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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고산의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의 향연

지난 2일 대구 수성구 고산구민운동장에서 열린 ‘2025 제7회 고산3동 고인돌 문화축제’가 주민 2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행사는 고산3동 고인돌문화축제추진위원회가 주최하고 10개 협력단체가 후원하여 마련되었으며, 고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 주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소통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축제는 ‘고인돌, 고산의 시간을 잇다’를 주제로 진행됐으며, 고산의 대표 문화유산인 고인돌을 모티프로 한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17여 개의 체험 부스에서는 종이 팩, 지갑 만들기, 양말목 꽃 키링 제작 등 친환경 체험이 진행돼 가족 단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개막식은 마루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장엄하게 시작되었으며, 수성구 홍보대사 박규리의 축하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무대가 이어졌다. 주민이 직접 참여한 장기자랑 무대에는 현장에서 접수한 12개 팀이 출연하여 열정적인 공연을 펼치며 축제의 흥을 더했다. 또한, 고인돌을 주제로 한 문화유산 전시 존은 고산의 풍부한 역사적 가치를 알리고, 지역민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뜻깊은 공간으로 주목받았다. 이와 함께 지역 어린이집과 유치원생들이 참여한 어린이 그림 전시회도 마련되어, 어린이들의 순수한 시선으로 담아낸 고산의 문화가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축제장을 찾은 한 방문객은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으로 온 가족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아이와 함께 고산의 소중한 문화를 배울 수 있어 보람되고 뜻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선도 축제추진위원장은 “올해는 가족 단위 방문객의 참여가 늘어 축제의 의미가 더욱 깊었다”고 인사를 했다. 또 이정미 고산3동장은 “앞으로도 고산의 고인돌을 비롯한 지역 문화유산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인돌 문화축제가 수성구를 대표하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축제는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문화의 장으로서, 고산의 정체성과 공동체 정신을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고산의 문화유산이 주민의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그날까지, 고인돌 문화축제는 앞으로도 ‘고산의 시간’을 잇는 다리로서 그 역할을 이어갈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1-10

권상원 작가의 ‘대구의 오지 Ⅲ’ 성황리 종료

사진작가 권상원씨가 최근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대구의 오지Ⅲ’ 전시 개막식 및 출판회를 가졌다. 권 작가는 이날 도시개발과 함께 기억에서 사라지는 대구의 골목 현장을 소재로 한 작품 19점을 전시했다. 작가는 2016년 7월 사진집 ‘대구의 오지Ⅰ’을 출판했으며 그해 10월 대구시립중앙도서관 가온갤러리에서 작품 발표회를 하기도 했다. 같은 해 김광석 길의 갤러리 아르에서 열린 포토대구전시회에서도 대구의 오지 중에 동인아파트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7년 4월에는 갤러리 안나(경북 칠곡군 가산면) 개관전 ‘사진파티’에 초대되어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7월에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대구의 오지 중에서 창을 소재로 한 ‘대구의 오지-창’을 발표한 바 있다 또 2019년 4월에는 안양문화재단의 주최로 국내 작가 20여 명과 해외 작가 20여 명으로 구성된 ‘공간 기억 전’에 초대되어 김중업 건축박물관 전시관에서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 9월에는 사진집 ‘대구의 오지 Ⅱ’를 출판하고, 이듬해 2월 봉산문화회관에서 발표를 하였다. 2021년 우크라이나에 열린 제4회 한-우크라이나 현대예술전에도 초대되어 대구의 오지를 발표하였다. 권상원 작가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도시 재개발과 함께 변화해가는 기억의 공간 대구의 골목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겠다”며 자신만의 포부를 보였다. 전시된 그의 사진 속에는 사진가 자신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은 물론이요 골목에서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의 정서와 땀 내음까지 배어있음을 느끼게 한다. 기억의 공간은 대구의 골목들이 도시 재개발로 인하여 하나 둘 소리 없이 사라지는 가운데 정든 삶터를 떠나는 원주민들의 안타까움과 아쉬움, 물질적 권력 앞에서 무력한 민중들의 삶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오로지 대구의 골목만을 주시하며 관찰하고 변화해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사진작가 권상원씨는 자비로 출판한 사진집을 대구광역시의 중요 공공도서관, 국회도서관을 비롯하여 광역자치단체의 대표도서관에도 무상 기증 비치하였다. 또 사진 전공학과가 있는 전국의 대학도서관과 대구 경북을 비롯한 전국의 중요 대학도서관에도 무상으로 기증 비치하였으며 사진전공학과의 교수들에게도 무상 배부했다. 이날 전시회 개막식에는 김종수 교수(토지사진가), 권정태 대구학회 회장, 박순국 전 매일신문 특파원, 윤국헌 교수, 황인모 황인모사진연구소 대표, 최덕순 전국문화사진초대작가회장이 참석하는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그의 작품전을 축하했다. 사진전에 참석한 한 인사는 “대구의 골목길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이 후일 대구의 작은 역사로 남았으면 한다”고 작품 감상의 소감을 전했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1-10

(톱)APEC 개최 도시 ‘경주’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수도 경주는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개최를 계기로 한 번 더 세계적인 도시로 명성을 떨치게 돼 고무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상고시대 신라는 진한 12국 중 사로국이라 하였다. BC 57년 신라를 건국한 이후 992년간 56 왕조를 이어오면서 나라를 서라벌 또는 계림으로 불렀다. 진한 땅에는 예로부터 여섯 마을 육부촌(六部村)이 있었다. 촌장은 모두 하늘에서 산으로 내려왔는데, 제3대 노례왕이 즉위한 9년(132)에 육부촌의 명칭을 부(部)로 고치면서 여섯 촌장에게 월성을 본관으로 하여 각기 다른 성(姓)을 내린다. 예컨대, 알천 양산촌의 촌장은 알평이라고 했는데, 알천 양산촌을 급량부로 고치고 촌장 알평에게 내린 성이 월성 이씨다. 표암봉에는 박(瓢) 바위가 있고 알천 탄강 비석이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게다가 광석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평을 목욕시킨 자리라며 바위로 만든 욕조가 있다. 그럴듯하게 만들었는지 그럴듯한 이야기인지 어쨌든 그 유적이 유존한다. 신라의 역사가 56 왕대에 이르는 문화유적은 불교 유적이 대세를 이룬다. 불교를 나라의 종교로 공인하고 최초로 흥륜사를 세우면서 번성한 까닭이다. 제23대 법흥왕 14년에 터를 닦고 동 왕 22년에 천경(天鏡) 숲을 베고 공사를 시작한 흥륜사는 서까래와 들보에 쓸 나무는 모두 이 숲에서 취했다. 927년 후백제 견훤이 신라 왕경을 습격하여 신라 제55대 경애왕을 자결하게 한 뒤 국보와 재물 등을 약탈하였다. 그리고는 왕의 이종 사촌 동생 김부(金傅)를 제56대 경순왕으로 세우고 물러갔다. 하지만 경순왕은 왕위에 오르고도 불행하게도 신라에선 마지막 왕이 되었다. 후백제의 잦은 침입과 지방호족들의 할거로 나라 기능은 마비돼가고 민심이 고려로 기울어져 갔다. 그러자 왕은 무고한 백성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나라를 고려에 귀부하기로 뜻을 밝히자 신하들과 큰아들 일(鎰)의 반대가 있었으나 이를 무릅쓰고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고려의 수도인 개경으로 떠나게 되었다. 고려에 나라를 귀부(歸附)한 경순왕은 유화궁을 하사받고, 개경에 있으면서 경주를 식읍으로 하여 고향의 일에 관여하는 벼슬인 사심관으로 임명받았다. 지금의 경주라는 지명은 곧 고려 왕건이 처음 내린 지명이다. 개경에서 왕건의 딸 낙랑공주와 결혼하여 자녀 여럿을 두었다. 하지만 늘 고향 경주를 잊지 못해 그리워한 나머지 허약해지자 끝내 병을 얻어 귀부한 지 43년 후인 978년에 일생을 마감했다. 경주는 그 뒤로 승격하여 대도독부(大都督府)가 되었다가 성종 때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치고, 영동도(嶺東道)에 예속하게 되었다. 현종 때 강등시켜 경주방어사(慶州防禦使)로 하고, 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다가 다시 동경유수로 하였다. 뒤에 동경 사람들이 신라가 다시 성한다는 말을 만들어 상주도·청주도·충주도·원주도에 격문을 전하고 낮추어 지경주사(知慶州事)로 하였으며, 관내의 주(州)·부(府)·군(郡)·현(縣)을 흡수시켜 안동과 상주에 나누어 예속시켰다. 고종 때 다시 유수로 고치고, 충렬왕 때 계림부로 고쳤다. 그러다가 조선 태종 조에 이르러 경주라는 옛 지명을 다시 쓰게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로써 신라는 경주·동경·안동·지경·계림 등 왕경이던 지명을 번갈아 쓰게 되었다. 이번 APEC 회의 개최를 계기로 21개 회원국 정상들이 찾은 경주, 그렇잖아도 이미 많은 세계인들이 찾은 그 경주라는 도시 이름의 유래를 보며 다시 한번 세계적인 관광도시로 급부상하길 기대한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11-10

(시민기자 단상) 고구마

무더웠던 여름이 지루했지만 계절은 고장 난 벽시계가 아니었다. 해뜨기 전 아침엔 제법 쌀쌀해서 뒷동산 아침운동을 할 때 이젠 따뜻한 외투가 친구가 되었다. 아내는 운동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고구마를 쪄서 가방에 넣어준다. 어릴 적 고구마는 우리 간식이 아니라 밥 대신 먹는 주식에 가까웠다. 학교 갔다 오면 커다란 대바구니에 고구마를 삶아서 시렁에 올려놓으면 그걸 꺼내 먹는 일이 집에 와서 하는 첫 번째 일이었다. 요즘엔 고구마를 먹으면 말랑말랑하고 촉촉한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어릴 적에는 속살이 하얗게 밤처럼 타박타박한 걸 좋아했다. 그래서 잘못 집으면 누군가 쪼개 보고 밤고구마가 아닌 걸 알고 다시 붙여놓은 것도 있다. 나 역시 몇 개를 쪼개 보고 밤고구마만 먹고 아닌 것은 다시 붙여 놓는다. 이제는 취향이 달라져서 손으로 만져보고 말랑말랑한 것만 골라 먹는다. 고구마를 생각하면 할머니가 떠오른다. 어릴 적 겨울밤은 왜 그리도 길었는지 저녁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파 군고구마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할머니 댁 굴뚝 옆 장작불 속에서 꺼낸 군고구마가 가장 맛있는 고구마다. 겉 모습은 검게 타 있었지만 속살은 노랗고 하얀 고구마가 달고 맛있다. 화롯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호호 입바람을 불어가며 고구마를 먹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고구마를 먹는 것이 아니었다. 할머니의 손자를 위한 마음이었고 가족들의 소통 시간이었다. 할머니는 군고구마를 꺼낼 때마다 “조심해 뜨거워”하시며 두 손에 천을 덧대곤 하셨다. 어린 나는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더 기대에 부풀었고 고구마 한입을 베어 물었을 때의 포근한 단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추운 겨울, 낡은 전기장판 위에서 고구마 하나 나눠 먹으며 보냈던 그 시간은 단순하지만 참 따뜻했다. 이제 내 나이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지 오래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어릴 적 고구마가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의 소박한 행복이 그리워진 탓이 아니겠나. 이제는 마트에서도 손쉽게 군고구마를 살 수 있고 전자레인지 버튼 하나로도 고구마를 익힐 수 있다. 하지만 그때 그 맛은 다시는 똑같이 되살릴 수 없다. 불 냄새와 함께 묻어있던 손때, 나눔, 그리고 기다림의 정이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이병욱 시민기자

2025-11-10

시니어들의 가을 나들이, 청송 주왕산을 찾아

지난달 30일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는 10월 현장학습날을 맞아 청송군을 다녀왔다. 가을을 타는 시니어들의 들뜬 모습에 부조라도 하듯 청명하고 따뜻한 날씨는 늦가을 정취를 더욱 잘 느끼게 했다. 차창 밖을 내다보며 재잘대는 학우들의 모습은 마치 소풍 나온 어린이처럼 들떠있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파천면에 위치한 산소 카페 ‘청송 정원’이었다. 국내 가을 여행지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다. 모두가 부푼 꿈을 안고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차에서 내린 학우들은 모두가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수만 평 대지 위에 가득찬 백일홍은 죄다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며칠 전 내린 서리로 인해 아름답던 그 모습은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도시의 찌든 때를 잠시나마 힐링하려 했던 꿈이 물거품이 돼 모두가 아쉬워했다. 그보다 더 마음이 아팠던 것은 주위에 둘러싸인 산들이 온통 산불로 인해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는 것이다. 매표소 옆에 마련된 조형물과 포토존을 찾아 반별로 삼삼오오 짝지어 사진을 찍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다음 찾은 곳은 주왕산이다. 주왕산 역시 이맘때면 국내 최대 가을 단풍 여행지로 유명하지만, 올해는 늦게 물드는 탓인지 단풍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탁 트인 가을 날씨와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는 기암 봉우리가 학우들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차에서 내려 일부는 대전사를 돌아보고 또다른 일행은 맑은 계곡물을 끼고 올라 기암 부근까지 다녀왔다. 그때 대전사 뒤로 보이는 기암 다섯 봉우리 중 한 곳 중심부에 빨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페인트로 칠한 것 같았으나 무엇인지 정체는 알 수 없었다. 모두가 내린 결론은 파란 담쟁이 넝쿨이 단풍으로 물든 것이라 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주산지다. 물안개와 단풍으로 유명한 주산지는 사진 애호가를 비롯하여 수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핫플레이스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물속에 잠긴 왕버들과 주위의 풍광을 보기 위해 모두 열심히 올라갔다. 여기도 역시 단풍은 보이지 않고 물에 잠긴 고목만 초췌한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단풍은 없지만 호수에 비친 왕버들 모습과 고즈넉한 분위기는 학우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오늘의 마지막 장소는 영천시 보현댐 출렁다리다. 어두움이 깔린 초저녁 거대한 출렁다리가 보였다. ‘영천 보현산댐 출렁다리’라는 글자가 쓰인 입간판에 조명이 들어오고 500여 미터의 긴 출렁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학우들은 포토존에 몰렸고 보현산 댐의 야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수요대학 이복자 학우는 “비록 단풍은 볼 수 없었지만, 청명한 가을 날씨와 아름다운 청정 계곡과 주왕산 봉우리, 한 폭의 풍속화 같은 주산지, 별 모양을 형상화한 영천 보현산 댐 출렁다리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며 “좋은 친구들과 함께한 시간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1-09

자두·사과 복합 재배로 새 희망 키우는 ‘청송 낙원농장’

10월 말, 경북 청송군 파천면 중평마을의 낙원농장은 사과 농장으로 완벽히 변모해 있다. 3월에 심은 사과나무들이 계절이 가을로 깊어지는 지금, 풀을 베고 골을 정리하며 반듯하게 자란 나무 사이를 걷는 농부의 미소가 고요하게 퍼진다. 긴 농사 여정의 한 가운데서, 그는 2년 후 수확을 떠올리며 골을 정리하고 나무를 가다듬는다. 반면, 최근 몇 년 반복된 자두 농사의 실패는 그에게 깊은 상처였다. 15년 동안 자두 농사를 이어왔지만, 최근 3년간은 농비조차 건지기 어려울 만큼 수확이 저조했다. 그의 자두나무는 올해 3월 경북을 덮친 산불의 여파로 막 피려던 꽃망울이 말라버렸고, 긴 여름 내내 이어진 불볕더위에 열매가 성숙하기도 전 햇볕에 설익었다. 그나마 남은 열매도 해충 피해가 심했다. 8월 말, 수확을 앞두고 열매가 이르게 색을 띠자 농부는 올해도 자두 농사는 끝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실제로 수확 결과는 더 참담했다. “만지는 것마다 성한 것이 없을 정도였다”라는 그의 말에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조금씩 벌레 먹은 자국이 남은 자두를 마주한 농부는 망연자실했고, 작년 9월 수확 10여 일 전부터 이상 징후를 감지했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해 그는 응애라는 해충을 발견하고, 재빨리 주변 나무의 두 배수에 살충제를 쳤다. 일시적으로 해결된 듯 보였다. 하지만 응애는 순식간에 농장 전체로 번져버렸고, 잎은 녹색 상태로 말라버렸으며 열매는 익기 직전 성장을 멈췄다. 결국 농장 전체 수확을 포기했다. 그는 담당 기관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초제 친 것 아니냐”는 기술센터 직원의 질문을 듣는 등 제대로 귀 기울여 주는 곳은 없었다. 그 전년도에는 태풍과 지속된 비 때문에 잘 익은 자두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남은 자두조차 과육이 터져 폐기해야 했다. 가입한 재해보험도 기대했던 보상은 턱없이 부족해 “보험에 대한 불신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위기가 생활의 위협으로 다가오자 분산된 소득원 마련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농부는 연이은 자두 수확 실패와 작년 병충해 여파로 ‘이 나무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고, 품종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3월 25일 청송을 휩쓴 산불에 자두나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피해가 컸다. 중평마을의 낙원농장에도 자두나무의 30% 이상이 불에 탔지만, 그날 새로 심은 사과 묘목은 일부만 피해를 보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귀농 14년 차인 그는 말한다. “맞벌이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농사만으로 살기 어려웠다.” 농업소득은 단지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철저한 준비와 하늘의 도움까지 있어야 가능하다. 사과나무를 심어 자두와 사과 두 가지 품목으로 소득원을 분산하면 위기도 분산된다. 한가지가 안 되더라도 다른 하나가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사과나무 사이를 거닐며 상쾌한 바람을 맞는 그의 모습에서 단단한 결의를 본다. 그는 실패를 되새김하지 않고 새로 돛을 올린다. 올해는 실패했지만, 잘 크고 있는 사과나무를 보며 부농의 꿈을 품어본다. 그는 그렇게 다시 길을 걷는다. 사과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잎 사이로 햇살이 은은히 비치고, 농부는 그 틈새에서 내일을 꿈꾼다. 아마도 2년 후, 이 사과나무들이 실한 열매를 맺고 농부의 미소가 더 크게 번지리라. 청송의 가을이 깊어갈수록 낙원농장의 내일도 조금씩 그 빛을 더해가기를 기대해 본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묵은 서신들,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사료(史料)

여든여덟 노모가 상자에서 낡은 종이뭉치를 주섬주섬 꺼낸다. 빛이 바래고 향이 묵은 수십 통의 편지들이다.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던 날, 친지와 친구들이 써 준 축사, 시집간 딸이 그리워 보내 온 친정어머니 서신, 시집살이 힘들어도 덕으로 감내하라 일러주던 친정오빠의 단정한 필체, 그리고 신행을 앞둔 신부에게 보낸 새신랑의 애정 담긴 편지까지, 모두가 한 시대를 통째로 품은 시간의 기록이다. 축사와 편지를 쓴 이들은 어느새 고인이 되었지만 그들의 글은 여전히 남아 65년 세월을 친구 모친과 함께하며 그 곁을 지킨다. 살다보면 ‘살아낸다’는 노랫말이 와 닿을 때가 있다. 누구라도 여든여덟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어른들이 놋그릇을 애지중지 감추는 것을 보며 자랐고 어딘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이른 나이에 시집을 가던 동네 언니들, 보따리를 이고 진 피난민들이 마을과 집 마당으로 들이닥치던 것을 기억하는 어르신은 멀어진 세월을 회상하느라 이야기가 끝이 없다. 혼란과 공포 속에서도 다시 봄은 오고 삶은 이어진다. 결혼은 어려운 시절에도 여전히 축복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까지도 며느리의 시집살이는 숙명처럼 여겨졌고, 지켜야 할 예법과 해야 할 집안일은 끝이 없었다. 사랑방 손님이 끊이지 않던 시절, 그래도 푸념 없이 성실히 살았다. 온화한 성품으로 음식과 수(刺繡) 놓기를 좋아하는 모친의 지난한 시절 속,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준 것이 바로 이 묵은 서신들이다. 친정엄마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오라비의 글을 되새기며 시집살이 고됨을 감내한다. 가장 아끼는 것은 두루마리에 쓴 형부의 긴 축사다. ‘논 서마지기를 줘도 처제와 바꾸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던 시절, 시집가는 처제에게 쓴 애정이 절절한 축사를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줄줄이 외우신다. 종종 꺼내보는 원본이 훼손될까 염려되어 그 긴 축사를 복사해 거실 벽에 기다랗게 붙여 드렸더니 “왜 여태 이 생각을 못했을까”시며 뒷짐을 지고 천천히 읽으시는 어르신 눈에는 젊은 날의 추억이 고요히 되살아난다. 서신들은 한자가 간간이 섞인 한글로 쓰였다. 일본어를 강요받던 시대를 벗어나 비로소 우리말과 글로 편지를 쓰는 흔흔함이 편지 곳곳에 묻어난다. 친정어머니 편지는 흘림이 심해 읽기가 다소 힘들고, 아직은 태양력보다 월력(음력)에 더 익숙했던지 서신에 기록된 날짜가 ‘단기’로 표기되어 있다. 한 장 한 장이 개인의 삶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소중한 사료(史料)처럼 느껴진다. 긴 두루마리 축사들은 그 자체로 가사(歌辭)를 닮았다. ‘글’이 훈민정음 창제 이전에는 양반의 전유물이었지만 언문(한글)의 탄생으로 평민과 부녀자도 작가를 꿈꾸게 되고, 자연을 읊고 임금을 기리던 가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일상의 애환을 담은 산문시로 발전한다. 모친의 편지는 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힘들었던 세월에도 순간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모진 세월 견디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며 그들의 삶은 추억이 되고 역사가 된다. 오래된 서신 속에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한 세대가 품었던 사랑과 인내 그리고 인간의 품격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무엇이 한사람의 삶을 지탱하게 하는가?’ 묵은 향 뿜어내는 어르신의 서신이 그 답을 조용히 일러준다. 사랑, 그리고 기억이다. 살아 온 날들은 흘러가도 편지는 남아 이야기를 이어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남한강을 따라 엄마와 함께 그린 추억, 단양

가을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아침, 엄마와 함께 단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며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윤곽이 점점 멀어지고, 산들이 가까워질수록 마음도 차분해졌다. 첫 목적지는 도담삼봉이었다. 남한강 위로 솟은 세 개의 바위 봉우리가 잔잔한 물 위로 비쳐 그려졌다. 그 풍경은 마치 동양화 한 점 같이 아름다웠다. 강 위로 유람선을 타고 경치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보였다. 우리는 강가를 따라 걸으며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걷다 보니 목이 말라 근처 카페에 들렀다. 엄마는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더덕&마쥬스’를 골랐다. 한 모금 마시더니 “건강한 맛이지만 내 입맛은 아니야”라며 웃었다. 그 말 한마디가 이상하게 기억에 생생하게 남았다. 이후 만천하스카이워크로 향했다. 차를 타고 오르는 길에는 불빛이 은은한 터널이 있었다. 알록달록한 조명이 반짝이며 어두운 공간을 채웠고, 그 속을 통과할 때 마치 다른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신비로웠다. 이런 기분 탓에 터널을 지나며 우리는 동시에 감탄했다. 터널을 벗어나니 단양의 산세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렇게 도착한 스카이워크는 생각보다 훨씬 높고 탁 트여 있었다. 발밑으로 남한강이 굽이치며 흐르고, 멀리 산들이 겹겹이 이어졌다. 한쪽에 노란 돌들이 눈에 띄어 관리 직원에게 물어보니 채석장이라고 했다. 자연과 산업의 흔적이 공존하는 풍경이 묘하게 인상 깊었다. 스카이워크를 내려온 뒤 우리는 장도길로 향했다. 강을 따라 난 둘레길은 조용했고, 햇살이 나무 사이로 흘러들었다. 강물 위를 지나가는 기차가 멀리서 보였다. 잔잔한 물결 위로 반사되는 철길의 그림자, 그리고 그 위를 천천히 지나가는 기차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장도길을 나오니 국화로 꾸며진 길이 보였다. 그리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꽃과 하나 되어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고 그곳을 떠났다. 우리의 저녁 메뉴는 흑마늘 갈비였다. 단양의 특산품답게 진한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었다. 식당 창밖으로는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단양시장으로 향하니, 거리 곳곳이 활기로 가득했다. 흑마늘 빵, 흑마늘 닭강정 등 흑마늘을 활용한 음식들이 줄지어 있었고, 인기 있는 빵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따뜻한 빵을 받아 들고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우리도 몇 가지를 사서 시장을 천천히 걸었다. 시장을 벗어나자 맞은편으로 남한강이 펼쳐졌다. 밤이 내려앉은 강가에는 조명이 켜지며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풍차와 계단, 폭포, 물고기 조형물까지 빛으로 물든 장면은 낮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야경을 감상하고 단양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6

철학자 쉐프가 만드는 파스타

실크로드와 국수의 만남, ‘누들로드’라는 2008년에 방영된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국수가 우리 손에 온 길을 알았다. 한 알의 밀이 국수가 되어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그 뒤에 감춰진 동서 문명 교류의 수수께끼를 다룬 프로그램이었다.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면 요리를 가져왔다는 설이 널리 알려졌지만, 폴로 이전에도 이탈리아에 유사한 반죽 요리가 있었다는 반론이 있다. 포항에 파스타를 제대로 요리하는 집이 있다. ‘파스타 쉐프’, 이름부터 세프라 붙인 걸 보면 분명 사장님은 요리에 진심이다. 두호고등학교 앞에 있을 때부터 단골이 있을 정도로 맛집이었다. 하지만 외진 곳이라 포항에 놀러 온 사람들이 우연히 지나다 들어갈 수는 없었다. 최근 ‘스카이 워크’ 가는 길에 자리를 옮겨 실내도 조명도 새로 단장해서 오픈했다. 음식점이 리모델링하거나 이사, 또는 주인이 바뀌면 맛도 변하는 일이 허다하다. 그런 걱정을 하며 방문했다. 주말 늦은 점심시간이라 우리뿐이었다. 블루베리 피자와 트러플 크림 리조또를 시켰다. 여느 집에는 물을 종이컵에 주는데 이곳은 예쁜 유리잔이다. 우아한 목이 있는 유리잔, 오이 피클도 사장님이 직접 담가 새콤달콤 자극적이지 않다. 셀프 바에서 마음껏 더 가져다 먹어도 된다. 주문하기를 누르자마자 그때 오픈 주방에서 사장님이 요리를 시작했다. 우리 음식이 만들어지는 소리가 콩콩콩 들렸다. 피자가 먼저 나왔다. 리코타, 모짜렐라 등 네 가지 치즈가 올라간 피자. 통밀로 직접 반죽하고 숙성한 뒤 만들어 화덕에서 구워 나왔다. 한 조각 떼어내니 쭈욱 늘어난다. 테두리 부분 꼬다리가 바삭하니 고소해 남길 수 없는 맛이다. 다른 집의 피자는 두 조각 이상 먹으면 손이 안 가는데, 둘이서 한판 다 석션했다. 리조또를 숟가락으로 덜어내니 긴 실처럼 치즈가 따라왔다. 고소한 풍미가 입안 가득했다. 맛이 변하지 않았다. 다 먹고 사장님께 들으니 트러플 크림 리조또는 예약해야만 먹을 수 있는 메뉴라고 했다. 오래 계속 볶아서 만들어야 하니, 손님이 많을 때는 만들기 힘들다 한다. 다행히 늦은 점심시간이라 가능했다고 하니, 가기 전에 예약하고 가면 좋겠다. ‘파스타 쉐프’의 음식이 마지막 한 입까지 느끼하지 않은 이유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버진 올리브유란 화학적 방법이 아닌 올리브 열매를 으깨어 즙을 짜내 만든 기름, 즉 압착 올리브유를 말한다. 이 압착 올리브유 중에서 산도 0.8% 이하의 최상급 제품을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라고 한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은 공복에 섭취하면 흡수율이 높아지고 소화를 돕는 데 효과적이며, 심혈관 건강과 항산화, 피부 및 두뇌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치즈도 최상의 품질만 고집한다. 이렇게 음식에 진심인 이유는 사장님이 요리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며 한다고 했다. 자신이 정직하게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단골이 된 사람들이 늘어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건물 왼쪽 벽에 ‘화덕 수제 피자가 맛없으면 공짜’라고 크게 적혀 있다. 쉐프의 자신감과 철학이 담긴 글이다. 나라에 가슴 아픈 사건이 있거나 코로나가 번졌을 때 가게에 손님의 발길이 몇 달씩 끊겼다고 한다. 파스타와 피자는 사람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려울 때도 맛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최고의 재료를 고집하며 더 기본에 충실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음식점이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지는 요즘, 13년 누들로드의 끝인 포항에서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사장님의 맛에 대한 뚝심이었다. 매주 월요일이 쉬는 날이지만, 빨간 월요일은 영업한다. 오전 11시 30분~오후 8시 30분, 브레이크 타임 오후 2시 40분~5시, 명절 연휴 영업한다. 주소 : 북구 해안로 441 (여남 스카이 워크 가는 길) 054-253-8686.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4

우리는 한글을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을까

지금은 'k'의 전성시대다. 'k-팝'을 선두로 'k-푸드','k-화장품', 'k-드라마' 등. 한국과 한국문화의 전반에 걸쳐 전 세계인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 여름은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케데헌'(KPop Demon Hunters) 의 주제곡인 '골든'의 가사를 외국인들이 그대로 흥얼거리는 모습은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유난하다는 걸 실감하게 했다. 외국인들이 유창한 우리말로 방송을 하고 한국의 역사까지 이야기하는 모습이 막힘이 없다.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한글로 붓글씨를 쓴다. 한국인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로 전화 통화를 하는 외국인도 있다. 거기다 한글로 쓰인 소설이 노벨문학상까지 받았으니, 한국의 제대로 된 맛을 느끼려면 한글과 한국어를 아는 것이 곧 한국을 아는 것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k 문화'의 중심이 된 한글을 우리는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을까. 우리의 일상생활을 돌아보면 한글을 잘 사용하기 위해선 먼저 문해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문해력도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정통신문의 '중식'이나 '금일', '심심한 사과' 등 기본적인 어휘를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익숙하다 보니 활자로 된 문화를 접할 기회가 줄어드니 단어의 뜻과 문맥을 파악하기에 어려워서다. 또 디지털 용어나 외래어에 익숙해진 이유도 있다. 우리가 쓰는 말도 아직은 생각보다 영어와 더 친숙해 보인다. 길거리의 간판만 봐도 영어가 수두룩하다. 동네 골목에 있는 간판들을 살펴보니 한 영어 간판은 건물을 들여다보아도 가려져 있어 무엇을 하는 가게인지 단번에 알 수가 없다. 간판의 작은 글씨도 영어로 되어있다. 자세히 보니 그제야 'hair'라는 글자가 보여 미용실인지 알았다. 영어와 한글이 섞인 것도 흔히 보는 간판의 모습이다. 프랜차이즈 빵집이나 카페, 옷 가게는 물론이고 종종 가는 동네 24시 무인 카페와 편의점도 영어로 되어있다. 공공기관에서의 영어와 한글을 섞어 쓰는 건 당연시되기도 한다. 우리 국민을 위한 정책이나 사업에서도 영어를 쓰고 브리핑이나 캠페인, 네트워크, 오픈 채팅의 용어들이 공문서나 홍보물에 습관처럼 사용되고 있다. 공공의 목적을 가진 행정업무에 관성처럼 영어로 가득 차면 시민들과의 소통에도 어려움이 생기고 한글의 아름다움도 희미해진다. 한 가게 앞에서 기다리는 줄이 길면 웨이팅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고 색깔을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블루니 핑크니, 하는 말은 익숙하게 입에서 나온다. 싱크홀, 언택트, 혈당 스파이크, 뱅크런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낯선 외래어들은 한 번에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처음 한국에 온 한 외국인은 한글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한글에 'O'이라는 글자가 예뻐 보여서 폰으로 그것만 찍었다고 한다.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말하는 게 더 좋아 보이고 한글은 모든 언어의 발음을 다 표현할 수 있는 글자라고 덧붙인다. 한글은 해마다 세계에서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에게 '세종대왕 문맹퇴치상'을 주고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창제 원리가 밝혀진 몇 안되는 글자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은 한글은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될 수 있는데 왜 굳이 아름다움을 가리려고 하는지 우리가 한글을 잘 알고 써야 할 것이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4

봉화 청량산 단풍과 가을 정취 가득한 예던길

겨울을 앞두고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문명산과 청량산의 단풍. 가을 강변 예던길은 바람의 맛이 여유롭다. 빨강, 주황, 노랑 나뭇잎이 예쁘게 섞인 청량산이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계절이다. 단풍철이라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많은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는 이맘때. 선선한 공기의 청량감은 기분까지 상쾌하고 화려한 단풍 숲속에서 호젓하게 자연을 즐기기 좋은 봉화 청량산과 예던길이 여행객을 매혹한다. 울긋불긋한 청량산의 단풍으로 기암괴석 봉우리는 더욱 또렷이 보이고, 천년고찰 청량사의 단청과 5층석탑이 어우러져 황홀경으로 다가온다. 청량산의 단풍은 10월 하순에서 11월 초순이 절정이다. 고즈넉이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예던길은 자연을 따라가는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청량산은 경관이 빼어나 ‘소금강’이라 부르기도 한다. 최고봉인 장인봉을 비롯해 선학봉, 축융봉, 자란봉 등 12개의 암봉이 있다. 봉 자락에는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으며, 퇴계 선생의 서당 청량정사가 있다. 장인봉 정상에서 보이는 풍광과 축융봉에서 바라보는 단풍 숲속에 자리 잡은 청량사는 가히 절경이다. 암봉을 따라 청량산 종주 등산로 다섯 코스가 있으며, 입석에서 청량사까지는 완만하고 부담 없이 걸으며 단풍 구경을 즐기기에 좋다. 해발 800m 지점에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현수교인 하늘다리는 청량사에서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데, 힘들게 오르는 만큼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가 고생을 보상해준다. 축융봉쪽으로는 청량산성과 공민왕당 등이 있고, 밀성대부터 축융봉까지는 산성으로 통한다. 붉게 물든 청량산은 조만간 다가올 겨울을 앞두고 단풍잎이 마지막 가을을 장엄하게 물들이고 있다. 풍광이 빼어난 청량산과 퇴계가 걸었던 도학의 길 예던길이 청량산과 문명산을 끼고 도는 낙동강 줄기 따라 이어진다.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묵묵히 가을 풍경 속으로 걸을 수 있는 예던길. 청량산 입구에서 낙동강 시발점 공원까지는 약 9km다. 예던길에는 옥빛의 백용담소가 있으며 강을 가로질러 선유교 다리가 있다. 선유교에서 바라보는 백용담소의 풍경은 예술이다. 병풍 두르듯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턱걸바위와 단풍, 백용담의 조화는 가을이 선물하는 걸작이다. 햇살 아래 강물은 윤슬이 반짝이고 바람결에 일렁이는 갈대는 호젓한 가을 속으로 이끈다. 단풍이 든 산과 가을 햇살에 비치는 강물이 잘 어우러지고, 예던길 오마교에서 바라보는 청량산이 황홀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무심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풍경은 선인들의 발자취와 이야기를 품고 있어 더욱 빛난다. 화려한 단풍을 자랑하는 청량산과 자연을 만끽하며 가을 정취를 즐기기 좋은 예던길에서 아름다운 가을과 만나보자. /류중천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1-04

시로 되살아난 민족의 숨결, 이육사 정신의 오늘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오늘 내 여기서 너를 불러 보노라’라는 주제로 열린 시 낭송회가 최근 대구 이육사기념관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이 행사는 일제 강점기에도 변절의 흔적 없이 시와 영혼으로 항거한 이육사, 이상화, 심훈, 윤동주, 한용운, 현진건 여섯 시인의 정신을 기리는 자리였다. 단순히 시를 읊는 것을 넘어, 민족의 혼 속에 깃든 자주와 희망의 언어를 되살리는 역사적 의미를 담아냈다. 특히 경동초등학교 김태윤 군이 이육사의 ‘꽃’을 낭송하던 순간, 세대를 넘어 이어져 내려오는 문학의 불씨가 찬린히 빛났다. 뜨거운 함성과 따뜻한 눈빛은 그 자체로 민족정신이 계승되는 모습을 상징했다. 이육사 기념관은 시인의 유품과 투옥 당시의 기록을 전시하는 공간을 넘어, 혼을 담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민족의 교실이다. 한 시대의 고통과 의지를 후대가 체험을 통해 언어로 되새기고, 그 뜻을 새롭게 발견하는 자리다. 일찍이 대구에서 항일 문학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이육사의 발자취는, 이 도시가 지닌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글로벌시낭송협회 박영선 회장과 11명의 낭송가는 낭송을 통해 한글 문학의 품격을 높이는 데 헌신하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각 시인과 작품의 정신을 담은 낭송이 이어져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박영선 회장은 이육사의 ‘절정’을, 손병갑씨는 이육사의 ‘광야’를 낭송하며 시대의 아픔을 되새겼다. 안현정씨는 이상화의 ‘역천’을, 손진경씨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전하며 감동을 선사했다. 이연희씨는 윤동주의 대표작 ‘서시’와 ‘별 헤는 밤’을 차분히 낭송해 깊은 울림을 남겼고, 경동초등학교 김태윤군은 이육사의 ‘꽃’을 통해 세대를 초월한 문학의 힘을 증명해 보였다. 송외숙씨는 이상화의 ‘비 갠 아침’을, 서교현씨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생생하게 재현하며 현장감을 더했다. 마지막으로 이은숙씨는 이육사의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를 낭송해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시가 다시 입말이 되고, 그 입말이 사람의 마음을 깨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민족교육의 가장 깊은 형태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정신의 근원을 자주 놓친다. 그러나 시는 여전히 인간의 근본을 지키는 언어이며, 민족의 혼과 기억을 품은 그릇이다. 이육사 기념관의 낭송회는 이를 증명한 하나의 장엄한 증언이었다. 시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힘은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나라를 살리고 세대를 묶는 가장 순결한 유대다. 광복 80주년의 의미는 그날처럼 시로 되살아나는 민족의 숨결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남산동 주민 김모 씨는 “이육사 정신을 담은 낭송회가 이육사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열렸는데, 이를 참관한 후 깔끔하고 품격 있는 진행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저 또한 용기를 내어 낭송을 배워보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선 회장은 뛰어난 지도력과 진솔한 성격으로 알려진 박식가다. 한글의 아름다운 시를 널리 알리며, 낭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정성을 쏟고 있다. 현재 영남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낭송 지도를 진행하고 있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1-03

천년 사는 은행나무, 약재로도 많이 쓰여

가을이 왔다. 낙엽수들이 앞다퉈 단풍으로 물들이고 있다. 단풍 하면 은행나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은행은 동아시아 원산의 나무로 암수 딴그루로, 단풍이 들기 전에 열매가 먼저 떨어진다. 은행나무 열매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고약한 냄새의 원인은 부탄산이다. 행정기관에서는 열매가 익기도 전에 강제로 열매를 따 버리기도 하고 꼬깔을 뒤집어 놓은 수거망에 열매가 모이게 하여 버리고도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은행을 털어 가지말라고 방송을 한 일이 있는데, 몇 년 전부터는 도로 주변의 은행나무 열매가 중금속, 자동차 분진 등으로 먹을 수 없다는 소문이 나면서 모두 버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악취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암그루 은행나무 가로수를 베어 버리기도 한다. 은행나무 열매는 견과류로 분류하는데 겉껍질의 물렁물렁한 걸 맨손으로 만지면 가려움증과 수포가 생기기도 하고 수포가 터져 진물이 흐르니 주의해야 한다. 겉껍질 속에는 목질부의 속 껍질이 있다. 이 목질부를 제거하고 전자레인지에 익히거나 볶아서 먹으면 쫄깃쫄깃하면서 쌉쌀하며 고소한 맛이 난다. 맛이 좋다고 많이 먹으면 코피, 뇌전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는 부르니민 등의 독소 때문인데, 체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어른은 하루에 10알 정도 어린이는 5알 정도가 좋다고 한다. 이렇게 독소가 있는 은행의 열매를 왜 먹을까? 은행의 열매는 맛도 좋지만 레시틴과 아스파라긴산이 신경쇠약에 도움을 주고, 징코플라톤, 기넥신 같은 성분도 있어 혈액순환개선, 뇌혈류와 기억력 개선, 말초혈관의 혈액 순환개선, 우울증, 수족냉증, 치매의 치료와 예방에 도움을 준다. 은행의 열매를 먹는 건 인간뿐이다. 새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람쥐 청설모도 건드리지 않는다. 이들은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은행나무의 잎과 열매를 이용하여 진해, 거담, 활혈작용을 하는 생약을 개발하기도 하고, 말초순환기 장애 치료, 기억력 회복, 고혈압 예방 등에 이용하기도 한다. 잎은 삶아서 살충제로 이용한다. 단 은행의 열매를 장만할 때는 고무장갑이나 비닐장갑을 끼고 만져야 한다. 은행나무는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정도로 오래 사는 나무다. 본 줄기가 죽거나 베어도 맹아가 돋아나 다시 살아나는데, 대구에도 범어네거리에 600년 은행나무가 아직도 살아있고, 용문사 은행나무는 10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돼 천년유산 기념물 30호로 지정돼 있다. 중국의 구이저우성 푸취안시에는 5000년 됐다는 나무도 있다.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기에 향교나 사당. 사랑채, 사찰 등에 많이 심는다. 또 나무의 결이 고와 고급 목제로도 이용되며, 은행나무의 바둑판은 벌레가 침범하지 않아 천년을 가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안영선 시민기자

2025-11-03

단풍 물든 경산 남매지··· 100인 하모니카 선율에 물들다

사단법인 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원장 이영자)은 지난 1일 경산시 남매지 수변공원에서 깊어가는 가을 정취 속에 버스킹 공연을 열었다. 고운 단풍과 잔잔한 호수 물결을 배경으로 울려 퍼진 하모니카 선율이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이날 공연은 대경하모니카 아카데미클럽 강사회 주최로 진행됐으며, 여러 하모니카 동호회와 지역 연주자들이 참여해 풍성한 무대를 꾸몄다. 주말을 맞아 남매지를 찾은 많은 시민과 관광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영자 대표는 이날 공연을 통해 지난 2018년 사문진나루 ‘피아노 100대 콘서트’에 초청받아 100인의 하모니카 연주를 지휘했던 그날의 감동을 다시금 되새겼다. 당시 그는 ‘100명의 하모니카 지휘자’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하모니카 대중화와 교육에 힘써왔다. 이 대표는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시민들과 나누고 싶어 오늘 무대를 준비했다”며 “하모니카가 가진 따뜻한 울림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길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공연은 ‘고향생각’, ‘매기의 추억’, ‘시계바늘’ 세 곡으로 문을 열었다. 깊어가는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선율이 잔잔히 흐르자 관객석에서는 자연스레 따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강사회가 준비한 ‘내일은 해가 뜬다’가 연주되자 관중들이 함께 합창하며 무대와 하나가 되었다. 관람객들은 “요즘 보기 드문 순수한 감성의 공연이었다”며 손뼉으로 화답했다. 또한 대경하모니카 비네타반의 ‘섬마을 선생님’ 연주는 관객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노래가 흐르자 객석 한 켠에서 눈시울을 붉힌 한 할머니는 “젊은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아이들과 부르던 그 노래가 생각난다”며 “오늘 공연이 옛 추억을 다시 불러왔다”고 말했다. 하모니카의 맑은 음색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 셈이다. 이날 무대에는 이영자 원장이 출강하고 있는 여러 단체의 연주팀이 함께했다. 각 단체는 저마다의 색깔로 무대를 채워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방종현 연주자는 6·25전쟁의 암울했던 시절, 젊음의 희망을 노래한 ‘청춘 등대’를 불러 전쟁 세대의 아픔과 극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한 압량하모봉사단의 ‘지나야’, 이재보 연주가의 ‘고향처녀’, 경산여성회관 하모동아리의 ‘마음의 자유천지’와 ‘당신이 좋아’, 남부동 하모니카팀의 ‘즐거운 나의 집’, ‘애정이 꽃피던 시절’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특히 압량하모동아리의 ‘고향생각’과 ‘님과 함께’, 대구노인종합복지관 대학반의 ‘내 마음 별과 같이’, ‘꽃당신’이 연주될 때는 관객들이 손수건을 흔들며 함께 흥겨움을 나눴다. 나이를 불문한 참여자들의 열정적인 연주와 청중의 호응이 어우러져 남매지 일대가 하나의 거대한 음악 축제장으로 변했다. 음악을 통한 세대 간 소통과 지역문화 활성화의 장으로 의미를 더했다. 대경하모니카아카데미클럽은 매년 지역 복지시설과 공원, 문화행사에 참여해 재능기부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영자 원장은 “하모니카는 작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며 “앞으로도 음악으로 지역사회에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짙은 가을의 정취 속에 울려 퍼진 하모니카 소리는 남매지를 찾은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1-03

장마당

시장은 우리네 삶의 애환을 만나는 곳이다. 북적이는 장터 한가운데 서 있으면, 묘하게도 숨이 트인다. 삶의 무게에 허리가 휘던 사람도, 장날만 되면 조금은 꼿꼿하게 서서 걸음을 재촉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흥정하는 목소리, 어쩌다 들리는 투덜거림까지도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료(史料)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 서기 490년 신라 소지왕 12년에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서 최초의 장, 즉 경사 시(京師市)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도 오늘날처럼 물건을 사기보다 소식을 듣고, 웃음을 나누고,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더 컸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경시(京市)와 향시(鄕市)로 나뉘어 장터가 전국적으로 뿌리내렸고, 지금은 오일장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오일장은 시골의 시간표 같은 존재다. 달력보다 정확하게 다가오는 장날, 그날만 되면 평소 조용하던 마을길에 먼지가 풀풀 일고, 짐수레와 경운기, 심지어 트럭까지 줄지어 들어온다. 장날만 되면 평소 보이지 않던 사람도 나타난다. “아, 이 양반 살아 있었구먼!” 하고 서로 반가운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장터의 재미다. 농경사회에서 장마당은 생존과 직결된 시장이었다. 호미나 낫을 벼루는 대장간, 농사일의 반려자인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대장간과 우시장이 있는 장은 ‘큰 장’으로 불렸고, 없는 장은 ‘아기 장’쯤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장날에 빠질 수 없는 건 단연 먹거리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배고픈 사람은 흥정을 오래 못 한다. 그래서 장터 한편에는 늘 국밥집이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가마솥에서 밤새도록 끓인 사골국물 위에 벌겋게 뜬 기름, 큼지막하게 썰린 대파, 툭툭 들어간 고깃덩이···. 그 냄새는 멀리서도 코를 잡아끌었다. 장날은 힘든 농사일 속에서 민초들이 누리는 축제의 날이었다. ‘볼일 없는 장에 거름 지고 간다’는 속담도 있지만, 사실 장날은 볼일이 없어도 가는 날이었다. 옆집 소식도 듣고, 새로 들어온 장사꾼 구경도 하고,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한 사발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장터에는 흥을 돋우는 소리들이 넘쳤다. 엿장수의 가위질 ‘챙챙’ 소리,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 외침, 약장수의 구수한 입담···. 심지어 파는 물건은 제각각이지만 손님을 붙잡는 목소리만큼은 다들 대동소이했다. 장날은 시끄럽지만, 그 시끄러움 속에 삶의 온기가 있다. 가격 흥정은 장터만의 또 다른 묘미다. ‘장금(場金)’이라 부르는 그날그날의 시세는 농산물의 수확량, 바다 날씨, 심지어 장꾼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아이고, 아지매, 그 값이면 내가 쪽박 찹니다” 하다가도, 손님이 그냥 가려 하면 “가져가소, 가져가” 하며 덥석 안겨준다. 이게 바로 장터 인심이다. 예전에는 산 하나 넘거나 개울 하나 건너 사는 사람들끼리 연분이 닿아 사돈지간이 되면, 장날은 거의 가족 모임이 됐다. 사돈끼리 장터에서 마주치면, “요기나 하고 갑시다”하며 국밥집으로 향했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건 고기만이 아니라 정과 추억이었다. 장마당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삶을 사고팔고 웃음을 흥정하는 곳이다. 국밥 한 그릇 값으로 하루가 즐거워지는 그런 장터야말로 민초들의 진짜 축제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1-03

대구 달서구노인종합복지관 개관 20주년 기념 축제 성료

지난달 29일부터 1일까지 대구 달서구 노인종합복지관(관장 김진홍)에서는 복지관 개관 20주년을 기념하는 기념식을 포함한 제21회 달서구 시니어 힘 모으기 축제가 열렸다. 매년 3일간 진행되어 오던 축제였지만, 올해는 특별히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한 세대 통합 영어 캠프를 포함하여 나흘 동안 진행되었다. 식전공연은 복지관의 신생동아리인 골든보이스의 멋진 팝송 공연이 있었다. 행사 1일 차인 29일에는 복지관 1층 대강당에서 회원과 주민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복지관 개관 20주년 기념식을 갖고 유공자 표창을 했다. 구청장상 수상자 8명(박진석, 이창자, 내일교회, 대구교통공사 참사랑봉사단 김진환, 서정자, 신성근, 강혜은) 구의장상 3명(유영화, 윤명이, 하경호). 국회의원 유영하 의원상(예종득), 윤재옥 의원상(장긍표), 권영진 의원상(노재천) 수여식이 있었고 가정복지회 대표이사의 감사패는 달서경찰서, 달서소방서가 각각 받았다. 김진홍 관장은 “지난 20년간 복지관은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노인의 복지관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지역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노력해왔다”며 “앞으로도 더 따뜻하고 활기찬 노년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에는 제17회 달서 시니어 가요제를 예선을 거쳐 본선 진출한 20명의 노래 경연이 있었다. 행사 2일차인 30일에는 1층 강당에서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6회 시니어 예능 경연 대회에 10개 팀이 참석 지금까지 갈고닦은 재능을 보여 많은 박수를 받았고, 오후에는 300여 명이 참석 제2회 댄스 파스타 “내가 춤신춤왕 이다” 경연이 있었다. 복지관 앞마당에서는 2,000여 명이 참석 행복 나눔 장터 물품, 먹거리 나눔, 버스킹 공연, 이동 노래방 다채로운 행사도 함께 진행되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행사 3일차에는 1층 강당에서 60여 명이 참석 제2회 시니어 골든벨(주제는 달서구, 스마트, 시니어, AI)을 벌였고, 복지관 앞마당에서는 행복나눔 장터 물품, 먹거리나눔, 버스킹 공연, 이동노래방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됐다. 특히 행사 마지막 날인 1일에는 온 세대가 함께하는 세대 통합 영어 캠프(Go Go English Festa)가 열려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세대 통합 캠프 진행은 부스별로 진행되었다. 축제 기간 동안 복지관 내에 전시되었던 어르신들이 직접 참여한 서예, 사행시, 수기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은 못 본 회원들을 위하여 11월 7일까지 연장 전시가 된다. 유병길 시민기자

2025-11-02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에 가보니

최근 황성동 352-4번지 위령탑에선 위령제가 열렸다. 제17회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를 위한 경주지역 합동위령제였다. 위령탑엔 억울하게 학살당한 795위 영령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같은 작은 숲을 두고 건너편에서는 축제 같은 마라톤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교통통제를 비롯해 도로가 불법주차 차량들로 식전 행사로 진행된 박소산 선생의 진혼무가 중반부에 들어섰을 무렵에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을 포함 사람들이 많이 참석했다. 후원인 경주시와 의회에서는 경주시장을 대신해 경주시청 김종대 국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했으며, 최병준 경북도의회 부의장, 그리고 의회 대표로 이경희 경주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이 참석했다. 유족들은 75년이 지난 지금까지 억울하게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고 있는 중이다. 진혼무가 끝나자 위령제가 올려졌다. 잠시 개일 듯하더니 날이 다시 흐려졌다. 흩날린 비에 위령비도 유족들의 발도 젖어 들었다. 김하종 경주유족회 회장은 내빈 소개와 인사말을 이어갔다. 김하종 회장은 아흔이 넘은 고령에도 국회특별법 개정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국회의사당에서 보내고 있다. 유족회에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진상규명, 명예회복, 배상 및 보상, 유해발굴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최일식 경주유족회 재무국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국회특별법추진위 사무국장인 조성규씨의 제2기 진실화해위 현황보고가 있었다. 그 중에는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적용배제가 포함되어 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오는 11월 26일에 종료된다. 그리고 아직 해결되지 못한 많은 미제사건들은 추후 3기 위원회의 몫으로 남겨졌다. 천년국악예술단 김소원씨의 추모곡을 끝으로 헌화가 이어졌다. 유족들은 헌화를 마친 후 뒤편으로 돌아가 가족의 이름을 찾았다. 검은 벽에 새겨진 이름을 찾아 손끝으로 빗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한동안 울음 섞인 그리움을 쏟아냈다. 행사가 끝난 후 위령제를 위해 마련된 책자를 받았다. 책자엔 희생자 명단을 시작으로 국회특별법 추진 및 활동일지가 날짜와 시간별로 담겨 있었다. 그 외 내용 중 책자 120페이지에는 둥글마을에서 있었던 참혹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1950년 8월 11일 아침 6시 즈음 내남지서 경찰 이홍렬과 이한우를 비롯한 민보단원 30명이 완전무장한 채 마을의 아홉 집에 들이닥쳤다. 이유도 말하지 않은 채 포박해 끌고 갔다. 이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살. 치매 노인은 물론 임산부, 젖먹이까지 예외 없이 50여 명이 피살당한 걸로 추정된다. 그날의 증인이 된 권상원씨의 사촌형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는데 친구집에 놀러갔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함께 죽임을 당했다. 그날 사망한 사람은 60세 이상 노인이 7명, 여성이 17명, 10살 이하 어린이가 17명이었다. 민보단에 협조하지 않았던 것이 이유로 추정되나 그들을 덮은 건 빨갱이란 누명이었다. 의병이자 애국지사 선조를 둔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억울하게 끝을 맞았다. 죽인 자는 묘가 있으나 억울하게 죽은 이들은 아직도 그 유골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말하던 정의는 어디에 있을까? /박선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30

짜장면 한 그릇에 담은 20년의 선행

봉사의 즐거움을 20년 넘게 실천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짜장면 봉사자 이정희씨(61·포항시 북구 장성동)다. 어느 날, 나이든 어르신도 짜장면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시작된 일이 이제는 그의 인생 일부가 되었다. 시작은 단순하다. 부모님을 대하듯 어르신께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대접하고 나면 뿌듯해진 마음에 즐거움이 인다. 그 즐거움에 중독되어 20년 넘게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는 현재 정해진 요양원을 중심으로 정기적인 짜장면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미리 약속된 기관이 아니더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흔쾌히 응한다. 처음에는 직접 조리 기구를 들고 요양원을 찾아가 즉석에서 만들었지만, 장비가 무겁고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반점에서 면을 뽑고 소스를 준비해 배달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선행은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나 별다른 홍보 없이 알음알음 알려져 곳곳에서 요청이 온다. 한 번에 적게는 50인분 많게는 2~300인분이다. 한 달에 2~3곳의 요청에 응하며 지나치게 잦은 요청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제한다. 좋은 일을 하는 작은 행사나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제 때도 요청이 있으면 재료비만 받으며 봉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삼배 단장이 이끄는 한봉우리봉사단과 MOU(업무협약)를 체결해 함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포항국화원장례식장을 비롯해 여러 소상공인들과 꾸준히 협약을 맺고 있는 봉사단과 함께 짜장면 봉사뿐 아니라 다양한 나눔 활동을 병행한다. 이정희 씨는 “봉사단원들과 함께 짜장면만이 아니라 어르신들과 웃고 노래하는 봉사까지 하니 기쁨이 배가되고 마음에 책임감도 생긴다”고 말한다. 많은 병이 ‘즐겁지 못한 마음’에서 온다. 우리는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그가 봉사를 통해 얻는 가장 큰 선물은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시간과 노동 그리고 비용이 들어간다. 그 모든 것을 ‘즐거움의 투자’라고 표현한다. 이정희 씨 곁에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바로 아내다. 함께 복성루 반점을 운영하며 봉사 준비를 도맡고,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남편의 선행을 지원한다.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래토록 봉사를 이어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만 아내는 봉사의 범위가 너무 커지는 것은 원치 않는다. 마음의 즐거움을 위한 봉사이지만 그것이 과해지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이다. 간혹 일부 기관에서 지나치게 잦은 요청을 할 때 곤혹스럽지만 정중히 자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이 알아주지 않는 자원봉사자의 작은 행동 하나가 때로는 지역 사회를 바꾸는 큰 힘이 된다. 개인에게는 마음의 풍요와 성취감을, 사회에는 나눔의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봉사를 하는 사람일수록 표정이 밝고 온화하다. 그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20여 년 동안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 온 복성반점의 이정희 씨와 그의 아내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짜장면은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채우는 ‘행복한 한 그릇’이다. 그들의 꾸준한 나눔이 오늘도 지역사회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30

물속에 잠긴 추억을 찾아, 엄마와 군위호로

대구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자리한 군위댐(군위호)은 낙동강 지류인 위천을 막아 만든 다목적댐이다. 홍수 조절과 생활·공업용수 공급을 위해 건설되었지만, 이 댐으로 인해 여러 마을이 수몰되고 그 속에 주민들의 삶과 추억도 같이 물속에 잠겼다. 그 속에는 시민기자의 외갓집도 있었다. 어린 시절, 명절이면 늘 찾던 외갓집 마당과 여름날 친구들과 물장구치던 시냇가. 이제는 모두 호수 아래 잠들었지만, 기억 속 풍경만은 여전히 선명하다. 사라진 옛 마을의 흔적을 더듬어 엄마와 함께 군위호를 찾았다. 가는 길에 잠시 길을 잘못 들어 좁은 골목에서 차를 돌리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벽화가 우리 마음을 환하게 했다. 길가에 피어 있는 하얀 들꽃에도 눈이 갔다. “저건 무슨 꽃일까?” 기자의 물음에 엄마는 차를 세우고 핸드폰으로 꽃 이름을 찾아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은 마치 순박한 소녀 같아, 그 모습을 몰래 한 컷 남겼다. 군위호는 잔잔한 수면 위로 산자락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호수는 고요했고, 바람은 우리 뺨을 살짝 스쳐갔다. 물결을 따라 찬찬히 걸으며 추억에 잠겼다. 중간에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에 들러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탁 트인 경치를 즐기며 추억 속 이야기를 나눴다. 전망대로 가면 군위호의 과거와 역사를 소개하는 설명판이 있다 하여 기대를 안고 찾았지만, 공사 중이라 자취를 감춰 아쉬움이 남았다. 그 대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린 시절 친척들과 음식을 나누고 웃던 기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전망대 주변은 사진을 찍기 좋게 꾸며져 있어, 방문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추억을 남기기 좋은 장소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속에 외갓집 마당이 다시 떠올랐다. 사촌들과 뛰놀던 모습, 친척들과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며 웃던 여름밤,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외할머니의 미소까지. 비록 마을은 물속에 잠겼지만, 그 시절의 추억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다. /김소라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30

배움으로 피어난 노년의 행복, 함께하는 지역의 힘⋯‘2025 고산 어르신 가족 축제’

대구 고산노인복지관(관장 박헌수)이 주관한 ‘2025 고산 어르신 가족 축제’가 지난 24일 고산노인복지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 해 동안 배우고 익힌 어르신들의 성과를 가족과 이웃,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는 뜻깊은 자리로 마련되었다. 이날 무대에는 전통무용, 합창, 악기 연주, 댄스, 체조 등 17개 팀이 참여해 열정과 끼를 마음껏 펼쳤다. 약 300여 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한 공연은 배움의 결실이자 노년의 열정이 빚어낸 감동의 무대였다. 또한 서예, 수묵화, 수채화, 문인화, 캘리그라피, 천아트 등 10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와 세대 간 공감의 메시지를 전하는 따뜻한 장이 되었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복지관의 다양한 사업을 알리는 홍보 부스와 가족 단위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어 지역주민들의 참여 열기가 더해졌다. 응원 문구 캘리그라피, 뱃지 만들기 등은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축제는 단순한 학습성과 발표회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배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새롭게 열고 세대 간 소통을 이어가는 ‘살아 있는 평생학습의 장’이었다. 노년의 배움은 단지 여가가 아니라, 삶의 활력이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다. 고산노인복지관이 추진해온 다양한 교육과 프로그램은 그 자체로 지역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귀한 일이다. 박헌수 관장은 “어르신과 가족, 지역주민이 함께 만들어낸 화합의 무대였다”며 앞으로도 세대가 어우러지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이번 축제는 어르신들의 배움과 지역사회의 연대가 만나 이뤄낸 결실이었다. 지역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 고산노인복지관의 이번 축제가 보여준 ‘배움과 나눔, 그리고 세대공감의 힘’이 수성구를 넘어 대구 전역으로 확산이 되길 기대한다. 어르신의 열정이 지역의 희망이 되고, 공동체의 따뜻한 품이 세대를 잇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0-30

대구경북언론위원회, 제7기 시민언론아카데미 개강

사단법인 대구경북언론위원회(회장 문종규)는 지난 29일 대구 그랜드호텔에서 ‘제7기 시민언론아카데미’ 개강식을 열었다. 이번 아카데미는 언론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건전한 미디어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교육 과정으로, 시민들이 직접 언론의 구조와 기능을 배우며 올바른 뉴스 소비자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7기 과정에는 권정태 씨를 비롯해 21명의 시민이 등록했으며, 개강식에는 문종규 회장, 김선완 수석부회장, 이수만 사무총장 등 임원진이 참석해 수강생들을 격려했다. 교육은 총 3일간 진행된다. 첫날에는 박영석 전 MBC 사장이 ‘뉴스와 정보의 홍수 시대, 생각을 잠식하는 알고리즘’을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이야말로 현대 시민의 필수 역량”이라며, 알고리즘이 여론 형성과 사고방식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이대현 전 매일신문 편집국장 겸 논설위원장은 ‘위기의 지역 언론, 그 탈출구는 어디인가’를 주제로 강의하며 지역신문의 재정 악화와 구독자 감소 등 현실적 위기 요인을 짚고, 지역 언론의 자생력과 혁신 방향을 제시했다. 둘째 날 오전에는 김선완 수석부회장이자 전 중앙일보 정치부 기자가 ‘언론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그는 언론의 사명과 기능, 그리고 독자의 확증 편향이 여론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할 예정이다. 오후에는 방종현 대구문인협회 부회장이자 경북매일신문 시민기자단 단장이 ‘지역 언론과 시민기자의 역할’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다. 방 부회장은 “시민기자는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풀뿌리 언론의 중심”이라며, 시민기자의 자세로서 기록자·감시자·중재자이자 공감자의 역할을 강조할 계획이다. 마지막 날에는 수료식과 함께 제29차 지역발전토론회가 열린다. 윤용희 전 경북대학교 교수가 ‘2026년 지방선거 전망’을 주제로 강연하며, 지역 정치의 흐름과 향후 과제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문종규 회장은 “시민이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지역사회의 공정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경북언론위원회는 앞으로도 시민 참여형 언론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와 언론이 상생하는 소통의 장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방종현 시민기자

2025-10-30

틈새 건강 지킴이 홍상완 교수 특강

건강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생활 전선에서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직장 생활에 매인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도 틈새 운동은 필요하다. 지난 22일부터 2일간 대구예술대학교 시니어아카데미(학장 김태호)에서는 평생을 체육교육에 바치고 요즘은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한 간편 건강 활동의 실제’라는 제목으로 명 강의를 펼치고 있는 홍상완 대구교육대학교 명예교수를 모시고 건강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토속 지역 사투리의 구수한 입담으로 ‘인명 재천(人命 在天), 건강 재아(健康 在兒)’라는 말로 시작하여 건강 강좌가 진행되는 도중 간간이 하모니카로 ‘오빠 생각’‘고향의 봄’ 등 우리 가요를 연주하여 지루하지 않고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홍 교수는, 평소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걷기 운동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일반적으로 하루에 1만 보 이상을 걸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은 편견이며 4천 보부터 5천 보, 6천 보, 1만 보등 각 구간마다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다. 틈새 운동에는 계단 오르기,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 뻗기, 보행 중에도 멀리 보고 걷기, 점심시간에 10~15분 정도 걸어서 식당 가기, 종아리 운동, 조탁법, 목운동, 목 밑 림프절 마사지 하기, 상초, 중초, 하초 두드리기, 스쿼트 등 다양하며 틈새 운동의 효과는 건강 증진, 수명 연장, 활기참, 의욕적임, 외로움 극복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일반 가정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틈새 운동 실습에는 건강 박수 치기와 일본인 교수가 연구한 ‘발목 펌프 운동’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시범을 보였다. 박수는 주먹 박수, 봉우리 박수, 손등 박수, 손가락 박수, 먹보 박수, 손바닥 박수, 달걀 박수 등이 있으며 종류마다 효과를 주는 부위가 다름을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주먹 박수는 50회 이상이면 뇌를 활성화 시켜 주고 어깨통증 완화, 뇌졸중과 치매 예방에 효과 있으며 손바닥 박수는 내장 기능, 오장 육부, 변비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두 번째 실습은 발목 펌프 운동이다. 직경 6~10 cm 원통형의 파이프나 목재, pvc 수도관 등으로 30~35cm 이상의 도구만 있으면 된다. 운동 방법은 누워서 하거나 앉아서 할 수 있으며 한 쪽 발은 봉 위에 걸쳐 두고 다른 쪽 발은 20~30cm 정도 씩 위로 쳐들었다가 운동 기구에 떨어뜨린다. 처음에는 무리하지 않게 아침, 저녁 2회 정도 양발 합계 200번 이상 하되, 차츰 횟수를 늘려 1회 500~600번 이상 실시한다. 발을 올릴 때는 공이 땅에 떨어졌다 퉁겨지듯이 발목이 운동 기구에 부딪힐 때의 반동으로 올리면 소리도 약하고 힘도 절약된다고 한다. 봉은 스폰지나 수건을 감아 사용하면 발목이 아프지 않아 좋다. 발목 운동의 효과는 현대인의 보행 부족을 해소하고 전신의 혈액을 시작으로 체액의 순환을 좋게 하며 체내의 노폐물이 신장을 거쳐 여과 정화되며 많이 할수록 건강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김화순 회장을 비롯한 시니어 학생들은 당장 쾌식, 쾌변, 쾌면, 혈압 안정, 다이어트,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난치병까지 개선된다고 하니 당장 한번 실시해봐야겠다고 입을 모았다. 최종식 시민기자

2025-10-29

국산 콩만 그것도 ‘로컬푸드’로 만든 두부의 위엄이란···

주말엔 주중에 먹을 장을 본다. 그럴 때 꼭 장바구니에 담는 것이 두부다. 두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식품이지만, 당뇨병 환자에게는 특히 더 중요한 음식이다. 두부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로리가 낮으며, 혈당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영양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콩과 소금이 만나면 두부가 된다. 콩을 갈아서 소금 간수에 절이면 두부가 되는 것이다. 이 두부는 단백질을 보충하는 가장 효과적인 음식이다. 특히 승려들에게도 두부는 필수 식품이자 맛이 있는 식사 재료였다. 육식에서 나오는 단백질 섭취가 계율로 금지되어 식물성 단백질은 훌륭한 대체 요리였다. 콩의 단백질을 가장 건강하며 효과적으로 섭취하는 방법은 두부다. 다만, 콩 단백질이라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쌀과 함께 먹으면 적절하게 서로 부족한 곳을 채워줘서 궁합이 좋다. 한국의 사찰음식 중에 붉나무 소금으로 만든 두부가 존재한다. 다만 흰 두부와는 달리 붉나무 소금으로 만든 것은 회색빛이다. 그리고 이러한 두부를 이용한 두부장아찌도 존재하며, 프랑스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을 정도였다. 두부의 한자는 豆(콩 두)와 腐(썩을 부)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두부의 ‘부(腐)’는 썩은 것이란 뜻이 아니고 뇌수(腦髓)처럼 연하고 물렁물렁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포(泡)’라고도 하였다.”라고 설명한다. 두부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직접 가마솥에서 끓이고 눌러서 만든다고 가게 이름이 ‘옥산맷돌손두부’인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풍산금속에서 영천으로 가는 길, 옥산서원 입구를 지나자마자 주유소가 나오면 바로 거기다. 창밖에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뷰 창가에 앉아 해물 순두부와 모두부 한 접시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있는 것을 다 맛보고 싶지만 참았다. 얼마 전 친구들과 가서 청국장과 들깨 순두부, 모두부전까지 시켜 나눠 먹으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맛났다. 당뇨 때문에 음식을 조절하는 친구는 청국장이 찐이라고 칭찬했다. 오늘은 추어탕까지 시켜 가을을 맛보기로 했다. 음식을 내오며 사장님이 직접 만든 두부에 대한 자랑을 하셨다. 새벽 5시에 나와서 4시간 넘게 가마솥에 장작을 넣고 지펴 끓인다고 했다. 콩도 천북면에 가서 일 년 사용할 양을 계약 재배해서 저온 창고에 넣어두고 사용한다고. 수입 콩이 아니라 국산 콩만 그것도 로컬푸드라 더 안심이었다.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서 두부를 만들어 손님을 맞았다고 한다. 모두부와 함께 내온 반찬에 콩비지 찌개와 비지 샐러드가 입맛을 돋웠다. 막걸리 한 잔에 따끈한 두부가 안주로 안성맞춤이다. 해물순두부는 깔끔했고 추어탕도 담백했다. 어느 해 추석, 시어머니께서 동네 부녀회에서 각자 집에서 농사지은 콩을 모아 한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나누어 오셨다. 마트에서 산 것보다 구수하고 맛이 좋아 앉은 자리에서 아직 온기가 남은 두부를 배가 부르게 먹었었다. 그날 이후 동네에서 다시 두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 그럴만도 했다. 옥산맷돌손두부 사장님이 건강하셔서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오래도록 맛볼 수 있길 바란다. 옥산서원 입구 근처에 주유소와 마당을 함께 사용한다. 경주시 안강읍 호국로 2405, 오전 9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영업하고 첫째, 셋째 화요일이 휴무이다. 맛있는 손두부 먹고 옥산서원과 독락당도 거닐고, 정혜사지십삼층석탑에 은행잎이 노랗게 지면 더 골짜기로 차를 몰면 장산서원 위 옥산저수지에 가을이 내려와 낯을 씻는 것 구경하면 좋다. 콩도 두부도 가을이 익어간다. /김순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8

“먹고 마시고 관람하라”···안동시립공연단 ‘더 레시피’

공연을 보러 갔는데 자리에 앉자마자 ‘차림표’를 준다? 카페도 식당도 아닌 뮤지컬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지난 9월 20일 시작해 매주 토, 일요일마다 관객을 만나온 안동시립공연단의 창단 첫 공연작 ‘더 레시피’가 11월 2일 막을 내린다.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한국문화테마파크에서 열린 이번 공연은 안동의 전통 음식과 전통주를 맛보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이머시브 다이닝(Immersive Dining)’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관객 몰입형 공연을 뜻하는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er)’와 고급스럽고 정성 담긴 음식을 뜻하는 ‘파인 다이닝(Fine-dining)’을 결합한 장르다. 공연은 안동의 김 선비가 잔치를 벌여 손님들에게 안동의 음식을 대접하며 벌어지는 한바탕 흥겨운 소동을 그리고 있다. 차림표의 메뉴대로 음식이 나올 때마다 관객은 손님이 되어 극의 흐름에 직접 참여하며 즐거움을 더한다. 관객 앞에는 소반이 놓이고 국화차와 다식까지 풍미를 곁들인 음식이 제공된다. 해발 880m 산자락에서 피어난 국화를 전통 방식으로 다듬어 만든 ‘금학 국화차’, 녹두가루 묵에 맨드라미와 치자 물을 들여 색을 더한 ‘청포묵채’, 맑은 쌀과 누룩으로 빚어낸 ‘전통 청주’, 안동찜닭의 시작인 ‘전계아’, 잡곡과 누룩을 발효하여 증류한 ‘안동소주’, 오미자를 담가 발효시킨 ‘오미자 음료’, 쌀가루에 꿀과 조청을 섞어 목제 틀에 찍어낸 ‘다식’까지,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수운잡방’의 조리법을 재현한 음식으로 구성했다. 배우들의 춤과 노래, 전통 음식이 함께 어우러져 객석에서는 웃음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70분간 안동 지역의 맛과 흥을 관객에게 선사하며 제대로 된 ‘접빈객 문화’를 선사한다. 공연 마지막에는 관객과 배우 모두 오자미를 던져 박을 터트리며 막을 내린다. 터진 박에서는 ‘항상 꽃길 되소서’라는 문구가 쏟아져 내리며 관객들에게 덕담의 디저트를 제공한다. ‘수운잡방’은 안동의 유학자 김유와 그의 손자 김영이 저술한 한문 필사본 음식조리서로 광산김씨 문중에서 내려오던 조리법이 기록돼 있다. 즐겁게 먹을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을 기록한 그 시절의 ‘레시피’로, 오늘날 먹고 마시고 관람하며 안동지역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백소애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8

동네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있다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제법 규모가 있는 어린이집이 공사 중인 걸 발견했다. 처음엔 다시 새 단장을 하나 보다 여겼는데 밖에 나온 쓰레기 자루를 보니 내부를 완전히 비우는 중이었다. 궁금해 현관에 붙은 안내문을 들여다보니 ‘2026년 3월 1일 노인주간보호센터로 만나겠습니다’로 적혀있다. 저출산의 여파가 실제 내가 사는 동네 골목까지 스며들고 있다니 순간 놀랐다. 공사 중인 어린이집이 지금은 중고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어릴 적 다녔던 곳이라 그간의 추억도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에 한참을 머무른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간 연장 어린이집 교사를 구하는 채용공고를 냈던 어린이집이었다. 갈수록 줄어드는 원생 수와 경영난에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폐원을 한 거였다. 산책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 주며 이제는 동네 가까이에 어린이집이 하나도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 아침에 어린이집 차량을 기다리는 부모와 아이들을 잘 못 본 듯싶다. 주위의 아파트가 적잖이 있어도 이제 저출산과 고령화는 어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저출산을 겪고 있는 지금, 보건복지부의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어린이집이 사라지는 수가 해마다 2,000개 가 넘는다고 한다. 시설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원아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인 것이다. 이미 소규모 가정어린이집은 거의 사라져 찾아볼 수도 없다. 대도시에서 그 현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경북도 그 수가 상당하다. 경북은 최근 5년간 어린이집의 28.5% 사라졌다. 2025년 3월 기준 1234곳이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가 50만 명 아래가 된 포항에서도 마찬가지다. 포항시 여성가족과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4년간 105개의 어린이집이 문을 닫았고 올해 10월 현재까지 30여 개의 어린이집이 폐원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국공립어린이집 15개를 포함해 224개가 운영 중이다. 곁에서 육아의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 한 동반자 같은 어린이집이었다. 하지만 워킹맘들은 가까이에서 어린이집이 사라지면 누구보다 심각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과의 대화도 다들 어린이집 이야기가 많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전부터 지역맘카페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아보느라 한 달가량은 정신없이 보낸다. 그렇게 선택한 어린이집이 폐원한다면 고민이 깊어진다. 5살 아이를 둔 30대 워킹맘 김모씨(포항시 북구 우창동)는 “이제는 가까이에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다른 동네 유치원으로 바꿔서 보내긴 하는데 이런 상황이 반갑지 않다. 내가 사는 아파트 맞은편 빈 건물도 수년 전에 요양원으로 바뀌었다. 옆에 있는 태권도 학원마저 위태로워 보일 정도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이 초저출산으로 인해 원생 수를 못 채우고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 일정 부분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이가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폐원되는 어린이집도 여러 곳이다. 갑작스럽게 육아의 공백이 발생하게 되고 그 몫은 부모에게로 돌아온다. 무조건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부모들에게 고민을 안겨주기보다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모들은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어달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10-28

APEC을 준비하는 신라의 ‘불국토’···신라천년을 담아내다

이달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북 경주시에서 21개 회원국의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추석 전에 마침 문학단체에서 경주로 문학기행을 떠나게 되면서 APEC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분주한 경주를 엿볼 기회가 있었다. KTX 경주역과 시가지 곳곳에는 분위기 조성과 더불어 도로와 고적지 어디 없이 시설물이 속속 정비 또는 보완되고 있었다. 그중에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을 본 떠 만든 경내에 APEC 연회장으로 사용할 목조 건축물 신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APEC 정상회의 개최는 회원국은 물론 정상들에게 세계적으로 이름난 신라의 고적이 유존하는 경주를 알리는 큰 의미가 크다. 불국토 경주에는 신라의 다리가 있어서 이 기회에 들춰 본다. ‘삼국사기’ 경덕왕 조에는 ‘경덕왕 19년(760) 2월에 궁궐 남쪽 문천(蚊川) 위에 월정교, 춘양교 두 다리를 놓았다.’고 기록했다. 문천에는 신라의 다리가 여럿 있었다. 2018년 복원한 월정교(月淨橋)와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춘양교(春陽橋) 그리고, ‘삼국유사’ 원효불기 조에 유교(楡橋)와 도화녀 비형랑 조에 귀교(鬼橋)가 그것이다. 월정교는 문천의 다리이지만 자체를 누각형으로 지었다. 화강석 교각 위에 궁궐 건물에 버금가는 우리나라 고유의 한국형 목조 건물에 기와를 얹은 지붕이다. 지붕이 있는 세계적인 다리는 스위스 루체른시 호수에 있는 카멜교다. 목조 건물이지만 월정교에 비교되지 않는다. 카멜교는 안동의 월령교처럼 직선이 아니다. 춘양교는 월정교에서 문천의 상류를 따라 약 1.2km 되는 지점에 그 터가 있다. 동쪽 국립경주박물관과 서쪽 인동왕사지가 자리한 일대의 농경지로 연결되었다. 월정교와 구조가 비슷한 배 모양의 석재 교각 밑자리를 복원해 문천에서 볼 수 있다. 유교는 신라 승려 원효가 민중 포교에 나서면서 “누가 자루 빠진 도를 허락할른지” 하면서 떠도는 가운데 태종무열왕이 듣고는 스님이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것이라며 찾게 했다. 원효는 이를 알고 남산을 내려와 유교를 건너면서 거짓으로 물에 떨어져 옷을 말리기 위해 요석공주가 있는 요석궁에 유숙하면서 아들 설총을 얻게 된다. 요석궁 앞에 다리가 유교(楡橋)다. 한자에서처럼 실제 느릅나무 다리인지는 모르나 월정교 복원 때 이 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귀교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이 음탕한 생활로 화백회의에서 탄핵되어 왕위에서 폐위된 이야기를 사실처럼 꾸민 도깨비 다리의 전설인 듯하다. 신라에는 또 현실과 이상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도 있었다.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는 석가여래의 세계인 대웅전으로 자하문을 통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있어서 청운교 백운교 사이에 홍예다리를 만들어 연지는 지금 볼 수 없지만 그 위로 홍예로 만든 아치형 무지개다리는 볼 수 있다. 신라에는 다리가 없어서 선택되고도 왕위에 오르지 못한 안타까운 사실도 있다. 신라 제37대 선덕왕은 후사가 없어 왕의 족자(族子) 주원(周元)을 즉위케 하도록 의논했는데 집이 왕궁에서 북쪽 20리에 있었다. 연락을 받고 오던 중에 마침 큰비가 내려 알천에 홍수로 인해 물을 건너지 못해 입궐하지 못했다. 그러자 상대동 김경신은 덕망이 높고 인군(人君)의 자격이 있다며 중의를 거쳐 만장일치로 왕위를 계승케 한 그가 곧 신라 제38대 원성왕이다. APEC 정상회의가 끝나고 손님을 보낸 뒤 여유를 가지고 경주를 즐겨보는 것도 하늘 높은 이 가을에 신라의 고적 불국토를 만끽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권영시 시민기자

2025-10-26

황금빛 가을 인생을 무대 위로

가을의 정취 속에 지난 20일, 21일 양일간 열린 노인문화축제 ‘황금빛 가을’은 대구의 노년 문화가 얼마나 다채롭고 활력 넘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인 행사였다. 대구시 노인종합복지관(전용만 관장)이 주관한 이번 축제는 3000여 명의 어르신과 시민이 참가해 복지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어르신들이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직접 무대에 서고 전시에 참여하며 축제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무대 위의 어르신들은 배우가 되었고, 관객은 함께 그 삶의 깊이를 느끼며 나이 듦의 가치를 되새겼다. 무대 위는 난타와 하모니카, 한국무용, 가곡 등의 공연이 이어졌고, 전시장에서는 ‘일흔의 작품전’이 열려 어르신들의 예술적 감성과 삶의 흔적이 정성스레 담겼다. ‘추억의 흑백사진전’은 세대 간 공감과 대화를 이끌며, 어르신들의 기억이 지역 공동체의 역사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한 세월의 무게를 예술로 승화한 인생의 기록이었다. 무대 밖에서도 ‘황금빛 룰렛’ 이벤트와 다양한 체험 부스가 어르신들의 손끝을 즐겁게 했고, 윷놀이 한 판의 흥겨움 속에는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온기가 흐르고 있었다. 축제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경진대회와 각각 공연수상자들을 시상하고, 풍성한 행운권 추첨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의 행운권 1등 경품은 테팔 무선 청소기였으며, 행사장을 가득 메운 어르신들의 기쁨과 즐거움,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아쉬움 속에 마무리했다. 이 축제의 진정한 의의는 ‘노년 문화의 주체화’에 있다. 인생의 황혼기를 ‘활동과 표현의 시기’로 재해석하며, 노인 세대가 사회 속에서 스스로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장이 되었다. 전용만 관장이 밝힌 것처럼, 노년기는 여전히 ‘인생의 황금기’이며, 문화는 그 황금빛을 더욱 빛나게 하는 도구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어르신들의 문화 역량은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다. 이제 노년 문화는 복지 일부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정신적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젊은 세대가 배워야 할 품격은 인생의 깊이를 노래하는 이 무대에 담겨 있었다. 황혼은 쇠락이 아니라, 빛의 완성이다. 사회는 이제 복지의 틀을 넘어 어르신들이 문화의 주체로서 활력과 자존이 설 수 있는 장을 더 넓혀야 한다. 이번 축제가 남긴 가장 큰 메시지는 나이와 관계없이 누구나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문화 속에서 세대가 연결되고 사회는 더 따뜻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황금빛 가을’ 축제는 우리 사회의 노년 문화를 성숙시킨 귀중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김윤숙 시민기자

2025-10-26

어르신들 삶의 깊이 나눈 대구 중구 건강대학

지난 17일 오전 대구 중구 건강대학에서 가을 정취 속에 어르신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시는 특별한 강연이 열렸다. ‘시조 한 수에 인생을 담다–박인로와 조선의 시인들’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특강은 대구가톨릭대 국어교육과 박상영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조선시대 시조를 통해 문인들의 삶과 사상을 깊이 있게 조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시조의 본질을 짚다: 개념, 형식, 역사적 흐름 강연은 시조란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 형식적 특징과 역사적 전개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며 청중의 이해를 도왔다. 그 시절의 유행가라고도 할 수 있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인 시조는, 단순한 운문 형식을 넘어, 조선조 문인들의 철학과 감정을 담아낸 삶의 기록임을 강조하며, 문학적 가치뿐 아니라 인간적인 울림을 전하는 장르임을 일깨웠다. 여말선초에서 퇴계 이황까지: 사상과 감정의 흐름 박 교수는 여말선초의 대표 시조인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를 통해 당시 정치적·사상적 배경과 시조 탄생에 대해 설명한 뒤, 이어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을 소개하며 그의 유교 사상과 처사적 삶의 흔적을 시조 속에서 어떻게 엿볼 수 있는지를 재미나게 풀어냈다. 이황의 시조는 그가 44세 때 관심을 가진 주자의 ‘무이구곡가’를, 20여 년간 연구한 최종 결과물이었기에 그 감동이 배가 되었다. 즉 단순한 교훈을 넘어, 자연과 인간, 도덕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한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어르신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이어 노계 박인로의 ‘조홍시가’, ‘사친’ 등 ‘효’를 주제로 한 시조를 함께 낭송하며,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박 교수는 관련하여 6살 육적이 부모를 생각하며 귤을 품었다는 육적회귤(陸績懷橘) 고사를 비롯해, 민손 이야기, 서포 김만중 이야기, ‘목주가’ 등 다양한 내용들을 곁들이며 ‘효’의 정신이 어떻게 문학 속에 녹아들었는지를 설명했다. 나아가 현대 작품 속에서도 ‘효’의 가치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를 연결해 어르신들의 삶과 감정을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고산 윤선도의 시조도 깊이 있게 다뤄졌다. 젊은 시절 작품인 ‘견회요’를 비롯해, 중년 이후에 지은 ‘산중신곡’의 ‘오우가’, ‘산중속신곡’의 ‘증반금’, ‘어부사시사’, 그리고 66세에 정계에 복귀했다가 다시 은퇴하며 지은 ‘몽천요’까지, 윤선도의 시조를 통해 그의 한평생 삶의 굴곡과 자연에 대한 애정, 정치적 현실에 대한 성찰을 함께 나누었다. 시조 속에 담긴 자연의 이미지와 인간의 내면이 어우러진 풍경은 어르신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연은 단순한 문학 강의에 그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조선조 양반의 한평생을 시조를 통해 되짚으며, 인간이 살아가는 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시조 속 문인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이번 특강은 우리의 고전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을 되새기는 뜻깊은 자리였다. 시조라는 고전 문학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마음을 울리는 살아있는 언어임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이다. /권정태 시민기자

2025-10-26

예천에 잠든 ‘고녕가야의 맥박’ 되살려야

경북 예천에는 고녕가야의 숨결이 고요히 잠들어 있다. 대구에서 문경을 지나 예천으로 향하는 길, 관광버스 행렬은 낙동강을 따라 나란히 흘러간다. 낙동강 서편에서 태동한 고녕가야는 오래도록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기록되었으나, 식민사학의 그늘 속에서 지워지고 왜곡되었다. 그러나 예천 또한 함창과 맞닿아 내성천 상류에 자리하며, 고대 가야 세력의 자취를 짙게 품고 있다. 예천군청 뒤 봉덕산 기슭에는 대심리 고분군이 있다. 수십 기의 무덤은 도굴의 상처만 남긴 채 봉토만 앙상하다. 안내판 하나가 “예천의 소중한 유산”이라 적고 있으나, 자세한 설명조차 없는 현실은 안타깝다. 2020년 9월 4일 국내 일간지에 보도된 발굴 기사, “원삼국, 삼국시대 묘 3기와 200여 점 유물 발견”은 잠시 희망을 주었지만, 그 후 긴 침묵이 이어졌다. 마치 땅속에서 다시 갇힌 혼처럼. 이제 문화재청과 학계가 이 침묵을 깨야 한다. 특히 ‘원삼국’이라는 명칭은 일본 학계가 만든 인위적 구분이다. 삼국의 서막을 ‘삼국시대’라 바로 불러야 한다. 이름은 곧 정신이기 때문이다. 예천 고분군의 봉토분은 가야식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고분 상판석의 웅장함은 창녕 비화 지역, 함창 오봉산 고분군과 닮았다. 길이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돌을 옮긴 고대인의 지혜와 공동체적 힘 앞에서 경외심이 일어난다. 그러나 도굴과 방치 속에서 석실만 드러난 고분은 무관심의 거울이기도 하다. 예천의 고분군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가야의 혼과 맥박이 살아 있는 터전이다. 후손들이 명당이라 여겨 세운 현대식 무덤조차 원래는 천 년 고분의 일부였다. 사철나무 무성한 봉분 앞에 서면, 작은 산봉우리로 착각했던 언덕이 사실은 역사의 증언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낙엽과 흙에 덮인 모습은 서글프다. 만약 그곳이 제대로 복원된다면, 예천은 고대 국가로서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예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원의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또한 안내판이 없으면 산으로 착각될 정도로 방치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무덤을 파헤쳐 가야의 보물을 반출했고, 지금도 그 유물은 일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되찾아야 할 우리의 뿌리이자 혼이다. 예천은 함창과 맞닿은 땅, 곧 고녕가야의 문화권이다. 그곳의 고분은 땅속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이며 후손에게 물려줄 정신이다. 이제 우리는 그 흔적을 복원하고, 올바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 그래야만 예천에 잠든 고녕가야의 맥박이 다시금 힘차게 뛰기 시작할 것이다. /김성문 시민기자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