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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팔공산에 살어리랏다’ 출간한 산중식당 김태락 옹

등록일 2026-06-09 16:40 게재일 2026-06-1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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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현대사의 산증인이 전하는 인생과 경영 철학
“팔공산은 내 삶의 은혜, 정직한 밥상으로 그 은혜 갚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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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을 팔공산에서 살아온 김태락 옹은 팔공산은 엄마의 품과 같다고 말한다.

대구의 명산 팔공산 자락,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산중식당’에 들어서자,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풍모의 노신사가 취재진을 맞는다. 대기업 창업주를 연상시키는 단단한 자태와 또렷한 음성의 주인공은 최근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전적 기록을 담은 저서 ‘팔공산에 살어리랏다’를 세상에 내놓은 김태락(89) 옹이다.

문학 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고령이 무색하게 여전히 사업체를 리드하는 그를 만나 반세기를 이어온 팔공산의 역사와 그의 유구한 인생철학을 들었다.

김태락 옹이 팔공산에 터를 잡은 것은 10살이던 1940년대 후반. 경주 건천에서 기념품 판매를 하던 부모님을 따라 길도 없고 하늘과 산밖에 보이지 않던 팔공산 오지 ‘절골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부모님은 동화사 입구에서 기념품을 팔며 생계를 잇고, 소년 김태락은 20리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다. 날만 새면 겨울을 나기 위해 나무를 한가득해 나르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백안동까지 6km, 때로는 아양교까지 왕복 몇 시간을 걸어 다니던 시절이었지만, 그 모진 세월이 지금의 그를 키운 자양분이 됐다.

국립공원 승격과 행정 난맥상에 대한 쓴소리도 했다. 평생을 팔공산 지킴이로 살아온 만큼, 최근 팔공산이 대한민국 제23호 국립공원으로 승격된 것에 대한 그의 감회는 남달랐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지역 원로로서의 깊은 우려와 책임감이 교차한다. 국립공원이 돼야 마땅하다고 앞장서서 활동해 왔지만, 막상 승격되고 나니 주민들의 고충이 너무 컸다.

특히 대구시의 행정 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것을 꼬집었다. “국립공원공단과 구청이 서로 책무를 미루는 난맥상이 벌어지고 있어요. 주민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는 1980년대 초 관선 이상희 대구시장 시절, 주민들과 소통하며 팔공산 자연공원을 체계적으로 개발했던 때를 회상하며, 현 행정 당국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 현실에 탄식했다. 침체한 로컬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팔공산의 상징인 ‘봉황’을 스토리텔링하여 조형물을 세우는 등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태락 옹이 운영하는 ‘산중식당’은 기념품점으로 시작해 1987년 현재의 향토 음식점으로 바꾸어 반세기 동안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구시 지정 ‘산나물 향토 음식 시범업소 1호’라는 타이틀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평생을 지켜온 어머니의 유훈이 있다. 처음 식당을 하려고 비빔밥을 만들어 올렸을 때, 어머니께서 ‘솜씨가 없으면 꺼리라도 좋아야 제맛이 난다’고 했다. 그 말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자식들에게 가업을 물려준 지금도 그는 식자재만큼은 최고급을 고집한다. 곤드레나물은 강원도 횡성 생산 농가에서 직송받아 전용 냉동고에 보관해 사용한다. 또한, 한 번 상에 나간 음식은 젓가락을 대지 않았더라도 전량 폐기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보이지 않는 주방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받는 짓을 하면 고객이 먼저 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팔공산이 인생에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눈시울을 붉혔다. “내게 팔공산은 엄마 품과 같습니다. 모든 먹고 입는 것을 해결해 준 은혜로운 산이지요. 죽어서도 뼈와 영혼마저 이곳에 묻히고 싶습니다.” 이유 있는 대가의 묵직한 울림. ‘팔공산에 살어리랏다’라는 아홉 글자 속에는 한 남자의 인생과 대구의 영산 팔공산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유무근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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