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6월 5일은 국악의 날이다. 우리 전통음악의 가치를 되새기고 국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국악의 날이 제정된 지 2년째를 맞으며 문득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언젠가 포항에서도 정악(正樂)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공연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역에서 문화예술 기획을 하며 국악 공연을 무대에 올려왔다.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국악이 가진 힘이 결코 작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실은 늘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국악을 어렵고 낯선 음악으로 생각한다. 공연 홍보를 하다 보면 “국악은 잘 모르겠다”거나 “재미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관객을 공연장으로 이끄는 과정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하지만 막상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사물놀이의 힘찬 울림에 감탄하고, 민요의 구성진 가락에 박수를 보낸다. 대금과 해금의 선율에 깊이 빠져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국악은 영상으로 보는 것과 공연장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고.
최근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퓨전국악이나 창작국악 공연이 많이 늘어 젊은 세대들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매우 반갑고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국악의 원형과 본질을 보여주는 음악을 만날 기회도 함께 늘어야 한다. 그 중심에 정악이 있다.
정악은 조선시대 궁중과 선비 사회의 ‘바른 음악’이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 수제천, 영산회상과 같은 대표적인 음악들이 모두 정악의 범주에 속한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절제와 균형을 중요하게 여기며, 빠름보다는 깊이를 추구하는 음악이다. 현대인들에게 정악은 어쩌면 가장 낯선 음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악을 직접 듣다 보면 오히려 그 느림 속에서 특별한 감동을 발견하게 된다. 서두르지 않는 선율, 음과 음 사이의 여백, 절제된 아름다움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냈던 여유를 되찾게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속도 속에서 피로한 사람일수록 정악이 가진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 정악은 우리에게 잠시 멈추어 귀 기울이는 법을 알려준다. 빠르게 소비되는 문화가 아닌 오래 음미하는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준다.
포항은 산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문화적으로도 풍부한 잠재력을 가진 도시이며, 시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국악 공연의 영역도 조금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사물놀이와 민요, 퓨전국악을 넘어 정악과 같은 전통음악의 깊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문화는 접할 기회가 있을 때 성장한다. 국악의 날을 맞아 바라는 것은, 포항에서도 시민들이 정악 공연을 통해 우리 전통음악의 깊이와 품격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통은 과거에 머무는 유산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향유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문화가 된다. 국악의 날이 지역에서도 정악의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언젠가 포항의 공연장에서 수제천과 영산회상, 종묘제례악의 장중한 선율이 울려 퍼지는 모습을 만나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손철호 지역문화포럼 따로또같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