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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동전쟁 100일의 교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공습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이 지난 7일로 100일을 맞았다. 100일을 맞은 중동전쟁의 앞날에 대해 언론과 외교가에선 휴전보다는 전쟁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과 이란은 종전을 위한 합의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며 “무력 충돌로 인해 휴전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 전했다. 군사 전문가들도 휴전 국면 속에서 발생하는 산발적 공습과 교전이 전면전으로 재발할 위험이 높다고 전망한다. 전쟁 발발 100일 동안 중동 전역의 누적 사망자는 7000명을 넘었다. 부상자 수도 4만여 명이다. 경제적 충격 또한 심각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하루 100여척이 다니던 선박이 현재는 다니는 배를 구경하기 힘들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가격은 전쟁 전 배럴당 67달러였으나 현재는 97달러로 급등했다. 전쟁이 재발할 경우 150달러까지 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 문제나 이란에 대한 핵 프로그램 견제 등이 향후 회담을 무산시킬 위험 요소로 손꼽는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중동전쟁을 보면서 만약 이곳에서 또다시 전쟁이 재개된다면 그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안타깝다. 4년이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라 재건비용만 약 77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수십만 명의 젊은이의 안타까운 목숨들이 희생됐다. 전쟁의 깊은 상흔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종식 기미가 없다. 100일을 맞은 중동전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깨달아야 할까. 많은 반면교사 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를 꼽으면 자강불식(自强不息)이다. 스스로 강해지려는 부단한 노력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6-09

오세훈·한동훈 ‘보수재건’에 TK 역할은?

10일 열리는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거는 당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당권파나 쇄신파 중 누가 원내 사령탑에 오르느냐에 따라 당 색깔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원내대표 후보 중 김도읍(부산 강서)·성일종(충남 서산시·태안군)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 패배에 장동혁 대표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당권파인 정점식(경남 통영시·고성군) 의원은 “당이 분열돼선 안 된다”며 장 대표 책임론에 반대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민의힘은 다시 계파 간 내홍에 휘말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현재 국민의힘 당권파와 비주류는 이번 선거결과를 두고 전혀 다른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친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는 “당 지도부가 6·3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당 지도부는 광역단체장 4곳에서 승리한 걸 두고 “희망의 불씨를 지켜냈다”며 자화자찬하고 있다. 다만 당 주류 일각에서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정확하게 읽어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송언석(김천)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국민의 뜻을 받들어 우리 당에도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며 원내대표직을 조기 사퇴했다. 송 원내대표의 ‘새 출발’ 발언은 누가 들어도 당 지도부 일선 후퇴를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어느 정당이든 지방선거나 총선에서 패배할 경우, 지도부가 즉시 사퇴하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번 선거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드라마 같은 막판 역전승으로 ‘정부 경제론’의 구심점이 됐으며, 차기 보수진영 리더로서의 존재감도 확인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장동혁 2선 후퇴’를 외치며 ‘절윤’을 머뭇거리는 당과 철저히 거리를 뒀다. 대신 유승민 전 의원이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과 함께하며 개혁보수 이미지로 선거를 치렀다. 당내 친윤계가 주도한 ‘제명’의 치욕을 딛고 무소속 신화를 쓴 한동훈 의원 역시 선거운동 내내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며 ‘보수 재건’을 외쳤다. 연고도 없는 부산, 그것도 민주당 우세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싸움꾼’ ‘강남’ 이미지를 탈피했다. 한 의원은 당선 직후 “당권파들이 보이는 언행들은 보수 정당이 가져온 품격이나 실력에 맞지 않다. 이제는 좀 반성하고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명백하게 드러난 ‘보수재건 민심’을 장 대표가 언제까지 묵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장동혁 거리 두기’로 승리한 오세훈, 장동혁에 의해 제명된 한동훈, 당 도움 없이 외롭게 싸워 당선된 유의동(경기 평택을)의 승리는 장동혁 체제로는 더는 당의 존속이 어렵다는 것을 민심이 말해주는 것이다. 당의 리더십 변화와 혁신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 때 ‘보수 심장’을 자처하는 TK지역 중진의원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TK 중진들이 당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차기 총선에 대비해 당의 ‘활로(活路)’를 찾아야 한다. 2028년 총선에서도 국민의힘이 내란정당 이미지를 가지고 선거를 치를 수는 없지 않은가.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6-06-09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 조성을 제안하다(하)

지금 경북 역시 비슷한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대표 산업도시 구미에서는 휴대폰 생산 중심이 베트남으로 이동했고, 디스플레이 산업은 파주 등 수도권으로 옮겨갔다. 포항은 수소환원제철과 이차전지 소재 등으로 산업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만, 도시 하나의 힘만으로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제조업 기반은 이미 충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구미를 한국의 피츠버그로 설정하고, 경북도가 펜실베이니아 주정부 같은 광역 전략 조정자 역할을 수행한다면 새로운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 경북은 구미의 기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신산업을 유치하는 동시에, 그 효과를 포항, 안동, 경산, 김천, 영천, 문경, 상주 등 주변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경북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산업도시”, “하나의 산업시장”으로 재편할 수 있다. 행정구역은 나뉘어 있지만, 산업적으로 하나의 유기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미래 경쟁력은 단순 생산량 증가가 아니라 연계와 융합을 통한 산업 전환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경북에는 이미 강력한 산업 자산이 있다. 포항 철강·신소재, 구미 전자·반도체·AI 제조기술, 경산 대학·연구개발 기반, 안동 바이오·백신 산업, 김천 물류·교통 인프라, 영천 항공·부품 산업 등은 각각 독립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은 이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도시별 산업 자산을 연결해 하나의 생태계로 작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포항 철강·신소재와 구미 전자·반도체·AI 제조기술을 단순 병렬로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 공급망, 시제품 제작, 인증, 데이터 플랫폼, 투자·금융 기능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과 인프라, 인재가 집적되며 규모의 경제가 발생한다. 동시에 서로 다른 산업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제품, 서비스, 시장을 만드는 범위의 경제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포항 신소재가 구미 첨단 제조공정과 결합하고, 경산 연구개발 인력이 이를 뒷받침하며, 김천 물류 인프라가 전국 시장과 연결하고, 안동 바이오 역량이 첨단 소재·의료기기 산업과 연계된다면 광역 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다. 결국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단순한 도로망 계획도, 산업단지 추가 조성도 아니다. 이는 경북 전체의 산업 기능을 재배치하고 도시별 역할을 새롭게 정의해 생산·연구개발·사업화·금융·물류·인재 양성을 하나로 묶는 경북형 산업 대전환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경북산업비즈니스벨트는 경북 전체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지방소멸을 막는 선도형 국가 생존모델이 될 수 있다. 광역 산업생태계가 제대로 작동하면 양질의 청년 일자리와 창업 기회가 확대되고, 청년이 돌아오는 경북을 만들 수 있다.이제는 산업화를 이끌었던 경북이 대한민국 산업 대전환의 중심축으로 다시 나서야 한다. 정치가 경쟁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역의 미래까지 멈춰서는 안 된다. 세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루쉰의 말처럼, 원래 땅에는 길이 없었지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곳이 길이 된다. 경북에도 아직 길은 있다. 이제 그 길을 누가 먼저 걷기 시작할 것인가가 문제다. /심학봉 전 국회의원

2026-06-09

삶과 인생경영

인생은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익어가느냐’의 문제다. 젊음이 성장의 시간이라면, 노년은 성숙과 완성의 시간이다. 최근에는 성공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삶이 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인생경영이란 나이가 들수록 인간적 깊이와 지혜, 건강, 관계, 품격, 사회적 의미가 함께 성숙해지는 삶의 운영 방식이다. 건강한 마음과 사회에 의미를 남기며, 삶의 가치관을 완성해 가는 것이 진정한 인생경영이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인생의 핵심 조건은 첫째, 건강 자산 관리다. 건강은 노년의 절대 자산이다. 핵심 요소로는 수면, 근력 유지, 혈관 건강, 식습관,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 운동 등이다. 특히, 노년에는 근력이 생존력이며, 혈관이 수명이고, 수면이 회복력이다. 세계 장수마을 일본 오키나와, 이탈리아 사르데냐, 그리스 아카리아 블루존(Blue Zone)의 공통점은 많이 걷고 소식한다. 공동체 관계가 강하고, 삶의 목적이 있고 스트레스가 낮다. 둘째, 관계 경영 능력이다. 노년의 행복은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에서는 행복한 장수의 핵심은 ‘좋은 인간관계’로 결론 내렸다. 가족과 소통, 친구 유지, 사회 연결성, 고립되지 않고 감사 표현 습관 등이다. 셋째, 평생 학습과 성장이다. 늙은 사람과 익어가는 사람과의 차이는 ‘배움을 멈췄는가’에 있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사람의 특징은 늘 책을 읽고 배우려 한다. 시대 변화를 이해하고 다가올 AI시대를 탐색하며, 사고의 노화는 학습 중단에서 시작된다. 넷째, 의미와 사명감이다. 세계 장수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개념은 일본 ‘이키가이(삶의 의미)’ 서구 ‘Purpose(목적)’, 한국 ‘보람’ 등이다. ‘내가 왜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퇴직 후 급격히 무너지는 사람들은 사회적 역할, 존재감과 목표 상실이 오기 때문이다. 봉사,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노년층은 건강과 행복지수가 높다. 다섯째, 품격과 마음의 성숙이다. 진짜 노년의 아름다움은 얼굴보다 태도에서 나온다. 품격 있는 사람의 특징은 타인을 배려하고, 말이 부드럽고, 감정 폭발이 적고, 욕심을 조절한다. 나이가 들수록 권위는 줄이고 품격은 높이고 집착은 내려놓고 지혜는 깊어져야 한다. 김형석 교수는 100세가 넘어서도 강연과 집필을 이어가는 지성인이다. 규칙적인 생활, 긍정적 사고, 독서와 글쓰기, 사회와 지속 연결 등 일이 있는 삶을 강조한다. 워런 버핏은 90세가 넘어도 활동하는 경영인이다. 특징은 단순한 생활, 꾸준한 독서, 감정 통제, 미래 지향적 사고 등이다. 공통점은 사회적 관계성과 배움을 멈추지 않고, 보람을 중시하며 의미 있는 일을 지속했다. 인생 경영의 본질은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는가’보다 ‘어떤 존재로 익어갔는가’로 평가 된다. 젊음은 속도로 빛나지만, 노년은 깊이로 빛난다. 아름답게 익어가는 사람은 얼굴보다 표정이 따뜻하고, 말보다 태도가 부드러우며, 재산보다 향기가 남는다. 사르데냐 연구에서 나오는 인생경영은 ‘삶의 의미와 관계’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고, 인생의 성공 모습은 ‘품격 있는 성숙’이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

2026-06-09

포화 속 발칸반도···괴뢰정권과 폭력의 연결고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고왕국 각국은 처절한 민족주의자 간 난투극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하켄크로이츠 깃발이 발칸반도를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밥그릇 싸움에 하루해가 뜨고 졌던 것이다. 1941년 2월 그리스에 영국군이 주둔하자, 긴장한 히틀러는 유고슬라비아 섭정 파블레 왕자를 앞에 앉혀놓고 중립을 풀고 3국동맹에 가입하라며 다섯 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히틀러로선 후방을 정리한 후 소련으로 진격할 복안이었다. 섭정 파블레 왕자에게 주축국에 합류하면 그 뒤를 감당해 줄 것이라며 슬그머니 옆구리에 찬 장전된 권총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당근도 들이밀었다. 전쟁이 끝난 후 알렉산드로스대왕의 고향 테살로니키 땅을 주겠다며 꼬드겼다. 유고왕국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구식 무기가 대부분 독일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왕국이 독일에게 공격당했을 때 자신들을 도와줄 아군이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독일-유고왕국 간의 불가침조약을 맺자고 역으로 제의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뜻을 모으기 위해 내각 투표를 실시했다. 결과는 뻔했다. 16대 3으로 독일팀 승리였다. 세계 최강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무덤을 파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1941년 3월 협정 조인식이 있었다. 히틀러는 유고 대표단을 보고 이렇게 비웃었다. “슬라브 놈들, 장례식에 온 꼴이네!” 전통적으로 독일에 반감이 컸던 세르비아인은 좋아할 리 없었다. 히틀러로부터 받은 것은 테살로니키를 유고왕국에 양도한다는 공수표뿐이었다. 그러자 총리가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흥분했고, 독일의 유고침공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이때 또다시 군부가 나섰다. 전쟁의 긴박함 속에 쿠데타라니? 툭 하면 쿠데타를 일으켰던 군인들이 권력의 단맛을 잊지 못했던 것이다. 쿠데타 주역들에게 대의명분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려야 볼 수 없었다. 그 중심에는 똥별 두산 시모비치 장군이 있었다. 그는 막상 판을 뒤집어 엎었으나, 적절한 대안이 없었다. 대안의 부재는 결국 대부분의 정치 각료들을 그 자리에 앉혀놓았다. 다만 섭정 왕자 파블레에서 어린 왕 페타르 2세에게 이양된 것뿐이었다. 이때 군부 쿠데타와 하등에 상관이 없다는 듯 베오그라드 시민은 연일 독일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일으켰다. 이를 잘 간파하고 있었던 베를린에서는 양동작전을 펼쳤다. 유고왕국을 갈가리 찢어놓아야 각개전투로 격파하기 좋았다. 일단 크로아티아에 마수를 뻗쳐 자그레브에는 포격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슬로베니아를 다독여 베오그라드에 협조하지만 않는다면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약을 발랐다. 그러나 미련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민족을 위한 행동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1941년 4월 초, 밀실에서 독일 밀명과 만난 크로아티아 농민당 대표 마체크가 크로아티아를 독립국가로 만들어 준다는 약속에도 돌부처처럼 끄덕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없었던지, 아니면 침략자의 괴뢰정부 수반에 오를 수 없다는 정치적 철학인지는 끝끝내 알 수 없었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그렇다면 독일로서 답은 하나였다. 무솔리니가 자금을 대고 오랫동안 키워온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의 폭력의 선봉이자 망명조직인 ‘우스타샤’를 전진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세르비아를 무력으로 장악한 시모비치 장군은 독일의 침략에 대비해 전략을 기가 막히게 짰다. 권위만 있고, 책임은 없는, 품위라고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이 겉만 반짝거려 일명 똥별이라고 부른다. 온통 국경 주위에 친 나치국 뿐이건만 북부 크로아티아지방으로 독일이 침공할 것이라 판단하고 병력은 그곳으로만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웬걸? 헝가리군이 보이보디나로, 불가리아군이 마케도니아로, 이탈리아군이 알바니아를 점령한 후 남쪽에서 물밀 듯 밀려오자 총 한 번 쏘아보지 못한 채 베오그라드는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1941년 4월 6일 이후 유고왕국 침략 4일 만인 4월 10일에 크로아티아에 무솔리니가 점령하면서 우스탸사 괴뢰정권이 ‘크로아티아자치국’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우스타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마르세이유에서 살해당한 세르비아의 왕 알렉산다르의 악정을 피해 이탈리아로 망명한 크로아티아 극우보수정당 파벨리치가 이탈리아의 협조를 얻어 조직한 폭력단체라고 밝힌 바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무솔리니가 12년 간 돈과 정성을 들여 크로아티아 민권당의 당수 출신 파벨리치를 중심으로 가꾸어온 지하폭력조직이었다. 유고왕국이 주축국으로부터 침략당한 지 일주일, 유고 왕과 정부는 고국을 떠나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인근 그리스로 달아났다. 베오그라드에 무혈입성한 주축국의 일방적인 평화협정으로 일단락을 맺는다. 전쟁 시작과 함께 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 지배에 쏙 들어가 버렸고, 보이보디나는 1919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겹도록 헝가리의 지배를 또 받아야 했다. 어쩌면 헝가리 지배의 운명을 타고난 땅이었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6-06-09

카이로스의 시간

인간의 생(生)을 관장하는 거대한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밤과 낮의 교차처럼 쉼 없이 흐르는 양적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요, 다른 하나는 찰나의 순간에 영원이 깃드는 질적 시간인 ‘카이로스(Kairos)’다. 우리는 흔히 시계바늘의 일정한 궤적 속에서 삶을 영위한다고 믿지만 영혼이 각인하는 진짜 삶의 무늬는 언제나 카이로스의 틈새에서 피어난다. 시간은 결코 누구에게나, 혹은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는 물리적 선(線)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밀도에 따라 점성이 달라지는 기묘한 착각이다. 얼마 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온종일 어느 세미나장에 묶여 있던 날이 있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서 시간은 잔인할 만큼 무겁고 고체화되어 있었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시간의 무게는 고스란히 육체의 통증으로 치환되었다. 꼿꼿하게 버텨내야 하는 허리는 끊어질 듯 둔탁한 비명을 질렀고 미동 없는 자세를 강제당한 다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밀려드는 활자와 음성 속에서 머리는 형체 없이 어지러웠으며, 초점을 잃은 눈은 시려 왔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는 오직 파편화된 숫자를 세는 것뿐이었다. ‘이제 다섯 시간 남았구나. 아니, 겨우 두 시간이 지나 이제 세 시간 남았네.’ 그 순간의 나는 크로노스의 거대한 맷돌 사이에 끼어 으스러지는 존재였다. 기계적으로 분절되는 1분 1초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영혼을 짓눌렀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는 전진이 아니라 주체성을 박탈당한 자의 목을 죄는 형벌의 메트로놈이었다. 물리적 시간의 절대성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내 의지가 거세된 공간에서의 한 시간은 우주가 생성되고 소멸하는 시간만큼이나 지루하고 아득한 형벌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이 잔인한 절대적 시간의 독재는 사랑하는 아들을 만나 함께 보낸 1박 2일의 여정 속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들을 만나 서로의 일상을 나누며 보낸 그 시간은 마치 찰나의 연기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하려고 마음먹었던 수많은 일들은 반의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무심한 해는 저물고 이별의 시간은 너무도 성급하게 당도했다. 아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나는 시계를 보지 않았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그 시간은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깊은 곳으로 촘촘히 스며들어 쌓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째깍거리는 시계 바늘의 속도는 세미나장의 그것과 분명 같았을 터이나, 아들의 수다 사이로 흐르던 시간은 빛의 속도로 명멸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인들이 발견한 ‘카이로스’, 즉 의미와 가치로 가득 찬 주관적 순간이다. 문학적으로 볼 때, 카이로스는 존재의 밀도가 극대화되는 ‘계시(啓示)의 순간’이다. 마르셀 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에서 유년의 시간을 통째로 길어 올렸듯, 카이로스는 연대기적 순서를 단숨에 뛰어넘어 삶의 본질을 대면하게 한다. 세미나장에서의 시간은 알맹이 없는 황량한 크로노스였기에 육신이 고통스러웠던 것이고, 아들과의 시간은 밀도 높은 서사로 채워진 카이로스였기에 너무도 매끄럽고 빠르게 흘러간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이를 ‘지금 시간(Jetztzeit)’이라 불렀다. 단순히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균질하고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구원이 불꽃처럼 스파크를 일으키는 꽉 찬 시간. 아들과 함께 걷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물리적 시간에 쫓기는 필멸자가 아니라 영원의 한 자락을 붙잡은 예술가였다. 비록 계획했던 일들을 다 이루지 못했으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는 행위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이란 거대한 크로노스의 바다 위에 점점이 박혀 있는 카이로스의 섬들을 찾아 항해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타의에 의해 고통받던 육체의 지난함도, 사랑하는 이의 곁에서 느꼈던 안타까운 달콤함도 모두 시간의 상대성이 내 영혼에 새긴 깊은 사유의 흔적이다. 우리는 시계를 차고 살아가지만 정작 기억하는 것은 시계 바늘이 가리킨 숫자가 아니라 그 순간 우리가 느꼈던 감각의 밀도다. 크로노스의 독재 속에서도 우리는 늘 카이로스를 꿈꾼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그 신비로운 틈새 속에서, 비로소 나의 삶은 온전한 제 이름을 찾고 숨을 쉬기 시작한다. /김경아 작가

2026-06-09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치

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 말로는 민주주의를 역설하지만 정치행태가 비민주적이면 ‘표리부동한 위선자’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주정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서로의 처지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필수다. ‘아전인수(我田引水)’와 ‘내로남불’이 습관화되어 마이웨이(my way)를 고집하는 정치인들의 성찰과 반성이 절실한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왜 역지사지에 인색한가? 민주주의자에게 요구되는 ‘비판적 성찰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능력의 유한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간이 전지전능한 신의 흉내를 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이 보수 또는 진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절대화하면 타협은 불가능하다. 거울 속의 자신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비판적 성찰 능력이 있어야 오만과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역지사지의 객관적 인식’으로 상생(相生)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아전인수의 자기중심적 독선’으로 상극(相剋)의 길을 갈 것인가는 정치인의 성찰능력 여하에 달려 있다. 이러한 성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정치인의 ‘권력에 대한 인식’이다. ‘수단으로서의 권력’과 ‘목적으로서의 권력’은 전혀 다르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투쟁이 일상화된다. 반면에 권력이 국리민복을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면 역지사지의 정치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 자신의 ‘신념’이 자칫 ‘독선’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항상 경계해야 한다. 정치인의 소명은 ‘개인의 신념윤리’보다 ‘국민에 대한 책임윤리’가 더욱 중요하고, ‘선한 동기’보다는 ‘좋은 결과’의 산출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지사지의 정치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누구나 역지사지를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언행이 일치되지 않는 정치인은 믿음을 줄 수 없고, 신뢰를 잃은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 평소에 아전인수를 일삼던 정치인이 갑자기 역지사지를 하겠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민주정치에서는 ‘쾌도난마(快刀亂麻)’식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원주의 가치관에 입각한 대화와 타협, 관용과 절제의 정신이 역지사지 정치의 토대를 구축한다. 역지사지의 정치를 위해서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승자는 패자에게, 다수는 소수에게, 여당은 야당에게 먼저 손을 내밀 때 협치가 시작될 수 있다. 강자가 약자에게 양보할 의사가 없거나 약자에게만 역지사지를 요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의가 힘’이 아니라 ‘힘이 정의’가 된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강자가 힘으로 포장한 ‘선택적 정의’는 약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역지사지이고, 역지사지의 정치는 인간의 한계와 권력의 속성을 반영한 ‘민주주의 가치관의 내면화’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우리 정치인들에게 다시 한 번 묻는다. 당신은 정말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6-06-08

스플린

“그보다 더 추하고, 더욱 사악하며, 더욱 더러운 괴물이 있다. 비록 몸짓은 크지 않고, 큰 소리도 내지 않지만, 그는 한 번의 하품으로 세상을 삼켜버릴 수 있다. 그 괴물의 이름은 권태다.” 샤를 보들레르가 ‘악의 꽃’의 서시 ‘독자에게’ 마지막 부분에 남긴 구절이다. 위 구절은 근대 문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탐욕과 살인, 위선과 음란보다 더 위험한 것이 ‘권태’라는 그의 진단은 처음에는 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을 돌아보면 보들레르의 통찰이야말로 현대인의 정신세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은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흔들리는 진자와 같다”라고 했다. 욕망을 충족하면 만족할 것 같지만, 곧바로 권태라는 괴물이 기다리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괴롭고, 원하는 것을 얻으면 심심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보들레르의 권태는 쇼펜하우어의 무료함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단순한 무료함도, 심심함도 아니다. 존재의 중심이 텅 비어 있는 상태이다. 살아있지만 왜 살아있는지 모르는 상태, 목표는 있으나 의미를 상실한 상태, 군중 속에 근본적으로 고독한 상태를 의미한다. 쇼펜하우어의 권태보다 훨씬 음울하고 병적인 정서인 셈이다. 보들레르의 권태는 우울, 무력감, 공허함이 뒤섞인 감정, ‘스플린(Spleen)’이다. 이유 없는 우울, 존재의 피로, 세계에 대한 혐오, 자기 자신에 대한 권태, 죽음에 대한 은밀한 동경이 스플린이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군중 속을 걸으며 현대인의 영혼을 보았다. 사람은 넘쳐 나지만 고독하다. 쾌락은 넘쳐 나지만 공허하다. 문명은 진보하지만, 삶은 의미를 잃어 간다, 이때 영혼을 짓누르는 검은 안개가 바로 스플린이다. 그의 시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하늘이, 무거운 뚜껑처럼, 신음하는 정신 위에 내려앉을 때···.” 영혼 위에 납덩이가 올려진 상태이다. 스플린은 권태가 앓는 병이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손바닥 위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평균 수명은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왕족조차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편리함을 일상적으로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우울, 불안 속에서 자살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 하며, 끊임없이 무료함과 공허함을 호소한다. 풍요 속에서 왜 불행한가? 보들레르는 ‘여행’에서, 인간이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를 찾아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 인간은 늘 어딘가 다른 곳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사람, 새로운 직업, 새로운 권력, 새로운 부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그 여행의 끝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권태 역시 함께 따라온다. 어느 곳에 가더라도 항상 따라오는 존재가 권태다. 삶은 권태라는 지옥 여행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권태가 없으면, 재미가 있겠는가. ‘권태라는 악’ 속에 서 피어나는 꽃이 우리네 인생이다. 권태가 없으면, 우리의 삶도 피지 않는다. 권태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 한계 속에서 의미를 창조한다. “내 삶의 정원으로 오라/ 아름다운 꽃과 맛난 술이 넘쳐 나는 나의 정원으로./그러나 그대 권태가 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공봉학 변호사

2026-06-08

우리도 다 알아요

올 초파일. 어머니 기일이어서 고향에 가는 길이다. 오늘은 두 손자도 함께 간다. 우리 부부는 맏이 차에 맏손자와 함께 탔다. 맏손자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다. 중간 휴게소에서 둘째네와 만나기로 하고 출발했다. 차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첫 터널을 지나자 오월의 푸르른 신록이 생기를 뿜어내며 길손들을 반긴다. 초록 생기에 저절로 힐링이 된다. 차가 기계 부근을 달린다. 고속도로를 향해 병풍같이 둘러선 산이 지난가을엔 타지 않는 불이 활활 타는 듯했었다. 이젠, 회갈색을 띠면서 불이 조금 사그라지는 느낌이다. 힐링에 금이 간다. 저 많은 소나무가 늘 푸름을 빼앗기고 죽어, 선 채로 삭아 물질로 되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재선충(材線蟲)이란 놈은 왜 소나무류만 골라서 죽이는 팔자로 태어난 걸까. 터널 하나를 더 지났다. 이곳 산은 아직 별 흠 없이 푸르다. 다행이다. 요즈음의 관심사인 ‘고유가 피해지원금’ 이야기가 나왔다. 아내가 맏이에게 지원금 받았느냐고 묻자, 받았다고 답했다. 어떤 것에 쓰는 게 좋겠는지 등 세 사람의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자연스레 나랏빚 걱정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큰손자가 말했다. “그 돈, 우리가 갚아야 하잖아요!” “어? 응. 근데, 네가 어떻게 그걸 알아?” 뒤통수를 쿵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으며, 얼떨결에 내가 손자에게 되물은 말이다. 속으로, 부모나 선생님에게서 들었으려니 생각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우리도 다 알아요···.”하고 대답하는 뉘앙스에서 친구들과 사귀면서 알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갓 철드는 초등생들까지도 정부가 주는 공짜 돈이, 후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생각하니 소름 돋았다. 더 묻지 않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다. 둘째네와 만나기로 한 휴게소로 차가 들어섰다. ‘기본소득’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외국 말처럼 이질감이 들었었다. 조금 전 보았던 재선충 감염에 죽어가는 소나무 같다는 마음도 스쳤다. 대기업 기능직 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줄곧, 주경야독으로 살아온 내가 왜 그런 생각들이 났을까. 블루칼라였던 사람은 오히려 반겨야 할 일일 텐데, 거부감 같은 다른 느낌은 우리 세대가 살아낸 체험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기본소득은 결국, 모든 이에게 나라가 일정한 돈을 계속 준다는 뜻이다. ‘민생지원금’도 ‘고유가 지원금’도 기본소득의 하나이므로, 국가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체제의 정책과 같다. 전문가나 학자들의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주장을 웹에서 찾아보았다. 상식선에서 다루어도 될 걸 이리저리 어렵게 말하고 있었다. 누구든 수입이 있어야만 지출할 수 있다. 나라도 같다. 나라가 국민을 먹여 살린다면 누가 일하고 세금을 낼까. 누구나 드는 의문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는 인간 본성에 기반한다고 본다. 나라 배급에 매달린 사회가 전체주의다. 만일, 정치인들이 장기집권 의도로 구상한 ‘기본소득제’라면 이는 사람 본성에 반한다. 초등학생들도 빚이라고 아는 ‘기본소득 정책’은 국민 공론에 부쳐 재고되어야 마땅하다. /강길수 수필가

2026-06-08

일본 압도한 한국의 재활용률

지난해 여름. 오사카와 교토를 여행했을 때다. 자정 가까운 시간. 밤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약간의 과장을 더하자면 고양이만한 쥐를 오사카 시내 한복판에서 본 것.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쥐가 떼를 이뤄 거리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쓰레기더미 속을 헤집고 다녔다. 여자들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중국인 관광객은 휴대폰을 들어 그 장면을 찍고 있었다. ‘일본’이라 하면 떠오르던 청결하고 질서정연한 이미지가 도심에 출몰한 쥐떼 탓에 깨졌다. 쓰레기 분리수거와 거리 청소 면에서는 일본이 한국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한 밤이었다. 6월 8일 몇몇 언론에 일본과 한국의 생활폐기물 발생량과 쓰레기 재활용률을 비교하는 기사가 실렸다. 이를 흥미롭게 읽었다.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이 일본 국립환경연구소와 공동으로 발간한 ‘한일 폐기물 통계자료집’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한국이 2200여만 톤, 일본은 3900여만 톤이었다. 일본의 한국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쓰레기 재활용률에선 한국이 일본을 압도했다. 한국 생활폐기물 재활용률은 약 70%, 일본은 20%대로 조사됐다. 생활 속 폐기물은 적고, 재활용률은 높으니 한국의 거리가 지난 시절보다 깨끗해진 것일까? 한국과 일본이 다를 것 없다. 수백만 명이 생활하는 거대 도시. 일반 쓰레기와 먹다 남긴 음식물을 섞어서 버리면 쥐와 해충이 생긴다는 건 아이도 아는 상식이다. 일찌감치 음식물 분리수거를 실시한 동시에 이를 어기지 않고 잘 지키는 한국인의 진일보한 준법의식이 거리에서 쥐를 사라지게 만든 것 같다. 칭찬 받아도 좋을 일이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6-08

소통과 화합의 삼겹살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유별나다. 농협 설문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85%가 “삼겹살을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70%는 “주1회 이상 삼겹살을 즐겨먹는다”고 밝혀 삼겹살은 그야말로 우리 국민이 좋아하는 대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삼겹살에 대한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 삼겹살이 대중에 보급된 역사는 길지가 않다. 1980년대 강원도 탄광촌에서 광부들이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으면 목의 먼지를 씻겨 줄 거란 생각으로 먹은 것이 삼겹살 소비의 시초란 설이 있다. 어떤 책에서는 197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육류소비가 늘면서 삼겹살이 대중음식화 됐다는 얘기도 전한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 정설인지는 모른다. 삼겹살은 돼지고기의 살과 지방 부분이 3번 겹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말고도 삼겹살을 즐겨 먹는 나라는 많다. 중국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개발했다는 중국의 동파육은 삼겹살 찜요리다. 덴마크에서는 얇게 썬 돼지고기 뱃살을 바싹하게 구운 ‘스테그트 플레스크’ 요리를 국민 대표 요리로 꼽는다. 베트남서도 찜, 구이, 조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삼겹살이 국민이 즐겨 먹는 대표 음식이지만 한국에서는 삼겹살이 가지는 독특한 이미지가 또 하나 있다. 소통과 화합을 상징하는 한국적 문화가 배어 있다. 삼겹살 파티는 직장 회식의 단골 메뉴다. 쏘맥 등이 곁들여지면 소통과 화합의 분위기는 더 잘 살아난다. 지난해 깐부회동으로 화제를 모았던 젠슨 황이 이번에는 국내 대기업 회장과의 만남을 삼겹살집으로 선택했다. 서민적이면서 소통과 화합의 분위기 장소로 잘 어울리는 곳이다. 탁월한 선택 같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6-07

여름을 맞으며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지난 주말 무렵 목이 칼칼하고, 으슬으슬 한기가 돌고, 온몸이 천근만근 무거운 데다가, 욱신욱신 전신이 쑤셔온다. 간간이 흐르는 땀으로 속옷이 젖는다. 이건 분명 몸살감기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좋은 약일 터, 비상약을 찾아 종류별로 먹어 본다. 하지만 약효는 신통치 않다. 그렇지만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는 건 내 생리와 맞지 않는다. 그렇게 사흘을 흐르는 강물처럼 흘려보낸다. 급기야 한밤중에도 통증으로 인해 잠에서 깨어나 끙끙 소리 내며 이리저리 돌아누워 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어둑한 공간에서 혼잣말한다. ‘그래,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어.’ 월요일 아침 일찍 서둘러 군청 옆에 있는 병원에 간다. 의사는 주사 두 방과 처방전을 내준다. 오랜만에 맞아보는 주삿바늘은 날카롭고 깊다. 그렇게 시작된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 칩거가 이어진다. 뭔가 굵은 나사가 빠져버린 듯 공허하다. 어느 날엔 18시간 이상을 잠과 함께 보낸다. 낮에도 아침에도 저녁에도 밤에도 잠이 유일한 의지처이자 동반자처럼 나를 인도한다. 무수한 허황(虛荒)한 꿈이 나를 찾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렇게 하염없는 무기력과 나태가 천석고황처럼 들러붙는다. 그러면서 지나간 일과 관계와 사람들이 떠오른다. 돌이켜보는 행위가 아무 의미도 없는데, 설령 그 시절과 대면한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 터인데, 하는 자괴감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은 유쾌한 일이 아니다. 청춘 시절엔 마음이 몸을 지배하지만, 나이 들면 몸이 마음을 통제한다. 건강한 몸은 마음을 이기지만, 아픈 몸은 마음에 백전백패일 뿐! 가까스로 책에 손을 대보기도 하고,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에 눈길을 주기도 하지만, 잠시. 이럴 땐 유튜브에 나오는 짤막한 영화나 화가(畫家)의 일대기(一代記) 혹은 추리소설 낭독이 유용하다. 언제부턴가 잠자리 동행이 되어버린 각종 유튜브 프로그램 덕분에 무료함과 적막함을 대적(對敵)한다. 우리 삶에서 어쩔 도리 없는 몇 가지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사라져버린 사건 사고를 원상회복할 수 없다. ‘열역학 제2 법칙’은 지구상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까닭에 우리는 시간의 화살과 대결할 수 없다. 뜨거운 커피는 식기 마련이고, 허공을 맴돌다 바닥에 떨어져 깨진 커피잔은 원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 우주 만유는 고요와 정돈에서 소음과 혼란으로 나아가도록 예정돼있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 혹자는 평행이론을 신봉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좌충우돌할 수 있다지만, 아직은 다중우주에 거주하는 나의 다른 자아와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터무니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공포와 분노의 포로로 살아가는 현대인은 그것들과 쉽게 작별하지 못한다. 오랜만에 텃밭에 나가 불원초(不願草)를 뽑거나 자르고, 가시상추와 머위를 따다가 건사한다. 초여름 햇살이 선선한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내 얼굴과 전신을 휘감는다. 그러면서 나직하게 속삭인다. ‘그만 털고 일어나지, 그래. 혼자 왔다 가는 길 아닌가?!’ 허허로운 웃음소리 들린다.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6-06-07

함께 한 1461일 그리고 새로운 출발

선거 축제의 막이 내렸다. 당선과 낙선의 희비는 엇갈렸지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지역 곳곳을 누비며 주민을 만나고 자신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모든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의 열정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땀 흘린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4년간의 의정활동도 이달이면 마무리된다. 2022년 7월 1일 시작된 제9대 포항시의회 임기는 2026년 6월 30일까지 총 1461일, 시간으로는 3만5064시간이다. 숫자로 적고 보니 길어 보이지만, 막상 지나고 보니 선배 의원의 말처럼 “4년은 금방”이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4년은 배움의 시간이자 감사의 시간이었다. 당은 달랐지만 의회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며 때로는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동료 의원들이 있었다. 주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겠다는 목표 앞에서는 정당을 넘어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분들이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집행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의회의 역할은 견제와 감시이지만, 때로는 더 나은 정책을 만들기 위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끊임없이 질문했고, 잘못된 부분은 지적했으며, 필요한 변화는 함께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지난 4년 동안 포항의 여러 현장을 다니며 수많은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역의 환경 문제, 노동자의 권리, 도시개발과 안전, 교육과 복지, 골목상권과 지역경제까지 시민들의 삶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때로는 안타까운 상황도 마주했고,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에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작은 변화와 웃음, “고맙다”는 한마디는 ‘정치 효능감’이 되어 큰 힘을 주었다.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선다. 지방정치는 거창한 구호보다 시민의 일상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길,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복지시설, 상인들이 웃을 수 있는 골목상권, 주민들의 작은 불편을 해결하는 일들이 모두 지방정치의 몫이다. 결국 좋은 정치는 특별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조금씩 더 나아지게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지난 1461일 동안 얻은 가장 큰 교훈은 시민의 힘이었다. 의회를 움직이는 것도, 행정을 변화시키는 것도 결국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였다. 정치는 정치인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임을 배웠다. 선거는 끝났지만 포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간은 이제 시작이다. 저성장과 인구감소, 산업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전략과 지혜가 필요하다. 1461일의 시간이 끝나고 또 다른 1461일이 시작된다. 그 시간의 주인공은 특정 정당도, 특정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포항의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만들어 갈 시민들이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앞으로의 1,461일은 갈등보다 협력이, 말보다 실천이, 정치인보다 시민이 중심이 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포항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좋은 정치로 보답하길 바란다. /김은주 포항시의원·더불어민주당

2026-06-07

국악의 날, 포항에서 정악을 듣고 싶다

매년 6월 5일은 국악의 날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가치를 되새기고 국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국악의 날이 제정된 지 2년째를 맞으며 문득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언젠가 포항에서도 정악(正樂)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역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하며 국악 공연을 무대에 올려왔다.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국악이 가진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어렵고 낯선 음악으로 생각한다. 공연 홍보를 하다 보면 “국악은 잘 모르겠다”거나 “재미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막상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사물놀이의 힘찬 울림에 감탄하고, 민요의 구성진 가락에 박수를 보낸다. 대금과 해금의 선율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국악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고. 최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퓨전국악이나 창작국악 공연이 많이 늘어 젊은 세대들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반갑고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국악의 원형과 본질을 보여주는 음악을 만날 기회도 함께 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정악이 있다. 정악은 조선시대 궁중과 선비 사회의 ‘바른 음악’이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수제천, 영산회상과 같은 대표적인 음악들이 모두 정악의 범주에 속한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빠름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음악이다. 현대인들에게 정악은 어쩌면 가장 낯선 음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악을 직접 듣다 보면 오히려 그 느림 속에서 특별한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는 선율, 음과 음 사이의 여백, 절제된 아름다움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여유를 되찾게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속도 속에서 피로한 사람일수록 정악이 가진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정악은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귀 기울이는 법을 알려준다. 빠르게 소비되는 문화가 아닌 오래 음미하는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포항은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이며,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국악 공연의 영역도 조금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사물놀이와 민요, 퓨전국악을 넘어 정악과 같은 전통음악의 깊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문화는 접할 기회가 있을 때 성장한다. 국악의 날을 맞아 바라는 것은, 포항에서도 시민들이 정악 공연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깊이와 품격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향유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국악의 날이 지역에서도 정악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포항의 공연장에서 수제천과 영산회상, 종묘제례악의 장중한 선율이 울려 퍼지는 모습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

2026-06-07

유월, 눈물이 부끄럽지 않아서

삼등 병실 티브이에서 ‘87년 6월’이란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거기서 다시 한 아름다운 청년의 죽음 보았고 최루탄 자욱하던 거리에 흩어지던 학생들과 일제히 울리던 차량들 경적소리 들었으며 자신들의 도시락을 모아 담 너머 명동성당 시위대에 전해주던 여고생들의 사랑 보았으며 깨끗이 씻은 도시락에 잘 먹었다는 메모가 있었다는 아름다운 후일담을 들으며 희망 보았으며 전경들 가슴에 장미꽃 꽂아주던 시민들과 축제처럼 흩날려 내리던 휴지 뭉치들의 감동 보았으며 돌 던지던 넥타이부대와 아줌마의 열정 보았고 광화문에서 시청 앞 광장 거쳐 서울역 앞까지 거리에 가득하던 시민들의 하나됨과 이 땅 민주주의의 빛나던 승리 거기서 오랫동안 다시 보았습니다 마음은 하나도 슬프지 않았는데도 보는 도중 내내, 끊임없이, 하염없이 눈물 흘러나왔습니다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그건 ‘첫경험’같은 것이었습니다 - 엄원태, ‘부끄럽지 않은 눈물’ 부분 (‘부끄럽지 않은 눈물’, 창작과비평) 다시, 6월이다. 대구지역의 엄원태(1959~) 시인은 1987년부터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하는 시인이 병실 티브이에서 본 다큐멘터리는 공교롭게도 ‘1987년 6월’이다. ‘1987’이라는 뜨거운 소재 앞에서 두려워하지는 않되, 삼가는 마음으로 불러낼 수 있는 키워드는 많다. 가까운 소설에서는 김숨의 ‘L의 운동화’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을 단숨에 소환할 수 있다. 무릇 ‘1987’이라는 영화가 눈물을 이해하게 하고, 참여하게 한다면 엄원태 시인의 시 또한 다르지 않다. 가령 영화의 주요 배역 중 유일한 허구의 인물인 연희(김태리)가 주저하거나 회의하면서도 사건 깊숙이 개입하는 모습처럼 시인의 “부끄럽지 않았다”라는 고백은 증언이며 역사의 얼굴이 된다. 이것이 곧 시대의 마음이며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있어야 할 자리에 우뚝 선 배우의 표정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수많은 익명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유월은 무고한 사람의 참혹한 죽음에 접했던 자들 중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고 기억하게 하고 증언하게 한다. 악은 강한 서치라이트처럼 권력자를 집약해서 비추지만, 희망이 ‘작은 빛’의 연쇄에서 나오듯 역사의 물줄기도 그렇다. 마치 반딧불처럼 강렬한 빛 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뿐 결코 명멸하지 않는다. 예컨대 선은 어둠 속 광장을 메운 작은 민중들의 미약한 빛들이 밝히는 세상이다. 한 세대를 사이에 두고 1987년과 오늘의 광장이 뜨겁게 공명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제 우리는 인용된 시를 보며, 이런 질문에 답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부끄러운가’ 부끄러운 것들을 생각해 보자. 조르주 아감벤의 ‘아우슈비츠’를 함께 읽으며 위의 질문을 나누기도 했다. 인간에게 부끄러움이 의지적으로 통제되지 않은 어떤 신체의 돌발적인 출몰이라면, 인간의 의식은 몸의 감각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가령 “보는 도중 내내, 끊임없이, 하염없이 눈물 흘러나왔다”라는 시인의 고백처럼 콧물이나 오줌 혹은 눈물이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거나 흘러내리는 순간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의 눈물은 “첫 경험”처럼 숭고함 그 자체가 된다. 이처럼 육체와 영혼이 온전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공유되었던 기억이 있었던가. “눈물이,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이희정 시인

2026-06-07

마케팅 AI 심층 분석-개인화 추천과 광고 타겟팅의 원리

가게를 하는 사장님이라면 한 번쯤 겪어 보셨을 일이다. 어제 인터넷에서 검색한 운동화가 오늘 아침 인스타그램에 다시 뜬다. 카카오톡 친구 목록 아래에 내가 어제 클릭한 상품이 광고로 떠 있다. 유튜브를 켜자마자 어쩌면 내가 좋아할 만한 영상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같은 시간 같은 앱을 열어도 옆자리 손님과 내 화면은 다르다. 가게에서도 사정은 같다. 우리 매장 광고를 네이버에 올리려고 보면 ‘어떤 손님에게 보일지’ 같은 옵션이 줄줄이 나오고, 카카오톡 채널에 단골 알림을 보내려 해도 ‘관심 상품을 본 사람’에게만 보내는 기능이 따로 있다. 누가 이렇게 손님을 골라 주는 걸까. 그 보이지 않는 점원의 이름이 바로 ‘마케팅 AI’이다. 우리 가게의 매대 진열을 누가 정하는지가 매출을 좌우하듯, 스마트폰 화면의 진열대도 누군가가-정확히는 어떤 알고리즘이-정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잘 만든 개인화 추천은 고객 만족도를 평균 20퍼센트, 구매 전환율을 10~15퍼센트 끌어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회는 이 보이지 않는 점원의 일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우리 가게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편리함 뒤에 어떤 그림자가 숨어 있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 추천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물건’ 마케팅 AI가 추천을 만들어 내는 원리는 의외로 단순한 두 가지 발상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비슷한 사람’을 보는 방식이다. 가게로 치면 단골 김 씨가 즐겨 사는 물건을 비슷한 취향의 박 씨에게 권하는 셈이다. 김 씨와 박 씨가 같은 음료를 좋아하고 같은 시간대에 들르는 단골이라면, 김 씨가 새로 시도한 메뉴를 박 씨도 좋아할 가능성이 크다는 단순한 짐작이다. 영화·도서·상품을 비슷한 패턴으로 사고 보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짓고, 그 무리에서 인기 있는 것을 권한다. 아마존 매출의 약 35퍼센트가 이 방식의 교차 추천에서 나온다는 통계는 업계의 오래된 지표이다. 둘째는 ‘비슷한 물건’을 보는 방식이다. 내가 매운맛 라면을 좋아하면 비슷하게 매운 다른 라면을 권하는 식이다. 영화라면 장르·감독·배우·분위기 같은 요소를 잘게 쪼개 비슷한 작품을 찾아 준다. 넷플릭스는 이 두 방식을 함께 쓰며, 시청자가 본 영상의 약 75~80퍼센트가 검색이 아닌 추천을 통해 발생한다고 자사 연구진은 밝힌 바 있다. 같은 회사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개인화 추천은 해마다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고객 이탈 비용을 줄여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의 AI는 한발 더 나아가 사람과 물건을 한 장의 거대한 지도에 점으로 찍고, 점과 점 사이의 거리를 재서 가까운 것을 권한다. 비슷한 취향의 사람끼리는 가까운 동네에 모이고, 비슷한 종류의 물건끼리도 가까운 골목에 진열되는 셈이다. 결국 시장 골목에서 단골을 알아보고 입맛에 맞는 반찬을 권하는 일이, 컴퓨터 안에서 수억 명을 상대로 1초 안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점원이 24시간 졸지 않고, 손님 한 명 한 명의 발걸음을 모두 기억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광고가 나를 알아보는 방법···쿠키와 행태 정보의 시대 추천이 ‘무엇을 보여줄까’의 문제라면, 광고는 ‘누구에게 보여줄까’의 문제이다. 사장님들도 인터넷 광고비를 집행하다 보면 ‘맞춤 광고’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어떻게 광고가 내 손님을 찾아낼까. 오랫동안 그 비밀의 열쇠는 ‘쿠키(cookie)’였다. 우리가 어떤 사이트를 거쳐 어떤 상품을 보았는지를 따라다니며 기록하는 작은 꼬리표이다. 한 가게에서 본 신발이 다른 사이트에서 다시 광고로 뜨는 까닭이 바로 이 꼬리표 덕분이다. 그러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사파리·파이어폭스 같은 브라우저는 이미 이 꼬리표를 차단해 왔고, 구글도 2025년 4월 결국 일괄 폐기 계획을 철회하고 사용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방식으로 돌아섰다. 인터넷을 열 때마다 마주치는 ‘쿠키 동의’ 팝업창은 그 변화의 신호이다. 흐름은 분명하다. 남의 발자국을 몰래 따라다니는 광고에서, 자기 손님이 남긴 발자국을 정성껏 기록하는 광고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가게가 직접 모은 단골 명부, 멤버십 카드 사용 내역, 자체 앱의 방문 기록 같은 것이 바로 ‘1차 데이터’이다. 외부 추적이 어려워질수록 내 손님의 발자국이 더 귀해진다는 뜻이다. 카드사 데이터나 외부 데이터를 사오는 시대에서, 우리 가게 손님을 우리가 직접 기록하는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2024년 1월 ‘맞춤형 광고에 활용되는 온라인 행태 정보 보호 정책 방안’을 내놓아 광고 사업자의 책임을 구체화했고, 2025년 개인정보 처리방침 작성지침도 한층 강화됐다. 손님의 자기결정권을 광고 효율보다 앞세우자는 사회적 합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도 손님의 정보를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이 곧 신뢰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이 새삼 분명해지고 있다. ■ 소상공인에게 열린 도구들···네이버·카카오, 그리고 포항의 가능성 좋은 소식은 마케팅 AI가 더 이상 대기업만의 무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네이버는 2017년 도입한 추천 시스템 ‘AiRS’를 블로그·쇼핑·뉴스로 넓혔고, 중소상공인을 위한 AI 광고 솔루션 ‘애드부스트 쇼핑’을 통해 이를 쓴 가게의 신규 구매자와 주문 건수가 약 60퍼센트 늘었다고 밝혔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에서 바로 쓰는 ‘AI 메이트 쇼핑’과 광고주용 ‘모먼트 AI’를 잇따라 내놓아 대화창에서 “주말 친구 생일 선물 추천해 줘”라고 물으면 AI가 골라 주는 단계까지 왔다. 카카오 측은 다음 앱과 카카오톡 쇼핑탭에 추천 기능을 적용한 직후 상품 클릭이 50퍼센트 이상 늘었다고 보고했고, 카카오재팬이 운영하는 일본 웹툰 서비스 ‘픽코마’는 추천 도입 이후 첫 열람의 절반 이상이 추천을 통해 발생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5 출시 캠페인에서 AI 광고 솔루션을 자사 쇼핑몰에 접목한 사례, 메타의 자동화 광고 ‘어드밴티지 플러스’가 일부 캠페인에서 장바구니 전환 비용을 70퍼센트 가까이 줄였다는 사례도 잇따른다. 포항·경북도 예외가 아니다. 포스코그룹은 마케팅 본부와 포스코DX를 중심으로 거래선별 수요 예측·맞춤 견적 같은 B2B 영역에서 AI 마케팅을 키워 가고 있다. 동네 가게에도 활용의 여지는 충분하다. 죽도시장의 어물전 사장님이 단골의 구매 주기를 메모해 두는 일, 영일대 카페 사장님이 손님이 즐겨 시키는 음료를 기억해 두는 일, 호미곶 펜션 사장님이 손님이 어느 계절에 어떤 방을 선호하는지 기록해 두는 일, 그것이 바로 1차 데이터의 출발점이다. 종이 장부도 좋고, 네이버 예약·카카오톡 채널·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같은 무료에 가까운 도구도 좋다. 거기에 네이버·카카오의 AI 광고 도구를 보태면 적은 예산으로도 더 정확한 손님에게 닿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일대 산책객을 자주 받는 카페라면 ‘근처에 있는 30대 여성’에게만 광고가 가도록 설정할 수 있고, 명절 선물용 과메기를 파는 가게라면 작년 그 시기에 구매한 단골에게만 알림이 가도록 할 수 있다. 광고비 10만 원으로도, 1만 명에게 무작위로 보내던 시절과 달리 1000 명의 적합한 손님에게 닿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만 처음부터 완벽한 도구를 찾기보다, 우선 한 달치 단골 명부를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 ‘추천된 나’는 진짜 나일까··· 알고리즘 너머의 인문학 마케팅 AI는 분명 편리하다. 그러나 그늘도 있다. 2011년 미국의 시민운동가 엘리 패리저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는 말을 만들었다.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만 보여 주는 동안,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좁은 거품 안에 갇히게 된다는 경고이다. 광고 알고리즘은 우리가 클릭한 것을 더 보여 주고, 우리는 더 자주 클릭한다. 그 되먹임 속에서 ‘내가 골라 본 것’과 ‘추천이 보여 줘서 본 것’은 점점 구별이 어려워진다.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며 우연히 마주친 새 가게, 동네 책방에서 무심코 손에 든 책, 옆 가게 사장님과 나누는 잡담 속에서 듣는 다른 동네 이야기, 이런 우연한 만남이 점차 줄어든다는 뜻이다.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계몽을 “자신의 이성을 스스로 사용할 용기”라고 정의했다. 그 시선으로 보면 추천 알고리즘이 가장 두려운 점은 부정확함이 아니라, 너무 정확해서 우리가 다른 선택지를 떠올릴 기회조차 빼앗는다는 데 있다. 지난주에 다룬 저널리즘의 가짜뉴스 문제처럼, 추천 알고리즘도 사회의 공통 화제와 다양성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가게의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AI가 골라 주는 손님에게만 광고가 나가면, 새로 가게를 알릴 기회를 놓치는 손님은 누구인가. 알고리즘이 만들어 내는 안락한 거품은, 무엇을 보여줄지뿐 아니라 ‘무엇을 보지 않게 할지’까지 정한다는 점에서 가볍지 않은 문제이다. 가게를 새로 여는 분이라면 마케팅 AI를 잘 다루는 일이 곧 경쟁력이다. 사업 계획을 짤 때 흔히 쓰는 ‘비즈니스 모델 캔버스’라는 표가 있다. 그 안의 아홉 칸 중 ‘어떤 손님인가’와 ‘어떤 통로로 만날 것인가’는 바로 마케팅 AI가 가장 큰 도움을 주는 영역이다. 시장 조사부터 경쟁사 분석, 손님의 모습 그리기, 트렌드 파악까지 AI에게 물어 며칠 안에 자료를 모을 수 있다. 다만 AI가 그려 주는 손님의 모습은 어디까지나 숫자의 그림자이다. 진짜 손님의 사정과 마음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대화, 가게 문을 열고 나누는 인사에서 드러난다. 시민의 입장에서도 같다. 내가 보는 화면이 누군가의 선택의 결과임을 알아채는 일, 그리고 가끔은 알고리즘 바깥의 정보를 일부러 찾아보는 습관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교양이다. 책장에서 한참 펴 보지 않은 책을 꺼내 드는 일, 평소 잘 안 가던 골목 책방을 둘러보는 일, 알고리즘이 권하지 않은 우연한 만남이 우리를 우리답게 만든다는 사실은 디지털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서용운 계명대 글로벌 창업대학원 벤처창업학과 교수

2026-06-07

[기고] 문경의 새로운 100년, 화합과 혁신으로 다시 쓰는 골든타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뜻을 이루지 못한 후보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 그러나 선거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정치가 아니라 문경의 미래를 함께 만드는 정치가 시작되어야 한다. 문경은 지금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중부내륙고속철도 개통으로 대한민국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문경의 향후 100년을 결정할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다시는 같은 기회를 얻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제는 과거의 관습과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인구 문제다. 지역 소멸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상황에서 인구 유입 정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제2공공기관 유치 직원과 군인, 예비역 장교, 국군체육부대 출신 지도자, 귀향·귀촌인을 대상으로 한 주거 특별공급 정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를 위해 현물 보상 방식을 활용한 2천 세대 규모의 아파트 개발 사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발 수익을 지역 발전 재원으로 활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도비를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한 주택 공급이 아니라 새로운 인구를 유치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두 번째 과제는 도시 경쟁력 강화다. 노후화된 시민운동장을 이전하고 그 부지에 모전 스마트시티를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문경의 중심 입지에 첨단 주거·상업·문화 기능을 집적한 미래형 도시를 구축한다면 젊은 세대와 외부 인구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스포츠 산업 육성도 중요한 성장 축이다. 국군체육부대와 연계한 전국 최고의 스포츠 메카를 구축하고, 스포츠 선수와 일반 시민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 메디컬 재활 종합병원을 설립한다면 문경은 스포츠와 건강 산업의 중심 도시로 성장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고속철도 시대에 맞는 도시 구조 개편이다. 철도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인프라다. 현재 논의되는 일부 노선안은 비옥한 농경지를 훼손하고 지역을 단절시킬 우려가 있다.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효율적인 직선화 노선을 통해 수도권과 대구권 접근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는 물류와 산업,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화합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지역 발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낙선자의 공약이라도 지역에 도움이 된다면 적극 수용하고, 당선자의 정책이라도 문경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문경이 직면한 과제는 어느 한 사람이나 한 정당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기업과 농업인, 청년과 어르신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지역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는 생산적 정치가 절실한 이유다. 10년 뒤 문경의 모습은 오늘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이야말로 화합과 혁신으로 문경의 새로운 100년을 설계해야 할 때다. 고속철도 시대라는 역사적 기회를 놓치지 않고 대한민국 중심 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문경의 골든타임은 바로 지금이다.

2026-06-07

민심은 누구 편인가

민심은 늘 변한다. 선거의 끝을 보고 나면 항상 생각나는 글귀가 있다. 민심무상(民心無常)이다. 서경 채중지명편에 나오는 말로 백성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 일정치 않다는 말이다. 군주가 선정을 베풀면 백성은 군주를 사모하고 악정을 일삼으면 앙심을 품는다는 말로 해석을 한다. 정치의 덕실에 따라 백성의 마음은 착하게 되기도 하고 악하게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군주는 지금의 통치권자 혹은 정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백성을 물에 비유한 고사 중 하나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있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란 뜻이다. 백성은 물과 같아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한다는 말로 백성과 임금과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로 유명하다. 통치자의 흥망이 민심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치자는 백성의 뜻을 잘 따라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말이다. 맹자는 백성의 마음을 항산항심(恒産恒心)이란 말로 통찰했다. 백성들은 일정한 생업이 있으면 변함없는 마음이 있지만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변함없는 마음도 없다는 것이다. 백성의 안정된 삶이 곧 국가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야는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아전인수격으로 자신들이 유리한 방향으로 평가를 한다. 특히 민심을 두고 해석하는 방법이 서로 달라 흥미롭다. 여당은 투표 결과가 현 정권에 대한 안정론으로 표출됐다는 것으로 본 반면 야당은 국정 견제론으로 맞선다. 제9회 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많은 이들이 출마 과정에서 현장에서 느낀 민심을 잊지 말고 초지일관의 정신을 유지했으면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만이 민심을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6-06-04

6·3 지방선거, 지역은 없었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지방 행정의 책임자와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가 구성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재·보궐 선거를 통해 14명의 국회의원도 새로 선출됐다. 결과와 무관하게 끝까지 최선을 다한 모든 후보자와 유권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어느 때보다 지역 이슈가 사라진 지방선거였다. 선거판의 주된 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앙정치가 주도했다. 언론은 공천 갈등과 스타 정치인들의 행보에만 집중했다. 지역 언론조차 지역 이슈가 아닌 여의도 정치에 포커스를 맞췄다. 실제 경북의 한 언론사 유튜브 채널에는 선거 기간 내내 지역과 무관한 중앙 정치인들이 출연했다. 이번 선거에서 포항도 한때 전국 뉴스에 등장했다. 국민의힘 공천 갈등과 탈락 후보들의 반발 등 기사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후보가 확정되자 포항은 다시 뉴스에서 사라졌다. 도시가 직면한 난제들은 산적해 있지만, 후보별 공약을 제대로 분석한 기사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공약은 실종되고, 현수막과 선거운동 차량의 소음만이 거리를 메웠다.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는 선거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법정 토론회에조차 불참했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선거의 현주소다. 구조적인 문제는 분명하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등식이 굳어질수록 선거는 맹탕이 된다. 가장 치열한 경쟁이 시민 앞이 아닌 정당의 공천 과정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공천이 사실상 결승전이 되는 구조에서, 후보자들의 시선은 시민이 아니라 당의 권력을 향한다. 그 결과 지역 의제는 뒷전이 되고 유권자의 관심은 멀어진다. 정당의 책임도 크다.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는 공약을 쏟아붓지만, 이른바 ‘텃밭’에서는 정치적 구호만 되풀이된다. 특정 지역을 안전지대로 분류하는 순간, 후보 검증은 느슨해지고 공천은 사유화되기 쉽다. 공천이 공공재라는 감각은 희미해진다. 반면 경쟁이 치열한 지역의 풍경은 다르다. 접전이 예상되는 곳에는 언론이 몰리고 기사가 쏟아진다. 다툼이 치열하면, 지역 의제도 함께 공론화된다. 후보는 한 표가 아쉬워서라도 현안에 집중하고 언론은 이에 반응한다. 경쟁이 견제 장치가 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그런 지역이 주목을 받았다. 판세가 흔들리는 곳은 매일 뉴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역의 의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고 해법을 요구하니 후보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다. 접전 양상의 긴장감은 선거를 흥미롭게 만든다. 다시 우리 지역으로 눈을 돌려본다. 여전히 해결해야 할 지역 현안은 쌓여있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으니 인구는 빠져나가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간다. 종합병원은 멀고, 사회 인프라는 노후화되고 있다. 돈을 벌어도 쓸 곳이 없으니 자본은 외부로 빠져나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문제들은 끝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투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선거가 색깔 고르기로 끝나버리면, 앞으로의 4년간 지역의 난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우리 지역이 이번 선거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방행정부와 시·도의회는 다시 지역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6·3 지방선거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분명하다. 지방선거의 주인은 지역민이다. /주재원 한동대 교수

2026-06-04

우리의 주적?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구인가? 선거철만 되면 보수 진영에서 반복해서 내미는 질문이다. 대체로 이런 물음은 안보 정책에 대한 실질적인 토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정치적 동원과 이념적 낙인찍기를 목표로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지겹고, 어이없기도 하다. 보수 정권이 들어섰을 땐 안보 위기가 없거나 대북 관계가 크게 변하기라도 했던가? 국방과 군사 문제에 있어 지난 정권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거론해야 할까? 주적을 묻는 저의에 내재한 폭력성과 단순성, 그 역사에 대한 몰인식을 어찌해야 하나? 한국 사회에 축적된 레드 콤플렉스를 자기 이해를 위해 정략적으로 이용할 뿐인 행태를 응당 그러려니 방치해도 되는 걸까. 주지하듯 한국의 반공주의는 단순한 안보의식이 아니라 냉전과 권위주의 체제의 산물이며 치안 유지를 위한 이념적 도구이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기에는 반공을 구실로 민주주의와 노동‧학생 운동이 억압됐고, 언론 통제 등이 자행됐다. 누구에게는 그저 한 표라도 얻어볼 요량으로 낡은 색깔 공세를 펴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그 배후에는 켜켜이 쌓인 국가 폭력의 역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주적론(?)은 너무 단순하기도 하다. 가령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는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하면서도 경제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실의 외교와 안보는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은 마치 단답형 시험 문제처럼 작동한다. 국가의 정통성과 충성심을 겨우 이런 검사 따위를 통해 검증해 보겠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게으른 것 아닌가? 대북, 안보, 국방, 군사 분야에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을 갖고 토의할 수는 없는 걸까? 국가 안보는 시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 존재의 이유가 애초 시민의 안전과 존엄을 보호하기 위함이기에 그렇다. 그렇기에 “누가 우리의 적인가?”를 묻는 대신 “무엇이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가?”에 관해 질문해야 하지 않겠나. 경제적 양극화와 노동 유연화, 실업과 산업재해, 재난과 기후 위기, 불평등, 혐오범죄, 주거 불안정 등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실질적 문제보다 국가 안보를 추상적인 적대 관계로 환원하여 상대를 ‘북한 편’ 취급하고자 하는 저열한 정치를 언제쯤 청산할 수 있을까? 박영준의 ‘용초도근해’(1953)라는 소설이 있다. 북한군에 의해 포로가 되었던 주인공의 귀환을 다루는 작품이다. 당시 한국은 국군포로를 ‘귀환용사’라 명명하고 ‘애국청년’이라 부르며 환대할 준비를 했지만, 휴전선을 넘어서는 순간 이들은 항구적인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위장된 간첩’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주인공 용수의 자살로 마감되는 이 소설은 반공주의와 소박한 휴머니즘이 결합한 소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은 우리의 주적이 누구인지 묻는 시대착오적 질문 속에서 반공포로의 그림자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자들만큼 상대가 실제 ‘북한 편’이기를 바라는 이들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나 군사적 긴장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외려 그런 불안을 자기 이익을 위해 정략적‧감정적으로 동원할 뿐인 속 보이는 모략을 이제는 끝낼 때가 아닐까 한다. /허민 문학연구자

2026-06-04

현충일이 단순 노는 날인가

선거가 끝나고 나니 그동안 밀린 숙제를 한 듯 후련함이 더한다. 그래서 이번 주말엔 진탕 술이나 마시려고 했더니 현충일이다. 연세가 좀 있는 분들 기억에는 일 년 중 술집이 문 닫는 유일한 날로 알고 있는 현충일이다. 사실 이런 법규는 없다. 그동안 유교적 정서로 인해 ‘죽은 이를 기리는 날에는 흥청망청 놀지 않는다’라는 문화와 국가적 추모 분위기를 존중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을 애도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 날이기에 자제해 왔을 뿐이다. 거리에는 이미 조기가 게양되고, 오전 10시가 되면 전국에 사이렌이 울린다. 사람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는 묵념을 올린다. 하지만 마음에는 단순한 기념일이자 연휴라는 개념이 앞선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소위 말하는 충효 정신이 제대로 교육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나라를 위해 내 소중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고, 지켜야 할 삶이 있으며,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럼에도 수많은 이들은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놓았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이러한 희생과 헌신 위에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이 중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아니, 요즘 부모 중 나라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바치려 하는 자식에게 응원할 수 있는 어른은 몇이나 될까?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 나선 군인들 후손들의 삶을 우린 보았다. 일제에 협력한 이들은 지금까지 그 자손들이 정치계나 법조계에 자리 잡고 나라를 좌지우지하며 호의호식하고 살고 있는데 이에 반해 국가유공자들의 삶은 어떠한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 우리 교육 현장의 물을 흐려놓고 말았고 독립운동을 객기 정도로 취급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아연실색할 뻔했다. 그래서 현충일은 단순히 묘역을 참배하거나 묵념을 하면서 과거를 추모하는 데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고, 그것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전쟁과 가난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 국가와 공동체의 소중함은 때로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잊은 사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크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린 얼마나 큰 희생을 했는지 제대로 교육할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나라를 위한 희생, 정의를 위한 희생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며 그들의 용기와 헌신에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해야 한다.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죄업으로 인해 친일파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득실거리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던지라고 강요할 수 없다. 강요한 들 들을 리도 만무하다. 우리만 억대의 성과금에 집착해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회사를 멈추겠다는 대기업 노조의 작태에서 우린 충분히 읽을 수 있지 않았나 말이다. 무너지는 호국정신이 안타까울 뿐이다. 제발 이번에는 현충일의 정신이 무엇인지 제발 제대로 인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6-06-04

오어사의 꽃, 대웅전 꽃살문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있는 오어사(吾魚寺) 대웅전은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영조 17년(1741)에 중건한 기록을 가진 단아한 건물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 이 건물은 내부에 구름, 학, 화염보주(火焰寶珠) 등으로 장식된 우물천장과 용과 연꽃으로 장식된 닫집도 아름답지만 정면에 보이는 화려한 꽃살문이야말로 ‘오어사의 꽃’이다. 꽃살문이란 문살에 꽃무늬를 새겨 만든 문을 뜻한다. 전통 건축에서 꽃살문은 문살을 기본으로 하여 꽃 모양의 문양을 조각과 채색으로 장식한 것으로 사찰의 법당문에 많이 나타난다. 절집의 살문은 그 구조에 따라 대체로 날살문, 띠살문, 격자살문, 빗살문, 솟을살문, 통판투조꽃살문 등으로 나뉜다. 이 중 날살문은 문틀 안에 세로로 살을 지른 형태이고, 띠살문은 날살문의 위·아래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상·중·하 세 단으로 나누어 가로살을 지른 형태이다. 격자살문은 날살과 씨살을 같은 간격으로 질러 사각형, 즉 격자(格子)로 짠 형태를 말한다. 빗살문은 두 살을 45도 경사지게 걸쳐 빗살처럼 짠 형태인데, 여기에 꽃을 장식하면 빗꽃살문이 된다. 솟을살문은 날살과 씨살, 그리고 빗살까지 넣어 짠 형태로 여기에 꽃장식을 하면 솟을꽃살문이 된다. 통판투조꽃살문은 널판에 꽃을 비롯한 여러 무늬를 통째로 새겨 문틀에 끼운 형태로 성혈사 나한전을 비롯하여 정수사 대웅보전. 선암사 원통전, 용문사 윤장대 등에서 볼 수 있다. 이 중 날살문, 띠살문, 격자살문은 보통 꽃장식이 없고, 빗살문과 솟을살문은 꽃장식이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있는데, 꽃장식이 있는 것은 빗꽃살문, 솟을꽃살문이라 부른다. 통판투조꽃살문에는 반드시 화려한 장식이 수반된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꽃살문이란 빗꽃살문, 솟을꽃살문, 통판투조꽃살문을 한정하는 말이다. 절집의 꽃살문 중에서는 내소사 대웅보전, 통도사 대웅전, 쌍계사(논산) 대웅전, 정수사 대웅전, 성혈사 나한전, 기림사 대적광전의 것이 아름답기로 이름나 있다. 꽃살문에 표현된 꽃은 연꽃, 모란, 국화가 주를 이루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관념적인 꽃들도 적지 않고, 정수사 대웅보전처럼 화병에 꽃을 꽂아 놓은 모습을 그린 것, 성혈사 나한전의 경우처럼 연못의 풍경을 묘사한 것도 있다. 정면 3칸인 오어사 대웅전은 중앙의 어칸(御間)과 왼쪽의 좌협칸(左挾間), 오른쪽의 우협칸(右挾間)에 각각 3짝씩의 문이 달려 있는데, 열어서 들어 올릴 수 있는 분합문(分閤門)이다. 총 9짝의 문에 모란, 국화, 연꽃, 연꽃봉오리 등 4가지 모양의 꽃장식을 했는데, 꽃살문의 종류로 보면 빗살문에 여러 가지 꽃장식을 한 빗꽃살문에 해당한다. 중앙에 있는 어칸의 경우 가운데 문에 모란을 18개(1개는 탈락), 그 좌우의 문에는 국화를 각각 18개씩 배치하였다. 좌협칸의 경우 가운데 문에 연꽃이 15개, 연꽃봉오리가 3개(가운데 세로줄 맨 위에 하나, 맨 아래에 둘) 있고, 그 좌우의 문에는 국화가 각각 18개씩 조각되어 있다. 우협칸의 경우 세 짝 모두 18개씩의 국화가 장엄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오어사 대웅전의 꽃살문에 장식된 국화, 모란, 연꽃(연꽃봉오리 포함) 등 세 종류의 꽃 중에서 국화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좌협칸의 가운데 문에 표현된 꽃은 그동안 모란으로 알려져 있었다. 옆에 함께 있는 봉오리도 모란봉오리로 잘못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어칸 가운데에 표현된 모란(18개)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우선 가운데가 비교적 평평한 모란에 비해 연꽃은 이 부분(씨방)이 도드라져 보이는 특징이 있다. 또 가장자리가 비교적 둥그스름한 모양의 연꽃에 비해 모란은 굴곡을 많이 주어 풍성한 꽃잎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옆의 봉오리는 당연히 연꽃봉오리로 봐야 한다. 비슷한 모양의 내소사 대웅보전과 쌍계사(논산) 대웅전의 경우도 전문가들은 연꽃으로 보고 있다. 꽃살문으로 소문난 내소사 대웅보전, 통도사 대웅전, 쌍계사(논산) 대웅전, 정수사 대웅전, 성혈사 나한전의 꽃살문 중에서 오어사 대웅전은 전체적으로 내소사 대웅전의 꽃살문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 주고 있다. 꽃살문의 구조가 내소사와 같은 빗꽃살문이란 점에서 그렇고, 새겨진 꽃의 형태와 조각 기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다만 내소사의 꽃살문이 오어사 꽃살문보다 꽃의 종류가 다양하여 국화, 모란, 연꽃 외 다른 꽃들도 보이며, 깊게 파서 입체감을 강조하는 등 조각 수법에서도 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다. 구조면에서도 내소사 대웅전엔 빗꽃살문 외에 솟을꽃살문도 있어 오어사 대웅전 꽃살문보다 화려한 편이다. 그리고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에는 꽃에 앉은 나비를 장식하여 멋을 잔뜩 부리는 한편 장인의 능숙한 솜씨를 맘껏 뽐내기도 한다. 오어사 대웅전의 꽃살문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어칸 가운데 문에 새겨진 모란 문양이다. 여기에 표현된 모란은 모란 특유의 풍성한 꽃잎을 매우 정교하게 묘사하여 실제 꽃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소사 꽃살문에 표현된 모란보다 더 아름답다. 오어사 대웅전 꽃살문은 언제 제작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으나 문의 노후 상태 등을 감안하면 1741년 대웅전을 중건할 당시에 제작한 것으로 짐작된다. 오어사 대웅전 꽃살문은 그 가치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그 이유는 오래전에 입혔던 단청의 색이 많이 바랬고, 문살에 먼지가 너무 많이 끼어 그 화려함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박창원 동해안민속문화연구소장

2026-06-04

지방선거, 승리하셨나요?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내가 참 좋아하는 노래, 시인과 촌장의 ‘풍경’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정말로 모든 것들에게는 제자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곳으로 돌아가는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싶다. 반대로 무언가가 제자리가 아닌 곳에 위치해 있는 모습은 대부분 썩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니다. 한동안 거리에 걸려 있던 수많은 선거 현수막과 벽보들, 도로를 누비던 선거 유세 차량들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던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그랬다. 푸르른 녹음을 가린 홍보물들과, 일상의 고요를 헤집던 소음들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선거가 끝난 다음 날 아침, 누군가는 아주 개운한 마음으로 아침볕을 맞이하였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참담한 마음을 애써 가누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선거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긴 사람과 진 사람을 낳는 일이다. 이긴 사람은 당선자들이고 진 사람은 낙선자들일 거라고 단정 짓기 쉽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는 출마한 사람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뽑는 사람들을 위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출마자들은 수많은 유권자 중 일부일 뿐이기 때문에 그들의 승패만을 고려하는 것은 다소 편협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라 해야 옳은 말이 되는가. 내가 뽑은 사람이 당선되었다면 이긴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진 것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완전히 옳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정당과 정치인들이 언제나 정직한 마음으로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모를까, 그들 안에서도 나쁜 이들을 좋은 이들로 포장하는 속임수가 오가고, 그들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를 속이는 경우들이 있다. 우리가 옳다고 믿고 내린 선택이 정말로 옳은 경우도 있겠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결론을 맞닥뜨리는 경우도 흔하다. 너무나도 뻔한 말일 수 있지만 선거에서 이긴 사람들은 그 선거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모든 사람들이다. 내가 뽑지 않은 사람이 당선되었더라도 그가 나의 삶에 도움을 주는 정치와 행정을 펼친다면 이긴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진 것이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이 선거의 승자와 패자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당선인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당선인들이야 각자 마음먹은 바가 있을 것이고 임기 내내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겠지만 결국 그들 개개인은 인간이다. 사람의 마음과 신념이란 단단하게 굳어있는 것이 아니고 외적인 요인에 의해 조금씩 다른 형태로 변화하기도 하는 것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한 이가 변절할 수도 있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뛰어든 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유권자들의 태도다.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들이 바로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후보들 모두 얼마나 절박한 얼굴들이었던가. 그들의 임기를 4년으로 끊어낼지, 아니면 더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도록 허락하거나 더 큰 도전의 가능성을 열어줄지에 대한 결정은 유권자들이 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선거에 출마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자신들의 입으로 약속했던 것들을 지키려 노력하는지, 아니면 얄팍한 눈속임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지 또렷한 눈으로 지켜봐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 가는지, 그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면밀히 살피고 기억해야 한다. 당선된 이들은 대부분 다음에도 우리의 선택을 받고 싶어 할 것이고, 낙선한 이들 또한 대부분 다음번에는 다른 결과를 받아들고 싶어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태도로 인해 선거의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022년 지방선거비용으로 4437억원 정도를 지출하였다고 보고했다. 수천 호의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수 있고, 수십만 명의 학생들에게 1년간 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돈이다. 게다가 선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출 외에도 경제적으로 환산해야 하는 유무형의 가치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투입되는 일이다. 이렇게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치른 선거인데, 이겨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즐겨 보던 한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정치란 옳은 선택을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선택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제 이 선거의 결과를 승리로 만들어 나갈 시간이다. /강백수 (시인)

2026-06-04

천천히 입을 연다

올해 5월은 내게 힘든 달이었다. 첫 주부터 지독한 목감기에 걸린 탓이었다. 목감기야 살면서 몇 번쯤은 겪어냈으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번 감기는 유독 증상이 심했다. 발작하듯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새벽에도 몇 번씩 잠에서 깼고, 목구멍 안쪽이 따가워 목캔디를 달고 살았다. 가장 문제가 된 건 목소리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완벽하게 나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목소리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목이 나가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는, 흡사 베놈과 다스베이더를 연상시켰다. 그 목소리가 무려 2주 넘게 이어지다가, 3주째가 됐을 무렵에는 반 정도 회복되었다. 한 달이 넘은 지금은, 원래 목소리의 95퍼센트 정도를 되찾았다.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시나요?” “말을 꼭 해야 하는 직업인가요?” 나는 첫 번째 질문에선 애매하게 고개를 저었다가, 두 번째 질문에선 자신 있게 고개를 내저었다. “당분간은 말을 아껴주세요. 그래야 호전될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말을 참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무려 한 달이나 갈 줄은 몰랐지만… 자의가 아닌 요인으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가장 증상이 심했던 첫 주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상대방에게 보여주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전부 취소했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목소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자체적으로 확인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히스테릭해졌다. 카페나 식당에 가도 주문하기가 힘들었고, 불만이 있어도 꾹 참아야만 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한 번도 소중하게 여겨본 적 없던 일이 힘들어지자, 굉장한 스트레스가 찾아왔다. 목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사탕과 도라지배즙을 챙겨 먹고, 밤마다 가습기를 틀어놓은 채 잠을 청해 보았지만 목소리는 나를 약 올리듯 주변만 빙빙 맴돌 뿐이었다. 원한 적 없던 묵언 수행을 이어가는 동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평소 얼마큼의 생각을 거친 후에 말을 꺼낼까? 나는 침묵을 견디는 게 어려운 사람이다. 특히 어색한 사람들,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일 때면 대화가 끊기는 순간을 참지 못하고 서둘러 말을 꺼내곤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채 다듬을 틈도 없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뱉은 말들, 별 의미 없는 말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면 그 말들이 하나씩 떠올라 후회가 밀려왔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됐던 말,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충분히 다르게 표현할 수 있었던 말들. 다음엔 이러지 말아야지, 수없이 다짐해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매번 비슷한 고랑으로 흘러 들어갔다. 목소리를 잃은 지 3주쯤 됐을 무렵, 혼자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 깜빡하고 이어폰을 두고 나온 탓에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는 것뿐이었다. 나는 책을 펼쳤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집중력이 계속 무너졌다. 카페 안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단 1분의 침묵도 없이, 대화 주제는 수없이 바뀌었고 웃음소리와 감탄사가 끊이질 않았다. 물론 카페에서 대화하는 것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만 나를 힘들게 한 건, 빽빽한 말 틈 사이 불편하고 불쾌한 이야기들이 적지 않게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평소라면 흘려들었을 말이 아무런 방어막 없이 귓가에 꽂혔다. 아마 본인들은 몰랐을 것이다. 나 역시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 누군가를 경악에 빠뜨릴 만한 말을 해왔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소설을 쓰다 보면 유독 자주 쓰게 되는 표현들이 있다. 나의 경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은 ‘천천히 말했다’가 그것이다. 시끄러운 카페 안에서 나는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그동안 그 문장을 적으면서, 천천히 입을 여는 인물들의 마음을 나는 얼마나 헤아리고 있었을까? 상대를 상처 입히지 않는 말하기, 내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뻗어 나가도록 돕는 말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의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꼭 말해야 하나요?” 평소라면 벌컥 말을 쏟아냈을 순간, 나는 숨을 고르고 천천히 입을 연다. /양수빈 (소설가)

2026-06-04

6월 4일 떠올리는 ‘공자 말씀’

누구라 특정할 것 없다. 수백만 명 도민을 위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행정을 펼치겠다는 자들이나, 소수지만 자신이 사는 동네 주민을 위해 이타적 자기희생을 하겠다는 결심을 가진 이들이 6·3 지방선거에 나왔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분명 ‘논어(論語)’를 읽었을 것이다. 공자와 제자들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묶어 만든 그 책엔 정치인, 보다 광범위하게 말하자면 지도자가 지녀야 할 품성과 덕목이 일목요연하게 담겼다. 그러니, 지방선거 출마자 모두가 ‘논어’의 주요 구절을 가슴에 새겼으리라 믿고 싶다. 공자가 살던 2500년 전이나 21세기인 지금이나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바람직한 지향에는 큰 변화가 없다. 인간은 그때도 인간이고, 지금도 여전히 인간이므로. 이제 선거는 끝났다. 누구는 승리했고, 누군가는 패배했다. 본디 선거란 게 그렇다. 패자가 없다면 승자도 없는 법.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위로를 전한다. 날이 날인만큼 주제넘지만 6·3 지방선거에서 승리해 도지사가 되고, 시장과 군수가 되고, 도의원과 시의원이 된 이들이 다시 떠올려야 할 ‘논어’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다. ‘논어’ 자로편(子路篇)을 펼치면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여기엔 간명하지만 무거운 뜻이 담겼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찾아오게 하라.” 섭공(葉公)이란 자가 ‘정치의 본질’을 물었을 때 공자는 이같이 답했다. 얼핏 보기에 쉬울 것 같다. 하지만, 실천도 쉬울까? 이번 지방선거 당선자들이 자신을 믿어준 유권자들에게 기쁨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정치가가 되길 기대한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6-06-03

감사하고 기억하자

미국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경기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것은 경기 시작 전 펼쳐진 짧은 의식이었다. 제복을 입은 군인 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소개되었고,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어느 날은 소방관이었고, 또 어느 날은 경찰관이었으며, 때로는 지역사회의 자원봉사자였다. 정치인이 아니었고 유명인도 아니었다.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바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들을 다니다 보면 또 하나 인상적인 풍경을 만난다. 작은 동네에도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다. 공원 한 켠, 시청 앞 마당, 혹은 재향군인회 건물 앞에. 비석에는 지역 출신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어떤 이는 전사했고, 어떤 사람은 살아 돌아왔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지역 공동체 속에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어도 그들을 기억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동네 사람들의 기억에 남긴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이념이나 구호가 아니다. 작은 기억과 진솔한 감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자신의 땀이 인정받을 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느낀다. 반대로 자신의 희생과 노력이 잊혀진다면 공동체와 거리를 두게 된다. 감사는 사람을 연결하고, 기억은 공동체를 묶는다. 우리는 어떤가. 지방선거와 정치 현안을 둘러싸고 사회는 극심하게 갈라져 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도 서로를 적으로 대하고, 같은 문제를 놓고도 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선거철에는 더욱 심하다.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공격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공동체는 쪼개진다. 포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남겨진 상처와 앙금은 시민들 사이에 머문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결국 모두가 같은 도시의 시민이다. 누구를 지지했든, 어느 당을 좋아하든, 태풍이 오면 함께 피해를 입고 경제가 어려우면 함께 걱정한다. 포항이 발전하면 모두가 혜택을 누리고, 쇠퇴하면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결국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형태의 ‘감사와 기억의 문화’가 아닐까.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가 함께 지역의 숨은 공로자들을 찾아 정기적으로 감사하는 행사를 만들면 좋겠다. 태풍 힌남노 당시 위험을 무릅쓰고 복구 현장을 지킨 시민들, 수십 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선생님들, 헌혈과 봉사를 꾸준히 실천한 사람들, 어려운 이웃을 돌본 사회복지사들, 지역경제를 묵묵히 지켜낸 소상공인들, 밤낮없이 시민의 안전을 지켜 온 소방관과 경찰관들을 시민 앞에 세우고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야구경기장에서도 좋고 시청광장에서도 좋다. 정치인을 위한 무대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무대가 되어야 한다. 선거에서 이긴 사람보다 지역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더 큰 박수를 받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는 기억하지 않을 때 무너진다. 감사하지 못할 때 차가워진다. 비판하는 법은 배웠지만 감사하는 법은 잊고 산 게 아닐까. 잘못을 찾아내는 데는 능숙하지만, 수고를 인정하는 데는 인색한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모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하다. 누군가의 헌신을 기억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일은 오래 남는다. /장규열 본사 고문

2026-06-03

무엇이 옳은지 잘 모른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하나는 그 행위 자체로 옳고 그름이 정해진다는 ‘의무론’이고, 다른 하나는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는 ‘공리주의’이다. 의무론은, 거짓말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고 그 자체로 옳지 않다는 입장이고, 공리주의는 거짓말이라도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나는 최근 몇 년간 재건축조합의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의무론적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공리주의 입장도 많이 수용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조합원이 100세대 이하의 소규모 조합은 ‘도시정비법’이 아니라 ‘빈집 및 소규모주택정비에 관한 특별법’의 적용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 원칙과는 좀 다르게 운영되기도 한다. 소규모 조합에서 민주적 절차를 모두 갖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서 임원 선거 등에서 일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별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일들은 일반적인 법 상식에는 맞지 않지만,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마련된 예외 조항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나는 예전보다 어떤 절차 자체의 옳고 그름보다 결과의 중요성을 더 크게 보게 되었다.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다. 집을 나간 말이 튼튼한 말을 데리고 오고,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다리가 부러졌는데, 전쟁이 나서 군대에 안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재앙과 행복이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떤 법적 절차를 최상의 수준으로 지켜야 한다는 옳음을 주장하다가 사업 실패라는 큰 화를 당한다면, 그 옳음은 진정한 옳음이라 하기 어렵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다”면서 “하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 누가 그 이유를 알겠는가? 그러니 성인조차도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이 있다. 재앙과 행복, 옳고 그름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것이기도 하니, 어느 행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을 심하게 나누지 말고 ‘아주 심한 악’만 제거하자고 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 사전 선거는 끝나고 본 선거만 남았다. 막바지에 접어드니 한층 더 후보들의 작은 실수와 흠결을 부각하며 인신공격이 극심해진다. 그러나 선거는 완벽한 도덕적 무결함을 겨루는 시험장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으로 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실적인 선택의 장이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고, 시장 등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고, 교육감을 뽑는 것은 현재와 미래세대의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잘살기 위해서다. 그러니 어떤 후보의 잘못은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니 어떤 후보를 쉽게 비난하고 악인으로 규정하기보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바라보며 판단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노자가 말한 ‘누가 옳고 그른 까닭을 알겠는가‘라는 물음의 의미이다. /유영희 인문학자

2026-06-03

여름철 냉방병보다 무서운 냉방 통증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냉방병을 걱정한다. 에어컨이 강한 실내에 오래 있으면 두통이 생기고 몸이 나른해지며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진료실에서는 냉방병보다 더 자주 만나는 문제가 있다. 바로 냉방으로 인해 악화되는 관절통과 근육통이다. 특히 여성 환자들은 에어컨 바람을 쐬면 무릎이 시리고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아프거나 여름인데도 양말을 신고 잔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남들은 덥다고 하는데 자신만 추위를 심하게 느끼고 몸이 아프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몸은 적절한 체온이 유지될 때 근육과 관절이 가장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러나 차가운 환경에 오래 노출되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액순환이 떨어지게 되고 이에 근육은 긴장하고 관절 주변 조직은 뻣뻣해진다. 목디스크나 허리디스크가 있던 사람은 통증이 심해질 수 있고 평소 무릎이 좋지 않던 사람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통증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특히 여성들은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고 말초혈관이 예민한 경우가 많아 손발이 차고 냉기에 민감한 경우가 많다. 손발이 차고 아랫배가 차며 쉽게 피곤해지는 사람들은 냉방 환경에서 증상이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는 참고 지내던 통증이 여름철 에어컨 사용이 시작되면서 갑자기 심해지는 경우도 많다. 출산 후 관절 통증을 오래 겪은 산후풍 환자들은 냉방에 특히 민감하다. 산후에는 인대와 관절이 약해진 상태여서 찬 기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손목, 손가락, 무릎, 발목 등의 통증이 심해지거나 온몸이 쑤시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몸이 차고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면서 순환을 돕는 치료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계지와 황기 같은 약재를 조합해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처방을 사용하면 산후풍과 관절통에 효과적이다. 몸이 차고 쉽게 피로하며 땀이 많거나 기운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약재를 활용한 처방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잘 붓거나 체중 증가와 함께 관절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피부와 근육 사이에 정체된 수분이 순환을 방해한다고 보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마황과 계지 백출 등의 조합을 활용하여 체표의 순환을 촉진하고 정체된 수분을 배출시키는 처방을 한다. 몸의 순환이 개선되면서 부종이 감소하고 관절 주변 조직의 부담이 줄어들어 통증 완화에 도움이 되는 경우를 임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처방은 통증과 함께 체중 감량에도 도움이 된다. 냉방 통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실내 온도를 지나치게 낮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에어컨 바람이 목, 어깨, 무릎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하고 한 시간에 한 번 정도는 일어나 가볍게 움직이고 햇볕을 쬐며 혈액순환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평소 손발이 차거나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여름에도 몸을 따뜻하게 관리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여름이라고 해서 무조건 시원하게만 지내는 것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여성이나 산후풍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냉방이 냉방병보다 더 무서운 관절 통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여름철에도 몸의 온기와 순환을 지키는 것이 건강한 관절을 유지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6-06-03

미국 IRA에 비추어, 포항과 경북의 산업을 어떻게 전환해야 하는가

기후위기는 더 이상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 가뭄과 산불은 이미 우리 삶과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각국이 탄소중립을 국가 목표로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최근의 탄소중립은 단순한 환경정책을 넘어 경제정책이자 산업정책으로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이다. 많은 사람들은 IRA를 기후위기 대응 정책으로 이해한다. 전기차를 지원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며 수소산업을 육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IRA를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이 IRA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래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자동차와 배터리, 반도체, 수소산업, 핵심 광물과 첨단 제조업의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이 그 안에 담겨 있다. 다시 말해 IRA는 환경정책인 동시에 산업정책이다. 탄소중립을 추진하면서 제조업을 육성하고 일자리를 만들며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전략인 것이다. 미국은 단순히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머물지 않는다.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정부가 투자하며 기업이 그 위에서 움직이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탄소중립을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통해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새로운 무역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보다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한민국에도 예외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제조업으로 성장한 나라다. 자동차와 조선, 기계와 전자산업은 모두 제조업 기반 위에서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제조업의 출발점에는 철강산업이 있다. 철강은 단순한 하나의 산업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의 재료이고 조선산업의 골격이며 기계산업의 기반이다. 철강이 흔들리면 제조업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철강산업의 중심에 포항이 있다. 포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어 온 철강산업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 포항은 또 한 번의 전환점 앞에 서 있다. 탄소중립경제 시대가 철강산업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이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하느냐가 경쟁력이 되고 있다. 철강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 중심에 수소환원제철이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 미래 철강산업의 핵심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유럽과 일본, 중국도 이미 관련 기술 개발과 상용화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수소환원제철을 단순한 기술개발 사업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철강회사의 투자 문제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가 산업 기반의 문제에 가깝다. 수소환원제철에는 막대한 양의 청정수소가 필요하다. 동시에 대규모 전력이 필요하다. 수소를 수입하고 저장할 항만과 저장시설이 필요하며 산업단지와 연결되는 배관망도 필요하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송전망 역시 필수적이다. 결국 수소환원제철의 성공 여부는 개별 기업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국가가 얼마나 체계적으로 수소 공급망과 전력 공급망을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속도로를 기업이 건설하지 않듯이 철도망을 기업이 구축하지 않듯이 수소 공급망과 에너지 공급망 역시 국가가 책임지고 구축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미국 IRA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국가는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분담하며 미래 산업의 기반시설을 구축한다. 그 위에서 기업은 투자와 혁신을 추진한다. 포항과 경북은 이러한 변화에 가장 먼저 대응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포항은 철강과 조선, 자동차 산업을 연결하는 국가 제조업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며, 영일만항을 통해 청정수소 공급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경북 역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산업단지와 항만을 바탕으로 전력과 수소를 연계한 산업 전환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에너지·물류·인력양성이 결합된 국가 차원의 산업 전환 사업이다. 따라서 포항과 경북의 산업 전환은 특정 기업의 투자 계획이 아니라 국가 전략사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탄소중립 선언이 아니다. 국가 차원의 산업전환 전략이다. 우선 수소환원제철을 국가전략기술로 육성해야 한다. 미래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할 핵심 기술인 만큼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둘째, 포항을 저탄소철강특구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철강산업 전환에 필요한 연구개발과 실증사업, 규제혁신과 세제지원이 집중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포항 저탄소철강특구는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미래를 시험하는 국가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포항은 산업화를 상징했던 도시에서 산업 대전환을 상징하는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셋째, 영일만항을 중심으로 국가 차원의 청정수소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수소 생산과 저장, 운송과 공급 기능을 갖춘 국가 수소허브 조성이 필요하다. 넷째,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전력망과 에너지 인프라 구축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다. 수소환원제철은 결국 수소와 전기가 있어야 작동한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청정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고 충분한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면 상용화는 어렵다. 따라서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국가 전력망 확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수소 생산기지를 연계하는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과거 고속도로와 철도가 국가 성장의 기반이었다면 앞으로는 수소 공급망과 전력망이 산업 성장의 핵심 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섯째, 산업 전환 과정에서 정의로운 전환 원칙이 구현되어야 한다. 탄소중립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는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는 만큼 기존 산업의 변화도 함께 나타난다. 따라서 노동자와 협력업체, 지역사회가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충분한 지원과 재교육, 새로운 일자리 창출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탄소중립은 더 이상 환경정책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산업정책이며 에너지정책이고 국가경쟁력의 문제다. 오늘날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과 산업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 자체가 새로운 성장전략이 되고 있다. 미국 IRA가 보여 주듯이 탄소중립은 규제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누가 먼저 기술을 확보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느냐에 따라 미래 산업의 주도권이 결정된다. 포항과 경북은 탄소중립을 새로운 산업 질서를 선도할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철강산업의 전환은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포항과 경북은 대한민국 산업 전환의 시험장이자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철강산업의 탄소중립 전환과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 동해안 에너지 인프라 확충이 성공한다면 대한민국 제조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 결국 수소환원제철은 철강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에너지 인프라의 문제이며, 결국 국가 산업정책의 문제다. /유성찬 포항환경연대 공동대표

2026-06-03

서울 병원 갑니다

접시꽃 잘 핀 길가 화단을 가꾸며 포항에 와서 집필실이라 칭하는 빌려 사는 건물 아래층 식당에 일주일이 멀다 하고 입구에 네임팬으로 서울 병원 갑니다, 쓰여 있어 그 글귀가 수상하여 물었다 남편이 암이라, 서울로 가라고 했단다 짤 눈물 없는 얼굴에서 흐르는 또 다른 절망 죽을 때 죽더라도 최선을 다하자고 평생 번 돈, 치료비 혹은 교통비로 KTX는 너무 비싸 새벽 첫 고속버스 탄다고 그렇게 진료받고 병원 변두리에서 하루 자야 한다고 문제는 살 수 있는 건강이라면 감당하겠지만 끝이 없는 길, 포기할 수 없는 사랑, 혹은 목숨 저 칠십 평생의 저물어가는 삶, 돈으로 지탱이 된다면야 빚이라도 내겠지만 가망 없는 것에 기대는 희망이라는 절대적 이율배반과 무능함 포항의 그 많은 병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정치적인 문제는 아니었을까 지방분권의 의지는 있는가, 에라, 나도 그 암에 걸려보자고 핑계로 낮술에 젖는다 천망회회라도 이익과 능력과 이기주의 앞에서는 말짱 도루묵이다, 이런 사실을 모른 척하며 외면하는 나쁜 전문가들, 책임을 회피하고 이익은 공유하는 집단을 반드시 제거해야겠다는 의협심에 젖어가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희망 담을 용도를 상실한 접시꽃이 서울로 길을 나선다. ………. 글 그대로다. 무식한 전문가의 결탁과 외면이 두렵고 무섭다. 명예와 주지도 않았지만, 금전과 생색을 내기 위한 메뉴판에 등장하는 대가로 챙기는 실력은, 도무지 검증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이 난무하지만, 그래서 서울로 간다. 팔아 조지고, 찾아 조지고, 불려다니며 조지고, 기타 등등. 정을병 선생의 ‘육조지’란 소설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주판알을 튕기는 유력한 정치가들의 생계형 직업에 희생당하고 유린되는 국민은, 바로 내 앞에, 내 사무실 아래에 있다. 벌어봤자 본전도 못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다. 이것을 두고 대략난감이라 해야 하나, 우리 삶이 그렇다. 6억이 성과금이라는 현실에서 본전은 고사하고 까먹을 돈도 없는 우리는 오늘도 서울이라는 병원으로 간다. /이우근 시인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6-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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