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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후판부의 독보적 기술, 세계 최고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

글로벌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주력 생산품으로 후판이 있다. 후판은 철강 제품 중에서도 두껍고 넓은 철판으로 건축, 조선,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이용되고 있다. 포스코가 생산하는 후판은 세계 최고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포항제철소 후판부 기술개발섹션 이영춘 포스코 명장. 그의 가족은 포항제철소 부지에 거주했던 이주민으로 태어날 때부터 포스코와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후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해 압연과를 전공했다. 1987년 4월 포스코 냉연부 입사를 시작으로 지금은 자타가 공인하는 골수 후판인이 됐다. 평소 업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 압연기능장, 열간·냉간 압연기능사, 열처리기능사, 금속재료시험기능사, 산업안전기사, IT-Professional 1급 등 수많은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러한 관심과 노력의 결과로 창립기념 모범사원과 올해의 후판인으로 선정되었으며, 2022년에는 후판부 최초로 명장의 자리에 올랐다.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현재 포항제철소 후판부 기술개발섹션에서 근무하고 있다. 후판부는 철강 제품 중에서도 두껍고 넓은 철판을 만드는 곳이다. 우리가 만든 후판 제품은 건축, 조선,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에서 고부가가치 강재로 사용된다. 저는 이러한 후판을 더욱 튼튼하고 고품질로 만들기 위해 가열, 압연, 가속냉각, 교정, 전단 등 압연 공정 전반에 걸쳐 품질, 생산, 환경, 안전 관련 기술 개발과 모든 문제 해결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후판 WTP(World Top Premium) 제품의 품질 향상을 위한 기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새로운 조업 기준을 정립 중이다. 또한, 후배 양성을 위한 기술 전수 활동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신입사원들에게 기본적인 품성과 주인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을 전담하고 있으며, 주임급 이상 핵심 직원들을 위해 설비, 품질, 압연 관련 이론과 실무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포스코의 후판 제조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들었다. 이 자부심의 근거는 무엇인지. △포스코 후판부 제품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우리는 모든 고품질 후판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에는 중국과 같은 후발 철강사와 단순히 가격과 생산량만으로 경쟁할 수 없다. 우리는 다른 철강사가 생산하지 못하는 고품질 제품을 주문받아 그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발휘해야 한다. 현재 포스코는 후판 공정에서 가장 생산하기 어렵다고 평가받는 4~6mm 두께의 초극박재나 WTP 같은 고품질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술력은 극저온용 니켈 초극박재, 티타늄, 방탄강이 적용된 다양한 신강종을 생산하는 데에도 활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포스코는 건설, 조선, 기계, 송유관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포스코는 강종별 최적 가열 기술을 개발하고 초극박 압연에 최적화된 압연 패스 스케줄 모델 기술도 개발해 생산 효율성을 높였다. 포스코 후판부의 독보적인 기술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것이다. -롤 얼라인먼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페어 크로스 설비를 활용했다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후판을 음식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후판을 ‘수제비를 만들기 위한 밀가루 반죽’이라고 생각해 보자. 밀가루 반죽을 얇고 균일하게 펴기 위해서는 ‘밀방망이’가 필요하다. 이때 적당한 힘으로 밀방망이를 사용해야 균일하고 일정한 두께로 펴진다. 후판을 압연하는 롤의 원리도 이와 같다. 압연기는 밀방망이처럼 후판을 원하는 두께로 만들기 위해 적절한 힘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롤이 너무 꽉 잡히거나 헐겁게 잡히면, 반죽이 고르게 펴지지 않는 것처럼 후판도 균일하게 압연 되지 않는다. 따라서 롤의 적절한 조정이 중요하다. 문제는 롤을 설치할 때, 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때 활용한 것이 바로 페어 크로스(Pair Cross) 설비였다. 원래 페어 크로스는 평탄도 제어를 위해 크로스 각을 조절하는 설비였지만, 롤 설치 시에도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설비를 이용해 롤을 최대한 고정하고, 필요한 유격만큼 벌려주는 방법을 시도했다. 내 아이디어가 들어맞아 압연기 롤 얼라인먼트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롤 얼라인먼트를 최적화하니 설비 강건화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당시 EIC기술부, 중앙/지구정비, 연구소와 협업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 경험을 통해 포스코의 저력은 현장 맨파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아무리 어려운 난제도 현장 전문가들이 모여 집단 지성을 발휘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지난 반세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인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말이 정확히 부합한다. 모든 정답은 항상 현장과 사람에게서 나온다. - 평소 동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건강이 좋지 못한 동료를 위해 직접 산삼을 채취했다고 하던데.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면 동료를 대하는 행동과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 주임으로 근무하던 시절, 평소 건강이 좋지 못한 동료가 늘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팀파워 활동의 일환으로 반원 4명과 함께 무작정 산으로 향했다. 아픈 동료를 위해 산삼을 직접 캐서 주자는 엉뚱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반원 중 누구도 산삼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달랑 사진 하나를 들고 산으로 갔다. 동료를 생각하는 우리의 정성을 산이 알아줬는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진짜 산삼을 캤다. “심봤다”하고 목청이 터지게 외쳤던 그 순간은 정말 감격스러웠다.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한국심마니협회에서 검증까지 받았는데 최소 10년에서 15년 정도 된 자연산 산삼이라고 했다. 그 동료에게 산삼을 전달하고 기뻤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주고 산삼을 사줄 수도 있었겠지만, 동료가 아파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그때의 경험은 동료애와 진심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엣저 롤 교체 방법을 혁신적으로 개선했다고 들었다. 평소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떤 노하우나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지. △엣저 롤(Edger Roll)은 철강 생산 과정에서 후판의 폭 방향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롤이다. 동료를 위해 산삼을 캐는 것만큼이나 힘든 작업이 엣저 롤 교체 작업이다. 이 롤은 수직 방향으로 서 있으며, 주기적으로 교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존의 교체 작업은 굉장히 힘들고 위험한 과정이었다. 크레인이 수직으로만 들어 올릴 수 있어 사람이 직접 당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민했다. 기존의 매뉴얼을 따르면서도, 그다음 단계에서는 의심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엣저 롤 교체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크레인의 구조와 엣저 하우징(Edger Housing)의 기계 구조를 이해하고, 간단한 치구를 제작해서 하우징 내 엣저 프레임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이 방법 덕분에 교체 작업 시간이 2~3시간에서 10~20분으로 크게 단축됐다. 이처럼 문제를 해결할 때는 기존의 공리를 의심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업, 정비, 외부 전문가의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며, 소재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항상 더 나은 설비 유지와 개선 방안을 찾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강종 변화에 따른 압연 구간별 롤러테이블 재질 개선이나 초극박 모델 제어도 이러한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 결국 잘 만들어진 매뉴얼을 따르면서도 선구자적인 마인드로 새로운 방법을 함께 시도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객사의 요구에 부응하는 품질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포스코의 ‘오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러한 주인의식이 일상 업무나 장기적인 목표 설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주인의식’은 사회생활이나 개인의 삶에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게 한다. 내 회사에 출근한다고 생각하면 일상 업무에서 소홀함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량이나 설비 장애가 발생하면 재발하지 않도록 주도적으로 개선하고, 안전하고 세계 최고의 경쟁력 있는 일터로 만들기 위해 자율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장기적인 목표 설정에서도 주인의식은 큰 영향을 미친다. 주인의식을 가지면 회사의 미래를 내다보는 시각이 생기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책임감은 포스코가 ‘존경받는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목표로 이어진다. 안전과 기술 경쟁력이 공존하는 현장을 만들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통해 포스코가 오랜 시간 동안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장에서 매일매일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 나가겠다. -앞으로 포스코 후판이 세계 최고 브랜드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계획인지. △포스코 후판이 세계 최고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론과 현장 경험이 조화롭게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체계적인 후배 양성을 목표로 삼겠다. 100년 기업 포스코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나는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명장의 역할은 개선과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가장 큰 역할은 인재 양성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섬김의 리더십’, 즉 서번트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유능한 인재들을 잘 육성하여 포스코가 강건한 현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포스코의 경쟁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이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후판을 세계 최고 브랜드로 확고히 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고 개선해 나가겠다. 끝 이영춘 후판부·기술개발섹션 포스코 명장은 △1969년 9월 22일생△포항제철공고 졸업(1987년)△87년 4월 6일 포스코입사(38년 근속)△올해의 후판인(2014년)△포스코 창립기념 모범사원(2014년)△포스코 명장(2022년) /임창희기자 lch8601@kbmaeil.com

2025-02-11

끈기와 인내란 굳은 신념으로 ‘고속 회전기계’ 일인자 자리에

“안되면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멋지게 해 봅시다.” 회전기계는 설비가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기계를 세운 후 빠른 시간 내에 수리를 진행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생산과 연계된 설비들은 시간을 다투기 때문에 모두 분해하고 천천히 살펴가며 일할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실패도 많고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들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끈기와 인내라는 굳은 신념을 갖게 했다. 고속 회전기계의 일인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설비기술부 중앙수리섹션 이정호(57) 부장이 걸은 길을 따라가 본다. - 현재 맡고 있는 업무는. ‘고속 회전기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달라. △1987년 8월 포스코 공무부 기계수리과에 입사하게 됐다. 압연설비 수리 업무를 시작으로 제철소 전반에 걸친 기계설비를 정비하는 일을 37년째 하고 있다. 기계에서 인위적인 동력은 그 처음 형태가 회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발전기도 돌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자동차 엔진도 실린더를 통해 회전 에너지 형태로 폭발력을 만들어낸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제철소 곳곳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회전기계가 존재한다.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제철소에 회전기계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제철소에는 많은 롤이 있는데 그 롤에 동력을 전달하고 속도를 조절하는 ‘기어박스’도 회전기계이고, 제철소에 미세분진 등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크고 작은 집진기에도 회전기계가 사용된다. 나는 이러한 기계설비 수리 지원, 설비 수명 향상, 정비 기술 개발을 통한 원가절감 및 생산성 향상, 그룹사·고객사·해외법인 등의 설비 기술 지원과 같은 동반성장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습득한 기술에 대한 이론과 실무 지식 및 노하우를 후배 사원들에게 전수하는 활동도 병행 중이다. - 이란 이스파한제철소(Esfahan Steel Co.)에서 포스코의 기술력을 펼치셨다고. △2011년 8월, 포스코 건설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았다. 이란에 있는 이스파한제철소의 소결공장에서 배기가스 팬을 가동할 때마다 심한 진동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고, 이에 따라 설비를 정상적으로 가동할 수 없었다. 원인을 파악하지 못해 공사 대금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설비회사의 전문가들이 다녀갔지만,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당시 소결공장 지원 팀장의 추천으로 나와 선배, 그리고 지구정비 및 조업 담당자까지 총 4명이 팀을 꾸려 현지로 향했다. 공정 집진기의 배기 가스 팬(Exhaust Gas Fan)에 사용되는 저널 베어링(Journal Bearing) 또는 메탈 베어링(Metal Bearing)이라고도 불리는 유막 베어링(Fluid Film Bearing)은 윤활유가 연속적으로 공급돼 매우 얇은 유막(Oil Film)이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진단 결과, 회전하는 샤프트의 저널부(축받이부)가 열적으로 팽창할 수 있는 적정 틈새가 부족한 것이 문제임을 인지했다. 현지에서 ‘스크래퍼’라는 공구를 어렵게 구해 베어링 안쪽을 긁어내면서 간격을 조정했다. 일주일 동안 스크래퍼를 손에 쥐고 베어링 안쪽을 긁어내는 작업을 반복했다. 당시 날씨가 덥고 손에 물집이 생기는 등 육체적으로 힘든 조건이었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작업을 마치고 시운전했을 때, 마치 거짓말처럼 진동이 사라졌다. 이스파한제철소 직원들에게 그동안 발생한 현상의 원인과 향후 수리 방향 및 관리 방법 등을 전수했고, 해외 현장 분위기도 180도 바뀌며 모두가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 신입사원 시절에는 업무가 익숙하지 않아 눈물을 뺀 실수도 있었다고. △나도 처음부터 문제 해결 전문가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기계수리 공장 작업 외에도 압연 지역 공장별로 대수리를 포함한 모든 수리 작업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현장 작업이 대부분이었다. 대수리 작업은 길게는 1~2주 넘게 이어졌다. 각 반단위로 수리에 사용하는 이동용 공구함이 있었는데, 대체로 신입사원이 이동용 공구함을 관리한다고 하여 ‘함장’이라고 불렀다. 매 작업에 필요한 공구를 준비하고, 작업이 끝나면 세척해 정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공구를 잘 관리하기 위해 현장에 공구대를 두고, 작업이 끝날 때마다 공구를 잘 챙겨서 정리한 뒤 이동용 공구대를 잠가 잃어버리지 않도록 관리해야 했다. 그러나 공구 이름도 헷갈리고 매일 챙긴다고 했지만, 하루는 공구대를 자물쇠로 잠그는 것을 깜빡해 버렸다. 그렇게 퇴근하고 다음 날 출근했는데 ‘체인블록’이라는 공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반장과 선배들에게 크게 꾸중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야근 근무 후 피곤이 몰려와 저녁을 일찍 먹고 잠이 들었는데, 출근 시간을 놓쳤던 적도 있다. 담당 반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까지 찾으러 왔다. 그때는 주인집 전화기로만 연락할 수 있었는데, 그날 주인집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여행을 가셔서 몇 시간을 동네를 돌며 나를 찾았다고 했다. 결국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연락이 닿았고, 서둘러 출근했다. 당시 크게 혼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선배가 “우리도 신입사원 때는 다 그랬다”며 따뜻하게 격려해 줬다. 이처럼 신입사원 시절을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숙했으며 배움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지금 포스코 후배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주인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본연의 업무에 적용한다면, 개인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이루고 앞으로의 100년 기업을 이끌어가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냉박음’ 아이디어로 2제강 2전로 경동장치 문제를 해결하신 스토리를 들려달라. △신입사원부터 쌓은 경험과 노하우는 나를 문제 해결사로 성장시켜 주었다. 2010년 7월, 포항제철소 2제강공장 2전로 합리화 공사가 있었다. 전로를 기울이는 데 필요한 경동장치를 트러니언 링 샤프트(trunnion ring shaft)라 부르는데 이를 조립하던 중 문제가 발생했다. 경동장치를 조립하다가 전체 조립 길이 1400mm 중 730mm 정도를 남기고 조립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당시 현장으로 출동했는데 그 상태에서 더 이상 분해, 조립이 되지 않아 조업 생산 예상 손실액이 하루에 5억 원 이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조립되지 않은 부분의 샤프트(Shaft)를 절단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절단 방법으로 경동장치를 분리했을 때 신규 제작 기간에는 최소 몇 달이 소요됐다. 가슴이 타들어 가는 듯 고민하다가 머릿속에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경동장치 조립부와 트라니언 샤프트의 조립 틈새가 부족해서 꽉 끼어져 있었기 때문에 트라니언 샤프트를 액화질소로 수축시켜서 틈새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다만, 아이디어를 말하긴 했는데 마음 한쪽 구석에는 불안감도 있었다. 마지막에 ‘깡’하는 소리와 함께 경동장치가 끝까지 조립이 완성됐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 느끼기 어려운 기가 막힌 경험이었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인생을 살아가면서 회사 업무나 대인관계를 돌아보면, 긍정적인 생각과 대화가 문제를 더 빠르고 쉽게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서로 이해하고 대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마다 성격과 가치관의 차이가 있지만, 긍정적인 태도로 대화를 시작하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곤 했다. 인생에서 힘든 시간은 반드시 지나가며 그 경험들이 나를 더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자기 일을 사랑하고 스스로 멋진 일이라고 믿으며 생활하고 있다. 현재의 성실함은 미래의 보답으로 이어진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먼저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면 오늘 하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자고 생각한다. 이왕 할 일이라면 피하지 말고 불가능은 없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 앞으로도 포항제철소에 수많은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 좋을지. △최근 경제 관련 기사들을 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되고 환율이 급등하면서 철강 수익이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또한, 중국 내수 시장의 부진으로 인해 중국산 철강재가 한국으로 대거 유입되면서 철강 업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보도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제철보국’이라는 소명 아래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던 시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포스코 창업 정신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주인의식을 가지고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소통하여 하나의 마음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한자 성어처럼 동료와 선후배, 그리고 모든 이해관계자가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한 걸음씩 다가가는 자세로 함께 미래로 나아가면 좋겠다. 이정호 설비기술부 중앙수리섹션 포스코 명장은 △포항제철소 올해의 정비명인(2013년)△설비기술부 혁신 i상(2015년)△포스코패밀리 대상(2016년)△포항제철소 제안활동 우수사원(2020년)△포스코명장(2020년)△포항시 최고장인(2021년)△대한민국우수숙련기술자(2022년)△경북도 최고장인(2024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5-01-15

포스코형 ‘내화물 열풍 건조 장치’ 3종 만들어 대한민국 특허

“모든 원인과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김수학(62) 제선부 기술개발섹션 포스코 포항제철소 명장이 처음 인연을 맺었던 주물선고로는 330㎥ 크기였다. 입사 후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주물선고로가 1080㎥ 규모의 신주물선고로로 대체됐다. 자연스럽게 그는 고로를 건설하는 단계부터 이 프로젝트의 진행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주물선고로와 인연을 맺고 설비관리를 총괄하며 지낸 지 22년이 흘렀을 때였다. ‘종풍’. 설비를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폐쇄하는 것을 말한다. 2012년, 종풍 후 보전작업을 거쳐 2021년 이 주물선고로를 완전히 철거하는 공사에도 참여했다. 주물선고로는 일반고로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고로조업에 필요한 모든 과정은 다 필요하다. 또한 고로가 겪을 수 있는 모든 문제 또한 다 겪을 수 있다. 그렇기에 주물선고로와 함께하는 동안 김 명장은 고로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경험하고 배웠다. 고로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을 품은 김 명장에게 숙련기술인의 길을 들어 본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과정은. 1962년 부산에서 3남1녀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부산에서 생활하다가 강원도 철원에서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 서울에 머물던 중 우연히 신문에 난 포스코 모집 광고를 보고 지원해 입사하게 됐다. 1986년 12월 포스코에 입사한 후, 제선 분야에서 38년째 근무 중이다. 입사 초기부터 2012년까지 고로 공장에서 전 공정을 경험했다. 이 과정에서 고로 건설부터 조업, 폐쇄, 보전, 철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행하며 전문성을 키웠다. 2012년 이후에는 제선부 기술개발 섹션에서 내화물 품질관리 및 관련 기술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 제선부 기술개발섹션 업무는. △고로 주상내화물 품질관리, 송풍지관 수급 및 건조작업, 고위험 수작업 기계화 추진, 저근속사원 기술 지도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공장 내 낭비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공정 개선과 신기술 적용, 장비 개발 업무도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에 고로의 노심 활성화 장비 성능 향상과 내화물 잔존 측정을 위한 3D 스캐닝 기술 적용 등 혁신적인 기술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 주물선고로란 무엇인지. 그 역할은. △주물선고로도 용선을 뽑아내는 고로이다. 다만, 일반 고로의 용선과는 성분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고로에서는 철광석과 코크스로 용선이라는 쇳물을 뽑아내고, 이 용선을 제강공정에서 받아서 취련을 거친 뒤 압연공정으로 보낸다. 제철공정을 아주 단순하게 표현하면 그렇다. 그런데 때로는 제선공정, 그러니까 고로에서 생산하는 쇳물의 양과 제강공정에서 필요로 하는 쇳물이 양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제강에서는 용선이 100만큼 필요한데 고로에서 생산하는 양이 90이다. 이럴 때 주물선고로가 용선 수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제강에서 용선이 부족할 경우 주물선고로에서 생산한 용선으로 모자란 양을 보충해 주는 거다. 반대로 고로 생산량이 제강 사용량보다 많을 경우 주물용 냉선, 즉 괴(塊)의 형태로 만들어 완제품으로 판매하거나 제강에서 사용하도록 하니 용선 생산 밸런스를 맞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황에 따라 주물용 냉선은 부가가치가 높은 완제품이 되기도 했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입사 후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신주물선고로(용광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자연스럽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주물선 고로의 탄생부터 종풍까지 모든 순간을 지켜봤다. 완벽하게 조건이 갖춰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무(無)의 상태에서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과정이 힘들었다. 그만큼 기쁨 그리고 아쉬움까지,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게 해준 고마운 설비였다. 한 사람이 이렇게 설비가 태어나 사라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지만 고단함을 잊을 정도로 귀중한 경험이었고, 인생에서 단 한번 뿐인 경험이었다. - QSS 시범요원 활동 경험을 들려달라. △2006년 QSS(Quick Six Sigma)라는 단어나 개념이 낯설던 시절, 시범요원으로 선발돼 개선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관련 지식이나 인프라가 전무한 상태였지만, 외부 컨설턴트의 도움을 받아 개선 활동을 수행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보완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툴을 만들고, 낭비 요소를 발굴하여 다양한 개선 활동을 발굴했다.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더 많은 QSS 인재들이 양성돼 현재까지 QSS 개선리더 53기가 배출됐다. 각 현장을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2025년은 QSS 활동이 2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 QSS2.0이라는 버전으로 새롭게 출발할 예정이다.이를 통해 더욱 혁신적이고 효율적인 개선 활동을 이어 나가며, 포스코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 확신한다. - ‘내화물 열풍 건조 장치’를 개발해 특허 취득까지 이뤄냈다고. △브라질 CSP(Companhia Siderurgica do Pecem) 제철소에 설비관리기술 슈퍼바이저로 파견 근무를 했었다. 당시 현지 제철소에서 우리와 다르게 운용 중인 내화물 건조 장치를 보고 영감을 받아 ‘포스코형 내화물 열풍건조장치’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포스코가 고로 조업을 시작한 이후, 무려 50년간 사용하던 기존 직화 방식을 뿌리째 뽑아내고 새롭게 현장을 바꾸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유럽 아르셀로미탈과 티셴크루프 등 선진 철강사 벤치마킹을 통해 수없이 검증하고, 전문가들과 연구를 거듭하는 등 끊임없는 도전 끝에 포스코형 내화물 열풍 건조 장치 3종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포스코에 가장 적합한 장치를 개발해 광양제철소에도 적용했으며 전사적으로 품질, 원가, 안전, 환경 등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만한 성과를 냈다. 이 장치 덕분에 대한민국 특허까지 획득할 수 있었다. - 명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명장이 된 후에도 다른 직원들과 똑같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포스코 신입사원 특강, 명장과의 대화, 포스코 기술대학 과제 활동 지도, 저근속사원 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하우를 전수하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직원들이 현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고자 노력 중이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나의 인생철학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훌륭한 자식보다 행복한 자식이 되기를 원한다. 이를 실천하는 방법은 총 2가지이다. 첫째, 가정을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다. 가족들을 소중히 여기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둘째, 회사 생활에서도 가정과 같이 모든 일을 내 일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평소 젊은 후배들에게도 주인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모든 인생에서 ‘주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다 보면 모든 일에 기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지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포스코는 일반 기업과는 다른 특별한 회사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주인 없는 회사’ 라고 말하지만, 포스코는 회사 구성원 모두가 주인이고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자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자랑스러운 우리의 철강기업이다. 현재 철강업계 불황, 제철소 위기 상황 등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이지만, 위기 앞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주인 정신’으로 구성원 모두가 회사를 지켜나갈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세계 속에서 우뚝 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수학 제선부 기술개발섹션 명장은 △올해의 용선인 선정(2011년) △포스코회장 표창(2012년)△브라질CSP 고로조업 및 설비관리기술 전수(2016년)△제선조업 혁신기술개발 대한민국 특허(2018년)△포스코 명장(2021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2-15

“설비 매뉴얼·도면·정리정돈… 조업 현장의 필수 수칙이죠”

“기술이 곧 희망입니다.”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에너지정비섹션에 근무 중인 이정한(61) 포항시 최고장인. 그는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평생을 기술 발전에 헌신해 왔다. 이정한 최고장인은 동력설비와 제철소 전체 유틸리티 공급을 담당하면서, 여러 중요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의 노력과 열정은 포스코 내에서 일찌감치 인정받았고, 여러 특허와 제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 장인의 인생 여정과 그의 철학,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도록 한다. - 전기를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호롱불로 생활하던 초·중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전기를 접하게 되면서 놀랍고 신기한 모습을 보고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결심은 경북공업고등학교 전기과로 진학하게 만들었고, 이후 전기 분야에서 경력을 쌓는데 큰 동기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 형편상 대구에 전세방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대구에 사글세를 얻어 혼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생전 처음으로 혼자 생활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부터는 사글세 주인집 초등학교 아들 두 명을 과외를 해가며 생계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저에게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해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고 했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늘 학업에 열중했다. 그 결과 항상 1~3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 포스코에서의 경력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설비개선 및 프로젝트는. △포스코에서 제철소 고로 송풍 설비와 에너지설비의 정비 업무를 담당해 왔다. 에너지설비란 제철소 전체 전력, 부생가스, 스팀, 용수 등을 공급 및 감시하는 설비이다. 입사 후 신입사원을 막 벗어날 때쯤 발전설비 신설에 따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주) 터어빈 제어 기술 연수를 받았다. 설비에 대한 능력을 키우고 선진 기술과 문화를 배워 좀 더 빠른 설비 시운전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때 배운 기술과 일본의 기술을 접목해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어 책으로 편철했다. 그 중에서도 1990년 대부분 일본 설비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설비를 프린터 로깅 인터페이스 장치 개발로 국산화 시켜 원가 절감과 대일 무역 역조방지에 큰 성과를 이루었다. 제철소 고로에 Air를 공급하는 송풍 설비가 일본 설비로 조업하고 있을 때였다. 노후 열화로 교체 추진 중 같은 일본 메이커로 교체하자는 의견이 다수 있었지만, 독일 설비로 개조 교체해 성능 향상과 운전 중 전력이 절감되는 성과를 이루어서 가슴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송풍 설비 메탈 베어링의 오일 리크 문제점을 여러 시행 착오 끝에 완벽하게 개선했다. - 이러한 기술을 특허 노하우에 등록해 기계장치 설비개선에도 자신감이 생겼다고. △제철소 송풍 설비 문제점으로 조업 불가능한 답답한 환경에서 솔루션 아이디어를 제공해 문제점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조기에 설비를 복구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광양 제철소, 울산 SK공장, 울산 효성 공장에 기술지도를 하기도 했다. 제철소 송풍 설비 기동장치 독일 연수를 통해 기술을 습득해, 외국 기술자만 시운전 하던 것을 자체 기술력만으로 시운전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것은 신규 설비에 자신감을 가지는 계기가 됐다. 교체 성공한 설비에 대한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SIEMEN와 공동으로 유튜브로 제작해 홍보하기도 했다. 이 같이 제철소의 다양한 에너지설비의 신설과 개조, 개선업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한 것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현재는 제철소 가스, 발전, 전력, 용수설비 기술지원과 문제점에 대한 검토 그리고 안전하게 작업하는 방법으로 위험성 평가, 잠재위험 발굴 후 문제점에 대한 대책수립등을 하고 있다. 제철소 핵심 설비 정비와 문제점 개선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나의 노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특허 우수상, 우수 제안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 현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설비 매뉴얼과 도면, 현장 정리정돈이다. 설비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도면을 정독한 후에 접근을 해야 한다. 도면 이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비하는 것은 실이 없는 상태에서 바느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기담당자라면 100%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는 전기 작업을 수행하지 않아야 한다. 즉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전기도면을 숙지한 후에 작업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비업무를 수행해 오면서 느낀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문제점이 발생돼 설비가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꼭 도면을 보고 내용 확인 후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현장에 나가서 설비를 보면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나가면 쉽게 설비복구가 가능했다. 지금도 습관이 돼 이렇게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래야 안정된 설비운전이 가능하고 현장에서 단 한 건의 실수도 없으며 안전사고 발생 없이 작업수행이 가능하다. 불필요한 낭비 발생도 방지할 수 있는 일거양득이다. 설비 대·중수리를 실시하는 경우 수많은 부품들을 교체하고 수리함에 있어서 사전에 충분한 도면 검토와 현장 확인이 되지 않고는 절대로 설비의 품질과 안전한 작업을 장담할 수가 없다. - 포항시 최고장인으로서 후배 숙련기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배운 기술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많이 전수해 주고 욕심을 내기 보다는 베풀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인생은 결코 길지 않다. 전문기술과 지식 그리고 노하우는 기회가 있을 때 배워야 한다. 어느 회사에 입사하든지 신입사원때 배운 지식이 평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본인이 맡고 있는 설비나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면 자연스럽게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해 나간다면 언젠가 최고의 기술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의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늘 책과 함께 있어야 하며 부족함이 없도록 숙지하고 배워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초스피드 시대이다. 지금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도태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다. 힘들고 피곤하고 어렵다고 하지 말고, 항상 노력하고 정진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 인생 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도전 정신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고 방식과 최선을 다 해보자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도 않고 안된다는 말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이다. 물론 안될 수 있겠지만 먼저 최선을 다해서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지금까지 배운 지식을 후배사원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전수해주고 안전하게 작업하는 방법과 원칙을 준수하면서 작업하는 방안을 공감하도록 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고 싶다. 욕심은 끝이 없겠지만 포항시 최고 장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인생 비전 3가지가 있다. 첫째, 우리나라 문화와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하는 역사 해설가 되어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부분을 세계 널리 알려주면서 우수하고 부지런한 국민이라는 것을 인식해 주고 싶다. 둘째,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책임감 있게 일하며 누구에게나 부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셋째, 내가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 앞으로의 목표는. △포항시 최고장인으로 선정된 후에도 기술 전수와 멘토링을 통해 후배들의 직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하우를 전수하고 제철소 현장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선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국가자격시험 실기 감독과 기업의 생산성과 안정된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술이 곧 희망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최고의 기술을 습득하고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포항시와 포스코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또한 경주시 천북면에 소재한 아동복지시설 대자원에서의 나눔의 실천 봉사활동과 대한적십자사 후원활동을 지속하며 따스함을 세상에 나누고자 한다.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에너지정비섹션  이정한 포항시 최고장인은… △경북공업고등학교 졸업(1981년) △포항전문대학 졸업(1988년) △포항시 최고장인(2022년) △포항제철소 제안 협의회 회장(2022년) △한국해양안전협회 포항시장 표창(2023년) △한국산업인력공단 감독위원(2024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1-27

전로 취련조업 무결함 ‘기록 제조기’ 역사를 쓰다

“취련사는 목표 온도와 성분에 맞게 쇳물을 조리하는 요리사와 같습니다.” 제철소에서는 생산직 중 유일하게 취련 작업자에게 ‘사’자를 붙여 ‘취련사’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제강공정은 철을 만드는 중간 단계이다. 포항제철소 철강제품의 70~80%가 제강부를 거쳐간다. 어떤 성분으로 쇳물을 만드는지에 따라 철강제품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포항제철소 제강부 3제강공장 이영진(56) 포스코 명장에게 취련사의 길에 대해 들어본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내가 태어난 곳은 버스와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누나 두 명과 나,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 나는 누나들과 함께 작은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누나들과 헤어져 경기도 가평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가 학비 무료, 기숙사 제공, 군 입대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새롭게 전환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먼 데까지 가서 공부할 수 있겠냐”며 걱정부터 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가족을 떠나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포항으로 오게 됐다. 처음에는 고향 생각과 외로움 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다. 포철공고 제강과를 졸업한 후, 1987년 곧바로 포항제철소의 심장 제강부에 입사하게 됐다. 이때부터 나는 용선(쇳물)을 다루는 취련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 현재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포항제철소의 심장이라 불리는 제강공정, 그중에서도 3제강공장 전로파트는 철강제품의 성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용선에 산소를 불어 넣는 양을 조절하고 황, 인, 탄소와 같은 불순물을 제거해 질 좋은 철강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과정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기 위해 너무 졸여버리면 짠 음식이 되는 것처럼 쇳물 중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산소와 냉각재를 투입해야 한다. 무조건 산소를 많이 불어넣으면 용강의 청정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을 처음 지을 때, 프로젝트 건설요원으로 공장 건설에 뛰어들었다. 당시 23년 차가 되던 해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된 것이다. 주변서는 익숙한 업무를 뿌리치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만류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공장을 처음부터 계획해 보는 일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특성에 따라 각종 표준을 만드는 기초적인 작업을 하면서 때론 아주 힘들었지만, 평생 남을 경험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설비와 공장을 다 지어놓고 시운전을 앞둔 상황에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에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가 터지지는 않을까?” 매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결국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와 눈썹이 빠지는 지경까지 갔다. 당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 속에서 포항 시민들의 따뜻한 응원과 지원 덕분에 큰 힘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포항 시민들이 나서서 떡도 나눠주고 성공적인 공장 가동을 위해 응원의 목소리를 내줬다. 포항 시민들은 큰일이 있을 때면 이렇게 한결같이 포스코를 지지해 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덕분에 3제강공장은 무사히 착공돼 지금까지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무결함 작업으로 ‘기록제조기’라는 별명이 있다고. △자랑 같아 보일 수 있지만, 회사에서 “취련 좀 한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무결함 작업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비법은 몇 가지 중요한 요소에 기인한다. 첫째, 철저한 준비와 분석이다. 항상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 먼저 작업한 취련사의 작업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를 통해 작업의 흐름과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할 수 있는지를 찾았다. 둘째, 집중력과 끈기이다. 취련에 들어가면 작업에만 몰두한다. 작업이 의도한 대로 온도와 성분이 나오면 보람과 희열을 느끼지만, 좋지 않게 나올 경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레스조차도 나에게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셋째, 지속적인 학습과 개선이다. 항상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배우고, 이를 실제 작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금속제련기술사, 제강기능장, 제선기능장, 주조기능장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고, 특허출원 5건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동료와 수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더 나은 작업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열정과 책임감이다. 취련사 직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와 함께한 지난 시간 동안, 회사와 함께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더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지속 노력할 계획이다. - 국내 최초로 전로 출강 작업 자동화에 성공한 스토리를 들려 달라. △제강공정에서 작업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전로에 담긴 쇳물을 래들에 옮겨 담을 때이다. 이를 ‘출강작업’이라 부르는데 쇳물을 전로에서 정련한 뒤 깨끗한 쇳물만 분리해 내는 고위험 고기술 공정으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품질 및 작업 편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처럼 중요한 작업을 수작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포스코는 2018년 전로 출강 작업 자동화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관련 핵심 기술은 원격으로 고열의 출장 조업을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공정 자동 프로세스이다.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돌발 상황을 제어하고, 출강 작업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가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결과, 작업자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작 버튼을 한 번만 클릭하면 출강 공정에 필요한 7가지 절차가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이를 통해 전로 운전자는 더욱 안전하게 작업함과 동시에 연평균 4.5건의 품질 불량을 사전에 방지하고, 연간 수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3제강공장에서 생산되는 전체 강종의 약 90% 이상이 출강 자동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새로운 실적을 발굴하는 것도 좋지만, ‘협력과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생각한다. 선후배가 함께 만들어내는 ‘조직의 힘’을 믿고 있다. 협력은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 조직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팀워크는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협력과 팀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성과는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며, 공정한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동기 부여를 자극한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조직을 끌어 나갈 때, 새로운 실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 명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현재 작업자 안전, 품질향상, 생산성을 중심으로 명장이 되기까지 터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특히,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 수칙 준수와 효율적인 작업 방법을 강조하고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이제 퇴직이 4년 남짓 남았지만,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다. 그래서 후배들이 현장에서 겪을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인의 명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나의 인생 철학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다. 이 말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과 도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세상의 이치이다. 어떤 일이든지 노력과 헌신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배들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자신만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 더 큰 성과를 이뤄내고, 새로운 50년 철강 산업의 미래를 주도해 나가길 바란다. 어려운 도전에도 좌절하지 않고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완벽하게 해내고자 노력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철강 산업은 마치 배고프고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서로 협력하고 힘을 모은다면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다면, 이 겨울은 반드시 끝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힘을 모으며 배려해 새롭게 도약할 원동력을 준비해야 한다. 이영진 제강부 3제강공장 명장은 △금속제련기술사(2006년)△포스코 기술대상(2015년)△포항시최고장인(2020년)△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인(2021년)△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위촉(2021년)△포스코명장(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1-20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운전자는 계기판을 보고 속도를 조절한다. 여기서 계기판에 표시된 속도가 ‘계측’이라면, 속도를 내거나 줄이는 게 ‘제어’이다. 우리의 일상은 알고 보면 ‘계측과 제어’로 구성돼 있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살 때도 저울의 눈금을 보고, 주유소에서 주유할 때도 기름의 양을 숫자로 본다. 산업현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일상보다 현장의 계측은 더욱 빈번하고 극도로 정밀하게 이뤄진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계측제어 전문가인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계장정비섹션 이경재(60) 포스코 명장을 만나 섬세함을 배워 본다. -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포항제철소에는 계측기가 무려 4만5000여 대가 있다. 이 모든 계측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해서 유량, 압력, 온도, 레벨, 무게 등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측기는 사람이 정량화하지 못하는 많은 종류의 설비 상태를 숫자로 보여준다. 나는 이 계측기가 오차 없이 정확하게 측정하는지 진단하고, 교정하는 일을 한다. 계측기를 제어하는 DCS(분산제어시스템)에 대한 문제 해결 및 개선 방안 도출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또한 기술 검토 및 사양 설계, 후배 양성교육 등 기술 전수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 업무를 하면서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는. △제철 공정 중 연주설비는 용강을 천천히 흘려보내면서 냉각수를 분사해 고체 슬라브를 만들게 된다. 냉각수의 분사량에 따라 슬라브의 품질이 결정된다. 냉각수가 많으면 급격히 냉각돼 크랙이 발생하고, 적으면 블랙아웃이 발생하거나 강도가 약해진다. 2016년, 우리는 쇄빙선 선두의 철판이나 컨테이너선 갑판에 사용되는 후판 400㎜ 특수강 주편 생산을 해야 했다. 특수강 생산을 시도했지만, 냉각수의 미세 유량 제어 문제로 인해 품질 불량이 자주 발생했다. 이에 따라 수요자는 구매를 꺼리기 시작했고, 제조 원가 손실도 증가했다. 운전, 정비, 기술부서가 모여 대책을 검토한 결과, 84대의 제어밸브를 교체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기존 제어밸브는 15~80% 범위에서 사용됐지만, 특수강 조업에서는 5~10% 범위에서 제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주설비 구성상 모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나는 제어밸브의 특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연주공정의 냉각 조업 패턴은 몰랐다. 그래서 기초부터 조업 기술을 파악하고 실적을 분석했다. 제어밸브 동작 특성을 5~60%로 바꾸고, 특수강 제어용 PID 제어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일반강 품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문제가 남아 있었다. 50일간 밸브 특성을 개조하고 프로그램을 개선해 미세 유량 제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 결과, 크랙 발생 품질 불량을 0.8%로 낮추는 획기적인 개선을 이뤄냈다. 모두가 변화를 두려워할 때, 그간 쌓아온 밸브 특성과 제어 이론의 전문지식, 새롭게 습득한 조업 이론을 접목시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어떤 문제든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며, 모르는 것을 알아내려는 평소의 지론이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라는 질문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안전 이론이 있다. 이는 모든 현상이 하나의 원인에서 기인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깊이 숨어있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케이블이 자주 끊어지는 고장이 발생할 때, 단순히 해당 부위의 환경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수리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 환경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재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이론부터 먼저 파고들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아기가 울 때 엄마는 배가 고픈지, 기저귀가 젖었는지 아이의 입장에서 알아차리고 돌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다. 직장은 학교나 군대와 달리 단기간에 관계가 끝나는 곳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관계를 이어가는 집단이다. 따라서 후배라면 선배의 입장에서, 선배라면 후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먼저 다가가는 소통 방식이 중요하다. 이는 직장 생활의 보람을 배가시키는 요령이라고 확신한다. - 배드민턴 불모지 포항에 생활체육 클럽 31개를 만들었다고. △내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특기를 가지라고 권장하는 편이다. 나 역시 배드민턴을 취미이자 특기로 즐기고 있다. 처음에는 당구, 탁구, 테니스를 하다가 일본 유학 시절 학교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배드민턴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배드민턴이 대중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느끼고, 다른 운동을 모두 그만두고 배드민턴에만 몰두하게 됐다. 한국에 돌아온 뒤, 포항에서 배드민턴을 하려고 보니 중앙고등학교와 포항공대 체육관에서 소규모 인원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1997년 6월, 12명을 모아 포항시 첫 생활체육 클럽인 ‘포스피드’를 만들었고, 주변 학교를 설득해 생활체육 배드민턴 연합회까지 탄생시켰다. 지금은 엘리트 체육과 생활 체육을 합쳐 31개 클럽, 3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포항시 배드민턴협회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정과 회사생활, 배드민턴 활성화까지 노력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첫째가 5살, 둘째가 100일 지난 시점부터 시작했으나, 아내와 수많은 갈등도 있었다. 심지어 애꿎은 라켓을 부러뜨리며 다시는 배드민턴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해심 덕분에 지금의 큰 협회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배드민턴을 통해 남 앞에 서는 것을 꺼렸던 성격이 바뀌었고,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었다. 그래서 후배 숙련기술인에게도 자신의 특기를 가지라고 적극 추천하고 싶다. - ‘소프트웨어 개선’으로 전국 최초 자주관리대회 동상 수상 이야기를 들려달라. △1989년, 입사한 지 5년 정도 됐을 때였다. 당시 제강 탈가스 공정의 설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공정은 쇳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여러 종류의 합금철을 투입해 용강의 성분을 맞추는 작업이다. 매일 현장 설비 점검을 마치면 운전실에서 조업하시는 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업 방법이나 불편사항, 설비 성능 개선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보니 운전과 조업에 대해 깊이 알게 됐다. 가끔 직접 조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어느 날 용강 성분을 조정하기 위해 3~8종류의 합금철을 한 종류씩 투입하는 것을 보고, 문득 ‘한꺼번에 투입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한꺼번에 투입해도 성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프로그램 개선을 시작했다. 운전부서의 협조를 받아 수차례 테스트를 거친 결과, 투입 횟수를 1~2회로 줄여 탈가스 공정의 경처리 조업시간을 20분대에서 10분대로 단축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단순히 제어 시스템의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업 방법에 대한 이해도와 완벽한 제어의 균형을 통해 실질적인 기술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 당시 경북도, 전국 대회를 거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소프트웨어 개선이었기 때문에 “진짜 개선된 것이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에 “기계장치나 전기설비 등 눈에 보이는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프로그램을 활용한 개선이 더 큰 성과를 가져오고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설비 소프트웨어 개선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나만의 지침을 만들어 늘 체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포스코에 입사한 후, 나는 1제강 공장에서 계장정비 업무를 맡았다. 이때부터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라”,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마라”, “내가 하는 업무에 최고가 되어라”, “대인관계는 나를 위한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후회하는 행동은 두 번 이상 하지 않겠다”라는 셀프 지침을 세우고 실천해 왔다. 명장이 된 후, 6년이 지난 지금도 “모르는 것을 묻지 않는 것이 창피한 것이다”라는 단순한 지침을 추가해 그 틀을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 앞으로의 포부는. △포항제철소는 스마트팩토리 구축, 4차 산업혁명 등 기술의 변화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계측제어는 안전, 품질, 생산, 에너지 등 모든 분야의 기초이다. 어떤 종류의 AI, 빅데이터라도 계측제어를 통해 기초 데이터의 신뢰성이 높고 정확해야 성공할 수 있다. 고급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집이라면, 건물의 기초가 바로 계측제어의 역할이다. 탄탄히 다진 기초 위에 새로운 집을 지을 수 있다. 오차가 크고 수시로 흔들리는 데이터로 집을 짓는다면 그 집은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다. 특히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소홀해지기 쉽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하고 있는 계측제어 분야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동시에 계측제어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넓히는 일에도 힘쓰고 싶다. 또한 이제 시작되는 수소환원제철 공법의 수소안전관리를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숙제이자 사명이다. 포항제철소 EIC기술부 이경재 포스코 명장은 △포항제철공고 졸업(1984년) △전국자주관리대회 동상(1989년) △전사 제안왕(1990년) △일본 산업기술단기대 졸업(1997년) △포스코 명장(2018년) △위덕대학교 신재생에너지공학과 기업전문교수(2020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1-05

불가능을 가능으로… 제철산업 변화 이끈 팀워크의 힘

“우리 기술로, 2열연공장 RM 전동기 수리 기간을 6개월에서 나흘로 당겼습니다.” 제철 설비는 거대하고 정밀해 다양한 기술이 결합한 종합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설비는 모두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며, 신경망처럼 구성돼 있다. 이러한 거대하고 복잡한 설비를 구동하는 에너지원은 전력기반 설비이다. 우리의 기술을 정립했다는 자부심은 조직의 단결력을 높여 업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성공 사례를 통해 제철소 내부에는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조직 문화가 확산했다. ‘나’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손병락(65) 1호 포스코 명장의 인생길을 따라가 본다. -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은 업무는. △1977년 4월, 처음 포스코에 입사해 본격적인 철강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입사 후 전기수리과에 배치되자마자 제강공장 화재 사고 복구에 투입되면서 전기 설비와의 인연을 맺었다. 현재 전력기반설비 중 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등 주요 전자기기의 투자 설치 관련 기술 검토, 설비 유지관리 및 설비, 정밀 절연 진단을 통한 잔존 수명 예측 및 수명 연장 기술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설비 경쟁력을 향상하고, 다양한 설비의 국산화 개발과 설비 표준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이 외에도, 후배 양성을 위한 기술 전수 활동과 어렵게 취득한 기술의 사장 방지를 위해 기술 형식지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000년 어느 날, 포항제철소 2열연 공장의 RM 전동기가 소손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의 기술로는 수리가 어렵다고 판단해 일본 엔지니어에게 긴급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엔지니어가 “한국에는 장비, 자재, 인력 등의 문제로 일본에서 수리를 진행해야 하고 6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당시 우리의 기술을 적용해 수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차피 6개월이 걸린다면 1~2일 늦게 출발해도 전체 공정에 큰 영향이 없으니 이틀만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고 상사에게 요청했고, 팀원들을 설득하여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무모함이 통했는지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포스코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재료, 기술 인력의 부족함을 극복하며 수리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 엔지니어들도 우리의 방법과 기술에 가능성을 보았고,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놀랍게도 6개월이 걸린다는 수리를 단 4일 만에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회사는 안정적으로 생산 계획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동일한 고장 복구 작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게 됐다. 수리품이 현장에 설치돼 정상적인 압연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고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 그날 퇴근길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뿌듯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나를 웃음 짓게 한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직원의 건강과 안전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이 안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직원이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준수하고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주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이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첫째, 올바른 가치관을 통해 조직이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는 윤리성이 중요하다. 둘째, 끊임없는 소통으로 조직을 하나로 뭉치는 화합의 기술도 필수적이다. 셋째, 조직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더 큰 목표를 만들어내는 수용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넷째, 지속적인 자기 계발을 통해 업무를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과 다섯째,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한 공동의 꿈을 제시하고 지속적인 혁신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건강 악화로 인생 최대 위기를 겪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4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때로는 질책과 시기도 있었고, 격려와 행복, 보람도 있었다. 항상 일에 대한 자부심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일이 아닌 건강 문제였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의사로부터 대장암이라는 진단 결과를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녀가 학업과 국방의무 중이었고, 연로한 부모도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 집안의 장남이자 가장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던 일을 후배 직원들에게 나누어 맡기기는 했지만 걱정만 들었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정말 고맙게도 회사와 동료들은 내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 건강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당시 팀장은 “건강을 회복하고 자리를 지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 달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지며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낫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 지금은 치료와 철저한 관리를 통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를 살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포스코에서 근무하며 ‘자율권이 넘치는 일터’라고 생각했다고. △포스코의 일하는 방식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회사는 내가 제안하는 방법이나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대해 항상 실행할 기회를 주었다. 수많은 도전과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상사들은 그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도전할 힘을 주곤 했다. 실패 뒤에도 질책보다는 항상 격려가 먼저였고, 질투보다는 협조가 있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언제나 해보고 싶은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특히 힌남노 복구작업 당시 부소장에게 전동기 복구 방안을 보고했다. “인력, 예산 고민하지 말고 손 명장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아무리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라도, 고졸 명장에게 사운이 걸린 일을 일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에 대한 자율권이 주어지는 신뢰를 만들어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현장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이끌어준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있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선배가 됐다. - 명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명장이 된 후, 철강기술대학 및 포스코 신입사원 교육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차세대 제철소의 기둥이 될 젊은 후배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이 다음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작게는 개인의 발전에서 크게는 인류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다. 혼자 꾸는 꿈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함께 이루는 꿈이라면 달성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꿈꾸는 만큼 성장하기에 꿈이 커야 그 꿈이 깨지더라도 큰 조각이 남는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포기하거나,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해봤는데 어렵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고 멈추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유에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있게 추진해야 한다. 혁신하고자 하면 언제나 실패와 좌절은 뒤따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를 무서워하거나 질책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혁신은 언제나 모험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에 숨어있는 협동, 격려, 칭찬, 배려 등을 찾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늦은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정 두려운 것”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기와 기회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대하는 것이 좋을까. △인류 역사상 어렵지 않았던 시대는 그 어느 때도 없었다. 오늘날의 현실이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하지도 않고, 입을 것이 없어 벗고 살지도 않는다. 지금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세월은 분명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련을 극복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는 지금보다 더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손병락 설비담당 포스코 명장은 △포항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올해의 포스코인(2004년)△철의 날 철강기능인(2010년)△포스코 명장(2015년)△대한민국우수숙련기술인(2016년)△경북도 최고장인(2016년)△철의 날 동탑 산업훈장(2020년)△포스코 상무 신규 선임(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0-20

‘참’ 가치관 바탕 ‘원칙’ 생활화… 업무효율·안전한 현장 구축

“나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관은 단 한 글자, 바로 ‘참’입니다.” 반드시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야 비로서 문제가 온전히 해결된다. 만약 설비의 아주 작은 문제점을 적당히 넘기면, 그 문제점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더 큰 설비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곧바로 원인을 제거하기 힘들다면, 쉬운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된다. 그러다 어느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수 있게 된다. 현장에서 지키도록 약속된 모든 것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원칙은 당장 지키기에는 귀찮고 비효율적인 요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나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원인을 따져보면 십중팔구 원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서광일(60·사진) 명장에게 우직한 소처럼 한 발 한 발 내디뎌서 멀리 나아가는 ‘우보만리(牛步萬里)의 정신’을 최근 들어봤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포항시 북구 송라면 조사리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넉넉지 못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 개인의 꿈보다는 가족을 위해 서둘러 생활 전선으로 뛰어 들어가야 했다. 어업에 종사하던 아버지는 원인 모를 병으로 고생하고 계셨고, ‘실질적 가장’이라는 책임감으로 일찌감치 대학의 꿈은 포기했다. 부모님께서는 대학에 가길 원하셨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나는 빨리 돈을 많이 벌어 아버지를 큰 병원에 모시고 가고 싶었다. 포철공고 모집 공고를 봤고 담임 교사의 추천을 받아 지원하게 됐다. 당시 포철공고 입학 요강에는 전원 학비 지원 및 숙식제공, 졸업 후에는 포항제철소에 취업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이러한 조건에 반해 부모님 몰래 원서를 내어 합격했고, 이 계기가 포스코와 운명적인 만남이 성사된 순간이다. -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1982년 4월에 입사해 압연설비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재 압연설비 1, 2부의 설비 강건화 작업과 함께 설비의 고질적 문제점 해결 및 설비 장애 원인분석 후 개선방안을 도출하는 업무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광양제철소 전기강판 설비 안정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후배 사원들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현장 중심 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 압연설비 업무를 42년 간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001년 10월, 포스코의 1냉연공장에서는 DRM(Double Reversing Mill)라인 신설을 위한 TF팀이 발족됐다. 팀원들과 함께 설비 설계에서부터 설치 공사까지 순조롭게 진행됐으나, 시운전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가장 얇은 박판인 0.05㎜ 압연이 설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TFT 구성원들은 일주일 동안 밤을 지새우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쉽게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일본 메이커의 설계 사상을 참고해 롤 갭(Roll Gap)을 활용한 압하 압연과 철판을 당겨 두께를 얇게 만드는 연신 압연 방식을 결합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아이디어를 즉시 설비 프로그램에 반영한 결과, 성공적인 압연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포스코의 우수한 압연 기술력을 일본 등 철강 선진국에 알릴 수 있었고, 스스로에게도 큰 자신감을 주는 기회가 됐다. - 안전한 현장 만들기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원칙 준수’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켜야 할 원칙을 반복적으로 실천해 습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 수 없듯, 원칙을 지키며 ‘업무 효율성’과 ‘안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아울러 설비 강건화를 통해 불안전한 현장과 행동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해야 한다. 내가 조금 더 발로 뛰면 동료들이 더욱 안전하고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노력하고 있다. - ‘명장의 비결’은. △정비도 조업의 일원으로 운전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정비에만 신경 쓴다면 현상 유지는 가능하지만, 제품 고급화 및 다양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운전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근본적인 기초 지식을 쌓아야한 응용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전기정비로 입사했지만 기계 설비도 함께 익혔다. 더 나아가 전기와 기계의 유기적 결함으로 탄생한 압연 조업을 알기 위해 압연 운전실 동료들에게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또한, 실시간 형상 모니터를 꼼꼼히 보면서 ‘왜?’라는 질문을 반복하며 압연 조업을 익혔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다양한 업무를 두루 맡을 수 있었고,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 특별한 인생 철학이나 업무 원칙이 있다면. △문제를 지혜롭게 다루기 위해서는 동료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이 운전과 정비, 기계와 전기의 총체적인 움직임 가운데 일어나는 만큼 동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업이 절실하다. 나는 ‘무엇 때문이 아닌 무엇 덕분에’라는 마음가짐을 항상 실천하려 했다. 동료들과의 협력과 소통이 나를 스스로 성장하게 하는 지름길이었다. 동료들을 통해 모르는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쉽고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할 수 있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최고의 공로자다. 힘든 일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앞장서서 도와주고 힘을 보태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나 자신도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늘 참되게 살아라, 모임에 불려 나가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해 주시곤 했다. 그래서 나는 ‘참’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일할 때도, 친구들을 만날 때도, 심지어 놀 때도 진짜 나를 보여준다. 이런 면모는 호감을 이끌어 내고, 이 호감은 다시 나를 참으로 이끄는 힘으로 작용한다. 나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에 내가 일에 있어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적당히’, ‘대충대충’이다. 일을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가면 나중에 그 대가가 두세 배의 고통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설비를 알고자 일본어 공부를 하고, 그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고. △1냉연공장 합리화 TFT에서 일할 때, 우리는 모든 면에서 일본보다 미숙했다. 우리가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동안, 일본 기술자들은 자기 분야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았지만,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혔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일본어를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속성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한 나를 보고 당시 월세방 주인이 성실한 청년으로 판단해 자신의 조카를 소개해 주었다. 그 조카가 지금 나의 아내가 됐으니, 공부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힌남노 시 제철소에 근무한 직원이라면 모두가 그 순간을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인근 냉천이 범람하면서 포항제철소는 악몽 같은 상황을 맞았다. 정말 앞이 캄캄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이 안 났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복구 대책을 고민하던 중, 일본의 쓰나미 피해가 떠올랐다.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던 일본 기술자들에게 문의하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했을 때였다. 설비 제작 메이커에서 전부 교체를 주장했을 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나름의 방안을 세워 복구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올바른 결정일까’라는 고민이 가장 어려웠다. 현장을 신뢰하는 경영진의 끊임없는 소통과 지원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할 수 있다’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다. - 포스코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구성원 각자가 기술력을 조금 더 높여 기초 체력을 키우면, 제철소는 항상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때문에’가 아닌 ‘누구 덕분에’라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모두가 합심하여 노력하면, 더 행복하고 더 가치 있는 일터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후배들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 나 자신도 지금까지 하루에 무엇인가를 한 개씩이라도 배우려 하고 있다.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지식을 쌓아 놓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다. 내 경험으로 보면, 배움은 일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소중하다. 서광일 포항제철소 압연설비부 명장은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1982년) △올해의 정비명인(2011년) 포스코 명장(2017년)△포스코 기술대상(2021년)△24회 철의 날 장관표창(2023년)△포스코 상무보 신규 선임(2024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10-13

제철소 심장, 고로를 움직이는 전기… 40년 한 길로 명장 반열

“모든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흔히들 제철소의 고로는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포항제철소의 심장이라 부른다. 고로를 포함한 제철소의 모든 설비는 전기를 먹고 산다. 포항제철소를 가동하는 무한한 에너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기. 즉, 전기는 제철소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혈액과 같은 존재이다. 현재 포스코 전기 분야 최고 숙련인 정규점(63) 명장. 1985년 포스코에 발을 들인 그는 지금까지 전기를 주제로 한 길만을 걸어와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제철소 전력 공급 지킴이 EIC기술부 정 명장에게 최근 숙련기술인이 되는 과정을 들어 봤다. -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수변전(受變電)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변전이란 한국전력이나 자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받아 각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변전해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제철소의 모든 생산시설과 생활 지원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항제철소는 365일 밤낮으로 가동되는 장치산업으로, 잠시라도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제철 공정이 중단돼 큰 생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철소 모든 곳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설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정비부서는 설비사고를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해 생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 포스코에 입사했을 때의 첫인상은. △포스코에 처음 입사할 당시 전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입사했지만, 현장 전기설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제철소는 거대한 장치산업이다. 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필요한 전기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전기 관련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제가 입사한 당시에는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기기술 월간지 등을 참고해 실무에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며 틈틈이 공부했다. - 15개의 국가전문기술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전기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일 만큼의 열정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부족한 전문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틈만 나면 전기기술 서적을 뒤적였고, 핵심적인 기술이나 자료는 노트에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취득한 국가전문기술자격증만 15개에 달한다. 전기 관련 자료와 지식을 모두 수집하겠다는 욕심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끈기 있게 도전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신념이 생겼다. 입사 초기 부대시설 정비감독 업무를 하면서는 인위적으로 고장을 내어 트러블 조치 방법을 습득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자신감이 붙자,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고질적인 설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설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바탕으로 끈기 있게 집중하다 보면,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해답이 나타나곤 했다. - 기술대학에서의 학업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1992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더욱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기술대학에서 공부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녹음하고, 노트가 닳도록 외우며 최신 기술을 습득했다. 기술대학에서의 학업은 전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됐다. 회사의 배려 덕분에 기초와 기본기를 탄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전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한 후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과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론과 실무를 바탕으로 제철소 전기설비 유지 보수는 물론, 해외 글로벌 패밀리, 그룹사 및 동반성장사 등에서 발생하는 설비 장애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됐다. - 전기정비 업무를 39년 동안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설비가 정상 가동되던 순간이다. 특히 광양 2제강 화재, 포항 2열연 화재, 중국 청도 불수강 화재 등 대형 사고 복구 후 설비가 정상 가동될 때의 성취감과 전율은 잊을 수 없다. 2022년 9월 힌남노 태풍으로 인한 냉천 범람으로 포항제철소 전체 공장이 가동 중지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당시 제철소 전체가 정전된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공장 가동이 멈추고, 밤이면 제철소 전체가 고요함과 적막감에 휩싸였던 그 순간, 전원 공급이 재개돼 용광로가 다시 가동되고 135일 만에 주요 공장이 기적처럼 정상 가동됐을 때의 행복감은 잊을 수 없다. -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EIC 기반기술인 전력설비 인프라 기술 교육용 아이템을 5가지 선정해 후배 사원들이 전기의 기본과 기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이 이 자료를 공유하며 현장 전기업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 포스코 사내 인재창조원에서 기술교육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근속 직원들을 위한 정비 기초 핵심기술 강의와 파트장을 대상으로 설비 관리 중점 포인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패밀리사, 고객사, 동반 성장사, 해외 글로벌 생산기지 등에도 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후배들에게 꾸준함과 도전 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현장에는 늘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매일 새로운 과제가 발생한다.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이다. 주자의 10가지 후회 중 ‘소불근학노후회’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뜻으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길은 끊임없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 일 자체가 재미있어지고, 신뢰받는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내 인생철학은 “노력하고 도전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 이다. 또한,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와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無汗不成)”는 속담을 자주 인용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직장생활에서 문제 해결 능력과 위기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직장생활의 재미는 물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밑거름이 된다. - 3000시간 이상의 봉사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FFFC△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사내 전기기술 봉사단을 비롯해 쇠터얼 문화재돌봄 봉사단 및 자율방범대 활동을 2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특히 자율방범대는 자녀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몇몇이 모여 창설하게 됐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물론, 소년·소녀 가장을 비롯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었다. 늦은 밤거리를 서성대는 청소년들이나 학생들을 잘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낼 때는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요즘은 문화재돌봄 봉사단에서 지역 문화재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지키고 잘 보존하는 데 열정을 다하고 싶다. - 이밖에 하고 싶은 말. △포스코의 미래는 후배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이 애사심과 주인 정신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맡은 업무에 대한 열정과 기술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각자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디의 명언처럼, “네 생각은 네 말이 되고 네 말은 네 행동이 되며 네 행동은 습관이 되어서 네 습관이 바뀌면 네 가치가 된다”고 했다. 내 가치는 내 운명으로 생각이 있는 곳에 행동하게 되고, 행동이 곧 습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을 성공으로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한다. 정규점 EIC기술부 포스코 명장은 △마산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 △부산 동의과학대학교 전기학과 졸업 △창립 제40주년 올해의 포스코인(2008년)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위촉(2012년) △경북도 최고 장인(2019년) △포스코 명장(2020년) △포스코 상무보 신규 선임(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9-25

포스코에서 35년간 취련직 외길… ‘용강의 마술사’ 별명

“저의 운명은 쇳물을 다루는 야금(冶金)의 기술자입니다.” 자원도, 재력도 없는 빈국(貧國)이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휘호를 내걸었다. 조국의 근대화 작업에 참여한 기술인들은 과학 기술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당시 산업의 쌀은 ‘철’이었다. 산업 전반에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게 철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은 품질 좋은 철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게 곧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에서 35년 간 ‘용강의 마술사’라 부르는 취련직을 담당한 김영화(62·사진) 금속재료분야 명장. 쇳물로 뜨거웠던 산업 현장에서 학구열이 불타는 교육 현장으로, 제2의 인생을 그려가고 있는 김 명장의 여정을 최근 들어봤다. - 서울에서 포항으로 오게 된 계기는.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 전문대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렵게 중학교를 마친 후 학비가 저렴한 서울소재 공립공업학교인 용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쇳물을 용해해 주형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기술을 배워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 생활을 했다. 홍익공업전문대학 금속과에 입학해 2년 동안 공부를 한 후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를 했다. 양구에서 2년 5개월(군사복무 혜택으로 조기 전역) 근무한 후 (주)POSCO에 1986년 7월 1일 입사했다. - 포스코에 입사한 이유는. △한 편의 영화 ‘팔도강산’ 덕분이었다. 영화에서 1남 6녀를 둔 한 노부부가 전국 팔도강산에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 자식들의 집으로 유람여행을 떠난다. 근대화로 대한민국 곳곳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식 중 한 명이 포항제철이라는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고로에서 나오는 쇳물을 강(steel)으로 제조하는 제강공장, 코일이 생산되는 열연공장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연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군 제대 후 포항까지 내려가 시험을 봤다. 고등학생 때 딴 주물조형 자격증을 갖고 포스코에 입사했다. 마치 철을 다루는 마술사가 되는 운명인 것 같았다. 제강분야 자격증인 제강기능사 1급, 제강기능장, 철야금기술사, 주조기능장만 취득한 것을 보면 나는 ‘용강의 마술사’라는 직함이 어울리게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우수제안과 특허 14건을 출원시키고, 철야금기술사(현 금속제련기술사)를 취득했다. 이어 나의 인생 좌표인 “이론과 전문성을 겸비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 제강공정과 취련사란 무엇인가. △고로에서 철광석 코크스와 함께 반응을 시켜 녹여 만든 용선을 전로에 장입해 고압의 산소를 불어 넣어 인, 황, 탄소, 규소, 망간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동차나 배등의 소재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한번 작업할 때마다 전로에는 용선 과 고철 수백 톤이 들어가는데, 취련 정련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취련사의 직무는 용선의 불순물을 제거해 용강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강온도가 1670℃정도에서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강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적으로 용강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쓸모있는 강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오직 기술자의 숙련된 노하우와 판단으로 만들어진다. 2제강 공장에서 나가는 강종만 무려 600여 종, 화학성분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상황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공정은 용강온도 1670℃ 정도에서 저린강제조시‘인 [P]’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 [P]’을 10ppm 이하로 낮게 만들지 않으면 압연 시 압하력에 의해서 쇠에 금이 가버리기 때문에‘인 [P]’을 완벽히 제거하면 불량률이 엄청나게 낮아지고 제품 납기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원가와 물류비 절감은 물론 회사 신용도까지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인 [P]’을 없애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기술중의 하나이다. 용강 작업중 ‘인 [P]’제어를 위해 꾸준히 연구해 특허 14건 출원과 무결점 작업을 1년 이상해 부소장 표창 5회 수상했다. -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작업 공정의 개선을 위해 특허와 우수제안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 무결점을 1년 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기술사 자격 취득으로 경주에 있는 서라벌대학제철산업 플랜트과에서 철강공학 강의를 했다. 학문과 기술을 좀 더 배우고 싶었다. 금속 중 화학야금과 물리야금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에 부경대학 금속공학과에 진학해 직장과 학업을 병행했다. 특허 출원과 우수제안의 실적을 도출하면서 석사과정 중 논문 1건, 박사과정 중 논문 6건(SCI급 1건, SCIE급 1건)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박사 과정 중 산업현장 교수 위촉(2016년), 사회 봉사활동으로 국회의원 표창장 수상(2016년), 경북도 최고 장인에 선정(2017년)됐다. 그 후 우수숙련기술자 선정(2018년)과 노동부 장관상을 수상(2019년)했고, 2020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명장, 기술사, 공학박사를 취득한 저에게 대학원 졸업식장에서 “개천에서 용 났다”며 축하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 개천(川)에서 용(龍)이 되기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문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제선, 제강 자격증 취득과 철강회사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제선과 제강 기능사 문제집, 주조공학, 열처리공학을 출판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NCS 제강분야와 용접기능장 출제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차전지와 리사이클링의 제련기술 및 철강의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술자를 양성해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 포항대학교와 울산 및 대구 폴리텍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사 학위 취득 및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전 직장 동료들의 응원이 있었다. 대학원 다닐 때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빈자리를 메꿔준 건 전부 동료들이었다. 학교에 강의하러 다닐 때도 모두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줬다. 나의 노력은 물론, 전 직장동료들과 아내의 도움의 도움으로 기술사, 공학박사, 명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실패로 좌절도 했었지만,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 준 가족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이 있었기에 힘든 일도 극복해 지금의 내가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야금 기술자의 외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학교 강의를 통해 기본적 기술력 배양과 현업에 조기 적응을 할 수 있는 현업 실무능력을 보유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기술적인 지식과 현장 실무에서 필요한 노하우, 특허 도출, 설비와 작업시 안전을 고취시키면서 후배들의 진로와 계획을 지도할 것이다. 또한 기술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인성,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집념 등 실무형 엔지니어를 양성하고 싶다. 정년 퇴직이 없는 기술자를 만들고 싶다. 나와 같이 ‘개천에서 용이 되는 기술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제2의 인생을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영화 금속재료분야 명장은 △1980년 용산공고 졸업 △1983년 홍익공업전문대 졸업 △1986년 POSCO입사 2021년 정년퇴직 △2004년 제강기능장 취득 △2007년 철야금기술사 (현 금속제련기술사)취득 △2016년 금속공학박사 취득,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2017년 경북도 최고 장인 선정 △2018년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9년 노동부 장관상 수상 △2020년 주조기능장 취득, 대한민국 명장 선정 △2022년~ 현재 포항대학교, 울산 및 대구 폴리텍대학 외래교수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9-18

‘안전 부서’ 명장 선정 첫 사례, 포스코 장인문화 새 지평 평가

포스코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성을 겸비한 직원을 ‘포스코 명장’으로 매년 선발한다. 제철 기술의 발전과 전수를 목표로 하는 명장 제도는 2015년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총 28명의 명장을 배출했다. 명장으로 선정되면 특별 직급 승진, 5000만 원의 포상금, 명예의 전당 영구 헌액 등의 혜택을 받게 된다.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지난 7월 12일 올해 명장으로 안전방재그룹의 서정훈(52) 차장과 포항 EIC 기술부 이원종(57) 부장을 선정했다. 특히 안전 부서에서 명장이 선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포스코 내 기술 장인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숙련기술인의 날(9월 9일)을 맞아 2024년 포스코 명장들의 인터뷰를 최근 진행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두 명장의 소감과 그들의 기술적 성과, 앞으로의 포부를 들어 봤다. ● 서정훈 명장 2020년 철강업계 최초 안전관리평가 P등급 획득에 결정적 기여기업이 제품 뿐 아니라 사람 생명 중시하는 문화 정착 계기 되길 ● 이원종 명장 모든 공정 컴퓨터 제어 ‘PLC 전문가’ 평가, 이번 수상에 큰 도움후배들 기술 교육 중 ‘선배님이 제 롤모델입니다’ 말 들을때 보람 ◇안전방재그룹 서정훈 명장 - 자기소개 및 명장 선정된 소감은. △1990년 입사해 34년째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산시스템부, 계측제어부, 전기제어설비부, 압연정비부, 혁신지원그룹을 거쳐 2015년부터 안전방재그룹에서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설비에서 누출, 화재, 폭발 등 중대 산업사고를 예방하는 PSM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번에 안전 분야 1호 명장으로 선정됐다. 평소 동경의 대상이었던 포스코 명장에 선발돼 매우 기쁘고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된 의미는. △포스코 명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인품을 겸비한 직원을 선발해 예우하는 제도이다. 현장 기술인 최고의 명예이자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지금까지 선발된 명장은 모두 운전, 설비관리 등 제품 생산과 직결된 분야에서 선발됐다. 나는 올해 안전관리 분야 최초로 명장이 됐다. 이는 포스코가 제품의 품질, 비용, 생산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롤모델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안전을 생산, 품질, 비용, 납기, 공기 등 그 무엇보다 최우선시한다는 경영방침의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본다. - 포스코 명장 선정 기준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선정된 것 같은지. △포스코를 대표하는 기술 전문가로서, 엄격한 심사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선정된다. 우선, 포스코 기술역량 인증제도 테크니컬 레벨 5.0 이상을 보유하고, 기능장 또는 기술사 자격과 인사고과 기준을 충족해야 지원이 가능하다. 선발 과정은 1차 서류심사, 2차 현장실사 및 동료평가, 3차 적합성 심사 및 기술 심사 등 체계적인 검증 단계를 거친다. 본심사에서는 포스텍 교수 등 각 분야 전문가를 대상으로 직접 보유기술과 업무성과를 발표하고, 기술 수준과 조직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받게 된다. 나는 업무편람을 제작해 포스코형 공정안전관리체계를 정립하고,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전면 시스템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장 안전 관리 역량과 안전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은 것 같다. - 2020년 포스코가 철강 업계 최초 공정 안전관리 평가 P등급(최고등급) 획득하는데 서정훈 명장의 기여가 크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공정 안전관리 분야는 사회적 영향이 커서 4년마다 국가기관에서 이행 수준을 평가하도록 규정돼 있다. 법적으로는 제철소 전체를 1개의 평가 단위로 받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수많은 인원과 설비를 운영하는 포항제철소의 특성을 고려, 13개 현장 부서장 단위로 세분화해 평가를 받게 했다. 부서원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체계적인 현장관리를 하도록 해 공정 안전에 대한 인식변화, 실행수준 향상 등 공정 안전관리 체계의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다. - 근무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은? △누군가의 생명과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좋다. 반대로, 제 가정에는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는 대가를 치러야 할 때도 있어서 아쉬운 순간들도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포항제철소 안전방재그룹에 전입해 오면서 다짐한 게 세 가지 있다. 첫째, 안전은 최종적으로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둘째, 안전 스텝으로서 안전 전문가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초심을 끝까지 잃지 말자는 세 가지 다짐을 했다. 앞으로도 기술을 갈고닦아서 현장에 있는 후배 사원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이런 마음을 변치 않고 끝까지 견지하도록 하겠다. ◇ EIC 기술부 이원종 명장 - 자기소개 및 명장 선정된 소감은. △EIC기술부의 EIC는 Electric(전기), Instrument(계측), Control(제어)을 의미하며 전체적으로 전기제어의 기술력을 갖춘 부서이다. 나는 1985년 입사 후에 후판, 냉연, 전기강판 정비부서에서 전기와 PLC 제어설비를 담당했다. 지금은 제철소 전 공장의 PLC 제어 부분의 기술지원을 통한 설비 안정과 생산성, 품질향상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포스코 명장으로 선발돼 큰 영광이지만, 앞으로 포스코 명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도 있다. - 포항제철소 PLC 전문가라고 들었다. PLC는 무엇이고, 어떤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지. △PLC는 ‘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로 쉽게 설명하자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모든 공정에 컴퓨터를 이용해 자동제어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물을 공급하고, 세탁과 탈수 등 일련의 순서를 순서제어라고 한다. 이런 제어를 수행하는 것이 PLC 제어와 유사하다. 나는 여러 공정 과정을 두루 거치며 압연 분야 PLC 전문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지금은 주로 공정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 및 개선, PLC 이상 발생 시 빠르게 원인을 파악하고 정상화하는 기술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 포스코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아무래도 처음으로 제어 업무를 맡았던 시기가 아닐지 생각된다. 입사 후 처음으로 2후판 가속냉각설비가 도입될 때, 자동 제어 부분을 맡아 가속냉각 후판강 제조를 성공시켜, 당시 제철기술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계기로 지금까지 ‘제어인’으로 현장설비 자동화 기술개발과 안정화의 역량을 향상시켜 포스코 명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근무하면서 좋은 점과 힘든 점이 있다면. △본연의 업무 분야에서 창의적인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조직문화 분위기가 가장 좋은 점이라 생각한다. 반면, 24시간 가동되는 제철소 설비 특성상 주야로 장애가 발생할 때가 있어 즉각적인 복구를 위해 비상 출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예방정비와 설비 강건화에 힘쓰고 있다. - 명장 이후의 시간은 어떻게? △솔직히 ‘내가 명장의 역량이 충분하고 수행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한 적도 있다. 현장에서 후배에게 기술교육을 할 때 한 후배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는데 ‘선배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제 가슴을 뛰게 한 것 같다. 앞으로도 열정을 갖고 내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의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후배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이 디딤돌과 나침판이 돼, 후배들 또한 최고의 기술인으로 성장하는 데 이끌어줄 수 있는 그런 명장이 되고 싶다. 서정훈 안전방재그룹 명장은 △포철공고 졸업△1990년 입사, 34년 근무 중△대구지방노동청장 산업안전유공표창△기계안전기술사 이원종 EIC 기술부 명장은 △포철공고 졸업△1985년 입사, 39년 근무 중△후판 가속냉각 DDC 제어△냉연 자동 두께제어, 자동형상제어△크레인 무인 자동화△전기강판 소둔로 장력제어△전기공학사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9-08

‘실패 없는 성공’은 이루기 어려운 법 작은 목표라도 도전하는 습관 길러야

“누구나 실수를 한다. 좌절도 경험한다. 기술은 그런 것이다.” 현장의 많은 문제점 개선을 하다 보면 실수나 실패를 할 때도 있다. 이때 좌절을 하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다. 한가지 실수는 한가지 안 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천재가 아닌 이상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는 말을 믿어야 한다. 때론 이 말이 두렵지만, 해야 한다. 그리고 비판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권영국(59·사진) 포스코 포항제철소 열연부 기술개발섹션 부장(명장)은 실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018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한 권 명장은 42년 간 포스코에 근속하면서 세계 최초로 열간 연연속 압연기술 도입 및 상용화를 통해 생산성의 획기적인 향상과 제조범위 확대에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았다. 최근 권 명장에게 소성가공 분야의 장인이 되기까지 노력의 과정에 대해 들어 봤다. - 소성가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목표를 갖고 선택했다기보다는, 어려운 시기에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해 압연과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포항제철소 2열연공장으로 배치됐다. 열간압연을 하게 된 것이 오늘까지 한길을 걷게 됐다. 산골짜기 시골 마을에서 어린 나이에 병환이 있으신 아버님을 돌보며 어렵게 성장하면서도, 이웃집 어르신의 대장간을 놀이터로 삼았다. ‘쇠’라는 것이 불속에서 뜨겁게 가열됐다가 두드림에 의해 모양이 만들어지고, 물에 넣을 때 수증기가 나오며 하나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유일한 세상 문물이었다. 포철공고의 모집 요강을 보고 철에 대한 추억으로 주저 없이 지원했다. 포항제철소의 웅장함과 생기 있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다. 처음으로 포항제철소 2열연공정을 견학할 때 거대한 설비가 굉음을 내며 돌아가면서 열연코일을 생산하는 것을 보고 겁도 났다. 그러나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전달이 됐는지, 1982년 포항제철소 열연공장 열간압연공정에 배치돼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포항제철소의 허리인 열간압연 공정에서 운전요원으로 현장 교대 근무를 했다. 현장의 굉대한 설비와 그 설비를 한치의 오차 없이 컨트롤하는 설비를 운전하면서 어깨 너머로 배우고 학습했다. 어려운 문제점을 하나하나 해결을 하면서 주위에서 인정과 보상을 받으면서 많은 보람을 느꼈다. 이는 끊임없는 학습과 개선을 통한 오늘의 철강 기술인으로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소성가공은 무엇인가. △소성가공이란 금속이나 기타 재료를 변형시켜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가공 방법 중 하나이다. 이 과정에서 재료는 영구적으로 변형되지만, 파괴되지는 않으며, 재료를 부수지 않고 모양을 바꾸는 가공 방법이다. 소성가공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내가 하고 있는 압연(Rolling)이 있다. 압연중에서도 열간압연은 금속을 재결온도 이상의 고온까지 가열한 후 롤러로 압연해 원하는 두께와 형태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금속은 더 유연해지고 변형이 쉬워지며, 내부 결함이 줄고, 또한 재료의 낭비가 적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포항제철소에서는 2개의 열연공장에서 연간 850만t의 열연코일을 생산하고 있다. -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 위한 노력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도전을 한다면 좋겠지만, 나는 솔직하게 목표를 정해놓고 일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지금 하는 일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항상 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개선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패 없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렵다. 많은 개선을 하면서 실패의 아픔을 겪으며 터득한 기술을 정리해 운전방안을 만들고 현업 후배들과 신입인턴 사원들에게 경험을 공유하면서 보람을 얻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의욕을 가지고 개선을 했다.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롤교체 방법 개선 우수 제안 등록에 성공해 포상을 받았다. 회사에서 백암온천 1박2일 포상 휴가를 갔을 때 정말 즐겁고 뿌듯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현장 문제점에 대한 개선의 DNA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열간압연 2열연공장은 대규모의 설비가 동조돼 돌아가는 설비로서 어떠한 트러블 발생시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골든타임이 있다. 그것이 잠깐이라도 늦어지면 많은 피해를 볼 수 있다. 운전자의 대응이 늦어 많은 피해를 보았다.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이용한 자동 기능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정비와 협업을 통해 작업 중 이상시자동 정지 기능을 만들어 많은 효과를 봤다. 포스코의 모든 열연공장에 전파 적용하는 기술이 됐다. 한번은 열간 연연속압연시 두 장의 소재를 접합 후 트러블이 발생했다. 제대로 분석이 안 된 상태에서 다시 시도했으나 같은 트러블이 발생해 체면을 구긴적이 있다. 이후에는 같은 작업 시 설비와 제어 상태를 확인하는 체크시트를 만들어, 이상 발생시 체크시트 기준으로 하나하나 체크를 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했다. -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라. 그렇다고 목표가 클 필요는 없다. 작은 목표를 세우더라도 성공하는 습관을 길러라. 일을 함에 있 꼭 목표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내가 지금 있는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성공의 씨앗이 한 알 한 알 쌓일 것이다.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버티는 힘도 능력이다. 힘들 때 좀더 냉철하게 판단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조언자를 찾아라. 힘들 때 의지할수 있는 주위의 동료를 멘토로 만들어라. 그리고 배워라. 나의 기술 노하우는 주위의 필요한 모두에게 공유하라. 그러면 더 큰 기술이 돼 나에게 돌아온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가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의 긍정과 부정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모든 일에 가능한 긍정의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라. - 앞으로의 포부는. △오랫동안 많은 어려움 속에서 많은 기술을 개발하고,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기술이 됐든, 삶의 지혜가 됐든, 기회가 있을때마다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전수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숙련기술인으로서 해당 분야 산업발전에 이바지, 후진양성 등 전문적인 활동을 할 계획이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철강산업이 50년 이상 지속적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고자 후배들의 기술력 향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가르치겠다. 특히 후배 직원들을 잘 이끌어 선배들의 기술이 잘 전수가 될 수 있게 해 현재의 기술을 향상·발전시키겠다. 후배들의 업무 외적인 부분까지도 관심을 갖고 도와 회사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마이스터고등 후배들에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회를 만들어 나가겠다. 또한 사회봉사를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기술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 포스코 명장 선정 이후 사내 기술전수 및 특강 등을 통해 기술 전수를 했다. 경북최고장인 선정 이후 도내 사회 봉사 및 학교 강의를 통해 나눔을 했다. 이제 대한민국 명장이 됐으니 더 넓은 분야에서 기술 전수 및 봉사 활동을 할 것이다. - 이 밖에 하고 싶은 말 .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내가 위치한 곳에서 누군가와 함께 일을 할 것이고, 경쟁도 할 것이다. 주위의 동료를 이겨야 할 경쟁자보다는 함께 일을 해야 하고 성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협업의 대상자로 서로 협력을 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랬고, 아니면 많은 일 중에서 현장에 답이 있는 경우가 많다. 어려움이 있다면 현장에서 직접 보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즐겨라. 새로운 기술 개발을 위해 현장에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아무런 기반 없이 세계최초 신 열간연연속 압연 기술을 개발할 때도 많은 어려움과 좌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을 즐겼던 것 같다. 또한 기술 개발은 치열한 도전 정신과 끝을 모르는 가능성을 열어준 또 하나의 새로운 경이로운 세계이다. 세상의 모든 곳에는 나의 스승이 있다. 나는 일본의 ‘호리이’라는 기술자가 현장의 설비 공사 및 시운전을 하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술하는 것을 보고 나도 업무하면서 모든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 이는 많은 기술 자료가 돼 후배들이 찾아보고 활용을 하고 있다. 권영국 소성가공 경북최고장인, 포스코 명장은 △포철공고졸업 △1982년 포스코 입사~ 현재 근무중 △2015년 포스코명장 △2016년 경북최고장인(소성가공) △2018년 철의날 은탑산업훈장 △2018년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2024년 대한민국명장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9-04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도전 정신’ 명장 반열에 오르는 비결 아닐까요

“도전하지 않으면 결과는 없습니다.”기술은 단순 개인의 것이 아니다. 최종적으로 타 국가간 경쟁, 동종 회사간 경쟁을 하는 기술력은 생존경쟁에 큰 힘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 정신,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이 필요하다.세계 최고수준의 전문성과 노하우를 갖춘 2019년 ‘포스코 명장’에 선정된 오창석(61·사진) 포항제철소 기술컨설턴트.오 명장은 제강 연속주조분야 최고기술자로 연주기롤(roll) 직경을 확대해 교체시기를 늘려 원가절감을 이끌어 냈다. 특히 그가 개발한 연주기 몰드 실링재는 조업사고를 제로화 하는 등 조업 경쟁력 향상과 안전 조업현장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 오 명장이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한 노하우를 본지에 전했다. - 금속재생산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어릴 때부터 철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 농번기가 끝나는 시점 마을 한구석 이동식 대장간(작은 철공소)이 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동네 마을 어르신들이 낫, 호미, 도끼 등 농기구들을 가져왔다. 대장장이의 손에 의해 불에 달구어 지고 다듬질 돼 날카롭게 새로운 도구로 개선되는, 변화무상한 철에 대해 호기심을 늘 가지고 있었다. 경북 청송에 있는 부곡초등학교와 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포철공고 금속 분야(제강과)에 입학한 것이 금속재생산을 선택한 큰 계기가 됐다.-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서.△고등학교시절 교련복 어깨 와펜(마크)에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글귀가 있었다. 내 시대의 시대적 사명이라 할까. 늘 마음속엔 대한민국을 우리가 새롭게 더 발전시켜야 된다는 다짐을 했다. 지금부터 41년 전인 1983년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포스코에 입사를 했다. 어린 약관의 나이(20세)로 포스코 생산현장에 근무를 하면서 선배로부터 그 동안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면서 아직도 개선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음을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불합리 업무를 반드시 개선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특허(노하우)개발과 제안 및 개선과제 프로세스를 통해 하나하나 해결을 해 왔다. 2002년 제강부 29주년기념 ‘올해의 연주인’, 2005년 제강부 ‘우수제안 왕’으로 선정됐다. 큰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며,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도 함께 가지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 씨름 선수로도 활동했다고.△어릴 적 친구들과 만나서 강가에서 물놀이와 씨름을 하면서 놀이를 하는 것이 농촌의 유일한 큰 즐거움이었다. 방학 때면 소를 마을 뒷산에 풀은 뜯어먹도록 하고 우린 숨바꼭질 및 씨름을 하면서 해가 지는지도 모르고, 또 송아지가 집으로 돌아갔는지도 모르고 놀이에 정신이 빠지기도 했다. 소는 농촌의 일꾼이자, 생활을 함께하는 또 다른 가족이다. 가보1호 및 재산증식과 더불어 집안 곳곳에 생활의 훈훈한 온기를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3년 포스코에 입사를 하면서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으로 몇 달 동안 월급을 모아 송아지 2마리를 선물로 사 드린 적이 있다. 초·중학교 학교별 대항씨름대회가 있으면 선발이 돼 대회 우승을 하면 담임 선생님이 자장면 한 그릇을 사 주는 것이 그 때 당시 유일한 희망이었다. 포철공고에 오면서 고등부 도민체전 선발전에 참여 대표선수로 선발돼 당시 1981~1982년 영일군 대표를 맡았다. 포항시로 통합이 되면서 포항시 대표선수로, 경북도민체전에 고등부 선수로 참여하기도 했다. 포항시 대학부·청년부·장년부씨름왕을 거치면서 포항시씨름협회 전무 및 부회장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현재 포항시씨름협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경북도 씨름협회 부회장을 맏아 경북씨름발전에 기여로, 지난 17일 이철우 경북도지사로부터 표창패를 받기도 했다.- 고향인 청송에 포스코를 더 사랑하는 어르신들이 있다고.△청송군 진보면 어르신들께서는 대한민국을 선진화로 발전하는데 1등 공신인 포스코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오씨 종친회’ 때 고향을 빛낸 ‘자랑스러운 율리인 1호’로 선정하는데 포스코명장인 나를 첫번째로 선정했다. 포스코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 고향 어르신들께 감사드린다. 포스코인으로 회사에 오래도록 근무하는 것이 더욱 보람있고 흐뭇함을 느낀다. - 제강의 연속주조 공정과 흥미는.△제강 분야 연속주조 공정은 금속을 용해해 연속적으로 주조하는 것이다. 주로 철강 산업에서 사용되며, 이 공정은 용융된 금속을 연속적으로 주형에 주입해 긴 슬래브, 빌렛, 불름 동의 형태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한다. 연주 공정은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며, 비용을 절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물을 다루는 연속 주조작업은 짧은 공정 내 많은 변화(쇳물→슬라브)들이 있는 공정이라 관심만 가지면 많은 특허 및 노하우를 개발 가능한 공정으로서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 오랜 근무기간에도 싫증이 나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기술개발에 관심과 연주공정작업 흥미가 더 있기도 하다.- 우수제안 1등급 포상금 전액을 기부했다는데.△연속주조공정 조업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원가절감에 크게 기여해 사내 우수제안 1등급에 채택됐다. 당시 포스코 창립 51년 중 전사 12번째 나온 우수제안이라서 더 감회가 깊다. 1등급 포상금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사용하고 싶어서 포상금 전액(500만원)을 기부했다. 그 당시 강원도에 큰 산불로 고생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포스코 1%나눔봉사 정신으로 전액 기부를 해 강원도지사로부터 감사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 어떻게 ‘포스코 명예의 전당’에 올랐나.△처음부터 꼭 명장이 되려고 노력한 건 아니었다. 회사 생활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하고 오랜 기간 회사 동료 선후배들과 협업을 통해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원만한 유대관계를 가졌다. 평소 고질적 문제점을 해결하고 많은 불합리 개선 과제의 성과들이 나타났다. 연주공정의 안전과 품질향상, 제조공정의 생산 원가절감 등 특허(노하우)개발로 인한 연주 조업기술개발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또한 제강, 연속주조공정은 쇳물을 다루는 공정이어서 안전 및 조업사고나 품질사고의 위험이 있다. 작업공정의 개선 및 방법의 개선에는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서 개선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러한 어려움을 개선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원들을 설득해서 표준시험 Process를 거쳐 이론적 이해를 돕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 결과 20~30건의 특허 개발을 바탕으로 불합리함을 개선해 우수제안 1, 2등급 선정 포함 약 227건 과제, 32억원/년 원가 절감 과제수행으로 2017·2019년 포항제절소 우수제안 왕 2회를 하는 큰 성과를 올렸다. 포스코 (본부장)사장표창 및 포스코 창립기념 우수사원 표창 등을 받았다. 이로 인한 크고 작은 노력과 그동안 함께한 (포)제강부 및 2연주공장 동료, 직원 분들의 많은 도움으로 2019년 7월 포스코명장에 선정됐다. ‘포스코 명예의 전당’에 영구 헌액돼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대한민국 동탑산업훈장도 받았다고.△산업현장의 오랜 근무기간 동안 불합리 업무와 설비개선으로 근로자의 복리 증진과 산업발전에 많은 기여를 인정받아 ‘2023년 근로자의 날 유공 정부포상 시상식’서 대한민국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게 됐다. 이 모든 것은 함께 노력해 온 회사 동료 및 선후배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선후배들에게도 기회가 된다면 큰 성과와 업적을 올리는데 많은 노력과 협업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주인라는 마음가짐과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도록 부탁을 드리고 싶다. 본인이 개발하고 연구하는 일들이 더 가치 있게 사용이 될 수 있도록 더 다듬고 관리를 잘해 기술의 고유성(보호)을 지닐 수 있도록 특허 등록 관리할 것을 추천한다. 또한 세계최고 철강사인 포스코에 나의 크고, 작은 특허 기술이 적용이 돼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존감이 넘치며 회사 생활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경험과 폭 넓은 지식을 쌓고, 본인 고유의 기술력을 갖추고, 중장기 계획을 세워 목표로 하는 많은 공적이 쌓이면 본인 분야에 명장의 반열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포부는.△후진 양성을 위해 지역사회에 재능 봉사활동과 불합리 업무개선 및 신기술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금속재료 분야의 소재 연구과정을 통해 작년 재료공학 박사를 졸업했다. 더 많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한 기술력을 쌓고 훌륭한 후진 양성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오랜 산업현장의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고 대한민국 산업현장을 더욱 기술 선진화로 변화시키는데 주력하겠다. 제선, 제강, 압연, 금속재료 등 7종류의 금속관련 도서를 만들어 포스코 도서관에 기증했다. 또 기술(전문)대학 교재로 사용을 해 후배들의 기술력향상에 지원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공계 고등학교 및 전문대에 특강을 통해 차세대 대한민국산업을 이끌어 갈 우수인재들이 많이 배출이 될 수 있도록 마인드 교육과 기술교육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아울러 (주)포스코 산하 국내외 법인 회사에도 필요할 시 기술 전수와 지도를 할 예정이다. 미래 꿈나무들이 산업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홍보에도 적극 나설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대한민국 젊은 인재들이 오래도록 행복하고 보람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산업현장을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만드는데 최대한 뒷받침하겠다.오창석 포항제철소 금속재생산 포스코명장은△ 포철공고 졸업△ 포스코 1983입사~현재 41년 근무 중△ 우수숙련기술인(금속재료)△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금속재료)△ 포항시 및 경북도 최고 장인(금속재료)△ 대한민국 동탑산업훈장 수훈△ 재료공학 박사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8-27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얻겠다” 각오로 47년 산업현장 외길

“지금 우리 사회는 학력이 아닌 능력위주의 사회로 변모했습니다. 자기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자기 일을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기능한국인, 국가품질명장 등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쥔 김석준(63) 기계정비분야 대한민국 명장.김 명장은 한국전쟁 당시 총상을 입은 아버지 대신 막냇동생의 학업을 돕기 위해 현대제철 포항공장(구 강원산업)에 병역특례요원으로 입사했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외국에서 도입한 신설비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등 고장 제로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약 반세기 동안 외길을 걸어왔다.포항시 숙련기술인협회 초대회장을 맡고 있는 김석준 명장과 최근 인터뷰를 가졌다. - 포항시 숙련기술인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작년 정부에서 숙련기술인의 날(9월 9일)을 제정함에 따라 포항시에 거주하는 대한민국명장, 우수숙련기술자, 경북도최고장인, 포항시최고장인 45명이 포항시의 기술발전을 위한 기업의 기술전수와 후진양성을 위해 결성됐다. 지금까지 100여 건의 기술전수와 불우이웃돕기 및 자연정화활동을 비롯한 봉사활동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협회 발족에 많은 도움을 준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에도 늦었지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영리 단체이다 보니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아 행정적인 지원이 아쉽다.-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어떤 길을 걸어왔나.△경북 울진이 고향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국립인 부산기계공고로 진학해 기숙사비 이외에 전액을 국비로 공부할 수 있었다. 2학년부터 장학금을 받아 기숙사 비 일부를 충당했다. 3학년 때 부산지방 기능경기대회 전기용접분야에서 금메달을 수상했으나, 전국대회에서 부정행위로 의심돼 최고 점수를 받고도 탈락이 됐다. 이때 “노력한 만큼의 대가만 얻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그 교훈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정표가 됐다. 1977년 교원자격증을 취득해 영월 공고에서 2년 8개월 근무하며 기능경기대회 입상자 배출 및 국가기술자격증 전원 취득 등의 보람을 느낄 수 있었으나, 첫발을 내딛은 산업현장은 적응하기에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처음 접해보는 기계정비를 이해하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히고 용접과 절단은 기본이고 공, 유압을 비롯한 관련분야의 기술을 익혀야만 했다. 분임조 활동을 통한 개선활동으로 획기적인 고장시간 단축과 원가절감은 물론 안전사고 예방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동안의 실적을 인정받아 월급을 받아가면서 창원기능대학에서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졌으며, 현대제철 1호 기능장이 됐다. 미국을 비롯한 9개 나라의 해외연수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숙련기술인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명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힘든 일도 많았을 텐데, 극복 노하우는.△어려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반드시 해결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끈기가 해결의 열쇠였다고 믿는다.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론과 경험이 동반되지 않으면 절반의 성공도 이루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개발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의 힘은 개인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동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명장이 되기 위한 특별한 노력보다는, 폭 넓은 지식의 습득은 물론이거니와 나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2011년 산업포장을 받아 대한민국명장 선정자들과 유럽 연수를 같이 가게 됐다. 일행 중 영월공고에서 첫해에 졸업시킨 제자가 먼저 명장이 돼 동행을 해 뿌듯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명장에 도전하는 확실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19년 근로자의 날에 포항시에서 처음으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을 때가 직장생활의 가장 보람된 시간으로 기억된다.- 앞으로의 포부는.△47년 동안 굴곡이 많은 외길을 걸어왔고 내가 한 노력에 비해 과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앞으로는 건강을 잘 챙기면서 컨설팅을 통해 중소기업의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싶다. 직업진로 특강 등을 통해 후배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또한 그늘진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과 그동안 갈고닦아 온 재능을 모두 기부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 돌이켜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험난한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고 있을 것이며 그땐 지금보다 더 멋진 오솔길을 만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 밖에 하고 싶은 말은.△살아오면서 넘기 어려운 무수히 많은 벽을 마주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때마다 원인을 찾으면 해결 방법이 보였다. 그 원인을 찾아가는 길에는 많은 노력과 지식이 필요했다. 반세기 전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 사무직에 비해 현장직은 보수도 적었지만, 승진과 대우에서도 학력의 벽을 넘기에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력의 벽을 넘어 능력 중심 사회가 됐다. 자기 적성에 맞는, 정년이 정해진 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을 찾아 1만 시간 이상을 투입한다면 성공이 보장되리라 확신한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지만, 해 본 일이 많은 사람 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사람이 대우받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자신이 가는 길에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단한 노력을 이어간다면 용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202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