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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호미곶

포항의 ‘핫 플레이스’, 호미곶에 관해서 떠도는 풍문 중에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이곳을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교통수단이 발달한 지금도 일곱 차례나 답사하기는 쉽지 않은데, 순전히 발품을 팔아 다녀야 했던 당시에 일곱 번이나 이곳에 왔다고? 사이버 공간 곳곳에 기정사실처럼 설명하고 있는 기사 하나를 예로 들면 이렇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호미곶과 죽변 두 곳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동해로 튀어나왔는지를 재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일곱 차례나 오갔다고 한다. 그 결과가 대동여지도에 정확히 반영되어 호미곶이 더 튀어 나오게 그려졌음은 물론이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포항 호미곶과 울진 죽변 중 어느 곳이 동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알아보려고 죽변과 장기 사이를 무려 일곱 번이나 왕래했으며, 호미곶이 더 튀어나왔음을 확인하고는 지도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죽변에서 호미곶까지 거리가 얼마인데 일곱 번이나? 그리고 수백 리 떨어진 두 곳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어떻게 측정하지? 등등의 의문이 들지만 ‘의지의 한국인’ 김정호라는 사람 앞에서 의심은 묻히고 만다. 사실처럼 떠도는 이 이야기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1967년에 발간된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의 ‘일월향지(日月鄕誌)’에 처음 언급되었다. 이 책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라는 꼭지에 적힌 내용은 이렇다. “김정호는 조선 철종 때의 사람으로 자는 호는 고산자(古山子)이고 예산인이며 출생과 사망은 상세하지 않다. 어릴 때부터 뜻을 세워 힘써 공부하여 천문지리에 통달하고 여러 차례 잡학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신분이 미천하여 급제하지 못하였다. 후에 느낀 바가 있어 응시를 포기하고 독학으로 공부한 지리학을 후진에게 가르치고 편의를 제공하고자 순조 말년 5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청구선표도(靑丘線表圖)라는 우리나라 지리원도(地理原圖)를 제작하여 나라에 바치니 순조가 표창하였다. 후에 30여 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답사하며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것이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대동지지(大東地志) 전 23권 15책인데, 이를 천하에 공포하니 사계가 극찬하였다. 대원군 섭정시에 쇄국정책을 시행하자 이 저술이 국가기밀을 누설한 것이라 하며 판각을 압수하여 불태우고 김정호를 체포하여 투옥하니 옥사하였다. 김정호의 유적을 살펴보면, 죽변갑(竹邊岬)과 장기갑(長鬐岬)에서 여러 날 체류하며 죽변갑과 장기갑 중에서 어느 갑이 더 돌출하였는가 살피면서 장기 죽변 사이를 7회나 걸어서 오고갔다 한다.“ ‘일월향지’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장기갑(현 호미곶)과 죽변 중 어디가 동해 쪽으로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일월향지’의 저자 박일천은 어디에 근거하여 자신의 책에다 이렇게 썼을까? 대동여지도를 제작할 때 있었던 김정호의 활약상은 육당 최남선이 처음 꺼냈다. 최남선은 1925년 동아일보에 ‘고산자를 회(懷)함’이라는 글에서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위해 김정호가 전국을 답사했으며, 백두산을 일곱 번이나 올랐고, 수십 년을 떠돌아다녔다고 적었다. 아마도 최남선은 김정호 개인의 노력을 부각시키려고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듯한데, 이후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어린이잡지를 통해 더 극적인 내용으로 각색되었고, 이것이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학교 교과서인 조선어독본에 실리면서 김정호에 대한 상식으로 굳어졌다. 그 과정에서 대동여지도를 본 대원군이 나라의 비밀을 누설한다며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둬 죽게 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김정호의 이야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의 과정은 최한기가 쓴 ‘청구도제’, 신헌이 쓴 ‘대동방여도서’에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찾고 수집·열람하였다, 광범위하게 수집하여 증거로 삼고 여러 지도를 서로 대조하며 여러 지리지 등을 참고하였다.”는 등의 기록에 전하는데, 어디에도 직접 답사했다는 이야기는 없다. 당연히 몇몇 부족한 곳은 직접 답사를 했겠지만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했던 김정호가 전 국토를 답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960년대말 포항의 향토사학자 박일천은 최남선이 퍼뜨려 교과서에까지 실린 김정호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일월향지’에다 적었다. 다만 여기서는 ‘백두산 일곱 번 등정설’이 ‘장기갑 일곱 번 답사설’로 바뀌었으며, 장기갑과 죽변갑 중 어디가 더 튀어나왔는지를 확인할 목적으로 장기와 죽변 사이를 일곱 번이나 답사했다는 자신의 상상력까지 보태 기술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사실처럼 인식됐고, 조선 중엽 격암 남사고가 이곳을 호미등이라 함으로써 오늘날 호미곶으로 부르는 단초가 됐다는 설과 함께 호미곶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역사를 기술할 때 아무리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라도 합리적인 의심을 해 봐야 하고,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라는 우를 범하게 되고, 이를 바로 잡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5-06-22

청문회는 국민에게 겸허하게 소명하는 자리다

인사청문회의 뒷맛은 대부분 참담하다. 근엄하고, 고결한 척하던 고위 인사들이 한 꺼풀만 벗기면 왜 모두 그 모양인지…. 물론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날 때도 있다. 야당이 억지로 문제 삼는 일이 다반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싸고도 말이 많다. 국민의힘에서 제기하는 의혹을 보면 버는 돈보다 지출이 터무니없이 많다. 지난 5년간 최소 5억 원을 수입보다 더 많이 썼다고 한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다. 중국 칭화대 학위를 취득이나 아들의 특수학교 전·입학, 유학에 대해서도 지적이 나온다. 2억 원이 넘는 유학비용만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의 교육 철학을 거슬러, 도덕적 문제도 제기된다. 대부분의 공직 후보자가 안고 있는 의문일 수 있다. 그 대응 과정이 더 문제다. 무엇보다 본인의 태도다.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차분하게 설명하는 게 정도다. 그런데 정작 의혹에 대한 해명이 본질을 피하고, 구차하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정치적 탄압으로 몰아 동정심을 구하려 한다. ‘표적 사정’은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해, 굳이 비리를 들춰낸다는 뜻이다. 혐의를 사실이라고 믿게 한다. 이미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도 부인했다. 세금 추징과 과징금 부과를 부당한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했다. 세무 당국이 봐주지 않았다고 불평했다. 탈세해도 눈감아주는 게 정상인가. 불평하기에 앞서 세금을 추징당했다면 국민에게 먼저 사과부터 해야 도리다. 그는 ‘노부부 투서 사건’을 “정치 검찰, 쓰레기 지라시 협잡 카르텔에 의한 허위 사실”이라고 비난했다. 노부부가 그런 내용을 유서에 남겨도, 검찰과 언론이 모른 체 했어야 하나. 기자가 불편한 질문을 하자 “누가 질문했느냐?”, “어디 채널이냐?”라고 추궁했다. 정치적 공격이라는 다른 틀(프레임)로 의혹을 덮어버렸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청문회 증인·참고인을 모두 거부했다. 민주당은 처음에 ‘윤석열·한덕수·김문수’를 증인으로 요구했다. 그래 놓고 김 후보자를 검증할 증인은 모두 거부했다. 김 후보자의 가족과 전처까지 부르는 건 지나치다고 해도, 이들을 모두 제외했는데도, 다른 증인들을 모두 거부했다. 자신이 있다면 해명할 수 있는 자리인데, 굳이 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힘들다. 민주당이 아직도 특검을 밀어붙이는 김건희 여사 전례를 봐도, ‘가족은 건드리지 마라’는 말은 통용되기 어렵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인사청문회법을 바꾸겠다고 한다.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이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개인 비리와 도덕성에 대한 청문은 비공개로 하고, 정책 능력 위주로 공개 검증하자는 대안도 나와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총리와 장관들 청문회를 앞둔 이 시점에 “빠르게 개정하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속 보이는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허위 사실 공표로 선거법 위 반 유죄 판결이 나오자, 관련 조항을 아예 삭제하겠다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누가 정당한 입법이라고 생각하겠나. 김 후보자는 자신을 가장 아프게 공격하고 있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을 장관으로 추천한다는 윤재관 조국혁신당 의원의 페이스북 글을 공유했다. “검증받을 좋은 기회 얻기를 덕담한다”라는 댓글도 달았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주 의원에게 “70억 원 재산 형성 과정을 소명해 보라”라고 공격했다. 정당하게 모아도 자산이 많으면 죄악이고, 가난하면 부정을 저질러도 된다는 억지와 다를 바 없다. 더구나 청문회는 국민을 향한 검증이다. 의혹 해명은 국민을 향해 하는 것이다. 때 묻은 정치인끼리 짜고, 같이 해 먹는걸 ‘관행’이라고 덮을 일이 아니다. 김 후보자는 벌써 총리 행보다. 부처 보고를 받고, 재난상황실과 현장을 다닌다. 민주당 의석만으로도 임명 동의안 처리가 가능하다. 그래선가 의혹 해소에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망신 한번 당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나. 아무리 관행이라도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사과는 사실 확인이 먼저다. 청문회는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의 의심을 풀어주는 자리다. 아무리 총리 후보자라도 국민 앞에서는 좀 더 겸손하기를 기대한다.

2025-06-22

낮은 출산율, 해결해야만 한다

회사원 J 씨의 비혼식이 열린다. MZ세대에서 요즈음 늘어나는 추세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 어디 이뿐인가? 인구가 줄어든 농촌 지역에선 콩나물이 사라졌다. 어린이집은 매년 폐원이 속출한다. 인구감소에 따른 자연스러운 걸 왜 새삼 거론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구 4000만 명 이상 국가 중 0~14세의 유소년 비율은 우리나라가 10.6%로 미국의 17.3%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어쩌면 저출산이 문제라고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버린 것 같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한다고 매년 수십조 원을 퍼붓는 정부의 정책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다. 이제는 국가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출산율 하락은 국가의 모든 문제가 섞여서 나타난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다. 청년층은 높은 결혼식 비용과 빚을 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질 좋은 취업 자리는 부족하고 취업 후도 일자리가 불안하고 높은 사교육비는 한국을 아이 없는 사회로 내몬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는 노동력 감소와 생산성 저하로 활력을 잃고 한은의 거듭된 금리 인하에도 소비는 위축되고 내수는 바닥 모를 침체의 늪에 빠졌다. 고령화로 복지 부담은 늘어나는 데 이를 떠받치는 청년층은 점차 줄어든다, 이에 따라 지방 소멸과 지역 불균형 문제는 커져만 간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내어놓는 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주위만 맴돌고 있다. 이제는 출산율을 회복해도 인구감소는 일어난다. 한국의 인구 유지에 필요한 70만 명의 인구는 이제는 넘볼 수 없는 수치가 되었다. 현재의 출생률이 유지되더라도 매년 50만의 인구가 감소한다. 가임 여성 인구는 해마다 줄어든다. 앞으로 몇 년이 중요하다. 어쩌면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 기간 안에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출산율 하락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거의 모든 나라가 출산율 하락으로 고민한다. 비교적 성공한 해외의 정책을 살펴보면 일본의 ‘2 지역 거주인구 대책’이 관심을 끈다. 도시와 농촌의 2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거주지 이동 고속버스 비용 지원, 거주지 내 지역대학 연계 지역 아카데미 프로그램 마련, 온천 활용 건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효과를 거두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의 ‘1유로 프로젝트’도 빈집 문제 해결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힘을 보탰고, 대학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정책도 프랑스의 인구 증가를 낳은 성공적인 정책이다. 기술자나 노동 인력이 많이 몰리는 국가의 이민정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나라 기업체의 자녀 출산 1인당 1억 원을 지원하는 정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지금이 출산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시급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시간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두가 출산 증가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 시간이 해결의 마지막 기회이다. 우리나라와 각국의 좋은 정책을 모으고 보완하여 해결해야만 한다. 시간을 놓치면 어떠한 처방도 효과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6-22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정부 부처의 명칭은 조직 개편이나 정책 변화에 따라 바뀐다. 박근혜 정부 때 출범한 미래창조과학부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변경되었다. 더 극적으로 명칭이 변경된 부처는 행정안전부다. 김대중 정부 때 내무부와 총무처를 통합해서 행정자치부라고 한 것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로 바꾸고 박근혜 정부 때는 안전행정부로 다시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행정안전부로 이름을 바꿨다. 이번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성평등가족부로 변경된다고 한다.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은 이미 2022년 대선 때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이니 당연한 변화다. 역사를 조금 더 올라가보면 여성가족부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는 10년 전에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5년 김희정 여가부 장관이 양성평등가족부나 양성평등청소년가족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적이 있다. 2023년 김도읍 의원을 비롯해 국민의힘 소속 의원 9명이 발의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성평등 대신 양성평등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의원들은 제안이유에서 ‘헌법 제36조제1항’에서 ‘양성의 평등’이라고 되어 있고, 양성평등기본법이 이미 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 법률에서 ‘성평등’이라는 표현을 쓰면 혼란이 생긴다면서 양성평등으로 통일하자고 한 것이다. 그러다가 작년 7월, 황유정 국민의힘 시의원이 발의한 ‘서울시 성평등 기본조례 전부개정 조례’가 통과되었다. 그 내용은 김도읍 의원의 발의한 법률안과 일맥상통한다. ‘성평등 기본조례’의 명칭을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변경하고, 조례 각 조항의 ‘성평등’이라는 용어도 ‘양성평등’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황유정 시의원은 “본 조례가 헌법에 명시된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례이기 때문에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같은 용어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도읍 의원이나 황유정 시의원의 발의 취지를 보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변경할 때 성소수자들의 반발이 심했던 것을 보면 정말 개정법안이 단순히 표현의 일관성만 주장한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양성평등이냐 성평등이냐 글자 하나 차이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다. 그런 점에서 2021년 양성평등기본법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주권정부가 굳이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성평등이라는 용어는 차별금지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평등이라는 단어에는 남녀뿐 아니라 동성애까지 포함한 다양한 성이 포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2007년 처음 발의된 차별금지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동성애 차별 금지다. 이 법안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의를 거듭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이번 여성가족부 명칭 변경 움직임에 대해서도 기독교에서는 성평등가족부라는 명칭은 차별금지법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면서 양성평등가족부라고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에 정해진 평등 이념에 따르면 모든 차별은 금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양성이라고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6-22

‘국뽕’은 즐거워?!

12·3 내란 전에 내가 즐겨 보고 들었던 유튜브는 ‘국뽕’과 관련된 것이었다. 근현대 문학 작품과 이름난 무협지 낭독을 듣기도 하고, 영화도 더러 보았지만, 역시 주류는 국뽕이었다. 나처럼 나이 먹은 자들은 민족주의나 국가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체화돼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라와 민족, 역사와 위인들에 관한 내용을 반강제로 읽고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힘을 보탠 원인 제공자는 내가 다닌 대학의 분위기였다. 모든 사안에 ‘민족’을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기묘한 대학에서 나는 10년 동안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 시간강사와 연구소 간사로 살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의 깊은 곳에는 민족혼이나 강렬한 자주적 역사의식이 자리한다. 혹자는 나를 자유주의자라고 부르지만, 나는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고 살아간다. 각설하고, 얼마 전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Forbes)가 발표한 2025년 세계 10대 강대국 순위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 각국의 국민총생산과 군사력, 외교적 영향력, 기술력, 문화 파급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순위를 매겼다고 한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도이칠란트의 뒤를 이어 세계 6위 강대국으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 뒤를 이어 프랑스,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7위부터 10위까지 이름을 올렸다. 언론 보도를 보다가 나는 잠시 숨을 골랐다. ‘야, 이게 정말 실화냐’,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력이 세계 5위라는 사실은 나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하지만 국방력 이외의 주요 요소를 고려해서 선정한 강대국 6위라는 게 실감 나지 않았던 터다. 1965년 1인당 국민소득 105달러로 세계 최하위 수준의 대한민국이 60년 뒤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과 군사력, 문화와 예술의 나라가 된 것이다. 정말 경이로운 사변(事變)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경제적인 성공만이 아니라,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주의 성장도 현저하다. 항상 우리를 얕잡아본 일본도 우리보다 12년이나 늦은 2009년에서야 정권교체에 도달했다. 1951년 10월 1일 영국 ‘더타임스’에 실린 ‘한국의 전쟁과 평화’ 기사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의 폐허에서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나는 것보다 쓰레기 더미에서 장미가 성장하는 걸 기대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낸 우리의 저력에 새삼 가슴 뻐근하고 어깨가 절로 으쓱한다. 역시 나는 민족주의자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내란수괴를 비롯한 내란 잔당과 그 수하 떨거지들의 협잡과 망발이 아직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구 삼류 언론과 정치검찰, 극우에 기대서 생명줄을 연장하려는 얍삽한 정치인들과 그 세력이 한여름 독버섯처럼 기생하고 있다. 사적(私的)인 이익과 대물림, 편법과 불법, 무법과 탈법, 초법(超法)과 무소불위로 무장한 자들의 약탈 만행! 만약 반민특위가 성공했다면, 5·16 군사쿠데타와 1980년 광주학살과 1990년 3당 야합이 없었다면, 716호의 부패와 타락, 503호의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12월 3일 계엄과 내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높이 날아올랐을 것이다. 국뽕의 기억이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기대한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6-22

첫 열대야

대구와 경북에서 올 첫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기상청은 19일 저녁부터 20일 새벽 사이 대구의 밤 기온이 25.7도를 기록해 열대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같은 날 포항(26.4도), 경산(25.9도) 구미(25.5도) 등 경북의 주요 도시에서도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열대야는 밤 기온이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무더위를 보일 때를 이르는 말로 올해는 전국적으로 작년보다 일주일 이상 빠르게 열대야 현상을 보였다고 한다. 여름철이 되면 우리나라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아주 강할 때는 밤에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고온다습한 무더위로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게 된다. 밤 기온이 30도를 넘으면 초열대야라고도 부른다. 보통 7~8월에 열대야 현상이 발생하나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선 6월 중에 열대야가 나타나는 일이 잦아졌다. 열대야 일수도 점차 늘어나 작년 제주에선 연속 45일 열대야를 기록했다. 매년 기록이 경신될 정도로 무더위가 더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은 올 여름도 무덥고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 질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의 한 대학 연구조사에 의하면 무더위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며 공격적으로 만들어 이 시기에 범죄 발생이 높아진다는 보고를 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여름 열대야 극복을 위해 규칙적인 가벼운 운동을 하고, 과식이나 야식 등은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열대야로 이어질 무더운 여름이 이제 본격 시작된다. 각자가 건강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22

소멸 위기의 농촌, 지속가능한 희망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농촌은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 기후위기와 식량안보 같은 문제들은 더 이상 도시만의 고민이 아니다. 농촌은 그 최전선에서 구조적 한계와 제도적 미비, 그리고 인구소멸이라는 다중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우선 농촌은 인구 구조 자체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202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농가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8세, 70세 이상이 전체의 절반에 육박한다. 반면, 농업의 미래를 이끌 청년층은 도시로 떠나고 있다. 그 이유는, 주거, 교육, 육아, 의료, 교통 등 일상의 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정착을 꿈꾸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 여기에 농업의 수익성 저하도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 시장 개방, 기후변화는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농업 도입은 대규모 농장에 유리하게 작동하면서 소규모 영세농은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농업 내 양극화는 심화되고, 농촌 사회의 불균형은 커져간다. 또 하나의 문제는 공동체의 해체와 문화의 소멸이다. 농촌은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세대 간 삶의 방식과 전통이 이어지는 터전이었다. 그러나 마을 단위 공동체가 해체되며 세시풍속, 지역 축제, 전통 기술 등 고유한 문화자산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화는 기억이고, 정체성이다. 그 상실은 곧 지역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경고다. 이제 농촌을 ‘도움이 필요한 곳’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농촌은 우리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생명산업의 기반이자, 생태적 균형과 정서적 치유를 제공하는 미래 자산이다. 농촌을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청년이 머무르고 싶고, 꿈을 꿀 수 있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귀농·귀촌 지원을 넘어 농업 창업 지원, 주거 안정, 교육과 육아 인프라 구축 등 종합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착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농업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 유기농업 확대, 로컬푸드 시스템 구축, 스마트팜 기술 보급 등을 통해 수익성과 환경보전을 함께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농업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닌 미래 산업으로 전환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셋째, 농촌에 맞는 복지체계를 갖춰야 한다. 고령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농촌에서는 의료, 돌봄, 이동 등 일상 복지 서비스가 절실하다. 도시 중심의 제도로는 한계가 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맞춤형 복지가 필요하다. 넷째, 지역 문화자산을 보존하고 활용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교육 콘텐츠나 관광 자원으로 재창출 가능한 경제적 자산이다.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진 ‘살아 있는 농촌’을 만들어야 지속가능성이 확보된다. 농촌의 미래는 곧 대한민국의 미래다. 지금 우리가 농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삶이 달라질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촌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다.

2025-06-19

의료 불평등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한 비용이 연간 4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 했다. 보고서는 지역민 가운데 수도권과 지역 간의 의료격차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무려 81.2%에 달했다. 새롭다고 할 통계 자료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울과 지방간의 의료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실망스럽다. 미국의 한 주보다 작은 나라 안에서 서울과 지방간의 심각한 의료격차와 이로 인한 비용 발생이 수조 원에 이르고 있다는 것은 국가정책의 부재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고질적 병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도 유사한 조사 결과는 있었다. 서울 이외 지역에 거주하는 암환자 3명 중 1명은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술을 받는다고 했고, 특히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서울로 향하는 환자 비율이 높다고 했다. 또 지방에 거주하는 암환자가 서울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내는 비용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준다는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최근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지방과 서울의 격차를 줄이는 문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느끼게 한다. 빈익빈 부익부가 극으로 치닫는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가난해지고 돈 많은 사람일수록 더 부자가 되는 현상이 비단 경제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주거와 교육, 의료, 문화 전 분야에서 존재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은 언제 개선이 될까. 정부는 이런 통계를 보고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9

한국의 살 길, 농촌의 살 길, 청년의 살 길

일본은 한국에 찾아오는 문제를 10년 정도 일찍 겪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사례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2015년 5월 미국의 유력 신문 ‘워싱턴 포스트’에 ‘과소화와 고령화 추세에 맞서는 작은 마을’이라는 제목이 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이변’은 이렇게 해외 미디어에도 소개되었다. 그 이변은 이제 ‘마을 만들기’ 주류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농촌 살리기에 무엇을 할 줄 몰라 헤매고 있는 한국도 배울 바가 많다. 가미야마(神山)는 도쿠시마 현 도쿠시마시 중심부에서 하천을 따라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438번 국도를 차로 달려 마지막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면 45분쯤 지나 도착할 수 있다. 해발 약 1000m 높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총 면적의 83%가 삼림이다. 10여 년 전 방문을 해보니 소백산의 품안에 안긴 경북 청송·울진이나 마이산에 둘러싸여 있는 전북 진안·장수와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였다. 마을에는 1급 하천 아쿠이 강이 흐르고, 시코쿠 12대 명소인 가미야마 온천이 있지만 그 외에 이렇다 할 관광지는 없다. 특산물로는 라임의 일종인 스다치 생산량이 일본 1위이지만 예전부터 마을을 지탱해왔던 임업은 이젠 찾아볼 수도 없다. 1955년 여러 촌(村)이 합병하여 형성된 가미야마는 당시 인구가 2만 명이었으나, 2015년 조사에서는 약 5300명으로 줄어들어 거의 4분의 1로 감소했다. 고령화율은 48%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과소화 마을이다. 일본 내에서는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가미야마에 도시로부터 청년들이 속속 이주하고 있다. 2008년부터 8년 동안 최소 91세대, 161명이 넘게 이주했다. 그것도 웹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엔지니어, 예술가, 요리사 등 창의적인 직업의 청년들이 많다. 더 특이한 것은 IT 벤처 기업이 계속 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와 오사카에 본사가 있는 기업들이 가미야마에 분소 격인 위성 사무실을 만들거나 아예 새로운 본사를 만들기도 하는 데 그 수가 2011년 이후 16개를 넘었다. 가미야마는 2015년 지방 재생 전략 수립을 계기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알차게 진행하고 있다. 그 중 ‘푸드허브 프로젝트(Food Hub Project)‘는 지산지식(地産地食) 원칙을 기반으로 농업 인력을 육성하고, 먹거리를 통해 지역을 활성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 농업 재생의 중요한 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편백과 삼나무 같은 지역에서 자란 나무를 활용해 목수가 주택 단지를 조성하며, 쇠퇴한 임업을 부흥시키고 건설 인력을 육성하는 동시에 다양한 목적의 주거지를 만들어 마을을 새롭게 형성하고 있다. 지역 농업고등학교는 미래 리더를 양성하는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젝트들은 정부, 민간, 주민, 이주자가 협력하여 진행되며, ‘가미야마 연대 공사’와 같은 기관은 열정적이고 다재다능한 젊은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한 시골이 어째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이번 여름휴가 때는 관계자들은 직접 방문해 보시라! /신광조​​​​​​​ 사실과 과학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

2025-06-19

‘땅꺼짐 관리’

도시의 빠른 성장과 함께 수십 년 된 상·하수도, 지하철과 같은 지하 인프라는 점차 노후화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와 같은 극단적인 날씨 현상은 지반의 안정성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2019년부터 현재까지 땅꺼짐 사고가 급증했으며, 그 중 대구시는 특히 하수도 노후화로 인해 땅꺼짐 사고 발생 위험이 커졌다. 예를 들어, 대구 동구의 한 도로에서 2024년 여름, 직경 50cm의 땅꺼짐 사고가 발생하여 차량 통행에 큰 차질을 빚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례 없는 극심한 폭우로 지반을 더욱 약화시켜 이러한 사고를 촉발하고 있다. 따라서 대구와 경북 지역은 이러한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고 관리할 체계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땅꺼짐 사고 또는 싱크홀(sinkhole)이란 지하공간의 침하나 파손으로 인해 지반이 급격히 내려앉는 현상이다. 이는 상·하수도관의 파손, 과도한 지하수 유출, 불법적인 지하 개발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낡은 상·하수도 시설은 지속적인 노후화로 인해 점점 더 많은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는 지하 공간 모니터링 시스템(GPR), 3D 지하공간 모델링, 실시간 침하 모니터링 시스템 등이 있다. 이러한 기술은 지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여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해외에서는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과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일본은 1980년대부터 지하공간 관리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도로 지하공간을 탐사하는 차량을 도입해 도심 내 땅꺼짐 사고 발생을 예방하고 있다. 또한, 미국 플로리다주는 싱크홀 보험 제도를 의무화하여 사고 발생 시 피해를 신속하게 보상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는 3D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구축해서 지하시설의 안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대구경북 지역 역시 이러한 시스템을 도입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 조건과 도시의 노후 인프라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대구시와 경상북도의 접경 지역에서는 지하수와 상·하수도 시스템을 통합 관리하여 위험 요소를 대폭 줄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대구경북은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첫째, 노후 상수도 및 하수도 시설을 조기에 교체하고, 지반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대구와 경북 지역의 지하공간 개발을 체계적으로 규제하여 무분별한 개발을 방지하고, 세밀한 지하공간 안전 점검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셋째,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시설을 설계하고, 급격한 날씨 변화에 대비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정책들은 단순히 땅꺼짐 사고를 예방하는 것을 넘어, 대구·경북 지역의 기후변화 적응력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초석이 될 것이다.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더 나아가 미래 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 이제는 ‘땅꺼짐 관리’ 정책의 질적·양적 확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6-19

선 넘은 요즘의 성(性)

나도향의 ‘뽕’이나 ‘물레방아’ 소설을 우리는 사실주의 문학이라고 배웠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글을 썼다는 이야기다. 인간들의 도덕의식 무너지고, 성 윤리가 없어지는 현실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던 것이다. 1925년에 발표된 글이니 그 당시 사람들의 성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100년이 흘렀다. 지금의 성 풍속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달라진 성 풍속도를 반영하는 수필 작품은 나온 게 있을까? 아직 중세 암흑시대의 문학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타 문학적 장르에 비해 수필의 영역에선 여러 가지 제약이 걸려 있어 파격적인 수필을 읽을 수는 없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이에 오직 결혼에만 불을 밝힌 기집애들이 쓸 만한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새벽 도서관에 한 번도 간 적도 없고, 독서는 패션 잡지 뒤적이는 걸로 대신하고, 자기 계발은 성형외과 드나드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여자애들이 남자들을 다 채갔다니까” 이게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20년 전 드라마 대사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그 많던 싱아(괜찮은 남자)는 누가 다 먹었단 말인가? 라면서 여자 주인공들이 치고받던 대화이다. 20년 전만 해도 여자들은 여전히 ‘내숭’을 떨어야 하고 ‘얌전한 척’해야 했고 어떻게 하면 귀여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 후 연애의 낭만성과 고상함, 우아함은 이미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선을 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그것이 이미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 완전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것이 지금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다. 기존 연애에서 보여주는 애절한 사랑과 그리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롯이 남녀의 심리와 육체를 가지고 게임을 벌이면서 서로를 탐하고 충돌하는 심리적 정치학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마치 그 옛날 ‘사랑과 전쟁’이라는 불륜 프로그램보다 더 진보한 폭로물이 여기저기서 방송되고 있음은 이미 안방에서 그런 정도의 남녀 관계물이 용인되는 시점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낡은 도덕적 사고방식을 아주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성에 대한 고정관념, 결혼 이데올로기에서의 순결 의식과 배타적 소유욕, 청교도적 성 의식을 일순간에 비웃는다. 70년 전 피임방법이 개발되면서 혼전 성관계가 자유로워지고 섹스와 출산을 분리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므로 해서 여자들의 성에 대한 개념은 급속히 바뀌고 만 것이다. ‘성적 자기 결정권’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여성들만 이렇게 변한 것이 아니다.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그 어디에도 ‘책임’이란 의식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롯이 쾌락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우리가 겪고 상상하는 사랑의 패턴이 완전히 뭉개지고 이런 고루하고 진부한 사랑은 신파적 사랑으로 치부되면서 케케묵은 사랑 레퍼토리만 쌓여 있는 내 머리에 혼란이 온다. 생각은 ‘쿨’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뚜껑을 열고 나가기엔 주위의 싸늘한 시선으로 인해 아직 상당히 춥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글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애들에게 어른으로서 해줄 말도 생각이 안 난다. 어지간해야 말이 통하지. /노병철 수필가

2025-06-19

고인돌과 놀았다

고인돌 옆에서 1인용 텐트를 치고 밤을 세웠다 고인돌은 지상의, 별의 자리이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헛된 욕망에 불구하다 누군들 불멸을 꿈꾸지 않으랴 그러나 권력은, 혹은 인생은 야비하고 무모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고인돌이었다 저 장엄한 것이 이슬보다 쓸모없다 잡풀에 희롱당하고 비에 젖어 후줄근하다 빛나는 죽음은 없다 주검만 잠시 있을 뿐 그마저도 사라진다 종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칠성재 마루 고인돌 옆에서 잠을 청한다 옛사람의 근본을 추적하여 오늘 우리의 터전의 발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만 지금은 내가 불멸의 고인돌이다 자기의 자리에서 생(生)을 노련하고 집요하게 노려보는 것이, 긴 호흡 내쉬는 것이 더욱 소중하다 새벽이 되면 집으로 갈 것이다 그래, 오늘 살아 있어 미래를 전망하고 성찰하는 것이 오히려 단순해서 눈부시게 찬란하다 고인돌과 종일 잘 놀았다. … 내가 이 고인돌을 보러 갔을 때, 입구의 안내판은 누가 발로 찼는지 찢어져 있었다. 대체로 관리가 무성의해 보였다. 멋쩍은 미필적 실수, 행정력의 부재, 그 무엇이라도. 비교해 보니 강화도와 연천 전곡의 고인돌은 제법 대접을 잘 받는 듯 싶었다. 그러나 칠성재의 그 고인돌은 푸대접 받는 그 모습이 오히려 좋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어쨌거나!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6-18

순두부찌개

멀리 사는 딸네 식구가 간만에 집에 온다. 누나가 온다는 소식에 아들도 오겠다고 한다.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자, 망설이지 않고 하나같이 “엄마가 손수 끓인 순두부찌개”라고 했다. 때마침 길 건너에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다행이다. 장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가게로 향했다. 김이 나는 두부 모판 옆에 봉지 두 개가 서 있다. 두붓물에 잠긴 순두부의 따뜻함과 몽글한 순도가 마음에 든다. 냉장고를 뒤져 양파를 다듬고 당근을 깎는다. 파와 고추 곁에 잘게 썬 애호박을 담는다. 조갯살을 넣을까 하다가 딸과 아들의 입이 기억하는 비계가 붙은 돼지고기를 꺼낸다. 고추기름을 만들고 고기부터 볶기 시작했다. 빨간 국물을 보는 순간, 차고 방에서 만났던 그녀가 떠오른다. 손이 저절로 옛 기억의 맛을 쫓아가고 있다. 30년 전, 남편의 첫 사업 부도로 나는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 유치원생인 딸과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의 오후를 미술학원에 맡기며 내가 간 곳은 수학 학습지 사무실이었다. 오전에 전화로 학부모를 먼저 설득해야 했고, 오후에는 학생의 학습 수준에 맞게 수업 단계를 정해 선생님을 배치해 주는 일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던 그날, 아들 녀석이 눈 뜨자마자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칭얼거렸다. 기어코 눈물 콧물이 범벅된 녀석을 선생님 손에 넘기고 돌아섰다. 아이는 얼굴을 창문에 붙이고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단계별 학습지가 담긴 가방을 메고 사무실을 나왔다. 빗속을 걸어 미리 약속한 주소를 찾아 골목을 헤맸다. 주소지를 들고 간 곳은 가정집 차고지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이었다. 집 안이 훤히 보이는 곳에 학생의 엄마가 홀치기 틀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녀가 하는 일에 방해될까 봐 한참 비속에 서 있었다. 약속 시간에 맞춰 들어서자, 그녀가 반갑게 일어섰다. 잠시만 기다리라던 그녀는 재바르게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학습지 가방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 허둥거렸다. 내 등 뒤로 학교에서 돌아온 남자아이의 소리가 들렸다. 빗물에 젖은 발을 씻고 들어오는 아이와 함께 얼떨결에 나도 둘레 밥상 앞에 앉았다. 갓 지은 밥을 세 그릇 올린 그녀는 가운데에 보글보글 끓는 순두부찌개 냄비를 놓았다. 눈이 휘둥그레진 내게 그녀는 매일 아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새 밥을 짓는다고 했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따뜻하게 배부터 채워야 한다며 웃었다. 고추기름에 어우러진 찌개를 보자, 아침도 먹다 만 내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내 숟가락은 염치도 없이 들락거렸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허기진 마음까지 몽글해졌다. 상을 물리고, 학습지를 풀던 아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동글납작한 아이를 보자, 유리창에 코를 문대며 울던 아들이 생각났다. 나는 애써 웃으며 문제 푸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막힌 곳을 뚫어주자, 아이는 거침없이 풀어나갔다. 그녀는 멀찌감치 앉아 홀치기를 하며 웃었다. 학습지 하는 아이를 뿌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순두부찌개 요리법이 적힌 종이를 받아왔다. 퇴근길에 시장에 들러, 그녀가 말한 순두부를 샀다. 나는 그녀의 솜씨를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 밥상에 올렸다. 찌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남편과 아이들이 이내 밥 한 그릇과 찌개 그릇을 비우고도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국물까지 마신 아들이 나를 보며 웃었다. 어스름 속에 비가 그치고 있었다. 그 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가끔 순두부찌개를 끓인다. 고추기름을 내면, 오랜 기억 속으로 들어가 갓 지은 밥 냄새를 맡고, 돼지비계가 뜬 순두부찌개를 떠먹는다. 세월이 흠씬 지나버린 지금도 그 둘레밥상을 기억한다. 오랜만에 식구들이 다 모인 밥상이 시끌벅적하다. 딸과 아들의 숟가락이 찌개냄비에 먼저 간다. “바로 이 맛이야.” 조미료를 넣지 않은 자리에 뭔지 모를 무언가가 숨어 있다는 아들의 말에 딸이 “정성”이라며 맞장구친다. 정성보다 허기진 내 마음을 채워주었던 그녀가 함께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비가 내리지 않아도 순두부찌개가 맛있는 밤이다. /윤명희 수필가

2025-06-18

다한증과 자율신경

무더운 여름이 찾아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땀을 흘린다. 이는 체온을 조절하고 몸 안의 열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다. 하지만 평소보다 지나치게 많은 땀을 흘리거나, 더운 상황이 아님에도 땀이 멈추지 않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증상은 단순한 체질이 아니라 다한증이나 자율신경실조 같은 병적 상태로 볼 수도 있다. 여름철에는 이러한 증상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특히 더위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이로 인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쉽다. 한의학에서는 몸의 기운이 부족해 땀구멍을 조절하는 기능이 약해져 발생하는 기허형 다한증과 열이 많은 체질이 더욱 과항진 되어 땀이 나는 열독형 다한증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처럼 스트레스를 받아 열이 훅 오르면서 땀이 나는 음허형 다한증이 있다. 기허형은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치고 땀이 나며 땀을 많이 흘린 후엔 머리가 어지럽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증상을 호소한다. 열독형은 평소에도 땀이 많긴 하지만 열이 과항진 되면 시도 때도 없이 땀이 나서 일상 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이다. 밥을 먹거나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체력이 떨어진다. 그리고 갱년기나 화병으로 인한 다한증은 열이 순간 오르면서 땀이 훅 나는 경우가 많은데 증상의 경중에 따라 하루 수차례에서 수십 차례 발생하고 이런 경우는 수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모두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귀결되며 치료는 각 증에 맞게 자율신경을 회복하는 한약과 자율신경을 조절하는 약침을 쓰면 해결할 수 있다. 기운이 허한 사람은 황기나 인삼같은 약재를 써 기력을 보충하고 빠져나간 땀을 보충할 진액을 생성한다. 열이 많은 사람은 석고나 황련을 써서 처방을 해 몸의 열을 식히고 심장의 열을 식힐 수가 있다. 화병 같은 스트레스 관련은 치자나 시호를 이용해서 처방을 하면 불면과 가슴 두근거림 열이 훅 뜨면서 땀이 나는 증상 등을 개선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약침요법도 병행할 수 있다. 우리 척추는 오장육부와 대응이 되는데 실제 흉추에서 나오는 신경은 오장육부와 연결되어 이 신경에 약침을 놓으면 오장육부의 상태를 개선시킬 수가 있다. 이와 함께 경동맥 밑에 있는 성상신경과 근처의 부교감 신경에 약침을 놓아 자율신경을 조절할 수도 있다. 생활 관리도 치료만큼 중요하다. 덥다고 차가운 음료나 냉방을 과도하게 이용하면 오히려 면역력이 약해져 체온조절과 열 배출에 어려움을 겪어 다한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실내 온도는 외부와 5도 이상 차이 나지 않도록 하고 반신욕이나 족욕을 통해 체온을 안정시키고 하루 30분 가량의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통해 몸의 면역력을 올리는 것이 좋다. 여름은 단순히 더운 계절이 아니다. 몸 안의 열과 수분, 기혈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는 시기다. 땀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율신경이 예민한 사람일수록 이 계절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의학은 그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고유한 치료의 원리가 있다. 기와 음을 보하며 교감과 부교감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섬세한 한방적 접근이야말로 여름철 다한증과 자율신경실조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진정한 해답이 될 수 있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6-18

아이가 자란다는 것은

아이가 자라면 한 그릇 밥을 먹는다. 어른 몫의 공기밥 하나를 거뜬히 다 먹는다. 숙주나물, 호박나물, 콩나물에 가지 반찬까지 갖은 채소 반찬을 즐겨 먹는 손자는 학교 급식 시간에 선생님의 칭찬을 도맡아 듣는다고 했다. 매운 김치도 곧잘 먹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고 자랑하곤 했다. 한식당엘 가면 된장찌개와 배추나물을 제 앞에다 끌어다 놓고 먹는 어른 식성의 아이는 된장에 밥을 말다시피 먹고는 빈 그릇을 보이며 한 공기를 더 시켜 달라기도 한다. 어릴 때 고기를 즐겨 먹지 않아 애태우던 식성도 변해, 이제는 성인 한 사람 몫의 고기도 너끈히 먹어 치운다. 오늘 저녁 차려준 만둣국을 맛나게 다 먹고는 국물에 밥 말아 먹어도 돼요?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아침을 차려 주면 마다하지 않고 다 먹고 학교 간다며 제 엄마도 흐뭇해 자랑하곤 한다. 많이 잘 먹으니 또래보다 좀 작은 몸이 이제 쑥쑥 커지려나 기대가 잔뜩 된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아이의 사회도 확장되는 것도 알겠다. 최근 매일 하굣길을 도와주면서 아이의 일상을 더 가까이 관찰하게 되었다. 교실에서 나온 손자는 운동장을 거쳐 정문까지 오면서 만난 거의 모든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몸 부딪쳐 장난치고 얘기를 하는 걸 멀찍이서 본다. 2학년인 손녀는 내 손 꼭 잡고 교실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대는데, 큰 아이는 다르다. 손자는 이제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도 한다. 휴대폰으로 만날 시간을 약속해 정하고, 심지어는 우리집에까지 와서 하루종일 놀기도 한다. 게임기만 가지고 놀길래 체스와 퍼즐을 줘도 저희끼리 잘 논다. 스스럼없이 할머니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는 게 흐뭇해 같이 놀러도 가고 밥까지 차려준다. 제 아빠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손자다. 일 년에 서너 번 만나는 사촌누이 정도의 가족이 아이의 사회 영역의 전부인 줄 알았다. 이제 친구를 디딤돌 삼아 점점 더 넓은 세상으로 단단히 발 디뎌 걸어가겠지 싶다. 아이가 자라면 부끄러움도 자라는가 보다. 학교에 가지고 가는 물병이나 우산 취향이 싹 바뀌었다. 손녀는 분홍의 인형 그림 있는 물병, 손자는 파란색 로봇 그림의 물병이었다. 우산도 장화도 남녀 구분이 확실했었다. 어느 비오는 날 하굣길에 무늬 있는 우산을 가져다줬더니 유치하고 부끄럽다며 쓰지 않으려 해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원래 네 것이었잖았냐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이젠 검정우산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다며 제 엄마도 웃는다. 하루는 내 옷매무새에 깜짝 놀라며 얘기하는 말에 내가 되려 놀랐다. 민소매 위에 재킷을 입었던 내가 차 안에서 잠시 재킷을 벗고 있었다. 재킷을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민소매 차림의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지르듯 말한다. 할머니 옷이 왜 그래? 빨리 옷 입어···. 그리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부끄럽단 말이야···. 얼른 재킷을 둘러 걸치며 헛웃음을 삼켰다. 아이가 크면서 부끄러움도 알아 커지는 것 같다. 어딘가서 배운 짧고 야트막한 상식 자랑에 맞장구를 쳐주었더니 이런 소리를 들었다. 할머니랑 지적 수준이 맞아서 좋아···. 자라는 손자의 지적 수준에 맞춰 주려면 할머니의 공부도 끝이 없으려나 싶기도 하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6-18

질문은 기자의 존재 이유

각기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기자란 ‘묻는 사람’이다. 배우는 연기를 함으로써,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경찰은 도둑을 잡아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그럼 기자는? 질문하는 것이 기자의 존재증명 방식이다. 그게 무시무시한 권력자건 파렴치한 범죄자건 취재 대상 앞에서 묻는 걸 멈춘다면 그는 더 이상 기자일 수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핵심적인 내용을 가장 잘 묻고, 상대로부터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끌어냈던 여성 기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인도의 간디, 중국의 등소평, 리비아의 카다피, 미국의 헨리 키신저 등이 그녀의 질문 앞에서 쩔쩔맸던 사람들. 한 명 예외 없이 세계적 거물임에도 팔라치의 질문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이런 걸 물으면 혹시 그들이 화내지 않을까’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없었다면 팔라치가 세기를 뛰어넘어 아직도 ‘기자의 한 전범(典範)’으로 기억될 까닭이 없다. 새롭게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김민석 의원의 과거와 관련된 껄끄러운 질문을 한 기자가 김민석과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터넷 공간에선 차마 입에 올리기조차 힘든 인신공격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 기자는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 기자란 묻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하는 사람이니. 대장장이가 칼을 만든다고 “그 칼에 의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왜 칼을 만드냐”고 질타하는 건 얼마나 무지한 짓인가. 기자에게 “왜 묻느냐”고 난리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6-18

고층 아파트와 멈춰 선 제철공장

포항의 스카이라인이 달라진다. 구도심이든 신도심이든 어디를 가도 고층 아파트가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분양홍보 현수막이 요란하고 카페 골목에는 젊은 얼굴들도 간간이 보인다. 겉보기에 포항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도시다. 그럼에도 발밑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최근 현대제철 포항 제2공장이 조업을 중단했다. 공장은 에너지 가격 상승과 수익성 악화 속에 멈추고 말았다. 지역고용에 직결되는데도 공장 가동중단은 너무도 조용히 이뤄졌고, 조업 재개의 기약은 오리무중이다. 이는 상징적이다. 철강산업으로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포항이 더 이상 과실을 누릴 수 없는 시대가 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스코라는 ‘산업수도’의 심장 외에도 현대제철이라는 대형 플레이어가 존재하던 포항의 산업 지형에 틈이 생긴 것이다. 포항은 너무 오랫동안 철강 한 우물만 파왔다. 철강으로 번 재정이 도시 인프라를 일으켰고 지역 대학과 병원, 학교와 상권을 지탱해 왔다. 지금은 글로벌 철강 수요가 꺾이고 탄소중립 규제는 산업 자체를 흔든다.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구조 전환전략은 수도권과 세종, 충청권에만 집중되는 양상이다. 현대제철의 침잠은 예사롭지 않다. 포항은 점점 ‘철강 다음’이 필요해지는 도시지만, 아직 그 해답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더욱 두려운 바는 도시의 인구구조다. 포항의 인구는 50만 아래로 떨어졌고 청년층의 유실이 멈추지 않는다. 교육과 일자리, 문화와 경제 인프라 모두가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지방 도시의 쇠퇴는 예정된 수순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신규아파트 단지는 속속 들어서고, 부동산 개발은 활기를 띤다. 산업이 줄어드는데, 왜 주거는 늘어나는가. 개발 논리의 비틀림에서 비롯된 현상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도시의 미래보다 눈앞의 단기수익에 매달리는 구조가 혹 아닐까. 철강산업이 위기를 맞았지만 도시는 분양가에 집착하고 부동산개발에 열을 올린다. 대학은 지역과의 소통이나 연계가 없고 청년대학생들은 수도권만 바라본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재명 정부는 지방의 균형발전과 혁신을 말하지만, 그 메시지가 지역의 현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역에서는 변함없이 정당 간 정치싸움과 예산 따내기 공방이 계속된다. 위기를 본질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지역의 위기를 ‘철강의 일시적 부진’으로만 여긴다면 더 큰 위기가 엄습할 터이다. 포항은 산업전환과 도시 재설계라는 이중과제 앞에 섰다. 철강을 넘어서는 산업기반을 어디까지 확보하고 유치할 것인지, 그 과정에서 지역의 대학과 기업의 역할은 무엇인지, 포항이 기른 청년들은 무엇을 할 것인지 진지한 계획과 협력, 실천과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관심과 투자에만 턱을 괴고 기다리는 시대는 끝났다. 지자체, 기업, 대학, 시민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할 또 한 가닥은 ‘삶의 질’이다. 청년이 지역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건 일자리만이 아니다. 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교육과 돌봄, 젊은 세대가 문화를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공간, 노년 세대가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이 도시의 경쟁력을 만든다. 포항은 여전히 가능성이 높은 도시다. 가능성을 미래가치로 만들려면 온 도시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장규열 고문

2025-06-18

다가온 우수기, 실효성 있는 대비가 필요하다

‘힌남노’가 포항을 휩쓴 지 2여 년. 그 상처는 여전히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오천읍 냉천의 범람으로 인명피해 10명, 재산피해 약 1조7000억, 기업피해 포스코 포함 92개 기업이 약 1조5000여억 원 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 끔찍했던 기억이 잊히기도 전에 또다시 올 우수기가 시작됐다. 포항은 태생적으로 침수에 취약한 도시다. 현재 시가지는 죽도·송도·대도·해도·상도 등 5개의 작은 모래섬 사이를 메워가며 형성됐다. 해수면과 고도차가 거의 없는 이 지형은 집중호우 시 배수가 지연되거나 역류가 발생하기 쉬운 조건이다. 여기에 국가하천인 형산강 하류와 동해에 접한 개방적 지형은 태풍과 집중호우가 겹치면 내륙과 해양 양쪽에서 물이 밀려드는 이중고를 초래하는 형태다. 포항시도 이에 대비는 해왔다. 현재 도심에 크고 작은 배수펌프장 14곳과 27개 간이펌프 시설을 운영 중이다. 환경부도 2022년 이후 포항을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으로 지정, 빗물펌프장 11개소 신ㆍ증설 총사업비 3557억 원을 투입하는 등 배수 능력 기준을 20~30년 빈도에서 50년 빈도로 상향(해당 사업은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마무리될 예정)시키고 있다. 수해 대비에 어마어마한 예산이 들어간다는 것은 포항의 침수 취약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현장 유지 상태가 허술하면 언제든지 위험 요소가 발생해 인재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시는 올해도 우수기 대비 하수관로 33km를 정비하고, 빗물받이 2만여 개 준설 등 우수기를 앞두고 대응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치는 그저 일의 총량일 뿐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직 포항에는 위험 현장이 수두룩하다. 형산빗물배수펌프장 경우는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전동기 1100마력 2대 등 배수 능력이 401만7600t/일(분당2790t)에 불과, 집중 호우 시 고장 나 잠시 멈추기라도 하면 일대가 물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야산 절취가 많은 KTX신도시를 포함한 대형 개발 현장 13곳에 대한 철저한 점검도 시급하다. 이곳은 장마철마다 반복되는 토사 유출과 임시 가설물 붕괴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지진으로 손상된 노후 하수관로는 우려스럽고 남구 일원, 오천읍, 학산지구 등의 지역은 하수 역류가 여전히 예상되고 있다. 특히 학산지구 도시침수예방사업은 우수저류시설, 배수펌프, 관로 정비 등 침수 저감 효과가 기대되는 프로젝트지만, 연계된 학산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일정 지연을 겪고 있으면서 수량의 유입·유출 수리 체계의 불균형이 생기면 일대 피해가 불가피하다. GIS DB를 활용한 침수 이력 지도 구축, 실시간 강우·수위 감지, 배수시설 자동 제어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기술 기반의 선제 대응 체계를 마련한 스마트 도시침수 시스템도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포항시는 현 상황에만 매몰되지 말고 국외의 침수 대응도 연구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도시 침수 저감을 위해 주택과 건물에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지연배수(遅延排水)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 이는 레인 가든, 빗물 저류 탱크, 침투 시설, 도시 저류 공간 등을 통해 빗물을 곧바로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머물게 하여 하수처리 부담을 줄이는 분산형 빗물 관리 방식이다. 도쿄도, 오사카시, 요코하마시 등은 이를 법제화하거나 설치비 보조, 개발 허가 기준 등으로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저영향개발(LID)’ 개념이 점차 확산되고 있으니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했으면 한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이상기후 변화에도 대비해야 할 것이다. 시는 지금까지 집중호우 시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빗물을 몇 년 빈도로 설계하여 통수단면을 확보해 왔다. 대형 펌프장 증설 등도 이에 근거, 강제 배수 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나 이상기후로 인한 폭우에는 대응이 역부족이다. 포항시는 지금까지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 예산을 동원해 침수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으며 현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수치와 실행계획, 실적 보고서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현장의 체감과 실효성일 것이다. 건축조례제정이나 제도개선을 통한 지연 배수 정책 등을 조속히 도입했으면 한다. 시민의 안전은 ‘대응’이 아니라 ‘예방’ 속에서 지켜져야 한다. 이 원칙이야말로 우수기를 맞은 지금, 가장 절실한 기준이다. 아직도 힌남노 태풍 피해에 대해선 인재냐, 자연재해냐를 놓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형사재판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민관이 잘 대응해서 이제는 그런 수준 이하의 논쟁이 사라졌으면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6-18

나에게 보내는 편지

엽서 한 통이 도착했다. 엽서에 적힌 날짜는 작년 이맘때, 손 글씨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주소도 이름도 나였지만 그 문장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내가 써 보낸 것이었다. 발신인도 수신인도 내 이름이었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조우했다. 간절곶, 바다를 마주한 그 끝자락에서 나는 나에게 편지를 썼다. 한 해가 지나 도착한 그 편지는 뜻밖에도 현재에 깊이 잠들어 버린 나의 본질적 자아를 깨워주었다. 결국은 오늘도 과거가 될 것이기에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써 내려가고 싶어졌다. 그 진심이 먼 훗날 또 나를 다시 일으킬 것임을 나는 알아간다. 살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사람들을 돌보며 사는 일이 내 삶의 한복판이 되어 있었다. 교회 교사로, 구역을 돌보는 일로, 가족의 울타리로, 일터의 누군가로 나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등을 밀고 다리를 붙잡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에게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나의 슬픔이나 지친 일상이 사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겨울, 간절곶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는 수식어처럼 나에게도 막연한 무언가가 새롭게 떠오르길 바랐다. 파도 소리에 마음을 씻으며 ‘소망 우체통’에 편지를 넣었다. 단단히 닫힌 붉은 우체통은 바람 앞에 묵묵히 서 있었고 나는 그 안에 나의 계획과 다짐,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나만이 체감하는 삶을 대하는 나의 존중, 약간의 불안함과 기대를 함께 밀어 넣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에서 ‘수오재기’를 썼다. ‘수오’는 ‘나를 지킨다’는 뜻이다.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글을 남긴 정약용. 나라에서 쫓겨 학문도 단절되고 명예도 무너진 자리에서 그는 다시 ‘나’를 세웠다. 그 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람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군자가 군자다울 수 있는 것도, 날마다 나를 살피는 데 있다.” 나를 세우는 편지는 나를 살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문장이 아닌, 세상에 보이기 위한 수사가 아닌, 그저 내 마음의 중심에 귀 기울이는 글. 그게 바로 1년 전 내가 나에게 쓴 편지였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편지는 내 손에서 계속 머물렀다. 읽고 또 읽으며 지금의 ‘나’가 본질적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충분히 허비하게 했다.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감정이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1년 전 나는 참 대견했구나.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았다고 적어 놓은 그 몇 줄이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만 같았다. ‘잘 살아내고 있구나’라고 나는 내게 말했다. 우체통이 보이는 바닷가에 앉아 나에게 편지를 쓰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맞았던 차가운 바람들이, 부서져 날아오던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들이, 편린처럼 다가와 지금의 나를 그곳에 앉혀 놓은 듯 했다. 나쁘지 않았다. 이따금은 나를 위해 편지를 써야겠다. 누구를 위한 위로도 중요하지만 나를 위한 위로는 더욱 절실하니까. 그리고 그 편지는 꼭 1년 후에 받아도 좋겠다. 시간을 두고 돌아온 문장은 내 삶을 한 발짝 떨어져 보게 하고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격려하게 한다. 편지는 삶이라는 바닷속에 흘려보낸 나날들을 거슬러 오르는 조용한 거울이 된다. 무심코 지나친 감정들, 스쳐버린 나의 얼굴을 다시 비추며 우리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잊고 살아가는지를 일깨운다. 시간이라는 발효를 거친 문장은 이제야 드러나는 마음의 결을 또렷이 보여주고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조용히 묻는다. 간절곶 바다 앞, 우체통을 다시 찾아갈 것이다. 붉은 철문을 여닫으며 조용히 나를 담아볼 것이다. 그리고 ‘수오재’처럼 나를 지키는 글을 한 줄씩 쓸 것이다. 편지는 언젠가 내게로 와서 내가 놓치고 지나온 마음들을 꺼내어 펼쳐 보인다. 그 속에 다짐보다 흔들림이 계획보다 숨결이 담겨 있어서 비로소 살아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편지는 과거의 내가 건넨 인사이며 미래의 나를 지켜내는 조용한 약속이 될 것이다. /작가

2025-06-17

세르비아, 상처만 남은 도시들 ①고도(古都) 스메데레보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동쪽을 향해 버스로 한 시간을 달리면 스메데레보가 나온다. 인구 7만 명이 채 되지 않은 도시지만, 베오그라드 지척에 있는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도나우강이 도심을 감싸며 흐르고, 낡은 석축성벽이 우뚝 솟아서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폭력의 역사를 서둘러 입을 연다. 로마제국 당시에는 로마 땅이었다가 오스만제국 시절에는 이슬람 땅이자 세르비아 수도 역할을 톡톡히 해낸 침탈과 아픔이 담긴 저력(?)의 도시다. 그리고 오스만과 헝가리 국경을 긋는 지리적 전략적 요충지였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군 긴 장화발이 장악하면서 하켄크로이츠 폭력을 온 몸으로 맞아야 했다. 인간의 능력은 창조와 건설에 발휘되지만, 모방과 파괴에 더욱 뛰어난 재능을 자랑한다. 이 도시를 찾는 사람은 주로 낡아 초라하기까지 한 스메데레보의 성을 보기 위해서다. 도나우강과 사바강 합류 지점에 서 있는 베오그라드 칼레메그단처럼 도나우강과 스메데레보 도심을 관통하는 예자바강 사이 두물머리, 혹은 합수머리에 버티고 있어 사람들은 ‘물 위의 성’이라고 부른다. 성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차역을 지나야 했다. 성 입구 허물어져가는 성벽과 마치 띠처럼 어울리는, 언제부턴가 멈춘 녹슨 열차의 처연한 모습은 시공을 뛰어넘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스메데레보성은 1430년 무렵 세르비아공국 군주 브란코비치 명에 의해 세워졌다. 물론 장기간 공성에 대비한 수성의 역할이 성 내부 곳곳에서 어렴풋이 나타난다. 성벽 두께 2m, 한눈에 보아도 콘스탄티노플 성벽을 본뜬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진 비잔티움 스타일이다. 25m 높이 망루(성 전체에 25개의 망루가 있었다고 함), 우물, 화장실, 마구간, 계급과 신분의 차에 따라 거처의 높낮이 차이도 애써 찾아보았다. 한 곳에서 알게 모르게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다만, 지원금이 딸려서인지 급할 것이 없는 모습이다. 세월에 허물어지고, 인간에 의해 파괴되고, 원형은 상상으로도 거의 불가능하니 입체 그림을 그려내는 소프트웨어 성능도 딸리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에서 무척 드물게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라니 할 말을 잊는다. 관광객 낙서에 온몸을 그대로 맡기는 구간도 있다. 우리나라 청잣빛 하늘을 닮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며 마음을 풀어 놓고 그야말로 멍 때리기에 좋은 곳이다. 그러나 늘 시간을 급조해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은 형태를 잃어버린 채 서 있는 성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에 바빴다. 돌계단과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듯한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전쟁의 화급함을 상상했다. 아비규환 속 절규도 그렸다. 그러다 좁은 아치형 통로를 몇 개 돌아서자 탁 트인 망루에 이방인이 올라서 있었다. 건너편 도나우강을 바라보는 망루가 외성(外城)의 존재를 알렸다. 독일 남부 산악지방에서 발원해 흑해로 흘러드는 물길 그 아랫부분에 속하는 스메데레보 도나우강은 그래서 더 넓고 잔잔하며, 한적하기까지 하다. 다분히 세월에 삭아 내린 성채와 고색창연하게 어울리며 장엄하기까지 했다. 허물어지는 성벽 아래를 걷는 젊은 아낙과 조막만한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해맑은 아이 얼굴을 바라보며 동방의 수도자 글이 생각났다. “네가 무한한 사랑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신의 은총을 입은 순간에 잊지 말아야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이방인에게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역시 낯선 곳에서 먹거리다. 스메데레보성, 길차길옆 작은 식당, 낡은 비닐조각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구분하고 있었지만, 그곳에 머리를 숙인 채 우연히 들어서서 맛본, 메뉴판을 들고서도 도무지 이름을 읽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빵과 빵 사이에 두께 2cm 됨직한 다진 쇠고기를 넣고 토마토를 비롯해 양파 등 채소가 가득 들었다. 우리나라 햄버그와는 맛은 물론, 크기에 있어서도 비교가 안 된다. 대․중․소가 있어 가장 작은 것을 주문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한 크기라서 실수로 잘못 나온 줄 알았다. 인근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이란다. 포장해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넌지시 분주하기 짝이 없는 주방을 훔쳐보다가 깜짝 놀랐다. 훈제불판에서 익어가는 고기 중 가장 큰 것이 우리나라 개다리소반 너비만 했다. 콜라와 곁들여 먹는 맛 또한 일품이다. 사이사이 구멍이 숭숭 뚫린 부드럽고 촉촉한 빵과 잘 구워진 다진 고기가 잘 어울렸다. 때마침 참새 두 마리가 나눠먹자며 교대로 식탁에 앉는다. 저 쪼끄만 참새조차도 제 눈에는 낯선 이방인 생김이 만만한 게다. 공원 의자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캔 음료를 마시는 노인들의 주름진 얼굴에 인생의 황혼에서 맛보는 여유를 보았다. 따스한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조는 할아버지 옆에 앉아 말을 거는 할머니 모습은 이보다 행복한 표정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저들에 의해 폭력이 생산되고, 폭력에 오롯이 노출된 과거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스토리텔링 작가

2025-06-17

신뢰는 경영의 전부다

신뢰와 경영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신뢰는 조직의 성과, 혁신, 협업, 지속 가능성 등에 핵심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뢰는 경영의 모든 기반이 되며, 조직은 상호 믿음과 배려, 존중하는 문화가 되면 신뢰 경영이 된다. 신뢰가 높은 조직은 불필요한 확인 절차와 감시가 줄어들어 의사결정과 실행이 빨라진다. 서로 믿고 협력하므로 부서 간, 개인 간 장벽이 낮아지고, 협력 촉진으로 시너지가 창출된다. 리더가 신뢰를 받으면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따르고 몰입한다. 신뢰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조직 구성원이 리더와 조직의 의도를 신뢰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수용성이 증가한다. 또한 신뢰는 직원의 창의성, 도전 정신, 책임감 등을 자극하는 성과와 혁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신뢰 경영의 핵심 요소는 정직과 일관성이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고, 원칙을 지키며 일관된 기준을 유지하는 일이다. 정보의 공유, 결정 과정의 공개, 열린 피드백의 문화 조성 등 투명한 소통이 신뢰와 건강한 조직을 만들어 간다. 인사, 보상, 평가가 객관적이고 신뢰받을 수 있는 기준을 기반으로 공정한 시스템 운영이 필요하다. 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수용하는 경청과 존중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실수나 제안이 비난 받지 않는 환경 조성과 창의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 확보가 필요하다. 리더는 솔선수범하며 책임지고, 실패 시 변명보다 책임지는 태도를 보임으로서 신뢰받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고객, 직원, 협력사와 단기성과보다 장기적 관계 지향형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조직에 신뢰가 무너지면, 구성원들이 진심을 숨기고, 방어적이며,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소통이 단절된다. 책임 소재를 회피하고 실수 은폐 및 책임 전가가 빈번해진다. 신뢰가 없는 조직은 만족도가 낮아 우수 인재가 떠나고,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노력만 하여 적극적인 참여가 줄어 저성과가 고착된다. 조직 내 이익을 위한 눈치 보기와 줄서기로 내부 갈등 및 정치화 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필자가, 김포에 있는 대형 송유관 제조 중소기업을 컨설팅 할 때 일이다. 아버지 창업주와 아들 생산 이사와 불신의 관계가 깊어 조직과 일에 불균형이 일어난다. 아들은 주차장에 아버지 차가 보이면 돌아가 버리는 소통의 부재였다. 하부 조직 라인과 임원 층에서도 눈치 보는 문화가 팽배하고, 모든 일의 정보와 의사 결정 과정이 순탄하지 못하여 시너지 창출은 요원한 것이다. 종합 진단을 통해 회사의 방향을 설정하고, 경영 목표, 전략, 실행계획, 운영 제도, 조직 역할 등 혁신활동을 체계화 하고, 생산 전무를 중심으로 의사결정 라인을 정립하며 불협화음을 줄여 나갔다. 대형 배관 제조업체 특성에 맞게 용접 등 주요 용역 업체 대표를 포함하는 협의체를 운영하며, 조직의 불협화음을 줄이고, 의사 결정의 효율성을 높여 나갔다. 부자(父子) 간의 인간적 신뢰는 한계가 있지만 회사 일의 추진과 의사 결정 상의 문제는 해소되었다. 조직 운영에 기본은 신뢰이고, 신뢰가 없는 경영은 한 순간에 무너진다. 좋은 기업을 향한 신뢰는 경영의 전부인 것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6-17

소월의 ‘진달래꽃’ 시집 발간 100주년

시원한 그늘을 즐겨 찾게 되는 계절이다. 어디선가 풀피리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먼 곳의 뻐꾸기 울음소리는 드문드문 한가함의 여운을 더하는 것 같다. 바람결에 흘러가는 구름은 유유자적 시를 쓰는가 하면, 나날이 벼려지는 햇살에 무성해지는 풀과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초록의 시편을 엮어내는 것 같다. 유월의 자연현상 그대로가 시의 여울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자연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시의 행간을 거니는 것처럼 보인다. 초목에서 뿜어지는 향긋한 냄새며 새들의 지저귐과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등을 가만히 듣거나 보고 있노라면 자연과 바람이 전하는 시의 운율과 리듬에 아늑히 젖어드는 것 같다. 마치 들판이나 산 속에서 잠을 자다 보면 자연의 아늑함과 편안함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잠의 맛’이 달라지듯이, 자연에서 머무는 그 자체가 힐링이고 위안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자연은 시의 보고(寶庫)이며 예술의 총본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시는 ‘영혼을 치유해주는 약’처럼 현실의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따스한 위로와 치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발행된 지 올해 100주년을 맞게 됐다. 김소월 시인이 생전에 발간한 유일한 시집으로 대표적인 ‘진달래꽃’을 비롯해 ‘먼 후일’, ‘산유화’, ‘초혼’, ‘왕십리’, ‘개여울’,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등 많은 수작 127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 땅에 최초의 자유시가 나온 지 약 106년쯤 되고 보면 외국에 비해서 그다지 역사가 깊은 편은 아니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초창기부터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며 창작의 열기가 퍼져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김소월 시인은 우리의 한글을 가장 아름답고 맛깔스럽게 표현해서 암흑의 시대를 그리움의 언어로 위로해 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진달래꽃’은 한스러운 민족 정서를 민요 가락과 민중의 일상어로 표현해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한국 현대시를 꽃 피운 기적과도 같은 시집이며, 한국 근대 시문학사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점이 인정돼 2011년 ‘진달래꽃’ 2종 4권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기도 했다. 일반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100년 전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 복각본(復刻本)이 서울의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한글 맞춤법, 활자, 세로쓰기 등이 현재와는 판이하지만, 손 안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초판 그대로의 완벽한 복간으로 최고의 선본(善本)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에 발맞춰 (사)일월문화원과 ‘시뜨락’에서는 복각본 편저자를 다음 주 포항으로 초청해 김소월 주제의 특별강연과 김소월 시 초판 원본으로 낭송하기, 시극 공연, 독자와의 대화 등의 시낭송 북콘서트를 풍성하게 준비하고 있어서 벌써부터 주목된다. 나라를 빼앗긴 깊고 무거운 어둠의 시대를 가볍고 찬란한 빛으로 바꿔준 김소월의 아름답고 맛있는 시편들로, 고단한 일상의 위로와 메마른 감성을 적셔주는 치유의 공감을 더해 ‘진달래꽃’ 발간 100주년 의의가 되새겨지길 기대해 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6-17

과잉 관광

최근 오버투어리즘(Over Tourism)으로 불리는 과잉 관광이 유럽 남부지역 등지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5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약 1000여 명의 시민들이 도심 고급 상점가에서 바르셀로나를 찾은 관광객에게 물총을 쏘고 “관광객은 집으로 가라”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바르셀로나는 인구 160만명의 도시이나 지난해 경우 26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해 현지 주민들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주고 있다는 것이 시위 이유다. 관광객의 과잉 유입으로 물가가 오르고 교통 혼잡이나 주차난 등 현지 주민들이 겪는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스페인의 다른 관광지 그라나다와 이탈리아 나폴리, 베네치아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시위가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도시마다 많은 관광객의 방문으로 도시 인프라를 늘려야 하는 부담이 생기고 문화유산 훼손이나 상업화 경향 등 사회 문제가 곧잘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항구에 입항하는 크루즈선을 현재 190척에서 내년까지 100척으로 줄이기로 했다. 무분별한 관광객 유입에 따른 해양 오염을 막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라 한다. 관광산업 진작을 위해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배부른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한편으로 과잉으로 유입된 관광객이 유발하는 각종 공해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와 서울 북촌한옥마을,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 일부 지역에서 과잉 관광의 부작용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러나 관광을 국가 주요 산업으로 삼으려는 우리나라에선 아직은 과잉 관광은 낯선 풍경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6-17

장·차관 국민추천제, 성과낼 수 있을까

이재명 정부 장·차관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한 가운데 대통령실은 그저께(16일) 고위급 공직 후보자에 대한 국민추천제(‘진짜 일꾼찾기 프로젝트’) 시행 현황과 관련해 “15일까지 7만4000여 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프로젝트 추진 한 주 만이다. 추천자리는 직위별(정무직, 개방형 직위, 공공기관장 및 임원, 정부위원회 위원 등), 전문분야(31개)별로 나눠져 있으며, 본인 추천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한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기존의 밀실인사나 낙하산인사 등 각종 인사 논란을 피하고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인사제도라는 점에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인기투표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누군가를 앉히는 데 명분을 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프로젝트 시행 첫날에는 법무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검찰총장 추천이 가장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일부 정치인은 ‘셀프 추천’을 해 눈총을 받았다. SNS에 게시된 흥미있는 정부 부처별 추천케이스를 보면,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에 아이유, 봉준호, 유재석 등 유명 인사가 추천됐고, 방송통신위원장에 진보 진영 지지를 받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추천됐다. ‘환자 중심 의료개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새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한 추천도 많았다. 부산시의사회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을 장관 후보로 추천하면서 “의료 최전선의 외상외과학 교수로서 뛰어난 전문성과 헌신을 보였고, 군인으로서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남다른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해왔다”는 사유를 밝혔다. 검찰총장에는 ‘검찰개혁’을 주장해온 임은정 부장검사 추천도 올라왔다. 임 부장검사는 자신의 SNS에 “법무부와 검찰을 바로 세워달라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 추천에 담긴 기대와 열망이 무겁고 뭉클하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일부 누리꾼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부정선거를 주장해온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선거관리위원장에 추천했다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장·차관 국민추천 프로젝트는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도 시도를 했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에도 정부 고위직 인사를 희화화하는 창구가 되거나, 공직 인사가 업무 역량이 아닌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었다.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SNS에 ‘국민추천제가 인기투표냐’는 글이 다수 올라오는 것에 대해 “인기투표가 아니다. 추천 횟수는 참고사항”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국민 추천제를 통해 접수된 국민 추천 인사 명단은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을 거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인사 검증과 공개 검증 절차를 밟는다. ‘인사는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 인사풀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흩어진 인재를 국민추천으로 발탁하는 제도는 긍정적인 발상이다. 이번에 추천된 다양한 인사를 어떻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느냐에 따라 새 정부의 역량이 달라질 수 있다. /논설위원

2025-06-17

조상 묘 깎고 도로를 내버린 영덕국유림관리소

영덕군 병곡면 산골 마을 한쪽에 수십 년을 자리를 지켜온 조상의 묘가 어느 날 사라졌다. 국유림을 가로질러 낸 임도 공사 때문이었다. 공사를 진행한 기관은 영덕국유림관리소와 영덕군산림조합이다. 이들은 “묘지의 존재를 몰랐다”며 유족에게는 150만 원의 보상금을 제안했다. 하지만 묘 하나를 없애는 일은 단순히 ‘땅’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가문이 세대에 걸쳐 지켜온 기억, 정체성, 그리고 뿌리를 파괴하는 행위다. 수십 년간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던 묘소를 국가기관이 몰랐다면 그것은 무능이고, 알고도 무시했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어느 쪽이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해당 관청은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법적 정당성이 아니다. 그 절차가 과연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가, 공동체를 존중했는가이다. 국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효율이 아니라, 사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가족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당장의 피해자는 해당 유족일지 몰라도 내일은 우리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한 번 무너진 공권력의 윤리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그 피해는 특정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국가는 도로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사람의 기억과 역사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 조상의 묘를 파헤치고도 “몰랐다”는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다면 그런 사회는 결국 공동체도, 역사도 지켜내지 못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상이 아니다. 책임 있는 공식 사과, 관련자 문책,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이 사안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영덕국유림관리소 입장에선 사라진 것이 묘소가 있던 땅 한 평이지 몰라도 그곳에는 유족들의 각가지 사연과 추억과 기억, 그리고 유구한 시간이 얽혀 있다. 우리들은 수천여년을 그런 인연을 통해 기대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뿌리이기도 하다. 사소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아껴주는 그런 국가기관을 옆에 두고 싶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6-17

불길 속 숨겨진 방패, 방화문 닫기로 안전한 일상을 지키자

포항의 밤하늘 아래, 불빛이 반짝이는 도시. 그러나 그 빛나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위협이 우리의 일상을 노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재’라는 이름의 재앙이다. 이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한 간단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방화문 닫기’이다. 방화문은 단순한 문이 아니다. 그것은 불길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든든한 방패이며, 연기와 유독가스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생명의 울타리와 같다. 화재 발생 시 닫힌 방화문은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현저히 늦추고, 피난 시간을 확보해 준다. 이는 곧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방화문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벽 이상의 역할을 한다. 화재 발생 시, 고온의 열과 연기가 빠르게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설계된 방화문은 특정 시간 동안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며 불길을 차단한다. 일반적으로 30분에서 1시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내화 성능을 갖추고 있으며, 이는 건물 내 사람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특히, 방화문에는 단열재가 내장되어 있어 열전도를 막아주고, 문 주변의 틈새를 최소화하기 위한 실링 기술이 적용돼 있다. 이러한 기술적 특성 덕분에 방화문은 화재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며, 인접 공간으로의 연기 유입을 방지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방화문의 역할을 ‘비상 탈출구’라고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히려 열어두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혹은 방화문 닫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문을 열어둔 채로 방치하거나 평상시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는 화재 발생 시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방화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거나 손상되어 있다면, 그 효과는 급격히 떨어진다. 우리는 ‘방화문 닫기는 안전의 시작’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화재 예방의 첫걸음이며, 우리가 매일 실천해야 할 작은 습관이다. 또한, 방화문이 잘 설치돼 있더라도 방화문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점검이 필수다. 도어클로저는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거나 오작동할 가능성이 있어, 주기적으로 문이 잘 닫히는지, 완전히 밀폐되는지 확인하고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문틀이나 바닥에 장애물이 없는지 살펴보는 작은 관심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방화문에 부착된 각종 표지와 비상등 역시 화재 발생 시 대피에 혼선을 주진 않는지 섬세한 확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은 실천이 모일 때 큰 화재를 막는 힘이 된다. 방화문 닫기는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이며,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보호하는 소중한 습관이다. 화재는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우리가 미리 준비하고 예방한다면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방화문 닫기를 실천해 안전한 일상을 만들어가자. ‘방화문 닫기’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 행동이 우리 모두에게 안전한 내일을 선사할 것이다. 방화문을 닫는 작은 행동의 실천 하나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일상을 지켜나가길 바란다. 안전한 내일을 위해 지금 이 순간부터 바로 방화문 닫기를 실천하자.

2025-06-16

6월, 대전리에서

6월의 시원한 바닷바람에 태극기가 대문마다 펄럭인다. 송라면 대전1리다. 업무차 왔다. 포항에 오래 살면서도 여태 이 마을을 찾지 못했다. 일이 생겨서야 왔다고 생각하니 지역 역사에 무심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3‧1운동 때, 이곳 대전리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은 전에 문학 모임에서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말로 들었던 나는 별 관심 두지 않았었다. 헌법 전문에 들어갈 정도로 우리 역사에 큰 이정표를 남긴, 민족의 독립운동을 먼 과거의 일로 가벼이 여기고 만 것이다. 가만히 “3‧1운동과 6월···.”이라고 되뇌어본다. 1919년 3월 1일. 경술국치 후 일제강점기 10년 차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나라를 빼앗긴 국민이 분연히 일어나 ‘대한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곧, 외세 지배에 대한 한민족 공동체의 자생적 항거였다. 한편, ‘6월’을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민족 최대의 비극 6‧25다. 하늘은 왜 민족상잔의 6월에 내가 대전리를 찾게 하였을까. 포항시 자료에 따르면 대전리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12일 포항면 여천장터(현 육거리 일대) 만세운동에 이어, 3월 22일 청하장터, 3월 27일 대전리 두곡 숲으로 이어졌다. 또, 4월 1일 연일, 동해, 장기, 오천, 대송, 4월 2일 기계, 죽장, 신광, 청하, 송라, 흥해로 확산이 되었다. 참가 연인원 2,900명, 사망자 40명, 부상자 380명, 피검자 320명이나 되는 큰 만세운동이었다. 대전리에는 ‘대전 3‧1의거 기념비’와 ‘포항 만세촌 대전 3‧1의거 기념관’과 대동수(大東數)라 불리는 두곡숲이 있다. 기념관에는 ‘대전 14인 3‧1 의사’들의 넋이 숨 쉬는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 시골 마을에서 14명의 3‧1 의사가 나온 것은 투철한 독립정신, ‘대전리 3‧1정신’의 발로였을 터다. 3‧1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1945년 8‧15해방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외세에 힘입은 불완전한 해방이었기에 나라가 남북으로 갈리는 비운도 맞았다. 그 와중에 남한은 1948년 7월 12일 헌법을 제정, 공포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탄생시켰다. 북한은 소련식 공산주의 체제로 되어, 민족 분단 역사를 만들고 말았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25 한국 전쟁의 달이기 때문일 테다. 나무위키의 6‧25전쟁 자료에는, 한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가 전사 17만8569명, 부상 55만5022명, 실종, 포로 4만1769명이다. 또, 북한과 중공군 인명피해 112만5000명, 남한 민간인 99만978명, 북한 민간인 150만 명, 기타 피난민 240만여 명, 미망인 20만여 명, 고아 10만여 명에 이른다. 너무 크나큰 비극이다. 집집에 태극기를 달고 이어온 ‘대전리 3‧1 정신’은, ‘6‧25의 달 6월’에다 무엇을 말해줄까. 이렇게 말하리라. “6월이여, 그대는 외세 소련 공산주의 체제를 끌어들여 민족 최대의 동족상잔 6‧25 비극을 만든 달이지 않나. 그러니, 그대 유월이여! 이제부터라도 대전리 3‧1정신을 본받아 핵무기도, 내부 체제전쟁도 바로 없애고 민족 공존공영의 길로 나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네. 꼭, 그리하기를 비네!···.” /강길수 수필가

2025-06-16

제사에 관한 에피소드

오래전 일이다. 친동생처럼 지냈던 경남에 살고 있는 후배 부부가 갑자기 찾아왔다. 용건은 간단했다. 부부의 고민 사항이 하나 있는데, 나에게 그 답을 구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부부 사이의 고민 사항이라는 게 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동생 부부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의외였다.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요?” 듣고 나서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이혼 상담보다 더 심각한 부부의 분위기가 나의 웃음을 안으로 들이키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지난 세월 제사로 얼룩진 동생 가족의 일상이 그려졌다. 나의 답변에 따라 한쪽은 완전하게 패배하는 그런 순간이었다. 나는 부부에게 두 가지 요구조건을 걸었다. 위대한(?) 답변에 대한 나름의 대가를 요구한 셈이었다. 제사에 대하여 일찍이 결론을 내고 있었던 나의 입장도 있었지만, 나의 답변으로 인하여 한쪽이 입게 될 상처가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첫째, 나의 답변대로 실천할 것, 둘째, 이 결정으로 인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어떠한 원망도 하지 않을 것. 부부는 맹세하였다. 답변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겠노라고. 절대 상대를 원망하지 않겠노라고. “지금 이 순간부터 제사는 지내지 마라” 그때, 동생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제수씨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스쳤던 걸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평소 완고한 성격의 동생은 자신의 완전한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답을 구한 상대가 왜 나였는지, 무슨 연유로 제사의 생사를 결정하려고 하였는지의 사연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제사에 대한 위대한 대화가 있다. 최시형과 손병희 사이에서 주고받은 대화이다. 의암이 물었다. “스승님 제사란 무엇인가요?” 해월이 답하였다. “위패를 너 자신을 행하게 하는 것” 즉 제사는 자신을 위해 지내는 것이라는 통찰이 담긴 대화이다. 나에게 있어 제사라는 단어는 옛말이다. 나는 매일 제사를 지내고 있으므로 따로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다. 제사는, ‘조상이 후손에게 바라는 그 무엇을 실천하는 행위 자체’라고 생각한다. 위패를 자신을 향하게 한다는 것은,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되어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하에 더 잘 살아가기를 스스로 다짐하라는 뜻이 아닐까. 제사를 고집하는 사람의 내면세계에는 욕망과 집착 및 권위라는 달갑지 않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할 가능성이 많다. 제사는 오래된 잘못된 문화라 생각한다, 늦었지만 과감히 제사상을 치우자. 진정한 제사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천 번의 제사보다, 한 번의 가족 나들이가 나으리라. 동생 부부가 하동으로 내려간 이후 지금까지 계란이 끊이질 않는다. 답변에 대한 실천의 징표이기도 하지만, 실천 이상으로 얻은 것이 있다는 뜻이리라. 인문학당 도반 한 분이 나에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질문한 적이 있다. 깨달음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굳이 깨닫고 싶다면 그냥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 나의 답이었다. 단지 하지 않음으로써, 삶의 많은 부분에서 도에 이를 수 있다. 술 담배 끊으면 되고, 싸우지 않으면 되고, 화내지 않으면 된다. 제사! 일러 무삼하리요. /공봉학 변호사

2025-06-16

서두르지 않는다

내가 관여하는 한 학회에 아주 오랫동안 활동을 영상 기록으로 담아오는 선생님이 계시다. 봄이 무르익은 어느 날, 인사동 하고도 선천(宣川)이라, 평안북도 지명을 딴 곳에서 어려운 학회를 지원해준 원로 어른들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다. 그날도 역시 이 선생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을 해주셨다. 내가 이 학회에 관여하며 일해온 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보아온 모습이셨다. 국문학계, 거기서 현대문학 쪽에는 학회들이 많다. 작가 이름을 딴 학회도 많고, 주제나 영역을 가리키는 이름을 가진 곳도 많다. 어떤 학회는 그 연구 대상 작가의 이름이 아직 높지 않아서 고생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회는 첨예해서 논쟁이나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일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돈으로 보상받기도 어렵고 많은 이들의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남들 안 하는 궂은일을 계속해 나가기란 극난하다. 점심 자리가 파하고 선천 대문 앞에 나가 사진들을 찍었다. 사진 찍는 어른들 모습을 보니 그 십여 년 사이에 많이도 변하셨다. 몸이 눈에 띄게 불편해지신 분들도 계시다. 이곳 인사동 골목과 선천의 연륜만큼 오래 버티고 서 오신 분들인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하기에 이 어른들의 한 가지 모습 있어, 그것은 한결같다는 것, 변하지 않고 계속해 나가신다는 것이다. 사진 찍는 일도 끝나자 이제 차담(茶談)을 나눌 차례다. 나는 이쯤에서 다른 일을 위해 떠나야 한다. 어른들이 골목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들 가시고, 이제 선천 앞 공터에는 촬영하시는 선생님과 나만 남았다. 장비를 정리하시는 선생님께 다가가 여쭈어본다. ―요즘 세상이 참 어지럽지요? 늘 고생하시는 선생님께 친밀감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었다. ―글쎄요. 세상에는 나 모르는 원리나 메커니즘이 있는 것 같아요. 오래,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래. 그걸 내가 바꿀 수는 없는 것 같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지요. 선생님은 한 번도 당신이 하시는 일에 어려움을 호소하거나 불평을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오늘 시국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고 있던 한 분의 보석이 허가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열흘 남짓만 있으면 벌써 6개월이 흐르고 그러면 자동으로 구속 취소가 되어 나오게 된다 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흐른 것이었다. 지난 사나흘 사이에는 저 멀리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해서 군 수뇌부들, 핵 과학자들이 죽고, 핵시설과 유전이 파괴되었다 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도 상황이 무척이나 뒤바뀐 듯도 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은 ‘나비효과’도 아니어서 내일의 이곳이 변화할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세상을 걱정하는 선배 한 분이 전화를 하셨다. ―이제 세상은 우리 손을 떠난 것 같아. 요즘 벌어지는 일들을 보니 그래. 가만히 우리 할 일 하며 때가 어떻게 오는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해. 딴은 그렇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세계를 움직이는 크나큰 원리며 메커니즘의 하나로서 나타난 것이리라. 이 작은 개체의 생각과 눈으로 보이지 ‘바람’을 다 헤아리랴. 서두르지 않는다. 기다린다. 내 일을 버리지 않는다. 그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6-16

일본의 쌀값 폭등이 던진 화두

1918년 일본 도야마(富山)현에서 ‘쌀 소동’이 일어났다. 1차 세계대전 말기 전시(戰時)동원 체제에서 군량미 수매를 시작한 후 쌀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농민·시민이 대규모 폭동에 가담해 약 6만 건의 시위가 발생하고 2만5천명이 체포됐다. 이 사건은 당시 내각 수반인 테라우치가 사퇴하면서 겨우 일단락 됐다. 1세기가 지난 현재 일본에서 다시 쌀값 폭등이 일본 열도를 강타하고 있다. 도심 쇼핑몰에서 쌀을 사기위해 오픈-런을 하는 장면은 자체로 충격이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서 일어난 이런 유통 왜곡 현상은 우리의 평안한 일상이 언제든지 거두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폭염으로 인한 흉작, 지나친 감산(減産)정책, 관광객 증가로 인한 쌀 소비 급증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지만 전문가들은 유통 구조 왜곡과 도매상들의 사재기를 이유로 들고 있다. 쌀 과잉생산, 정책·보조금·직불금 확대에 농촌 고령화까지 우리 농업현실이 일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제 우리도 쌀값 폭등 같은 유통 대란이 일어날지 모르고, 군사적 긴장 수위가 높은 우리 지형에서 그 파장은 상상 이상이 될 수 있다. ‘In the East rice is more than just food.’ 격언처럼 동양에서 쌀은 식품 이상의 대상이다. 쌀은 자체로 인문학적 ‘양식’인데다 쓰기에 따라 안보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 사태를 계기로 한국 역시 농정 체질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농민을 규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식량 안보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밥상에 올라오는 한 공기 밥을 단순한 ‘식품’이 아닌 ‘국가 자산’으로 바라보는 것, 일본 쌀값 소동이 우리에게 준 교훈이다. /한상갑(경북부 에디터)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