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 ⑨ 손병락 포항제철소 설비담당 기술위원
“우리 기술로, 2열연공장 RM 전동기 수리 기간을 6개월에서 나흘로 당겼습니다.”
제철 설비는 거대하고 정밀해 다양한 기술이 결합한 종합 예술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설비는 모두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며, 신경망처럼 구성돼 있다. 이러한 거대하고 복잡한 설비를 구동하는 에너지원은 전력기반 설비이다.
우리의 기술을 정립했다는 자부심은 조직의 단결력을 높여 업무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했다.
성공 사례를 통해 제철소 내부에는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조직 문화가 확산했다.
‘나’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낸 손병락(65) 1호 포스코 명장의 인생길을 따라가 본다.
‘나’ 아닌 ‘우리’ 강조, 조직 단결력으로 업무 견인
2열연공장 RM전동기수리 6개월을 4일로 단축
전기 설비기술 혁신·후배양성 등 도전문화 확산
-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은 업무는.
△1977년 4월, 처음 포스코에 입사해 본격적인 철강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입사 후 전기수리과에 배치되자마자 제강공장 화재 사고 복구에 투입되면서 전기 설비와의 인연을 맺었다. 현재 전력기반설비 중 발전기, 전동기, 변압기 등 주요 전자기기의 투자 설치 관련 기술 검토, 설비 유지관리 및 설비, 정밀 절연 진단을 통한 잔존 수명 예측 및 수명 연장 기술 연구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새로운 기술을 현장에 적용해 설비 경쟁력을 향상하고, 다양한 설비의 국산화 개발과 설비 표준화를 통한 경쟁력 확보에도 힘쓰고 있다. 이 외에도, 후배 양성을 위한 기술 전수 활동과 어렵게 취득한 기술의 사장 방지를 위해 기술 형식지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2000년 어느 날, 포항제철소 2열연 공장의 RM 전동기가 소손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우리의 기술로는 수리가 어렵다고 판단해 일본 엔지니어에게 긴급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엔지니어가 “한국에는 장비, 자재, 인력 등의 문제로 일본에서 수리를 진행해야 하고 6개월 이상이 걸린다”고 했다. 당시 우리의 기술을 적용해 수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차피 6개월이 걸린다면 1~2일 늦게 출발해도 전체 공정에 큰 영향이 없으니 이틀만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고 상사에게 요청했고, 팀원들을 설득하여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무모함이 통했는지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포스코가 가지고 있는 장비와 재료, 기술 인력의 부족함을 극복하며 수리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 엔지니어들도 우리의 방법과 기술에 가능성을 보았고,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 덕분에 놀랍게도 6개월이 걸린다는 수리를 단 4일 만에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회사는 안정적으로 생산 계획을 유지할 수 있었고, 동일한 고장 복구 작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게 됐다. 수리품이 현장에 설치돼 정상적인 압연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보고 많은 격려와 칭찬을 받았다. 그날 퇴근길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뿌듯했던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나를 웃음 짓게 한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조직원의 건강과 안전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모든 일이 안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직원이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준수하고 부족한 부분을 함께 채워주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다. 이 외에도 중요한 것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 보면 첫째, 올바른 가치관을 통해 조직이 바르게 설 수 있도록 하는 윤리성이 중요하다. 둘째, 끊임없는 소통으로 조직을 하나로 뭉치는 화합의 기술도 필수적이다. 셋째, 조직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더 큰 목표를 만들어내는 수용성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넷째, 지속적인 자기 계발을 통해 업무를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기술력과 다섯째,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기 위한 공동의 꿈을 제시하고 지속적인 혁신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건강 악화로 인생 최대 위기를 겪었다고 들었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4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일하면서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때로는 질책과 시기도 있었고, 격려와 행복, 보람도 있었다. 항상 일에 대한 자부심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긍지를 가지고 업무에 임했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일이 아닌 건강 문제였다. 건강에 자신이 있었기에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날, 의사로부터 대장암이라는 진단 결과를 들었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녀가 학업과 국방의무 중이었고, 연로한 부모도 자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 집안의 장남이자 가장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던 일을 후배 직원들에게 나누어 맡기기는 했지만 걱정만 들었다.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정말 고맙게도 회사와 동료들은 내가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나에게 힘을 주었다. 수술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 건강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 당시 팀장은 “건강을 회복하고 자리를 지켜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어 달라”고 말해주었다. 그 순간, 나는 눈물이 쏟아지며 나를 믿어주는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낫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 지금은 치료와 철저한 관리를 통해 행복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를 살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포스코에서 근무하며 ‘자율권이 넘치는 일터’라고 생각했다고.
△포스코의 일하는 방식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회사는 내가 제안하는 방법이나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대해 항상 실행할 기회를 주었다. 수많은 도전과 수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상사들은 그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도전할 힘을 주곤 했다. 실패 뒤에도 질책보다는 항상 격려가 먼저였고, 질투보다는 협조가 있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나는 언제나 해보고 싶은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특히 힌남노 복구작업 당시 부소장에게 전동기 복구 방안을 보고했다. “인력, 예산 고민하지 말고 손 명장 계획대로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아무리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라도, 고졸 명장에게 사운이 걸린 일을 일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에 대한 자율권이 주어지는 신뢰를 만들어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현장 문화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스코를 이끌어준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있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선배가 됐다.
- 명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명장이 된 후, 철강기술대학 및 포스코 신입사원 교육 등 다양한 곳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담감도 있었지만, 차세대 제철소의 기둥이 될 젊은 후배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자 나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후배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그들이 다음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과정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어가야 한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다. 작게는 개인의 발전에서 크게는 인류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무한한 꿈을 꿀 수 있다. 혼자 꾸는 꿈은 달성하기 어렵지만, 함께 이루는 꿈이라면 달성이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꿈꾸는 만큼 성장하기에 꿈이 커야 그 꿈이 깨지더라도 큰 조각이 남는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고 포기하거나, 실패했다고 좌절하거나, 해봤는데 어렵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고 멈추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유에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있게 추진해야 한다. 혁신하고자 하면 언제나 실패와 좌절은 뒤따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수를 무서워하거나 질책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혁신은 언제나 모험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뒤에 숨어있는 협동, 격려, 칭찬, 배려 등을 찾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늦은 것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정 두려운 것”임을 잊지 말고 지속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 끊임없이 다가오는 위기와 기회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대하는 것이 좋을까.
△인류 역사상 어렵지 않았던 시대는 그 어느 때도 없었다. 오늘날의 현실이 정말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야 하지도 않고, 입을 것이 없어 벗고 살지도 않는다. 지금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세월은 분명 지금보다 더 어려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나와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련을 극복하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분명 우리는 지금보다 더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손병락 설비담당 포스코 명장은
△포항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
△올해의 포스코인(2004년)
△철의 날 철강기능인(2010년)
△포스코 명장(2015년)
△대한민국우수숙련기술인(2016년)
△경북도 최고장인(2016년)
△철의 날 동탑 산업훈장(2020년)
△포스코 상무 신규 선임(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