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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르반테스 생가 앞에 선 여행자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의 도시를 걸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알칼라 데 에나레스의 조용한 거리 한복판이었다. 과거의 숨결이 배어 있는 건물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붉은 벽돌과 마당에는 아담한 정원이 있는 가정집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16세기 중산층 집이었다. 하지만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인 세르반테스가 태어나고 자란 생가로,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세르반테스가 여기에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을 틔웠고, 허구 속 진실을 추구하는 문학의 여정을 시작했다고 생각하니 내 가슴이 벅찼다. 문학의 세계가 물리적 공간이 되어 나를 맞이할 것만 같은 이곳은 다른 어떤 박물관보다도 정적이 깊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세르반테스의 고된 삶의 무게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레판토 해전에 참가해서 부상을 입었고, 해적에게 붙들려 5년 동안 알제리에서 포로 생활을 했던 그였다. 숱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돈키호테’를 출간해 인기를 얻었지만, 여전히 생활이 힘들었다. 병으로 사망한 뒤, 트리니티 탁발 수녀원에 묻혀 있던 그의 유해를 약 400년이 지난 2014년에 스페인 정부에서 찾았다고 한다. 생가 앞 도로에는 길게 뻗은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익숙한 두 동상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단정하게 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로 팔을 벌려 정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고, 다른 이는 팔짱을 낀 채 푸근한 인상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것 같은 사내였다. 그들은 바로 세르반테스와 산초 판사였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서 가만히 대화를 들었다. 내 따스한 눈길에 차가운 청동의 어깨 위로 문학이 스미는 듯했다. 기념사진을 찍었다. 웃음은 머금었지만, 마음속에는 웃음보다 더 오래 머문 질문이 있었다. ‘왜 그는 돈키호테를 써야만 했을까?’ 내가 갖고 있는 책 속의 서문을 보면 ‘기사도 이야기들이 세상과 대중 사이에서 떨치고 있는 세력과 권위를 부수어버리는 것이 목적’이라는 문구가 있다. 현실을 보지 못하고 과거에 사로잡힌 기사를 통해 무분별한 이상주의와 현실도피를 비판했다. 그러나 단지 풍자만 한 것은 아니었다. 세르반테스는 스스로도 가난했고, 투옥되었으며, 군인으로서 전쟁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돈키호테를 통해 자신의 좌절과 꿈을 투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인생을 단지 회한으로 쓰지 않았다. 현실은 고달프지만 인간은 꿈을 꾸고 웃음을 잃지 않기에 아름답다. 그러니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사람도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리라. 그는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었고, 웃음 속에 눈물과 철학을 스며들게 했다. 돈키호테는 꿈을 좇고, 산초 판사는 땅을 딛는다. 이상과 현실, 허구와 사실을 표현한다. 이상은 허무가 아니다. 비록 이룰 수 없더라도, 꿈을 향해 걸어가는 행위 자체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 세르반테스는 그것을 알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세르반테스는 둘 중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 둘이 함께 길을 떠나야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고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박물관 앞의 동상도 서로 등을 맞대거나 외면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세르반테스는 쉰을 훌쩍 넘긴 나이에 다시 펜을 들었다. 너무 늦었다는 사람들의 말도, 삶의 거센 풍랑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는 결국 이야기를 끝까지 써냈다. ‘돈키호테’ 1부는 58세였을 때, 2부는 68세가 되던 해에 세상에 나왔다. 그의 생가 박물관 앞에 선 여행자, 나는 문득 한 가지 바람을 품었다. 세르반테스로부터 실패를 견디는 자만이 진짜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배웠으니, 나만의 돈키호테와 나만의 산초, 그리고 나만의 풍차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담히 써내려가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었다. 진심이 깃든 수필집 한 귀퉁이에 쓰인 내 문장이 세르반테스처럼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어주기를 바랐다. /정미영 수필가

2025-07-16

곡강천(曲江川)

곡강천 상류로 가면 깊고 융숭한 풍경을 형성시키는 존재들이 있다 갈대와 억새가 풍성하다 그들은 무성해도 질서는 정연하다 천천히 술렁거리는, 바싹이는 소리가, 귀를 뚫고 마음에 거대한 뿌리를 심는다 어슬렁거리는 느린 자세이지만 확실한 연대(連帶)의 자세를 보여준다 전진(前進)의 의미를 안다 고인돌이 왜 주위에 산재(散在)해 있는지 충비 순량의 절개도 천하삼절길의 의미도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부분일 뿐이다 다만 하나의 꼭지점이 된다 변곡(變曲)이라 말하지 마라 그저 곡강의 완곡한 흐름, 그 푸른 깊이를 저물도록 바라보았다 냇물보다 깊고 강처럼 길게 흘러 바다에 이르는 법을 오래 바라보았다 인생은 길게 바라보는 사람의 몫이다 승리든 쟁취든 이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것을 가지기에 그 공허(空虛)를 알지 못한다. 완곡하게 사래질을 하며 물러서는 곡강천을 다잡아 같이 걷는다 민물의 해조음(海潮音)을 듣는다 가당찮지만, 가능한 삶. ……. 갈대나 억새들이 바람에 부대끼는 소리는 늘 좋다. 황동규 선생의 시 구절, ‘당신이 나에게 바람 부는 장면을 보여주며는 나는 얼마든지 쓰러지는 갈대의 자세를 보여주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읽은 시지만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대학로에서, 출판회관에서, 초상집에서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선생을 보듯 곡강천을 음미하며 오래 걸었다. 그는 너무 말라 있었고, 나도 늙어 간다. 곡강천만 내내 푸르다. /이우근 .. 이우근 포항고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문학선’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시집으로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빛 바른 외곽’이 있다.   박계현 포항고와 경북대 미술학과를 졸업했으며 개인전 10회를 비롯해 다수의 단체전과 초대전, 기획전,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여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2025-07-16

곤혹스러운 질문

우리 한글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과학적이고 쉬운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글자의 원리를 깨닫고 읽어내는 것을 볼 때이다. 손주들이 글눈을 뜰 때는 주로 간판을 읽었다. 유치원을 오갈 때, 신호등 앞에서 정차해 있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글자를 가리키며 읽게 하고, 잘못 읽으면 바로잡아 주는 식이었다. 좀더 크자 움직이는 차에서 손자와 손녀는 간판을 읽되 게임을 하곤 한다. 간판의 글자를 거꾸로 읽거나, 받침 없이 읽는 내기를 하고, 그렇게 읽어낸 소리가 우스운지 깔깔댄다. 무의미한 소리가 재미있는지 더 많은 간판이나 글자를 읽어내려 겨룬다. 몇 자 안되는 간판보다 움직이는 버스나 택시의 광고 문구를 먼저 찾아 읽는 게임을 하더니, 요즘엔 현수막의 긴 문장이나 광고 문구를 찾아 읽는 식의 게임으로 발전한 것을 본다. 그럴 때 애들 눈에 포착된 현수막은 대체로 정당 현수막이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대부분의 광고 현수막은 일정한 장소에 설치된 현수막 게첨대에 있어서 아이들 눈에는 포착이 안되는 것 같았다. 대신 정당 현수막은 대부분 교차로의 사방에 불법적으로 게시되어 있어 정차할 때마다 눈에 잘 띄는 게 문제였다. 지난 4월 선거 때에는 난무하던 그 많은 현수막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현수막의 수와 양뿐 아니라 엄청나게 선정적인 내용엔 기함할 정도였다. 작년 12월부터 상호 비방 현수막이 덕지덕지 붙었었고, 선거 기간엔 무법천지 현수막으로 도배되었다. 선거라서 참아주자 했더니 선거도 끝난 최근엔 또 다른 내용, 서로 다른 정당을 비방하는 현수막이 교차로마다 걸려있어 눈살을 찡그리게 한다. 문제는 그걸 읽는 눈이 저 어리고 해맑은 아이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어제 본 현수막, 그 중에서도 많이 순화한 현수막 하나를 예로 들어본다. ‘부적격·무능력·부도덕 장관 임명 반대 국민 눈높이로 송곳 검증하겠습니다.’를 단숨에 읽던 손녀가 어김없이 묻는다. “할머니 부적격은 뭐야? 무능력은 뭐야? 부도덕은 뭐야?” 단어 설명을 예를 들어 대강 해 주니 이해가 되었던지 “그러면 왜 그런 사람을 장관에 임명한대?” 송곳 검증이 아니라 송곳 질문을 해댄다. 이런 해맑은 질문에 현명하고 깔끔하게 대답해 낼 할머니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고 싶다. 나는 대강 얼버무리면서 마침 바뀐 신호등에 고마워하며 자동차의 엑셀에 화난 발을 올린다. 정당 현수막은 읍면동에 2개씩만, 어린이보호구역과 소방시설 주면은 설치 금지, 보행자나 차량 운전자의 시야를 가릴 우려 있는 교차로, 횡단보도, 버스정류장엔 몇 미터 이상 높이 설치해야 한다지만 이 법조차도 눈가리고 야옹이다. 디지털 시대, 얼마나 좋은 모바일 매체가 많은가. 이런 시대에 저런 구닥다리 정치광고를 하다니 참으로 한심한 국회요 정당이다. 정치 혐오 일으키지 않는 현명한 국회나 정당은 애당초 글렀나 싶다. 흉물스러운 현수막 게시하는 정당이나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한다면 없어질까. 글눈 뜬 아이들에게서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고 싶지 않은 이 할미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려나. 슬픈 나라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7-16

나는 왜 쉬어도 피곤할까

요즘처럼 과로하지 않아도 분명히 쉬었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잠을 자도 개운치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무겁고 머리가 멍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은 단순한 피로를 넘어선 신체 전반의 조절 이상일 수 있다. 한방에서는 이런 상태를 기가 허하다 또는 진액이 부족하다라고 설명을 했고 최근 과학은 부교감신경의 기능이 저하된 것으로 본다. 현대인의 생활은 겉보기에는 편해졌지만 내면의 긴장은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알림, 업무 압박, 대인관계의 부담은 교감신경을 항상 깨어 있게 만드는데 이는 반대로 부교감신경의 회복 시스템을 억제한다. 부교감신경은 우리 몸이 재생하고 회복하며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필수적인 시스템이다. 잠을 자는 동안, 식후에 쉬는 동안, 혹은 명상이나 호흡을 할 때 이 신경이 작동을 하는데 늘 긴장 상태에 놓인 사람의 경우 이 회복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지치는 상태를 정기가 약해진 상태 혹은 진액이 고갈된 상태로 보고 약을 썼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와 과도한 발한, 식사 불균형, 야간 활동의 증가 등은 체내 수분과 기운을 빠르게 소모시키고, 비위장의 소화 및 흡수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럴 때는 충분히 쉬더라도 회복을 위한 에너지가 없기에 피로가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환자한텐 진액을 보충하고 기를 채워주는 처방을 활용한다. 맥문동이나 당귀 숙지황 같은 약재들로 진액과 기를 동시에 보충해준다. 비위가 허약하여 기운이 오르지 않고 항상 나른한 경우에는 인삼과 황기 같은 약재를 사용해 비위를 보하면서 기를 끌어올리는 약을 사용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교감신경이 항진되어 심화가 위로 치솟아 잠을 방해하고 심신을 피로하게 만드는 경우에는 산조인 복령 등 안신 작용을 가진 약재를 활용해 뇌와 신경계의 흥분을 가라앉힌다. 일상에서는 기계처럼 쉬는 것이 아니라 회복되는 휴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식사 후 바로 눕지 않기, 가벼운 산책과 복식호흡, 땀을 너무 많이 흘리지 않도록 체온 조절하기, 단 음식이나 인공 감미료 섭취 줄이기 등이 모두 부교감신경을 되살리는 실질적 행동이다. 명상이 가능하면 명상을 하루에 30분 가량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명상은 교감신경을 낮추고 부교감 신경을 올리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명상이 힘들다면 걷기나 천천히 달리기 같은 육체 운동을 꾸준히 해도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한방치료가 병행된다면, 단순한 휴식보다 훨씬 깊고 근본적인 회복이 가능해진다. 쉬어도 피곤한 사람은 이미 몸의 회복 회로가 마모된 상태다. 단순히 잠자는 것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 에너지를 쌓을 수 있는 몸의 조건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한의학 치료가 가장 빠른 방법일 수 있디. 한의학의 처방들은 수천 년간 이런 쪽의 회복에 효과적인 것이 검증되어 왔다. 기혈진액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자율신경의 균형을 맞춰주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피로는 단순의지력 부족의 문제로 보지 말고 몸이 도와달라고 보내는 구조신호로 보고 적극적인 치료와 휴식으로 부교감신경의 회복 능력을 올려 보자. /박용호 포항참사랑송광한의원장

2025-07-16

시험지 유출 사고, 관리 시스템엔 문제없나

안동의 한 고교에서 일어난 시험지 유출 사고는 관련자 3명이 구속되고 해당 학생이 퇴학 결정되면서 일단 마무리되었으나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크다. 학부모와 기간제 교사가 짜고 한밤중에 학교에 들어가 시험지를 훔치려 했고, 학교시설 관계자는 이를 묵인하는 과정 등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나면서 교육에 대한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녀의 성적관리에 매몰된 학부모의 삐뚤어진 교육열과 이에 동조한 교사의 비도덕적 행위에 많은 사람들이 분개하고 있다. 해당 학생의 성적이 줄곧 상위권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져 시험지 유출이 이번만이 아닐 것으로 유추가 된다. 경찰 조사에서 보다 구체적인 정황 등이 밝혀지겠지만 가장 엄정하고 엄숙해야 할 교육 현장에서 비도덕적 범죄가 벌어진 것은 개탄할 일이다. 교육 당국이 나서 성적관리 전반에 대한 매뉴얼 점검을 벌이고 있으나 후유증이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특정 학생이 부정한 방법으로 성적이 올랐다면 묵묵히 공부해온 많은 학생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들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지. 또 민감한 시기의 학생들이 받을 심리적 충격을 어떻게 달래 줄 것인지 등이 숙제다. 시험은 공정성이 기본 잣대다. 성적평가로 상급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현행 교육제도 아래 불공정한 방법으로 성적이 조작된다면 교육의 신뢰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된다. 비단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시험지 유출 사고는 전국에서 종종 벌어진다. 지난달 말 전주의 한 중학교에선 쓰레기통에 기말 시험지가 버려져 있는 것이 발견돼 학교가 시험 일정을 미루는 소동을 벌였다. 이번 사건을 한 학부모의 일탈이나 기간제 교사의 부도덕의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 얼마나 긴장감을 갖고 학사를 관리하고 있는지도 반성할 문제다. 이것이 또 다른 현장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시험지 관리의 보안시스템을 재점검하고 확실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교육 신뢰를 찾는 길이다.

2025-07-16

여당에 주목하지만, 야당은 한참 멀었다

정당은 정치적 결사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당은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적 경쟁을 벌인다. 경쟁은 권력 쟁탈전에 머물지 않는다. 국민을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정책 비전의 경합이며, 더 나은 나라 운영을 위한 집권 능력의 시험대다. 유권자는 이 경합에서 신뢰할 만한 손에 나라의 운명을 맡긴다. 그렇게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다. 위임받은 정권을 경영할 위치에 서면 여당이 되고, 위임에 실패한 정당은 야당이 된다. 여당에게는 국정을 이끌 책임이 있고, 야당은 비판과 견제와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차기 정권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의 바람은 한결같다. 정권이 누구 손에 있든 국민의 일상을 평온하게 돌보아주길 바란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 현실은 여전히 허술하고, 무엇보다 야당의 모습이 안타깝다. 여당이 조기 대선을 통해 급하게 들어선 정권인 만큼, 정책 라인업이나 장관 후보 선임 과정이 매끄럽지 못한 틈도 보인다. 대통령의 인사권이 독립적이긴 하지만 권한은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책임성을 동반해야 한다. 지금 여당은 국민을 설득하거나 불안을 달래기보다는, 수적 우위로 밀어붙이려는 인상을 준다. 국민의 기대만큼 잘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더 걱정스러운 쪽은 야당이다. 여당이 흔들릴수록 야당은 국민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대안세력의 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 야당에게 그런 책임 의식이나 준비가 보이지 않는다. 비난은 있으나 대안이 없고 감정적인 대응은 있으나 체계적인 전략은 없다. 여당의 국정운영이 다소 일방적이라면, 야당의 대응은 지나치게 산만하다. 민주정치에서 야당은 단순한 반대자가 아니다. 국가를 운영할 능력과 도덕성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그것이 정권을 다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비판할 줄 아는 야당을 넘어 책임질 준비가 되어있는 야당이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바라는 야당의 모습이다. 여당이 국정을 잘못 이끌 경우에 공백을 메울 신뢰할 만한 야당이 없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여당의 실수보다 야당의 무능이 더 무서운 이유다. 야당에게는 정권 탈환을 위한 비전도 체계적이며 조직적인 준비도 국민에게 다가서는 언어도 부족해 보인다. 여당의 정책에 반사적으로 반대할 뿐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부족하다. 여당의 무능함이 야당의 존재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야당은 여당보다 더 성실하고, 더 준비된 모습으로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나라 살림은 여당이 하지만, 살림이 제대로 되는지 살피고 방향을 잡는 데는 야당의 몫이 크다. 여당이 밀어붙인다면, 야당은 정제된 언어와 설득력 있는 논리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반사적인 대응에 그치고 국민의 고통에 둔감하며 정권교체만을 외치는 현수막 구호로는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기 어렵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있다. 정권교체도 집권 경쟁도 그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여당에 기대를 걸지만, 야당이 이렇게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나라의 더 큰 문제다. 국민은 기억한다. 어느 당이 권력을 잡았는가보다, 누가 우리의 삶을 유능하게 책임질 것인지를. /장규열 고문

2025-07-16

경북도의 ‘농업대전환’ 성과 나오기 시작했다

‘농업대전환’을 목표로 경북도가 행정력을 집중해온 ‘경북형 공동영농’ 사업의 성공사례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봉화 재산지구 공동영농 법인에 가입한 26농가가 2년 전부터 21ha 면적에서 시설재배로 수박을 수확한 후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이모작을 추진한 결과, 농가당 연 평균 4억5000만 원의 수입을 올려 화제가 되고 있다. 한 농가당 보통은 4억 원 정도, 6농가는 1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일반적인 수박 재배 농가는 ha당 9000만 원 정도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동영농 방식은 개별 영농을 유지하면서 재배 기술을 서로 공유하고 방제, 유통, 판매 등을 협력하는 모델이다. 종자와 비료 등 농자재를 공동 구매해 경영비를 절감하고, 선도 농가의 기술 지도와 표준 재배 설명서를 공유해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농가 수입이 급증하자 우선 자녀들의 귀농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법인에 참가한 한 농가는 “아들이 가업을 잇는다고 들어와 함께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 우리 동네에 아기가 2명이나 태어났다. 농업대전환 덕분에 소득도 올라가고 마을이 활기가 넘친다”고 했다. 경북도는 올들어 ‘농업대전환 7대 전략‘을 발표했다. 7대 전략 중 첫 번째가 이모작 공동영농으로 농촌의 고령화, 저소득, 쌀생산 과잉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내용이다. 오는 2030년까지 이모작 공동영농을 9000ha까지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도 세워뒀다. 경북에서 전국 최초로 도입한 ‘주주형 공동영농 모델’은 정부 시책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7대 전략을 발표할 당시 “민선 8기를 시작하면서 농업대전환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농업대전환으로 경북도가 대한민국 농업의 대표 모델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의 약속이 농촌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봉화 재산지구 공동영농 법인처럼 앞으로 농업의 위상이 달라져 모든 농가가 자식에게 자랑스럽게 농사를 물려줄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기대한다.

2025-07-16

국민은 강선우·이진숙이 부끄럽다

상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질문 해보자. 당신은 집 변기가 고장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는가? 그게 조언이 필요한 문제인가? 세칭 한국과 미국 명문대를 나와 국회의원을 거쳐 한 나라 장관을 하겠다는 사람이 ‘깨우쳐 줘 도움을 준다’는 조언이란 단어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의정 활동을 돕는 보좌진에게 입법에 관한 조언이 아니라, 변기 수리에 대한 노하우를 조언해 달라 한 격이다. 변기가 망가졌다면 수리 업체에 전화하면 된다. 전화기 버튼 누를 손가락이 있다면 조언 없이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또 하나. 당신은 지난밤 먹고 남은 닭고기를 쓰레기와 함께 챙겨 내려와 출근하는 자동차 안에서 먹는가?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실소했다. 변명에는 설득력이 담겨야 한다. 그래야 수긍할 수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이번엔 이 나라 교사들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자신이 공격 받으면 공격의 화살을 제자에게 돌리라고 하는가? 그런 방식으로 곤경에서 벗어나는 자를 ‘스승’이라 부를 수 있을까? 교육부장관 후보자 이진숙은 논문 표절 의혹이 거세지자 ‘실질적 저자는 작성 기여도가 큰 본인’이라 해명했다. 이는 ‘표절한 사람은 내가 아닌 제자’라는 이야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2차대전 때 유대인을 가르치던 교사 한 명은 울부짖는 아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해 함께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들어갔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고, 죽음을 피해갈 수 있었음에도. 지금껏 ‘스승’이라 불렸을 이진숙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진보 진영에서조차 두 장관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엔 분명 이유가 있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16

내 마음의 에어컨

햇살이 나를 누르고 있다. 7월의 태양은 사람을 말리는 것이 아니라 눌러 짓누른다. 그늘에 있어도 더웠고, 냉방이 잘 된 실내에 들어가도 더운 기분이 사라지지 않았다. 냉기가 피부를 덮어도 마음속까지 닿지 않으면 더위는 여전히 내 안에서 끓는다. 바쁜 일상 속에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작년에 보고 올해는 처음이다. 바다가 바로 보이는 식당 창가에 앉자 웃음소리 사이로 철썩이는 물빛이 가볍게 스며들었다. 반가움은 말보다 눈빛으로 먼저 전해졌고 잔잔한 바다와 뜨거운 햇살, 시원한 바람이 그 순간을 환하게 감싸 주었다. 식사가 나왔다. 접시의 색감과 감바스의 마늘 향이 테이블을 감쌌고 카프레제의 토마토는 싱그럽게 빛났다. 여름은 성난 소처럼 쨍쨍거렸지만 바다는 여전히 반짝였다. 수박 주스 잔에는 투명한 얼음이 천천히 녹고 우리의 마음도 청량함으로 채워졌다. 음식을 흘리며 먹어도, 우걱우걱 씹어 먹어도, 새우 껍질을 마구 까도 흠이 두렵지 않은 편안함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목적은 없었다. 그저 어디라도, 조금이라도 더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섰다. 바닷바람을 기대하면서. 몽돌 해변에 도착하자 바람이 먼저 인사를 했다. 바다는 거짓말처럼 조용했고 바람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대듯 우리를 향해 한결같이 불어 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몽돌 위에 누웠다. 각자의 온기와 각자의 무거움을 품은 채. 바닷가에 3명이 나란히 누워 “우리 가을에는 여행을 갈까?” “우리 팔찌 하나 맞출까?”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더니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 바다에 누워 외로운 물새 될까 물새의 깊은 속을 항구는 알까.’ 우리의 노래는 떼창으로 이어졌고 옛날 유행가에서 찬송가까지 이어졌다. 노래는 마치 얼음 조각처럼 하나하나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내 마음속에 있던 열기, 조급함, 서운함, 어쩌면 말 못한 외로움까지 서서히 녹였다. 바깥은 에어컨으로 시원해도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은 뜨거워서 탈진할 때가 있다. 노래를 부르며 나는 알았다. 내기 진짜로 필요로 했던 것은 낮은 온도의 공기가 아니라 ‘함께 있음’이라는 시원함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많은 방식으로 더위를 피하려고 애쓴다. 강한 냉방, 차가운 음료, 그늘, 물놀이. 하지만 정작 식혀야 하는 것은 마음이다. 짜증, 서운함, 조바심, 염려 같은 마음의 열은 기계로는 식지를 않는다. 그것은 온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독이는 ‘존재의 온기’로만 가능하다. 결국 우리를 진정으로 식히는 것은 찬바람이 아니라 묵묵히 옆에 앉아주는 누군가의 숨결이다. 마음을 식히는 바람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곁에 머문 존재가 조용히 건네는 온기에서 비로소 분다. 온도를 낮추는 것은 기계지만 온도를 견디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날의 노래와 바람, 친구들과의 떼창, 그리고 몽돌 위에 누운 시간이 나에겐 ‘마음의 에어컨’이었다. 세상이 너무 뜨거워서 달아오른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한 냉기. 사람이 사람을 식혀주는 건 공기의 냉기보다 더 오랜 지속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가끔 너무 더운 말들을 내뱉고, 너무 뜨거운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 마음을 식혀줄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게 바다일 수도, 노래일 수도,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있다. 혹은 무심코 들은 “괜찮아”라는 말일 수도 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떤 순간에 마음의 온도를 낮출 수 있었는지를.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는 에어컨이 되어본 적은 있는지를. 여름은 계속된다. 기온도, 뉴스도, 삶도 뜨겁다. 몽돌 위에서 불렀던 노래처럼 아무 이유도 조건도 없이 곁에서 있어 주는 존재 하나가 마음의 온도를 내릴 수 있다. 어쩌면 내 마음의 에어컨을 찾아내고 누군가의 에어컨이 되어주는 일, 그게 여름을 견디는 우리의 방식일지 모른다. /김경아 작가

2025-07-15

역사 속 세르비아 민족정신대세르비아주의 탄생

세르비아인은 부족장을 ‘추판(Župan)’이라고 불렀다. 9세기 중엽 추판 블라스티미르는 자신이 견고하게 다져놓은 나라의 안정을 비잔티움제국과 친교를 통해 획득하려고 했다. 비잔티움제국을 괴롭히던 제1불가리아 제국은 멸망한 틈을 타 세르비아는 12세기에 들어와 내부적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지금의 몬테네그로 수도 포도고리차에서 세르비아 부족 중 강력한 힘을 자랑하던 네마냐가 세르비아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다. 그를 추판 앞에 위대함을 붙여 ‘위대한 추판’이라고 불렀다. 그는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로마 교황에게 일국의 왕으로 인정해 달라며 끊임없이 추인을 시도했다. 나라 안정과 발전을 위해 세르비아인 대부분이 믿고 있던 정교를 중심으로 단합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서기 476년 서쪽 로마가 오도아케르에게 함락당한 이후 기독교권을 이용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권력 중심에 있었다. 그에 의해 왕권을 인정받은 스테판 네마니치는 날개를 단 듯했다. 기실 교황청에 뇌물을 바치고 겨우 추인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마와 경쟁 관계였던 비잔티움제국은 12년 전 성지탈환을 빙자한 4차 십자군에 의해(메메트 2세 때보다 더한) 치욕적인 약탈을 당한 후, 프랑크인과 베네치아인에 의해 정략적으로 세운 라틴 황제 시대였다. 이때를 기회로 스테판 동생 사바 네마니치가 전면에 나섰다. 1219년 그는 비잔티움으로 달려가 왕국의 백성 모두 비잔티움제국 영향 아래 동방정교를 믿음으로 가진 하나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동방정교 독립교구로 승인 받는 기염을 토하면서, 세르비아 초대 대주교에 임명된다. 네마냐 왕조가 생산되고 100여 년이 흐른 후 위대한 세르비아민족주의, 대세르비아주의의 상징이자, 세르비아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한 스테판 듀산이 등장한다. 그는 세르비아 역사에 있어 가장 유명한 군주, 세르비아 최초 황제로 등극하는 영웅이다. 국경을 마주한 불가리아제국도 눈치를 보며 숨을 죽여야 했다. 특히 비틀거리는 비잔티움제국 영토를 야금야금 내 것으로 만들었다. 발칸반도 전역, 오늘날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비롯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까지 장악해 제국 영역에 포함시켰다. 1331년에는 발칸을 넘어 유럽 전역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자로 거듭났다. 그래서 후세 역사가들은 스테판 듀산 앞에 ‘강자(强者)’라는 별칭을 붙여 이미지를 상승시켰다. 그가 승승장구한 데에는 지리적 이점도 작용했다. 동․서로마 사이에서 교역로를 장악함으로써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부를 이용한 막강 용병으로 영토 내 반란을 진압하면서 북쪽 마케도니아 전역을 손에 넣는다. 스테판 듀산 스스로 ‘세르비아와 그리스의 왕’이라 부르며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영역에 세르비아 정교회 확산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자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비잔티움제국은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비잔티움제국은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 하필이면 호시탐탐 발칸반도를 노리고 있던 오스만트루크제국에게 SOS를 타전하고 말았다. 오스만으로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샘이다. 결국 이 잘못된 판단이 세르비아 네마냐 왕조 멸망은 물론 천년을 넘어 이어오던 비잔티움제국 종말을 앞당겼으며, 더 길게 보면 발칸반도 이슬람화의 초석으로 작용했다. 평생 전쟁터를 누비며 국경을 확장하기 위해 가는 곳마다 피를 뿌렸던 스테판 듀산, 1355년 그의 나이 46세가 되던 해에 콘스탄티노플에 갔다 오던 도중 급작스레 죽어버리고 만다. 세르비아의 걸출한 영웅이 쓰러지자 곧바로 제국은 몰락의 기운이 요동쳤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스테판우로스 앞에 네나먀 왕조 가운데 가장 무능한 인물로 ‘약자(弱者)’라는 별칭을 붙여 ‘약자 우로스 5세’라며 세르비아인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비잔티움제국은 자신들이 불러들인 오스만트루크제국이 압박을 가해오자 급기야 로마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세르비아를 비롯해, 불가리아, 보스니아, 헝가리 등 십자군이 꾸려지면서 기독교 연합군이 결성된다. 그러나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오스만트루크제국 적수가 되지 못했다. 1363년과 1371년 두 번에 걸친 마리짜강 전투에서 우로스를 비롯해 그 형제들까지 전사하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세르비아 귀족들은 듀산의 후손 라자르를 왕으로 옹립하고, 오스만제국에게 대항하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었지만, 이미 기력이 다한 후라 때는 늦었다. 코소보에서 오스만과의 한 판 대결은 결국 세르비아는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르비아는 코소보에서 오스만제국과 최후의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검은새의 들녘’ 코소보전투다. 역사를 거스르면 세르비아인 가슴에 피로 새겨진 정기와도 같은 땅 코소보에 알바니아인이 정착해 살면서 나라를 세운 작금의 현실이 이들로선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을 법하다. ‘지리란 역사가 그려 놓은 화판’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박필우 스토리텔링 작가

2025-07-15

사회주의 속을 알면 길이 보인다

우리 나라는 중국을 얘기하지 않고 경제와 무역을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1992년 8월 24일 국교를 수립하고 빠른 속도로 무역 규모가 커지고 있다. 수출은 이미 미국을 넘어섰고, 수입은 전체의 절반 가까이 되고, 우리네 밥상까지 침투해 있다. 하지만 중국에 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았다. 중국을 알려면 사회주의 사상과 통치체제, 기업과의 연관성을 알 필요가 있다. 중국 공산당의 사회주의 사상과 통치시스템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현실에 맞게 수정된 중국식 사회주의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체계는 국가 운영뿐만 아니라 기업 전략과 혁신시스템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다. 혁신 관점에서 보면, 공산당의 영도, 인민 중심, 공공 이익 우선, 계획 경제 요소와 시장 경제 요소의 병행 운영 등을 볼 수 있다. 최근 시진핑 신시대의 국가 전략 주요 내용은 첫째, 국가-시장 통합 운영이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원 배분의 결정적 역할을 하되 정부가 언제든 전략적 분야를 통제한다. 이것을 인지 못하고 자본주의처럼 시장원리에만 인식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섰고, 일순간 어떤 명분의 공산당 통제에 설비조차 그대로 둔 채 야밤 도주 철수하는 등 낭패를 보았다. 둘째, 과학기술 자립자강이다. 서방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혁신 역량 구축을 수십 년 전부터 선진 국가에 유학을 보내는 등 인재 역량을 확보해 왔다. 셋째, 다 같이 부유한 나라이다. 지역, 업종별 격차 해소와 중산층 확대를 위한 사회 안정을 추구한다. 이러한 것들의 성공 여부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과 지속성, 그리고 인민들의 신뢰성에 있다. ‘마차 타고 로켓을 쏘는 나라’라는 것은 중국을 상징하는 말이다. ‘자립 자강’ ’혁신형 국가건설‘, ’제조 25‘ 등의 국가 전략은 기업 혁신 전략과 연계된다. AI, 바이오, 항공우주, 양자 과학 등 미래를 위한 전략 산업에 막강한 투자를 하고 국유기업이 선두 역할을 한다. 중국 기업의 혁신은 시장 주도와 국가 주도의 혼합형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국유기업 혁신은 전략 산업에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고 R&D 예산과 인재를 국가가 지원하는 체제이다. 민간기업 혁신은 시장 중심으로 민간이 주도하되 정부가 규제 및 자금, 세제 인센티브로 조정한다. 성공한 기업은 통신의 화웨이, 전기차의 BYD, 알리바바 등이 있다. 즉 국가 정책과 국유 기업의 월드 클래스 수준들이 연이어 창성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1996년 중국 북경과 상해를 처음 갔을 때와 2008년 P사의 해외법인 청도 사업장을 지도하기 위해 갔을 때 기업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보통 사회주의 사상은 스스로 하는 주인 정신보다 시켜서 하는 마인드로 인식하고 있다. 청도 사업장은 혁신이 도입되고 스스로 개선하는 모습을 보고, 사회주의 사상에도 혁신 활동을 통해 마인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국가의 기업 지원체계와 혁신 마인드까지 장착하니 중국 사회주의 경제적 부상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혁신은 생각과 문화를 바꾼다. /정상철 미래혁신경영연구소 대표경〮영학 박사

2025-07-15

울릉도에서 펼쳐진 문화예술 이벤트

에메랄드빛 바다로 둘러싸인 신비의 섬 울릉도에서 깃발 작품들이 일제히 나부꼈다. 하얀 바탕의 천과 종이에 시(詩)를 품거나 묵향을 머금기도 하고, 울릉도·독도의 자연경관을 담은 작품 사진이 깃발로 만들어져 울릉군 주민들이나 관광객들의 손에 쥐어져 움직일 때마다 바람에 나풀거리곤 했다. 간혹 독도를 가거나 다녀온 관광객들의 손에 들려진 손태극기와 깃발 작품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은 지난 주 울릉군 도동항 일원에서 열린 2025 경북문화재단 예술거점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포항꿈틀로사회적협동조합에서 기획·주관한 ‘명불허_어전’ 2회차 체험형 테마 행사의 일부이다. 여기에 참여한 단체는 포항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포항서예가협회를 비롯 아라동화창작·사진모임포스·퐝프렌즈 등 4개 팀으로, 각 단체별 특색을 살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컨셉으로 이벤트를 진행했다. 사진모임포스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의 자연경관을 사진작가가 촬영한 풍경사진 작품을 현수막천에 실사출력, 깃발형태로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나눠주면서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국토와 독도 사랑을 일깨워줬다. 또한 아라동화창작과 퐝프렌즈에서는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간단한 체험도구를 통해 사전에 3D로 프린팅된 오방색 작은 모형배 위에 시(詩) 구절을 깃발 형태로 메모지처럼 꽂아 배부하는 활동을 진행하면서 진수식(進水式)의 의미를 암시하기도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포항서예가협회 작가들은 정사각·직사각형으로 디자인된 현수막원단에 울릉도 주민 또는 관광객들이 신청한 희망·염원의 글귀를 한글·한문·캘리그라피 등의 서체로 즉석에서 깃발에 휘호해 나눠주는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일련의 퍼포먼스는 울릉의 바닷가에서 진수식의 의미를 떠올리며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깃발을 만들고, 그 깃발에 이야기를 담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깃발로 이어지고 모여서 또 하나의 진수식이 되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바다를 삶터로 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어촌의 전설이나 유래담을 문화예술적인 접목으로 재현함으로써 다소의 안도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국토의 막내’같은 문화의 변방 울릉도에서 어부들의 바람인 진수식을 모티프로 예술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한 시도가 신선하고 고무적이다. 뱃길이 멀고 바람과 파고가 외세만큼이나 심한 독도는 민족의 자존심이자 울릉도 사람들에게는 앞마당이고 텃밭일 것이다. 어로의 곤고함을 뱃노래로 달래고 풍어와 만선(滿船)의 염원을 깃발로 나부끼게 하여 삶의 파도를 헤쳐가는 어부들에게 있어서의 진수식은, 간절한 마음이자 기원이며 소망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라져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연민과 보존, 계승으로 대안을 강구하고 새로운 활로를 모색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이처럼 깃발작품 퍼포먼스 같은 ‘찾아가는 문화 이벤트’를 비롯, 재작년 가을에 도동항에서 열린 ‘울릉도 독도 해녀문화제’같은 문화행사가 주기적으로 열리게 된다면 문화예술의 기반이 취약한 울릉주민들에게 문화생활 향유와 정서순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울릉도만의 독창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기획·운영으로 천혜의 관광자원과 더불어 문화예술이 꽃피어나길 기대해본다. /강성태 시조시인·서예가

2025-07-15

대구시 글로벌 스포츠 도시로 도약할 기회다

대구시가 지난 9일 이탈리아 로나토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 집행위원에서 2027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개최지로 최종 확정됐다. 인도 뉴델리와 아제르바이잔 바쿠 등의 경쟁 도시를 물리치고 세계적 권위의 스포츠 행사를 대구가 유치한 것은 큰 쾌거다. 대구가 200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와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한 이래 14년 만에 글로벌 스포츠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대구는 이제 명실공히 글로벌 스포츠 중심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전기를 맞았다.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도 “대구의 도시 브랜드가 국제 육상도시를 넘어 국제 스포츠 중심도시로 도약한다”고 말했다. 도시의 경쟁력은 도시의 글로벌화와 비례한다. 도시를 찾는 외지인 많다는 것은 도시의 산업이 국제화되어 있고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행사 유치는 이런 측면에서 산업과 관광의 글로벌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대구시는 지난 2월 세계 최고 수준의 대구마라톤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오는 8월 예정된 스페인 명문구단 FC 바르셀로나와 대구 FC와의 친선경기는 벌써부터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다. 스포츠 도시로서 적합한 행사들이 대구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2027년 개최될 세계 사격선수권대회는 올림픽과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사격대회로 손꼽히는 글로벌 행사다. 특히 이번 대회는 종목별 사격국제랭킹과 올림픽 출전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국제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대거 참여할 것이 예상된다. 대구시는 90개국에서 2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와 대한사격연맹 그리고 정치권 등의 지원으로 세계선수권대회가 대구에 유치된 것은 높이 평가 받을 만한 일이다. 대구시장이 없는 가운데서도 대구시 공무원들의 집요한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제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대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숙제가 남았다. 대회를 계기로 사격장을 재정비하고 관광자원 확충에도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세계적 권위의 대회가 안겨주는 후광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 대구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2025-07-15

그리운 금강산

국민가곡으로 잘 알려진 ‘그리운 금강산’은 1961년 처음 만들어진 곡이다. 작사자 한상억은 은행원이자 시인이었고, 작곡가 최영섭은 음악 교사였다. 두 사람은 강원도가 고향인 가까운 사이라 한다. 이 가곡은 국민가곡으로 불릴 만큼 국내서도 유명했지만 세계적으로 50여명의 성악가들이 음반에 노래를 실을 정도로 잘 알려진 노래다. 플라시도 도밍고,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음반 녹음을 했다. 금강산은 북한의 강원도에 있는 명산이다. 예로부터 아름답기로 소문나 많은 예술가들이 표현의 대상으로 삼았던 산이다. 중국 북송의 시인이자 학자인 소동파는 “고려에 태어나 한번 만이라도 금강산을 보고싶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태종은 명나라 사신이 오면 금강산 타령을 하는 바람에 귀찮아 했다는 얘기도 있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638m다. 1000m 이상 봉우리가 무려 60여 개에 달하고, 크고 작은 봉우리가 하도 많아 우리 선조들은 일만이천봉이라 불렀다. 특수한 기후와 지리적 조건으로 무려 1100여 종의 식물과 3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전란 등을 거치면서 지금은 거의 없지만 기록에 나오는 사찰과 암자만 180여 개에 달했다. 계절 때마다 바뀌는 모습이 변화무쌍하여 문헌에 등장하는 별칭이 9개다. 대표적 이름이 봄에는 금강산, 여름에는 봉래산, 가을에는 풍악산, 겨울에는 개골산이다. 금강산이 북한의 세 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금강산의 독특한 지형과 경관, 불교문화의 성지 등이 유네스코 위원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수만년 그리운 산” 언제쯤 가보려나. /우정구(논설위원)

2025-07-15

동네북 신세가 된 ‘TK 정치’

6·3 대선 이후 대구·경북(TK)이 정치 사회적으로 ‘동네북’ 신세가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여야에서 나오는 ‘찐윤 세도정치’나 ‘언더찐윤’ 같은 생소하고 비아냥대는 정치 단어들이 대부분 TK사회를 겨냥하고 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지난주 당 혁신위원장을 사임하면서 당내에 ‘찐윤 세도정치’ 카르텔이 있다고 했다. 세도정치는 조선후기 특정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며 온갖 전횡을 저지른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처럼 찐윤 그룹이 당내 인사를 비롯한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폭로성 발언이다. 누가 들어도 TK 출신이 주축인 당 지도부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 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은 ‘찐윤’의 구성원에 대해 “윤석열 완장 차고 관저 가서 술 얻어먹고 호가호위하던 국회의원”이라고 했다. 대선 직전 국민의힘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꾼 김상욱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찐윤’과는 또 다른 ‘언더찐윤’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언더찐윤’이 누구를 지칭하느냐는 질문에는 “대구·경북, 부산·경남, 울산, 강원에 있는 의원이다. 20∼30명쯤 된다. 언론에 나서지 않고 수면 아래에서 조용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최근 여기에 포함되는 일부 중진의원 실명을 거론하면서, “이들은 늘 말없이 무리를 이루며 무슨 사태가 벌어지면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변화를 거부하고 이익을 챙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성동·이철규·윤상현·나경원 의원과 같은 ‘친윤’ 의원과는 행동에 차이가 있다고 했다. 두 의원의 발언이 주관적이고 과장이 섞인 부분이 있지만, 정계에서는 ‘언더찐윤’의 존재에 수긍하는 사람들이 많다.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지낸 김성태 전 의원 같은 경우에는 “김상욱 의원 말이 맞다”고 공개적으로 동의하기도 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급전직하하고 있다. 10%대로 떨어진 경우도 종종 나온다. 지난 11일 공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정당 지지도에서 민주당은 43%, 국민의힘은 19%를 기록했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20%대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20년 11월 17~19일 이뤄진 조사 이후 처음이다. 놀라운 것은 TK지역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율(27%)이 민주당(34%)에 역전당했다는 사실이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의힘에 대한 TK지역 민심이 급속도로 이반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나는 TK지역민의 이러한 정치성향 변화가 사회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외부에서는 아직도 이 지역이 국민의힘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자들만 사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TK지역민들도 이제 특정 정당에 대한 ‘묻지마 지지’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터득해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찐윤’ 카르텔로 지목된 TK의원들은 이 지역 민심을 잘 분석해보길 바란다. 다음 총선이 아직 3년이나 남았다며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다. /심충택 정치에디터 겸 논설위원

2025-07-15

‘여야 편싸움’…이럴 거면 청문회 왜 하나

장관 후보자 등 5명이 검증대에 오른 국회 인사청문회 둘째 날(15일)도 예상대로 막말과 고성이 오간 파행의 연속이었다. 이날은 안규백 국방부장관·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김성환 환경부 장관·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임광현 국세청장 후보자가 대상이었다. 임광현·안규백·김성환 후보자는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이고, 권오을 후보자는 3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한성숙 후보자는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 등을 역임한 기업인 출신이다. 청문회 첫날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시종일관 후보자 엄호에 집중했다. 증인채택도 막아주고 자료 제출을 부실하게 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낙마에 총력을 기울였다. 국민의힘은 강선우(여성가족부)·이진숙(교육부)·권오을(국가보훈부)·조현(외교부)·정동영(통일) 장관 후보자를 ‘무자격 오적’으로 규정하고 지명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둘째날 청문회에서도 지난 14일과 마찬가지로 소관 상임위원회 곳곳에서는 고성과 충돌, 파행이 벌어졌다. 이날은 권오을 후보자의 ‘겹치기 근무’, 한성숙 후보자의 농지법 위반과 가족 상대 아파트 편법 증여 의혹 등이 쟁점이 됐다. 첫날에는 ‘1순위 낙마’ 타깃으로 지목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여성가족위원회 청문회가 파행으로 얼룩졌다. 인사청문회는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행정부 고위공직자의 자질과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당시에도 야당의 집요한 공격이 예상됐지만, 성역 없는 검증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야가 수 차례 바뀌면서 청문회는 이제 하나마나한 제도로 변질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청문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단 한 명의 낙마도 없다”고 했다. 여당이 압도적인 국회의석을 무기로 장관자리를 ‘묻지 마 임명’식으로 채운다면, 결국은 정권의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인사청문회는 이재명 정부의 인사와 국정 철학·정책이 종합평가를 받는 자리인 만큼, 민심에 어긋나는 후보자들은 과감하게 지명을 철회하는 게 맞다. 이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2025-07-15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 이제 정부가 들여다봐야 할 때가 됐다’…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 아닌가

무안공항의 안타까운 참사는 울릉공항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울릉도 미래 교통망의 핵심인 울릉공항은 안전할까였다. 그전부터 울릉공항 활주로에 대한 논란이 있었기에 군민들은 무안공항 사고를 바라보면서 더욱 의구심을 가졌다. 한번 심도 있게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은 어느새 공사 중인 활주로를 연장해야 안전하다는 방향으로 흘렀고, 결국 울릉 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울릉공항 활주로 연장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군민의 이름으로 활주로 연장의 필요성이 공식화됐다. 울릉공항은 당초 50인승 소형 항공기 기준으로 활주로가 설계됐었다. 활주로 길이는 1,200m다. 이는 활주로 시설 등급 중 최저 수준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소형항공기의 기준을 기존의 50인승에서 80인승으로 상향 조정했다. 울릉공항의 취항 기종 역시 80인승 항공기로 변경됐다. 비행기를 띄우는 회사 입장에선 50인승 보다는 80인승을 구매해야 사업성이 나온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또 분명 그렇게 할 것이다. 이미 향후 주력 기종으로 80인승 항공기가 검토, 고려되고 있다. 이 비행기는 수송력, 경제성, 비용 대비 효율성, 그리고 안전 운항 측면에서 모두 적합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현재의 1,200M 활주로 여건으로는 이 기종의 안정적 운항이 어렵다는 점이다. 항공기 제작사들은 이에 대해 현재 공사 중인 활주로로도 80인승 항공기의 운항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울릉도의 특이한 기상 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분석이라는 게 지역 주민들의 입장이다. 실제로 현 활주로 조건에서 80인승 항공기를 운항하려면 이착륙 중량을 대폭 줄일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탑승 인원과 화물 적재량 감소로 이어져 경제성 부분에서 기대 이하의 차질은 불가피하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울릉도에서 최대 순간 풍속이 25노트 이상을 기록한 날은 연평균 138일에 달한다. 풍속이 이 수준을 넘으면 80인승 항공기의 결항률과 사고 위험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외에도 연평균 강수일수는 144일, 강수량은 1,538mm에 이르며, 겨울철에는 평균 2m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하는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기상 악조건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울릉도 주민들은 활주로와 종단 안전구역의 연장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활주로 연장 요구가 ‘무조건적인 안전성 강조’에만 치우쳐 타당성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한다. 또 활주로 연장에 1조여 원이 소요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추산만 무성하게 나돌고 있다. 그러나 울릉군민 입장에선 이런 주장이 그저 황당무계하다. 지금까지 활주로 연장에 대한 구체적인 비용 산정이나 타당성 조사가 진행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울릉공항 완공까지는 여전히 시간이 남아 있다. 지금이라도 전문기관의 용역을 통해 연장 시 추가 비용, 현재 활주로의 안전성, 기상 리스크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과학적·체계적으로 접근했으면 한다. 이런 요구는 활주로 연장이 그리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측도 상당하기에 더욱 필요하다. 가두봉을 기준으로 서면 통구미 방향으로 200~300m 연장하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구간은 수심이 현재 활주로 공사 구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기술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여서 정부가 한 번 들여다봤으면 한다. 이제는 단순한 감정적 주장이나 막연한 안전성 강조를 넘어, 비용 대비 안전성, 경제성 등 다각적인 분석을 토대로 합리적이고 정당하게 활주로 연장을 요구할 때다. 울릉도의 미래 교통망은 과학적 데이터 위에 세워져야 한다. /김두한기자 kimdh@kbmaeil.com

2025-07-15

깎기, 뽑기

출퇴근길에 학교 담장 곁을 걸어서 오간다. 10년째다. 중간이 대문이고 양쪽으로 담장이 있다. 담장 밑과 보도블록 사이엔 폭이 한 뼘쯤 되는 모래흙 부분이 있어, 풀들이 화단 삼아 잘도 살았다. 으레 보던 풀들이라 재작년 3월까지는 관심 없이 지나다녔다. 그해 4월 초 어느 아침, 북쪽 담장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았다. 마치 그 옛날 젊은 엄마를 만난 듯, 반가운 존재가 보였기 때문이다. “반가워! 도시 대로 가에서 너를 다 만나다니, 넌 내 ‘행운’이야”라며 이름 지어주고, 첫인사를 나누었다. 사진도 찍었다. ‘행운’ 앞에 잠깐 머무는 동안, 내 맛봉오리와 후각세포는 어느새 그 옛날 응달에 잔설이 하얗던 이른 봄 고향 아침 밥상에 갔다. 밥상엔 젊은 엄마가 ‘행운’으로 끓인 국이 올랐다. 행운의 풋 내음, 풋 맛이 단박에 허기를 채워나갔다. 엄마는 어디서 뜯었는지, 해마다 이른 봄이면 꼭 그 국을 밥상에 올렸다. 높바람에 겨우내 얼었던 몸과 마음을 국은 녹여내고도 남았다. ‘행운’의 고향 이름은 ‘구시디’다. 논밭 두렁, 도랑 가, 길 가 등 모래 쌓인 곳에 잘 자라는 구시디는 언제나 진초록 깔끔이다. 줄기와 잎이 연약하고 작아 다른 풀들이 자라기 전 이른 봄에 잘 보인다. 구시디의 표준말은 ‘벼룩이자리’다. ‘모래별꽃’이란 이름도 있다. 어린잎은 일종의 세제로서 소독에 쓰기도 하고, 데쳐서 나물로도 먹고, ‘구시디국’도 끓인다. “아, 어찌 이런 일이!….” 학교 담장이 가까워지자 저절로 나온 말이다. 작년 늦봄 한 출근길에서다. ‘행운’이 벗들과 어우렁더우렁 살던 담장 아래. 풀들은 다 없어지고, 사막 모습만 휑하게 남았지 않은가. 풀들이 자라나고, 꽃 피우며, 열매 맺는 모습을 바라보던 행복도 뽑혀버린 풀들과 함께 깡그리 뽑힌 마음이다. 올핸 초여름에 벌써 두 번째 뽑기를 당했다. 황량, 쓸쓸하다. 왜, 풀들을 깎지 않고 뽑아냈을까. 환경미화에 별난 교장이나, 담당자가 왔나보다 하면서도, 상실감과 애틋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날, 고향에서는 김맬 때 외는 풀을 안 뽑았다. 벌초만 했다. 냉이같이 뿌리를 먹는 나물만 캐지 다른 나물, 꼴, 사료, 거름 용 풀들은 뜯거나 깎거나 베었다. 풀은 뽑기‧캐기보다, 뜯기‧깎기‧베기를 하는 게 맞다. 고마운 생명을 살리며, 자원으로 재이용도 해야 하니까 말이다. 풀 뽑기를 한 담당의 생명경시 마음이 죄 없는 ‘행운과 그 벗들’은 물론, 내 행복도 그만 유명을 달리하게 하고 말았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깎기’보다 ‘뽑기’에 얼빠졌다 싶다. 해방 후 80년을 심고, 깎고, 가꾸어 온 것들을 뽑아버리는 집권세력의 행태가 곳곳에 번진다. 기존 제도를 ‘깎기’ 곧, 다듬고 가꾸어나갈 생각은 않고 ‘뽑아 없앨 궁리’의 먹구름만 피워대니 말이다. 자기편 욕망 충족이 목적인 게 뻔한 것들을 ‘국민의 뜻’이라고 호도하면서…. 뽑거나 캐기보다 뜯거나 깎기 중심으로 살아온 게 우리 사회다. 정치권은 부디, 이를 버리지 말고 이어나가 깎고, 다듬어 복된 나라로 가꾸어주기를 두 손 모아 비는 마음 간절하다. /강길수 수필가

2025-07-14

99 vs 1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99 마리 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마태)’ 예수가 이토록 기뻐한 한 마리 양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 홀로 가는 한 마리 양이 있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이라고 이름 붙여진. 남겨진 99마리는 1마리 양이 무엇 때문에 길을 잃었는지, 왜 홀로 가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 다만 길을 잃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99 마리는, 무리 속에서 안전하게 머물면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위험과 불안을 이야기한다. 99마리는 한 마리 양을 반드시 찾아내어 무리 속으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입을 모아 외친다. 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양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은 그 양은, 겉 모습은 같았으나, 무리를 떠나기 전의 그 양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길을 잃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길을 잃어본 사람만이 참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길을 잃어야 한다, 진리와 참된 세상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 앞에서 길을 잃어야 한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무리에서 이탈된 나약하고 불쌍한 존재로만 보아서는 양의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의 이야기는 세렝게티 초원 영양무리에 관한 장면이 아니다. 불가에서의 출가는, ’구도에의 길에 나서는 시작‘을 의미한다. 처와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선 싯다르타가 구도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출가는 단지 가출에 불과했을 것이다. 무리에서 이탈한 한 마리 양이 무리를 떠난 이유를 알아야 한다. 1 마리는 99 마리가 머무는 ’그 무리‘ 를 염려했으며, 99마리가 묵묵히 순종하며 걸어가는 ’그 길‘ 을 의심했다. 99마리가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달콤한 잠이 든 그 순간에도 1 마리는 폭풍우 치는 바다를 건너고, 열사의 사막을 지나, 험준한 설산을 넘었다. 99마리와 1마리가 만났을 때, 99마리는, ’드디어 어린 양을 찾았다‘라고 기뻐 외쳤으나, 1마리는, ‘너희들이 나를 찾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을 찾아 왔다’ 라고 조용히 말했다. 길 잃은 양은 집단의 안일함을 거부한 의식의 개별자이다. 방황 속에서 진리의 음성을 듣고자 길을 떠났고, 진리를 묻기 위해 길을 잃었다. 구도란 길 잃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길을 잃어야 비로소 진실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 광야를 달리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수타니파타)’ 그렇다. 진리의 세계로 가는 길은 고독하고 멀다. 그 길은 동행을 허락하지 않는다. 부처도 예수도, ‘홀로 가라’ ‘방랑자가 되라(도마)’고 했다. 삶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은, 무소의 뿔처럼 고독하며, 길 잃은 양처럼 절박하다. 예수는 진리의 샘을 찾아 나선 한 마리 양을 찬양했다, 존재가 자기 자신을 묻기 시작하는 순간, 99마리의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우리네 삶 속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길을 잃어보자. 고요히 정좌하여 평온하게 호흡하면서 내가 속한 이 집이, 가는 길이 온전한지를 들여다보자. 당신도 언젠가는 부처와 예수처럼 길 잃은 한 마리 양이 되어 온전하게 집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 /공봉학 변호사

2025-07-14

중도(中道)에 서는 것

‘딱지’ 붙이기가 성행하는 세상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사람에게 가장 듣기 싫을 법한 ‘별명’을 붙여준다. 세상은 속스러워져서 정권이나 언론, 정당이나 하던 짓을 일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프레임’ 씌우기도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처럼 ‘영특하게도’ 알아차려 잘도 활용한다. 한번 ‘프레임’을 상대방에게 씌우면, 일단 ‘프레임’을 뒤집어쓰고 갇혀 버리면 여간해서는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프레임’ 정치가 횡행한 지 오래, 이제 이 ‘정치’는 역사학자들의 것이 되고 문학인의 것이 되었다. 최근에 접한 신조어 ‘프레임’ 중에 ‘틀포티’라는 말이 있다. 챗GPT에 물어보면, ‘틀니를 낀 40대’의 준말이라 한다. ‘틀’은 틀니에서 왔고, ‘포티’는 영어 ‘forty’에서 왔다. 원래 ‘뜰딱’이라는, 노년층 상대의 끔찍한 ‘프레임어’가 있었던 것을, 이제는 ‘40대’에 적용한 것이다. 구시대적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다’는 뜻을 갖는다. ‘유사역사학’이라는 것도 대표적인 프레임 씌우기다. ‘pseudo-history’란 원래 ‘학문적 기준과 검증 절차를 따르지 않고 편견, 상상, 음모론 등에 기반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주장이나 체계’다. 좋은 의미를 가질 리 없다. 그러니 이 말은 다른 사람이나 입장을 향해 함부로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일단 뒤집어 씌우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불명예, ‘독’이 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일을 자신이 당할 수도 있음은 생각지 않는다. 이런 말 중에 요즘 시국과 관련해서 특히 유행하는 말은 ‘극우’니 ‘극좌’니 하는 말이다. 이것은 이념상의 스펙스럼 가운데 양쪽 극단에 선 입장을 가리킨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우에 적용되면 그 효용이 단박에 드러난다. ‘부정선거’를 말하면 ‘극우’라는 ‘딱지 붙이기’에 꼼짝없이 당하기 쉽다. 학자나 문학인은 그래도 지성인이라 하는데, 남한테 그런 딱지를 붙이고 안심하고 만족해 한다? 끔찍하다. 먼 옛날 샤카족(釋迦族)의 왕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오랜 고행 끝에 해탈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것은 ‘중도(中道)’에 서는 것이었다. ‘중도좌파’니 ‘중도우파’니 하는 말을 하지만 ‘샤카무니(釋迦牟尼)’에게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다. ‘구담 실달타(瞿曇 悉達多)’는 당시 ‘사문(沙門)’들, 곧 수행자들의 ‘화두’에 대해 전혀 차원 다른 통찰을 보였다. 사문들은 ‘세상’이 본디 있다거니 없다거니, ‘자아’라는 것이 있다거니 없다거니 하고들 있었다. ‘석가’는 이 두 개의 극단적 입장을 ‘버리고자’ 했다. 그런데 그 ‘버린다’는 것은 양극단의 중간쯤에 서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양극단을 해체하고자 했다. ‘자아’라는 것, ‘나’라는 것은 본디 있다고도 없다고도, 있는 것이 아니라고도, 없는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고민한다. 과연 이 지독한 ‘딱지붙이기’의 세상에서 ‘중도’에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새로운 사유의 차원을 열 수 있을까? 과연 ‘나’는 프레임 붙이기에 빠지지 않고 사유의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2025-07-14

산불피해 과수농에 수입사과까지 개방하나

정부가 대미 통상협상 카드로 미국산 사과 수입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농민과 농민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농민단체가 상경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지난 주에는 경북도의회와 청송군의회가 수입사과 반대 성명을 잇따라 냈다. 경북은 전국 최고의 사과 주산지다. 청송군은 4600여 농가에서 연간 7만 5000여t의 사과를 생산하고 있다. 전국 생산량 대비 13%다. 경북은 청송과 안동, 의성, 영주, 봉화 등에서 사과를 생산하고 있는데, 전국 생산량의 64%를 차지하는 사과 집산지다. 그러나 지난 3월 발생한 산불로 1500여ha나 되는 사과원이 피해를 입었고, 최근에는 탄저병과 인건비 상승, 폭염 등으로 과수농가들이 삼중고에 시달리는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대미 협상카드로 미국산 사과 수입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소식은 농민들을 분노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사과농과 단체들은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과 수입 논의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사과생산지 시장군수협의회는 “사과농가의 생존권을 국가 정책의 협상카드로 악용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명도 냈다. 미국산 사과는 그동안 한국시장 진출을 위해 줄기차게 수입개방을 요구해 왔다. 미국 말고도 현재 10개국이 한국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 다. 정부는 국민건강과 생산기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식물검역을 까다롭게 벌여 외래산 사과 수입을 견제해 왔다. 외국에서 수입된 적이 한번도 없는 과일이다. 특히 사과는 국내 과일 중 가장 많은 생산량을 차지하고 있고 국민과일로 불릴 만큼 대중적이다. 만약 외국산 사과가 들어온다면 과수농가가 받을 타격은 불문가지다. 최예진 부산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관세협상을 통해 국내 사과시장이 개방된다면 사과 가격이 최대 65% 하락할 수 있다는 분석을 했다. 정부가 그동안 견지한 까다로운 검역 절차는 국내 농가 보호 때문이다. 지금 도내 사과농은 산불피해 복구도 제대로 안된 상태다. 설상가상이 될 사과수입 막아야 한다.

2025-07-14

특검 서슬에 말 바꾼 고위 공직자들

다소 고루하지만 먼저 ‘명심보감’의 한 구절부터 읽어보자. “양약고어구 이어병(良藥苦於口 利於病) 충언역어이 이어행(忠言逆於耳 利於行)”. 어려울 것 없는 한자다. 풀어 쓴다.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을 고치고, 진실을 담은 말은 듣기 거슬리지만 인간의 행동을 바로잡게 한다는 의미일 터. 그게 최고 권력자건 필부(匹夫)건 제 앞에서 아부하고 아첨하는 인간을 골라내기는 쉽지 않다. 아부와 아첨의 말은 너무나 달콤해 사람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다. 고대의 철학자들은 왕이 가져야 할 덕목 중 하나로 ‘간신과 충신을 골라내는 혜안(慧眼)’을 꼽았다. 통치자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음에도 쓴소리와 비판은 아끼고 그저 ‘잘하고 계십니다~’를 연발하는 간신을 곁에 둔 왕은 말로가 좋지 못했다. 바른 소리를 한다고 충신을 멀리 보낸 왕들 역시 마찬가지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흔했다. ‘간신’의 가장 큰 특징은 상황과 자리를 봐가며 말을 바꾼다는 것. 이를 번의(飜意)라 하고 공자는 번의하는 신하를 역적보다 멀리하라고 충고했다. 선현의 옛말은 틀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난 윤석열 정권 아래서 고위직 공무원을 맡았던 이들이 최근 들어 말을 바꾸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들려온다.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과 ‘대통령실 실세 중 실세’로 불리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특검의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 격노설’ ‘체포 방해 혐의’ 등과 관련해 뻔뻔하게 ‘번의’를 했다고 한다. 간신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은가? 이런 간신들을 곁에 두고 정치를 했으니 윤석열 씨의 몰락은 이미 예고돼 있었는지도 모른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7-14

윤희숙 혁신위, 좌초위기 극복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 윤희숙 혁신위가 첫발을 떼자마자 좌초 위기에 놓였다. 윤 혁신위원장은 지난 13일 당 출입기자들과 만나 ‘1호 혁신안(대국민 사죄 당헌·당규 수록)’과 관련해, “당이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잘못을 한 분들이 이제 개별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면서 “더 이상 사과할 필요도 없고 반성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당을 죽는 길로 다시 밀어 넣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인적 쇄신의 0순위“라고 비판했다.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나경원·장동혁 의원 등 구주류 인사들이 ‘1호 혁신안’에 대해 “언제까지 사과만 하느냐”고 반발한 것을 염두에 둔 작심발언으로 보인다. 나 의원은 최근 “의견수렴 없는 혁신안은 갈등과 분열을 되풀이하는 자충수다. 계엄에 대해서는 이미 사과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은 이미 탈당했다”고 했고, 장 의원도 “언제까지 사과만 할 것인가. 서로 남 탓만 하는 내부총질 습성부터 고쳐야 한다”라며 혁신안을 직격했다. 두 사람 모두 당 대표 출마 가능성이 있어, 당내 강경파 지지를 얻기 위한 전략성 발언이라는 말도 나온다. 두 의원에 대한 윤 위원장의 작심비판으로 미루어, 혁신안을 둘러싼 당내 후폭풍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 내홍이 증폭될 경우, 윤희숙 혁신위가 다음달 전당대회 때까지 순항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윤 위원장은 1호 혁신안 외에도 인적 쇄신의 제도화를 위해 ‘당원소환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당원소환제는 당원들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지도부 등을 임기 중에도 해임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상당히 강도 높은 혁신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를 현실화하려면 당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지도부 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원 소환을 통한 강제적 인적 쇄신이 가능하려면 비대위 추인과 전국위원회 의결 등 높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앞서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인적 청산 문제로 당 지도부와 충돌하다 좌초한 전철을 윤희숙 혁신위가 그대로 밟는다면 국민의힘은 외연 확장은 고사하고 존립마저 위태롭게 된다.

2025-07-14

포항의 미래 위해 시민 모두의 지혜와 연대가 필요하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견인했던 포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눈앞의 기회는 분명하지만 정체된 개발과 흔들리는 산업, 분산된 정책 속에서 포항은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동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영일만대교 사업은 18년째 가시적인 진척 없이, 최근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2차 추경예산안에서 공사비 1,821억 원이 전액 삭감되며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포항 경제 또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철강을 비롯한 주력 산업은 글로벌 수요 위축, 공급망 불안정, 관세 인상, 중국산 저가 제품 확산 등 복합적인 악조건에 직면해 있으며, 포스코를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 전반의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 특히 포항 국가산단의 올해 1분기 가동률은 76%로, 불과 3분기 전인 지난해 2분기(93.1%)보다 17%포인트나 떨어졌다. 이처럼 산업 기반의 불안정은 고용과 소비를 연쇄적으로 얼어붙게 하고 있고, 지역 경제에 위기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필자는 포항에서 태어나 산업과 정치, 행정을 직접 체득해왔다. 약 20년간 기업 현장에서 지역 산업의 구조와 경제 흐름을 실질적으로 경험했고, 19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 현안을 폭넓게 다뤄왔다. 포항시의회에서 세 차례 의원을 지냈고 두 차례 의장을 맡아 정책의 실질을 고민했으며, 복잡한 지역 쟁점에 대한 해법을 현장에서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경상북도의회 재선 의원으로는 운영위원장을 맡아 지방분권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집중했고, 전국시도의회운영위원장협의회 회장으로서 17개 시도의회의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왔다. 이러한 경험은 지역의 가능성과 함께, 넘어서야 할 과제를 날마다 체감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포항을 지켜봤기에, 이 도시의 미래를 단순히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수많은 현장과 제도, 시민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과정을 오래 지켜보며, 자연스레 ‘포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서게 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도시의 변화는 어느 한 영역의 노력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과 행정, 정책과 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조율될 때에만 변화는 작동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협력적 거버넌스가 있어야 한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율되고 결합 되는 구조 없이 도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포항은 엄청난 에너지가 응축된 도시다. 최근 ‘한국형 수소 환원 제철 실증 기술개발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며, 철강 산업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고, 동시에 이차전지,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에 대한 전략적 육성과 산업 구조의 점진적 다변화도 함께 모색되고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은 세계적인 인재를 배출하고 있으며, 비약적인 기술 혁신을 도모하고 있고, 시민사회 역시 각종 도시 문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역의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활력으로 창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산들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지 않는다면 도시 전반을 이끄는 지속 가능한 동력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흐름을 하나로 연결하고 실행할 수 있는 체계다. 분산된 도시의 에너지를 하나로 묶고, 구체적인 변화와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는 구조가 절실하다. 여기에 실질적인 거버넌스의 흐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구조적 리더십이 결합 될 때, 포항의 에너지는 분출되고 미래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포항의 위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금은 산업의 대전환과 경제 회복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지역 전체에 요구되는 시점이다. 흩어진 힘을 하나로 모으고, 포항의 미래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지금 이 순간, 포항시민 모두의 지혜와 연대가 필요하다.

2025-07-13

이 지경이 되도록, 많이 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러나 그 실수가 반복되면 문제다. 더구나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건 최악이다. 천주교 신자들은 수시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요’를 외친다. 신부에게 ‘고해(告解)’라는 것도 한다. 죄를 짓고, 용서만 빌면 해결이 되나. 자기 잘못을 성찰해 통회하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다짐이 앞서야 한다고 한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43%, 국민의힘은 19%로 나타났다. 전국 지표조사(NBS)에서도 민주당 45%, 국민의힘 19%로 비슷하게 나왔다. 70대 이상을 포함해 모든 세대에서 민주당이 앞섰다. 보수의 텃밭이라는 한국갤럽조사는 대구·경북(TK)에서도 민주당 34%, 국민의힘 27%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을 찍은 유권자가 이민을 한 게 아니다. TK 주민의 정치적 성향이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갑자기 예뻐서도 아니다. 국민의힘이 실망하게 한 탓이다. 정치를 하다 잘못할 수도 있다. 수많은 당원 중에 이상한 사람이 몇 명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수습할 생각도 없는 집단이라면 희망이 없다. 12·3 비상계엄 직후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비상계엄이 내란죄에 해당한다’라는 의견이 70%, 탄핵 찬성이 74%였다. 아무리 내가 표를 준 대통령이라 해도 헌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국민이 준 것보다 더 많은 권력을 장악하려 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국민의힘 다수 의원은 비상계엄을 막지 않았다. 그런 판단을 한 당 지도부에 항의하지도,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국민의 뜻을 거슬러 친위쿠데타를 시도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감쌌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명확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은 윤 전 대통령의 반헌법적 행동에 동조했다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다. 반성은커녕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은 의원도 많다. 오히려 ‘친윤’ 핵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당을 좌지우지했다. 윤 전 대통령 비판을 오히려 ‘배신’으로 몰아 비난했다. ‘의리’라고 포 장했다. 국민의힘이 조직폭력배 집단인가. 국민, 공익보다 의리가 중요한가. 국민의힘의 목표가 뭔가. 정강·정책을 국정에 반영해 국리민복을 도모하는 것 아닌가. 그러려면 집권해야 한다. 정당의 최고 목표는 집권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을 배출하는 것이고, 당의 정책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국회 다수 의석도 차지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간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반대하는 길을 가는 이유는 뭘까. 나머지 3명이 그 정당에서는 다수라고 보기 때문이다. 집권이나 보수 정책 반영과는 거리가 멀다. 당권 장악, 재선을 통한 개인적 영달을 노린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TK에서마저 뒤집히고 있다. 부자 살림을 다 거덜 내고, 쪽박을 놓고 다툴 건가. 당의 주인은 누구일까. 파면된 대통령인가, 중진의원인가, 당원인가, 아니면 국민인가. 당의 목표가 집권인가. 아니면 쫓겨난 대통령 경호인가. 중진의원들의 자리보전인가. 전체 국민을 반으로 나누면 오른쪽 반쪽에서는 30%만 해도 절대다수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결코 집권할 수 없다. 그래도 제2당으로는 살아남을 거라고 자위하는 걸까. 정당도 불멸의 조직은 아니다. 대통령을 배출할 수 없는 불임 정당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어물쩍 덮어도 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지금 국민의힘이 놓인 처지가 눈과 귀를 가리고, 입을 막으면 잘 풀릴 것 같은가. 고통만 길어지고, 멸망으로 가는 길만 재촉한다.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김문수 대선후보에게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정치는 본인의 영예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 봉사의 정신으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훈계했다. 권한을 행사했으면 그만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정치가 열린다. 이 지경이 되도록 이미 많이 하지 않았나.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7-13

18년 만에 다시 찾은 송도해수욕장, 모래 위에 쌓는 포항의 새로운 100년

송도해수욕장이 18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한때 동해안 최고의 피서지였던 이곳은 방파제와 모래 유실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발길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바다는 결국 사람을 다시 부른다. 되살아난 백사장 위로 시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송도해수욕장은 1960~80년대 ‘동해안 1번지 해수욕장’으로 불렸다. 여름이면 대구와 경북 전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로 백사장은 파라솔로 빼곡했다. 송도의 상징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입구를 지키던 ‘여신상’이었다. 바다를 향해 팔을 벌린 듯한 여신상은 송도가 품은 여름의 낭만이었다. 해변에서 100여 미터 떨어진 다이빙대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또렷하다. 청춘들은 거기서 몸을 던져 바다로 뛰어들며 한여름의 열기를 식혔다. 여신상 아래서 가족사진을 찍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 기억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무분별한 개발과 방파제 축조로 모래는 점점 사라졌다. 해수욕장은 2008년 문을 닫았고, 해변 상권은 활기를 잃었다. 송도는 추억 속에만 남았다. 하지만 포항은 물러서지 않았다. 수년간 모래 복원과 해안 정비에 힘을 쏟았고, 마침내 송도는 다시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여신상은 그대로고, 다이빙대도 깔끔히 단장됐다. 다만 이제 다이빙대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대신 상징으로서 과거를 기억하게 한다. 문제는 여기서 멈춘다면 송도는 그저 추억 속 해수욕장에 머물 뿐이라는 것이다. 송도는 이제 시대에 걸맞게 달라져야 한다. 여신상과 다이빙대가 과거의 낭만을 상징했다면, 지금은 그 위에 세계인을 불러모을 새 상징을 세워야 한다. 그 답이 해오름대교 전망타워에서 송도해수욕장까지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초대형 짚라인이었으면 한다. 파도를 내려다보며 하늘을 나는 짜릿함, 송도는 어쩌면 이 한 방으로 두바이 마리나, 하와이 와이키키 못지않은 글로벌 해양 액티비티의 격전지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는 추억이 아니라 경쟁이다. 아시아의 수많은 해변과 리조트들이 고객을 끌어오기 위해 무엇을 하는가. 상상하고 투자하고, 놀 거리를 만든다. 과거의 명소에 머물러서는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도발길을 돌린다. 그런 점에서 송도 짚라인은 관광 트랜드에 맞춘 변화의 상징이자 해양도시 포항의 새로운 얼굴, 해양관광의 승부수가 될 수도 있다. 체험시설, 상권 연계,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부수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만에 하나 진행한다면 세계 최고의 액티브 설계자가 구상하도록 해 그 이름을 보고 세계인이 송도로 오도록 했으면 한다. 송도는 이미 주변은 달라지고 있다. 첨단해양R&D센터는 해양바이오, 해양에너지, 스마트양식 같은 미래 산업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고, 곧 개통될 해오름대교는 물류와 관광을 잇는 대동맥이 된다. 이어 완공될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POEX)의 후방 효과도 송도로선 기대할만 하다. 이제 남은 건 ‘발상의 전환’이다. 개장식에서 만난 한 시민은 말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잡고 여신상 앞에서 사진 찍고,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렸죠. 지금은 못 뛰어내리지만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반갑습니다.” 그렇다. 송도는 추억만으로도 큰 밑거름이다. 거기에 짚라인이 얹히면 송도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닫혔던 해변 가게들도 다시 문을 열었다. 파라솔 아래 가족의 웃음소리가 파도 소리와 얽혀, 송도의 여름을 되살려내는 그 모습도 보기 좋았다. 그러나 웃음소리만으론 부족하다. 더 많은 사람을, 더 먼 곳에서 불러와야 한다. 철강 도시 포항이 바다로 다시 숨을 쉬고, 그 바다 위에, 세계인이 몰려들도록 길을 깔고 닦아야 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다. 추억의 상징 여신상과 다이빙대 위에, 세계를 겨냥한 짚라인이 더해질 때 송도는 다시 태어나고 모래 위에 새겨지는 발걸음들은 포항의 새로운 100년을 쌓아올릴 것이다. 이제 송도는 다시 돌아보는 해변이 아니라, 다시 날아오를 해변이어야 한다.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7-13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아들의 첫 번째 생일이 지났다. 이맘때쯤 되니까 육아에 있어 새로운 어려움이 찾아온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어떻게 놀아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까꿍까꿍만 해줘도 꺄르르 웃던 아들은 이제 자꾸만 새로운 것을 원한다. 집이 비좁아질 정도로 새로운 장난감을 구해다 바쳐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 찾아오는 것이 미디어의 유혹. 새로운 것이야 휴대폰에 깔려 있는 유튜브 어플에 무궁무진하게 있지 않은가. 돌쟁이 아기를 홀릴만한 신나는 콘텐츠들은 차고 넘치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아직 이러한 유혹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기껏 조성해 놓은 TV 없는 거실이 아깝기도 하고, 뭔가 이제 와서 항복을 선언하기에는 자존심도 조금 상한다. 아기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시기를 미룰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지겹게 들었다. 그 이유도 여러 가지 들었지만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노는 방법을 터특하는 일이 아이의 지능과 정서 발달에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이야기였다. 손쉽게 자극이 주어지는 일이 반복되다보면 아이가 새로운 놀이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없어지는데, 그렇게 되는 것이 아이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이러한 이야기가 단지 아이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변변한 취미도 없고 사람들과 소통하는데서 즐거움을 찾을 줄 모르는 사람들. 세상에 널려있는 소박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 반면에 참 잘 노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저기 관심도 많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이 품고 사는 사람들.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같이 있으면 심심하지 않은 사람들. 이것은 삶이 얼마나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가와 직결되지 않는다. 돈도 시간도 많은데 ‘노잼’인 사람들이 있고, 분주한 일상 틈틈이 재미를 감춰두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구분은 뻔한 이야기이지만 얼마나 놀아봤는가, 그 경험의 차이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세상은, 그리고 어른들은 언제나 우리에게 나중에 놀라고 조언한다. 지금 놀면 나중에 실패하게 되지만 지금 인내하면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성공 이후에 더 풍요롭게 놀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말이 꼭 옳은 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들이 미디어를 비롯한 손쉬운 자극 없이 놀아 봐야 노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듯이 어른들도 성공과 풍요가 아직 찾아오지 않은 젊은 시절에 없는 살림 속에서 어떻게든 노는 연습을 해야 나중에 더 잘 노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달에 삼십 만원 생활비로 살던 대학시절, 단돈 만원 한 장으로 데이트를 해 보았다면 함께 김밥 한 줄 씩 사 들고 공원을 거닐며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낭만적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편의점 앞에서 과자 한 봉지에 작은 캔 맥주 한 캔씩을 아껴 먹으려면 여름밤의 정취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기차 입석에 올라 힘들게 도착한 낯선 고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발품을 팔고 돌아다니던 여행은 그 시절이 아니면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뒤늦게 성공해서 경제적 풍요를 얻게 된 다음 놀아보려 애쓰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비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예약해서 환상적인 야경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할 수 있겠지만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밤새도록 서로의 사이를 오갈 수 있을까. 분위기 좋은 루프탑 바에서 비싼 위스키를 시켜 먹으면 맛이야 있겠지만 진짜 여름밤 냄새를 맡을 수는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대륙으로 떠나서 호화로운 여행을 즐기며 그곳의 풍경 하나 하나를 소중하게 기억 속에 담아낼 수 있을까. 물론 풍요로운 삶은 좋은 삶이지만 그 이전에 실컷 놀아본 사람이라면 그 풍요를 훨씬 낭만적이고 알차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걸 하나도 모르고 단지 풍요롭기만 하다면 그 풍요를 탕진하며 놀더라도 어딘가 공허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마주하는 씁쓸한 소식들이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던 사람이 도박, 마약, 아니면 그 어떤 부도덕한 행동을 통해 무너져버리고 마는 소식.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본질은 어쩌면 삶의 진정한 쾌락을 얻는 방법을 몰라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부정한 쾌락을 향해 손을 뻗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 황정자가 1962년 발표한 곡인데, 제목이 낯설어도 노래의 첫 소절 가사만큼은 널리 알려져 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우리의 풍요가 완성되기 전부터, 한 살이라도 젊을 때부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춰 노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7-13

의자의 목적

의자에 앉는 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근육이 필요하다. 엉덩이의 대둔근부터 시작해서 척주기립근, 허벅지를 지탱하는 햄스트링과 대퇴사두근까지. 특히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겐 착석이야말로 고강도 근력 운동이나 마찬가지다. 어찌나 하기 싫은지. 의자에 앉는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근육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늘 이런 식이다.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먼저 반기를 든다. 다리를 이리저리 꼬았다가 풀기 일쑤다. 몸을 비틀고 자세를 바꾸는 일은 언제나 쉽게 끝나지 않는다. 결국 침대 위에 누워서 앉기에 편안한 의자를 검색해 본다. 서울대 학생들이 사용한다는 의자, 인체공학적인 곡선으로 설계된 의자, 독일의 기술자가 만들었다는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싼 명품 의자…. 사실은 알고 있다. 의자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을. 의자에 묵묵히 앉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전에는 미처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회사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 일하는 시간은 8시간 남짓. 이들에게 존경심이 이는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히 ‘앉아 있음’이 아니라, 굳건히 ‘버티고 있음’에 가깝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나의 감탄에 그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한다. 뭐 대단할 게 있나. 다들 그렇게 사는걸. 마음은 풍선보다 가볍다. 굉장한 근력을 자랑하는 사람도 마음이 붕 뜨는 것은 도무지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도망치고 싶고, 내 자리는 이게 아닌 것 같고, 오늘 하루가 괜히 억울해지고… 그런데도 다시 자세를 고쳐 앉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단단함이 느껴진다. 오래 앉아 있다는 건 근육의 힘보다는 마음의 싸움에 더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업무와 마주하고 떠나고 싶은 충동과 타협하며 더 편안한 자리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견디는 일. 하루에도 몇 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눌러가야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이것이 어찌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앉아 있음’이 언제나 책임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자를 지키는 일과 의자에만 집착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는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되지만, 후자는 그 자리가 곧 자기 자신인 줄 아는 오해에서 시작된다. 어떤 사람은 앉아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주변을 견제하고 눈치를 살핀다. 한 번 앉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이제 이것은 ‘버티고 있음’의 영역이 아니라 ‘붙들려 있음’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근육이 굳어버린 사람을 상상하면 예민하고 경직된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 손에 땀을 쥐고 움켜쥐며, 이 의자에서 밀려나는 순간 존재가 증발할 것처럼 여기는 모습 말이다. 의자에 앉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고 그 위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존재의 증명이 된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자기 자신도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은 덤이다. 재미있는 것은 눈앞의 의자가 영영 자신의 것이 아니라잠시 빌려 앉는 것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떠나면서도 거기에 무언가를 남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다음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의 흔적을 느낀다. 등받이에 남은 체온, 미세하게 기울어진 방향, 소음 절감을 위해 바퀴에 덧댄 고무 패드까지. 순식간에 그 사람의 삶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누군가의 흔적은 나의 자세를 되묻게 한다. 사실 나는 삶의 불편에도 너무나 쉽게 엉덩이를 떼어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고. 조금만 힘들어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너무 빨리 자리를 옮겨버리지는 않았는지. 혹은 너무 쉽게 자리를 고정해 버리고 거기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무언가를 다 한 것처럼 착각해 버리지는 않았는지. 근육을 늘리기 위해선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방법은 간단하다. 앉았다가 일어나고 다시 앉는 것. 그 반복이 곧 힘이 된다. 그러니까 의자에 앉는다는 건 몸을 단련하는 일. 의자의 목적은 결국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 힘들게 버틴 몸이 제자리에서 단단해졌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한껏 솟아오른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면서 다음 자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진득하게 의자에 앉아 문장을 매만지는 일을 회피하고 싶은 필자의 변을 늘어놓았다. 의자의 목적은 오래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일어서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였으니. 이제 나는 당당하게 일어나 냉장고로 향할 예정이다. 운동 후엔 단백질 보충이 필수이므로! /문은강(소설가)

2025-07-13

“오이가 열리든 말든”

어라,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 오이넝쿨의 손은 하늘을 더듬더라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 아직 여름길은 나지 않았는데 바다로 산책을 나간 새들은 오이 향을 데리고 저녁이 닫히기 전 마을로 돌아 오더라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더라 바다에 빠진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 속에서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여름길이 열리고 그 노란 꽃 가녘에 흰 나비는 스르르 속옷을 열더니 쪼그리고 앉더라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오이가 열리든 말든 ―허수경,‘오이’ 전문(‘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지성사) 언젠가 그녀는 말했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잊지 않았다.” 허수경 시인의 시에서 시간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먼 사랑처럼 기어이 휘어지면서” 결코 잊히거나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 남아 무겁고 아름다운 감정을 고요히 쌓아 올리고 있다. 2018년 독일에서 지병으로 조용히 세상을 떠난 그녀는“슬픔의 시간”을 가장 깊이 들여다본 시인이었다. 그녀의 시에는 늘 사라져가는 존재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멀어져가는 시간이 함께한다. 그 시간은 단지 과거로 흘러간 것이 아니라, 현재와 뒤섞이며 미완의 시간 감각으로 현전한다. 이를테면 “아직 여름길은 제대로 나지 않았는데”라는 기표는 시인이 평생을 두고 붙들었던 변전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녀에게 시간은 결코 질서정연하게 흐르지 않을뿐더러 계절은 순서대로 오지 않는다. 사랑은 예고 없이 저물며, 죽음은 삶의 맨 앞에 서기도 하는 그녀의 시간은 늘 어긋나 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의 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가령 “여름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 오이넝쿨의 손이 하늘을 더듬”고 “그때 노란 꽃이 후두둑 피기 시작하더라”는 언술이 그렇다. 그녀에게 바다는 멀리 있지만, “오이꽃에서는 바다의 향기”가 나고, “태양빛 같은 새들의 수다”가 저녁을 덮기 직전까지 계절을 흔든다. 시인의 발화법으로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은 아직 오지 않은 것에 먼저 깃들고, 오이꽃에서 바다향이 나듯, 삶의 어느 부분은 미래보다 앞서 살아지게도 한다고. 해서 이미 진 꽃에서 오이가 열리기도 한다고 말이다. 이때 시인의 몸을 통해 “나비는 조용히 속옷을 벗고, 쪼그려 앉는다.” 생명의 열매는 그저 피고 지고, 사랑은 “열리든 말든” 휘어진다. 태어나고 사라는 모든 과정에서 개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며 “나는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시를 쓴다”고 했던,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허수경적인 태도일지 모른다. 1990년대 후반 독일로 건너가 말 없는 고국을 떠나 먼 나라의 언어 속에서 생을 견뎠고, 2018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아직도 여름처럼 푸르다. 그녀에게 ‘여름’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가장 짙게 고여 있는 감각의 시간이다. ‘혼자 가는 먼 집’에서 그녀는 여름을 “사라지는 존재들을 가만히 붙들고 있는 계절”이라 했고,‘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에서는 여름을 지나간 신들의 시간과 사람의 잊힌 시간과 다름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오이는 허수경의 다른 시 수박’이나‘레몬‘자두’처럼 그녀가 애써 피워 올리던 몸시의 형상으로 읽을 수 있다. 결국 오이넝쿨의 얽힘, 꽃의 노란색, 멍울 맺힌 생명의 시작, 향기로 스미는 바다의 기억, 이 모든 것은 생명과 죽음, 탄생과 퇴락, 감각과 소멸과 다름이 아니다. 그녀의 시 속에서 여성은 늘 혼자서 피고 지며, 존재의 흔적을 조용히 남긴다. 시인은 여성적 존재를 섬세한 식물처럼 그려내고, 그 안에 언어 이전의 감정과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민한 의식을 숨긴다. 시인 허수경에게 시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끝내 붙잡는 일이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자라게 하는 시간, 그리고 멀어지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그 시간까지 모두 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종종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말이 사라진 자리에 감정과 감각의 몸을 생명으로 남겨 두었다. 이것이 바로 허수경의 여름이고, 오이꽃이며, 향기로 스미는 바다일 것이다. “꽃은 지고 오이 멍울이 화반에서 돋아나더라" /이희정 시인

2025-07-13

멈춤 없는 청송의 걸음

지난 3월, 청송은 거대한 산불을 겪었다. 푸르던 산과 마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고 수많은 군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불길은 단지 산을 태운 것이 아니었다. 울부짖는 사람들, 타들어간 과수원, 무너져 내린 생계의 끈들… 그 현장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군민 모두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비극이었다. 그러나 청송은 멈추지 않았다. 고통을 외면하지도 절망에 주저앉지도 않았다. 상처를 껴안은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립주택 설치와 생계비 지원 같은 긴급한 대응은 물론, 산림 복구를 포함한 장기 재건 계획까지 행정과 민간이 함께하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 그 걸음은 단순히 원상 복구에 그치지 않는다. 청송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기반을 다시 다지고 있으며, 공동체가 다시 살아 숨 쉬는 공간을 꿈꾸고 있다. 이 산불은 청송에 닥친 재난이었지만 동시에 우리 시대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 고온과 폭염, 초대형 산불, 집중호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이제 더 이상 일시적 자연현상이나 우연한 사고가 아니다. 청송 역시 최근에는 대형 산불에 이어 예기치 못한 우박 피해까지 더해 농업 현장의 불안이 현실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현실이다. 청송은 이러한 기후 위기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선제적이고 근본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청송의 자부심인 ‘청송사과’가 있다. 1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로 선정된 청송사과는 이제 품질 경쟁을 넘어 기후 변화에 강한 지속 가능한 미래형 스마트 농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황금사과연구단지 조성이 그 출발점이다. ‘우량 사과묘 보급’과 ‘농업용 유용 미생물 생산 및 공급’을 추진하고, 실증시험포장 운영을 통해 ‘5연동 사과재배 하우스’, ‘황금사과 수형별 비교시험포’ 등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또한 유통 구조 개선을 위한 무적엽 사과, 꼭지 무절단 사과 도입 등으로 청송사과의 가치를 한층 높이고 있다. 냉해, 병해충, 이상기온에 대응한 첨단 재배기술도 현장에 빠르게 적용되고 있으며 다양한 품목으로 농가의 소득원을 다변화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농업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청송의 미래를 지탱할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 중대한 변화다. 청송은 농업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년과 가족이 돌아오고 싶은 고장, 어르신도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들기 위한 공간 재설계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체결한 농촌협약을 통해 총 346억 원 규모의 생활권 정비 사업이 진행 중이며 진보면을 비롯한 부남·현동·안덕면 등 각 지역에 복합커뮤니티 공간, 문화·복지시설, 주거 인프라가 조성되고 있다. 농촌에도 도시의 품격을 더한 삶터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과 고령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청송읍에 올해 말 준공 예정인 공공임대주택은 원룸 44세대로 정주여건을 개선하는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이어 2027년 준공 예정인 진보면 공공임대주택(110세대)은 대규모 청년 주거단지로 청년층의 유입과 정착을 견인할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청송군 K-U시티 역노화 사업’을 통해 지역특산물 기반의 상품 개발, 공동연구와 창업지원, 역노화 산업 연계 인재양성 등 청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러한 변화는 산불 피해가 없었던 산남 지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개장한 산남 파크골프장은 최신 시설을 갖추어 주민과 방문객 모두에게 쾌적한 여가 공간을 제공하고 있으며, 전선 지중화 사업도 지역 경관 개선과 안전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기반시설과 생활환경에 대한 지속적 투자는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청송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지역의 지속가능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청송은 산불이라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 시련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회복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쌓여가는 노력 하나하나가 바로 청송의 미래를 지탱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농업을 넘어 삶터 전반에 걸친 변화, 위기 속에서 피어난 연대와 혁신이야말로 청송의 다음 100년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산불이 청송의 시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청송은 오늘도 꿋꿋하게 걷고 있다. 아픔을 딛고, 변화를 품고, 미래를 그리며. 그 걸음은 앞으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