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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辛抱해라”··· 아버지의 한마디로 함께해 온 제철 현장

포스코 제철소의 현장은 수많은 기술인의 땀과 경험 위에서 돌아간다. 고장이 나면 고치는 일을 넘어, 설비의 구조 자체를 바꾸며 현장을 개선해 온 기술자들이 있다. 포스코 명장으로 선정된 김차진 씨 역시 그런 현장 기술인 중 한 사람이다. 농촌에서 자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온 그는 제철소에 입사한 이후 줄곧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辛抱해라.” 입사하던 날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는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좌우명이 됐다. 고장 난 설비를 고치는 기술자에서 설비의 구조를 바꾸는 기술자로 성장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현장의 시간을 들어봤다. - 포스코 명장에 이르기까지의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어린 시절은 짧았지만 몸으로 부딪히며 하루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농번기에는 부모님을 도와 논밭에서 일했고, 농한기에는 산에 올라 땔감을 해다 나르며 생활했다. 그 시절의 경험은 포스코에 입사한 이후에도 현장에서 맡은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밑바탕이 됐다. 현장 업무는 늘 기본에 충실하려 했다. 그 위에 설비를 하나씩 개선해 나가면 노력한 만큼 성과가 눈에 보였고 그 효과가 수치와 결과로 검증됐다. 그 과정이 늘 설레고 긴장됐으며,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그게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입사를 위해 집을 나설 때 아버지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해방 직전까지 일본에서 17년 동안 도금기술자로 일하셨다. 근대식 제철소가 어떤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제게 남긴 말씀은 단 하나였다. “辛抱(신보)해라.”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막상 입사하고 동촌 생활관에 들어갔을 때는 솔직히 꿈이 아닌가 싶었다. 흰 쌀밥에 고기국이 나오고, 하얀 매트리스 커버가 덮인 독신료 침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여기서 뼈를 묻겠다.’ 그 각오로 지금까지 현장을 지켜왔고, 그 시간이 쌓여 오늘의 포스코 명장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자주변형돼 반복 교체해야 하는 주선기 단순 복구 넘어 구조의 개선으로 효율화 우수제안 채택··· 도전 정신 갖는 계기로 설비 개선 기본은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 완벽한 도면 이해 위해 색칠해 가며 외워 ‘스페인 구상’은 노력 결실 맺은 아이디어 3고로 보조냉각반 설치 실패 아찔했지만 시련은 오히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 발로 뛴 결과 4고로서는 결국 해법 찾아 포스코의 큰 힘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 후배들 조급함보다 과정에 충실한다면 수소환원제철도 반드시 결실 돌아올 것 - 회사 생활 중 ‘이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느낀 순간이 있다면 어떤 때였는지? 정비 업무를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고장이 나면 고치고, 다시 고치는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있었다. 일도 사람도 모두 버겁게 느껴지던 때였다. 그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설비가 주선기였다. 주선기는 고로에서 나온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일정한 형태로 굳히는 부대설비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쇳덩이가 작업 중 떨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안전격자가 늘 문제였다. 뜨거운 열과 무게를 견디지 못해 자주 변형됐고, 그때마다 교체 작업이 반복됐다. 그 순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렇게 자주 고쳐야만 할까?’ 단순히 고장을 복구하는 대신 구조 자체를 바꿔보자는 발상이었다. 부품 형태와 교체 방식을 개선해 반복 작업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직접 시험했고, 석 달간 효과를 검증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 개선안이 처음으로 우수제안에 채택됐고, 그게 내 회사 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전까지는 주어진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일을 계기로 ‘내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바꿀 수도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로 현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각하고 도전하는 공간이 됐다. - 현장에서 설비 개선이나 문제 해결을 할 때, 자신만의 노하우나 접근 방식이 있다면? 설비 개선의 기본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아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설비를 겉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도면과 현물을 함께 놓고 머릿속에서 구조를 입체적으로 그려본다. 나는 항상 설비를 3D 그림처럼 이해하려고 했다. 요즘처럼 좋은 프로그램이 없던 시절에는 도면을 직접 옮겨 색칠하면서 하나하나 구조를 익혔다. 마침 새로운 프로그램이 도입되면서, 그동안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됐다. 업무가 끝난 뒤나 휴무일에도 혼자 남아 자료를 정리했고, 그때 쌓은 기록들은 지금도 내 보물이다. ‘스페인 구상’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결과다. 과거 박태준 회장님이 과감하게 ‘하와이 구상’으로 제철소 건설을 이끄셨던 것처럼, 고로의 핵심 냉각설비인 스테이브 쿨러(Stave Cooler) 교체를 위해 스페인 아르셀로미탈 제철소를 벤치마킹했고, 그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우리 현장 여건에 맞게 구체화했다. 아이디어는 크기보다 속도가 중요하다. 작은 생각이라도 떠오르면 미루지 않는다. 밤을 새워서라도 바로 정리하고 글과 그림으로 구체화한다. 설비는 기다려주지 않고, 개선의 타이밍도 그렇기 때문이다. - 수많은 도전과 시련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었는지? 돌이켜보면 실패의 아픔이 오히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됐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3고로 보조냉각반 설치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다. 그때는 경험도 부족했고, 무엇보다 고로를 너무 얕잡아봤다. 조업 성적은 좋았지만, 고로 본체 냉각설비인 스테이브 쿨러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마모되면서 냉각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철피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상황이었고,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보조냉각반을 설치하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고로를 잠시 멈추고 철피에 구멍 뚫어 설치하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철피를 뚫고 들어간 드릴이 안쪽까지는 도저히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철피에 물을 뿌리며 조업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정말 울음을 삼켰다. 중도에 포기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고로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그 자만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하지만 그 실패를 그냥 아픔으로만 남겨두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도전할 때는 달라져야 했다. 가용 인력을 총동원하는 한편, 작업 전 훈련과 시뮬레이션도 철저히 실시했다. ‘두 번의 실패는 안 된다’는 각오였다. 그 경험은 이후 4고로에서의 도전으로 이어졌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해외 사례까지 직접 찾아 나섰고, 결국 외부에 답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내부에서 해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시련은 끝이 아니라 다음 도약을 준비하는 과정이 됐다. 돌아보면 나를 성장시킨 것은 성공보다 실패였다. 실패를 통해 겸손해졌고 더 깊이 준비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내가 다시 현장에 설 수 있었던 이유다. -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와 그것이 현장에서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자격증은 많이 따는 것보다 언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꼭 필요하다고 느낀 자격증만 선별적으로 취득해 왔다. 산업안전기사는 작업의 기본이 되는 안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기계정비산업기사는 설비를 구조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취득했다. 용접기능장은 결국 현장에서 손으로 책임져야 하는 순간을 대비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자격증은 기술인의 출발선이지, 목표는 아니라고 본다. 현장에서는 이미 그 다음 단계의 문제들을 다뤄야 했고, 그 과정은 개선 성과와 적용 결과로 검증돼 왔다. 여러 차례의 표창 역시 그런 현장 중심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 후배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방법으로 성장하도록 돕고 있는지? 후배들을 대할 때는 항상 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의 후배들과 같은 연령대였을 때 내가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무엇이 가장 막막했는지를 기준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그때의 어려움을 반면교사 삼아, 후배들이 같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겪도록 돕는 게 선배의 역할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포스코의 큰 힘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에 있다. 현장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다루는 곳이고 도전에는 반드시 실패가 따른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숨기지 말라고 한다. 대신 왜 실패했는지, 다음에는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자고 이야기한다. 특별한 교육 방식을 갖고 있지는 않다. 후배들에게 무엇을 강요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먼저 고민하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지만 태도는 결국 보고 배우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에서 묵묵히 일하는 선배로 남아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후배들은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좌우명인 ‘하심’과 ‘겸손’은 현장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내가 말하는 하심(下心)은 나 자신을 일부러 낮추는 태도다. 직급이나 경력, 명장이라는 호칭을 내려놓고 먼저 다가가면 상대도 마음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되면 후배들은 훨씬 편하게 질문하고 고민을 털어놓게 된다. 재미있는 건 그렇게 가까워진 후배들로부터 오히려 내가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는 점이다. 현장은 늘 변하고 젊은 후배들은 새로운 시각과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질문 하나, 관찰 하나가 나에게는 또 다른 배움이 된다.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심이 곧 겸손이라고 생각한다. 겸손은 단순히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나 역시 배우는 사람이라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나보다 먼저 설비를 만지는 후배도 있고 나보다 더 빠르게 변화를 감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이 내가 현장에서 실천하려는 하심과 겸손이다. - 마지막으로, 명장으로서 앞으로의 목표와 다짐, 그리고 앞으로 50년을 이끌어갈 포스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포스코의 지난 50년이 축적과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또 다른 도전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한 지역, 한 회사에서 긴 시간을 함께해 올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기술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했으며, 회사를 믿고 함께 버텨온 동료들, 그리고 제철소와 삶을 함께해 온 지역 사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처럼 축적된 경험과 협업의 힘은 새로운 산업 환경을 마주한 지금 더욱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특히 수소환원제철로 대표되는 새로운 제철 패러다임은 현장 기술인들에게도 전혀 다른 시각과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변화를 바라보며 명장으로서의 역할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 앞에서도 현장이 흔들리지 않도록 기본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설비와 공정은 바뀌어도 안전과 품질을 대하는 자세, 문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태도만큼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이 있다면 그것을 새로운 기술과 연결해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수소환원제철처럼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일수록 차근차근 이해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그 노력은 반드시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렇게 쌓인 개인의 성장이 다시 현장을 단단하게 만들고, 조직 전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포스코의 다음 시대 역시 이런 현장 기술인들의 꾸준한 도전 위에서 완성될 것이라 생각한다. ▶ 김차진 명장은··· △ 포항제철소 제선설비부 고로정비섹션 (포스코 명장) △1958년 3월 17일생 △ 경주공업고등학교 졸업 △ 50년 근속 (1976년 3월 5일 입사) △ 2010년 올해의 용선인 △ 2011년 포스코패밀리대상 △ 2014년 정비명인 △ 2015년 철강기능상 △ 2016년 포스코기술대상 △ 2016년 포스코명장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3-08

[최병일의 일본 여행] 금빛과 침묵 사이에서 만난 천년 전 교토

교토는 으레 일본 정신사의 ‘심장’으로 호명된다. 한때 수도였다는 역사적 위상 때문만은 아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절과 신사, 인간의 욕망과 금욕이 교차하는 정원, 그리고 게이샤와 가부키 같은 문화 콘텐츠까지 겹겹이 쌓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1600여 개의 사찰과 400여 개의 신사, 그리고 17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자리한다. 서구 여행자들이 이 도시를 두고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전통의 박물관’이라 말하는 이유다 △교토의 상징 금박으로 빛나는 킨카쿠지 교토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 킨카쿠지다. 흔히 금각사(金閣寺)로 불리는 이 사찰은 교토의 이미지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경호지라 불리는 연못이 시야를 연다. 그리고 그 수면 위에 금빛 누각이 떠오른다. 3층 구조의 건물은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르다. 1층은 귀족 주택풍, 2층은 무사풍, 3층은 선종 불전 양식이다. 권력과 종교, 귀족과 무사가 한 몸처럼 얽혀 있던 무로마치 시대의 질서가 건축으로 형상화된 셈이다. 킨카쿠지는 금이나 화려한 것에 매료되는 중국인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킨카쿠지는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 홀로 빛을 내는 금각을 보는 순간 관광객의 입에서는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킨카쿠지 앞에 있는 호수는 경호지(鏡湖池)라고 한다. 거울 못이라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킨카쿠지 3층 누각 건물이 마치 호수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유홍준 교수는 킨카쿠지가 ‘시각적 관능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우아하고 날렵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모습을 보면 시각적 관능미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로쿠온지다.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조성한 별장 기타야마전이 그 기원이다. 그는 정치적 권위를 미적 권위로 치환하는 데 능했다. 천황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장소가 바로 이 금각이었다. 외교의 무대이자 권력의 극장이었던 셈이다. 찬란한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야망을 반사하는 표면이었다. 그러나 영원해 보이던 아름다움도 불길 앞에서는 무력했다. 1950년, 한 승려 지망생의 방화로 금각은 전소됐다. 21살의 학승이었던 범인은 미시마 유키오 소설처럼 금각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신분열 때문에 화재를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고,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모티프로 소설 ‘금각사’를 집필했다. 그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파괴 충동을 교차시키며, 미와 광기의 경계를 파고들었다. 현실의 화재는 복원을 통해 수습됐지만, 문학 속 금각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복원된 누각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눈부신 금박을 두르고 서 있다. 파괴를 통과한 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견고해졌다 △독특한 정원의 절제된 모습 료안지 교토의 또 다른 얼굴은 절제다 사찰 순례지로 빼놓을 수 없는 료안지에 가면 절제의 의미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료안지는 절 자체보다 석정(石庭)이라 불리는 돌 정원이 명성을 떨친다. 1450년 건립한 선종사찰로 전라과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어 지금은 현관 겸 본당역할을 하는 방장과 일부건물만 남아 있다. 석정은 일종의 가레산스이 (枯山水)양식이다. 일종의 마른 정원이다. 나무도 꽃도 없다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양식인데 돌과 모래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이다. 중국의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차경기법이라고도 한다. 료안의 석정은 하얀 모래(白砂)와 돌만으로 구성된 약 250㎡ 넓이인 작은 정원이다. 처음에는 돌과 모래만 남겨두고 정원이라고 하는 것이 의아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앉아 돌 정원을 바라보자니 화려한 정원보다 더 고졸한 맛이 풍겨왔다. 관광객들은 정원 바로 앞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정원을 바라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엄숙하게 돌을 바라보며 지긋이 눈을 맞춘다. 석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있는 합쳐서 15개의 크고 작은 돌이 배치되어 있다. 물을 상징하는 자갈이 전체 15개의 돌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이 놓은 위치 때문에 한눈에 돌은 14개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한 개는 깨달음을 얻어야 보인다고 하지만 이는 말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은 이야기 같다. 추상적이면서 해석이 어려운 석정이지만 긴장감이 없고 편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것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 때문이다. 낮고 갈색인 아부라도베이(油土塀)라고 불리는 이 흙담은 자체가 유명하다. 유채나 찹쌀을 씻고 생긴 물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이 흙담이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고하게 되고 방수성(防水性)도 높아진다고 한다. 멋지면서도 실용성이 있는 담장이다. 만약 담장이 높고 흰색이었다면 석정 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모른다. 료안지의 석정은 지금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15세기 유명화가였던 소아미라는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료안지 주지였던 선승 도쿠호 젠케쓰라는 이도 있다. 료안지는 어느 계절에 와도 색다른 맛을 풍기지만 벚나무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봄에 와야 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료안지 석정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1975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해 크게 칭찬하면서 부터다. 호류지 북문으로 나가면 대숲이 나온다. 한 아름도 넘는 굵은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구쳐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고 이후 드라마와 CF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숲이다. 대략 450m 남짓한 길이 깔린 이 대나무 숲은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데이트를 하거나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연인과 함께 찾는다면 인연을 맺어준다는 노노미야 신사에 들러 소원을 빌면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 수상가옥 후나야와 아마노 하시다테의 절경 교토의 북쪽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펼친다. 교토부 이네만에 자리한 이네는 ‘후나야’라 불리는 선박가옥으로 유명하다. 마치 홍콩의 란타우 섬에 있는 수상 가옥 마을인 타이 오(Tai-O)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다. 후나야라는 말이 ‘배의 집’을 말하는 것이니 선박가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층은 배를 대는 선착장, 2층은 생활공간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5킬로미터 해안선을 따라 200여 채가 줄지어 서 있다. 만조 때면 집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바다와 삶의 경계가 흐릿하다. 마을 중앙의 양조장 무카이주조는 붉은 빛의 사케 ‘이네만카이’로 이름을 알렸다. 흑미로 빚은 이 술은 달콤한 향과 산뜻한 산미를 동시에 지닌다. 작은 어촌의 양조장이 빚어내는 한 잔에는 바다의 기후와 마을의 시간이 스며 있다. 지역의 개성이 곧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다. 이네에서 바닷길을 따라 30분정도 가면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마노 하시다테가 나타난다. ‘하늘에 닿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곳으로 길이 3600m 폭은 40~110m 의 바다 위 소나무 길을 볼 수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8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바다위에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 가로수길 좌우로 바다가 보이는 백사청송의 길은 교토사람들의 자랑이다. 이곳에 가면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하시다테의 풍경을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리 사이로 거꾸로 풍경을 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거나 하늘에 닿는 다리로 보인다고 한다. 인근의 모토이세 고노 신사는 오랜 세월 지역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울창한 숲과 바다, 모래톱과 신사가 어우러진 장면은 교토가 결코 내륙의 고도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과 바다, 화려함과 절제, 권력과 수행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한다. 교토는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공간이다. 금빛 누각의 찬란함도, 돌과 모래의 침묵도, 대숲의 수직선도, 바다 위 가옥의 일상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시간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교토의 대답은 단순하다. 허물어지면 다시 세우고, 비워두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화려함은 절제와 균형을 이루고, 고요함은 내면의 울림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교토는 천년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도시다. 과거가 현재를 밀어내지 않고, 현재가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행자는 비로소 시간을 걷는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6-03-02

문경 청대구곡 따라…'나를 닦는 여행' 떠나볼까?

여행을 더 멋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정해진 관광지에서 인증사진을 남기고,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시간표에 맞춰 이동하는 여행 말고 말이다. 잠시 걸음을 늦추고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자연을 들여보내는 여행. 그리고 그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아직 닿지 못한 삶의 경지에 한 걸음 다가서는 여행. 그런 여행을 원한다면 ‘구곡(九曲)’ 여행을 권한다. 구곡은 단순한 계곡이나 명승지가 아니다. 물길을 따라 아홉 굽이를 정하고, 그곳마다 자연과 학문, 인생의 의미를 담아 이름 붙이고 시를 남긴 선비들의 정신적 지도다. 조선의 선비들은 산수를 유람하며 시를 짓고 마음을 닦았다. 자연을 보는 일이 곧 공부였고, 걷는 일이 곧 수양이었다. 문경에는 이런 구곡이 14개가 있다. 조선시대에 설정된 화지구곡, 선유구곡, 선유칠곡, 병천구곡, 석문구곡, 산양구곡, 청대구곡, 화장구곡, 무호구곡 등 9개가 있고, 근현대에 설정된 쌍용구곡, 관산구곡, 남강구곡, 영강구곡, 조령구곡 등 5개가 있다. 그 가운데 청대 권상일 선생이 설정한 청대구곡은 지금 우리가 다시 걸어볼 만한 특별한 길이다. 청대 권상일(權相一) 선생은 1679(숙종 5)에 태어나 1759(영조 35)에 별세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태중, 호는 청대. 아버지는 증이조판서 심이며, 어머니는 경주이씨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그 뒤 저작·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1727년(영조 3) 만경현령이 되고, 이듬해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1731년 영암군수와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1734년 민폐근절책과 관기숙정방안에 대하여 상소했고, 홍문관의 계청으로 경연에 참석했다. 같은 해 울산부사가 되어 춘추관편수관을 겸임하고, 구강서원을 세웠다. 뒤에 대사간·홍문관부제학·지중추부사·대사헌 등을 지내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이황을 사숙하며 이황이 수정하기 전의 사칠설을 이어받아 이(理)와 기(氣)를 완전히 둘로 분리하고, ‘이‘는 본연의 성(性)이며 ‘기‘는 기질의 성(性)이라고 주장했다. 저서로는 청대집·청대일기·초학지남(初學指南)·관서근사록집해(觀書近思錄集解)·소대비고(昭代備考)·가범( 家範)·역대사초상목(歷代史抄常目) 등이 있다. 죽림정사·근암서원에 제향되었으며, 시호는 희정이다. ◇구곡 여행의 시작, 주자에서 문경으로 구곡의 전통은 남송의 대학자 주자(朱子)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중국 복건성 무이산에 은거하며 아홉 굽이 계곡을 정하고 ‘무이구곡도가(武夷九曲櫂歌)’라는 시를 남겼다. 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오르며 자연 속에서 도를 깨닫는 여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주자는 18세에 과거에 급제했지만 벼슬보다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공자와 맹자의 도덕 중심 유학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해 성리학을 완성했고, 그의 저술 ‘사서집주’는 조선 500년 과거시험의 기본 교재가 됐다. 조선의 선비들이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비롯한 수많은 유학자들이 전국 명산대천에 자신만의 구곡을 설정했다. 자연 속에서 공부하고 자신을 닦는 길, 그것이 선비의 이상이었다. 문경의 유학자들도 이 전통을 이어받아 구곡을 설정했고, 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진다. ◇물 흐름 따라 내려가는 파격 청대구곡(淸臺九曲)은 다른 구곡과 조금 다르다. 주자가 물 아래에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구곡을 정했다면, 청대 권상일 선생은 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며 구곡을 설정했다. 흐름을 거슬러 오르지 않고 흐름을 따라 내려가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방향의 차이가 아니다. 사고의 전환이자 사유의 파격이다. 때로는 흐름을 거슬러야 하지만, 때로는 흐름을 따라가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도 있다. 청대구곡은 산북면 근암마을 우암에서 출발해 금천을 따라 하류로 내려간다. 첫 굽이 우암(愚巖)에서는 바위가 물길을 감싸 안아 물이 돌아간다. 시인은 그 곁에서 아이와 함께 노닐며 오가는 한가로운 삶을 노래한다. 여행의 시작은 분주함이 아니라 여유다. 2곡 벽정(碧亭)에 이르면 높은 산과 푸른 물, 옛사람의 자취가 겹쳐진다. 선현의 초가가 층암에 기대어 있고, 작은 배가 물을 가르며 지난다. 자연 속에서 옛사람의 삶을 떠올리는 순간, 여행은 시간의 깊이를 얻는다. 3곡 죽림(竹林)에서는 학문의 전통이 이어진다. 회로당인 산양수계소를 통해 남전의 유학 전통을 떠올리며, 선현의 가르침이 맑은 물처럼 길이 흐르기를 기원한다. 여행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사유의 길이 되는 지점이다. 4곡 가암(佳巖)에서는 물고기가 뛰고, 동쪽 들판에 창석이 솟아 있다.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세계, 만물이 제 본성을 따라 살아가는 조화의 풍경이다. 시인은 노를 젓지 않고 두드리며 천천히 흐른다. 목적지보다 과정이 중요해지는 순간이다. 5곡 농청대(弄淸臺)는 청대 선생이 직접 정사를 짓고 학문을 닦던 곳이다. 작은 서재에서 성현의 글을 펼치고 여생을 보내겠다는 그의 기록은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마음을 쉬고 있는가. 6곡 구잔(溝棧)에서는 잔도(棧道)와 시장이 등장한다. 자연과 인간의 삶이 만나는 지점이다. 장터의 분주함 속에서도 시인은 신농씨(神農氏)의 태평성대를 떠올린다. 자연과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을 그린다. 7곡 관암(觀巖)에서는 두 물이 만나 하나가 된다.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지는 물길을 보며 천리(天理)를 생각한다.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다. 각기 다른 길을 걷다가 결국 하나의 이치로 돌아간다. 8곡 성암(筬巖)에서는 주돈이를 떠올린다. 태극을 우주의 근원으로 보고, 연꽃처럼 세속 속에서도 맑음을 지키라고 했던 철학자다. 자연 속에서 철학을 만나는 순간이다. 마지막 9곡 소호(蘇湖)에 이르면 물길이 끝나고 마을이 나타난다. 긴 여정을 지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곳은 출발 전과 같지 않다.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를 연마하는 여행 구곡 여행의 본질은 풍경 감상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을 닦는 데 있다. 천천히 걷고, 오래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는 것. 그 과정에서 마음의 먼지가 씻겨 나간다. 현대인은 빠르게 이동하지만 깊이 머물지 못한다. 많은 곳을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구곡 여행은 그 반대다. 한 굽이를 오래 바라보고, 한 줄기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본다. 문경의 산수는 이미 아름답다. 그러나 그곳에 살았던 선비들의 사유와 정신을 함께 따라가면 여행은 전혀 다른 깊이를 갖는다. 청대구곡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자연과 선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동시에 만난다. 이제 여행의 방식도 달라질 때가 됐다. 빠르게 소비하는 여행에서 벗어나, 나를 연마하고 마음을 맑히는 여행으로. 문경 청대구곡은 그렇게 우리를 부르고 있다. 청대구곡(淸臺九曲) 일곡이라 우암이 안아서 열지 않으니 바위 앞에 흐르는 물은 절로 돌아가네 내 집은 다만 시내 서쪽 가에 있거늘 아이와 때때로 노닐며 몇 번을 오가나 이곡이라 산이 높고 푸르름 들리려 하는 곳에 고인의 띠집이 층암의 언덕에 기대어 있네 가벼운 돛대 날카로운 노 어느 때 움직일까 서쪽 언덕 바위에 작은 배 가로지르네 삼곡이라 높다랗게 자리한 회로당은 남전의 유법이 해와 별처럼 빛나네 원하노니 영원히 폐해지지 않아서 앞에 있는 맑은 시내처럼 길이길이 흐르기를 사곡이라 양양하니 고기가 연못에서 뛰고 동쪽으로 보니 창석이 평전에 우뚝 솟았네 배를 타고 노를 두드림은 진실로 한가한 일이니 아침저녁으로 바위 앞에 작은 배를 매네 오곡이라 중반에 작은 누대 지으니 서쪽 바위 백척이라 높다랗게 솟았네 움집 안에 백발노인 한가히 일이 없어 성현의 남긴 글을 책상 위에 펼치네 육곡이라 산비탈에 잔도가 위태하고 돌을 안은 긴 봇도랑 천천히 흘러가네 서쪽의 버드나무숲 시장에는 사람들 다투어 모이니 멀리 신농씨가 교역하는 때를 생각하네 칠곡이라 구불구불 두 물이 가로질러 남으로 달리고 서로 돌며 다투는 듯하네 중간에 나뉘고 끝에 합함이 원래 천리거늘 소호에 이르지 않아서 한 길로 흘러가네 팔곡이라 창연히 가파른 벽 기이하니 주옹의 풍영대가 이곳에 존재하네 바위 사이 고적은 두 글자 전서이고 눈 아래 고산은 누에의 한 눈썹이네 구곡이 장차 다하고 산 또한 다하니 무이촌이 언덕 가 동쪽에 자리하네 원두의 물은 들판 가까이에 이어지는데 청원정에 남아 있는 고벽은 비었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6-02-26

화려한 봄과 시작, ‘2026 고령대가야축제’ 열린다

꿈과 희망으로 맞이할 2026년 새 봄을 기대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온갖 꽃 화려하게 피어날 계절에 어울리는 흥미로운 축제가 곧 고령에서 펼쳐지는 것. 고령군은 오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2026 고령대가야축제’를 연다. ‘다시 시작되는 대가야: RE-BORN’라는 슬로건으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고도(古都) 지정 이후 새로이 주목받는 고령군의 역사적 가치와 정체성을 조명하고, 낮과 밤 모두 즐길 수 있는 체류형·참여형 축제로 진행된다는 것이 고령군청의 설명이다. 축제는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대가야박물관, 대가야문화누리 일원에서 진행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지산동 고분군과 연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실속 있게 운영된다. 올해는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3주년과 ‘대가야 고도 지정 스토리’를 결합해 방문객들에게 역사와 문화, 체험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으로는 100대 가야금 콘서트, 대가야 별빛쇼, 군민 퍼레이드, 대가야 역사 토크콘서트, 군민화합한마당, 가야문화권 합창 페스티벌 등이 준비됐다. 특히 100대 가야금 콘서트는 대가야의 상징인 가야금을 해설이 있는 콘서트 형식으로 구현해 축제의 정체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체험 프로그램도 보다 풍성해졌다. ‘대가야 그릴 존’과 ‘고령 Berry Good 딸기 한 상’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미식 체험 코너 등이 새롭게 방문객들을 만난다. 행사장을 찾는 사람들은 고령 돼지고기를 활용한 꼬치 요리를 직접 조리해 시식하고, 고령 딸기를 활용해 딸기 샌드위치와 딸기 우유 등 DIY 딸기 요리를 만들어 보는 색다른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대가야 유물 발굴체험, 대가야 엽서 스탬프 투어, 딸기 꽃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또한 준비됐다. 더불어, 소규모 버스킹과 데이비드 리의 대가야 쿠킹쇼, 지산동 고분군 야간 트래킹 등 낮과 밤 모두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여러 개 선보이게 된다. 매년 축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60대 한 고령군민은 “해마다 봄이 오면 대가야축제와 함께 사람들의 웃음꽃도 만개하는 걸 지켜본 경험은 언제나 소중했다”는 말로 ‘2026 고령대가야축제’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올해도 군민은 물론 축제 기간에 고령군을 찾아줄 관광객들이 만족할 만한 알차고 재밌는 프로그램이 가득할 것이라 믿는다”며 웃었다. 이번 축제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야간관광 콘텐츠 강화와 인근 관광지 연계성을 높인 점이다. 대가야 수목원과 음악분수 등 주요 야간 관광지와 연계해 셔틀버스 노선을 확대 운영하며, 방문객들이 축제장과 주변 관광지를 편리하게 오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밤의 대가야’라는 테마로 체류형 관광을 본격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 주최 측의 복안이다. 이와 관런해 고령군 관계자는 “2026 고령대가야축제는 대한민국 문화관광축제에 2회 연속 선정되며 대가야의 역사적 가치를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됐다”며 “여러분들이 함께 할 이번 축제를 통해 대한민국 다섯 번째 고도(古都)로 지정된 고령군의 자긍심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역사문화 브랜드 가치를 보다 높여가겠다”는 말을 전했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남은 고령대가야축제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의 발걸음과 손길이 오늘도 분주하다.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감도 함께 커지고 있다. /전병휴 기자 kr5835@kbmaeil.com

2026-02-25

산사에서 먼저 전해주는 봄소식…"가슴 설렌다"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봄의 전령은 남도의 끝에서 시작해 서서히 북상할 것이다. 꽃의 미소를 품고 봄바람에 타고 살랑거리며 우리 곁으로 스며들 것이다. 봄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 금둔사, 송광사에는 어느새 매화가 피었다. 경북 청도의 운문사는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봄의 향기 만큼은 물씬 풍긴다. 봄의 기운을 찾아 싱그러운 보 여행을 떠나보자 △ 수줍은 홍매화가 눈부신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정호승의 ‘선암사’ 중) 봄의 한복판에 선 선암사는 시인의 말보다 황홀하다. 선암사로 가는 길목에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것이다. 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가슴 속에 떨어졌다. 선암사의 아름다움은 역시 꽃이다. 사시사철 철 따라 피고 지는 매화·동백·철쭉·산수유·영산홍·수국·물푸레나무 등 수많은 꽃나무들을 바라보면 과연 이곳이 사찰인지 수목원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선암사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부터는 탈속(脫俗)의 땅임을 알리듯이 승선교가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계곡의 바위와 조화를 이루는 아치형 다리인 승선교는 역사가 300년이 넘는 건축물이다. 승선교 다리 밑으로 물줄기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선암사가 대웅전을 비롯해 무려 40여곳의 전각이 있을 만큼 웅장한 사찰임에도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것은 계곡 속에 터를 잡은 절묘한 모양새 때문일 것이다. 경내에는 대낮인데도 홍매화와 벚꽃이 피어 마치 등을 단 것처럼 빛이 난다. 어떤 이는 황홀한 꽃향기에 취해 홍매화 밑을 떠날 줄 모르고 또 어떤 이는 사진기로 열심히 선암사의 꽃들을 담아낸다. 꽃들 사이로 스님들이 걸어가는 순간 독경소리가 청아하게 경내를 울린다. 선암사의 대웅전은 절 규모에 비해 그리 크지 않지만 단아한 느낌을 물씬 풍긴다. 세월의 흔적처럼 단청은 빛이 바랬지만 그 때문에 더 정겹다. 꽃이 이르기로는 순천 금전산의 금둔사다. 금둔사에는 매화가 지천인데, 그중에서도 낙안읍성에서 지금은 죽은 노거수 매화나무에서 씨앗을 받아다 심었다는 여섯 그루 나무에 매화가 워낙 이르게 피어서 ‘납월매(臘月梅)’라 부른다. 그런데 왜 그런지, 올해는 꽃이 늦다. 이제 겨우 한 그루에 서너 송이씩 꽃망울을 터뜨린 정도다. 그것도 얼어 터진 것이 대부분이다. 주지 지허스님 대신 절집을 지키고 있던 스님은 “올겨울에는 이쪽 골짜기가 유독 추웠다”고 했다. 시작부터 이러니 금둔사의 매화 구경은 권하기가 마뜩잖다. △ 송광사 매화는 스님 마음마저 빼앗고 선암사는 조계산 동쪽 줄기에 둥지를 튼 절이다. 조계산의 서쪽에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절이 있다. 송광사다. 선암사에서 차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하지만 실상 선암사와 송광사는 한 뿌리로 연결돼 있다. 두 사찰을 잇는 고갯길이 바로 골목이재다. 굽이굽이 계곡과 울을 넘는 이 코스는 트레킹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대략 6.8㎞로 재게 걸으면 3시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길섶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었고, 하늘로 솟구친 늘씬한 편백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숲을 지나 계곡에 다다르면 물소리와 바람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땀이 소슬하게 맺힐 무렵 송광사에 도착했다. 국내 3대 사찰 중 하나인 송광사는 보조국사 이래 수없이 많은 고승과 국사를 배출한 승보(僧寶)사찰이다. 뛰어난 인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절집이 아름답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그러하다. 절 입구에 놓여진 징검다리 하나에도 서정이 묻어 있고, 매화와 어우러진 고졸한 절의 모습에도 정감이 간다. 흐트러짐 없이 독경하던 스님들조차 매화에 눈을 두고 거둘 줄 모른다. 바야흐로 봄은 왔고 스님의 수행조차 방해하는 매화의 웃음소리가 사찰 안을 온통 어지럽힌다. △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 ㅈ 순천에서 만나는 또하나의 절경은 순천만이다. 소설가 김승옥의 대표작 ‘무진기행’은 순천만이 배경이다. “무진교를 걷다 보면 눈앞에 시원스레 펼쳐지는 갈대와 갯벌, 철새의 환상적인 만남이 이어진다”는 작가의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순천만은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절묘하게 자리한다. 순천 동천과 이사천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10리 갈대밭엔 탐방로가 조성돼 있어 가족과 연인들의 산책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강 하구를 비롯해 갈대밭과 염습지 갯벌 등이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고 주변에는 광활한 논과 수로, 낮은 구릉이 어우러져 있다. 순천만의 전경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으면 용산(龍山)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공원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왕복 6㎞는 되지만 갈대가 빚어낸 주변 경관을 감상하며 걸으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다다른다. 용산은 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평범한 야산 정도 높이의 산인데도 용산에 올라서면 순천만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순천만의 중심에는 S자 모양의 갯골이 모양을 드러낸다. 일명 S라인으로 불리는 만의 풍경은 특히 해질 무렵이 압권이다. 햇살이 서서히 떨어지면 갯벌이 조금씩 검게 변하고 주변은 금색으로 물든다. 떨구어낸 금분은 사람들의 얼굴을 물들이고 드넓은 순천만에 골고루 뿌려진다. △ 바람이 머무는 자리, 운문사의 봄 경북 청도 깊은 산자락, 운문산 자락에 기대 선 절집 하나가 봄을 맞는다. 천년을 버텨온 은행나무가 먼저 연둣빛 숨을 고르고, 그 곁을 스치는 바람이 겨우내 굳었던 마음을 풀어낸다. 봄의 절은 소란하지 않다. 대신 낮은 종소리처럼 은은하다. 그곳이 바로 운문사다. 운문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고찰로 전해진다.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고, 전란의 불길 속에서 소실과 중창을 거듭했다. 그러나 절은 늘 제 자리를 지켰다. 산이 그랬듯, 계곡이 그랬듯, 시간 또한 이곳을 비켜가지 못했다. 지금의 운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교육의 중심도량으로, 한국 최대 규모의 비구니 강원(승가대학)이 자리한다. 봄날 경내를 걷다 보면 염불 소리 대신 책장을 넘기는 사각임이 들릴 것만 같다. 수행과 배움이 함께 숨 쉬는 절, 그래서 운문사의 봄은 더욱 단정하다. 절집 여행은 문을 통과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속세와 불계(佛界)를 가르는 경계, 일주문을 지나면 풍경의 결이 달라진다. 운문사의 진입로는 길게 뻗은 소나무 숲길이다. 봄이면 그 사이로 연둣빛이 번지고, 계곡물은 한층 가벼운 소리를 낸다. 매표소를 지나 천왕문, 그리고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축은 단정하고 절제돼 있다. 화려함 대신 균형과 여백이 돋보인다. 경내 중심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단청은 세월의 빛을 머금어 오히려 은은하다. 봄 햇살이 기와 위에 내려앉으면 검푸른 지붕은 따뜻한 빛으로 반짝인다. 처마 끝 풍경(風磬)은 바람을 받아 가늘게 운다. 그 소리는 크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봄날의 절이 그렇다. 한 번 스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운문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경내에 우뚝 선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다. 수령 1300년 안팎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절의 역사 그 자체다. 봄이면 가지 끝마다 연둣빛 잎이 솜털처럼 돋는다. 겨울의 앙상함은 사라지고, 생명의 기척이 나무를 타고 오른다. 이 은행나무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절이 불타고 다시 세워지는 시간을 묵묵히 지켜본 생존의 상징이다. 여행자는 그 아래에 서면 자연스레 고개를 들게 된다. 인간의 시간과 나무의 시간이 얼마나 다른지, 그 간극을 실감한다. 봄은 매년 오지만, 천년의 봄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운문사의 봄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벚꽃이 만개해도 절집은 조용하고, 연둣빛이 산을 덮어도 경내는 단정하다. 그래서 더 깊다. 이곳의 봄은 보여주기 위한 계절이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천년 은행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들던 순간, 대웅보전 처마 끝 풍경이 울리던 소리, 운문산 계곡의 맑은 물빛. 그 장면들은 여행이 끝난 뒤에도 마음 한편에 남는다. 봄은 결국 풍경이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6-02-23

“소통·협업만이 안전 지킨다”

각 공정에 필요한 물 끊김 없이 공급되도록 관리 문제없이 흐르고 있는 물 확인 때마다 보람 느껴 산업안전·위험물·가스산업기사 등 자격증 다양 팀워크로 ‘안전시설물 개선’ 우수 포상 값진 성과 명장 꿈 실현 위해 늘 배우는 자세로 경험 쌓을 것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맡고 있는 업무에 대해 설명해달라. △제철소에서 물은 설비를 식히고 공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이다. 나는 포항제철소 에너지부 동력섹션 수질점검반에서 근무하며, 제철소 각 공정에 필요한 물이 끊김 없이 공급되도록 관리하고 있다. 포항제철소 에너지부 동력섹션은 제철소 설비가 안정적으로 가동되도록 가스, 스팀, 용수 등 주요 에너지원 공급을 맡고 있다. 수질점검반은 그중 용수 분야를 전담하며, 원수 취수부터 정수·냉각·순환·폐수 처리까지 전 과정을 관리한다. 입사 후 4년 동안 현장에서 내 업무는 용수배관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압력·유량·수질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 누수 차단, 배관 교체, 수질 조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제철소 구석구석을 가득 메운 파란색 용수배관이 눈에 들어왔다. 설비 사이를 촘촘히 이어 흐르는 그 배관들을 보며, 현장의 규모와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때부터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그만큼 책임감과 보람도 커졌다. 이제는 중간 위치의 반원으로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안정적 용수 공급을 위해 팀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설비 점검을 마친 뒤, 물이 문제없이 흐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때다. 그 물이 제철소 곳곳을 돌며 생산을 이어간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현장으로 향하게 만든다. -많은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쌓은 역량의 실제 업무 적용은?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실무 역량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예를 들어, ‘기계정비 산업기사’ 준비 과정에서 설비의 작동 원리와 구조를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트러블 발생 시 원인을 신속 진단하고 적절히 조치하는 체계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산업안전·위험물·가스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안전에 대한 시야를 한층 넓혔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긴급 복구 작업이 동시 진행되는 상황에서도 작업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신속 판단, 조율하여 복구를 원활히 마무리한 경험이 있다. 이처럼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은 현장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제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도 수질환경기사, 인간공학기사 등 추가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성을 더욱 심화시켜 현장을 주도하는 핵심 인재로 성장하고 싶다. -일하면서 가장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지? 팀원들과 협업할 때 본인만의 소통 방식 등이 있는지? △내가 일하면서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은 용수배관 관리 담당자로서 첫 배관 누수 정비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마쳤을 때이다. 누수 지점의 정확한 위치 파악을 위해 밸브 위치를 직접 찾고, 여러 차례 테스트와 사전 준비를 거쳤다. 정확히 고장난 밸브를 차단하고 누수 정비를 완료한 후, 설비가 다시 정상화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꼈다. 이때서 느낀 점은, 용수배관 관리 업무가 혼자 힘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정비 일정이 확정되면 다른 팀원들의 예정된 작업을 먼저 파악하고, 일정이 겹칠 경우 미리 조율해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한다. 소통 방식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소통과 협업 덕분에 팀원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었고, 안전시설물 개선 우수 포상 등 값진 성과를 함께 이뤄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팀원들과 원활한 협업을 통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현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포스코에서 가장 만족하는 점은? △포스코에서 근무하며 가장 크게 느끼는 자부심은, 직원과 가족 모두를 세심하게 배려하는 복지제도다. 가족을 위한 복지로는 휴양시설 지원, 가족 건강검진, 자녀 교육비 지원 등 다양한 제도가 있어, 가족의 삶의 질까지 함께 높여준다. 직원 개인의 삶과 건강을 위한 제도도 매우 탄탄하다. 격주 4일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시키고, 사내 산업보건센터에서는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과 함께 필요 시 전문 진료를 상시 받을 수 있다. 또한 회사에서는 콘서트, 강연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자주 개최해, 지방에서 접하기 어려운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도 제공한다. 자기개발과 교육 지원도 높은 만족도를 느끼고 있다. 포스코는 직원과 가족의 행복을 함께 만들어가는 든든한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은 예비 후배들에게 자신 있게 자랑하고 싶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개인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가장 큰 목표는 언젠가 포스코 명장이 되는 것이다. 명장은 그저 기술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선후배들에게 인정받으며 현장에서 후배들을 잘 이끌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관리와 유지보수는 경험과 노하우가 정말 중요한 분야라서, 매일 현장에서 쌓는 경험이 내 역량을 한층 더 키워주고 있다. 개인의 성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선후배들과 함께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며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언젠가 포스코 명장이 되는 영광을 얻게 된다면, 그 기쁨을 지금의 동료들과 꼭 나누고 싶다. 늘 배우는 자세로 작은 변화와 노력이 큰 성과로 이어지도록 매 순간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다. 앞으로 포항제철소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2

“LNG 공급시설은 ‘혈관’ 역할”

설비 특성상 주기적 점검·세심한 관리는 필수적 기본·원칙 바탕으로 끊김없는 에너지 공급 심혈 땅속 배관 파손 위치 정확히 찾는 아이디어 고안 비용절감 등 성과 포스코 고유 노하우 등록 결실 안전·효율성 높이는 핵심 전문가로 성장하고파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설명해달라. △포스코 에너지부 동력섹션에서 근무하며, LNG 공급시설의 관리와 안전관리 업무를 맡고 있다. 2021년 입사 이후 4년째, 포항제철소에 에너지가 끊기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운영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제철소의 에너지 설비는 전체 공정의 원활한 운영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큰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특히 LNG는 제강, 압연, 수소플랜트, 발전 등 주요 공정에서 열원과 원료로 사용되는 자원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LNG공급시설과 배관망은 제철소 전체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혈관’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혈관이 원활하게 작동해야 모든 공정이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운영과 꼼꼼한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LNG는 설비의 특성상 주기적인 점검과 세심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나는 ‘끊김 없는 에너지 공급’과 ‘안전한 운영’이라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항상 염두에 두고, 기본과 원칙을 바탕으로 매일 현장에서 설비를 점검해 오고 있다. - 포스코 신입사원 교육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어떤 계기로 포상을 받았는지, 그 경험이 현재 회사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말해달라. △포스코 신입사원 직무훈련 과정에서 최우수상(회장상)을 수상한 경험이 있다. 당시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했었다.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직무 성적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 태도와 몰입도도 높이 평가받았다. 특히 팀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협업한 경험은 함께 목표를 이루는 과정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어떤 환경에서도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성과로 이어진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지금도 그때의 초심을 잊지 않고, 주어진 조건 속에서 작은 개선사항이라도 최선을 다해 실천하고 있다. - LNG공급이나 동력운영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직접 도입한 아이디어나 시스템이 있다면 자랑해달라. △동력운영 업무를 하면서 현장에서 다양한 개선활동을 해왔다. 특히, 땅속 배관의 파손 위치를 더 쉽고 정확하게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존에는 배관 손상 여부 확인을 위해 물을 주입하는 방식을 사용했으나, 이 방법은 탐사 정확도가 낮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주변 구조물에 영향을 주는 등 여러 한계가 있었다. 이에 스팀을 주입한 뒤, 지면의 온도 변화를 열화상카메라로 관찰하는 새로운 탐사 방식을 도입했다. 이 방법을 통해 파손된 배관 위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었고, 업무 효율과 안전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이번 개선은 실제 현장에서 높은 효과를 보이며 연간 상당한 비용 절감과 재무성과로 이어졌으며,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포스코 고유 노하우(A급)로 등록됐다. 이 경험을 통해 현장의 작은 불편함도 혁신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배움을 얻었다. 앞으로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현장을 계속해서 혁신해 나가고 싶다. - 포스코에서 근무하면서 느끼는 보람이나, 이 회사만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포스코에서 일하며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 속에서 여러 부서가 한마음으로 협력해 문제를 해결했던 경험이다. 특히, 긴급복구 공사에 참여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복구 난이도가 예상보다 훨씬 높았지만, 운전·정비·안전·지원 등 각 부서가 긴밀하게 소통하며 신속하게 대응한 덕분에, 예정된 기간보다 훨씬 빠르게 복구를 마칠 수 있었다. 모든 작업이 체계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됐고,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모습에서 포스코만의 ‘협업 문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필요한 결정을 빠르게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유기적인 조직문화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더욱 키우고, 부서 간 긴밀한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일하고 싶은 작업 환경을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싶다. - 포스코에서나 혹은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 말해달라. △에너지 설비 전문가로서 역량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최근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LNG는 미래 에너지 믹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급시설의 안정적 운영과 고도화된 관리 체계 구축은 제철소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필수적인 부분이다.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예방 중심 설비 관리, 디지털 진단 기술 도입을 통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문가로 성장해 나가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노하우를 통해 포스코의 에너지 경쟁력을 강화하고, ‘안전’과 ‘신뢰’의 가치를 실천하는 에너지 설비 분야의 핵심 인력으로 성장하고 싶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6-02-22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신라 고도의 겨울

APEC 이후의 불국사·석굴암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 등극 야경 대표 첨성대·동궁과 월지 조명·별빛 겹쳐진 또다른 얼굴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천년 고도 경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의 고요 속에서 역사와 문화, 휴식과 체험이 어우러진 경주는 세대가 함께 시간을 걷는 특별한 여행지가 된다. ‘설 연휴 경주로 떠나는 가족여행 코스’를 8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겨울의 경주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천년의 시간이 또렷이 살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유적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건너온 기억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문화유산은 ‘보존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존재한다. 특히 겨울밤, 조명 아래 드러나는 고도의 풍경은 낮보다 더 깊은 사유를 불러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나는 유산은 천년 전 신라인의 정신과 오늘의 도시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유산의 풍경에 스민 젊은 감각 황리단길서 맛과 멋 즐겨 볼 만 □ 세계가 다시 바라본 유산, 경주의 시간성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이 도시의 위상을 새롭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국제회의라는 현대 정치의 무대가 천년 고도의 공간 위에 놓이면서, 경주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품은 역사 도시임을 증명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 상징이다. 불국사는 불국토를 현실 공간에 구현한 신라 불교 미학의 정점이며, 석굴암은 우주 질서를 하나의 조형물 안에 담아낸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본존불의 미소는 특정 시대의 종교를 넘어 인간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다.   APEC 이후 불국사와 석굴암은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가 됐다.   □ 별빛 아래 드러나는 왕도의 기억 대릉원과 첨성대, 월성 일대는 신라 왕도의 정치와 과학, 생활이 응축된 공간이다. 거대한 고분은 권력의 흔적이자 죽음을 넘어 영원을 향한 신라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 관측소가 아니라, 자연 질서를 국가 운영과 연결했던 고대 과학의 상징이다.   밤이 되면 이 일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과 별빛이 겹쳐진 풍경 속에서 유적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별빛의 도시 경주’라는 이름은 단순한 관광 브랜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문화적 은유에 가깝다.   □ 황리단길, 현재의 경주가 숨 쉬는 공간   경주의 변화는 유적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릉원과 첨성대를 지나 이어지는 황리단길은 고도(古都)와 일상(現在)이 만나는 접점이다. 한옥과 근대 건축 사이로 들어선 카페와 공방, 작은 상점들은 경주가 더 이상 ‘과거만 있는 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거리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 유산의 풍경과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실험 공간이다. 황리단길은 경주가 ‘보는 도시’에서 ‘머무는 문화도시’로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빛과 물, 그리고 신라의 낭만   동궁과 월지와 월정교는 경주의 야경을 대표하는 문화 경관이다. 연못 위에 비친 누각과 조명은 신라 왕실의 연회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현한다. 월정교의 목조 구조는 단절된 역사를 복원한 현대 건축의 결과물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다.   교촌마을은 전통 생활문화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전통혼례 재현과 풍물 공연은 ‘보여주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에 가깝다. 이 일대는 유산·생활·관광이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결합된 사례다.   □ 사라진 탑, 남은 정신 : 황룡사와 분황사   황룡사터는 신라 최대 사찰이자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그 빈 공간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 기억 속에서 더 크게 살아난다.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신라인들이 돌로 벽돌을 만들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던 흔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종교와 기술, 예술이 하나로 결합된 신라 정신의 증거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히 준비한 어린이 체험관·해설프로그램 등 신라문화 정수 느껴볼 좋은 기회   □ 박물관, 시간을 보관하는 또 하나의 도시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전체를 압축한 공간이다. 금관과 불상, 토기와 장신구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신라 사회의 구조와 미감을 말해주는 언어다. 이곳은 유물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해석하는 공간이다.   어린이 체험관과 해설 프로그램은 과거를 다음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문화 장치다. 박물관은 경주 문화의 현재형이다.   □ 겨울 경주가 문화도시인 이유   보문호와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는 휴식과 체험을 통해 경주의 문화 지형을 확장한다. 역사유산 중심의 도시가 자연과 놀이, 체류형 관광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이다.   경주는 이제 ‘유적의 도시’를 넘어 ‘문화가 축적되는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유산, 청년문화, 야경, 박물관, 체험 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면서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 겨울, 경주는 시간을 걷는 도시다   겨울의 경주는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걷는다. 불국사와 석굴암에서는 정신을 만나고, 대릉원과 첨성대에서는 권력을 보고, 황리단길에서는 현재를 읽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과거를 빛으로 번역한다. 경주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현재로 살아내는 도시다. 이번 겨울, 여행이 아닌 문화로서의 경주를 만나는 일은 곧 시간과 대화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6-02-12

안방 1열에서 마주하는 ‘별들의 전쟁’⋯2026 설 연휴 OTT 신작 가이드

민족의 큰 명절 설날이지만, 우리가 명절을 즐기는 방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단히 변모해 왔다. 온 가족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방송사가 편성한 ‘특선 영화’ 시간을 확인하며 신문 하단의 편성표에 동그라미를 치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됐다. 2026년 오늘, 명절 거실의 주도권은 지상파의 편성표가 아니라 손바닥 위 스마트폰과 TV 화면 속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앱들이 쥐고 있다. 시청자가 콘텐츠를 ‘기다리는’ 시대에서 취향에 따라 직접 ‘선택하는’ 시대로의 완전한 전환이다. 이번 설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 닷새라는 넉넉한 시간이 허락됐다. 극장가의 대작들 못지않은 막대한 자본과 톱스타급 배우들을 앞세운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주요 플랫폼들은 이 ‘설 대목’을 겨냥해 야심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은 기본이요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소재와 압도적인 스케일로 무장한 작품들이 시청자의 리모컨 끝을 유혹한다. 귀성길 정체를 뚫고 도착한 고향 집에서 혹은 분주한 명절 행사가 잦아든 고요한 밤 안방 극장의 불을 밝힐 ‘실패 없는’ 정주행 리스트 4선을 엄선했다. ◇ ‘레이디 두아(Lady Boudoir)’ : 가짜가 빚어낸 진짜의 미학 이번 설 연휴, 가장 뜨거운 화제작은 단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다. 연휴 시작 직전인 13일 금요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는 이 작품은 배우 신혜선과 이준혁이 드라마 ‘비밀의 숲(2017)’ 이후 9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한다는 소식만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는 홀연히 나타나 사교계를 사로잡은 미스터리한 여인 ‘사라 킴(신혜선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프랑스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Boudoir)’의 한국 지사장이라는 완벽한 가면을 쓰고 사교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하지만, 그 실상은 타인의 인생을 치밀하게 훔쳐 조작된 삶을 사는 가짜 인생의 설계자다. 형사 ‘무경(이준혁 분)’이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체 유기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해자의 소지품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으로 치닫는다. ‘인간수업’, ‘마이 네임’을 통해 파격적이고 속도감 넘치는 연출을 선보였던 김진민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미학적 액션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파고드는 심리 묘사를 결합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완벽하다면 그것을 가짜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던지는 이 미스터리 스릴러는 총 8부작으로 구성돼 연휴 기간 ‘완결까지 달리기’에 최적인 선택지다. ◇ ‘블러디 플라워(Bloody Flower)’ : 구원인가, 살인인가 장르물의 명가로 거듭난 디즈니+는 지난 4일 수요일 전격 공개된 ‘블러디 플라워’로 승부수를 띄웠다. 웹툰과 소설을 넘나들며 사랑받은 이동건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 ‘죽음의 꽃’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세상을 구할 치료제가 연쇄살인마의 손에서 태어난다면?”이라는 파격적인 윤리적 화두를 던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의대 자퇴생 출신의 연쇄살인범 ‘이우겸(려운 분)’이 있다. 그는 수많은 이를 인체실험이라는 명목으로 희생시킨 끝에 모든 불치병을 정복할 수 있는 신의 기술을 손에 넣은 인물이다. 법의 이름으로 그를 사형대에 세우려는 원칙주의 검사 ‘차이연(금새록 분)’과 희귀병을 앓는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마의 ‘유일한 구원’이 필요한 변호사 ‘박한준(성동일 분)’의 첨예한 대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독한 딜레마를 선사한다. 관전 포인트는 단연 배우 성동일의 파격적인 변신이다. 자식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과 피폐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10kg 이상을 감량하며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그의 열연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자극적인 연출보다 인물 간의 치밀한 심리 싸움에 집중한 이 8부작 스릴러는 매주 수요일 2화씩 공개되는 호흡을 따라 연휴 기간 가족과 함께 ‘정의와 생명’의 가치를 곱씹어볼 의미 있는 대안이 된다. ◇ ‘판사 이한영’ : 명절 스트레스를 날릴 ‘법정 사이다’ 안방극장의 스테디셀러인 ‘인생 2회차’ 회귀물과 법정 드라마가 만났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해 티빙과 MBC에서 방영 중인 ‘판사 이한영’은 거대 로펌의 사냥개로 살다 토사구팽당한 판사가 10년 전, 정의감이 살아있던 초임 판사 시절로 돌아가 사법부의 거대 악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주인공 ‘이한영(지성 분)’이 구사하는 치밀한 ‘수 싸움’에 있다. 10년 뒤 벌어질 정·재계의 비리와 판결문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그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소위 ‘유권무죄’ 권력자들을 그들이 만든 법 논리로 응징하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특히 이한영을 감시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패를 던지는 의문의 조력자 ‘강신진(박희순 분)’과의 팽팽한 대립은 극의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배우 지성은 과거의 순수함과 미래의 노련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권력과 타협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법복의 무게를 다시 세우는 그의 고군분투는 명절 기간 가사 노동과 가족 간의 갈등으로 지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같은 위로를 건넨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 구현의 서사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명절 밤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진심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포근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겐 지난달 16일 공개돼 여전히 인기 순위 상단에 있는 ‘이 사랑 통역 되나요?’가 정답이다. ‘주군의 태양’, ‘환혼’ 등을 집필한 스타 작가 홍자매의 신작으로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이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 분)의 전담 통역을 맡으며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황금빛 포도밭과 캐나다의 설경 등 전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미는 마치 한 편의 여행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진심’이라는 공용어를 통해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김선호의 다정다감한 눈빛과 고윤정의 화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케미스트리는 연휴의 피로를 잊게 하는 강력한 ‘힐링’ 요소다. 복잡한 추리나 잔인한 묘사 없이 그저 인물들의 대화와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선사한다. 12부작 전 회차가 공개돼 있어 긴 연휴 동안 따뜻한 감성에 푹 젖어들고 싶은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2

설 연휴 ‘가심비’ 1순위⋯올겨울 마지막 눈꽃 열차에 올라라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설 연휴(2월 14일~18일)가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변덕스러운 기온 탓에 인제와 안동 등 일부 얼음 축제들이 아쉬운 취소 소식을 전했지만, 그렇다고 실내에만 머물기엔 은빛 설원이 주는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다. 명절 음식으로 무거워진 몸을 깨우고 스마트폰에 갇힌 아이들의 시선을 광활한 대자연으로 돌릴 기회다. 강원도의 칼바람을 뚫고 즐기는 대관령의 눈꽃부터 남도 지리산의 수려한 설경까지 지금 이 시각에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전국의 ‘진짜’ 겨울 액티비티 명소 5곳을 지면에 담았다. 단순한 구경을 넘어 몸으로 부딪치며 즐기는 이 축제들은 연휴 끝에 찾아올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 강원 평창 대관령눈꽃축제 : 30년 역사 위에서 펼쳐지는 ‘눈동이 미니 올림픽’ 대한민국 겨울 축제의 자존심이자 원조인 ‘대관령눈꽃축제’가 13일(금)부터 22일(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1993년 대관령 청년들이 지역 화합을 위해 시작한 이 축제는 어느덧 30여 년의 역사를 쌓아 올리며 이번 설 연휴 기간 흥행의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올해는 ‘동계 꿈나무 눈동이의 국가대표 성장기’라는 테마 아래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2018 평창 올림픽을 보고 꿈을 키운 마스코트 ‘눈동이’가 2026 밀라노 올림픽 국가대표로 거듭나는 여정을 초대형 눈 조각과 얼음조각으로 생생하게 구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관람 중심에서 벗어나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형 콘텐츠도 대폭 보강됐다. 특히 ‘눈동이 동계 훈련소’에서는 건초 빨리 옮기기, 주전자를 이용한 ‘이색 컬볼링’, 빗자루 하키 등 대관령의 향토색이 짙게 배어난 코믹 액티비티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은빛 설원을 배경으로 대관령 황태와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야외 구이터’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고 하늘목장의 양들을 직접 만나는 체험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독보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대관령 IC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은 물론 KTX 진부역과 연계된 셔틀버스 덕분에 귀성길 정체를 피해 설원의 낭만을 만끽하기에도 최적이다. ◇ 경기 포천 백운계곡동장군축제 : 설원 위에서 즐기는 환상의 겨울 정원 포천 백운계곡에서는 ‘제21회 동장군 축제’가 오는 22일(일)까지 겨울의 정취를 발산한다. “하얀 설렘의 시작”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축제는 백운계곡 상인협동조합이 주관해 주민들의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다. 웅장한 규모의 얼음기둥과 귀여운 캐릭터 ‘장군이·동동이·설동이’가 배치된 포토존은 방문객들에게 겨울 동화 속 한 장면을 선물한다. 축제의 핵심인 체험 프로그램은 동심을 자극하는 액티비티로 가득하다. 계곡의 자연 지형을 영리하게 활용한 80m 길이의 튜브 눈썰매와 회전 썰매, 그리고 전통의 멋을 살린 앉은뱅이 썰매와 팽이치기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겨울 낚시 애호가들을 위한 배려도 깊다. 매서운 추위 속 송어 얼음낚시는 물론, 기상 상황과 관계없이 손맛을 볼 수 있는 실내 송어·빙어 낚시터를 병행 운영해 만족도를 높였다. 낚시 후 즐기는 싱싱한 송어회와 구이, 소머리 국밥 같은 든든한 먹거리는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는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 전북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썰매 축제 : 지리산 설원이 선사하는 ‘은빛 질주’ 지리산 허브밸리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12회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썰매 축제’는 설 연휴가 끝나는 18일(수)까지 방문객을 맞이한다. “겨울, 눈꽃 그리고 동심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해발 고도가 높은 지리산 바래봉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눈이 잘 녹지 않아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최상의 설질을 자랑한다. 웅장한 지리산 능선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뻗은 눈썰매장과 얼음썰매장은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시각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올해는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된 눈사람 만들기 체험과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모닥불 체험이 정겨운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축제 주관사인 (사)운봉애향회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운영하는 먹거리 장터는 지리산의 칼바람 속에서 맛보는 뜨끈한 어묵과 붕어빵을 통해 겨울 축제만의 낭만을 완성한다. 고원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는 은빛 질주는 명절의 분주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 경기 양평 빙송어축제 : ‘수미마을’ 부교 위에서 즐기는 안전한 손맛 물 맑은 양평의 대표 체험 마을인 수미마을에서 열리는 ‘양평 빙송어축제’는 오는 3월 2일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으로 관람객을 여유롭게 맞이한다. 농촌관광 전 등급 1위인 ‘으뜸촌’에 선정되고 대통령상을 수상한 마을답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심한 서비스와 전문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기분 좋은 신뢰를 준다. 올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온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수상 부교 낚시터다. 얼음판 두께에 의존하지 않고 수심 깊은 곳에 부교를 설치해 빙질 상태와 관계없이 연휴 내내 안전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투명한 물속을 노니는 빙어와 송어를 낚아 올리는 팽팽한 손맛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자연 학습이 되며 직접 잡은 빙어 튀김을 맛보는 과정은 미각의 즐거움까지 더한다. 낚시가 정적인 재미를 준다면 마을의 수려한 풍광을 가르며 달리는 사륜 오토바이(ATV)와 수제 피자 만들기, 찐빵 체험 등 다채로운 실내 프로그램은 추위를 피해 온 가족이 화합하며 특별한 추억을 쌓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 충남 청양 칠갑산얼음분수축제 : ‘K-겨울왕국’에서 즐기는 90개의 은빛 설렘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청양 알프스마을의 ‘제18회 칠갑산얼음분수축제’는 오는 22일(일)까지 은빛 장관을 이어간다. 2008년 주민들의 소박한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 마을 주민 수 90명을 상징하는 90개의 웅장한 얼음 분수를 세우며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압도적인 풍경을 완성했다. 축제장에 들어서면 엘사가 선물한 듯한 정교한 눈 조각과 10m 높이의 거대한 얼음기둥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최신 캐릭터 눈 조각들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최고의 포토존이 돼준다. 스릴 넘치는 얼음 봅슬레이와 튜브 눈썰매는 기본이며 이양기 썰매나 깡통 열차처럼 농촌의 정취를 가득 담은 이색 즐길 거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군밤과 군고구마를 모닥불에 구워 먹는 재미는 겨울 여행의 백미를 장식하고 화려한 LED 조명이 수놓는 야간 개장까지 더해져 겨울밤의 낭만을 즐기기에 가장 완벽한 마침표가 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2

같은 명절, 다른 마음⋯ 전통의 의무 VS 개인의 선택

전통·가족 공동체 중시하는 ‘기성 세대’ 차례상·세배 등 전통의례에 가치 부여 고향방문·가족의 결속이 가장 큰 의미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공동체를 잇는 끈이었다. 차례와 성묘, 세배와 덕담, 떡국과 만두는 세대를 넘어 이어져 내려온 풍속이다. 하지만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이 급격히 변하면서 명절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세대별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설은 전통과 의무의 무게가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MZ세대에게는 휴식과 선택의 의미가 더 크게 자리 잡는다. 같은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두 세대의 인식 차이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 설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어온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 가족 공동체를 결속하는 중요한 의례다. 부모 세대는 차례상을 정성껏 차리고 조상을 기리는 절차를 중시한다. 이는 가족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정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고향을 찾는 길은 고단하지만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책임감이 우선한다. 특히, 기성세대는 설날에 고향을 찾지 못하면 큰 결례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자녀와 손주에게 덕담을 건네고 세뱃돈을 주는 행위는 가족을 이끄는 역할을 상징한다. 이들에게 명절은 개인의 휴식보다 공동체의 결속을 우선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명절 준비 과정에서 오는 노동과 부담도 감내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다. 휴식·개인 삶 먼저 생각하는 ‘MZ 세대’ 온라인 추모 등 ‘형식보다 마음’ 중요시 성 역할 부담⋯ 모두 공평한 명절 기대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전통적 의무보다 개인의 삶과 균형을 중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복잡한 제사 절차보다 간단한 헌화나 온라인 추모 서비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들은 긴 귀성길 대신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 명절을 나만의 휴식으로 활용한다. 세뱃돈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현금 대신 모바일 송금이나 기프티콘으로 세뱃돈을 주고받는 풍경은 디지털 세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가족 간 갈등이나 성 역할 부담을 피하기 위해 명절 불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의무보다 우선한다는 가치관을 반영한다. MZ세대에게 명절은 더 이상 지켜야 할 전통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문화다. 그들은 명절을 통해 가족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율성을 중시한다. 특히, 장시간의 이동, 친척들의 질문, 성 역할에 따른 노동 분담은 젊은 세대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두 세대의 시선 차이는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가족 공동체 중심의 명절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명절 선물, 차례상 준비, 교통비 등은 기성세대에게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지만 MZ세대에게는 불필요한 지출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문화 가정, 해외 거주 교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서 명절의 의미는 더 이상 획일적이지 않다. 모바일 송금, 온라인 제사, SNS 덕담 등은 명절 풍속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명절이 단순히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명절의 의미를 두고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데 있다. 부모 세대는 자녀가 귀성하지 않거나 차례를 생략하는 것을 불효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반면 자녀 세대는 부모가 전통을 강요하는 것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느낀다. 이런 갈등은 단순히 명절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이다. 또한 명절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세대별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기성세대는 설 선물세트를 준비하고 차례상을 차리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이는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투자로 인식된다. 반면 MZ세대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한다. 전통적인 선물세트 대신 건강식품이나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예 선물을 생략하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명절 소비 패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인식 차이는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문화적 다양성도 명절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문화 가정은 한국의 전통 명절을 자신들의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즐기기도 한다. 해외 거주 교포들은 현지에서 설을 맞으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기회로 삼는다. 이런 다양성은 명절을 더 이상 획일적인 전통 행사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MZ세대는 이러한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명절을 글로벌 문화의 일부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리적 측면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기성세대는 명절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안정감을 느낀다.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의무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표현은 주로 젊은 세대가 겪는 심리적 부담을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학적 연구들은 명절을 바라보는 세대별 태도가 한국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잘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기성세대는 집단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했으며, 가족과 공동체를 우선하는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했지만 MZ세대는 개인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했고,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대가족 → 1인 가구까지 사회적 구조 변화 전통과 개인 행복 동시에 보장 방식 필요 따라서 명절을 바라보는 태도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는 20~3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명절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개인의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50대 이상은 ‘가족과 전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수치는 세대별 인식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안동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씨는 “설은 단순한 휴일이 아닙니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날이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명절을 통해 가족이 하나로 모이고, 세대 간 유대가 강화된다고 믿는다. 반면 20대 대학생 이서연 씨는 “명절은 솔직히 피곤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어머니나 여성들이 차례 준비와 음식 장만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이런 성 역할 부담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차라리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라고 답해 세대별 인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이에 끼인 40대 공무원 김성현 씨는 “저는 부모님 세대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우리 세대는 조금 더 실용적으로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차례를 간소화하고 가족이 모여 식사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형식보다 마음이니까요”라고 답해 중도적인 성향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수치로 드러난다. 50대 이상 응답자의 70%가 ‘명절은 가족과 전통을 지키는 날’이라고 답한 반면, 20~3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명절은 개인의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는 전통이 있지만, 최근에는 여행이나 자율적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의 오본(お盆) 역시 조상을 기리는 전통 행사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간소화하거나 여행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설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세대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세대가 공존하면서 명절의 의미가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변주도 흥미롭다. 최근에는 ‘비건 떡국’, ‘퓨전 만두’ 등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명절을 바라보는 세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성세대는 전통 음식을 통해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지만, MZ세대는 새로운 레시피를 통해 명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즐긴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명절 챌린지’나 ‘세뱃돈 송금 이벤트’가 열리며 디지털 세대의 명절 풍속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명절은 세대별로 다른 정서적 경험을 제공한다. 기성세대는 명절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안정감을 느끼며, 이는 사회적 지지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의무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친척들의 결혼·취업·출산 관련 질문은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동시에 명절은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명절은 스트레스와 치유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심리적 장이다. 사회학자들은 명절을 ‘사회적 의례’로 정의한다. 의례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개인에게는 부담을 줄 수 있다. 기성세대는 의례의 기능을 중시하지만, MZ세대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따라서 명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앞으로 명절의 의미는 어떻게 변할까. 전문가들은 명절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형태로 재구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차례는 간소화되지만 그 정신은 유지되고, 귀성은 줄어들지만 가족과의 연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을 통해 세배를 하거나, 가족 단톡방에서 덕담을 나누는 방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 또한 명절을 가족뿐 아니라 친구, 동료와 함께 보내는 문화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설은 시대와 세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전통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지만, MZ세대가 중시하는 자유와 자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명절의 의미는 세대 간 대화와 이해를 통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명절을 재구성할 때, 설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6-02-12

'믿고사는 영주 명품' 생산자 정성, 소비자 신뢰 구축

소백산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영주 농특산물은 엄격한 품질 관리와 생산자의 정성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소백산 자락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영주 농특산물은 생산자와 가공 기업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완성된다. 원재료 선정부터 최종 가공까지 이어지는 철저한 품질관리는 영주만의 자부심이다. 자연의 순수함에 장인의 손길을 더해 완성된 영주 농특산물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소비자가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영주시는 유통 단계 혁신을 통해 단순한 농산물 판매를 넘어,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시는 온라인 플랫폼 영주장날을 통해 130여 개 농가가 참여해 사과, 인삼, 한우 등 3000여 품목의 고품질 제품을 엄선해 선보이며 지역 대표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국 홈플러스 매장 등 대형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며, 산지 직송의 신선함과 합리적인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 ‘믿고 사는 영주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풍기인삼 국내 최초 재배삼의 시효지인 풍기인삼은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돼 타 지방 생산 인삼에 비해 내용 조직이 충실하고 인삼 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다. 특히, 다양한 홍삼 제품은 웰빙건강 식품 뿐만 아니라 선물용으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인삼은 혈압조절, 간장보호, 항암작용, 항당뇨, 피로회복, 식용증진, 면역력 강화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삼의 종류에는 인삼 원형 상태로 75%내외의 수분을 함유한 수삼, 삼의 껍질을 벗겨 수분함량이 14%이하가 되도록 건조시킨 백삼, 수삼을 쪄 가공한 홍삼이 있다. 홍삼의 색상은 담적황갈색이며 품질별로 천삼(天蔘), 지삼(地蔘), 양삼(良蔘)으로 구분하고 인삼중에서 최고로 친다. 인삼가공제품에는 절편삼, 홍삼절편삼, 홍삼차, 홍삼정과, 홍삼정, 홍삼타브렛, 홍삼액, 홍삼분말, 인삼분말, 홍삼정, 홍삼캡슐, 황금홍삼비누, 홍삼벌꿀비누, 홍삼우유비누, 홍삼제리, 홍삼캔디 등이 있다. 문의: 풍기인삼공사영농조합법인 054)638-2304 풍기인삼협동조합 054)636-2714 ◇영주사과 영주시는 국내 사과 생산의 14.5%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다. 영주사과는 소백산 남쪽에 위치한 산지과원에서 생산,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 의해 맛과 향이 뛰어나며 성숙기 일교차가 커서 사과의 당도가 높다. 사과는 대부분 15kg 상자로 포장되어 출하되고 있으나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장단위를 5kg,10kg 단위로 다양화 체제를 갖췄다. 사과는 피로회복, 피부미용, 위장장애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한우 영주한우는 개량된 암소에 1등급 정액으로 인공수정해 생산된 우량 수송아지를 5-6개월에 거세하고 한우고급육 표준사양관리프로그램에 의거 사육한다. 비육 후기에는 영주시와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정태영 교수팀이 협력해서 1996년부터 1997년 2년에 걸쳐 개발한 아마종실을 첨가한 특수사료를 급여하고 초음파 육질 진단을 해 출하적기를 판단, 고품질의 육질만을 생산·판매한다. 부루세라병 등의 악성 가축전염병을 완전 차단하고 축산물의 위생·안정성에 대한 소비자 신뢰확보를 위해 사육 · 도축 · 가공 ·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기록 · 관리하는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을 2006년부터 시범 실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문의: 영주축협한우프라자 054)630-6710, 6720 횡재먹거리 한우 054)638-0094 ◇풍기인견 풍기인견은 천염섬유로 냉장고 섬유, 에어컨 섬유라 불린다. 풍기인견의 특징은 가볍고 시원하며 몸에 붙지 않고 통풍이 잘되며 땀띠가 예방되고 촉감이 좋다. 인견은 땀 흡수력이 탁월하며 정전기가 없고 부드러우며 식물성 자연섬유로 피부가 여린 갓난아기, 알레르기성 피부, 아토피성 피부 등 피부가 약한 분들에게 좋은 건강 섬유다. 가볍고 얇아서 여름 실내복, 반바지, 잠옷, 침구류, 천연염색을 한 외출복 등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 되고 있어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정도너츠 영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찹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찹쌀 도너츠로 지역의 특산물인 인삼, 사과, 생강, 고구마 등을 재료로 만든 웰빙 식품이다. 찹쌀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도너츠 보다 영양 성분검사를 해보면 적게는 7배 많게는 10배 이상 지방함량이 낮게 나오며 콜레스테롤과 트렌스지방이 0%로 먹을거리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도 영주지역의 특산품을 이용해 생산하는 영주한과, 청정수목에서 추출한 목초산 분말 재제와 유산균을 급여해 생산된 소백네프란은 일반계란에 비해 A, B12, 토코페롤 함량은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아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며 고소한 것이 특징 있다. 또, 옛날 사대부가의 선비들이 건강 약용주로 마시던 전통 명주 오정주, 밤에 빗장을 열어주는 약초라는 야관문을 이용한 약용주 비수리야, 영주사과와 포도를 이용해 생산되는 상떼마루 와인, 단산포도 생산 농가가 개발한 쥬네트 와인과 소백산 산향기 와인이 있다. 상떼마루 아이스와인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품평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영주시는 농가소득 증대와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수 있는 우수 농특산물 생산을 위해 다양한 연구 개발과 실증 실험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6-02-10

상주엔 2500원짜리 ‘기막힌 해장국’이 있었다

기자 일을 시작한 게 20세기 말이다. 돌아보면 제법 먼 과거다. AI 같은 건 물론 없었고, 포털사이트 검색도 초기 단계였으니. 나이 지긋한 선배들은 사무실 책상 위에 재떨이를 놓고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서 기사를 썼다. ‘비흡연자 보호’가 일상화된 지금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기억에 따르면 그때는 신문사와 방송사 할 것 없이 기자들 상당수가 모주꾼의 풍모였다. 음주는 주야를 가리지 않았다. 아직은 햇살이 환한 점심시간. 언론사 인근 허름한 한식당이나 중국집에선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나 칼칼한 짬뽕국물을 가운데 놓고 술잔을 돌리는 기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주석(酒席)에서 낮술을 배웠다. 혈통적으로 주당이었으니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외려 즐거웠다. 본래 낮술은 백일몽을 부르는 것 아닌가. “정오를 조금 넘겨 시작한 술자리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석간시대(夕刊時代) 시니어 기자의 회고에는 낭만이 서려 있었고, 후배들은 눈을 크게 뜨곤 했다. 그런 1990년대 말을 허술했지만 정다웠다고 말하면 과장이 되려나? 어쨌건. 비단 기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술과 해장국은 떼놓을 수 없는 법. 낮술이 밤술로 이어져 숙취가 사나운 들개처럼 몰려오는 명정(酩酊)의 아침이면 쓰린 속을 풀어줄 따끈한 해장국이 간절한 법이다. 서울에서 살 때는 광화문의 유명짜한 북엇국 식당과 종로구 인사동 생태찌개집을 자주 다녔다. 명불허득(名不虛得)이라 해도 좋을 밥집들. 문제는 해장하러 가서 또 다시 술을 시작한다는 것이었지만…. 30대 때 전라북도 전주로 출장 가서 맛본 콩나물국과 따끈한 모주도 전날의 술독을 깨끗하게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 제주도에선 동료들과 걸쭉한 고사리육개장으로 위와 간을 달래기도 했다. 팔도에 술꾼이 있으니, 전라-경상, 경기-강원, 충청-제주 어느 곳이나 해장국 없는 지역과 도시는 없다. 술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행스런 일이라고 해야 할 터. 6~7년 전이다. 경상북도 상주로 취재를 갔다. 일을 마친 뒤 낙동강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젊은 날을 떠올렸고, 섬세해진 감정이 과음을 불렀다. 주종(酒種)을 묻지 않고 꽤나 마신 날이었다. 이튿날 여관에서 눈을 뜨니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새벽. 칼로 긁어내는 듯한 위통을 참으며 거리로 나왔다. ‘뭘 먹긴 먹어야하는데 문을 연 식당이 있으려나?’ 남들에겐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하며 서성이는데, 예전에 얼핏 “상주엔 끝내주는 우거지해장국 식당이 있고, 거긴 아침 일찍 영업을 시작한다”란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옥호(屋號)와 위치를 찾아냈다.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알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가 “나도 잘 아는 곳”이라며 시장통으로 차를 몰았다. 정말이지 조그맣고 소박한 밥집이었다. 그런데, 놀라워라. 1936년부터 영업을 했단다. 업력이 1세기에 육박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은 선친이 태어나기도 전이니 ‘까마득한 옛날’이라 불러야 할까? 깜짝 놀라게 한 건 또 있었다. 우거지해장국 한 그릇이 2500원. 당시 한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헐한 밥값이었다. 그럼에도 해장국 속 잘 삶아낸 채소는 보드랍고 매끈했으며, 어떤 된장을 사용했는지 맑은 국물에선 더없이 구수한 향이 올라왔다. 일금 1000원의 막걸리까지 한 잔 주문해 달게 먹고 마셨다. 속이 시원하게 풀린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며칠 전 다시 한 번 그곳 상주 우거지해장국집을 검색했다. 지금은 가격이 3000원으로 올랐단다. 그 가격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살다보면 돈을 더 내고 싶은 식당도 있다’더니…. 상주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적지 않은 고장이다. 그럼에도 기자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상주의 명물’은 시장통 우거지해장국이 분명하다. 그곳이 100년 세월에도 변함없는 가게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7

해장국, 몸이 아닌 ‘마음’을 풀어주는 음식

당연한 이야기지만 술을 마시면 취한다. 정도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음주 후 취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술을 마신 후 취기가 오르는 이유는 뭘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체내로 들어간 알코올이 피의 흐름을 따라 뇌에 도달하고 이것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 술을 자주, 즐겨 마시는 이들은 말한다. “무더운 여름엔 조금만 마셔도 빨리 취한다” “비행기에서 공짜로 준다고 술이 과하면 낮은 기압과 부족한 산소 탓에 몽롱해지기 쉽다” “따뜻한 곳에서 마시다가 차가운 바깥으로 나오면 머리가 띵하다” 등등.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취하지 않으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임을 대부분은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을 피해가지 못한다. 음주가 주는 위로와 위안, 심리적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게 인류의 역사다. 무모한 술꾼이라 할지라도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숙취로 인해 두통과 속쓰림에 시달리는 이들은 그래서 해장국을 찾는다. 해장국의 시작은 술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지 않았을까? 해장국의 종류는 술 종류 이상으로 많다. 집과 식당 할 것 없이 오늘도 주방에선 육류와 채소, 해물 등 수십 가지 식재료로 해장국이 만들어진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소고기, 닭고기, 돼지의 뼈, 콩나물, 북어, 복어, 황태, 다슬기, 오징어, 냉이와 대파, 매생이, 시래기, 심지어 소의 피까지…. 해장국으로 요리되는 재료는 열거가 힘들 정도로 다종다양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한 가지. 어떤 해장국도 그 자체로는 숙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한다. 수분과 전해질이 보충되는 정도의 효과만 있다고. 그러니, 해장국은 ‘몸이 아닌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이라고 불러야 할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7

춥고 긴 겨울밤 데워줄 이 책들 어때요?

북쪽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바깥으로의 외출이 망설여지는 시기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너나없이 심란해지는 길고 긴 1월의 겨울밤. TV와 휴대폰을 끄고 책과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과 혹한을 이겨보면 어떨까? 이 방식을 택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2권의 책을 아래에서 권한다. ▲이경재의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 “요즘 나오는 소설을 대할 때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직접적 감각이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도, 카프카의 소설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요즘 소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롭다.“ 문학평론가 이경재의 말이다. 그는 여전히 소설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로 살고 있다. 이제는 드물어진. 소설은 허구로 만들어진 창조물. 쉽게 이야기하면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쓴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거짓이 많은 인간을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자, 문학의 효용이 아닐지. 지난 시절, 비단 문학청년만이 아닌 수많은 독자들이 소설과 시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려 했다. 문학이 가진 보편과 전형의 힘을 믿었던 시대였으니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인터넷 소통과 TV에 넘쳐나는 영화와 드라마, 연예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을 감각하고 느끼는 세대들이 2026년 이 땅의 주류로 떠올랐다. 시간의 흐름과 세태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본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한 숭실대 이경재 교수가 쓴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책은 이 교수가 36편의 소설을 읽고 그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에서 언급되는 소설가와 작품은 그 프리즘이 넓다. 남녀와 노소, 주제와 소재가 다양한 것은 물론, 소개되는 소설의 형식 또한 각기 다르다. 이 책에서 이경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에서부터 서성란, 김애란, 심윤경, 조해진, 황정은, 정용준 등의 작품을 두루 읽고, 그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을 매개로 사람과 세상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에서 사용된 문장과 문체는 모두 친절하다. 평소 딱딱한 비평서를 써온 학자답지 않은 말랑말랑한 문구로 편한 책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어렵지가 않다는 이야기. 책 속에서 발견한 걸로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나라는 장벽을 부수고 너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요’라는 문구, 또는 ‘어쩌면 인간은 벌레를 넘어 키오스크가 되어 가고 있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문장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휴대폰으로 SNS 속 짧은 영상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헌데, 가끔은 책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권성훈의 ‘밤은 밤을 열면서’ 기자가 아는 권성훈 시인은 싱거운 말은 물론 진지한 이야기까지 우스개처럼 하는 사람이다. 얼굴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내내 떠나지 않는다. 별다른 고민이 없는 중년으로 느껴질 수 있는 어법과 표정. 하지만, 정신의 고통과 육체의 고뇌 없이 생산되는 시는 없는 법이다. 얼핏 가벼워 보이는 권성훈의 제스처와 말투는 철저한 위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를 만난 지 10년이 넘어서야 알게 된 일이다. 권 시인의 선배 시인인 이승하는 권성훈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우리 시의 유구한 전통에서 단절된 것이 있다면 해학성 혹은 골계미다. 권성훈의 시는 끊어진 맥을 되살려내면서 유쾌한 해학, 건강한 골계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의 시는 재미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반성케 한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지천명을 앞둔 시절 권성훈이 내놓은 절창을 모아둔 시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시어(詩語)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우스개와 미소가 위장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서 가장 먼저 읽히는 건 죽음의 냄새다. 이런 것이다. ‘새끼를 키우려고 새끼를 내다 팔던 할머니/지하 골방에 죽음이 다녀갔다/개를 기르던 노인이/노인을 기르던 개가 들어 있다/홀로 두고 발길 돌리기 안타까웠는지/두 장 빛바랜 엽서처럼 붙어/서로를 애처롭게 만지고 있다….’ - 위의 책 중 ‘골방 엽서’ 부분 인용. 이른바 동반 고독사(孤獨死)다. 곁을 지켜주던 개가 노파의 유일한 말동무였을 터. 말을 할 수 없는 개였기에 끝끝내 부재했을 소통. 둘은 끌어안고 함께 죽었다. 악취 비산하는 좁은 방을 권성훈 이렇게 묘사한다. “한 생애를 지리고 나온 부패한 사연이 지독한 흉터로 인쇄된 증표 같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향기는 시집 곳곳에 잠복했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책장을 넘기기가 저어될 지경이다. 권성훈의 어디에 이런 어둠과 그늘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남은 이유’라는 제목을 택한 시 또한 노래하는 소재가 사라짐과 소멸이다. ‘평생 농사일로 검게 탄 눈을 껌뻑이다가/장마 전선에도 쑥쑥 자란 암소 한 마리 팔아 와서/사고 쳐 징역 간 손주 녀석 한 번만 살려 달라 애원한다….’ 죽음 같은 삶, 혹은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는 게 비단 개와 죽은 할머니, 그리고 소를 팔아 손자 구하려는 노인만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느끼는 자들에게 세상이란 ‘죄 없이 갇힌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은 느끼는 인간이다. 이를 알고 있는 동료시인 이수명은 “권성훈은 누군가의 통점(痛點)을 헤아리고 살피는 쪽에 서 있다. 그의 시들 역시 통점 안에서 쓰이고 읽힌다”고 해석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수난이나 고통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혹한의 겨울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우리에게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며 어깨를 다독여줄 책이 분명해 보인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0

‘테트로도톡신’, 복어가 무서운 이유

그 옛날. 바닷가에서 목선에 올라 뱃일로 잔뼈가 굵은 노인들은 두 눈을 무섭게 뜨고 동네 아낙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희들 모두 조심해야 돼. 이 괴기(생선)를 함부로 먹다간 혀가 목구멍을 막아 죽게 되니까. 알겠지?” 볼을 부풀리며 풍선처럼 몸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복어는 재밌게 생긴 생선인 동시에 맛도 기막히다. 얼큰하게 탕으로 먹어도, 무럭무럭 김 오르는 솥에서 쪄 먹어도, 부드러운 내장을 숯불에 살살 구워 야금야금 맛봐도. 그러나, 아름다운 꽃 장미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것처럼, 복어에게선 위험한 독이 발견된다. 극소량만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이름하여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다. 저 멀리 화성과 목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AI가 똑똑한 학자와 교수 1000명의 역할을 대신하는 ‘과학의 시대’인 21세기. 그럼에도 인류는 아직 테트로도톡신을 해독하는 약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다. 복어는 그걸 먹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줘왔다. 일생 어촌에서 살아오며 회갑과 칠순을 넘긴 할머니도 함부로 칼을 들어 복어를 손질하지 않는다. 복어와 일부 망둑어과 물고기, 몇몇 문어가 가진 테트로도톡신은 독성이 청산가리의 5~15배에 이른다. 16mg만으로도 70kg 안팎의 성인 남성을 12시간 안에 죽일 수 있는 맹독이다. “자격 없이 복어를 손질해 밥상에 올리는 건 살인 행위”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니, 복어를 먹을 때는 반드시 전문요리사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게 섭식의 제1원칙이 돼야 마땅하다. ‘복어 요리는 전문가에게!’ 이는 어떤 미식가도 잊어서는 안 될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13

복어탕 앞에서 중국 미녀 ‘서시’를 떠올리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부산이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더라도 영남 바닷가 마을에선 복어를 요리하는 식당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주꾼의 아프고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으로 알려졌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도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매료되는 경우가 흔한 게 바로 복어탕. 기호에 따라 매운 양념을 넣어 먹어도 좋고, 맑은탕을 훌훌 마셔도 혀에 착착 감긴다. 이에 이론(異論)을 재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복어 좀 먹어봤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특히 껍질과 정소를 귀하게 여긴다. 어금니를 매혹하는 쫄깃한 복어 껍질과 비교 대상이 드물게 부드러운 복어 정소는 바람 차가운 겨울에 기막히게 어울리는 별미고 별식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복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중국 월나라의 국색(國色) ‘서시(西施)’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보잘것없는 신분이던 젊은 여성 서시는 월나라 왕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라이벌 국가인 오나라로 보내진다. 월나라의 계획대로 육체적 아름다움 하나로 오나라 왕의 혼을 뒤흔들어놓은 서시.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오나라는 맥없이 멸망한다. 혼이 빠진 왕이 통치하는 국가가 오래 갈 까닭이 있겠는가?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한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미색을 지닌 여성을 지칭한다. 서시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통을 앓던 서시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런데, 이것도 흉내의 대상이 됐다. 서시가 살던 마을에선 일곱 살 여자아이부터 일흔 살 할머니까지 모조리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던 것. 서시를 닮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이런 것도 ‘유행 선도’가 될 수 있을지. 뿐 아니다. 서시가 빨래를 하러 냇가에 가서 쪼그려 앉으면 얼굴을 올려다보던 붕어가 넋을 잃어 헤엄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는’ 해괴한 사건(?)을 만들어낸 게 서시의 미모였다. 이른바 ‘침어(沈魚)’의 고사다.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는 게 분명하지만, 이 정도면 서시의 외적 수려함이 탁월하고 출중했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복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미식가들은 복어의 정소를 ‘서시유(西施乳)’라 부르며 즐긴다. 한자를 풀어 쓰면 ‘서시의 젖’이란 뜻 아닌가. 복어가 중국 최고의 미녀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서시의 가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식탁에서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복어탕에서 익어가는 정소를 터뜨리면 국물이 불투명한 흰색이 되면서 감칠맛을 한층 높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화롯불에 구워 먹기도 하는 게 복어 정소. 최고급 푸아그라(거위의 간) 못지않은 식감을 가졌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절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복어를 요리하기 시작했을까?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완성된 건 17세기 초반. 그 책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실렸다. “복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있다. 허약함을 보충하고 습함을 제거하며 허리와 다리에 좋고 치질과 벌레를 죽인다. 하지만, 간과 알의 독성이 강하니 조리법을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의 인용을 감안한다면 우리 선조들은 최소 400년 전부터 복어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 만만찮은 식재료인 것이다.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1762~1836)도 복어를 즐겼다고 한다. 폐일언. 복어는 환한 빛과 어둡고 짙은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물고기다. “복어 10마리의 독이면 코끼리도 죽인다”는 말처럼 잊을 만하면 복어 독 탓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이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곤 하니까. 내장과 핏속에 치명적인 독을 숨겼음에도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복어.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위험마저도 감수해야 맛볼 수 있는 걸까? 질문이 공포를 부를 정도로 무겁지만, 미리 겁을 먹고 복어 요리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 복어탕을 판매하는 식당엔 복어 독을 없애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격증 가진 요리사들이 널려 있으니. 그래서다. 다가오는 일요일 점심 땐 푸릇푸릇한 미나리를 올린 복어맑은탕 먹으러 청옥빛 파도 일렁이는 구룡포로 나가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13

적성리 고갯마루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입석 고갯마루에 이르는 길은 조용했다. 시루봉휴게소 뒤편의 옛길을 따라 오르면 문득 세월이 꺾인 듯한 고요한 능선이 펼쳐진다. 650m 남짓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발밑을 스치는 바람은 뒹구는 낙엽 소리와 함께 오래전 이곳을 넘나들던 길손들의 숨결을 되살려낸다. 영남에서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과거의 선비들, 장짐을 둘러멘 보부상들, 생의 희망을 안고 먼 곳을 향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발자취가 층층이 켜진 고갯길이다. 지금은 고갯마루 아래를 지나는 터널과 새 도로가 생겨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고갯마루에는 여전히 그 옛날부터 장엄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과거의 역사를 품은 채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 물결처럼 너울거리는 가지 사이로 오후 한낮의 햇살이 푸른 솔잎 위에 반짝인다. 놀라웠다. 몸의 오각이 열리고 오감이 땅속에서 꼬물꼬물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경외감의 발로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몸집과 근육질의 건강한 수형, 장수의 기운 앞에서 이 나무는 내 삶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가치였다. 대지를 움켜쥔 채 노출된 뿌리의 꿈틀거리는 끈질긴 모습 또한 내 삶으로 반추되었다. 우리 삶 역시 뿌리, 곧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이 나무는 말없이 일러 주고 있었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나무 가까이 다가가 그를 안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나무가 되었다. 그사이 뒤따르던 대붕 아우가 도착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같은 행동을 했고, 소나무를 안은 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무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은 나무와 닮아가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백두대간의 경관은 한 편의 시이자 그림이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등줄기가 금강산과 설악산, 태백산의 고산준령을 지나 소백산과 속리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조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남의 관문 백두대간 문경새재 고갯길을 넘어 이곳 적성리 고갯마루에 섰던 옛 길손들은 떠나온 고향을 바라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꼭 성공하여 금의환향하여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처자식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원대한 꿈을 괴나리봇짐에 숨겨놓고 결기를 다졌을까. 입석마을이 생기기 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는 천연기념물 제383호 소나무 노거수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산 26-4번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이 약 500년,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에 이른다. 마을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 소나무는 이미 고사했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대신 이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살아남아 지금까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형제처럼 닮은 모습이다. 줄기 윗부분은 붉은빛을 띠고 아랫부분은 검은빛을 띠어 소나무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원래는 가지가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어 있었으나, 2003년 설해(雪害)로 동쪽 가지 일부를 잃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낭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조선의 길손들은 먼 길을 떠나며 마음 한켠에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품었으리라. 산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형을 건너는 일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무게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고갯마루는 그 길 위에 놓인 경계이자 시험대였다. 발목에 묻은 흙먼지가 무겁게 내려앉을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고, 낯선 계곡의 바람에도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험한 고개를 앞둔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언젠가 이 길 끝에서 다시 웃을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충북 괴산 적성 고갯마루에 우뚝 서 있는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수백 번의 사계를 견디며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어쩌면 이곳을 지나며 옷깃을 풀고 쉬어 가던 길손들의 침묵을 오래도록 들어온 존재일 것이다. 고개를 넘기 전 무거운 마음을, 밤바람 속에 스미는 외로움을, 짚신에 구멍이 나도 되돌아갈 수 없었던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았고, 그 아래를 지나는 나그네를 말없이 품어 주었으리라. 흔들리는 가지 끝마다 나그네의 사연이 걸리고, 껍질에 새겨진 세월만큼이나 간절한 기도들이 차곡차곡 쌓였으리라. 나이테의 연륜만큼이나 그 사연 또한 깊었을 것이다. 길손의 삶의 애환을 고갯마루에서 풀어헤친 보따리들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흩날리며 통한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노거수를 찾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전설이 되었다. 고갯마루에 서서 나무가 되어 푸른 그늘을 올려다보면, 길을 떠난 모든 이들의 숨결이 바람결에 되살아난다. 어쩌면 이 소나무는 길과 사람, 삶과 희망을 잇는 수호목이었을 것이다. 도적이 나타날까 두려워 서로를 기다리던 손, 낯선 이에게 내밀던 따뜻한 보리밥 한 숟가락의 정, 넘어야 했던 수많은 인생의 고비들. 그 모든 사연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지금도 은은히 내려앉는 듯하다. 길을 걷다 지친 마음을 잠시 멈춰서 쉴 때, 소나무는 묵묵히 말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인생 또한 그러하다고,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면 떠나는 길 위에 펼쳐진 고개는 끝이 없다. 언젠가 목적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외길이기에 고갯마루에서 쉬면서도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숙명의 길임을 깨닫는다. 내 또한 늘 힘든 고갯마루를 넘으면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란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아픈 다리 끌면서 인생 고갯길을 넘어왔다. 본래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주변에는 숲이 있어 고갯길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토지 소유주가 나무들을 베어내고 경작지로 바꾸어 버렸다. 주민들은 강풍으로 인해 소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괴산군 삼송리 천연기념물 왕소나무, 일명 용송(龍松)이 2012년 태풍 볼라벤의 거센 바람에 뿌리째 뽑혀 땅을 베고 눕고 말았다. 그와 같은 일이 이 소나무에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토지 변경을 허가한 관계기관에 대한 원성도 컸다고 한다. 이에 충북 괴산군과 국립환경산림과학원은 송홧가루가 날리기 전 건강한 꽃가루를 채취해 유전자은행에 장기 보존하고, 후계목 육성에 활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군민들의 깊은 나무 사랑이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고사한 삼송리 왕소나무 노거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 250번지. 왕소나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90호 지정, 나이 600살, 키 12.5m, 둘레 4.7m이다.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 부르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한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했다고 한다. 2012년 8월 28일 태풍 ‘볼라벤’이 동반한 강풍에 쓰러졌다. 쓰러진 상태로 보존하기로 하고 괴산군은 나무병원 직원들을 동원해 뿌리 부분 복토, 석축 작업, 새 뿌리 발생을 돕기 위한 약품 처리, 햇볕을 막기 위한 차광망 설치 등을 진행했다. 나무 주사를 놓고 병해충 방제 작업을 벌였다. 노력이 1년 정도 계속되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2014년 12월 5일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했다.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청주시 미원면 미동산수목원 뒤편 산기슭에 후계목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2026-01-08

돈이 사라진 세상, 인간은 모두 행복해질까?

병오년이 시작됐다. 한 해 계획을 세우며 모두가 분주한 시기. 이즈음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이 어때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무게감 있는 소설을 읽는 것도 청사진을 그려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듯하다. 아래 2026년 첫 독서 목록에 넣어도 좋을 작품 2편을 소개한다. ▲‘소유’라는 개념이 사라지면 모두 행복해질까?-소설가 남한의 ‘무한복제기계’ 1970~1990년대.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은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 발전 5단계설’에 매료됐다.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물질 생산력의 계속된 발전 과정’이라고 설파했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단어도 함께 언급됐다.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마르크스 당대와 이후의 세상이 ‘원시 공동체 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제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공산사회’로 변화·발전할 것이란 게 그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의 핵심이다. 인간이 만들어갈 역사의 최종 지점, 마지막 단계가 공산주의사회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와 동유럽,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의 일부 국가에서 혁명 또는, ‘혁명 수출’이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게 “실패했거나, 실패에 가까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 “온전한 공산사회는 아직 형성된 적이 없다”고 진단하는 견해도 있다. 아래 언급되는 한 편의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공산사회의 형성과 마침내 도달한 유산자와 무산자가 없는, 인간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어 주목받았다. 서울대와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작가 남한의 ‘무한복제기계’가 바로 그것. 소설 ‘무한복제기계’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수십 개의 기업을 소유한 거부(巨富)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과학자에게 ‘세상 모든 것을 복제할 수 있는 기계’의 제작을 의뢰한다. 천문학적 돈이 사용된 이 프로젝트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똑같이 복제해낼 수 있는 기계 ‘오메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 이상 값비싼 보석과 명품 시계, 커다란 아파트와 모피 코트를 가지려고 서로 다투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유’라는 개념이 증발했다. 마르크스는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소유권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누구는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론을 벌이는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소설가 남한은,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공산사회로 변화하는 단계엔 획기적 기술의 발달이나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격변이 수반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평가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터.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변화·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마르크스조차 농업기술의 비약적 발전, 방직기계의 발명처럼 사회 구조를 바닥에서부터 최상위까지 모조리 바꿀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 소설 작가의 생각이다. ‘자본론’에 이어 ‘공산당 선언’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막연한 ‘의지주의’로 전락해버린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소설 ‘무한복제기계’는 세상의 모든 재화를 끝없이 만들어내 그걸 원하는 누구나 나눠 쓸 수 있게 하는 기계의 탄생이라는 혁명적 변화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축조된 공산사회의 모습을 서술·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걸 무한으로 복제해 낼 수 있는 기계는 인간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현재의 자본주의사회를 마르크스가 말한 바 평등한 공산주의사회로 건너가게 만들어줄까? 한 번도 설거지나 청소를 해본 적이 없는 재벌의 아내와 일생 남의 집 가사를 대신해주며 살아온 노동자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돈을 포함한 일체의 재화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선한 의지가 발현되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어둡고 습한 디스토피아일까? 남한의 ‘무한복제기계’는 독자들을 끝없는 질문 속으로 던져 넣는다. 책이란 인간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건 무엇인지…-소설가 이은정의 ‘비대칭 인간’ 어느 날 문득, 불현듯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니 좌측과 우측의 대칭이 무너져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궁금증 속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거리를 걷는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안면 윤곽술에 도통한 의사에게도 대놓고 하소연하기도 힘든 상황. 곤혹스러움이 주위 사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런 ‘안면 비대칭’은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일까? 물음의 출발점이 모호하니, 답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위의 서술은 이은정의 소설집 ‘비대칭 인간’의 표제작 내용 중 일부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끌어가고, 마무리 짓는 솜씨가 만만찮다. 이 작가의 또 다른 단편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비대칭 인간’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훈련과 연마가 거듭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향기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허술하지 않은 문장에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시적(詩的)인 문체, 거기에 지난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과 마주한 21세기 청년들의 환멸까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묶어낸 역량까지가 그랬다. 소설가 이은정은 2018년부터 소설가의 삶을 살아왔다. “책을 낼 때마다 작업 과정은 달랐고, 나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내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현대사회가 외형이건 내면이건 인간의 비대칭을 만들거나, 인식하게 한다면 그걸 만들거나 인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시선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 자신의 시선. 그걸 인식하는 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SNS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시선들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비관하고 절망하고 고단해야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대놓고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비대칭 인간’의 수록작 중에서는 ‘눈이 와요’를 살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고,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연초에 어울리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줄 것”이라 부연했다. 앞으로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풀어보고 싶다는 이은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 단면들을 소설로 쓰면서 나도 많은 걸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소설가를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이 작가. 이 ‘선량한 싸움꾼’이 앞으로 써낼 작품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06

‘탄소중립시대’에 적극 대비하는 성주군

‘환경’과 ‘에너지’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1세기다. 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이에 관한 대비책을 골몰 중이다. 성주군도 이런 상황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기에 미래 청사진의 주요한 부분에 ‘환경 친화’라는 방점을 찍고 있다. 성주군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시대를 대비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2026년 약 76억원의 국도비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대기질 개선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성주군은 이동 오염원의 대기오염물질을 저감하기 위해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매연저감장치 부착, 전기․수소 등 친환경차량 보급을 추진한다. 더불어 사업장의 노후 방지시설 개선, 탄소중립 포인트 인세티브 지원 등을 통해 전반적 지역 대기질 개선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재 성주의 전기차 및 전기이륜차 등록 대수는 약 1635대. 이는 경북도내에서 인구대비 무공해차 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 2026년엔 57억원의 예산을 들여 승용전기차 150대, 화물전기차 128대, 버스 2대, 이륜차 70대, 수소전기차 2대를 2월중에 신청 받을 계획도 세웠다. □ 전기-수소 자동차 확대와 보급 위한 대책 마련 그린모빌리티 시대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부족한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예산도 편성했다. 이는 급속 및 완속충전기의 민간 설치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경유차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의 주된 배출원이다. 노후될수록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정부는 조기폐차 지원사업을 통해 노후경유차를 조기에 폐차하도록 유도 중이다. 이에 발맞춰 성주군은 2026년에 7억5000만원의 예산을 확보, 3월 2일부터 461대의 노후경유차 조기폐차를 지원한다. 또한, 어린이통학차량LPG전환에 300원, 지게차와 굴착기 등 노후건설기계엔진교체 사업에 3억6000만원을 편성했고, 매연저감장치부착예산 3300만원을 확보해 경유차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소규모 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지원사업은 영세 사업장의 노후 방지시설 개선 비용 부담 완화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국도비 사업으로 2019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다. 수년간 방지시설 지원사업을 시행한 결과 매연, 악취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환경 민원이 감소해 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 국도비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 영세 사업장의 시설 개선도 지원할 계획이다. 가정 에너지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탄소포인트 제도와 자동차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차주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자동차 탄소포인트 제도도 4000만원의 예산으로 시행한다. □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불법행위 철저 감시 성주군에는 360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이 있다. 산업단지 조성과 대도시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대기배출사업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대기배출사업장에 대해서는 정기-수시 점검을 실시하고, 사업주에게 환경 관련 준수 사항을 지도하는 등 환경오염 등 불법을 방지하는 데도 집중한다. 방지시설 미가동 등 불법 행위 적발 시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고발, 행정처분 등 엄중 조치함으로써 경각심을 고취하고, 공장 가동 시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후된 방지시설은 개선을 유도하는 등 시설 적정관리 및 대기오염물질 저감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그간 축사·퇴비공장 등에서 악취 민원이 자주 발생됐으나 악취 발생 시간대 및 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날씨, 기상에 따라 악취 상황이 급변하는 등 악취 민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따라 성주군은 악취 측정과 포집이 가능한 대기오염 이동측정차량을 확보해 민원 발생 지역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성주군은 향후 주민 요청지역, 대기오염 취약․우심 지역을 대상으로 대기질을 측정해 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행정신뢰도를 제고하고, 모니터링 한 데이터를 환경 정책에 반영해 쾌적한 정주 여건 조성에 활용하게 된다. 이와 함께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질 지도·점검을 지속한다. 점검 대상은 어린이집, 의료기관 등 26개 시설이다. 2026년 성주군의 다중이용시설 지도·점검 대상지는 총 15곳. 시설별 관리 실태와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점검 과정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안내 및 개선 조치한다. 이러한 제반 사업의 세부 요건, 제출 서류, 접수 방법은 성주군 홈페이지 공고와 담당 부서 안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6-01-06

연민과 희망 가득하길··· 병오년 새해를 밝힐 3편의 시

환하게 떠오른 2026년 첫날의 붉은 태양. 그 아래를 선명한 붉은빛을 가진 말이 뛰어간다. 말은 진취적 기상과 역동성, 거기에 꿈틀대는 생명력까지 가진 동물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활기찬 에너지가 넘친다.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전쟁터에선 장수를 태우고 종회무진 적진을 헤쳐 나가고, 무거운 짐이 등에 실렸을 때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빨리 한다. 그 옛날, 인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말이 2026년엔 어떤 기운을 국민들에게 선물할까? 그 기운을 토대로 우리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삶을 가져갈 수 있을까? 질문이 많아지는 새해 벽두다. 누구나 이때쯤이면 한 해를 설계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된다. 올해는 이기심보다는 이타(利他),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청사진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다. 2026년 열두 달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 읽어본다면 인간과 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사랑·연민·희망이란 귀한 메시지를 품은 시 3편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죽음도 이겨내는 사랑... 송수권 ‘석남꽃 꺾어’ 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 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밤이슬 풀 비린내 옷자락 적시어 가며 네 집에 들리라. ‘남도의 소월’로 불리는 송수권 시인의 서정시 중 으뜸이라 불러도 좋을 ‘석남꽃 꺾어’는 어떤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어디에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를 간명하고 질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정한 사랑은 너와 내가 오가는 방에도, 부엌에도 웅크리고 있으며 심지어 젖은 행주에도 깃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가 웃을 때도, 울 때도 사랑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강고하게 건재한다. 그 사랑의 힘은 때로 이승이 아닌 저승에서도 발휘된다.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싶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2026년 사람들의 지상목표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단 하나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 돼야 할 듯하다. ▲연민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이면우 ‘화엄경배’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연민(憐憫), 즉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은 인간만이 가진 소중한 것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저 혼자 잘살겠다는 마음가짐이야 금수(禽獸)라도 못 가질 게 없다. 연민을 가지려면 평범한 삶을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면우는 실제로 온갖 육체적 노동을 하며 시를 써온 시인이다.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보는’ 일을 했다. 그의 작품에서 근육의 꿈틀거림과 진솔한 생활의 냄새가 나는 것은 이면우가 일상을 고마워하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 아닐지. ‘보일러공의 기도’라고 불러도 좋은 ‘화엄경배’에선 뜨거운 불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의 하찮은 것들을 다사롭게 끌어안는 휴머니티 가득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 ‘연민을 가질 수 있어야 마침내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고 이면우는 노래한다. 아프지만 아름답지 않은가?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숙제... 이성부의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최고의 절창(絕唱)’으로 손꼽는 게 이성부 시인의 ‘봄’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분홍빛 꽃들과 함께 봄은 온다. 겨우내 꽁꽁 언 땅에서 새파란 새싹이 돋아나듯 희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해마다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류와 함께 공존해왔다. 삶이 있다면 희망도 있고, 생이 소멸하지 않는 한 희망도 소멸하지 않는다. 2026년 1월 초. 아직은 북풍에 어깨를 움츠려야 하는 차가운 날씨지만, 머지않아 희망의 메타포라 할 봄이 ‘눈 부비며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네 세상살이가 얼마나 메마르고 팍팍할 것인가. 맞다. 병오년의 봄도 멀지 않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01

혹한의 겨울, 한국 사람은 아직 ‘밥심’으로 살까?

몇 해 전 겨울이다. 가수 진성이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고 노래한 ‘안동역’ 인근 조그만 식당에 갔다.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고, 무언가 따끈한 게 먹고 싶었다. ‘냄비밥’이란 메뉴가 눈에 띄었다. 알고 찾아간 게 아니었는데, 거긴 이미 기자 외엔 알 만한 사람이 다 아는 맛집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다른 메뉴를 쳐다볼 것도 없이 냄비밥을 주문했다. 기대했던 대단한 밥상이 차려지진 않았다. 그저 몇 가지 나물반찬에 담백하게 끓인 된장찌개, 거기에 고등어조림 한 토막. 헌데, 얇은 냄비에 갓 지어낸 밥이 기가 막혔다.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구수하고 달았다. 그 옛날 교주 최시형을 따르던 동학교도들은 “밥이 곧 하늘”이라 했다. 거창한 의미 따위를 붙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밥은 ‘섬김의 대상’이었다. 뿐인가?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에 토를 다는 이들이 없었다. 싱싱한 푸성귀 무침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따끈한 냄비밥을 깨끗하게 비운 그날. 냄비에 지은 밥이 선물한 ‘또 다른 별식’ 누룽지를 씹으며 기억의 회로 저 먼 곳에서 잠자고 있던 추억 한 조각을 떠올렸다. 선친과 외조모에 얽힌 에피소드였다. 주전부리나 별식 따위가 없던 시절엔 반찬도 부실했다. 그래서였을 터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식이라 할 밥을 무지하게 많이 먹었단다. 물론 제 땅이 없고, 소작할 땅도 마땅찮아 극도로 가난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보리와 콩 등 잡곡을 섞은 밥도 양껏 먹지 못했겠지만.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 선교 등의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농부나 어부의 식사량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고 한다. ‘밥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먹는 조선 사람’에 대한 놀라움은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쓴 책에 고스란히 남았다. 커다란 밥그릇을 앞에 놓고 앉은 상투 튼 조선인 사진 몇 장도 함께 전해진다. 1947년에 태어난 모친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농사일을 도우며 시골에서 살았다. 반면 선친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세련된 도회지’라 불러도 좋을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1944년, 그러니까 해방 한 해 전에 나고야에서 부산으로 이주한 아버지는 혼인하기 전까지 내내 도시에서만 살았다. 그리고, 일생 소식(小食)했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기 주먹만한 조그만 밥그릇임에도. 그런 아버지가 장가를 갔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처음으로 처가에 갔을 때 몹시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선친의 첫 번째 처갓집행(行)은 벼 수확이 한창이던 1970년 가을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위는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았다. 이런저런 처갓집 피붙이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니 저녁밥 먹을 때가 됐다. 장모가 들고 온 밥상을 본 아버지는 대경실색(大驚失色) 했단다. 황소 머리통만한 밥그릇엔 푸른 염료로 큼직하게 ‘福(복)’자가 새겨져 있었고, 밥그릇에서 솟아오른 밥의 높이가 족히 10cm는 넘어 보였다는 것. 이른바 농사짓는 상일꾼이 먹는 ‘고봉밥’이었다. 선친은 매사에 과장이 없는 사람. “이걸 혼자서 어떻게 다 먹나? 쌀 한 되로 밥 한 그릇을 만든 형국”이란 혼잣말을 참지 못하고 했다는데, 그걸 장모는 듣지 못했을까? 만약 들었다면 꽤 서운했을 듯하다. 맏사위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이었으니.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그 밥을 아버지는 결국 남겼고…. 세월무상(歲月無常)이다. 지난 2007년. 산처럼 높고 높은 고봉밥을 퍼주던 1920년생 외조모(아버지의 장모)가 세상을 떴고, 이듬해 시골 사람들 밥그릇 크기와 밥의 양에 경악했던 사위(선친)도 귀천했으니. 그리고 2025년 찬바람 매운 오늘.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믿던 1970년에서부터 55년이 흘렀다. 이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밥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나와 모친도 겨우 쌀 한 홉으로 밥을 지어 둘이서 나눠 먹는다. 그러고도 그걸 남길 정도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먹고 싶어진다. 외조모의 가마솥 고봉밥이나 낡은 냄비에 고슬고슬 지은 따끈한 밥이. 그런 걸 보면 기자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 모양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30

‘깜밥’ ‘가마치’로도 불리던 별미

한국에 전기밥솥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20세기 중후반이 아닐까 싶다. 장작이나 연탄 없이도 전기를 사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밥을 지을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서 주부들의 ‘밥 짓기’ 고민은 사라졌다. 아쉽게도 그 고민과 동시에 하나 더 사라진 게 있으니 바로 ‘누룽지’다. 깜밥, 깐밥, 깡개밥, 깡개, 누룽갱이, 가마치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던 누룽지는 가마솥이나 냄비에 밥을 할 때 바닥에 밥이 눌어붙은 걸 지칭한다. 고소하고 묘한 단맛이 나기에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던 1970년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미로 먹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룽지를 프라이팬에 구워 설탕이라도 조금 뿌리면 인기는 더 높아졌다. 어른들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푹 끓인 숭늉을 지금 사람들이 커피 마시듯 즐겼다. 요즘엔 일부러 밥에 열을 가해 누룽지를 만드는 가게도 있다. 옛 기억을 잊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그렇게 만든 ‘21세기 스타일 누룽지’를 잔뜩 구입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과자처럼 먹거나, 식후 입가심용 숭늉으로 마시기도 한다고. 누룽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분이 대폭 줄어들고, 적지 않은 양만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포만감이 생기기에 젊은 여성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누룽지의 쓰임새도 변하고 있는 모양. 한국인들의 ‘누룽지 사랑’을 알려주듯 사탕도 누룽지 맛이 나는 게 있고, 백미보다 건강에 좋다는 현미로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누룽지를 한국 사람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직도 전기밥솥이 아닌 전근대적인 수단으로 솥에 불을 때서 쌀을 익혀 먹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 심지어 유럽 몇몇 나라 사람들도 누룽지를 즐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30

명성황후 민자영의 죽음 일주일 전엔 어떤 일이?

“나는 상상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역사를 재료로 글을 쓰면서 가슴이 뛰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 상상력을 기사에 담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세계를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는 것이 신이 나고 보람 있다.” 누군가에게는 ‘명성황후’라는 극존칭으로 불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민비’로 비하되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아내 민자영(1851~1895). 민씨는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 일본인의 칼에 찔린 처참한 죽음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TV와 영화를 통해 지켜봤을 이 유명한 살인 사건은 왜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중전 민씨를 살해한 이들의 정체는 뭐였을까? 35년 동안 연합뉴스 기자로 일하고 올해 봄 퇴직한 권영석은 앞서 언급한 3가지 의문을 자신의 첫 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을 통해 추적한다. 권영석은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을 교직(交織)하는 방식으로 중전 민씨의 죽음 직전 일주일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 또는 서술한다. 오랜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짧고 명확한 단문이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이명재와 아다치 겐조의 치열한 지략 대결 펼쳐져 소설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온건 개화파의 수장이던 민영익의 호위무사 이명재. 가상의 인물이다. 그와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인물은 아다치 겐조다.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세운 일간지 ‘한성신보’ 사장이며 실존 인물. 책을 펴낸 출판사는 “‘작전명 여우사냥’은 주인공 이명재와 라이벌 아다치 겐조의 치열한 지략 대결과 한성 시내를 뒤흔든 대형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는 설명으로 이 작품이 딱딱한 역사소설의 모습만이 아닌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면모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중전 민씨의 죽음은 정확한 전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된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권영석의 첫 장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이 풀리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권영석은 1991년에 연합뉴스에 입사해 올해 봄 정년퇴직했다.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고, 재직 마지막 시기엔 북한부와 통일언론연구소 등 북한 관련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이에 관해 권 작가는 “역사적인 삶을 살자는 것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다. 역사적 삶이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전쟁을, 독재 치하에 산다면 민주화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지금은 분단시대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와 통합을 위하는 삶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 싶었다”고 부연한다. 소설을 쓴 이유에 관해선 “지금까지 남이 하는 얘기만 썼다. 기사는 쓸 만큼 썼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려 한다”고 했다. 크게 봐서는 똑같은 글쓰기지만, 소설과 기사는 그 작법과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분량만을 보자면 소설의 길이는 기사를 크게 압도한다. 그래서다. ‘작전명 여우사냥’이 나오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2022년 5월 권 작가는 영화감독 한 명과 통음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에서 우연히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을 설명했고, “흥미로운 소재고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격려를 얻었다. “그때 이후 조금씩 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탈고까지 거의 3년 걸렸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소설 쓸 때가 더 행복했다.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는 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권영석의 회고다. ▲자신의 문장으로 소설 쓰는 시간, 너무 행복해 작가라면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권영석은 명성황후, 혹은 민비로 불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래는 그에 관한 대답이다. “명성황후란 명칭은 귀에 거슬린다. 내 소설 속에선 중전 민씨라고 불렀다. 황후라고 높여 부를 필요도 없지만 민비라고 업신여길 필요도 없다. 총명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잇따라 죽으면서 하나 남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나쳤다. 무당에게 의지하고 뇌물도 좋아했다.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탐욕이 끝이 없었다. 가장 큰 죄는 사대주의였다.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조선을 청나라 속국으로 만들었고 청나라가 망하자 그 다음에는 러시아에 의지했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의 아픔은 패전국들의 몫이었다. 동독과 서독처럼 일본도 미국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을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제안했다. 권영석은 바로 여기서 우리 민족 비극의 시작을 봤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에도 일본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처음 제안한 1895년 상황이 서술된다. 러시아가 일본의 대륙 진출을 봉쇄하자 한성 주재 일본 공사가 러시아 공사 베베르에게 한반도를 분할해 나눠 갖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 권 작가는 독자들에게 “특히 이 대목을 주의 깊게 읽어주며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예순 살. 기자에서 소설가로 존재 전이한 권영석에 “이젠 또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그의 단단한 결심을 짐작하게 해줬다. “이번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글을 쓰는 재능도 없으면서 하찮은 소설 하나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독자들이 소설을 계속 써도 좋다는 평가를 내려준다면 남북한 문제를 다룬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독자들은 그에게 “당신은 앞으로 소설가로 살아가도 좋다”는 평가를 내려줄까? 그가 새롭게 써낼 남북관계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현재까지는 고종과 중전 민씨의 한쪽 측면만 과대 포장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많았다. 그걸 알기에 권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보탰다. “‘작전명 여우사냥’이 고종과 중전 민씨를 입체적으고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23

“1인분을 다하는 것이 현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2010넌 입사 전기정비직으로 만 15넌 현재 ‘냉연의 꽃’ PCM 압연 공정 맡아 설비 고장 예측·예방 최적의 상태 유지 - 본인 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주요 업무를 말해달라. 포항제철소 압연설비2부 냉연정비2섹션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헌제 계장이다. 2010년 포스코에 입사해 전기정비직으로 일한 지 만 15년이 됐다. 현재는 냉연의 꽃이라 불리는 PCM 압연 공정을 맡고 있다. PCM 압연은 쉽게 말해, 두꺼운 철판을 얇고 매끈하게 만드는 ‘철판 다듬기 공정’이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눌러 원하는 두께로 펴는 과정과 비슷하다. 열연 코일이라는 ‘반죽’을 압연 롤이라는 ‘밀대’로 강하게 눌러 얇게 만들고, 표면을 고르게 다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압연 롤과 철판이 맞물리며 강한 압력과 마찰이 발생하고, 여기에 고속 회전으로 인한 열까지 더해진다. 아주 미세한 두께 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 설치된 각종 센서와 전기설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을 예방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한 생산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설비 제어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어릴 때부터 내 꿈은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포항제철공고에 입학한 순간부터 그 목표는 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엔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바로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취업 시장도 얼어붙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중장비를 제작하는 제조업체에 입사하게 되어 약 2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단순 반복적인 조립 공정은 내 적성과 잘 맞지 않았고,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 생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고민 끝에 오랜 꿈이었던 포스코 입사를 목표로 다시 준비를 시작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 냉연정비섹션을 소개한다면, 어떤 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냉연정비섹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설비의 명의(名醫)’다. 사람의 병을 미리 발견해 예방하고, 병이 생기더라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치료하는 의사처럼, 우리는 설비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철강 산업이라고 하면 거친 현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 현장은 점점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설비의 ‘아픈 곳’을 미리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몇 년 전 도입된 PIMS(POSCO Intelligent Maintenance System)이다. 이 시스템은 과거에 발생했던 고장이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데이터로 분석해, 설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은 활용도가 높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정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곧 ‘스마트 제철소’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냉연정비섹션은 그 길을 묵묵히 준비하며, 설비가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오늘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1인분은 반드시 하자” 평소의 생활 신조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책임’과 ‘헌신’ 신뢰받고 안전한 현장 만들기 위해 필요 -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원칙은 무엇인가? 내 회사생활의 신조는 단순하다. “1인분은 반드시 하자.” 내가 맡은 몫을 다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동료에게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하지만 ‘1인분’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배우고, 익히고,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비 업무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필요한 부품을 미리 준비하고, 고장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설비 상태를 숙지하는 것이 필수다. 이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압연기능장, 산업안전기사, 설비보전산업기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지식을 높이는 것이 곧 팀의 안정성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선후배 사이의 연결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후배들의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선배들에게 전달하며 팀이 하나로 움직이도록 돕는다. 설비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야간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도 주저 없이 현장에 나서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책임’과 ‘헌신’이다.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동료와 조직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것. 그 두 가지가 모여야 비로소 안전하고 신뢰받는 현장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 포스코의 복지 제도 중에서 특히 만족하며 누리고 있는 제도가 있다면?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방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연극 프로그램, 클래식 공연, K-POP 콘서트까지 그 폭이 넓고 수준도 높아 다방면에서 만족하고 있다. 특히 8세 자녀가 있는 나에게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행사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공연 프로그램들을 보며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경험은 포스코의 복지 혜택이 아니었다면 쉽게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이다. 올여름 블루원 워터파크 대관 행사도 잊을 수 없다. 평소 대형 워터파크는 인파 때문에 선뜻 가기 어려웠는데, 대관 행사 덕분에 아이와 함께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시원한 물놀이와 함께 소소한 이벤트, 기념촬영까지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경험은 단순한 ‘행사 참여’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고, 삶의 활력을 주는 순간이었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주시는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직원들의 문화생활 다양한 지원 큰 만족 연극·클래식·K-POP 까지 수준도 높아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삶의 활력 - 국내 철강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철강 산업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글로벌 경기 변동, 세계적인 철강 수요 둔화, 특히 중국의 과잉 생산과 저가 수출은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 환경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탄을 쓰는 고로 제철 방식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포스코는 이러한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에 착수하여,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2050년까지 모든 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소로 전환해, 환경 친화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탄소중립 철강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국내 철강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산업을 물려주기 위한 필수 과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그리고 변화를 선도하는 실행력 그것이 포스코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라고 믿는다. 조직 내 MZ세대가 주력 인력으로 자리 세대 교체되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협력·소통이 강한 조직 만드는 것 목표 - 앞으로의 포부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큰 세대 교체의 흐름 속에 있다. 60년대에 태어난 선배들이 차례로 현장을 떠나고, 이제 MZ세대가 주력 인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중견사원으로서, 선배들의 경험과 후배들의 열정을 이어주는 연결점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후배 사원들과의 좋은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업무를 빠르게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동시에 관리자를 보필하고, 현장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중간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변화하는 인력 구조 속에서, 세대 간의 협력과 소통이 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2-21

영덕 관어대 고래불해수욕장의 '눈부신 풍경'

경북 영덕 상대산(上臺山) 관어대(觀魚臺)에 올랐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서자 사방으로 열린 하늘과 바다, 능선과 들녘이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처럼 펼쳐졌다. 동쪽으로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푸른 동해가 숨결처럼 일렁이고, 북쪽으로 이어진 울진 후포항의 해안선은 산과 바다를 꿰매어 붙인 곡선의 비단 폭이 고요히 흐른다. 아래로는 영해와 병곡의 평야가 평화롭게 누워서 잠들고, 명사 20리라 불리는 고래불해수욕장과 솔숲은 푸르고 유쾌한 기운을 밀어 올린다. 푸른 바다와 솔숲 사이 황금빛 모래 해변은 또 어떤가. 발아래 헤엄치는 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하여 붙인 이곳, 관어대는 오래 바라볼수록 물결 속에 숨 쉬는 생명과 풍광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저절로 맑아지고, 옛 시절 목은 이색 선생을 비롯한 시인, 묵객들이 시심을 틔웠을 까닭을 알 듯하다. 퇴직 후 황혼의 청년이라 자처하는 고향의 친구 정기채, 이승구, 황조연, 이희열님과 함께 이 멋진 풍광을 즐겼다. 한 주가 멀다고 하며 유명한 산천을 주유하는 이들이다. 오랜 공직 생활 내내 성실과 청렴을 지켰고, 고위 공직자로 명예롭게 퇴임한 뒤에는 새 일자리를 찾기보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인생 2막 황혼의 삶을 꾸리고 있다. 이름난 명소라면 이미 대부분 다녀온 터라, 우린 여행지를 추천하기보다 어떻게 자연을 느끼고, 걷고, 쉼을 얻으며 노년의 삶을 균형 있게 꾸밀 것인지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부신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속도를 늦추고, 해풍에 마음을 걸어두고 침묵의 명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에는 바다 내음처럼 긴 시간을 품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옛사람들은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을 찾았을 때, 해수욕장 앞 바다에서 고래가 흰 물줄기를 뿜으며 장난치듯 노니는 장관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전한다. 그날의 놀라움과 감탄이 바람결에 스며 지명으로 남았으니, 고래가 노니는 모래뻘이라는 뜻에서 고래불이라 불린 것이다. 여기서 불은 뻘의 옛말이라 한다. 1986년 국제 고래잡이 금지 전까지 바다에서 실제로 고래잡이가 행해졌고, 2000년엔 멸치잡이 어선이 이빨부리고래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는 소식을 마을에 전했다. 고래불 해변, 북쪽의 솔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면 또 하나의 지명 이야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용머리이다. 마을 앞 바다에는 용이 머리를 내밀고 파도를 내려다보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바위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용머리라 불러왔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곳곳에 말뚝을 박아 민족의 기운을 꺾으려 했던 어두운 시절에도 마을 사람들은 용머리를 잃지 않기 위해 팔각정을 세워 수호처인 듯 위장했다 한다. 그들의 작은 지혜와 간절함이 마을의 숨결을 지켜낸 것이다. 지금도 5년마다 풍어제가 열리면 첫 제의는 용머리에서 드린다. 바위에 제사가 올려지고 북소리가 바다를 흔들며 퍼져 나가면, 오래된 믿음과 바다의 영혼이 조용히 호흡한다. 전국에서 무속인과 여행객이 기도를 위해 찾아온다. 바람에 흔들린 촛불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면, 이곳은 세월을 건너 이어져 온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고래불 해변을 신발 벗고 맨발로 걷다 보면 모래가 체온을 닮아 따스하다. 발끝 사이로 스며드는 파도는 오래된 슬픔마저 씻어주는 듯하다. 수평선 위 붉은빛이 서서히 번지고, 둥근 해가 바다를 뚫고 솟구치던 순간, 윤슬이 바다를 타고 내게로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절로 합장되고, 감사와 소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렸다. 그 황홀한 빛의 파동이 몸을 스치자 잠자던 세포가 꽃잎처럼 터져 오르는 듯했으니, 자연의 감동이란 이토록 말없이도 깊고 환한 것임을 깨닫는다.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오직 파도와 바람, 나의 숨결만이 투명하게 남는다. 모래 해변, 그 이름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낭만의 장소이다.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면, 바다 건너 오래전 고래가 수면을 가르며 솟구치던 순간의 물빛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파도친다. 파도는 은빛 결을 이루며 모래 위를 밀어내고 다시 끌어당긴다. 무심한 물결에 발끝을 내맡기고 한참을 걷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근심이 바닷물에 씻겨 나가는 듯 가벼워진다. 모래를 딛는 발걸음은 더디고 힘들지만, 바람에 실린 조개껍질의 미세한 반짝임과 파도 소리의 리듬은 그조차 잊게 만든다. 돌아올 때는 고래불 솔숲으로 들어섰다. 공기는 한층 더 맑고, 수천 그루 소나무가 선선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솔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송진과 흙냄새가 어우러진 향기를 머금고 있다. 식물이 몸을 지키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가 온몸에 닿아 정신과 폐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테르펜이라 불리는 이 향은 살균, 진정, 소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약리의 힘을 품고 있다.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의 균형이 되살아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생각의 먼지가 털리고, 초록의 물결이 눈과 가슴을 편안하게 덮어준다. 숲은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스며들고, 치유는 어느새 몸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이곳은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으로 뿐만 아니라 국민 야영지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녹음이 짙어질수록 마음의 결도 부드러워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하는 존재, 생명애라 부르는 바이오필리아의 흔적이 DNA 속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숲길을 걷는 동안 도시의 빌딩 숲에서 느꼈던 숨 막힘은 사라지고, 심장은 넓어지고 호흡은 길어진다. 자연은 값을 치르지 않아도 우리에게 풍요를 내어준다. 모래의 질감, 파도의 리듬, 숲의 향기, 흙의 온도, 시원한 바람…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고래불 솔숲 길과 모래 해변을 걷는 일은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는 조용한 귀향이다. 고래불 솔숲과 황금 모래 해변, 푸른 동해,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에 부드러운 파도가 스친다. 숲길을 따라 솔향이 은은히 번지면 곧장 바다가 열린다. 모래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윤슬이 길을 내어주듯 손짓한다. 걸을수록 바람은 맑고 잎사귀 사이에서 흘러나온 푸른 향은 마음 깊은 곳의 오래된 응어리까지 씻어 낸다. 숲의 숨결과 바다의 리듬이 만나 한 걸음마다 시가 되고, 파도는 발뒤꿈치를 적시며 다시 돌아오라 속삭인다. 고래불, 그곳은 한 번이라도 마음에 스며들면 다시 찾고 싶은 자리이다. 보고 싶고 걷고 싶은 낭만이 불빛처럼 번져 가슴 끝을 환히 밝히는 곳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포구(浦口) 용머리 시비는… 동해(東海) 가을 깊어 파도는 멀고 안개 갠 포구에 갈매기 앉네 어이차 한 소리에 님은 십 리 밖 오늘도 무사하길 바라는 아내 상대산 우뚝 솟아 십리 같은데 펼쳐진 백사장은 이십 리라네 언제나 철썩이는 파도와 같이 마음껏 날고파라 물새와 함께 -2000년 4월 17일

2025-12-17

‘오미자’에 관해 우리가 궁금한 것들

보석처럼 붉은 조그만 열매. 매혹적인 빛깔과 여러 가지 효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오미자는 어떤 식물일까? 먼저 이 궁금증에 답해보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산골짜기, 모가 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넓은 타원모양. 잎의 길이는 7∼10㎝, 너비 3∼5㎝로 가장자리에 작은 치아상의 톱니가 있다. 열매는 8~9월에 빨간색으로 익으며 둥글거나, 달걀 모양이다. 이 열매는 달고, 시고, 쓰고, 맵고, 짠 다섯 가지의 맛을 낸다. 그 가운데서도 신맛이 가장 강하다. 한방에서는 약재로 이용된다. 대뇌신경을 흥분시키고 강장작용이 나타났으며, 호흡중독에도 작용한다. 또한, 심장활동을 도와 혈압을 조절하고, 간장의 대사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인정됐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차와 진액을 만들 수 있고, 각종 요리의 재료로 흔하게 사용되는 오미자가 건강에도 좋다면 그걸 먹지 않겠다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북 문경은 오미자로 유명세를 탄 고장이다. 1993년에 야생 오미자를 이식해 재배 시험을 진행했고, 1996년엔 유휴산지에서 소득시범사업으로 오미자를 재배한 문경은 2006년 ‘오미자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전국 시장에 풀리는 오미자의 45% 이상이 문경에서 나온다. 오미자를 지역 특산물로 잘 키워왔기에 2013년엔 지역경제 활성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문경에서 자라고 수확되는 질 좋은 오미자로 만드는 오미자청은 각지로 판매돼 ‘오미자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오미자청은 만들기 어렵지 않다. 흐르는 물에 씻어 이물질을 제거한 후 물기를 없애고 설탕이나 꿀에 버무린다. 이를 밀봉한 후 뚜껑을 덮어 공기를 차단한 다음엔 주 1회 정도 통을 잘 흔들어 준다. 직사광선을 피해 2~3개월 숙성하면 오미자청이 거의 완성된다. 이걸 잘 걸러 서늘한 곳에 두고 용도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는 게 요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16

술도, 돼지고기도 맛있어진다...‘오미자의 마법’

오미자(五味子)를 재료로 만든 술을 처음 맛본 건 20대 초반 때다. 엄마를 대신해 생일상을 차려줄 정도로 터무니없이 날 귀여워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곱상하고 귀티 나는 외모에 한식에서부터 양식, 일식까지 무엇이건 능수능란하게 차려내는 수준급 요리사이기도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50대 중반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재인박명(才人薄命). 다시 한 번 그녀의 명복을 빈다. 어쨌건 그 친구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1990년대 초반이다. 구멍가게에서 사간 맥주 한 박스를 다 비우고도 술이 모자랐던 우리는 주방 선반에서 매혹적인 빛깔을 뽐내는 담금주 한 병을 발견했다. 조그맣고 새빨간 열매가 독한 소주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망설일 것 있나? 주인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뚜껑부터 열었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자다가 일어난 친구 어머니가 “아이고, 이놈들. 결국은 약하려고 만든 오미자주까지 너희들이 먹는구나. 그래 잘했다. 젊으니 한 말 술인들 못 마실까”라며 사람 좋게 웃어줬다. 기자와 친구도 도도한 취기 속에서 따라 웃었다. 새벽까지 통음한 그날 밤이 벌써 30년도 더 된 옛 기억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오미자의 이름이 어째서 ‘오미자’인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오미자나무는 바위가 많은 산에서 자라는 덩굴성식물이다. 바로 여기서 열리는 열매가 오미자. 색깔은 다르지만 포도와 유사한 모양이기에 ‘붉은 포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열매엔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짠맛이 동시에 담겼다. 그래서다.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열매’라는 뜻에서 온 작명이 바로 오마자인 것. 한자를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 터. 헌데,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감지해내는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건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사람들은 오미자나무를 재배했고, 그 열매를 따서 술을 담고, 차(茶)도 만들고, 설탕이나 꿀을 섞어 발효시킨 후 청으로도 먹었다. 병을 치료하는 한약재를 연구하는 ‘본초학(本草學)’에선 오미자의 효능에 관해 ‘쇠진한 몸을 완화시키고, 눈을 밝게 해주며, 신장을 데워준다. 여기에 더해 남성의 정기를 높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30여 년 전 친구 어머니가 “약에 쓰려고 담근 술”이라 말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주려고 정성껏 만들었을 귀한 술을 아들도 아닌, 아들 친구가 한 방울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으니 마음속으론 밉지 않았을까? 너무 늦었지만 이 대목에선 용서를 구한다. 경상북도 문경은 이름난 오미자 생산지다. 오미자 열매는 초여름에 열리는데 그 시기에 맞춰 뻑적지근할 정도로 성대한 축제가 해마다 펼쳐진다. 취재를 위해 그 계절에 맞춰 두어 번 문경을 찾은 적이 있다. 처음으로 문경 오미자 축제에 간 게 아마 7~8년 전쯤인 듯하다. 그곳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돼지불백 식당에 들렀다. 동료들과 함께였다.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구워주는 고추장 양념 돼지불고기 맛은 유별났다. 잡내가 없었고 육질은 부드러웠다. 돼지고기 특유의 부들부들한 식감과 불에 익힌 단백질의 고소함, 과하지 않은 매운맛과 단맛이 근사하게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던 것. 기자들 서너 명의 논쟁이 시작됐다. “이건 돼지고기를 양념할 때 오미자청을 넣은 게 틀림없어” “아냐. 고추장을 만들 때부터 오마자를 재료로 사용한 것 같은데…” 운운하는. 정신없이 바쁜 식당 주인에게 “누구 말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기엔 미안했다. 사실 먹음직한 돼지불고기를 안주 삼아 오미자가 들어갔다는 핑크색 막걸리를 들이켜기에도 바빴고. 때마다 문경을 다녀올 때면 오미자청, 오미자차, 오미자 열매를 구입하곤 한다. 엄마는 오미자차를 즐겨 마셨고, 오미자청은 이런저런 볶음 요리의 재료로 사용했다. 지난해엔 오미자주도 만들었는데, 우리 집 거실에서 붉게 익어가는 그걸 다가오는 설에 마실 생각이다. 여전히 스물두어 살 때 친구 집에서 마셨던 그 맛일까? 궁금하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16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걷다

지역 곳곳 실뿌리 내린 아홉 노포와의 여정 웃음과 슬픔 버무린 일상의 경이로움 전해 시민과 애환 함께한 다른 노포 소개도 기대 지난 2019년 필자는 칼럼에서 노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포항 원도심에는 코주부사 외에도 50년 된 포항이발소, 40여 년 된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같은 노포가 있다. 이 오래된 점포의 주인들은 소소한 기술과 성실한 노동으로 어렵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톨의 씨앗도 품기 어려웠던 폐허에 힘겹게 실뿌리를 내리며 평생을 보낸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노포의 주인들을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진정한 역사는 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명력이 서로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평생 지켜온 점포가 작은 박물관이고, 이들이 사용해온 재봉틀, 이발도구, 요리도구가 역사 유물이며, 이들이 웃음과 슬픔을 버무려 풀어놓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책이 아닐까.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애틋한 삶을 잘 갈무리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궁리해야 할 때가 됐다. - 「코주부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작은 역사」, 『경북매일신문』 2019년 12월 2일 자. 그로부터 6년이 흘러 ‘포항의 노포 기행’ 연재가 진행되었다. 2021년부터 『경북매일신문』 지면을 통해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온 참여자들의 뜻이 모여 이 기획이 만들어졌다. 노포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지역의 문화,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개복치점, 열쇠점, 막걸리 양조장, 양복점, 제과점, 국수공장, 속옷가게, 중화요리점, 마크사 등 지역 곳곳에 있는 노포 아홉 곳을 다루었다. 물론 주목할 만한 다른 노포도 있다. 이를테면 1967년 개업한 로타리냉면은 오랜 세월 냉면의 깊은 맛을 선사해온 맛집으로 포항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다. 그 밖에 초원통닭, 시정당, 제일화공약품상사 등도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온 노포다. 이 노포의 이야기는 다른 기회를 통해 펼쳐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포항고 부지 기부 김춘생 창업주 ‘동성조선’ 3대 이어 전국서도 유명한 조선소로 발전 박일천 첫 민선시장과의 끈끈한 인연은 포스텍 설립 이끈 ‘선한 영향력’으로 발휘 포항고 대신동 부지를 기부한 동성조선 창업자 노포 외에도 포항의 기업 중에 3대째 이어온 기업이 있다. 중소형 조선소인 동성조선이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이름이 높은 동성조선은 1946년에 설립된 향도조선(向島造船)이 모체로 1955년에 지금의 상호로 변경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조선소를 일본이 패망하여 철수하자 그곳에서 일하던 대목장(大木匠) 김춘생이 인수해 향도조선을 설립한 것이다. 김춘생의 차남 김성호에 따르면, 조선소 인수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했던 김춘생은 지역 유지 김용주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러자 김용주는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고 김춘생에게 큰돈을 빌려주었다. 김용주의 통 큰 도움 덕분에 향도조선을 설립한 김춘생은 성실한 자세로 사업에 임해 사업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그 후 김춘생의 친구인 박일천 첫 민선 포항시장이 김춘생에게 당시 두호동에 있던 포항고등학교를 시내로 이전해야 하는데 김춘생 소유의 대신동 땅을 기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김춘생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포항고등학교는 1954년 9월 1일 대신동 신축 교사로 이전할 수 있었다. 지금 동성조선 사무실 벽에는 포항고등학교 교장과 기성회장 명의로 김춘생에게 수여한 감사장이 걸려 있다. 박일천은 뒷날 포항 4년제 대학 설립 유치 청원에 앞장섰으며, 이 청원은 포항공대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박일천 사후에 유족들이 유산을 포항공대 발전기금으로 기탁한 바 있다. 포항의 역사·문화기록 대장정에 도움 준 지역 원로들의 ‘안타까운 죽음’ 깊이 애도 지난 5년간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게 도와준 세 분의 별세 2021년에 발간된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1』을 시작으로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항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서 여러 분이 이 작업을 지켜보며 따듯한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 중 작년 12월에 별세한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잊을 수 없다. 손 관장은 필자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건만 귀한 사진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이른 타계를 인천 학계가 안타까워했는데 필자로서도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포항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고 손장원 관장의 명복을 빈다. 5년간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세 분이 별세했다.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2』(2022)에 나온 이봉식 선생은 향년 93세로 작년 3월에, 김두호 화백은 향년 89세로 올해 8월 작고했다. 『포항의 예술인』(2024)에 나온 문신구 영화감독은 향년 70세로 올해 5월 영면에 들었다. 이들의 부음을 들으며 이 작업의 의미와 무게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포항의 노포 기행’을 지켜본 문학평론가 최영호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가 감상평을 보내왔다. 그의 표현처럼 이 연재는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걸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넉 달간의 여정을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같을까 다를까? 눈에 보이는 것은 같지만 공간은 비어 있되 장소는 꽉 차 있다. 텅 빈 질그릇이 무엇인가 담긴 후부터 전혀 다른 것이 되듯 말이다. 그 질그릇의 ‘빈 중심’과 관계성이 질그릇의 새로운 본질을 창조한다. 하나의 공간이 장소로 재탄생하는 것은 우리와의 관계 때문이다. 포항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엔 애틋하고 친밀한 포항이 깃들어 있다. 이 연재는 포항 사람들이 관계 맺고 있는 장소로서의 포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계 바깥의 시간으로 축적된 포항 노포를 찾아가는 이 연재에는 우리가 잊을 뻔한 장소로서의 포항 가는 길이 산지사방으로 열려 있다.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걷고 싶다면 이 연재의 일상적 경이로움에 마음의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끝> 필 자 : 김도형 사 진 : 김 훈

2025-12-14

피부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가꾸어 주는 ‘동해 부인’

홍합서 분비되는 단백질 접착력 125㎏ 무게 들어 올릴 정도 강력 지금은 지중해 담치에 밀려 ‘귀물’ △ 토종홍합의 달큰한 맛이 일품인 홍합밥 울릉도 홍합밥이 인기 있는 것은 홍합 덕분이다. 울릉도 홍합밥에 들어가는 홍합은 요즘 흔한 지중해담치가 아니라 토종 홍합이다. 지중해담치보다 크고 살이 두텁고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진짜 우리 홍합이다. 지중해 담치는 토종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토종 홍합은 지역에 따라 합자, 합, 열합, 담치, 참담치, 담채, 섭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옛날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가꿔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고도 했다. 본래 우리 바다에는 토종 홍합들이 다수였는데 지금은 보기 드문 귀물이 되었다. 외국을 왕래하는 화물선의 밸러스트(Ballast)에 지중해 담치의 유생이 섞여 들어오면서 이제는 전 연안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다. 벨러스트란 배에 실은 화물의 양이 적어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안전을 위해 배 바닥에 싣는 물(평형수)이나 돌 등의 중량물을 의미한다. 우리 바다에는 토종 홍합과 지중해담치 외에도 비단담치, 털담치 등 13종 내외의 홍합류가 서식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합은 조개 살이 붉은 빛이라 홍합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상 암수에 따라 그 살 색이 다르다. 암홍합은 붉은색, 숫홍합은 흰색을 띤다. 암홍합이 맛이 더 뛰어나다. 홍합은 폴리페놀이라는 접착력 강한 단백질을 분비해 바위에 몸을 고정시켜 살면서 바닷물 속의 영양분을 걸러 먹는다. 홍합 하나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족사의 접착력은 무려 125kg의 무게를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하다. 울릉도 토종 홍합의 강력한 접착력이 거친 파도를 버티며 살아가게 만든다. 울릉도 홍합의 맛과 영양이 뛰어난 것은 그 강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귀한 특식인 홍합밥 뿐만 아니라 울릉도에는 부족한 곡물의 양을 늘리기 위해 산나물이나 해초를 넣어서 지어먹던 구황 밥도 많았다. 개척 시기 울릉도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준 나물답게 명이로 지은 밥도 있었다. 명이 밥은 명이 줄기를 썰어서 보리나 조, 감자 등의 곡식과 섞어 지어먹던 울릉도의 구황 음식이다. 명이 줄기는 삶으면 찐득찐득 해지기 때문에 명이 밥은 먹기에 편치 않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명이 밥은 양을 늘려 주린 속을 채우려는 고육지책으로 해 먹던 밥이다. 따개비라고도 불리는 삿갓조개 속살이나 우려낸 국물을 이용해 따개비밥·죽·칼국수·무침 요리 △ 대형 바다 말로 만든 대황밥과 따개비 밥 대황은 울릉도 바다의 대표적인 대형 바다 말이다. 과거 울릉도 사람들은 대황을 넣은 대황밥으로 굶주림을 면했을 정도로 고마운 음식이다. 대황은 바다에서 베어 갯바위에 널어 말린 뒤 마르면 짊어지고 와서 장작불을 때서 삶았다. 삶은 대황의 줄기는 빼고 잎만 썰어서 보리나 감자, 옥수수를 섞어서 밥을 한 것이 대황 밥이다. 울릉도에는 따개비밥 있다. 하지만 따개비라 부르는 것은 실상 진짜 따개비가 아니다. 삿갓조개다. 따개비밥도 정확한 명칭은 삿갓조개 밥이라 해야 맞다. 진짜 따개비는 굴등이라고도 하는데 바닷가 암초나 말뚝, 배 밑 등에 붙어서 고착생활을 한다. 몸은 산(山)자 모양이며 딱딱한 석회질 껍데기로 덮여 있다. 삿갓조개(bernique)는 배말이라고도 하며 바닷가 바위에서 고둥과 함께 사는 삿갓 모양의 조개다. 따개비는 갑각류이고 삿갓조개는 연체동물문 복족강 삿갓조개류(Patello gastropoda)에 속하는 조개다. 둘이 전혀 다른 종이다. 따개비는 고착 생물이고 삿갓조개는 움직이며 산다는 점도 큰 차이다. 그런데 울릉도 사람들은 이 삿갓조개를 따개비라 부르며 따개비밥, 따개비칼국수, 따개비죽, 따개비무침 등 다양한 음식들으로 만들어 먹었다. 여기서는 울릉도 표현대로 삿갓조개를 따개비로 칭한다. 따개비는 속살이나 우려낸 국물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채취해온 따개비는 깨끗이 씻고 껍질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한다. 따개비를 물에 넣고 껍질이 벌어질 정도로 삶는다. 속살은 건져낸 뒤 껍질만 남기고 물을 조금 더 넣어 다시 5시간 정도 푹 끓인다. 이렇게 끓인 따개비 물은 요리의 육수로 사용한다. 속살은 다양한 요리에 따라 활용한다. 따개비밥은 따개비 육수와 따개비 속살을 함께 넣고 지은 밥이다. 감자는 삶은 감자나 감자전이 대표적인 요리지만 감자 인절미, 감자 팥죽, 감자밥도 즐겨 먹던 울릉도 음식이다. 감자밥은 옥수수나, 보리 등 곡식에 감자를 넣고 해 먹었다. 이 또한 곡물이 부족한 울릉도에서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다. 옥수수 밥도 있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 보니 과거에는 옥수수도 귀한 곳이 울릉도였다. 그래서 옥수수밥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해 먹던 밥이다. 옥수수를 갈아서 감자를 넣고 지었다. 식량이 귀한 울릉도에서는 잔치에도 음식으로 부조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웃집에 결혼식 같은 잔치가 있으면 돈이 아니라 옥수수와 콩나물, 두부 등으로 부조를 대신했다. 쌀밥은 명절이나 제사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한 울릉도 이웃집에 결혼식 같은 잔치땐 옥수수·콩나물·두부로도 부조 △ 옥수수밥과 무밥으로 굶주림 면해 옥수수는 1500년경 폴란드인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고, 1700년대에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1766년에 편찬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옥수수의 한자식 표현인 ‘옥촉서(玉蜀黍)’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옥수수밥은 ‘강냉이밥’이라고도 부르는데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옥수수 알갱이로 밥을 짓는 방법과 옥수수 가루로 짓는 방법이다. 옥수수 알갱이로 밥을 지을 때는 옥수수를 물에 불려두었다가 맷돌에 갈아 겉껍질을 벗긴 후 절구로 찧어 작은 알갱이로 만든 뒤 쌀밥과 동일하게 짓는다. 옥수수 가루 밥을 할 때는 삶은 팥, 밤, 감자 등을 함께 넣거나 불린 쌀을 조금 넣기도 한다. 솥에 감자나 콩을 먼저 넣고 끓인 후 그 위에 옥수수 가루를 넣고 끓이면서 뜸을 들여 밥을 짓는다. 옥수수를 저장할 때는 맷돌에 갈아서 ‘옥수수쌀’로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다. 그래야 옥수수 밥을 해 먹기 편한 까닭이었다. 육지에서는 주로 봄철에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춘궁기 구황 음식을 먹었다. 초여름 보리가 나기 전까지 봄을 견뎌야 했기에 보릿고개란 말도 생겼다. 하지만 늘 음식이 부족했던 울릉도는 사시사철 구황 음식을 먹었다. 대표적인 구황 음식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 줬다는 명이밥, 대황밥, 무밥, 옥수수밥 등이다. 무밥은 보리, 옥수수 등에 무를 썰어 넣고 지은 밥이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무를 많이 넣으면 그나마 살림이 나은 집이라 했을 정도였다. 울릉도의 무밥은 무를 굵게 채 썰어 솥 밑에 깐 다음, 삶은 보리나 갈아서 물에 불린 옥수수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지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무가 “오장의 나쁜 기운을 씻어 체기를 가라앉히고 속을 따뜻하게 하여 설사도 다스리는 고마운 약재”라 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무의 생즙은 소화를 촉진하며 매운 맛은 열을 내려 속을 가라앉히고 해독 작용으로 독성을 풀며 숙취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섣달그믐날 먹는 생무는 산삼과 같고, 이때 무를 먹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가난할 때 먹던 구황 음식이었지만 무밥은 음식인 동시에 약이었던 셈이다. 울릉도 사람들은 밥이 곧 약이 되는 식약동원의 시대를 살았다. 절대 궁핍을 건너 풍요의 시대에 도달 했으나 잊지 말고 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끝>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