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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영 “항고심 지켜본 뒤 거취 결정”… 장동혁 대표 즉각 사퇴 촉구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공천 배제)된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무소속 출마 여부에 대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뒤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동시에 장동혁 당 대표를 향해 “선거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즉각 사퇴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 주 의원은 8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는 있어서도 안 되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당 안팎에서 쏟아진 ‘선당후사’ 및 불출마 압박에 선을 그으며 법정 투쟁을 끝까지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앞서 서울남부지법이 자신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 데 대해 “법원도 표결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중대하고 명백하다 보기 어렵다며 물러섰다”며 “이 문제를 여기서 덮으면 제2, 제3의 ‘대구시장 주호영’ 사례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어 항고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관위의 컷오프 심사에 대해 “당선 가능성 등 애초의 심사기준이 아니라 저를 배제한 뒤 ‘국회와 국가정치에서 더 크게 써야 한다’는 사후 자의적 기준을 끼워 넣었다”며 “이는 심사가 아니라 특정인을 겨냥한 표적 배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 의원은 장동혁 당 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를 정면으로 직격했다. 그는 “우리 당은 원칙 없는 공천, 사심이 개입된 공천으로 이미 두 차례 선거에 참패했고 대통령 탄핵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며 “지도부는 비겁하게 당 뒤에 숨어서 책임 없는 공관위원장을 데려와 온갖 사고를 치고 잠적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한국갤럽 여론조사상 당 지지율(18%)과 이재명 대통령 긍정평가(67%) 수치를 직접 언급하며 “대구 현장에서도 장 대표가 싫어 국민의힘을 못 찍겠다는 말이 적지 않다. 장 대표가 물러나는 게 가장 큰 선거운동이란 말을 듣고나 있나”며 장 대표에게 공천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특정인의 의중과 측근의 계산이 앞서는 당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윤석열계와 단절하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물어야 한다. 살신성인과 선당후사를 말하려면, 장동혁 대표가 먼저 결단(사퇴)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그러면서 장 대표의 사퇴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나 새로운 선거대책위원회 등 새로운 책임 체제를 즉각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지금 국민의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무소속으로 나와 달라는 요청도, 분열을 막아달라는 요구도 모두 무겁게 듣고 있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이번 문제의 본질이 제 거취가 아니라 우리 당의 공천 난맥상이라는 점”이라며 장동혁 체제와의 전면전을 예고했다. 이날 주 의장은 당장의 무소속 출마 선언은 미뤘지만 항고심 결과에 따라 독자 노선을 강행할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뒀다. 이에 따라 대구시장 선거를 둘러싼 보수 진영의 분열 위기와 긴장감은 당분간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고세리기자 ksr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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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눔이 이어준 치료의 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170여 명이 함께하는 한봉우리봉사단 단체 채팅 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온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나눔이 이어지는 공간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조금 다르다. 짧은 문장 뒤로 무연고 독거 어르신의 긴급한 사연과 함께 ‘앰뷸런스 이송비 지원 요청 공문’이 첨부된다. 메시지는 길지 않았지만 상황의 절박함이 충분히 전해진다. 채팅창이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진다. 글을 올린 이는 더휴재가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하시현 센터장이다. 그는 포항시 해도동에서 홀로 사는 한 어르신의 위급한 상황을 조심스레 전한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어르신은 위암 판정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임상 항암치료를 이어오고 있었다. 쉽지 않은 치료과정 속에서 4차 치료를 앞두고 저혈압 쇼크로 포항 기독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다시 임상치료를 위해 서울로 이동해야 하지만 장거리 대중교통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의료진 역시 안전한 이송을 위해 앰뷸런스 이용을 권한다. 문제는 비용이다. 당장 생계를 유지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50만원의 이송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임상치료를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동이지만 앰뷸런스 비용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센터장은 먼저 행정적인 지원 방법을 알아본다. 긴급복지 제도를 포함해 적용 가능한 지원책을 하나씩 검토해 보지만 기준과 절차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결국 그는 마지막 방법으로 봉사단체 채팅 방에 용기를 내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채팅창에 알림이 하나둘 울리며 3만 원에서 10만 원까지 각자의 형편에서 보탠 작은 정성이 모이기 시작했다. 금액은 다르지만 마음의 무게는 같다. 순식간에 목표 금액을 훌쩍 넘긴 170여만 원이 모이며 채팅창을 따뜻한 온기로 채운다. 누군가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모금은 자연스럽게 마무리 된다. 모금된 후원금으로 어르신은 무사히 앰뷸런스에 올라 서울로 향한다.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지만 많은 사람의 온정으로 다시 치료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마침 사설 앰뷸런스의 구급대장도 봉사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 이송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다. 이 일을 계기로 어르신은 도시락 봉사 대상 명단에도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나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결정적인 힘이 된다. 하시현 센터장은 “정말 감사하다”면서도 “마음 한 편은 큰 빚을 진 것처럼 무겁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사각지대의 어르신들을 마주할 때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한계를 느낀다고 한다. 재가센터의 역할 중 하나가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과 지원 가능한 자원을 연결하는 일이지만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때가 많다며 “도움이 꼭 필요한 분들이 제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 일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도움을 요청할 용기를 냈고, 또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민다. 봉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손길이 모여 한 사람의 삶을 지켜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들어낸다. 채팅방에 올라온 짧은 문장 하나가 만들어 낸 작은 온정. 그 과정을 지켜보는 봉사단원들의 마음에도 따스한 온기가 번진다. /박귀상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전쟁 같던 이틀 고마운 손길들

지난 수요일,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보러 오기로 했다. 농사일로 바쁜 가족들과 시골에 상주할 수 없는 내 형편을 생각하면 더는 집에서 모시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날은 미리 알아본 요양원에서 어머님을 면담한 뒤 필요한 검사를 마치면 바로 입소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고비였다. 요양원 직원이 어머님의 손목을 보더니 수술 부위에 금속이 튀어나와 있고 곪은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깜짝 놀라 손을 들여다보았다. 붕대가 풀어진 사이로 쇠가 삐죽이 드러나 있었다. 직원은 이 상태로는 입소가 어렵다며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119에 신고해 응급차를 불렀다. 도착한 구급대원들은 어머님의 상태를 꼼꼼히 묻고 안전하게 모신 뒤 먼저 병원으로 출발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구급대원이 이미 접수까지 마쳐두었다. 덕분에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의사는 소독과 깁스만으로 충분하다고 안심시켰다. 다시 사설 응급차를 타고 청송군보건의료원으로 향했다. 검사 후 입소 전까지 하룻밤을 머물게 된 청송군보건의료원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머님은 기력이 없었고, 설사까지 계속하셨다. 의료원의 간호사들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소독하고, 상태를 살폈다. 특히 인심 좋게 생긴 야간 근무 간호사는 두 시간마다 와서 필요한 처치를 해주었다. 어머님이 거친 말씀을 하셔도 “미안해요, 할머니”라며 웃어넘기는 그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먹먹했다. 미안한 마음에 혼자 애쓰는 내게 “꼭 자기를 불러달라”던 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다음 날 검사 결과가 좋아 요양원 입소가 가능했다. 우리는 안도의 숨을 쉬며 어머님을 요양원으로 모셨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요양원 측이 어머님의 자궁하수를 문제 삼았다. 또다시 119구급차를 불러 안동병원 응급실로 갔다. 두 번째 구급차였다.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있을 수 있는 증상이라며 친절하게 소견서를 써주었다. 요양원은 염증 수치 등을 이유로 입소가 어렵다고 했다. 늦은 밤, 다시 집으로 모셔야 했다. 사설 응급차를 기다리며 몇 군데 요양원에 급히 전화를 돌렸다. 절박한 마음으로 기존 요양원에도 다시 연락했다. 결국 소견서를 확인한 원장이 다음 날 아침 다시 모시러 오겠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요양원 직원들이 집으로 왔다. 어머님을 차에 모시고 가며 나는 밥 잘 드시고 직원들 말씀 잘 들으시면 몸이 좋아질 거라고 말씀드렸다. 마침내 입소 절차를 마쳤다. 오후에 다시 찾았을 때 어머님이 점심 죽 한 그릇과 반찬까지 잘 드셨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는 듯했다. 이틀 동안 두 번의 119구급차, 두 번의 응급실, 여러 번의 검사와 이동. 몸도 마음도 바닥이었지만, 그 시간마다 누군가의 친절한 손길이 있었다. 신속하고 차분했던 구급대원들, 환자와 보호자를 끝까지 배려해 준 청송의료원 간호사들, 마지막까지 방법을 찾아준 의료진과 요양원 관계자들. 그분들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전쟁 같던 이틀을 건널 수 있었다. 살다 보면 가족의 힘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때 사람을 살리는 것은 제도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손길이다. 그 다정한 손길들이 있었기에, 지치고 두려웠던 시간 끝에서 나는 깊이 감사할 수 있었다. /손정희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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