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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문학관에서 만난 필사의 힘

등록일 2026-04-27 16:09 게재일 2026-04-28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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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독자들의 ‘태백산맥’ 필사본이 전시된 모습.

필사는 베껴 쓰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좋은 문장을 만나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문장 안에 오래 머물고 싶어 감탄이 옅어지기 전에 하는 게 바로 필사다. 
누군가는 필사를 통해 작가를 꿈꾸기도 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가 일어나기 쉽지 않아서다. 작가를 꿈꾸는 한 지인이 도서관 수업에서 지난 일 년간 필사한 노트를 가지고 와서 자랑삼아 보여 주었다.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필사를 꾸준히 해온 그 시간에 박수를 보냈다.
 

얼마 전, 문학기행으로 간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에서도 필사의 힘을 마주한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소설 ‘태백산맥’을 읽지 못하고 문학관을 다녀온 게 아쉬웠다. 핑계지만, 박경리의 ‘토지’와 함께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읽으려고 미루어둔 것이기도 했다. 소설 ‘태백산맥’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우리 현대사의 아픈 이야기 정도다.
 

문학관 일대는 작은 동네였지만, 소설 속의 이야기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문학관은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그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우리 현대사를 말하기 위해 제석산의 흙을 깊숙이 파내 지어서였다. 대신 날개처럼 보이는 유리 모양 탑은 새 희망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문학관 앞에 서니 정면에는 조정래 소설가의 사인이 먼저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은 옹벽이 보였다. 이 옹벽은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고 통일로 나아가자는 염원을 고구려벽화로 표현했다. 문학관은 건축에서조차 소설의 내용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아마 다른 문학관이었으면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문학관 근처에서는 소설 속에 나온 현 부자네 집과 소화네 집이 있었다. 현 부자네 집은 겉모습은 한옥이지만 마당 가운데 길을 막고 꽃과 나무가 심겨 있어 일본 느낌이 물씬 풍겼다.
 

전시실은 소설가 조정래의 커다란 힘이 저절로 느껴졌다. 문학이 역사가 되고 역사가 문학이 된 힘이었다. ‘태백산맥’이라는 책 표지 모형부터 4년간의 취재, 6년간의 집필에 쏟은 정성이 한눈에 보였다. 그중 시작을 알리는 1, 2, 3권은 6년 중 3년에 걸쳐 집필해 서두에 많은 시간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무대인 벌교,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모습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전시실 한쪽에 우뚝 솟은 작가의 육필 원고였다. 빛바랜 갈색의 원고지는 사람 키를 훌쩍 넘겼다. 무려 1만6500매라 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생각해 보면 이만큼의 완성본이 되기까지 버려진 원고지는 이보다 더 많았겠다 싶다. 
 

2층으로 올라가면 이보다 더 놀랍다. 아들과 며느리의 필사본과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태백산맥’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들이 엄청나다.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다’라는 문구 아래 독자들이 보내온 필사본이 전시되어 있다. 원래 필사본 전시실이 하나였는데 하나가 더 늘어났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을 보니 일흔이 넘은 고령의 독자가 보내온 필사본이 있었다. 필사를 매일 3~4시간씩 20개월에 걸쳐서 했다고 한다. 작가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태백산맥’의 진정한 독자임을 스스로 증명한 거였다. 순간, 이런 행운을 누리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싶다.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필사본 전시실엔 두 칸이 빈걸 보니 저 안에 직접 필사한 ‘태백산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명화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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