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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울릉도 어선조업·폐업도 못해 어민 빚만 늘어…정부 특단의 조치 마련해야

동해안에 오징어가 고갈되면서 90% 이상이 오징어 조업에 종사하는 울릉도 채낚기 어민들이 생계가 위협받고 있어 정부의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울릉도는 수년째 오징어가 잡히지 않고 있다. 지난해 울릉수협에 위판된 울릉도 어민들의 오징어 생산량은 예년에 채낚기 1척이 1년 동안 잡은 양에 불과한 2여억 원 정도다. 매년 감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오징어가 잡힌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울릉도 어민들은 생계를 위해 폐업을 통해 전업해야 하는 실정이다. 폐업을 하지 않으면 어선관리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 1994년부터 수산자원에 맞는 적정 어선세력을 유지하고자 연근해 어선에 대한 감척 사업을 하고 있다. 수십 년간 어업에 종사한 어민들은 감척을 통해 부채청산도 하고 일부 생활비로 사용한다. 따라서 울릉도 채낚기 오징어 어선 어민들이 감척사업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울릉도 어민들에게는 간단하지 않다. 울릉도 오징어뿐만 아니라 동해 연안이 전체적으로 고기가 잡히지 않자 감척하려는 어민들이 많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산 부족으로 감척이 쉽지 않아 울릉도는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또한, 감척 조건에 연간 조업일수가 60일이 넘어야 하기 때문에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도 조업 일 수를 맞추고자 무조건 60일 이상 출어를 해야 한다. 이렇게 불합리한 조업 일수를 맞추고자 어민들은 소득 없이 유류대를 지출하는 2중 3중의 고충을 겪고 있다.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조업일수 맞춰도 소용이 없다. 예산 때문이다. 올해 감척이 안 되면 내년에 또 60일 조업일수를 맞추고자 출어를 해야 한다. 울릉도 2024년 어선 감척 현황은 14척이 신청해 6척이 선정됐다. 2025년 26척의 어선이 감척을 신청했지만 몇 척이 될지 알 수 없다. 감척이 안 된 어선은 다음해 또다시 60일 출어일수를 맞춰야 한다. 울릉도는 조건불리지역이다. 조건불리지역은 ‘어업 생산성이 낮고 정주 여건이 불리한 도서 및 접경지역 등에 거주하는 어업인’이다. 직접지불제 지원으로 소득 보전과 어촌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제정됐다. 울릉도는 2018년부터 금징어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어업조건불리지역이다. 오징어채낚기 어업에만 의존하는 울릉도어민을 위한 법이지만 그만큼 어업이 어려운 지역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어선감척사업에 조건불리지역 어선에 대한 우선순위를 줘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의 설명이다. 어업 소득이 높지 않아 조건불리지역이 됐지만, 어업소득이 없으면 감척 지원금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울릉도 어민들은 3중 4중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 같은 울릉도 어민들의 사정을 고려해 특단을 조치를 취해 최소한 울릉도 어민들이 요구하는 감척에 대해 우선적으로 예산을 배정, 울릉도 어민들이 생계에 시달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두한 기자 kimdh@kbmaeil.com

2025-05-13

판사의 양심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에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양심에 따른 판결이란 주관적인 개념이어서 자의적인 판결의 여지가 없지 않다. 그래서 법관의 양심은 일반 개인과는 달리 법에 대한 충실한 이해와 합리적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 대법원은, “법관의 양심이란 개인의 주관적 도덕 감정이 아니라, 직업적 사명감과 책임감, 법에 대한 이해와 해석 능력을 바탕으로 한 이성적 판단이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고, 법관 윤리규정에도“법관은 공정하고 독립된 자세를 견지하고, 성실한 자세로 심리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더블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과정에 저지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022년 9월 8일 기소되었다. 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일 때 개발사업 1차장이었던 고 김문기 씨를 몰랐다고 한 사실과, 경기도지사 시절 성남시 백현동 부지의 용도변경과 관련하여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 허위 사실 공표라는 혐의다. 법원은 1심은 6개월 이내,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이내 재판을 마치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270조의 규정을 어기고, 2년 7개월이 지난 2025년 5월 1일에야 유죄취지 대법원 파기환송이 있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감안할 때, 만약 공직선거법의 강제 규정대로 신속하게 처리가 되었더라면, 이재명은 지난 총선의 출마뿐 아니라 이번 대선의 후보도 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다.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중형이 내려진 사건을 2심에서 무죄로 판결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대법원에서도 1심 판결 취지를 그대로 인정하여 유죄 취지 파기환송 한 것일 터이다. 판사의 정치·이념적 성향에 따라 법 적용이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은 여간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강하게 반발을 했다. “명백한 정치재판이자 졸속재판”이라거나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것도 모자라 “극우 내란 세력의 역습”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사법쿠데타”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압박했고, 당 차원에선 조 대법원장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당초 2025년 5월 15일로 예정되었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대통령 선거 이후인 6월 18일로 연기했다.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이유였다, 이는 어처구니가 없는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피고가 후보의 자격이 있는지를 판결하는 것일진대 선거 후로 미룬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 판결이 난 후보의 공판을 선거 후로 연기하는 것은 선거의 당락에 따라 법적용을 달리 하겠다는 저의가 아닌가. 이는 명백히 법리보다 정치적 판단을 우선하는 비양심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판사가 양심을 버리면 법치는 무너지고 만다. /김병래 수필가·시조시인

2025-05-12

무소유의 삶

소유하지 않음이 포기가 아니라 나를 더 잘살게 하는 선택이라면, 당신은 어느 쪽 길을 가겠는가. 소유함으로써 오히려 결핍되고, 내려놓음으로써 오히려 충만해지는 길이 있다. 비움으로 채워지는 길. 무소유의 길이다. 무소유! 도대체 무엇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나의 답은 이렇다. “무소유란, 자신의 관념을 소유하지 않는 것” 우리는 무소유를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돈을 떠 올린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돈이 무슨 죄가 있으랴. 돈에 대한 직접적인 무소유는 무소유가 지향하는 넓은 의미 중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무소유는 돈 자체의 소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돈은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돈을 소유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돈을 버릴 이유도 없다. 돈에 관하여 우리가 소유하지 않아야 할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다. ‘돈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내려 놓는다’는 의미에서의 무소유, 이것이 돈에 관한 참된 의미의 무소유다. 삶은 돈 이외에 수많은 요소들로 짜여져 있다. 건강, 권력, 명예, 사랑, 우정, 자유, 그리고 행복 등등. 이런 소중한 것들 위에 켜켜이 쌓인 관념들을 이제는 내려놓기로 하자. 내려놓고 다시 채우고. 또 내려 놓고 다시 채우고…. 이것이 무소유의 삶이다. 무소유는 삶의 목적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다. 무소유라는 ‘테크닉’을 잘 활용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무소유의 삶은 자유롭다. 관념에 집착함이 없기 때문이다. 재물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재물에 집착하면 창고지기에 불과하다. 지식을 소유한 사람일지라도 지식에 집착하면 꼰대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더라도 사랑에 집착하면 불행하게 된다. 나를 지배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에 집착하고 있는 나의 마음 상태이다. 내가 가진 멋진 차에 집착하여 안절부절하고 있다면 그 차는 애물단지가 되지 않겠는가. 물건조차 이럴진대 하물며 사랑이랴. 무소유는 단순한 금욕이 아니다. 나라는 생각조차 버릴 수 있는 해방의 길이요, 더 잘살 수 있는 실천철학이다. 때로는, 가지는 것보다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1976)에서 인간의 삶에는 ‘소유의 방식’과 ‘존재의 방식’ 두 가지 근본적 태도가 있다고 했다. 소유하려는 자는, 자기 중심적, 불안, 소외를, 존재하려는 자는, 기쁨, 자유, 타자와의 연대를 지향한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행위이다. ‘나는 너를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죽고, ‘나는 너와 함께 있다’ 라고 말할 때 사랑은 산다. 무소유는 존재론적 삶의 방식이다. 여기 아름다운 말들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렇게 사유하는 자는 속박에서 벗어나 진리 속에서 산다(수타니파타 5.13)’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의 것이라(마태복음 5.3)’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 속에는 어떤 꿈들이 있습니까?

2025-05-12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미국 부자

첨예화된 자본주의는 돈을 신(神)의 지위까지 끌어올렸다. 어느 국가라 특정할 것도 없다. 지구 위 대부분의 나라 아이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부자”라고 답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친구와 선후배는 물론, 부모와 형제까지 돈 앞에선 낯빛을 바꾸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본다. 지저분한 사기 협잡과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유산 싸움 이유는 따지고 보면 결국 돈 탓이다. ‘돈은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돈을 잘 쓰는 건 돈을 잘 버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는 부자는 사회적 존경을 받게 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나는 부유하게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며 가진 돈의 사회 환원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2000년 설립된 게이츠재단은 지난 25년 동안 140조원에 가까운 돈을 사회에 돌려줬다. 앞으로는 사회 환원을 더 빠르게, 더 많이 할 것이라는 게 빌 게이츠의 뜻이라고 한다. 그는 “향후 20년간 내 재산의 거의 전부인 99%를 임산부와 아동 사망률을 낮추고, 소아마비와 말라리아 등의 병을 해결하며, 빈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기부하겠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사용될 돈은 대략 280조원. 지금까지의 기부금보다 2배 많은 수치다.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겠지만 ‘그는 부자로 죽었다’는 말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빌 게이츠의 선언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인간에게 돈은 때론 독(毒)이고, 때론 약(藥)이 된다. 어떻게 쓰여야 약이 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12

구글과 전략제휴, 경북을 세계 알릴 최고 기회

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성공 개최에 잰걸음을 하고 있는 경북도가 글로벌 테크 기업인 구글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에 합의했다. 경북도와 구글은 지난 11일 경북도청에서 이철우 도지사와 크리스 터너 구글 부사장, 황성혜 구글코리아 부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상호협력체제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두 기관은 APEC 성공 개최에 앞장서고, 경주를 중심으로 경북을 세계에 알려 경북관광 진흥에도 기여하기로 합의했다. 구글은 미국의 다국적 정보기술 기업이다. 온라인 검색, 클라우드 컴퓨팅, 인공지능, 로보틱스, 소프트웨어, 통신,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이다. 특히 구글은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을 보유하고 있고, 매일 수십억 명이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가장 효과적인 홍보를 원한다면 구글 지도 등 구글이 보유한 플랫폼을 통하는 것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뿐 아니라 경북의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데도 구글과의 협력은 이런 측면에서 매우 유용하다. 경북도는 APEC 개최를 계기로 경북을 글로벌 관광의 중심지로 키워갈 생각을 갖고 있다. APEC 개최지인 경주의 각종 관광시설을 리모델링하고 포항경주공항의 국제선 취항을 준비하는 등 경북관광의 세계화를 위한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포항시도 영일만항의 국제 크루즈선 유치를 검토하는 등 APEC 방문 외국 관광객 유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약 2만명이 방문하는 경주 APEC 개최가 성공을 거둔다면 개최도시 경주뿐 아니라 경북 전역에 걸쳐 상당한 관광 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APEC 개최가 줄 후광 효과는 어느 지역보다 경북이 가장 많은 혜택을 받게 된다. 지난해 경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100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경주를 비롯 경북의 유명 관광지가 국내외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알려지는 분위기다. 구글 등 APEC과 연계된 각종 인프라를 잘 다듬어 경북을 글로벌 관광 중심지로 키워가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2025-05-12

김문수 후보의 개혁과 포용 인사 돋보인다

당의 개혁과 통합에 무게중심을 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의 인사가 돋보인다. 김 후보는 11일 권영세 비대위원장 사퇴로 공석이 된 자리에 초선 김용태 의원(경기 포천·가평)을 내정했다. 1990년생인 김 의원은 국민의힘 최연소 의원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의결에 참여했으며, 지난 10일 당 비대위 회의에서 7명의 비대위원 중 유일하게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후보를 강제 교체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김 후보는 이날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자신을 공개 비판한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을 선대위 공약개발단장으로 내정했고,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만나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주목되는 인사는 권성동 원내대표를 유임시킨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그를 겨냥해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려 한다”는 등의 극언도 쏟아냈다. 지금 당내에서 권 원내대표 등에 대한 비판이 거센 점에 비추어 김 후보의 인사내용은 파격적으로 평가된다. 최근 한동훈 전 대표는 “당내 쿠데타 실패에 대해 친윤(윤석열)들은 대충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퉁치고 넘어가자고들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고, 미국으로 출국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대선 경선판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권영세, 권성동과 박수영, 성일종은 의원직 사퇴하고 정계 은퇴하라”고 했다. 국민의힘 일부 친한(한동훈)계 의원들은 권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러한 당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김 후보가 자신에게 비판적인 인물에 대해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내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자신과 대척점에 선 세력이라도, 대선을 20여 일 앞두고 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선 것 같다. 국민의힘은 지금 대선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내홍과 후보 교체 파동 등으로 그야말로 사분오열 상태다. 김 후보가 젊은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워 당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포용력 있는 인사를 통해 당내 통합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한 리더십으로 판단된다.

2025-05-12

6·3 대선의 시대정신

‘시대정신’이란 ‘오늘의 문제를 진단하고 내일을 모색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시대정신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당면과제를 해결하게 해준다. 차기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확고한 시대정신이 있어야하는 까닭이다. 6·3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후보들은 저마다의 필요에서 시대정신을 말하지만, 국가를 위해 정말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정신이다. 새 대통령이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살리고, 두 동강 난 나라를 통합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과제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헌법 제1조)”이라고 천명한 나라에 ‘민주’도 ‘공화’도 모두 허울뿐이었다. 오만한 집행권력은 느닷없이 계엄을 선포해서 탄핵되었고, 독선에 빠진 입법권력은 행정부의 무력화와 사법부 협박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인 삼권분립을 파괴하고 있다. ‘여소야대’의 경우 정부와 국회가 충돌할 수 있고, 한 정파가 정부와 국회를 모두 장악하면 독재의 위험이 커진다. 6·3 대선이 끝나면 우리는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위험에 또 다시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치선진국은 관용과 자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그 위험성을 극복하지만, 정치후진국은 독선적 권력의 일방적 폭주로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다. 권력의 절제와 정치적 타협을 모르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민주주의는 사망할 수밖에 없다. 한편 ‘공화주의 정신’은 어떤가? ‘통합의 상징’인 대통령이 ‘분열의 아이콘’이 된지 이미 오래다. ‘우리’와 ‘저들’로 편을 나누는 진영정치의 중심에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은 국가적 불행이다. 공화정(共和政)의 국헌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에게 ‘공화정신’이 없었으니 나라는 전쟁터가 되었다. 한 나라 두 국민, 적대적 진영정치, 심리적 내전이라는 ‘세계 최악의 문화전쟁’을 극복하려면 새 대통령은 반드시 ‘통합의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은 유권자의 표심을 겨냥해 ‘선거용 통합 행보’를 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공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평소와는 달리 후보의 말 바꾸기 빈도와 그 폭이 크다면 선거용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선거 때의 공약(公約)은 대부분 공약(空約)으로 끝난다. 중요한 것은 통합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실천행동이다. 미사여구로 말만 떠벌리는 후보는 ‘유권자를 기만한 죄’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차기 대통령은 확고한 공화정신으로 국민통합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나라의 사활이 걸려있는 민주와 반민주, 통합과 분열의 기로에 서있다. 이것은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며,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새 대통령이 민주공화정에 걸맞은 ‘진정한 민주주의자인 동시에 공화주의자’인가에 있다. 이런 후보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그가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에 속지 말고 ‘평소의 행동’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인의 말은 포장지에 불과하고 행동이 그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변창구 대구가톨릭대 명예교수·정치학

2025-05-12

민주주의 위기에 맞서는 현명한 유권자의 자세

사람은 현재의 이익과 만족을 미래의 보상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즉각적인 보상을 선호하고, 미래의 결과나 보상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현상을 행동경제학 용어로 ‘현재편향’이라고 한다. 현재와 가까운 보상일수록 감정적인 이율이 상승하며 현재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이율과 중요성을 낮게 여기는 현상으로, ‘과도한 가치 폄하’라고도 한다. 최근에는 유권자 개개인의 현재편향 오류에 더해, 선거 자체의 정당성을 훼손해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위협하는 요소가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바로 부정선거 음모론이다. 과거에도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작년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유튜브·SNS 등에서 조회수·구독자수 확보 등 경제적 목적으로 자극적인 부정선거 컨텐츠를 양산하면서 일반 대중에게 부정선거 음모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모든 선거관리 절차는 철저한 적법 절차 하에 진행되며, 투표과정을 비롯해, 투표함 이송·보관 및 개표의 전 과정을 참관인이 지켜보고, 그러한 과정에 수 많은 투·개표 인력이 종사하므로 부정이 개입되거나 결과를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제기된 선거소송은 126건이었다. 이 중 단 한 건도 인용되지 않았다.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총 35건의 선거소송이 제기되어 29건이 진행중이기는 하나, 6건이 종결되었으며 그 중 인용된 사례는 없다. 132건의 선거무효소송에서 인용 사례가 1건도 없다는 것은 의혹의 실체가 없다는 반증이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확산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응하기 위해, 선관위는 투개표관리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강화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마련했다. 제22대 국선 때부터는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를 24시간 공개하고, 개표과정에 수검표 절차를 추가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일반 국민이 궁금해하거나 오해할 수 있는 모든 선거관리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공정선거참관단도 운영한다.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의혹들에 현혹되지 않고 사회갈등과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음모론을 스스로 배격함으로써 훼손된 선거의 정당성을 회복하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선거제도를 신뢰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1표의 미래 가치를 지향하며, 유권자 모두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빠짐없이 행사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굳건히 바로 서길 기대한다.

2025-05-12

쿠데타 세력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1976년 5월. 신민당 전당대회는 폭력으로 얼룩졌다. 김영삼 총재에게 집단지도 체제를내세운 이철승 의원이 도전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온건 노선인 이 의원을 지원했다. 사람만 죽지 않는다면 무슨 일을 해도 좋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20대 조폭 김태촌을 끌어들였다. 그의 조직원과 광주에서 고등학생 불량배들까지 불러올렸다. 수백 명이 각목을 들고 신민당사에 난입해 김 총재에게 “죽기 싫으면 당인을 내놓아라”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방관했다. 국민의힘에서 벌어진 일을 보면 그 시절이 떠오른다. 한덕수 후보는 어디서 왔나. 지난 4월 8일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그는 트럼 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느냐”라고 물었다고 흘렸다. 누군가 시중에 그의 출마설을 퍼뜨려놓았다. 그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존재감을 키운 셈이다. 그날 시작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그의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 이때만 해도 지지도가 미미했다. 이재명 37%, 김문수 9%, 홍준표 5%, 한 동훈 4%, 그리고 한덕수 2%였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국민의힘이 예비후보 등록을 한 것은 그보다 일주일 뒤인 4월 15일이다. 두 번의 예비경선을 거쳐 5월 3일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를 선출했다. 경선 과정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들은 “한덕수와 단일화할 거냐”라는 질문과 압박을 끊임없이 받았다. 입당도, 예비후보 등록도 하지 않은 한덕수 후보가 예비경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 그의 존재감을 키워줬다. 정작 그는 당 밖에서 정대철 헌정회장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했다. 국민의힘 최종 후보가 결정되기 하루 전에야 출마를 선언했다. 한 후보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전화한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무소속으로 는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선된 국민의힘 후보가 양보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무엇을 믿었던 걸까. 많은 정치 분석가는 친윤 세력, 그 뒤에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다고 의심한다. 무리하게 후보 교체를 몰아간 권영세 비대위원장이나 권성동 원내대표가 모두 ‘친윤’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후보를 양보하지 않는 김문수 후보를 “알량한 후보 자리를 지키기 위해…한심하다”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그렇게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자리인가. 원내대표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허수아비쯤으로 생각한 건 아닌가. 사실 국민의힘 지도부나 한덕수 후보가 김문수 후보에게 요구한 ‘단일화’는 ‘양보’다. 10일 밤 당원 투표로 김문수 후보로 정리된 뒤에도 권영세 비대위원 장은 “단일화 못 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로 단일화는 단일화가 아니 었다. 김 후보가 경질을 요구한 이양수 사무총장에게 ‘단일화’를 위한 선거관리위원장을 맡겼다. 경쟁 후보 중 한 사람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칼자루를 맡긴 꼴이다. 김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 뒤 모두 잠든 새벽 3~4시에 단일화 후 보 등록을 마감했다. 새벽 2시 30분에 공고해, 한 시간 반 만에 32가지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최종학교 졸업증명서도 있다. 한 후보는 새벽에 입당하고, 하버드대 졸업증명서까지 준비했다. 짜고 친 고스톱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김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자마자 바로 그날 ‘단일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다. 왜 한 후보를 바로 경선에 참여시키지 않았을까. 윤 전 대통 령이 싫어하는 한동훈 후보를 떨어뜨리려는 꼼수라고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 무리한 공작 탓에 시너지는커녕 갈등만 유발했다. 모든 경선 참여자가 반발했다. 한덕수 후보가 득표력이 더 있다는 근거는 중도 확장이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선에 참여해야 했다. 한동훈·유승민에게도 공정한 기회를 줘야 했다. 홍준표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나라도 망치고, 당도 망쳤다”라고 비난했다. 당내 세력이 전혀 없는 한덕수 후보를 내세운 친윤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라고 보기 때문이다. 탄핵 반대 운동 때 등장한 ‘윤 어게인’(윤석열 복귀)이 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쿠데타를 반복하는 세력부터 추방해야 국민의힘이 산다. 김진국 △1959년 11월 30일 경남 밀양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 학사 △현)경북매일신문 고문 △중앙일보 대기자, 중앙일보 논설주간, 제15대 관훈클럽정신영기금 이사장,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부회장 역임

2025-05-11

안동 산불, 검게 그을린 숲에서 다시 피어나는 희망

“이번 산불로 많은 시민이 삶의 터전을 잃고 깊은 상처를 입었다.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안동시는 현재 피해복구와 함께 생활 안정, 농가 지원, 산림 회복에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으며, 시민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연대와 협력의 힘으로 반드시 안동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2025년 봄, 안동시는 대형 산불로 인해 유례없는 피해를 입었다. 순간 풍속 28㎧의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은 안동시 남쪽의 7개 면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숲은 검게 그을렸고 마을과 삶의 터전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안동시민과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손길들이 하나둘 모였고, 이제 안동은 회복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디고 있다. 이번 산불로 안동에서 소실된 산림 면적은 2만6708㏊로, 여의도 면적의 92배에 달하는 규모다. 또한 사망 4명, 부상 6명 등 10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여기에 정부 재난관리시스템(NDMS)에 입력된 자료를 기준으로 안동시에서 이번 산불로 전소됐거나 반소 또는 일부가 소실된 주택은 모두 1379동에 이른다. 여기에 신고되지 않은 빈집 등을 포함하면 철거 대상은 1,700동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농작물 883㏊, 축사 231곳 등이 불길에 휩싸였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대피주민은 5300여 명에 달했다. 이 중 1000여 명은 여전히 선진이동주택과 대피소 등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는 산업 전반으로도 확산됐다. 남후농공단지 내 제조업체 26곳이 전소 또는 일부 소실됐으며, 스마트팜 시설과 식품업체, 건설업체 등 개별기업도 34곳이 피해를 입었다. 안동의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기반산업이 송두리째 흔들린 셈이다. 산불이 진화된 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조속한 복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다아 곧바로 피해복구에 나섰다. 현재 주거지원 분야에서는 68개 부지를 주택입지로 선정해 956동의 선진이동주택 공급을 추진 중이다. 5월 중순까지 전량 설치를 목표로, 현재 절반가량이 공급 완료됐다. 선진이동주택은 1세대(3인 기준)당 1동이 제공되며, 싱크대·옷장·신발장·에어컨·바닥난방 등 생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공공임대주택을 활용한 긴급 주거지원도 병행, 74세대의 이재민이 입주를 완료했고 모듈러주택에도 13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농업 분야의 회복을 위한 지원에도 나섰다. 5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트랙터, SS기, 승용제초기 등 장·단기 임대 농기계를 확충, 무상으로 임대하고 있으며 지원된 철거비 반납에 동의한 농가에 대해서는 농업시설 철거를 지원해 현재 90%가량 완료했다. 아울러 피해 사실이 확인된 농기계를 다시 구입할 경우 재난지원금을 포함해 최대 70%의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며, 응급복구용 농업용수 기자재를 지원하는 등 조속한 영농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폐기물 처리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산불로 48만t의 폐기물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며 처리비용은 430억 원에 달한다. 우리시는 신속하고 안전한 처리를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현재 60% 이상의 처리율을 달성했다. 폐기물 임시 적환장도 5곳(일직면, 임하면, 길안면, 임동면, 기존 매립장)을 설치하고 반출된 폐기물은 전량 안동시에서 무상 처리할 계획이다. 아울러 건축허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친 농사용 창고와 비닐하우스 등 영농시설에 대해서는 재난지수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 철거비로 해당 농가에 지원되고 있다. 피해기업을 위한 지원책도 병행되고 있다. 대구·경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과 공동으로 ‘원스톱 지원센터’ 설명회를 열고 참석 기업과 각 지원기관 간의 일대일 심층 상담 등을 진행했다.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1년간 운전자금 융자한도액 및 이자를 우대 지원해, 융자한도액을 최대 5억 원까지로 확대하고 이자도 5.5%까지 확대 지원키로 했다. 산불은 많은 것을 앗아갔다. 하지만 잿더미 속에서도 지역사회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안동시민과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 발생 후 지금까지 83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주민들을 도왔으며, 경북공동모금회와 고향사랑기부 등으로 전해준 성금은 총 83억이다. 큰 금액이지만 피해가 워낙 컸던 터라 안동시는 주민을 위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성금을 모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산불은 삶의 터전을 불태웠지만, 안동은 무너지지 않았다. 잿더미 위에도 희망은 자라고 있다. 시민의 의지와 전국 각지의 손길, 행정의 신속한 대응이 어우러져 안동은 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더 푸르게 되살아나고 있다.

2025-05-11

“당신도 당해 보라고”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 파티마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 ―조성래,‘창원’부분 (‘천국어 사전’, 2024. 타이피스트) 읽던 시집에 얼룩이 번졌다. 단 한 방울이었는데 시집 한 권을 망치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이라 변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시집을 덮으며 이런 상상을 해 본다. 조성래 시인의 이번 시집은 죄다 침수되었다고, 해서 시집이 소진되었다고. 가령 인용되지 않은 이런 구절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 한 인간이 하루 동안 생산해 내는 환상의 양은 옥상의 푸른 물탱크 하나만큼”이었다고 말이다. 또 이런 시편은 어떤가. “누구라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여자의 물탱크는 두 개, 그 어떤 누구의 미래와 희망, 천국도 결국은 물탱크 속에 갇힌 햇빛”, “그러나 어머니의 빈 탱크, 나 온통 젖은 몸으로, 타향으로 떠날 때, 어찌나 기뻤던지, 나의 자유가 어머니의 자유에 반하는 숙적이라는 사실을 무참히 깨달으며, 나는 사탕 빠는 고아처럼 잠시나마 기뻤”다는 내면의 고백말이다. 그것은“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는 언술처럼 비록 가까울지라도 먼 곳에 있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참담한 독해와 같을 것이다. 해서 시인을 통해 우리는 어떤 부끄러움 앞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자식은 죄책감이 들 때에서야 부모에게 전화를 한다”는 사사키 이타루의 말은 조성래 시인이 말한 세계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것이 시라는 화법과 유사하다. 흡사 이런 완전한 밀착의 순간에 와서야 사람의 영혼은 어떤 비밀을 깨닫게 되니까. 물론 그것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그래도“모든 이야기는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관통하는 지점은 분명한 듯하다. 지극히 보편적인‘죽음’이라는 의식을 전제하지 않는 한 세상의 어떤 이야기도 태어나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다 믿지 못할지라도, 우리에게 어머니란 기표는 신앙이며 동시에‘천국어’와 다름이 아닐 것이다. 극도의 아름다움이 참담하게 슬픈 이야기를 태어나게 한다.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이희정 시인

2025-05-11

수염 기를 권리, 수염 안 기를 권리

나는 수염을 기른다. 콧수염과 턱수염이 어느 정도 길어지면 일정한 길이로 잘라내니 정확히 말하면 마냥 기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완전히 면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2010년에 나온 EP의 커버에는 수염이 없고 2013년에 나온 1집 앨범의 커버에는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이 있으니 그 사이 언제쯤부터 십 년 넘는 세월동안 수염이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염을 민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몇 번 쯤은 수염을 다듬다 실수를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수염을 밀어야 했고, 어느 기간 동안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수염을 밀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내와 결혼을 하기 위해 장인어른, 장모님을 처음 뵙던 날도 수염을 밀었다. 그런 날들을 제외하고 수염은 언제나 나와 함께 했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심지어 내 결혼식장에서도. 예술인이라는 직업의 고충이야 많지만 특권은 드문데, 그 몇 안되는 특권 중에 하나가 수염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원 없이 누리고 싶었다. 수염은 당연히 남성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그래서 풍성한 수염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탈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런 것 없이도 부족하지 않게 수염이 난다. 이 역시 내가 누려야 할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커다란 얼굴을 조금이나마 덜 커보이게 하는 기능도 있고, 옷에 힘을 주지 않아도 나의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요즘 ‘추구미’라는 말이 유행인데, 나의 추구미는 수염을 빼 놓고 상상할 수가 없다. 오랜 세월 함께 해왔기 때문일까, 나는 정말로 나의 수염을 사랑한다. 한국에서 수염 기른 사람은 별로 이성에게 인기가 없지만 다행히 나의 아내는 나의 수염을 존중해준다. 이 존중이라는 것이 내게는 참 중요한 것이다. 싫어한다고 밀어버리라고 강요하지도 않고 좋아해서 기르라고 떠밀지도 않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의 수염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태도가 아닐까. 나는 모든 이들이 다른 사람의 수염에 대해서 이러한 존중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니 거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기르건 말건 신경이나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의 수염에 대한 박해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각종 참견은 물론이고 더럽다느니 게을러보인다느니 하는 혐오적인 발언들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수염 기른 사람은 정말 더럽고 게으를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있는데 수염을 모두 제거하는 면도보다 일정한 모양과 길이를 유지하는 수염 관리가 훨씬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관리를 해야 하므로 더럽거나 게으르다는 것은 분명 편견이다. 실제로 더럽고 게으른 사람이 있을 수 있을지언정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수염에 대한 박해는 단정치 못하고 불량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대’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국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남성 중 수염 없는 남성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터 잡으신 단군할아버지도, 만주 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도, 말 목 자른 김유신장군도 모두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묘사가 되는데 이 분들을 두고도 불량해 보인다고 할 수 있겠는가. 굳이 역사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다른 국가를 향해서만 시선을 돌려봐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자나 기업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수염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밴스 부통령부터 멋드러진 수염을 기르고 있고, 일본에서는 해머던지기 선수 출신 체육부(스포츠청)장관 무로후시 고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수염 미는 문화가 서구권을 통해서, 혹은 주변국가를 통해서 양장과 함께 들어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들에게는 허용되는 것이 우리에게만 허용되지 않는 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는 수염에 대한 박해, 차별, 탄압을 멈출 것을 제안한다. 공직자에게 존재하는 품위유지의 의무를 수염과 연관 짓지 않기를 부탁한다. 기업에서 수염 기른 사람에게 눈치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을 채용할 때 수염이 있다고 해서 배제하지 않기를 촉구한다. 위생이 중요한 업장에서 수염의 유무가 아니라 청결하게 관리되었는가의 여부를 체크할 것을 제안한다. 우리나라에 ‘수염 안 기를 권리’가 생겨난 것이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수염 기를 권리’, ‘수염 기르고도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강백수(시인)

2025-05-11

사랑과 글쓰기, 기억과 해석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와 필립 빌랭이 실제 연인 사이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대학 시절, 필립 빌랭은 아니 에르노의 작품에 매료되어 팬레터를 보낸 것을 계기로 그녀와 관계를 맺게 된다. 에르노가 쉰넷, 빌랭이 스물넷이던 시절의 일이다. 필립 빌랭은 그러한 경험을 토대로 ‘포옹’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에르노는 같은 관계를 ‘젊은 남자’라는 작품으로 다시 써냈다. 두 사람이 각자의 시선으로 쓴 이 두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언어로―그러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기록한 문학적 대화다. 내가 필립 빌랭의 ‘포옹’을 처음 읽은 건, 열다섯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나름 우등생 소리를 들었지만, 새 학교에서 나는 어설프고 소심한 학생일 뿐이었다. 다들 나의 진가를 몰라주고 있다. 모두가 나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당시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냈다. 내게 조언을 건네는 문학 선생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도서관 책장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나를 건드려줄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 책을 향해 손을 뻗은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프랑스 문학 코너는 언제나 사람이 적었고 그 속에서 나는 조금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며 책을 고르곤 했다. ‘포옹’은 매우 얇았다. 완독하는 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표지에서 설명하듯 외설스럽고 자극적인 소설은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본 것은 확실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에 관한 글쓰기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 너머 작가가 끊임없이 발화하고자 했던 것. 그가 끝내 포기하지 못했던 선명한 욕망.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제 나는 삼십 대를 지나고 있고 어쩌다 보니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아니 에르노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자연스럽게 필립 빌랭의 ‘포옹’을 펼쳐 들었고 순간 열다섯 어느 날의 기억이 갑작스레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낯선 세계를 손끝으로 매만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다시 읽은 이 책은 어설프고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어떤 대목은 나의 미숙함과 똑 닮아 있어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아니 에르노는 ‘젊은 남자’에서 말한다. 그와의 관계는 단지 열정의 시간이 아니라 젊은 시절의 자기 자신과 조우하는 계기였다고. 그녀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권력을 체험하기도 한다. 아니 에르노가 천착해 온 주제―여성의 몸, 욕망, 권력에 관한 문제―가 짧은 기록 속에서도 집요하게 고개를 든다. 그것은 ‘포옹’에서 보이는 감정의 분출과는 분명히 구분되는 영역이며 어떤 면에서는 모종의 쓸쓸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지금, 열다섯의 나라면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젊은 남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과거의 자신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때는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던 감정이 이제는 언어의 테두리 안에 천천히 포착된다. 세상과의 불화, 분투, 질투와 수치…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온 사람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시선. 자연스레 재해석되는 세계. 그러니까 결국 하나의 사건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점과 시간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해석의 집합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의미는 달라지고 그 변화 자체가 또 하나의 진실이 된다. 모든 사건은 다층적인 얼굴을 가진다. 기억은 사실이 아니라 해석의 연쇄다.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텍스트 그 자체로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며 해석이 얼마나 복수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활자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나를 바라본다는 것. 내가 지나온 시간을 바라보는 렌즈가 흐려지고 선명해진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물론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자리에서 나만의 속도로 활자를 읽어가는 경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것. 사랑과 글쓰기는 여전히 내 삶에서 두고두고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문제라는 것. /문은강(소설가)

2025-05-11

정치인들이여, 책을 읽어라

지난 금요일 내가 맡은 한 수업에서 어느 수강생이 ‘수업이 너무 좋아요. 머리가 명징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한다. 그 수강생은 지난 10년간 종교 활동만 했더니, 인간관계나 생각하는 것이 너무 좁아져서 내 강의를 신청했는데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한다. 실제로 새로운 것을 접하면 뇌파가 달라져서 학습, 기억, 창의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 역시 이런 효과를 얻고 싶어 틈나는 대로 다른 분야를 공부한다. 올 5월에는 시 수업 두 개를 신청했다. 한강 작가의 초기 시를 읽는 수업과 김혜순 시집 12권을 읽는 수업이다. 두 작가의 시는 내게 난공불락의 요새라서 용기가 필요했으나 과감히 신청했다. 김혜순 시집 전작 읽기를 이끄는 S 시인은 시를 읽을 때는 표현에 주목하라면서 낯선 표현을 경험하는 것이 시를 읽는 효과라고 한다. 그동안 어려운 시들을 보면 도대체 왜 이런 시를 쓰고 읽는지 궁금했는데, 김혜순의 시를 같이 읽으며 낯선 표현에서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6∙3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여당이었던 거대 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을 보니 이해 안 되는 일이 많다. 정치 경력이 많은 사람도 있고, 서울대 졸업에 법조인 출신까지 이른바 ‘넘사벽’ 스펙의 소유자들이 후보로 나섰는데, 경선 토론회 수준이 기대 이하다. ‘왜 키높이 구두를 신으십니까?’ ‘내 지지율이 당신보다 7% 앞서니 사퇴하시죠.’, ‘당신은 전과 7범인데 다른 당 후보를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까?’ ‘나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대학을 나왔습니다.’ 같은 말들이 나온다. 그 정당의 비대위는 후보 선출 후 비상계엄에 책임이 있는 외부 인사를 데려와 정식 절차를 밟은 후보와 바꾸려고까지 했다. 결국 실패했지만 그런 비상식적인 일을 했다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정치에 관심 많은 지인은 정치판에 들어가면 다 저렇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상당히 그럴듯하다. 매일 만나는 사람과 생각하는 일이 한정되어 있으니 자기 집단의 이익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자니, 바츨라프 하벨(1936~2011) 같은 정치인이 그리워진다. 하벨은 체코의 정치가인데, 극작가이자 수필가이도 하다. ‘녹색 평론’에서 하벨의 글을 읽고 무한 감동에 빠졌던 일이 생각난다. 그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두 나라로 분리되기 전 마지막 대통령을 역임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뉜 후 대통령 출마를 고사했지만, 연방 의회 의원들의 만장일치 의결로 추대되어 체코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정치를 하든 종교를 믿든 어느 한 가지 일만 오래 하다 보면 편협해지고 어리석어진다. 새로운 공부를 통해 주의를 자주 환기해주어야 한다. 주의를 환기하는 데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책을 읽어야 인식이 확장되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중에 시는 시간으로 보나 효과로 보나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정치인들에게 시 읽기를 권한다. /유영희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

2025-05-11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경북과 경남지역 산불은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 약 4만8천여 ㏊에 달하는 산이 잿더미로 변했으며 3천여 동의 집이 불에 타고, 30건의 국가유산과 2천여 건의 농업시설 피해를 보았다. 불을 끄고 한숨을 돌리나 했는데, 대구에서 다시 산불이 났다. 대구 산불은 원인 규명 중이지만, 나머지는 사람이 불을 내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의 상승은 산불 가능성을 높이고 태풍급의 바람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산불을 퍼뜨렸다. 산불로 인한 유독 가스의 발생은 대피하려는 주민들이나 불을 끄려는 소방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불완전 연소로 인한 연기는 불을 끄려는 헬리콥터 조종사의 시야를 방해했다. 태풍급의 바람에 실려 온 불길이 넓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바람에 차에 불이 붙을까 다급했던 이야기도 들린다. 빽빽하게 우거진 산림과 두껍게 쌓인 낙엽은 가뜩이나 힘든 산불 진화를 어렵게 했다. 우거진 산림은 헬리콥터가 뿌린 물을 막았고 떨어진 낙엽은 산불 진화를 방해했다. 낙엽 속에 남은 불씨는 다시 발화하여 수천 명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기도 했다. 멀리 떨어진 집마다 바쁘게 돌며 주민들을 대피시키는 사람들과 그들의 긴박한 목소리. 제때 대피하지 못해 등이 탄 소를 보며 이번 사태가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 전쟁보다 더한 처참한 산불에 할 말을 잃는다. 낮이나 밤이나 불길과 싸우는 최전선에서 여러 날을 집에도 가지 못한 채 불을 끈 소방대원들. 소방대원들에게 힘을 보탠 국군장병과 공무원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 그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더라면 불을 끄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나타난 불에 녹아버리는 헬멧 같은 소방 용품은 우리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번 산불을 겪으며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주거지와 산림층을 구분 짓는 방화선을 만들고, 산불 진화를 위한 임도 구축, 고령층 주민들의 빠르고 안전한 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화 방법으로는 대용량의 물로 한 번에 넓은 지역의 불을 끌 수 있는 대형 헬리콥터와 고성능 펌프를 장착한 산불 진화 차량이 더 필요하다. 목숨을 걸고 불을 끄는 이들에게 안전한 소방 용구의 공급은 우리가 준비해 주어야 할 기본이다. 이재민을 위한 구호 사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가축과 야생 동물의 사체와 생명을 잃은 나무들, 잿더미로 변한 산을 보노라면 그 피해를 가늠하는 것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지구의 경고를 무시하고 지금도 불을 지피며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그것도 모자라 불을 들고 산으로 들어간다. 기후 대응 협력 프로젝트 국제기구인 WWA(World Weather Attribution)는 340년 만에 한 번 있을 극단적이고 이례적인 기후의 영향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대한민국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대형 산불의 발화 가능성이 2배 더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대형 산불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산불을 예방하자. 지구가 보내는 다급한 신호를 겸허히 받아들이자.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 지구 환경을 살리는 일이 우리가 사는 길임을 알아야 한다. /김규인 수필가

2025-05-11

스승이 존경받는 사회

스승의 날이 만들어진 것은 학생들의 단순하고 순수한 생각에 의해서다. 1963년 충남 강경고 청소년적십자단 학생들이 병환 중이거나 은퇴한 스승을 찾아 위로 활동을 해보자는 것이 유래가 성립한 배경이다. 이 운동이 계기가 충청남도 은사의 날이 민들어졌다.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것은 한참 이후인 1982년도의 일이다. 5월 15일을 스승의 날로 잡은 것은 민족의 스승이자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탄신일을 기년일로 삼았기 때문이다. 엣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스승은 가르침을 받는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이 존경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소학에 등장하는 말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도 스승의 위상을 잘 말해주는 표현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스승에 대한 은혜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공자의 뛰어난 70명의 제자를 칠십자라 부르는데, 그들이 공자의 사상을 후대에 전하면서 동양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한 사람의 훌륭한 스승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렇게 큰 것이다. 누구나 학창 시절 마음으로 존경했던 선생님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는다는 그때처럼 스승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니지만 아직도 스승을 공경하고 따르는 제자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단을 떠나가는 선생님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가장 선망의 대상이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다시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집단으로 올라설 수 있도록 하는 범사회적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 “스승의 은혜는 하늘과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진다”는 가사처럼 그들의 은혜를 기리는 날이 바로 5월 15일 스승의 날이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11

도시철도 무임승차 손실, 법 개정이 해결책

대구와 서울, 부산, 인천, 광주, 대전 등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전국 6개광역시 도시철도 운영기관 노사 대표가 만나 지난주 무임승차에 대한 국가 보전을 촉구하는 공동건의문을 채택했다. 도시철도 노사 대표는 건의문에서 “1984년부터 시행해온 노인 등에 대한 무임승차로 최근 5년간 연평균 5588억 원의 무임승차 손실액이 발생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국가 보전책을 촉구했다. 특히 21대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도시철도 무임승차 해결을 위한 대안을 공약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급격한 노령화로 도시철도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6개 기관들은 도시철도법 등의 개정을 통해 근본적 해결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법 개정은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되고, 22대 국회도 발의는 됐으나 심의가 보류 중이다. 정부는 무임승차 손실이 도시철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치사무며 지자체가 지하철 요금을 인상함으로써 해결 가능한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6개 광역시는 법정 무임승차가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되는 국가 사무며 정부가 법정 무임승차를 보전해주는 한국철도공사와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무임승차는 법률로 보장하는 복지제도인데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감당하기는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도시철도 누적 적자는 서울 16조 원, 부산 2조 원, 대구 1조6000억 원에 이른다. 만성적인 적자의 주요 원인이 무임승차 때문이라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무임승차의 80%가 노인 인구 때문인데 앞으로 고령화 진행이 빨라질수록 무임승차 부담은 더 커지는 구조다.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에 해법을 건의한 것은 이미 여러 번이다. 정부도 이제 문제 해결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야 한다. 대안으로 무임승차 연령의 상향도 고려해 볼 만하다. 도시철도 무임승차가 노인에 대한 복지라는데 반대할 의견은 없다. 무임승차 손실을 정부가 떠안든지 법 개정을 통해 해결책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2025-05-11

시와 정치의 상관성에 대하여

‘논어’를 읽다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온다. ‘정사(政事)’에 관한 ‘위정편(爲政篇)’에서 우리가 만나는 대목의 핵심은 기실 정치 행위가 아니라, 정치를 하려는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다. 공자의 생각은 인륜 도덕과 예의범절, 효도와 학문, 말과 행동, 불의와 대면했을 때 응당 가져야 할 태도 같은 인간의 바른 자세에 집중돼 있다. 그 가운데서 내가 주목하는 대목은 두 번째 장에 나오는 짧은 언명(言明)이다. “'시경(詩經'에 들어있는 시 300편을 한 마디로 개괄하면 생각에 사특(邪慝)함이 없다.” 정치인이 지녀야 할 덕목의 핵심 가운데 하나를 ‘시’로 지적한 것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러분은 시를 암송하거나 시를 읽거나 시를 쓰는 정치인을 생각해 보신 적이 있는가? 견문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것이나, 나는 우리나라 정치인 가운데 누군가가 아침저녁으로 시를 읽고 시를 생각하고 시를 논한다는 얘기를 아직 들은 바 없다. 그야말로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한국의 정치판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우리 정치인들은 마음 편히 혹은 여유롭게 시와 만나고, 시를 음미하고, 시를 기억할 최소한의 여유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가 정치와 시를 연계한 데에는 까닭이 있을 터! 그것은 ‘논어’ ‘계씨편(季氏篇)’에서 찾을 수 있다.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 ‘백어(伯魚)’에게 아버지한테 특별히 들은 게 없느냐, 하고 묻자, 백어는 아버지 공자를 인용한다.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지식인이 자신의 사유와 인식을 올바르게 전달하고자 한다면 시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공자가 엮은 ‘시경’에 포함된 305편의 시를 공부함은 시를 통째로 기억하여 일상적인 대화 수준으로 만들어야 함을 뜻한다. 자연과 세상, 인륜과 풍속, 지난날과 당대의 세태, 각종 예법을 두루 포괄하고 있는 ‘시경’의 모든 시편을 암송함은 작은 백과사전을 머릿속에 내장하고 있음과 전연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공자의 생각을 단출하게 정리하면, 시로써 흥하고, 예의범절로 서고, 음악으로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예악사상의 첫 번째 단추를 공자는 ‘시’에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공자는 정사의 요체로 시를 그토록 중시한 것일까? 정치인의 첫 번째 소양(素養)은 언어 구사 능력이다. 대중에게 자기의 생각과 의도를 설득력 있게 전달함이 무엇보다 긴요하기 때문이다. 잠시만 생각해 보시라! 고급하고 우아하며 세련된 시편(詩篇)에는 인간의 거칠고 우매한 심성과 진창으로 더럽혀진 영혼을 세탁하는 강력한 세척력이 내장돼 있다. 어느 정치인의 언사가 시어(詩語)에 기초한 아름답고 세련되며 고매한 것으로 점철돼 있다면, 그것을 듣는 시민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자명한 결과가 여러분의 눈에 선하지 아니한가! 어느 당에서 일어나고 있는 ‘진흙탕의 개싸움(泥田鬪狗)’과 일장활극(一場活劇)을 보노라니, 빈곤하다 못해 금수(禽獸)의 수준으로 타락한 그들의 언어로 오염되어 가는 우리 시민들과 어린 세대에게 부끄럽고 참혹한 마음 그지없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시를 공부하시라! /김규종 경북대 명예교수

2025-05-11

‘視界제로’ 국힘, 대선판세 뒤집을 수 있을까

김문수 대선 후보를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 교체하려던 국민의힘 지도부의 단일화 작업이 무산됐다. 지난 10일 전 당원을 대상으로 한 ‘한덕수 후보 변경안’ ARS 조사에서 반대가 많아 부결된 것이다. 국민의힘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근소한 차이로 후보 재선출 관련 설문이 부결됐다”고 했다. 김 후보는 11일 경선 결과대로 공식 후보 등록을 했다. 당원투표 안건이 부결된 것은 ‘절차적 정당성’을 우려해온 당원들의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주말부터 당 지도부가 속전속결로 추진한 ‘김 후보 자격 취소-후보 등록 공고- 한 후보 입당 및 당 후보 등록’이 절차적 하자가 크고 정당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강하게 제기됐다. 당원들 사이에서는 “쌍권(권영세 비대위원장, 권성동 원내대표)이 핍박할수록 김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더 올라갈 것”이라는 말이 나왔었다. 후보 교체를 주도했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리를 지킨다고 한다. 선거 준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차기 당권 유지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당장 국민의힘 의원 16명이 당원 투표안이 부결된 직후 “권 위원장의 사퇴만으로는 책임을 다하기 어렵다. 이번 사태에 깊이 관여해 온 원내지도부의 동반 사퇴를 촉구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김문수 후보는 11일 “빅텐트를 세워 반(反)이재명 전선을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남은 22일 동안 ‘이재명 대세론’을 뒤집으려면 갈 길이 험난하다. 우선 당 내분을 수습해 단일대오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급선무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당내 주류인 친윤(친윤석열)계는 김 후보에게 ‘알량한 대선 후보 자리’, ‘한심하다’는 등의 조롱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갈등은 대선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와의 ‘빅텐트’ 구축은 더욱 풀기 힘든 과제다. 앞으로 김 후보가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고 대선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2025-05-11

영덕국유림관리소, 산림을 지킬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경북 영덕군 칠보산 자연휴양림 인근 임도에서 발생한 원목 운반 차량 화재 사건을 접하고 한편으로는 충격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력감을 느꼈다. 사고는 겉보기엔 단순한 불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영덕국유림관리소의 관리 소홀과 법 무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특별법’은 말 그대로 산림을 지키기 위한 강제 법령이다. 산림 내 재선충병이 확산되면 피해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우리는 이 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다. 특별법에 명시된 이동 제한, 감염목 제거, 방제작업 등은 모두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강제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영덕국유림관리소는 이러한 규정을 무시하고 불법 원목 운반을 방치했다. 그것도 이동 제한기간 중에 말이다. 관리소의 방임으로 불법 반출 의혹까지 제기됐고, 주민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법은 무슨 소용있냐”는 한 주민의 말에서 모든 것이 드러난다. 법과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집행할 책임이 있는 관리소가 이를 무시하고 눈감았다. 이제 누구도 이 사건을 단순한 실수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 사건은 단지 관리 소홀을 넘어 산림 보호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의 무능을 여실히 보여줬다. 당장 책임자 문책, 감사, 불법 반출 의혹 수사가 진행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영덕국유림관리소가 얼마나 관리 소홀과 비리의 온상이었는지를 더욱 명백히 드러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산림청이 어떻게 이 사태에 대응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사건 발생 직후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는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잃고 더 나아가 국민 전체의 신뢰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산림청은 이제 ‘조직 보호’에 급급해선 안 된다. 이 사건을 조직 개혁의 기회로 삼고, 투명하고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처벌을 통해 지역민과 국민에게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 지역 산림을 지킬 책임은 관리소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는 단지 산림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 사회의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산림 행정에 대한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 /박윤식기자 newsyd@kbmaeil.com

2025-05-11

철강 산업의 위기, 문제는 경제야!

최근 초일류 강대국인 미국이 관세 폭탄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도 진영의 갈등으로 빚은 탄핵정국이 지도자를 잃은 채 대선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최첨단 산업은 한국의 반도체를 뒤로하고 AI와 로봇이 주도하고 있고, 중저가의 철강과 화학은 중국이 이미 한국을 따돌린 듯하다. 특히 탄소중립, 중국 저가 물량 과잉 공급과 고금리로 이어지는 내수 둔화로 위기에 빠진 철강산업이 설상가상으로 관세의 폭탄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바로 포항의 위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포항은 철강산업이 73%나 되는 단일구조여서 철강이 휘청거리면 지역이 심한 몸살을 앓으며 수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곳간에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경제가 돌아가야 시민들의 얼굴이 펴질 것이다. 포항은 어떤가. 지역의 주축인 철강이 이런 마당이니 물어보는 것이 그저 민망할 뿐이다. 지금 지역 민심은 지도자들에게 과연 어떤 문제가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미국 전 대통령 빌 클린턴이 1992년 대선 후보 당시 내걸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요즘 새삼 생각난다. 실제 경제가 선순환 되면 서민들의 어깨도 올라갈 것이다. 필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기업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한다. 이는 기업을 잘 아는 강력한 추진력의 리더가 뒷받침 된다면 가능한 문제다. 여력도 있다. 수십조가 투자되는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소 사업을 조기 착공될 수 있게 하고 5000여 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도 설계조차 되지 않고 있는 영일만대교 강력 추진도 급한 대로 대안 중 하나다. 환호공원 내 스카이 워크처럼 외부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거시적 관광정책도 더 확대되어야 하며 보다 많은 특급호텔이 포항에 건립되어야 한다. 특히 포항 산업의 다변화를 위해 제대로 된 창업 기업들이 태동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철강 원자재 생산지에 그를 바탕으로 한 그럴듯한 소비제품 제조기업 하나 없다는 것은 포항 경제의 쇠약함을 보여주기 충분하다. 기업은 속성이 있다. 돈이 되면 어디든 달려간다. 따라서 지자체와 지도자들은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환경만 조성해 주면 된다. 그게 바로 ‘give and take’다. 해양관광의 기본적인 인프라이면서도 공익적인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마리나, 케이블카, 유람선 등은 관이 ‘give’해주면 기업이 관광으로 즉시 ‘take’해 줄 수도 있다. 포항은 시군 통합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싼 땅이 아직도 많이 있다. 장기면 등에 전국 최저가 민자 공단을 조성, 울산의 자동차, 조선, 화학 등의 공단을 유치해 보는 것도 고민했으면 한다. 그동안 앞선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일군 이차전지와 포스텍, 한동대를 위주로 한 R&D 구축과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 등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산업의 육성, 환동해 시대를 대비한 영일만 컨테이너 부두 등의 인프라를 이용한 물류산업도 보다 지속적인 투자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포항시가 ‘give and take’만 더 잘해도 기업이 들어오고 그러면 고용 증가로 인구가 늘어나고, 또 그 과실로 소비가 증가할 것이다. 당연 시민들의 발검음도 가벼워 질 것이고.… /공원식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단체장 출마 희망자의 기고문을 받습니다. 후보자의 현안 진단과 정책 비전 등을 주제로 200자 원고지 7.5∼8.5장 이내로 보내주시면 지면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기고문은 사진과 함께 이메일(hjyun@kbmaeil.com)로 보내주세요.

2025-05-08

한국인의 울화통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최근 설문 조사에서 밝힌 내용 가운데 특별히 눈길이 가는 대목이 있다.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과 관련한 조사를 해 보았더니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만성적인 울분상태에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특히 30대와 저소득층일수록 울분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의 70%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대답했으며, 공평에 대한 믿음이 낮을수록 울분 정도가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울분(鬱憤)이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을 뜻하는데, 울화(鬱火)와 비슷한 표현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생긴 병을 울화병, 심화병, 속병이라 부른다. 여기서 나온 울화통은 몹시 쌓이고 쌓인 마음 속의 화를 속되게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내면의 감정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왔다. 특히 여성은 가부장적 사회구조 속에 살면서 제대로 표현도 못해 남성보다 속병을 앓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미국정신의학협회는 한국인의 울화나 화병 등은 한국문화와 연관된 특수한 질환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증상이 지속될 경우는 정서 장애의 하나로 본다고 한다. 한국 사람은 울화통이 터진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많다는 의미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사에서 국민의 절반이 만성 울화를 겪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나라와 국민을 안정시키는 일보다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 우리나라 3류 정치에도 책임이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정구(논설위원)

2025-05-08

대법원의 자기 얼굴에 침 뱉기

“변호사님 상고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의뢰인들이 있다. 1심과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대법원까지 가 조금이라도 형을 줄여보고 싶다거나 결백을 입증해 무죄판결을 받고 싶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고를 해도 소용이 없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 모두를 할 수 있는 1심, 2심과는 달리 3심 상고심은 법률판단만을 할 수 있는 법률심이고 상고 사유도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 제383조가 정한 상고 사유는 네 가지이다. 첫 번째,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ㆍ법률ㆍ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때, 두 번째, 판결 후 형의 폐지나 변경 또는 사면이 있는 때, 세 번째, 재심청구의 사유가 있는 때, 네 번째,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있어서 중대한 사실의 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정이 심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이다. 이 중 재심사유는 판결에 쓰인 증거가 위조되는 등의 극히 드문 경우이고, 사실판단이 잘못되었다거나 형이 무겁다는 이유로 상고하는 것은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만 가능하므로 결국 대법원이란 곳은 형이 무겁다고 상고할 수 없고, 나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데 1·2심 법원이 사실을 잘못 보았다는 이유로 상고할 수도 없는 법원인 것이다. 이처럼 대법원 상고심의 벽은 매우 높은 산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상고심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으면 평생 자랑할 만한 성공 사례로 남기도 한다. 사실판단이나 양형문제로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날 리가 없고 결국 매우 제한적 상고사유 중에서도 판결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 위반이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가 밝혀낸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판단과 법률판단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를 들면 말의 존재와 그에 대한 해석의 문제는 사실판단의 문제이고 그것이 어떤 범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 판단의 문제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한 대선주자 정치인인 피고인에 대해 사실판단을 하며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피고인은 지난 대선기간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사진을 공개했던데, 제가 확인을 해보니까 전체 우리 일행 단체 사진 중 일부를 떼서 보여줬더군요. 조작한 거죠”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2심 법원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으로 좁게 해석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존재하는 말에 대한 해석은 사실판단의 문제이며 항소심 법원은 이 사실판단을 끝낸 것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것을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뜻이라며 다른 사실판단을 해버리더니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뒤엎었다. 사건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에 전원합의체 회부, 심리, 판결까지 끝내버리는 전례 없는 신속성까지 더해서 말이다. 대법원은 이렇게 특정 정치인에 대해서만 다른 피고인들과 다른 법 적용과 속도· 절차로 재판해서 사법부가 선거에 개입한다는 소리를 듣게 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대법원은 스스로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법관들의 얼굴에도 먹칠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대법원장이 픽한 특정 정치인만을 위한 대법원을 따로 만들라는 이야기까지 나올까봐 겁난다. /김세라 변호사 ……… △포항여자고등학교 고려대법과대학 이화여대로스쿨 현재)한동대 겸임교수 변호사김세라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2025-05-08

대구페스타, 침체된 경기 마중물 되었으면

이번 주말부터 대구에서는 ‘2025 판타지아 대구페스타’ 봄축제가 펼쳐진다. 파워풀 대구페스티벌과 대구약령시 한방축제, 동성로축제, 대구무용제, K-트로트페스티벌, 간송미술관 기획전 등 모두 11개 축제와 행사가 대구 전역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9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하는 대구페스타는 17일까지 이어지면서 대구는 그야말로 축제 속에 풍덩 빠지게 된다. 대구시는 이번 축제의 주제를 코스믹 퍼레이드(Cosmic Parade)로 정했다. 개별 축제들이 우주에서 하나의 유기체처럼 얽혀 있는 것과 같이 거대한 퍼레이드가 도심 곳곳에서 펼쳐진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대구시 관계자는 “이번 2025 대구 페스타 봄축제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향유하는 기회가 되고 시민의 자긍심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지역축제는 도시의 특성과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효과가 있다. 축제 자체만으로 도시의 품격이 높아지고, 시민의 만족도가 올라가고, 또 수많은 외국의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효과도 있다. 브라질의 리오축제나 독일의 옥토버 페스티벌, 일본 삿포로 눈축제 등은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성공한 축제로 소문 난 곳이다. 대구시도 축제의 에너지를 키우고 축제의 대시민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각종 축제를 시기적으로 통합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축제를 다듬고 키워가면서 대구만의 특별히 성공한 축제를 만들어가면 축제의 목적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올 대구시 페스타도 예년처럼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행사장으로 몰려 나와 축제를 즐길 것이다. 바라건데 이것이 침체된 대구경제의 활력소 역할을 해주면 더없이 좋다. 지금 대구의 경기는 최악이라 할 만큼 어렵다. 대구 최고 중심가인 동성로에만 해도 빈 점포들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 경제가 나쁜 게 대구만의 일은 아니지만 이런 축제가 어려운 상인들에게 힘이 되고 경기 활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면 의미 또한 클 것이다. 축제를 즐기는 대구시민의 마음도 한결 가벼울 것이다.

2025-05-08

김문수·한덕수 대선후보 결국 공멸의길 가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이 재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루면서 이 후보의 사법리스크가 사실상 소멸됐다. 여기에다 지난 7일 단일화 협상을 위해 처음 만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한덕수 무소속 예비 후보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채 빈손으로 협상을 끝내 6·3조기대선의 ‘이재명 대세론’은 굳어지는 분위기다. 김문수 후보는 8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시너지와 검증을 위해 일주일간 각 후보가 선거 운동을 하고 다음 주 수요일(14일)에 방송 토론, 목요일과 금요일에 여론조사를 해서 단일화하자”라는 제안을 했다. 한덕수 예비후보가 “후보등록 마감일인 11일 전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후보단일화를 거부한 것이다. 김 후보는 자신의 발언에 대한 후폭풍을 예상하며 “지금 진행되는 강제 단일화는 강제적 후보 교체이기 때문에 법적 분쟁으로 갈 수 있다”는 강경입장을 밝혔다. 한 후보 측은 이에 대해 “11일 이전 단일화하자는 제안을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한 후보가 11일 시한을 중요시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후보 등록 마감일 전에 단일화가 이뤄지면 김·한 두 후보 가운데 단일 후보로 선출된 사람이 국민의힘이 받는 기호 2번으로 대선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11일을 넘길 경우 무소속 신분인 한 후보는 단일화가 이뤄지더라도 기호 2번을 쓸 수 없다. 그리고 12일부터 시작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김 후보는 국민의힘 조직·자금 지원을 받지만 무소속인 한 후보는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김·한 두 사람의 단일화 무산은 결국 공멸로 가는 길이다. 국민의힘이 지난 7일 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월 11일 이전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86.7%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국민의힘 당원뿐 아니라 대부분 유권자들은 보수우파의 단일화 없이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김·한 두 사람만 모르는 것 같다.

2025-05-08

‘푸드마일’

우리가 매일 먹는 밥상 위의 사과 한 알, 상추 한 줌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푸드마일(Food Mile)’은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이동 거리’를 말한다. 이 거리가 멀수록 식품을 운송하는 데 쓰이는 에너지와 자원이 많아지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다시 말해, ‘푸드마일’이 짧을수록 환경 부담은 줄고, 우리의 건강한 식탁도 더 가까워진다. 전 세계적으로 식생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체 배출량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크며, 이는 단순히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 위기 대응과 직결된 과제이다. 특히 대구경북처럼 도시와 농촌이 인접한 지역에서는 지역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탄소배출 저감형 유통체계’의 구축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가까운 곳에서 재배한 식재료를 소비하는 것은 탄소중립이라는 국가적 과제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일이 된다. ‘푸드마일’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정책들은 우리 지역에도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지역 농산물 직거래 장터이다. 예를 들어 경북도는 대구 시민을 위해 도심 곳곳에서 ‘바로마켓’을 운영하며 산지 농산물을 소비자와 직접 연결하고 있다. 명절이나 김장철에는 대규모 직거래 행사도 열리며, 생산자는 안정적 수익을 얻고 소비자는 신선한 먹거리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학교 급식에 지역 농산물을 활용하는 로컬푸드 급식 확대 정책도 탄소중립과 지역농업 활성화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경북은 이미 학교급식지원센터를 통해 학생들에게 건강한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으며, 군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대구의 학교에 시범 공급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이러한 ‘도농 상생’ 급식 모델은 지역 먹거리 자립도를 높이고 아이들에게는 건강한 먹거리 문화를 심어준다. 이 외에도 옥상 텃밭, 주말농장, 아파트 상자텃밭 등을 활용한 도시농업 활성화 사업, 로컬푸드 꾸러미 사업, 공공복지시설에 지역 농산물 공급, 사회적경제 기반의 직배송 플랫폼 구축 등 대구경북은 다양한 먹거리 순환 정책을 통해 ‘푸드마일’ 감축의 실질적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푸드마일’을 줄이는 일은 거창한 설비나 기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자란 식재료를 선택하고, 지역 농민이 키운 먹거리를 믿고 소비하며, 아이들의 급식에 로컬푸드를 더해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일상적인 실천이자, 대구경북의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앞으로 ‘경북의 생산’과 ‘대구의 소비’를 하나의 선순환 체계로 연결하는 광역 푸드플랜 정책을 수립하고, 로컬푸드 유통 인프라를 확대하며, 도시농업과 공공급식의 지역자립도를 높인다면, 우리 지역은 지속가능한 발전과 기후 리더십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푸드마일’ 줄이는 그 첫걸음이, 결국 우리 삶의 질과 지구의 미래를 바꾸는 가장 힘 있는 변화가 될 것이다. /남광현 대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25-05-08

답답한 오월

오월은 행사가 많은 달이다. 한글날이나 개천절같이 그냥 행사가 많은 달이 아니라 어른과 애들을 챙겨야 하는 가정의 달이고 스승까지 챙겨야 하는 게 오월이다. 집사람 말로는 별로 기념할 만한 날이 아니라는 결혼기념일까지 끼어있고 가족 생일까지 있으면 상당히 심각한 한 달이 되어버린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 어린이날 선물 일일이 챙기다가 한 달 내내 굶을 판이라는 오월이 왔다. 노년층만 이럴까? 요즘 나라 경제가 엉망이라고 난리다.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사는 부류는 공직자 같은 월급쟁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월급이라고 해야 몇 푼 되지 않아 한 달 살기가 바듯한 형편인데 이렇게 행사가 집중되어 버리면 답답해지게 된다. 건강한 경제구조라면 소비를 주도하는 계층은 30~40대이다. 이 세대가 돈을 쓰는 나라가 잘사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세대가 돈이 쪼들리면 나라 경제가 엉망이라는 이야기다. 30~40대는 결혼을 했다면 대부분 빚이 많다. 혹 부모의 지원이 있다고 해도 재벌이 아닌 한 빚은 대부분 가지고 출발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금융권 전세자금 대출의 70%를 30~40대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애들 보육비도 장난이 아니다. 좀 더 큰애 교육비도 더 장난이 아니다. 여기에 할아버지 할머니 간병비도 있다. 명이 길어져서 거의 살아 있을 확률이 높다. 운 나쁘면 부모들도 여기에 합세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은 평균 10년 6개월간 병치레를 한다는 통계를 본다. 젊은 세대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러니 30~40대 가계의 ‘엥겔계수’는 20% 이상이고 애들 밑에 들어가는 고정비용이 30%란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 이자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상황이 이러할진 데 오월은 그들에게 잔인한 달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요즘 어린이 데리고 놀러 갈 장소를 물색해 보면 어린이 놀이터가 동네마다 있는 철봉에 미끄럼틀 정도의 그런 수준이 아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돈도 엄청 비싸다. 우리 때처럼 애들 데리고 촌에 내려가 천렵하거나 텐트 치고 해수욕하는 그런 상상을 한다면 정말 대단히 헛다리 짚는 것이다. 고급 호텔이나 리조트 정도는 가줘야 부모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물값 또한 만만찮다. 애들 낳으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귓등으로도 안 듣는 이유가 뭔지 몰라서 그러는지 위정자들은 연일 정권 욕심에 연일 바쁘다. 악마는 항상 디테일에 숨어있다. 젊은 층이 필요한 것을 제대로 파악해서 그들의 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젊은 세대에게 대폭 집값을 내려줘서 금융 부담을 최소화하고 유치원도 늘리고 보육원도 늘려야 한다. 어른들 치매센터 늘리고 요양병원비 줄여주어 이런 잡다한 짐을 덜어줘야 한다. 취업 안 되고 일자리 없는 것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지만 인간적 삶을 위한 복지 영역은 개인 문제가 더는 아니다. 비싼 장난감 선물비를 깎아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건 그네들의 능력 문제이다. 더 비싼 놀이터에 애들을 데리고 가고 비싼 음식 먹고 좋은 선물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외적인 문제는 정부가 좀 책임져주면 어떨까 싶다. 뭐든지 다 들어주는 포퓰리즘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논리에 아연실색하겠다. 언제까지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논리로 정책을 세울 것인가. 답답한 오월이다. /노병철 수필가

2025-05-08

경북 산불 피해복구 생업 복귀에 방점 둬야

경북도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심의를 거쳐 지난달 발생한 도내 5개 시군 산불 피해지역에 대한 지원책을 최종 확정했다. 피해지원 복구비는 총 1조8000억원 규모로 잡았다. 국비 1조810억원과 지방비 6500억원 등이 투입된다. 경북도는 이번에 확정된 피해 복구비는 피해주민 주거 안정과 생업 복귀에 중점을 두고 예산을 편성했다고 밝혔다. 전소된 주택에 대해서는 종전 3000여 만원 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상향했고, 농기계 보상도 11개 품종에서 38개 품종으로 확대해 농민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밖에도 농작물과 농업시설물 지원도 실거래가 기준으로 하고, 공장과 사업장 철거비와 폐기물 처리 비용은 전액 국비로 충당키로 했다. 또 고령 인구가 많고 산불로 생계 수단이 없어져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에 대해서는 도시재생사업 등도 벌인다고 밝혔다. 경북 의성 등 5개 시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피해 면적만 9만9000여 ha에 이른다. 주택 3819동이 소실되고 358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농기계. 농작물, 공공시설물, 문화유산에 이르기까지 피해 규모가 역대급으로 광범위하다. 정부가 경북도의 건의를 받아들여 예산에 반영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경북지역 산불피해 상황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주민들이 만족해 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전소 주택지원비를 1억원으로 올렸지만 재건축 비용으로 감당하기 턱없이 부족하다는 말도 나온다. 일부 노인들은 지원금이 부족해 집을 짓지 않고 지원금만 받고 고향을 떠나 자식과 함께 살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자치단체는 지원 예산을 효과적으로 집행해 피해 주민들이 그나마 고향에 머물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촘촘하고 세밀하게 예산을 집행해 국가와 지자체가 피해주민과 함께 한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산불 발생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피해주민은 실의에 빠져 있다. 예산이 지원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부터는 피해 주민이 삶의 의욕을 갖도록 하는 행정의 따뜻한 보살핌이 더 필요하다.

2025-05-07

아버지의 기일

부처님오신날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기도 했다. 벚꽃이 눈부신 화창한 봄날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다급한 오빠의 연락을 받고 10개월 큰아들을 들어업고 버스를 탔다. 그 전해부터 간경변 진단을 받고 일 년을 못 버티실 것이며, 입원도 필요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우리 형제들은 모두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아직 끈을 놓지 못한 엄마는 집에서 온갖 좋다는 것은 모두 만들어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시는 터였다. 어디서 굼벵이를 잡아오고, 기와솔을 뜯어 달여 잡수시게 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기겁하며 말렸지만 엄마의 고집을 어쩔 수 없다는 오빠의 푸념을 전화로 듣곤 했다. 대학 다니던 동생이 벌써 와 앙상한 아버지 곁에서 손을 잡고 망연해하고 있었다.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내일이 사월 초파일이라 절에 기도 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그 또한 이해했다. 평소에도 초하루 보름이면 그 바쁜 와중에도 목욕재계하고 절에 다니던 엄마였다. 엄마 따라 절엘 가보곤 했던 나는 부처님 앞에서 무아지경 땀조차 흘리며 108배를 올리던 엄마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엄마 대신 우리 삼남매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와 밤을 새다시피했다. 엄마가 만들어 둔 조약도 드시게 하고, 정신은 말짱하신 아버지와 얘기도 나눴던 것 같다. 이튿날 아침 사월초파일이었다. 간밤 비교적 말짱한 정신의 아버지를 보자 우리들은 안심했다. 동생은 내일 등교를 위해 나갔고, 나는 잠시 옆방으로 가서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오빠도 아버지 곁에서 쪽잠에 들었다고 했다. 절에서 돌아온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혼몽했던 나는 다시 깊은 잠을 잤던 것 같다. 오빠와 엄마의 다급한 소리에 깨서 안방으로 달려갔더니 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쉬고 계셨다. 그렇게 아버지는 56살의 젊은 나이에 부처님오신날 부처님 곁으로 가셨다. 43년 전이었다. 어제 오빠가 절에 아버지와 엄마의 등을 보내왔다. 몇 년 전부터 절에서 재를 지내고 등을 다는 것으로 매년 지내던 제사를 대신한 오빠였다. 40년 넘게 아버지의 제사를 지극히 모시던 오빠였다. 몇 번의 중한 수술로 건강이 좋지 않게 되자 삼 남매가 수의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조차도 오빠는 미안해했다. 사람이 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 그 중 가장 힘든 고통은 병고(病苦)라는 생각이다. 병고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본 날, 또 그 아버지를 지극한 효심으로 제사 받들던 오빠가 늙고 병든 몸으로 절에 가서 울음을 참는 심정으로 흰 등을 다는 날, 부처님오신날은 우리 삼 남매에겐 애달픈 날이기도 하다. 매년 정초, 온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공양을 올리는 거조암엘 간다. 초파일 전날, 거조암에 손주 넷을 데리고 가서 오백나한에게 백 원 공양을 올리게 했다. 한 바구니 묵직한 동전을 조금씩 나눠주면서 각자 소원을 빌라고 했다. 소원은 모르겠고, 각양각색의 나한상 앞 쟁반에 동전을 하나씩 떨구는 게 그저 신나는 모양새다. 그럼 어떠랴. 조용하고 정숙해야 할 법당이지만 아이들의 모습이 흐뭇한 보살님도 용서해 주신다. 바구니를 들고 따라다니면서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극락왕생을 축수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병고에 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정옥 위덕대 명예교수

2025-05-07

AI와 SNS가 보내는 경고

21세기에 태어난 청소년은 더 이상 궁금한 걸 부모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어려운 수학공식과 영어단어 공부법은 물론, 볼만한 영화와 근사한 여행지에 관한 정보도 AI에게 문의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한 답을 얻어낼 수 있으니. 2025년을 사는 젊은 연인들은 펜으로 눌러쓴 연애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친구들끼리 안부를 묻는 전화 통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왜냐? SNS를 통해 보다 쉽고 편하게 분과 초 단위로 언제건 연결이 가능하니까. 가속도가 붙은 첨단 기술의 발달은 생활의 많은 부분을 편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자식이 던지는 물음에 일일이 답해줘야 하는 어려움이 사라졌고,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를 그리워할 필요도 없어졌다. 친구 얼굴이 보고 싶다면 영상통화 버튼만 누르면 된다. 그런데, AI와 SNS가 만들어준 ‘신세계’가 마냥 좋기만 한 걸까? 빛만 있고 그늘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은 듯하다. 최근 외신 보도에 의하면 2023년 10월 이후 유럽에서 적발된 테러혐의자 60명 가운데 60% 이상이 18세 미만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겨우 16~17세 소년들이 수백 명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그들의 소통 경로는 SNS였다. 특정 인종과 종교 혐오라는 극단주의가 SNS 속에서 싹트고 있었다는 것. AI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감정을 쏟아 붓는 세태도 문제다.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생성형 AI챗봇에 과다 노출된 어린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AI는 인간이 될 수 없고, SNS는 커뮤니케이션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이 사실을 망각한다면 더 큰 비극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성식(기획특집부장)

2025-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