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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산불 1년] 누구를 위한 ‘재건’인가

단정민 기자
등록일 2026-03-23 14:48 게재일 2026-03-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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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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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초대형 경북 산불 피해목 임시 보관소에 벌목한 나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지난해 봄철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휩쓴 초대형 산불 지원을 위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기존 재난지원법의 한계를 넘는 포괄적 지원과 지역 재건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8개 조항의 법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피해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반면 피해 지역 산림을 활용한 민간 투자 특례는 파격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구제라는 선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입법의 비정한 민낯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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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경북 산불로 직격탄을 맞은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의 이재민 임시주택과 마을 뒤편 야산의 모습. 마을 뒷산의 산불 피해목 벌목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 주민 지원은 ‘심의’ 첩첩산중⋯‘보상 갈라치기’에 멍든 민심

특별법 제5조에 따르면, 피해 주민 지원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 발효 이후 이달 12일까지 3300여 건의 추가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원의 원칙(제9조)을 천명하면서도 정작 ‘얼마를, 어떻게’ 줄 것인지는 위원회의 재량 뒤로 숨겨버렸다.

법의 사각지대는 평온하던 마을 공동체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제2조(정의)에서 피해자를 거주자, 사업자, 소유자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복구비 배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의성군 단촌면에서 만난 김모 씨(70)는 “10년 동안 주소를 두고 터전을 일군 세입자 가족은 소외되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이 돌아갔다”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난의 고통은 세입자가 겪고 국가의 시혜는 자산가가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별법이 표방한 ‘공동체 회복(제34조)’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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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북동부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영덕군 영덕읍 대탄리에서 불에 탄 나무를 벌목하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 업자 인허가는 ‘완료 간주’⋯45일이면 환경평가 통과

주민 지원 조항들이 위원회의 심의와 조사라는 절차적 문턱을 둔 것과 달리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조항들은 유례없는 행정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제5장 ‘산림투자선도지구’ 관련 조항들이 그 결정판이다.

제60조(환경영향평가법 특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이 45일 이내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산림 회복에 최소 30년이 걸리는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 대신 행정 절차를 ‘하이패스’로 통과시키는 간주 조항이다.

또 제55조는 사업시행자가 산림투자선도사업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익사업법’ 제3조에 따른 토지·물건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제55조 제2항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고시가 있는 때에는 이를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 시행자가 산불 피해지를 개발할 때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6개월치 생계비(제31조)를 지원하며 기다리라던 국가가 업자에게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한 강력한 권한인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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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경북 산불 피해를 본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한 야산의 모습. 피해목을 모두 베어내고 민둥산이 돼버렸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 산림청 권한 지자체 위임⋯‘개발 프로젝트’의 현실화

법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의 규제 빗장까지 풀었다. 제32조와 제59조에 따라 산림청장의 고유 권한인 ‘보전산지의 변경·해제’와 ‘산지전용허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대폭 위임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시설(제56조) 용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법이 공포된 직후 경북도는 청송·영덕 지역에 리조트 유치를 포함한 ‘산불극복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산불 발생 직후 “산은 돈이 안 된다”, “산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은 기후 위기 시대의 산불을 예방과 회복의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개발 사업의 기회’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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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 옷가지만 챙겨 반려견과 급히 대피하던 아주머니는 계속 뒤돌아 집 쪽을 바라보다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 ‘사람’이 빠진 재건은 누구를 위한 풍요인가

산불특별법 제1조가 명시한 목적은 피해구제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낙후된 산간 지역에 민간 자원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개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딛고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구축도 분명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후(先後)’에 있다. 68개 조항 속에 박힌 파격적인 투자 특례들이 정작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구체적 보상안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시설물을 올리는 토목의 속도보다 묘목 한 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의 시계(時計)를 먼저 읽어야 한다.

재난을 단순히 복구 사업의 기회로만 접근하는 단기 경제 논리는 자칫 재난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진정한 지역의 재건은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놓는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산불의 비극을 딛고 선 이 법이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재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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