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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콘도르, 볼리비아에서 다시 날다

등록일 2026-03-10 16:16 게재일 2026-03-11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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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복장을 차려 입은 아이마라족들. /필자 제공

티티카카 호수를 건너 긴 밤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 라파스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숨 쉬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해발 4천 미터의 고지대 공기는 희박했고, 그 희박함이 라파스의 첫인상이었다. 다운타운의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창문을 여니, 분지 경사면을 따라 불빛이 층층이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항아리에 별빛을 한가득 담아둔 듯한 야경 앞에서 피로는 잠시 잊혀졌다.

로비 카페에서 화이트와인과 피자를 주문했다. 산뜻한 향이 혀끝에 감돌자, 문득 이 땅의 이름이 떠올랐다. 우리는 흔히 ‘라틴 아메리카’라고 부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대륙을 ‘아비아 얄라(Abya Yala)’, 즉 ‘성숙한 대지’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마음속으로 되뇌는 순간, 여행은 단순한 풍경 감상을 넘어섰다. 나는 이곳의 역사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수천 년 동안 문명이 꽃피운 이 땅의 운명은 16세기, 쇠와 총으로 무장한 이방인들의 발자국과 함께 뒤바뀌었다. 금과 은은 바다를 건너 유럽으로 흘러갔고, 신전 위에는 성당이 세워졌다. 땅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어느새 자기 땅에서 이방인 신세가 되었다. 페루가 행정과 정치의 중심지였다면 볼리비아는 풍부한 자원의 보고였다.

특히 포토시 은광은 막대한 부를 쏟아내며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지만, 그 빛의 이면에는 수많은 원주민들의 희생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험준하고 고립된 지형은 또 다른 선물이 되었다. 외부의 손길이 쉽게 닿지 못했던 덕분에, 이곳은 고유한 언어와 전통을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었다. 지금도 잉카의 언어 중 아이마라어와 케추아어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문자가 없었던 잉카의 기억은 입과 발을 통해 전승되었다. 말이 이어지고, 발걸음이 이어지는 한, 정체성 또한 이어지는 것이다.

밤이 깊어갈수록 라파스의 공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그때 문득 뉴욕에 두고 온 가족이 떠올랐다. 떠나온 지 3주가 지나자 그리움은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의 빈자리를 채워갔다. 여행은 때로는 이기적인 열망에서 시작되지만, 그 이기심이 낯선 삶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이 도시에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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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프란시스코 성당. /필자 제공

다음 날 아침, 창밖으로 펼쳐진 라파스의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거대한 분지에 빼곡히 들어선 집들이 반짝이는 모습은 운석이 파놓은 구덩이에 보석을 흩뿌려 놓은 듯했다. 숨은 여전히 가빴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멀리 보이는 일리마니의 은빛 설산이 조용히 나를 감싸안아 주었다. 이방인의 지친 마음을 “괜찮다”라는 듯 다독이는 산의 침묵이 느껴졌다.

나는 산 프란시스코 성당 앞 광장으로 갔다.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고, 곳곳에는 손팻말과 구호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삶의 고통과 분노가 모이는 ‘저항의 공간’이었다. 구호는 정치적인 외침처럼 들렸지만, 그 속에는 늘 삶의 고뇌가 담겨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 아이를 키우는 문제, 내일을 살아가는 문제. 생존이 절실한 사회에서 희망은 때때로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촐리타들이었다. 풍성한 포요라 치마, 중절모, 가파른 골목길을 짐을 지고 오르내리는 굳건한 뒷모습. 그 투박하고 강인한 발걸음에서 오래전 한국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1960년대 명절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터로 향하던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낯선 도시 라파스는 순간, 향수의 빛깔로 물들었다. 비록 이곳 사람들의 가난이 내 삶의 고단함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삶을 꿋꿋이 살아내는 자세는 시대와 대륙을 초월하여 닮아 있었다.

서툰 스페인어로 “당신은 잉카인입니까?”라고 묻자, “우리는 순수한 아이마라입니다”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에보 모랄레스 집권 후에도 현실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그들의 촉촉한 눈빛은 패배가 아닌 존재의 증거를 보여주는 듯했다. 나는 그 눈빛에서 정체성의 의미를 되새겼다.

한낮에는 텔레페리코, 하늘을 가르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붉고 푸른 곤돌라 창밖으로 라파스의 과거와 현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마녀 시장의 향초 냄새, 노점에 가득한 알록달록한 보자기, 천에 짐을 싸서 어깨에 메고 걷는 사람들, 장터의 소음과 웃음. 그 모든 것이 어린 시절 시골 장터의 따뜻한 정경을 떠올리게 했다. 라파스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쉽게 닳아 없어지지 않는,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는 도시였다.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시대에, 이 도시는 오히려 주름과 흔적으로 자신의 존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해가 저물자 분지를 따라 불빛이 하나둘 켜졌고 라파스는 세상에서 가장 큰 벽난로처럼 따스하게 빛났다. 붉은 노을이 일리마니의 허리를 감싸안는 짧은 순간,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깨달았다. 우리가 풍요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더 빠르게’라는 욕망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라파스의 사람들은 느리고 고단한 하루를 묵묵히 살아냄으로써, 다른 차원의 풍요를 보여주고 있었다. 숨쉬기조차 힘든 고지대에서 오히려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역설처럼, 결핍은 때로 삶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진정한 웰빙은 화려한 소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인간이 자기 이름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방식에 있었다. 여행은 지도를 따라 낯선 땅을 밟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된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의 뿌리와 진심을 다시 만나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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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세종대 명예교수

라파스의 붉은 야경은 말없이, 그러나 깊은 여운으로 그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언덕길을 내려오며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라파스가 가르쳐 준 ‘느린 성실함’을 잊지 않겠다고. 콘도르가 하늘을 힘차게 날아오르듯 우리 각자의 삶에서도 존엄은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으며. 나는 내일 소금 사막 우유니(Uyuni)를 향한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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