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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내 사랑 내 곁에`

말할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그가 당신을 울린다생과사 기로에 선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루게릭병은 운동신경 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되어 지능, 의식, 감각은 정상인 채 온 몸의 근육이 점차 마비되어가는 희귀병이다.아직까지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치료법도 없어 대개 발병 후 3~4년 안에 호흡에 필요한 근육마저 마비돼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사망하는 무서운 질환이다.팔다리나 얼굴 근육 마비를 시작으로 결국에는 눈만 깜박거릴 수 있을 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병이 진행되는데, 말짱한 정신으로 하루하루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이 변해가는 자신을 지켜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린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루게릭병을 처음으로 조명하는 영화다.루게릭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종우와 그의 곁을 지키는 지수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통해, 아직까지 치료법이 없어 사회적 관심이 절실한 루게릭병에 따뜻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기존의 신파스토리와는 차별화된 눈물과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보는 이의 감정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는 호소력 있는 연출로 휴먼 장르에 일가견을 보여 온 박진표 감독. `내 사랑 내 곁에`는 그가 전작들에 이어 새롭게 선보이는 휴먼스토리다. `너는 내 운명`에서는 남녀간의 지극한 사랑을, `그놈 목소리`에서는 유괴범에게 아이를 빼앗긴 부모의 애끓는 사랑을 다뤘다면, `내 사랑 내 곁에`에서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이야기한다.인간애, 가족애와 관련된 감정들을 총 망라해 전작들보다 한층 풍성해진 드라마를 선보이는 이번 영화는, 박진표 감독의 휴먼 3부작이자 그 완결이라 할 수 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지수-종우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뿐 아니라, 중환자들이 모인 6인실 병동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가족멜로를 선보인다. 식물인간인 남편이 깨어나기만을 9년째 한결같이 기다리는 노부인(남능미-최종률), 혼수 상태에 빠진 아내를 지극정성 간호하는 남편(임하룡-임성민), 사고로 불수의 몸이 된 어린 딸 앞에서 눈물을 감추고 가슴으로 통곡하는 어머니(신신애-손가인), 회사와 병원을 오가며 24시간 형을 뒷바라지하는 동생(임종윤임형준) 등, 사연은 제 각각이지만 모두 자신의 삶을 희생한 채 환자 곁을 지키는 가족의 헌신적 사랑을 담은 에피소드들이다. 한계 상황에서도 살아갈 이유가 되어 주고 변함 없이 곁을 지켜주는 소중한 가족애를 그린 내 사랑 내 곁에는, 어려운 시대 먹먹해진 우리들 가슴에 따뜻한 위로가 될 것이다.20kg을 감량한 김명민과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실제 염습까지 배운 하지원 못지 않게, 조연배우들의 연기 열정 역시 빛났다. 전신마비 혹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역을 맡은 조연배우들이 바로 그들. 6인실 병동 환자들을 연기한 춘자 역의 `임성민`, 옥연의 남편 역의 `최종률`, 진희 역의 `손가인`, 배석중 역의 `임종윤`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거나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역할이라, 슛 사인과 동시에 한치의 움직임도 허용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있는 연기를 펼쳐야 해 남모를 고충을 겪었다는 후문이다.이들 중에서도 특히,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에 빠진 춘자 역의 임성민은 뇌수술을 받는다는 설정을 위해 삭발 연기까지 불사해 스탭진의 찬사를 받았으며,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멤버 손가인은 아이돌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몸무게를 8kg나 늘이고 노메이크업으로 출연하는 연기투혼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개성 넘치는 조연들의 빛나는 연기 투혼 역시, 내 사랑 내 곁에가 기대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2009-10-02

`델마와 루이스`

여자, 모순을 넘어 세상을 향해 쏘다영화계에서는 논쟁이 생기면 흥행에 성공한다는 오래된 속설이 있다. 그래서 일부러 논쟁을 만들어 내려 하는 제작들이 있는가 하면, 영화의 본질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델마와 루이스`처럼 예기치 않게 논쟁에 불을 붙이게 된 영화도 있다. 이 논쟁의 아이러니는 그것이 바로 `델마와 루이스`가 비판적으로 조명한 성차별주의적 관점에서 촉발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개봉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이 로드무비 영화는, 논쟁과 별개로, 그 자체로서 비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 보기에도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지나 데이비스와 수잔 서랜든은 동시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 외에도 `델마와 루이스`는 감독상·편집상·촬영상 등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시나리오작가인 칼리 쿠링에게는 각본상을 안겨주었다.이 영화를 길과 여행의 속도감으로 볼 때, 남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여성의 현실을 중심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비극의 화근은 여행 가방 속의 권총 한 자루,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의 자존심이었다. 이는 여성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며 더 이상 남성에게 굴복하지도 않는다는 의미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오만과 편견에 가득한, 소위 이 사회의 `강자` 들을 향하여 델마와 루이스 두 여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그렇게 시작된 도피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게 되고, 마침내 두 여성은 해방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본성을 되찾게 된다. 여성으로서 자신들이 받았던 사회에서의 억압과 남성들의 차별·구조적인 모순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고, 단지 비극적인 순간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을 찾고 기쁨에 넘친다. 이것이 바로 `아이러니` 이다. 그들은 경찰에 쫓기면서 자신들을 가두고 있던 사회의 벽을 뛰어넘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새롭게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그들은 말한다,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인다.` 고, `새롭게 눈을 뜬 것 같다.` 고. 그들은 여성으로서의 자신,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되찾은 것이다. 그녀들을 죽음의 벼랑에 몰아넣은 것은 다름 아닌 남성이었다. 학대하는 남편, 성폭행을 일삼는 술집 남자, 돈을 훔쳐 달아난 사기꾼 등등의 남성들로 인해 두 여성의 삶은 급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실은 본질적으로 `남성들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비극적이다. 아주 비극적인 영화의 결말은, 그러나 오히려 희망을 말하고 있다.아름다운 두 여성의 죽음이 결코 어리석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델마와 루이스가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희생된 가엾은 존재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사건의 중심에서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영화는 리들리 스콧 감독 특유의 영상미도 뛰어나지만 오락 영화로서의 재미와 스릴도 넘치고 남성과 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며, 인간의 자유와 자아발견, 그리고 내적 성장에 관한 심리분석 드라마로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걸작으로서, 대부분의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라스트의 감동, 수려한 영상, 적재적소에 삽입된 음악까지 완벽히 갖춘 작품이다.

2009-09-25

`트럭`

가족사랑 담은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 영화`악의 늪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격렬히 발버둥치는 생존본능`트럭`은 `호로비츠를 위하여`로 2007년 대종상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권형진 감독의 범죄 스릴러 영화이다.성실하고 정직한 트럭 운전사 철민(유해진)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온다. 심장병을 앓던 딸이 중태에 빠진 것이다. 당장 수술비 6천만원을 마련해야 하는 철민은 최후의 수단으로 도박판에 끼어들지만 오히려 트럭까지 내주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을 사기 도박판에 빠뜨린 자를 쫓던 그는 조직폭력단의 두목이 여러 명의 사람을 죽이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결국 시체를 몰래 처분하는 일을 떠맡게 된다. 딸을 살리기 위한 일념으로 산골로 향하던 그는 사이코 연쇄살인범 김영호(진구)를 태우게 되면서 더 커다란 위험에 빠진다.차려놓은 재료로만 판단한다면 `트럭`은 꽤 먹음직스런 스릴러영화로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순박한 주인공, 검은 함정과 불가피한 상황, 그리고 여기에 덧씌워지는 또 하나의 올가미까지, 요리하기에 따라 이 영화는 공포감과 긴장감을 갖춘 짜릿한 오락물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악의 늪속으로 빠져드는 주인공이 그곳에서 벗어나오기 위해 격렬히 발버둥치는 모습은 진한 자극과 카타르시스를 주게 마련이다.`연쇄 살인마의 피의 잔치`지독한 광기 품은 살인본능그러나 가장 앞서 눈에 들어오는 결함은 우연성이라는 요소가 이야기의 중요 매듭마다 배치됐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극도의 긴장감과 흥미가 발생하는 중차대한 순간에서 우연을 남발한다. 화물칸에 피가 흥건한 시체들이 쌓여 있고, 조수석에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탄 이 트럭이 경찰의 엄중한 검문을 받는 숨막히는 상황조차 안이한 해결방법 때문에 긴장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 영화의 전략은 성공하기 어렵다. 각 장면들이 의미화되지 못한 채 산만하게 배치됐다는 점도 흠. 영호의 주관적 진술 장면이나 샛별(이채영)의 돌연한 등장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거나 서스펜스를 증폭시키기보다 오히려 집중을 방해한다. 이유야 어쨌건 악과 내통했던 철민에게서 파우스트의 딜레마를 느낄 수 없게 하는 마지막 장면도 수긍하긴 어렵다.그리고 캐릭터의 설명 부분에 있어서도 사실적이고 디테일한 상황의 유해진과 달리 진구의 경우 많은 부분이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그토록 지독한 살인마가 되었는지 대한 연결고리가 더 깊이 있게 드러났더라면, 간혹 보이는 진구의 눈물고인 연기에 대한 이해의 정당성과 다양한 감정의 호흡이 뒤엉키며 그의 광기에 더욱 힘을 실어 주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다소간의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하더라도 `트럭`은 전체적인 합으로 보면 계속되는 긴장감으로 이어지는 꽤 괜찮은 스릴러가 된다.`트럭`은 잔인함에도 불구하고 보고나서 가슴에 돌덩이 몇 개가 얹힌 듯한 무거운 스릴러 영화가 아니다. 아마도 가족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이끌어 나가는 처음과 마지막의 이야기 구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 세고, 더 하드하며, 복잡해서 머리를 쓰며 반전을 원하는 관객의 기호에는 다소 아쉬울 수 있다. 그러나 스릴러로서의 기본인 스릴감은 분명 잘 갖추고 있고 배우들의 연기 또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2009-09-18

`애자`

모녀라는 이름으로 사는 그녀들 `친구`일까? `웬수`일까? 영화사적으로 보면 가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많다. 그 중에서도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들은 항상 관객들에게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다.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만큼 쉽게 잊고 살아가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특히,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는 더욱 그러하다. 무뚝뚝함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살아가는 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다투고, 토라지다가도 그 누구보다 진한 감정들을 공유하는 관계가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영화 `애자`는 바로 그러한 모녀사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응석과 투정을 부리기 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리는 영화가 바로 `애자`다.스물아홉 애자. 고교 시절엔 `부산의 톨스토이`로 이름을 남겼지만,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 생활이 녹록지만은 않다. 지방신문 당선 경력은 억대 공모전 수상에 태클을 걸고, 바람 피우다 걸린 남자친구 때문에 속 끓이기 바쁘다. 무엇보다 애자를 피곤하게 만드는 건 부산 사는 엄마 영희. 공부 못하는 오빠만 유학 보내줘 어릴 때부터 애자의 심기를 건드리더니 이젠 나날이 결혼 독촉 하느라 바쁘다. 자신이 사고뭉치 딸인 건 생각도 않고 엄마에게 지겨움을 토로하던 어느 날, 엄마가 쓰러졌다. 그리고 말기 암으로 고통 받는 엄마와 그걸 지켜봐야 하는 딸의 스토리가 시작된다.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영화가 전하는 신파적인 느낌은 감출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투병 중인 엄마와 그런 엄마를 애처롭게만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영화는 오히려 일찌감치 두 모녀에게 이별 통보를 알려주고, 그것을 준비해가는 두 모녀의 모습을 웃음으로써 풀어나간다. 그것은 관객들 역시도 그녀들을 보며 마냥 슬픔을 느끼기보다 그런 웃음으로써 그 과정을 담담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즉, 영화 `애자`는 그저 엄마를 떠나보내는 딸의 슬픔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낼 준비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그려 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제 멋대로 인데다 버릇없는 딸이지만 누구보다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애자의 마음은 곧 여느 자식들의 마음이며, 항상 잔소리만 하고 강한 척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딸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가득한 영화의 모습은 곧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기에 그들의 이별 준비는 관객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만든다.`캐릭터 묘사가 박력있고 필력이 돋보인다` 정기훈 감독의 `애자`를 부산영상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의 최우수작으로 선정하며 심사위원들이 언급한 총평이다.4년 동안 오직 `애자`의 시나리오에 몰두한 감독은 더욱 리얼한 묘사를 위해 주변 사람들 중 400쌍의 모녀를 만났다. `싸울 때는 주로 어떤 주제로 싸우나?`, `화해는 어떤 방식으로 하나?`, `엄마가 돌아가실 땐 어떻게 이별했나?` 등 실제 모녀들에게 들은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애자`는 누군가의 자식이고 부모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웃고 눈물 흘릴 수 있는 이야기로 완성되었다.또한 영화 속 두 주인공인 애자와 영희 역시 실제 모델을 바탕으로 탄생되었다. `애자`는 바로 정기훈 감독의 전 여자친구를 모티브로 완성된 인물, 특히 `애자`란 이름은 전 여자친구의 이름에 `애`자가 들어갔고 그녀에 대한 의미 있는 보답을 하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편 `영희`는 감독 본인 어머니의 성격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차용된 인물이다.최강희와 김영애, 두 주연 배우 모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생겼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시나리오는 영화 애자를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이다.

2009-09-11

`플란다스의 개`

조용한 중산층 아파트, 백수와 다름없는 시간강사 고윤주(이성재 분)는 개소리에 괜히 예민해져서 방바닥에 엎드려서 소리를 들어보고 천장에서 소리를 들어보려고 하지만 개소리의 진원지를 알지 못한다.할 수 없이 평소대로 버려도 아무도 안 주워 갈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밖으로 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터덜거리며 들어오던 중 바로 옆집 문 앞에 서 있는 강아지를 발견한다.윤주는 그 개를 납치, 지하실로 뛰기 시작한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지하실에 가둬버리는 윤주. 한편 아파트 경비실엔 경리 직원 박현남(배두나 분)이 있다.그날도 지루하게 낱말 맞추기나 하고 있는 현남에게 꼬마 슬기가 삔돌이를 찾는 전단을 가지고 온다.온 동네에 전단을 붙이는 현남. 어쩌면 교수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안고 한잔한 윤주.집에 돌아와 임신한 아내의 배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데, 강아지 짖는 소리가 들린다.급하게 달려 나간 아파트 사방에 강아지 찾는 전단이 붙어있고 이렇게 써 있다. “특징: 성대수술로 짖지 못함”. 그러나 지하실의 강아지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주인이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의 강아지임을 알게 된 윤주는 호시탐탐 그 개를 노린다.점점 늘어가는 강아지 실종사건. 사건이 마구 번져 가는 듯 보이던 어느 날, 친구 뚱녀에게 들은 현남은 망원경을 들고 옥상에 올라갔다가 건너편 옥상에서 한 사내가 개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용감한 시민상을 타서 텔레비젼에 출연하는 것이 꿈인 우리의 현남.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 뚱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사내를 쫓기 시작하는데….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일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꼽을 수 있다.예를 들면 본업보다 의문의 빨간 양동이(?)에 집착하면서 때로는 빗자루를 들고 골프 스윙 연습을 하거나, 지하실 러닝머신으로 건강에 신경 쓰는 변경비(변희봉)역이나, 이름은 장미지만 전혀 장미스럽지 않은, 상 담배를 입에 물고 세상을 심드렁하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현남의 친구 뚱녀(고수희)의 설정은?자본주의 체제에서 밀려난 아웃사이더의 일상을 세심하게 추출했다는 점에서 감독의 또 다른 성과로 보인다.봉준호 감독의 공간 집중력은 탁월하기로 이미 알려져 있다. `괴물`에서 한강, `살인의 추억`의 도시와 농촌의 경계지점에 있는 소읍.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고층 복도식 아파트가 주요한 상징이 된다.이 영화는 개인의 이중성이나 숨겨진 일상 속의 일상적이지 않은 면모를 폭로하는 영화인 것 같지만, 실은 다양한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판박이처럼 평범한 삶?을 보장해주는 공간으로 알려진 복도식 고층 아파트, 지극히 한국적이고 소시민적인 그 공간에 대한봉준호식 해부이다.`플란다스의 개`에서 복도식 고층 아파트는 중산층으로 편입하려고 꿈꾸지만 아직은 중산층이 아닌 소시민 계층과 거기에 빌붙어 생계를 이어가는 아파트 직원들 간의 미묘한 계층 차이를 드러내는 장치이자, 교수가 되려는 사람과 손수 보신탕을 끓여먹는 토속적인 인간과 애완견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독거노인과 텔레비전에 출연하고픈 소망을 지닌 사람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감독은 그 공간을 근대적인 것들과 포스트 모던한 것들이 한꺼번에 공존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축소판이라고 느낀 것은 아닐까.

2009-09-04

`모던 타임즈`

1936년도 영화 `모던 타임즈`는 채플린이 방랑자로 분장하고 등장한 마지막 영화이자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이다.방랑자는 발레와 같은 슬랩스틱 제스처를 통해 기계 만능의 현대를 풍자하는 한편 감상적 로맨스와 함께 그 사회를 떠남으로써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채플린에게 말하는 방랑자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이 마지막 무성영화에서는 방랑자가 무국적의 묘한 언어로 노래하게 함으로써 무성과 유성의 경계를 넘어버린다. `모던 타임즈`에서 채플린이 그리는 현대는 냉혹하다.노동자들은 축사로 끌려가는 양떼처럼 공장으로 몰려 들어가고, 자본가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시한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대의 생산을 얻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숨 쉴 틈도 없으며 화장실 가는 시간도 체크당한다.화장실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 하면 한쪽 벽의 대형 스크린에서 자본가가 불호령을 내린다. 점심 시간도 아까워 자본가는 작업 중에 급식할 수 있는 자동급식기계를 설치한다.자동화된 일터는 실직자를 대량 생산하고, 그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다. 굶주림 때문에 빵 하나를 훔치는 사람도 있고, 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이도 있다. 그러한 이들 때문에 거리에는 경찰관들이 가득하다. 주인공 방랑자는 현대의 노동자이다.그는 무엇을 생산하는지 알 수 없는 작업대에서 볼트를 조인다. 그의 손이 반의 반초만 늦어도 일관작업체제는 엉망이 되고, 쉴 새 없이 볼트를 조이는 그의 두 손은 작업대를 떠나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여자의 엉덩이에 달린 단추도 조이려고 달려든다.그는 자동급식기계를 시험하는 대상으로 뽑히지만, 고장이 나 광포해진 기계는 그에게 음식물을 던지고, 그를 폭행하고, 미치게 하고, 거대한 기계의 흐름 속으로 삼켜버린다.거리에서 그는 트럭의 꼬리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들고 뛰다가 시위대열에 앞장서기도 하며, 고아 소녀를 만나 가정을 꿈꾸고 직업을 원하기도 한다.그러나 방랑자는 현대의 작업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소녀와 함께 지평선을 향해 떠난다.발성 영화를 싫어했던 채플린이 무국적어로 “티티나”를 불러, 처음으로 목소리를 들려준 것으로도 유명하다.채플린의 작품 중 가장 따뜻하고 희망적인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중절모와 헐렁한 바지 대신 노동자 복장으로 등장했다.그리고 다분히 사회주의적인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생산 양식에 비판을 가한다. 그러나 그가 파업 대모대의 선두에 서게 돼 좌파 지도자로 변신하는 풍자를 보면, 그가 어떤 이념에 빠져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그것은 자신의 험난한 역정과 풍부한 독서로 얻어진 가난한 사람들의 애정이 역동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이 영화에서 아내 폴래트 고다드는 빵을 훔치는 소녀로 나와서 훌륭하게 데뷔를 장식했다.그리고 콘베이어의 시스템에서의 작업 끝에 기계처럼 돼버린 노동자를 연기한 채플린의 연기는 희극 영화 사상, 최고의 연기로 블랙 코미디의 원형처럼 된다.찰리 채플린의 재능이 집대성된 1936년 영화 `모던 타임즈`는 불황과 경제공황에 멍든 미국의 자화상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특히 자동화된 기계 속에서 말살되어 가는 인간성과 산업 사회가 가져다주는 필연적인 인간 소외의 문제를 빠른 템포의 팬터마임과 몽타주 수법들을 동원하여 생생한 블랙 유머로 잡아내고 있다.`모던 타임즈` 디지털 복원판은 2003년 56회 칸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

2009-08-28

`국가대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하는 영화들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는가 하는 것은, 웃음 속에서 감동을 어떠한 방식으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녹아냈는가 하는 것과 같다.일련의 한국영화들을 살펴보면 앞에서 말한 공식에 스포츠라는 요소가 얼마나 제격인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그리고 `미녀는 괴로워`로 흥행기록을 새롭게 갈아 치웠던 김용화 감독의 신작 `국가대표`는 다시금 그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더불어 휴먼드라마와 스포츠의 결합이 내뿜는 완벽한 시너지 효과를 다시 한 번 증명해 주는 영화다.조로증에 걸린 이복동생과 형의 이야기를 그린 `오! 브라더스`, 성형미인이 된 비만녀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미녀는 괴로워`에 이어 국가대표 스키점프 선수들의 사연을 담은 신작 `국가대표`는 김용화 감독의 세 번째 영화다.1996년 전라북도 무주,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이에 전(前)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성동일 분)이 국가대표 코치로 임명되고, 그의 온갖 감언이설에 정예(?) 멤버들이 모인다.전(前)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다가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인 밥(하정우 분), 여자 없으면 하루도 못 버틸 나이트 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분), 밤낮으로 숯불만 피우며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살아온 고깃집 아들 재복(최재환 분),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하는 짐이 버거운 말 없는 소년 가장 칠구(김지석 분), 그런 형을 끔찍이 사랑하는 4차원 동생 봉구(이재응 분)까지! 방 코치는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엄마와 같이 살 집이 필요한 밥에게는 아파트를, 사랑 때문에 또는 부양 가족 때문에 그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흥철, 칠구-봉구 형제, 그리고 재복에게는 군 면제를 약속한다.단, 금메달 따면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지만 한때 스키 좀 타봤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이면서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그러나 스키점프(Ski Jump)의 스펠링도 모르는 코치와 경험 전무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은 험난 하기만하다.변변한 연습장도 없이 점프대 공사장을 전전해야 했고 제대로 된 보호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 등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에 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복이네 고깃집 앞 마당에서의 지상 훈련을 시작으로 나무 꼭대기에 줄로 매다는 공중 곡예(?), 시속 90km의 승합차 위에 스키 점프 자세로 고정되어 달리는 위험천만한 질주, 폐(閉)놀이공원 후룸 라이드를 점프대로 개조해 목숨 걸고 뛰어내리기 등 나름 과학적(?) 훈련으로 무장하는 선수들.이런 식의 무대뽀 트레이닝에도 이들은 점점 선수다운 모습을 갖춰 가고, 스키 하나에 의지해 하늘을 날아가는 순간이 행복해진다. 매번 독특한 소재의 이야기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전달했던 김용화 감독은 이번에도 역시 자신의 색깔이 그대로 묻어 난 이야기를 보여준다.대중들에게는 비인기 혹은 무관심 종목인 스포츠들이 한국영화들에서 만큼은 최고의 인기소재로 거듭나는 게 요즘 대세라지만 스키점프라는 스포츠는 유독 시선을 끈다.이번 영화를 통해 감독은 가족 관계의 회복을 통해 개인이 치유 받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는데, 각자 영화관에서 확인해 보자.

2009-08-21

`킬리만자로`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어느 날, 형사가 깡패가 되어 강원도 주문진에 나타난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승진을 코앞에 두고 정직을 먹은 악질형사 해식. 동생의 유골을 들고 고향인 주문진으로 내려간 해식은 그를 쌍둥이 동생 해철로 오해하는 깡패들을 만난다.그리고 원치 않게 그들 사이의 이권다툼에 말려든다. 한때 같은 패거리이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 원수들처럼 싸우는 것일까? 죽은 동생 해철은 대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해식은 점점 그들의 관계가 궁금해지고, 그들 사이의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다. 해식은 잘하면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사건을 하나 건질 것만 같다.그는 해철임을 부정하지 않고 번개 패거리와 어울리기 시작한다. 한물간 깡패 번개는 그런 해식을 해철로 오해하며 끔찍히 챙기고 보살핀다. 그 과정에서 해식은 동생의 과거와 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되는데….이 영화에서 주조를 이루는 색깔은 붉은 빛과 검은 빛, 흰 빛이다.영화의 처음과 끝에는 붉은 색이 있다. 피로 상징되는 붉은 색은 죽음과 분리를 의미한다. 쌍둥이는 분리되고, 피를 나눈 형제(쌍둥이 박신양)와 마음을 나눈 형제(안성기)는 죽음을 맞이 한다.검은색은 등장 인물들의 의상으로 나타나는데, 번개패와 해식의 암울한 미래를 의미한다. 그리고 흰 색, 안식과 희망을 상징하는 이 색은 번개가 죽음을 맞이하는 눈이다. `킬리만자로`의 최고봉에 있는 만년설을 대신한다.박신양은 연기력에 비해 과대 평가를 받아 왔지만 이 영화에서 만큼은 노력의 흔적이 역력해 섣불리 연기 못하는 배우라고 말하기 꺼려진다. 대사는 절제되었지만 그는 자신이 느끼는 비애감과 분노를 과잉해 보여준다.물론 과잉된 연기는 결코 좋은 연기라고 말할 수 없지만 `폼`잡는 영화에서는 필요악같은 존재이기도 하다.하지만 안성기가 힘을 조절하는 능력을 터득한 탓이 박신양의 과잉 이미지는 안성기의 억제하는 이미지에 의해 조절된다.이 영화로 대종상 남우 조연상을 수상한 정은표는 작은 체구에서 발하는 깡다구 있는 연기로 주목을 끈다. 첫 감독작으로 이 정도의 영화를 만들어낸 오승욱 감독에게는 차기작을 충분히 기대해 봄직하다.깡패 영화의 틀 안에 자학과 회한, 방황과 속죄의 몸짓들로 꽉 채워놓은 울림이 깊은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 비극적 결말이 인상적이다.오승욱 감독은 `킬리만자로`에 대해 가장 기뻤던 순간으로 한 관객의 감상을 꼽는다. 그는 “힘들었을 때 영화를 보고, 나 혼자만 이 세상에서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삶의 희망마저 등을 돌린 막판 인생들이 수두룩하게 몰려나와 피바다를 뒹구는 이 우울한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소통으로서의 영화 `킬리만자로`는 이미 충분히 구원받았는지도 모른다.

2009-08-14

`지구를 지켜라`

상황과 캐릭터의 충돌, 사회 풍자적인 소재의 `지구를 지켜라`는 희비극적인 감정을 동시에 주는 하이 코미디다. 이야기, 캐릭터, 장르, 촬영, 미술, CG까지.`지구를 지켜라`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의 핵심은 `독특함`이다. 기존 한국영화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영화 -- 외계인을 소재로 한 판타지에, 평범한 청년이 지구를 지킨다는 동화적 요소, 진지한 웃음을 통해 세상을 꼬집는 풍자와 극적 아이러니.이 독특함과 황당함으로 2003년 장준환 감독은 매니아층을 형성하게 된다. 이 영화는 관객들을 따라가기보다 관객들을 리드하는 영화이다.주인공 병구는 꿈꾼다. 지구의 모든 힘없고 버림받은 자들이 외계인의 음모로부터 해방되기를.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한국 최초의 외계인 소재 영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계인의 실존이 아니다.외계인은 현실도피의 수단일 뿐이다. 외계인이나 UFO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주 근사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묻는다. 지구를 파괴하려는 건 저 먼 행성의 외계인일까? 아니면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일까?이처럼 `지구를 지켜라`는 범 우주적인 주제로 시선을 돌려 한국 영화의 소재를 넓혀 주었다. `지구를 지켜라`는 개인의 과대망상에서 시작해 범 우주적인 주제로 마무리된다.전반적으로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드라마가 주축이지만 극적 긴장감을 주는 키포인트는 황당하고 엉뚱함. 말하자면 리얼리티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상상력을 폭발시킨다.특히 이 방대한 이야기는 코미디, 액션, 멜로, 스릴러, 미스터리, SF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혼합장르를 탄생시킨다. 이것만이 아니다. 영화 곳곳에는 `2002 스페이스 오딧세이`, `길`, `블레이드 러너` 등 당대의 앞서갔던 영화들의 오마주가 깔려있다. 하지만 이 모든 장치 역시 오로지 캐릭터와 드라마를 위해 존재한다.최첨단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미래세계와 가상공간. 그건 할리우드가 잘하는 방식이다.그러나 `지구를 지켜라`가 보여주는 판타지는 바로 아날로그적인 정서와 감각이다. 모든 열쇠는 병구라는 캐릭터에 있다. 병구가 손수 만든 집은 비밀기지국으로 인물의 정서를 보여주고,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물의 시선으로 움직인다.영화에는 상반된 공간이 나온다. 병구의 주 공간인 지하실과 병구를 약자로 만드는 외부세계. 카메라는 지하실에서 조여 오는 느낌으로, 외부세계는 와이드한 화면으로 상반되게 보여주고 강한 콘트라스트와 초록색과 붉은색의 대비는 병구와 강사장의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 모든 것 역시 캐릭터와 드라마를 위해 존재한다.병구는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처럼 강력한 파워나 특별한 능력이 없다. 그의 무기는 외계인이 지구를 위협해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는 개인적인 확신과 외계인을 무기력화 할 수 있다고 믿는 물파스, 때밀이 수건, 텔레파시 차단모자가 고작이다.그렇게 병구는 그 자신의 리얼리티로 우주와 맞선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보는 방법은 병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병구로부터 외계인 지목을 받는 강 사장역을 맡았던 백윤식의 연기는 압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2009-08-07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구효서의 소설 `낯선 여름`을 텍스트로 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홍상수는 이어서 `강원도의 힘`(1998년)을 발표함으로써 우리 나라 영화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이들 영화는 기존의 한국 극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영화적 관습을 과감하게 탈피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당혹감과 더불어 신선한 자극을 맛보게 했다.다소 거칠게 표현하자면, 홍상수 영화는 고전 할리우드 영화 문법에 길들여진 한국 관객에게 아주 낯설고 생경한 체험을 강요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효섭, 동우, 민재, 보경을 중심으로 4 개의 에피소드를 얼기설기 교차시킴으로써 구질구질한 일상사를 그려내고 있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 등장인물들은 다른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그럴 듯하게` 수식되지 않는다.이것이 관객에게 주는 효과는 `낯설음`이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여기에서 이 낯설음은 지루한 호흡의 서사(敍事)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서사 속에서 일상은 끝없이 미끄러져 지연되고 의미 없이 반복된다. `강원도의 힘`에서도 주인공 상권과 지숙은 일탈의 공간 `강원도`에서 일상의 켜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또 다시 서울의 한복판으로 돌아온다. 아니, 이 영화에서 `강원도`와 `서울`은 이음동의어로서, 일상이라는 기의(記意)를 공유하고 있는 두 개의 기표(記標)일 뿐이다. 홍상수에게 있어 일상이라는 담론 밖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세상이 곧 일상이다. 이때 일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낯설고 시시한 `풍경`으로서의 이미지일 뿐이다.일상에 매몰된, 끝없이 쳇바퀴를 돌려야 하는, 허기(虛飢)를 채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자들. 홍상수의 시선에 잡힌 이러한 현대인의 모습은 `게걸스러움` 그 자체이다.이것은 꾸며지지 않은, 그럴 듯하지 않은 식욕(食慾)과 성욕(性慾)으로 그려진다. 영상 이미지는 비늘을 채 벗기지 않은 생선의 껍데기처럼 비린내가 진동하고 느끼할 정도로 번들거린다.이 비릿한 느꺼움은 등장인물들의 욕망이 좌절할수록 심해지며, 카메라의 시선은 잔인할 정도로 집요하게 맨살을 핥으며 지나간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밀폐된 공간이 빈번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이 공간에 대한 카메라의 시선은 부분적이고 단절되어 있다.관객은 주로 어두컴컴한 밀폐 공간에서 내뱉는 등장인물들의 다소 허무하고도 무미건조한 대사와 만나게 된다. 그늘지고 답답한 이 공간은 빠져 나오기 힘든 `우물` 속이다. 따라서 카메라의 시선은 주로 부각(俯角)의 형태를 지니게 된다. 동우의 휴게소 화장실 장면, 민재가 전자 상가 녹음실에서 음성을 녹음할 때라든지, 보경이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장면을 카메라는 마치 우물 안을 들여다보듯이 약간 높은 지점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물론 이때의 우물 풍경은 지쳐 버린 세상에 대한 제유(提喩)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영화 포스터에는 `단편소설 같은 영화`라고 적혀 있는데, 이 영화는 연극을 꽤나 닮았다.4개의 독립적인 에피소드를 3번의 암전에 의해 분절시키고 (마치 1막 4장의 단막극과 같다), 로케이션과 같은 외부 공간의 이동보다는 밀폐된 건물 내부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을 전개하고 있으며, 배우들의 장광설이 지속되는 것 등이 그렇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연극과 친밀감을 주는 근거는 고정 촬영 기법과 롱테이크를 통해 원근법과 부피감과 질감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강원도의 힘`에서도 유사한 모습으로 구현된다.

2009-07-31

`걸어도 걸어도`

요코야마 집안 가족들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을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준페이는 15년 전 물에 빠진 소년 요시오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형에게 콤플렉스를 가진 차남 료타(아베 히로시),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친정에서 살려는 딸 지나미(유)는 일단 집에 모이지만 그 분위기가 화목하지만은 않다. 겨우 결혼한 료타의 아내는 전남편과 사별한 과거를 지녔고 지나미의 엄마에 대한 배려는 엄마의 본심과 한참 어긋나 있다.15년 전의 죽음과 쉽게 풀어지지 않는 가족들 사이의 작지만 무거운 기억들이 서로 충돌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항상 죽음 이후를 찍는다. 혹은 어떤 일을 계기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의 이후 사정을 좇는다.그의 영화는 애써 죽음, 상실 그 자체를 피하려는 인상도 준다. 고레에다 영화에서 중요한 건 어떤 사건이 남긴 잔해와 파장이며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다.`걸어도 걸어도` 역시 죽음의 15년 뒤를 그린다. 물에 빠진 한 아이를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요코야마 집안의 장남 준페이가 그 주인공이다.영화는 준페이가 죽은 지 15년이 된 어느 여름날을 배경으로 한다.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이 15년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그리고 현재 어떻게 얽혀 있는지가 그들의 대사와 감정을 통해 드러난다.그리고 여기서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이란 존재 자체를 심각하게 묻는다. 그가 생각하는 죽음은 항상 삶의 어딘가에 파묻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터져나오는 가족 사이의 오해와 불일치도 준페이의 죽음을 넘어선다.가족이란 관계 자체가 담고 있는 본질적인 딜레마들이 새어나온다. 홈드라마 구조를 취한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영화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은밀하게 품은 작품이다.요코야마 가족과 요시오 사이의 관계는 옴진리교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를 상기시키고 죽음을 겪은 가족의 일상은 `환상의 빛`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또 영화에 등장하는 3명의 아이들, 특히 요코야마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츠시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이런 요소들을 한 가족의 일상사로 부드럽게 묶는다.일면 한 가족의 상처 치유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화는 잔잔한 표면 아래 삶과 가족이란 관계에 대한 잔인한 통찰을 담는다.한정된 실내에서 벌어지는 가족들의 소소한 일상사는 매우 탄탄하게 짜여져 보는 재미도 있지만 그게 서로 부딪치고 모여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희망보다 아픔에 가깝다.아픔을 끼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가족에 대한 고레에다의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머니 역할의 기키 기린의 연기는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하다.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게 축조된 구조물이다. 어떤 대사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다.어떤 상징도 돌출되어 있지 않고, 어떤 디테일도 불필요하지 않다. 이 영화에는 덜 조여진 나사 하나 없다. 그러면서도 여유와 관조 혹은 유머까지 넉넉히 갖췄다.배우들의 연기마저 정확하고 깊은 이 작품은 살아서 영화를 보는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영화이다.

2009-07-24

`킹콩을 들다`

영화 `킹콩을 들다`는 2000년 전국체전에서 총 15개의 금메달 중 14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휩쓸었던 시골 고등학교 소녀 역사들의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극화되었다.대회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신화가 된 소녀들의 뒤에는 故정인영, 김용철, 윤상윤 세 명의 역도코치가 있었다.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버지처럼 가르치고 먹이며 시골소녀들을 역도선수로 키워낸 그들 중 정인영 선생은 전국체전 1년 후 49세의 나이에 과로로 인한 뇌출혈로 학교에서 근무 중 순직했다.그는 역도황무지였던 한국에서 바르셀로나 올림픽 역도 금메달리스트 전병관을 발굴하기도 했다.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미래를 꿈꿀 수 조차 없는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의 시골소녀들에게 `역도`를 가르쳐 주고 역도를 통해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만드는 역도코치의 모습을 통해 인생의 멘토가 된 진정한 스승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시골소녀들을 아름다운 역사로 키운 어느 역도코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실제 역도 선수들의 다양한 경험과 역도 지도자들의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 진솔하고 감동적인 스토리로 만들어낸 `킹콩을 들다`가 단순히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부분이 바로 이점이다.`킹콩을 들다`는 아무것도 모르던 시골소녀들이 `자신의 삶의 무게`를 깨치고 `아름다운 역사`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통해 역도가 가진 힘과 묵직한 감동을 영화 속에 녹여내는데 성공했다.역도는 축구, 농구 등 인기종목의 스포츠에 밀려 올림픽 기간 외에는 국민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경기이다. 하지만 2007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비인기종목인 핸드볼 경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와 전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주며 핸드볼 경기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처럼 `킹콩을 들다`를 통해 `역도`가 던져주는 힘과 감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역도`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회가 되고 있다.조안을 필두로 한 여섯 명의 여배우들이 역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야말로 땀과 눈물로 점철된 고난의 과정이었다.조안은 여배우로서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7kg이상 체중을 불리고 특수 분장으로 땟국물이 묻어나는 영락없는 시골소녀로 완벽하게 변신했다.극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여배우들의 `실전연기`는 그들을 웃고 울렸으며, 그 모습은 생생하게 영화 속에 담겨 감동과 웃음의 동력이 되고 있다.`킹콩을 들다`에는 쟁쟁한 중견 배우들이 조연진에서부터 카메오까지 포진해 웃음을 선사한다.영화 속에서 보성여중 교장과 교감으로 분한 박준금과 우현은 때론 자상하게 때론 무섭게 시골소녀들을 역도선수로 단련시키는 이지봉(이범수)의 곁에서 그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유감없이 해냈다.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비친 박준금은 다양한 작품에서 감초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는 배우 우현과 환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인다.실제로 두 배우는 연기를 하는 동안 환상적인 애드리브로 촬영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는 후문이다.여기에 대표적인 연기파 중견배우인 변희봉은 교육감으로 카메오 출연해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역시 변희봉`이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내공 깊은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으며, 기주봉은 이지봉의 역도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는 역도감독으로 출연해 영화에 감동과 무게를 더했다.

2009-07-17

`킬 빌` 그 두 번째 이야기

영화 `킬 빌`은 일반적인 시각으론 이제까지 보아온 익숙한 다른 영화들의 스타일에서는 느끼지 못한 너무도 이질적인 영화다.(물론 쿠엔틴 타란티노로선 아주 익숙한 스타일이지만) 처음부터 중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순서는 아예 고려가 안 된 것처럼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는 이 영화는 그 순서의 파괴에 표한 매력을 풍기며 각각의 에피소드와 챕터들로 영화를 구성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관객들에겐 지금부터 벌어질 재미난 광경을 그저 지켜보고 즐기라고 말하는 듯하다.영화의 첫 장면 더 브라이드가 살해되는 장면에 이어지는 더 브라이드의 순서상 두 번째 제거 대상인 버니타 그린과의 대결, 그리곤 멕시코의 결혼식장의 더 브라이드의 참혹한 결혼식 살해현장에서 곧장 병원에 누워있는 그녀와 그녀를 암살하려는 엘 드라이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간을 거스른다.코마에서 깨어나 복수를 다짐하는 브라이드와 오웬 이시이의 에피소드 그리고 청엽정에서의 마지막 혈투는 영화에서 사건이 발생한 순서와는 전혀 상관없이, 회상의 주체가 있던 없던, 주인공의 현 상황과 그녀 앞에 펼쳐질 일련의 사건들을 나열하듯 각각의 에피소드를 형성하며 감독이 내키는 대로 마음대로 늘어놓은 듯 부산하다.그런데 묘한 것은 이렇게 아무렇게 늘어놓은 듯한 에피소드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묘한 힘을 발휘하며 흥미를 고조시킨다.약에서 중 그리고 강으로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액션의 잔인함 또는 참혹함 그리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영화의 긴장감은 영화의 재미를 차츰 아주 조용하게 증가시키곤 마지막 청엽정의 결투에서 그것을 폭발시킨다.그런 미묘한 영화의 흐름은 관객을 영화에 더욱 집중시키고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보이며 더 브라이드와 오렌 이시이의 숙명의 대결 이후에 이어질 나머지 복수극을 담은 `킬 빌 : Vol.2`에 대한 기대까지도 증폭시킨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챕터를 이루어 그녀가 죽여야 할 또는 복수의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아주 친절하게 짚어주고 설명해 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주고 동시에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잃지 않게 해 준다.영화 `킬 빌`은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폭력적이고 잔인하며 선혈이 낭자하는 피와 살인, 복수로 점철된 잔인한 액션 느와르다.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떤 영화들에게서도 느낄 수 없었던 폭력이 기존의 타란티노 영화조차도 무색하게 할 무자비함과 잔인함이 존재하는 영화이지만 이상하게 `킬 빌`에서 느껴지는 잔인함은 낯설다기 보다는 익숙하단 느낌이다.요즘 자주 접하게 되는 한·중·일의 무협, 사무라이 극이나 일본의 장편 만화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일련의 성인만화에서 익히 접했던 일련의 잔인한 장면이 그저 형상화되어 있을 뿐 기존에 접했던 그 무엇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은 영화 속 잔인한 장면들이 거부감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액션이 기존의 활자나 그림매체에서 보아왔던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실감나는 영상을 보여주고는 있으나 그 폭력이 잔인함이 타란티노 스타일로 경쾌하고 발칙하게 때론 흥겹(?)게 연출되어짐으로써 무자비함과 비정함으로 점철된 피의 복수극임에도 영화는 화려함과 흥미로움만 느껴진다.적절한 와이어 액션과 엄격한 사무라이 검법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액션 스타일은 총기나 단검으로 보여지던 기존의 폭력물들과는 엄격한 차별을 이루고 영화를 더욱 독특하고 대중적이며 세련된 느낌으로 한층 재미있고 신기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도와준다.더욱 신선하고 세련되게 단장된 타란티노식 영화문법은 관객을 더욱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까지 한다.

2009-07-10

`킬 빌`

이 영화는 원래 `킬 빌`이라는 한편으로 된 영화인데, 런닝타임이 길다는 이유와 상업적인 목적으로 `킬 빌 Vol. 1`과 `킬 빌 Vol. 2`으로 나뉘어 개봉했다.감독이 동양 문화를 좋아해서 그런지 영화 내내 일본 사무라이 칼이 등장하고 사무라이 정신이 바탕을 이룬다. 킬 빌 Vol. 1에서는 영화의 반이 일본을 무대로 한다.타란티노가 동양 무술 영화의 마니아라는 사실은 너무 유명하다. 홍콩 쇼브러더스의 로고를 띄우는 장난스런 오프닝부터 시작해서 사지절단 무술과 사무라이 영화의 피분수가 솟구치는 액션 장면,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보이는 캐릭터, 무엇보다 이소룡의 노란색 트레이닝 복을 입은 주인공까지 타란티노는 자신이 보고 열광한 영화를 재료 삼아 `킬 빌`이라는 큰 그릇에 넣어 화려하고 그득한 성찬을 내 놓았다.다음 8가지 사항들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1. 영화의 라스트씬에서 모든 복수를 끝내고, 소파에서 휴식을 취하는 브라이드(우마 서먼)의 모습은 `펄프픽션`에서 빌려왔다.2.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와 브라이드가 버드(마이클 매드신)의 트레일러에서 싸우는 장면을 눈썰미를 가지고 지켜본 관객이라면 대릴 한나가 출연한 `블레이드 러너`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다.3. 장장 13분이나 되는 영화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우마 서먼이 대릴 한나의 눈알을 뽑는 장면이 어떻게 촬영이 되었는지 볼 수 있다.4. 타란티노는 버드가 브라이드를 생매장하는 장면에서 `황야의 무법자`의 영화음악을 사용했다.이 음악이 `황야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악당들에게 붙잡혔다가 관에 주검 대신 자기 몸을 넣고 탈출하는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올드팬이라면 감회가 남다를것 같다.5. 전편보다 말이 많아진 `킬빌2`에는 `슈퍼 히어로`를 다른 식으로 접근하는 빌의 발상에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빌은 슈퍼 히어로들이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는데, 이는 실제로 데이빗 캐러딘과 타란티노가 나누었던 대화다.6. 원래 브라이드에게 쿵푸를 가르치는 백발의 파이 메이 역은 타란티노 본인이 연기하려고 했지만 1편에서 크레이지 88의 대머리 두목으로 출연했고, 무술의 조예가 깊은 유가휘에게 최종낙찰됐다.파이 메이라는 캐릭터는 쇼브라더스의 전속배우였던 유가휘가 출연한 영화 `홍휘관`에서 빌려왔다.실제로 유가휘는 남파소림권이기도 한 홍가권을 익힌 진짜 무술인으로 황비홍의 직계제자라고.7. 타란티노 감독과 절친한 영화동료인 사무엘 L.잭슨은 브라이드의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연주하는 오르간 주자로 깜짝 출연했다.8. 2편의 백미인 브라이드와 엘 드라이버의 결투는 원래 넓은 황야를 무대로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촬영 하루 전날 타란티노는 버드의 트레일러로 장소를 변경했다.타란티노는 한 인터뷰에서 “현재 `킬빌3`를 기획 준비중”이라고 말문을 연 뒤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처럼 처음부터 이 작품이 나의 달러 삼부작(Dollars Triogy)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타란티노가 밝힌 `킬빌3`은 `킬빌1`에서 브라이드에 의해 희생된 버나타 그린(비비카 A.폭스)의 딸 니키가 주인공으로 나설 예정.내용은 빌의 모든 유산을 상속받은 소피(줄리 드레퓌스)가 니키를 키워 브라이드에게 보내고 니키가 차세대 브라이드가 된다는 내용.15년후 정도에나 제작이 가능할 `킬빌3`을 위해 몇몇 장면을 미리 찍어놓았다고 하니 역시 타란티노 다운 발상이다.다음주에 계속

2009-07-03

`아버지의 깃발`

피 비린내 나는 참혹한 전쟁 속 비극·고뇌·갈등때는 2차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연합군은 유럽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군과의 태평양전투는 점점 치열해지고 있었다.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은 바로 일본 이오지마 섬.이오지마 섬 전투는 6천명의 미군병사가 사망하고, 1만 7천여명의 부상자를 기록하며 태평양 전투의 중요전환점이 되었는데, 1945년 2월 23일, 마침내 섬을 손에 넣은 미군이 수라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으며 끝을 맺는다.당시 5명의 해병대원과 1명의 해군병사가 성조기를 세우는 모습은 AP 통신의 존 로젠탈 기자에 의해 사진기로 찍히고, `이오지마 섬에서의 성조기 세우기`란 제목으로 신문 1면을 장식, 미국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고 로젠탈 기자는 퓰리처 상을 수상한다.깃발을 세운 6명 중 곧 사망한 3명을 제외하고 본국으로 송환된 생존 병사 3인은 영웅대접을 받으며 대국민 전쟁기금마련 행사에 동원되지만, 정작 본인들은 자신들을 영웅이라 생각하는데 대해 어색해하고 괴로워한다.이 영화는 그런 전장의 한가운데를 묘사함으로써 영웅주의의 탄생 배경을 묘사하고 그런 영웅주의가 탄생하게되는 사연을 추문한다. 본국으로 돌아온 세 전쟁영웅은 사실 자신들이 다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단지 자신들은 성조기를 세우는 옆에 있었을 뿐이고 우연히 그 깃발을 세우게 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깃발을 세우던 영광이 아니라 그곳에서 무참히 죽어나가던 동료들의 마지막 순간이다.그들은 자신들이 선 단상에서 자신들은 영웅이 아니고 그곳에 목숨을 바친 전우들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말한다.물론 이는 전쟁기금마련에 한몫을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그것은 그들의 진심이다. 아이라와 닥은 모형으로 만들어진 돌산을 기어오르면서 그 당시의 기억을 회상한다.우연찮게 거머쥔 영광이지만 그 영광은 결코 맛있게 씹어넘길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기억에 각인된 것은 그 전장에서 세운 깃발의 영광 따위가 아닌 피 흘리고 찢겨져 나간 채 죽어간 전우들에 대한 목도이다.이 작품은 우리가 전쟁을 기억하는 옹졸한 시선을 탐색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해 쉽게 간과해버리는 습성을 지적한다. 모든 것은 세월이라는 필터를 걸쳐 추억으로 미화되고 포장되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이 그 필터에 걸러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전장 한가운데 서보지 않은 이들의 지독한 무지함일 것이다.명예로운 애국심에 고개를 들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포격에 공포의 시선을 떨군 채 고개를 숙일 때 우리는 전장의 진실을 발견한다.우리가 미화하는 전쟁의 명예는 그 현장을 애써 포장하고자 하는 합리적 욕구의 발현과도 같다. 그 현장에서 죽어나간 이들의 본심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것을 명예로 미화하고 숭상한다.과연 그곳에 명예가 있는가. 그곳에는 인간의 죽음이 있다.승리와 패배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는 파시즘과 프로파간다에 휘둘려 내몰린 나약한 인간들의 피 비린내나는 비극들이 엉켜있다.정상에 꽂힌 알량한 깃발의 명예는 그 깃발을 위해 죽어간 수많은 비극들을 함구해버리게 만든다.전쟁의 참혹함과 영웅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