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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12번째 내한한 톰 아저씨 ‘남다른 한국사랑’

이번 주와 지난주엔 ‘미국 대통령’과 ‘미국 영화배우’가 인터넷 공간에서 화제를 모았다. 화제가 된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와 톰 크루즈. 인도의 한 결혼식장에선 ‘가문의 자존심’을 두고 다투던 신랑과 신부 측 하객들 사이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 어린 소년들이 숨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은 안타까움을 전했다. ‘한국 사랑’이 유별난 것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의 12번째 방한은 그와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톰 크루즈를 보러간 영화팬들은 그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고. 그날 밤에는 “서울 밤거리에서 톰 크루즈를 봤다”는 목격담도 쏟아졌다. 이른바 ‘오일 머니(oil money)’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카타르 왕실이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게 비행기를 선물한다는 소식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선물로 주는 비행기의 가격은 5600억원. 트럼프는 이 항공기를 개조해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일부에선 “그 정도면 선물이 아닌 뇌물”이란 비난도 나왔다. 인도의 한 결혼식장에선 화덕에 구운 빵을 서로 먼저 배식 받으려던 신랑과 신부 측 하객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 10대 청소년 2명이 사망했다. 경사스러운 자리에서 이처럼 황당한 살인사건이 생긴 건 가문의 자존심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도의 풍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상의 팬 서비스로 한국 관객 사로잡은 톰 크루즈 지난주. 할리우드 인기 배우 톰 크루즈가 2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았다. 이번이 12번째 방한. 그의 ‘한국 사랑’은 이미 많은 영화팬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톰 크루즈가 한국에 도착한 7일 밤엔 서울 마포구 공덕동 인근에서 “톰 크루즈를 봤다”는 목격담이 쏟아지면서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거길 가는 건데...”라며 아쉬움을 표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았다. 한국 영화 시장이 날로 성장하고 팽창하면서 미국과 유럽 배우들이 방한하는 건 이제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주목받을 사건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톰 크루즈처럼 한 사람이 12번을 거듭 같은 나라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이번 톰 크루즈 방한의 첫 번째 목적은 그의 신작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의 홍보다. 명품 블록버스터 시리즈로 자리 잡은 ‘미션 임파서블’은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액션영화를 선호하는 젊은 팬들이 많은 까닭이다. 대중과의 접촉을 가능하면 줄이는 통상의 할리우드 배우들과 달리 톰 크루즈의 ‘대면 팬 서비스’는 호쾌하고 따뜻하기로 이름이 높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소유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톰 크루즈는 30분 가까이 공항을 찾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 촬영에도 기꺼이 응했다는 후문이다. 세계적 스타의 매력적인 웃음에 사람들의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진 건 불문가지. 이날 그는 “찾는 나라마다 관광만 하지 않고 그 나라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한국 방문은 언제나 내 꿈 중 하나다. 그래서 12번이나 방한한 것 아니겠나”라는 말로 가뜩이나 높은 한국에서의 인기를 더 높였다고 한다. 방한할 때마다 서울 곳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톰 크루즈의 ‘배회 취미’는 이번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그날 밤 서울 마포구 공덕동 카페거리와 경의선 철길숲에 있던 영화팬들은 “톰 크루즈를 봤다. 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치킨을 먹더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즐거워했다. ▲“빵 하나 때문에”...죽음 부른 인도 결혼식장의 비극 “모두가 축하해줘야 할 결혼식에서 겨우 빵 한 조각 먼저 먹으려다 사람이 죽다니, 정말이지 세상엔 별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인도의 한 결혼식장에서 신랑과 신부 측 하객의 다툼으로 인해 청소년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 현지 매체가 관련 소식을 연일 보도하고 있다. 관련 뉴스가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자 한국 네티즌들도 혀를 차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인도 현지 언론에 의하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얼마 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작은 마을에서 결혼식이 있었다. 경사스러운 날임에도 신부 측 하객으로 온 10대 청소년들과 신랑의 친인척 사이에서 시비가 생겼다. 발단은 사소한 것이었다. 인도의 전통음식 중 하나인 ‘탄두리 로티(화덕에 구운 밀가루 빵)‘를 어느 쪽에서 먼저 배식 받아서 먹느냐를 놓고 다툼이 생긴 것. 인도의 결혼식은 밤늦게까지 화려하고 성대하게 이어진다. 자정쯤에 발생한 양측의 시비는 사람들의 중재로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문제는 신랑의 친척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신부 하객들을 쫓아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한다. 아직 미성년자인 신부 측 하객을 신랑의 친척들이 몽둥이와 쇠파이프 등으로 마구 때려 한 명은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고, 나머지 한 명도 치료를 받다가 숨진 것. 인도는 이른바 ‘가문의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경향이 아직 엄존한다. 신랑의 친인척들은 빵을 먼저 받으려는 신부 측 하객의 태도가 자신들 가문의 자존심을 해쳤다고 생각했기에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인도 경찰은 폭행에 가담한 13명의 용의자를 지목해 6명을 체포했고, 나머지 7명의 신랑 측 하객들을 찾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숨진 피해자의 아버지는 “어떻게 빵 하나 때문에 앞길이 창창한 소년을 죽이느냐”며 통곡했고, 한국 네티즌들 역시 “아무리 가문의 명예가 소중하다고 해도,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건 아닌데... 해도 너무했다”며 가해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는 스케일이 다르다?...5600억원 항공기 선물 받아 ‘하늘의 여왕’이라 불리는 비행기가 있다. 최첨단 기술로 구현한 성능과 화려한 기내 시설 모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갖췄기에 생긴 별칭이다. 그 항공기는 바로 ‘보잉 747-8’. 놀라지 마시라. 가격이 무려 4억 달러에 이른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5600억원에 가깝다. 이걸 선물로 받을 사람이 있어 세계적 화재다. 네티즌들은 “그게 대체 누구인가?”라며 궁금증을 드러내고 있다. 답부터 말하자면 보잉 747-8 항공기를 선물 받을 사람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걸 선물로 주는 건 석유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산유국 카타르 왕실이다. ABC방송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지난 11일 이 사실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부터 카타르를 포함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을 방문하게 된다. ‘항공기 선물’의 공식 발표는 그 기간 중에 이뤄지게 된다. 관련 소식을 접한 이들이 “어린 시절 장난감 비행기는 받아봤지만, 수천억 원의 진짜 항공기를 선물로 주는 사람이 있고, 그걸 받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부자 나라와 지구 위 최강국 대통령은 스케일부터가 다르구나”라는 놀라움을 드러내는 건 당연한 수순. 뉴욕타임스에 의하면 이 항공기는 미국 정부가 외국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값비싼 것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이 항공기를 카타르-미국 국방부와의 협의 후 개조해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할 계획이고, 퇴임 후엔 트럼프 대통령 도서관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5600억원짜리 선물이 오고가는 것이니 비판도 없을 수 없다. 미국의 야당인 민주당과 여러 시민단체는 “공적인 업무와 사적인 비즈니스 사이에 이해충돌 문제가 있고, 도덕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어쨌건 일거수일투족이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고 있으니, 도널드 트럼프가 좋건 싫건 ‘문제적 인물’이긴 한 모양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5-13

군사 수비와 자연의 공존 ‘푸른 초병’의 대활약

인천 강화도는 지리적 특성상 고려부터 현대까지 외국의 침입에 대항하여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던 전략적 요충지로 주목받는다. 특히 해안가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드물게 군사 요충지로서 조성된 국방 수비를 위한 돈대가 설치되었다. 돈대(墩臺)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 시설이다. 1627년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 때는 강화 연미정에서 굴욕적인 ‘형제의 맹약’이 있었고, 1636년 청나라가 침략한 병자호란 때는 돈대를 거점으로 항거했다. 1866년 천주교도 처형 사건을 구실로 프랑스가 침입한 병인양요, 1871년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이 침략한 신미양요, 1875년 일본이 통상을 강요하며 운요호를 보내 위협한 강화도 조약 등, 강화도 해안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었다. 지금은 이 돈대들을 복원하여 국난 극복의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강화전쟁박물관·화도면 사기리 소재 400살 수령 천연기념물 제78호·79호 몽골·후금 침입 때 왕의 피난처 방어 울타리로 둘러 군사적 열세 만회 도움 우리는 강화도 월곶돈대 연미정을 보고 갑곶돈대로 갔다. 강화도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주제로 각종 전쟁 관련 유물을 전시한 강화전쟁박물관이 있었다. 그 건물 오른쪽 1016번지 경사면에,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된 탱자나무 노거수가 살고 있었다. 나이 400살, 키 4.2m, 뿌리 부분 둘레는 2.12m이다. 또 다른 한 그루는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135-10번지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나무도 나이 400살, 키 3.8m, 몸 둘레 2.2m이다. 몽골과 후금의 침입으로 왕이 난을 피해 머물렀던 곳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을 쌓고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접근을 어렵게 했다고 한다. 그 당시 심어진 나무 중 하나로 추정되며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나무이다. 그리고 생태학적으로 인공적이긴 하지만, 탱자나무가 살아갈 수 있는 북방 한계선에 위치해 천연기념물 반열에 오른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 해안가에 가시가 날카로운 탱자나무를 심어 적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나라에서도 탱자나무 종자를 강화도에 보내주고, 그 생육 상태를 보고받을 만큼 탱자나무 울타리 조성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탱자나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키웠다. 연약한 가지와 여린 잎을 먹으려는 동물들로부터 자기 몸을 지키려는 본능이 오랜 시간에 걸쳐 날카로운 가시로 진화한 것이다. 그 가시는 단단하고 냉정했지만, 그 속엔 생명을 지키려는 절박한 의지가 숨어 있다. 탱자나무는 국방의 초병이자 형벌의 교도관으로 쓰였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나무의 방어 전략을 사람은 지혜롭게 빌려와 사람 대신 써온 셈이다. 이를 우리 조상들은 나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국방의 초병으로 활용한 지혜에서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보면 강화도 천연기념물 탱자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이 아닌 자연의 벽으로 활용된 생명체, 말 그대로 ‘푸른 초병’이었다. 고려 고종이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강화도로 천도했고, 조선 인조도 정묘호란을 피해 이곳으로 물러났을 만큼 강화도는 수세적 방어의 마지막 보루였다. 이때 쌓은 성벽 바깥에는 침입자의 접근을 막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탱자나무를 심었다. 군사의 수적 열세를 탱자나무로 만회할 수 있게 했으니, 그 당시에는 얼마나 고마운 나무였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탱자나무는 튼튼한 줄기와 뾰족한 가시로 인해 방어용 울타리로 적합했으며,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서도 강인하게 뿌리내린다. 지금 강화전쟁박물관 경내에 서 있는 탱자나무는 그러한 과거의 생생한 흔적 중 하나로, 당시 심어진 나무의 후손이거나 그 자체일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단순한 식물 보존을 넘어, 자연과 역사, 생명과 국가 방어의 교차점에 서 있는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 이 오래된 탱자나무는 여전히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침략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 가시는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나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교훈을 품은 산증인이다. 그 가시 하나하나엔 역사 앞에 선 민초의 두려움, 인내, 그리고 결의가 서려 있다. 인간은 탱자나무의 의지를 보았다. 그리고 그 가시의 성질을 자기 삶의 테두리로 옮겨왔다. 위리안치를 둘러싼 탱자나무만 보더라도, 죄인을 가두는 울타리이자, 권력과 질서의 상징으로 세웠다. 도망을 막기 위한 벽이 되었고, 통제와 경계의 선이 되었다. 이리하여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가시는 어느새 타인을 가두는 도구로 변했다. 그러나 인간은 탱자나무를 단지 도구로만 쓴 것은 아니다. 그 가시를 보며 자기 삶의 경계와 상처를 돌아보았고, 가시 넘어 피는 하얀 꽃을 통해 연민과 반성의 눈빛을 배웠다. 자연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인간의 손에 쥐어질 때, 새로운 의미를 얻은 것이다. 탱자나무는 여전히 바람 속에 날을 세우고 있지만, 그 가시는 때로 방어의 울타리였고, 때로는 고요한 교훈이 되었다. 자연의 생존이 인간의 통제로 이어졌고, 그 통제 속에서 다시 인간은 자연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탱자나무와 인간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가시를 세우되, 결국 서로를 비추는 경계가 되었다. 몸에 가시를 지닌 탱자나무처럼 우리 또한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무기 하나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인천에서 1박 2일간 문경회 모임을 마친 뒤, 이왕 이곳까지 온 김에 강화도 천연기념물 탱자나무 노거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그는 시중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후 10여 년 동안 다시 금융업에 몸담다가, 작년에 완전히 현업에서 물러나 지금은 여유로운 황혼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절친이다. 강화도에 여러 번 다녀온 경험이 있음에도 이번 탐방을 위해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다시 꼼꼼히 공부해, 마치 문화해설사처럼 세심하고 성의 있게 나를 안내해 주었다. 그가 “많은 곳을 안내해 주려고 공부하여 수첩에 기록까지 했는데, 시간이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마음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도 수많은 자료를 준비하지만, 정작 수업에 활용되는 것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많은 자료를 찾고 공부하였지만, 정작 시험 출제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을 때 느꼈던 허전함이 아니겠느냐며 응답했다. 무엇보다 초행길에 함께해준 친구의 따뜻한 동행에 깊이 감사하며, 탱자나무가 세운 침묵의 울타리처럼 그의 우정 또한 말없이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벽이 되어주었음을 다시금 느끼면서, 아내와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대구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강화도의 외교사, 그리고 조선이 남긴 교훈 조선 후기, 강화도는 병인양요(1866), 신미양요(1871), 운요호 사건(1875) 등 굵직한 외세의 침략이 이곳을 무대로 벌어졌다. 프랑스와 미국의 군사적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통해 조선을 자극하고 결국 1876년 강화도조약이라는 불평등한 문을 열게 했다. 강화도는 한강 입구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고, 조선의 쇄국정책이 외세의 포화 앞에서 시험받은 곳이었다. 그 대응은 고립의 끝자락에서 이루어진 외교적 굴복이었고, 이는 곧 조선이 반식민지로 향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이 작은 강화도 섬에서 벌어진 외교사는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변화를 거부한 대가, 그리고 닫힌 문이 결국 열리게 된 방식이 과연 최선이었는지를.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5-07

신라 왕조 영산 ‘남산’, 발끝마다 오랜 사유가 몸을 적신다

■영산, 응축된 세계 경주 남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다. 신라인들이 품었던 한 시대의 삶이 응축된 무대다. 신라의 궁궐 월성 남녘에 우뚝 솟은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은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축과도 같다. 두 봉우리 사이에는 깊게 패인 마흔 개의 골짜기가 흐른다. 신라인들은 산 곳곳에 자연과 인간의 질서를 함께 새겨 넣었다. 그래서인지 남산을 걷다 보면 발끝마다 스미는 오래된 사유가 몸을 적시고, 산 위를 흐르는 바람조차 천 년 전 숨결처럼 스며든다. 남산은 곧 신라 왕조의 영산이자, 불교적 우주의 상징이었다. 곳곳에 신라인의 손길로 빚어진 석불과 석탑들이 무심한 듯 고요히 서 있다. 불상과 탑의 얼굴과 몸짓에서 당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과 종교적 열망이 읽힌다. 신라인들은 돌 위에 신의 세계를 새겨 넣었고, 그 돌들은 다시금 영원을 갈망한 신라인의 마음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한다. 남산은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전 인류가 공통으로 보존하고 후손에게 전수해야 할 세계적 가치를 지닌 까닭이다. 자연과 인간의 정신이 서로 겹치고 어우러진, 보편적 가치를 담은 위대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남산은 어느 골짜기로 오르든 신라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다. 그중 가장 큰 골짜기는 용장골이다. 길이만도 3㎞에 이른다. 신라시대 용장사(茸長寺)가 있었기 때문에 ‘용장골’이라 불리고, 아직도 탑이 있어 ‘탑상골’로도 불린다. 발길 닿고 눈길 머무는 곳마다 석불이요, 석탑이요, 절터다. 이 골짜기만 해도 용장사 외에 스무 곳이 넘는 절터가 산재해 있다. 불교가 융성하던 시절, 하루도 빠짐없이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울려 퍼졌을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에서 서라벌을 “사사성장(寺寺星張) 탑탑안행(塔塔雁行)”이라 표현했다. 절과 절은 하늘의 별처럼 펼쳐져 있고, 탑들은 기러기처럼 일렬로 늘어서 있다는 말이다. 그만큼 불교가 국가의 정신을 이루던 시대였다. ■삼릉, 진달래 아래 깨어나는 왕들의 능 사월 초순, 그간 다른 골짜기로 금오봉에 올랐으나 오늘은 삼릉솔숲 길로 들어선다. 이른 아침, 솔향과 꽃 향이 객을 맞는다. 굽이진 산자락마다 무리 지어 핀 진달래가 소박한 인사를 건넨다. 하늘 높이 곧게 뻗은 소나무는 연분홍 진달래와 조화를 이루며,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어우러진 균형을 보여준다. 솔숲 사이로 봄볕이 쏟아져 내린다. 빛은 소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솔잎과 진달래 꽃잎 위에 내려앉아 더욱 눈부신 환영을 그려낸다. 빛의 무늬에는 천 년 전 신라인들의 이상과 꿈이 얼비친다. 솔숲 길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풍경은 세 왕의 무덤이 자아내는 능선의 유연한 곡선이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과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능이다. 봉우리처럼 완만하게 흘러내린 곡선은 신라인들이 꿈꾸었던 완전함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삼릉은 신라의 오래된 흔적이면서도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잃지 않는다. 능의 곡선은 살아 있는 자의 눈길을 머물게 하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모호하게 흐린다. 바람이 불면 마치 왕들의 혼백이 잠시 깨어나 솔숲을 거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삼릉은 죽음의 장소이기보다는 삶을 노래하는 찬가처럼 천 년을 이어왔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야 한참 머물다 왕들의 혼백을 만나 한바탕 떠들썩하게 놀고 싶지만 갈 길이 높고 멀다. 왕들의 능을 뒤로하고, 남산 더 깊숙이 몸을 들인다. ■중생을 기다리는 부처 불두 없는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커다란 바위에 마애관음보살상이 있다. 바위의 윗부분을 쪼아내어 조각한 보살상은 남산 유적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정적을 품고 있다. 가슴에 손을 모으고 정병을 든 관음은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헉헉대며 오르는 중생들을 향해 머금은 미소는 위로도 계시도 아닌, 존재 자체로 전하는 평온이다. 그 앞에 서면 문득 깨닫는다. 이곳은 신라의 산이지만,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산이라는 것을. 세상은 누구에게나 위태롭다. 그러나 그 위태로움을 견디며 한 발 한 발 오르는 일이 곧 삶이라는걸, 바위 위의 부처는 아무 말 없이 가르치고 있다. 침묵 속에서 전하는 가르침은 요란하지 않아 오히려 더 깊고 단단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길을 오른다. 길은 가파르고 숨은 거칠다. 땅만 보며 걷는다. 위를 올려다볼 겨를조차 없다. 등에는 땀이 배고, 다리는 뻐근하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다. 남산의 길은, 그 자체로 수행이다. ■침묵의 기도, 선각육존불 앞에서 얼마쯤 더 올랐을까. 바위가 겹겹이 둘린 산기슭 아래, 기도하는 두 여승이 보인다. 바위 면에 새겨진 불상 앞에 합장한 여승은 미동조차 없다. 햇살마저 숨을 죽인 듯한 이 장면은, 봄날 남산에서 마주한 가장 신성한 풍경이다. 나도 흉내 내듯 손을 모은다. 순간,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열린다. 거룩함 속에서 나 또한 작아지고 맑아진다. 두 바위 면에 새겨진 선각육존불과 마주한다. 불상들은 통일신라 시대의 숨결이 남은 선각 마애불로, 음각의 얇은 선으로만 조각되었다. 조각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깝다. 거친 바위 위에 그어낸 선들이 부처의 얼굴과 손, 그리고 자비를 품은 보살의 형상을 이룬다. 칼끝으로 긋듯 새긴 선 하나하나가 천 년의 사유처럼 느껴진다. 육존불은 좌우의 바위 면에 나뉘어 있다. 한쪽에는 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앉아 있고, 다른 한쪽에도 마찬가지로 삼존상이 자리한다. 모두 부드러운 음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정갈한 자세와 흐트러짐 없는 배치는 절도의 미학을 보여준다. 수천 번 비바람을 맞았을 암벽 위에 아직도 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바람에 깎이고 빛에 씻겨도 사라지지 않은 선 하나가 이토록 오랜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은 단지 조형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기도와 사유가 돌 속에 새겨진 증거다. ■석조여래좌상, 시간을 견딘 자태 여승들이 앞서 걷는다. 단정하고 고요한 발길이다. 진달래가 흐드러진 산길을 따라 조용히 돌계단을 밟고 오르는 모습이 마치 오래된 의식처럼 느껴진다. 급함이 없다. 조용하고 단단한 걸음이 시간의 결을 따라 흐르는 것이다. 나도 말없이 뒤를 따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드니 누군가 내려다본다. 남산삼릉계석조여래좌상이다. 삼릉길에서 마주했던 부처들과는 다르다. 몸의 윤곽이 온전하고, 둥근 광배와 단단한 대좌까지 완전한 형상을 갖추고 있다. 긴 세월을 버텨낸 돌의 표면에는 조금의 균열도 없이 고요한 품격이 스며 있다. 견딘 시간만큼 더욱 단단해진 부처의 자태 앞에, 나도 모르게 손을 모은다.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 자리에 부처가 왜 놓였는지 알 것 같다. 탑도 절도 사라졌지만, 석불은 홀로 남아 바람과 계절과 사람을 품는다. 상처 없이 남은 것이 아니라, 상처를 견뎌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의 미소는 더욱 단단하고 따뜻하다. ““어디서 오셨어요? 보살님” 대구에서 왔다고 하자, 이른 시간인데 부지런도 하다며 웃는다. 말씨는 단정하고 온화하고,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럽다. 인사는 바람처럼 시작되어 바람처럼 스친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설처럼, 우리는 억겁의 전생을 돌아 이렇게 스치고 흩어질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승들은 여기서 내려간다고 했고, 나는 용장사터까지 간다고 하니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길을 달리했다. 짧은 인사에 모든 작별의 정중함이 담겨 있었다. ■금오봉, 신화의 경계에 서다 상선암을 지나며, 돌마다 스며든 부처의 흔적을 하나씩 지나쳐 왔다. 바위에 기대어 선 불상은 바람을 맞고, 앉은 보살은 진달래 꽃잎을 품은 채 산허리를 내려다본다. 부처들을 만나며 오르다 보니 어느덧 금오봉이다. 바람이 분다. 맑고 높다. 서라벌 들판이 한눈에 펼쳐진다. 오래전 왕들이 다스렸던 땅. 그 역사의 기운이 바람에 묻어온다. 햇살은 찬란하고, 꽃잎은 빛난다. 진달래는 금오봉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언 땅을 뚫고 피어난 꽃은 연약한 듯하지만 불굴의 생을 품고 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바람에 날리는 꽃잎은 삶의 순간들이고, 그 길을 걷는 나 또한 어느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길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다. 한 시대의 정신을 따라 걷는 일이며, 꽃잎처럼 흩어진 기억과 만나는 여정이다. 여기서부터는 능선을 걸어 조금씩 하행에 이른다. 곧 용장사터에 이를 것이다. 발밑에 깔린 진달래 꽃길을 밟으며 문득 김시습이 떠오른다. 시습은 금오산실에서 ‘금오신화’를 지었다. 세속과 이상,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이야기들을 떠올리고 썼다. 지금 이 길 또한 현실과 전설이 겹쳐 흐른다. 나는 어느 봄의 산길 위에서, 신라의 혼백들과 눈을 맞추며 오래된 신화 속을 걷는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산과 꽃과 이야기가 뒤섞인 이 길 위에서, 나는 걷는 이가 아닌 ‘살아 있는 한편의 서사’가 된다. /박시윤 답사기행에세이 작가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과 용장사 이야기는 <하> 편에 이어집니다.

2025-05-07

먹는대로 수명 줄어든다… ‘초가공식품의 역습’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장인을 비호하던 배우 이승기가 최근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인정하며, ‘위법 행위는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요지의 입장문을 발표한 것. 또한 이승기는 ‘처가와 인연을 끊겠다’는 뜻도 전했다. 이에 네티즌들의 설왕설래가 뜨거웠다. 라면과 과자 등 초가공식품이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이 끼쳐 조기 사망의 위험성을 높인다는 외신 보도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을사오적 이완용의 증손자가 이완용이 소유했던 땅을 판 돈 30억원을 가지고 캐나다로 이주했다는 뉴스는 남녀노소 불문 국민들의 분노를 불렀다. 스페인 관광지에서 소매치기를 혼내준 중국인 사진작가의 사연도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논란 휩싸인 배우 이승기 “처가와 인연 끊겠다” 한국 사회에서 연예인과 관련된 뉴스는 항상 네티즌들의 관심을 끈다. 그게 대단히 중차대한 사건이건 별 것 아닌 사소한 것이건. 지난 주 인터넷 상에선 가수이자 배우로 활동해온 이승기가 처가와 절연했다는 소식이 화제를 모았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최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이승기의 장인 L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L씨 등 4명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L씨는 이승기의 장모인 배우 견미리의 배우자. 앞서 검찰은 한 기업의 주가를 띄우고 200억원대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일당 9명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이승기의 장인은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기는 견미리의 딸인 이다인과 결혼을 앞둔 즈음 처가를 비호하는 말로 구설과 논란에 휩싸였다. “(장인이 될 사람이) 주가조작으로 260억 원을 횡령하고 30만 명의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건 명백한 오보”라는 주장을 한 것. 하지만, 지난달 29일 이승기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날 발표된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장인어른과 관련한 사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경솔하게 발언했던 점에 깊이 반성하고 있다. 위법 행위에 대해 반드시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태도를 바꾼 것. 이에 덧붙여 “이번 사건으로 가족 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훼손됐고, 우리 부부는 오랜 고민 끝에 처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이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자기의 잘못도 아닌데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승기가 측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무조건 처가 편을 들었던 이승기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없지 않다”고 꼬집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나도 라면과 햄, 과자와 냉동식품을 줄여야겠군” “가볍게 한 끼 때울 수 있어 라면이나 과자를 자주 먹는데, 오늘 의료계의 경고를 듣고 나니 식습관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초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의 섭취량이 많을수록 조기 사망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초가공식품’이란 천연식품에서 추출되거나 기타 유기 화합물로부터 합성돼 산업적으로 제조된 식용물질을 뜻한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과자와 라면, 햄과 탄산음료 등이 모두 초가공식품에 해당된다. 최근 ‘미국 예방 의학 저널’에 게재된 브라질 오스왈도 크루즈재단의 에두아르도 닐슨 박사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의 식단에서 초가공식품의 비율이 10% 증가할 때마다 조기 사망의 위험성도 3%가량 더불어 높아진다고 한다. 연구팀의 조사 대상이 된 국가 중 초가공식품이 섭취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였다. 콜롬비아인들의 전체 칼로리 섭취량 중 초가공식품의 비율은 15%. 반면 미국은 54%였고, 영국은 53%로 콜롬비아보다 훨씬 높았다. 그래서일까? 콜롬비아는 초가공식품 섭취로 인한 조기 사망 비율은 4% 정도에 그쳤지만, 미국과 영국은 14% 내외로 크게 높았다. 추정에 의하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초가공식품 섭취로 인한 조기 사망자는 12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찍 죽음에 이를 가능성만 높아지는 게 아니다. “초가공식품은 심장 질환과 비만, 당뇨병, 우울증 등 32가지 이상의 건강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부연이다. 관련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당장 먹기에 편하다고 가공된 햄이나 청량음료를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일상적으로 즐겨왔는데, 이제부터라도 그것들을 줄여야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조심스런 태도를 드러냈다. ▲위트 있는 젊은 네티즌 “이완용 증손자가 이완용했네” 부정할 수 없다. 치욕과 공분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완용이란 이름을 기억에 새길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역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완용(1858~1926)은 ‘나라의 수치(國恥)’라고 할 을사늑약, 정미7조약, 한일병탄 체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기에 ‘을사오적’로 불리는 대표적 친일 인사다. 그로부터 100년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흐른 시간과는 무관하게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를 “나라 팔아먹은 악질 관료”라고 부른다. 후손들로선 부끄러울 수밖에 없을 터. 최근 그의 후손 중 한 명에 관한 끌탕 부를 뉴스 하나가 네티즌들의 분노를 야기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사연이다. 이완용의 증손자가 서울 북아현동 인근 땅을 매각한 후 캐나다로 이주했다는 사실이 늦게 알려졌다. 그 땅은 이완용의 소유였지만, 정부가 친일행위를 통해 축적한 재산이라는 이유로 환수했었다. 하지만, 증손자는 국가를 상대로 ‘내 증조부의 땅을 돌려달라’며 토지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을 이겨 결국 땅을 돌려받았다. 해당 땅은 2354㎡(712평)로 3.3㎡당 450만원 정도에 매각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대략적 매매가는 30억원. 이완용의 증손자는 그 돈을 가지고 증조부를 손가락질 하는 한국 땅을 떠난 것이다. 향후 이 땅은 재개발을 거쳐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가슴 답답해지는 이 소식을 접한 중년 이상의 세대들은 “매국의 핏줄은 어쩔 수가 없구나. 제대로 된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이런 분통 터질 일을 만들었다”고 질타했고, 젊은 네티즌은 “이완용의 증손자가 이완용 했네”라며 조롱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술 고수’ 몰라봤다가 혼쭐난 스페인 소매치기 “동양인들은 조그맣지만 다들 싸움을 잘한다. 모두가 쿵후나 태권도, 가라테를 수련하는 것인가?” SNS에서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속 시원하게 만든 영상 하나가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영상에 제목을 붙이자면 ‘중국 무술 고수를 몰라보고 까불다가 큰코다친 스페인 소매치기’쯤이 될까. 화제가 된 영상은 이런 내용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유명 관광지. 동양인 사내 한 명이 자기보다 덩치가 큰 서양인의 목을 뒤에서 조르고 있다. 격투기에서 사용되는 초크(조르기) 기술이다. 서양인은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동양인은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장면을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그 일대 관광객 수백 명이 관람(?)했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동양인은 중국인 사진작가, 서양인은 여행자를 대상으로 물건을 훔치는 스페인 소매치기였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소매치기를 체포하자 주변에선 박수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날 중국인 사진작가는 의도치 않게 남의 물건을 탐내는 도둑을 혼쭐내준 정의의 사도가 되는 체험을 했다. 이처럼 흥미진진한 영상을 본 네티즌은 며칠 사이 400만 명에 육박했다. 거기에 더해 수많은 댓글도 달렸다. “관광지 좀도둑은 여행의 즐거움을 망친다. 그런 사람을 혼내줬으니 내 속이 다 시원하다” “덩치가 작다고 동양인에게 시비를 걸었다간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5-06

수몰 위기 극복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자연 보호 상징으로

세상 사람이 “자연을 사랑하고 나무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를 실천한 사례 중에 세계적으로 모범이 될 우수한 사례가 있다. 바로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번지 외 8필지에 살아 있는 용계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상식(上植) 사업이다. 안동 임하댐 건설사업으로 용계리 초등학교 교정에서 살아가고 있는 은행나무가 수몰 위기에 처했다. 700여 년을 주민과 함께 한자리에서 묵묵히 살아온 은행나무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쳤다. 아무리 거대하고 오래 살아온 나무지만, 인간들이 벌이는 정부의 사업에 어찌할 도리도 없이 속수무책이었다. 평소에는 마을의 안녕과 평화, 풍년을 위하여 은행나무를 수호신으로 모시던 마을 사람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모두가 나무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야 꿀떡 같았으나 주민들이 이식할 그 많은 돈을 구할 수도 없고 구하여 옮긴다 해도 꼭 산다는 법도 없는 일이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주민과 안동시, 경상북도는 한마음으로 십수 억 원의 돈을 마련하여 현재 위치에서 15m 높이의 공중으로 부양하는 상식사업을 추진하여 성공하였다. 수령 760살에 키 37m·몸 둘레 15m 우리나라에서 가장 덩치가 큰 나무 안녕·풍년 기원… 마을 수호신 역할 임하댐 건설로 물에 잠길 위기 직면 道·市·주민 한마음으로 십수 억 마련 15m 공중 부양 상식사업 추진 성공 안동 천연기념물 용계 은행나무는 조선 선조(宣祖) 때 훈련대장(訓鍊大將)을 역임한 송암(松巖) 탁순창(卓順昌)이 임진왜란이 끝나고 이곳에 낙향하여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은행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친목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1966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175호 문화재로 주소 변동 없이 공중 부양하여 현재까지 30여 년을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의 나이는 1966년도 천연기념물 지정 당시 700살이라 하였으니, 지금은 760살이 되는 셈이다. 키 37m로 용문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몸 둘레는 15m로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덩치가 큰 나무이다. 그리고 살면서 공중 부양하여 살아가는 나무는 세계 최초로 기록되어 영원히 그 타이틀을 간직할 것이다. 은행나무는 화석식물로도 불리며, 행자목(杏子木), 공손수(公孫樹), 압각수(鴨脚樹)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용계 은행나무는 다양한 이름만큼이나 그에 붙어서 내려오는 전설 또한 다양하다. 은행나무를 심을 당시부터 주민들은 나무 아래 단(壇)을 만들고 제사를 지내는 등나무를 마을 수호신으로 여겼다. 그후 ‘행계(杏契)를 조직하여 나무를 보호하고 주민들의 친목을 도모했다. 그러고 보면 탄생할 때부터 특별하게 대접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나무를 중심으로 마을주민들이 뭉치고 단합하면서 마을의 발전과 평화를 나무에 기원하였다. 이렇게 나무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생명 존중 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은행나무는 나무를 뛰어넘어 마을의 구심점으로서 오늘날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그때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 한다고 하지만, 그 우람하고 튼튼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으로 마음이 안정되고 위로를 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음은 무엇 때문일까.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나와 같이 사람들이 나무를 보고 기도하고 있음이 그를 증명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빠졌을 때 이곳 출신인 석암 김도화는 영남지방 안동 병영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의병대를 조직하였으며, 이 은행나무에 붉은 깃발을 세워 북을 치면서 의병을 모집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의령의 곽재우 의병대장 역시 마을의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치면서 의병을 소집했다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나무는 그 위력과 상징성을 알 수 있다. 나무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징병장이나 훈련장의 역할까지 대신했을 것이다. 또한 용계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그 예로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합병될 때, 그리고 6.25 전쟁 당시 이 은행나무가 울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험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를 올리고 있음은 물론 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함께 소원을 기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음은 나무에 대한 경외심의 발동이 아닐까 싶다. 1901년에 은행나무를 보호하고 송암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행정계(杏亭契)가 조직되었다. 안동 관내외 38문 중 480인이 참여한 이 계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는 도산서원 원장과 호계서원 수임을 역임한 지려 김상락(金相洛), 안기 현감 류치호(柳致浩), 석암 김도화(拓巖 金道和)와 탁순창의 후손들로 그 뜻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되어 행정계안(杏亭契案), 송암공약사(松巖公略史), 송암계안(松巖契案), 임원록(任員錄), 행정유계문록(杏亭儒契文錄) 등의 기록물이 전하여 오고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휘동(전 안동시장) 박사는 안동시장 재임 때에 용계 은행나무에서 채취한 종자 2000개를 받아 안동시 직영 양묘장에서 키운 후 시민에게 분양하였다. 이곳에도 몇 그루를 심어 용계 은행나무 제 2의 번성기를 기념하는 식수비를 2007년 4월 5일 세워놓았다. 김휘동(金暉東) 박사는 자는 광서(光瑞), 호는 송암(松巖)으로 대통령비서실, 중앙부처, 경북도청 등 중앙과 지방에 근무한 사람으로 본향은 안동김씨이다. 안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특히 나무 사랑, 노거수 보호에 남달리 관심이 많아 관련 글을 신문에 기고하는 등 실천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안동 소산마을을 생태마을로 조성한 장본인이다. 언젠가는 이 나무가 생명을 마감하겠지만, 그 후손 묘목들이 오랜 역사를 이어가며 우리 조상들의 나무사랑 실천을 기리는 모범 사례로 길이 남기를 희망해 본다. 은행나무 상식(上植) 사업은… 위치 :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744 외 8필지, 면적: 3372㎡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상세 사유 : 임하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신목(神木) 및 천연기념물 보존 관리 공사 기간 : 1990년 11월 6일 ~ 1994년 10월 8일 (4년) 공사비 : 1,985,500천원 시공자 : ㈜대지개발 대표 이사 이철호 -내용 상식 높이 : 원 위치에서 15m 성토 상식 방법 : 특허공법인 요철 뿌리돌림 및 생명 토공법 사용, HB 공법 사용 -연도별 공사 내용 1차년도 : 1990년 11월 6일 – 1991년 1월 30일 뿌리돌림, 가지치기, 약제살포, 작업대 설치 2차년도 : 1991년 7월 10일 – 1992년 2월 15일 차수벽 설치. 방풍대 설치, 제방 축조 3차년도 : 1992년 3월 5일 – 1993년 2월 19일 겹봉짜기, 상식용 철골 제작, 상식, 관수시설 설치 4차년도 : 1993년 9월 7일 – 1994년 3월 8일 방풍 및 조경수목 식재, 관리사 신축 마무리 : 1994년 9월 – 1994년 10월 18일 주변 정리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4-30

호기심 많고 기품과 절도 넘치는 동경이… 본능은 사냥개

■살갑지만 본능은 사냥개의 후예 동경이를 마주한 순간이 선명하다. 녀석들과 처음 만난 곳은 경주개 동경이보존협회 개방형 마당 한가운데다. 공격성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혹여 달려들지는 않을까, 잔뜩 긴장하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짧은 꼬리·선한 눈망울·예민한 후각 순하지만 단단한 내면의 전통 사냥개 잘 짖지않고 차분해 ‘바보 개’라 불려 ‘천연기념물’ 경주시 대표 토종개로 신라시대 역사 함께한 충직한 성품 현재 약 530마리 지역 곳곳서 보호 희고 까만 털이 햇살에 반짝인다. 나를 보자 녀석들이 일제히 달려온다. 낯을 가릴 거라는 말,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댈 거라는 상상은 무의미하다. 녀석들은 마치 오랜 친구를 알아보듯 주저 없이 달려왔고, ‘물지 않을 거야’라는 무언의 눈빛을 건넨다. 믿음이 생긴 걸까. 나도 모르게 몸을 낮추어 손을 먼저 내민다. 그런데 동경이는 내게 코를 먼저 들이민다. 씰룩씰룩 냄새를 맡더니 잔뜩 긴장한 내게 혀를 쑤욱 내민다. 순식간에 내 얼굴을 핥은 거다. 미끄덩하고 축축한 녀석의 침이 얼굴에 묻었다. ‘앗!’ 그러나 따뜻하다. 살아있는 날것의 따뜻함이다. 녀석은 사진을 찍으려는 나를 방해할 만큼 격한 반가움을 표현한다. 짧디짧은 꼬리를 힘껏 흔들며 말이다. 꼬리가 까딱까딱 움직일 때마다 환한 감정 하나가 함께 전해지는 듯하다. 동경이는 쉽게 흥분하지 않고, 잘 짖지도 않는다. 과거에는 이런 성격 때문에 ‘바보 개’라 불리기도 했다. 낯선 사람에게 경계하다가도 금세 마음을 여니, 순하다는 이유로 얕잡아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동경이만의 품성이자 장점이다. 무던하고 착한 성정은 수천 년 이어진 특별한 유산이다. 하지만 동경이의 태생은 어디까지나 사냥개다. 순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내는 제법 단단하다. 짧은 꼬리와 선한 눈망울에는 오랜 세월 축적된 뛰어난 후각과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사냥개의 피가 흐른다. 사냥감으로 인식되면 순한 태도는 단박에 돌변한다. 새끼 때는 겁 없이 성견에게 덤비다 다치기도 한다. 개들 사이에서 흔히 보이는 ‘배를 뒤집는 항복의 제스처’를 잘 하지 않는다. 우열을 가리는 싸움은 치열하지만, 반면 서열이 정해지면 더는 다투지 않는 깔끔한 성격이기도 하다. 동경이는 단지 ‘순한 개’, ‘희귀한 개’만이 아니다. 유순함과 야성, 귀여움과 기품을 함께 품은 매력적인 개다. 내가 만난 동경이는 온순함 그 자체다. 손을 내밀자 머리를 비비고, 엉덩이를 들이밀며 스스럼없이 다가온다. 이윽고 나의 무릎에 턱을 얹고는 조용히 눈을 감기도 하고, 때론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라도 듣겠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주인을 따라 죽은 동경이 조선 성종 때 의로운 동경이 이야기가 전해진다. 문신 이승소(李承召)의 문집 ‘삼탄집(三灘集)’에는 ‘의구(義狗)’ 동경이에 관한 전설이 실려 있다. 지금의 충북 괴산군 연풍면, 험한 고갯마루 길가에는 쌍분(雙墳)이 있다고 전해진다. 하나는 주인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곁을 지키다 생을 다한 개의 무덤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경주, 곧 동경의 한 아전이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개와 함께 한양으로 길을 나섰다. 고개를 넘고 산을 지나는 고된 여정 끝에, 주인은 연풍 고개에서 병을 얻어 숨졌다. 곁을 따르던 개는 주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홀로 경주 집으로 달려갔다. 개다 밤낮으로 짖자 이상함을 느낀 아들이 개를 따라나섰고, 연풍 고개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도 주인 곁에서 숨을 거뒀다. 아들은 아버지의 시신을 경주로 모시지 못하고, 개와 함께 고갯마루에 나란히 묻었다. 그 두 무덤은 오늘날까지도 ‘의구총(義狗塚)’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진다. ‘경주의 신화전설집성’에는 “동경견(東京犬)은 꼬리가 없는 개로, 됭경견, 됭견, 댕견이라 불리는 경주 토종개다. 이 개는 충직하고 용맹하며 영리하기로 유명하다.”라고 기록했다. 누군가는 개의 ‘충성’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사랑’이라 말하고 싶다. 학습과 훈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간절함에서 생긴 교감과 본능 말이다. ■기품 있는 개, 절도 있는 애교 기품 있는 개다. 꼬리가 거의 없는 녀석들이지만, 그 짧은 꼬리뼈를 이리저리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은 한없이 사랑스럽다. 경주 개 동경이는 2012년 11월 6일, 천연기념물 제540호로 지정되었다. 경주시의 시견(市犬)이기도 하다. 현재 경주시 전역에서 약 530마리 정도가 혈통을 유지하며 관리되고 있다. 생후 60일이 지나면 절차에 따라 일반인에게도 분양이 가능하다. 저들끼리만 있을 때는 뛰고 구르며 그야말로 천진난만 자체다. 마치 통제성을 잃어버린 천방지축 어린아이들 같다. 운동장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다가도, 이따금 가만히 멈춰 서로의 냄새를 맡거나 서로를 탐닉한다. 그러다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저들만의 세계를 뒤로하고 와르르 달려온다. 이럴 땐 속이 다 들여다보일 것 같은 선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동경이는 본디 그런 개다. 사양관리팀의 정하원 팀장과 이영솔 주임은 말하자면 이 개들의 가족이자 벗이다. 정 팀장과 이주임이 운동장으로 들어서자, 난만하게 놀던 동경이들이 일제히 모여들어 ‘나 좀 봐줘요’하며 몸을 낮추며 꼬리를 흔든다. 혹은 날뛰면, 혹은 얼굴을 들이대며 갖은 애교를 부린다. 자신을 보듬어주는 사람에게 한껏 잘 보이고 싶어 안달하는 마음이 다 보인다. 하지만 녀석들의 애교가 마냥 무질서하고 방정맞은 건 아니다. “이리와.” “악수” “앉아.” 기다려.” “엎드려.” “안돼!” 이영솔 주임의 짧은 명령에 놀랍도록 절도 있는 자세를 취한다. 몸은 꼿꼿이 하고, 행동은 절제하며, 사람과 눈빛을 맞추는 모습에서 묘한 질서와 위엄마저 느껴진다. 행정팀 이정원 팀장과 정승락 주임, 이혜인 주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관리인을 넘어 동경이들을 위한 세심한 벗이자 부모인 셈이다. ■짧은 꼬리 너머, 살아 있는 신라의 혼 누군가는 개에게서 ‘품격’을 논한다는 걸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동경이는 다르다. 귀한 대접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 개체들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품과 절도가 사람의 마음을 저절로 조심스럽게 한다. 스스로 품위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듯한 몸짓, 그런 개를 아끼며 길들이는 동경이보존회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 더욱 품격을 더한다. 한때 동경이에게 행해진 시대의 상처는 크다. 그러나 동경이의 등줄기에는 천 년을 넘어서는 시간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동경이는 살아남은 신라의 영혼이며, 수많은 생명이 감내해 낸 민족의 고통과 희망이 깃든 존재의 살아있음이다. 신라를 살고 경주로 건너온 개, 왕가의 삶과 민가의 생을 본능으로 기억하는 개, 죽어서도 토우가 되어 주인을 따라간 충직한 벗. 동경이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문화다. 이 땅의 숨결과 그 땅을 거닐며 살아온 민족의 이야기를 천진난만한 눈빛 속에서 마주한다. 녀석들의 눈빛에는 수백 년의 지혜와 고통이, 그리고 민족의 부활을 향한 끊임없는 의지가 담겨 있다. 어떤 개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경주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동경이는. *취재에 협조해 주신 경주개 동경이보존협회 직원들께 감사드린다.

2025-04-30

‘경북 산불’ 악몽 가시기도 전에…화염에 휩싸인 대구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주택가 인근 산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엄청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가져올 위험성이 높다. ‘불조심의 생활화’가 필요한 이유다. 28일 대구 함지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시민들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많은 네티즌들이 대구 산불로 인한 피해를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며 조속한 진화를 기원했다. 지난주엔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가 연이은 논란과 각종 악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소식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언필칭 ‘백종원 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청원이 있었고, ‘더본코리아의 일부 가맹 브랜드가 정리에 들었갔다’는 뉴스도 네티즌들의 주목을 끌었다. 3억원이 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480을 구입한 중국 택시기사가 한 달에 35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외신 보도와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동성 연인 딜런 메이어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도 네티즌들의 입에 오르내린 한 주였다. ▲‘경북 산불’ 악몽 반복?...대구 산불에 시민들 공포에 떨어 “매캐한 연기와 검은 하늘에서 붉게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두려움에 밤을 꼬박 새웠다. 도시를 위협하는 산불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었구나...” 경상북도 일대를 불바다로 만들었던 ‘경북 산불’의 기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이번엔 대구시가 화염에 휩싸였다. 지난 28일 발생한 대구 북구 함지산 산불은 대구시민을 공포와 공황에 빠뜨렸다. 이틀째 불길이 완전히 잡히지 않은 대구 함지산 산불은 발화 후 거센 바람을 타고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택가를 향해 번졌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이에 주민 2200여 명이 안내 방송에 따라 긴급하게 몸을 피했고, 산림당국은 각종 진화장비를 투입해 불길을 잡는데 진력했다. 인터넷 상에선 많은 이들이 조바심 속에서 우려를 표시했다. 특히 진화가 어려운 심야까지 불이 꺼지지 않자 “한 달 전 경북 산불의 악몽이 재현되는 건 아닌가”라며 한숨을 쉬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았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불을 낸 것인가”라는 질타의 목소리도 있었다. 다행히 29일 오전 8시쯤 불이 번지던 노곡·조야동 일대 산불 진화율이 82%로 집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산불 영향구역은 260㏊, 진화 중인 잔여 화선은 2㎞”라는 소식도 이어졌다. 화재 발생 이후 관계당국은 산불 현장에 진화 헬기 51대와 인력 1388명, 장비 204대를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겹치는 악재에 궁지에 몰린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농약 분무기로 소스를 살포하는 위험한 행위를 저질렀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국회 전자청원 글이 올라오고, 운영하던 일부 가맹 브랜드가 정리 수순이라고 한다. 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이야기다. 각종 위생 문제 논란 등에 휩싸이고 있는 더본코리아를 처벌하고 공공축제 사유화를 금지하게 하는 법을 제정해달라는 국민청원글이 국회에 접수됐다는 사실이 최근 경향신문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청원글은 ‘농약 분무기 사용과 비위생 조리 등으로 논란이 불거진 더본코리아에 대해 형사처벌과 행정처분을 내리고, 축제와 관련해 위법을 저지른 업체에 대해서는 축제 참여 제한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청원글을 작성한 사람은 세칭 ‘백종원 방지법’ 제정까지 촉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더본코리아가 생산한 ‘빽햄’에 쏟아진 소비자들의 비난과 회사 임원의 성희롱·갑질 문제까지 여러 어려움에 봉착한 더본코리아의 현재 상황은 사면초가(四面楚歌)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여기에 지난 23일엔 ‘백종원이 이끄는 더본코리아가 운영 중인 일부 가맹 브랜드가 사실상 정리 단계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더본코리아는 총 25개 브랜드를 소유했다. 하지만, 지난해 기준 절반 이상인 16개 브랜드에서 점포 수가 감소했다고. 빽다방, 홍콩반점, 역전우동 등의 주력 브랜드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게 보도의 핵심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내실을 다질 시간도 없이 급격하게 문어발식으로 사업 확장만 해나갔으니 위기는 이미 예견된 것이다. 방송도 백종원 대표를 지나치게 띄운 느낌이 없지 않다”는 한 테티즌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벤츠 마이바흐 택시 운전사의 한 달 수입은? “3500만원!” “그 가격의 차를 구입하는 게 서민들로선 엄두를 못 내겠지만, 그걸 사서 택시 영업을 하면 버는 돈도 내 월급의 10배구나.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최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재밌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짧게 요약하면 ‘벤츠 마이바흐 택시를 모는 기사의 한 달 수입이 3500만원’이라는 것. 보도에 의하면 ‘중국 수도 베이징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480를 3억400만원에 사서 고급 차량 호출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차량 가격이 어마어마하지만, 고액의 투자가 고수입을 불러온 것인지 A씨는 한 번의 택시 운행으로 많게는 95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SNS 운영자이기도 한 A씨는 인터뷰를 통해 “매일 오전 6시 45분 근무를 시작해 하루 동안 한두 명의 VIP 고객을 전담한다. 하루 평균 수입은 4000~5000위안(약 78만~98만원)이다. 예약제로 월평균 40건 정도 택시 운행을 하는데, 한 달 수입은 약 18만 위안(3500만원)”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고가의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어 하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인터넷상엔 “평생 한 번 타보기도 힘든 멋진 차를 운전하면서 월급쟁이 연봉을 한 달에 번다니 나도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의견도 눈에 띈다. 반면 네티즌들 중엔 “호화로운 체험을 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지나치게 높은 요금을 받는 것 아닌가”라는 비판을 하거나, “보통 택시라면 1만원에 갈 거리를 10~20배 가격을 주고 타는 바보짓을 왜 하냐”고 꼬집는 실용주의자도 없지 않았다. ▲할리우드 여배우의 동성결혼...축복과 비난 엇갈려 “아무리 개인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이라지만 대단한 용기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박수를 보낸다.” “세상의 절반이 남자인데, 왜 꼭 여자가 여자랑 결혼을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나로선 이해가 어렵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서른다섯 살 미국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동성의 애인과 결혼했다는 뉴스가 지난주 외신을 통해 보도되자 전 세계 네티즌들이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영화 ‘브레이킹 던’ 시리즈, ‘미녀 삼총사 3’ ‘스펜서’ 등의 영화를 통해 좋은 연기를 선보여 한국에도 팬들이 적지 않은 이른바 ‘세계적인 스타 영화배우’. 그녀가 6년의 열애 끝에 동성 연인과 화촉을 밝혔다는 소식은 몇몇 사람들에겐 비난을, 또 다른 이들에겐 축복을 받고 있다. 특히 아직 유교적 이념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한국에서의 설왕설래가 뜨겁다. 미국의 연예신문들은 스튜어트의 지인들을 인용해 “약혼자 딜런 메이어와 스튜어트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다”고 기사에 썼다. 둘은 이미 지난 15일 LA 카운티에서 혼인증명서도 받은 바 있다. 스튜어트와 메이어의 결혼식을 찍은 사진과 영상이 SNS 등을 통해 공개되자 파장은 더 확산되며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둘이 환한 얼굴로 포옹하는 장면을 본 다수의 네티즌들은 “세간의 편견을 뛰어넘은 새로운 형태의 결혼”이라는 말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굳이 여자끼리 결혼을...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비꼬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난 2013년 영화 촬영장에서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인이 된 것은 그로부터 6년 뒤인 2019년. 2021년 “우리 약혼했어요”라고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린 스튜어트와 메이어는 한 잡지 인터뷰를 통해 “함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29

5월 황금연휴, 동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네이처파크 어때?

사람과 동물 모두가 행복한 교감형 생태 동물원 네이처파크가 봄을 맞아 한층 더 풍성한 볼거리와 행사로 관광객을 맞이한다. 12만 평 부지의 식물원 내 초대형 글라스하우스 동물원과 방사형 야외 동물원으로 구성된 네이처파크는 50여 종, 300마리 이상의 동물, 350여 종의 수목, 100여 종의 다양한 꽃들이 공존하는 전국 최초의 교감형 생태 동물원이다. 네이처파크는 물을 좋아하는 동물에게 연못을, 땅 파는 습성의 동물에게 흙바닥을, 나무 오르기를 좋아하는 동물에게는 나무 놀이터, 덤불, 바위를 제공해 동물들의 원래 생활환경을 그대로 조성하고 야생성을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125만평 규모 식물원 내 야외 생태동물원 50여종 동물 300여마리·각종 꽃과 나무들 자연처럼 꾸며진 공간서 동물과 사람 교감 6월 8일까지 형형색색 ‘플라워 페스티벌’ 마술쇼·버블쇼·사육사 체험·포토존 등 ‘반달가슴곰 먹이주기’ 주말 이벤트 ‘눈길’ 네이처파크, 백사자 등 300여 마리 구조 동물들 새로운 삶 위해 지속적 환경 개선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동물 보호 앞장 ◇플라워 페스티벌 개최 네이처파크는 봄을 맞아 ‘플라워 페스티벌’을 오는 6월 8일까지 개최한다. 방문객들은 형형색색의 꽃이 가득한 포토존에서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으며, 이번에 구조된 동물 친구들을 가까이서 만나볼 기회도 주어진다. 주요 행사로는 사육사와 함께하는 반달가슴곰과의 첫 만남 이벤트, 농부 마술쇼, 도그쇼, 버블쇼 등 매주 신나는 공연으로 즐거움을 더한다. 또 사육사와 함께하는 1일 사육사 체험 ‘동물 탐험대’가 마련돼 특별한 체험을 고객들에게 제공한다. 축제장 입구부터 풍겨오는 봄꽃의 향기와 함께, 정원 곳곳에 배치된 다양한 꽃과 나무, 감성적인 포토존은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네이처파크 전역이 포토 스팟으로 활용될 수 있을 만큼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꽃 연출이 돋보인다. 또 매주 금요일 야간 개장으로 플라워 페스티벌은 생태체험과 여가 활동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봄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반달가슴곰 ‘햇님이’와 ‘달님이’와 첫 만남 부천시의 한 실내동물원에서 정형 행동을 보이며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반달가슴곰 남매 햇님이와 달님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불법으로 증식돼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이들 반달가슴곰 남매는 지난 17일 네이처파크 실내 사육장으로 옮겨져 적응 훈련을 받았다. 최근에는 두 마리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야외 방사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네이처파크는 이들 남매를 위해 야외 방사장에 폭포, 수영장, 흙바닥과 먹이를 숨길 수 있는 통나무 등 다양한 놀거리를 마련했다. 26일 야외 방사장에서 만난 수컷 햇님이는 야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물이 떨어지는 폭포에 몸을 담그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즐겼다. 지난 주말부터 진행된 먹이 주기 체험에도 잘 적응하는 모습이었다. 네이처파크는 주말에만 한시적으로 반달가슴곰 남매에게 과일 등의 간식을 주는 먹이 체험 이벤트를 1일 50명 한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이 이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을 고려해 관람객이 직접 전달하지 않고 사육사에게 전달해 전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겁다. 아이들과 함께 네이처파크를 찾은 김광열(42·대구 북구) 씨는 “안락사 위기에 처했던 반달가슴곰 남매가 이곳으로 왔다고 해서 아이들과 함께 와봤는데 간식도 잘 먹고 건강해 보여 다행인 것 같다”면서 “반달가슴곰을 처음으로 본 아이들도 신기해하면서 좋아했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것 같다”고 했다. 전근배 네이처파크 사육팀장은 “햇님이와 달님이는 실내에서만 살다 보니 비 등의 자연환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야외 방사장에 넣어 준 통나무도 다 부수는 등 매우 건강한 모습이다”면서 “모든 사육사가 햇님이와 달님이가 빨리 적응을 마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햇님이와 달님이처럼 열악한 환경에 놓인 동물들이 있다면 데리고 와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동물 구조에 앞장서는 네이처파크 열악한 환경에서 살다 구조돼 네이처파크로 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백사자와 하이에나, 몽구스, 알락꼬리여우원숭이 등이 이곳에서 새 삶을 찾았다. 70여 종, 300여 개체가 네이처파크에 새 둥지를 틀었다. 네이처파크는 이들을 위한 충분한 공간과 자연 친화적인 서식지를 조성, 전문 인력 보강 등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건강한 삶을 지원할 예정이다. 반달가슴곰 남매 외에도 약 300평 공간의 알락꼬리 여우원숭이의 숲을 조성해 봄 시즌 고객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알락꼬리 여우원숭이의 숲은 자연 서식지의 환경을 가장 유사하게 구현하기 위해 폭포, 호수, 섬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구성했다. 또 공간을 분리하고 동물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는 자연 구조물과 아름다운 조경 구성으로 각 환경에 맞는 오리, 혹고니, 카피바라 등의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선진국형 전시기법으로 조성된다. 이러한 복합 생태 공간 안으로 고객을 입장시켜 환상적인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동물들의 안전을 위해 시간대별 입장 인원은 제한되며, 사육사의 관람 방법 안내 후 입장하게 된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는 몽구스를 위해 보다 넓고 자연에 가까운 생활 공간을 마련했다. 서식지 중간에 설치된 터널을 이용해 아이들이 몽구스를 더 가깝게 관찰하고 사진도 촬영하도록 구성됐으며, 몽구스의 적응을 돕기 위해 다양한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으로 동물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박진석 네이처파크 본부장은 “동물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육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면서 “이번 플라워 페스티벌을 통해 많은 시민들이 구조 동물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단순한 동물원 운영을 넘어 동물 구조와 보호, 복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 플라워 페스티벌과 동물 탐험대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네이처파크 공식 홈페이지(http://www.spavalley.c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4-27

봄날의 서울, 조계사와 회화나무의 아름다운 이야기

서울 봄날의 거리는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붐비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고향의 절친한 친구와 함께 덕수궁 정문 옆에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정담을 나누었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더욱 짙게 고향의 향수를 자극했다. 우리는 정년퇴직 후 제주도에 사는 고향 친구와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동창과 전화로 황혼의 삶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을 찾은 나를 위해 친구는 오늘 하루를 함께 서울의 고궁 등 시내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했다. 먼저 오전에는 덕수궁 돌담길과 고종황제 길을 걷고 점심 식사 후 오후에는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리는 국제펜클럽 총회와 이사장단 이취임식장까지 안내해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수백 년 묵은 조계사 회화나무와 백송 생각에 일정을 수정하여 조계사로 향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조계사 대웅전 앞뜰 붉은연등 등 휘황찬란 부처님 오신날 맞아 인산인해 이뤄 500년 세월 품은 천연기념물 ‘백송’ 키 13.6m·둘레 2m·독특한 하얀껍질 수백년 껴안은 채 변함없이 우뚝 선 회화나무에 소원 비는 사람들 발길 명상과 기도, 쉼터·소통의 공간으로 대부분 사찰은 산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나에게 서울의 도심에 그것도 가장 번화한 중심가에 조계종의 본산 조계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었다. 산중 사찰은 자연 속에 자리하여 고요한 수행과 깊은 명상에 적합한 공간이다. 조용한 환경에서 내면의 집중과 깨달음을 추구하기에 더없이 좋다. 또한 그러한 것이 전통적인 불교의 사찰이기도 하다. 반면에 서울 조계사는 다양한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불교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고 현대인들에게 종교활동과 정신적 휴식을 제공하는 데에는 산중 사찰보다 더 유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중 사찰이 심오한 수행의 공간이라면, 조계사는 대중과 소통하며 도시 속 신앙과 문화의 중심지로 기능하는 실천적 종교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늘 언론을 통해서만 보고 들은 현장을 직접 방문한다는 사실에 적이 긴장되기도 했다. 조계사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신도들뿐만 아니라 내외국인을 비롯한 나무를 보러 오거나 관광으로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마 다가오는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영향도 크지 않았나 싶다. 조계사는 붉은 연등으로 휘황찬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 연등을 달고 살아가는 회화나무가 먼저 눈에 띄었다. 나무에 소원을 비는 한 시민을 보았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수백 년 시간을 껴안은 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살아갈 것이다. 한 시민이 그 거대한 몸에 이마를 대고 기도하는 순간, 나무는 단순한 생명이 아닌 전능하신 부처님과 인간의 경계를 잇는 존재로 피어나고 있을 것이다. 시민은 그 앞에서 말없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은 채 나무의 숨결에 귀 기울이며 소망과 고요함 사이의 빛나는 틈에서 가장 순수한 기도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 기도하는 자체가 바로 부처님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룩해 보였다. 나무 주변의 벤치에 앉아 있는 시민은 나무와 물리적으로 가깝게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안과 평화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번지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는 500살 되어 보이는 회화나무 노거수 외에도 같은 나이의 천연기념물 백송 노거수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천연기념물 백송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들여온 희귀한 소나무로, 희고 거친 껍질이 세월의 흔적처럼 드러난 채 대웅전을 향해 굽이진 가지를 뻗고 있었다. 한때 일곱 갈래로 웅장했던 가지는 이제 세 개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백송의 나이가 500살, 키 13.6m, 몸 둘레는 2m이다. 형형색색의 연등 사이로 솟은 그 자태는 여전히 신비롭고 경건했다. 해맑은 미소의 어린 부처상과 함께 살아가는 아픈 상처를 안은 백송은 부처님과 일상생활,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조계사 마당에서 인간과 자연의 깊은 교감을 상징하듯이 했다. 스님과 신도들의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수백 년 동안 조용히 지켜보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조계사 경내의 부처님과 회화나무, 백송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조계사를 찾는 세속인들의 지치고 상처 난 심신을 보듬고 꿰매 주어 안정과 평화를 찾게 해 주는 숭배의 대상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불교에서 나무는 단순한 식물을 넘어 생명, 성장, 깨달음, 무상의 교훈을 담은 상징적 존재로 여겨 왔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나무는 수행의 공간이자 인간 내면의 성장과 자연과의 조화를 일깨우는 매개체로 작용해 왔다. 불교 예술과 사찰의 구조 속에서도 깊은 상징성을 지닌 중요한 요소이다. 조계사 경내의 회화나무와 백송은 이러한 불교적 상징을 실감케 하는 대표적인 존재로 생각되었다. 회화나무는 오랜 시간 신도들의 기도를 받아온 역사와 인내의 증인으로서 생명력과 영적 성장을 상징하고 백송은 희고 곧은 기상으로 청정한 마음과 불굴의 정신을 상기시킨다. 이 두 나무는 각각 역사성과 정신성(精神性)을 품은 상보적 상징으로, 찾는 시민에게 심오한 영적 공간으로 작용했다. 회화나무와 백송이 있는 이 자리는 본래 왕자들의 별궁이었고, 이후 한 양반가의 저택으로 그러다가 보성학교에서 지금의 조계사가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숱한 수난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나무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나무도 품격이라는 신분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집 마당에 회화나무를 심으면 큰 학자가 나온다고 해서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리는 이 나무는 궁궐이나 서원 혹은 그야말로 지체 높은 양반들만 식재하고 볼 수 있었다. 그 옛날에는 서민들이 함부로 심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오늘날 오래된 회화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서열 높은 분들의 거주지였거나 양반가, 선비가 살았다고 보면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지금이야 그런 상징성과 의미보다는 수형과 꽃의 아름다움에 더 무게를 두고 정원이나 집 마당에 심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 백송은 어릴 때는 녹색인데 어른이 되면서 나무껍질이 하얀 레이스처럼 조각조각 갈라져 백송(白松)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줄기는 흰빛이지만, 하늘을 이고 있는 바늘잎은 늘 푸르다.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회화나무처럼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는 품격 있는 나무라고 한다. 백송은 나이만큼이나 몸도 성치 않았다.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서 무상한 것은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정만은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다시 세속으로 환속했다. 조계사(曹溪寺)는… 조계사는 한국불교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대승 보살 정신을 바탕으로 대중과 함께하는 삶을 지향하는 중심 사찰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불교의 자주화와 민족자존 회복을 염원하는 스님들에 의해 각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며, 근대 한국불교 최초의 포교당이자 4 대문 안에 세워진 첫 사찰이다. 193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면서 삼각산 태고사를 형식상 옮기는 방식으로 절 이름을 태고사로 바꾸고, 보천교의 십일전 건물을 대웅전으로 개축하여 1938년 봉불식을 열었다. 이후 1954년 불교정화운동을 계기로 조계사로 개명되어 오늘날까지 한국불교의 중심 사찰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4-23

천년기념물 경주개 동경이를 아시나요?

요란한 짖음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인데, 수백 마리 개들이 낯선 방문을 먼저 감지했다. 성난 파도처럼 일대가 술렁인다. 벨을 누르자 약속된 방문을 기다린 듯,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린다. ‘천연기념물 보존’이라는 말에 걸맞게 경비가 철저하다. 하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서 함부로 걸어갈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경계가 사방에 깔려 있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제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현실이다. 수백 개의 눈, 그리고 날 선 경계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 갇혀 있다고는 하나 이 날뛰는 짖음 앞에 감히 어떤 용기가 작동할까. 조선후기 문헌에 ‘장자구’ ‘녹미구’ 언급 현종 ‘동경잡기’에 ‘東京狗’ 명칭 첫 등장 단순한 애완견 넘어 문화적 아이콘으로 신라 토우에도 동물 중 가장 많이 등장 이름 ‘동경이’엔 경주의 역사 흔적 뚜렷 “일본 신사 수호신 고마이누와 닮았다” 일제 강점기 도살로 개체수 급격히 감소 온갖 고난 딛고 신라 1000년 전통 계승 여간한 담력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앞발을 일으켜 세워 두 발로 서서 철망을 박차듯 밀어대는 녀석, 목줄이 팽팽해질 만큼 허공을 향해 몸을 튕기는 녀석, 허연 이빨을 드러내며 송곳니까지 내보이는 녀석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짖음, 극대화된 공포는 결국 온몸에 소름이 돋게 한다. 그러다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살아 있는 눈빛이 반들거린다. 녀석의 검은 눈동자 속에 잔뜩 겁에 질린 내가 서 있다. 이 모진 위협 속에서도 나는 진심을 전하느라 최선을 다한다. 녀석이 먼저 내 눈빛을 읽은 걸까. 으르렁대면서도 짜리몽땅한 꼬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짖음은 경계가 아니라, 요란한 반김으로 읽힌다. 마음을 읽는 데 내가 녀석보다 한발 늦은 걸까. 드디어 녀석의 선한 기운이 읽힌다. 경계하고 짖고, 낯선 이를 의심하는 성질은 녀석들의 본능이다. 마치 “누구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묻는 것처럼. 그러고 보니 보존회 전체가 개들의 마을 같다. 보존회 건물 안은 녀석들만의 치열한 공동체로 느껴진다. 낯선 인기척과 얼굴, 냄새와 음성, 신고식도 없이 자신들의 영역에 들어온 나를 경계하는 건 당연하다. 짖고, 두드리고, 날뛰며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내게 확실히 각인시킨 셈이다. ■역사에 기록된 토종개 ‘동경이(東京狗)’의 존재는 고문헌 곳곳에 드러난다.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660년(의자왕 20년)이다. “사비성 서쪽에서 들사슴처럼 생긴 개가 사비강 둑 위에서 궁궐을 향해 짖자, 궁 안의 개들도 따라 짖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백제가 멸망했다.” 여기서 ‘들사슴 모양의 개’는 짧은 꼬리와 민첩한 체형을 가진 신라의 토종개를 지칭한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동경이에 관한 묘사가 있다. 그는 “경주의 개는 꼬리가 없으며, 노루 새끼를 닮아 장자구(獐子狗)라 하고, 사슴 꼬리를 닮아 녹미구(鹿尾狗)라고 한다” 고 기록했다. 동경이의 생김새를 언급한 것이다. ‘동경구(東京狗)’, 즉 ‘경주의 개’라는 명칭이 명확히 등장하는 기록은 1669년, 조선 현종 10년에 경주 부윤 민주면이 편찬한 『동경잡기(東京雜記)』다. 그는 경주 여인들이 북쪽 기운이 허한 것을 보완하고자 머리를 뒤로 틀어 올렸다는 ‘북계(北髻)’ 풍습을 기록하며, 짧은 꼬리를 가진 개 역시 “북방의 기운이 허한 탓에 생긴 것이라 하여 동경구(東京狗)라 불렸다”고 전한다. 개의 특징을 단순히 외양으로 설명하지 않고, 지역의 자연환경과 풍속, 음양오행 사상까지 연관 지어 놓았다. 실학자 이익 또한 1760년 무렵에 쓴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짧은 꼬리를 가진 개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며, 1778년 유득공의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 이학규의 『물명유해(物名類解)』, 그리고 근대기 백과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서도 ‘노루꼬리 개’, ‘무미견(無尾犬)’, ‘동경 개’ 등의 기록을 남겼다. 짧은 꼬리를 지닌 동경이는, 단순한 지역의 애완견을 넘어 신라와 조선의 사상과 환경, 인간의 감성에까지 기록되어 살아남은 문화적 존재였음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신라 무덤 속 꼬리 짧은 토우 5~6세기 사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陶偶)들 중 꼬리 짧은 개가 있다. 흙으로 빚은 개는 생생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짧은 꼬리를 치켜들고, 귀를 쫑긋 세운 채 누군가를 향해 달려가려는 찰나의 몸짓이다. 얼굴의 선과 눈매, 귀의 방향과 자세까지도 놀랍도록 사실적이다. 토우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개다. 그중 꼬리가 없거나 몹시 짧은 개는 멧돼지와 맞서 싸우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동경이가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닌, 맹수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짐승을 대적해 사람을 지키는 용맹스런 존재였음을 보여준다. 이로써 동경이는 신라인의 삶 깊숙이 존재하던 ‘생활견’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개는 종종 무덤에 함께 묻히거나, 토우로 만들어져 묻혔다. 죽음의 문턱 너머까지 사람과 함께하던 삶의 동반자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려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시절, 개는 이미 사람과 한집에서 숨을 쉬고, 고단한 노동과 험한 길을 함께 나누었다. 그리고 무덤 속에서조차 그들과 헤어지지 않았다. ■이름에 깃든 역사, 댕견 한국에는 여섯 종류의 토종개가 있다. 삽살개, 진돗개, 풍산개, 불개, 제주개, 그리고 댕견이다. 댕견은 꼬리가 짧은 경주 토종개 ‘동경이(東京狗)’다. 동경이는 ‘경주에서 왔다’는 단순한 지리적 표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고려 이후의 역사와, 경주의 자취, 그리고 사람들의 정서가 함께 담겨 있다. ‘동경(東京)’이란 명칭은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새 수도 개경의 동쪽에 자리한 경주를 행정적으로 부르던 표현이다. ‘동쪽의 도읍’. 그래서 경주에서 태어난 이 짧은 꼬리의 개는 ‘동경의 개’, 곧 ‘동경이’, 또는 ‘동경견’이라 불렸다. 그러나 문헌보다 더 오래된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남아 있다. 지역 어르신들은 이 개를 ‘동경이’보다는 ‘댕견’, ‘댕갱이’, 혹은 ‘땡갱이’라고 부른다. 툭툭 뱉어지는 이 구수한 방언은 경주의 골목과 마을에서 오랫동안 불린 소리다. 지금이야 ‘경주개’로 통칭되지만, 댕견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경주 어른들의 입에 붙어 있다. 댕견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짧은 꼬리다. 보통 개의 꼬리뼈는 여러 마디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개는 아예 꼬리뼈 자체가 없거나, 많아야 두어 마디 남짓이다. 그래서인지 꼬리 대신 다리와 목, 후각이 유난히 발달했다. 짧고 단단한 몸에 유연한 근육이 붙어 민첩하다. 특히 후각이 매우 예민해 멧돼지 같은 야생 짐승을 추격하거나 유인하는 사냥개로서 탁월했다. 흥미로운 건 성격이다. 다른 토종견들이 낯선 이를 경계하고 잘 짖는 데 비해, 댕견은 조용하고 살갑다. 경계보다 관찰이 먼저고, 공격보다 기다림이 먼저다. 주인을 향해서는 절대적인 복종심을 보이면서도, 타인에게는 똘망한 눈빛으로 먼저 마음을 건넨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짧은 꼬리를 흔들며. ■일제강점기, 씨가 마른 댕견 동경이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언제 봤다고 해맑게 달려든다. 낯선 이에게도 주저 없이 다가가 애정을 구하는 녀석과 마주하면, 누구라도 경계를 허물게 된다. 그렇게 한 생명을 향해 마음이 열리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랑스러운 개도 수난의 시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긴 민중들이 뿌리째 흔들리던 그때, 사람의 언어와 문화, 심지어 마당을 지키던 개 한 마리조차 제 삶을 온전히 누릴 수 없었다. 동경이에게도 피로 쓰인 절멸의 시간이었다. 일본은 전시 동원령 아래 사람을 마구잡이로 징집했으며, 가축뿐만 아니라 개도 도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동경이 역시 급격히 사라졌다. 동경이가 일본 신사의 수호신인 ‘고마이누(高麗犬, こまいぬ)’와 닮았다는 이유로 도살되었다는 말이 떠돌았다. 고마이누는 일본 신사의 입구를 지키며 악귀를 막는 신수(神獸)다. 꼬리가 거의 없고, 눈빛이 단단하며, 용맹한 동경이의 모습이 고마이누와 흡사하다는 것이 일본인의 불쾌감을 샀고, 결국 동경이를 없애려는 시도로 이어졌다는 설이다. 역설적이게도 ‘신성함’이라는 이유가 학살의 명분이 되었다니 큰 모순이다. 자신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 식민 지배하고 있는 하찮은 조선 땅을 돌아다니는 흔한 짐승이라는 것에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이 설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일제강점기 동경이는 실제로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꼬리가 없다는 이유로 ‘병신개’, ‘재수 없는 개’라며 천대받았다. 어느 날부터 울타리 안에서 개가 사라졌고, 짖던 소리도 줄었다. ‘씨가 말랐다.’ 그건 단순한 생명의 소멸이 아니었다. 경주의 역사와 신라의 감성, 사람의 삶을 묵묵히 지켜온 동반자가 사라진 것이었다. 이 설이 사실이라면, 동경이의 절멸은 단순한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경주와 신라의 감성, 그 땅의 문화까지 지우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종(種)을 지우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동경이는 일부 민가의 마당에서, 산기슭의 움막에서 조용히 새끼를 낳고 생명을 이어갔다. 주인의 손에서 숨어 지내고, 아이들과 뒹굴며 그 억센 세월을 버텨냈다. 그렇게 기적처럼 이어진 생명은 지금도 경주의 마을 어귀를 거닐고, 신라의 시간을 품은 채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下> 편에는 주인을 따라 죽은 경주개 동경이 전설이 이어집니다.

2025-04-22

“매일 아침 아보카도” 125세 할아버지의 장수 비결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는 건 대부분 인간의 바람.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장수한 노인들의 삶은 가끔씩 세계적 화제가 된다. 칠레의 한 할아버지가 125세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한국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평소 무얼 즐겨 먹었을까? 실업급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부정수급과 반복 수급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구체적 자료가 나와 사람들의 혀를 차게 했다. 필리핀 유명 관광지 앙헬레스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총에 맞아 숨졌다는 보도와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겪던 60대 남성이 서울 봉천동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는 뉴스도 지난 한 주 네티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125세 칠레 할아버지...“대체 뭘 드시고 사셨나요?” “식감이 물컹이고 미끌거려 좋아하지 않았던 과일인데, 오늘부턴 나도 아보카도 먹어야겠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100세를 넘겨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무려 125세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생존한 페루의 노인이 있어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았다. 마르셀리노 아바드 톨렌티노라는 긴 이름을 가진 할아버지가 바로 그 주인공. 미국의 뉴욕포스트는 최근 그가 125번째 생일을 맞았다고 보도했다. 해당 매체에 따르면 마르셀리노 할아버지는 페루의 오지 마을인 차글라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칠레 정부가 발급한 신분증에는 그의 출생년도가 1900년으로 표기돼 있다. 그러니, 현재 나이는 놀랍게도 125세. 7세 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마르셀리노는 현재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페루의 한 요양원에서 생활하는 그는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 요리사에게 ‘특정 과일’을 청해 먹고 있다는 게 뉴욕포스트의 설명이다. 바로 아보카도. 아보카도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은 건강 과일로 알려졌다. 요리의 장식품이나 각종 소스 재료로 사용되는 아보카도는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독특한 식감 탓에 호오가 갈리는 먹을거리다. 물론, 아보카도를 매일 먹는다는 것 하나만이 ‘125세 노인의 특별한 장수 비결’은 아닐 터. 마르셀리노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직접 농사를 지어 깨끗한 유기농 채소와 과일 등을 주로 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지향할만한 식습관을 일생 유지해온 것이다. 적절한 육체노동과 채소·과일 위주의 식물성 식단, 거기에 남미 사람 특유의 낙관적인 기질까지 더해져 오랜 세월 큰 병 없이 살아온 것이 아닐까. 마르셀리노 할아버지의 뉴스를 접한 한국 네티즌들은 “욕망을 절제한 소박한 삶의 태도가 이분을 장수하게 만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시길 바란다”는 동방예의지국 사람들다운 댓글을 남기고 있다. ▲실업급여를 20차례나? 일부 수급자는 1억원 받아 일시적으로 직장을 잃은 사람들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작용해야 할 실업급여를 둘러싼 각종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정수급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한 사람이 횟수와 금액 모두에서 과도하게 실업급여를 받아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행하고 있는 것. 이에 실업급여 부정수급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다. 최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실업급여를 2회 이상 반복적으로 받은 사람은 2020년 42만1000여 명에서 2024년엔 49만여 명으로 늘었다. 한 사람이 20회에 걸쳐 1억원가량을 수령한 경우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반복 수급자 문제도 있다. 거듭해 실업급여를 받아낸 사람이 2020년에는 전체의 24.7%에서 2024년엔 28.9%로 증가했다. 실업급여 수급자 3명 중 1명은 반복 수급자인 것으로 추정될 정도다. 부정수급 사례는 2020년 2만4257건(237억원)에서 2024년엔 2만4447건(323억원)으로 꾸준히 늘어간다. 최근 5년간 연평균 실업급여 부정수급액은 280여 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이런 소식을 들으면 열심히 일할 의욕이 사라진다”며 “실직 후 부지런히 직장을 찾으러 다니는 성실한 사람들은 뭐가 되냐”고 푸념했다. 그래서다. “일정한 차원에서 실업급여 수급 횟수를 제한하고, 반복 수급자 문제를 해결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다면 앞으로도 비양심적 부정수급자는 더 증가할 것”이란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앙헬레스에서 총격으로 한국인 사망...“필리핀 여행 조심해야” “그 지역은 평소에도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사건이 터졌구나.” “총기가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국가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관광지 중 하나로 불리는 앙헬레스에서 한국인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네티즌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외교부는 지난 월요일(21일) “필리핀 북부 루손섬 팜팡가주 앙헬레스에서 한국인 관광객 1명이 오토바이 강도에게 습격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사망한 사람은 가방을 뺏으려는 필리핀 강도에게 저항하다 총에 맞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람은 피격 직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현지 공관은 사건 발생 인지 직후부터 필리핀 경찰 당국에 신속한 수사를 요청하는 등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외교부의 이어진 부연. 필리핀 앙헬레스는 수많은 카페와 술집, 식당 등이 밀집한 유명 관광지다. 이전에도 필리핀 대표 유흥가인 이곳에선 크고 작은 한국인 관광객 대상 범죄가 끊이지 않았다. 또한, 이 지역은 한국처럼 철저한 보안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지난해 5월엔 60대 한국 남성이 같은 지역에서 큰 부상을 입기도 했고, 같은 해 여름엔 앙헬레스에 조성된 코리아타운에서 40대 한국 관광객이 또 다른 오토바이 강도에게 피해를 입기도 했다.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한 필리핀 경찰과 마약단속국의 지속적인 범죄 예방 활동과 범인 검거 노력이 없지 않지만, 발생하는 많은 범죄 모두를 사전에 예방하기엔 수사 인력 등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필리핀에선 앙헬레스 외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여행지에서 한국인 대상 강력범죄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엔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한국인 남성이 강도에 맞서다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국대사관은 현지 주민과 필리핀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밤엔 외출을 삼가고 불가피하게 밖으로 나갈 경우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선 항상 조심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일상을 벗어난 여행지에서 마음이 들뜬 관광객들은 이런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층간 소음 다툼 있었던 아파트에 방화...용의자는 사망 “살다보면 층간 소음 같은 고충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다. 근데, 왜 아무런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다수가 거주하는 공간에 불을 질렀는지 모르겠다”는 댓글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했다. 사망자는 방화 용의자고, 부상자 가운데 2명은 전신에 화상을 입은 중상이라 인명 피해가 더 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아파트에 불을 지른 60대 방화 용의자는 사망 전 유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적지 않은 피해를 부른 방화사건의 용의자가 지목되자 사람들은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왜 멀쩡한 아파트에 불을 질러 자신에게 잘못한 게 없는 사람들까지 고통에 빠뜨렸나”는 의견부터 “방화범들은 대체 무슨 이유로 건물을 불을 지르는 것인지, 그들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는 댓글까지가 인터넷 기사에 달리고 있는 상황.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이 난 봉천동 21층 아파트 현장을 찾아 조사를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로 인한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사망한 방화 혐의자는 농약 살포기를 사용해 불을 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화재 현장 인근 자신의 주거지에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정확한 유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보도됐다. 해당 방화 혐의자는 봉천동 아파트 화재 발생 15분 전에도 인근 빌라 앞에서 또 다른 불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22

구미 만의 파격적 벤처 생태계 조성, 우수 스타트업 육성 견인

구미시가 첨단분야 스타트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벤처창업 지원 4대 전략을 추진한다. 대내외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미시가 추진하는 벤처창업 지원 정책은 지역의 창업기업의 성장을 돕고 구미만의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번 지원 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창업 성장 지원 △ 창업 공간 △벤처 펀드 △산학연관 커넥티드 협의체 운영 등이다. 구미시가 추진하는 이번 정책의 추진방향에 대해 알아봤다. 초기-혁신-글로벌 3단계 창업성장 필요한 프로그램 맞춤형 지원 창업-혁신성장-확산지구로 구성된 성장 유도형 벤처타운 조성 수도권 집중 벤처 문제점 해결, 지역 5개사 벤처투자협의회 출범 지역 총 13개 기관 공동 참여, 산학연관 협의체 효율적 연계 강화 □ 파격적인 창업 성장지원으로 우수 스타트업 육성 강제 견인 구미시는 초기, 혁신, 글로벌로 3단계로 창업성장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초기 창업 단계인 ‘뉴벤처 창업지원사업’은 시제품 개발, 디자인 개선, 지식재산권, 인증 지원 등 기술 성장 가속화를 지원한다. 2025년 신규사업으로 통합공고(1월 2일) 접수 결과 국내 창업기업 123개 사가 신청, 창업 5년 미만의 기업 4개 사가 선정됐다. △㈜오에이치엔지니어링(대표 천범호) △㈜한스코리아(대표 한기정) △㈜엑스빅(대표 김태연) △㈜업티어(대표 이윤근)가 그 주인공이다. 혁신 스타트업 단계인 ‘TIPTOP 스타트업 육성사업’은 혁신적인 제품의 빠른 시장진입을 위해 전담 응용연구, 생산 환경구축 등 상용화 촉진을 지원한다. 2024년 당시 사전 모집에 306개 사가 신청하는 기록을 세웠다. 2025년 1차 모집에 국내 벤처투자사의 추천 조건으로 19개 사 접수, 2개 사를 선정하고 2차 모집에는 시장에 제품을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상용화 유망기업 33개 사 접수, 2개 사 선정으로 총 4개 사를 선정했다. 1차에는 △㈜알에프온(대표 조경래) △㈜에이포랩(대표 박재영)가 선정됐고, 2차에는 △㈜골든크로우(대표 장의순) △컬러렌(대표 박근창)이 선정됐다. 선정된 4개 사는 제품 상용화와 글로벌 시장진출을 위한 기술 검증, 인증, 연구기관 협업 등을 집중 지원받게 된다. 글로벌 단계 ‘스타트업 해외시장개척 지원사업’은 해외시장에 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컨설팅, 홍보 콘텐츠 등 글로벌 시장진출을 지원한다. 2024년 스타트업 9개 사가 CES에 참가해 혁신상 수상기업(엑스빅)이 탄생하기도 했다. 2025년은 접수 결과 12개 사가 신청, 2개 사를 선정했다. 선정된 기업은 △㈜오리온엔이에스(대표 유성재) △㈜네스트(대표 장승원)로 해외 전시회 참가, 바이어 매칭, 해외 컨설팅, 콘텐츠 제작, 현지 체제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구미시는 오는 6월 CES 2026 전시회 참가 및 혁신상을 준비 중인 창업기업 2개 사를 추가 모집할 계획이다. □ 창업기업 성장 환경 마련 창업기업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해 창업지구, 혁신성장지구, 확산지구로 구성된 성장 유도형 벤처타운을 조성하고 있다. 구미시는 올해 창업지구인 금오테크노 밸리 내 종합비즈니스지원센터를 스타트업 필드로 구축해 입주 가능 공간 30개 호실을 제공할 예정이다. 창업 공간의 임대료는 ㎡당 월 1426원으로 매우 저렴하며 구미 이전기업은 2년간 임대료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파격적인 혜택이 주어진다. 스타트업 필드는 창업 5년미만의 초기창업기업을 대상으로 2025년 4월 공고, 30개사를 선정해 6월 10일부터 리모델링 후 입주가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스타트업 필드가 위치한 금오테크노밸리는 연구기관과 대학, 지원기관이 집적화돼 기술협력, 인재 공급, 지원 혜택 등 기업 성장에 유리하며 지리적 접근성(IC 5분, 주요 역 10분 이내) 또한 높아 앞으로도 초기 창업기업의 성장 거점으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앞으로 도시재생혁신지구(공단동 237번지) 완성에 따라 구미형 유니콘 타운을 조성해 입주 공간을 더욱 확대하고 제품 개발 인프라, 다양한 지원기관, 코워킹 스페이스 등을 집적화할 예정이다. 광역철도 개통에 따라 창업 거점 공간을 확대하여 다양하고 우수한 창업의 구미 이전이 기대되고 있다. □ 구미시 벤처 펀드를 활용한 지역 밀착형 투자환경 조성 수도권에 집중된 벤처투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지역 5개 투자사와 협력한 벤처투자 협의회가 출범했다. 벤처투자 협의회를 통해 구미시는 지역 창업기업의 요청에 따른 현장 방문 방식의 투자유치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총 14개 사를 검토했다. 올해는 반도체, 방산, 로봇, IT 의료, 차세대 이동통신 등 첨단 산업 분야의 벤처창업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를 약 2000억원 규모로 결성하고 지역 밀착형 투자 심사를 통해 우수 창업기업의 규모적 성장 발판을 제공한다. TIPTOP에 선정된 ㈜알에프온은 지난 3월 27일 벤처투자협의회의 지원으로 ‘구미형 벤처창업 펀드 1호’기업에 선정돼 10억 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에이포랩 역시, 벤처투자협의회가 수술용 내비게이션에 대한 우수한 기술력과 사업성을 검토 중에 있어 향후 투자유치를 통한 빠른성장이 기대된다. 구미시는 지역의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혁신 창업기업을 적극적으로 발굴·접수하기 위해 스타트업 필드 등 창업거점 공간에서 정기적으로 투자 IR을 진행하고 창업기업 검토의견서를 제공한다. 투자유치를 희망하는 기업은 구미시 창업지원 안내 사이트(startup.geri.re.kr)로 접수하면 된다.□ 지역 산학연관 협의체의 효율적인 개편 및 연계 강화 효율적인 협의체 운영과 창업지원 기능 강화를 위해 기존 11개 기관에 투자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 투자사를 신규로 참여시켜, 총 13개 기관이 함께한다. 창업지원 기관은 △구미전자정보기술원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경상북도경제진흥원 △금오공대 강소특구육성사업단 △구미상공회의소 △기술보증기금 구미지점 △신용보증기금 구미지점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경북지역본부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북지역본부 △한국디자인진흥원 경북디자인주도제조혁신센터 △KOTRA 대구경북지원단 구미분소 △와이앤아처㈜ △인라이트벤처스㈜ 등이며, 우수 창업기업의 애로사항을 합동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구미시 창업지원기관 협의회는 지난 3월 25일, 창업기업(4개 사)의 성공적인 사업화를 돕기 위해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논의했으며, 협의회의 지원을 희망하는 창업기업은 통합 안내 사이트를 통해 연중 상시로 신청할 수 있다. 협의체는 분기별 1회 개최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구미시는 지역 창업기업 긴급·애로사항을 상시 해소하기 위한 SOS 대응 채널을 가동해 창업기업에 발생하는 각종 현장 긴급·애로사항을 접수·처리하고 있으며, 필요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한 종합 컨설팅을 제공한다. 구미시는 지역 창업지원 사업을 한 곳에서 확인하고, 간편 온라인 접수와 수혜기업 성장 이력까지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안내 사이트를 개설했으며, 구미시 창업지원 통합 안내 사이트(gstartup.geri.re.kr)를 통해 실시간으로 창업지원 정보 및 각종 프로그램을 안내받을 수 있다. /류승완·김락현기자

2025-04-20

“벚꽃으로 출렁이는 4월의 경주서 고요와 여유를 만끽하자”

□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봄 4월, 경주는 벚꽃으로 출렁인다. 겨우내 검게 웅크렸던 나무들은 어느새 화색이 돌고, 햇살을 양껏 머금은 가지마다 수억만 송이 꽃을 매단다. 꽃들은 한꺼번에 피어오르며 화르르, 화르르 사람을 부른다. 마치 봄의 사절단처럼 성대한 잔치가 벌어진다. 꽃잔치는 찬란하고 아름답다. 즐겁고 기쁘다. 여기서만은 누구든 주인공이 된다. 흐드러진 벚나무 아래에 서면, 평범한 사람도 하루쯤은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되며, 왕과 왕비가 되는 착각에 빠진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내 삶의 주인공은 ‘나’ 아닌가. 꽃이 어우러진 찰나만큼은 나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된다. 사방이 꽃이다. 길과 길, 동산과 동산, 집과 집 사이를 이어주는 길목마다 눈이 시릴 정도의 꽃무더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꽃이 핀 풍경 사이로 사람들이 걸어간다. 꽃은 사람을 품고, 사람은 꽃 속에 묻힌다. 그렇게 모든 게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보문호를 따라 끝도 없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진다. 호수 위로 부서지는 햇살, 그 위를 유영하는 꽃잎들, 그리고 고요히 물결치는 호수, 그 위로 떨어지는 빛의 눈부심마저도 모두 한 편의 에세이가 되고 시(詩)가 된다. 보문호는 경주 시내에서 동쪽으로 10여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사방 242만 평의 드넓은 곳에 조성된 관광단지는 호수를 가운데 두고 별천지의 세상을 갖추었다. 호텔과 콘도, 골프장, 놀이시설, 그리고 고즈넉한 산책로까지, 모든 것이 조화롭게 자리를 잡았다. 보문호를 따라 걷는다. 반나절쯤 족히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이요, 귀 기울이는 곳마다 새소리다. 벚꽃이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눈부시도록 아름답다는 말, 아마 벚꽃 흐드러지는 보문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방으로 물든 벚꽃 아래에서 많은 사람이 삶의 아름다움을 배우고 누릴 것이다. 찬란함은 먼 곳에 있지 않다. 바쁜 일상 중에 잠시 눈을 들었을 때, 바로 곁에 피어 있는 벚꽃 한 송이처럼 가까이 있다.   사방 242만 평의 드넓은 관광단지 호텔과 콘도•골프장•놀이시설 등 모든 것이 조화로운 별천지 세상 그 가운데 자리잡은 호수 ‘보문호’ 호수 중심으로 장막을 두른 벚나무 바람 불면 기다렸다는 듯 꽃잎 흩날려 눈발처럼 온 세상 감싸는 몽환의 풍경 모두 한 편의 에세이와 詩로 변모 □ 물결처럼 흐르는 보문호의 벚꽃 보문호는 1년 365일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벚꽃이 터지는 4월 초부터는 많은 인파가 몰린다. 보문호를 중심으로 장엄하게 장막을 두른 벚나무에 꽃이 핀다. 갈라지고 만나는 길이 마치 천상의 길처럼 변모한다. 밋밋하던 길도 벚꽃을 덧입으면 영화 속 장면이 된다. 종일 걸어도 싫증 나지 않는 길이다. 꽃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꽃잎처럼 나부끼며, 보문호 물결 위에 내려앉은 꽃잎처럼 나도 느릿하게 떠다닌다. 바람이 불면 기다렸다는 듯 꽃잎이 한꺼번에 흩날린다. 눈발처럼, 꿈결처럼, 온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는 몽환의 풍경이 펼쳐진다. 끝없는 산책로를 따라 벚꽃 터널이 쉼 없이 펼쳐진다. 손을 뻗으면 어느새 손바닥엔 꽃잎이 내려앉는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꽃잎을 쫓는다. 연인과 연인은 손을 맞잡고, 젊은 부부는 아이를 가운데 두고, 중년 부부는 보폭을 맞추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걷는다. 모두 느릿한 걸음으로 봄의 한 자락을 붙드느라 여념이 없다. 벚꽃은 누구에게나 동등하다. 찬란한 제빛을 누구에게든 아낌없이 내준다. 4월의 보문단지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찰나가 아닌, 영원처럼 각인시킨다. 화려함보다는 고요와 여유를, 빠른 속도보다는 깊이 스며듦을 선사한다. 경주의 봄은 유적만큼이나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다. 천 년이 흘렀고, 수억 년의 시간을 향해 흘러가는 도시 경주. 눈여겨보지 않던 구석까지, 잊고 지나친 골목까지도 봄이 깃든다. □ 연간 천만의 사람이 찾는 경주의 관광(觀光) 경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시간의 깊이와 결을 품은 도시다. 사방이 유적지이고, 골목 구석구석에도, 산야에도 역사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누구나 경주를 찾고 싶어 한다. 경주에서는 단순한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며, 밋밋한 것이 결코 밋밋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경주에서만큼은 ‘관광’이라는 단어도 예사롭지 않다.  觀國之光 利用賓于王(관국지광 이용빈우왕) : 나라의 빛을 보는 것은 왕에게 손님 대접을 받게 되니 이로울 것이다.  觀國之光 尙賓也(관국지광 상빈야) : 나라가 빛남을 손님으로 숭상받을 것이다.    ‘관광(觀光)’이라는 말은 주나라 『역경(易經)』의 ‘풍지관괘(風地觀卦)’에서 비롯되었다. ‘보다’라는 뜻의 ‘관(觀)’과, ‘빛나다, 아름답다, 자랑스럽다’는 뜻의 ‘광(光)’이 합쳐진 단어다. 다른 지방이나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과 풍습, 문물을 자세히 보고 그 빛남을 감상하는 일이며, 단순한 구경이 아닌 ‘나라의 큰 덕을 보고 느끼는 일’이 본래의 뜻이다. 일본에서는 ‘보다’의 뜻으로 ‘観光(관광)’을 쓰고, 중국은 ‘관광(观光)’이라는 단어도 사용하지만, ‘여행하다’라는 의미의 ‘旅游(여유)’를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세히 보다’는 뜻을 가진 ‘觀光(관광)’을 쓴다. 우리나라의 ‘관광’에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깊이 보는 마음’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경주는 그런 의미에서 진짜 관광의 도시다. 단순히 구경하는 도시가 아니라, ‘나라의 덕과 아름다움을 자세히 보는’ 본래의 의미를 알고 다녀야 하는 곳이다. 언어는 삶에서 나온다. 그러니 언어는 삶을 닮고, 또 담는다. 그리고 시대를 기억한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관광’이라는 말 또한 그렇다. 명소를 찾고, 맛집을 검색하고, 숙박과 항공권을 예약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말이 ‘관광’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한 시대의 그림자가 스며 있다. 우리말에는 원래 ‘관광’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대신 ‘유람’, ‘탐승’, ‘순례’와 같은 말을 썼다. ‘유람’은 자연과 경치를 즐기며 여유 있게 거니는 일이고, ‘탐승’은 배움을 위한 여정이며, ‘순례’는 믿음과 마음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다. 그 어떤 말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발길보다 마음이 먼저였고, 경치를 즐기는 눈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사유가 깃들어 있었다.  ‘관광’이라는 단어가 우리 삶에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때였다. 일본에서 사용하던 ‘観光(かんこう, 간코우)’라는 말이 우리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다(観)’와 ‘빛나다(光)’. 얼핏 생각하면 고상하고 긍정적으로 느껴지지만, 이 말이 뿌리내린 방식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일제는 식민국 조선의 풍경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했다. 경복궁의 근정전은 관광지로 개조되었고, 조선의 사찰은 일본인의 ‘여행 코스’가 되었다. ‘관광’은 조선을 통제하고 소비하는 방식 중 하나였으며, 조선은 ‘관광’이라는 말로 누군가의 시선에 따라 전시된 풍경이 되었고, 누군가의 궁금증과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한 배경에 불과했다. 그러니 ‘관광’이라는 말은 여가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배의 언어, 소비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관광’이라는 말이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문득, ‘관광’이라는 말보다 우리가 다시 ‘유람’, ‘순례’, ‘탐승’ 같은 말을 되살린다면, 풍경을 보는 눈과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 제37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를 준비하는 경주 2025년, 경주는 특별한 해다. 제37회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린다. 경주는 이제 세계의 담론을 품는 장소가 된다. 올해는 불국사‧석굴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30주년이자, 보문관광단지 지정 50주년이 되는 해다. 경주의 찬란한 역사와 오늘의 시간이 겹쳐 세계로 뻗어 가는 해이기도 하다. 천 년을 건너온 돌담 끝에 미래를 향한 발자국이 찍힌다. 경주는 한때 폐허의 도시였다. 찬란한 유산은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누리고 돌볼 여유는 없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는 다소 거창한 꿈을 꿨고, 1974년 보문관광단지 개발 사업을 본격 추진했다. 이후 1979년 4월, ‘대한민국 제1호 관광단지’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에게 문을 열었다. 보문단지의 모든 풍경은 이방인의 눈에 경주의 찬란한 역사를 보여줄 것이다. 이제 세계가 경주를 바라본다. 오래전, 일제는 경주를 ‘관광’이라는 이름 아래 파헤쳤지만, 이제 경주는 경주의 언어와 경주의 감성으로 경주를 말한다. 그야말로 오롯이 경주의 시간이다. 보문관광단지는 단지 관광의 장소를 넘어서, 시간을 품은 곳이 되었다. 하루의 기억이 쌓이고, 한 세기의 변화가 겹쳐지는 경주. 경주는 다음 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봄날 벚꽃이 흩날리는 보문호로 천 년의 속삭임이 다시 스며들고 있다.

2025-04-16

마을을 품은 왕버들과 반곡지의 로맨틱 사랑

마을을 품고 있는 저수지 제방 위로 왕버들 노거수 20여 그루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계절 따라 이어지고 펼쳐지는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은 소리 소문 없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제 문화관광부 ‘전국 사진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되었다. ‘허삼관’ 영화가 촬영되었고, 달의 여인, 구르미 그린 달빛, 홍천기, 붉은 단심 등 인기 드라마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늘 한번 가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아내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경북 경산시 남산면 반곡지는 녹색 명소란 말처럼 나무와 물이 어우러진 녹색의 친수 환경이었다. 반곡지는 언제 조성되었으며 왕버들 나무는 왜 심었는지 정확한 연대와 기록은 안내판에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 생각건대 당시 조성 때는 오늘날 이렇게 유명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왕버들은 뿌리가 깊고 강하여 토양을 단단히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처음 저수지를 조성할 때 주민들은 둑의 안전을 위하여 또는 홍수나 집중호우로 인한 흙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하여 심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왕버들은 물가에서 잘 자라며 물을 정화하는 기능도 다른 나무에 비하여 탁월하다. 저수지 주변 마을의 습기를 조절하고 농업용수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심었을 수도 있다. 옛날 농경시대에는 왕버들 나뭇가지를 이용하여 바구니나 농기구 손잡이 등 생활용품을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왕버들은 무성한 잎으로 인해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자연스러운 휴식 공간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곳은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회의를 하며 공동체 집회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강이 없는 마을에 흘러가는 물 모아 저수지 만든 우리 조상들 지혜 탄성 제방둑엔 왕버들 심어 친수공간으로 계절마다 변하는 아름다운 주변 풍광 반곡지 물 속 살랑 드리운 왕버들에 둥지 튼 새들과 생명체 함께 살아가 오늘날에는 그런 이용 공간보다는 새로운 면모로 다시 태어나 주민은 물론 시민의 치유와 휴식처로, 명품 반곡지 왕버들을 보기 위해 먼 곳에서 관광객과 특히 사진작가들이 계절을 넘나들며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 우리 또한 그중에 한 사람이다. 물은 인간의 생존과 생활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역사적으로 인류 문명은 항상 물가에 형성되었다. 농업과 산업, 생활용수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서적 요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중국 문명은 황하강, 인도 문명은 인더스강이 그렇다. 서울의 한강과 대구의 낙동강이 그렇다. 모두 강 유역에 사람이 모여 살면서 문화를 꽃피웠다. 그런데 강이 없는 마을에 흘러 내려가는 물을 모아 저수지를 만들어 이용한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왕버들을 저수지 제방 둑에 심어 녹색 친수 공간을 조성한 것은 특별하다 하겠다. 단순한 수자원 저장 시설을 넘어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친수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계절마다 변하는 주변 경관은 지역 시민과 방문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제공한다. 오랜 세월을 거쳐 자란 나무들은 자연의 시간성을 잘 보여주는 생태적 상징이다. 노거수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며, 저수지와 함께 살아온 지역의 역사이기도 하다. 봄에는 신록과 새싹이 돋아 활력을 주고, 여름에는 녹음과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며, 가을에는 황금빛 풍경을 연출하며, 겨울에는 고요한 정취를 선물한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풍경의 정취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많은 인기 드라마의 촬영지로 선택되었지 않았나 싶다. 특히 낮과 밤에 왕버들이 반곡지 물속에 잠들어 있는 고요한 명상의 모습이라든지, 바람의 잔잔한 물결 아래 춤추는 몸의 동작은 보는 이를 반곡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그뿐이겠는가. 아침을 깨우는 왕버들 나뭇가지에 앉은 새들의 지저귀는 노랫소리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듣기 좋은지 모른다. 나뭇가지를 포롱포롱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의 몸짓은 앙증스럽기까지 하다. 반곡지는 품속에 왕버들 그림자를 품고 사랑을 속삭인다. 왕버들은 반곡지에 가지를 드리우고 얼굴을 어루만지며 사랑의 자장가를 들려준다. 낮이면 둥근 해가 그들의 사랑을 이어주고, 밤이면 하늘에 휘영청 뜬 밝은 달이 그들을 만나게 해 준다. 가끔 바람의 심술로 해와 달을 가리기도 하지만, 구름이 사라지고 나면 또 그들의 사랑은 시작되고 영원히 이어진다. 우리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누구의 심술도 인내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살아간다. 왕버들과 반곡지의 사랑 속에 또 다른 많은 생명체가 숨 쉬며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새들이 나무 위에서 둥지를 틀고, 물가에서는 다양한 수생식물과 곤충이 살아가고 물속에는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뛰놀며 살아간다. 때때로 원앙새가 날아와 사랑을 속삭인다. 물닭과 오리가 찾아와 물속 고기떼를 따라다닌다. 그들은 친구와 적으로 또는 경쟁과 협조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반곡지는 작은 생태계이다. 반곡지와 왕버들은 오늘날에 우리에게는 생태 감수성을 키워주고,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함양하는 교육 교재이자 스승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자연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농촌의 고즈넉한 풍경을 체험한다. 아내와 함께 반곡지 주변 산책로를 따라 걷는 것 또한 황혼의 행복한 인생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시 - ‘왕버들과 반곡지’ 긴 가지로 반곡지를 부드럽게 감싸고 신록을 뿜어내는 왕버들 잔잔한 물결로 왕버들 그림자를 품고 물 향기로 인사하는 반곡지   사랑하는 이여, 너의 그림자 속에 내 마음도 잠들리라 반곡지 은빛 물결에 그대 이름을 새겨본다   사랑하는 이여, 너와 함께한 그 시간이 해와 달을 넘어 영원히 이어지리라. 왕버들 손끝으로 그대 눈빛을 그려 본다   간혹 구름이 질투하여 해와 달을 가두고 연인의 속삭임을 어지럽히려 하겠지 구름은 지나가면 그뿐 반곡지 물 향에 왕버들 아름다움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4-16

사랑·불륜 그리고 출산… '박정희 모가지 따러 온' 김신조 숨져

지난주와 이번 주도 유명 영화배우의 출산, 귀순한 북한 군인의 사망, 중국에 등장한 신종 직업 등 다양한 소식이 인터넷상에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영화감독 홍상수와 오랜 기간 만남을 이어온 배우 김민희가 아들을 낳았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사람들은 둘 사이를 두고 “불륜이다” “이젠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줄 때도 됐다”는 엇갈린 반응을 드러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법이니까. 1968년 겨울. 한국사회를 깜짝 놀라게 했던 ‘1·21 사태’의 주역 김신조 씨가 사망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중년 이상 세대는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20~30대는 그의 이름을 낯설어했다. 요인 암살을 목적으로 하는 북한 무장공비로 남한에 파견된 김신조 씨는 군인·경찰과의 교전 과정에서 살아남았고, 이후 귀순해 사망 전까지 목회자로 활동했다. 암 진단 이후 생활 습관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생존율이 높아지는지를 연구한 결과가 미국에서 나왔고, 결혼식장에서 ‘가짜 신부’ 역할을 하며 생활비를 버는 중국 여성의 이야기도 외신에 소개됐다. 이 뉴스들 역시 네티즌에게 주목받았다. ▲배우 김민희 출산에 “부도덕하다” vs “사랑 인정해야” 배우 김민희가 출산했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다. 그녀는 영화감독 홍상수와 10년 이상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중이다.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영화팬들은 전혀 다른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홍상수 감독이 조강지처를 두고 젊은 여자와 불륜을 해서 낳았으니 축복받은 출산은 아니다”라는 견해와 “사랑을 누가 말릴 수 있나. 이젠 둘의 연애를 인정해줄 때도 됐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형국. 2015년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서 감독과 배우로 만난 홍상수와 김민희는 이후 연인 관계임을 인정하며 해외 영화제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고, 올 초엔 배가 불러온 김민희의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었다. 김민희와의 연애가 세간에 불거지며 홍상수는 30년 동안 함께 생활한 아내에게 이혼 조정을 접수하고 관계 정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홍 감독의 아내는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김민희와 홍상수 두 사람을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이라 비난하는 네티즌들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남녀가 서로 끌리는 건 재채기 같은 것이라 이성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며 둘을 옹호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어쨌건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지, 홍상수 감독이 아내와는 어떤 해결점을 찾아낼 것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영화팬들이 많다.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귀순한 김신조 사망 언필칭 ‘1·21 사태’를 기억하는 노년층들이 적지 않다. 1968년 1월. 북한 무장공비들이 당시 대통령이던 박정희를 암살하기 위해 비밀스럽게 남한으로 향한다. 침투 과정에서 군인·경찰과의 교전으로 대부분이 죽음을 맞았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비가 한 명 있었으니 그가 김신조다. 체포 후 열린 공개 회견에서 기자들이 “우리나라에 온 목적이 뭔가?”라고 물었을 때 “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라 대답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 바로 그 김신조가 지난주 수요일(9일) 사망했다. 향년 83세. ‘1·21 사태’ 이후 귀순해 한국에 정착한 그는 생전에 목회자로 활동해왔다. 다수 언론이 보도를 통해 김신조의 죽음을 알리자, 네티즌들의 반응은 세대에 따라 천양지차(天壤之差)의 모습을 보였다. 1968년 당시 무장공비 침투와 사살·체포 과정을 흑백TV를 통해 지켜봤던 60대 이상의 중년들은 “아직도 급박했던 그때 한국 상황과 체포된 후 김신조의 무섭게 번득이던 눈동자가 기억 속에 선명하다”는 댓글을 남겼다. 반면 2000년 이후 태어난 20대 이하 젊은 네티즌들은 “김신조가 누구에요?” “이 할아버지가 유명한 사람인가요?”라는 반응을 보이며 낯설어했다.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대남 공작부대 소속이던 무장공비들이 서울의 중심인 청와대 지척까지 다가와 국가 안보를 위협했던 ‘1·21 사태’의 여파는 컸다. 교전과 체포 과정에서 종로경찰서장이 숨지기도 했고, 안보 불안을 느낀 정부는 향토예비군과 육군3사관학교를 창설하고, 고교와 대학에 교련 과목을 신설하기까지 했다. 김신조는 결국 한국으로 귀순했지만 삶이 순탄하지 않았다. 북한에 남겨진 가족 걱정에 술에 의존하며 도박에 빠지기도 했고, 죄의식에도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에 의해 신앙생활을 하며 안정을 찾았다는 김씨는 1981년 성락교회에서 침례를 받았고, 1997년 1월 21일엔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목회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암 진단 후엔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꿔야할까? “체중 증가를 경계하라.” “성인은 매주 150~300분 중간 강도의 운동을, 어린이는 매일 1시간 이상 중간 또는 고강도 운동을 하라.” “녹색, 붉은색, 주황색 채소와 콩, 과일, 통곡물을 섭취하라.” “가공육, 설탕이 첨가된 음료, 정제 곡물 식품은 안 먹는 게 좋다.” 미국암학회는 지난 2022년 위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최근 이 가이드라인을 꾸준히 실천한다면 암 환자의 사망 위험을 24%가량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암학회 역학 연구팀이 비흡연·비만 관련 암 생존자 3700명의 생활 습관과 사망 위험을 15년 이상 추적·관찰한 결론이다. 이 내용은 얼마 전 미국 ‘국립암연구소저널’에 게재됐다. “암 진단을 받으면 사람들은 오래 살기 위해 생활 습관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알고 싶어 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올바른 생활 습관이 암 생존율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는 게 연구팀의 부연이다. 관련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암에 걸린다고 무조건 죽는 건 아니구나. 규칙적 생활과 섭식 조절이 암 생존자의 수명을 늘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관심을 드러냈다. ▲중국의 신종 직업 ‘가짜 신부’...수입 적지 않아 “중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결혼이 늦어지면 부모로부터 잔소리를 듣는구나. 40대 미혼인 내 입장에선 이런 직업이 생긴 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최근 중국에서 생겨난 신종 직업(?)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가짜 신부’ 아르바이트다. 얼마 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가짜 신부’ 역할을 하며 생활을 꾸려가는 중국 서남부 청두 출신의 한 20대 여성을 소개했다. 그녀는 지난 7년 동안 20번의 결혼식에서 신부 연기를 했다고 한다. 그 일을 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다. “부모들로부터 결혼하라는 압박이 이어져 고심하는 청년들을 돕고 싶다”는 것. 2018년 자신의 친구가 부모님을 만날 때 대가를 받고 여자친구 역할을 해준 것에서 착안해 가짜 신부 역할로까지 아르바이트의 영역을 넓힌 격이다. 소식을 접한 한국 네티즌들도 관심을 가지며 “신부 역할 대행을 해주면 얼마나 받는지 궁금하다” “결혼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젊은이가 중국에도 많은 모양”이란 댓글을 남겼다. 가짜 신부 역할을 하려면 의뢰인이 원하는 나이와 직업, 학력과 취향 등의 정보를 암기하고 가짜 신랑의 가족들을 만나야 한다고. 신부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의 1회당 보수는 1500위안 안팎으로 한국 돈으론 30만원쯤이다. 물론, 특별한 요구 사항이 있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2023년 중국 대학 졸업자의 평균 임금은 6050위안. ‘가짜 신부’ 역할 4번이면 대졸자 월급과 비슷한 돈을 벌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이건 누군가를 속이는 사기 아닌가”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가속화되는 취업난과 결혼 기피 현상이 중국에서 기이한 신종 직업을 만들어냈다. 유사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서도 ‘가짜 신부’ 아르바이트가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15

단순한 쇼핑 공간 넘어 문화·여가 어우러진 복합공간으로

지난 2월 28일 경산지식산업지구 유통상업시설 용지 10만 9228㎡가 한무쇼핑㈜과 경산지식산업개발(주)이 분양계약을 체결하며 경산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을 구체화했다. 경산지식산업지구와 현대백화점이 개점할 프리미엄 쇼핑몰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며 추진과정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무쇼핑(주)은 현대백화점이 최대지분을 소유한 알짜 계열사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과 킨텍스점, 충청점을 비롯해 ‘김현아’로 불리는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현대 프리미엄 아웃렛 스페이스원(남양주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김포 현대점과 스페이스원(남양주점)은 24년 기준 전국 아울렛 매출 3, 4위를 기록했다. 국내외 경제 침체로 개발 계획 변경·면적 축소 등 우여곡절 겪어 민선 8기 조현일 시장 취임 후 아울렛 유치 서명 운동, 16만명 참여 작년 4월25일 복합경제시설 구축 ‘21차 계획변경안‘’ 드디어 통과 2028년 개점 땐 연간 800만명 쇼핑객 방문 예상, 지역 경제 효자로 ◇경산지식산업지구의 부침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의 경산지식산업지구는 지역의 산업지도를 바꿀 것으로 기대되며 지난 2010년 12월 경산학원연구지구로 지정되며 외국 교육기관을 유치해 세계적 수준의 학원연구도시로 도약을 기대했으나 국내외 경기침체와 외국교육기관의 유치 어려움 등으로 개발계획이 변경되고 면적이 축소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8년 6월 공사준공과 2020년 12월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었으나 준공도 미루어지며 사업면적도 하양읍 대학리와 와촌면 소월리 일원 648만 6530㎡에서 627만 2500㎡과 391만 6666㎡로, 또다시 380만 2621㎡로 축소되며 명칭도 경산지식산업지구로 변경됐다. 현재는 2025년 4월 첫 삽을 뜬 1단계 285만 6285㎡(2020년 12월 준공)와 2020년 11월 착공에 들어간 2단계 95만 3336㎡로 개발되며 건설기계와 기계 부품, 메디컬 신소재, 자동차부품, 금속, 전자부품, 전기 정비, 기계, 의료기기, R&D 등의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험난했던 프리미엄 쇼핑몰 승인 하지만, 경산지식산업지구의 사업이 장기간 진행되면서 대부분 중소기업 위주의 업종 배치와 다양한 일자리 부족 등을 이유로 경산시는 2020년 9월 1단계 17만 7000㎡ 부지에 200여 개의 국내에 유명 잡화 브랜드를 유치하는 세계적인 프리미엄 아울렛을 조성하는 투자유치 양해각서를 경상북도와 ㈜신세계사이먼,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경산지식산업개발(주)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산지식산업지구의 분양을 촉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21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이 아울렛이 건설될 부지가 산업용지로 개발돼 물류·유통단지로 변경은 불가하다는 견해를 밝히며 무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민선 8기 경산시장으로 취임한 조현일 시장은 서비스와 유통의 기능을 포함한 복합 경제산업으로의 전환으로 자급자족 복합도시를 구축하고자 2020년 12월 대형 아울렛 유치를 위한 서명 운동을 펼쳐 16만 명이 서명한 서명부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하며 경제자유구역기획단을 설득할 수 있는 ‘지식산업지구 개발계획 변경안(제19차 개발계획 변경안)’을 마련해 제출했다. 제19차 개발계획 변경안은 1단계에서 2단계 5만 평으로 대형 프리미엄 아울렛 부지를 옮기고 서비스와 유통의 기능을 포함한 복합경제 산업지구 조성으로 정주 여건을 개선해 산업과 여가, 문화가 있는 청년이 찾는 경제자유구역을 만들고, 지역 주력산업인 자동차부품 산업의 기술 고도화 및 미래산업인 자율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고자 미래 모빌리티 복합연구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2023년 12월에 개최된 경제자유구역 심의위원회는 경산지식산업지구 2단계 사업지구 내 일부 산업시설용지와 연구 시설 용지를 유통상업 시설용지와 복합시설 용지로 전환하는 개발계획 변경안을 논의해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조현일 시장과 조지연 국회의원 등을 필두로 끊임없이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에 나서 지난해 4월 25일 경제자유구역위원회가 경산지식산업지구의 R&D와 제조업 중심의 지식산업시설을 지식산업과 서비스, 유통이 결합한 복합경제시설로 변경하는 제21차 개발계획 변경 승인안을 통과시켰다.   ◇현대 경산 프리미엄 쇼핑몰 탄생 개발계획 변경안의 승인에 따라 후속 행정절차인 제26차 실시계획 변경을 추진해 지난해 12월 변경을 완료하고 대형 프리미엄 쇼핑몰 유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프리미엄 쇼핑몰부지를 공개경쟁으로 분양한다는 입장에 따라 지난 1월 경산지식산업개발 주식회사는 유통상업시설용지 입찰공고를 통해 와촌면 소월리 일원 10만 9228㎡를 입찰기준가 565억 8010만 4000원, 입찰 신청 보증금 25억 원의 분양계획을 밝히고 2월 18일을 마감 시한으로 밝혔다. 마감 시한을 앞두고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한무쇼핑과 신세계사이먼이 입찰에 참가했지만, 한무쇼핑이 입찰 기준가 565억 원을 훨씬 웃도는 994억 5000만 원으로 응찰해 낙찰받고 2월 28일 분양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이는 경산지식산업지구 프리미엄 아울렛 부지의 경쟁력을 입증한 것으로 앞으로 현대백화점 측은 이를 대구 경북권 시장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경산 프리미엄 아울렛 경제 효과 경산시는 현대백화점과의 협의로 2028년 하반기 개점할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이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 체류할 수 있도록 문화·여가가 어우러진 복합시설을 확충하는 등 쇼핑·관광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위한 가족 친화 시설물 설치와 매장 동선 배치 등을 통해 교외형 아울렛 매장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으로 타지역 아울렛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무쇼핑과 지속적인 협의를 거칠 계획이다. 인근 상업용지에 다양한 테마시설을 유치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고 인근의 소월지를 관광 자원화하는 계획을, 주변의 관광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에 장시간 체류할 수 있는 경산 시티투어버스와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인 갓바위와의 연계방안도 모색한다. 2028년 현대 경산 프리미엄 아울렛이 개점하면 연간 800만 명의 쇼핑 관광객이 경산시를 찾을 것으로 예상함에 따라 청통와촌IC와 경산지식산업지구(아울렛 부지)를 잇는 연결도로도 개설할 예정이다. 특히 교통체계 개편으로 피크시간의 차량정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현대 경산 프리미엄 아울렛을 운영할 한무쇼핑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킨텍스점, 충청점을 비롯해 ‘김현아’로 불리는 김포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 스페이스원(남양주점) 운영하는 풍부한 경험으로 경산 프리미엄 아울렛을 성공적으로 개점해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건설과 소비지출에 따른 파급 효과로 연간 방문객과 취업유발 효과 1만 3천여 명, 생산유발 효과 1490여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 590억 원을 기대할 수 있어 지역 경제에 미칠 파문 효과가 상당하다. 조현일 경산시장은 “경산지식산업지구 내 10만 9228㎡ 면적의 땅에 경산시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2028년 경산 프리미엄 아울렛의 성공적인 개점을 위해 시 차원의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04-15

개항 100주년 맞은 감포항 ‘해양레저관광 중심지’로 새 도약

경주 감포항이 100년의 물결을 넘어 미래로2014경주 동해안의 관문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한다. 경주의 끝자락, 동해와 마주한 감포. 이 작은 항구는 지난 100년 동안 바다를 향한 경주의 창이자, 수많은 세대가 땀과 희망을 실어 보낸 생명의 선창(船艙)이었다. 1925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그늘 아래 첫 항해를 시작한 감포항은 해방과 전쟁, 산업화, 자연재해의 물결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켜내며 성장해 왔다. 그리고 지금, 감포는 새로운 백년을 향해 다시 닻을 올리려 한다. 감포항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통해, 한 항구가 품고 있는 ‘시간의 결’을 보자. □ 경주 바다에 새겨진 시간의 지도 올해로 100년을 맞은 감포항은 단순한 어항이 아니다. 근현대사의 격랑을 지나오며 지역 정체성을 지켜낸,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문화의 현장이다. 1925년 1월 16일 지정항으로 지정된 감포항은, 1995년 국가 지정항으로 등록된 이후 동해안 수산업의 거점이자 해상 물류의 관문으로 기능해왔다. 경북 연안에서 잡히는 해산물의 주요 집산지로 성장하며, 감포는 지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감포항의 진정한 가치는 단지 경제적 기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곳의 바다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삶과 정서가 깃든 터전이었다. 해녀들의 거친 숨소리, 마을의 제례문화, 해풍을 견디며 축적된 삶의 지혜는 감포를 하나의 독립된 문화지형으로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어촌뉴딜300과 다양한 국비 사업을 통해 항만 인프라가 현대화됐고, 감포항은 보다 쾌적하고 안전한 항구로 변모했다. 최근 들어서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잇달아 강타하며 큰 피해를 입었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고 일상을 회복해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공동체의 회복력과 단결력은 지금도 지역민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 감포항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상징이 되고 있다. □ ‘함께 한 100년, 함께 할 100년’ 경주시는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감포항 일원에서 ‘감포항 100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 행사는 감포항의 역사와 지역 정체성을 기념하고, 미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한 시민 참여형 축제로 마련됐다. 행사 첫날인 25일 오후 5시 45분에는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은 동백나무 기념식수와 타임캡슐 매립으로 시작되며, ‘백년의 구슬’ 퍼포먼스, 불꽃 연출, 주제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주제공연은 샌드아트, 미디어 대북, 트론댄스, 드론쇼 등으로 구성되며 감포항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압축적으로 표현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주민 참여형 행사로 운영된다. 경주시는 개항 100주년을 맞아 지역 어업인과 상인, 청년기업인, 주민 등으로 구성된 ‘감포항 100주년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행사 기획과 운영 전반에 걸쳐 이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준비위원회는 100인의 위원으로 구성됐으며, 기획 단계부터 프로그램 구성, 현장 운영까지 직접 참여하고 있다. 시는 이번 행사를 통해 감포항이 걸어온 100년의 발자취를 되짚고,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방침이다. □ 4일간 이어질 감포항 대축제 감포항 100년 기념행사는 날짜별 특색 있는 주제를 정하고, 전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첫날인 25일은 ‘환대의 날’로, 공식 기념식과 함께 주제공연, 축하공연이 열린다. 이날 무대에는 지역 출신 가수 장보윤과 이수연, 트로트 가수 이찬원이 출연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26일은 ‘청년의 날’로, 젊은 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유튜버 ‘춤추는 곰돌’과 DJ 박명수가 참여하는 EDM 파티, K-POP 랜덤플레이댄스, 청년 대상 콘테스트 등이 예정돼 있다. 27일은 ‘문화의 날’로 지정해 가족 단위 관람객을 위한 공연이 중심을 이룬다. 어린이합창단, 마술쇼, 밴드 공연, 지역 예술인 무대 등 다채로운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마지막 날인 28일은 ‘보은의 날’로, 어르신을 위한 효 공연이 진행된다. 이날은 트로트 가수 박서진이 무대에 올라 기념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행사 기간 상시 운영되는 체험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워터볼, 패달보트, 활어 맨손잡기, 감포항 스탬프 투어, 감포 사진전, 유등 전시, 룰렛 이벤트, 바다라면 증정 등이 마련돼 전 연령층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 세계 향해 다시 출항하는 감포항 감포항은 현재 ‘해양레저관광 중심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바탕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경주시는 관광안내센터 정비, 종합 디지털 안내도 구축, 항만 경관 개선, 수상레저 확대 등 다양한 기반 확충 사업을 통해 감포를 동해안의 핵심 관광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또한 2025년 APEC 정상회의 개최와 연계해, 감포를 포함한 국제 해양관광벨트 조성도 구상하고 있다. 감포의 바다는 언제나 조용히, 그러나 묵묵히 시간을 품어왔다. 고깃배의 닻 내리는 소리, 방파제 너머로 들리는 파도, 새벽 어시장의 분주함은 모두 감포의 시간이다. 그 시간 위에 100년이 쌓였고, 그 시간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이제 감포항은 바다의 기억을 품고, 세계를 향한 희망을 싣고, 새로운 100년을 향해 다시 출항하고 있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감포항 100년은 감포만의 역사가 아니라, 경주의 해양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라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어우러지는 감포항의 가치가 앞으로 경주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5-04-14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가르침을 전해주다

지난 3월 22일 토요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에서 발화된 산불은 강한 바람으로 인해 인근 지역, 안동, 청송, 영양, 영덕으로 빠르게 번져 수만 헥타르의 산림을 태웠고, 30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특히, 영양 답곡리 만지송 등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고운사, 국가유산, 주택, 농업 시설물 등 큰 피해를 보았다. 산불 진화에는 헬기와 인력이 총동원하여 가까스로 진화되었다. 피해 주민들이 일상생활로 되돌아갈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인간의 실수로 재앙을 입었기에 사람은 고통을 참고 견딘다고 하지만, 자연에 살아가는 뭇 생명체는 무슨 죄라고 삶의 터전을 잃고 동료를 떠나보내야 했다. 노거수를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즐거움을 나누는 나에게는 방송을 통한 현장 모습을 보고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직도 산불 진화만큼은 자연의 도움이 필요한데 오히려 비 대신 바람이 불 때면 속수무책이다. 산불 예방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김천 대덕면 조룡리 섬계서원 경내 뒤뜰에 천연기념물 300호로 지정된 유주(乳柱)가 발달한 은행나무가 살아가고 있다. 섬계서원(剡溪書院)에 모신 백촌 김문기 선생이 돌아가신 1400년경에 심은 것으로 보아 나이는 600살, 키 28m, 몸 둘레 12m이다. 그의 앞에 서면 오래되고 거대함에 놀라 저절로 경외심이 발동한다. 그 모습은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스승으로, 친구로 내게 다가온다. 겨울에는 그 무성한 잎을 떨군 채 발가벗겨진 몸에 앙상한 나뭇가지는 바람에 손짓을 보낸다. 겨울은 은행나무의 삶의 쉼표란 생각이 든다. 봄에 작고 연한 잎을 틔워서 여름에 무성한 잎으로 자라 펼치며, 가을에 노란 단풍잎으로 노래한다. 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은 겨울이다. 스스로 그동안 축적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운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이치일지도 모른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겨울은 결코 끝이 아니다. 내려놓음 또한 소멸이 아니다. 빈 가지 끝에는 이미 다음 생명을 잉태하는 눈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무가 잎을 떨굴 때, 그것은 사라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다. 우리도 살아가며 많은 것을 쥐었다가, 때가 되면 놓아야 할 순간이 온다. 그 과정이 허무가 아닌 이유는 내려놓음 속에 또 다른 시작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 은행나무는 말없이 그 진리를 가르쳐 준다. 황혼의 내 삶에 서원 뒤뜰 묵묵히 살아가는 은행나무는 가지려고만 하고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는 나의 욕심에 또 하나의 교훈을 주었다. 겨울 가지 끝에 잉태한 연둣빛 아기는 잔잔한 바람에 고개를 내민다. 희망의 새싹은 이내 몸을 감싸고 왕성한 식욕으로 몸집을 불리겠지. 지금의 알몸에서 세월의 깊이를 느낀다. 굵고 거친 몸은 마치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낸 노인의 손등 같다. 삶의 흔적이 새겨진 주름과도 같은 나이테를 가슴에 품고, 수많은 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면서 몸은 더욱더 단단한 근육질로 변했다. 지난여름 푸른 잎들이 생명의 싱그러움을 노래하는 모습이 보인다. 가을 노란 단풍잎이 갈 바람에 춤추는 모습이 보인다. 계절 따라 성장하고 변하는 은행나무의 모습을 그려 보았다. 특히, 유주(乳株)는 마치 나무가 흘린 눈물처럼 보인다. 긴 세월을 살아오며 품은 이야기들이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지 않고 매달려 있는 듯하다. 그것은 자연의 신비이자 생명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수백 년을 살아온 생명의 조각이자, 세월을 꿋꿋이 견뎌낸 존재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품고 있는 깊은 이야기가,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조용히 감싸준다. 은행나무는 누가 심었는지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이 있는 나무로 유명하다. 가까운 마을에 살고 있는 김녕김씨와 서산정씨 간의 은행나무 노거수의 식재 주체에 대한 서로 자신의 조상이 심었다고 상반된 주장을 하여 법정 다툼까지 하였다고 한다. 은행나무를 김녕김씨 조상이 심었든, 서산정씨 조상이 심었든,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 가꾸고 보호하는가이다. 조선 순조 1802년에 섬계서원을 세울 때 이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터를 잡아 강당과 사당 건물을 배치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나무 밑동에 불이 붙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가 호미로 긁어 불을 껐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왜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서원을 세웠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서원은 조선 시대 유학 교육과 성리학 이념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특히, 섬계서원과 같은 지방 서원들은 향촌 사회의 인재를 양성하는 사설 교육기관이다. 학문을 연마하고 유교적 도덕성을 함양하는 공간이다.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 교육의 상징일 수 있을 것이다. 뿌리를 깊게 내리고 수백 년을 살아가는 모습은 학문 탐구의 지속성과 연륜을 상징하며, 서원의 강학 활동과도 맞닿아 있지 않을까. 선비들이 은행나무 아래에서 독서하거나 토론을 벌이며 사색에 잠겼을 수도 있으며, 이는 자연과 조화롭게 학문을 연마하는 유교적 태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은행나무는 교육교재는 물론 나무 아래 그늘은 교육 장소로 안성맞춤일 것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서원의 높은 뒤뜰에 심어놓은 은행나무는 유생들 뿐만 아니라 마을을 드나드는 주민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서원의 정원에 자리한 은행나무는 단순한 조경 요소를 넘어 유생들의 학문과 인격 수양에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계절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은행나무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며, 강한 생명력과 절개를 지닌 모습은 유학에서 강조하는 군자의 덕목과 일맥상통한다. 세월이 변하여 그때 영광은 어디 가고 은행나무는 홀로 서원을 지키며 가끔 찾아오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섬계서원(剡溪書院)은…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445-1에 위치했다. 1802년(순조 2년)에 지방 사림들이 주동이 되어 각도 사림들과 힘을 모아 김충의공 백촌 김문기 선생(金忠義公白村金文起先生)의 거룩한 충절을 추모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선생의 충절과 학문을 현양하고 배우게 하고자 창건하였다. 상량문은 성균관 대사성 이노춘(李魯春)이 지었다. 세충사(世忠祠)에는 사육신의 영도자로 1456년 단종(端宗) 복위 모의를 하고 순절하신 공조판서 충정공 백촌 김문기(金文起)를 주향으로 봉안하고 같이 순절하신 맏아들 영월군수 여병제공 김현석(呂甁齊公金玄錫)을 배향으로 모시고 있다. 서원 경내 동별묘에는 영남의 삼현으로 불리우는 반곡(盤谷) 장지도(張志道) 선생과 절효(節孝) 윤은보(尹殷保) 선생, 남계(南溪) 서즐(徐騭) 선생을 추배하였다. 1866년(고종 5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당했다가 1899년에 강당을 다시 세우고, 1961년에 세충사를 복원하고 도·시비 1억7천만 원을 지원받아 보수하고 동별묘를 복원하였다. 도기념물로 지정(2007.12.28.)됐고,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유림 행사를 봉행하고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4-09

봉분 없는 서봉총… 잃어버린 역사와 아픔의 흔적

□ 황금 유물이 쏟아진 대릉원 고분들 신라 고분이 펼쳐진 대릉원 일대는 무한한 이야기의 터다. 대릉원 일대는 신라 왕경이 펼쳐졌던 주 무대였다. 그러기에 죽은 후에도 쉬이 떠나지 못했다. 대릉원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죽은 자의 터가 산 자를 불러들이는 부활의 땅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른 봄, 대릉원의 아침은 눈부시다. 나는 이른 시각부터 대릉원을 바삐 오가며 무엇을 찾고 있었다. “어데 찾능교?” 잔디밭에 플라스틱 의자를 놓고 햇볕을 쬐는 세 어른 중 한 어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을 걸 예상하며 스치듯 말했다. “서봉총이요.” 어른이 답했다. “구스타~프!” 나는 놀라 어른을 바라봤다. “여~ 아잉교~” 어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여~ 뒤에.” 어른이 다시 등 뒤 잔디밭을 가리켰다. 그제야 이 휑한 곳이 봉분 없는 서봉총이라는 걸 알았다. □ 고분을 헐어 흙과 자갈을 쓰다 일제강점기 경주의 고분은 파면 팔수록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경주에 고분 발굴팀이 따로 있을 정도로 일제는 고분에 집착했다. 1926년 5월 중순부터 11월까지 50여 기의 고분에 손을 댔다. 이번엔 웅장한 고분(서봉총)이었다. 고분 발굴 책임자 고이즈미 아키오와 조선총독박물관 경주분관 관장 대리직을 맡고 있던 모로가 히사오는 고분 발굴에 건설업자를 끌어들였다. 자금을 후원받는 대신 고분의 흙과 자갈을 파 쓰게 했다. 당시 경주역 기관차 차고 신축·확장 공사에 많은 흙이 필요했으므로 발굴과 건설 모두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중장비에 의해 흙과 자갈이 제거되고, 목관 내부가 순식간에 드러났다. □ 세 번째 신라 금관, 서봉총금관(瑞鳳塚金冠, 보물 제339호) 발굴한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이 무렵, 스웨덴 구스타프 6세 아돌프(스웨덴 베르나도테 왕조 제6대 국왕), 황태자 부부가 일본에 와 있었다. 고고학을 공부한 황태자는 동양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다. 일제는 자신들이 식민 지배하는 조선과 경주를 소개하고 방문을 권했다. 황태자의 환심을 사 스웨덴과 우호를 다질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또한 자국의 고고학적 수준을 세계에 알릴 기회이기도 했다. 황태자가 서봉총 발굴 현장에 도착하자 일제는 직접 발굴에 참여할 것을 권했다. 황태자에 의해 금제 허리띠와 드림장식, 금관이 나왔다. 일제는 한술 더 떠 무덤 이름을 스웨덴의 이름을 따 ‘서전관’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당시 스웨덴을 한자식으로 ‘서전(瑞典)’이라고 했다. 황태자는 정중히 거절했다. 신라 왕의 무덤에 서양의 이름을 붙이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금관에 장식된 새 세 마리가 있으니 ‘봉황총(鳳凰塚)’이라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일제는 이미 봉황대가 있어 스웨덴의 한자식 표기 ‘서전(瑞典)’의 ‘서(瑞)’자와 황태자가 발굴한 금관에 봉황이 있으니 ‘봉(鳳)’ 자를 따 서봉총(瑞鳳塚) 이라 했다. □ 금관 모독 사건 -황금 유물로 치장한 평양 기생 차릉파가 신라 제57대 왕이라고. 서봉총의 발굴 책임자 고이즈미 아키오는 공(功)을 인정받아 1935년 평양부립박물관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서봉총의 유물을 평양에서도 전시할 것을 요청했다. 전시를 마치고 일본 고관대작들과 연회를 열었다. 술에 취한 고이즈미는 서봉총 유물을 여자에게 씌우고자 했다. 사진을 찍어 나중에 책에 쓰겠다고 했지만, 일종의 과시욕이 발동했던 것이었다. 고이즈미는 연회에 동원된 5명의 기생 중 한 명을 지목했다. 22살 평양 기성권번(기생양성소) 출신 차릉파(車綾波)였다. 금관은 물론 서봉총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와 금제 드리개, 금제 목걸이, 금귀걸이, 금팔찌, 금반지에 이르기까지 차릉파가 몸에 걸친 순금 유물의 무게는 무려 2관 800돈(10.5㎏)에 달했다. 일본 고관대작들은 황금 관을 쓴 차릉파를 가운데 두고 마구 웃고 희롱했다. 역대 3명의 여왕이 있던 신라, 술에 취한 그들은 신라 마지막 왕(경순왕, 제56대) 이후 천년 만에 부활한 57대 여왕이 차릉파라며 농락했다. 다음날, 연회에 참석했던 고이즈미와 일본 고관대작들은 신라 왕의 혼이 서린 국보급 유물을 가지고 논 것에 대해 입단속했다. 그러나 금관을 쓰고 갖은 유물을 몸에 걸친 차릉파의 사진이 평양 시내에 나돌면서 9개월 만에 언론 기사화되었다. 국보급 유물을 기생의 액세서리로 전락시킨 사건이었다. 스웨덴 황태자를 모셔 기획 쇼까지 해가며 발굴한 유물에 먹칠을 한 셈이었다. 천인공노할 짓거리에 조선 사람들은 물론 일본인의 분노도 치솟았다. 그러나 차릉파는 ‘왕관을 쓴 기생’이라는 별칭으로 오히려 유명해졌다. 고이즈미 관장은 총독부로부터 재발 방지를 위한 견책성 시말서만 썼을 뿐, 평양박물관장직은 유지되었다. □ 고분 사이에 살았어 여든넷, 나이를 언급하는 어른은 평생 경주를 떠나본 적 없다고 했다. 고분과 고분 사이에 사람이 살았다. “요기, 바로 요, 요 젙에(여기 곁에) 우리 집이 있었어.”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아 고분은 죽은 사람을 묻은 무덤이 아닌 뒤란, 마당 앞에 있는 하나의 언덕이나 구릉처럼 인식되던 때였다. 서봉총을 바라보는 어른의 얼굴에 아득한 세월이 묻어났다. “어릴 적엔 여기서 뛰놀았어. 저 우에도(위에) 올라가고” 어른이 봉황대를 가리켰다. “그때는 고물상들이 많이 돌아 댕깄어. 기와 조각 같은 걸 갖다주면 돈을 줬어.”. “한 10만 원씩 줬어요. 그때 돈으로도 꽤 큰 돈이었어요. 그러니 아들부터 어른까지 뭐라도 더 주우러 다녔지.” “그게 문화재인지도 몰랐어. 못 먹고 없이 살 때라 문화재 생각할 겨를이 어딨노. 그런 거 볼 줄도 몰랐다.” 어른들의 기억 속에서 경주의 과거가 조각조각 살아났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기억의 편린이 되살아나 이어지는 듯했다. “뒷산 어디 가면 그릇이 그치럼(그렇게) 많이 나왔어. 고물쟁이한테 이야기하니 며칠 뒤 트럭을 끌고 와서 싹 다 파갔어. 싹 다.” 어른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 속에는 씁쓸한 기억이 묻어 있었다. 오래전 경주의 고분들은 보호받지 못했다. 무덤 속 유물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봉분도 없는 서봉총을 바라본다. 켜켜이 쌓였을 수많은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낯선 객과의 대화를 잇다 말고 어른은 한참 허공을 바라본다. 어쩌면 어른들에게 고분은 단순한 역사적 유물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과 맞닿아 있는 잃어버린 공간인지도 모른다. 서봉총을 둘러보며 단순한 유적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마주했다. 신라 왕족의 찬란한 황금문화가 깃든 곳이자, 일제강점기 일본의 탐욕스러운 손길이 닿았던 곳. 문화재 약탈의 중심이 되었던 경주의 처참한 역사가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봄날의 대릉원에서 어른들의 기억을 통해 또 다른 경주의 상처를 들었다. 뒷산 어딘가에서 사라졌을 그릇들, 기와 조각을 모아 고물상에 팔던 아이들, 그리고 서봉총 앞에서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던 84세의 어른까지. 수탈의 흔적은 단순히 유물의 행방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서봉총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터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곳에서, 나는 묵묵히 서봉총을 바라본다.

2025-04-09

드라마서 사라진 일타강사… 17세 소녀 살해범 사형 구형

‘한국사 일타 강사’로 불렸던 전한길 씨에 대한 관심은 네티즌들 사이에서 여전히 뜨겁다. 화제를 불러일으킨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이 예고됐던 전씨. 끝까지 드라마 속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많은 이들이 출연 무산의 이유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디지털 공간을 뜨겁게 달군 지난주와 이번 주 화제 가운데 하나였다. 비트코인과 금 가격의 지속적 상승세를 낙관하던 투자자들은 곤혹스러움에 빠졌다. 최근 암호화폐의 가격과 금값이 동반 하락하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가 이어진 것. 그 이유를 놓고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주도한 관세전쟁 탓이다, 아니다’라는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연기는 물론 노래 실력까지 빼어났던 할리우드 배우 발 킬머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영화팬들의 놀라움과 슬픔을 불렀다. 당연지사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추모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해 가을. 순천에서 무고한 열일곱 살 소녀를 무참하게 살해한 박대성에겐 항소심에서 사형이 구형됐다. 검찰만이 아니라 네티즌들 역시 박씨의 악행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전한길이 ‘폭싹 속았수다’에 등장하지 못한 이유는? “과도할 정도로 자신의 분명한 정치색을 드러냈으니, 현실 정치에 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중이 시청하는 드라마엔 나오지 않는 게 맞다”는 의견과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고, 이미 촬영된 드라마의 출연 부분을 편집한 건 과했다”는 견해가 대립했다. 세칭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 씨에 대한 뉴스로 다시 한 번 한국 사회가 시끌벅적이다. 최근 수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화제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전한길 씨는 지난 2023년 자신이 그 드라마에 특별 출연한다는 소식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결과는? 전씨의 출연 장면은 세칭 ‘통편집’ 당했다고 한다.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전씨의 얼굴은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폭싹 속았수다’는 지난달 28일 최종회를 선보였다. 애초 여주인공 금명(아이유 분)이 만든 인터넷 강의업체에 단역으로 출연할 것이 예상됐던 전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 TV쇼 부문 국가별 순위에서 한국, 베트남, 태국, 대만,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1위에 오른 흥행작. 여러 언론 매체의 보도를 종합하면 “수준 높은 작품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편집과 재촬영을 진행했다”는 게 넷플릭스의 입장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한길 씨의 출연 장면 방영이 무산된 게 과연 그 이유 때문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다. 물론, “편집된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어쨌거나, 전씨 관련 뉴스는 그게 정치적이건, 비정치적이건 ‘탄핵 정국’이 뜨거워진 지난달부터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파면 선고가 내려진 4월 초순까지 인터넷에서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비트코인과 금은 필승불패라고 믿었는데…” 비트코인과 금(金). 당분간 흔들림 없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던 이 2가지 투자자산의 가치가 맥없이 꺾이고 있는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지난 주말엔 ‘안전자산 중 안전자산’으로 대접받던 금의 가격이 3%가량 하락했다. 4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6월 인도분 금 선물 종가는 온스당 3024.2달러. 이전 거래일보다 2.9%p가 내렸다.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 투자시장에서의 암호화폐 가격도 내림세다. 아직은 ‘폭락’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투자자들이 마냥 안심할 상황도 아닌 것 같다. 7일 비트코인은 8만 달러선이 무너졌다. 이 또한 전날 가격보다 7%p 이상 떨어진 수치다. 지난주 트럼프 정부가 관세정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8~9만 달러 수준은 지켰으나 이번 주 들어 그보다 더 하락한 것. 이런 형국이니 네티즌들 사이에선 “금과 비트코인은 필승불패라고 여겼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란 푸념이 나온다. 일부 투자 전문가들은 금값과 비트코인 가격 하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러온 관세전쟁이 미국만이 아닌 다른 국가들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소 성급하지만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와 금을 사놓은 사람들도 “만약 판다면 언제 팔아야 손해를 덜 볼 수 있을까”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오고 있다. ▲발군의 연기력 보여준 배우 ‘배트맨’ 발 킬머 사망 ‘배트맨3-포에버’ ‘탑건’ ‘모스크바 제로’ 등의 작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영화배우 발 킬머가 죽었다. 향년 65세. 미국의 각종 언론매체는 ‘발 킬머가 지난 4월 1일 오후 로스앤젤레스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는 보도를 긴급 타전했다. 그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팬을 가지고 있는 유명인. 소식을 접한 영화팬들은 “지구와 인류를 구하던 슈퍼 영웅도 죽음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라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며, “그다지 길지 않은 65년의 삶이었지만, 좋은 배우로 오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라 추모하고 있다. 발 킬머는 영화 ‘더 도어즈’를 통해서는 ‘불멸의 록커’ 짐 모리슨(1943~1971)으로 분해 연기력만이 아닌 빼어난 노래 실력까지 보여줬다. “영화 사운드 트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그의 가창력은 발군”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곱슬거리는 금빛 머리칼에 남성미 진하게 풍기는 외모를 가진 그는 젊은 시절엔 수백, 수천 명의 소녀 팬을 몰고 다니기도 했다. 할리우드에선 출연 영화 1편당 수천 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몸값 비싼 배우’로도 이름이 높았다. 강한 자존심과 쉽게 꺾이지 않는 고집 탓에 영화 촬영 때 감독들과 불화하기도 했지만, 그를 잘 아는 이들은 “실제 마음은 양처럼 유순한 사람이 발 킬머”라는 또 다른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검찰, 17세 여학생 살해범 박대성 질타하며 사형 구형 지난해 9월 26일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길을 걷던 17세 여학생을 무참하게 살해한 박대성이 항소심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1심에선 무기징역이 선고됐었다. 지난 목요일 광주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박씨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해달라며 구형 이유서를 읽었다. 검찰 측의 구형 이유가 설득력과 감정 소구력이 높아서인지 네티즌들 사이에서 “흉악범에게 엄정하게 죄를 묻는 빼어난 문장”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 정도 호소력이면 검사가 시(詩)건, 소설이건 어떤 글을 써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까지 보였다. 박대성이 사형 당해 마땅한 이유를 읽은 이날 검사의 의견을 요약하면 이렇다. “국민들은 부유하고 강한 힘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에 앞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꾼다. 판사와 검사가 매일 사건 기록에 빠져 사는 근본적 이유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다. 17세 여학생이 길을 가다 영문도 모른 채 흉기에 찔려 사망한 사건을 보고 서민들은 내일의 희망조차 잃어가고, 네티즌은 피고인도 똑같이 당해야 한다고 분노한다. 꿈을 펼치지도 못한 피해자를 박대성은 개인적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잔인하게 살해했다. 살인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 받는 세상이라면 오늘의 행복을 미루고 노고를 감내하는 국민들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 항소심 재판이 열린 날 박대성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죄송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최후 진술했다. 이에 다수의 네티즌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살인자 스스로도 알고 있으니, 우리가 용서할 이유가 없다. 엄벌만이 정의를 세우는 길”이란 댓글을 남겼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08

낙동정맥 명산에게 인생철학을 배웠다

‘숲과 문화반’ 단체와 함께 겨울의 끝자락에서 봄의 문턱을 즈려밟고 포항 내연산 보경사를 둘러보고 계곡을 타고 선일대에 올랐다. 계곡 여기저기에 기암괴석을 빚어놓은 계곡물의 예술적 감각에 더하여 장인정신에 놀랐다. 부드럽기 그지없는 물이 수천 년을 한결같이 모난 돌과 바위를 갈고 다듬어 몽돌과 기암괴석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조각 예술품을 전시해 놓았다. 눈길이 자석처럼 빨려들었다. 그 듬직한 무게감과 믿음직스러움에 감동했다. 겨울 찬바람이 계곡 입구를 막아섰다. 미인송이 우리를 눈짓하여 샛길로 피해 오라고 했다. 계곡물을 마을로 끌어들인 수로는 얼음이 꽁꽁 얼어 옷소매를 여미게 했다. 하지만 향긋한 솔향에 취해 추위를 잊고 감추어놓은 심곡의 속살을 무례하게 훔쳐보았다. 딴 세상이다. 청아한 물소리가 들린다. 얼음 녹는 소리다. 따스한 햇볕 스며드는 소리다. 생명을 잉태하는 숨소리다. 봄을 부르는 희망의 찬가를 들으면서 꾸준함의 발길은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고 올라 마침내 선인이 산다는 선일대에 올랐다. 선일대(仙逸臺) 바위에 뿌리를 내린 일송(一松), 태초에 흙 한 줌에 희망을 걸고 뿌리를 내리니 하늘도 감동하여 비바람에 흙을 실어 보냈나 보다. 바위를 감싸고 있는 그 힘차고 깊은 뿌리가 감동적이다. 선일대 난간에 환한 미소 띤 황혼의 얼굴들, 산을 배경으로 한 촛대 바위 절벽 위 선일대 소나무 노거수, 삼척갑자동방삭(三尺甲子東方朔)이어라. 삼천 년을 하루 같이 살아가는 선일대 소나무, 기암괴석의 절벽에 숨어 살아가는 소나무, 늘 푸름을 잃지 않고 우리를 맞이한다. 그 늠름한 장수의 비결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끝자락에도 이곳을 탐하고 올해 또다시 이곳을 탐하여 오르니, 평소 뻣뻣한 허리는 유연해지고 접혔던 몸통은 펴졌다. 놀랍다. 선일대 노송이 마시는 공기를 마시고 바람과 계곡물 소리, 자연의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기분마저 최상이니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적셨다. 선일대 바위 소나무를 선인송(仙人松)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지어주고 경외감을 표했다. 내연산은 포항 송라에 있는 낙동정맥을 올라타고 있는 명산이다. 동해를 바라보면서 그 산자락은 유유히 월포리 해변에 발을 담그고 있는 형국이다. 그 깊은 계곡의 초입에 신라 시대 창건한 명찰 보경사를 품고 있다. 특히 관음폭포는 주변 암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독특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이 이곳을 배경으로 한 산수 실경화에 그려 놓은 절벽의 노송은 지금도 늘 푸름을 자랑하며 굳건히 살아가고 있다. 그 살아가는 위치 또한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가 하면, 흙 한 줌도 물 한 방울도 담기 어려운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무한한 울림을 주었다. 누가 심고 가꾸고 보호한다고 해서 이런 소나무를 탄생시킬 수는 없다. 그 스스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에서 경외감을 표했다. 보경사 경내에는 국보급 보물도 있고 문화재도 여러 점 있지만,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대웅전 앞뜰에 5층 석탑과 함께 있는 소나무 노거수이다. 나이 300살로 추정되며 키 7m,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 둘레는 3.65m나 되었다. 그 자태의 늠름한 모습의 아름다움을 그 어떤 글로써도 표현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굵고 거친 살결은 오랜 풍상을 견뎌낸 흔적이며, 마치 굽이치는 파도를 닮은 뒤틀린 가지들은 수많은 계절을 지나오며 자연이 빚어낸 걸작이다. 부처님의 자비를 품은 소나무다. 고결한 뿌리 깊이 내려 세월을 품었고, 우람한 줄기 휘돌아 자비를 말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지혜를 머금은 듯, 굽이굽이 감싸안은 모습은 곧 연민의 손길이라. 구도자의 길을 비추는 푸른 기운, 속세의 번뇌를 거두어 안식의 그늘을 내리시니, 그 아래 서니 바람조차 불경을 읊고, 가지마다 자애로운 미소가 깃들어 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자비의 소나무 그 모습의 아름다움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닮았으니, 기도하는 중생 평안과 해탈을 얻는다. 수관은 동산에 떠오르는 보름달의 모습이요. 우람한 몸통은 하늘로 승천하는 용틀임의 모습이다. 보름달 휘영청 밝은 밤이면 분명히 아미타불의 환생이라. 시간을 초월한 신비로운 존재, 수많은 불자의 염원이 깃든 성스러운 염원의 공간이다. ‘숲과 문화반’을 지도하는 박용구 경북대 명예교수님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소나무 또한 깨달음의 아미타불을 줄여 아미송(阿彌松)이라 고유의 이름을 지어 칭송하였다. 또한 경내에는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자연유산 탱자나무 노거수가 있다. 나이 400살, 키 6m, 몸 둘레 1m, 지상 약 160cm에서 가지가 갈라져 원형으로 자라고 있다. 내가 처음 보았을 때는 두 그루였는데, 한 그루의 안부를 사찰에 여쭈어보았더니 태풍으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예로부터 탱자나무는 사찰에 악귀를 막아낸다는 속설이 있는데 이 탱자나무 또한 그러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장수하는 탱자나무는 그리 흔치 않은 관계로 귀히 여기고 있다. 작은 부처가 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장생과 건강을 지켜주고 있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숲과 나무를 보며 인생을 성찰하고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 불교의 처처불심(處處佛心)과 도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처럼,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찾고 스스로 돌아보는 삶, 즉 숲과 나무는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우리에게 인생의 길을 알려주는 철인과 같다. 나무는 오랜 기간 천천히 성장하며 깊이 뿌리를 내린다. 이는 우리에게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기보다 꾸준히 노력하고 뿌리를 내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나무처럼 우리의 삶에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하지 않을까?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는 단단하게 땅에 박고 살아간다. 이는 삶에서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는 내연산 보경사를 둘러보고 계곡을 탐하면서, 절벽 바위 위나 틈새에서 살아가는 소나무와 경내의 아미송(阿彌松), 그리고 장수한 탱자나무를 통해 인생철학을 배웠다. 숲과 나무에 관한 고대 철학과 종교 숲과 나무는 우리 삶의 거울이자 깨달음의 원천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소요학파는 자연을 관찰하면서 이성과 논리로 삶을 탐구했다. 숲속을 거닐면서 사유하고 토론을 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산책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식물사회의 균형과 조화를 배우고 중용의 철학을 중시하여 지나침과 부족함을 피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했다. 스토아학파 제논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감정을 초월하고 초연한 태도를 유지하는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강조했다. 나무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릴 뿐, 뿌리를 깊게 내리며 인내한다. 인간도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는 삶을 주장했다. 그리고 불교에서 처처불심(處處佛心)이라고 하여 모든 사물과 자연 속에서 부처의 마음과 깨달음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강한 나무는 바람에 꺾이고, 유연한 풀은 바람을 따라 휘어지지만, 다시 일어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유연함과 무집착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도교에서는 무위자연이라고 하여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라 했다. “나무는 성장할 때 억지로 가지를 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자라난다. 자연스러움이 곧 도(道)”라고 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4-02

시간을 거슬러 올라 신라의 황금빛 ‘금관’ 과 마주하다

□ 신라의 빛 금관 경주의 대지에는 봄기운과 신라의 향기가 함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저 멀리 무덤들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그곳엔 신라의 왕들이 누워 있고, 나는 신라의 왕들이 걸었고, 지금의 경주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을 따라 우리들의 빛을 만나러 간다. ‘금관’, 떨림이 일었다. 과연, 천 년의 시간을 넘어 그 찬란한 빛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황금빛 시간의 조각을 만나기 위해 신라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국립경주박물관 어둑한 전시실, 차분한 어둠 한가운데 금관이 빛나고 있다. 유리관 속 금관은 마치 천년의 시간이 그대로 걸어 나온 듯하다. 시간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신비로운 빛. 신라 왕들은 왜 이토록 화려한 금관을 머리에 썼을까.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아니면 하늘과 신에게 가닿고자 하는 염원의 상징이었을까? 금관의 가지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뻗었고, 가지 끝에 달린 푸른 곡옥(曲玉)은 신라 사람들이 꿈꾸던 영원의 세계를 담은 듯 푸르다. 죽어서도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을까. 죽어서도 나라를 다스리며, 하늘과 신에게 기원하고자 했을까. 황금으로 빚은 금관은 태양이 녹아내린 듯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섬세하다. 빛을 머금은 금판 위에 새겨진 작은 무늬들은 마치 신라의 바람과 빛과 아지랑이와 물결을 담아낸 듯 일렁인다. 신라인들은 금으로 태양을, 옥으로 생명을 표현했다고 한다. 흔들리는 곡옥은 풀처럼 흔들리고, 금관을 둘러싼 장식은 별처럼 반짝인다.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금관은 단순한 치장의 장신구가 아닌 하늘과 땅, 생명과 죽음, 온 우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성한 상징물이었으리라. 신라 금관은 현재까지 모두 6개가 발굴되었다. 1921년 집터 수리 중 나온 최초의 금관총금관을 시작으로 금방울이 장식된 금령총금관, 그리고 스웨덴 황태자가 발굴에 참여한 서봉총금관, 셋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천마총금관과 황남대총금관은 1970년대 초, 우리 고고학 기술로 세상에 나온 금관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1972년쯤 도굴범들이 교동의 폐고분을 도굴하여 숨기고 있던 것을 되찾은 교동금관이다. 이중 금령총금관과 황남대총금관은 중앙박물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럼, 금관은 어디서 어떻게 발굴되어 현재의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금관이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노서동 집터 공사 중 나온 첫 금관 -금관총 금관(金冠塚 金冠, 국보 제87호) 일제강점기인 1921년 9월, 경주 노서동 중심가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파란빛을 띠는 게 아주 고급스러웠다. 지나던 일본 순사 미야케 요산(三宅與三·삼택여삼)이 눈여겨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봉황대 아래 언덕을 가리켰다. 미야케는 다급히 그곳으로 갔다. 인근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박문환(朴文煥)이 주막 뒤뜰을 넓히고 돋우느라 언덕의 흙을 파다 쓰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심상치 않은 파편들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미야케는 박문환에게 더는 흙을 파지 못하게 하고 곧바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경주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경찰서장 이와미 히사미쓰(岩見久光·암견구광)는 바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촉탁 직원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제록앙웅)에게 연락했다. 둘은 곧바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둘은 지독한 유물 수집가로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촉을 느꼈다. 규정상 현장을 보존하고 총독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와미와 모로가는 모든 절차를 무시했다. 그리고 경주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경주고적보존회 촉탁 와타리 후미야(渡理文哉·도리문재)와 경주보통학교장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대판금태랑)를 불렀다. 그리고 넷이 직접 연장을 들고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발굴에 들어갔다. 모로가와 와타리가 직접 채굴하고 경찰서장 이와미와 경주보통학교장 오사카가 채굴 상황을 기록하고 발굴된 것의 분류와 정리를 맡았다. 매장 주체부가 드러났다. 모로가의 눈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금관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막 드러난 신라능묘의 황금관을 눈앞에 두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꿈같았다. 뒤이어 비취색 곡옥과 금사슬, 금허리띠, 금귀걸이 등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황금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유리그릇 편과 구슬목걸이 등 매우 귀중한 유물도 뒤를 이었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었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경주 군수 박광렬(朴光烈)이 다급히 현장을 찾았다. 파헤쳐진 능묘는 처참했다. 피장자가 묻힌 곳까지 마구 연장질을 해댄 현장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 조상숭배를 금과 옥조로 여기며 살아왔거늘 조선의 정신을 뿌리째 흔드는 야만적인 행태에 치가 떨렸다. 군수는 상부에 보고하여 지시와 절차에 따라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선인인 경주 군수의 말은 무의미했다. 그들은 보고 선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수를 철저히 따돌렸다. 군수는 이를 두고 볼 수만 없어 경상북도지사에게 긴급 보고했다. 도지사는 도청 직원을 급히 파견하는 동시에 조선총독부에도 긴급 전문을 보냈다. 하지만 이와미와 모로가의 막무가내 행실보다 모두 한발 늦었다. 발굴은 2~3일 만에 비전문가들에 의해 졸속으로 끝이 났다. 경주경찰서장이 법령에 따라 경무총장을 거쳐 조선총독에게 즉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모두 무시하고 연장부터 들이대 무단 채굴한 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현장 보존은 더더욱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때 모로가는 마치 모든 권한을 쥔 것처럼 주도했다. 뒤늦게 총독부에서 정식 파견된 일본인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매원말치)와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소천현부)는 절차와 방법을 무시한 난폭한 수습에 적잖은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신라 금관 최초 발굴’이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특종감을 찾았으니, 일제의 입장에선 대만족이었을 것이다. 일제는 환호했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세계 유일한 낯선 형태의 금관을 두고 일제는 자신들의 세기적 최고의 고고학 성과물로 자랑했다. 세계의 이목이 일본이 식민 지배하고 있는 조선, 조선의 경주라는 도시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에 쏠렸다. 금관의 출현은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사였다. 모로가는 흡족했다. 금관은 자신의 촉이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물이었으니까. 일제의 야욕은 경주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고분들을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학술적 조사와 가치에 중심을 둔 게 아닌, 오로지 묻혀 있을 부장품에만 쏠려 있었다. 많은 전리품과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보물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 식리총과 금령총을 열어라 -금령총금관(金鈴塚金冠, 보물 제338호) 한번 재미를 본 모로가의 고분에 대한 야욕은 더 커졌다. 1924년 4월, 사이토 마코토 총독(齋藤實·재등실, 제3·5대 조선총독)이 조선 남부 시찰차 경주로 왔다. 모로가는 사이토 총독과 봉황대에 올랐다. 그리고 남쪽을 바라보며 섰다. 봉토가 많이 손상된 고분 2기가 보였다. 옹기종기 들어찬 민가 사이의 고분은 미관에도 좋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을 못 이기고 이미 많이 파괴된 고분을 두고 모로가는 넌지시 발굴의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1923년 9월, 일본 본토 관동대지진으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던 조선총독부는 소극적이었다. 모로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로가의 집요한 계책에 총독이 그리하라 일렀다. 이는 총독이 사적 자금을 내어 허락한 것이었다. 또 다시 고분들은 마구 파헤쳐졌다. 총독이 허락한 발굴이라는 명분 아래 모로가는 기세등등했다. 1924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 위원이자 현장 책임자인 우메하라 스에지와 고이즈미 등이 인부들을 대동해 노동동의 고분(식리총(飾履塚), 금령총(金鈴塚)) 2기를 파기 시작했다. 원형이 크게 손상된 고분이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금관이 나온 것이다. 금관엔 금방울(金鈴·금령)이 달려 있었다. 금령총금관(金鈴塚金冠, 보물 제338호)으로 이름 붙였다. 다른 한 곳에서는 장례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신발인 금동식리(金銅飾履)가 나왔다. 어디 이뿐인가. 금제관드리개·가는고리금귀걸이·유리구슬목걸이·은제허리띠와 띠드리개·은팔찌·철제고리자루큰칼 등도 함께 쏟아졌다. 금관이 작은 걸로 봐서 어린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이처럼 많은 황금이 쏟아진 것이다. 자신의 예측이 적중하자 모로가는 환호를 질렀다. 짜릿했다. 황금 유물에 심취한 모로가는 점점 경주에서 절대적인 문화 권력자가 되고 있었다. 한편 경주에는 일본인들이 들끓었다. 모로가 외에도 관학자를 비롯하여 황금이 쏟아진다는 소문을 듣고 자칭 고고학자라며 떠들고 다니는 아마추어 유물 수집꾼들이 득실댔다. 금관의 출현으로 경주는 유명세를 탔지만, 반면 도굴범들이 들끓는 도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스웨덴 황태자가 참여한 ‘서봉총’ 이야기와 ‘신라금관 모독’ 등의 이야기는 ‘신라금관’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2025-04-02

서울 한복판 싱크홀 깜짝… 산불 속 새끼 지킨 ‘금순이’ 감동

산불이 사람들의 두려움과 걱정을 부른 지난주였다. 재산 피해는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불길과 연기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화마에 위협당하는 새끼들을 구한 진돗개의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재난은 서울 강동구에서도 일어났다. 도심 한가운데 생겨난 싱크홀이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던 오토바이 운전자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 많은 네티즌들이 그를 추모했다.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금값에 투자자가 몰린다는 뉴스와 치명적인 기생충 감염을 불러올 수 있는 민물고기 섭식에 대한 위험성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한 주였다. ▲ 극악한 산불 속에서도 새끼 지킨 진돗개의 모성 자식에 대한 사랑과 보호본능은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쉽사리 잡히지 않고, 주변 일대를 지옥처럼 만들고 있었던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소식 하나가 전해져 네티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얼마 전 동물구조단체 ‘유엄빠(유기 동물의 엄마 아빠)’는 “산불이 타오르는 곳에서 쇠줄에 묶인 진돗개가 새끼를 지키려고 자신을 희생하며 안간힘을 다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렸다. 사연을 요약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쑥대밭으로 변한 의성 화재 현장에서 새끼들과 함께 발견된 진돗개 한 마리. 그 개는 뜬장(바닥까지 철조망으로 만들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공간) 속 쇠줄에 묶여 있었다. 그러니, 불을 피하기가 힘든 상황. 그럼에도 그 개는 뜨거운 불길에 위협당하는 새끼들을 지키려고 피부가 찢길 정도로 필사적 몸부림을 친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어미 개의 그런 노력과 희생 때문이었을까? 새끼 한 마리는 죽었지만, 살아남은 나머지 강아지들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유엄빠 회원들은 모성을 지킨 이 진돗개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새끼들을 지켜낸 엄마”라며 ‘금처럼 귀하게 살라’는 뜻을 담아 ‘금순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고 한다. 뉴스를 읽은 네티즌들은 “인간을 향한 개의 충성심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식 사랑까지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금순이와 새끼 강아지들이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하길 바란다”는 등의 의견을 기사 댓글을 통해 남기고 있다. 극단적 상황에선 사람이나 짐승이나 본질이 드러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모성(母性)’이란 동물의 보편적 본성에 가까운 게 아닐지. ▲ 오토바이 운전자 삼킨 ‘싱크홀’… 안타까운 죽음 나라를 걱정하는 비탄의 목소리가 지난 주 다시 한 번 인터넷 공간을 뒤흔들었다. 이런 의견이다. “경북, 경남, 경기 할 것 없이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심각하게 어지러운데, 싱크홀은 또 뭔가. 거기서 사람이 사망했단다. 대체 우리나라엔 안심할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 걸까?” 인재라고 해도 부정하기 힘든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산불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또 다른 불의의 사망 사고가 발생해 네티즌들이 추모의 말을 남기고 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생긴 싱크홀 탓에 그곳에 빠진 오토바이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강동소방서는 지난 주 화요일 오후 1시경 “싱크홀에 매몰된 30대 남성이 오전 11시 22분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관계 당국은 사고 직후 17시간에 걸친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싱크홀(sinkhole)’이란 지반이 침하돼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나 웅덩이가 생기는 현상을 지칭한다. 싱크홀의 크기는 지질의 특성과 발생 원인에 따라 다양한데, 작게는 폭 1m 이내에서부터 큰 경우 도시 지면 하나를 전체적으로 덮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게 생기기도 한다. 싱크홀의 위험성은 이미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제작된 여러 편의 재난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온 오토바이 운전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관련 기사의 댓글을 통해 “죽음은 누구도 예상 못한 곳에서 불현듯 닥친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며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오토바이 운전자분의 명복을 빈다”는 의견을 전했다. ▲ 연일 오르는 금값… 당분간 ‘불패신화’ 이어갈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엔 현금보다는 금에 투자하는 게 상책이 아닐까?” 금값이 지속적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과열 양상을 경계하는 전문가들이 없지 않지만, 그것도 잠시뿐. 걱정 섞인 목소리는 연일 오르는 금값에 소리 없이 묻히고 있는 상황이다. 불과 얼마 전엔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先物·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가격은 온스 당 304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44만원에 육박하는 거래가다. 이 수치는 연초보다 14%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금값의 최고가 경신은 올 한 해만 14번이나 있었다. 미국에서의 거래가가 치솟자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는 국내 금 투자자들도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중순 국내 금값 폭등 이후 “곧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는 전망이 없지 않았으나 그 예측은 무색했다. 3월 말 한국거래소에서의 금값은 1g당 14만3000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가파르건 완만하건 매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한 달쯤 오르고 내리는 걸 반복하던 한국의 금 시세는 이제 국제시장에서의 거래가와 거의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부연. 그러나, 이것도 단기 예상에 불과하다는 평가와 함께 “금값의 상승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서민들은 한 돈짜리 금반지를 돌잔치에 선물로 가져가는 것도 부담스런 시대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일까? “사두면 오를 걸 뻔히 알면서도 금을 살 돈이 내게는 없구나. 결국 큰손 투자자들만 금으로 떼돈 버는 세상이 온 것 같네”라고 자조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 민물고기, 익혀 먹지 않으면 심각한 감염병 부를 수도 “요즘도 민물에 사는 잉어를 날것으로 먹는 사람이 있나? 위험한데…” 얼핏 보기엔 맑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물 속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를 익혀 먹지 않으면 심각한 기생충 감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5대강 주변 지역민 2만6958명을 대상으로 ‘장내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생충 감염률이 4.5%로 집계됐다고 한다. 기생충별 감염률은 간흡충 2.3%, 장흡충 1.9%, 편충 0.2% 순으로 드러났다. 특히, 낙동강과 섬진강 유역 일부 지역(경북 안동, 경남 하동, 전남 구례)은 10% 이상의 높은 감염률을 드러내 경계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자료에 의하면 하동 주민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12.6%, 구례 주민은 11.7%, 안동 주민은 10.3%로 조사됐다. 이중 간흡충은 식품을 매개로 하는 기생충으로 유행 지역 하천의 자연산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다. 간흡충은 만성적인 담도 관련 질환을 일으키며, 악화되면 담관암까지 불러올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5대 강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영산강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도 장내 기생충 감염병을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5대강 주변 지역 39개 시·군 주민 2만4000명을 대상으로 간흡충 등 장내 기생충 감염 실태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감염 걱정을 없애려면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익혀서 먹는 게 최선의 방법”이란 말을 전하고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01

KTX 개통으로 더 가까워진 문경… ‘찻사발 축제’도 한걸음에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명예문화관광축제인 ‘2025 문경찻사발축제’가 오는 5월 3일부터 5월 11일까지 ‘문경찻사발, 새롭게 아름답게’라는 주제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일대에서 열린다. 매년 4월 말에 축제를 시작했던 기존 찻사발축제와 달리 이번 축제 일정은 5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시작되고, 중부내륙고속철도인 KTX 문경역 개통과 시내버스 무료화로 더 많은 관람객이 이번 축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 망댕이 가마와 발물레를 문경 도자기의 정체성으로 하고, 일상생활 자기 대중화를 목표로,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를 선보이고, 도자기 빚기 시연, 전시·체험, 특색있는 부대 프로그램으로 축제장을 가득 채울 계획이다. □ ‘문경시 홍보대사’가 참여하는 알찬 개·폐막식 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대망의 축제 첫날인 개막식에는 문경시 홍보대사인 웅산, 박군, 영기, 주미, 윤윤서가 출연한다. 문경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대사들로 구성된 알찬 스타 출연진들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며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안 광화문 주무대에서 열릴 폐막식에는 최근 현역가왕2 우승을 차지한 박서진이 참여하며 축제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줄 예정이다. □ MC와 함께하는 양방향 소통 도자기 시연 ‘사기장의 하루’ 축제의 주인공으로서 오랜 시간 축제에 참여해 온 문경 도예가들의 시연 행사가 더 크고 잘 다듬어진 공간에서 진행된다. 기존의 작고 일방적인 무대 시연에서 더 나아가 MC와 문답하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작가들의 개성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광화문 주무대에서 ‘사기장의 하루’가 열린다. 또한 이번 축제의 외국 작가 초청을 통해 참여하는 ‘자사호의 도시’ 중국 이싱시 작가들과 ‘도자기 도시’ 중국 경덕진시의 작가들의 시연도 함께 준비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 새로운 기획 찻그릇 ‘우려나눔이’와 생활자기 판매 확대 작년부터 시작된 기획 도자기인 커피 사발에 이은 새로운 기획 도자기 이벤트를 올해도 준비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작가들의 공모를 통해 개완 형태의 기획 찻그릇이 선정돼 ‘우려나눔이’라는 별칭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 또한 요장별로 한층 더 다양하고 실속 있는 가격대의 생활자기 라인업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이끌 예정이다. □ 더 새로워진 ‘축제패스권’과 체험·쉼터 공간 확대 요즘 축제의 트렌드인 ‘체험’과 ‘역할 부여’를 위해 축제패스권(판매가 1만 5천 원)에는 찻사발 테마를 접목한 야외방탈출 미션과 요장투어가 새롭게 추가됐다. 또한 축제장과 문경새재 일대의 소비 진작을 위한 문경사랑상품권(1천원)도 지급해 패스권 구성을 다양화했다. 광화문과 저잣거리 일대에는 편하게 쉴 휴식 공간과 체험거리를 확대, 오랜 시간 축제장에 머물며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 야간 프로그램 도입과 가족 친화 행사 확대 친환경 캠핑과 피크닉을 합친 새로운 야간 프로그램인 친환경 캠크닉을 문경새재 1관문 앞에서 어린이날에 선보인다. 문경새재의 고즈넉한 날씨와 함께 분위기 있는 무대 공연까지 예정된 이번 야간 프로그램은 현장 접수로 관람객들에게 보고 쉬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어린이 행사로 ‘EBS 이벤저스’ 특집 공연과 가족 참여형 게임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찻사발 테마에 접목돼 축제장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어버이날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할 스냅사진찍기 이벤트도 준비하며 가족친화형 행사를 확대했다. □ 축제장 전역 활성화 오픈세트장 전체를 사용하는 넓은 축제 공간의 장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축제장 활성화 방안도 마련됐다. 축제장 입구와 광화문 주무대에 설치될 키오스크는 주요 작가들의 프로필과 축제장 안내 지도를 표현하며 더 편하고 쉽게 관람객들이 축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롭게 설치했다. 특히 광화문 주무대 중심으로 행사가 이어지되 전시존과 판매존, 쉼터, 먹거리까지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고, 주요 길목의 바닥에 표시될 로드웨이는 주요 지점에서 더 나아가 축제장 구석구석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기능하며 관람객들의 세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준비됐다. 김선식 축제추진위원장은 “축제의 변화와 도약을 위해 우리 작가들부터 나선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축제를 기획하여 준비했다”며 “올해는 기획찻그릇인 ‘우려나눔이’와 새로운 개성 있는 작품들로 도예 산업의 부흥과 지속적인 축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작년 말 KTX 문경역 개통과 올해부터 시작된 시 단위 최초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정책으로 더 많은 분이 축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축제는 투자라는 기조하에 적극적인 관광 수요를 발굴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경찻사발축제는=경북도 문경시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전통 축제. 문경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사발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체험 활동을 제공한다. 찻사발 만들기, 전통차 시음, 공연 및 전시, 찻사발 경매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관광객들은 한국 전통 차 문화와 도자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3-31

영강 59km 굽이마다 늘어선 벚꽃, 하얀 감성에 여심도 ‘흠뻑’

영강(潁江)은 낙동강 발원지 마지막 큰 지류로 문경의 젖줄이다.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에서 입석천과 용유천이 만나 영강이 되고, 곧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로 든다. 그리고 농암면 쌍용구곡을 설정하고, 농암면과 가은읍 경계에서 회룡포요, 하회인 ‘섬안’을 만들고, 상강정과 영류정을 짓고, 견훤 후백제왕도 탄생시킨다. 그리고 먹배이를 지나 마성면으로 들어 구랑리 적벽을 어루만지며 동남으로 흐른다. 그 물은 진남교에서 소야천을 만나 완전한 영강이 된다. 거기에서는 영강과 소야천(조령천) 두 물이 만나 ‘용소’가 되고, 깎아지른 절벽에 토끼비리 잔도(棧道)를 내고, 또 다른 회룡포요, 하회인 ‘된섬’을 만들어, 경북제일경을 낳는다. 그리고 불정협곡을 휘돌아 호계면으로 들면 ‘개여울’에 징검다리를 놓고, 신기공단의 용수가 되며, 창동 뱃나들에 배를 띄우고, 우지동 벌판에 물을 댄다. 그런 후 산양면과 흥덕동 사이에 딴봉을 낳고, 영강체육공원을 만들고, 영신숲 유원지를 감돌면서 화천(花川)을 이루어 곶내라는 새 이름도 짓고, 영신도령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150리 사연을 풀어놓는다. 영강의 59km, 150리 길은 때로는 굽이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때로는 고요하게 거울을 펼치기도 하며, 산과 나무와 풀과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흐른다. 그리고 상주시 이안천을 만나 영순면 말응리에서 낙동강으로 들면 낙동강은 ‘완전한 낙동강’이 되어 여기서부터 부산 다대포까지 700리 여정을 시작한다. 영강은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꽃길이다. 수많은 절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겨우내 얼었던 물과 대지가 녹으면서 그 희고 냉랭한 기운이 벚꽃으로 흐드러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 활짝 피기 시작한다. □ 강둑길 20리 영신 벚꽃길 점촌시내 앞 영강 강둑길은 영신동에서 창동까지 20리. 길 양쪽에는 봄기운이 퍼지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에서 가장 먼저 벚꽃을 피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자전거길’로 나온다. 바람을 가르며, 겨우내 시린 칼바람이 언제 왔던가? 묻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걷는다. 각기 다른 생각으로 같은 길 위를 걷지만, 벚꽃의 정취에 취하는 것은 모두 같다. 벚꽃이 벌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고, 생각도 열린다. 활짝 핀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벚꽃의 꽃비도 여기서 제대로 맞을 수 있다.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늘대는 벚꽃의 춤사위는 4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남녀노소 가릴 것도 없이 몸도 마음도 봄이 된다. □ 점촌시내 모전천 벚꽃축제 그 사이 영강의 작은 지류인 점촌시내 모전천 ‘반쟁이’. 도심을 가르는 도랑 가에 벚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설이가 축제를 연다. 포스터도 없고, 현수막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귀신같이 안다. 벚꽃이 피면 봄의 한 구색(具色)으로 이 축제가 열리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문경시민 모두가 안다. 특히 저녁이면 춘정(春情)을 못 이기는 사람들로 500m 거리가 북적거린다. 엿 사달라는 각설이의 입담이 외설의 담장을 아슬아슬 걸어가면, 더는 못 배기고 주머니를 끌러 엿을 사는 사람들. 그러면 꺾고 굴리며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한 곡조 노래를 선물한다. 그 옆에는 닭발·족발·파전·소주·맥주·막걸리에 노래도, 엿도, 만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사가 붉고 푸른 전등 빛에 또 다른 벚꽃을 피운다. □ 진남교반 산벚꽃 영신 벚꽃길을 지나 북으로 오르면,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모두 모이는 불정협곡부터 10리 길은 외통수다. 산도, 물도, 길도 한 줄기씩, 서로를 안고 돌 뿐이다. 가파른 산이 동서에서 깎아 질러 산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물과 길과 사람이 드나든다. 산문을 들어서면 영강을 따라 진남교 10리 벚꽃 길이 옛 3번 국도를 따라 펼쳐진다. 그리고 어룡산 안부(鞍部)와 고모산성, 토끼비리에는 산벚꽃, 산 복숭아꽃, 산 살구꽃이 ‘봄의 게릴라’처럼 여기저기 피다가 이내 ‘봄의 혁명’을 성공시켜 온 산하를 봄으로 점령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봄으로 진군하는 꽃들의 맨 앞에 벚꽃이 있다. 약수 받는 사람, 민물매운탕 먹는 사람, 휴게소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 오미자테마터널을 감상하는 사람, 토끼비리를 걷는 사람, 고모산성을 오르는 사람. 그들 모두 벚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봄의 나그네들이다. □ 조령천 20리 벚꽃길 진남교반을 돌아서면 ‘봉생정’에서부터 또 다른 20리 벚꽃길이 펼쳐진다. 영강의 큰 지류인 조령천(소야천)을 따라간다. 바쁜 국도에서 벗어나 멀리 주흘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면서 아늑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먼 산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르는 소녀가 잔잔하게 손짓한다. 주지봉을 배경으로 ‘목고개마을’이 꽃 대궐을 이루고, 성주봉을 배경으로 ‘솥골마을’이 꽃 잔치를 벌이는 장관. 주흘산과 영강과 들판과 마을이 벚꽃을 매개로 봄의 왕국을 형성한다. □ KTX문경역-문경온천 벚꽃길 조령천 20리 벚꽃길이 끝나는 문경읍 마원리. 옥녀봉 꽃 잔치 아래 ‘철마(鐵馬)’가 멈춘다. 수도권에서 뻗어오는 중부내륙철도의 KTX 종착역, ‘문경역’이다. 주흘산은 이마에 닿아 있고, 문경의 고도(古都)가 역사와 문화를 펼친다. 바로 앞 온천지구에는 영강의 또 다른 지류인 신북천을 따라 겹벚꽃이 좋다. 서울대학교병원인재원 쪽부터 문경골프장 입구인 고요리까지 10리에 펼쳐져 있다. 단산 활공장과 모노레일, 문경새재리조트, 수많은 크고 작은 펜션들, 벚꽃 아래 이 마을들은 유럽풍을 자아낸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3-30

봄이 걸어오며 반기는 백석 산수유꽃 향연

□ 흰 돌이 많았다는 경주 백석마을을 아시나요 산수유가 봄보다 먼저 내려앉는 마을이 있다. 이 꽃 저 꽃 벌들이 바삐 쏘다니는 동안 마을엔 모처럼 화색이 돌고 인기척도 함께 든다. 봄이 온 게다. 어디서들 알고 찾아온 것인지 객지 사람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 듯하다. 경주역에서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백석마을에 이른다. 경주역과 지척인데도 백석마을엔 폐가와 빈집이 많다. 한때는 8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전부 객지로 나가고 밤에 불이 켜지는 집은 겨우 3~5채뿐이라고 한다. 풍경은 오래된 기억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도 아늑하다. 낮에는 봄볕 아래 노란 산수유꽃이 흔들리고, 밤이면 불이 켜지는 집이 손에 꼽힐 만큼 적다. 정적이 내려앉은 마을, 하지만 봄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을은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 겨우내 굳게 닫혔던 빈집마다 문이 열리고, 객지로 나가 살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그리고 밭고랑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삽질 소리, 농기계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묵은 땅이 뒤집히고, 굳은 마음도 풀린다. 저들끼리 핀 산수유 꽃도 사람 구경을 즐긴다. 건천읍 화천 3리 백석길 16, 백석마을에 이른다. 흰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단석산 자락 아래, 신라 장군 김유신이 이곳을 지나다가 냇가에 꽃이 많은 걸 보고 ‘꽃내’라고 부르다가 ‘화천(花川)’으로 불렀다. 약 350년 전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개척 당시 뒷산에 흰 돌이 많다고 해서 ‘백석(白石)’으로도 부른다는 마을 어른의 이야기다. □ 봄이면 사람보다 산수유꽃이 먼저 드는 마을 모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마을 군데군데가 노랗다. 꽃들은 무더기무더기 피어 저들끼리 즐거웁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겨울 기운이 강해 바람이 시리더니 며칠 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꽃은 꽃망울 여는 걸 저들끼리 터득했나 보다. 절정이다. 꽃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다. 바람이 불면 새파란 하늘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은 별처럼 영롱하다. 마을 어귀 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저들 편한 대로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웠다. 주인을 기다리는 나무, 혹은 기다림 그 자체가 나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을 초입에 서 있는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신목 앞에도 산수유는 가지를 뻗었다. 아직 채 봄을 맞지 못했는지 잎사귀 하나 돋우지 않은 신목에게 노란 산수유꽃이 해맑은 아이처럼 찬란한 봄 인사를 건넨다. 한낮의 햇살이 산수유꽃을 투과하며 그림자는 더 길고 짙게 마을로 내려앉는다. 마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어느새 꽃 속에 파묻힌다. 돌담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그 사이로 산수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사람 손길이 미친 산수유는 표가 난다. 꽃이 많고 색깔도 선명하다. 그러나 저절로 무시로 난 것들은 가지만 무성할 뿐 꽃이 적다. □ 한때는 자식들 공부시킨 든든한 밑천 봄이 오면 백석마을은 노랗게 물든다. 아니 햇빛을 머금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난다. 마른 가지 끝에 작은 꽃망울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환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꽃잎은 마치 비단을 두른 듯하다. 산기슭을 따라 여기서 저기서 산수유꽃들이 마을을 감싼다. 봄은 그렇게 산수유꽃과 함께 마을에 스며든다. 마을을 찾은 이들의 마음에도 한 줄 따뜻한 빛을 남긴다. 꽃잎 하나하나, 오랜 세월을 품은 듯 기품마저 느껴진다. “옛날부터 유명했어. 저 위쪽 산만디(산기슭) 거기서부터 여기, 질까(길가)까지 전부 노랬어.” 열아홉에 시집와 예순하고도 네 해를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최순자(84세) 어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때는 꽃이 고븐 지도(고운지도) 몰랐어. 그냥 다 일로만 보였으니까.” 산수유는 매화가 필 무렵 함께 피었다. 빠르면 2월 중순께 눈을 덮어쓰고도 샛노란 꽃을 피워냈다. 며칠 만에 일찍 저버리는 매화에 비해 산수유는 봄 동안 지천을 꽃등(燈)으로 밝혔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새파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단풍이 물드는 10월엔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갔다. 새빨간 보석같이 빛났다. 이 또한 꽃 못지않게 장관을 이뤘다. 11월엔 터질 듯 통통하게 물이 올라 반짝거렸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면 쪼글쪼글 마르기 시작했다. “생 거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 며칠 골긴다(시들게 한다). 아니면 첨부터 서리를 마차가(맞게 해서) 몰캉한 걸 따던가.” 육질이 홍시처럼 몰캉해지면 씨앗 빼는 게 훨씬 수월하다. 생육에서 씨앗을 뺄 수 없어 터득해 낸 지혜다. “그걸 이빨로 하나하나 깠어. 열매 하나하나 낱낱이 입에 물고 이빨로 깨물어 씨앗을 발라내는데, 애들 학교 갔다 오면 전부 매달렸어. 산수유 농사를 많이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일거리를 대주기도 했어.” 최순자 어른과 함께 서 있던 일흔넷 공진국 어른이 말을 잇는다. “한 깡통에 이백 원인가 쳐줬어. 한 깡통이 한 되, 그러니까 껍데기로만 한 근 600g이 나오는데 200원 쳐줬어요. 많이 까는 사람은 하루 꼬빡 6근씩 까냈어요.” 이빨로 까면 이빨이 닳았다. 그래서 산수유 철이 되면 미리 손톱을 길렀다. 손톱도 닳았다. 그래도 돈 생각하면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학교 등록금이 한 삼천 원 했을 때니까, 한 보름 까면 삼천 원, 등록금은 나오는기라. 그러이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까는기라. 훗날 까는 기계가 나왔는데 품질이 입으로, 손으로 까는 것만 못해요.” 돈이 됐다. 삼 남매, 사 남매, 많은 집은 오 남매, 육 남매 전부 산수유를 해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떠난 자식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점점 조용해졌다. 빈집이 늘고, 폐가가 생겼다. 하지만 산수유나무들은 여전히 피고 산수유를 붉혔다. □ 귀한 한약재, 산수유 산수유는 예부터 귀한 약재로 쓰였다. 한방에서는 산수유를 ‘구기자, 오미자와 함께 세 가지 보약 열매’라 칭했다. 신맛이 강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효능이 있어, 술을 담그거나 끓여 차로 마셨다. 이 마을에서도 가을이면 산수유 열매를 말려 두고, 겨울을 나기 위한 차를 만들곤 했다. ‘본초강목’에는 오래 먹으면 몸에 힘이 붙고 눈이 밝아지며, 뇌골통과 이명(耳鳴)을 치료하고, 오래 산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유기산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 성분이 있어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것과 동시에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수유 열매는 백석마을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열매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삶의 일부였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이어지는 유산이기도 했다. □ 도처로 팔려나간 백석마을 산수유 KTX 경주역 위쪽부터 백석마을까지 전부 노란 산수유 군락이었다. 논두렁 돌무더기에도 집 마당, 뒤란에도 그랬다. 그때에 비해 나무는 턱없이 줄었다. “경지정리 한다고 뽑아내기도 했지만, 관광단지 조성한다고 관상목으로도 엄청 사 갔어요. 대구나 서울 경기도 전국 조경업자들이 나무 사러 엄청 왔어요. 이른 봄에 꽃 하나 없고 황량하니 볼 게 없는데 산수유는 일찍 노랗게 꽃이 피고 보기 좋거든. 어디 노랗기만 하나. 여름에 조롱조롱 열린 열매가 보기 좋고, 가을 되면 빨가이 이쁘거든. 그러이 호텔 뜰이고 관광지마다 한 나무씩, 두 나무씩 가져가 심은기라.” 꽃 향이 온 마을로 번진다. 밭과 마당, 때로는 빈집이나 폐가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오래된 집들이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폭삭 주저앉았다. 인적이 끊긴 마을에 꽃이 피자 낯선 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갸륵한 풍경을 이야기하며 최순자 어른도 공진국 어른도 꽃처럼 환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 걸었던 신목 앞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는 오래전부터 백석마을 기억하는 일부인 양 정겨웁다. 아마도 봄을 알리는 산수유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알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건가보다. 백석마을은 봄이 가장 먼저 걸어오는 길목인지도 모르겠다. 노란 산수유 꽃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봄기운을 품는다.

2025-03-26

푸른 창해·창공 바라보며 해돋이 즐기는 행복한 나무

나는 변하지 않는 큼직한 바위를 품고, 누구보다 먼저 동해 아침 해돋이를 하는 나무이다. 거칠고 험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손으로 바위를 움켜쥐고 살아가지만, 외롭지 않다. 새벽이 오면 나는 가슴을 활짝 펴고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태양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면, 나의 심장은 벅차오르고 온몸이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인다. 밤새 바닷바람에 시린 몸을 맡겼던 나는 태양이 보내오는 부드러운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두 팔을 벌려 환호한다. 황금빛 햇살이 이마를 스치고, 어깨를 감싸며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귀한 하루의 보따리를 설레는 마음으로 푼다. 아침 태양 빛이 여기까지 1억4960만㎞의 광활한 우주를 쉼 없이 달려왔음을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초속 30만㎞로 질주한 태양의 빛이 8분 20초 만에 마침내 나의 가슴에 닿는 순간, 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그 빛은 단순한 아침 햇살이 아니다. 태양과 지구의 정교한 균형 속에서 탄생한 기적 같은 선물이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돌며 1년에 한 바퀴를 완성하고, 기울기는 계절을 만들어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백 년 동안 그 변화를 지켜보며 살아왔다. 또한, 지구는 하루 한 바퀴 자전하며 낮과 밤을 바꾸고, 태양을 향하는 각도에 따라 그 길이를 조율한다. 그렇게 태양과 지구는 서로 맞추어 가며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태양은 아버지, 지구는 어머니, 우리는 그들로부터 태어난 생명체, 아들딸들이 아닌가. 어찌 하늘의 태양과 대지인 지구를 경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먼 수평선에서 달려 온 파도는 철썩이며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자!”며 격려라도 하듯 바위에 입 맞추고 하얀 메밀꽃을 토한다. 바람은 신선한 공기를 가득 안고 와 나를 감싸 안으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나는 두 팔을 흔들며 기쁘게 화답한다. 향긋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바다로, 하늘로 보낸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아침은 없다. 매일 새롭고 소중하다. 아침 해맞이 순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또 새로운 빛으로 시작될 것임을. 그렇게 나는 어디에 찾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매일 새로운 선물을 받으며 기적을 맞이한다.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한다면, 나는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647번지의 거대한 바위 위에 터를 잡고 천 년을 살아온 섬향나무이다. 나는 직접 받는 햇살뿐만 아니라 바다 수면에서 반짝이는 윤슬의 별빛도 함께 받아 누구보다 더 많은 축복의 빛을 받는다. 이러한 강한 햇살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광합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증발로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러나 잎과 뿌리가 수분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구조로 특화되어 있어 그런 걱정은 붙잡아 매라 한다. 비늘잎이 둥글고 길게 모여 삐죽한 형태를 이루는 것은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또한, 열매가 하얀 왁스로 덮여 있는 것도 수분 증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육질 방울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특히 3월이면 직박구리 소리로 아침은 활기차게 시작된다. 야생 먹이자원이 달리는 잔인한 봄, 3월에는 활기찬 새들의 장마당이 선다. 시끌벅적한 아침이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는 자생지랄까 생존 지역은 동해를 내려다보는 절벽으로 쉬이 다가갈 수 없이 가파르며, 바위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그런 절벽 바위를 은밀하다고 표현한다. 이른바 숨은 서식처로 비밀스러운 피난처, 미소 피난처이다. 최고령 나무로 울릉도 도동의 향나무는 2500~3000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나의 동료 향나무는 극한의 환경에서 자라며, 자연이 빚어낸 듬성듬성 그루 숲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의 오래된 매향(埋香) 문화와도 연결된다. 매향 문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어 후손들이 다시 발굴해 사용하도록 기원하는 독특한 종교적·민속적 풍습이다. 이러한 매향 문화는 불교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금강산 삼일포 매향 비문은 “강릉, 삼척 등에 향나무를 베어 포구마다 물속에 묻었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동해안 깎아지른 절벽의 향나무 해안 경관은 세계 자연유산이고, 매향은 자랑스러운 인류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동해안 향나무 자생지는 한국인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다.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북방 선사인이나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남방 선사인은 우리 조상을 분명히 만났을 것이다. 향기 나는 우리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동해안 신석기인은 향나무 풍광을 무대로 살았다는 사실을 옛 해안(古海岸)에 위치하는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가장 오래된 선사 기록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도시의 빌딩 숲에서 겨우 몇 조각의 햇빛을 구걸하는 나무와는 다른 세상이다. 푸른 창해와 창공을 바라보면서 해변에서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나무임을 깨닫는다. 봄의 바닷가 아침 햇살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해안의 파도 소리와 신선한 아침 공기는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감싸준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이 바다를 가르고 해안으로 한 줄기 뻗친다. 윤슬이 반짝인다. 항구 어민들의 고깃배가 만선의 희망과 기쁨으로 출항과 귀항을 서두르고 갈매기가 호위하고 있다.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암괴석에 붙어 살아가는 따개비의 안간힘과는 달리 미역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그 신비로움에 두 손을 모아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세포가 깨어나고,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방해도 없이 축복의 선물, 태양 빛을 오롯이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침 해돋이는 희망이고 또 하루의 출발선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훼손된 몸과 살아가는 바위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어망 쓰레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음이다. 매향(埋香) 문화 매향 문화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한국에서 행해졌던 독특한 종교적·민속적 풍습으로, 향나무(沈香木)를 땅에 묻어 후손들이 다시 발굴하여 사용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 풍습은 불교적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주로 바닷가에서 진행되었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를 묻는다’는 뜻으로, 주로 신앙적인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특정한 장소(주로 해안가)에서 불교 승려와 신도들이 모여 매향 의식을 거행했다. 향나무를 정성스럽게 땅속에 묻고, 불경을 외우며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매향문(埋香文)이라는 비석이나 기록을 남겨 후대에 알릴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한국에는 여러 곳에서 매향과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었다. 강원도 양양은 고려시대 매향비가 발견되었다. 경기도 화성은 매향 의식이 이루어졌음을 기록한 유물이 있다. 오늘날 매향 문화는 단순한 민속 신앙이 아니라, 향나무와 관련된 전통적인 의례로서 중요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3-26

결혼생각 없는데 ‘비혼식’ 열어 축의금 돌려 받을까

경북 의성군과 경남 산청군, 울산 울주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큰 화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사망자도 나왔다. 적지 않은 시간 불길을 잡는데 매달린 산불 진화대원들의 피로도 누적되고 있는 상황. 빠른 시간 안에 화마(火魔)가 잡혀 재해에 신음하는 주민들이 일상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산불이 최대 이슈가 된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산불 진화 관련 뉴스 외 몇몇 다른 소식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사망한 배우 김새론이 미성년자일 때 교제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배우 김수현 관련 논란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논란 탓에 거대한 광고시장 중국도 김수현과의 결별을 고민하는 듯하다. 30~40대 한국 여성들이 비혼식을 하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와 열흘 동안 물침대에 누워있으면 790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프랑스에 생겼다는 소식 역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소 2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이 “아내에겐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해 여성들의 공분을 부른 사건도 있었다. ▲미성년자 교제 논란 김수현, 중국서도 ‘손절 움직임’ 스물다섯에 극단적 선택을 한 영화배우 김새론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배우 김수현. 한국 대중예술계에 이어 중국에서도 김수현 ‘손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주 화요일 쿠쿠차이나는 “김수현과 관련된 브랜드 홍보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모든 공식 플랫폼에 게재된 김수현의 이미지 자료를 교체한다”고 선언했다. 연이어 “현재 준비된 김수현 관련 마케팅 계획도 중단하고, 향후 (김새론과 관련된 각종) 사건의 진행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김수현의 중국 홍보활동이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그의 얼굴이 인쇄된 이미지 광고도 위에 언급된 플랫폼에서 지워졌다. 김씨의 과거 사생활이 세칭 ‘한한령(한류 금지명령)’이 완화된 중국에서의 활동을 가로막은 것이기에 그의 고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연예인에게 광고 관련 수입이란 간과하기 힘든 큰 돈벌이다. 김새론 사망 이후 김수현은 한 유튜브가 제기한 ‘미성년자와의 연애’, ‘급박한 채무 상환 압박’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 왔다. 그게 김새론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는 추문에도 휩싸였다. 김수현의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는 수차례 김새론 유족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으나, 그게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에서도 ‘김수현 손절’이 가시화됐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네티즌은 “미성년인 여배우에게 몹쓸 짓을 했으니, 지금 처한 상황은 자처한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왜 축의금을 내기만 할까? 돌려받을 방법은… “나도 비혼식이라도 열어 그간 낸 축의금을 돌려받아야 하나?”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는 봄이 목전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이 계절은 ‘화혼(華婚)의 시기’. 지난 시절보단 결혼하는 사람들이 대폭 줄었지만, 그럼에도 3~5월은 예비 신랑과 신부의 설렘이 있는 때다. 헌데, 미혼자들은 이 시기가 예상치 못한 지출이 가장 많은 달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숫자의 축의금 봉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이 늘어나면서 적게는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남의 결혼식에 내놓았던 축의금을 자신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래서일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21세기형 궁여지책’이 나왔다는 뉴스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결혼하지 않은 한국 독신 여성들 사이에서 비혼식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국에서도 한국의 ‘비혼 세태’에 주목한 것이다. 2023년 말 현재 한국 30대 가운데 51%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지난 2000년과 비교했을 때 비혼자가 4배 가까이 늘어난 것.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비혼식’이란 단어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앞으로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선언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또한, 비혼식엔 일부 기업에서 제공하는 ‘비혼 축하금’을 지인들에게도 거둬들이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전 생각’이 아닐지. 갈수록 결혼식이 줄어드는 상황. 이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의 “40세건, 45세건 일정한 연령이 되면 비혼식을 공식화해 그때까지 사용된 친척과 친구들의 결혼 축의금을 반의반이라도 돌려받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마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된 듯하다. ▲인면수심 대리운전 기사… 성범죄 후 “아내가 알면 안 돼” 여성 네티즌들의 혈압을 상승시킬 게 분명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남성이 출소 2개월 만에 또 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피의자가 대리운전 기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젠 무서워서 대리운전도 못 부르겠다” “여성에겐 여성 대리운전 기사를 매치시켜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여러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 보도를 종합하면 사건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한 여성이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앱을 통해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차에 탄 후 잠이 든 여성이 정신을 차렸을 땐 대리운전 기사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여성이 극렬하게 저항하자 문제의 그 대리기사는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위에 있던 대리기사를 체포해 알아보니 그는 전직 군인으로 이전에도 강제추행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전과가 있었다. 출소한 지 2개월 만에 다시 성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 대리기사는 성폭행 과정에서 불법 촬영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실상 대리운전 업체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범죄 관련 전력 조회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업체가 대리운전 기사를 뽑을 때 최소한 성 관련 범죄 전과자인지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도 개선 요구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치구니없는 사실 하나 더. 성폭행 피의자인 대리운전 기사가 “내 아내에겐 범행이 알려지면 안 된다”며 피해자와의 합의를 시도한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를 질타하는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희한한 ‘꿀 알바’… 열흘간 침대에 누워 있으면 790만원 “세상에 그런 꿀 빠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니. 내가 프랑스 산다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 지원하고 싶어지네.” 10일 동안 물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있으며 된다. 그러면 5000유로를 준단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790만원이다. 이런 ‘꿀알바’라니 한국 네티즌들도 유쾌한 댓글 달기에 나섰다. “왜 우리 동네엔 비슷한 알바가 없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얼마 전 영국 데일리메일은 ‘유럽우주국이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메데즈 우주병원에서 우주 비행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위해 3번째 실험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실험은 20~40세 남성 20명이 대상이다. 실험에 지원하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하고, 신체에 특별한 병이 없어야 한다. 일정한 선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물침대에 누워 열흘을 있어야 한다고. 추적 관찰과 회복 단계까지 모두 21일을 병원에서 보내면 앞서 언급한 790만원을 받게 된다. 유럽우주국은 “물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이 체험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실험의 목적은 ‘우주에 체류하는 우주 비행사의 건강 연구’인 것 같다. 어쨌건 침대에 누워 컴퓨터 화면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적지 않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니, 프랑스가 아닌 어느 나라라도 지원자가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3-25

지역사회·어르신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평생학습 모델’ 구축

포항시는 202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1만312명(전체 인구의 22.4%)에 달하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노인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노인일자리와 돌봄서비스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포항시 평생학습원은 “배움으로 삶을 채우고, 미래를 키워 나가는 평생학습도시 포항!” 전략을 기반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평생학습원은 기본적으로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고령층을 위한 통합교육 플랫폼을 구축하여 건강관리와 평생학습 강좌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여가를 즐기며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場)이 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하겠다”며, “아울러 시민들이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으로 삶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평생학습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맞춤형 교육 및 어르신관 운영 확대 지난해 평생학습원이 운영한 전체 교육 프로그램은 1374개로, 이 중 정규 시니어 강좌 114개, 신중년사관학교 8개, 동경대학(동네경로당대학) 15개 등의 노인 대상 강좌를 개설해 폭 넓은 학습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일 평균 700여명이 이용하는 뱃머리교육관 내 어르신 맞춤형 공간을 조성하여 당구장, 노래방, 물리치료실, 바둑실, 포켓볼장, 장기실, 탁구장, 헬스장 등 기존 시설과 함께 도서열람실, 심리상담실 등 총 10개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중단되었던 물리치료실이 올해부터 운영을 재개하며 기존의 찜질기와 샌드베드 외에도 돔 온열기, 손 지압기, 공기압 마사지기 등 새로운 물리치료 기기를 구비하여 하루 평균 8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건강체크 키오스크를 설치해 어르신들이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올해 도서열람실을 신설하여 일반도서 500여 권과 함께 큰 활자책 150권, 돋보기 안경 등을 비치해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워 독서를 하지 못했던 노인들의 독서활동도 돕고 있다. □체계적인 회원관리시스템 구축 및 일자리 창출 평생학습원 어르신관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설 규모에 비해 이용자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북구에는 포항시 노인복지회관이 있지만, 남구에는 노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60세 이상 시니어들이 이용 가능한 어르신관이 실질적 남구 노인복지회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고 해마다 어르신관 이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어 이용자들의 불편 민원 및 관리의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평생학습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다 많은 어르신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올 해 어르신관 회원관리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자율이용 예약 키오스크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시설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실별로 시니어일자리단을 활용한 지원인력을 배치하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정기적 간담회와 인식개선 교육도 추진하고 있다. □노인심리 상담 및 정서적 지원 강화 지난 1월 23일 개소한 은빛쉼터 노인심리상담실은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담실에는 노인심리상담사 1급 과정 수료생 15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노인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이러한 현실속에서 외로운 어르신들을 친구가 되어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전문 심리상담사들과 함께 고민하고 어르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간을 포항시가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선배시민교육으로 세대 간 연대 강화 포항시는 평생학습원 방문 어르신을 대상으로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는 선배시민 교육을 3월 한 달 31회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주로 노인복지회관에서만 진행해 오다가 이번에는 지역사회 문제 전문가인 장혁란, 안은희, 김경미 교수와 협력하여 1600여 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공동체에 대한 헌신 △선배시민의식 부족 원인과 여러 사회적 갈등해소 △지속가능한 사회문제 발전 등의 내용을 다룬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젊은 세대의 성장을 돕는 멘토링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젊은 세대의 성장을 돕고 어르신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멘토링 역할을 부여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문제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석윤기자 lsy72km@kbmaeil.com

2025-03-20

삼라만상으로 스며드는 불음, 서라벌을 깨우다

‘마침내 신종이 완성되니 그 모양은 마치 산과 같이 우뚝하고, 소리는 용의 울음과 같았다. 위로는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고 아래로는 지옥에까지 스며드니 … 소리를 들은 사람은 복을 받을지어다.’ -성덕대왕신종 명문 중에서- □ 범종 소리 ‘둥~ 둥~ 둥~’, 사람들이 홀린 듯 한곳을 바라본다. 장중한 소리다. 맑은 음이다. 무념의 세계로 들어가듯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국적과 종교를 굳이 따지지 않고 그저 거룩한 마음으로 소리 앞에 서 있다. 막히지 않는 여음이다. 1200년을 살았다는 육중한 쇳덩이가 뿜어내는 소리다. 속인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다. 법계에 두루 임하여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을 밝히며 축생의 고통을 떨치고, 지옥을 무너뜨리며 모든 중생을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소리다. 어떠한 절정도 없이 삼라만상으로 장엄하게 스며드는 불음(佛音)이다. 여운은 또 다른 여운과 이어져 끝내는 저 멀고 아득한 피안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 봉덕사와 성덕대왕신종 높이 3.75m, 지름 2.27m, 무게 18.9톤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은 법구사물(法具四物) 중 하나인 범종(梵鍾)으로 원래 ‘봉덕사종’으로 만들어졌다. ‘삼국유사’에 봉덕사는 성덕왕이 태종대왕을 위해 706년에 창건했다는 것과 효성왕(孝成王, 제34대 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복을 위해 738년에 세웠다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봉덕사종은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함께 한국 최고의 범종으로 꼽힌다. 성덕대왕신종 주조는 왕명에 따른 거사였다. 경덕왕(景德王, 제35대 왕)이 부왕 성덕왕(聖德王, 제33대 왕)의 공덕을 기리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게 했다. 그러나 경덕왕은 살아있는 동안 종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경덕왕이 죽고 8살의 어린 혜공왕(惠恭王, 제36대 왕)이 즉위 7년(771년) 되던 해에 완성해 봉덕사에 안치했다. 어찌 됐건, 종은 경덕왕이 부친을 위해 시주한 황동 12만 근으로 주조했기에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鍾之銘)’이라 하여 종의 몸체에 이같이 돋을새김해 놓았다. □ 고단했던 여정 771년 주조된 성덕대왕신종은 조선기 들어 고난을 겪는다. 1424년(세종 6) 때 ‘전국 각 사찰에 있는 종을 거두어 다른 용도로 주성하라’는 명이 내려진다. 이때 경주 촌로가 신종만은 녹이지 말고 보전해 달라며 죽음 각오하고 상소를 올린다. 세종은 촌로에게 지필묵을 하사하고 ‘경상도 경주 봉덕사와 개성 유후사 연복사의 큰 종은 헐지 말도록 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후 홍수로 북천이 범람하여 북천가에 있던 봉덕사가 폐사된다. 수풀에 버려지다시피 한 신종을 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애석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절은 망해 모래와 자갈에 묻히고/ 이 물건은 잡초 덤불에 맡겨졌네/ 주나라 돌 북과 같이/ 아이들은 두드리고 소는 뿔을 가는구나/ 매월당시집 권12 ‘유금오록’ 봉덕사종 중에서 1460년(세조 5)에 이르러 풀숲에 있던 종을 수습해 영묘사로 옮긴다. 그리고 50여 년 후인 1507년(중종 2)쯤 ‘경주부윤 예춘년이 종을 봉황대 옆으로 옮긴다. ‘동경잡기’에 군사를 모을 때나 성문을 여닫을 때 종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지은 ‘종각중수기’에는 타종의 회수와 관리 규정을 기록해 놓았다. 밤에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인정(人定)에 28번, 통행금지가 풀리는 파루(罷漏)인 새벽 4시에 33번을 쳤다. 이밖에 도성 안에 화재가 나거나, 큰일을 알릴 때 종을 쳤다. 신종은 400여 동안 관종(官鐘)으로서 봉황대를 지켰다. 그러다 1915년 5월, 일제강점기 경주고적보존회에 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인 옛 경주박물관(현 경주문화원) 종각으로 이봉한다. 하지만, 하나의 유물처럼 전시·관람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듯 타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975년,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기까지 무려 네 차례나 자리를 옮기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이제 종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2003년 개천절을 마지막으로 녹음된 소리로 대신한다. □ 육중한 종, 어떻게 이봉했나?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15년 봉황대 옆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을 경주고적보존회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인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기는 모습이다. 사진 속 조선인은 삿갓, 갓, 패랭이를 쓴 남성과 치마를 입은 여인과 아이들이다. 모두 흰옷을 입었다. 오른쪽 여섯 명은 일본인이다. 순사와 감독자 및 관련 사람들과 하수인으로 보인다. 일본인은 모자를 쓰고 양장이나 제복을 입어 다소 위엄 있는 모습이다. 일본인은 감독자이고 조선인은 지렛대와 동아줄을 잡은 걸 보면 인부일 것이다. 변변한 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종을 옮길 때 사용한 건 다름 아닌 통나무와 동아줄이다. 인부들은 흙길에 둥근 통나무를 침목처럼 깔았다. 종의 몸체 아랫부분에 동아줄을 둘러 묶고 줄을 나무 틀에 감았다. 그리고 연자를 돌려 종을 당겼다. 종을 통나무 위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쪽을 쳐들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무게가 반대로 쏠려 넘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까스로 종을 통나무 위에 올렸다. 장정들의 함성과 함께 종은 조금씩 통나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통나무를 옮겨가며 밀고 당기기를 1달, 드디어 보존회에 도착했다. 봉황대 종각에서 보존회(현 경주문화원)까지 약 400m의 거리, 그리 먼 거리가 아닌 듯해도 18.9t의 쇳덩이를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옮기자면 무척 고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존회로 옮긴 신종은 60년 후인 1975년 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아이를 공양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의 또 다른 이름은 ‘에밀레종’이다.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슬픈 소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자, 아이를 넣었더니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나 신라의 전설이 망라된 ‘동경잡기’ 어디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 ‘鐘(종)’, 한자를 보면 쇠 ‘金(금)’과 아이 ‘童(동)’이 합쳐진 글자다. 종을 만들 때 인(P)을 넣으면 주조성이 좋아져 종소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인은 사람의 뼈에 많은 성분이다.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원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검사했으나 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종에는 없는 0.2%의 유황이 검출되었다. 종이 1,200년 넘는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유황 성분일 것으로 본다. 그럼, 종을 만들 때 아이를 공양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아이를 공양해 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중국에도 전해진다.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종을 모아놓은 고종박물관에는 이런 그림이 있다. 커다란 종을 만드는데 소리가 잘 나지 않자, 아이를 바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던 아이가 이글거리는 쇳물을 보자 발버둥을 쳤다. 아이 둘을 쇳물에 넣었는데 급히 넣다가 신발이 밖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종을 완성하여 타종하니 ‘신 달라’는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의 그림이다. □ 아름다운 문양 성덕대왕신종은 형태와 무늬, 주조기법, 소리에 이르기까지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종의 꼭대기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과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龍9215)가 있다. 음통은 한국 범종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다. 용뉴의 용머리 조각은 제왕적 위엄을 나타낸다. 종신 위쪽에는 네모난 띠 모양의 연곽(蓮廓)이 있고, 연곽 내부에 연꽃 봉오리를 규칙적으로 새긴 연뢰(蓮857E)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 모양의 당좌(撞座) 두 개를, 그 사이에 네 구의 비천(飛天)을, 그리고 마주 보는 비천 사이에 명문을 새겼다. 종신의 상단과 하단에는 넝쿨무늬 띠를 새겼다. 연꽃 위에 무릎을 꿇은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은 돌출되게 새겼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쌍이 모두 명문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는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도 존경의 눈빛과 경건한 언어를 짐작게 한다. 향로를 받쳐 든 두 손에는 부처의 높은 덕을 찬양하는 듯 거룩함이 묻어난다.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은 유연하게 하늘을 향하고 덩굴풀이 꼬여 뻗어가는 당초(唐草) 모양의 구름은 하늘거리며 피어오른다. 가인의 자태처럼 보드라운 선의 흐름에 아득한 속살거림마저 묻어난다. 당목이 종신을 때리는 2개의 절제된 연꽃무늬 당좌(撞座) 역시 크고 선이 활달해 대담한 인상을 준다. 비천상 가운데 명문이 있다. 총 1037자로 왕의 지시를 받고 한림랑 김필해가 종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과 제작 시기, 제작 이유, 종의 의미, 주조에 참여한 여덟 명의 이름과 관직, 기술자 네 명의 직책과 이름을 기록했다. 종의 바닥엔 울림통을 파 놓았다. 울림통은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맥놀이 현상을 만든다. ‘둥~’ 소리는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가 어디에 머무는가. 가히 측량키도 어려운 깊이와 무게로 다가오는 여운, ‘둥~’ 웅장한 타격음과 함께 대지를 밀치듯 하늘을 울리듯 뻗어간다. 어떠한 매듭도 없이 그저 천지로 뻗어간다.

2025-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