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젊은 여행자들의 핫 스폿 태국 방람푸의 형성과 전성기 2. 오늘날, 방람푸와 카오산로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세계가 주목한 황리단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4. 경주와 인근 관광지를 불법 약물 없는 ‘청정 여행지’로 5. 방람푸와 황리단길, 뭘 배우고 어떤 걸 경계해야 할까 아주 오래전부터 태국은 대마와 양귀비를 특정 질병의 치료와 통증을 줄이는데 사용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태국은 마약인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의 주요 재배지이기도 했다. 삼각형 형태를 이룬 태국·라오스·미얀마의 접경지역은 한때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며 양귀비의 아시아 주요 생산지로 지목됐다. 재배된 양귀비는 아편과 헤로인으로 만들어졌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 지역이 경제특구로 바뀌기는 했지만, 그곳에 들어선 리조트와 카지노 등에서 외국인 납치와 불법 도박 등의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해 현재까지도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사회·문화적 분위기 탓에 2022년 태국의 대마 합법화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태국 국민들 사이에선 대마초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는 마약이라는 의식이 다소 약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22년 대마 합법화...지난해부터 규제 강화 움직임 태국의 대마 합법화와 문제점 발견 이후 규제 강화 과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2018년 말 태국 의회가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했다. 이는 아시아 국가 최초로 의료와 연구 목적의 대마 사용을 합법화한 사례다. 이 시기엔 의료기관과 의사의 통제 속에서 환자에게만 처방된다는 단서 조항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22년엔 실질적인 합법화로 바뀐다. 그해 6월 태국 정부는 대마초를 제5종 마약류 지정에서 제외했다. 대마초의 재배와 소지, 유통과 소비를 범죄로 보지 않게 된 것. 방콕과 파타야 등 태국 주요 관광지에 대마 판매점과 대마초를 흡연할 수 있는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마 합법화에 따른 부작용은 빠르게 확산됐다. 치료와 통증 완화 목적이 아닌 즉물적인 쾌락을 위한 대마초 사용이 늘어났다. 청소년들의 대마초 흡연도 작지 않은 문제였다. 2023년 여름엔 태국의 해변 관광지로 유명한 파타야에서 대마 성분이 함유된 차(茶)를 마시고 호흡 곤란을 호소하던 50대 외국인 여행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대마 성분을 섞은 각종 음료와 과자의 위험성이 부각됐다. 태국 정부의 집권당이 교체되자 ‘코로나19 사태’로 침체된 관광업을 활성화해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방편의 하나로 시행된 ‘대마 합법화’가 도마 위에 올랐다. “대마초를 다시 마약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지난 2025년 이후 태국은 의료 목적에 한정해 대마초를 허용하고 있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구매할 수 있고, 1인당 구매량도 30일분에 한정시키고 있는 것. 그런데, 이런 규제가 현실에서 잘 지켜지고 있을까? 기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5월 초. 태국을 방문해 방콕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방람푸와 카오산로드를 4일간 돌아봤다. 그 결과 7~8군데의 대마 판매점과 3~4곳의 대마초 흡연 카페를 발견한 것. “좋은 품질의 대마를 팝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내걸고 영업하는 판매점 앞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대마초 흡연 카페에도 드문드문 손님이 보였다. 태국인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외국인 여행자들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잠시 이야기를 나눈 20대 프랑스 청년은 “대마초를 대량으로 판매한다면 처벌 받는다. 하지만, 소량을 소지하거나 피우는 게 프랑스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멀리 아시아까지 여행 와서 대마초 한 번 피우는 게 무슨 죄냐”라는 뉘앙스였다. 젊은 시절에 태국으로 건너가 20년 이상 식당업을 해온 한국 교민은 “태국인들은 대마를 진통제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없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대마초 흡연으로 폭력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별로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조심스레 대마 판매점과 대마초 흡연 카페의 사진을 몇 장 찍으며 ‘혹시 한국인이 있나’ 유심히 지켜봤다. 다행히도 기자가 돌아본 판매점과 카페엔 없는 듯했다. 경북경찰청 마약 수사 관계자는 “쉽고 편하게 구할 수 있다고 호기심과 여행자의 느슨해진 기분으로 태국에서 대마초를 피웠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마약 사용에 관해 ‘속인주의’를 택하고 있다. 자국민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범죄가 발생한 곳이 어디건 본국의 법을 적용한다는 것. 그러니 태국에선 대마초 흡연이 합법이라 해도, 한국인에겐 엄연한 불법 행위다. 대마초를 피우거나 대마 성분의 함유된 음료와 과자를 태국에서 먹은 후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처벌과 약물 중독의 위험성, 태국에선 대마초 피해야 ‘들키지만 않으면 되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면 곤란하다. 대마의 성분은 사용 후 3~4개월이 경과해도 소변 검사와 모발 검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태국 관광지 곳곳에서 판매되는 대마 성분이 섞인 음식과 음료수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 아저씨, 여기 좋은 대마초 있어요”라고 호객하는 이들이 나타난다면 조건을 달지 않고 피하는 게 좋다. 대마는 긴장을 풀어주고 진정 작용을 한다.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동반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앞서 언급된 외국인 여행자의 경우처럼 호흡 곤란을 가져올 수 있고, 구토를 유발하며, 극심한 환각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불법적인 사건과 사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약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니, 태국 여행 중 괜한 호기심에 대마초에 손을 대서는 곤란하다. 처벌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약물 중독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백형의(을지대학교), 이송희(서울시 복지재단), 이주용(성남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이 공동 저술한 논문 ‘마약류 중독자 예방 및 사회재활서비스 개발 위한 일본·태국 사례와의 비교’를 눈여겨 읽어볼 필요성이 있다. 마약 중독 예방과 사회 재활서비스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위 논문을 쓴 저자들은 “국내에서는 특히 젊은층의 마약류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20년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국민인식도’ 조사 결과에서도 20대의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인식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보고됐다”고 지적한다. 덧붙여 “국내 의료용 마약류의 경우 불법, 중복 처방 등 부작용도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국민의 2.7명 중 1명이 마취제, 진통제, 식욕억제제 등을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보고됐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가 형사처벌만으로는 마약류 사용자의 재범 방지가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주의 황리단길을 위시해 경상북도 곳곳의 유명 관광지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주시에 따르면 한 해 180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경주를 찾아오고, 그들의 절대다수가 황리단길과 인근 대릉원 등을 돌아본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대만과 일본, 미국과 캐나다, 영국과 호주 등 경주 여행객의 국적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높아진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선 언제든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대마초 등의 불법 약물 사용도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분명하다. 황리단길은 과연 ‘마약 없는 청정 관광지’라는 현재의 위상을 앞으로도 지켜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할까?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현장에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실감 포스코기술대학에 진학 자격증 취득도 배움은 내 일을 더 잘하고픈 욕심 때문 △본인 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간단히 소개해달라. 아울러 본인에게 ‘일’ 이란 어떤 의미인지, 평소 어떤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는지 말해달라.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중앙수리섹션에서 유압기기 수리 및 정비를 담당하고 있는 정기원 대리이다. 포항제철공고 시절 처음 맺은 포항과의 인연이 자연스레 포스코 입사로 이어졌고, 20대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직 제철소 현장 한길만을 걸어왔다. 나에게 ‘일’은 삶의 가장 큰 동기이자 일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이른 새벽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오늘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차분히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담당하는 유압기기는 제철소의 거대 설비를 움직이는 ‘혈관이자 근육’과 같다. 유체의 흐름을 통해 에너지를 전달함으로써 쇳물을 녹이고 철판을 누르는 모든 기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핵심 장치이다. 미세한 누유 하나가 공장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매일 설비의 미세한 진동과 소리까지 온 신경을 집중해 살피고 있다.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숨어 있는 고장 원인을 찾아내 해결했을 때, 그리고 설비가 다시 완벽하게 돌아갈 때 느끼는 성취감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제철소의 ‘당연한 일상’이 흘러가도록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또 가장 큰 보람이라 느낀다. △포스코기술대학 학업 과정과 업무를 병행하며 업무 관련 기능장 자격증 3개를 취득한 것으로 알고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원동력과 본인만의 비결을 말해달라.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늘 실감하게 된다. 배움을 멈추지 않는 것은 내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단순히 ‘경험이 많다’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현장의 경험을 이론으로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싶었다. 그래서 포스코기술대학에 진학해 금속공학을 깊이 있게 공부했고, 제강·제선·주조 기능장 자격증 3개를 차례로 취득했다. 제철소의 전 공정을 제대로 이해해야 내가 담당하는 유압 설비의 문제도 더 넓은 시야에서 정확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쌓은 이론은 현장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단순히 오랜 ‘감’에만 의존해 고장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도면과 공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고 최적의 솔루션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고장 원인을 명확히 짚어내니 수리 시간은 단축되고 설비 가동률은 올라갔다. 자연스레 정비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물론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스스로 세운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돌이켜보면 즐거웠다. 어제보다 조금 더 성장한 실력으로, 동료들에게 언제든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엔지니어로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싶다. ‘철판을 누르는 유압 장치’핵심 개선 선정 작업 안정성과 정비 리드타임 대폭 단축 스마트한 일터 만드는데 앞장서고 싶어 △현장 핵심 설비의 정비 방식을 개선해서 안전한 작업 환경을 구현했다고 알고 있다. 이번 개선 활동을 추진하게 된 배경과 실제 현장에서 달라진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우리 파트의 최우선 과제는 ‘안전 확보와 정비 효율성 극대화’이다. 이를 위해 파트장님과 함께 작업 중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예방하고, 동시에 정비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개선점을 찾고자 했다. 그중 높이 1.5m, 무게 30톤에 달하는 ‘철판을 누르는 유압 장치’를 핵심 개선 대상으로 선정했다. 설비의 규모가 크다 보니 정비 시 작업 높이가 높고 무거운 부품을 다뤄야 해서,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동시에 정비 프로세스를 효율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선 고소 작업의 위험을 예방하고 작업 동선을 최적화하기 위해 작업장 바닥을 아래로 파내어 설비 자체를 낮추는 작업을 진행했다. 작업 높이가 1.5m에서 0.3m로 낮아지면서 사다리 없이 평지에서 편리하게 정비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었다. 이에 더해, 무거운 부품을 다룰 때의 신체적 부담을 줄이고 작업 편의성을 높이고자 ‘전용 회전 장치’를 직접 제작했는데, 작업자가 기계 조작만으로 부품을 원하는 각도로 정밀하게 회전시킬 수 있게 되면서 작업의 안정성은 물론 정비 리드타임까지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이번 개선은 단순히 기존 방식을 바꾼 것을 넘어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하고 정비 효율성까지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현장의 비효율과 위험 요소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개선하여 스마트한 일터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싶다. 안전과 효율 개선 방안을 찾아내기 위해 ‘낯설게 보기’와 ‘소통’ 두 가지 원칙 고수 관점의 변화가 비효율·위험 발견 출발점 △앞서 소개해준 사례처럼 평소에 현장의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찾아내는 자신만의 특별한 접근 방식이 있는지? 평소 현장의 안전과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낯설게 보기’와 ‘소통’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작업일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늘 하던 방식이라도 ‘이것이 정말 최선일까? 더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은 없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편이다. 마치 오늘 처음 이 현장에 출근한 사람처럼 현장을 낯설게 바라보고자 노력하는데, 이러한 관점의 변화가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미세한 비효율이나 잠재적 위험 요소를 발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해결책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보통 그 해답을 현장 동료들과의 ‘소통’을 통해 찾고 있다. 발견한 문제점을 파트원들과 공유하며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안전하고 편하게 일할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한다. 동료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서로의 아이디어를 연결할 때, 비로소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잡는 가장 현실적이고 최선인 방안이 나온다고 믿는다. △회사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여 ‘영보드’ 활동을 참여했다고 들었다. 활동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 지난해 젊은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하는 소통 창구인 ‘포스코 영보드’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1년간 영보드 활동을 하며 일상적인 대화부터 식사 자리,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동료들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여기서 수렴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사내 소통 채널을 통해 적극 전달하며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에 힘썼다. 특히 90여 명의 동료가 함께 근무하는 현장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작업진행실과 휴게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등 동료들의 일상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부분들을 차례로 개선해 나갔다. 본연의 업무와 병행하는 과정에서 쉽지는 않았지만, 개선된 환경을 본 동료들이 전하는 감사 인사는 가장 큰 보람이었다. 직원 소통 창구 ‘포스코 영보드’ 위원 활동 현장목소리 적극 전달 해결책 마련 힘써 동료들이 전하는 감사 인사 가장 큰 보람 △이야기를 듣다 보니 동료들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깊이 묻어나는 것 같다. 평소 회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결국 회사 생활의 시작과 끝은 사람, 즉 ‘동료’라고 생각한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일터인 만큼, 동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회사 생활의 행복과 성과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설비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도, 결국 그것을 움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람이다.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관계가 불편하면 사소한 업무도 무겁게 느껴지지만, 반대로 끈끈한 신뢰가 바탕이 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현장의 어려움도 기꺼이 즐겁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처럼, 동료들과 발을 맞추어 함께 걸어갈 때 비로소 지치지 않고 더 큰 성과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엔지니어로서 업무 역량을 꾸준히 키워 나가는 비결이 궁금하다. 자신만의 특별한 ‘루틴’이 있나. 최근에는 ‘디지털 도구 활용’과 ‘현장 실무 경험’을 결합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사내에서 제공 중인 생성형 AI ‘P-GPT’를 적극 활용하고 있고, 파악한 기술 정보는 카탈로그 및 표준서와 일일이 대조하며 철저히 검증한다. 스스로 기술적 근거를 찾아내며 업무 완성도를 높이는 나만의 새로운 루틴인 것이다. 실제로 유압 설비 투자 공사에 참여해 파트장님과 함께 공사 전반을 수행할 때 이 루틴의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도면과 제어 메커니즘을 미리 분석하고 현장에 임한 덕분에, 복잡한 유압 시스템과 제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고 실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디지털 기술과 현장 경험을 유연하게 결합해 업무 효율을 높일 스마트한 루틴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장에서 치열하게 도전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묵묵히 지탱해 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일과 자기계발에 몰두하느라 퇴근이 늦어지거나 공부와 실습으로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묵묵히 응원하고 내 곁을 지켜주는 아내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밖에서 마음 편히 일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아내가 나의 빈자리를 온전히 채우며 가정을 지켜준 덕분이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헌신이 사실은 얼마나 큰 배려이고 사랑이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실감한다. 일에 몰두하느라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소홀해질 때도 있었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 가족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과,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꼭 전하고 싶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다 담을 수 없겠지만, 나의 성장이 곧 우리 가족의 행복이 될 수 있도록 앞으로는 더 좋은 동료이자 아들, 그리고 든든한 가장이 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글 싣는 순서 1. 젊은 여행자들의 핫 스폿 태국 방람푸의 형성과 전성기 2. 오늘날, 방람푸와 카오산로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3. 세계가 주목한 황리단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4. 경주와 인근 관광지를 불법 약물 없는 ‘청정 여행지’로 5. 방람푸와 황리단길, 뭘 배우고 어떤 걸 경계해야 할까 관광은 굴뚝 없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21세기형 산업이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국경을 열어 외국인 여행자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도 이런 경향과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른바 ‘K-팝’ ‘K-뷰티’ ‘K-드라마’ 등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해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특정할 것 없이 인기 있는 관광지가 갖춰야 할 요소는 뭘까?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역사 유적과 미려한 건축물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더해 편리한 교통 인프라와 깨끗하고 저렴한 숙소가 더해져야겠고, 바가지 상술 역시 없어야 한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안전’이다. 거리에서 소매치기나 폭행을 당하거나, 밤이 깊어 어두워진 이후에 호텔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에 위험을 느낀다면 그런 곳은 관광지로선 실격 아닌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불법 약물의 남용은 범죄의 위험성을 높인다. 대마초를 포함한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도시는 범죄율 또한 높다. 각종 내외신 언론을 통한 관련 보도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태국은 아시아인은 물론 유럽과 북미 사람들에게도 인기 높은 관광지다. 사파이어 색채로 빛나는 해변과 나라 곳곳에 산재한 고대와 중세시대 유적, 에너지 넘치는 수도인 방콕 도심의 각종 즐길거리는 1년 내내 그 나라를 여행자들로 북적이게 했다. ▲2022년 태국 대마초 합법화, 이후 어떤 변화가? 그런데, 지난 2022년 태국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대마초를 합법화했다. 거리의 상점에서 대마초를 판매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구입한 대마초를 흡연할 수 있는 카페 형태의 가게들이 줄줄이 오픈한 것이다. 대마초 합법화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대마 흡연이 또 다른 불법 약물의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렇기에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대마초 합법화 문제’는 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다. 합법화 이후 해마다 대마 재배지가 늘어나고, 관련 산업이 예상을 뛰어넘어 성장하고 있으며, 대마초와 얽혀 발생하는 범죄도 합법화 이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 태국 언론의 보도다. 특히, 통증 완화 등의 치료 목적이 아닌 말초적 만족을 위한 향락의 방식으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는 게 대마초 합법화의 ‘어두운 그늘’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한 태국 정부의 우려가 작지 않다. 그래서인지 2024년엔 태국 총리가 나서 대마초를 다시 5급 마약으로 지정해 판매와 구입, 흡연을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를 위해 태국을 찾은 지난 5월에도 대마초 판매점과 대마 흡연 카페는 여전히 영업을 지속하고 있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방콕 방람푸 지역의 카오산로드 역시 그랬다. 한때 방콕의 카오산로드는 ‘배낭여행자의 천국’으로 불렸다. 이웃한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의 국가로 향하는 저렴한 교통편을 편리하게 예매할 수 있었고, 한국 돈 1만원 미만으로 하룻밤 머물 수 있는 도미토리형 숙소도 흔했다. 비슷한 또래의 장기 여행자가 모이는 공간이기에 여행 정보도 쉽게 얻는 게 가능했다. 볶음국수와 매콤한 새우탕 같은 길거리 음식은 주머니 가벼운 20대 관광객에게 싼 가격으로 태국 요리를 맛볼 기회를 제공했다. 기자 역시 흔한 한국 배낭여행자와 마찬가지로 30대와 40대에 걸쳐 대여섯 번 태국 방콕의 방람푸 일대를 돌아본 경험이 있다. 카오산로드에 숙소를 잡고 밤늦도록 열대야의 거리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국적 다양한 여행자들과 어울렸던 지난날은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대마초 합법화 이후 그곳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런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 8년 만에 태국을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수십 년 이상 ‘아시아 여행의 허브(hub)’로 불리며 지구 도처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였던 방콕 방람푸 카오산로드의 오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5월 3일 밤늦게 한국 김해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5시간쯤을 날아 자정을 넘긴 시간에 태국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방콕의 야경은 화려했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방콕은 어떻게 형성된 도시일까? 이 궁금증에 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한광야, 신재영, 하성현이 공동 저술한 논문 ‘태국 방콕의 도시 성장 특성에 관한 해석’이 아래와 같은 답을 들려준다. “방콕은 차오프라야강(江) 중상류 지역의 지배세력인 아유타야 왕조의 항구도시(1538~1767)에서 라타나코신 왕조의 수도이며, 하천·운하의 항구(1767~1851), 라타나코신 왕조와 유럽 세력과의 해양-대륙간 철도·트램의 교역거점( 1851-1945), 독립 후 태국의 수도이며, 고가철도·지하철의 광역도시(1945~현재)로 확장돼왔다.” 이와 함께 “방콕은 태국 반도 내륙의 핑강과 난강의 합류지인 나콘사완에서 시작해 남쪽의 방콕만-타이만으로 흘러가는 차오프라야강에 형성돼 성장해온 교역항구이며 행정거점”이라는 부연 설명도 이어진다. ▲방콕 카오산로드 숙소 “대마초 흡연은 금지입니다” 그렇다면 해마다 3000만 명 이상의 동서양 관광객들이 찾는 태국, 그 가운데서도 젊은 여행자에게 특히 사랑받아온 방콕의 방람푸 지역으로 포커스를 좁혀보자.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방람푸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방람푸(Banglamphuู)는 방콕 프라나콘 지역에 위치한 유서 깊고 활기찬 공간이다. 광대한 크기는 아니지만, 태국의 옛날 모습을 지척에서 만날 수 있고 각국 배낭여행자들이 지닌 특유의 문화가 어우러져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풍광을 밤낮 없이 만들어낸다. 바로 거기에 한국 청년 여행자들에게도 익숙한 ‘카오산로드’가 있다. 저마다의 경제적 형편에 맞춰 다양한 가격대의 숙소 선택이 가능하고, 스웨덴과 독일, 캐나다와 일본, 노르웨이와 싱가포르 등에서 온 배낭여행자와 가볍게 칵테일 한잔 나누며 친구가 될 수 있는 술집과 클럽이 넘쳐나는 곳이 카오산로드다. 새벽까지 네온사인 환하게 밝혀진 밤거리의 낭만도 젊은이들에겐 선물처럼 느껴진다. 방람푸에서 사흘을 머물며 지켜보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열정 가득한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여기에 더해 카오산로드 인근엔 태국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방람푸 전통시장이 있고, 방콕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방콕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도 지척이다. 차오프라야강 선착장에서 수상버스를 타고 강물 위를 떠가는 즐거움도 1천원 안팎의 티켓만 사면 느껴볼 수 있다. 비교적 긴 시간의 휴가를 내고 태국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하는 유럽 관광객 중에는 카오산로드 서쪽 끝자락에 위치한 산티차이프라칸 공원에서 두꺼운 책을 들고 독서삼매경(讀書三昧境)에 빠진 이들도 없지 않다. 땡볕이 쏟아지는 한낮에도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공원의 그늘은 두텁고 시원하기에. 어쨌건 1980년대 중반부터 태국을 찾아오는 ‘배낭여행자의 성지(聖地)’로 이름을 높인 카오산로드. 기자가 수완나품 공항에서 픽업 차량을 타고 카오산로드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숙소에 도착한 건 5월 4일 새벽 무렵이었다.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며 직원에게 주의 사항을 설명 들었다. 그런데, 이전에는 없던 문구 하나가 추가돼 있었다. 뾰족한 대마 이파리 그림과 함께 굵은 글씨체로 ‘우리 호텔에선 대마초를 피울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문. 그리고, “당신은 혹시 대마초를 피우는가?”라는 질문. 아마도 대마초 합법화 이후 생긴 새로운 주의 사항인 듯했다. 숙소에서 대마초 흡연을 금지한다는 경고를 해야 할 만큼 방람푸 일대, 특히 카오산로드에서의 대마 사용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지 상세히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계속>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바삭하게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와 은은한 단맛의 팥앙금. 천년고도 경주를 찾는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새로운 지역 디저트가 주목받고 있다. 전통 팥앙금에 현대적인 제과 기술을 접목한 ‘호문당 경주파이’가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 먹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주시 천북남로 (보문관광단지 내 루지월드)에 위치한 호문당은 10년 넘게 단팥빵을 만들어 온 제과 장인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주파이’를 선보이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경주를 대표하는 특산 디저트를 만들겠다는 고민 끝에 탄생한 경주파이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독특한 맛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전통적인 팥앙금의 맛에 현대적인 페이스트리 기법을 더해 경주만의 특별한 디저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갓 구워낸 파이의 고소한 향이 먼저 반긴다. 노릇하게 구워진 경주파이를 한입 베어 물면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그 안을 가득 채운 팥앙금이 부드럽게 퍼진다. 팥 특유의 진한 풍미는 살아 있으면서도 텁텁함 없이 깔끔하다. 알알이 살아 있는 팥의 식감은 씹을수록 고소함을 더하며, 바삭한 겉과 촉촉한 속의 조화가 절묘한 만족감을 선사한다. 호문당 경주파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재료에 대한 고집이다. 일반적인 물엿 대신 경주 이사금쌀로 만든 조청을 사용해 은은하고 부드러운 단맛을 살렸다. 과하지 않은 달콤함 덕분에 남녀노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으며, 먹고 난 뒤에도 깔끔한 여운이 남는다. 페이스트리 역시 정성이 깃든 공정을 거쳐 완성된다. 유기농 밀과 국산 쌀가루, 천연 발효버터를 사용한 반죽을 수차례 접고 펴는 작업을 반복해 결을 살리고, 여기에 직접 만든 팥앙금을 채워 동그랗게 빚은 뒤 아몬드 크림을 올려 구워낸다. 이 과정에서 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최근에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의 기념품과 선물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낱개 구매는 물론 6개입, 8개입, 10개입 세트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여행의 추억을 담아가기에도 좋다. 맛있게 즐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진한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면 팥의 깊은 풍미가 한층 살아나고, 차가운 우유와 곁들이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을 더욱 풍성하게 느낄 수 있다. 특히 우유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시원한 달콤함이 어우러져 색다른 디저트 경험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호문당의 매력은 맛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늑하게 꾸며진 1·2층 카페 공간에서는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천년고도의 정취를 품은 경주에서 향긋한 커피 한 잔과 따뜻한 경주파이 한 조각을 즐기는 순간, 여행은 더욱 특별한 추억으로 남는다. 호문당 최진철 대표는 “경주를 찾은 관광객들이 지역의 맛과 정서를 함께 느낄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고 싶었다”며 “경주 이사금쌀로 만든 조청과 좋은 재료를 사용해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경주파이를 완성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이어 “경주파이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경주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으로 성장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 개발을 통해 경주의 가치를 알리는 데 힘쓰겠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여행 온 김모(65) 씨는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부드러운 팥앙금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며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제빵보다 단맛이 과하지 않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고, 간식으로도 좋았다. 경주파이만의 색다른 매력이 있어 경주 여행 때 꼭 다시 찾고 싶은 디저트”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대구에서 친구들과 방문한 박모(35) 씨는 “2층 카페에서 창밖 풍경을 보며 파이와 커피를 즐기니 여행의 여유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며 “경주 여행의 작은 행복 같은 공간”이라고 전했다.
2026-05-31
초거대 AI가 정보를 대신 요약하고 스마트폰이 하루 종일 감각을 점령하는 시대, 사람들은 점점 ‘생각할 틈’을 잃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 피로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려는 이들이 늘면서, 자연 속에서 사색과 몰입의 시간을 품어온 봉화의 전통 누정이 새로운 치유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봉화의 누정은 단순히 오래된 목조건축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세상의 소음을 밀어내고 자신을 다스리려 했던 선조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려는 깊은 사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정답을 빠르게 제시하는 AI 시대일수록, 오히려 정답 없는 풍경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공간의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봉화의 누정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 도깨비 장난도 멈추게 한 집중력, 석천정사의 ‘청하동천’ 명승 석천계곡에 자리한 석천정사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전해진다. 옛 선비들이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할 때, 밤마다 도깨비들이 몰려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공부를 방해했다는 기록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는 ‘스마트폰 알림’과도 닮아 있다. 이에 권두응(1656~1732)은 계곡 입구 바위에 ‘청하동천(靑霞洞天,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는 글자를 힘차게 새겨 넣었다. 신선의 권위로 도깨비(잡념)를 물리치겠다는 이 단호한 의지는, 디지털 소음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깊은 몰입(Deep Work)의 세계로 들어가고자 했던 선조들의 ‘디톡스’ 현장이었다. ◇ 거북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공존, 청암정의 마루방 닭실마을의 청암정에는 효율보다 가치를 우선시했던 인문학적 결정의 순간이 담겨 있다. 1526년 건립 당시, 원래 이곳은 여느 정자처럼 따뜻한 구들을 놓은 ‘방’이 있는 구조였다. 하지만 “거북 형상의 암반 위에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의 등에 불을 놓는 것과 같다”는 조언을 듣고, 선조들은 과감히 구들을 뜯어내고 차가운 마루방으로 개조했다. 추위를 견디더라도 자연(거북 바위)과의 공존을 선택한 이 일화는, 데이터의 효율성만을 따지는 AI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생명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되묻게 한다. 연못을 조성해 거북에게 물을 내어준 청암정의 풍경은 그 자체로 완벽한 휴식이 된다. ◇ 과열된 일상을 식히는 보물, 한수정의 ‘찬물 한 그릇’ 춘양면의 보물 한수정(寒水亭)은 그 이름부터가 완벽한 디톡스를 제안한다. ‘찬물처럼 맑은 정신으로 공부하는 정자’라는 뜻을 지닌 이곳은, 정보 과부하로 열이 오른 현대인의 뇌를 식혀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단순히 건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400년 된 느티나무 아래 돌다리를 건너며 와룡연(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과정은 디지털 세상에서 파편화된 자아를 다시 결합하는 정화의 의식과도 같다. 한수정의 T자형 구조가 만들어내는 바람의 길은 인공적인 에어컨 바람에 익숙한 우리에게 자연의 리듬을 되찾아준다. ◇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시간 봉화군 관계자는 “AI가 우리 삶의 편의를 제공한다면, 봉화의 누정은 우리 삶의 의미를 채워주는 곳”이라며, “이번 주말, 스마트폰 전원을 잠시 끄고 도깨비가 사라진 석천계곡과 거북이가 쉬어가는 청암정, 그리고 마음을 씻어내는 한수정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6-05-21
거대 시스템 움직임의 시작점은 ‘전기’ 전기기술섹션 전력설비 관리 업무는 멈춤없이 돌아가는 일상을 지키는 일 - 자기소개를 해달라.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전기기술섹션에서 전력설비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조수민 사원이다. 제철소는 수만 개의 설비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그 모든 움직임의 시작점에는 항상 ‘전기’가 있다. 아주 작은 부품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전체 공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현장에 나가 설비들을 꼼꼼히 점검하며, 엔지니어로서 가장 중요한 기본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제철소의 뜨거운 불꽃이나 거대한 설비에 주목하지만, 우리 부서는 그 모든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뒤에서 묵묵히 ‘보이지 않는 설비’를 지키고 있다. 설비가 계획된 공정대로 멈춤 없이 돌아가는 것, 그 당연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내가 현장에서 매일 하고 있는 일이다. - 포항제철소 EIC 기술부는 어떤 부서인지, 그리고 맡고 있는 업무는? EIC기술부는 포항제철소 내 전기·계장·제어 설비의 상태를 진단하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조직이다. 설비가 보내는 미세한 신호를 분석해 원인을 찾고, 최적의 대응 방안을 도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전력 계통의 안정적 운영을 지원하는 설비 진단과 분석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정상 운전 중인 설비에서 갑작스러운 이상 신호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으로 이동해 상황을 파악한다. 단순히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와 동시에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해 재발 방지 대책까지 수립하는 것이 주요 핵심 업무다. - 1열연, 3·4소결 공장 등 주요 설비의 교체 작업에 직접 참여했다고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공장의 차단기나 계전기 등 제철소 내의 주요 전기기기들을 정밀하게 살피고 점검하면서 현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열연과 3·4소결 공장의 전기실 교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험은 내 엔지니어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다. 당시 해당 공장의 케이블을 비롯한 주요 전기기기를 전면 교체해야 하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했는데, 나는 1열연 프로젝트의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 설비 선정 기준을 수립하는 등 전 과정을 함께했다. 모든 공정을 직접 설계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배움도 컸다. 수없이 도면을 검토하면서 누락된 부분을 보완했고, 현장의 목소리와 선배들의 조언을 설계에 녹여내며 완성도를 한층 더 높였다. 물론 공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들과 마주하며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이러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설비를 운용하는 차원을 넘어, 전체 시스템과 구조를 조망하는 시각을 키울 수 있었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당시의 경험은 현재 내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비로소 EIC 기술부의 일원으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열연, 3·4소결 공장 전기실 교체 참여 전체 시스템 구조 조망하는 시각 확장 현장서 마주하는 문제 해결 자산으로 - 다양한 구성원들과 협업하며 일하고 있을 텐데, 본인만의 커뮤니케이션 노하우나 조직 적응 전략이 있다면? 조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단연코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 신뢰는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소통에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선배들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배우며 스스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저 수동적으로 단순히 도움만 받는 후배에 머무르지 않고, 선배들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해 가르쳐주고 싶은 ‘가치 있는 구성원’이 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평소 선배들과의 유대감을 쌓는 데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또한 선배들에게 질문을 할 때도 스스로 고민한 과정을 함께 공유하며, 선배들의 노하우를 내 것으로 흡수해 배움을 확장하려 노력한다. 또한, 체육대회나 부서 내 소통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현장 밖에서 쌓은 친밀감은 업무 현장에서의 원활한 협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느낀다.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언젠가 동료들 사이에서 ‘조수민에게는 믿고 맡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나의 최종 목표다. 기술적인 역량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라는 점을 현장에서 매일 깨닫고 있다. 조직 생활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 선배들이 시간 투자해 가르쳐 주고 싶은 ‘가치 있는 구성원’으로 성장 위해 최선 - 업무 외에도 자격증 취득이나 E-Tap 학습 등 자기계발에 매우 열정적이라고 들었다. 그런 노력이 실제 현장 업무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어떤 시너지를 내고 있는가? 나는 꾸준한 학습이 곧 업무 역량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EIC 기술부의 업무는 설비 이상 신호의 근본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최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인 만큼, 무엇보다 ‘정확한 판단력’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과 데이터 축적이 필수적이다. 감각이나 경험에만 의존해서는 대형 설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전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전력 계통 해석 프로그램인 ‘E-Tap’을 틈틈이 익히며 이론과 현장 데이터를 연결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현장에서 확실한 차이를 만들고 있다. 과거에는 설비의 이상 징후를 마주하면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추측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데이터 기반으로 ‘이러한 이유로 문제가 발생했다’고 명확하게 진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론적 토대가 탄탄해지니 현장의 복잡한 문제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게 되었다. 꾸준한 학습으로 익힌 지식은 자격증이라는 결과물도 얻었지만, 현장에서 내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안내해주는 가장 든든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앞으로도 기술적 깊이를 더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엔지니어로 성장하고 싶다. - 현장에서 기술적 난제를 해결해 보람을 느꼈던 사례가 있는지? 당시 상황과 해결 과정을 소개해달라. 1열연 교체 프로젝트 시운전 도중 설비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된 적이 있다. 특정 계전기의 설정값이 제조 단계에서 고정되어 있었는데,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채 현장에 적용한 것이 원인이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었지만, 관련 담당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원인 분석부터 차근히 진행했다. 당시 문제가 된 부분을 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조사와 협의해 포항제철소에 최적화된 ‘POSCO 전용 접점 리스트와 프로그램’을 새롭게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유사한 계전기를 사용하는 다른 현장에도 적용 가능한 ‘표준화된 기준’을 마련하게 되었고, 결국 시운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에는 막막했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현장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사실은 지금도 큰 보람으로 느끼고 있다. ‘POSCO 전용 접점 리스트·프로그램’ 새롭게 구축해 ‘표준화된 기준’ 마련 시행착오획기적 감소··· 가장 큰 보람 - 바쁜 업무 속에서 나만의 ‘워라밸’은 어떻게 챙기고 있는지? 포항이 첫 타지 생활이라고 들었는데 적응기도 궁금하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19살의 포항행은 큰 도전이었다. 어린 나이에 홀로 타지 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에 가족들의 걱정이 무엇보다도 컸을 것이다. 특히 할아버지께서는 손녀가 낯선 환경에서 고생하지 않을까 염려하셨지만, 누구보다 나를 믿고 응원해주시기도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지만, 포스코의 든든한 복지제도가 큰 힘이 되었다. 기숙사 제공과 월세 지원 등 안정적인 주거 환경 덕분에 초기 생활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현장 동료들이 타지에서 온 나를 친동생처럼 살뜰히 챙겨주었다. 덕분에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현장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업무 외 시간에는 활동적인 취미로 에너지를 얻는다. 포항시 여자 야구단에서 2년째 활동 중이며, 개인 테니스 레슨도 꾸준히 받고 있다. 또한, 사내 건강증진센터와 물리치료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컨디션을 관리하는 것도 나만의 비결이다. 이제 포스코는 내게 직장이나 일터라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따뜻한 동료들과 함께 삶을 꾸려가며, 이곳에서 엔지니어로서의 꿈을 키워가는 지금, 나는 포항을 제2의 고향처럼 느끼고 있다. - 마지막으로 현장 엔지니어로서 성장 목표와 철강산업의 미래에 대해 생각을 말해달라. 현장에서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찾는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나의 가장 큰 바람이자 목표다. 특히 “저 사람에게 맡기면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현장의 기준이 되는 기술자로 성장하고 싶다. 포항제철소에는 한 분야를 수십년 동안 연구하며 갈고닦아 전문가로서 자부심을 지닌 명장님들이 많다. 기술은 물론 현장을 대하는 태도와 소통의 기술까지, 명장님들이 걸어온 길을 배우며 성장하고 싶다. 지금은 기본기를 다지며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이지만, 언젠가 나 또한 명장님들처럼 나만의 전문성을 구축하여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목표다. 철강업은 화려하지 않은 겉모습을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모든 산업을 지탱하는 든든한 뼈대 같은 존재다. 현장에서 직접 일해보니 우리가 만드는 철이 사회 곳곳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포항제철소는 바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필요한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느끼는 철강산업의 의미야말로 이 일이 가진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철강은 스마트 공장으로 진화 현장 설비·공정의 완벽한 이해를 넘어 대체 불가능 기술자되는 것 최대 목표 앞으로의 철강 현장은 데이터와 기술이 더해진 스마트한 공장으로 진화할 것이다. 나는 현장의 설비와 공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를 활용해 공정 효율을 높이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 기술이 아무리 변해도 흔들리지 않는 기본기를 바탕으로, 현장의 생산성과 안전을 동시에 책임지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자로 성장할 것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5-03
규격 맞는 슬라브·블룸으로 성형하는 4연주 공장 슬라브 파트서 설비 생애주기 전반 책임·관리 맡아 - 자기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해달라. 제강부 4연주공장에서 근무하는 11년 차 박진혜 대리다. 2015년 입사 후 6년간 교대 근무를 통해 조업의 기초를 익혔고, 이후에는 상주 근무로 전환해 설비 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4연주공장은 제강 공정에서 넘어온 용강을 고객 요구에 맞는 규격의 슬라브와 블룸으로 성형하는 곳이다. 액체 상태의 쇳물이 고체 형태를 갖추는 제철소의 핵심 공정이다. 현재 슬라브 파트 설비반에서 설비의 생애주기 전반을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다. 매일 현장에서 설비를 점검하고, 이상 징후 발생 시 즉각적인 조치와 정비로 가동률을 유지시키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또한, 조업·정비 부서와의 긴밀한 협업으로 공정 개선안을 도출하고, 예비 설비 및 자재 수급을 사전에 관리해 안정적인 조업 환경을 위한 지원 체계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 입사 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 또는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쇳물 통로 막힘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쇳물을 담아두었다가 흘려보내는 통로가 막히면 공급 속도가 저하돼 공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였다. 현장에서도 해결이 쉽지 않은 과제로, 팀원들과 함께 원인 분석과 개선 작업을 병행했다. 현장에 적용하기 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팀원 간 끊임없는 소통과 정보 공유를 통해 문제 해결 방향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팀원들과 함께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끝에 통로 막힘 현상을 해소했고, 안정적인 주조 공정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경험을 통해 기술적 문제 해결이라는 기쁨은 물론, 긍정적인 팀 워크가 현장 성과를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요소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 업무 성과를 위한 본인만의 역량 강화 노력이 있다면 말해달라 현장에서 유압 설비의 이상 징후를 접할 때마다, 설비의 ‘기본’ 원리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체감했다. 설비의 작동 원리와 도면을 완벽히 알고 있어야만 돌발 상황에서 대응력이 나온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에 유압 관련 자격증 취득과 함께 포스코인재창조원의 전문 교육을 이수하며 실무 기초 역량을 강화해왔다. 또한 보다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공학적 이해를 위해 ‘포스코 기술대학 전문학사 과정’에 참여해 유압공학을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이를 통해 단일 설비가 아닌 공정 시스템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갖추게 됐다. 지금은 학습한 이론적 토대를 현장에 적용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유압 제어 이론을 실제 공정의 설비 효율 개선에 녹여내려 한다. 운영 중인 설비의 유압 회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최적의 운전 조건을 도출함으로써 설비 가동률 극대화와 공정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것이 다음 목표다. 유압 자격증 취득·포스코 기술대학 학사 이수 등 학습한 이론 토대로 공정 설비효율 개선에 녹여내 - 애용하고 있는 회사 복지제도가 있다면? 가장 만족도가 높고 활용하고 있는 제도는 ‘자기계발 지원 제도’다. 특히 포스코 기술대학과 같은 교육 프로그램은 현장 실무자가 이론적 기반을 체계적으로 다질 수 있도록 회사가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다. 업무와 학업을 병행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현장 업무를 배려해 주는 사내 분위기와 동료들의 든든한 응원과 지원 덕분에 2년이라는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때 쌓아두었던 경험과 지식은 현재의 업무 역량을 갖추는 밑거름이 됐고, 현장에서 마주하는 기술적 난제들을 풀어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여기에 ‘사내 휴양 시설이나 건강 관리 프로그램’도 빼놓지 않고 챙기는 복지제도다.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현장 업무의 특성상 회사가 제공하는 이런 혜택들로 업무와 휴식의 균형이 맞춰짐으로써 다시 현장에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와 같은 회사의 복지제도는 나 개인의 편의라기 보다는, 나를 더 높이 성장하게 만드는 ‘동력’인 셈이다. 앞으로도 이런 제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건강한 신체와 전문성을 겸비한 인재로서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기술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엔지니어로 성장하고파 - 예비 후배들에게 꼭 자랑하고 싶은 포스코의 장점과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달라 포스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급변하는 기술 흐름 속에서도 끊임없이 혁신을 주도하는 ‘도전 정신’이다. 이차전지, 반도체, 신재생에너지, 로봇까지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에는 모두 고품질의 철강재가 들어 간다. 포스코는 지금까지 언제나 그저 철을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항상 그 시대적 흐름에서 수요산업이 요구하는 최상의 품질을 구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전해왔다. 이런 환경은 엔지니어로서 정말 큰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포스코의 일원으로서 내 목표는 현장의 설비 관리 전문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제철소에서 생산된 반제품이 후공정을 거쳐 고객사에게 전달되고,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닿는 전체 과정을 항상 염두에 두며 업무에 임하고 있다. 설비를 고치고 유지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나 전체 공정의 흐름을 의식하며 설비를 관리해 제철소가 최상의 가동 상태를 유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역량을 쌓아 동료들에게 기술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는 게 나의 꿈이다. 포스코가 대한민국 미래 산업의 근간을 지탱하듯, 나 또한 동료들과 함께 제철소 설비의 안정성을 책임지며 성과를 내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4-19
정정반은 제품 후공정 넘어가기 전의 마지막 관문 상시 모니터링으로 이상징후 사전 차단 중요 역할 - 자기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해달라 포항제철소 제강부 4연주공장에서 근무하는 6년 차 김동욱 대리다. 2019년 입사 후 초기 2년간은 주조 설비 운영을 맡았고, 이후에는 주편 절단과 정정, 출하를 담당하는 정정반 업무를 수행하며 현장 실무 전반을 익혀왔다. 정정반은 생산된 제품이 후공정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품질을 결정하는 관문이다. 설비를 운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제품 상태를 면밀히 점검하고 공정 데이터를 상시 모니터링해 이상 징후를 사전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현장에서는 늘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나는 그때마다 설비 작동 원리를 다시 짚어보고, 데이터와 현장을 연결해 최적의 해법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조업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공장에서 출하되는 제품이 늘 최고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관리하는 것이 현재의 핵심 업무이자 목표다. - 입사 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현장의 비효율을 스스로 발굴하고 개선하는 포스코의 혁신 활동 ‘QSS(Quick Smart Solution)’에 참여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QSS 팩토리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설비 병목 구간을 개선하는 과제를 수행했다. 복잡한 도로의 정체 구간을 찾아 신호 체계를 바꾸면 전체 흐름이 원활해지듯, 설비의 제품 이동 동선을 최적화해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를 위해 그룹사와 협력사의 우수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사례를 분석하고, 이를 현장 공정에 적용할 방안을 계속 고민했다. 동료들과의 토론과 선배들의 조언을 통해 설비의 특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놓치고 있던 문제 지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개선 이후 설비 가동이 한층 안정되면서 작업 효율도 크게 높아졌다. 2025년 제강부 ‘QSS 혁신인’으로 선정되는 성과도 얻었지만, 무엇보다 ‘현장은 함께 고민할 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것이 더욱 의미가 컸다. 이를 통해 엔지니어로서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기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포스튜브 제작 참여·제강부 기술아카데미 참석 등 현장 전문가로 자기계발·현장 노하우 습득에 매진 - 업무 성과를 위한 본인만의 역량 강화 노력이 있다면 말해달라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현장에 즉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입사 초기 3년간 참여한 사내 지식 공유 플랫폼인 ‘포스튜브’ 제작 과정은 이러한 가치관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계기였다. 작업표준 문서를 숙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작업 과정을 촬영·분석하면서 표준과 현장의 차이를 좁혀 나갔다. 이 과정에서 차이나는 부분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도출하고, 잠재 위험 요소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며 업무 이해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었다. 또한 휴무일마다 ‘제강부 기술아카데미’에 참석해 저탄소 제철 기술, 전로 및 연속주조 응고 구조 등 최신 제강 기술을 학습하며 전후 공정의 유기적 흐름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관계사 현장 방문을 통해 조업 자재의 구조와 특성을 직접 확인, 파악함으로써 공장 내 원료와 자재가 어떻게 조업과 연결되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자기 계발은 학습과 더불어 현장의 노하우를 동료들과 공유하고 함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 애용하고 있는 회사 복지제도가 있다면? 포스코의 ‘생애 주기별 맞춤형 복지제도’는 직장 생활의 안정적인 토대라고 생각한다. 입사 초기 포항의 생활관 지원을 통해 동기들과 함께 조직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이후 5년동안은 월세 지원 덕분에 사회초년생 시기인데도 안정적으로 저축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주택자금 지원 제도를 활용해 내 집 마련의 꿈도 현실화했다. 특히 인생의 큰 전환점인 결혼 과정에서도 회사의 세심한 배려를 체감했다. 결혼 축하금과 신혼여행 지원, 특별 휴가까지 경제적인 부담을 덜고 새로운 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주변 선배들로부터 출산·육아 지원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고 있어 앞으로 다가올 변화들에도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크고 이를 통해 회사에 대한 신뢰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공정 하나하나 개선하는 과정이 회사 경쟁력 될 것 - 예비 후배들에게 꼭 자랑하고 싶은 포스코의 장점과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달라. 포스코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우리 삶에 필수적인 ‘철’을 직접 생산한다는 점이다. 일상 속에서 철강 제품들을 접할 때마다 ‘세상의 뼈대를 우리가 만들고 있구나’라는 자부심과 깊은 보람을 느낀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품질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현장 기술자라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자 기분 좋은 일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의 목표 또한 분명하다. 연주 부문에서 더욱 깊이 있는 기술을 쌓고 다듬어 대체 불가능한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이다. 앞으로 제강기능장과 주조기능장 등 전문 자격 취득에 도전해 이론과 실무를 통합함으로써 현장의 본질을 꿰뚫는 실력을 갖춰 나갈 것이다. 동시에 회사가 제공하는 안정적 환경을 기반으로 소중한 가정을 꾸리고, 그 행복을 원동력 삼아 다시 현장에서 더욱 책임감 있게 업무에 몰입할 것이다. 지금 내 손을 거치는 공정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개선해 나가는 과정이 결국 회사의 경쟁력이 된다고 믿는다. 요란하지 않아도, 그러나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현장을 지키며 포스코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전문 기술자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가열로의 무결점 운영’을 책임지는 업무 안정적 가동 위해 매 순간 공정 흐름 관리 - 자기소개를 해달라. 포항제철소 후판부 2후판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7년 차 엔지니어 강재환이다. 2후판공장은 선박, 교량, 대형 건축물 등에 사용되는 핵심 철강재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대표적인 공장이다. 나는 이곳에서 생산의 시작점인 ‘가열반’ 엔지니어로 일하며 제품 품질의 첫 단추를 끼우는 역할을 맡고 있다. 울산마이스터고를 졸업하고 2019년 포스코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현장을 ‘최고의 배움터’로 삼아왔다. 설비 점검부터 압연 공정의 흐름까지, 현장에서 보고 배우며 몸소 익힌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의 마음가짐은 명확하다. ‘선배들이 쌓아온 값진 노하우를 가장 빠르게 내 것으로 체득하자’는 것이다. 매일 현장에서 땀 흘리며 최고의 후판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고 있다. - 포항제철소 2후판공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가열로의 무결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반제품인 슬래브를 압연하기 가장 좋은 상태로 가열해내는 일은 고품질 후판 생산의 기본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가열로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해 매 순간 공정 흐름을 면밀히 관리하고 있다. 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데이터 기반의 판단’과 ‘현장의 감각’을 결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열로 내부의 정교한 온도 제어는 물론, 수처리를 비롯한 각종 유틸리티 설비까지 빈틈없이 점검하며 1분의 멈춤도 없는 공정을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다. 설비 컨디션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곧 공장의 경쟁력이라 확신한다. 현장의 기본기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알기에, 매 순간 최일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가열로반 업무 외에도 압연, 수처리 등 전 공정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깨달은 가장 큰 사실은 우리 2후판공장의 모든 설비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입사 초기 설비점검반에서 다졌던 기초가 현재의 밑거름이 됐다. 당시 익힌 유틸리티 설비에 대한 이해는 지금 가열반에서 발생하는 돌발 변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압연반을 거쳐 가열반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의 뛰어난 선배들을 곁에 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선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며 나는 늘 ‘내 작업이 앞뒤 공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고민했다. 예를 들어 수처리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이것이 가열로의 온도 조절이나 최종 압연 품질에 어떤 악영향을 줄지 즉각적으로 판단하려 했다. 이런 통찰은 단순히 현장 경험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본 데이터를 도면과 매칭하며 이론적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나만의 ‘업무 아카이브’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2후판공장의 복잡한 공정과 설비 메커니즘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의 업무를 데이터화해 기록한다. 현장의 변수를 기록으로 남겨 자산화하는 과정이 전체 공정을 조망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자격증 준비··· 설비 이해하기 위한 과정 돌발 상황에도 근본 원인 파고드는 원동력 - 전기기능사, 설비보전기능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입사를 준비했다고 들었다. 현장 실무에서 이러한 전문 지식이 어떤 도움이 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학창 시절 전기와 설비보전을 공부하며 자격증을 준비한 시간은 단지 스펙을 쌓는 과정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설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실제 공장에 들어와 보니, 겉으로 보이는 육중한 기계 설비 뒤에는 전기·공압·유압이 정교하게 얽힌 복잡한 동력 체계가 있었다. 기초 지식 덕분에 설비의 외형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신호가 어떻게 흐르고 에너지가 어떻게 전달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도면을 펼쳤을 때도 단순한 위치 정보가 아니라 설비 작동 메커니즘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돌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고장의 근본 원인을 파고들 수 있게 됐다. 물론 현장은 책보다 훨씬 복잡하다. 전기 전공자로서 기계적 역학 관계나 공장의 복잡한 제어 시스템을 접할 때면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고민은 짧고 성장은 빠르다. 포스코의 사내 교육 시스템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이론적 갈증을 현장 실무로 빠르게 연결하는 것이 내가 현장을 배워가는 방식이다. - 현장에서 기술적인 난관을 해결했거나, 공정 효율을 개선해 보람을 느꼈던 사례가 있다면 말해달라. 2후판공장의 거대한 설비 체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은 엔지니어로서 반드시 넘어야 할 첫 번째 과제였다. 무결점 운영을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유틸리티 설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복잡한 계통도를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을 넘어 내가 이해한 내용을 직접 도면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무 시간 틈틈이 현장을 돌며 라인의 시작부터 끝까지 추적했다. “이 밸브가 열리면 기름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이렇게 나만의 ‘계통도 매뉴얼’을 완성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다. 그 결과, 해당 자료가 ‘길잡이’처럼 동료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참고자료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선배들로부터 “덕분에 라인 파악이 한결 수월해졌다”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후배들이 이를 활용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다. 이 기록은 선배들이 쌓아온 노하우를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 지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싶다. 복잡한 공정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내가 현장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포스코의 복지제도나 재충전 프로그램을 활용해 ‘워라밸’을 유지하고 있는지. 포스코는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촘촘한 복지 제도를 갖추고 있다. 나 역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양한 휴양시설을 자주 이용한다. 교대근무의 특성상 평일 휴일이 생기는데, 이를 활용해 여행을 다니며 재충전한다. 비교적 한산한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다. 또한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행 플랫폼 포인트 제도도 활용하고 있다. 숙박과 레저 활동 지원 덕분에 여행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와 함께 전문자격증 취득 지원 장려금 제도 등을 통해 자기계발도 병행하고 있다. 이런 든든한 제도 덕분에 업무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며 다시 일상 현장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50년 축적된 선배들의 살아있는 노하우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것이 나의 목표 - 철강업계 미래를 이끌 차세대로서 목표가 있다면? 포항제철소에는 50년 넘게 축적된 선배들의 노하우가 살아 숨 쉬고 있다. 나의 목표는 이를 데이터로 체계화하는 것이다. 현장의 경험이 스마트 데이터와 결합하면 효율 향상이라는 생산성뿐 아니라 안정성과 작업환경 개선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사내 뉴칼라(New Collar) 교육을 통해 기초를 다졌고, 앞으로 단계별 학습 과정을 차근차근 이어갈 계획이다. 또한 포스코 철강대학 진학을 통해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로 성장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는 선배들의 숙련된 기술과 미래의 스마트 기술을 조화롭게 융합, 결합하는 ‘포스코 맞춤형 인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내가 쌓아가는 오늘의 작은 노력이 훗날 포스코의 내일을 만드는 자산이 되리라 확신한다. - 미래 철강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포항제철소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수소환원제철 등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의 흐름속에서 과거의 방식도 존중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개선 가능성을 고민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나 역시 현장에서 선배들의 노하우를 따라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왜 이렇게 운영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왔다. 기존에 주어진 설비 운영 루틴을 존중하며 따르면서도 늘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고민하면서 공정의 개선점을 찾기 위해 나만의 데이터를 정리해보는 것과 같은 작은 시도들을 꾸준하게 이어가는 유연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포함해 그동안 포스코가 쌓아온 단단한 기반 위에, 우리 세대가 새로운 시각으로 조금씩 개선해 나간다면 미래의 포스코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언제나 주어진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한 걸음씩 나아가기 위해 고민하고 성장하는 동료들이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4-05
지난 4주간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경북 산불 피해 현장은 ‘특별법’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처참했다. 7평 컨테이너에서 청심환으로 버티는 노인, 5년의 소득 공백 앞에 10만 원의 보상금을 쥔 농민, 그리고 70년 송이밭을 잃고 ‘한 달 치 생계비’를 손에 든 농부까지. 화마(火魔)와 맞섰던 현장 대원들의 사투는 우리 방재 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산불 특별법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본지는 소방·방재 전문가인 전우현 대구보건대 교수와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교수를 통해 한국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모순과 대안을 짚어봤다. ◇ “이원화된 지휘권, 국가 재난급 대응의 걸림돌” 전우현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당시 산불이 단시간에 초대형으로 확산한 원인으로 우리나라 지형 특유의 강풍인 ‘양간지풍’과 소나무 및 잡목이 밀집된 산림 특성을 지목했다. 전 교수는 “기후 변화로 산이 극도로 건조해진 상태에서 강풍이 불면 산림은 그 자체로 거대한 화약고가 된다”며 “봄철 지형적 특성인 강풍이 불고 소나무와 잡목이 밀집해 있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우리 산림은 연료 역할을 하는 침엽수 비중이 너무 높고 낙엽과 고사목이 쌓여 ‘불쏘시개’ 층이 두꺼워진 상태”라며 “가파른 산악 지형은 소방차 접근이 어렵고 방수용 자원 확보도 힘들기 때문에 초기 진화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이원화된 지휘 체계의 개선이다. 산림 관리는 지자체, 대응은 산림청 중심, 지원은 소방청이 맡는 현 시스템은 초기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전 교수는 “이제 산불은 단순한 산림 화재가 아니라 민가와 도로를 덮치는 ‘국가 재난’이다”라고 강조하며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 지휘 체계를 일원화하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불 관련 법적 지원에 대해서는 시기적절하다고 평가하면서도 현실적인 보완을 주문했다. 그는 “송이 농가처럼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리는 경우 다시 임산물을 채취할 수 있을 때까지의 기간을 고려한 현실적인 지원 방식이 고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험목 제거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긴급 상황은 소유자 동의 없이 가능하나 일상의 예방적 차원에서는 소유자와의 협의와 사후 보상이 전제돼야 재산권 충돌을 해결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항공 진화 체계의 현대화 역시 늦출 수 없는 대목이다. 전 교수는 “현재의 소·중형 헬기는 담수량이 적고 강풍이나 야간에는 뜨지 못한다”며 “성능이 좋은 대형 진화 헬기로 과감히 교체해야 하며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를 위해 국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진화 인력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처우 개선을 통한 젊고 유능한 인력이 투입되는 상설 전문 조직을 강화하고 위성·드론·AI를 활용한 첨단 조기 탐지 시스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언했다. ◇ “예방 패러다임 전환과 실화자 강력 처벌 절실” 김병수 대구가톨릭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발생의 핵심 요인을 실화에 의한 작은 불씨가 건조한 날씨, 강풍과 만난 것으로 규정했다. 김 교수는 “소나무는 송진이 많아 불이 잘 붙고 바닥에 마른 솔잎이 쌓여 연소 속도가 매우 빠르다”며 “바람이 불면 불씨가 2㎞ 이상 날아가는 ‘비화(飛火)’ 현상 때문에 초기 대응이 무력화되기 쉽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진화 중심 정책에서 탈피해 ‘예방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산불은 발생 후 30~60분 안에 잡아야 하는데 지휘 체계가 분산돼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실정”이라며 “진화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하고 헬기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기상 조건이 나쁘면 헬기는 무용지물이 되는 만큼 지상 진화 역량과 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 구조 개선을 위한 수종 전환에 대해서는 ‘어려운 딜레마’를 언급하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김 교수는 “침엽수 중심에서 활엽수나 혼효림(섞임숲)으로 정책의 변화가 절실하다”며 “10~20년 단위의 장기 계획을 세워 내화성 수종을 심고 주민들의 소득 감소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실질적인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어 “위험목 제거는 국가적 사업으로서 적절한 조치지만, 정당한 손실 보상을 전제로 풀어가야 한다”며 “특히 송이 농가 지원이 현실적 소득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사례 중에서는 미국의 ‘연료 관리’와 호주의 ‘주민 참여형 시스템’을 주목했다. 특히 미국의 ‘연료 관리’에 대해 “일부러 작은 불을 태워 대형 산불의 길목이 될 낙엽과 고사목을 미리 없애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IT 강점을 살려 “민가 밀집 지역 등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해 건조기에 가연물의 수분 함량을 15% 이상으로 유지하는 과학적 예방 시설 도입이 시급하며 이는 사후 진화 비용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장치로서 강력한 처벌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상당한 경우 실화자라도 15년 이상의 징역형이나 구상권 청구가 가능하도록 산림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재난 권위자 페탁(Petak)의 말을 빌려 “이제 우리도 진화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6
대구·경북(TK) 행정통합이 재정과 인구 규모 확대를 통한 ‘생존론’과 경북북부권 소외등을 우려하는 ‘신중론’ 사이에서 거듭 좌절을 겪고 있다. 행정통합이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유일한 해법이라는 당위성과 함께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간 격차심화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들어 4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지원과 공공기관 우선배정이라는 파격적인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경북 북부권의 불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규모의 경제로 생존”⋯25조 예산과 지방분권의 청사진 행정통합 당위성을 주장하는 핵심 근거는 ‘규모의 확대’를 통한 자생력 확보와 획기적인 지방분권에 방점이 찍혀 있다. 대구와 경북이 하나로 합쳐지면 인구 약 500만 명, 예산 규모 25조 원에 달하는 거대 광역경제권이 탄생한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연구단은 이러한 체급 확대가 지방사무 수행 능력을 증대시켜 국가 사무 이양을 용이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기회있을 때마다 TK지역의 인구 감소와 뒤처지고 있는 지역내 총생산을 언급하며 한탄했다. “대구경북이 이대로 가면 주저 앉는다”고도 했다. 대구·경북의 인구는 1980년 495만명에서 2026년 2월 기준 48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수도권 인구는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늘었다. 지역 내 총생산(GRDP)은 대구는 항상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인구, 경제 모든 부분에서 TK지역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재정지원과 자치권 확대 없이는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 이 지사를 포함한 통합 측의 지론이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이번에 이재명 정부가 통합특별시에 제시한 20조 원 규모(4년간)의 재정 인센티브는 지방 경제가 살아나기 위한 마중물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4년간 총 20조 원의 특별교부세가 지원되면 로봇, 반도체,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등 신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 기반이 획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재 대구시의 가용 재원은 연간 2000억~3000억 원 수준에 불과, 굵직한 사업들은 손도 못대고 있다. 이는 경북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8년 동안 경북도를 이끌어 온 이 지사는 지난 1월 “통합은 단순한 구역 합치기를 넘어 TK공항 조기 건설 등 지역의 판을 바꿀 대전환의 기회”라며 도민들의 협조를 당부한 바 있다. 이는 현재 구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내심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입증되지 않은 경쟁력”⋯지역 내 격차 우려 TK행정통합이 한창 추진 중일 때 예천읍에 사는 한 주민은 ‘경북·대구 행정통합 결사 반대’라는 현수막을 걸었었다, 그는 “통합이 되면 대도시인 대구로 의료, 교육 등 모든 것들이 빨려갈 게 뻔하기에 스스로 나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SNS 모임 등을 통해 단체 행동에 돌입하자는 목소리가 순식간에 커졌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대구경북 통합이 북부권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까? 대구·경북 행정통합에 대한 찬성론이 메인스트림이긴 하지만, 경북 북부권 주민들이 반대 쪽에 서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지역 불균형 우려는 핵심 요소다. 인구 밀집도에 따라 행정권과 경제력이 대구로 쏠리는 ‘역류 효과’가 발생할 경우, 안동·예천 등 경북 북부 지역의 도청 신도시는 발전 동력을 잃고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걱정하는 것. 실제, 북부권 도민들은 마산·창원·진해 통합 이후 창원 중심으로 발전이 되면서 마산 지역이 낙후된 사례를 대구경북 통합 시 나타날 우려로 보고있기도 하다. 또 일각이긴 하지만 학계 등에서도 대도시와 농촌이라는 이질적인 특성을 가진 지역을 하나로 묶을 경우, 행정의 방향 설정에 혼란이 생기고 상생보다는 갈등과 반목의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와 북부권 주민들의 불안을 키웠다. 번대 측에서는 통합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한다. 인구 규모가 커진다고 자치권이 강화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인구 1000만이 넘는 서울과 경기가 타 시도보다 더 큰 자치권을 갖고 있지 않고, 반면 인구 60만의 제주도는 특별자치권을 가지고 있는데 왜 수도권 인구는 계속 늘고 제주도는 쪼그라드느냐는 것이다. ‘인구수=자치권’ 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와함께 대구(41.6%)와 경북(29.8%)의 재정자립도를 합치면 평균 39.1%로 전국 평균(48.6%)보다 낮아져, 오히려 건실했던 대구의 재정마저 부실해지는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행정통합은 “갈등해소 순기능” vs “거버넌스 시대의 역행” TK행정통합이 지역간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순기능에 대해서도 찬·반 시각이 엇갈린다. 찬성 측은 지난 1991년 구미공단 페놀 유출 사건 발생 이후 계속되고 있는 대구 취수원 이전문제를 예로들면서, 행정통합이 되면 지역간 갈등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갈등의 원인을 줄이거나 갈등이 확산되기 전 조정 협의로 완화할 수는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측은 대구경북이 합친다고 해서 자치단체간 갈등이 해소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오늘날 행정 이론이 계층제적 지배보다 네트워크 중심의 ‘협치(Governance)’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거대 관료제를 만드는 행정 통합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비판한다. 지역 정치권도 이 사안에 대해 갈팡질팡, 혼란을 초래했다. 지난 1월 TK행정통합 특별법을 발의한 국민의힘 경북도당 구자근(구미갑) 위원장은 “지방소멸 위기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며 “대구·경북 행정 통합이 지자체 행정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자치권, 재정 자율성 강화를 통해 지방 정부가 국가 균형 발전에 앞장서는 대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부권 국회의원들은 일정 부분 이해하면서 주민들이 저항하자 “통합하면 오히려 지역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높다”며 반대했고, 이는 결국은 민주당에서 대구경북 통합을 좌초시키는 결정적 빌미가 됐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25
지난 22일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산자락.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지 1년이 지났지만, 산의 시간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었다. 수십 년 수령의 소나무들은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숯덩이가 된 채 죽은 듯 서 있었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매캐한 흙먼지가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그 검은 숲 한가운데 백발의 이위복 씨(86)가 서 있었다. 그는 시꺼멓게 변해버린 산등성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입을 뗐다.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 산을 누비며 송이를 땄어요. 내 자식에게도 물려주려고 70년 넘게 공들여 가꿔온 산인데… 이제는 송이 하나 보이지 않네요. 싹 다 타버렸어요” ◇ 70년 일궈온 ‘연 매출 3억’ 일터, 1시간 만에 잿더미로 영덕은 전국 최대의 송이버섯 생산지다. 이 씨에게 이 산은 단순한 토지가 아니라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황금 창고’였다. 산불 이전까지만 해도 10만 평이 넘는 재배지에서 거둬들이는 연 매출은 3억 원을 웃돌았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이 강풍을 타고 영덕으로 넘어오던 날 70년의 세월은 단 한 시간 만에 무너져 내렸다. “안동에서 불이 넘어온다고 하길래 집에서 짐을 싸고 있었죠. 그런데 연락받고 한 시간도 안 돼서 불길이 옆집 마당까지 들이닥치더라고요” 당시 대피령을 받은 군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영덕 국민체육관 안에는 들어갈 자리조차 없었다. 사투 끝에 돌아온 고향은 검은 재뿐이었다. 소나무와 공생하는 송이는 나무가 죽으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특히 송이 균사가 다시 형성돼 수확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최소 30년에서 5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상 한 세대의 생업이 통째로 증발한 셈이다. 이 씨는 “송이는 소나무가 있어야 나는데 소나무가 다 죽었으니 제 평생에는 이제 송이 구경 못 한다고 봐야죠. 제 인생에서 송이는 완전히 끝이 났습니다”라며 허탈해했다. ◇ 시행된 ‘산불특별법’, 현장에선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는 지난 1월 29일부터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법안 제1조는 ‘피해지역의 안정과 회복 및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17조(농·임업 피해복구 지원)와 제31조(산림소득사업 우선 지원)는 임산물을 채취하는 농가에 생계비를 지원하고 산림 경영 기반을 복구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법의 온도는 차갑다 못해 시리다. 특별법 제31조 2항에 따라 송이 채취 농가도 생계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수령액은 고작 1개월 치 241만 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공식 실적 증명이 가능한 농가에 한해 ‘한 달 치’ 생계비 명목으로 나간 돈이다. 개인 거래가 많은 송이 농가의 특성상 실적 확인이 안 돼 이조차 받지 못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연간 3억 원의 소득을 올리던 농가에 한 달 치 기초 생계비를 던져주는 것이 과연 국가가 말하는 ‘구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씨는 “특별법이니 뭐니 해서 지원금이 조금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별 볼 일 없습니다. 송이로 벌던 수입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놓은 밤나무, 잣나무, 감나무 등 ‘대체 작물’ 카드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 70년간 송이만 바라본 숙련 농민들에게 감나무 재배는 생계 대안이 아닌 ‘전업 포기 권고’나 다름없다. 이 씨는 “나라에서는 산에 감나무나 밤나무를 심으라고 하는데 그 나무들이 자라 수익이 나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리겠습니까? 송이 따던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감이나 따라는 건 대책이 안 돼요. 그 소득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 재건이라는 이름의 개발, “기대도 안한다” 특별법은 관광단지 개발(제39조)과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제41조)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한다. 피해 산지를 민간 투자를 통해 관광·레저 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것이 원주민의 삶을 보듬기보다 자본의 논리에 따른 ‘땅 갈아엎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이 씨의 마음도 복잡하다. 마을 주변에 풍력 발전기나 원자력 관련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산 주인들에게 돌아올 혜택은 안갯속인 탓이다. 이 씨는 “앞으로 산에서 나올 소득은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든 넘어 송이밭을 잃은 노인에게 첨단 산업단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경상북도청 산불피해재창조 사업단 관계자는 “기존 재난관리기본법 체계에는 송이 농가 지원 기준이 아예 없었으나 경북도의 강력한 건의로 한 달 치 생계비인 241만 원을 우선 지급하며 사각지대를 보완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별법은 피해자가 산불과의 인과관계만 증명하면 신체·정신·재산상 피해를 폭넓게 신청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구체성은 다소 떨어져 보일 수 있어도 오히려 포괄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투자선도지구 역시 시·도 조례를 통해 난개발 우려를 차단하고 실질적인 지역 재건으로 이어지도록 세부 지침을 마련 중”이라며 “단순한 개발이 아닌 피해 지역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경북 산불 현장에서 1조 8000억원의 복구 예산보다 간절했던 것은 ‘물 한 바가지’와 ‘일원화된 지휘’였다. 68개 조항의 산불특별법은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및 인허가 의제 등 지역 재건 사업에는 촘촘한 그물망을 짰지만, 정작 화마(火魔)와 맞섰던 대원들의 안전 장비 보강이나 꼬인 통제 체계 개선안은 담아내지 못했다. 본지는 지상·도로·공중에서 법보다 앞서 몸을 던진 베테랑 3인의 목소리를 통해 현장 방재 시스템의 실상을 정밀하게 짚어본다. ◇ “800ℓ 진화차, 불길 앞에선 도망 나오기 바빴다” 지난 17일 포항남부소방서에서 만난 황병률(52) 현장대응팀장은 당시 의성, 영양, 울진 현장을 7일간 돌며 사투를 벌였다. 황 팀장은 “도착 직후 목격한 연기는 의성 읍내 전체를 덮어 구역 구별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며 “좁은 산길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소방서 산불 진화차의 물 용량은 고작 800ℓ인데 바람을 탄 화염이 사람 주먹처럼 확 덮치면 우리가 가진 수량으론 감당이 안 돼 차를 빼고 대피하기 바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인 ‘지중화(地中火)’를 경고했다. 황 팀장은 “표면은 꺼진 듯해도 삽으로 파보면 낙엽 아래 화기가 살아 움직이는 현상이 심각했다”며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기상 조건이 안 맞으면 어떤 장비도 무용지물”이라고 토로했다. 지휘 체계에 대해서도 황 팀장은 “현재 산불 주도권은 산림청이, 인명 구조는 소방으로 분산돼 있어 대응 효율이 떨어진다”며 “누구든 좋으니 재난 현장의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술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팀장은 “산은 타더라도 인명과 민가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방향으로 전술이 보완돼야 한다”며 “산림 보호에 치중된 현재의 산불 대응 시스템은 민가 방어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 “일반 마스크 한 장의 사투⋯부모 구하겠다는 절규 앞 딜레마” 23일 포항북부경찰서에서 만난 권도정(50) 교통관리계 팀장은 당시 영덕으로 향하는 주요 길목인 포항시 북구 청하 삼거리에서 24시간 넘게 통제 업무를 수행했다. 권 팀장은 “가만히 서 있어도 강한 돌풍에 사람 몸이 비틀거리고 잿가루가 시야를 가린 암흑천지였다”며 “현장에서 지급 받은 마스크는 일반 마스크라 연기 한 모금에도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을 견디며 도로를 지켜야 했다”고 토로했다.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연속이었다. 권 팀장은 “차량 타이어에 불이 붙어 도로 위에 차를 버려둔 채 대피하는 상황이 속출했다”며 “그런 와중에 ‘집안에 어머니가 계셔서 꼭 가야 한다’고 울부짖으며 통제 구간으로 차를 밀고 들어오는 자식들 앞에서는 지시 위반을 따질 겨를도 없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통제 구간을 막아서면 일부 주민들은 갓길로 무작정 진입하려 해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다. 그 많은 인원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며 “그렇다고 보내주자니 혹여 발생할 사고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 경찰의 몫이 되는 딜레마가 반복됐다”고 전했다. 겹겹이 차단막을 쳐야 겨우 통제가 됐던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정작 긴급 통제권의 범위나 공무원 면책 조항 같은 구체적 가이드라인은 이번 특별법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 “연기 뚫고 마주한 불의 띠⋯엇박자 공조에 피 말린 상공” 24일 울진산림항공관리소에서 만난 최근홍(56) 운항관제팀장은 당시 강릉에서 의성으로 급파됐다. 최 팀장은 “전날 산청 소집령을 받고 이동 중 의성 상황이 더 시급하다는 지시에 헬기를 돌려 ‘빽도(회군)’를 했다”며 “현장은 안동까지 연기가 밀려와 시정(視程)이 완전히 차단됐고 고도를 6000피트(약 1800m)까지 높여 숨구멍을 찾기 위해 빙글빙글 돌아야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상공에서 목격한 화마의 기세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최 팀장은 “연기가 누워 있으면 나무 사이로 ‘불의 띠’가 선명하게 보인다. 불이 바람 부는 방향으로 길을 내듯 정상을 넘은 뒤 다시 타고 내려간다”며 “이 띠를 조준해 물을 뿌리지만 침엽수는 송진 성분 탓에 한 번에 제압하지 못하면 확산 속도가 걷잡을 수 없다”고 했다. 기관 간 공조의 한계는 가장 뼈아픈 대목이었다. 최 팀장은 “산림청, 군, 경찰, 임차 헬기가 한꺼번에 몰렸으나 속도와 기동성이 달라 손발이 맞지 않았다”며 “산불 진화가 주 임무가 아닌 기종들이 대열에 섞이다 보니 앞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면 뒤따르던 기체들은 공중에 줄줄이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최 팀장은 “조종사는 전문 임기제라 수당 체계에서 소외감이 크다. 또 헬기 대당 조종사 정원이 모자라 야간 진화 헬기가 도입돼도 운용 인력이 즉각 충원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3-24
편집자주=“대구·경북(TK)이 하나로 합치면 정말 살기 좋아집니까?” 25년 전 ‘경제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이 질문은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유일한 병기(兵器)로 꼽히는 ‘TK 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춰 서는가. 경북매일신문은 4회에 걸친 기획을 통해 TK통합 논의의 과거 25년과 행정통합의 걸림돌, 해외의 성공·실패 사례, 행정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등을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1.TK행정통합은 왜 번번이 멈췄나 2.이슈가 된 행정통합 당위성과 걸림돌 3.해외 사례에서 본 성패의 교훈 4.성공적 행정 통합을 위한 ‘마지막 퍼즐’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이 또다시 국회 입법 문턱에서 멈춰 섰다. 수도권 일극 체제에 대응할 거대 광역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추진했지만 정파적 계산과 실무적 난제라는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들자마자 시작된 TK통합 논의가 결정적 순간마다 동력을 잃고 표류하는 배경에는 ‘불분명한 통합 효과’와 ‘관(官) 주도 방식’의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추진됐던 TK 행정통합 특별법은 국회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7월 1일 출범계획이었던 대구경북 통합특별시도 사실상 무산됐다. 4월 초가 특별법 처리 마감 시한이라고는 하지만 국회 일정상 본회의에 회부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TK통합 논의의 시작은 2000년대 들어 제기된 ‘경제통합’이었다. 산업과 생활권이 겹치는 두 지역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자는 취지였다. 이후 메가시티 정책이 부상하며 행정구역 통합으로 확대됐고, 2020년 9월에는 ‘대구경북행정통합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로드맵을 제시했다. 당시 공론화위는 대구시를 해체하고 8개 자치구·군만 남기는 ‘특별광역시(오사카 모델)’와 대구시 지위를 유지하되 행정 계층을 조정하는 ‘특별광역도’ 안을 놓고 고심했다. 하지만 2021년 4월 공론화위는 별다른 성과 없이 활동을 종료했다. 3년 만에 재점화된 2024년의 추진 과정은 홍준표 대구시장의 제안과 이철우 경북지사의 화답,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가 맞물리며 탄력을 받았다. 중앙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과거와는 달랐지만, 시도민의 의사가 아닌 관이 주도한 ‘톱다운(Top-down)’ 방식이라는 한계가 반복됐다. 통합 효과에 대한 객관적 근거 미비도 장애요소가 됐다. 통합론자들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경쟁력 확보를 주장하지만 광역시와 경북도의 통합이 가져올 실질적 이득은 불분명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통합 시 국회의원 선거구 조정, 지방의원 수 감소, 공무원 인사체계 변화 등 복잡한 이해관계 충돌도 문제였다. 경북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소외 가능성과 청사 위치를 둘러싼 이견도 숙제였다. 정치권의 셈법도 통합을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주호영(대구 수성갑) 의원은 지난 1월 “행정통합은 TK가 가장 먼저 깃발을 들고 시작했는데 정작 밥상은 남들이 먼저 받게 생겼다”며 조속한 추진을 촉구했다. 윤재옥(대구 달서을) 의원도 “정부가 득표에 유리한 지역을 우선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며 주도권 확보를 강조했다. 반면 홍석준 전 의원은 정부의 재정 인센티브 제시를 두고 “사실상 포퓰리즘”이라며 “인구와 면적이 압도적인 TK를 다른 지역과 동일 기준으로 취급하는 것은 홀대”라고 비판했다. 의원들마다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상에 따라 행정통합에 대한 견해를 달리한 것이다. 국내 기초자치단체 행정통합 선례들은 TK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8년 출범한 통합 여수시는 전국 최초로 시민단체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통합’을 이뤄내며 엑스포 개최 등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0년 마산·창원·진해는 정부의 자율통합 기조에 맞춰 입법 절차를 빠르게 진행해 통합 창원시를 탄생시켰다. 반면 TK지역은 이러한 주민 주도의 숙의 과정보다는 관 주도의 속도전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TK통합 특별법 민주당 안을 발의한 민주당 경북도당 위원장 임미애(비례) 의원은 “통합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시작 단계인 만큼, 필요한 보완은 시행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해 나가면 된다”며 “지금은 지역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장은희기자 jangeh@kbmaeil.com
2026-03-23
지난해 봄철 경북 의성과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휩쓴 초대형 산불 지원을 위한 ‘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산불특별법)’이 올해 1월 29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정부는 기존 재난지원법의 한계를 넘는 포괄적 지원과 지역 재건을 목적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8개 조항의 법문을 정밀 분석한 결과, 피해 주민을 위한 실질적 지원 기준은 여전히 모호한 반면 피해 지역 산림을 활용한 민간 투자 특례는 파격적으로 명문화돼 있었다. 구제라는 선의의 가면 뒤에 숨겨진 입법의 비정한 민낯을 해부한다. ◇ 주민 지원은 ‘심의’ 첩첩산중⋯‘보상 갈라치기’에 멍든 민심 특별법 제5조에 따르면, 피해 주민 지원에 관한 사항은 국무총리 소속의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시행령 발효 이후 이달 12일까지 3300여 건의 추가 지원 신청이 접수됐으나 지원 여부와 규모는 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주민들이 줄곧 요구해 온 ‘구체화된 보상 기준’이 법령에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원의 원칙(제9조)을 천명하면서도 정작 ‘얼마를, 어떻게’ 줄 것인지는 위원회의 재량 뒤로 숨겨버렸다. 법의 사각지대는 평온하던 마을 공동체 내부의 균열로 이어지고 있다. 제2조(정의)에서 피해자를 거주자, 사업자, 소유자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복구비 배분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의성군 단촌면에서 만난 김모 씨(70)는 “10년 동안 주소를 두고 터전을 일군 세입자 가족은 소외되고 실거주하지 않는 집주인에게 보상이 돌아갔다”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린피스 등 3개 단체가 주민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상 주민의 52%가 산불 이후 보상 기준의 불공정함 등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재난의 고통은 세입자가 겪고 국가의 시혜는 자산가가 가져가는 비정상적인 구조가 법의 이름으로 용인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특별법이 표방한 ‘공동체 회복(제34조)’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 업자 인허가는 ‘완료 간주’⋯45일이면 환경평가 통과 주민 지원 조항들이 위원회의 심의와 조사라는 절차적 문턱을 둔 것과 달리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조항들은 유례없는 행정 편의를 보장하고 있다. 제5장 ‘산림투자선도지구’ 관련 조항들이 그 결정판이다. 제60조(환경영향평가법 특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받은 행정기관이 45일 이내에 통보하지 않을 경우 ‘협의가 완료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다. 산림 회복에 최소 30년이 걸리는 생태적 특수성을 고려한 신중한 검토 대신 행정 절차를 ‘하이패스’로 통과시키는 간주 조항이다. 또 제55조는 사업시행자가 산림투자선도사업의 실시를 위해 필요한 경우 ‘공익사업법’ 제3조에 따른 토지·물건 등을 수용 또는 사용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제55조 제2항에 따라 실시계획의 승인·고시가 있는 때에는 이를 ‘사업인정 및 그 고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민간 시행자가 산불 피해지를 개발할 때 필요에 따라 사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주민들에게 6개월치 생계비(제31조)를 지원하며 기다리라던 국가가 업자에게는 사업 부지 확보를 위한 강력한 권한인 ‘칼자루’를 쥐여준 셈이다. ◇ 산림청 권한 지자체 위임⋯‘개발 프로젝트’의 현실화 법은 환경 보호를 위한 중앙정부의 규제 빗장까지 풀었다. 제32조와 제59조에 따라 산림청장의 고유 권한인 ‘보전산지의 변경·해제’와 ‘산지전용허가’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대폭 위임됐다. 지자체장이 직접 산림보호구역을 해제해 자연휴양림, 산림욕장, 치유의 숲, 산림레포츠시설(제56조) 용지로 전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법이 공포된 직후 경북도는 청송·영덕 지역에 리조트 유치를 포함한 ‘산불극복 재창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산불 발생 직후 “산은 돈이 안 된다”, “산을 깎아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번 특별법은 기후 위기 시대의 산불을 예방과 회복의 관점이 아닌 ‘단기적인 개발 사업의 기회’로 접근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 ‘사람’이 빠진 재건은 누구를 위한 풍요인가 산불특별법 제1조가 명시한 목적은 피해구제와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낙후된 산간 지역에 민간 자원을 유치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개발’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딛고 지역 경제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파격적인 투자 유치와 인프라 구축도 분명 필요한 과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선후(先後)’에 있다. 68개 조항 속에 박힌 파격적인 투자 특례들이 정작 피해 주민의 일상 회복을 위한 구체적 보상안보다 앞서 나가는 현실은 본말전도(本末顚倒)에 가깝다. 잿더미 위에 시설물을 올리는 토목의 속도보다 묘목 한 그루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농민의 시계(時計)를 먼저 읽어야 한다. 재난을 단순히 복구 사업의 기회로만 접근하는 단기 경제 논리는 자칫 재난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진정한 지역의 재건은 화려한 청사진이 아니라 피해 주민들의 삶을 온전히 되돌려 놓는 ‘선제적이고 구체적인 보상안’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산불의 비극을 딛고 선 이 법이 진정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재민들은 여전히 묻고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제품 품질의 핵심 ‘열간압연’ 업무 16년째 고온의 두꺼운 철 얇게 펴 강판으로 완성 설비 점검·기계운전 중심 공정 균형 책임 티타늄까지 압연, 섬세한 제어 기술 갖춰 - 자기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설명해달라. 포항제철소 열연부 1열연공장 압연반에서 16년째 근무하고 있는 박두리 주임이다. 2011년 입사 이후 ‘열간압연’ 한 분야를 꾸준히 맡아왔다. 열간압연은 고온으로 가열한 철을 원하는 두께로 펼쳐 강판으로 만드는 공정으로, 제품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단계다. 현재 근무 중인 1열연공장은 포항제철소에서 유일하게 티타늄 압연을 수행하는 곳이다. 두꺼운 슬라브를 가열한 뒤 조압연과 마무리 압연을 거쳐 균일한 강판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은 마치 찰흙을 빚어 도자기를 빚어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공정의 핵심은 온도와 압력, 속도 이 세 가지다. 이 세개의 변수 가운데 1%의 작은 오차만 발생해도 품질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항상 섬세한 제어가 필요하다. 나는 현장에서 동료들과 같은 호흡을 맞추며 설비 점검과 운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장에 있는 기계를 다루는 일상적인 업무라는 것에서 벗어나 언제나 공정 전체의 균형을 맞추고 유지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다. 설비 하나하나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최상의 제품 품질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포스코에 입사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어릴 때부터 봐왔던 포항제철소의 모습은 내게 언제나 지역에 있는 하나의 철강 공장이라는 것보다는 그 위용에 감탄하며 늘 동경하는 대상이었다. 2011년 2월, 합격 통보를 받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마침 그날은 여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는데,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부모님께서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그때 지으셨던 부모님의 표정은 아직도 선명하게 머리에 남아있다. “자랑스럽다, 정말 수고했다”며 어깨를 두드리며 건네신 그 한마디가 지금까지도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기억임과 동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날의 벅찼던 감정과 가족들의 미소는 지난 16년 동안 현장을 지켜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다. - 동료들과 함께하는 현장 분위기는 어떤가?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 압연반은 5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 최근 현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변화는 우리 반에서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소통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서로 믿고 맡기는 신뢰와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배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어 무척이나 든든하다. 나 또한 주임으로서 구성원들이 지니고 있는 개개인의 역량이 충분하게 잘 발휘될 수 있도록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소통과 유연한 조직 문화를 이룰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팀원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쳐 ‘압연 공정 생산량 최고 기록’을 달성했을 때다. 최고의 숫자를 달성했다는 그 성과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매우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강판 소재의 특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관점에서 도출되는 의견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끊임없이 토론하며 공정의 효율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갔던 그 치열했던 순간, 순간의 과정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함께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공감대가 있었기에 실현할 수 있었던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현장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운 상황이 닥쳐 주임으로서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 질 때면, 늘 그때의 모두가 함께 하며 나눴던 순간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다시 중심을 잡고 있다. 그 기억은 지금도 어쩌면 앞으로도 나를 다시금 현장의 중심에 서게 하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자 최고의 자산이 아닐까 싶다. - 입사 후 가장 도전적이었던 순간은? ‘QSS(Quick Smart Solution, 현장의 낭비를 줄이고 즉시 개선하는 활동) 개선 리더’로서 과제를 수행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설비 구동부에 윤활유를 공급하는 장치였다. 쉽게 말하자면, 요리할 때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하는 팬의 표면에 재료가 눌어붙지 않게 하려면 적절한 양의 기름이 필요한데, 기존 설비는 이와 같은 기름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도 쉼 없이 윤활유가 공급되고 있어 자원 낭비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열로에서부터 최종 제품을 만드는 권취 공정구역까지 현장 구석구석의 전 과정을 직접 점검하고 살폈다. 당시 각 공정을 맡아 책임지고 있는 선배들을 일일이 찾아가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과 각 설비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했다. 그 끝에 찾아낸 해답이 ‘제어 시스템의 도입’이었다. 설비가 멈추는 시간에는 마치 가스레인지의 불을 잠시 끄듯, 펌프 전원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제어 방식을 적용해 불필요한 윤활유 소비를 원천 차단했고 이로 인한 설비 운영 효율도 함께 개선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기존의 고장난 설비를 고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공정 전체를 꿰뚫어 보고 전체를 염두에 두면서 현장 동료들의 전문적인 의견을 듣고 조율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값을 매길수 없는 귀중한 경험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깨달은 ‘소통’의 가치는 지금도 내가 동료들과 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 주임으로서 느끼는 책임감과 특별히 고려하는 부분이 있다면? 모든 성과의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의 1년의 절반 이상은 선후배들과 함께 보낸다. 오랜 시간을 함께 부대끼며 일하는 만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주임인 내게 가장 중요하다. 내 역할은 관리자의 방향성을 현장에 전달하고, 반대로 현장의 고충이나 의견을 정리해 조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각자의 역량을 현장 상황에 맞게 녹여내 각자가 지닌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내가 맡고 있는 반, 1열연공장 전체가 ‘행복한 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배들이 내 조언을 통해 현장을 더 넓게 이해하고, 업무에 자신감을 얻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 동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사람, 함께 일하기 든든한 선배로 기억되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큰 성취고 목표다. 앞으로도 1열연공장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현장에서 묵묵히 제 몫을 다하는 실무 전문가로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한팀 5명’구성 ··· 수평적 자율 소통 문화 윤활유 낭비 개선·제어시스템 도입 활동 압연 공정 생산량 최고 기록 달성 등 성과 작은 개선부터 시작, ‘포스코 명장’되고파 -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나? 노하우가 있다면? 현장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압연기능장’을 취득한 것 또한 그 과정 중 하나였다. 철강 공정의 이론적 체계를 다시 정립하고, 현장을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보기 위해 준비했다. 하지만 자격증 하나를 취득한다는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실무와의 연결’이다. 자격증 공부로 익힌 이론에 선배들로부터 전수받은 현장 노하우를 더해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고, 습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현장 언어로 쉽게 전달하며 기술을 공유하는 데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적인 공부보다는 동료들과 설비를 두고 토론하는 시간이다. ‘한 명의 재능보다 협력과 화합이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비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과제를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안을 찾는 과정이 우리 팀, 우리 제철소, 나아가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기술적 역량을 키우는 자기계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소통과 협업을 통해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팀의 성과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내가 현장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매일 하는 일들이다. - 앞으로의 목표와 그 목표를 향한 포부가 있다면? 내 목표는 분명하다. 내가 몸담은 열연공장에서 누구보다도 깊이 있는 기술을 쌓아, 언젠가 ‘포스코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현장에서 땀 흘리며 배운 게 하나 있다. 화려한 이론보다 중요한 건 결국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이고, 그것을 결코 혼자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곁에서 함께 하고 있는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현장이 돌아가는 본질을 하나하나 이론과 실무를 통합해 내 것으로 만들고 있다. 거창한 혁신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 내 손을 거치고 있는 이 작업 과정의 작은 개선부터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 미미하고 사소한 변화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하나씩 모이고 모인다면 결국 더 큰 혁신과 회사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단단하게 현장을 지키며 실력을 쌓아가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3-22
지난해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해 안동, 청송, 영양, 영덕을 집어삼킨 초대형 산불은 한반도 관측 사상 전례 없는 상흔을 남겼다. 축구장 수만 개 면적의 산림이 잿더미가 됐고 수십 년간 일궈온 주민들의 삶의 터전은 단 며칠 만에 형체를 잃었다. 화마(火魔)가 떠난 지 1년, 정부는 피해 구제와 지역 재건을 내걸고 ‘산불특별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본지 취재팀이 마주한 현장의 현실은 참담했다.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23㎡(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기약 없는 ‘시한부 일상’을 견디고 있었고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호소하는 이는 90%에 육박했다. 더 큰 문제는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특별법의 이면이다. 정작 피해 이재민을 위한 실질적 생계 보상은 외면한 채 산림 규제를 완화해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는 ‘개발 특혜’ 조항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본지는 잿더미 위에 멈춰 선 주민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된 특별법의 실체를 파헤친다. 나아가 진화 중심의 사후 처리를 넘어 ‘예방’과 ‘존엄한 회복’을 위한 국가 재난 대응 체계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자 한다. <글 싣는 순서> 1.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됩디다” 2. 재난 복구인가 개발 특례인가, 선(善)의 가면 3. 기후 괴물 앞에 처참히 무너진 ‘K-방재’ 4. 사라진 ‘송이’와 뺏겨버린 ‘안전’ 5. “개발에 매몰된 입법, 재난 대응의 본령은 없었다” ◇ 청심환으로 견디는 ‘23㎡의 삶’⋯2년 뒤엔 이마저 비워줘야 지난 16일 찾아간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 75세 김외선 씨의 하루는 낡은 청심환 갑을 챙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1년 전 산불로 가게와 살림집을 모두 잃은 그는 현재 마을회관 앞 공터, 24㎡(약 7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두 번째 봄을 맞고 있다. 55년 세월을 일궈온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됐고 남은 것은 시한부 일상의 고단함뿐이다. “컨테이너에서 지내고 있지만, 2년 뒤면 이마저도 비워줘야 해” 김 씨가 힘없이 내뱉은 말엔 막막함이 배어 있었다. 정부가 특별법을 만들었다지만 그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작은 아파트 하나 겨우 얻을 지원금으로는 내 추억이 깃든 이 땅에 다시 집을 짓기엔 턱없이 역부족이야” 15년 넘게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을 누비던 여장부였던 그는 이제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워 아침 산책이 일과의 전부다. 멀리서 들리는 헬리콥터 소리에도 가슴이 내려앉아 약에 의존한다는 그는 “마음의 화상은 치료가 안 된다.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일”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3300㎡ 탔는데 보상은 4000만 원뿐”⋯멈춰버린 산업 현장 18일 방문한 안동 남후농공단지의 재건 시계도 멈춰 있었다. 전소된 12개 공장 중 현재 가동 중인 곳은 5곳뿐이다. 김치공장주 김영일 씨(68)는 정부의 기계적인 보상 체계를 보며 가슴을 쳤다. “3300㎡(1000평)이 타도 최대 지원금은 4000여만 원이 끝입니다. 지금 미친 듯이 오른 건축비에 기곗값, 자재비를 이 돈으로 어떻게 감당합니까?” 금융 지원 역시 생색내기에 그쳤다. 1년 무이자 기간이 끝나자마자 벌이가 끊긴 기업들의 신용도는 추락했다. 김 씨는 “당장 소득이 없는데 1년 지원으로 그 큰돈을 어떻게 갚으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10년 정도 길게 보고 분할 상환할 수 있는 장기 대책이 절실하다”고 일갈했다. ◇ 5년 소득 공백인데 보상금은 ‘나무 1주당 10만 원’ 20일 마주한 영덕군 9900㎡(3000평) 사과 농장의 박현식 씨(71)는 불에 탄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텅 빈 과수원을 보며 고개를 떨궜다. 나무 1주당 1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묘목을 다시 심고 수확하기까지 걸릴 5년 이상의 소득 공백을 메우기엔 턱도 없다. 수입이 끊겨 생계가 막막한 그에게 특별법은 아무런 희소식이 되지 못했다. 천년고찰 고운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종무실장(53)은 “스님들 생활 공간조차 없다. 1차 복구 시점을 2030년으로 보고 있다”며 “문화재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안전 인프라 구축을 위한 구체적인 예산도 특별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덤덤히 전했다. ◇ 최저시급 산불 감시원의 한숨⋯주민 87% PTSD 의심 사투의 현장을 지켰던 이들의 헌신도 인색한 처우로 돌아왔다. 영양군 산불 감시원 김기현 씨(65)는 1년 전 그날 산에서 솟구치는 불덩이를 보고 주민 대피부터 시켰던 아찔한 기억을 회상했다. 지금도 단속과 초동 진화를 수행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최저시급 받고 여기저기 다니면 기름값도 안 나와요. 특별법에 현장 인력에 대한 처우 개선 논의가 빠진 게 가장 아쉽습니다” 최근 발표된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불 피해 주민의 87%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의심 수준을 보이고 있다.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컨테이너를 전전하며 주택 전소 피해자의 42.1%는 재건축을 포기했다. 마을 뒤편 산등성이는 여전히 검게 그을려 있다. 봄바람은 다시 불어오지만, 잿더미 위 주민들에게 봄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강덕 6·3 지방선거 국민의힘 경북도지사 예비후보가 17일 포항시청 브리핑룸에서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3선에 도전하는 이철우 경북도지사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공천관리위원회가 혁신의 대상자인 이철우 도지사를 컷오프 하지 않고 혁신한다는 게 문제”라면서 “현역에 대해 페널티를 주지 않는 것도 아쉽다”고 포문을 열었다. 무산 위기에 놓인 대구·경북 행정통합과 관련해서도 “행정통합을 정략적으로 추진한 정부가 우선 책임져야 한다”라면서도 “정치적 계략에 휘말려 시·도민이 실망하게 한 이철우 도지사와 대구의 중요한 국회의원 등 우리 당 지도자들이 책임져야 하고, 불출마 등을 포함해 시·도민에 대한 사과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정통합에는 찬성하지만, 그동안 주민 투표라는 정당성 없이 막무가내로 급하게 진행했다”라며 “근본 틀을 바꿔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5명의 예비후보가 예비경선을 거쳐 현역 이철우 도지사와 본경선을 하는 ‘한국시리즈’ 방식에 대해 짧은 선거운동 시간과 현역 페널티 미 부과 등의 문제점 설명한 이 예비후보는 “예비경선에서 1등을 하면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고, 박스권에 갇히거나 하향하는 다른 후보와 달리 나는 지지도가 오르는 국면이기 때문에 충분히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의 강석호 전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박명재 전 국회의원 등으로부터 ‘동남권 도지사 배출’이라는 염원으로 지지를 받은 이 예비후보는 “언론인들도 동남권 결집을 시켜달라”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많은 기대와 함께 용기를 많이 심어주고 있다”고 밝혔다. 3선 포항시장을 지낸 이 예비후보는 이날 “포항에 처음 발을 디뎠던 초심으로 돌아가 미래 50년을 향한 포항 중흥에 나서겠다”라면서 “이차전지, 수소, 바이오 등 3대 신산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낸 ‘포항 성장 모델’을 경북 전역으로 확산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강덕 예비후보는 지역 맞춤 공약으로 △AI 로봇 제조 실증벨트 지정 △철강산업 위기 극복 △산업현장 에너지 문제 해결 △이차전지·바이오 산업 확대 △통합돌봄·의료체계·청년복지 강화 △글로벌 관광도시로 발전 △차질 없는 초광역 도로·철도망 건설 추진 △글로벌 수준의 교육 인프라 확대 △민생 안정 주력 등 9개 지역 맞춤 공약을 발표했다. 글·사진 /배준수기자 baepro@kbmaeil.com
202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