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이후의 불국사·석굴암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 등극 야경 대표 첨성대·동궁과 월지 조명·별빛 겹쳐진 또다른 얼굴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천년 고도 경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의 고요 속에서 역사와 문화, 휴식과 체험이 어우러진 경주는 세대가 함께 시간을 걷는 특별한 여행지가 된다. ‘설 연휴 경주로 떠나는 가족여행 코스’를 8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겨울의 경주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천년의 시간이 또렷이 살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유적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건너온 기억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문화유산은 ‘보존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존재한다. 특히 겨울밤, 조명 아래 드러나는 고도의 풍경은 낮보다 더 깊은 사유를 불러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나는 유산은 천년 전 신라인의 정신과 오늘의 도시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유산의 풍경에 스민 젊은 감각 황리단길서 맛과 멋 즐겨 볼 만 □ 세계가 다시 바라본 유산, 경주의 시간성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이 도시의 위상을 새롭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국제회의라는 현대 정치의 무대가 천년 고도의 공간 위에 놓이면서, 경주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품은 역사 도시임을 증명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 상징이다. 불국사는 불국토를 현실 공간에 구현한 신라 불교 미학의 정점이며, 석굴암은 우주 질서를 하나의 조형물 안에 담아낸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본존불의 미소는 특정 시대의 종교를 넘어 인간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다. APEC 이후 불국사와 석굴암은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가 됐다. □ 별빛 아래 드러나는 왕도의 기억 대릉원과 첨성대, 월성 일대는 신라 왕도의 정치와 과학, 생활이 응축된 공간이다. 거대한 고분은 권력의 흔적이자 죽음을 넘어 영원을 향한 신라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 관측소가 아니라, 자연 질서를 국가 운영과 연결했던 고대 과학의 상징이다. 밤이 되면 이 일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과 별빛이 겹쳐진 풍경 속에서 유적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별빛의 도시 경주’라는 이름은 단순한 관광 브랜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문화적 은유에 가깝다. □ 황리단길, 현재의 경주가 숨 쉬는 공간 경주의 변화는 유적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릉원과 첨성대를 지나 이어지는 황리단길은 고도(古都)와 일상(現在)이 만나는 접점이다. 한옥과 근대 건축 사이로 들어선 카페와 공방, 작은 상점들은 경주가 더 이상 ‘과거만 있는 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거리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 유산의 풍경과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실험 공간이다. 황리단길은 경주가 ‘보는 도시’에서 ‘머무는 문화도시’로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빛과 물, 그리고 신라의 낭만 동궁과 월지와 월정교는 경주의 야경을 대표하는 문화 경관이다. 연못 위에 비친 누각과 조명은 신라 왕실의 연회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현한다. 월정교의 목조 구조는 단절된 역사를 복원한 현대 건축의 결과물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다. 교촌마을은 전통 생활문화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전통혼례 재현과 풍물 공연은 ‘보여주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에 가깝다. 이 일대는 유산·생활·관광이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결합된 사례다. □ 사라진 탑, 남은 정신 : 황룡사와 분황사 황룡사터는 신라 최대 사찰이자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그 빈 공간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 기억 속에서 더 크게 살아난다.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신라인들이 돌로 벽돌을 만들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던 흔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종교와 기술, 예술이 하나로 결합된 신라 정신의 증거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히 준비한 어린이 체험관·해설프로그램 등 신라문화 정수 느껴볼 좋은 기회 □ 박물관, 시간을 보관하는 또 하나의 도시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전체를 압축한 공간이다. 금관과 불상, 토기와 장신구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신라 사회의 구조와 미감을 말해주는 언어다. 이곳은 유물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해석하는 공간이다. 어린이 체험관과 해설 프로그램은 과거를 다음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문화 장치다. 박물관은 경주 문화의 현재형이다. □ 겨울 경주가 문화도시인 이유 보문호와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는 휴식과 체험을 통해 경주의 문화 지형을 확장한다. 역사유산 중심의 도시가 자연과 놀이, 체류형 관광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이다. 경주는 이제 ‘유적의 도시’를 넘어 ‘문화가 축적되는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유산, 청년문화, 야경, 박물관, 체험 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면서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 겨울, 경주는 시간을 걷는 도시다 겨울의 경주는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걷는다. 불국사와 석굴암에서는 정신을 만나고, 대릉원과 첨성대에서는 권력을 보고, 황리단길에서는 현재를 읽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과거를 빛으로 번역한다. 경주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현재로 살아내는 도시다. 이번 겨울, 여행이 아닌 문화로서의 경주를 만나는 일은 곧 시간과 대화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6-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