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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에서 35년간 취련직 외길… ‘용강의 마술사’ 별명

이부용기자
등록일 2024-09-18 19:34 게재일 2024-09-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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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 (6) 김영화 금속재료분야 명장

“저의 운명은 쇳물을 다루는 야금(冶金)의 기술자입니다.”

자원도, 재력도 없는 빈국(貧國)이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휘호를 내걸었다.

조국의 근대화 작업에 참여한 기술인들은 과학 기술 발전의 초석을 놓았다.

당시 산업의 쌀은 ‘철’이었다. 산업 전반에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게 철이었기 때문이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은 품질 좋은 철을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게 곧 제철보국(製鐵報國)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에서 35년 간 ‘용강의 마술사’라 부르는 취련직을 담당한 김영화(62·사진) 금속재료분야 명장.

쇳물로 뜨거웠던 산업 현장에서 학구열이 불타는 교육 현장으로, 제2의 인생을 그려가고 있는 김 명장의 여정을 최근 들어봤다.

 

고교 시절부터 ‘주물조형’ 기술 익혀

영화 속 포철 모습에 반해 입사 결심

제강기능사 1급·제강기능장부터

주조기능장까지 용강 자격증만 취득

“이론·전문성 겸비한 엔지니어 각오”

회사에서 우수 제안·특허 14건 출원

부경대 금속공학과 진학, 일·학업 병행

경주 서라벌대에서는 철강공학 강의

현재 포항대학·대구폴리텍대 교수

인성·실무 겸비한 기술자 양성이 꿈

- 서울에서 포항으로 오게 된 계기는.

△서울에서 초·중·고등학교, 전문대학을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렵게 중학교를 마친 후 학비가 저렴한 서울소재 공립공업학교인 용산공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쇳물을 용해해 주형에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기술을 배워 직장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 생활을 했다. 홍익공업전문대학 금속과에 입학해 2년 동안 공부를 한 후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를 했다. 양구에서 2년 5개월(군사복무 혜택으로 조기 전역) 근무한 후 (주)POSCO에 1986년 7월 1일 입사했다.

- 포스코에 입사한 이유는.

△한 편의 영화 ‘팔도강산’ 덕분이었다. 영화에서 1남 6녀를 둔 한 노부부가 전국 팔도강산에 뿔뿔이 흩어져서 사는 자식들의 집으로 유람여행을 떠난다. 근대화로 대한민국 곳곳이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식 중 한 명이 포항제철이라는 회사에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때 고로에서 나오는 쇳물을 강(steel)으로 제조하는 제강공장, 코일이 생산되는 열연공장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었던지 연고가 전혀 없었음에도 꼭 입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군 제대 후 포항까지 내려가 시험을 봤다.

고등학생 때 딴 주물조형 자격증을 갖고 포스코에 입사했다. 마치 철을 다루는 마술사가 되는 운명인 것 같았다.

제강분야 자격증인 제강기능사 1급, 제강기능장, 철야금기술사, 주조기능장만 취득한 것을 보면 나는 ‘용강의 마술사’라는 직함이 어울리게 타고 났다고 할 수 있다.

회사에서 우수제안과 특허 14건을 출원시키고, 철야금기술사(현 금속제련기술사)를 취득했다. 이어 나의 인생 좌표인 “이론과 전문성을 겸비한 최고의 기술자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 제강공정과 취련사란 무엇인가.

△고로에서 철광석 코크스와 함께 반응을 시켜 녹여 만든 용선을 전로에 장입해 고압의 산소를 불어 넣어 인, 황, 탄소, 규소, 망간 같은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자동차나 배등의 소재를 생산하는 작업이다. 한번 작업할 때마다 전로에는 용선 과 고철 수백 톤이 들어가는데, 취련 정련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취련사의 직무는 용선의 불순물을 제거해 용강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강온도가 1670℃정도에서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강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시스템적으로 용강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쓸모있는 강을 제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오직 기술자의 숙련된 노하우와 판단으로 만들어진다. 2제강 공장에서 나가는 강종만 무려 600여 종, 화학성분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상황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 작업 중 가장 까다로운 공정은 용강온도 1670℃ 정도에서 저린강제조시‘인 [P]’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 [P]’을 10ppm 이하로 낮게 만들지 않으면 압연 시 압하력에 의해서 쇠에 금이 가버리기 때문에‘인 [P]’을 완벽히 제거하면 불량률이 엄청나게 낮아지고 제품 납기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원가와 물류비 절감은 물론 회사 신용도까지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인 [P]’을 없애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기술중의 하나이다.

용강 작업중 ‘인 [P]’제어를 위해 꾸준히 연구해 특허 14건 출원과 무결점 작업을 1년 이상해 부소장 표창 5회 수상했다.

-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고.

△회사에서 일하면서 작업 공정의 개선을 위해 특허와 우수제안을 자연스럽게 하게 돼 무결점을 1년 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학문을 접하게 되면서 기술사 자격 취득으로 경주에 있는 서라벌대학제철산업 플랜트과에서 철강공학 강의를 했다. 학문과 기술을 좀 더 배우고 싶었다. 금속 중 화학야금과 물리야금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에 부경대학 금속공학과에 진학해 직장과 학업을 병행했다. 특허 출원과 우수제안의 실적을 도출하면서 석사과정 중 논문 1건, 박사과정 중 논문 6건(SCI급 1건, SCIE급 1건)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박사 과정 중 산업현장 교수 위촉(2016년), 사회 봉사활동으로 국회의원 표창장 수상(2016년), 경북도 최고 장인에 선정(2017년)됐다.

그 후 우수숙련기술자 선정(2018년)과 노동부 장관상을 수상(2019년)했고, 2020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대한민국 명장, 기술사, 공학박사를 취득한 저에게 대학원 졸업식장에서 “개천에서 용 났다”며 축하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우수 숙련기술자 증서 수여식 모습.
우수 숙련기술자 증서 수여식 모습.

- 개천(川)에서 용(龍)이 되기까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전문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제선, 제강 자격증 취득과 철강회사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제선과 제강 기능사 문제집, 주조공학, 열처리공학을 출판했다. 산업인력공단에서 NCS 제강분야와 용접기능장 출제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이차전지와 리사이클링의 제련기술 및 철강의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기술자를 양성해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학생을 지도하고 싶어 포항대학교와 울산 및 대구 폴리텍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사 학위 취득 및 대한민국 명장이 되기까지 전 직장 동료들의 응원이 있었다. 대학원 다닐 때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나의 빈자리를 메꿔준 건 전부 동료들이었다. 학교에 강의하러 다닐 때도 모두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고 이왕 하는 거 열심히 해보라고 격려도 해줬다.

나의 노력은 물론, 전 직장동료들과 아내의 도움의 도움으로 기술사, 공학박사, 명장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올 수 없는 길이었다. 실패로 좌절도 했었지만,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 준 가족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이 있었기에 힘든 일도 극복해 지금의 내가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야금 기술자의 외길을 걸어왔다. 이제는 학교 강의를 통해 기본적 기술력 배양과 현업에 조기 적응을 할 수 있는 현업 실무능력을 보유한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기술적인 지식과 현장 실무에서 필요한 노하우, 특허 도출, 설비와 작업시 안전을 고취시키면서 후배들의 진로와 계획을 지도할 것이다. 또한 기술자가 갖춰야 할 덕목과 인성,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집념 등 실무형 엔지니어를 양성하고 싶다. 정년 퇴직이 없는 기술자를 만들고 싶다. 나와 같이 ‘개천에서 용이 되는 기술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제2의 인생을 잘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영화 금속재료분야 명장은

△1980년 용산공고 졸업

△1983년 홍익공업전문대 졸업

△1986년 POSCO입사 2021년 정년퇴직

△2004년 제강기능장 취득

△2007년 철야금기술사 (현 금속제련기술사)취득

△2016년 금속공학박사 취득,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2017년 경북도 최고 장인 선정

△2018년 우수숙련기술자 선정

△2019년 노동부 장관상 수상

△2020년 주조기능장 취득, 대한민국 명장 선정

△2022년~ 현재 포항대학교, 울산 및 대구 폴리텍대학 외래교수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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