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 관측 사상 전례 없는 상흔을 남겼다. 축구장 수만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수십 년간 일궈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단 며칠 만에 형체를 잃었다.
화마(火魔)가 떠난 지 1년, 정부는 피해 구제와 지역 재건을 내걸고 ‘산불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현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23㎡(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약 없는 ‘시한부 일상’을 견디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는 90%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특별법의 이면이다. 정작 피해 이재민을 위한 실질적 생계 보상은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 ‘개발 특혜’ 조항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본지는 잿더미 위에 멈춰 선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된 특별법의 실체를 파헤친다. 나아가 진화 중심의 사후 처리를 넘어 ‘예방’과 ‘존엄한 회복’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2.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3. 기후 괴물 앞에 처참히 무너진 ‘K-방재’
4. 사라진 ‘송이’와 뺏겨버린 ‘안전’
5.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 청심환으로 견디는 ‘23㎡의 삶’⋯2년 뒤엔 이마저 비워줘야
지난 16일 찾아간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75세 김외선 씨의 하루는 낡은 청심환 갑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전 산불로 가게와 살림집을 모두 잃은 그는 현재 마을회관 앞 공터, 24㎡(약 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55년 세월을 일궈온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남은 것은 시한부 일상의 고단함뿐이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지만, 2년 뒤면 이마저도 비워줘야 해” 김 씨가 힘없이 내뱉은 말엔 막막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아파트 하나 겨우 얻을 지원금으로는 내 추억이 깃든 이 땅에 다시 집을 짓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야”
15년 넘게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을 누비던 여장부였던 그는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아침 산책이 일과의 전부다.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약에 의존한다는 그는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00㎡ 탔는데 보상은 4000만 원뿐”⋯멈춰버린 산업 현장
18일 방문한 안동 남후농공단지의 재건 시계도 멈춰 있었다. 전소된 12개 공장 중 현재 가동 중인 곳은 5곳뿐이다.
김치공장주 김영일 씨(68)는 정부의 기계적인 보상 체계를 보며 가슴을 쳤다. “3300㎡(1000평)이 타도 최대 지원금은 4000여만 원이 끝입니다. 지금 미친 듯이 오른 건축비에 기곗값, 자재비를 이 돈으로 어떻게 감당합니까?”
금융 지원 역시 생색내기에 그쳤다. 1년 무이자 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이가 끊긴 기업들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김 씨는 “당장 소득이 없는데 1년 지원으로 그 큰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10년 정도 길게 보고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고 일갈했다.
◇ 5년 소득 공백인데 보상금은 ‘나무 1주당 10만 원’
20일 마주한 영덕군 9900㎡(3000평) 사과 농장의 박현식 씨(71)는 불에 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텅 빈 과수원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나무 1주당 1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묘목을 다시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릴 5년 이상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턱도 없다.
수입이 끊겨 생계가 막막한 그에게 특별법은 아무런 희소식이 되지 못했다.
천년고찰 고운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종무실장(53)은 “스님들 생활 공간조차 없다. 1차 복구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문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도 특별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덤덤히 전했다.
◇ 최저시급 산불 감시원의 한숨⋯주민 87% PTSD 의심
사투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헌신도 인색한 처우로 돌아왔다. 영양군 산불 감시원 김기현 씨(65)는 1년 전 그날 산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보고 주민 대피부터 시켰던 아찔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단속과 초동 진화를 수행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최저시급 받고 여기저기 다니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 특별법에 현장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논의가 빠진 게 가장 아쉽습니다”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전전하며 주택 전소 피해자의 42.1%는 재건축을 포기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다. 봄바람은 다시 불어오지만, 잿더미 위 주민들에게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