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 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사람은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올 때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보고 왔는지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까. 쿠스코와 마추픽추, 티티카카와 라파스, 우유니의 거친 바람과 안데스의 높은 하늘을 지나온 40여 일의 여정은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잉카 문명을 향한 설렘이 나를 이끌었지만, 돌아오는 길의 내 마음을 채운 것은 찬란한 유적에 대한 감탄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돌들의 침묵 앞에서, 나는 잊고 지냈던 내면의 질문들과 다시 마주하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 생각이 먼저 밀려왔다. 중학생 손녀의 재잘거림과 돌 지난 손자의 해맑은 웃음이 떠오르자, 길 위에서 쌓인 피곤함도 어느새 따뜻한 기쁨으로 바뀌었다. 손주란 할아버지에게 삶에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주는 정신의 비타민과 같은 존재다. 그리움은 참으로 이상하다. 먼 문명의 폐허를 보고 돌아오는 길 끝에서, 사람은 다시 가장 가까운 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직전까지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안데스의 바람이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단지 낯선 나라를 둘러본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생활과 관계, 책임과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것은 자발적 고립을 통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혼자 걷고, 혼자 바라보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풍경보다 더 깊은 것을 보게 되었다. 여행은 장소를 바꾸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시선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멀리 떠난다는 것은 때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안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가기 위함이다.
안데스산맥의 품 안에서 만난 잉카 문명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해발 높은 산악지대에 도시를 건설하고, 계단식 농업을 일구며, 거대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게 한 기술은 경이롭다는 말로는 다 담기 어렵다. 돌 하나하나가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인간 정신의 끈기와 질서, 헌신을 품은 상징처럼 보였다. 척박한 자연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자연을 이해하고 극복하며 문명으로 일구어 낸 사람들. 그 폐허 앞에 서면 누구라도 숙연해진다. 무너진 제국의 흔적 앞에서 내가 본 것은 멸망의 잔해만이 아니라, 한때 인간이 얼마나 높이 꿈꾸고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냈는가를 보여 주는 정신의 높이였다.
그런데 그렇게 강하고 정교했던 문명이 불과 백 년도 채 되지 않아 스페인의 소수 정예군 앞에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은 깊은 충격을 남긴다. 왜 그토록 찬란했던 제국이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여행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그 답의 한 부분을 자연의 이치 속에서 찾게 되었다. 흐르지 않는 물은 결국 썩는다. 처음에는 맑아 보여도, 오래 고이면 생명을 잃는다. 문명도 마찬가지다. 외부와의 교류가 끊기고, 새로운 변화에 응답하는 힘이 약해질 때 문명은 내부에서부터 굳어 간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말했듯, 문명은 도전과 응전 속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잉카는 천연두라는 보이지 않는 재앙 앞에서, 낯선 무기와 종교, 완전히 다른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충분히 응전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더구나 황제를 정점으로 한 절대적 중앙집권 체제는 평소에는 강점이었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다. 한 사람의 붕괴가 곧 제국 전체의 붕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심장이 멈추자 거대한 몸 전체가 함께 흔들렸다. 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교훈을 준다. 개인, 조직, 사회 모두 지나치게 하나의 방식, 하나의 질서, 하나의 성공 경험만을 고집할 때 취약해진다. 진정한 강함은 단단함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변화 앞에서 자신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오래간다.
잉카 문명의 멸망은 과거의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조용하지만 단호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지금 잘 흐르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과 습관, 경험과 고집 속에 나 자신을 가두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가. 나는 변화 앞에서 깨어 있는가. 닫힌 세계는 결국 무너진다. 흐르지 않는 삶은 결국 멈춘다. 문명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도, 사회의 질서도, 관계의 생명력도 모두 그렇다.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게 했다는 점이다. 나는 세상을 보러 갔지만, 결국 세상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혼자 걷고, 높은 고원의 침묵 속에 머무르며, 나는 일상 속에서는 미처 듣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자발적 고립은 외로움이 아닌, 내면을 정화하는 시간이었다. 사람들로부터 잠시 멀어졌기에, 오히려 나는 나 자신에게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성찰의 행위다.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익숙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많이 보는 것이 아니라 깊이 느끼게 하고,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게 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웰니스의 조용한 통로이기도 하다. 몸이 길 위를 걷는 동안 마음은 오래 묵은 피로를 비워내고, 영혼은 잊고 지냈던 질문들을 다시 길어 올린다. 웰니스란 단지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몸과 마음과 관계와 영혼이 다시 균형을 되찾아 가는 과정이라면, 진정한 여행은 그 균형의 회복을 돕는 깊은숨 고르기와도 같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