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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로 취련조업 무결함 ‘기록 제조기’ 역사를 쓰다

이부용기자
등록일 2024-11-20 19:33 게재일 2024-11-2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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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br/>(11) 이영진 포항제철소 제강부 3제강공장 차장

“취련사는 목표 온도와 성분에 맞게 쇳물을 조리하는 요리사와 같습니다.”

제철소에서는 생산직 중 유일하게 취련 작업자에게 ‘사’자를 붙여 ‘취련사’로 격을 높여 부르고 있다.

제강공정은 철을 만드는 중간 단계이다. 포항제철소 철강제품의 70~80%가 제강부를 거쳐간다.

어떤 성분으로 쇳물을 만드는지에 따라 철강제품의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게 이루어지게 된다.

포항제철소 제강부 3제강공장 이영진(56) 포스코 명장에게 취련사의 길에 대해 들어본다.

 

“철강제품 성질 결정 짓는 ‘취련사’는

쇳물 온도·성분을 조리하는 요리사”

23년 차에 ‘3제강공장 건설’에 투입

성공적 공장 가동 주역 맡아 ‘온 힘’

국내 첫 진로 출강 자동화도 이끌어

“선후배가 만들어내는 협력·팀워크

겨울 맞은 철강산업의 부활 원동력”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내가 태어난 곳은 버스와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던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는 누나 두 명과 나, 삼남매를 키우기 위해 힘겹게 노력했다. 나는 누나들과 함께 작은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질 무렵, 누나들과 헤어져 경기도 가평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중학교에 다니던 나는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 진학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가 학비 무료, 기숙사 제공, 군 입대 면제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새롭게 전환하는 터닝포인트가 됐다. “먼 데까지 가서 공부할 수 있겠냐”며 걱정부터 하던 어머니의 말씀을 뒤로 하고, 가족을 떠나 나는 아무 연고도 없는 포항으로 오게 됐다. 처음에는 고향 생각과 외로움 속에서 남몰래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다. 포철공고 제강과를 졸업한 후, 1987년 곧바로 포항제철소의 심장 제강부에 입사하게 됐다. 이때부터 나는 용선(쇳물)을 다루는 취련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 현재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포항제철소의 심장이라 불리는 제강공정, 그중에서도 3제강공장 전로파트는 철강제품의 성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용선에 산소를 불어 넣는 양을 조절하고 황, 인, 탄소와 같은 불순물을 제거해 질 좋은 철강 제품을 만들고 있다. 이 과정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이기 위해 너무 졸여버리면 짠 음식이 되는 것처럼 쇳물 중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산소와 냉각재를 투입해야 한다. 무조건 산소를 많이 불어넣으면 용강의 청정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업무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포항제철소 3제강공장을 처음 지을 때, 프로젝트 건설요원으로 공장 건설에 뛰어들었다. 당시 23년 차가 되던 해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된 것이다. 주변서는 익숙한 업무를 뿌리치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며 만류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공장을 처음부터 계획해 보는 일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새로운 설비를 도입하고 특성에 따라 각종 표준을 만드는 기초적인 작업을 하면서 때론 아주 힘들었지만, 평생 남을 경험과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한 설비와 공장을 다 지어놓고 시운전을 앞둔 상황에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어디에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그 문제가 터지지는 않을까?” 매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수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결국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와 눈썹이 빠지는 지경까지 갔다. 당시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 속에서 포항 시민들의 따뜻한 응원과 지원 덕분에 큰 힘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포항 시민들이 나서서 떡도 나눠주고 성공적인 공장 가동을 위해 응원의 목소리를 내줬다. 포항 시민들은 큰일이 있을 때면 이렇게 한결같이 포스코를 지지해 준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덕분에 3제강공장은 무사히 착공돼 지금까지도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 무결함 작업으로 ‘기록제조기’라는 별명이 있다고.

△자랑 같아 보일 수 있지만, 회사에서 “취련 좀 한다”라는 말은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무결함 작업을 지속적으로 달성할 수 있었던 비법은 몇 가지 중요한 요소에 기인한다. 첫째, 철저한 준비와 분석이다. 항상 다른 사람보다 일찍 출근해 먼저 작업한 취련사의 작업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이를 통해 작업의 흐름과 문제점을 사전에 파악하고, 다음 작업에 반영할 수 있는지를 찾았다. 둘째, 집중력과 끈기이다. 취련에 들어가면 작업에만 몰두한다. 작업이 의도한 대로 온도와 성분이 나오면 보람과 희열을 느끼지만, 좋지 않게 나올 경우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레스조차도 나에게는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셋째, 지속적인 학습과 개선이다. 항상 새로운 기술과 방법을 배우고, 이를 실제 작업에 적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금속제련기술사, 제강기능장, 제선기능장, 주조기능장 등 많은 자격증을 취득했고, 특허출원 5건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동료와 수시로 소통하고 협력하며 서로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해 더 나은 작업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열정과 책임감이다. 취련사 직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포스코와 함께한 지난 시간 동안, 회사와 함께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더 가치 있는 미래를 위해 지속 노력할 계획이다.

- 국내 최초로 전로 출강 작업 자동화에 성공한 스토리를 들려 달라.

△제강공정에서 작업자들이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전로에 담긴 쇳물을 래들에 옮겨 담을 때이다. 이를 ‘출강작업’이라 부르는데 쇳물을 전로에서 정련한 뒤 깨끗한 쇳물만 분리해 내는 고위험 고기술 공정으로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품질 및 작업 편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처럼 중요한 작업을 수작업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성이 크다고 판단해, 포스코는 2018년 전로 출강 작업 자동화 기술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관련 핵심 기술은 원격으로 고열의 출장 조업을 정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시스템과 공정 자동 프로세스이다. 고성능 적외선 카메라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돌발 상황을 제어하고, 출강 작업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자가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결과, 작업자는 컴퓨터 화면에서 시작 버튼을 한 번만 클릭하면 출강 공정에 필요한 7가지 절차가 자동으로 이루어지게 됐다. 이를 통해 전로 운전자는 더욱 안전하게 작업함과 동시에 연평균 4.5건의 품질 불량을 사전에 방지하고, 연간 수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현재 3제강공장에서 생산되는 전체 강종의 약 90% 이상이 출강 자동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다.

- 현장 관리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는.

△새로운 실적을 발굴하는 것도 좋지만, ‘협력과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라 생각한다. 선후배가 함께 만들어내는 ‘조직의 힘’을 믿고 있다. 협력은 지식과 경험의 공유를 통해 조직의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팀워크는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하고, 서로의 강점을 활용하여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협력과 팀워크를 통해 이루어진 성과는 조직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며, 공정한 보상을 통해 지속적인 동기 부여를 자극한다. 이러한 가치를 바탕으로 조직을 끌어 나갈 때, 새로운 실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 명장으로서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현재 작업자 안전, 품질향상, 생산성을 중심으로 명장이 되기까지 터득한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특히, 작업 현장에서의 안전 수칙 준수와 효율적인 작업 방법을 강조하고 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이제 퇴직이 4년 남짓 남았지만, 그동안 선배들이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 마지막 목표이다. 그래서 후배들이 현장에서 겪을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멘토링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인의 명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나의 인생 철학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이다. 이 말은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경험과 도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세상의 이치이다. 어떤 일이든지 노력과 헌신 없이는 결코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배들도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자신만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아 더 큰 성과를 이뤄내고, 새로운 50년 철강 산업의 미래를 주도해 나가길 바란다. 어려운 도전에도 좌절하지 않고 까다로운 조건에서도 완벽하게 해내고자 노력한다면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 믿는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철강 산업은 마치 배고프고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도전의 연속이고, 때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항상 그래왔듯이, 서로 협력하고 힘을 모은다면 이 어려운 시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다면, 이 겨울은 반드시 끝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올 것이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고 힘을 모으며 배려해 새롭게 도약할 원동력을 준비해야 한다.

이영진 제강부 3제강공장 명장은

△금속제련기술사(2006년)

△포스코 기술대상(2015년)

△포항시최고장인(2020년)

△대한민국 우수숙련기술인(2021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 위촉(2021년)

△포스코명장(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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