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숙련기술인을 만나다 7 정규점 EIC기술부 포스코 명장
“모든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흔히들 제철소의 고로는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포항제철소의 심장이라 부른다.
고로를 포함한 제철소의 모든 설비는 전기를 먹고 산다. 포항제철소를 가동하는 무한한 에너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전기. 즉, 전기는 제철소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혈액과 같은 존재이다.
현재 포스코 전기 분야 최고 숙련인 정규점(63) 명장.
1985년 포스코에 발을 들인 그는 지금까지 전기를 주제로 한 길만을 걸어와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제철소 전력 공급 지킴이 EIC기술부 정 명장에게 최근 숙련기술인이 되는 과정을 들어 봤다.
한국전력·자체발전소 등에서 생산된 전기 받아
각 공장에서 사용하도록 공급하는 수변전 담당
전문지식 보완 위해 열정적으로 전기기술 공부
강한 의지로 국가전문기술자격증만 15개 획득
1992년 기술대학 입학은 최고 전문가 중요 발판
수석졸업 후 글로벌 패밀리·동반성장사 등 도와
광양 2제강·中 청도 불수강 화재 등 복구 땐 전율
2022년 힌남노 135일 만에 정상가동 잊지 못해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힘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
숙련기술인 되려는 후배들에 도전의식 심고 싶어
문화재 돌봄·자율방범대 등 3000시간 봉사활동
주민 안전 지키고 청소년 선도할 때 뿌듯함 느껴
- 현재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수변전(受變電)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수변전이란 한국전력이나 자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받아 각 공장에서 사용할 수 있게 변전해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제철소의 모든 생산시설과 생활 지원 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포항제철소는 365일 밤낮으로 가동되는 장치산업으로, 잠시라도 설비에 문제가 생기면 제철 공정이 중단돼 큰 생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맡고 있는 업무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철소 모든 곳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설비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 정비부서는 설비사고를 예방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해 생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 포스코에 입사했을 때의 첫인상은.
△포스코에 처음 입사할 당시 전기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입사했지만, 현장 전기설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제철소는 거대한 장치산업이다. 쇠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필요한 전기를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은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전기 관련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제가 입사한 당시에는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기기술 월간지 등을 참고해 실무에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며 틈틈이 공부했다.
- 15개의 국가전문기술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동기와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전기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일 만큼의 열정을 다하겠다는 의지로 부족한 전문 지식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다. 틈만 나면 전기기술 서적을 뒤적였고, 핵심적인 기술이나 자료는 노트에 빼곡히 적기 시작했다. 그렇게 취득한 국가전문기술자격증만 15개에 달한다. 전기 관련 자료와 지식을 모두 수집하겠다는 욕심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끈기 있게 도전하면 해결하지 못할 것은 없다는 신념이 생겼다. 입사 초기 부대시설 정비감독 업무를 하면서는 인위적으로 고장을 내어 트러블 조치 방법을 습득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자신감이 붙자, 업무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고질적인 설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 분석과 문제 해결에 대한 강한 의지가 필요했다. 설비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바탕으로 끈기 있게 집중하다 보면,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해답이 나타나곤 했다.
- 기술대학에서의 학업 경험과 그로부터 얻은 가장 큰 성과는.
△1992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더욱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기술대학에서 공부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고, 이를 기꺼이 수락했다.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맨 앞자리에 앉아 강의를 녹음하고, 노트가 닳도록 외우며 최신 기술을 습득했다. 기술대학에서의 학업은 전기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됐다. 회사의 배려 덕분에 기초와 기본기를 탄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전기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수석으로 졸업한 후 현장으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과제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론과 실무를 바탕으로 제철소 전기설비 유지 보수는 물론, 해외 글로벌 패밀리, 그룹사 및 동반성장사 등에서 발생하는 설비 장애 해결에 많은 도움이 됐다.
- 전기정비 업무를 39년 동안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설비가 정상 가동되던 순간이다. 특히 광양 2제강 화재, 포항 2열연 화재, 중국 청도 불수강 화재 등 대형 사고 복구 후 설비가 정상 가동될 때의 성취감과 전율은 잊을 수 없다. 2022년 9월 힌남노 태풍으로 인한 냉천 범람으로 포항제철소 전체 공장이 가동 중지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있었다. 당시 제철소 전체가 정전된 상황은 충격적이었다. 공장 가동이 멈추고, 밤이면 제철소 전체가 고요함과 적막감에 휩싸였던 그 순간, 전원 공급이 재개돼 용광로가 다시 가동되고 135일 만에 주요 공장이 기적처럼 정상 가동됐을 때의 행복감은 잊을 수 없다.
- 후배 양성과 기술 전수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EIC 기반기술인 전력설비 인프라 기술 교육용 아이템을 5가지 선정해 후배 사원들이 전기의 기본과 기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재를 만들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많은 직원들이 이 자료를 공유하며 현장 전기업무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현재 포스코 사내 인재창조원에서 기술교육 전문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저근속 직원들을 위한 정비 기초 핵심기술 강의와 파트장을 대상으로 설비 관리 중점 포인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패밀리사, 고객사, 동반 성장사, 해외 글로벌 생산기지 등에도 기술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기술 지원을 하고 있다.
- 숙련기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후배들에게 꾸준함과 도전 의식을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현장에는 늘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매일 새로운 과제가 발생한다. 이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 물이 바위를 뚫는 것은 그 힘이 아니라 꾸준함 때문이다. 주자의 10가지 후회 중 ‘소불근학노후회’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뜻으로, 자기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길은 끊임없는 공부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면 일 자체가 재미있어지고, 신뢰받는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인생철학과 비전이 있다면.
△내 인생철학은 “노력하고 도전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 이다. 또한,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No Pain No Gain)”와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無汗不成)”는 속담을 자주 인용한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오듯이, 직장생활에서 문제 해결 능력과 위기 대응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직장생활의 재미는 물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밑거름이 된다.
- 3000시간 이상의 봉사 활동을 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의 경험은.
<FFFC>△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사내 전기기술 봉사단을 비롯해 쇠터얼 문화재돌봄 봉사단 및 자율방범대 활동을 2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특히 자율방범대는 자녀들의 안전한 귀가를 돕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몇몇이 모여 창설하게 됐다. 이를 통해 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물론, 소년·소녀 가장을 비롯한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었다. 늦은 밤거리를 서성대는 청소년들이나 학생들을 잘 타일러 집으로 돌려보낼 때는 같은 부모의 마음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요즘은 문화재돌봄 봉사단에서 지역 문화재를 보존하고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우리 지역의 문화재를 지키고 잘 보존하는 데 열정을 다하고 싶다.
- 이밖에 하고 싶은 말.
△포스코의 미래는 후배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이 애사심과 주인 정신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맡은 업무에 대한 열정과 기술적인 열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각자의 마인드 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간디의 명언처럼, “네 생각은 네 말이 되고 네 말은 네 행동이 되며 네 행동은 습관이 되어서 네 습관이 바뀌면 네 가치가 된다”고 했다.
내 가치는 내 운명으로 생각이 있는 곳에 행동하게 되고, 행동이 곧 습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운명을 성공으로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한다.
정규점 EIC기술부 포스코 명장은
△마산공업고등학교 전기과 졸업 △부산 동의과학대학교 전기학과 졸업 △창립 제40주년 올해의 포스코인(2008년)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 위촉(2012년) △경북도 최고 장인(2019년) △포스코 명장(2020년) △포스코 상무보 신규 선임(2023년)
/이부용기자 lby1231@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