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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를 떠나 안데스로 향하는 길 위에서

등록일 2026-04-21 14:36 게재일 2026-04-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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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사크사이와만./필자 제공

우유니를 떠나는 아침은 조용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사막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피부를 파고들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공항으로 향했다. 어둠과 빛의 경계에 서 있는 그 시간,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나지도 않은 듯 머물러 있었다.

공항은 적막했다. 직원들은 하나둘 출근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걸음에는 서두름이 없었다. 예정된 항공편은 두 시간 연착되었고, 그 사실을 알리는 안내 역시 담담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마치 이곳에서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는 것’일뿐이라는 듯했다. 나는 앞좌석을 부탁했고, “먼저 와 기다렸다는 이유로 앞자리가 선택되었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과정마저 느릿했지만 이상하게도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느림 속에서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과 효율, 정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세계에 익숙한 나에게 이 풍경은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섦은 곧 따뜻함으로 바뀌었다. 문득 오래전 바닷바람이 스며들던 한국의 시골 마을의 느린 풍경이 떠올랐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서둘러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비행기가 라파스(La Paz)를 향해 떠오르자, 창밖으로 안데스산맥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맥 위에 눈이 쌓여 있었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봉우리들은 장엄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잉카의 전통 의상을 입고 거리를 오가는 그들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듯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의 눈빛은 맑고 단단했다. 그들은 풍요롭지 않았지만, 흔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그들의 삶을 보며 연민보다 경이로움을 느꼈다. 부족함 속에서도 삶의 균형을 잃지 않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잊고 지내온 어떤 본질이 아닐까.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7년, 나는 미국 Columbia University에서 방문교수로 머무는 동안, 중남미 니카라과(Nicaragua)의 작은 마을에서 단기 선교를 한 적이 있다. 양철 지붕 아래 비가 새던 집, 낮의 열기가 그대로 스며들던 방. 이런 곳에서도 아이들은 환하게 웃었고, 어른들은 담담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삶의 환경은 부족했지만, 결핍에 잠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결핍 속에서 서로를 향한 온기가 더 또렷하게 살아 있었다.

페루와 볼리비아의 골목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본다. 노점 앞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서로의 안부를 묻는 짧은 인사 속에서 삶은 조용히 이어진다. 물질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지만, 삶을 대하는 태도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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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 성당 주변 풍경./필자 제공

나는 다시 묻게 되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Schopenhauer)는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건강’을 말한다. 그는 삶을 고통의 연속으로 보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게 하는 기반이 바로 건강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여행을 통해 만난 수많은 얼굴들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다. 건강한 몸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지닌 사람들은, 비록 가진 것이 적어도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었다. 웰니스란 단지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 관계와 삶의 의미가 균형을 이루는 상태다. 그리고 여행은 그 균형을 회복하게 하는 가장 조용한 스승이다.

우유니의 거울 같은 풍경은 나를 비추었고, 안데스의 침묵은 나를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나는 조금 더 가벼워진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종종 더 많이 가지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행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가.”

건강은 길이보다 질이다.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 하는 ‘삶의 결과 질’이 더 중요하다. 삶의 질은 소유의 크기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 깊이는 결국 한 사람의 결이 되지 않을까. 건강이 무너지면 삶은 쉽게 균형을 잃는다. 아무리 큰 성공도, 사랑도, 사명도 건강 위에 서 있지 않다면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건강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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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국 세종대 명예교수

안데스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깨닫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낼 수 있는 몸과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부디 이 글을 읽는 독자의 하루가 건강 위에 세워지기를. 그리고 그 건강 속에서 그대만의 고요한 행복이 조용히, 그러나 깊이 피어나기를 바란다.
/김상국(세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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