 등의 추락 사고를 보면 기본 장비를 갖추지 않고 현장에 투입함으로써 일어나는 안전사고가 많다. 안전사고는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거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말한다. 정부에서는 최근에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 위험성 평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조회사나 건설회사 자체로 위험성 항목을 설정하고 사고 빈도나 위험성 강도를 정해 사전에 사고를 방지하도록 하고 잘 지킨 회사는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한다. 아무리 정부에서 법을 정하고 처벌해도 본인이 지키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다. ‘나 하나면 괜찮겠지, 이번만은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안전 불감증이 대형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본은 이뿐이 아니다. 말로만 ‘공정’을 외칠 것이 아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 사법, 행정 기관의 말단 공무원부터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대통령까지 국민의 대표자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는 한 가지 ‘기본’ 위에 ‘좌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공무 수행을 해야 할 것이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6-02

고즈넉한 경주 야경의 정수 ‘불국사와 월정교’

해 질 무렵 불국사로 간다. 경주를 찾는 이라면 대부분 방문하는 곳이라 항상 붐비지만, 저녁 무렵에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이다. 어둠이 내려앉을수록 경내는 조용해진다. 소리라고는 우리 발밑에 바스락거리는 마사토 소리와 서늘한 저녁 바람이 석가탑과 다보탑 주위를 탑돌이 하다가 등에 매달린 이름의 소원을 후욱 읽고 지나는 소리뿐이다. 저녁이 깊어질수록 하늘빛이 불국사의 기와색에 가까워졌다. 스님 두 분이 법고를 향해 걸어오셨다. 처음 방문했던 2018년 가을에는 다섯 분의 스님이 커다란 북 앞에 줄을 섰다. 손목시계를 보면서 번갈아 두둥~치니 가까이에 선 우리들의 몸에 울림이 전해진다. 모든 길짐승을 포함한 중생들을 위해 치는 소리이다. 북채로 가장자리를 치며 스님이 빠져나올 준비를 하면 뒤에 섰던 스님이 얼른 이어받았다. 최근에 갔더니 스님 혼자 치셔서 여쭈니 공부하러 온 스님들이 각자의 절로 돌아가서 절이 조용해졌다고 하셨다. 그렇게 북소리가 불국사 안을 가득 채웠다. 다음으로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위한 범종이 울렸다. (범종 다음 법고 순이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종은 다른 곳에서 누군가 치는 가보다. 종이 울리는 동안 스님이 반대편에 자리한 운판을 향해 걷기에 따라가며 이야기를 들었다. 승가대학에 갓 들어온 젊은 스님이셨다. 모든 물속에 사는 것들을 위한 목어가 떨리고 모든 나는 중생들을 위한 운판이 소리를 끝내자, 대웅전의 작은 종소리가 화답했다. 저녁 예불이 시작된 것이다. 불국사에 밤이 드리웠다. 대웅전에서 들리는 예불 소리가 석가탑과 다보탑을 돌아 하늘로 오른다. 목탁 소리가 끝나자 붉게 물들었던 대웅전 격자무늬 문살의 빛이 옅어졌다. 불국사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사물 음악회의 감흥을 느낄 관광객은 오후 5시 30분까지 입장하면 가능하다. 들어갈 때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다른 문화재와 달리 나오는 시간은 따로 없으니 교교한 달빛과 함께 일주문을 나오길 바란다. 불국사를 나오니 부처님 오신 날 즈음이라 경주 거리는 곳곳에 등이 내걸려서 곱다. 경주 야경을 수집하는 야경꾼이 두 번째 찾은 곳은 동궁과 월지다. 이곳은 월지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다. 연못 주위를 돌면서 수백 장의 사진을 찍어도 모자란다.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푼 장소이다. 신라가 멸망한 후 이곳에 기러기와 오리가 날아와 기러기 안과 오리 압을 써서 예전엔 안압지로 불렸으나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고 내용으로 보아 이곳이 신라시대 때 월지라고 불린 장소로 확인되어 2011년에 경주 동궁과 월지로 변경되었다. 그다음 코스는 월정교를 휘돌아, 경주 시외버스터미널을 지나 강변을 따라 차를 달린다. 금장대 아래에 알사탕 뷰를 보기 위함이다. 주차는 예술의전당 주차장에 하고 길을 건너 다리 위까지 간다. 강 아래를 보니 사진을 찍기 위해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간 사람도 보였다. 사진에 모두 진심이다. 이 야경은 일 년 내내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사월 초파일 부근 보름 정도이니 확인하고 가야 한다. 경주의 야경을 다 보려면 며칠을 투자해야 한다. 감포 감은사 터의 탑, 감포항의 한옥 등대, 경주 월성도 볼만하다. 포항으로 오려고 경주를 빠져나오다 흘깃 본 어느 아파트 외벽에 켜진 불빛이 황룡사 9층 탑 모양이다. 경주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1

가족과 여유롭게 즐기는 ‘영주 여행’

성장기의 아이가 있다 보니 주말은 늘 아이를 중심으로 한 일정이 잡혀있는 편이다. 슬슬 역사나 지리에 대해 알아야 할 나이가 되었기에 이번엔 직접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게 최고다. 거기에 이왕이면 추억도 함께 남기자 싶었다. 그렇게 정해진 곳이 영주였다. 영주에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무섬마을이다. 물 위에 떠있는 섬이라 무섬마을이라 한다. 넓은 모래밭 위로 가느다란 외나무다리가 길게 놓여 있다. 물이 적어 모래밭 반 강물 반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대피소처럼 마주 오는 사람을 비켜 가게 조금 넓게 나무판이 놓여 있다. 서로 양보하는 마음을 갖고 건너야 한다. 물이 얕아 보이는 데다 반은 모래밭이라 만만히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다 물살이 조금 세지자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앞서 걷던 관광객들도 멈칫하는 모습이다. 더러 되돌아가기도 했다. 애써 먼 쪽을 바라보고 끝까지 건너갔다. 무사히 건너고 나서 주변 풍경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급등장한 아들의 성장통으로 다리를 건너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다음 장소로 출발하기 전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나무 그늘 의자에 앉아 강 건너 풍경을 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솔솔 부는 바람 소리에 상인과 지인의 말소리만 간간히 들려왔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은 임금으로부터 어필 현판을 하사받은 국가 공인 최초의 사학 기관이다. 또한 2019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같은 ‘주’자를 쓰는 도시에서 왔다 하여 입장료를 50퍼센트나 할인 받는 행운이 있었다. 선비마을은 수리 중이라 방문이 불가했지만 반값으로 입장하는 행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명륜당에서는 선비 두 분이 유교 경전을 낭독중이셨는데 친절하게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게 해주셨다. 앞으로 자랄 아이들에게 선비정신이나 예절 교육을 배우는 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고 돌아 나왔다. 소수서원을 나와 부석사로 이동했다. 부석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부석사라는 바위 아래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이라 불린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부석사로 올라가는 길은 속세에서 불국토로 나아가는 여정을 몸으로 체험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도착까지 제법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안양문을 지나면 무량수전으로 만나게 되는 구조로 이뤄져있다. 안양루는 1576년 선조 9년에 건립된 건축물이다. 안양루는 극락을 의미한다. 무량수전은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다. 배흘림 기둥, 안쏠림, 귀솟음, 안허리곡 등의 건축기법이 사용되었다. 현판은 1361년 홍건적의 난으로 몽진한 공민왕이 남긴 글씨다. 그 앞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전형적인 팔각등인 석등이 있다. 비례와 정교함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받고 있다. 외에도 석단, 당간지주, 3층 석탑,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고려목판 등 많은 문화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날은 마침 체험행사까지 있어 멋진 승무공연까지 감상할 수 있었다. 세종학당에서 외국인 학생들이 방문해 함께 공연을 즐겼다. 극락으로 가는 과정은 꽤 어려웠으나 현실로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수월했다. 그새 아이의 성장통이 멈췄는지 발걸음이 가볍다. 등을 달고 받은 청포도 사탕의 달콤함 속에서 영주 방문기는 무사히 종료되었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1

‘어르신’ 보다 회원님 호칭이 더 좋아

대구 서구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실시한 작은 투표가 지역사회에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흔히 당연하게 사용해 온 ‘어르신’,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용자 스스로 자신이 불리고 싶은 이름을 선택하도록 한 이색적인 시도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금화복지재단(이사장 신경용)이 위탁 운영 중인 대구 비산노인복지관(관장 권덕환)은 지난달 13일부터 18일까지 6일간 복지관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호칭 투표’를 실시했다. 이번 투표는 “나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동안 노인복지 현장에서는 연령과 관행에 따라 ‘어르신’, ‘어머님’,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사용돼 왔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과연 모든 이용자에게 편안하고 존중받는 느낌으로 전달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많지 않았다. 비산노인복지관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했다. 복지관 측은 “호칭은 단순한 부름이 아니라 사람의 존재와 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언어”라며 “이용자 스스로 원하는 호칭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존엄성과 참여권을 존중하는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투표 결과는 흥미롭게 나타났다. 전체 참여자 404명 가운데 ‘회원님’을 선택한 사람이 184명(4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어머님·아버님’ 101명(25%), ‘어르신’ 82명(20%), ‘선생님’ 37명(9%) 순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비산노인복지관은 앞으로 이용자 호칭을 ‘회원님’으로 통일해 사용할 예정이다. 특히 ‘회원님’이라는 표현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점은 단순히 나이를 기준으로 부르는 호칭보다, 복지관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의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노년층 역시 보호와 돌봄의 대상이기 이전에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이며,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식이 담겨 있다는 평가다. 권덕환 비산노인복지관장은 “누군가에게는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익숙하고 편안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회원님’이나 ‘선생님’이라는 표현이 더 존중받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각자의 선호를 존중하는 것이 이용자 중심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투표는 단순히 호칭 하나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복지관 이용자와 종사자가 함께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며 “상대가 원하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일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시도는 복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굳어져 온 언어 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일부 기관에서는 ‘선생님’, ‘회원님’, ‘고객님’ 등의 호칭 사용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류한국 서구청장 역시 “이번 호칭 투표는 작지만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의 시작”이라며 “앞으로도 이용자 한 분 한 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존중과 공감이 살아있는 노인복지 환경 조성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비산노인복지관의 이번 ‘호칭 투표’는 거창한 예산이나 대규모 사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람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고민 속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의 품격이 담겨 있다. 작은 호칭 하나가 관계를 바꾸고, 관계의 변화가 결국 복지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시도는 노인복지 현장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6-01

(방종현 시민기자의 유머 산책) 그늘집이 있는 농장

“어이, 방 기자 지금 어디야?” 주말 오후, 느닷없이 걸려 온 친구의 전화 한 통. 나는 기다렸다는 듯한 목소리로 짐짓 거만스럽게 대답했다. “응, 나 지금 그늘집에서 쉬는 중이야.” 순간 전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숨을 고르는 듯한 그 찰나의 침묵 뒤에, 친구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뭐라고? 그늘집? 야, 너 언제 골프장 회원권 끊었냐? 방기자, 이제 출세했네! 어디야, 팔공이냐, 경산이냐?” 나는 빙긋 웃으며 대꾸했다. “야, 인마. 우리 집 옥상이야. 이름하여 ‘방기자 CC’ 모르냐?” “뭐어어어? 옥상이라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박장대소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 속에는 놀람과 허탈함, 그리고 약간의 부러움까지 뒤섞여 있는 듯했다. 하긴, 골프장에서 라운딩하다가 잠시 쉬는곳을 ‘그늘집’이라 부르니, 친구로서는 내가 어느새 필드 위에서 ‘나이스 샷’을 외치는 줄로 착각했을 법도 했다. 사실 우리 집 옥상에는 멍석 한 장만한 작은 텃밭이 있다. 그 옆에는 내가 손수 망치질해 만든 투박한 평상이 놓여 있다. 남들이 보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집도 있는데 왜 굳이 옥상에서 저러고 있나.” 하지만 그 물음은 이곳의 비밀을 모르는 이들의 순진한 궁금증일 뿐이다. 내가 이곳을 ‘농장’이라 이름 붙이고, 평상 위에 차광막 하나 얹어 ‘그늘집’이라 부르는 순간, 세상은 전혀 다른 얼굴로 나를 맞이한다. 나는 더 이상 도심의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수만 평의 대지를 거느린 도시의 부농이자, 한가로운 라운딩을 즐기는 골프장 주인이 된다. 상상력이라는 작은 씨앗 하나가 삶의 지평을 얼마나 넓혀주는지, 이 옥상은 날마다 나에게 가르쳐준다. 텃밭의 작물들도 제법 의젓하다. 한쪽에서는 고추와 경상도 사내의 기개를 닮은 부추가 파릇파릇한 기운을 뿜어내고, 창상치 양양치도 있고 그 곁에는 울릉도에서 건너온 취나물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록 흙의 양은 적어도, 그 생명의 기운만은 결코 작지 않다. 살평상에 앉아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여름밤,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벌러덩 누워 수박 한 조각과 옥수수를 베어 물던 그 시절. 견우와 직녀의 애틋한 이야기에 코끝이 찡해지다가도, 이내 할머니의 구수한 옛이야기에 스르르 잠이 들곤 했다. 혹여 손주가 모기에 물릴까 염려하여, 거칠어진 손으로 부채를 설렁설렁 부쳐주시던 할머니의 모습도 떠오른다. 그 부채 바람은 세상 어떤 에어컨보다 시원했고, 그 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 달빛 아래 헛간채 지붕 위 하얗게 피어나던 박꽃 기억은, 이제 이 옥상 그늘집 위로 겹겹이 내려앉는다. 지금 나는 회색빛 도시의 한복판, 옥상 위 작은 텃밭에 앉아 있다. 그러나 마음의 넓이는 어느 18홀 골프장보다도 광활하다. 갓 따온 풋고추 한 줌에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그 순간은 그 어떤 호화로운 라운딩보다도 풍요롭다. 이름하여 ‘황제 라운딩’이다. 해 질 녘이 되면, 빌딩 숲 사이로 붉은 노을이 조용히 내려앉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금상치 잎사귀 위로 스며드는 저녁 햇살은 골프장의 푸른 잔디보다도 더 눈부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도심의 소음은 어느새 멀어지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그것은 분명 어린 시절, 할머니의 부채 바람을 타고 오던 그 소리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쉬어 가는가. 그것이야말로 삶의 깊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아닐까. 비록 멍석 한 장 크기의 작은 농장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매일 마음의 풍년을 맞는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세상에서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풍요로운 그늘집의 주인으로 살아간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31

제2회 충효 어린이 웅변대회 성황리 개최

(사)춘추회(회장 박연탁)가 주최하고 대구시웅변협회(회장 김태현)가 후원한 ‘제2회 충효 어린이 웅변대회’가 지난달 30일 대구 중구 성내새마을금고 3층 춘추회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대회는 어린이들에게 충효(忠孝) 정신을 일깨우고 올바른 인성을 함양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예선을 통과한 초등학생 7명이 본선 무대에 올라 열띤 경연을 펼쳤다. 행사장에는 학생과 학부모, 지도교사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참가자들을 응원하며 대회의 의미를 더했다. 참가 어린이들은 부모에 대한 효심과 나라 사랑,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 바른 인성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자신만의 생각을 담아 발표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렷한 발음과 당당한 자세로 연설에 나선 학생들은 객석의 큰 박수와 격려를 받았으며, 일부 학부모들은 감동의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특히 어린이들의 순수한 시각에서 풀어낸 충효 정신은 참석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며 전통 가치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했다. 대회 결과 최우수상은 대구 범어초등학교 5학년 최산 학생이 차지했다. 최산 학생은 정확한 발음과 자신감 있는 태도, 호소력 있는 발표로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아 상금 30만 원과 상장, 트로피를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우수상은 두류초등학교 3학년 피가온 학생과 칠성초등학교 3학년 오수현 학생에게 돌아갔다. 두 학생은 각각 상금 20만 원과 상장, 트로피를 받았다. 장려상은 조암초등학교 4학년 김민우 학생, 북부초등학교 3학년 김하윤 학생, 경상초등학교 5학년 하노아 학생, 수창초등학교 4학년 박은호 학생이 수상했으며, 각각 상금 10만 원과 상장, 트로피를 받았다. 박연탁 춘추회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어린이들이 어릴 때부터 충효 정신의 소중함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 대회를 개최했다”며 “앞으로도 가정의 달인 5월마다 충효 어린이 웅변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가치인 충효 사상을 널리 알리고 계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편 춘추회는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올바르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1979년 창립된 지역 대표 문화단체다. 현재 약 2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담수회 회장을 역임한 박연탁 회장이 회장을 맡고 있고 이수만씨가 상임부회장, 송재걸 씨가 고문, 윤인수 씨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춘추회는 회원들의 학문적 소양과 인문 교양 함양을 위해 자체 강사진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계 저명인사를 초청한 특강과 연수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회지 ‘춘추’를 발간해 지역 문화 발전과 전통 가치 계승에 기여하고 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31

달성공원 내 300년 회화나무, 왜 서침나무라 부를까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도 한낮 더위는 여름 같은 늦은 봄. 달성공원에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따 부른 나무가 있다고 하기에 찾아 나섰다. 궁금했던 그 나무의 이름은 ‘서침(徐沈)나무‘다. 그 나무는 공원 가운데 대한민국 어린이헌장비 옆에 심어져 있었다. 회화나무 하면 될 것을 왜 서침나무라 했을까. 나무에 사람 이름을 붙인 배경을 대구시 전 녹지과장인 이정웅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대구시가 푸른 대구 가꾸기 사업으로 많은 나무를 심었지만 도시 확장 등의 이유로 매년 많은 노거수들이 훼손되어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구시가 아이디어를 낸 것이 ‘역사 속의 인물과 나무 사업’이다. 쉽게 말하면 대구를 빛낸 역사적인 인물과 연관이 있는 노거수를 발굴하자는 것이다.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붙여 노거수를 보호하고, 시민들의 지역에 대한 자긍심도 높여보자는 것이 취지였다는 것이다. 서침나무도 그 때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전 녹지과장은 당시 ‘역사속의 인물과 나무’ 사업을 총괄한 사람이다. 서침나무 이름이 붙여진 달성 서씨인 서침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호는 구계다. 세종 때 조정에서 서침에게 국방상의 필요에 의해 고려 중엽 이후 서씨들의 세거지였던 달성(현 달성공원)을 나라에 헌납하면 포상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서침은 달성을 헌납하는 조건으로 포상 대신 대구지방에서 거둬들이는 환곡(還穀:흉년이나 춘궁기에 곡식을 빈민에게 빌려주고 추수기에 이를 환수하던 제도)의 이자를 줄여줄 것을 건의해 성사시켰다. 환곡의 이자 때문에 고통받던 가난한 백성들의 짐을 덜어준 서침의 높은 공덕을 기리기 위해 회화나무에 서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회화나무 안내 간판에 적혀 있는 수령은 300년이다. 높이는 20m가 넘는다. 가슴높이 둘레는 3.2 m다. 나무의 생육상태는 양호하고 잎은 무성하다. 공원에 있어 보호받기에 알맞다. 줄기는 5m 정도의 높이까지 곧게 뻗었다가 가지가 사방으로 퍼졌다. 백성을 생각한 서침의 정신이 느껴지는 모습이다. 공원에서는 공원을 찾은 시민들의 휴식처를 위해 주변에 벤치도 마련해뒀다. 여기서 야외 결혼식도 가끔 열린다고 한다. 동행한 대구문화재 지킴이 손태규 회원은 여기가 대한광복회가 결성된 곳이라고도 설명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성토성은 261년(신라 첨해이사금 15)에 달벌성을 쌓고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최초의 달성 축조기록이로 여겨진다. 지리지에 따르면 돌로 쌓아 둘레 944자, 높이 4자에 이르고 성 안에는 우물과 연못이 있다. 그런데 1968년의 조사 결과 성벽은 흙으로 쌓았으나 상층부에 석괴들이 노출된 것으로 보아 토석으로 쌓은 것 같다고 했다. 토성은 1963년 10월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었으며, 공원은 1965년 2월 2일 조성되어 1969년 8월에 개장되었다. 이름은 대구의 옛 이름인 달구벌 또는 달구화에서 유래되었으며, 삼국시대 말기에 축성되었다. 이 성곽은 고대부터 대구현의 관아로 사용되었다. 토성의 면적은 0.66㎢, 성벽길이 1.3km, 높이 5~12m이고, 동쪽에 성문이 있다. 1970년 5월 공원 내에 포유류 31종, 조류 63종이 있는 동물원(면적 9,173㎡)을 조성하여 자연학습장으로도 이용되며 편의시설도 갖추어져 시민의 휴식공간은 물론 대구의 역사를 되새겨보는 유적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6-05-31

목은 이색 선생의 고향, 괴시리 전통마을을 가다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5월 현장학습으로 지난달 28일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 선생의 고향이 있는 대게의 고장 영덕군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학습은 주로 경남, 전라, 충청 지역을 택했는데 이번에는 우리 고장 동해로 정해 역사 현장과 동해의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탁 트인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려 시내를 빠져나와 경산 와촌까지는 이날 학습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영천을 지나고 경주, 포항 지역을 거치면서 차창 밖에 펼쳐지는 풍경은 그 옛날의 푸른 산이 아니어서 모두가 실망했다. 모든 소나무가 마치 붉게 물든 단풍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포항과 가까울수록 거대한 산속의 재앙이 학생들을 속상하게 했다. 이러다가 우리나라 모든 소나무가 다 멸종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포항-영덕 간 고속도로를 달리니 탁 트인 푸른 바다에 매료되어 조금 전의 걱정은 사라졌다. 고속도로가 없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선진국으로 변모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하였다. 대구에서 출발한 지 2시간쯤 걸려 첫 번째 체험 장소에 도착했다. 삼사해상공원이다. 입구를 들어서니 높이 세워진 망향탑과 경북대종이 학생들을 맞았다. 삼삼오오 반별로 조형물, 연못, 전시관, 삼사해상산책로를 둘러보면서 추억의 사진을 남겼다. 과거 관광객들로 붐볐던 광경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한산한 것 같아 어려운 지역 경제를 실감하게 돼 마음이 아팠다. 다음 장소는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의 생가 터인 괴시리 전통마을로 갔다. 잘 정비된 주차장에 내리자 마을을 소개하는 대형 게시판이 보였다. 200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시대 전통가옥이 30여 채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마을은 다른 곳과 달리 400년 전부터 영양 남씨 씨족들이 터를 잡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처음으로 외할머니댁이라는 작은 집으로 들어가 보니 주인이 학생들을 반겨주었다. 이 집은 민박집으로 운영하고 있어 문패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은 카페로 운영되는 대형 가옥으로 가보았다. 마당이 넓고 정원을 잘 손질하여 관광객들이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커피 등 음료가 2-3000원으로 양반댁 후손답게 손님들을 배려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좌우로 기와집들이 줄지어 선 마을 안길은 넓고 고즈넉하여 옛날 선비들이 거닐던 여유로운 광경들을 연상할 수 있었다. 다음은 괴시리 마을을 대표하는 목은 이색 기념관에 들렀다. 이 마을은 원래 호지촌(濠池村)이라 불렸는데, 이색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고향과 비슷한 풍경을 지닌 괴시(槐市)라는 곳을 들른 후 이름을 바꾸었다고 하니 그의 고향 사랑은 특별하다고 하겠다. 기념관에는 목은 이색의 영정, 문집판, 목은집(牧隱集) 등 이색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외에도 이색이 유년 시절을 보낸 생가 터와 동상, 시비 등을 세워 목은 이색을 알리고 있었다. 매년 10월에는 목은문화제도 열린다고 한다. 다음 장소는 벌영리 메타세쿼이아 숲길이다. 이곳은 어느 개인 독지가가 가꿔 산림청에 헌납한 우리나라 100대 명품 숲이다. 피톤치드 향을 맡으며 400여 미터를 걸어가면 이보다 더 힐링이 있을 수 없었다. 학생들은 숲 속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휴식도 하고 모래와 황토, 작은 자갈 등으로 잘 조성된 맨발 길을 걸었다. 이번 현장학습 장소는 이색 선생의 흔적을 직접 답사하여 역사를 배우고 동해 바다의 아름다운 자연과 피톤치드를 맡으며 힐링을 즐길 수 있는 메타세쿼이아 숲과 동해바다 등을 체험할 수 있었고 날씨마저 좋아 너무 유익한 현장학습이었다고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6-05-31

‘호암미술관’ 희원 산책길 따라 만난 김윤신의 예술

손자 돌봄을 위해 포항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이 길어지고 있다. 수도권에 머무는 동안 잠시 틈을 내 도시 근교인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을 찾았다. 호암미술관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이다. 미술관의 명칭인 ‘호암(湖巖)’ 역시 이 선대회장의 아호에서 따왔다. 고(故) 이건희 회장에게는 아버지를 추억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한국 1세대 조각가 김윤신의 회고전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이 오는 6월 말까지 열린다. 사전 예약이 필수인 미술관 관람권 한 장으로 미술관 내부뿐만 아니라 전통정원 희원, 호암저수지 일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잔잔한 저수지 주변으로 다양한 석상들이 자연 풍경과 어우러져 야외 전시장 같은 분위기다. 석상 사이사이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돗자리를 펴고 피크닉을 즐기는 모습이 전시의 일부인 양 그림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 특히 전통 한국식 정원인 희원은 걸음을 자연스레 느리게 만든다. 기품 있는 돌담과 나무, 고즈넉한 연못과 정자가 조화롭게 이어진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바쁜 도시의 시간을 잠시 내려놓은 듯 가만가만 정원을 거닌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서는 거대한 청동 거미 조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표작 ‘마망(Maman)’이다. ‘엄마’를 뜻하는 이 작품은 어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상징한다. 작가는 평생 직조 수선공으로 일하며 가정을 지켜낸 자신의 어머니를 거미에 빗대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위압적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길고 가느다란 다리에서 연약함이 느껴진다. 강인함과 연약함이 공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세계적으로도 극히 일부 미술관에서만 설치될 정도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서양 현대미술인 ‘마망’이 희원 입구에 자리 잡아 한국 전통미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불국사를 떠올리게 하는 단정한 분위기의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니 김윤신 작가의 일생이 담긴 작품들이 1, 2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전시 제목인 ‘합이합일 분이분일’처럼 작가는 재료와 자신이 하나 되는 과정을 작품에 담아낸다. 나무와 돌, 캔버스와 조형물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펼쳐 보인다. 아흔이 넘어서까지 전기톱을 들고 거대한 나무와 돌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작품들이다. 솔직히 작품이 단번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예술에 대한 지식의 한계를 느끼며 한편에 마련된 작가와의 인터뷰 영상을 본다. 재료와 교감하며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를 탄생시킨다는 그녀는 어린 시절 광복군으로 간 오빠의 무사귀환을 비는 어머니를 따라 간절한 마음으로 차곡차곡 돌탑을 쌓던 기억을 작품 속에 녹여 냈다고 한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가 삶과 예술을 하나로 연결해 온 70여 년의 작품을 폭넓게 만날 수 있다. 전시를 보고 나서 다시 희원을 거닌다. 오래된 문화유산들이 과하지 않게 정원의 풍경 속에 스며 있다. 찬찬히 거닐다 보니 마음도 어느새 고요해진다. 법연지가 내려다보이는 호암정에 잠시 머무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싸르락 싸르락 고요를 깬다. 미술관 관람과 정원 산책이 하나의 설치미술처럼 이어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호암카페에 들르니 메뉴판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음식 값만큼이나 별도 정산되는 주차비는 다소 부담스럽다. 대중교통 접근도 좋은 편은 아니다. 접근성과 비용은 다소 아쉽지만, 정원과 미술관을 천천히 걷고 나니 잠시 일상 밖을 다녀온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7

‘어린 왕의 선물’ 찾으러 떠난 영월 여행기

한동안 영화계는 물론 사람들 마다 어린 임금님의 이야기가 화제였다. 어린 시절 드라마에서 본 단종은 그저 작고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대신 한명회의 존재는 드라마로 제작될만큼 위상이 대단한 시절이었다. 세월 따라 역사에 대한 평가는 달라진다더니 음지가 양지가 되듯 서글펐던 어린 왕의 이야기가 온 나라를 달궜다.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영월로 향했다. 청룡포에 9시 전에 도착했으나 이미 줄이 길었다. 온라인상에는 9시로 표기되어 있었으나 현장에선 8시부터 배를 운행한다 했다. 관광객 수가 너무 많아 편의상 변경된 듯했다. 서둘러 줄을 서고 돌아보니 얼마 되지 않아 임시 주차장까지 줄이 이어졌다. 전날 영화를 본 탓인지 물을 건너는 내내 그리고 청룡포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유배생활동안 거처한 어소가 재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1763년에 세워진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있다. 영조의 친필로 세겨진 비로 단종이 계셨던 실제 터를 나타낸다. 밖으로 나오자 비극적인 생을 내내 말없이 지켜봤을 관음송이 보였다. 수령 600살로 추정되는 나무다. 언덕을 올라 조금 걷자 망향탑이 나타났다. 망향탑은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떠올리며 쌓아 올려 만든 돌탑이라고 한다.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다. 높은 산만 가득한 곳에서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내내 바라봤을 마음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다시 아래로 내려오자 금표비가 보였다.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영조 2년에 세워졌다는 비석이다. 한편에선 청룡포가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고도 한다. 걸음으로 옮겨 다시 배를 탔다. 장릉으로 향했다.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차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 마을 안쪽으로 들어섰다. 길가엔 마을 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 모형들이 놓여 있다. 겨우 주차를 하고 나니 장릉의 능사인 보덕사 근처다. 아미타불을 모신 본당인 극락보전에 들러 절을 올렸다. 가족의 안녕을 담은 절 두 번에 왕이 더는 외롭지 않고 편히 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절을 한 번 더 올린 다음 밖으로 나왔다. 절 내부에 위치한 유치원과 고종 19년 1882년에 세워진 해우소가 이색적이었다. 장릉 입구에는 단종에게 충절을 다한 신하들의 위패가 모셔진 배식단사가 있었다. 외에도 엄흥도를 기리는 정려각, 1516년 노산묘를 찾은 영월군수 박충원을 기리는 낙촌비각, 1791년 영월부사 박기정이 단종의 넋을 기리고자 만든 영천 등이 있다. 조금 남아 있던 구름마저 개이자 묘역 주위가 환해졌다. 사람들의 촬영으로 능 앞은 빌 틈이 없었다. 장릉을 나서 다음에 이른 곳은 선돌이다. 단종이 유배길에 잠시 쉬어가서 유명해진 곳이다. 알았을까? 막막한 슬픔으로 가득찼던 유배길이 사람들이 이리 찾게 되는 명소가 될 것을. 간단한 기념촬영을 마치고 한반도 지형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 아래로 뗏목이 지나고 있다. 한반도 뗏목마을 영농조합 법인에서 운영 중이다. 뗏목에 앉아 발을 물에 담근 채 이동이 가능해 더욱 신났던 곳이다. 친절한 뱃사공을 비롯 주차장 관리인까지 영월에서 만나는 모든 이가 친절했고 말에서 따듯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래서 엄흥도가 존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 덕분에 더 없이 만족스런 여행이 되었다. 마음씨 고운 이들에게 어린 왕의 선물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본다.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7

한겹한겹 마음의 짐 더는 ‘사리암 가는 길’

전날의 여독이 채 풀리지 않아 늦도록 잠자리에서 뒤척이던 아침이었다. 갑작스레 울린 전화벨에 잠결로 수화기를 들자 지인이 “손 선생, 내일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 같이 갈래요?”라고 말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예, 갑시다”라고 답했다. 바로 전날에도 대학 동문회 문학기행으로 성주 일대와 심원사를 다녀온 터라, 왜 그렇게 선뜻 대답했는지 스스로도 의아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지인은 쉬는 화요일이면 혼자 버스를 타고 전국의 산과 절을 찾아다니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독서 모임이 있는 날이면 맛있는 것을 먹자며 연락을 건네오는 정 많은 언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지만, 새벽부터 서둘러야 하는 일정이 부담스러워 내 차로 함께 길을 나섰다. 아침 8시, 경산 사동에서 언니를 만나 청도로 향했다. 언니는 “흔쾌히 가겠다고 해서 기분이 참 좋더라”라며 웃었다. 차창 밖은 봄 산빛이 흘러가고, 나 역시 설명할 수 없는 기대감 속에서 길을 달렸다. 청도 운문사의 부속 암자인 사리암(邪離庵)은 ‘삿됨을 멀리하는 곳’이라는 이름처럼,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손꼽히는 나반존자 기도 도량이다. 특히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영험함이 전해져 전국에서 신도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리암 입구에 쌓인 지팡이들은 앞으로 마주할 길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절에 식료품을 나르는 리프트를 지나자 본격적인 1008계단이 시작됐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기를 반복할 때마다, 산을 잘 타는 언니는 끈기 있게 기다려 줬다. 문득 과거 팔공산 동봉을 오르다 현기증으로 중도 포기했던 기억이 스쳤다. 오늘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입술을 깨물며 발길을 재촉했다. 몇 번이나 쉬어가며 겨우 약수터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 한 바가지를 들이키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바위틈에 비스듬히 기대선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척박한 곳에서 오랜 세월 버텨낸 나무의 모습이 어쩐지 애처롭고도 숭고해 보였다. 사리암을 오르는 동안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이미 기도 같았다. 힘겹게 도착한 암자에는 지친 사람들을 위해 따뜻한 공양을 상시 내어주고 있었다. 언니는 현기증으로 고생한 나를 걱정하며 먼저 공양간으로 이끌었다. 푸짐한 공양부터 맛본 후, 우리 가족 다섯 명의 이름이 적힌 초파일 등을 산 아래가 훤히 보이는 좋은 자리에 달았다. 관음전에는 독특하게 불상이 단 한 분만 모셔져 있었다. 관음전 뒤편에는 기도하면 사람 수만큼 쌀이 나왔으나 인간의 욕심으로 더는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사리굴’이 있었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기도 중이었다. 가장 높은 위치의 가파른 바위벽 앞 산신각에도 올랐다. 힘들었지만 올라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소원을 품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1008개의 계단을 오르는 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무거운 짐들이 조금씩 씻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사리암에서 내려온 뒤 운문사에도 들렀다. 경내를 걷다 보니 오래전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처진 소나무를 신기해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한데, 이제는 다시 손을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문득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등을 하나 더 달았다. 집에 있었다면 누워 뒹굴었을 하루였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등을 두 개나 달게 된 오늘,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지인의 다정한 부름에 선뜻 나섰던 청도 여정은, 나도 모르게 짊어지고 있던 마음의 무거운 짐을 시원한 산바람에 모두 날려 보낸 참으로 홀가분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 내려오는 발걸음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가벼웠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6-05-27

“천국에서 보낸 선물”···.

“천국에서 보낸 선물.” 지난 20일 대구 서구에 위치한 비원노인복지관 실버식당 입구에 걸린 현수막 문구는 식당을 찾은 어르신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그 사랑을 다시 세상에 나누고자 한 가족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날 복지관에서는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 나눔 행사가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대한적십자사 상중이동 소속 이명선 회원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단순한 기부를 넘어,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특별한 나눔이라는 점에서 복지관과 지역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사연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된 작은 현금 봉투에서 시작됐다. 오래된 장롱 한편에 고이 간직돼 있던 돈이었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자식에게는 어머니의 삶과 사랑이 오롯이 담긴 소중한 흔적이었다. 가족들은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다가, 평생 어려운 이웃을 먼저 챙기고 나누는 삶을 살아온 어머니의 뜻을 기리고자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급식 후원으로 사용하기로 뜻을 모았다. 후원자인 이명선 회원은 “어머니께서는 평소에도 음식 하나라도 꼭 이웃과 나누시던 분이었다”며 “어머니의 마지막 흔적 같은 돈이 이렇게 어르신들을 위한 따뜻한 식사가 되어 전해진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것 같다”고 조용히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날 실버식당에는 단순한 식사 이상의 온기가 가득했다. 식당 안에는 갓 지은 밥 냄새와 따뜻한 국물 향기가 퍼졌고, 봉사자들은 한 분 한 분의 식판을 정성껏 채우며 안부를 건넸다.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도 배식과 안내에 함께하며 어르신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식사를 기다리던 어르신들은 “오늘은 더 맛있는 것 같다”, “이렇게 챙겨주니 참 고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어르신은 “돌아가신 어머니 마음이 참 곱다”며 한참 동안 현수막 문구를 바라보기도 했다. 또 다른 어르신은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따뜻한 마음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며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무료급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홀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에게는 누군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위로였고, 지역사회에는 아직도 사람 냄새 나는 온정이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특히 이번 나눔은 ‘추모’가 슬픔에 머물지 않고 이웃 사랑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시간을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며, 그리움을 다시 희망의 온기로 바꿔낸 것이다. 금화복지재단(이사장 신경용)이 위탁 운영하는 비원노인복지관의 이충희 관장은 “한 사람의 따뜻한 삶과 나눔의 정신이 가족을 통해 다시 지역사회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시간이었다”며 “무엇보다 어머니를 향한 가족의 사랑이 어르신들의 따뜻한 한 끼로 전해져 많은 분들의 마음을 울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선한 마음들이 많다”며 “앞으로도 복지관은 지역사회와 함께 이런 나눔과 온정의 문화가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실버식당을 채운 따뜻한 밥 한 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평생 나누며 살아온 한 어머니의 사랑이었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는 ‘천국에서 보낸 선물’이었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6-05-26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