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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세상에 홀로 선 그들⋯기업의 울타리 안에서 ‘내일’을 짓고 ‘하늘’을 연다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3-15 15:25 게재일 2026-03-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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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억 규모 ‘열여덟 혼자서기’ 지원사업이 바꾼 청년들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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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한국수력원자력(주) CI.

매년 약 1700명의 보호 대상 아동이 만 18세가 되면 정든 시설을 떠나 사회라는 거친 벌판으로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독립’이 이들에게는 생존을 건 ‘자립’이다. 

아동권리보장원에 따르면 이들은 초기 자립 과정에서 주거 및 생계 불안, 사회적 고립 등 다중 위기에 직면한다. 특히 비수도권 청년들은 인프라 부족으로 인한 지역 간 지원 격차라는 또 다른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에 한국수력원자력(주)과 초록우산 경북지역본부는 ‘열여덟 혼자서기’ 지원사업을 통해 사각지대 해소에 나섰다. 총 5억 원의 예산을 투입, 경주·고리·새울·한빛 등 사업소 인근 청년 50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취업-안착’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다.

사업은 단계별로 치밀하다. 1단계 ‘기초 다지기’는 자립 수당(월 30만 원)과 경제교육으로 안전망을 구축하고 스스로 자산을 관리하는 법을 익히게 한다. 2단계 ‘역량 키우기’는 대인관계 향상을 위한 사회 기술훈련(SST)과 맞춤형 기초학습비 지원이 핵심이다. 3단계 ‘혼자서기’는 취업역량 강화비(1인 최대 100만 원)와 방학 중 직장 체험(인턴십) 기회를 제공해 실질적인 자생력을 높인다.

취업 후에도 사후 관리는 이어진다. 1개월 및 6개월 근속 시 각각 수당을 지급하고 직무 성장을 위한 컨설팅을 지원하며 고용 유지를 돕는다. 촘촘한 ‘기회의 사다리’를 타고 당당히 사회의 주역으로 거듭난 두 청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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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인 사원. /초록우산 경북지역본부 제공

◇ “홍콩의 하늘길을 여는 당당한 발걸음”⋯공항 서비스 전문가 이세인 사원

한국에서 비행기로 3시간 거리인 홍콩 국제공항. 타이완 국적 대형 항공사의 유니폼을 입고 유창한 외국어로 승객을 맞이하는 이세인 씨(23)는 자립 2년 차의 당찬 청년이다. 

발전설비 전공자였던 그가 전공과는 전혀 다른 항공업이라는 분야에서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수원의 ‘취업역량 강화’ 지원이 있었다.

이세인 씨는 항공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막연하게 공항 지상직의 꿈을 꿨다. 하지만 해외 취업을 위해 필요한 어학 수강료와 전문 자격증 실무 비용은 시설에서 갓 나온 청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벽이었다.

이 씨는 “대학생 시절 관련 자격증을 따려면 수백만 원의 비용이 필요했지만, 재단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비와 실습비를 전액 지원받았다”며 “덕분에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에 매몰되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며 스펙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홍콩에서의 첫 자립은 녹록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도시 중 하나인 홍콩에서 높은 월세 부담과 싸워야 했고 퇴근 후 불 꺼진 집에 홀로 들어올 때의 외로움은 그를 흔들었다. 

이 씨는 “회사 동료들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시설 선생님의 격려와 현지 동료들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오전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와 저녁에는 도서관에서 외국어 인터넷 강의와 씨름하던 강행군을 견뎌낸 끝에 그는 결국 해외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뚫었다.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엄마’처럼 자신을 지켜준 시설의 선생님이었다. 이 씨는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타지 홍콩에서 외로움을 견디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으로 가족들을 홍콩으로 초대해 직접 번 돈으로 여행시켜준 경험을 꼽았다. 

이세인 씨는 “이전에는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세금을 내며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뿌듯하다”며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여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제 지상직을 넘어 객실 승무원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 중이다. 전문 교육을 수강하고 언어 능력을 보완하는 등 쉼 없이 스스로를 단련 중인 이 씨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비를 견디면 자립은 비로소 완성된다”며 “나 또한 내가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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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우 실장. /초록우산 경북지역본부 제공

◇ “집을 짓듯 내 삶을 다시 설계하다”⋯인테리어 현장의 엔진 김영우 실장

울산의 인테리어 업체 ‘집 짓는 남자’에서 현장 관리를 총괄하는 김영우 씨(26)는 오늘도 도면을 손에 쥐고 분주하게 현장을 누빈다. 공사 현장의 소음과 먼지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도면 위의 수치만큼이나 날카롭다. 자재 수급부터 시공팀 조율, 공정 관리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곳이 없다.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그의 모습은 베테랑의 기운이 물씬 풍기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어디서 살아야 할지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지 몰라 밤잠을 설치던 평범한 자립 준비 청년이었다.

김영우 씨는 고등학교 때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직후 곧바로 전공을 살릴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자립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했고 당장의 월세와 식비를 벌기 위해 편의점과 식당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 끝에 돌아온 단칸방에서 그는 미래에 대한 확신보다 막막함을 먼저 배웠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바로 한수원의 지원사업이었다.

김 씨는 “매월 지급된 자립 수당은 아르바이트 시간을 줄이고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의 자유’를 선물했다”며 “단순히 돈을 받는 것보다 그 돈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법을 배운 과정이 큰 안정감을 줬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전공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전기산업기사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고 현장 일을 버틸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에서 몸을 만들었다.

특히 재단에서 제공한 경제교육은 그에게 큰 전환점이 됐다.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법, 금융 사기 예방 노하우 등을 배우며 자립 이후 마주할 경제적 위험에 대응할 실질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취업 후 처음 현장에 나갔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김 씨는 “대표님과 작업자분들이 현장 도면을 두고 치열하게 대화하며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장면을 보며 비로소 내가 소속감을 가진 ‘일하러 온 사회인’임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출근 이튿날 코로나19에 확진돼 잠시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금세 현장의 신뢰를 얻었다. 월급 명세서에서 4대 보험료가 공제된 내역을 보며 당당한 세금 납부자이자 사회의 일원임을 느꼈다는 김 씨. 그는 이제 5년 내 1억 원을 모으겠다는 당찬 목표를 세우고 매달 적금액을 늘려가는 재미에 빠져 있다.

김 씨는 자립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자립은 단순히 시설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겨내며 어른이 되는 ‘성장’의 과정”이라며 “혼자 고민하며 고립되지 말고 사회가 내민 울타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만의 속도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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