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지난 4주간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경북 산불 피해 현장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처참했다.
7평 컨테이너에서 청심환으로 버티는 노인, 5년의 소득 공백 앞에 10만 원의 보상금을 쥔 농민, 그리고 70년 송이밭을 잃고 ‘한 달 치 생계비’를 손에 든 농부까지. 화마(火魔)와 맞섰던 현장 대원들의 사투는 우리 방재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산불 특별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본지는 소방·방재 전문가인 전우현 대구보건대 교수와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통해 한국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모순과 대안을 짚어봤다.
◇ “이원화된 지휘권, 국가 재난급 대응의 걸림돌”
전우현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당시 산불이 단시간에 초대형으로 확산한 원인으로 우리나라 지형 특유의 강풍인 ‘양간지풍’과 소나무 및 잡목이 밀집된 산림 특성을 지목했다.
전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이 극도로 건조해진 상태에서 강풍이 불면 산림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고가 된다”며 “봄철 지형적 특성인 강풍이 불고 소나무와 잡목이 밀집해 있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 산림은 연료 역할을 하는 침엽수 비중이 너무 높고 낙엽과 고사목이 쌓여 ‘불쏘시개’ 층이 두꺼워진 상태”라며 “가파른 산악 지형은 소방차 접근이 어렵고 방수용 자원 확보도 힘들기 때문에 초기 진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원화된 지휘 체계의 개선이다. 산림 관리는 지자체, 대응은 산림청 중심, 지원은 소방청이 맡는 현 시스템은 초기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제 산불은 단순한 산림 화재가 아니라 민가와 도로를 덮치는 ‘국가 재난’이다”라고 강조하며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불 관련 법적 지원에 대해서는 시기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보완을 주문했다.
그는 “송이 농가처럼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 다시 임산물을 채취할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 방식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목 제거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긴급 상황은 소유자 동의 없이 가능하나 일상의 예방적 차원에서는 소유자와의 협의와 사후 보상이 전제돼야 재산권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항공 진화 체계의 현대화 역시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전 교수는 “현재의 소·중형 헬기는 담수량이 적고 강풍이나 야간에는 뜨지 못한다”며 “성능이 좋은 대형 진화 헬기로 과감히 교체해야 하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진화 인력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력이 투입되는 상설 전문 조직을 강화하고 위성·드론·AI를 활용한 첨단 조기 탐지 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 “예방 패러다임 전환과 실화자 강력 처벌 절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발생의 핵심 요인을 실화에 의한 작은 불씨가 건조한 날씨, 강풍과 만난 것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불이 잘 붙고 바닥에 마른 솔잎이 쌓여 연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바람이 불면 불씨가 2㎞ 이상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무력화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진화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예방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산불은 발생 후 30~60분 안에 잡아야 하는데 지휘 체계가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실정”이라며 “진화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헬기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기상 조건이 나쁘면 헬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만큼 지상 진화 역량과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 구조 개선을 위한 수종 전환에 대해서는 ‘어려운 딜레마’를 언급하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침엽수 중심에서 활엽수나 혼효림(섞임숲)으로 정책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10~2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워 내화성 수종을 심고 주민들의 소득 감소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위험목 제거는 국가적 사업으로서 적절한 조치지만, 정당한 손실 보상을 전제로 풀어가야 한다”며 “특히 송이 농가 지원이 현실적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미국의 ‘연료 관리’와 호주의 ‘주민 참여형 시스템’을 주목했다. 특히 미국의 ‘연료 관리’에 대해 “일부러 작은 불을 태워 대형 산불의 길목이 될 낙엽과 고사목을 미리 없애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IT 강점을 살려 “민가 밀집 지역 등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건조기에 가연물의 수분 함량을 1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과학적 예방 시설 도입이 시급하며 이는 사후 진화 비용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장치로서 강력한 처벌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상당한 경우 실화자라도 15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도록 산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재난 권위자 페탁(Petak)의 말을 빌려 “이제 우리도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