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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나는 신라 고도의 겨울

APEC 이후의 불국사·석굴암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 등극 야경 대표 첨성대·동궁과 월지 조명·별빛 겹쳐진 또다른 얼굴 설 연휴를 맞아 가족과 함께 천년 고도 경주로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겨울의 고요 속에서 역사와 문화, 휴식과 체험이 어우러진 경주는 세대가 함께 시간을 걷는 특별한 여행지가 된다. ‘설 연휴 경주로 떠나는 가족여행 코스’를 8개 테마로 나누어 소개한다. 겨울의 경주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천년의 시간이 또렷이 살아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유적이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건너온 기억과 이야기가 겹겹이 쌓여 있다. 경주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시간 위에 세워진 하나의 거대한 문화 공간이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과 첨성대, 동궁과 월지에 이르기까지 경주의 문화유산은 ‘보존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대화하는 역사’로 존재한다. 특히 겨울밤, 조명 아래 드러나는 고도의 풍경은 낮보다 더 깊은 사유를 불러온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빛나는 유산은 천년 전 신라인의 정신과 오늘의 도시가 만나는 접점이 된다. 유산의 풍경에 스민 젊은 감각 황리단길서 맛과 멋 즐겨 볼 만 □ 세계가 다시 바라본 유산, 경주의 시간성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는 이 도시의 위상을 새롭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국제회의라는 현대 정치의 무대가 천년 고도의 공간 위에 놓이면서, 경주는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함께 품은 역사 도시임을 증명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 상징이다. 불국사는 불국토를 현실 공간에 구현한 신라 불교 미학의 정점이며, 석굴암은 우주 질서를 하나의 조형물 안에 담아낸 세계적인 걸작이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본존불의 미소는 특정 시대의 종교를 넘어 인간 보편의 사유를 담고 있다.   APEC 이후 불국사와 석굴암은 ‘익숙한 관광지’가 아니라 ‘공유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읽히고 있다. 문화유산은 더 이상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하는 언어가 됐다.   □ 별빛 아래 드러나는 왕도의 기억 대릉원과 첨성대, 월성 일대는 신라 왕도의 정치와 과학, 생활이 응축된 공간이다. 거대한 고분은 권력의 흔적이자 죽음을 넘어 영원을 향한 신라인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첨성대는 단순한 천문 관측소가 아니라, 자연 질서를 국가 운영과 연결했던 고대 과학의 상징이다.   밤이 되면 이 일대는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조명과 별빛이 겹쳐진 풍경 속에서 유적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도시의 일부가 된다. ‘별빛의 도시 경주’라는 이름은 단순한 관광 브랜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겹쳐지는 문화적 은유에 가깝다.   □ 황리단길, 현재의 경주가 숨 쉬는 공간   경주의 변화는 유적지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릉원과 첨성대를 지나 이어지는 황리단길은 고도(古都)와 일상(現在)이 만나는 접점이다. 한옥과 근대 건축 사이로 들어선 카페와 공방, 작은 상점들은 경주가 더 이상 ‘과거만 있는 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거리는 젊은 세대의 감각이 유산의 풍경과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실험 공간이다. 황리단길은 경주가 ‘보는 도시’에서 ‘머무는 문화도시’로 전환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 빛과 물, 그리고 신라의 낭만   동궁과 월지와 월정교는 경주의 야경을 대표하는 문화 경관이다. 연못 위에 비친 누각과 조명은 신라 왕실의 연회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현한다. 월정교의 목조 구조는 단절된 역사를 복원한 현대 건축의 결과물이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다리다.   교촌마을은 전통 생활문화가 남아 있는 공간이다. 전통혼례 재현과 풍물 공연은 ‘보여주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 있는 전통’에 가깝다. 이 일대는 유산·생활·관광이 하나의 문화 지형으로 결합된 사례다.   □ 사라진 탑, 남은 정신 : 황룡사와 분황사   황룡사터는 신라 최대 사찰이자 9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다.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그 빈 공간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한다. 존재하지 않는 건축물이 기억 속에서 더 크게 살아난다.   분황사의 모전석탑은 신라인들이 돌로 벽돌을 만들며 새로운 미학을 창조했던 흔적이다. 이곳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종교와 기술, 예술이 하나로 결합된 신라 정신의 증거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히 준비한 어린이 체험관·해설프로그램 등 신라문화 정수 느껴볼 좋은 기회   □ 박물관, 시간을 보관하는 또 하나의 도시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전체를 압축한 공간이다. 금관과 불상, 토기와 장신구는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신라 사회의 구조와 미감을 말해주는 언어다. 이곳은 유물을 보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해석하는 공간이다.   어린이 체험관과 해설 프로그램은 과거를 다음 세대의 언어로 번역하는 문화 장치다. 박물관은 경주 문화의 현재형이다.   □ 겨울 경주가 문화도시인 이유   보문호와 보문관광단지, 경주월드는 휴식과 체험을 통해 경주의 문화 지형을 확장한다. 역사유산 중심의 도시가 자연과 놀이, 체류형 관광으로 스펙트럼을 넓히는 과정이다.   경주는 이제 ‘유적의 도시’를 넘어 ‘문화가 축적되는 도시’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유산, 청년문화, 야경, 박물관, 체험 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엮이면서 도시 자체가 거대한 문화 텍스트가 된다.   □ 겨울, 경주는 시간을 걷는 도시다   겨울의 경주는 빠르지 않다. 그러나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천년의 시간을 걷는다. 불국사와 석굴암에서는 정신을 만나고, 대릉원과 첨성대에서는 권력을 보고, 황리단길에서는 현재를 읽는다.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과거를 빛으로 번역한다. 경주는 과거를 보존하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을 현재로 살아내는 도시다. 이번 겨울, 여행이 아닌 문화로서의 경주를 만나는 일은 곧 시간과 대화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황성호기자 hsh@kbmaeil.com

2026-02-12

안방 1열에서 마주하는 ‘별들의 전쟁’⋯2026 설 연휴 OTT 신작 가이드

민족의 큰 명절 설날이지만, 우리가 명절을 즐기는 방식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부단히 변모해 왔다. 온 가족이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방송사가 편성한 ‘특선 영화’ 시간을 확인하며 신문 하단의 편성표에 동그라미를 치던 시절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됐다. 2026년 오늘, 명절 거실의 주도권은 지상파의 편성표가 아니라 손바닥 위 스마트폰과 TV 화면 속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앱들이 쥐고 있다. 시청자가 콘텐츠를 ‘기다리는’ 시대에서 취향에 따라 직접 ‘선택하는’ 시대로의 완전한 전환이다. 이번 설 연휴는 주말을 포함해 닷새라는 넉넉한 시간이 허락됐다. 극장가의 대작들 못지않은 막대한 자본과 톱스타급 배우들을 앞세운 넷플릭스, 디즈니+, 티빙 등 주요 플랫폼들은 이 ‘설 대목’을 겨냥해 야심작들을 쏟아내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은 기본이요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파격적인 소재와 압도적인 스케일로 무장한 작품들이 시청자의 리모컨 끝을 유혹한다. 귀성길 정체를 뚫고 도착한 고향 집에서 혹은 분주한 명절 행사가 잦아든 고요한 밤 안방 극장의 불을 밝힐 ‘실패 없는’ 정주행 리스트 4선을 엄선했다. ◇ ‘레이디 두아(Lady Boudoir)’ : 가짜가 빚어낸 진짜의 미학 이번 설 연휴, 가장 뜨거운 화제작은 단연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다. 연휴 시작 직전인 13일 금요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는 이 작품은 배우 신혜선과 이준혁이 드라마 ‘비밀의 숲(2017)’ 이후 9년 만에 한 작품에서 재회한다는 소식만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드라마는 홀연히 나타나 사교계를 사로잡은 미스터리한 여인 ‘사라 킴(신혜선 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녀는 프랑스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Boudoir)’의 한국 지사장이라는 완벽한 가면을 쓰고 사교계의 아이콘으로 부상하지만, 그 실상은 타인의 인생을 치밀하게 훔쳐 조작된 삶을 사는 가짜 인생의 설계자다. 형사 ‘무경(이준혁 분)’이 강남 한복판에서 발생한 의문의 사체 유기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해자의 소지품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으로 치닫는다. ‘인간수업’, ‘마이 네임’을 통해 파격적이고 속도감 넘치는 연출을 선보였던 김진민 감독은 이번에도 특유의 미학적 액션과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파고드는 심리 묘사를 결합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완벽하다면 그것을 가짜라 부를 수 있는가?”라는 서늘한 질문을 던지는 이 미스터리 스릴러는 총 8부작으로 구성돼 연휴 기간 ‘완결까지 달리기’에 최적인 선택지다. ◇ ‘블러디 플라워(Bloody Flower)’ : 구원인가, 살인인가 장르물의 명가로 거듭난 디즈니+는 지난 4일 수요일 전격 공개된 ‘블러디 플라워’로 승부수를 띄웠다. 웹툰과 소설을 넘나들며 사랑받은 이동건 작가의 미스터리 소설 ‘죽음의 꽃’을 원작으로 한 이 시리즈는 “세상을 구할 치료제가 연쇄살인마의 손에서 태어난다면?”이라는 파격적인 윤리적 화두를 던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의대 자퇴생 출신의 연쇄살인범 ‘이우겸(려운 분)’이 있다. 그는 수많은 이를 인체실험이라는 명목으로 희생시킨 끝에 모든 불치병을 정복할 수 있는 신의 기술을 손에 넣은 인물이다. 법의 이름으로 그를 사형대에 세우려는 원칙주의 검사 ‘차이연(금새록 분)’과 희귀병을 앓는 딸을 살리기 위해 살인마의 ‘유일한 구원’이 필요한 변호사 ‘박한준(성동일 분)’의 첨예한 대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지독한 딜레마를 선사한다. 관전 포인트는 단연 배우 성동일의 파격적인 변신이다. 자식을 살리고 싶은 아버지의 절절한 심정과 피폐한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10kg 이상을 감량하며 웃음기를 완전히 지운 그의 열연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자극적인 연출보다 인물 간의 치밀한 심리 싸움에 집중한 이 8부작 스릴러는 매주 수요일 2화씩 공개되는 호흡을 따라 연휴 기간 가족과 함께 ‘정의와 생명’의 가치를 곱씹어볼 의미 있는 대안이 된다. ◇ ‘판사 이한영’ : 명절 스트레스를 날릴 ‘법정 사이다’ 안방극장의 스테디셀러인 ‘인생 2회차’ 회귀물과 법정 드라마가 만났다. 동명의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해 티빙과 MBC에서 방영 중인 ‘판사 이한영’은 거대 로펌의 사냥개로 살다 토사구팽당한 판사가 10년 전, 정의감이 살아있던 초임 판사 시절로 돌아가 사법부의 거대 악을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주인공 ‘이한영(지성 분)’이 구사하는 치밀한 ‘수 싸움’에 있다. 10년 뒤 벌어질 정·재계의 비리와 판결문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그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소위 ‘유권무죄’ 권력자들을 그들이 만든 법 논리로 응징하며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특히 이한영을 감시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패를 던지는 의문의 조력자 ‘강신진(박희순 분)’과의 팽팽한 대립은 극의 서스펜스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배우 지성은 과거의 순수함과 미래의 노련함을 동시에 지닌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권력과 타협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법복의 무게를 다시 세우는 그의 고군분투는 명절 기간 가사 노동과 가족 간의 갈등으로 지친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같은 위로를 건넨다.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의 구현의 서사는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명절 밤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이 사랑 통역 되나요?’ :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진심 장르물의 홍수 속에서 포근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겐 지난달 16일 공개돼 여전히 인기 순위 상단에 있는 ‘이 사랑 통역 되나요?’가 정답이다. ‘주군의 태양’, ‘환혼’ 등을 집필한 스타 작가 홍자매의 신작으로 다중언어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이 글로벌 톱스타 차무희(고윤정 분)의 전담 통역을 맡으며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황금빛 포도밭과 캐나다의 설경 등 전 세계 곳곳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영상미는 마치 한 편의 여행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대리 만족을 선사한다. 단순히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넘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이 ‘진심’이라는 공용어를 통해 소통해 나가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김선호의 다정다감한 눈빛과 고윤정의 화려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케미스트리는 연휴의 피로를 잊게 하는 강력한 ‘힐링’ 요소다. 복잡한 추리나 잔인한 묘사 없이 그저 인물들의 대화와 풍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을 선사한다. 12부작 전 회차가 공개돼 있어 긴 연휴 동안 따뜻한 감성에 푹 젖어들고 싶은 연인이나 가족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2

설 연휴 ‘가심비’ 1순위⋯올겨울 마지막 눈꽃 열차에 올라라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 설 연휴(2월 14일~18일)가 찾아왔다. 올해는 유난히 변덕스러운 기온 탓에 인제와 안동 등 일부 얼음 축제들이 아쉬운 취소 소식을 전했지만, 그렇다고 실내에만 머물기엔 은빛 설원이 주는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다. 명절 음식으로 무거워진 몸을 깨우고 스마트폰에 갇힌 아이들의 시선을 광활한 대자연으로 돌릴 기회다. 강원도의 칼바람을 뚫고 즐기는 대관령의 눈꽃부터 남도 지리산의 수려한 설경까지 지금 이 시각에도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는 전국의 ‘진짜’ 겨울 액티비티 명소 5곳을 지면에 담았다. 단순한 구경을 넘어 몸으로 부딪치며 즐기는 이 축제들은 연휴 끝에 찾아올 일상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 강원 평창 대관령눈꽃축제 : 30년 역사 위에서 펼쳐지는 ‘눈동이 미니 올림픽’ 대한민국 겨울 축제의 자존심이자 원조인 ‘대관령눈꽃축제’가 13일(금)부터 22일(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1993년 대관령 청년들이 지역 화합을 위해 시작한 이 축제는 어느덧 30여 년의 역사를 쌓아 올리며 이번 설 연휴 기간 흥행의 정점을 찍을 전망이다. 올해는 ‘동계 꿈나무 눈동이의 국가대표 성장기’라는 테마 아래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2018 평창 올림픽을 보고 꿈을 키운 마스코트 ‘눈동이’가 2026 밀라노 올림픽 국가대표로 거듭나는 여정을 초대형 눈 조각과 얼음조각으로 생생하게 구현해낸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관람 중심에서 벗어나 몸으로 부딪치는 체험형 콘텐츠도 대폭 보강됐다. 특히 ‘눈동이 동계 훈련소’에서는 건초 빨리 옮기기, 주전자를 이용한 ‘이색 컬볼링’, 빗자루 하키 등 대관령의 향토색이 짙게 배어난 코믹 액티비티가 쉴 새 없이 펼쳐진다. 은빛 설원을 배경으로 대관령 황태와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야외 구이터’는 미식가들의 발길을 붙잡고 하늘목장의 양들을 직접 만나는 체험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독보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대관령 IC와 인접한 지리적 이점은 물론 KTX 진부역과 연계된 셔틀버스 덕분에 귀성길 정체를 피해 설원의 낭만을 만끽하기에도 최적이다. ◇ 경기 포천 백운계곡동장군축제 : 설원 위에서 즐기는 환상의 겨울 정원 포천 백운계곡에서는 ‘제21회 동장군 축제’가 오는 22일(일)까지 겨울의 정취를 발산한다. “하얀 설렘의 시작”을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축제는 백운계곡 상인협동조합이 주관해 주민들의 정성이 곳곳에 스며있다. 웅장한 규모의 얼음기둥과 귀여운 캐릭터 ‘장군이·동동이·설동이’가 배치된 포토존은 방문객들에게 겨울 동화 속 한 장면을 선물한다. 축제의 핵심인 체험 프로그램은 동심을 자극하는 액티비티로 가득하다. 계곡의 자연 지형을 영리하게 활용한 80m 길이의 튜브 눈썰매와 회전 썰매, 그리고 전통의 멋을 살린 앉은뱅이 썰매와 팽이치기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겨울 낚시 애호가들을 위한 배려도 깊다. 매서운 추위 속 송어 얼음낚시는 물론, 기상 상황과 관계없이 손맛을 볼 수 있는 실내 송어·빙어 낚시터를 병행 운영해 만족도를 높였다. 낚시 후 즐기는 싱싱한 송어회와 구이, 소머리 국밥 같은 든든한 먹거리는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는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 전북 남원 지리산 바래봉 눈썰매 축제 : 지리산 설원이 선사하는 ‘은빛 질주’ 지리산 허브밸리 일대에서 펼쳐지는 ‘제12회 지리산 남원 바래봉 눈썰매 축제’는 설 연휴가 끝나는 18일(수)까지 방문객을 맞이한다. “겨울, 눈꽃 그리고 동심으로의 여행”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축제는 해발 고도가 높은 지리산 바래봉의 지리적 특성 덕분에 눈이 잘 녹지 않아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최상의 설질을 자랑한다. 웅장한 지리산 능선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뻗은 눈썰매장과 얼음썰매장은 슬로프를 내려오는 것만으로도 압도적인 시각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올해는 아이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마련된 눈사람 만들기 체험과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모닥불 체험이 정겨운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축제 주관사인 (사)운봉애향회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운영하는 먹거리 장터는 지리산의 칼바람 속에서 맛보는 뜨끈한 어묵과 붕어빵을 통해 겨울 축제만의 낭만을 완성한다. 고원의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즐기는 은빛 질주는 명절의 분주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씻어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 경기 양평 빙송어축제 : ‘수미마을’ 부교 위에서 즐기는 안전한 손맛 물 맑은 양평의 대표 체험 마을인 수미마을에서 열리는 ‘양평 빙송어축제’는 오는 3월 2일까지 이어지는 긴 호흡으로 관람객을 여유롭게 맞이한다. 농촌관광 전 등급 1위인 ‘으뜸촌’에 선정되고 대통령상을 수상한 마을답게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세심한 서비스와 전문적인 체험 프로그램이 기분 좋은 신뢰를 준다. 올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기온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수상 부교 낚시터다. 얼음판 두께에 의존하지 않고 수심 깊은 곳에 부교를 설치해 빙질 상태와 관계없이 연휴 내내 안전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투명한 물속을 노니는 빙어와 송어를 낚아 올리는 팽팽한 손맛은 아이들에게 최고의 자연 학습이 되며 직접 잡은 빙어 튀김을 맛보는 과정은 미각의 즐거움까지 더한다. 낚시가 정적인 재미를 준다면 마을의 수려한 풍광을 가르며 달리는 사륜 오토바이(ATV)와 수제 피자 만들기, 찐빵 체험 등 다채로운 실내 프로그램은 추위를 피해 온 가족이 화합하며 특별한 추억을 쌓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 충남 청양 칠갑산얼음분수축제 : ‘K-겨울왕국’에서 즐기는 90개의 은빛 설렘 ‘충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청양 알프스마을의 ‘제18회 칠갑산얼음분수축제’는 오는 22일(일)까지 은빛 장관을 이어간다. 2008년 주민들의 소박한 아이디어로 시작된 이 축제는 올해 마을 주민 수 90명을 상징하는 90개의 웅장한 얼음 분수를 세우며 그 어디서도 보기 힘든 압도적인 풍경을 완성했다. 축제장에 들어서면 엘사가 선물한 듯한 정교한 눈 조각과 10m 높이의 거대한 얼음기둥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최신 캐릭터 눈 조각들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최고의 포토존이 돼준다. 스릴 넘치는 얼음 봅슬레이와 튜브 눈썰매는 기본이며 이양기 썰매나 깡통 열차처럼 농촌의 정취를 가득 담은 이색 즐길 거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군밤과 군고구마를 모닥불에 구워 먹는 재미는 겨울 여행의 백미를 장식하고 화려한 LED 조명이 수놓는 야간 개장까지 더해져 겨울밤의 낭만을 즐기기에 가장 완벽한 마침표가 된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6-02-12

같은 명절, 다른 마음⋯ 전통의 의무 VS 개인의 선택

전통·가족 공동체 중시하는 ‘기성 세대’ 차례상·세배 등 전통의례에 가치 부여 고향방문·가족의 결속이 가장 큰 의미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은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공동체를 잇는 끈이었다. 차례와 성묘, 세배와 덕담, 떡국과 만두는 세대를 넘어 이어져 내려온 풍속이다. 하지만 사회 구조와 생활 방식이 급격히 변하면서 명절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세대별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기성세대에게 설은 전통과 의무의 무게가 강하게 남아 있는 반면, MZ세대에게는 휴식과 선택의 의미가 더 크게 자리 잡는다. 같은 명절을 맞이하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그려내는 두 세대의 인식 차이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 설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오랜 세월 이어온 가문의 전통을 지키고, 가족 공동체를 결속하는 중요한 의례다. 부모 세대는 차례상을 정성껏 차리고 조상을 기리는 절차를 중시한다. 이는 가족의 뿌리를 잊지 않는다는 정신적 의미를 담고 있다. 고향을 찾는 길은 고단하지만 가족을 만나야 한다는 책임감이 우선한다. 특히, 기성세대는 설날에 고향을 찾지 못하면 큰 결례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자녀와 손주에게 덕담을 건네고 세뱃돈을 주는 행위는 가족을 이끄는 역할을 상징한다. 이들에게 명절은 개인의 휴식보다 공동체의 결속을 우선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명절 준비 과정에서 오는 노동과 부담도 감내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다. 휴식·개인 삶 먼저 생각하는 ‘MZ 세대’ 온라인 추모 등 ‘형식보다 마음’ 중요시 성 역할 부담⋯ 모두 공평한 명절 기대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전통적 의무보다 개인의 삶과 균형을 중시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복잡한 제사 절차보다 간단한 헌화나 온라인 추모 서비스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들은 긴 귀성길 대신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 명절을 나만의 휴식으로 활용한다. 세뱃돈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현금 대신 모바일 송금이나 기프티콘으로 세뱃돈을 주고받는 풍경은 디지털 세대의 특징을 보여준다. 가족 간 갈등이나 성 역할 부담을 피하기 위해 명절 불참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개인의 행복이 공동체의 의무보다 우선한다는 가치관을 반영한다. MZ세대에게 명절은 더 이상 지켜야 할 전통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문화다. 그들은 명절을 통해 가족과 연결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율성을 중시한다. 특히, 장시간의 이동, 친척들의 질문, 성 역할에 따른 노동 분담은 젊은 세대에게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두 세대의 시선 차이는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1인 가구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가족 공동체 중심의 명절은 점차 약화되고 있다. 명절 선물, 차례상 준비, 교통비 등은 기성세대에게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지만 MZ세대에게는 불필요한 지출로 인식되기도 한다. 다문화 가정, 해외 거주 교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늘면서 명절의 의미는 더 이상 획일적이지 않다. 모바일 송금, 온라인 제사, SNS 덕담 등은 명절 풍속을 새로운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명절이 단순히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시대의 거울임을 보여준다. 문제는 명절의 의미를 두고 세대 간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데 있다. 부모 세대는 자녀가 귀성하지 않거나 차례를 생략하는 것을 불효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반면 자녀 세대는 부모가 전통을 강요하는 것을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느낀다. 이런 갈등은 단순히 명절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드러내는 사회적 현상이다. 또한 명절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세대별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기성세대는 설 선물세트를 준비하고 차례상을 차리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이는 가족과 공동체를 위한 투자로 인식된다. 반면 MZ세대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한다. 전통적인 선물세트 대신 건강식품이나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거나 아예 선물을 생략하기도 한다. 온라인 쇼핑과 모바일 결제가 보편화되면서 명절 소비 패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인식 차이는 세대별 가치관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문화적 다양성도 명절의 의미를 재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다문화 가정은 한국의 전통 명절을 자신들의 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로 즐기기도 한다. 해외 거주 교포들은 현지에서 설을 맞으며 한국 문화를 알리는 기회로 삼는다. 이런 다양성은 명절을 더 이상 획일적인 전통 행사로만 볼 수 없게 만든다. MZ세대는 이러한 다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명절을 글로벌 문화의 일부로 인식하기도 한다. 심리적 측면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기성세대는 명절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안정감을 느낀다.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의무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표현은 주로 젊은 세대가 겪는 심리적 부담을 설명한다. 여기에 더해 사회학적 연구들은 명절을 바라보는 세대별 태도가 한국 사회의 가치관 변화를 잘 드러낸다고 분석한다. 기성세대는 집단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했으며, 가족과 공동체를 우선하는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했지만 MZ세대는 개인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성장했고, 자기 결정권과 자율성을 중시한다. 대가족 → 1인 가구까지 사회적 구조 변화 전통과 개인 행복 동시에 보장 방식 필요 따라서 명절을 바라보는 태도는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는 20~3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명절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개인의 휴식이 더 중요하다’고 답한 반면, 50대 이상은 ‘가족과 전통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수치는 세대별 인식 차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증명하듯 안동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씨는 “설은 단순한 휴일이 아닙니다. 조상을 기리고 가족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날이지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명절을 통해 가족이 하나로 모이고, 세대 간 유대가 강화된다고 믿는다. 반면 20대 대학생 이서연 씨는 “명절은 솔직히 피곤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어머니나 여성들이 차례 준비와 음식 장만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이제는 이런 성 역할 부담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차라리 여행을 가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의미 있다고 느낍니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라고 답해 세대별 인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이에 끼인 40대 공무원 김성현 씨는 “저는 부모님 세대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우리 세대는 조금 더 실용적으로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차례를 간소화하고 가족이 모여 식사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형식보다 마음이니까요”라고 답해 중도적인 성향을 보였다. 실제로 최근 조사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수치로 드러난다. 50대 이상 응답자의 70%가 ‘명절은 가족과 전통을 지키는 날’이라고 답한 반면, 20~30대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명절은 개인의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변화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는 전통이 있지만, 최근에는 여행이나 자율적인 활동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본의 오본(お盆) 역시 조상을 기리는 전통 행사지만 젊은 세대는 이를 간소화하거나 여행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설 역시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세대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세대가 공존하면서 명절의 의미가 다층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적 변주도 흥미롭다. 최근에는 ‘비건 떡국’, ‘퓨전 만두’ 등 전통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음식의 변화가 아니라 명절을 바라보는 세대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성세대는 전통 음식을 통해 조상의 의미를 되새기지만, MZ세대는 새로운 레시피를 통해 명절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즐긴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명절 챌린지’나 ‘세뱃돈 송금 이벤트’가 열리며 디지털 세대의 명절 풍속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명절은 세대별로 다른 정서적 경험을 제공한다. 기성세대는 명절을 통해 가족과 함께하는 안정감을 느끼며, 이는 사회적 지지망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MZ세대는 명절을 의무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친척들의 결혼·취업·출산 관련 질문은 젊은 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동시에 명절은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명절은 스트레스와 치유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심리적 장이다. 사회학자들은 명절을 ‘사회적 의례’로 정의한다. 의례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개인에게는 부담을 줄 수 있다. 기성세대는 의례의 기능을 중시하지만, MZ세대는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따라서 명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은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변화를 반영한다. 앞으로 명절의 의미는 어떻게 변할까. 전문가들은 명절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형태로 재구성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차례는 간소화되지만 그 정신은 유지되고, 귀성은 줄어들지만 가족과의 연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을 통해 세배를 하거나, 가족 단톡방에서 덕담을 나누는 방식이 보편화될 수 있다. 또한 명절을 가족뿐 아니라 친구, 동료와 함께 보내는 문화가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설은 시대와 세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기성세대가 지켜온 전통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지만, MZ세대가 중시하는 자유와 자율성도 무시할 수 없다. 명절의 의미는 세대 간 대화와 이해를 통해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명절을 재구성할 때, 설은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의 축제가 될 수 있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6-02-12

'믿고사는 영주 명품' 생산자 정성, 소비자 신뢰 구축

소백산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영주 농특산물은 엄격한 품질 관리와 생산자의 정성을 바탕으로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소백산 자락의 청정 환경에서 자란 영주 농특산물은 생산자와 가공 기업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으로 완성된다. 원재료 선정부터 최종 가공까지 이어지는 철저한 품질관리는 영주만의 자부심이다. 자연의 순수함에 장인의 손길을 더해 완성된 영주 농특산물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소비자가 깊이 신뢰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영주시는 유통 단계 혁신을 통해 단순한 농산물 판매를 넘어, 신뢰라는 무형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전달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시는 온라인 플랫폼 영주장날을 통해 130여 개 농가가 참여해 사과, 인삼, 한우 등 3000여 품목의 고품질 제품을 엄선해 선보이며 지역 대표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전국 홈플러스 매장 등 대형 유통망을 통해 소비자들로부터 품질을 인정받고 있으며, 산지 직송의 신선함과 합리적인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해 ‘믿고 사는 영주 명품’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 ◇풍기인삼 국내 최초 재배삼의 시효지인 풍기인삼은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생산돼 타 지방 생산 인삼에 비해 내용 조직이 충실하고 인삼 향이 강하며 유효사포닌 함량이 매우 높다. 특히, 다양한 홍삼 제품은 웰빙건강 식품 뿐만 아니라 선물용으로도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인삼은 혈압조절, 간장보호, 항암작용, 항당뇨, 피로회복, 식용증진, 면역력 강화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삼의 종류에는 인삼 원형 상태로 75%내외의 수분을 함유한 수삼, 삼의 껍질을 벗겨 수분함량이 14%이하가 되도록 건조시킨 백삼, 수삼을 쪄 가공한 홍삼이 있다. 홍삼의 색상은 담적황갈색이며 품질별로 천삼(天蔘), 지삼(地蔘), 양삼(良蔘)으로 구분하고 인삼중에서 최고로 친다. 인삼가공제품에는 절편삼, 홍삼절편삼, 홍삼차, 홍삼정과, 홍삼정, 홍삼타브렛, 홍삼액, 홍삼분말, 인삼분말, 홍삼정, 홍삼캡슐, 황금홍삼비누, 홍삼벌꿀비누, 홍삼우유비누, 홍삼제리, 홍삼캔디 등이 있다. 문의: 풍기인삼공사영농조합법인 054)638-2304 풍기인삼협동조합 054)636-2714 ◇영주사과 영주시는 국내 사과 생산의 14.5%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다. 영주사과는 소백산 남쪽에 위치한 산지과원에서 생산,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에 의해 맛과 향이 뛰어나며 성숙기 일교차가 커서 사과의 당도가 높다. 사과는 대부분 15kg 상자로 포장되어 출하되고 있으나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포장단위를 5kg,10kg 단위로 다양화 체제를 갖췄다. 사과는 피로회복, 피부미용, 위장장애 등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한우 영주한우는 개량된 암소에 1등급 정액으로 인공수정해 생산된 우량 수송아지를 5-6개월에 거세하고 한우고급육 표준사양관리프로그램에 의거 사육한다. 비육 후기에는 영주시와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정태영 교수팀이 협력해서 1996년부터 1997년 2년에 걸쳐 개발한 아마종실을 첨가한 특수사료를 급여하고 초음파 육질 진단을 해 출하적기를 판단, 고품질의 육질만을 생산·판매한다. 부루세라병 등의 악성 가축전염병을 완전 차단하고 축산물의 위생·안정성에 대한 소비자 신뢰확보를 위해 사육 · 도축 · 가공 · 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기록 · 관리하는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을 2006년부터 시범 실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문의: 영주축협한우프라자 054)630-6710, 6720 횡재먹거리 한우 054)638-0094 ◇풍기인견 풍기인견은 천염섬유로 냉장고 섬유, 에어컨 섬유라 불린다. 풍기인견의 특징은 가볍고 시원하며 몸에 붙지 않고 통풍이 잘되며 땀띠가 예방되고 촉감이 좋다. 인견은 땀 흡수력이 탁월하며 정전기가 없고 부드러우며 식물성 자연섬유로 피부가 여린 갓난아기, 알레르기성 피부, 아토피성 피부 등 피부가 약한 분들에게 좋은 건강 섬유다. 가볍고 얇아서 여름 실내복, 반바지, 잠옷, 침구류, 천연염색을 한 외출복 등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 되고 있어 선물용으로 인기가 많다. ◇정도너츠 영주지역에서 생산되는 국내산 찹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찹쌀 도너츠로 지역의 특산물인 인삼, 사과, 생강, 고구마 등을 재료로 만든 웰빙 식품이다. 찹쌀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도너츠 보다 영양 성분검사를 해보면 적게는 7배 많게는 10배 이상 지방함량이 낮게 나오며 콜레스테롤과 트렌스지방이 0%로 먹을거리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이밖에도 영주지역의 특산품을 이용해 생산하는 영주한과, 청정수목에서 추출한 목초산 분말 재제와 유산균을 급여해 생산된 소백네프란은 일반계란에 비해 A, B12, 토코페롤 함량은 높고 콜레스테롤 함량은 낮아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며 고소한 것이 특징 있다. 또, 옛날 사대부가의 선비들이 건강 약용주로 마시던 전통 명주 오정주, 밤에 빗장을 열어주는 약초라는 야관문을 이용한 약용주 비수리야, 영주사과와 포도를 이용해 생산되는 상떼마루 와인, 단산포도 생산 농가가 개발한 쥬네트 와인과 소백산 산향기 와인이 있다. 상떼마루 아이스와인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 국제와인품평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영주시는 농가소득 증대와 소비자들이 믿고 찾을수 있는 우수 농특산물 생산을 위해 다양한 연구 개발과 실증 실험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6-02-10

상주엔 2500원짜리 ‘기막힌 해장국’이 있었다

기자 일을 시작한 게 20세기 말이다. 돌아보면 제법 먼 과거다. AI 같은 건 물론 없었고, 포털사이트 검색도 초기 단계였으니. 나이 지긋한 선배들은 사무실 책상 위에 재떨이를 놓고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속에서 기사를 썼다. ‘비흡연자 보호’가 일상화된 지금이라면 어림없는 일이다. 기억에 따르면 그때는 신문사와 방송사 할 것 없이 기자들 상당수가 모주꾼의 풍모였다. 음주는 주야를 가리지 않았다. 아직은 햇살이 환한 점심시간. 언론사 인근 허름한 한식당이나 중국집에선 돼지고기 숭덩숭덩 썰어 넣은 김치찌개나 칼칼한 짬뽕국물을 가운데 놓고 술잔을 돌리는 기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 주석(酒席)에서 낮술을 배웠다. 혈통적으로 주당이었으니 자리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외려 즐거웠다. 본래 낮술은 백일몽을 부르는 것 아닌가. “정오를 조금 넘겨 시작한 술자리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는 석간시대(夕刊時代) 시니어 기자의 회고에는 낭만이 서려 있었고, 후배들은 눈을 크게 뜨곤 했다. 그런 1990년대 말을 허술했지만 정다웠다고 말하면 과장이 되려나? 어쨌건. 비단 기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술과 해장국은 떼놓을 수 없는 법. 낮술이 밤술로 이어져 숙취가 사나운 들개처럼 몰려오는 명정(酩酊)의 아침이면 쓰린 속을 풀어줄 따끈한 해장국이 간절한 법이다. 서울에서 살 때는 광화문의 유명짜한 북엇국 식당과 종로구 인사동 생태찌개집을 자주 다녔다. 명불허득(名不虛得)이라 해도 좋을 밥집들. 문제는 해장하러 가서 또 다시 술을 시작한다는 것이었지만…. 30대 때 전라북도 전주로 출장 가서 맛본 콩나물국과 따끈한 모주도 전날의 술독을 깨끗하게 풀어주는 힘이 있었다. 제주도에선 동료들과 걸쭉한 고사리육개장으로 위와 간을 달래기도 했다. 팔도에 술꾼이 있으니, 전라-경상, 경기-강원, 충청-제주 어느 곳이나 해장국 없는 지역과 도시는 없다. 술 좋아하는 이들에겐 다행스런 일이라고 해야 할 터. 6~7년 전이다. 경상북도 상주로 취재를 갔다. 일을 마친 뒤 낙동강변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젊은 날을 떠올렸고, 섬세해진 감정이 과음을 불렀다. 주종(酒種)을 묻지 않고 꽤나 마신 날이었다. 이튿날 여관에서 눈을 뜨니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새벽. 칼로 긁어내는 듯한 위통을 참으며 거리로 나왔다. ‘뭘 먹긴 먹어야하는데 문을 연 식당이 있으려나?’ 남들에겐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하며 서성이는데, 예전에 얼핏 “상주엔 끝내주는 우거지해장국 식당이 있고, 거긴 아침 일찍 영업을 시작한다”란 말을 들었던 게 떠올랐다. 부랴부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옥호(屋號)와 위치를 찾아냈다.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알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가 “나도 잘 아는 곳”이라며 시장통으로 차를 몰았다. 정말이지 조그맣고 소박한 밥집이었다. 그런데, 놀라워라. 1936년부터 영업을 했단다. 업력이 1세기에 육박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은 선친이 태어나기도 전이니 ‘까마득한 옛날’이라 불러야 할까? 깜짝 놀라게 한 건 또 있었다. 우거지해장국 한 그릇이 2500원. 당시 한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헐한 밥값이었다. 그럼에도 해장국 속 잘 삶아낸 채소는 보드랍고 매끈했으며, 어떤 된장을 사용했는지 맑은 국물에선 더없이 구수한 향이 올라왔다. 일금 1000원의 막걸리까지 한 잔 주문해 달게 먹고 마셨다. 속이 시원하게 풀린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며칠 전 다시 한 번 그곳 상주 우거지해장국집을 검색했다. 지금은 가격이 3000원으로 올랐단다. 그 가격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살다보면 돈을 더 내고 싶은 식당도 있다’더니…. 상주는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적지 않은 고장이다. 그럼에도 기자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상주의 명물’은 시장통 우거지해장국이 분명하다. 그곳이 100년 세월에도 변함없는 가게로 남아주길 기대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7

해장국, 몸이 아닌 ‘마음’을 풀어주는 음식

당연한 이야기지만 술을 마시면 취한다. 정도가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음주 후 취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그렇다면 술을 마신 후 취기가 오르는 이유는 뭘까?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체내로 들어간 알코올이 피의 흐름을 따라 뇌에 도달하고 이것이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 술을 자주, 즐겨 마시는 이들은 말한다. “무더운 여름엔 조금만 마셔도 빨리 취한다” “비행기에서 공짜로 준다고 술이 과하면 낮은 기압과 부족한 산소 탓에 몽롱해지기 쉽다” “따뜻한 곳에서 마시다가 차가운 바깥으로 나오면 머리가 띵하다” 등등. 모두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취하지 않으려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임을 대부분은 알고 있다. 그걸 알면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술을 피해가지 못한다. 음주가 주는 위로와 위안, 심리적 안정감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게 인류의 역사다. 무모한 술꾼이라 할지라도 건강을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숙취로 인해 두통과 속쓰림에 시달리는 이들은 그래서 해장국을 찾는다. 해장국의 시작은 술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지 않았을까? 해장국의 종류는 술 종류 이상으로 많다. 집과 식당 할 것 없이 오늘도 주방에선 육류와 채소, 해물 등 수십 가지 식재료로 해장국이 만들어진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소고기, 닭고기, 돼지의 뼈, 콩나물, 북어, 복어, 황태, 다슬기, 오징어, 냉이와 대파, 매생이, 시래기, 심지어 소의 피까지…. 해장국으로 요리되는 재료는 열거가 힘들 정도로 다종다양하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 한 가지. 어떤 해장국도 그 자체로는 숙취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한다. 수분과 전해질이 보충되는 정도의 효과만 있다고. 그러니, 해장국은 ‘몸이 아닌 마음을 위로하는 음식’이라고 불러야 할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7

춥고 긴 겨울밤 데워줄 이 책들 어때요?

북쪽에서 불어온 차가운 바람에 바깥으로의 외출이 망설여지는 시기다. 특별한 이유 없이도 너나없이 심란해지는 길고 긴 1월의 겨울밤. TV와 휴대폰을 끄고 책과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과 혹한을 이겨보면 어떨까? 이 방식을 택한 사람에게 도움을 줄 2권의 책을 아래에서 권한다. ▲이경재의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 “요즘 나오는 소설을 대할 때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직접적 감각이다. 그것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에서도, 카프카의 소설에서도 맛볼 수 없는 오직 ‘요즘 소설’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흥미롭다.“ 문학평론가 이경재의 말이다. 그는 여전히 소설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 노력하는 사람 중 하나로 살고 있다. 이제는 드물어진. 소설은 허구로 만들어진 창조물. 쉽게 이야기하면 세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 쓴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거짓이 많은 인간을 진실에 가까이 다가서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자, 문학의 효용이 아닐지. 지난 시절, 비단 문학청년만이 아닌 수많은 독자들이 소설과 시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해석하려 했다. 문학이 가진 보편과 전형의 힘을 믿었던 시대였으니 그랬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한 인터넷 소통과 TV에 넘쳐나는 영화와 드라마, 연예 관련 프로그램을 보며 세상을 감각하고 느끼는 세대들이 2026년 이 땅의 주류로 떠올랐다. 시간의 흐름과 세태의 변화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본지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한 숭실대 이경재 교수가 쓴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책은 이 교수가 36편의 소설을 읽고 그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서는지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에서 언급되는 소설가와 작품은 그 프리즘이 넓다. 남녀와 노소, 주제와 소재가 다양한 것은 물론, 소개되는 소설의 형식 또한 각기 다르다. 이 책에서 이경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에서부터 서성란, 김애란, 심윤경, 조해진, 황정은, 정용준 등의 작품을 두루 읽고, 그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을 매개로 사람과 세상을 향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요즘 소설이 궁금한 그대에게’에서 사용된 문장과 문체는 모두 친절하다. 평소 딱딱한 비평서를 써온 학자답지 않은 말랑말랑한 문구로 편한 책읽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어렵지가 않다는 이야기. 책 속에서 발견한 걸로 예를 들자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는 나라는 장벽을 부수고 너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요’라는 문구, 또는 ‘어쩌면 인간은 벌레를 넘어 키오스크가 되어 가고 있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타인의 얼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문장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휴대폰으로 SNS 속 짧은 영상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헌데, 가끔은 책을 통해 세상과 인간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사람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권성훈의 ‘밤은 밤을 열면서’ 기자가 아는 권성훈 시인은 싱거운 말은 물론 진지한 이야기까지 우스개처럼 하는 사람이다. 얼굴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가 내내 떠나지 않는다. 별다른 고민이 없는 중년으로 느껴질 수 있는 어법과 표정. 하지만, 정신의 고통과 육체의 고뇌 없이 생산되는 시는 없는 법이다. 얼핏 가벼워 보이는 권성훈의 제스처와 말투는 철저한 위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를 만난 지 10년이 넘어서야 알게 된 일이다. 권 시인의 선배 시인인 이승하는 권성훈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우리 시의 유구한 전통에서 단절된 것이 있다면 해학성 혹은 골계미다. 권성훈의 시는 끊어진 맥을 되살려내면서 유쾌한 해학, 건강한 골계미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의 시는 재미에 그치지 않고 인간을 반성케 한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지천명을 앞둔 시절 권성훈이 내놓은 절창을 모아둔 시집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말과는 전혀 다른 시어(詩語)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우스개와 미소가 위장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거기서 가장 먼저 읽히는 건 죽음의 냄새다. 이런 것이다. ‘새끼를 키우려고 새끼를 내다 팔던 할머니/지하 골방에 죽음이 다녀갔다/개를 기르던 노인이/노인을 기르던 개가 들어 있다/홀로 두고 발길 돌리기 안타까웠는지/두 장 빛바랜 엽서처럼 붙어/서로를 애처롭게 만지고 있다….’ - 위의 책 중 ‘골방 엽서’ 부분 인용. 이른바 동반 고독사(孤獨死)다. 곁을 지켜주던 개가 노파의 유일한 말동무였을 터. 말을 할 수 없는 개였기에 끝끝내 부재했을 소통. 둘은 끌어안고 함께 죽었다. 악취 비산하는 좁은 방을 권성훈 이렇게 묘사한다. “한 생애를 지리고 나온 부패한 사연이 지독한 흉터로 인쇄된 증표 같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다.” 죽음의 향기는 시집 곳곳에 잠복했다가 불쑥불쑥 나타난다. 책장을 넘기기가 저어될 지경이다. 권성훈의 어디에 이런 어둠과 그늘이 숨겨져 있었던 걸까? ‘남은 이유’라는 제목을 택한 시 또한 노래하는 소재가 사라짐과 소멸이다. ‘평생 농사일로 검게 탄 눈을 껌뻑이다가/장마 전선에도 쑥쑥 자란 암소 한 마리 팔아 와서/사고 쳐 징역 간 손주 녀석 한 번만 살려 달라 애원한다….’ 죽음 같은 삶, 혹은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는 게 비단 개와 죽은 할머니, 그리고 소를 팔아 손자 구하려는 노인만일까?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느끼는 자들에게 세상이란 ‘죄 없이 갇힌 감옥’과 다를 바 없다. 시인은 느끼는 인간이다. 이를 알고 있는 동료시인 이수명은 “권성훈은 누군가의 통점(痛點)을 헤아리고 살피는 쪽에 서 있다. 그의 시들 역시 통점 안에서 쓰이고 읽힌다”고 해석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수난이나 고통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혹한의 겨울밤. ‘밤은 밤을 열면서’는 우리에게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며 어깨를 다독여줄 책이 분명해 보인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20

‘테트로도톡신’, 복어가 무서운 이유

그 옛날. 바닷가에서 목선에 올라 뱃일로 잔뼈가 굵은 노인들은 두 눈을 무섭게 뜨고 동네 아낙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희들 모두 조심해야 돼. 이 괴기(생선)를 함부로 먹다간 혀가 목구멍을 막아 죽게 되니까. 알겠지?” 볼을 부풀리며 풍선처럼 몸을 변화시키기도 하는 복어는 재밌게 생긴 생선인 동시에 맛도 기막히다. 얼큰하게 탕으로 먹어도, 무럭무럭 김 오르는 솥에서 쪄 먹어도, 부드러운 내장을 숯불에 살살 구워 야금야금 맛봐도. 그러나, 아름다운 꽃 장미가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것처럼, 복어에게선 위험한 독이 발견된다. 극소량만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이름하여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다. 저 멀리 화성과 목성으로 우주선을 보내고, AI가 똑똑한 학자와 교수 1000명의 역할을 대신하는 ‘과학의 시대’인 21세기. 그럼에도 인류는 아직 테트로도톡신을 해독하는 약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다. 복어는 그걸 먹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줘왔다. 일생 어촌에서 살아오며 회갑과 칠순을 넘긴 할머니도 함부로 칼을 들어 복어를 손질하지 않는다. 복어와 일부 망둑어과 물고기, 몇몇 문어가 가진 테트로도톡신은 독성이 청산가리의 5~15배에 이른다. 16mg만으로도 70kg 안팎의 성인 남성을 12시간 안에 죽일 수 있는 맹독이다. “자격 없이 복어를 손질해 밥상에 올리는 건 살인 행위”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그러니, 복어를 먹을 때는 반드시 전문요리사의 손을 거쳐야 하는 게 섭식의 제1원칙이 돼야 마땅하다. ‘복어 요리는 전문가에게!’ 이는 어떤 미식가도 잊어서는 안 될 경구(警句)이기도 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13

복어탕 앞에서 중국 미녀 ‘서시’를 떠올리다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부산이 마찬가지다. 어디를 가더라도 영남 바닷가 마을에선 복어를 요리하는 식당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모주꾼의 아프고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으로 알려졌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이들도 시원하고 담백한 맛에 매료되는 경우가 흔한 게 바로 복어탕. 기호에 따라 매운 양념을 넣어 먹어도 좋고, 맑은탕을 훌훌 마셔도 혀에 착착 감긴다. 이에 이론(異論)을 재기하는 이들은 드물다. “복어 좀 먹어봤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특히 껍질과 정소를 귀하게 여긴다. 어금니를 매혹하는 쫄깃한 복어 껍질과 비교 대상이 드물게 부드러운 복어 정소는 바람 차가운 겨울에 기막히게 어울리는 별미고 별식이다.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복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중국 월나라의 국색(國色) ‘서시(西施)’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 남의 빨래를 대신 해주는 보잘것없는 신분이던 젊은 여성 서시는 월나라 왕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라이벌 국가인 오나라로 보내진다. 월나라의 계획대로 육체적 아름다움 하나로 오나라 왕의 혼을 뒤흔들어놓은 서시.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오나라는 맥없이 멸망한다. 혼이 빠진 왕이 통치하는 국가가 오래 갈 까닭이 있겠는가?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한 나라를 무너뜨릴 정도의 미색을 지닌 여성을 지칭한다. 서시를 둘러싼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통을 앓던 서시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런데, 이것도 흉내의 대상이 됐다. 서시가 살던 마을에선 일곱 살 여자아이부터 일흔 살 할머니까지 모조리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던 것. 서시를 닮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웃긴 이야기지만 이런 것도 ‘유행 선도’가 될 수 있을지. 뿐 아니다. 서시가 빨래를 하러 냇가에 가서 쪼그려 앉으면 얼굴을 올려다보던 붕어가 넋을 잃어 헤엄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물고기가 물에 빠져 죽는’ 해괴한 사건(?)을 만들어낸 게 서시의 미모였다. 이른바 ‘침어(沈魚)’의 고사다. 과장과 허풍이 섞여 있는 게 분명하지만, 이 정도면 서시의 외적 수려함이 탁월하고 출중했음은 누구나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다시 ‘복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미식가들은 복어의 정소를 ‘서시유(西施乳)’라 부르며 즐긴다. 한자를 풀어 쓰면 ‘서시의 젖’이란 뜻 아닌가. 복어가 중국 최고의 미녀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서시의 가슴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식탁에서 먹음직스럽게 끓고 있는 복어탕에서 익어가는 정소를 터뜨리면 국물이 불투명한 흰색이 되면서 감칠맛을 한층 높인다. 사람에 따라서는 화롯불에 구워 먹기도 하는 게 복어 정소. 최고급 푸아그라(거위의 간) 못지않은 식감을 가졌다는 말이 떠돈다. 그만큼 절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복어를 요리하기 시작했을까?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완성된 건 17세기 초반. 그 책엔 다음과 같은 언급이 실렸다. “복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달며 독이 있다. 허약함을 보충하고 습함을 제거하며 허리와 다리에 좋고 치질과 벌레를 죽인다. 하지만, 간과 알의 독성이 강하니 조리법을 정해진 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의 인용을 감안한다면 우리 선조들은 최소 400년 전부터 복어를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가 만만찮은 식재료인 것이다. 조선의 대표적 실학자 정약용(1762~1836)도 복어를 즐겼다고 한다. 폐일언. 복어는 환한 빛과 어둡고 짙은 그림자를 동시에 지닌 물고기다. “복어 10마리의 독이면 코끼리도 죽인다”는 말처럼 잊을 만하면 복어 독 탓에 목숨을 잃은 사람의 안타까운 소식이 신문이나 방송에 등장하곤 하니까. 내장과 핏속에 치명적인 독을 숨겼음에도 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복어. 최고의 음식은 최고의 위험마저도 감수해야 맛볼 수 있는 걸까? 질문이 공포를 부를 정도로 무겁지만, 미리 겁을 먹고 복어 요리를 멀리할 필요는 없다. 복어탕을 판매하는 식당엔 복어 독을 없애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격증 가진 요리사들이 널려 있으니. 그래서다. 다가오는 일요일 점심 땐 푸릇푸릇한 미나리를 올린 복어맑은탕 먹으러 청옥빛 파도 일렁이는 구룡포로 나가볼 생각이다. 벌써부터 설렌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13

적성리 고갯마루에 우뚝 선 소나무 한 그루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입석 고갯마루에 이르는 길은 조용했다. 시루봉휴게소 뒤편의 옛길을 따라 오르면 문득 세월이 꺾인 듯한 고요한 능선이 펼쳐진다. 650m 남짓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발밑을 스치는 바람은 뒹구는 낙엽 소리와 함께 오래전 이곳을 넘나들던 길손들의 숨결을 되살려낸다. 영남에서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과거의 선비들, 장짐을 둘러멘 보부상들, 생의 희망을 안고 먼 곳을 향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발자취가 층층이 켜진 고갯길이다. 지금은 고갯마루 아래를 지나는 터널과 새 도로가 생겨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고갯마루에는 여전히 그 옛날부터 장엄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과거의 역사를 품은 채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 물결처럼 너울거리는 가지 사이로 오후 한낮의 햇살이 푸른 솔잎 위에 반짝인다. 놀라웠다. 몸의 오각이 열리고 오감이 땅속에서 꼬물꼬물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경외감의 발로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몸집과 근육질의 건강한 수형, 장수의 기운 앞에서 이 나무는 내 삶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가치였다. 대지를 움켜쥔 채 노출된 뿌리의 꿈틀거리는 끈질긴 모습 또한 내 삶으로 반추되었다. 우리 삶 역시 뿌리, 곧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이 나무는 말없이 일러 주고 있었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나무 가까이 다가가 그를 안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나무가 되었다. 그사이 뒤따르던 대붕 아우가 도착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같은 행동을 했고, 소나무를 안은 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무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은 나무와 닮아가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백두대간의 경관은 한 편의 시이자 그림이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등줄기가 금강산과 설악산, 태백산의 고산준령을 지나 소백산과 속리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조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남의 관문 백두대간 문경새재 고갯길을 넘어 이곳 적성리 고갯마루에 섰던 옛 길손들은 떠나온 고향을 바라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꼭 성공하여 금의환향하여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처자식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원대한 꿈을 괴나리봇짐에 숨겨놓고 결기를 다졌을까. 입석마을이 생기기 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는 천연기념물 제383호 소나무 노거수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산 26-4번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이 약 500년,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에 이른다. 마을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 소나무는 이미 고사했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대신 이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살아남아 지금까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형제처럼 닮은 모습이다. 줄기 윗부분은 붉은빛을 띠고 아랫부분은 검은빛을 띠어 소나무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원래는 가지가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어 있었으나, 2003년 설해(雪害)로 동쪽 가지 일부를 잃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낭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조선의 길손들은 먼 길을 떠나며 마음 한켠에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품었으리라. 산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형을 건너는 일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무게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고갯마루는 그 길 위에 놓인 경계이자 시험대였다. 발목에 묻은 흙먼지가 무겁게 내려앉을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고, 낯선 계곡의 바람에도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험한 고개를 앞둔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언젠가 이 길 끝에서 다시 웃을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충북 괴산 적성 고갯마루에 우뚝 서 있는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수백 번의 사계를 견디며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어쩌면 이곳을 지나며 옷깃을 풀고 쉬어 가던 길손들의 침묵을 오래도록 들어온 존재일 것이다. 고개를 넘기 전 무거운 마음을, 밤바람 속에 스미는 외로움을, 짚신에 구멍이 나도 되돌아갈 수 없었던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았고, 그 아래를 지나는 나그네를 말없이 품어 주었으리라. 흔들리는 가지 끝마다 나그네의 사연이 걸리고, 껍질에 새겨진 세월만큼이나 간절한 기도들이 차곡차곡 쌓였으리라. 나이테의 연륜만큼이나 그 사연 또한 깊었을 것이다. 길손의 삶의 애환을 고갯마루에서 풀어헤친 보따리들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흩날리며 통한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노거수를 찾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전설이 되었다. 고갯마루에 서서 나무가 되어 푸른 그늘을 올려다보면, 길을 떠난 모든 이들의 숨결이 바람결에 되살아난다. 어쩌면 이 소나무는 길과 사람, 삶과 희망을 잇는 수호목이었을 것이다. 도적이 나타날까 두려워 서로를 기다리던 손, 낯선 이에게 내밀던 따뜻한 보리밥 한 숟가락의 정, 넘어야 했던 수많은 인생의 고비들. 그 모든 사연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지금도 은은히 내려앉는 듯하다. 길을 걷다 지친 마음을 잠시 멈춰서 쉴 때, 소나무는 묵묵히 말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인생 또한 그러하다고,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면 떠나는 길 위에 펼쳐진 고개는 끝이 없다. 언젠가 목적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외길이기에 고갯마루에서 쉬면서도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숙명의 길임을 깨닫는다. 내 또한 늘 힘든 고갯마루를 넘으면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란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아픈 다리 끌면서 인생 고갯길을 넘어왔다. 본래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주변에는 숲이 있어 고갯길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토지 소유주가 나무들을 베어내고 경작지로 바꾸어 버렸다. 주민들은 강풍으로 인해 소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괴산군 삼송리 천연기념물 왕소나무, 일명 용송(龍松)이 2012년 태풍 볼라벤의 거센 바람에 뿌리째 뽑혀 땅을 베고 눕고 말았다. 그와 같은 일이 이 소나무에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토지 변경을 허가한 관계기관에 대한 원성도 컸다고 한다. 이에 충북 괴산군과 국립환경산림과학원은 송홧가루가 날리기 전 건강한 꽃가루를 채취해 유전자은행에 장기 보존하고, 후계목 육성에 활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군민들의 깊은 나무 사랑이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고사한 삼송리 왕소나무 노거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 250번지. 왕소나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90호 지정, 나이 600살, 키 12.5m, 둘레 4.7m이다.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 부르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한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했다고 한다. 2012년 8월 28일 태풍 ‘볼라벤’이 동반한 강풍에 쓰러졌다. 쓰러진 상태로 보존하기로 하고 괴산군은 나무병원 직원들을 동원해 뿌리 부분 복토, 석축 작업, 새 뿌리 발생을 돕기 위한 약품 처리, 햇볕을 막기 위한 차광망 설치 등을 진행했다. 나무 주사를 놓고 병해충 방제 작업을 벌였다. 노력이 1년 정도 계속되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2014년 12월 5일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했다.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청주시 미원면 미동산수목원 뒤편 산기슭에 후계목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

2026-01-08

돈이 사라진 세상, 인간은 모두 행복해질까?

병오년이 시작됐다. 한 해 계획을 세우며 모두가 분주한 시기. 이즈음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이 어때야 할 것인지 고민한다. 무게감 있는 소설을 읽는 것도 청사진을 그려 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듯하다. 아래 2026년 첫 독서 목록에 넣어도 좋을 작품 2편을 소개한다. ▲‘소유’라는 개념이 사라지면 모두 행복해질까?-소설가 남한의 ‘무한복제기계’ 1970~1990년대. 적지 않은 한국의 청년들은 칼 마르크스(1818~1883)의 ‘역사 발전 5단계설’에 매료됐다. 독일 철학자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가 ‘물질 생산력의 계속된 발전 과정’이라고 설파했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단어도 함께 언급됐다. 인간이 생겨나면서부터 마르크스 당대와 이후의 세상이 ‘원시 공동체 사회-고대 노예제사회-중세 봉건제사회-근대 자본주의사회-공산사회’로 변화·발전할 것이란 게 그가 주장한 역사 발전 5단계설의 핵심이다. 인간이 만들어갈 역사의 최종 지점, 마지막 단계가 공산주의사회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20세기 초반 러시아와 동유럽,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의 일부 국가에서 혁명 또는, ‘혁명 수출’이란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게 “실패했거나, 실패에 가까웠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고, “온전한 공산사회는 아직 형성된 적이 없다”고 진단하는 견해도 있다. 아래 언급되는 한 편의 소설은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공산사회의 형성과 마침내 도달한 유산자와 무산자가 없는, 인간 모두가 물질적으로 평등한 세상을 그려내고 있어 주목받았다. 서울대와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작가 남한의 ‘무한복제기계’가 바로 그것. 소설 ‘무한복제기계’의 줄거리는 비교적 간단하게 요약될 수 있다. 수십 개의 기업을 소유한 거부(巨富)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과학자에게 ‘세상 모든 것을 복제할 수 있는 기계’의 제작을 의뢰한다. 천문학적 돈이 사용된 이 프로젝트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똑같이 복제해낼 수 있는 기계 ‘오메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 이상 값비싼 보석과 명품 시계, 커다란 아파트와 모피 코트를 가지려고 서로 다투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다. ‘소유’라는 개념이 증발했다. 마르크스는 저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소유권이 사라지면 누군가는 낚시를 하고, 누구는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는 토론을 벌이는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소설가 남한은, 자본 중심의 사회에서 공산사회로 변화하는 단계엔 획기적 기술의 발달이나 누구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의 격변이 수반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는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실험이 실패로 평가받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터.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변화·발전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마르크스조차 농업기술의 비약적 발전, 방직기계의 발명처럼 사회 구조를 바닥에서부터 최상위까지 모조리 바꿀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는 게 이 소설 작가의 생각이다. ‘자본론’에 이어 ‘공산당 선언’에 이르면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막연한 ‘의지주의’로 전락해버린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소설 ‘무한복제기계’는 세상의 모든 재화를 끝없이 만들어내 그걸 원하는 누구나 나눠 쓸 수 있게 하는 기계의 탄생이라는 혁명적 변화 이후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 속에서 축조된 공산사회의 모습을 서술·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걸 무한으로 복제해 낼 수 있는 기계는 인간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현재의 자본주의사회를 마르크스가 말한 바 평등한 공산주의사회로 건너가게 만들어줄까? 한 번도 설거지나 청소를 해본 적이 없는 재벌의 아내와 일생 남의 집 가사를 대신해주며 살아온 노동자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돈을 포함한 일체의 재화를 얻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인간의 선한 의지가 발현되는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오히려 어둡고 습한 디스토피아일까? 남한의 ‘무한복제기계’는 독자들을 끝없는 질문 속으로 던져 넣는다. 책이란 인간에게 생각하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이 소설은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건 무엇인지…-소설가 이은정의 ‘비대칭 인간’ 어느 날 문득, 불현듯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니 좌측과 우측의 대칭이 무너져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궁금증 속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거리를 걷는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안면 윤곽술에 도통한 의사에게도 대놓고 하소연하기도 힘든 상황. 곤혹스러움이 주위 사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런 ‘안면 비대칭’은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일까? 물음의 출발점이 모호하니, 답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위의 서술은 이은정의 소설집 ‘비대칭 인간’의 표제작 내용 중 일부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끌어가고, 마무리 짓는 솜씨가 만만찮다. 이 작가의 또 다른 단편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비대칭 인간’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훈련과 연마가 거듭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향기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허술하지 않은 문장에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시적(詩的)인 문체, 거기에 지난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삶과 마주한 21세기 청년들의 환멸까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묶어낸 역량까지가 그랬다. 소설가 이은정은 2018년부터 소설가의 삶을 살아왔다. “책을 낼 때마다 작업 과정은 달랐고, 나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이 아니면 내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넣으려 한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현대사회가 외형이건 내면이건 인간의 비대칭을 만들거나, 인식하게 한다면 그걸 만들거나 인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뭐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시선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 자신의 시선. 그걸 인식하는 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SNS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시선들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비관하고 절망하고 고단해야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대놓고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비대칭 인간’의 수록작 중에서는 ‘눈이 와요’를 살펴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고,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연초에 어울리고,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줄 것”이라 부연했다. 앞으로는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풀어보고 싶다는 이은정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다. 그 단면들을 소설로 쓰면서 나도 많은 걸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소설가를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이 작가. 이 ‘선량한 싸움꾼’이 앞으로 써낼 작품들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06

‘탄소중립시대’에 적극 대비하는 성주군

‘환경’과 ‘에너지’라는 단어의 중요성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21세기다. 어느 지자체 할 것 없이 이에 관한 대비책을 골몰 중이다. 성주군도 이런 상황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기에 미래 청사진의 주요한 부분에 ‘환경 친화’라는 방점을 찍고 있다. 성주군은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시대를 대비하고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2026년 약 76억원의 국도비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대기질 개선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이에 성주군은 이동 오염원의 대기오염물질을 저감하기 위해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지원, 매연저감장치 부착, 전기․수소 등 친환경차량 보급을 추진한다. 더불어 사업장의 노후 방지시설 개선, 탄소중립 포인트 인세티브 지원 등을 통해 전반적 지역 대기질 개선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현재 성주의 전기차 및 전기이륜차 등록 대수는 약 1635대. 이는 경북도내에서 인구대비 무공해차 비율이 가장 높은 수준. 2026년엔 57억원의 예산을 들여 승용전기차 150대, 화물전기차 128대, 버스 2대, 이륜차 70대, 수소전기차 2대를 2월중에 신청 받을 계획도 세웠다. □ 전기-수소 자동차 확대와 보급 위한 대책 마련 그린모빌리티 시대로의 전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지원하는 동시에 부족한 충전 인프라 구축을 위해 예산도 편성했다. 이는 급속 및 완속충전기의 민간 설치 지원을 위해 사용된다. 경유차는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의 주된 배출원이다. 노후될수록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정부는 조기폐차 지원사업을 통해 노후경유차를 조기에 폐차하도록 유도 중이다. 이에 발맞춰 성주군은 2026년에 7억5000만원의 예산을 확보, 3월 2일부터 461대의 노후경유차 조기폐차를 지원한다. 또한, 어린이통학차량LPG전환에 300원, 지게차와 굴착기 등 노후건설기계엔진교체 사업에 3억6000만원을 편성했고, 매연저감장치부착예산 3300만원을 확보해 경유차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소규모 사업장 방지시설 설치 지원사업은 영세 사업장의 노후 방지시설 개선 비용 부담 완화 및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국도비 사업으로 2019년도부터 시행되고 있다. 수년간 방지시설 지원사업을 시행한 결과 매연, 악취 등 대기오염으로 인한 환경 민원이 감소해 주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해 국도비 예산을 최대한 확보해 영세 사업장의 시설 개선도 지원할 계획이다. 가정 에너지 사용을 줄이면 보상금을 지급하는 탄소포인트 제도와 자동차 연료 사용량을 줄이는 차주에게 포인트를 지급하는 자동차 탄소포인트 제도도 4000만원의 예산으로 시행한다. □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 불법행위 철저 감시 성주군에는 360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사업장이 있다. 산업단지 조성과 대도시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대기배출사업장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런 대기배출사업장에 대해서는 정기-수시 점검을 실시하고, 사업주에게 환경 관련 준수 사항을 지도하는 등 환경오염 등 불법을 방지하는 데도 집중한다. 방지시설 미가동 등 불법 행위 적발 시에는 관련 법령에 따라 고발, 행정처분 등 엄중 조치함으로써 경각심을 고취하고, 공장 가동 시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후된 방지시설은 개선을 유도하는 등 시설 적정관리 및 대기오염물질 저감에도 집중할 방침이다. 그간 축사·퇴비공장 등에서 악취 민원이 자주 발생됐으나 악취 발생 시간대 및 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날씨, 기상에 따라 악취 상황이 급변하는 등 악취 민원 관리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에 따라 성주군은 악취 측정과 포집이 가능한 대기오염 이동측정차량을 확보해 민원 발생 지역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성주군은 향후 주민 요청지역, 대기오염 취약․우심 지역을 대상으로 대기질을 측정해 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행정신뢰도를 제고하고, 모니터링 한 데이터를 환경 정책에 반영해 쾌적한 정주 여건 조성에 활용하게 된다. 이와 함께 다중이용시설 실내 공기질 지도·점검을 지속한다. 점검 대상은 어린이집, 의료기관 등 26개 시설이다. 2026년 성주군의 다중이용시설 지도·점검 대상지는 총 15곳. 시설별 관리 실태와 기준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점검 과정에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안내 및 개선 조치한다. 이러한 제반 사업의 세부 요건, 제출 서류, 접수 방법은 성주군 홈페이지 공고와 담당 부서 안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병휴기자 kr5853@kbmaeil.com

2026-01-06

연민과 희망 가득하길··· 병오년 새해를 밝힐 3편의 시

환하게 떠오른 2026년 첫날의 붉은 태양. 그 아래를 선명한 붉은빛을 가진 말이 뛰어간다. 말은 진취적 기상과 역동성, 거기에 꿈틀대는 생명력까지 가진 동물이다. 재론의 여지없이 활기찬 에너지가 넘친다.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다. 전쟁터에선 장수를 태우고 종회무진 적진을 헤쳐 나가고, 무거운 짐이 등에 실렸을 때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걸음을 빨리 한다. 그 옛날, 인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줬던 말이 2026년엔 어떤 기운을 국민들에게 선물할까? 그 기운을 토대로 우리는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삶을 가져갈 수 있을까? 질문이 많아지는 새해 벽두다. 누구나 이때쯤이면 한 해를 설계하고 미래를 계획하게 된다. 올해는 이기심보다는 이타(利他),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청사진을 그려보면 어떨까 싶다. 2026년 열두 달을 살아가는 동안 한 번쯤 읽어본다면 인간과 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사랑·연민·희망이란 귀한 메시지를 품은 시 3편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죽음도 이겨내는 사랑... 송수권 ‘석남꽃 꺾어’ 무슨 죄 있기 오가다 네 사는 집 불빛 창에 젖어 발이 멈출 때 있었나니 바람에 지는 꽃잎에도 네 모습 어리울 때 있었나니 늦은 밤 젖은 행주를 칠 때 찬 그릇 마주칠 때 그 불빛 속 스푼들 딸그락거릴 때 딸그락거릴 때 행여 돌아서서 너도 몰래 눈물 글썽인 적 있었을까 우리 꽃 중에 제일 좋은 꽃은 이승이나 저승 안 가는 데 없이 겁도 없이 넘나들며 피는 그 언덕들 석남꽃이라는데...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 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밤이슬 풀 비린내 옷자락 적시어 가며 네 집에 들리라. ‘남도의 소월’로 불리는 송수권 시인의 서정시 중 으뜸이라 불러도 좋을 ‘석남꽃 꺾어’는 어떤 존재에 대한 깊은 사랑이 어디에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를 간명하고 질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정한 사랑은 너와 내가 오가는 방에도, 부엌에도 웅크리고 있으며 심지어 젖은 행주에도 깃드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가 웃을 때도, 울 때도 사랑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강고하게 건재한다. 그 사랑의 힘은 때로 이승이 아닌 저승에서도 발휘된다. ‘나도 죽으면 겁도 없이 겁도 없이/그 언덕들 석남꽃 꺾어 들고’ 싶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2026년 사람들의 지상목표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단 하나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 돼야 할 듯하다. ▲연민이 없다면 인간도 없다,.. 이면우 ‘화엄경배’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본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 녹차의 쓸쓸함도 따라나왔다 내 가족의 웃음, 눈물이 저 불길 속에 함께 타올랐다 불길 속에서 마술처럼 음식을 끄집어내는 여자를 경배하듯 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 불길과 여자는 함께 뜨겁고 서늘하다 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연민(憐憫), 즉 불쌍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은 인간만이 가진 소중한 것이다. 저 혼자 잘 먹고, 저 혼자 잘살겠다는 마음가짐이야 금수(禽獸)라도 못 가질 게 없다. 연민을 가지려면 평범한 삶을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면우는 실제로 온갖 육체적 노동을 하며 시를 써온 시인이다. ‘보일러 새벽 가동중 화염 투시구로 연소실을 보는’ 일을 했다. 그의 작품에서 근육의 꿈틀거림과 진솔한 생활의 냄새가 나는 것은 이면우가 일상을 고마워하는 태도를 지녔기 때문이 아닐지. ‘보일러공의 기도’라고 불러도 좋은 ‘화엄경배’에선 뜨거운 불기운이 느껴진다. 세상의 하찮은 것들을 다사롭게 끌어안는 휴머니티 가득한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렇다. ‘연민을 가질 수 있어야 마침내 인간은 인간일 수 있다’고 이면우는 노래한다. 아프지만 아름답지 않은가? ▲희망은 언제나 우리의 숙제... 이성부의 봄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시와 문학을 사랑하는 적지 않은 독자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최고의 절창(絕唱)’으로 손꼽는 게 이성부 시인의 ‘봄’이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분홍빛 꽃들과 함께 봄은 온다. 겨우내 꽁꽁 언 땅에서 새파란 새싹이 돋아나듯 희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해마다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류와 함께 공존해왔다. 삶이 있다면 희망도 있고, 생이 소멸하지 않는 한 희망도 소멸하지 않는다. 2026년 1월 초. 아직은 북풍에 어깨를 움츠려야 하는 차가운 날씨지만, 머지않아 희망의 메타포라 할 봄이 ‘눈 부비며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다. 만약 그런 믿음이 없다면 우리네 세상살이가 얼마나 메마르고 팍팍할 것인가. 맞다. 병오년의 봄도 멀지 않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6-01-01

혹한의 겨울, 한국 사람은 아직 ‘밥심’으로 살까?

몇 해 전 겨울이다. 가수 진성이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새벽부터 오는 눈이 무릎까지 덮는데/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기다리는 내 마음만 녹고 녹는다”고 노래한 ‘안동역’ 인근 조그만 식당에 갔다. 바람이 차가운 날이었고, 무언가 따끈한 게 먹고 싶었다. ‘냄비밥’이란 메뉴가 눈에 띄었다. 알고 찾아간 게 아니었는데, 거긴 이미 기자 외엔 알 만한 사람이 다 아는 맛집이었다. 운이 좋았던 것이다. 다른 메뉴를 쳐다볼 것도 없이 냄비밥을 주문했다. 기대했던 대단한 밥상이 차려지진 않았다. 그저 몇 가지 나물반찬에 담백하게 끓인 된장찌개, 거기에 고등어조림 한 토막. 헌데, 얇은 냄비에 갓 지어낸 밥이 기가 막혔다.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구수하고 달았다. 그 옛날 교주 최시형을 따르던 동학교도들은 “밥이 곧 하늘”이라 했다. 거창한 의미 따위를 붙이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밥은 ‘섬김의 대상’이었다. 뿐인가? 반세기 전만 해도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말에 토를 다는 이들이 없었다. 싱싱한 푸성귀 무침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따끈한 냄비밥을 깨끗하게 비운 그날. 냄비에 지은 밥이 선물한 ‘또 다른 별식’ 누룽지를 씹으며 기억의 회로 저 먼 곳에서 잠자고 있던 추억 한 조각을 떠올렸다. 선친과 외조모에 얽힌 에피소드였다. 주전부리나 별식 따위가 없던 시절엔 반찬도 부실했다. 그래서였을 터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주식이라 할 밥을 무지하게 많이 먹었단다. 물론 제 땅이 없고, 소작할 땅도 마땅찮아 극도로 가난했다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보리와 콩 등 잡곡을 섞은 밥도 양껏 먹지 못했겠지만. 19세기 후반이나 20세기 초반. 선교 등의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농부나 어부의 식사량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다고 한다. ‘밥을 무지막지하게 많이 먹는 조선 사람’에 대한 놀라움은 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 쓴 책에 고스란히 남았다. 커다란 밥그릇을 앞에 놓고 앉은 상투 튼 조선인 사진 몇 장도 함께 전해진다. 1947년에 태어난 모친은 아버지와 결혼하기 전 농사일을 도우며 시골에서 살았다. 반면 선친은 일제강점기인 1938년 ‘세련된 도회지’라 불러도 좋을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첫 울음을 터뜨렸다. 1944년, 그러니까 해방 한 해 전에 나고야에서 부산으로 이주한 아버지는 혼인하기 전까지 내내 도시에서만 살았다. 그리고, 일생 소식(小食)했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우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기 주먹만한 조그만 밥그릇임에도. 그런 아버지가 장가를 갔다.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처음으로 처가에 갔을 때 몹시 곤혹스러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선친의 첫 번째 처갓집행(行)은 벼 수확이 한창이던 1970년 가을이었다. 그때만 해도 사위는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았다. 이런저런 처갓집 피붙이 어른들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니 저녁밥 먹을 때가 됐다. 장모가 들고 온 밥상을 본 아버지는 대경실색(大驚失色) 했단다. 황소 머리통만한 밥그릇엔 푸른 염료로 큼직하게 ‘福(복)’자가 새겨져 있었고, 밥그릇에서 솟아오른 밥의 높이가 족히 10cm는 넘어 보였다는 것. 이른바 농사짓는 상일꾼이 먹는 ‘고봉밥’이었다. 선친은 매사에 과장이 없는 사람. “이걸 혼자서 어떻게 다 먹나? 쌀 한 되로 밥 한 그릇을 만든 형국”이란 혼잣말을 참지 못하고 했다는데, 그걸 장모는 듣지 못했을까? 만약 들었다면 꽤 서운했을 듯하다. 맏사위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이었으니.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그 밥을 아버지는 결국 남겼고…. 세월무상(歲月無常)이다. 지난 2007년. 산처럼 높고 높은 고봉밥을 퍼주던 1920년생 외조모(아버지의 장모)가 세상을 떴고, 이듬해 시골 사람들 밥그릇 크기와 밥의 양에 경악했던 사위(선친)도 귀천했으니. 그리고 2025년 찬바람 매운 오늘.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믿던 1970년에서부터 55년이 흘렀다. 이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밥에 욕심을 내지 않는다. 나와 모친도 겨우 쌀 한 홉으로 밥을 지어 둘이서 나눠 먹는다. 그러고도 그걸 남길 정도다. 그래도 아주 가끔은 먹고 싶어진다. 외조모의 가마솥 고봉밥이나 낡은 냄비에 고슬고슬 지은 따끈한 밥이. 그런 걸 보면 기자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 모양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30

‘깜밥’ ‘가마치’로도 불리던 별미

한국에 전기밥솥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20세기 중후반이 아닐까 싶다. 장작이나 연탄 없이도 전기를 사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밥을 지을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서 주부들의 ‘밥 짓기’ 고민은 사라졌다. 아쉽게도 그 고민과 동시에 하나 더 사라진 게 있으니 바로 ‘누룽지’다. 깜밥, 깐밥, 깡개밥, 깡개, 누룽갱이, 가마치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던 누룽지는 가마솥이나 냄비에 밥을 할 때 바닥에 밥이 눌어붙은 걸 지칭한다. 고소하고 묘한 단맛이 나기에 군것질거리가 많지 않던 1970년엔 대부분의 아이들이 별미로 먹었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누룽지를 프라이팬에 구워 설탕이라도 조금 뿌리면 인기는 더 높아졌다. 어른들은 누룽지에 물을 붓고 푹 끓인 숭늉을 지금 사람들이 커피 마시듯 즐겼다. 요즘엔 일부러 밥에 열을 가해 누룽지를 만드는 가게도 있다. 옛 기억을 잊지 못하는 어르신들은 그렇게 만든 ‘21세기 스타일 누룽지’를 잔뜩 구입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과자처럼 먹거나, 식후 입가심용 숭늉으로 마시기도 한다고. 누룽지는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수분이 대폭 줄어들고, 적지 않은 양만 먹어도 시간이 지나면 포만감이 생기기에 젊은 여성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고 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누룽지의 쓰임새도 변하고 있는 모양. 한국인들의 ‘누룽지 사랑’을 알려주듯 사탕도 누룽지 맛이 나는 게 있고, 백미보다 건강에 좋다는 현미로 누룽지를 만들어 먹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누룽지를 한국 사람만 먹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아직도 전기밥솥이 아닌 전근대적인 수단으로 솥에 불을 때서 쌀을 익혀 먹는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 심지어 유럽 몇몇 나라 사람들도 누룽지를 즐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30

명성황후 민자영의 죽음 일주일 전엔 어떤 일이?

“나는 상상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역사를 재료로 글을 쓰면서 가슴이 뛰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그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주관적 상상력을 기사에 담을 수는 없었다. 이제 마음껏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한 세계를 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는 것이 신이 나고 보람 있다.” 누군가에게는 ‘명성황후’라는 극존칭으로 불리고, 어떤 사람들에겐 ‘민비’로 비하되는 조선 26대 왕 고종의 아내 민자영(1851~1895). 민씨는 1895년 10월 8일 새벽에 사망했다.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 일본인의 칼에 찔린 처참한 죽음이었다.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TV와 영화를 통해 지켜봤을 이 유명한 살인 사건은 왜 발생한 것이고, 그 이전엔 어떤 일이 있었으며, 중전 민씨를 살해한 이들의 정체는 뭐였을까? 35년 동안 연합뉴스 기자로 일하고 올해 봄 퇴직한 권영석은 앞서 언급한 3가지 의문을 자신의 첫 소설 ‘작전명 여우사냥’을 통해 추적한다. 권영석은 역사적 사실과 자신의 상상을 교직(交織)하는 방식으로 중전 민씨의 죽음 직전 일주일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 또는 서술한다. 오랜 기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짧고 명확한 단문이기에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이명재와 아다치 겐조의 치열한 지략 대결 펼쳐져 소설의 주인공은 19세기 말 온건 개화파의 수장이던 민영익의 호위무사 이명재. 가상의 인물이다. 그와 대척점에 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인물은 아다치 겐조다. 제국주의 일본이 우리나라에 세운 일간지 ‘한성신보’ 사장이며 실존 인물. 책을 펴낸 출판사는 “‘작전명 여우사냥’은 주인공 이명재와 라이벌 아다치 겐조의 치열한 지략 대결과 한성 시내를 뒤흔든 대형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줌으로써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한다”는 설명으로 이 작품이 딱딱한 역사소설의 모습만이 아닌 흥미진진한 스릴러의 면모도 지니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중전 민씨의 죽음은 정확한 전말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관련된 논란도 현재 진행형이다. 권영석의 첫 장편 ‘작전명 여우사냥’은 이 풀리지 않은 역사의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작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권영석은 1991년에 연합뉴스에 입사해 올해 봄 정년퇴직했다. 여러 부서에서 근무했고, 재직 마지막 시기엔 북한부와 통일언론연구소 등 북한 관련 부서에서 주로 일했다. 이에 관해 권 작가는 “역사적인 삶을 살자는 것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다. 역사적 삶이란,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독립전쟁을, 독재 치하에 산다면 민주화 투쟁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지금은 분단시대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와 통합을 위하는 삶에 조금이나마 다가서고 싶었다”고 부연한다. 소설을 쓴 이유에 관해선 “지금까지 남이 하는 얘기만 썼다. 기사는 쓸 만큼 썼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쓰려 한다”고 했다. 크게 봐서는 똑같은 글쓰기지만, 소설과 기사는 그 작법과 호흡이 다를 수밖에 없다. 분량만을 보자면 소설의 길이는 기사를 크게 압도한다. 그래서다. ‘작전명 여우사냥’이 나오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소요됐다. 지난 2022년 5월 권 작가는 영화감독 한 명과 통음했다. 그 자리에서 감독에서 우연히 자신이 쓰고 싶은 소설을 설명했고, “흥미로운 소재고 의미 있는 이야기”라는 격려를 얻었다. “그때 이후 조금씩 시간을 쪼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탈고까지 거의 3년 걸렸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소설 쓸 때가 더 행복했다.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는 게 그 시간을 떠올리는 권영석의 회고다. ▲자신의 문장으로 소설 쓰는 시간, 너무 행복해 작가라면 자신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권영석은 명성황후, 혹은 민비로 불리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아래는 그에 관한 대답이다. “명성황후란 명칭은 귀에 거슬린다. 내 소설 속에선 중전 민씨라고 불렀다. 황후라고 높여 부를 필요도 없지만 민비라고 업신여길 필요도 없다. 총명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자식들이 잇따라 죽으면서 하나 남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지나쳤다. 무당에게 의지하고 뇌물도 좋아했다.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탐욕이 끝이 없었다. 가장 큰 죄는 사대주의였다.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해 조선을 청나라 속국으로 만들었고 청나라가 망하자 그 다음에는 러시아에 의지했다.” 시계를 과거로 돌려보자.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의 아픔은 패전국들의 몫이었다. 동독과 서독처럼 일본도 미국과 러시아가 분할 점령을 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러나 일본은 미국에 대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제안했다. 권영석은 바로 여기서 우리 민족 비극의 시작을 봤다. 그래서일까? 소설 속에도 일본이 한반도 분할 점령을 처음 제안한 1895년 상황이 서술된다. 러시아가 일본의 대륙 진출을 봉쇄하자 한성 주재 일본 공사가 러시아 공사 베베르에게 한반도를 분할해 나눠 갖자고 제안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 권 작가는 독자들에게 “특히 이 대목을 주의 깊게 읽어주며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예순 살. 기자에서 소설가로 존재 전이한 권영석에 “이젠 또 어떤 책을 쓰고 싶은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그의 단단한 결심을 짐작하게 해줬다. “이번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글을 쓰는 재능도 없으면서 하찮은 소설 하나 더 보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만약 독자들이 소설을 계속 써도 좋다는 평가를 내려준다면 남북한 문제를 다룬 소재로 소설을 쓰고 싶다.” 독자들은 그에게 “당신은 앞으로 소설가로 살아가도 좋다”는 평가를 내려줄까? 그가 새롭게 써낼 남북관계에 얽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현재까지는 고종과 중전 민씨의 한쪽 측면만 과대 포장한 소설이나 드라마가 많았다. 그걸 알기에 권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보탰다. “‘작전명 여우사냥’이 고종과 중전 민씨를 입체적으고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23

“1인분을 다하는 것이 현장을 지키는 일입니다”

2010넌 입사 전기정비직으로 만 15넌 현재 ‘냉연의 꽃’ PCM 압연 공정 맡아 설비 고장 예측·예방 최적의 상태 유지 - 본인 소개와 현재 맡고 있는 주요 업무를 말해달라. 포항제철소 압연설비2부 냉연정비2섹션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헌제 계장이다. 2010년 포스코에 입사해 전기정비직으로 일한 지 만 15년이 됐다. 현재는 냉연의 꽃이라 불리는 PCM 압연 공정을 맡고 있다. PCM 압연은 쉽게 말해, 두꺼운 철판을 얇고 매끈하게 만드는 ‘철판 다듬기 공정’이다. 마치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눌러 원하는 두께로 펴는 과정과 비슷하다. 열연 코일이라는 ‘반죽’을 압연 롤이라는 ‘밀대’로 강하게 눌러 얇게 만들고, 표면을 고르게 다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압연 롤과 철판이 맞물리며 강한 압력과 마찰이 발생하고, 여기에 고속 회전으로 인한 열까지 더해진다. 아주 미세한 두께 조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 설치된 각종 센서와 전기설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고장을 예방하는 일을 맡고 있다. 또한 생산 효율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설비 제어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있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어릴 때부터 내 꿈은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포항제철공고에 입학한 순간부터 그 목표는 더욱 확고해졌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엔 경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바로 목표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다. 취업 시장도 얼어붙어서 대기업에 들어가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중장비를 제작하는 제조업체에 입사하게 되어 약 2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단순 반복적인 조립 공정은 내 적성과 잘 맞지 않았고,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도심 생활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고민 끝에 오랜 꿈이었던 포스코 입사를 목표로 다시 준비를 시작했고, 마침내 그 꿈을 이루게 되었다. - 냉연정비섹션을 소개한다면, 어떤 팀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가? 냉연정비섹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설비의 명의(名醫)’다. 사람의 병을 미리 발견해 예방하고, 병이 생기더라도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치료하는 의사처럼, 우리는 설비의 건강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철강 산업이라고 하면 거친 현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요즘 현장은 점점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다. 다양한 기술이 접목되면서 설비의 ‘아픈 곳’을 미리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몇 년 전 도입된 PIMS(POSCO Intelligent Maintenance System)이다. 이 시스템은 과거에 발생했던 고장이나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데이터로 분석해, 설비 고장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직은 활용도가 높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면 정비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곧 ‘스마트 제철소’로 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냉연정비섹션은 그 길을 묵묵히 준비하며, 설비가 언제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오늘도 현장을 지키고 있다. “1인분은 반드시 하자” 평소의 생활 신조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책임’과 ‘헌신’ 신뢰받고 안전한 현장 만들기 위해 필요 - 회사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원칙은 무엇인가? 내 회사생활의 신조는 단순하다. “1인분은 반드시 하자.” 내가 맡은 몫을 다하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동료에게 넘어간다. 그렇게 되면 불필요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다. 하지만 ‘1인분’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만큼 배우고, 익히고,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비 업무는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필요한 부품을 미리 준비하고, 고장에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설비 상태를 숙지하는 것이 필수다. 이런 역량을 키우기 위해 압연기능장, 산업안전기사, 설비보전산업기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쓰고 있다. 현장에서 요구되는 전문지식을 높이는 것이 곧 팀의 안정성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선후배 사이의 연결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험이 많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하고, 후배들의 새로운 시각과 아이디어를 선배들에게 전달하며 팀이 하나로 움직이도록 돕는다. 설비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야간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도 주저 없이 현장에 나서 문제를 해결한다. 결국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책임’과 ‘헌신’이다.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동료와 조직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것. 그 두 가지가 모여야 비로소 안전하고 신뢰받는 현장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 포스코의 복지 제도 중에서 특히 만족하며 누리고 있는 제도가 있다면?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방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연극 프로그램, 클래식 공연, K-POP 콘서트까지 그 폭이 넓고 수준도 높아 다방면에서 만족하고 있다. 특히 8세 자녀가 있는 나에게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행사가 큰 의미로 다가온다. 회사에서 진행하는 공연 프로그램들을 보며 가족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경험은 포스코의 복지 혜택이 아니었다면 쉽게 누릴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이다. 올여름 블루원 워터파크 대관 행사도 잊을 수 없다. 평소 대형 워터파크는 인파 때문에 선뜻 가기 어려웠는데, 대관 행사 덕분에 아이와 함께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시원한 물놀이와 함께 소소한 이벤트, 기념촬영까지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경험은 단순한 ‘행사 참여’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이고, 삶의 활력을 주는 순간이었다.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애써주시는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직원들의 문화생활 다양한 지원 큰 만족 연극·클래식·K-POP 까지 수준도 높아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삶의 활력 - 국내 철강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철강 산업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한다. 글로벌 경기 변동, 세계적인 철강 수요 둔화, 특히 중국의 과잉 생산과 저가 수출은 국내 철강업계의 경쟁 환경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탄을 쓰는 고로 제철 방식은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 포스코는 이러한 도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에 착수하여,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석탄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혁신적인 방식으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더 나아가 2050년까지 모든 제철소를 수소환원제철소로 전환해, 환경 친화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동시에 갖춘 ‘탄소중립 철강기업’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다. 국내 철강업계가 세계 시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미래 세대에게 자랑스러운 산업을 물려주기 위한 필수 과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 그리고 변화를 선도하는 실행력 그것이 포스코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걸어갈 길이라고 믿는다. 조직 내 MZ세대가 주력 인력으로 자리 세대 교체되는 큰 변화의 흐름 속에서 협력·소통이 강한 조직 만드는 것 목표 - 앞으로의 포부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큰 세대 교체의 흐름 속에 있다. 60년대에 태어난 선배들이 차례로 현장을 떠나고, 이제 MZ세대가 주력 인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서 중견사원으로서, 선배들의 경험과 후배들의 열정을 이어주는 연결점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후배 사원들과의 좋은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업무를 빠르게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동시에 관리자를 보필하고, 현장에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중간 리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변화하는 인력 구조 속에서, 세대 간의 협력과 소통이 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12-21

영덕 관어대 고래불해수욕장의 '눈부신 풍경'

경북 영덕 상대산(上臺山) 관어대(觀魚臺)에 올랐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서자 사방으로 열린 하늘과 바다, 능선과 들녘이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처럼 펼쳐졌다. 동쪽으로는 끝을 가늠할 수 없는 푸른 동해가 숨결처럼 일렁이고, 북쪽으로 이어진 울진 후포항의 해안선은 산과 바다를 꿰매어 붙인 곡선의 비단 폭이 고요히 흐른다. 아래로는 영해와 병곡의 평야가 평화롭게 누워서 잠들고, 명사 20리라 불리는 고래불해수욕장과 솔숲은 푸르고 유쾌한 기운을 밀어 올린다. 푸른 바다와 솔숲 사이 황금빛 모래 해변은 또 어떤가. 발아래 헤엄치는 고기를 헤아릴 수 있다고 하여 붙인 이곳, 관어대는 오래 바라볼수록 물결 속에 숨 쉬는 생명과 풍광의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그저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저절로 맑아지고, 옛 시절 목은 이색 선생을 비롯한 시인, 묵객들이 시심을 틔웠을 까닭을 알 듯하다. 퇴직 후 황혼의 청년이라 자처하는 고향의 친구 정기채, 이승구, 황조연, 이희열님과 함께 이 멋진 풍광을 즐겼다. 한 주가 멀다고 하며 유명한 산천을 주유하는 이들이다. 오랜 공직 생활 내내 성실과 청렴을 지켰고, 고위 공직자로 명예롭게 퇴임한 뒤에는 새 일자리를 찾기보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인생 2막 황혼의 삶을 꾸리고 있다. 이름난 명소라면 이미 대부분 다녀온 터라, 우린 여행지를 추천하기보다 어떻게 자연을 느끼고, 걷고, 쉼을 얻으며 노년의 삶을 균형 있게 꾸밀 것인지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눈부신 풍경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속도를 늦추고, 해풍에 마음을 걸어두고 침묵의 명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고래불이라는 이름에는 바다 내음처럼 긴 시간을 품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옛사람들은 목은 이색 선생이 이곳을 찾았을 때, 해수욕장 앞 바다에서 고래가 흰 물줄기를 뿜으며 장난치듯 노니는 장관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전한다. 그날의 놀라움과 감탄이 바람결에 스며 지명으로 남았으니, 고래가 노니는 모래뻘이라는 뜻에서 고래불이라 불린 것이다. 여기서 불은 뻘의 옛말이라 한다. 1986년 국제 고래잡이 금지 전까지 바다에서 실제로 고래잡이가 행해졌고, 2000년엔 멸치잡이 어선이 이빨부리고래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는 소식을 마을에 전했다. 고래불 해변, 북쪽의 솔숲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면 또 하나의 지명 이야기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용머리이다. 마을 앞 바다에는 용이 머리를 내밀고 파도를 내려다보는 듯한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그 바위를 신령스러운 존재로 여겨 용머리라 불러왔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곳곳에 말뚝을 박아 민족의 기운을 꺾으려 했던 어두운 시절에도 마을 사람들은 용머리를 잃지 않기 위해 팔각정을 세워 수호처인 듯 위장했다 한다. 그들의 작은 지혜와 간절함이 마을의 숨결을 지켜낸 것이다. 지금도 5년마다 풍어제가 열리면 첫 제의는 용머리에서 드린다. 바위에 제사가 올려지고 북소리가 바다를 흔들며 퍼져 나가면, 오래된 믿음과 바다의 영혼이 조용히 호흡한다. 전국에서 무속인과 여행객이 기도를 위해 찾아온다. 바람에 흔들린 촛불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지면, 이곳은 세월을 건너 이어져 온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고래불 해변을 신발 벗고 맨발로 걷다 보면 모래가 체온을 닮아 따스하다. 발끝 사이로 스며드는 파도는 오래된 슬픔마저 씻어주는 듯하다. 수평선 위 붉은빛이 서서히 번지고, 둥근 해가 바다를 뚫고 솟구치던 순간, 윤슬이 바다를 타고 내게로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절로 합장되고, 감사와 소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렸다. 그 황홀한 빛의 파동이 몸을 스치자 잠자던 세포가 꽃잎처럼 터져 오르는 듯했으니, 자연의 감동이란 이토록 말없이도 깊고 환한 것임을 깨닫는다. 세상의 소음은 멀어지고, 오직 파도와 바람, 나의 숨결만이 투명하게 남는다. 모래 해변, 그 이름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어 깨우는 낭만의 장소이다.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면, 바다 건너 오래전 고래가 수면을 가르며 솟구치던 순간의 물빛이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 파도친다. 파도는 은빛 결을 이루며 모래 위를 밀어내고 다시 끌어당긴다. 무심한 물결에 발끝을 내맡기고 한참을 걷다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근심이 바닷물에 씻겨 나가는 듯 가벼워진다. 모래를 딛는 발걸음은 더디고 힘들지만, 바람에 실린 조개껍질의 미세한 반짝임과 파도 소리의 리듬은 그조차 잊게 만든다. 돌아올 때는 고래불 솔숲으로 들어섰다. 공기는 한층 더 맑고, 수천 그루 소나무가 선선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솔잎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송진과 흙냄새가 어우러진 향기를 머금고 있다. 식물이 몸을 지키기 위해 내뿜는 피톤치드가 온몸에 닿아 정신과 폐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테르펜이라 불리는 이 향은 살균, 진정, 소염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약리의 힘을 품고 있다. 숲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과 몸의 균형이 되살아난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생각의 먼지가 털리고, 초록의 물결이 눈과 가슴을 편안하게 덮어준다. 숲은 설명보다 먼저 감각으로 스며들고, 치유는 어느새 몸속에서 조용히 시작된다. 이곳은 영덕 고래불해수욕장으로 뿐만 아니라 국민 야영지로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아든다. 녹음이 짙어질수록 마음의 결도 부드러워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그리워하는 존재, 생명애라 부르는 바이오필리아의 흔적이 DNA 속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숲길을 걷는 동안 도시의 빌딩 숲에서 느꼈던 숨 막힘은 사라지고, 심장은 넓어지고 호흡은 길어진다. 자연은 값을 치르지 않아도 우리에게 풍요를 내어준다. 모래의 질감, 파도의 리듬, 숲의 향기, 흙의 온도, 시원한 바람…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몸과 마음을 어루만진다. 고래불 솔숲 길과 모래 해변을 걷는 일은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는 조용한 귀향이다. 고래불 솔숲과 황금 모래 해변, 푸른 동해, 그 이름만으로도 마음에 부드러운 파도가 스친다. 숲길을 따라 솔향이 은은히 번지면 곧장 바다가 열린다. 모래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윤슬이 길을 내어주듯 손짓한다. 걸을수록 바람은 맑고 잎사귀 사이에서 흘러나온 푸른 향은 마음 깊은 곳의 오래된 응어리까지 씻어 낸다. 숲의 숨결과 바다의 리듬이 만나 한 걸음마다 시가 되고, 파도는 발뒤꿈치를 적시며 다시 돌아오라 속삭인다. 고래불, 그곳은 한 번이라도 마음에 스며들면 다시 찾고 싶은 자리이다. 보고 싶고 걷고 싶은 낭만이 불빛처럼 번져 가슴 끝을 환히 밝히는 곳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포구(浦口) 용머리 시비는… 동해(東海) 가을 깊어 파도는 멀고 안개 갠 포구에 갈매기 앉네 어이차 한 소리에 님은 십 리 밖 오늘도 무사하길 바라는 아내 상대산 우뚝 솟아 십리 같은데 펼쳐진 백사장은 이십 리라네 언제나 철썩이는 파도와 같이 마음껏 날고파라 물새와 함께 -2000년 4월 17일

2025-12-17

‘오미자’에 관해 우리가 궁금한 것들

보석처럼 붉은 조그만 열매. 매혹적인 빛깔과 여러 가지 효능을 가졌다고 알려진 오미자는 어떤 식물일까? 먼저 이 궁금증에 답해보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실린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산골짜기, 모가 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돌이 있는 곳에서 잘 자란다. 잎은 어긋나며 넓은 타원모양. 잎의 길이는 7∼10㎝, 너비 3∼5㎝로 가장자리에 작은 치아상의 톱니가 있다. 열매는 8~9월에 빨간색으로 익으며 둥글거나, 달걀 모양이다. 이 열매는 달고, 시고, 쓰고, 맵고, 짠 다섯 가지의 맛을 낸다. 그 가운데서도 신맛이 가장 강하다. 한방에서는 약재로 이용된다. 대뇌신경을 흥분시키고 강장작용이 나타났으며, 호흡중독에도 작용한다. 또한, 심장활동을 도와 혈압을 조절하고, 간장의 대사를 촉진시키는 효과가 인정됐다.”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차와 진액을 만들 수 있고, 각종 요리의 재료로 흔하게 사용되는 오미자가 건강에도 좋다면 그걸 먹지 않겠다고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경북 문경은 오미자로 유명세를 탄 고장이다. 1993년에 야생 오미자를 이식해 재배 시험을 진행했고, 1996년엔 유휴산지에서 소득시범사업으로 오미자를 재배한 문경은 2006년 ‘오미자 산업특구’로 지정됐다. 전국 시장에 풀리는 오미자의 45% 이상이 문경에서 나온다. 오미자를 지역 특산물로 잘 키워왔기에 2013년엔 지역경제 활성화 우수사례 발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문경에서 자라고 수확되는 질 좋은 오미자로 만드는 오미자청은 각지로 판매돼 ‘오미자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오미자청은 만들기 어렵지 않다. 흐르는 물에 씻어 이물질을 제거한 후 물기를 없애고 설탕이나 꿀에 버무린다. 이를 밀봉한 후 뚜껑을 덮어 공기를 차단한 다음엔 주 1회 정도 통을 잘 흔들어 준다. 직사광선을 피해 2~3개월 숙성하면 오미자청이 거의 완성된다. 이걸 잘 걸러 서늘한 곳에 두고 용도에 따라 사용하면 된다는 게 요리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16

술도, 돼지고기도 맛있어진다...‘오미자의 마법’

오미자(五味子)를 재료로 만든 술을 처음 맛본 건 20대 초반 때다. 엄마를 대신해 생일상을 차려줄 정도로 터무니없이 날 귀여워했던 친구의 어머니는 곱상하고 귀티 나는 외모에 한식에서부터 양식, 일식까지 무엇이건 능수능란하게 차려내는 수준급 요리사이기도 했다. 허나, 안타깝게도 50대 중반에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재인박명(才人薄命). 다시 한 번 그녀의 명복을 빈다. 어쨌건 그 친구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던 1990년대 초반이다. 구멍가게에서 사간 맥주 한 박스를 다 비우고도 술이 모자랐던 우리는 주방 선반에서 매혹적인 빛깔을 뽐내는 담금주 한 병을 발견했다. 조그맣고 새빨간 열매가 독한 소주 속에서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망설일 것 있나? 주인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뚜껑부터 열었다. 시끌시끌한 소리에 자다가 일어난 친구 어머니가 “아이고, 이놈들. 결국은 약하려고 만든 오미자주까지 너희들이 먹는구나. 그래 잘했다. 젊으니 한 말 술인들 못 마실까”라며 사람 좋게 웃어줬다. 기자와 친구도 도도한 취기 속에서 따라 웃었다. 새벽까지 통음한 그날 밤이 벌써 30년도 더 된 옛 기억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오미자의 이름이 어째서 ‘오미자’인지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오미자나무는 바위가 많은 산에서 자라는 덩굴성식물이다. 바로 여기서 열리는 열매가 오미자. 색깔은 다르지만 포도와 유사한 모양이기에 ‘붉은 포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열매엔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짠맛이 동시에 담겼다. 그래서다.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열매’라는 뜻에서 온 작명이 바로 오마자인 것. 한자를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을 터. 헌데,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감지해내는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쨌건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 사람들은 오미자나무를 재배했고, 그 열매를 따서 술을 담고, 차(茶)도 만들고, 설탕이나 꿀을 섞어 발효시킨 후 청으로도 먹었다. 병을 치료하는 한약재를 연구하는 ‘본초학(本草學)’에선 오미자의 효능에 관해 ‘쇠진한 몸을 완화시키고, 눈을 밝게 해주며, 신장을 데워준다. 여기에 더해 남성의 정기를 높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30여 년 전 친구 어머니가 “약에 쓰려고 담근 술”이라 말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남편에게 주려고 정성껏 만들었을 귀한 술을 아들도 아닌, 아들 친구가 한 방울 남김없이 다 마셔버렸으니 마음속으론 밉지 않았을까? 너무 늦었지만 이 대목에선 용서를 구한다. 경상북도 문경은 이름난 오미자 생산지다. 오미자 열매는 초여름에 열리는데 그 시기에 맞춰 뻑적지근할 정도로 성대한 축제가 해마다 펼쳐진다. 취재를 위해 그 계절에 맞춰 두어 번 문경을 찾은 적이 있다. 처음으로 문경 오미자 축제에 간 게 아마 7~8년 전쯤인 듯하다. 그곳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돼지불백 식당에 들렀다. 동료들과 함께였다. 연탄불에 석쇠를 올리고 구워주는 고추장 양념 돼지불고기 맛은 유별났다. 잡내가 없었고 육질은 부드러웠다. 돼지고기 특유의 부들부들한 식감과 불에 익힌 단백질의 고소함, 과하지 않은 매운맛과 단맛이 근사하게 조화를 이뤄내고 있었던 것. 기자들 서너 명의 논쟁이 시작됐다. “이건 돼지고기를 양념할 때 오미자청을 넣은 게 틀림없어” “아냐. 고추장을 만들 때부터 오마자를 재료로 사용한 것 같은데…” 운운하는. 정신없이 바쁜 식당 주인에게 “누구 말이 맞습니까?”라고 물어보기엔 미안했다. 사실 먹음직한 돼지불고기를 안주 삼아 오미자가 들어갔다는 핑크색 막걸리를 들이켜기에도 바빴고. 때마다 문경을 다녀올 때면 오미자청, 오미자차, 오미자 열매를 구입하곤 한다. 엄마는 오미자차를 즐겨 마셨고, 오미자청은 이런저런 볶음 요리의 재료로 사용했다. 지난해엔 오미자주도 만들었는데, 우리 집 거실에서 붉게 익어가는 그걸 다가오는 설에 마실 생각이다. 여전히 스물두어 살 때 친구 집에서 마셨던 그 맛일까? 궁금하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16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걷다

지역 곳곳 실뿌리 내린 아홉 노포와의 여정 웃음과 슬픔 버무린 일상의 경이로움 전해 시민과 애환 함께한 다른 노포 소개도 기대 지난 2019년 필자는 칼럼에서 노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포항 원도심에는 코주부사 외에도 50년 된 포항이발소, 40여 년 된 동아세탁소, 할매떡볶이 같은 노포가 있다. 이 오래된 점포의 주인들은 소소한 기술과 성실한 노동으로 어렵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웠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한 톨의 씨앗도 품기 어려웠던 폐허에 힘겹게 실뿌리를 내리며 평생을 보낸 것이다. 인생의 황혼에 이른 노포의 주인들을 만나 삶의 여정을 들어보면, 진정한 역사는 이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생명력이 서로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한평생 지켜온 점포가 작은 박물관이고, 이들이 사용해온 재봉틀, 이발도구, 요리도구가 역사 유물이며, 이들이 웃음과 슬픔을 버무려 풀어놓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는 역사책이 아닐까. 지역 공동체의 정서와 문화를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애틋한 삶을 잘 갈무리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전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궁리해야 할 때가 됐다. - 「코주부사,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작은 역사」, 『경북매일신문』 2019년 12월 2일 자. 그로부터 6년이 흘러 ‘포항의 노포 기행’ 연재가 진행되었다. 2021년부터 『경북매일신문』 지면을 통해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해온 참여자들의 뜻이 모여 이 기획이 만들어졌다. 노포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지역의 문화, 역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이 연재는 개복치점, 열쇠점, 막걸리 양조장, 양복점, 제과점, 국수공장, 속옷가게, 중화요리점, 마크사 등 지역 곳곳에 있는 노포 아홉 곳을 다루었다. 물론 주목할 만한 다른 노포도 있다. 이를테면 1967년 개업한 로타리냉면은 오랜 세월 냉면의 깊은 맛을 선사해온 맛집으로 포항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다. 그 밖에 초원통닭, 시정당, 제일화공약품상사 등도 시민과 애환을 함께해온 노포다. 이 노포의 이야기는 다른 기회를 통해 펼쳐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포항고 부지 기부 김춘생 창업주 ‘동성조선’ 3대 이어 전국서도 유명한 조선소로 발전 박일천 첫 민선시장과의 끈끈한 인연은 포스텍 설립 이끈 ‘선한 영향력’으로 발휘 포항고 대신동 부지를 기부한 동성조선 창업자 노포 외에도 포항의 기업 중에 3대째 이어온 기업이 있다. 중소형 조선소인 동성조선이 대표적이다. 전국에서 이름이 높은 동성조선은 1946년에 설립된 향도조선(向島造船)이 모체로 1955년에 지금의 상호로 변경되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조선소를 일본이 패망하여 철수하자 그곳에서 일하던 대목장(大木匠) 김춘생이 인수해 향도조선을 설립한 것이다. 김춘생의 차남 김성호에 따르면, 조선소 인수 과정에서 자금이 부족했던 김춘생은 지역 유지 김용주에게 도움을 부탁했다. 그러자 김용주는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고 김춘생에게 큰돈을 빌려주었다. 김용주의 통 큰 도움 덕분에 향도조선을 설립한 김춘생은 성실한 자세로 사업에 임해 사업 기반을 단단히 다졌다. 그 후 김춘생의 친구인 박일천 첫 민선 포항시장이 김춘생에게 당시 두호동에 있던 포항고등학교를 시내로 이전해야 하는데 김춘생 소유의 대신동 땅을 기부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김춘생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덕분에 포항고등학교는 1954년 9월 1일 대신동 신축 교사로 이전할 수 있었다. 지금 동성조선 사무실 벽에는 포항고등학교 교장과 기성회장 명의로 김춘생에게 수여한 감사장이 걸려 있다. 박일천은 뒷날 포항 4년제 대학 설립 유치 청원에 앞장섰으며, 이 청원은 포항공대 설립의 밑거름이 되었다. 1998년 박일천 사후에 유족들이 유산을 포항공대 발전기금으로 기탁한 바 있다. 포항의 역사·문화기록 대장정에 도움 준 지역 원로들의 ‘안타까운 죽음’ 깊이 애도 지난 5년간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게 도와준 세 분의 별세 2021년에 발간된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1』을 시작으로 포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항뿐 아니라 서울, 부산, 인천, 대구에서 여러 분이 이 작업을 지켜보며 따듯한 격려를 해주었다. 그들 중 작년 12월에 별세한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을 잊을 수 없다. 손 관장은 필자와 얼굴 한 번 본 적 없건만 귀한 사진 자료를 기꺼이 제공해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이른 타계를 인천 학계가 안타까워했는데 필자로서도 아픔이 아닐 수 없었다. 포항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작업에 많은 도움을 준 고 손장원 관장의 명복을 빈다. 5년간 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인터뷰에 응해준 세 분이 별세했다. 『원로에게 듣는 포항 근현대사2』(2022)에 나온 이봉식 선생은 향년 93세로 작년 3월에, 김두호 화백은 향년 89세로 올해 8월 작고했다. 『포항의 예술인』(2024)에 나온 문신구 영화감독은 향년 70세로 올해 5월 영면에 들었다. 이들의 부음을 들으며 이 작업의 의미와 무게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인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한다. ‘포항의 노포 기행’을 지켜본 문학평론가 최영호 교수(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가 감상평을 보내왔다. 그의 표현처럼 이 연재는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걸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넉 달간의 여정을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공간(space)과 장소(place)는 같을까 다를까? 눈에 보이는 것은 같지만 공간은 비어 있되 장소는 꽉 차 있다. 텅 빈 질그릇이 무엇인가 담긴 후부터 전혀 다른 것이 되듯 말이다. 그 질그릇의 ‘빈 중심’과 관계성이 질그릇의 새로운 본질을 창조한다. 하나의 공간이 장소로 재탄생하는 것은 우리와의 관계 때문이다. 포항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엔 애틋하고 친밀한 포항이 깃들어 있다. 이 연재는 포항 사람들이 관계 맺고 있는 장소로서의 포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시계 바깥의 시간으로 축적된 포항 노포를 찾아가는 이 연재에는 우리가 잊을 뻔한 장소로서의 포항 가는 길이 산지사방으로 열려 있다. 포항의 정체성과 풍경, 그 기억의 사잇길을 걷고 싶다면 이 연재의 일상적 경이로움에 마음의 발걸음을 옮기면 된다. <끝> 필 자 : 김도형 사 진 : 김 훈

2025-12-14

피부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가꾸어 주는 ‘동해 부인’

홍합서 분비되는 단백질 접착력 125㎏ 무게 들어 올릴 정도 강력 지금은 지중해 담치에 밀려 ‘귀물’ △ 토종홍합의 달큰한 맛이 일품인 홍합밥 울릉도 홍합밥이 인기 있는 것은 홍합 덕분이다. 울릉도 홍합밥에 들어가는 홍합은 요즘 흔한 지중해담치가 아니라 토종 홍합이다. 지중해담치보다 크고 살이 두텁고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진짜 우리 홍합이다. 지중해 담치는 토종이 아니라 외래종이다. 토종 홍합은 지역에 따라 합자, 합, 열합, 담치, 참담치, 담채, 섭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옛날에는 성질이 따뜻하고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가꿔준다는 속설이 있어서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고도 했다. 본래 우리 바다에는 토종 홍합들이 다수였는데 지금은 보기 드문 귀물이 되었다. 외국을 왕래하는 화물선의 밸러스트(Ballast)에 지중해 담치의 유생이 섞여 들어오면서 이제는 전 연안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이다. 벨러스트란 배에 실은 화물의 양이 적어 균형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 안전을 위해 배 바닥에 싣는 물(평형수)이나 돌 등의 중량물을 의미한다. 우리 바다에는 토종 홍합과 지중해담치 외에도 비단담치, 털담치 등 13종 내외의 홍합류가 서식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합은 조개 살이 붉은 빛이라 홍합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상 암수에 따라 그 살 색이 다르다. 암홍합은 붉은색, 숫홍합은 흰색을 띤다. 암홍합이 맛이 더 뛰어나다. 홍합은 폴리페놀이라는 접착력 강한 단백질을 분비해 바위에 몸을 고정시켜 살면서 바닷물 속의 영양분을 걸러 먹는다. 홍합 하나에서 분비되는 단백질 족사의 접착력은 무려 125kg의 무게를 들어 올릴 정도로 강하다. 울릉도 토종 홍합의 강력한 접착력이 거친 파도를 버티며 살아가게 만든다. 울릉도 홍합의 맛과 영양이 뛰어난 것은 그 강한 생명력 때문이 아닐까? 귀한 특식인 홍합밥 뿐만 아니라 울릉도에는 부족한 곡물의 양을 늘리기 위해 산나물이나 해초를 넣어서 지어먹던 구황 밥도 많았다. 개척 시기 울릉도 사람들의 목숨을 이어준 나물답게 명이로 지은 밥도 있었다. 명이 밥은 명이 줄기를 썰어서 보리나 조, 감자 등의 곡식과 섞어 지어먹던 울릉도의 구황 음식이다. 명이 줄기는 삶으면 찐득찐득 해지기 때문에 명이 밥은 먹기에 편치 않다. 소화가 잘 안 되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명이 밥은 양을 늘려 주린 속을 채우려는 고육지책으로 해 먹던 밥이다. 따개비라고도 불리는 삿갓조개 속살이나 우려낸 국물을 이용해 따개비밥·죽·칼국수·무침 요리 △ 대형 바다 말로 만든 대황밥과 따개비 밥 대황은 울릉도 바다의 대표적인 대형 바다 말이다. 과거 울릉도 사람들은 대황을 넣은 대황밥으로 굶주림을 면했을 정도로 고마운 음식이다. 대황은 바다에서 베어 갯바위에 널어 말린 뒤 마르면 짊어지고 와서 장작불을 때서 삶았다. 삶은 대황의 줄기는 빼고 잎만 썰어서 보리나 감자, 옥수수를 섞어서 밥을 한 것이 대황 밥이다. 울릉도에는 따개비밥 있다. 하지만 따개비라 부르는 것은 실상 진짜 따개비가 아니다. 삿갓조개다. 따개비밥도 정확한 명칭은 삿갓조개 밥이라 해야 맞다. 진짜 따개비는 굴등이라고도 하는데 바닷가 암초나 말뚝, 배 밑 등에 붙어서 고착생활을 한다. 몸은 산(山)자 모양이며 딱딱한 석회질 껍데기로 덮여 있다. 삿갓조개(bernique)는 배말이라고도 하며 바닷가 바위에서 고둥과 함께 사는 삿갓 모양의 조개다. 따개비는 갑각류이고 삿갓조개는 연체동물문 복족강 삿갓조개류(Patello gastropoda)에 속하는 조개다. 둘이 전혀 다른 종이다. 따개비는 고착 생물이고 삿갓조개는 움직이며 산다는 점도 큰 차이다. 그런데 울릉도 사람들은 이 삿갓조개를 따개비라 부르며 따개비밥, 따개비칼국수, 따개비죽, 따개비무침 등 다양한 음식들으로 만들어 먹었다. 여기서는 울릉도 표현대로 삿갓조개를 따개비로 칭한다. 따개비는 속살이나 우려낸 국물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 채취해온 따개비는 깨끗이 씻고 껍질에 붙은 불순물을 제거한다. 따개비를 물에 넣고 껍질이 벌어질 정도로 삶는다. 속살은 건져낸 뒤 껍질만 남기고 물을 조금 더 넣어 다시 5시간 정도 푹 끓인다. 이렇게 끓인 따개비 물은 요리의 육수로 사용한다. 속살은 다양한 요리에 따라 활용한다. 따개비밥은 따개비 육수와 따개비 속살을 함께 넣고 지은 밥이다. 감자는 삶은 감자나 감자전이 대표적인 요리지만 감자 인절미, 감자 팥죽, 감자밥도 즐겨 먹던 울릉도 음식이다. 감자밥은 옥수수나, 보리 등 곡식에 감자를 넣고 해 먹었다. 이 또한 곡물이 부족한 울릉도에서 밥의 양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다. 옥수수 밥도 있었다. 농사지을 땅이 부족하다 보니 과거에는 옥수수도 귀한 곳이 울릉도였다. 그래서 옥수수밥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집에서나 해 먹던 밥이다. 옥수수를 갈아서 감자를 넣고 지었다. 식량이 귀한 울릉도에서는 잔치에도 음식으로 부조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웃집에 결혼식 같은 잔치가 있으면 돈이 아니라 옥수수와 콩나물, 두부 등으로 부조를 대신했다. 쌀밥은 명절이나 제사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농사 지을 땅이 부족한 울릉도 이웃집에 결혼식 같은 잔치땐 옥수수·콩나물·두부로도 부조 △ 옥수수밥과 무밥으로 굶주림 면해 옥수수는 1500년경 폴란드인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고, 1700년대에 조선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1766년에 편찬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옥수수의 한자식 표현인 ‘옥촉서(玉蜀黍)’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옥수수밥은 ‘강냉이밥’이라고도 부르는데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옥수수 알갱이로 밥을 짓는 방법과 옥수수 가루로 짓는 방법이다. 옥수수 알갱이로 밥을 지을 때는 옥수수를 물에 불려두었다가 맷돌에 갈아 겉껍질을 벗긴 후 절구로 찧어 작은 알갱이로 만든 뒤 쌀밥과 동일하게 짓는다. 옥수수 가루 밥을 할 때는 삶은 팥, 밤, 감자 등을 함께 넣거나 불린 쌀을 조금 넣기도 한다. 솥에 감자나 콩을 먼저 넣고 끓인 후 그 위에 옥수수 가루를 넣고 끓이면서 뜸을 들여 밥을 짓는다. 옥수수를 저장할 때는 맷돌에 갈아서 ‘옥수수쌀’로 만들어 저장하기도 했다. 그래야 옥수수 밥을 해 먹기 편한 까닭이었다. 육지에서는 주로 봄철에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춘궁기 구황 음식을 먹었다. 초여름 보리가 나기 전까지 봄을 견뎌야 했기에 보릿고개란 말도 생겼다. 하지만 늘 음식이 부족했던 울릉도는 사시사철 구황 음식을 먹었다. 대표적인 구황 음식이 목숨을 이어가게 해 줬다는 명이밥, 대황밥, 무밥, 옥수수밥 등이다. 무밥은 보리, 옥수수 등에 무를 썰어 넣고 지은 밥이다. 1950-60년대까지만 해도 무를 많이 넣으면 그나마 살림이 나은 집이라 했을 정도였다. 울릉도의 무밥은 무를 굵게 채 썰어 솥 밑에 깐 다음, 삶은 보리나 갈아서 물에 불린 옥수수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하여 지었다.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무가 “오장의 나쁜 기운을 씻어 체기를 가라앉히고 속을 따뜻하게 하여 설사도 다스리는 고마운 약재”라 했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도 “무의 생즙은 소화를 촉진하며 매운 맛은 열을 내려 속을 가라앉히고 해독 작용으로 독성을 풀며 숙취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도 섣달그믐날 먹는 생무는 산삼과 같고, 이때 무를 먹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고 믿었다. 가난할 때 먹던 구황 음식이었지만 무밥은 음식인 동시에 약이었던 셈이다. 울릉도 사람들은 밥이 곧 약이 되는 식약동원의 시대를 살았다. 절대 궁핍을 건너 풍요의 시대에 도달 했으나 잊지 말고 전승해야 할 소중한 가치다. <끝>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2025-12-11

[기획] 외국인이 지탱하는 도시⋯포항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포항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변수는 더 이상 출산율만이 아니다. 인구 50만 명의 경계가 흔들리는 가운데 외국인 8615명은 산업·교육·지역 공동체 전반에서 이미 도시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제조업과 수산가공, 항만 물류, 농축산업, 대학 교육 등 도시의 여러 기능이 외국인 인력 없이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구조로 변한 지금, 포항이 어떤 방향을 택하느냐는 단순한 인구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략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구조적 관점을 제시한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 과제를 지적한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의 의견을 각각 들었다. ◇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 “이민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대응이다” 안성조 경북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의 인구 상황을 “20년 누적으로 형성된 저출생의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합계출산율이 바닥을 찍으며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처럼 보이지만 “대체출산율 2.1과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며 인구구조 변화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지방도시의 미래는 감소하는 인구를 전제로 한 대응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외국인의 역할은 더욱 분명해진다. 안 연구위원은 “유학생, 산업현장 근로자, 농어업 인력 등 외국인은 이미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단순한 숫자 보완을 넘어 포항이 유지되는 구조 자체의 핵심 요소로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외국인을 ‘일시 체류자’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장기적으로 함께 살아갈 구성원으로 자리 잡도록 돕는 제도와 문화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안 연구위원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정착 단계·체류 목적·접근성이라는 세 축으로 설명했다. 그는 “입국 초기, 2~3년 적응기, 장기 정착기 등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은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유학생·산업근로자·농축산업 근로자·결혼이민자 등 체류 목적에 따라 서비스가 구분돼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모든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지원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정착 기반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전략을 뒷받침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접근성 개선’이다. 안 연구위원은 “언어·정보·생활 서비스를 한 곳에서 안내받을 수 있는 종합 플랫폼이 필요하다”며 지역대학·관공서·센터가 연계한 상시 언어교육 모델 구축을 제안했다. 또 “해외 광역비자처럼 지역 산업구조에 기반한 지역특화형 체류제도를 적극 도입해 포항의 상황에 맞는 인구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항이 산업도시라는 점을 고려하면 숙련 외국인 인력의 장기 정착은 핵심적 과제로 꼽힌다. 그는 “단기 체류 뒤 귀국하면서 산업현장의 기술이 단절되는 문제가 반복된다”며 장기 근속을 유도할 수 있도록 기술 장인 육성, 10년 이상 근속 지원, 가족 동반 정착 허용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업 생태계의 지속성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안 연구위원은 가장 시급한 과제로 외국인 주민 실태조사를 제시했다. 그는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정확한 진단 없이는 어떤 정책도 지속될 수 없다”고 강조하며 “실태 파악이 포항이 이민 시대에 적합한 전략을 설계하기 위한 출발점이다”고 말했다. ◇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 “주거문제, 삶의 조건과 정착의 장벽” 현장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장흔성 경북 K-드림외국인지원센터 센터장은 외국인이 포항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을 주거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집주인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약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하며 주거 확보가 단순한 생활 요소가 아니라 취업·이동·건강 등 모든 정착 과정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정된 주거 없이 시작되는 일상은 결국 정착 자체를 흔드는 구조적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장 센터장은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리스크”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도한 노동, 휴가 미부여, 사업장 이동 제한, 임금 체불 등 구조적 착취에 가까운 사례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상황은 더 취약하다. 그는 “성희롱, 차별, 부당한 급여 지급 등 현실적인 피해가 존재하지만, 문제 제기가 어려운 구조적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한 노동 분쟁이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를 확보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비자 제도와 행정 절차에 대한 정보 부족 역시 장기 정착을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다. 장 센터장은 “비자 종류가 달라지면 근로 조건도 크게 달라지는데 이를 몰라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의료 접근성 또한 취약하다. 그는 “의료 통역이 없어 의사소통이 안 되고 결국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하며 정보 접근성이 곧 정착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라고 강조했다. 행정지원 체계가 외국인의 삶에 깊이 닿지 못하는 이유도 구체적으로 짚었다. 그는 “대부분의 외국인은 ‘시에서 도움받은 적 없다’고 말한다. 다문화센터 프로그램 참여 경험이 전부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는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설계된 기존 정책이 노동 목적 체류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포항의 현실과 맞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장 센터장은 인식의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외국인을 잠시 머무는 사람이나 부담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며 제도 이전에 서로 관계를 맺고 접촉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생활체육, 주민 모임, 자조모임 등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의 기회가 있어야만 문화적 거리감이 줄어들고 통합의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도시의 변화가 제도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장 센터장은 “상가 한 블록 전체가 러시아어 간판으로 바뀐 곳도 있고 어떤 학교는 학생 10명 중 8명이 외국인 배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존재가 이미 도시의 일상과 구조를 바꿔놓았지만, 행정은 여전히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포항은 이미 다문화 도시로 진입했지만, 제도와 지원 체계는 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간극을 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 두 개의 해법, 하나의 방향 두 전문가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결론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포항은 이미 다문화도시가 됐고, 외국인은 산업과 지역 공동체를 지탱하는 필수 구성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정착을 전제로 한 정책 전환 없이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안성조 연구위원은 저출생으로 인한 구조적 인구 변화를 ‘도시 전략’ 차원에서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제도·정책 전반의 재정비 필요성을 제기했다. 장흔성 센터장은 현장에서 외국인이 마주하는 주거·노동·정보 접근의 현실적 장벽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구조가 실생활에 닿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의 메시지가 교차하는 지점은 분명하다. 외국인을 ‘지원 대상’이나 ‘임시 체류자’가 아니라 포항의 미래를 함께 구성할 이웃으로 인식하는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환의 출발점은 정확한 실태 조사이며 이어 주거·의료·언어·정보 등 기본 생활 기반을 보장하고 공동체와 연결되는 체계적 정착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포항이 이러한 변화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느냐가 도시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 끝>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5-12-11

울릉 주민들의 주전부리가 한국인이 사랑하는 간식으로⋯

섬 개척 초기 구황작물이던 호박 옥수수 전분·엿기름 등과 배합해 국민간식 ‘호박엿’으로 인기 상승 △ 호박, 척박한 땅에서 잘자라는 구황식물 호박엿은 오징어와 함께 울릉도의 상징이다. 울릉도 호박엿이 유독 사랑받는 것은 엿에 늙은 호박(청둥호박)이 30% 이상 들어가 지나치게 달지도 딱딱하지도 않고 부드러워 먹기 좋은 까닭이다. 일설에는 울릉도에서 많이 자생하는 후박나무 껍질을 달여서 엿을 만들어 먹어 후박엿이라 했는데 발음이 변하면서 호박엿으로 되었고 나중에는 후박나무 껍질 대신 늙은 호박으로 엿을 만들게 되면서 호박엿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후박 껍질보다 흔한 것이 호박이었기 때문이다. 호박은 덩굴성 1년생 박과 식물로 아메리카대륙(북중미)이 원산지다. pumpkin은 해독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학명 ‘Cucurbita’는 오이를 뜻하는 라틴어 ‘Cucumis’와 둥글다는 ‘orbis’에서 유래했다. 호박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고 땅이나 가뭄, 병충해에도 강하고 저장성도 좋아 옛날부터 구황 음식으로 널리 쓰였다. 호박은 동양계 호박, 서양계 호박, 페포계 호박 등 3가지로 나뉜다. 동양계 호박은 애호박과 늙은 호박이, 서양계 호박으로는 단호박과 밤호박이, 페포계 호박으로는 쥬키니와 관상용 색동 호박이 잘 알려져 있다. 늙은 호박은 가을이 제철이며 익으면 황색으로 변하는데 잘 익을수록 당도가 높다. 호박은 임진왜란 이후 남쪽으로 들어왔다 해서 남과(南瓜)라 불렸다. 호박은 1613년에 출간된 『동의보감』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1884년에 발행된 ‘동의보감’ 의 축소판인 ‘방약합편’에는 ‘남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울릉도에서는 울릉도 개척 당시 주민들이 호박 종자를 가지고 와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곡식이 부족했던 울릉도 개척 초기 구황작물로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80년대 중반부터 관광객에 판매 울릉농협, 1991년 생산공장 지어 지역 특산물로 본격 상품화 나서 △ 호박엿과 관련된 전설도 남아 있어 울릉도 호박엿 제조법도 전해진다. 주재료는 옥수수 전분과 엿기름, 늙은 호박이다. 먼저 말린 옥수수를 물에 불린다. 불린 옥수수를 멧돌에 넣고 갈아낸다. 갈아낸 옥수수는 다시 물에 불렸다 갈기를 반복한다. 옥수수의 하얀 전분이 나오면 물에 넣고 약한 불에 끓이다가 엿기름을 넣고 섞어 준다. 약한 불에서 서서히 엿기름이 전분을 잘 삭히도록 저어준다. 적당히 우러나면 무명 보자기에 넣어서 전분과 엿기름의 찌꺼기를 걸러낸다. 곱게 걸러낸 물을 다시 솥에 넣고 약한 불에 졸인다. 여기에 껍질 벗긴 늙은 호박을 잘게 잘라서 넣고 저어주며 졸아들도록 푹 고아낸다. 엿이 굳어지면 길게 늘였다가 접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엿 속에 많은 공기구멍이 생긴다. 엿에 공기구멍이 많을수록 이에 달라붙지 않고 먹기 좋다. 울릉도에서는 옥수수 가루 전분이 아니라 옥수수를 쪄서 자루에 담아 즙을 짜낸 뒤 엿기름과 호박을 넣고 엿을 만들기도 한다. 또 호박 조청에 옥수수 물엿을 배합해 호박엿을 만들기도 한다. 울릉도 호박엿이 생기게 된 전설도 있다. 울릉도 개척 무렵 태하마을 석달령 근처에는 열댓 가구가 살았다. 그중 한 집에 과년한 처녀가 있었는데 이른 봄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심었다. 여름이 되자 호박은 열매를 맺었는데 호박이 익기도 전에 처녀는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고 말았다. 부모는 호박을 따먹었는데도 호박은 자꾸 열렸다. 가을이 되자 누렇게 익은 호박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겨울이 되자 부모는 그 호박으로 죽을 쑤었는데 엿과 같이 달았다. 호박죽이 아니라 그대로 엿이었다. 그 후부터 울릉도 사람들은 호박으로 엿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울릉도 호박엿에 대한 또 다른 유래도 있다. 1882년 개척 당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과년한 처녀가 육지로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호박범벅을 끊이고 있었다. 자신이 시집을 가버리면 혼자 살아갈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다가 졸다가 호박범벅이 너무 많이 끓어서 졸아들어 버렸다. 호박이 졸아서 굳어진 것을 지나가던 이웃이 맛보고 ‘이거 호박엿이네’ 했던 것이 울릉도 호박엿이 생기게 된 기원이라고도 전해진다. 식량으로 호박을 먹다가 간식으로 엿을 만들어 먹게 된 내력이 전설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육지에 이주해 온 이들은 이미 엿을 만들어 먹을 줄 알고 있었는데 울릉도에 흔하게 나는 호박을 이용해 달달한 간식으로 호박엿을 만들었던 것이 오늘에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울릉도 호박엿은 주민들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다가 1980년대 중반 경부터 관광객들에게 팔기 시작하면서 울릉도 특산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울릉도 호박엿은 보통 호박 30%, 옥수수 물엿 70%를 배합해 엿을 만들고 있다. 울릉 농협이 호박엿을 지역특산물로 상품화 한 것은 1990년도 정부에 의해 전통식품개발사업자로 선정된 후 한국식품연구원의 자문을 받아 1991년 11월 울릉읍 도동리406-1일대에 생산 공장을 건립하면서 부터다. 울릉농협의 호박엿은 1992년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울릉도의 늙은 호박 음식은 호박엿 외에도 장아찌, 범벅, 죽, 즙, 엿, 젤리, 빵, 조청, 막걸리, 케익, 쇼콜라 등의 가공제품으로 다양화 되고 있다. 장아찌·죽·즙·젤리·빵·케이크 등 각양각색 호박 가공제품 쏟아져 민간선 조청·전·동동주로도 개발 △ 호박엿 울릉도 주민들이 즐겨먹던 간식거리 늙은 호박으로는 조청도 만든다. 천연의꿀은 청(淸)이라 하니 조청은 인공 꿀이라는 뜻이다. 곡물의 전분은 찌거나 삶으면 익어서 호화(糊化: 전분에 물을 더하고 열을 가하면 팽윤하고 점성이 증가해 전체가 반투명한 풀 상태가 되는 현상. 즉 소화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되는데, 여기에 엿기름 물을 섞고 따뜻하게 중탕을 하거나 묻어두면 밥알이 삭아서 당화되어 풀어지게 된다. 이것을 자루에 담아 단물을 짜낸다. 자루에 남은 것은 엿밥이라 하고 단물은 엿물이라 한다. 솥에 엿물을 붓고 진하게 조려낸 것이 조청이다. 호박 조청은 곡물가루 대신 늙은 호박을 이용해 만든다.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푹 삶는다. 여기에 엿기름을 넣고 5시간 정도 달이면 반고체 상태가 된다. 이것을 식히면 호박 조청이 된다. 외래 작물인 호박이 이 땅에 유입된 시기는 부정확하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와 함께 들어 왔다는 설도 있고 남아시아에서 당나라를 거쳐 들어왔다는 설도 있다. 곡식이 귀한 울릉도에서 호박은 소중한 식량이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호박은 최고의 구황식품이자 효자식품이었다. 그래서 호박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만들어졌다. 늙은 호박을 갈아서 부친 전인 호박전은 울릉도 주민들이 즐겨 먹던 간식거리였다. 울릉도식 호박전은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낸 뒤 강판에 곱게 간다. 여기에 찹쌀가루와 튀김가루를 혼합하여 걸쭉하게 만든다. 실파와 홍고추는 채 썰어 준비해 둔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반죽을 한 국자씩 올린 뒤 실파와 홍고추를 얹어 부쳐낸다. 쌀이 귀한 울릉도에서 호박은 옥수수와 함께 술을 빚는데 흔한 재료였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울릉도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토속 술이 호박 동동주다. 울릉도 사람들도 일을 하거나 잔치 때 즐겨 마시던 술이다. 호박 20kg을 기준으로 호박 동동주를 만드는 법은 이렇다. 호박20kg, 쌀1되, 누룩1되, 엿기름 1되를 준비한다. 쌀로 고두밥을 찌고 물 2되와 누룩 가루 1되를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따뜻한 방에 3일 정도 발효시킨다. 호박은 쪼개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 죽을 끊인 후 식힌 뒤 엿기름을 넣고 거름망에 짠다. 호박 짠물을 끓여 엿물을 만든다. 발효시킨 밑술에 끊인 호박엿물을 섞고 여기에 끓여서 식힌 물 10리터를 붓는다. 따뜻한 곳에 2일 정도 놔둔다. 발효가 활발히 일어나고 쌀알이 동동 뜨면 술을 걸러낸다. 이 방법을 따라 하면 누구나 집에서도 울릉도 호박 동동주를 빚어 먹을 수 있다. 흔한 호박 하나가 그토록 다양한 음식들을 선물했다. 호박은 흔한 것이 귀한 것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5-12-10

문화예술계 후원자이자 럭비 선수로 맹활약한 김대정

“이육사 선생 삼륜포도원으로 직접 안내” ‘청포도’ 시상 포항 구상 결정적 증거 제시 한흑구가 회장을 맡은 ‘흐름회’ 포함해 지역 문화단체 후원자로도 지대한 역할 코주부사 한편에 오래된 작업대가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작업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쓰던 것이다. 독특한 모양에 고졸미(古拙美)가 느껴지는 것이어서 눈독을 들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코주부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코주부사를 시작한 김대정은 어떤 사람일까. 박영준 대표에 따르면 김대정은 1915년쯤 포항에서 태어났다. 어느 학교를 다녔고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알려진 게 없다. 코주부사를 개업하기 전에 지금의 두꺼비약국 옆에서 ‘보리밭’이라는 다방을 운영했고, 자택은 신한은행(구 조흥은행) 후문 쪽에 있었다고 한다. 포항에서 발간된 어떤 문헌에도 그의 이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한 점포의 주인에만 머무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포항의 문화예술과 체육에 상당한 기여를 했고, 형편이 어려운 사람도 많이 도왔다. 다만 그에 관한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 해 사람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육사가 포항 동해면에 있던 포도농장에서 「청포도」의 시상(詩想)을 얻었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이다. 그러면 육사는 「청포도」의 시상을 어디에서 떠올렸을까. 이에 대한 해답이 나온 것은 지난 1970년대 초였다. 당시 포항지역 문화단체 후원자이면서 이육사 생존 시 친교했던 심당 김대정(80년대 초 작고) 선생이 어느 날 지역의 몇몇 문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결핵 요양차 포항의 송도원에 머물던 이육사 선생이 찾아와 직접 동해면 도구리의 삼륜포도원으로 안내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육사는 이후 나에게 삼륜포도원에서 청포도의 시상을 얻었다고 말한 적이 있으며, 시 초안을 잡은 것을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중략) 김대정 선생이 아꼈던 후배이자 한국문인협회 포항시 지부 창립회원으로 그 자리에 동석했던 박이득(63·전 언론인) 씨의 증언이다. 수필 「보리」의 작가로 육사와 교류했던 한흑구(1979년 작고) 선생도 1973년 『시문학』지에 이육사의 청포도에 관한 문학적 배경이 영일만이라고 설명하는 짧은 수필을 발표했었다. - 「영일만의 이육사」, 『서울신문』, 2004년 10월 7일. “김대정은 푼돈 모아 목돈 쓴 사람” 회상 포항 로터리클럽 회장 맡으며 기부·후원 형편 어려운 학생들 위해 학비 보태기도 이육사가 다른 지역에서 「청포도」의 시상을 얻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포항에서 구상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김대정이 제시한 것이다. 또한 이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그는 ‘포항지역 문화단체 후원자’였다. 이 문화단체는 한흑구가 회장을 맡은 ‘흐름회’를 말한다. 1968년 12월에 창립된 흐름회는 문학의 밤, 백일장, 전시 후원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예술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했다. 흐름회 회원은 모두 아홉 명이었는데 한흑구(수필가), 박영달(사진작가), 김대정, 최정석(효성여대 교수), 김녹촌(아동문학가), 신상률(사업가), 김상훈(부산일보 논설위원), 최성소(조선일보 기자), 손춘익(아동문학가)이 그들이다. 김대정이 흐름회를 포함해 문화예술계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신문 기사가 있다. 포항의 흐름회를 말할 때 심당 김대정 씨를 잊을 수가 없다. 10년 동안 이 모임을 뒷받침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애호가’로 알려진 김씨는 흐름회를 뒷받침하는 이외에도 체육, 음악, 등산 등 이 지방 문화행사를 도와주고 있다. (중략) 흐름회가 10년 동안 문화사업을 해온 배경을 회원들은 “심당이 있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을 정도다. - 「同樂의 길-흐름會」, 제호(題號) 미상, 1977년 1월 23일. 수준급 실력으로 ‘경북럭비협회 부회장’ 동생 김대호·이호진 함께한 포항MIG팀 전국대회서 여러 차례 우승컵 휩쓸기도 동생과 함께 포항 대표 럭비 선수로 활약해 흐름회 회원명부에 김대정의 직업은 ‘산악인’으로 적혀 있다. 그가 산을 어느 정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가 운영하던 코주부사가 포항에서 처음으로 등산복과 등산용품을 취급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가 동생과 함께 전국 무대에서 맹활약한 럭비 선수였고 경북럭비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이다. 해방 이후 6·25사변 무렵의 포항에는 유도와 축구, 럭비, 복싱 등 격렬한 운동이 바다 사나이들의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포항 럭비는 전국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었고, 김대정, 김대호 형제와 이호진 등이 가세한 당시 포항 MIG팀은 전국대회서 여러 차례 우승컵을 안았다. - 『포항시사』,2010년, 208쪽. 김대정의 동생 김대호는 울릉군수(1988. 6. 10.〜1989. 6. 14.)와 예천군수(1989. 6. 15.〜1991. 1. 14.)를 역임한 공직자였다. 박영준 대표는 김대호를 인물이 훤하고 체격이 좋았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박영준 대표 부부는 김대정을 ‘푼돈 모아 목돈 쓴 사람’이라고 떠올렸다. 코주부사에서 번 돈을 문화예술과 체육계에 후원한 것은 물론 포항 로터리클럽 회장을 맡으며 기부도 꽤 했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학비를 대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돈을 썼으니 정작 자신의 형편은 어땠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흑구와 김대정의 인연 한흑구는 김대정의 6년쯤 선배인데 두 사람의 성품은 여러 면에서 겹친다. 한흑구도 보성전문학교에 다닐 때 축구 선수로 뛸 만큼 운동을 잘했다. 미국 시카고의 뒷골목에서 덩치 좋은 흑인 청년과 시비가 붙었을 때 ‘평양 박치기’로 가볍게 제압했다는 무용담은 전설처럼 내려온다. 이 에피소드는 일제강점기 때 소설가 이석훈이 쓴 글에도 나온다. 흑구는 (…) 미국에 평양식 헤딩(머리로 밧는 것)의 위력을 소개한 최초(?)의 人이다. - 이석훈, 「문학풍토기-평양 편」, 『인문평론』 1940년 8월, 78쪽. 한흑구는 서울과 부산 피난 시절 문우들의 술값과 밥값은 물론 용돈까지 챙겨주었다. 오천 미군 부대에 근무할 때는 전쟁 때 초토가 된 포항에 숱한 선행을 베풀었다. 한흑구와 김대정의 행적을 볼 때 두 사람이 흐름회를 매개로 의기투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인연이라 할 수 있다. 한흑구의 서울 시절 가장 가까웠던 주붕(酒朋)이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였는데 포항에 정착한 후의 주붕은 김대정이었다. 김대정은 1978년에 코주부사를 양자처럼 여긴 박영준에게 물려주었고, 이듬해 11월 한흑구가 별세했다. 그 후로 흐름회 활동은 눈에 띄는 게 없고, 김대정이 어떻게 지냈는지도 알 수 없다. 김대정이 언제 작고했는지는 신문 기사와 증언이 엇갈린다. 앞서 언급한 『서울신문』에는 1980년대 초라고 나와 있는데 박영준 대표는 김대호가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인 1990년대 초라고 말했다. 정황상 1990년대 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많이 돕고 베풀었는데 나이 들고 병들자 찾아오는 사람이 없더군요. 포항의료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지요.” 김대정의 황혼을 얘기하던 박영준 대표 부부의 표정에 잠시 그늘이 졌다. 포항 한복판에서 수많은 학생의 명찰을 새기던 코주부사. 지금은 문이 잠긴 그 노포에 아름답고도 쓸쓸한 이야기가 있다. 글 : 김도형(작가) 사 진 : 김 훈(작가)

2025-12-10

솔고개 소나무는 하늘과 땅 잇는 생명의 분수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강원도 영월 솔고개 소나무를 답사하겠다는 오랜 바람이 그렇다. 늘 찾아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대구에서 거리가 멀고 쉽게 시간을 내기 어려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국산림문학회 김선길 이사장이 영월 하이힐링원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며 동행을 권했다. 그 순간 솔고개 소나무가 불현듯 마음속에 고개를 들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승낙했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대구에서 출발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의성에서 장효식 이사(한국산림문학회)의 차량으로 갈아탄 뒤 영주 죽령터널을 지나 영월로 내달렸다. 영월 시내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산림문학회 이사들과 점심을 함께한 뒤, 굽이진 계곡 길을 따라 하이힐링원으로 향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고산준령을 지키고 선 영월의 소나무들은 어느 때보다 깊고 푸른빛을 품고 있었다. 자연스레 화제는 솔고개 소나무로 모였다. 그러는 사이 고갯길을 굽이굽이 오르던 차창 너머로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고갯마루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솔고개 소나무임을 직감했다. 모두가 아름다운 모습에 탄성을 내지르며 차를 멈추었다. 안내판에는 ‘수령 660년, 수고 12m, 가슴둘레 2.8m, 1982년 11월 13일 보호수 지정’이라 적혀 있었다. 단종이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고, 그 혼령이 태백산으로 향하던 중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갔는데 노송들이 머리를 조아려 배웅했다는 전설 또한 적혀 있었다. 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나는 소나무가 있는 고갯마루로 올랐다. 청도 운문사 처진 소나무, 보은 속리산 정이품송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대 명품송(名品松)’ 중 하나이고, 독특한 수형과 용트림하듯 뒤틀린 형상은 1980년대 ‘솔담배’ 표지 문양이 되었고, 오늘날 모 제약 회사의 상표 모티브가 된 나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81-1번지에 있는 이 나무를 최근에는 산림청이 주관하는 ‘2025년 올해의 나무’ 보호수 부문에 선정되어 그 유명세를 톡톡히 하고 있었다.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보고 실제로 처음 마주한 솔고개 소나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생명의 분수처럼 보였다. 사방으로 고르게 뻗은 수관은 바람을 품어 안는 듯 크고 부드럽고, 비스듬히 구부러졌다가 굳세게 치켜 오른 가지들은 오랜 생명의 기운을 하늘로 밀어 올리듯 곧게 솟아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거친 거북이 등껍질 무늬가 울퉁불퉁 살아 움직이는 듯하며, 비틀린 몸통에서는 세월을 뚫고 올라온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단순한 조형미가 아니라, 오래 버텨 낸 존재가 품은 생명의 자세였다.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 온 소나무는 외형만으로도 장관이다. 특히 준령의 산자락 끝에 솟아오른 언덕이랄까, 고갯마루 펑퍼짐한 곳에 홀로 춤추듯 한 형상에 마음마저 숙연해진다. 수백 년 풍설이 새긴 껍질은 두껍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가지들은 굽이굽이 산맥처럼 장대한 곡선을 그린다. 준령의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대지를 붙든 뿌리는 거대한 몸을 지탱하며, 고개를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 위로 깊은 그늘을 드리운다. 나무 앞에서는 시간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사람은 자연과 역사가 겹쳐지는 순간 속에 머무르게 된다. 서로 주고받는 날숨과 들숨이 오고 가는 동안 어느 사이 나무와 하나가 된다. 나무를 진정 빛나게 하는 것은 외양보다 훨씬 깊은 품성이다. 단종의 혼령이 머물렀다는 전설처럼, 소나무는 슬픔을 품되 슬픔에 잠기지 않고, 상처를 지녔으되 그 상처를 다시 생명으로 밀어 올리는 관용을 보여준다. 지나간 역사와 인간의 비극마저 넉넉히 감싸안으며, 비바람에 깎인 가지마다 새살을 틔우는 생명의 인내를 증명해 왔다. 그래서 나무는 한 그루의 거목을 넘어 자연이 오래 품어온 위로의 산신령이자, 고개를 지나는 이들에게 단단한 마음의 자세를 일깨우는 시간의 스승이다.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려 단종의 혼령을 솔고개 소나무 가지 위에 올려두었던 조상의 지혜가 지금도 그 푸른 솔가지 너머로 빛난다. 내일 다시 이곳을 지날 때 한 번 더 인사하러 오리라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우리는 하이힐링원으로 향했다. 한국산림문학회(김선길 이사장)와 하이힐링원(조병철 원장)은 이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조병철 원장은 하이힐링원은 영월의 깊은 숲속에서 행위 중독으로 지친 이들이 자연의 느린 호흡 속에서 멈추고 회복을 배우는 치유 공간이라면서 숲길 산책과 도마 우드버닝 체험을 한번 해 볼 것을 권유했다. 다음 날 조병철 원장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새벽 힐링원 숲길을 산책하고 아침 식사 후 도마우드버닝 체험을 했다. 그 시간만큼은 오로지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귀가하는 길에 또다시 힐링원에서 5km 정도 떨어진 솔고개 소나무 앞에 섰다. 힐링원 치유 프로그램에 이 소나무와 마주하기를 넣으면 어떨까 싶다. 보탠다고 해서 경비가 더 드는 것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다. 솔고개 소나무 앞에 서면 누구나 한순간 고요해진다. 단종의 넋을 품었다는 전설 때문만이 아니라, 수백 년 세월을 온몸에 새긴 나무의 침묵이 깊은 울림을 준다. 깊게 갈라진 옹이는 상처를 품은 이들에게 “너도 견뎌낼 수 있다”라는 무언의 위로가 되고, 바람에 흔들리는 솔잎 소리는 살아 있는 숨결처럼 가슴을 두드리고 그 떨림은 마음으로 전달되어 설렘으로 긴장의 짜릿한 맛은 용기로 이어진다. 힐링원 프로그램의 마지막 종착점이랄까 정점은 솔고개 소나무와의 마주하기, 즉 만남에서 비로소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오래된 나무의 그늘에서 자신을 옥죄던 불안과 중독의 굴레를 조금씩 내려놓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마치 솔고개 소나무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다시 시작해도 된다”라고 일으켜 세워 주는 듯하다. 장엄한 소나무의 기상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 또한 다시금 되살아난다. 나무는 우리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하이힐링원은… 강원랜드 산림 힐링 재단, 행위 중독 예방 치유 프로그램 및 웰니스 프로그램 운영 사업을 통해 국민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한다. 하이힐링원은 강원랜드의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설립된 사회공헌재단으로 아동, 청소년 및 사회적 배려 대상자에게 프로그램을 무상 제공하며 행위 중독 예방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해먹 테라피는 소나무 숲까지 가볍게 트레킹하고 해먹에 누워 바디 스캔 명상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한다. 피톤치드, 음이온 등의 산림 치유 인자가 몸의 감각을 깨우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며 자기돌봄의 휴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나무 도마우드버닝은 원목 도마에 인두로 원하는 그림, 또는 감명 깊은 글귀를 새기며 자신만의 풀레이팅 도마를 만들어 본다. 테라피 효능을 가진 나무 타는 향기로 마음의 안정과 몰입을 통해 명상의 효과와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다. 아로마테라피 식물에서 추출하는 천연 아로마 향으로 심신의 균형을 회복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블렌딩 오일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천연 아로마 오일은 인체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2025-12-10

[기획] 포항 외국인 8615명 시대, 제도는 무엇을 놓치고 있나

◇ 변화한 도시, 뒤따라가는 제도 올해 10월 기준 포항의 외국인 인구는 8615명이다. 산업·교육·가족 등 체류 목적이 다양해지면서 외국인은 도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으며 전체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 역할까지 맡고 있어 그 존재는 단순한 비율을 넘어 도시 운영을 지탱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수산물 가공업, 제조 하청업체, 항만·물류, 농축산업, 건설 보조 등 현장은 외국인 노동력 없이는 공정 가동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도시가 이미 다문화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에도 행정과 정책은 아직 기존의 분류 체계와 지원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 거주외국인 조례는 포괄적이지만 현실을 모두 담지 못한다 ‘포항시 거주외국인 지원 조례’는 90일 이상 포항에 거주하며 생계활동을 하는 외국인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공공시설 이용 보장, 한국어 교육, 기초생활 적응, 고충·법률 상담, 응급구호 등 기본적인 정착 지원을 시장의 책무로 명시한다. 제도적 선언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조례는 제조업 생산직, 항만·물류 근로자, 계절근로자, 연구 인력, 유학생, 결혼이민자 등 체류 목적과 생활 조건이 서로 다른 다양한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지원한다. 현실에서 각 집단이 겪는 문제와 필요는 크게 다른데 조례 안에서는 이를 구분하는 세부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사업 집행이 대부분 위탁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조례가 규정하는 기본 지원이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근로계약 분쟁, 임금 체불, 산재, 숙소 안전 문제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포항에서 외국인의 역할이 단순 생활 적응을 넘어 산업·고용·인구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확대된 상황에서는 조례의 포괄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언은 있었지만 실행의 정교함은 여전히 부족한 셈이다. ◇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은 촘촘하지만 ‘대상 편중’의 벽 2023년 개정된 ‘포항시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는 결혼이민자와 귀화자를 중심으로 한 정교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방문교육, 자녀 언어발달·취학준비·성장지원, 관계향상 프로그램, 인권감수성 교육, 통·번역 서비스, 다문화엄마학교, 자조모임(6개국 227명), 이중언어 환경 조성, 학위취득비 지원, 취·창업 교육 등 20여 개가 넘는 사업이 운영되며 지역사회 인식 개선 사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예산 규모도 작지 않다. 다문화가족정책 예산 10억 128만 원 중 실제 사업비가 8억 4183만 원에 달하고 건강가정·다문화센터 통합서비스 예산 13억 7103만 원까지 더하면 연간 약 24억 원이 투입된다. 지방 도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재원이며 사업의 내용과 범위도 촘촘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체계가 결혼이민자와 귀화자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의 2025년 6월 통계에 따르면 포항의 거주 외국인 7575명 중 외국인근로자는 5303명으로 전체의 약 70%에 이른다. 즉, 포항 외국인의 다수는 노동 목적 체류자이며 이들은 언어·노동환경·주거·의료 등 복합적인 문제를 동시에 겪는다. 하지만 이들을 포괄하는 지원체계는 상담센터 외에는 사실상 부재하다. 외국인 지원 체계가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에서 노동 목적 체류자 다수가 제도 밖에 놓이면서 정책의 설계와 실제 현장의 필요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발생한다. ◇ 김지원씨의 인터뷰가 드러낸 ‘정책과 현실의 거리’ 베트남 출신 귀화자 김지원씨(34)의 경험은 제도의 공백을 가장 일상적인 차원에서 보여준다. 2016년 결혼을 계기로 포항에 정착한 그는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적응했고 올해 9월부터 출산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 2~3시간씩 주 4일 근무해 받는 월급은 80만 원. 그는 “아이 키우고 생활하기에는 부족하다. 30만 원만 더 있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를 통해 언어교육과 일자리 연계를 받았지만 “센터 말고 시에서 직접 지원받는 건 거의 없다”고 했다. 시내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어가 제일 중요하다. 소통이 안 되면 오해가 생긴다”고 강조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와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결혼이민자조차 이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노동 목적 체류자가 겪는 어려움은 더 광범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상담센터는 현장의 최전선이지만, 제도적 연결은 약하다 포항에는 외국인근로자 상담센터가 남구·북구·여성센터 등 3곳 운영되고 있다. 이들 센터는 노동·산재 상담, 통역, 생활 문제 조정 등 외국인이 당장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전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운영 체계는 구역과 성별에 따라 분리돼 있으며, 다문화센터와 연계해 문제를 함께 처리할 수 있는 통합 매뉴얼도 부족하다. 노동·주거·가족·교육 문제는 실제 삶에서는 한 사람에게 동시에 얽혀 나타나지만 행정은 이를 분야별로 나눠 관리하고 있어 복합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단절은 결국 지원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 계절근로자 조례는 세밀하지만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다 ‘포항시 외국인 계절근로자 지원 조례’는 통역료, 외국인등록비, 마약검사비, 숙소 점검, 교육비 등 필요한 지원 항목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기 노동력을 확보하고 근로 기간 중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에는 충실한 조례다. 그러나 구조는 어디까지나 ‘입국-근로-관리-귀국’이라는 단기 순환을 전제로 한다. 지역사회 편입이나 장기 정착을 고려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근로 기간이 끝나면 관계 또한 종료되는 방식이다. 농어촌의 노동력 의존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음에도 정책이 다루는 범위는 여전히 ‘단기 관리’에 머물러 있어 지역이 실제로 겪는 구조적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 정책도 다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포항의 외국인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 도시 운영을 함께 떠받치는 핵심 구성원이다. 외국인이 빠지면 생산라인이 느려지고 물류가 지체되며 농어업 현장은 즉각 인력난에 직면한다. 변화한 도시 구조에 맞춰 체류 목적별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상담센터-다문화센터-행정의 연계를 강화하며 의료·주거·언어 등 생활 기반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제도와 행정이 이 변화를 따라갈 때 포항은 외국인과 시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5-12-10

극심한 빈곤 속에서 꽃핀 울릉도 음식문화

쌀·보리 귀했던 궁핍한 옛 시절엔 나물·해초 넣은 ‘옥수수죽’이 주식 옥수수로 만든 떡·범벅조차 귀해 △ 옥수수에 감자 넣어 죽으로 끓여 먹어 “문턱에 다다르니 주렁주렁 엮어서 달아놓은 미역취가 눈에 띈다. 부지갱이나물을 말려 항아리에 담아 놓은 것도 여기저기 있다. 부잣집에서 볏섬을 쌓아 놓듯 어느 집이나 두 가지 나물 준비가 돼 있다. 장씨가 점심으로 죽 그릇을 가지고 나와 기자의 눈앞에 내민다. 나물 건더기만 빽빽한 푸른 죽이다. 이 죽을 숟가락으로 뜨면 한 술에 곡식 알맹이라곤 강냉이 두세 조각이 얹어진다. 감자 조각 삐져 넣은 것은 세 술 만에 한 조각 담길까 말까….“ 1934년 12월 12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옛날 울릉도의 궁핍이 눈앞에 선해지게 만드는 기사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부족하던 울릉도에서는 옥수수나 감자가 주식이었다. 그러나 감자나 옥수수도 넉넉지 않아 죽으로 끓여 먹었지만, 그마저도 감자나 옥수수보다 푸성귀가 더 많이 들어갔으니 그 시절 울릉도 주민들이 겪었을 가난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옥수수를 맷돌에 쌀알 절반 크기로 갈아 감자와 함께 넣고 물을 부어 끓여낸 것이 옥수수죽이다. 옥수수는 주로 감자와 함께 죽을 끓여 먹었는데 그래야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옥수수나 감자도 부족해 부지갱이나 대황 같은 나물, 해초 등을 넣고 죽을 끓여 먹기가 다반사였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칡을 캐다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칡뿌리는 방망이로 한껏 두들겨서 물에 풀면 앙금이 가라앉고 녹말이 만들어진다. 그 녹말로 떡을 하면 까만색이 나고 쫄깃쫄깃하다. 다른 재료를 섞지 않고 오로지 칡 녹말만으로 떡을 하면 감자떡보다 더 맛있다. 칡 녹말로는 밀가루를 섞어서 수제비를 끓여 먹기도 했다. 하지만 칡 녹말을 만드는 일은 품이 아주 많이 든다. 칡을 캐다가 껍질을 씻고 찢고, 빻아서 물에 며칠을 우려야 한다. 7~8번을 우려야 하얀 녹말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여유가 있는 집은 옥수수떡도 만들어 먹었다. 옥수수는 맷돌로 갈아서 만들었는데 쌀이 귀한 울릉도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떡이었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마른 옥수수를 물에 불린 뒤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팥은 삶아서 건진다. 찹쌀은 물에 불려 가루로 만든다. 옥수숫가루, 찹쌀가루, 삶은 팥을 버무리고 소금 간을 한 뒤 찜 솥에 쪄낸다. 다른 말로는 강냉이떡이라고도 한다. 옥수수는 식혜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울릉도 옥수수 식혜 조리법은 어렵지 않다. 옥수수 알은 잘게 갈아서 4-5시간 정도 불린 후 찜통에 찐다. 엿기름은 따뜻한 물에 주물러서 불린 후 채에 곱게 걸러 가라앉힌다. 찐 옥수수는 뜨거울 때 펴서 엿기름물을 붓고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4~5시간 후 옥수수 알갱이가 몇 알 떠오르면 찬물을 더 붓고 중불로 한번 끊인 후 식혀서 먹는다. 단맛을 더하려면 설탕을 약간 첨가하기도 한다. 이제는 섬 상징 같은 ‘호박엿’ 대신 ‘옥수수엿’ 고아 팔던 산막도 여럿 △ 울릉도의 귀한 음식 취급했던 범벅 울릉도에서는 범벅도 귀한 음식이었다. 범벅은 쌀이나, 밀, 메밀 등의 곡식 가루에 감자, 옥수수, 팥, 고구마, 호박, 콩 등을 섞어서 풀처럼 되직하게 쑤거나 푹 삶아서 만든 음식이다. 울릉도는 옥수수나 감자로 범벅을 만들어 먹었다. 울릉도 옥수수 범벅은 마른 옥수수를 절구에 넣고 물을 뿌려 껍질이 벗겨서 만든다. 껍질이 벗겨진 옥수수를 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옥수수가 툭툭 터질 때까지 삶는다. 여기에 팥을 넣고 계속 끓이면 옥수수에서 나온 전분에서 끈끈한 점성이 생겨나 옥수수와 팥이 고루 잘 섞인다.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울릉도의 상징 같은 호박엿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옥수수엿도 만들어 먹었다. 인류가 엿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무려 2천여 년 가까이 된다. 후한 말 유희(劉煕)가 지은 ‘석명(釋名)’에는 ‘묽은 엿은 이(飴), 된 엿은 당(餳), 당보다 딱딱하면서 탁한 엿은 포(餔)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6세기에 저술된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싹이 푸른 엿기름은 검은 엿을 만들 때 사용하고, 희게 싹을 틔운 엿기름은 흰 엿을 만드는데 사용한다.’는 기록도 있다. 엿에 대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나온다. ‘행당맥락(杏餳麥酪)’이라고 해 ‘당(餳)‘은 단단한 엿이고 ‘락(酪)‘은 감주의 일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때부터 엿기름을 만들어 엿이나 감주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엿 만들기가 민간에서 보편화됐다. 엿은 쌀,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등의 곡물에 엿기름을 넣어 삭혀서 만든 음식이다. 곡물에 들어있는 전분이 엿기름의 효소 성분에 의하여 삭으면서 당분으로 변하는데, 전분의 당화(糖化)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밥을 지어 한 김을 식히고, 그 위에 엿기름을 섞은 다음 8~10시간 정도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두면 엿물이 된다. 엿물은 베자루에 퍼 담아 찌꺼기는 거르고 물만 받는다. 이 정제된 엿물을 가마솥에서 고면 엿이 된다. 물엿이다. 물엿을 밀이나 콩을 볶아 만든 가루를 깔고 펼쳐놓은 엿판에 부으면 굳어져 엿이 된다. 옛날에는 울릉도의 산막에서 옥수수엿을 만들어 파는 집도 여러 곳 있었다. 쉽지 않지만 지금도 레시피대로만 따라 하면 옥수수엿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먼저 말린 보리를 3~4일 정도 물을 뿌려주면 하얀 뿌리와 촉이 나온다. 이것을 3일 정도 말리면 엿기름이 된다. 이 엿기름에 물을 넣어가며 맷돌에 간다. 빻아둔 옥수수 가루와 엿기름 가루를 함께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인다. 솥이 팔팔 끓으면 두 시간 남짓 식힌 다음 엿기름을 더 넣는다. 4시간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불을 때서 팔팔 끓인다. 이것을 자루에 담아 엿 틀에 짜서 물을 받아낸다. 이 엿물을 솥에 붓고 4분의 1가량 남을 때까지 졸이면 물엿이 완성된다. 이 물엿을 엿판에 담으면 옥수수엿이 완성된다. 쌀 3말, 옥수수 2말, 엿기름 1말이면 30kg 정도의 엿이 나온다. 엿물에 누룩 넣어 발효시킨 탁주 용수 박아 만든 엿 청주까지 즐겨 △ 옥수수로 술 만들어 먹기도 옥수수로는 술도 만들어 먹었다. 엿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엿 만들기가 술 제조의 전 단계에 해당된다. 엿물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옥수수 엿 탁주를 만든 뒤 용수 박아 떠내면 엿청주가 된다. 전통적인 울릉도 엿탁주는 밑술에 덧술을 넣고 두 번 빚은 술이다. 밑술은 멥쌀 1말 기준, 껍질 벗긴 생감자 4kg 정도를 섞어 감자고두밥을 쪄서 차게 식힌 뒤 잘게 부순 누룩 4kg을 섞는다. 여기에 감자고두밥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따뜻한 방안 아랫목에 술독을 놓고 베 보자기로 술독을 살짝 덮어 2~3일 지나면 밑술이 완성된다. 덧술은 옥수수 가루 5말에 물 5말, 엿기름 2되를 섞어 가마솥에서 끓인 뒤 차게 식힌다. 여기에 다시 엿기름 4되, 양조용수 3말을 섞어 넣고 불을 지펴 엿물이 살짝 데워진 상태로 보온을 해 주면서 7~9시간 정도 삭힌다. 엿밥이 충분히 삭으면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한 번 더 팔팔 끓인 뒤 삼베 자루에 담고 눌러 짠다. 찌꺼기는 버리고 엿물은 다시 솥에서 졸여서 차게 식힌다. 식힌 엿물에 발효가 된 밑술을 붓고 고루 섞이도록 저어준다. 술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방안에 이불로 싸서 덮어둔다. 술을 안친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나면 술이 익는다. 이것이 엿탁주다. 여기에 용수를 박아 떠내면 엿청주가 된다. 계절에 따라 술을 빚는 시간이 다르다. 짧게는 4~5일 길게는 10여일이면 완성된다. 남쪽이 아니지만 울릉도에는 동백나무가 많다. 해양성 기후 덕분이다. 그래서 동백 송편도 만들어 먹었다. 추석에 먹는 음식인 동백 송편은 육지에서 만드는 송편과 비슷하지만, 송편에 참기름 대신 동백기름을 바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울릉도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동백 열매에서 기름을 짜 등잔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다. 동백기름은 부스럼을 치료하거나 머릿기름으로도 사용했다. 이 또한 재현해 내면 좋을 울릉도의 소중한 문화다.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2025-12-09

내과의사, 원고지 20장 속에 인간과 세상을 담아내다

원고지 20매 안팎의 짧은 글로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는 게 가능할까? 이 질문에 관한 대답으로 읽히는 책이 출간돼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곧, 그 밤이 또 온다’(득수)엔 지난 2024년 본지에 연재돼 화제를 모았던 20편의 엽편(葉篇)을 담았다. 엽편소설이 뭔가? 나뭇잎 넓이 정도의 크기에 담아낼 수 있는 소설을 지칭하는 단어다. 우리가 통상 인식하는 짤막한 소설인 단편보다도 더 짧은 분량. 그렇기에 구구절절한 설명과 서술보다는 명료한 상징과 반짝이는 은유의 문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작가로선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 ‘곧, 그 밤이 또 온다’를 출간한 소설가 김강(53)은 세속적 시각으로 보기엔 독특한 이력을 가졌다. 그는 경북 포항에서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지역 작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서점(책방 수북)을 운영 중이다. 출판업에도 손을 대 사라져가는 종이책 독자들을 끌어 모으는 역할까지 병행한다. 거기에 더해 꾸준히 소설까지 쓰고 있다. ▲소설가와 의사 겸업...8년간 수십 편의 작품 써내 의사가 문학을 겸업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없지는 않다. 시인 마종기, 나해철, 서홍관 등이 그렇고, 지난여름 별세한 부산 문단의 원로 소설가 전용문도 신경외과의사를 겸했던 작가다. 종일 환자들을 진료하는 쉽지 않은 일정 속에서도 김강은 소설 쓰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2017년 심훈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온 김강은 그간 ‘우리 언젠가 화성에 가겠지만’ ‘소비노동조합’ ‘착하다는 말 내게 하지마’ ‘그래스프 리플렉스’ ‘블라블라블라’ ‘여행시절’ ‘당신의 가장 중심’ ‘소방관을 부탁해’ ‘작은 것들’ ‘쇼팽을 읽다’ 등 적지 않은 수의 책을 펴냈다. 등단 8년을 조금 넘겼지만 이미 단편소설집, 장편소설, 청소년소설, 공동창작집 등을 고루 자신의 출간 이력에 올린 중견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성실성과 꾸준함은 우리가 그의 현재가 아닌 미래에 더 주목하는 이유가 돼준다. 지난 10월 말. ‘곧, 그 밤이 또 온다’가 막 세상에 나왔을 때 김강은 “부끄럽지만, 저의 여섯 번째 단행본이 출간됐습니다. 원고지 20~30매 사이의 짧은 소설 스무 편을 엮었습니다. 소소한설(小笑寒說)이라는 시리즈의 첫 번째 책입니다”라는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여기에 아래와 같은 은유 가득한 작가의 말을 더했다. 김강의 소설을 부지런히 따라가며 읽은 독자는 “그의 소설 문장이 시와 닮았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다소 긴 인용이지만 다음을 꼼꼼하게 읽어보자. ‘책상 위 책들이 쌓였습니다. 읽은 책, 읽다가 만 책, 사놓고 그냥 둔 책. 책들 사이에 노트북이 있습니다. 노트북 오른쪽 귀퉁이에는 스탠드 등이 있네요. 의자는 등받이가 없는 장의자입니다. 장의자에도 책이 가득입니다. 박스 채 놓아둔 것들, 언젠가 읽으리라, 하루에 한 꼭지 씩 읽으리라 다짐했던 책들입니다. 맞은편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있습니다. 그의 의자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책을 읽고 차를 마십니다. 문득문득 무언가를 찾는 듯 창밖을 내다보기도 합니다. 가끔은 글을 쓰는 저를 바라보기도 하지요…(이하 생략)’ 김강은 일견 자신의 무덤덤한 일상을 별다른 기교 없이 서술한 것으로 보이는 ‘작가의 말’ 속에 책과 함께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문장’과 동의어인 책과 더불어 울고 웃을 것이라는 단단한 의지와 결심을 담아내고 있다. 편안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무서운 결기다. ‘문득문득 무언가를 찾는 듯’ 거실에서 내다본 창밖엔 또 어떤 소설의 소재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었을까? 김강은 그걸 찾아냈을까? 찾아냈다면 그것들은 새로운 책으로 만들어져 우리 곁으로 찾아오겠지. 이런 모종의 기대감을 독자들에게 선물할 수 있는 소설가는 행복한 사람이 분명하다. ▲은유와 상징의 문장으로 해석해낸 세상 속 사람살이 이제 ‘곧, 그 밤이 또 온다’로 들어가 보자. 책 속엔 ‘느닷없는 마음’으로 명명된 짤막한 엽편이 등장한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담겼다. ‘모래 언덕 너머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붉은 물결 같은 모래무늬 뒤로 짧은 그림자가, 모래 언덕 뒤로는 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림자는 짙고 연한 어둠을 만들었고 그 위로 햇살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이 밝고 붉게 빛났다. 연은 작은 모래 언덕 기슭에 앉아 큰 모래 언덕 너머로 넘어가는 해를 보았다. 해가 언덕 너머로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하략)’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란 어찌 보면 일상이다. 그러나, 실연은 필연적으로 상처를 남긴다. 상처를 받는 대상이 남자건, 여자건. 소설 속 화자는 베트남 여행에서 만난 사막에서 해가 지는 순간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세상사 모든 건 ‘느닷없이’ 다가오고, 다시 ‘느닷없이’ 끝나거나 사라진다는 걸. 인용한 김강의 시적(詩的) 문장은 이걸 설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내친김에 수록작을 한 편 더 살펴보자. 이건 제목부터가 시적이다. 아래는 ‘물을 주다’는 엽편의 일부. ‘물을 다 주고 들어온 K는 샤워를 했다. S와 함께 아침 겸 점심을 먹었고 담배 한 개비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에 금방 땀이 배어나오기는 했지만 바람은 조금 더 시원해진 듯 했다. 늘어져있던 나팔꽃 잎이 조금은 펴졌고, 색을 되찾은 고춧잎 사이 매달린 초록 고추가 반짝였다. 상사화 꽃대는 힘을 찾았는지 내일은 십 센티미터는 더 올라올 듯 보였다…(하략)’ 자신의 집 정원에서 자란 상사화(相思花)를 보면서 미미한 존재의 숨겨진 존귀함을 발견해내는 따스한 시선과 더불어 ‘우리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무얼 해야 할까? 그 행위는 반드시 크고 거창한 것이어야 할까’를 에둘러 묻는 김강의 진중함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에 문학적 촉수를 가져다 댄 김강은 은유와 상징의 문장으로 인간과 세계의 해석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작업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게 분명해 보인다. 지난 6년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본 김강은 무엇보다 약속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지금도 그렇지만 남은 삶도 문장과 함께 하겠다”는 그의 말이 허언이 아니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곧, 그 밤이 또 온다’를 읽은 소설가 이기호가 동료작가인 김강과 그의 책에 전한 격려의 말을 마지막으로 아래 옮긴다. “(김강) 소설의 무대는 자연스럽게 ‘부재’와 끝내 응답받지 못한 목소리 사이를 오간다. 인물들 또한 울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대신, 결핍과 공백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그것은 겉으로는 절망처럼 보이지만, 실은 상실을 정작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없는 것을 억지로 메우지 않고, 부재와 함께 살아내는 일. 김강은 풍자와 유머, 아이러니를 통해 그 애도의 과정을 완수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