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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경북산불 1년] 누구를 위한 ‘재건’인가

지난해 봄철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휩쓴 초대형 산불 지원을 위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기존 재난지원법의 한계를 넘는 포괄적 지원과 지역 재건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8개 조항의 법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피해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반면 피해 지역 산림을 활용한 민간 투자 특례는 파격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구제라는 선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입법의 비정한 민낯을 해부한다. ◇ 주민 지원은 ‘심의’ 첩첩산중⋯‘보상 갈라치기’에 멍든 민심 특별법 제5조에 따르면, 피해 주민 지원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 발효 이후 이달 12일까지 3300여 건의 추가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원의 원칙(제9조)을 천명하면서도 정작 ‘얼마를, 어떻게’ 줄 것인지는 위원회의 재량 뒤로 숨겨버렸다. 법의 사각지대는 평온하던 마을 공동체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제2조(정의)에서 피해자를 거주자, 사업자, 소유자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복구비 배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의성군 단촌면에서 만난 김모 씨(70)는 “10년 동안 주소를 두고 터전을 일군 세입자 가족은 소외되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이 돌아갔다”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난의 고통은 세입자가 겪고 국가의 시혜는 자산가가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별법이 표방한 ‘공동체 회복(제34조)’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 업자 인허가는 ‘완료 간주’⋯45일이면 환경평가 통과 주민 지원 조항들이 위원회의 심의와 조사라는 절차적 문턱을 둔 것과 달리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조항들은 유례없는 행정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제5장 ‘산림투자선도지구’ 관련 조항들이 그 결정판이다. 제60조(환경영향평가법 특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이 45일 이내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산림 회복에 최소 30년이 걸리는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 대신 행정 절차를 ‘하이패스’로 통과시키는 간주 조항이다. 또 제55조는 사업시행자가 산림투자선도사업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익사업법’ 제3조에 따른 토지·물건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제55조 제2항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고시가 있는 때에는 이를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 시행자가 산불 피해지를 개발할 때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6개월치 생계비(제31조)를 지원하며 기다리라던 국가가 업자에게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한 강력한 권한인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 산림청 권한 지자체 위임⋯‘개발 프로젝트’의 현실화 법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의 규제 빗장까지 풀었다. 제32조와 제59조에 따라 산림청장의 고유 권한인 ‘보전산지의 변경·해제’와 ‘산지전용허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대폭 위임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시설(제56조) 용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법이 공포된 직후 경북도는 청송·영덕 지역에 리조트 유치를 포함한 ‘산불극복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산불 발생 직후 “산은 돈이 안 된다”, “산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은 기후 위기 시대의 산불을 예방과 회복의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개발 사업의 기회’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사람’이 빠진 재건은 누구를 위한 풍요인가 산불특별법 제1조가 명시한 목적은 피해구제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낙후된 산간 지역에 민간 자원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개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딛고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구축도 분명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후(先後)’에 있다. 68개 조항 속에 박힌 파격적인 투자 특례들이 정작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구체적 보상안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시설물을 올리는 토목의 속도보다 묘목 한 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의 시계(時計)를 먼저 읽어야 한다. 재난을 단순히 복구 사업의 기회로만 접근하는 단기 경제 논리는 자칫 재난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진정한 지역의 재건은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놓는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산불의 비극을 딛고 선 이 법이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재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3

[경북산불 1년] 잿더미 위 청심환 한 갑⋯23㎡ 컨테이너에 갇힌 봄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 관측 사상 전례 없는 상흔을 남겼다. 축구장 수만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수십 년간 일궈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단 며칠 만에 형체를 잃었다. 화마(火魔)가 떠난 지 1년, 정부는 피해 구제와 지역 재건을 내걸고 ‘산불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현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23㎡(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약 없는 ‘시한부 일상’을 견디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는 90%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특별법의 이면이다. 정작 피해 이재민을 위한 실질적 생계 보상은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 ‘개발 특혜’ 조항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본지는 잿더미 위에 멈춰 선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된 특별법의 실체를 파헤친다. 나아가 진화 중심의 사후 처리를 넘어 ‘예방’과 ‘존엄한 회복’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2.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3. 기후 괴물 앞에 처참히 무너진 ‘K-방재’ 4. 사라진 ‘송이’와 뺏겨버린 ‘안전’ 5.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 청심환으로 견디는 ‘23㎡의 삶’⋯2년 뒤엔 이마저 비워줘야 지난 16일 찾아간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75세 김외선 씨의 하루는 낡은 청심환 갑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전 산불로 가게와 살림집을 모두 잃은 그는 현재 마을회관 앞 공터, 24㎡(약 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55년 세월을 일궈온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남은 것은 시한부 일상의 고단함뿐이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지만, 2년 뒤면 이마저도 비워줘야 해” 김 씨가 힘없이 내뱉은 말엔 막막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아파트 하나 겨우 얻을 지원금으로는 내 추억이 깃든 이 땅에 다시 집을 짓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야” 15년 넘게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을 누비던 여장부였던 그는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아침 산책이 일과의 전부다.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약에 의존한다는 그는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00㎡ 탔는데 보상은 4000만 원뿐”⋯멈춰버린 산업 현장 18일 방문한 안동 남후농공단지의 재건 시계도 멈춰 있었다. 전소된 12개 공장 중 현재 가동 중인 곳은 5곳뿐이다. 김치공장주 김영일 씨(68)는 정부의 기계적인 보상 체계를 보며 가슴을 쳤다. “3300㎡(1000평)이 타도 최대 지원금은 4000여만 원이 끝입니다. 지금 미친 듯이 오른 건축비에 기곗값, 자재비를 이 돈으로 어떻게 감당합니까?” 금융 지원 역시 생색내기에 그쳤다. 1년 무이자 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이가 끊긴 기업들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김 씨는 “당장 소득이 없는데 1년 지원으로 그 큰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10년 정도 길게 보고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고 일갈했다. ◇ 5년 소득 공백인데 보상금은 ‘나무 1주당 10만 원’ 20일 마주한 영덕군 9900㎡(3000평) 사과 농장의 박현식 씨(71)는 불에 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텅 빈 과수원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나무 1주당 1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묘목을 다시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릴 5년 이상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턱도 없다. 수입이 끊겨 생계가 막막한 그에게 특별법은 아무런 희소식이 되지 못했다. 천년고찰 고운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종무실장(53)은 “스님들 생활 공간조차 없다. 1차 복구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문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도 특별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덤덤히 전했다. ◇ 최저시급 산불 감시원의 한숨⋯주민 87% PTSD 의심 사투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헌신도 인색한 처우로 돌아왔다. 영양군 산불 감시원 김기현 씨(65)는 1년 전 그날 산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보고 주민 대피부터 시켰던 아찔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단속과 초동 진화를 수행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최저시급 받고 여기저기 다니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 특별법에 현장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논의가 빠진 게 가장 아쉽습니다”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전전하며 주택 전소 피해자의 42.1%는 재건축을 포기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다. 봄바람은 다시 불어오지만, 잿더미 위 주민들에게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