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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왕을 살린 편지와 마을을 살린 물길

■소란을 품은 정적의 연못 한여름이 깊숙이 내려앉은 연못이 숨을 죽인 듯 고요하다. 그러나 고요함 아래, 물풀은 사방으로 뻗고 연잎은 서로의 몸을 밀치며 자리를 넓힌다. 나무는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바람은 유영하듯 잘도 지난다. 아무도 없으니 고요하고, 아무도 없기에 많은 생명은 제 뜻대로 자란다. 고요하다는 건 멈춤이 아니라, 소리 없는 확장이 된다. 연못 둑을 따라 뿌리내린 나무는 제 그림자를 물 위에 드리운 채 기세를 세운다. 한쪽으로 기운 듯하지만 단단하고, 굽은 등줄기엔 시간이 층층이 내려앉아 물기 어린 흙을 힘껏 끌어당긴다. 매미는 고요를 뚫고 터지듯 운다. 서출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울음을 받아낸다. 숨이 막힐 지경인 한낮의 열기 속에, 연못은 한치 흔들림 없이 가라앉아 있다. 수면은 팽팽한 긴장을 머금었다 풀어지며 하늘을 담는다. 연못 물은 고인 듯 살아 있고,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고요가 오히려 연못을 더 넓게 보이게 한다. 소란한 매미도, 바람의 숨결도 물속에 스며들 뿐, 연못은 가만가만 모든 것을 품는다. 나보다 먼저 바람이 다녀간 흔적이 연잎 위에 남는다. 잎들은 가볍게 흔들리며 그늘과 빛 사이를 나누고, 틈마다 빛은 제 몸을 풀어 번진다. 연못 가장자리에 물풀들이 빼곡히 자리 잡았다. 수면 아래에 몸을 숨긴 물고기들이 미세한 흔적을 남긴다. 개구리 한 마리가 놀란 듯 움찔하며 물속으로 뛰어든다. 그럴 때마다 연못은 가볍게 숨을 쉰다. 부레옥잠과 연꽃은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저들만의 질서를 잘 이루어 사는 듯하다. 신라 소지왕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동남산 자락 완만한 기슭의 서출지 낮은 터에 남산 계곡서 흘러든 물 고여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알려져 배롱나무•소나무 등이 주변을 감싸고 안쪽에는 연꽃 같은 수생식물이 자라 동쪽에 자리잡은 정자 이요당과 함께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 ■글이 나온 연못 서출지 서출지(書出池)다. 경주 남산동, 동남산 자락의 완만한 기슭에 자리 잡은 연못이다. 동서로 누운 자그마한 연못은 주변에 비해 터가 낮아 물이 모이기 좋은 위치다. 남산 계곡에서 흘러든 물이 고이는 곳이니, 예로부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연못으로 알려졌다. 배롱나무와 소나무, 잡목들이 조밀하게 연못을 감싸고, 아래로는 수로가 이어져 물이 흐르도록 되어 있다. 연못 안쪽에는 붓꽃, 부레옥잠과 연꽃 같은 수생식물이 자라며, 둑을 따라 연못을 한 바퀴 돌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동쪽에는 이요당이 있어 연못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이 가만가만한 공간은 남산 품 안에서 사계절 내내 다른 표정을 띠며 숨을 쉬는 공간이 된다. 8월 한낮의 햇살이 살갗을 파고든다. 연잎은 땡볕을 받아내며 얇은 그림자를 품는다. 물풀은 제각각의 자리에 번져 있고, 그 사이로 연꽃 한 송이가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수면이 미세하게 떨릴 무렵, 물결 위엔 오래된 전설이 한 겹 얹힌 듯 연꽃이 나를 부른다. 서출지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담고 태어난 연못이다. ‘書出池(서출지)’, 한자를 풀어 보면 ‘편지가 나온 연못’이다. ‘삼국유사’ 권제2, 기이 제2, 소지왕조(炤知王條)에는 서출지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월 보름, 소지왕(신라 제21대 왕)이 행차를 나섰다. 남산 자락, 양피촌 들녘을 지나던 왕의 수레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뒤를 따라 쥐 한 마리도 나타났다. 놀랍게도 쥐가 말을 했다. “저 까마귀를 따라가십시오.” 기이한 기운을 느낀 왕은 장수를 보내 까마귀를 쫓게 했다. 까마귀는 남산 남쪽, 못 가로 장수를 이끌었다. 그러나 그만 까마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장수가 아쉬움에 못 가장자리에 멈춰 선 그때, 물 한가운데서 거칠고 푸른 풀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났다. “이 글을 반드시 왕께 전하시오.” 장수에게 봉투를 건네고 노인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장수는 왕에게 봉투를 전했다. 왕은 봉투를 펼쳤다. “이 봉투를 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 왕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자 옆에 있던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백성이옵고, 한 사람은 왕이시옵니다. 부디 열어보소서.” 왕이 봉투를 열자 단 세 글자가 쓰인 편지가 있었다.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라.” 왕은 대궐로 돌아와 왕비의 침실로 향했다. 침실엔 작은 거문고 상자가 있었다. 왕이 활을 들어 상자를 향해 시위를 당기자 왕비가 말렸다. ‘뚝’, 활에 맞은 나무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가 났다. 상자 안에 승려가 죽어 있었다. 왕비와 함께 반역을 꾀했던 승려였다. 왕은 죽음을 면했고, 왕비는 곧 처형되었다. 글이 물에서 나왔다 하여 이 연못은 ‘書出池(서출지)’라 불리게 되었다. 정월 대보름날 소지왕을 살려준 까마귀에게 찰밥을 주는 ‘오기일(烏忌日)’이라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경주 지역에서도 정월 대보름날 아이들이 감나무 밑에 찰밥을 묻어두는 ‘까마귀 밥주자’라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신라 불교 공인 이전, 토착신앙과 새로운 사상의 충돌의 암시가 이 연못에 서린 까닭일까. 까마귀와 쥐는 전통 신앙의 화신처럼 등장했고, 풀 옷 입은 노인은 미래를 예언하는 매개자였을 것이다. 노인의 기이함 속에서 생명은 구원되고 왕권은 이어졌다. 이 이야기는 신라사의 균열을 보여주는 듯하다. 연못 가장자리 둑을 천천히 걷는다. 발밑엔 잔돌이 깔려 있고, 풀잎은 바람 따라 낮게 고개를 젖힌다. 한낮의 햇살이 연잎 위로 내려앉고, 수면은 고요하다 못해 멈춘 듯하다. 그 물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든다. 검은 그림자가 연못을 가로지른다. 문득, 풀 옷을 입은 노인이 봉투를 내밀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가 누구였는지, 왜 하필 왕에게 글을 보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연못엔 여전히 노인의 신비스러운 기척이 남아 있는 듯하다. 잔잔한 수면 아래, 전설은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가라앉아 있다. 배롱나무 꽃잎 하나가 바람에 날려 물 위로 떨어진다. 그 붉은 조각이 천천히 돌며 퍼져나간다. 까마귀와 쥐는 신이 보낸 전령이었을까. 왕비와 승려의 음모를 막은 글귀는 정말 이 물속에서 떠올랐던 걸까. 산책 끝에 다시 연못을 바라본다. 뜨거운 여름빛 아래, 서출지는 여전히 고요하다. 오래된 이야기처럼 아무도 없는 연못엔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듯하다. ■이적의 선행이 깃든 물 위의 정자 이요당 이요당은 연못 끝자락 물 위에 있다. 물과 나무 사이, 빛과 바람이 스쳐 가는 자리에 마루를 얹고 기와를 이고 앉아 있다. 유연한 지붕, 아름다운 곡선에 얹힌 시간을 가늠해 본다는 건 무의미한 일일 테다. 모든 곡선이 부드럽고, 모든 직선이 오래되어 고풍스럽다. 낮은 마루, 묵은 기둥, 모든 것이 서출지에 반영되어 한껏 품격 있는 아름다움을 더한다. 건물은 물 위에 올려져 있고, 처마는 연못을 향해 열려 있다. 수면 위를 따라 흐르는 바람이 마루를 통과하고, 연잎의 흔들림은 건물 그림자와 맞닿는다. 이요당은 물과 함께 숨 쉬는 살아있는 집이다. 이요당(二樂堂)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조선 현종 5년(1664년)에 임적(任適, 1612~1672)이 지은 정자다. 서출지 연못가에 돌을 쌓아 건물을 올렸다. 당초에는 3칸 규모였으나 이후 다섯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에 ㄱ자 모양을 띠게 되었다. 남산 능선을 등진 정자는 서출지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 있어 연못을 훤히 내다보는 구조다. 이요당이라는 이름은 ‘요산요수(樂山樂水)’에서 비롯되었다.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긴다는 의미를 지닌 말로, 자연 속에서 벗처럼 지내는 선비의 삶을 담아낸다. 정자는 격식을 갖추되 화려하지 않다. 기둥은 차분히 아래로 향하고, 처마 선은 남쪽으로 부드럽게 그어진다. 마루 아래로는 연못의 기운이 스며들고, 그 기운은 다시 처마로 오른다. 임적은 남산 아래 양피촌에 살던 선비였다. 가뭄이 극심할 때, 땅속 깊은 물줄기를 찾아내어 자신의 마을은 물론, 이웃 마을까지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살폈다. 임적은 평소에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의복과 식량을 나누었다 전한다. 그의 덕망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이요당은 그가 자연을 벗 삼아 머물며 마음을 가다듬던 자리다. 이요당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라 서출지의 전설을 내려다보는 자리이자, 삶의 물줄기를 함께 나누던 인물의 정신이 머문 공간이다. 정자에 올라 바라보면, 연못의 수면에 배롱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계절마다 연꽃이 피고 진다. 기와지붕 아래 남긴 선인의 삶은 가만가만하지만 분명한 울림으로 남는다. 이요당 건너편, 남쪽 언덕에 그의 아우 임극(任極)이 지은 산수당(山水堂)이 자리하고 있다고는 하나 오늘은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두 형제가 나란히 남산 자락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삶은 오늘날까지 연못을 거닐며 보는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정자는 시간이 흘러도 기울지 않고, 정자에 깃든 선행과 겸허함은 여전히 바람결에 실려 전해진다. 가만가만 걷기 좋은 연못이다. 서출지와 이요당은 숨겨둔 마음을 꺼내보기에 좋은 자리다. 나무 그림자에 들고, 물풀 사이를 스치고 오는 바람에 젖다 보면, 어느새 잊고 지낸 누군가의 얼굴과 그리움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물풀 옷을 입은 선인이 전하듯, 마음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연서 한 장이 나를 향해 조용히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다.

2025-08-27

깊은 땅속 두 그루 나무의 은밀한 사랑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볼 수 없는 것을 실제로 본다는 것은 소름 돋는 경이적인 일이다. 노거수를 찾아 나선 지도 25여 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보기 힘든 사실의 광경을 목격했다. 한 나무의 두 가지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붙어 하나의 가지로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라 하고, 두 나무의 가지가 하나의 가지로 된 것을 연리목(連理木)이라 한다. 연리지와 연리목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효도, 사랑, 우정의 징표’로 귀하게 여기고 많은 사람이 경외감을 가진다. 이에 대한 전설과 함께 신비롭고 또한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두운 땅 속에서 운명처럼 서로 만나 아무런 보호막 없이 모진 세월 겪으며 마침내 한 생명의 숨결 나누는 사이로 하나의 숨결이 된 검고 굵은 뿌리줄기 마치 오래 잠든 용의 등처럼 굽이치고 무심한 비바람이 깎아낸 굴곡들마다 시간의 손길이 새겨져 신비로움 품어 그런데 땅속에 있어 보이지 않는 두 그루 나무의 뿌리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하나의 뿌리로 된 연리근(連理根) 것을 발견했다. 처음 이곳을 방문한 2003년 봄에는 알 수도 볼 수도 없었던 흙 속에 숨겨져 있었다. 10여m 떨어진 느티나무 두 그루의 굵은 뿌리가 하나로 붙은 연리근이 바깥세상으로 나와 나의 눈앞에 떡하니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찬찬히 연리근을 만져보고 또 살펴보았다. 연리지와 연리목은 가끔 보아 왔지만, 이렇게 굵은 뿌리의 연리근은 처음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은 떨렸다.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가 땅 밖으로 나와 노출되어 있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뿌리를 덮고 있던 흙이 빗물로 인하여 유실되어 연리근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 신비하고 경이로움에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연리근 느티나무 노거수가 살아가는 곳은 경북 김천시 농소면 월곡리 산 75번지이다. 일명 못골마을이라 한다. 마을 입구 언덕 위에 도로와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살아가는 느티나무는 나이가 380살, 키 20m, 가슴둘레 4.6m, 앉은 자리 폭이 27m나 되었다. 이웃 나무는 이보다 나이도 키도 가슴둘레 굵기도 작은 느티나무이었다. 1993년 7월 7일 보호수로 지정되어 시에서 보호 관리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정자와 의자 등 편익 시설을 설치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 연리근은 두 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아와 포개지고, 마침내 한 생명의 숨결을 나누는 은밀한 사이가 된 것이다. 아무도 볼 수없는 흙 속에서 그들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었을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세상에 알려져 세월과 비바람을 견디며 서로의 생을 지탱해 주는 조용한 사랑이 아직도 뜨겁게 흐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연하고 하얀 뿌리가 아무런 보호막이 없이 모진 세월의 풍파에 발가벗겨졌으니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연리근은 두 나무의 뿌리가 가까이 자라면서 접촉 부위의 형성층이 유착되어 물과 양분이 오가게 된 상태이다. 동일 수종일 때 유착이 잘 일어나지만, 토양 조건에 따라 다른 수종 사이에서도 드물게 관찰된다고 한다. 생태학적으로는 두 나무의 뿌리 경쟁 대신 상호 연결을 통한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적응으로 보인다. 이는 식물사회의 생존을 위한 협력이다. 내가 처음 올 때만 해도 나무의 뿌리는 흙 속에 있었는데, 그동안 비로 인한 흙의 유실로 뿌리가 땅 바깥으로 노출되었다. 10여m 떨어진 두 나무가 힘을 합쳐 뿌리로 경사진 흙의 유실을 붙잡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나무들이 미리 알고 생존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쳐 토양의 유실을 막아내기 위해 연리근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땅 바깥세상에 드러난 연리근의 괴이한 모습은 하나의 걸작품이고 인연은 고래힘줄 같다. 두 그루의 느티나무 뿌리가 어두운 땅속에서 어느 순간 운명처럼 서로를 만났다. 그 만남은 서로의 숨결을 느끼고 마침내 두 뿌리는 하나가 되었다. 마치 세월이 조각한 거대한 조형물 같다. 검고 굵은 뿌리줄기는 마치 오래 잠든 용의 등처럼 굽이치고, 비바람이 깎아낸 굴곡마다 시간의 손길이 새겨져 있다. 거친 살결 위로는 이끼가 푸른 숨을 내쉬고, 틈새마다 어린잎이 고개를 들어 줄기 인양 새 생명의 문장을 써 내려간다. 두 나무의 뿌리는 흙 속에서 이미 오래전 서로의 숨을 섞었을 것이다. 가뭄에도, 장마에도, 그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 물줄기를 나누어 마셨고 폭풍의 밤엔 서로의 몸을 버팀목 삼았다. 이제 그들의 뿌리는 누가 먼저였는지 가릴 수 없는 하나의 심장, 한 몸의 맥박이 되어 땅 위로 드러나 있다. 마주 선 두 나무가 하나의 뿌리로 이어진 모습은 연인보다 더 깊은 결속이다. 형제보다 더 질긴 인연을 보여준다. 연리근이라 불리는 이 결속은 힘겨운 세월을 살아내는 나무들의 동맹이자 연대다. 폭풍이 몰아쳐도, 가뭄이 길어져도, 서로의 뿌리에 의지하며 버텨낸 증표이다. 숨은 인연으로 땅 위에서 보이지 않아도, 땅속에서 맺어진 끊을 수 없는 연결로 외부의 시련을 무릅쓰고 이어지는 영원한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양분의 나눔과 상생으로 뿌리를 통해 서로를 살리는 관계를 부부, 형제, 우정에 비유할 수 있겠다. 그 안에는 다투지 않고,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한 몸이 되기를 택한 지혜가 깃들어 있다. 사람의 인연도 이와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억지로 끊으려 하지 않고, 서로의 결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우리 인간 사회에 본보기가 아닐까. 한 뿌리의 민족이 좌우 이념으로 갈라져 두 나라의 정부를 세우고 서로를 적대시 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계절마다 연리근 느티나무의 모습은 변주를 거듭한다. 봄이면 연둣빛 새순이 뿌리 틈새에서도 솟아나 오래된 나무의 숨결에 젊음을 더한다. 여름이면 푸른 이끼가 뿌리를 감싸고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에는 황금빛 잎이 쌓여 마치 뿌리가 금빛 옷을 입은 듯하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 사이로 흰 눈이 내려와 뿌리 위를 덮으며 오랜 결속을 포근히 감싸준다. 연리근 나무를 보면서 누군가는 형제를, 누군가는 친구를, 누군가는 연인을, 또 누군가는 오래 함께 살아온 가족을 떠올릴 것이다. 바람은 가지를 흔들지만, 그 뿌리의 결속은 흔들리지 않는다. 두 나무는 지금도 묵묵히 서서 “서로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함께 늙고 함께 사는 일이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리근에 얽힌 전설 연리지와 유사하지만, 땅속에서 맺어진 인연이라는 점에서 더 은밀하고 깊은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연인의 환생 설화: 신분 차이로 결혼하지 못한 남녀가 죽어 각기 다른 나무로 환생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뿌리가 땅속에서 만나 하나가 된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이 세상에서는 맺어지지 못했지만, 사후 땅속에서라도 평생 함께하는 부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부부 장수 설화: 부부가 오랜 세월 한집에 살며 해로하다 죽은 뒤 무덤가에 심은 두 그루 나무가 뿌리로 이어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집안의 화목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조로 여겼다. ▲마을 수호목 설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연리근으로 이어져 마을의 복을 지키고 재난을 막는다고 믿었다. 매년 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 행해졌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27

풍부한 장학금·맞춤형 취업 지도로 ‘학생이 행복한 대학’ 선도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가 2026학년도 수시모집을 시작하면서 학생 맞춤형 장학제도와 혁신적인 교육 환경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학생이 행복한 대학,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학’이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원과 교육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1인당 평균 398만원 장학금 지급 경찰·공직 등 맞춤형 진로 상담 52억 투입 기숙사·강의실 보수 경주시와 신산업 전문인력 양성 □ 학생 맞춤형 지원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학생 1인당 평균 398만 원에 달하는 장학금이 지급되며, 200여 종의 장학제도를 통해 매년 총 264억 원이 지원된다. 특히 수시 최초합격자에게는 100만 원, 충원 1차 합격자에게는 50만 원의 장학금이 주어지고, 고교 추천 인재 장학을 통해 100만 원이 지원되어 학생들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다.   또한,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진로·취업 상담을 제공하며, 경찰·공직·공기업 진출을 위한 공공 인재양성반을 운영해 실질적인 취업 역량 강화를 돕는다. 통학버스와 KTX·SRT 경주역 셔틀버스 운행으로 학생들의 생활 편의도 배려하고 있다.   □ 쾌적한 캠퍼스 환경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학습과 생활환경 개선에도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52억 원을 투입해 기숙사와 강의실, 실습실 등 교육 공간을 전면 리모델링했다. 또한 휴게 쉼터 정비와 도서관 내 카페 및 갤러리를 조성해 학생들이 더욱 쾌적한 캠퍼스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기부를 통해 조성된 상징 조형물과 도서관 미디어월은 대학 구성원의 자긍심을 높이고 활기찬 캠퍼스 문화를 이끌고 있다.   □ 지역 혁신 생태계 선도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경북도 RISE 사업의 거점 대학으로서 지역 인재 양성과 산업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K-U시티 SMR 인력 양성’, ‘K-LEARNing 대학 평생직업 교육 체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 경주시와 함께 ‘경주형 K-IDEA Valley’ 프로젝트를 통해 신산업 전환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제조업 성장 지원은 물론, 평생학습 플랫폼 구축과 지역 네트워크 강화로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 종합 메디컬 캠퍼스로서의 위상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의대·한의대·간호대를 두루 갖춘 경북 유일의 종합 메디컬 캠퍼스로서 의료 인재 양성의 산실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에서 지역인재 전형을 76명으로 늘리고, 경북 지역 학생 32명을 새롭게 선발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지역 의료 인력 부족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동시에, 대학의 건학이념을 구현하는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 경쟁력으로 증명된 등록률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의 경쟁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 내 1816명 중 1815명이 등록해 99.9%라는 압도적인 등록률을 기록했다. 이는 대학의 교육 역량과 신뢰도를 방증하는 수치로,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받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했다.   □ 2026학년도 수시모집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는 2026학년도 수시모집을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고 있다. 학생 중심의 모듈형 교육과정, 지역과의 상생 협력 모델, 미래형 시그니처 모듈 등 차별화된 교육시스템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관계자는 “우리 대학은 학생이 행복한 환경을 바탕으로,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세계로 뻗어가는 글로컬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며 “2026학년도 수시모집은 학생들이 꿈을 현실로 만드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6학년도 수시모집 94% 선발… 전형 방법도 단순화 우리 대학 이렇게 뽑는다 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가 2026학년도 수시모집에서 전체 모집정원의 94.3%인 1747명을 선발한다. 원서 접수는 오는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된다.   올해 수시모집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이뤄져 수험생들의 부담을 크게 줄였다. 먼저, 학생부 교과 성적 산출에서 3학년 2학기 성적은 제외됐고, 한의예과와 의예과에서 과학Ⅱ 과목 가산점이 축소됐다. 또한, 한의예과와 간호학과 일부 전형의 수능최저학력기준은 기존보다 1등급 완화됐고, 불교추천 인재 전형에서는 교리문답이 절대평가(P/F)로 변경돼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전형 방법도 단순화됐다. 교과 전형은 대부분 교과 성적 100%로 선발하며, 면접전형은 교과 70%와 면접 30%를 반영한다. 면접 문항은 사전에 공개돼 수험생들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 종합전형은 의·한의예과와 간호학과만 단계별 전형을 적용하고, 나머지 학과는 서류 100%로 평가한다. 수능최저학력기준은 의·한의예과와 간호학과에만 적용된다.   또한, 학과 개편도 이루어졌다. 조경·정원 디자인학부는 ‘조경·정원 디자인학과’, 뷰티메디컬학과는 ‘뷰티아트산업학과’, 바이오제약공학과는 ‘바이오·화학융합학부’, 에너지·전기공학과는 ‘원자력·에너지·전기공학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새로운 ‘엘리트스포츠 전공’도 신설됐다.   장학 혜택도 주어진다. 정원 내 최초합격자는 100만 원, 충원 1차 합격자는 50만 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으며, 경주·포항·울산 지역 고교 졸업자에게는 추가로 100만 원을 지급한다. 학생 1인당 평균 장학금은 398만 원으로 전국 대학 상위권 수준이다.   강종임 입학처장은 “학생 친화적인 전형 변화와 풍부한 장학 혜택으로 수험생의 부담을 줄였으며, 많은 학생이 WISE 캠퍼스에서 꿈을 실현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자세한 내용은 입학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성호 기자 hsh@kbmaeil.com

2025-08-27

‘냉면과 밀면의 전쟁’…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는가?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편집자 주 2000년대 초반 이야기다. 지금은 한국작가회의로 이름을 바꾼 문인단체가 ‘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로 불리던 시절. 작가회의 사무실은 서울 지하철 5호선 공덕역 지척에 있었고, 기자 초년병이던 나는 그 사무실을 아버지 집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다. 당시 작가회의 이사장은 소설가 이문구(2003년 타계). 시인 김정환이 상임이사였다. 그날도 요즘처럼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문구 이사장과 김정환 상임이사, 시인 이시영, 지금은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있는 소설가 전성태 등이 사무실에 모였는데 누군가 “오늘 점심은 시원하게 냉면 어때?”라고 제의했다. 당시 서른한 살 젊었던 기자가 평양냉면을 처음 맛본 날이다. 업력이 수십 년에 이르는 유명짜한 평양냉면집 을밀대가 마포구 염리동에 있었고, 작가회의에서 도보로 10여 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초면으로 인사 나눈 평양냉면은 어땠냐고? “감동스러운 맛 아니었냐” 지레 짐작해 묻는 이들이 적지 않겠지만, 천만에.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송아지 목욕시킨 물에 거칠게 툭툭 끊어지는 거무튀튀한 면을 담아낸 맛대가리 없는 국수라고 느꼈으니. 평양냉면과의 첫 만남은 별반 유쾌하지 못한 기억으로 남았다. 근데 왜였을까? 아주 가끔씩 그 밍밍한 국물과 거친 면발이 떠올랐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들이 떠오르는 순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듬해엔 10번쯤 그 냉면집을 갔고, 그 다음해엔 20번쯤 갔으며, 경상북도 포항으로 주거를 옮긴 후 볼일 보러 서울에 갈 때면 가장 먼저 서울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마포역 뒤편 염리동으로 갑시다”란 말을 반복했다. 국회의원이며 전 통일부장관인 이인영(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곳도 그 냉면집이다. 수행원 없이 혼자 냉면을 먹으러 온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줄을 서서 입장해 묵묵히 냉면 그릇을 비웠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후 이인영은 세상 어떤 정치인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기자가 거의 유일하게 ‘싫어하지 않는 정치인’이 됐다. 국회의원 정도 되면 특권의식을 버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어쨌건. 잡설이 길면 추하다. 냉면 이야기로 돌아가자. 냉면의 역사는 유구하다. 800년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도 치적(治績)을 칭송받는 동시에 수많은 아들·딸과 손자·손녀를 둔 행복했던 조선의 왕 세종은 고기와 더불어 냉면을 즐겼다고 한다. 조선이 기울어가던 무렵. 당시 실권세력인 신안동 김씨 일족에 의해 왕으로 ‘픽업된’ 나무꾼 출신의 철종은 보위(寶位)에 오른 후 자신을 호위하는 무인들에게 “더운 여름에 수고들이 많다”며 냉면 한 그릇씩을 하사했다고.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기록이다. 내친김에 또 다른 ‘차가운 국수’ 이야기 하나 더.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 ‘친구’를 만든 감독 곽경택이 개봉 직후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오래전 기사지만 이런 대목을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밀면과 돼지국밥을 먹어야, ‘아, 내가 부산에 왔구나’라는 게 몸으로 느껴집니다” 운운. 이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공감했기에 그랬다. 밀면과 돼지국밥은 곽경택과 동일하게 부산에 태를 묻은 기자도 누구 못지않게 좋아하는 음식. 사실 평양냉면의 맛에 투항하기 전엔 ‘부산의 냉면’이란 별칭을 지닌 밀면을 매해 여름 10~20그릇씩 먹었다. 밀면은 평양냉면과 달리 면에 메밀을 섞지 않는다. 그래서 면발이 하얗다. ‘화이트 누들’이란 또 다른 별호(別號)가 생긴 이유다. 자, 곧 점심시간이니 정리하고 냉면 먹으러 가자. 밀면도 좋고. 평양냉면은 꾸밈과 자극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해 무미(無味)에 가까운 고급스러운 맛을 낸다. “에헴” 헛기침으로 폼을 잡는 봉건시대 지주와 닮았다. 그렇다면 밀면은? 시뻘건 양념장과 노오란 달걀지단으로 장식하고, 가능하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어야 제맛이다. 그러니, 차가운 국수 한 그릇조차 오뉴월 호사로 귀하게 여겼던 소작농과 닮지 않았나? 한국에선 여름마다 지주와 소작농의 다툼, 아니 ‘냉면과 밀면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려는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8-26

평양냉면과 밀면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 모두 감칠맛 가득한 시원한 여름 별미인 평양냉면과 밀면. 두 음식은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 먼저 평양냉면에 대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설명을 읽어보자.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차가운 국물에 말아먹는 음식이다. 양념을 적게 하여 짜지도 않고 맵지도 않은 담백미(淡白味)를 즐기는 게 평양 사람들. 이런 풍토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여기까지가 평양냉면의 탄생 배경이라면 아래 부연은 제조법에 관한 것이다. “예전엔 꿩을 삶은 국물을 이용하였으나 꿩을 구하기 힘들어진 지금은 쇠고기와 사골을 사용한다. 육수와 동치미 국물을 반반 정도로 섞어 소금·묽은장·식초로 간을 맞춘다. 사리는 메밀가루와 녹말을 섞어 익반죽한 후 틀에 넣고 눌러 국수를 뺀 다음 삶아서 만든다. 배와 얇게 자른 동치미무 등을 올려 먹는 게 보통이다.” 자, 이번엔 밀면에 관한 정보를 알아볼 차례. ‘밀면의 기원’에 관해서 3가지 가설이 있다. ‘위키백과’를 인용해 요약한다.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 때 피난민들이 배고픔을 달래려 만들어 먹었다는 게 첫 번째 가설이다. 북한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 모녀가 부산에 식당을 차리면서 생겨난 음식이라는 게 두 번째 가설. 마지막 하나는 진주 밀국수냉면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이다. 밀면이 냉면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은 메밀가루가 아닌 밀가루로 면을 만든다는 것. 영남 사람들이 선호하는 자극적인 맛을 내기 위해 각종 양념이 사용되기에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난다. 이것 역시 슴슴한 평양냉면과 다른 점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8-26

반복되는 지진·폭우·산불… 소중한 문화재 방재 ‘경고등’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2016년 경주·2017년 포항 강진 불국사·보경사 등 기와 떨어져 훼손땐 100% 원형 복원 불가능 장마에 부여 고분군 토사 유실 작년 국가유산 69곳 직접 피해 한국형 방재 시스템 구축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지진이 흔들어 놓은 문화유산의 현장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강진은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줬다.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당시 불국사 등 목조건축 문화재에서 지붕 기와가 탈락하는 등 비구조적 피해가 확인됐다. 이듬해 2017년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5.4) 때도 보경사와 내연산 사찰 등에서 기와 탈락과 구조 부재 손상 등이 이어졌다. 문화재 피해 건수는 31건에 달했다. 복원 과정에서의 취약성도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나라 국보·보물 문화재 10점 중 7점은 파손되더라도 복원에 반드시 필요한 정밀 실측조사 보고서가 없어 원형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실제로 국보 24호 경주 석굴암과 보물 1744호 불국사 대웅전은 지진이나 화재로 훼손될 경우 보고서 부재로 인해 100%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 문화재청 자료 결과, 목조건축 국보·보물 180점 가운데 9점은 ‘정밀실측조사보고서’가 없다. 여기에는 불국사 대웅전 외에도 대구 파계사 원통전, 제주 향교 대성전 등이 포함된다. 석조문화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총 571점 가운데 70% 이상이 자료조차 없다. 경주 석굴암을 비롯해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충주 고구려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2013년 문화재청 의뢰로 한국지진공학회가 실시한 지진재해 안전성 평가에서도 전국 석조문화재 152점 가운데 30점이 ‘경계’ 등급을 받아 내진 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호’는 23점, ‘보통’은 99점에 그쳤다. 이 평가는 지반 조건, 주변 환경, 구조 및 부재 구성, 보존 상태 등을 지표로 삼아 가중치를 적용해 산출한 결과다. 문화재청은 경주·포항 지진 이후 뒤늦게 ‘문화재 내진 보강 종합대책’을 마련해 정밀 안전진단과 보강 공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 산불, 불길 속에 사라져간 역사 지난 3월 경북과 강원, 경남을 휩쓴 대형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 보존사에서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불길은 의성 고운사와 안동, 청송, 영양, 정선, 울산, 하동까지 이어지며 보물 2건을 포함한 문화재 30건을 집어삼켰다. 국가지정문화재 11건, 시·도지정문화재 19건이 피해를 입었다. 의성 고운사의 연수전과 가운루(보물)는 불길에 휩싸여 흔적만 남았다. 수백 년간 불교문화를 품어온 전각 두 채는 이번 산불로 완전히 사라졌다. 관덕동 석조보살좌상, 만장사 석조여래좌상 등 불상 유물도 그을음 피해를 입었다. 안동에서는 천연기념물인 구리측백나무숲 0.1㏊가 불에 탔고 만휴정 원림, 백운정, 개호송 숲 등이 잇달아 훼손됐다. 청송 역시 피해가 컸다. 기곡재사, 병보재사 등 수많은 고택과 재사가 불길에 휩싸여 사라졌다. 영양의 천연기념물 답곡리 만지송은 가지 일부가 훼손됐으며 울산 울주군의 목도 상록수림은 0.1㏊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강원 정선의 명승 백운산 칠족령 일대는 0.5㏊가 소실돼 경관이 크게 손상됐다. 하동에서는 고려 장군 강민첨을 기리는 두방재의 부속 건물 두 채가 전소됐고 수령 900년을 자랑하던 두양리 은행나무도 일부가 불에 탔다. 사실 산불은 한국 문화유산의 오랜 적이다. 2005년 강원 양양 산불로 사적 제495호 낙산사가 전소됐고 2008년에는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이 방화로 무너져 내렸다. 2010년 부산 범어사에서는 보물 제1461호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거나 훼손됐다. 한 승려는 “건물은 다시 지을 수 있어도, 그 안에 깃든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폭우가 삼킨 성곽과 고분 지난해 장마철 쏟아진 기록적 폭우는 전국의 문화유산을 휩쓸며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산불이 화마라면, 홍수는 또 다른 파괴자였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장마철 국가 유산 피해·조치현황’ 자료에 따르면 폭우로 인해 69곳의 국가 유산이 직접 피해를 입었고 9곳의 주변 지가 파손돼 총 78곳에서 풍수해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도 속속 보고됐다. 전북 김제 금산사 미륵전(국보)에서는 막새기와 두 장이 떨어져 나갔고, 강원 철원 한계산성(사적)의 천제단 석축 일부가 무너졌다.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백제역사유적지구)은 만하루 누각이 침수되고 성벽 일부가 붕괴됐으며 부여 왕릉원 고분군(사적)에서는 봉분 사면이 일부 무너져 토사가 유실됐다. 또 전남 순천 낙안읍성에서는 담장이 무너지고 내아·동헌의 기와가 떨어졌으며 성벽과 기둥까지 손상된 것으로 확인됐다. ◇ 일본, 고베 대지진 계기 문화재 방재 체계 강화 1995년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에도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당시 대규모 피해를 계기로 정부는 지진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정비하고 건축물 내진 성능 강화를 위한 제도적 보완에 나섰다. 내진 보강 사업은 문화재를 포함한 주요 건축물까지 확대됐다. 특히 일본은 매년 1월 26일을 ‘문화재 방화의 날’로 지정해 왔다. 이는 1949년 화재로 소실된 호류지 금당(사찰의 중심 전각)을 교훈 삼아 1955년부터 시작된 제도로 문화청 주관 아래 지방자치단체·소방·주민이 함께하는 합동 훈련과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화재를 비롯한 재난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예방 중심의 체계가 자리 잡은 것이다. ◇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의 과제 한국 역시 더 이상 복구 중심의 대응에 머물 수 없다. 앞으로는 △문화재별 위험도 평가와 맞춤형 관리계획 수립 △3D 스캔을 활용한 디지털 아카이빙 확대 △지진·산불·홍수에 대응하는 통합 매뉴얼 마련 △주민 참여형 방재단 운영과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진은 기와를 흔들었고, 산불은 사찰을 태웠으며, 폭우는 성곽과 고분을 무너뜨렸다. 자연재해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가차 없이 집어삼키고 있다. 복구만으로는 부족하다. 예방과 대응, 기록과 교육을 결합한 한국형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건축물을 보존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 그리고 미래 세대와 이어지는 다리를 지켜내는 일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26

천혜 자연·특산 음식에 멋진 라운딩까지··· 파크골프의 성지로

중장년층 여가 활동의 대세로 자리 잡은 파크골프가 이제는 문경을 대표하는 도시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 시기 해외여행의 길이 막히면서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일반 골프는 MZ세대의 발길이 줄며 다소 주춤해졌다. 그러나 저렴한 이용료와 부담 없는 접근성을 갖춘 파크골프는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새로운 여가 문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문경은 전국 동호인들의 발길을 모으는 ‘파크골프의 성지’로 부각되고 있다. 8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문경의 파크골프장은 연일 북적이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동호인들이 흥덕동 영강변 코스를 가득 메우며 ‘문경 파크골프 열풍’을 실감케 한다. 2023년 대회때 동호인 이목 집중 17개 시도 2500명 참여 ‘대성황’ 명품 코스 소문 ‘꿈의 구장’ 데뷔 영강변 45홀 경기장 공식 인증 숙박·식당 매출↑지역 경제 효자 ◇전국 최고 대회, 문경이 만들다 문경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23년 열린 제2회 문경새재배 전국 파크골프대회였다. 이 대회는 총상금 규모가 크고, 무엇보다 우승자에게 1천만 원의 상금이 주어지면서 전국 동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나치게 큰 상금이라는 일부 비판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2500여 명이 몰려드는 성과로 이어졌다. 대회를 앞두고 관내 숙박시설 예약이 꽉 차고, 시내 식당가가 활기를 띠는 등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 영강을 끼고 자리 잡은 문경파크골프장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문경 동호인들이 직접 관리해온 코스 품질이 호평을 받았다. 잔디 관리와 코스 정비에 쏟은 정성이 외지 동호인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한 번쯤 문경에서 라운딩을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국에 수많은 파크골프장이 생겼지만, 문경새재배 대회는 여전히 ‘꿈의 무대’로 불리고 있다. 대회 시기 문경찻사발축제와 문경새재 탐방 등 관광자원과 결합된 효과도 크다. ◇잘 갖춰진 인프라, 경쟁력의 원천 문경시 흥덕동 영강변에 자리한 문경파크골프장은 45홀 규모의 정규 경기장이다. 2023년 대한파크골프협회의 공인 인증을 받았으며,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시설을 갖췄다. 지난해에는 27홀 구간에 7억 원을 들여 야간 조명 시설을 설치, 여름철에도 시원한 밤 라운딩이 가능해졌다. LED 투광등 67개와 조명타워 12개가 설치되어 동호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경시는 읍·면 단위까지 파크골프장을 확대하고 있다. 농암면 대정숲(9홀), 동로면 황장산(9홀), 가은읍 청솔공원(9홀), 흥덕동 영강체육공원 내 온누리 파크골프장(9홀) 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특히 대정숲과 청솔공원은 소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어 솔향 그윽한 그늘에서 운동을 즐길 수 있다. 현재 산양 금천, 당포1리, 반곡, 영순 등에도 새 파크골프장이 조성 중이다. 한 주민은 “예전에는 파크골프를 즐기려면 멀리 나가야 했지만, 이제 집 근처에서 손쉽게 운동할 수 있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이웃들과의 소통도 많아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시민 열정과 친절, 인기의 비결 문경시민들의 파크골프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현재 문경 지역 동호인만 1500명을 넘어섰으며, 읍·면마다 동호회가 만들어지거나 신규 회원 모집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대정숲, 청솔 파크골프장 개장 시 각각 100명 넘는 회원들이 가입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인구가 적은 동로면에서도 동호인 증가로 골프장 증설이 추진되고 있다. 문경은 문경새재와 백두대간을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약돌돼지·약돌한우·오미자 같은 특산물까지 더해져, 파크골프 대회와 관광을 동시에 즐기기에 최적의 도시로 꼽힌다. 대회 참가자들은 경기를 마친 뒤 관광과 먹거리를 함께 즐기며 큰 만족감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문경시민들의 친절이 도시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한 인상이 오히려 관광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문경시는 몇 년 전부터 ‘친절 운동’을 펼쳐왔다. 식당, 교통, 서비스업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동참해 방문객들에게 따뜻한 환대를 보여주고 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문경의 가장 큰 자산은 친절”이라며 “관광객과 파크골프 동호인들이 경기의 즐거움뿐 아니라 문경시민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 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문경을 찾은 전국 동호인들은 “문경은 코스도 좋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친절이 최고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 지역경제·도시 브랜드 상승효과 문경 파크골프장은 단순한 운동 공간을 넘어 지역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대회나 단체 방문이 이어지면 숙박업소, 식당, 상가의 매출이 함께 늘어난다. 이와 동시에 도시 이미지도 달라진다. ‘문경은 관광 도시’라는 인식에서 ‘문경은 스포츠와 여가의 도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문경은 파크골프라는 생활 스포츠를 매개로 도시의 미래 전략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장년층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경제까지 활성화시키는 ‘세 마리 토끼 전략’이다. 무더위 속에서도 파크골프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경은 단순한 경기장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 스포츠와 관광이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주민은 “운동을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대회가 열리면 외지인들과 교류할 수 있어 활력이 생긴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문경시 관계자도 “파크골프가 이제는 지역 대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도 읍·면 단위까지 고르게 시설을 확충해 시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 파크골프 파크골프는 1983년 일본 홋카이도 마쿠베쓰정에서 고령자도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고안됐다. 1984년에는 일본파크골프협회가 설립되고, 경기 규칙과 장비 기준을 세워 일본 전역으로 빠르게 퍼지며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1999년 대한파크골프협회가 창립됐고, 2000년대 전국 지자체가 잇따라 파크골프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현재 전국 1천여 개 코스, 동호인 50만 명 이상으로 시니어 대표 생활체육으로 성장했으며, 중국·대만·미국·유럽 등으로 확산, 국제대회와 세계연맹 출범 논의가 활발하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8-26

“포스코의 체계적 지원을 바탕… 환경 전문가로 성장할 것”

143개소 굴뚝원격감시체계(TMS) 운영 오염물질 배출 농도·배출량 실시간 관리 인근 지역민 영향 등 주의 깊게 모니터링 ‘러닝플랫폼’으로 제철소 전체 공정 학습 환경 리스크 선제적 파악 위해 역량 강화 폐기물 등 다양한 환경분야 자격증 도전 적재적소 인재 배치 이후 교육 병행 지원 가족친화적 복지 제도로 일과 가정 균형 저탄소 프로세스 전환 성공적 추진 확신 △ 자기소개를 해달라. 포스코 환경자원그룹 환경관리섹션에서 근무 중인 최광식 사원이다. 2020년 6월에 포스코에 입사 한 현재 5년차 사원으로 제철소 환경 관리 중 대기 분야 업무를 맡고 있다. 우리 그룹은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영향 문제를 최소화하고, 관련 환경법 규제에 대해 조업부서와 관청, 지역민들과 소통 및 대응하며, 환경을 생각하는 제철소 구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는 부서이다. 그중 나는 대기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데, 우리 제철소에서는 관련 법에 따라 굴뚝에 측정기기를 설치하여 오염물질 배출 농도, 배출량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되어 있다. 이를 TMS(Tele-Monitoring System : 굴뚝원격감시체계)라 부르고, 포항제철소는 현재 143개소의 TMS 측정기기를 운영 중이며, 환경법으로 정한 기준 농도 이내로 배출되는지가 확인된다. 이때 나는 이 TMS가 신뢰할 수 있는 측정값인지 분석하고, 현장 및 환경청과 소통하여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도록 운영·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포항제철소는 주거지와 인접해 있기에 환경 관련 민원이 접수되면 이에 대응하고, 사내에 설치된 미세먼지, 악취, 소음 측정기기의 데이터 확인을 통해 인근 지역민들에게 영향은 없는지 등을 늘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는 지금까지 대규모 환경투자를 진행하는 등 오염물질 배출 저감을 위해 노력 중인 만큼, 환경 관련 부서에 있는 나도 관리에 적극 힘을 쓰고 있다. △ 현재 소속된 팀을 소개해달라. 환경관리섹션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배려하는 마음을 나누며 함께 일하고 있다. 입사 전에는 제철소의 크고 위험한 설비들로 인해 근무 분위기가 다소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팀 분위기를 직접 경험하며 놀라움을 느꼈다. 또 얼마 전 3분기 팀파워 활동으로 테마파크에 가서 다 함께 놀이기구를 타고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자고 의견을 나눴었다. 평소에는 늘 따뜻하고 재밌는 우리 팀원들이지만, 업무를 할 때는 냉철한 시각으로 서로의 일을 내 일처럼 고민해주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라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 △ 포스코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았다. 집 근처 공원과 하천에서 시간을 보내며 환경의 소중함을 느꼈고, 이러한 경험이 환경공학과 진학으로 이어졌다. 학부 때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기업들이 환경을 고려하는 과정과, 환경 문제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그중 포스코가 대기오염 저감 설비, 수질 개선, 부산물 자원화 등 다양한 환경 분야에 투자하는 사례를 접하며, 환경 보호를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실천한다고 느꼈다. 이를 통해 포스코에서의 환경 분야 실무 경험을 쌓아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사회적 책임 실현에 함께 기여하고 싶다고 생각해 입사하였다. △ 입사 이후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내가 입사하기 2개월 전인 2020년 4월 3일부터 ‘대기관리권역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대기오염원을 체계적이고 광역적으로 관리해 지역주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쾌적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오염물질 농도만 규제했지만, 대기관리권역법 시행 이후에는 농도뿐만 아니라 사업장의 배출량까지 함께 규제하게 되었다. 해당 법에 따라 나의 업무에도 변화가 생겼다. 입사 당시 포항제철소는 기존 32개소 외에 2배가 넘는 78개소 굴뚝에 굴뚝자동측정기기를 새로 설치 신고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신규 투자 시설의 위치와 공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경청에 신규 측정기 설치 신고를 진행하기 위해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현장을 직접 뛰어다녔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특히 2020년 이후부터 측정기기 설치 의무로 인해 배출량이 실시간으로 산정되고 있는데, 할당량 준수를 위해 회사 사람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어 함께 뿌듯해지곤 한다. 당시에는 신고 시 필요한 방대한 양의 서류와 측정기기 정합성 검증 작업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장 담당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시공사, 환경공단 및 경험 많은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 기한 내에 업무를 완료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이 협업 능력을 기르고 환경 업무를 진행하는 데 큰 초석이 되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큰 프로젝트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평소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 업무 경험이 쌓일수록 환경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제철소의 전체 공정을 잘 알아야만 환경 리스크를 발생 전에 찾아낼 수 있다고 느꼈다. 포스코에는 담당 직무 외에도 어학, 제철소 상세 공정 등 다양한 분야를 온라인으로 학습할 수 있는 ‘러닝플랫폼’이라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이를 통해 직무 역량을 키우고자 제철 공정에 대한 온라인 교육을 수강하며, 해당 공정이 환경 업무에 어떻게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강한 강의를 바탕으로, 관할 환경청이나 관계 기관에서 공정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 환경과 접목하여 답변할 수 있었다. 현재는 환경과 관련된 자격증으로 대기, 수질, 위험물을 취득한 상황인데, 앞으로는 통합적인 환경관리 업무를 위해 폐기물 처리, 소음·진동, 온실가스 등 다양한 환경 분야의 자격증에도 도전해보고자 한다. △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은? 우리 회사에서 환경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큰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우리 회사는 안전·환경·보건 부서에 각각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고, 배치 이후에도 현장 경험과 다양한 교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실제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점이 매우 만족스럽다. 흔히 대기업 내 환경 담당자는 안전이나 보건 등 여러 업무를 동시에 맡아야 해 환경 분야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포스코에서는 환경을 중심으로 대기, 수질, 자원재활용 등 세부 분야로 전문성을 확장할 수 있어 매우 좋다.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 선후배님들 덕분에, 업무 중 궁금하거나 어려운 점이 생기면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이처럼 체계적인 지원과 풍부한 학습 환경 속에서, 환경 전문가로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고, 포항제철소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더욱 큰 자부심을 느낀다. △ 회사의 자랑거리가 있다면? 평소에는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해서, 아내와 함께 스틸야드에서 열리는 홈 경기를 무료로 관람하며 소중한 추억을 쌓고 있다. 축구 직관을 해야 응원할 맛이 나는데, 항상 열띤 경기장 분위기를 즐기며 경기를 구경할 수 있어 행복하다. 최근에는 결혼을 하면서 회사에서 결혼축하금과 신혼여행 지원금을 받아 더욱 뜻깊고 행복한 신혼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앞으로 출산 장려금이나 육아기 단축근무 등 가족친화제도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과 가정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싶다. 이처럼 회사의 다양한 복지제도 덕분에 일과 가정 모두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회사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도 더욱 깊어지고 있다. △ 국내 철강업계의 미래를 책임질 세대로서, 앞으로 어떤 변화나 발전을 기대하고 있는지? 최근 글로벌 수요 둔화, 중국산 저가 공세, 탄소중립, 관세 이슈 등으로 철강업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환경 업무를 하면서 만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포스코의 시황에 대한 우려 섞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극복할 것이라 믿고 있다. 국가기간산업으로 성장해 온 포스코가 정부, 지역사회, 철강업계와 협력해 저탄소 프로세스 전환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것이라 확신한다. 나 또한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패러다임에 맞춰 성장하고 싶다. 포항제철소가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철소로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변화하는 새로운 공정과 발생할 수 있는 환경 이슈를 사전에 파악하며, 현장, 지자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해 가교 역할을 원활하게 수행하는 인재가 되고 싶다. 그리고 선후배님들과 협력해 이 전문성을 현장의 환경 진단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환경 전문가로 성장할 것이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24

“분청사기는 내 운명⋯ 내가 빚은 건 그릇이 아닌 자유·자연”

“한국의 전통 문화 예술과 현대의 작품이 공존하는 한국실에서 한국 문화의 자존심을 느낀다.” 202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한국실을 특사 방문한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윤광조 작품 ‘혼돈’ 앞에서 남긴 감상평이다. 동행한 BTS멤버 RM은 “멋지죠? 좋아하는 게 닮은 거 같아요,”라고 하는 영상이 국내외에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분청사기(粉靑沙器)의 대가’ ‘세계 도예의 거장’ 윤광조. 그는 자유분방한 감성을 표현한 조선의 분청사기를 오늘날 K-문화, 한국예술의 글로벌리즘으로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다. 9월 3일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 국내 정상의 화랑 가나아트 초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출품작을 포장하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최순우·장욱진 화백 지도로 ‘분청’ 입문 觀·律·心經 등 주제 10년마다 연작 시리즈 참선 후에 물레 버리고 圓→角·面 변용 불심·자연·우주 관통하는 예술 세계 전념 美 필라델피아·시애틀·버밍햄갤러리 등 세계 최고 갤러리·유명공간에 작품 전시 9월 국내 정상 화랑 가나아트서 초대전 □국제무대서 더 잘 알려진 도예가 윤광조 회갈색 태토(胎土) 위에 백토로 표면을 마무리하는 분청사기는 청자에서 백자로 넘어가는 우리나라 고유의 도자 양식이다. 15세기 도자기를 대표하는 분청사기는 상감, 인화, 박지(양각), 조화(음각), 덤벙, 귀얄문양 등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일반 서민들은 물론 왕실에서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그 영광은 뒤이어 등장한 백자에 밀려 한낱 사금파리로 지층 속에 묻히고 말았다. 500년 세월이 흐르도록 박물관 수장고 한쪽 구석에서 잠자던 분청사기를 뉴욕 한복판에 내놓아 오늘날 한국 도자사를 새로 쓰게 한 아티스트 윤광조. 그가 1994년부터 둥지를 틀고 있는 경주 안강 ‘바람골’은 전세계 도예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광조의 성취는 세계 유수 갤러리의 초대전과 국내외 유명 공간에 포진해 있는 작품들이 증명해준다. 그는 1982, 83년 한미, 한불·한독 수교 100주년 기념 ‘한국현대도예전’에 참가 하면서 세계적인 화랑들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2002년 프랑스 가나-보부르화랑으로부터 첫 초대를 받는다. 이듬해에는 동양 예술가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상급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기획전을 갖는 한편, 독보적인 도예 전문 화랑인 영국 베쏭갤러리, 미국의 각 대학 갤러리 등에서 잇따라 기획전을 열어 세계 유명 예술가 반열에 이름을 올린다. 해외 초대전에서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그의 ‘심경’(心經)을 8만9500달러(한화 약 1억5백만 원)에 소장한 데 이어, 빌 게이츠 어머니가 운영하는 시애틀미술관도 구입에 나서 윤광조는 ‘흙을 보석으로 빚는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한다. 이를 시작으로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아트, 브리티시 뮤지엄, 로열 뮤지엄, 매리어몬트, 스미소니언 내셔널 뮤지엄 등 정상급 갤러리들이 그의 작품을 앞다투어 전시하게 된다. □“도자기는 꼭 둥글어야 하나” 물레 탈피 윤광조에게 분청사기는 운명이었다. 작품에서 보이는 큰 두 흐름, ‘자유’와 ‘자연’이 그의 이력과 겹치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46년 함북 함흥에서 완고한 집안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속박’에 못 견뎌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출했다. 자유를 찾아 방황하다가 미국으로 이민 간 형의 권유로 홍익대학교 공예과에 입학해서 도자기를 전공하게 된다. 윤광조는 대학 2학년 때 분청사기 도록을 보고 첫눈에 반한 후, 대학 4학년 때 동아공예대전(동아일보사 주관)에 ‘분청 문방구 세트’를 출품하여 대상을 거머쥔다. 수상을 계기로 ‘전통의 현대화’에 고심한 결과, 이미 2002년 호암갤러리(서울) ‘분청사기 명품전Ⅱ:한국미의 원형을 찾아서’ 기획전에서, 현대 분청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목받는다. 당시 호암갤러리는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공식적으로 ‘대가’라는 호칭을 붙여주면서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 도자 아티스트임을 알린다. 2004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고, 2008년에는 경암학술상 예술부문에서 수상하기에 이른다. 명성에 걸맞게 과천 현대미술관과 서울공예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한편, 리움미술관(구 호암미술관)도 작품을 다수 소장하여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윤광조의 작품은 불교 색채가 강하다. ‘반야심경’(般若心經) ‘무심’(無心)은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테마다. 그에게 불교는 단순히 작품에 새기는 행위를 넘어 예술의 화두다. “1985년 작업이 꽉 막혀버리더라고요. 방황하다가 지리산 정각사에서 15일 간 4만 배 절을 하고 나니까 손에 꽉 잡히는 게 있어요. ‘물레를 안 돌리면 어떤가, 꼭 도자기는 둥글어야 하나?’ 화가들이 구상, 추상을 넘나들듯 4만 배 끝에 물레를 버렸어요. 태토를 쌓아 올려서 각(角)을 세우고, 두드려 붙여 면(面)을 만들면서 과감하게 원(圓)의 굴레에서 벗어난 거죠.” □전통-자연 현대-자유 세계적 보편성 획득 그의 작품이 세계성을 획득하기까지는 불심(佛心)에 더해 또 하나 비결이 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보면 도공들이 표면을 장식하고자 밑그림을 그린 흔적은 없다. 옛 도공과 달리, 윤광조는 내적 심상(心象)을 밖으로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스케치한다. 윤광조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전통은 눈에 보이는 어떤 양식을 말하기보다, 오랜 세월 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양상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신적 공감대”라고. 그런 만큼 그의 예술표현은 ‘공감대’의 찰나를 포착하여 형상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처럼 확고한 예술철학이 저류(底流)로 흐르기 때문에 그의 분청사기가 세계인의 심성에 자연스레 스밀 수 있었던 것이다. 윤광조가 나름 예술적 토대를 세우기까지는 큰 두 스승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그를 이끈 두 스승은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과 장욱진 화백. 윤광조는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사병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최순우 관장의 제자를 자청하여 가르침을 받았다. 최순우 전 관장은 윤광조가 30대에 신세계미술관 초대전을 열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는가 하면, 첫 공방을 지었을 때 ‘급월당’(汲月堂)이란 호를 내려주기도 한다. 장욱진 화백은 직접 윤광조의 전시장을 찾아 연적 등 문방구를 구입하면서 인연을 맺는다.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현대화랑에서 ‘장욱진-윤광조 도화합작전’을 열어 30분 만에 매진되는 기염을 토한다. 이후 한평생 예술의 길을 이끌어주는 버팀목이 되었다. 두 스승에게서 전통과 우리 것, 그리고 예술적 감성을 내림 받은 윤광조의 조형 언어는 거의 10년마다 독특한 연작(連作)과 시리즈로 나타난다. 1970년대 입문기에는 ‘지월’(池月) ‘조화’ ‘산중생활’ 같은 자연 언어가 강조되고, 80년대 와서는 ‘관’(觀) ‘율’(律) ‘정’(定)처럼 관념, 추상에 몰입한다. 90년대 들어오면 기존의 관념 세계에 더해 ‘심경’(心經) ‘월인천’ 같은 경전 작품에도 몰두한다. □“하늘의 별에도 가닿을 듯한 기분” 극찬 조선 전기의 분청이 거칠지만 소박하고, 자유분방한 장식성을 특징으로 한다면, 윤광조는 이 기법을 단순 복원에 그치지 않고 현대인의 미감(美感)에 맞게 변형 발전시켰다. 경륜을 쌓아가면서, 그는 전통 도예의 정체성 위에, 세계 무대에도 경쟁력 있는 ‘글로벌 도자 언어’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삶에 대한 회의로 큰 홍역을 치렀던 2000년대 들어와 그는 ‘Chaos’(혼돈) ‘New’ ‘산중일기’ 시리즈, ‘산동’(山動) 같은 연작들을 쏟아내게 된다. 특히 ‘산동’ 시리즈의 경우, 어느 날 그가 작업실에 앉았는데, 산이 움직여 성큼 한발 앞으로 다가서는 것을 느꼈다. 그와 같은 살아있는 감각을 광폭의 스펙트럼으로 섬세하게 구현해 거장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윤광조 분청사기가 서양인들도 공감하는 ‘자유의 언어’와 ‘자연의 형태’를 획득하기까지는 브랑쿠시(Constantin Brancusi, 1876~1957),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에게서 힘입은 바 크다. 윤광조는 2003년 미국 시애틀 미술관 ‘마운틴 드림’ 초대전 때, 3개월간 매일 아침 브랑쿠시 전용관에 들러 30분 정도 명상하듯 작품 감상을 했다. 또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를 보고 눈물을 흘리자 미술관 경비원이 다가와 “I understend you(이해할 수 있어)”라면서 그의 어깨를 토닥거려준 감동은 잊지 못한다.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버트 워서맨(Burt Wasseman)은 “인간의 기질 안에는 하늘에 걸린 별에 가 닿고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윤광조의 예술은 하늘의 별에도 가닿을 수 있을 듯한 기분을 선사하는 것”이라고 극찬했다. 윤광조, 그는 오늘도 경주 바람골에서 짚 뭉치로 앞산을 그리고, 꼬챙이로 반야심경을 새긴다. 그러면서 평론가 필립 루이스(Philip Lewis)의 표현대로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세계를 향해 권한다. “분청 한잔 하시죠.”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08-21

석굴암, 제국의 착각을 딛고 뻗어가는 우리 문화유산

■ ‘신라로 돌아왔다’는 그들의 착각 일제는 유독 신라 문화유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석굴암, 불국사, 금관총 등은 집착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에게 신라의 유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복의 증거였고, 제국의 조선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과시할 수단이었다. 신라를 조선과 분리하여 특별한 문명으로 포장했다. 조선은 무능한 나라였고, 신라는 자신들의 옛 속국이라 믿으며 착각에 빠져 있었다. 신공황후의 삼한정벌 신화가 바로 그들이 내세운 허상의 출발이었다. ‘일본서기’와 ‘고사기’에는 신공황후가 신라를 정벌하고 고구려와 백제까지 복속시켰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일본 고대사 속 가장 중요한 정복 신화였다. 메이지 정부는 신공황후 삼한정벌설을 국가 역사로 편입했고, 교과서와 지폐, 그림과 엽서에 반복해 새겼다. 신공황후의 후예라 자부하던 일본은 조선을 ‘잃었던 고토(古土)’라 칭하며 환호했다. 그들의 신화는 허구였다. ‘삼국유사’에도 ‘삼국사기’에도 신공황후는 등장하지 않는다. 임나일본부설과 마찬가지로 날조된 정복담이었다. 그럼에도 일제는 이 신화를 철석같이 믿었다. 역사를 도구 삼아 침략을 합리화하며, 식민교육에 깊이 새겨 넣었다. 그들에게 경주는 허위의 신화를 구현할 무대였다. 대한제국 말, 통일신라의 왕경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초라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폐허를 보며 감격했다.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는 경주를 보고 외쳤다. “경주여, 경주여! 나는 우리 신라로 돌아왔다.” 그는 신라를 일본의 옛 땅으로 착각했고, 제국의 기원으로 떠받들었다. 신라는 그들에게 과거의 속국이었고, 조선 병합은 과거의 회복이라 믿었다. 환상은 그렇게 확신으로, 확신은 침략으로 이어졌다. 허구의 신화 믿고 역사 왜곡한 일제 신라를 식민 지배, 정당화 수단으로 불국사·석굴암 등 문화유산에 집착 1915년 전후 경주의 새 명소로 각광 일제가 덧씌운 콘크리트 제거 작업 전통 목조 전각 건립 등 석굴암 복원 ■석굴암, 경성으로 이송하라 석굴암은 숨겨진 것이 아니었다. 불국사 인근 사람들은 석굴암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석굴은 인근 사람들에게 이미 신앙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마치 자신들이 찾아낸 것처럼 ‘발견’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1907년 무렵, ‘토함산 동쪽 사면에 커다란 석불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우체부 김 씨가 우편을 배달하던 중 범곡 근처에서 무너진 천장을 목격하고 전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는 우체국장에게 석굴 안에 흙이 가득 차 있고, 돌부처들이 가득 묻혀 있다는 말을 전했다. 기무라 시즈오(木村靜雄), 모로가 히사오(諸鹿央雄) 등 일본인 관리와 사진사, 문화재 협잡꾼들이 뒤늦게 현장을 답사한 뒤 확산된 것뿐이었다.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존속하던 불전은, 그렇게 입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1909년, 조선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제2대 조선통감)가 경주를 방문했다. 그는 경주의 고적을 둘러본 뒤 석굴암으로 향했다. 당시 의병 활동으로 나라가 요동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경성 최고 권력이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다. 석굴암은 그들에게 그만큼 중요했다. 소네는 석굴암을 경성으로 옮기고자 했다. 경상도 관찰사에게 해체와 이송에 필요한 예산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석굴암은 그에게 탐욕의 대상이자 대단한 전리품이었다. 그는 땅속에 묻혀 있던 대리석 소탑을 가져갔다. 뒤이어 문화재 전문가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경주로 파견되었다. 그는 석굴암을 둘러보고 ‘동양에서 비교할 수 없는 걸작’이라 평했다. 그의 평가는 제국의 확신을 더했다. 기무라 시즈오는 석굴불을 경성으로 옮기라는 소네 통감의 명령을 받고 고민했다. 그는 이송비 계산서를 끝내 올리지 않았다. 경술국치가 다가오고 정세는 복잡했다. 경성 이송 계획은 결국 무산되었다. 현지 일본인 관리들의 소극적 태도도 작용했다. 조선을 병합한 후에는 서두를 이유가 사라졌다. 그리하여 석굴암은 토함산에 남게 되었다. 석굴암의 존재는 제국에도 알려졌다. 일제는 석굴암을 조선에서 발견한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여겼다. 수백 개의 석재를 조립해 만든 인공 석굴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는 중국과 인도의 불교 석굴과 구별되는 특징이었다. ■경주로 온 사람들 1912년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의 석굴암 방문 이후, 석굴은 더 이상 조용한 산속의 불전이 아니었다. 수리를 거친 뒤 점차 외지인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1차 수리 공사가 마무리된 1915년을 기점으로 경주는 새로운 여행지로 떠올랐다. 서울과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까지 온 뒤, 자동차로 갈아타고 경주로 향했다. 불국사까지는 차로 이동했지만, 석굴암은 여전히 토함산의 산길을 올라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불편함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1920년대 들어 수학여행단의 발길도 이어졌다. 울산의 불교소년단, 경주의 계남학교, 서울의 보성고보까지 다양한 곳에서 학생들이 경주를 찾았다. 이들은 하루 동안 불국사와 석굴암을 참관하고, 절에서 숙박하거나 고물진열관을 둘러보며 일정을 마쳤다. 석굴암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배움의 현장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일제의 관광정책과 무관하지 않았다. 제국은 석굴암을 조선 병합의 상징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석굴은 사진엽서에 담아 문화정책의 선전물로 기능했다. 그러나 경주로 온 조선인의 걸음에는 조용한 저항이 담겨 있었다. 조선 선각자들은 그 흐름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조선의 정신을 전하고자 했다. 석굴암은 우리 조상이 남긴 위대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나라를 잃은 시대에도 조국의 자취가 뚜렷한 곳에 학생들을 데려가 깨우치려는 마음이 있었다. 선조의 숨결을 직접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언의 교육이었고, 말 없는 위로였다. 비록 외세의 감시 아래 이루어진 여정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깊고 분명했다. 경주는 우리에게는 민족의 뿌리가 살아 있는 성지였다.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의 정신과 예술을 새기려는 선각자들의 마음이 석굴암을 지켜냈다. ■우리 손으로 되살려낸 문화유산 1960년대, 석굴암 복원은 우리 손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일제가 훼손한 것을 바로 세우기 위해 학자들과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백 년의 상처를 지우는 일은 고되고 지난했다. 일제가 덧씌운 콘크리트를 걷고, 내부의 숨결을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신중했다. 본존불 머리 위에 그들이 새겨 놓은 ‘일본(日本)’을 지웠다. 훼손이 심했던 만큼 복구는 더뎠다. 곰팡이와 석태는 본존불의 어깨를 타고 자랐고, 구조는 뒤섞인 채 회복이 어려웠다. 첫 번째 복원은 전실 공간에 전통 목조전각을 짓는 일이었다. 법당의 격이 다시 세워지고, 조각상들은 비와 눈, 바람으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 침묵 속의 불사는 그제야 제 자리를 찾았다. 두 번째는 콘크리트 돔 문제였다. 조각상과 얽힌 구조물은 쉽게 뜯을 수 없었다. 대신 그 위에 또 하나의 돔을 씌웠다. 시멘트 독성의 침투를 막기 위한,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선택이었다. 세 번째는 진입로 양쪽의 시멘트 옹벽 철거였다. 흉물 같은 콘크리트 제방이 사라지고, 석굴암은 비로소 법당의 모습을 되찾았다. 기이했던 전경은 사라지고, 신라의 숨결이 되살아났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팔부신중의 완성이다. 일제는 여섯 상만을 세웠고, 나머지 둘은 진입로 옹벽에 비틀려 놓았다. 아수라와 금시조는 오랜 세월 동떨어져 고립되어 있었다. 이 둘은 우리의 기술로 제자리를 되찾았다. 일렬로 늘어선 신중의 행렬에 합류했고, 전실 공간의 구성은 균형을 회복했다. 조화와 위엄,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야차 상도 마찬가지였다. 일제 공사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존재였다. 장마와 폭설, 폭염과 한파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상처 위에 복원의 손길이 닿았다. 신중상의 재배치와 전각의 건립은 단순한 보수가 아니었다. 문화유산을 바로 세우고 민족의 정신을 되찾는 일이었다. 우리는 침탈된 문화유산을 되살려, 박제된 전리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전으로 되돌렸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존엄과 자긍심의 선언이었다. 비가 그쳤다. 전각을 빠져나오니, 100년을 훌쩍 돌아 나온 듯 눈앞이 사뭇 낯설다. 어디를 떠돌다 온 것인가. 전각 위 빗방울에 씻긴 잔디가 한층 더 선명하게 빛난다. 둥근 형상은 마치 위대한 것을 꼭꼭 품고 있는 왕릉 같다. 음지를 덮은 이끼처럼 고요한 산기슭, 물기 어린 공기 속을 가만가만 걷는다. 우리 조상이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 그 안에 새겨진 사유가 불쑥 솟아 마음 한구석을 울린다. 오랜 굴곡과 상처를 딛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지켜낸 시간이 위대하게 다가온다. 함께 걷는 외국인 소녀가 조용히 돔을 올려다본다. 이국의 낯선 문화유산을 바라보며 눈빛 가득 경외가 스며 있는 듯하다. 한 인류의 유산을 마주한 이방인의 떨림과 놀라움은 어떤 것일까. 젖은 숲길에 접어들 무렵, 그녀의 감탄이 가만가만 미소로 번진다. “Oh my gosh. Korean cultural heritage, Seokguram, so magnificent and great!” (맙소사, 한국의 문화유산 석굴암, 정말 장엄하고 위대해!) 그녀의 눈빛 속에서, 나는 우리의 것을 다시 본다. 내가 가진 것이 곧 세상과 나눌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임을, 이국 소녀의 눈빛에서 비로소 실감한다.

2025-08-20

태평양을 하나로 잇는 보석 ‘왕피천’의 수호신들

경북 울진의 왕피천이 낙동정맥 동쪽 산마루를 타고 흘러내린 만 가지의 물줄기가 하나 되어 동해로 흘러간다. 그 굽이치는 푸르고 맑은 물길이 장장 62km이다. 동해를 거쳐 태평양을 하나로 잇는 생명의 하천이다. 이처럼 하천은 물질과 에너지를 전 세계로 이어지는 지구의 동맥이다. 한국의 마지막 청정 하천이라 불릴 만큼 원시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 수달, 열목어, 하늘다람쥐 등 희귀 생물이 서식하며, 각종 고산식물과 야생화가 계절마다 어우러진다. 천연기념물 제96호 지정 350살 굴참나무 오랜 시절 풍파로 상처투성이 된 몸통 동서로 8m씩 뻗은 가지 지탱하며 건재 한때는 길 알려주는 이정표 역할해 와 100년 넘게 자라온 수산리 해변 소나무들 1890년대부터 방수·방풍 목적 식재 ‘유전자보호림’ 지정 430여 그루 관리 가장 큰 나무 둘레 2.2m 높이 18~20m 여기에 더하여 도보여행 명소로도 사랑받는다. 부처의 그림자가 물에 비친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신라 고찰 불영사와 명승 제6호로 지정된 불영계곡,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석회암 동굴로, 종유석과 석순, 지하수 웅덩이가 어우러져 신비로운 자연미를 자랑하는 성류굴, 천연기념물 제96호로 지정된 350살 굴참나무,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된 수산리 소나무 숲 등이 왕피천 물줄기에 자연이 빚어놓은 이 보석 같은 경관과 문화가 어우러져 있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생태의 상징이 되고 있다. 사계절 내내 숲과 계곡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힐링의 길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중 울진에서 불영사로 가는 근남면 수산리 381-1 번지, 도로변 언덕 위에 서 있는 천연기념물 수산리 굴참나무와 왕피천 하류, 동해와 맞닿은 해변에 펼쳐진 소나무 유전자보호림을 찾았다. 서로 이웃하고 있어 먼저 굴참나무를 만났다. 천연기념물 굴참나무는 과거를 말하고, 유전자보호림 소나무 숲은 미래를 약속한다. 그 둘을 이어주는 왕피천은 지금도 묵묵히 흐르며, 세월의 이야기와 생명의 노래를 동해로 실어 나른다. 왕피천 너머로 푸른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 어귀 언덕 위 덩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백 번의 여름을 맞이하고 보냈을 굴참나무의 모습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지나가는 바람과 햇살을 견딘다. 키는 20m, 가슴둘레는 6m이다. 가지는 동서로만 8미터씩 뻗어 있어, 마치 양팔을 벌리고 세상을 감싸안는 듯하다. 상처투성인 몸은 주민들이 외과수술로 잘 치료하여 아직 건재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안내판에 한때 이 나무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불영사를 찾아가는 스님이나, 석류굴을 향하던 나그네들이 이 나무를 기점으로 남은 거리를 짐작하고 쉬어 갔을 것이다. 지도가 없던 시절, 나무 한 그루가 방향이자 위로였고, 기다림이자 약속이었다. 굴참나무 아래에서 이마의 땀을 식히고, 소매를 걷어 왕피천 물을 떠 마시던 그들의 숨결이 이 나무의 껍질 어딘가에 고요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오래 사는 거대한 굴참나무는 드물다. 참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깊은 숲속에서도 잘 자라고, 바람이 센 언덕에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나무껍질은 두껍고 울퉁불퉁한 코르크처럼 발달해 있으며, 껍질은 예부터 굴피라 불려 지붕을 이던 생활 자재가 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다. 열매인 도토리는 지난 우리 조상들의 가난한 시절에 흉년을 버티게 해준 구황식품이었다. 지금은 건강을 위한 기호식품으로 산행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수산리 굴참나무는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인내, 삶의 기억이 가지마다 스며든 생명의 상징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에도 조용히 우리를 품고 있는 커다란 마음이다. 굴참나무를 뒤로하고 바닷바람이 쉬어 가는 곳 수산리 왕피천 생태공원 숲을 찾았다.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나란히 선 녹색의 병풍이 되어 세찬 바닷바람을 막아섰다. 숲의 소나무들은 백 년 넘게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그 백 년을 바닷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벌리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바람을 막고 물길을 막아섰다. 태풍 하이선이 할퀴고 간 꺾인 한 소나무의 단면을 보았다. 베어진 그의 몸에 나이테는 107개의 고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매년 단 한 줄씩 성실하게 새겨진 그 세월의 문장은 말이 없지만 그 속에는 지금까지의 기후 환경을 고스란히 기록해 두었을 것이다. 연대연륜학이 발달하여 언젠가는 이 나이테가 울진 왕피천의 기후를 밝혀내리라 믿는다. 수산리 해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생태공원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자연을 보전하거나 훼손된 생태계를 복원하여 생물들이 살아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 공간으로, 사람들에게는 자연을 관찰하고 체험하며 휴식과 치유를 누릴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생태공원이다. 다양한 생태 요소들이 공원 내에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에게는 생태 교육의 장, 어른들에게는 삶의 여백을 채우는 쉼터가 되고 있었다. 지난 7월 10일 명산과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문화단체인 명문단(회장 권경수) 회원 100여 명이 이곳 생태공원을 찾아 숲 체험을 하였다. 수산리 해안의 왕피천 생태공원은 100년 넘게 자라온 소나무 숲이 바다와 왕피천이 만나는 모래땅 위에 펼쳐져 있었다. 해풍을 막기 위해 주민들이 가꾼 이 숲은 오늘날 국가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되어 생명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살아 있는 자연 교과서로써의 역할 하고 있었다. 1938년 발행된 ‘조선의 임수’라는 자료에 의하면 수산리 주민들이 방풍과 방수의 목적으로 1890년경부터 ‘수산송림’을 가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력 2월 1일 식수 일로 정하고 초지에 천연생 소나무를 이식하고 도벌과 벌채 금지로 보호 관리에 힘써 현재 아름다운 숲으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산림청은 이 숲을 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100살이 넘는 소나무 430여 그루가 아름다운 공원을 형성하고 있었다. 가장 큰 소나무 둘레가 2.2 m 높이가 18에서 20m 정도나 되었다. 마치 한 세기를 넘어온 장정들이 하늘을 향해 도열해 있는 듯하다. 과거에는 군부대가 주둔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울진군이 조성한 생태공원으로 바뀌어, 주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쉼터가 되었다. 이 숲을 ‘지속 가능한 시간’이라 부르고 싶다. 생명의 다양성과 지속성을 보장하는 유전자의 보루이다. 보이지 않는 그 속의 유전자가 언젠가는 또 다른 숲의 씨앗이 될 것이다. 보존이란 과거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이 나무 한 그루, 그 안에 깃든 유전자의 무게는 시간보다 무겁고, 말보다 깊다. 수산리 유전자보호림, 생태공원은 다음 세대를 위한 생명의 약속이다. 유전자보호림(遺傳子保護林)이란… 유전자보호림은 생물종의 유전적 다양성과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국가가 지정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특별한 산림이다. 희귀하거나 지역에 고유한 수종, 또는 유전적 형질이 우수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생태적으로 중요한 공간으로, 산림 자원의 원형을 지켜가는 생명의 저장고라 할 수 있다. 지정 목적은 첫째, 유전자원을 장기적으로 보전하고, 둘째, 산림생태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며, 셋째, 미래의 산림 복원이나 품종 개량을 위한 연구 자료를 확보하는 데 있다. 특히 기후변화나 병해충 등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유전적 형질을 지닌 산림 자원이 필요하다. 유전자보호림은 그러한 미래 대응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생태적 자산이다. 경북 울진군의 수산 송림 유전자보호림은 왕피천 하구의 모래땅 위에 조성된 소나무 숲으로, 100년 이상 자라온 나무들이 해풍과 바닷물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소나무들은 해안 방풍림이나 기후에 강한 숲 조성을 위한 중요한 유전자 자원으로 평가받는다. 산림 생명의 미래를 준비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오랜 세월 자연이 길러낸 유전 정보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숲에서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을 배우고, 그 가치를 지켜야 할 책임 또한 함께 느끼게 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20

바다 끼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코 끝엔 커피 향내가…

공학자들은 ‘바퀴’를 인류 역사를 괄목상대시킨 효과적인 발명품으로 지목한다. 비행기가 생기기 전 바퀴 달린 수레는 인간과 물품의 이동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여기에 증기기관에 더해지면서 기차가 등장한다. 1804년. 영국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이 만든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달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진귀한 구경거리였다. 그리고, 221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한국도 도시 곳곳을 기차가 연결하고 있다. 시속 300km에 육박하는 속도로 달리는 고속열차도 흔해졌다. 8개월 전엔 부산(부전)과 강원도 강릉을 잇는 동해선도 완전 개통됐다. 지난달 중순. 동해선 기차를 타고 울산을 출발해 8박9일간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정동진을 거쳐 강릉까지 취재여행을 했다. 기차에 편안하게 앉아 푸른 파도 부서지는 해변을 바라볼 수 있었고, 각 지역이 동해선 개통 이후 어떤 변화를 겪고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수도권 관광객 북적이던 ‘강릉 커피거리’ 부산•경북 사투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와 바다와 가장 인접한 구간은 강릉~정동진 상행선 오른쪽•하행선 왼쪽 창가가 ‘명당’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동해선 철길 지나는 도시들, 사회·경제적 상승효과 기대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동해선 철도의 역이 만들어진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도 크건 작건 ‘철도 개통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향후 더 큰 사회·경제적 상승효과를 기대하는 건 불문가지. 일본 간사이대학 아베 세이지(安倍 誠治) 교수의 논문 ‘일본 고속철도의 미래’는 향후 동해선이 지나는 도시가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를 추측해볼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대목이다.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의 효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도시 재개발 효과다. 신칸센은 도시간의 시간거리를 단축시켜 사람들의 행동권이나 상권의 확대를 가져왔다. 신칸센의 개업에 의해 가장 변모한 것이 신칸센역 주변이다. 신칸센역의 개설에 따라 역 주변의 터미널 기능이 향상되고, 거기에 동반해 도시 구조가 변화하고, 교통 체계의 재편이나 중심 업무지역의 형성이 촉진됐다.” 강릉에 도착한 첫날. 창해로 일대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된 ‘강릉 커피거리’를 찾았다. 제법 큰 규모의 커피숍을 운영하는 40대 남성은 “지금까진 서울과 경기도에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올해 1월 동해선 개통 이후론 가게에서 부산과 경북 사투리가 자주 들을 수 있다”며 웃었다. 다음날 산책을 하고 점심도 먹을 겸 들른 경포대해수욕장에선 우즈베키스탄 부자(父子)를 만났다. 아버지는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아들은 대구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둘은 대구를 출발해 포항과 삼척을 거쳐 강릉으로 휴가를 온 터였다. 강릉과 정동진의 해변에선 동해선 열차 탑승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베 세이지 교수의 논문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기차가 지나는) 역 주변 땅값이 올랐는데,토카이도 신칸센의 연선 중 가장 변모한 곳이 신요코하마역과 신오사카역 주변이다. 게다가 신칸센역에 인접한 호텔이나 백화점,다양한 점포가 신설돼 활기찬 공간이 만들어졌다. 새로운 수요가 개척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거리의 매력도 만들어졌다. 토카이도 신칸센의 개업은 연선지역의 도시 재개발과 지역 개발의 촉진제가 됐던 것이다.” 지가(地價) 상승과 고급 숙박시설의 신축, 늘어나는 상점이 가져올 지역경제 활성화, 여기에 도시 재개발의 촉진…. 일본의 과거 사례는 동해선이 지나는 여러 도시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아직은 지켜봐야 할 단계이긴 하지만. ▲옆구리에 바다를 끼고 달리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려면… 동해선 기차의 매력은 무엇보다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아닐까? 특히 갓 연애를 시작한 젊은 연인이나 신혼부부라면 이를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낭만으로 느낄 듯하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연인과 부부만은 아니리라. 그러니, 9일간 10번 이상 동해선 기차를 타고 남북을 오르내린 기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용한 정보 하나를 제공하려 한다. 바다와 가장 인접해 동해선 기차가 달리는 건 정동진-강릉 구간이다. 10분 가까이 출렁이는 해변을 옆구리에 끼고 달린다. 기차 객실에서 바다가 보이는 건 물론이다. 동해-정동진 구간과 묵호-동해 구간에서도 짧은 시간 바다와 만날 수 있다. 상행선 기차의 경우 오른쪽 창가 좌석, 하행선일 경우엔 반대로 왼편 창가 좌석이 ‘바다 전망 명당’이다. 그러니, 동해선 기차를 예약할 때 참조하시기를. 삼척∼강릉, 기차와 자동차 중 어떤 게 빠를까? ‘ITX 마음’·‘누리로’ 1시간 소요 휴가철·명절엔 열차 이용 편해 올해 1월 1일 개통된 동해선을 운행하는 기차는 편안함과 속도 2가지 면에서 모두 자동차를 압도할 수 있을까? 소박한 실험은 이런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마음먹었으니 미룰 것도 없었다. 아침을 먹고 삼척역으로 차를 몰았다. 운전은 경력이 30년에 가까운 지인에게 맡겼다. 삼척역에서 강릉역까지의 거리는 약 60km. 지난 7월 중순의 평일 낮. 교통 정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삼척역을 출발한 자동차는 1시간 6분 만에 강릉역 앞에 도착했다. 교통 법규와 규정 속도를 정확하게 지키며 달렸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기차의 삼척역-강릉역 구간 운행 소요 시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동차와 거의 비슷하다. 하루 8편이 운행되는 이 구간을 ‘ITX 마음’과 ‘누리로’ 열차는 빠르게는 1시간 1분, 느린 경우 1시간 7분이면 달려간다. 물론, 동해안 휴가철이거나, 설과 추석 등 명절이면 자동차보다 기차를 타는 게 시간을 절약하는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평소라면 “기차가 훨씬 빠르다”고 확언하기 어렵다는 걸 실험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편안함과 안락함 차원에서 보자면 기차의 손을 들어줄 이들이 더 많을 듯하다. 출렁이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시원한 맥주나 사이다 한 잔 마시며 유유자적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건 기차여행이 자동차여행을 압도하는 부분이 분명하다. 동해선 개통 이후 주말은 물론이거니와 평일에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자동차를 집에 두고 동해선 기차에 오른다. 오랜 세월 함께 해온 부부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빙그레 짓는 웃음. 이건 깨끗하고 연착 없는 ITX와 누리로 열차가 만들어준 미소가 아닐까 싶다. <끝>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기업 위기 넘어 생존 문제 ‘스마트 철강 도시’로 전환”

포항이 ‘철의 도시’로서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반세기 동안 국가 기간산업의 심장 역할을 했지만,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중국산 저가 공세, 산업용 전기료 인상, 미국의 고율 관세 등 대내외 악재로 산업 생태계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일부 공장 폐쇄, 현대제철 포항2공장 가동 중단이 이어지며 고용 불안과 지역상권 침체가 현실화됐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본지와 스틸데일리와의 공동인터뷰에서 “철강산업 위기는 기업 차원을 넘어 지역 전체의 생존 문제”라며 “포항이 무너지면 대한민국 제조업 전반이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는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을 신청하고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다. 그는 “철강 고도화와 함께 이차전지·디지털·AI 등 미래 신산업과 연계해 친환경 스마트 철강도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시민 체감 위기 완화를 위해 전문인력 고용 기업에 맞춤형 기술·사업화 비용을 지원하고, 자투리시간거래소·취업지원센터·일자리편의점 등으로 구직 접근성을 높였다. 여성 전기기능공 양성, 신중년 취업, 청년 창업 지원도 병행한다. 소상공인 운전자금 이차보전과 포항사랑상품권 발행으로 지역 소비를 촉진하며, 올해만 6092억원을 투입해 3만3800개의 일자리를 만들 계획이다. 지역 철강기업과의 상생에도 속도를 낸다. 포스코와 조성한 ‘스페이스워크’에 이어 직원 기숙사의 시내 이전이 추진돼 지역 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 중소기업에는 1500억원 규모 운전자금, 수출 판로 개척·마케팅·물류비 지원 등 다각적 지원책을 가동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 유치와 산업 생태계 혁신을 목표로 투자기업에 세제·보조금·임대료 감면을 제공하고, 1000억원 규모의 투자유치 진흥기금을 조성한다. 이차전지·수소·바이오 특화단지를 조성해 전주기 기업투자가 가능한 혁신 생태계를 마련한다. 2023년부터는 ‘산단 대개조 사업’을 통해 노후 산단을 저탄소 스마트 산단으로 전환 중이다. 총 1915억원 규모로 스마트 에너지 플랫폼 구축, 고급인력 양성, 산단 재생 등을 포함한다. 탄소중립형 자원순환 단지, AI전환 실증 산단 구축사업도 진행 중이다.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HyREX)도 미래 전략산업이다. 포항은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개발사업’ 부지로 선정돼 올해 예타를 통과했고, 시는 인허가와 기반시설 정비 등 전방위 지원에 나선다. 이차전지 분야는 국가전략특구 지정으로 2030년까지 14조원 투자를 이끌었고, 바이오는 포스텍 의대와 스마트병원 설립으로 메가 클러스터를 준비 중이다. 수소는 국내 최초 수소특화단지 지정으로 부품 국산화와 글로벌 시장 선점 기반을 마련했으며, AI 분야는 2조원 규모의 ‘글로벌 AI컴퓨팅센터’ 유치에 성공했다. 그는 “무역장벽·탄소중립 규제 대응, 노후설비 교체, 혁신기술 개발 지원 등은 지방정부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라며 중앙정부의 적극적 역할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포항은 위기 때마다 재도약해온 도시”라며 “시민 역량과 시의 노력을 모아 위기를 기회로 바꾸겠다”고 전했다. /스틸데일리 손연오 기자·경북매일신문 김진홍경제에디터

2025-08-19

“수소환원제철·이차전지 육성 글로벌 친환경 중심도시 도약”

포항은 반세기 넘게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철강의 도시’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 과잉과 중국산 저가 공세, 보호무역주의 확산, 탄소중립 부담이 겹치면서 산업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이상휘 국회의원은 “이제는 단순히 위기를 버티는 시대를 넘어, 새로운 철강의 길을 과감히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틸데일리·경북매일과의 특별 대담에서 그는 철강 고도화, 이차전지 산업 육성, 수소환원제철 투자 등 포항의 미래 전략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현재 철강업계를 “과거에 없던 복합 위기”로 진단했다. 국내 주요 철강사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13.9%에서 올해 2.8%로 급락했고,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그는 “고환율과 고금리, 환경 규제가 겹치면서 산업 체질 전환이 시급하다”며 “친환경 고부가가치 철강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5.9% 감소했으며, 미국은 철강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했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정부는 외교전에 적극 나서야 하고, 국회는 경쟁력 강화 법안을 서둘러야 한다”며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지원, 세제 혜택, 전기요금 인센티브, 규제 특례 등이 포함된다. 그는 탄소중립 시대 철강 생존 전략으로 ‘수소환원제철’을 꼽았다. 막대한 개발 비용을 감안할 때 정부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포스코의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위해 과기정통부 장관과 직접 협의했고, 지난 6월 통과됐다”며 “이제 정부가 수소 공급망과 전력요금 체계, 배출권 제도 등을 정비하고, 포항시는 실증단지와 기업 여건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포항을 이차전지 산업의 중심지로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이차전지포럼 연구책임의원을 지낸 그는 “포항은 양극재와 리사이클링 중심지로 도약할 도시”라며 최근 대표 발의한 ‘이차전지산업 육성 및 지원 특별법’에는 생산보조금, 인허가 간소화, 인력 확보, 주 52시간제 예외 등 전방위 지원책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이차전지는 반도체를 잇는 국가 핵심 산업이며, 포항이 세계 시장 주도권을 잡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포항의 중장기 비전을 ‘산업과 과학,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 제시하며, 영일만항 북방 물류 거점화와 연구개발, 인재 양성, 첨단산업 융합을 통해 동해안 산업혁신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를 위해 제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노후 국가산업단지 주변지역 지원 특별법’을 발의했으며, “산업단지 주변 주민의 건강과 삶의 질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포항은 철강으로 나라를 일으킨 도시이자 이제 미래 산업으로 재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반드시 대한민국 산업의 심장으로 우뚝 설 것”이라며 포항시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앞으로 포항이 글로벌 친환경 산업의 선도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과 투자를 지속해서 뒷받침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스틸데일리 손연오 기자·경북매일신문 김진홍경제에디터

2025-08-19

“포항의 디지털과 녹색 혁신 ‘국가적 어젠다’로 추진해야”

포항은 한국 철강산업의 1번지이자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다. 한국 경제는 포항에서부터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포항을 빼 놓고 결코 한국 경제발전사를 논할 수 없다. 포항에서 생산된 철강이 없었다면 어떻게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차, 조선, 가전 산업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 많은 공장과 아파트, 고속도로 어떻게 건설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 50년간 포항은 소리 없이 묵묵히 한국 경제를 바꾸어 왔던 것이다. 이랬던 포항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있다. 가동 중단, 설비 폐쇄와 같은 이전에는 결코 들어볼 수 없었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포항이 미국의 러스트 벨트처럼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한국도 이제 포항과 같이 70~80년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던 1기 산업도시들이 경제구조 고도화와 중국 등 경쟁국의 부상으로 성장 한계에 직면해 있다. 오래지 않아 많은 1기 산업도시들이 포항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새로운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포항이 혁신의 선봉에 서서 새로운 성공 스토리를 써야 한다. 그것이 미래 50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뒷받침하는 포항의 새로운 역할이 될 것이다. 다행히 포항은 혁신에 필요한 R&D 기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고, 지역 R&D 허브로서 역할을 이미 하고 있다. 세계 최대 최고의 철강 및 소재 R&D 기관, 포항공대라고 국내 최고 수준의 이공계 연구중심 대학, 국내 최초의 방사광가속기 연구소, 나노융합기술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고급 인프라 위에 올바른 방향 설정, 지역민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혁신 그리고 정부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포항은 빠른 시간 내에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미래 포항은 디지털 혁신(DX)과 녹색 혁신(GX)의 선봉에 서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포항을 세계 혁신 철강기술의 메카, 세계 모든 철강사들이 보고 배우러 오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 혁신과 녹색혁신은 이미 포항에서 그 닻을 올렸다. ‘등대공장’으로 지정된 포항제철소의 인텔리전트 팩토리, 하이렉스라고 하는 혁신적인 수소환원제철공법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철강을 넘어 미래 소재분야로 산업을 다변화해 나가야 한다. 철강의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할 때, 지역의 R&D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2차 전지와 바이오 같은 추가적인 미래 먹거리도 확보해야 한다. 포항이 가지고 있는 해양 환경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앞으로 펼쳐질 북극 항로 개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포항은 이미 혁신의 길로 들어섰다. 포항과 같은 1기 산업도시가 혁신하고 부활해야 국가 차원의 균형발전, 산업구조 고도화∙다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래야만 한국경제도 새로운 무기를 장착하고 미래 재도약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포항이 1기 산업도시 혁신의 선봉장이 될 수 있도록 포항시의 혁신을 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하고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유승록 스틸앤스틸 철강산업연구소장

2025-08-19

“포항형 피츠버그 르네상스 ‘도시 모든 주체간 연대’가 답”

세계 어느 도시든 흥망성쇠의 과정은 피할 수 없다. 차이는 위기 앞에서 어떤 경제 주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극복에 나섰는가에 있다. 이 선택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지금 포항은 대표적인 철강도시라는 정체성 속에서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과거에도 포항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미국 피츠버그를 찾아갔고, 도시간 자매결연까지 맺었다. 그러나 우리는 피츠버그의 성공이라는 겉모습만 보았을 뿐, 그 속살은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피츠버그 르네상스’의 과정을 살펴, 포항의 지속 가능한 성장 전략을 모색해야 할 때다. 피츠버그 르네상스는 정확히 말하면, 전면적인 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이었지 산업구조 전환만을 뜻하지 않는다. 도시개발은 두 단계로 진행됐다. 1단계는 1945~1969년 약 20년 동안의 도심 재개발, 2단계는 10년의 휴지기를 거쳐 1977~1988년 이어진 확장 사업이었다. 연구자들은 주로 2단계에 주목하지만, 실질적 기반은 1단계에서 마련됐다. 출발점에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있었다. 세계 대공황 이후 철강산업이 쇠퇴했고, 교통난과 심각한 매연 공해가 도시를 짓눌렀다. 과세 대상 자산 평가액은 1936년 12억 달러에서 1947년 9.6억 달러로 급락했다. 이때 지방정부와 민간 모두 “단독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민관 협력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이 흐름 속에서 카네기공과대학(현 카네기멜론대) 총장 로버트 도허티가 나섰다. 그의 제안으로 앨러게니 지역개발 회의(ACCD)가 출범했다. 지역 핵심 단체와 지방정부, 상공회의소, 은행, 개발업자, 대학이 모두 참여했고, ACCD는 비전 수립부터 사업 집행까지 전권을 부여받았다. 포항에도 이를 의식한 AP포럼이 출범했지만 그 형태와 운용은 전혀 다르고 그저 포항내의 주요 기관장들의 친목모임 정도에 머무르고있는 실정이다. 또한 ACCD주도하에 ‘피츠버그 패키지’로 불린 일괄 법률안을 통해 제도적 장애물을 사전에 걷어냈다. 매연 규제, 폐기물 처리, 구역 계획, 주차장 공사, 교통위원회 설치, 공원·레크리에이션 행정국 신설, 도로 조기 착공, 조세 기반 확대 등 도시 문제를 종합적으로 다뤘다. 지방의회는 준비된 10개 법안 중 8개를 통과시켜 재개발 환경을 보장했다. 그 결과, 피츠버그는 환경 개선, 주차난 해소, 재정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았다. 20년간 이어진 민관 협력의 성과가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이 성공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 모든 주체가 같은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둘째, 도시의 종합 문제를 아우르는 청사진과 이를 실행할 공동체제(ACCD)가 필요하다. 셋째, 행정과 입법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포항이 직면한 위기는 단순한 산업 구조 조정이 아니다. 환경, 교통, 주거, 교육, 문화까지 얽힌 복합 과제다. 피츠버그처럼 지역 주체가 머리를 맞대고, 지방정부와 의회가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구조 없이는 위기는 반복될 것이다. 교훈은 분명하다. 도시의 미래는 위기 속 연대와 실행력에서 비롯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19

소중한 전통 목조 건축물, 자동소화설비 없이 산불에 노출

태풍, 홍수, 산불 등의 재난은 지자체 단위로 되풀이되지만, ‘재난지역 선포’와 같은 사후 조치에 집중됐다. 사전 예방 차원의 체계적 방재 시스템이 자리 잡지 못한 것이다. 이번 기획은 지자체 실정에 맞는 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구축 필요성을 제시하고, 농어촌 곳곳의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지켜낼지를 탐구한다. 고령화 등으로 재난에 더 취약해진 자연 속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한국형(K)-문화유산 방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경북은 물론, 전국 차원의 정책 수립에 필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예정이다. 서울 흥인지문(보물)·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도 설치 안돼 기후변화로 산불 발생 조건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15%나 상승 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 등 문화재별 특성 맞춰 확충해야 <글 싣는 순서> 1. 산불 등 재난에 취약한 국내의 문화유산 2. 실제 재난으로 소실된 지역별 문화유산 3. 일본의 문화재 방재 연구기관 경험 4. 일본의 문화재 방재 정책 성공 사례 5. 한국형(K)-문화재 방재 정책의 방향성 ◇ ‘괴물 산불’이 삼킨 문화재 지난 3월 영남권 하늘은 붉은 연기와 불길로 뒤덮였다.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둑한 하늘 아래 산등성이마다 불덩이가 튀어 오르며 전선을 따라 불길이 번졌다. 마을 사람들은 젖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은 채 허겁지겁 짐을 챙겼지만 거센 화염 앞에 대부분의 살림살이는 두고 달아나야 했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고 누군가는 멍하니 타들어 가는 집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이번 산불로 5개 시·군의 주택 4457채가 불에 탔고, 27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이재민도 3501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피해 산림은 약 10만 ㏊에 이르러 서울시 면적을 크게 웃돌았다. 강풍 탓에 물줄기는 허공으로 흩어졌고, 불길은 바람결에 따라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진화작업에 나선 한 소방대원은 “물이 닿기도 전에 불길이 다음 능선으로 넘어가 있었다”며 당시의 무력감을 전했다. 문화재 피해는 더욱 뼈아팠다. 천년 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가 전각 대부분을 잃었고, 안동 만휴정 원림과 청송의 고택, 서당 등도 불길에 휩싸였다. 안동 지산서당·구암정사, 영양 송석재사 등 조선시대 건축물 또한 상당수가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폭발음처럼 ‘쾅’ 하고 기와가 튀어 오를 때마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매캐한 연기는 골짜기를 메우며 호흡을 막았고, 불길이 옮겨 붙은 나무들은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주민 박모씨(68)는 떨리는 목소리로 “산 전체가 불을 뿜는 괴물 같았다. 그 앞에서는 사람도, 기계도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천년 고찰 고운사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길은 대웅전 기단까지 파고들며 불상을 위협했다. 사찰 관계자는 “소방대가 철수한 뒤에는 두 손 놓고 불길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민들은 허탈하게 무너진 절터를 바라보며 “집이 타는 것도 서럽지만, 조상들이 지켜온 유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보니 더 가슴이 미어진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화마는 건물을 삼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산속에서 지켜온 천년의 기억까지 함께 태워버렸다.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잿빛 기와 조각과 그을린 기둥뿐이었다. 현장에서는 “문화재를 지키기에는 우리의 방재 체계가 너무 허술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노인은 “나라가 재난지역 선포만 할 게 아니라, 애초에 문화재를 지킬 방법을 마련했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자동소화설비 ‘제로’···제도의 공백 이번 피해는 단순한 돌발 상황이 아니라 예견된 재난이었다. 지난 6월 서울 성북동 명승 ‘성북동 별서’ 내 목조건축물 송석정에서 발생한 화재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고, 결국 소방당국은 기와 지붕을 굴착기로 철거하는 ‘파괴 진화’에 나서야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비단 송석정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임오경 의원실이 국가유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목조 문화유산 대부분은 자동소화설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다. 서울 흥인지문(보물),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등 국가적 상징물도 포함돼 있다. 제도의 허점도 뚜렷하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자동소화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으나, 전통 사찰·문화재·종교시설은 예외로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전국의 목조 문화재 상당수가 여전히 소화기나 소화전에만 의존하는 실정이다. ◇ 반복되는 관리 부실 국가유산청이 지난 4년간 소방 점검을 벌인 결과에 따르면, 138건의 개선 권고 중 절반을 넘는 70건(50.7%)이 소화기 문제였다. 여기에는 ‘안전핀이 빠진 소화기’, ‘노후로 인한 기능 저하’, ‘감지기 미작동’ 등 시설 기본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례들이 포함됐다. 특히 점검 지적 건수는 2021년 9건에서 2022년 19건, 2023년 20건, 그리고 2024년 22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경북 지역의 구체적 현장 점검 결과도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안동 봉정사에서는 ‘소화기 분산 배치 필요’, 하회마을 양진당에서는 ‘부엌에 소화기 비치 필요’, 청송 후송당 고택에서는 ‘주기적 점검 요망’이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소화시설 외에도 화재 대응 핵심 장비의 고장 사례가 잇따랐다. 자동화재속보 통신선 불량, 불꽃·연기 감지기 미작동 등 58건의 설비 문제가 최근 4년간 지적됐다. ◇ 기후위기와 산불 기후위기가 한국의 문화유산을 지키는 방재 체계의 허술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여 년간 한국의 평균 기온은 약 1.8도가 상승했다. 여기에 가뭄과 강풍이 겹치면서 산불은 갈수록 대형화·장기화하는 양상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불은 연평균 546건에 이른다. 특히 2022년에는 756건으로 가장 많은 건수가 기록됐고, 피해 면적도 2만4797㏊에 달했다. 이처럼 산불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전통 목조건축물 등 국가유산은 언제든 재난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다. 영남권 산불 또한 이러한 기후 조건이 겹친 결과였다. 당시 순간 풍속은 시속 20m를 넘었고, 건조주의보가 이어진 탓에 불길은 순식간에 확산했다. 국제 연구기관 ‘세계기상특성(WWA)’은 이번 한국 대형 산불을 분석하며 “기후변화로 인해 유사한 조건이 발생할 확률이 약 2배 높아졌고, 화재 강도 역시 평균보다 15%가량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 대안은? 문화유산 방재 체계의 취약성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뒷걸음질에 머물러 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목조 문화재와 같은 국가유산에 스프링클러 등 자동소화설비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없다. 일본 문화청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문화재 방재 지침과 매뉴얼을 전국적으로 보급했으며,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 방재 시설 설치와 내진·방화 강화에 국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또 지자체와 주민, 연구기관이 합동으로 방재 훈련을 정례화해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교토의 ‘리츠메이칸대학 역사도시방재연구소'는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화유산 방재 시뮬레이션 훈련과 재난 대응 매뉴얼 보급이 정례화됐으며 연구 성과는 국제 학술지를 통해 공유된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 차원의 통합 방재 기관 설립과 더불어, 자동소화설비·열감지·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문화재별 특성에 맞춰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산림청과 소방청, 지자체가 함께하는 재난 대응 네트워크를 제도화해 초기 대응력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문화유산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뿌리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삶의 자산이다. 이번 영남권 산불은 그 뿌리를 지키는 일이 결코 뒤로 미룰 수 없는 과제임을 다시 확인시켰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후 복구가 아니라, 피해를 막아내는 선제적이고 과학적인 방재 시스템이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9

현대제철 포항공장, ‘노사 협력’과 재투자 승부수

현대제철 포항공장(이하 ‘현대제철’)은 전환기의 중심에서 새로운 선택을 했다. 올해 6월 현대제철은 연간 제강 120만t, 압연 80만t 규모의 포항 2공장 가동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건설용 철강재 수요가 장기 침체에 빠지고 가격 경쟁이 심화됨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게다가 이 결정은 일방적 조치가 아닌 노사 합의로 추진됐다. 회사와 노조는 고용 안정을 전제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로 뜻을 모아 갈등 대신 협력을 선택했다. 현대제철은 포항 1공장 내 굴삭기용 무한궤도 생산 부문인 중기사업부 매각도 동시 추진 중이다. 1986년부터 운영된 전통 사업이지만, 중국산 저가 공세로 가격경쟁력을 잃어 적자가 누적된 것이 매각을 결정한 이유로 주목된다. 중요한 점은 매각 대금을 포항공장 설비 고도화와 생산 효율 향상에 재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친환경·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생산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위기 속에서도 노사 협력과 재투자 계획은 포항의 재도약 가능성을 남긴다. 미래를 묻는 질문에 현대제철은 구조조정 속에서도 지역과 함께 지속 가능한 길을 모색하겠다는 답을 내놨다. /스틸데일리 김영대 기자 kyd@steelnsteel.co.kr

2025-08-18

수소환원제철, 탄소중립 시대 ‘제2의 포항 신화’ 준비 중

철의 도시 포항이 재도약 길에 들어섰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이라는 미래형 기술로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포항 지역사회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맞고 있다.최근 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수소환원제철 실증기술 개발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며, 산업·환경·지역경제 전반에서 대대적인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 탄소에서 수소로, 2030년 상용화 목표 지난 6월 수소환원제철 예타 통과로 2026~2030년 총사업비 8146억원(국비 3088억원)이 투입돼 연간 30만t 규모의 데모플랜트가 포항제철소 부지에 건설된다. 이는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고, 기술 상용화를 위한 검증 단계를 거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포스코는 2028년 실증설비 가동, 2030년 상용화 기반 구축을 목표로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 포항의 산업 DNA, 도전과 혁신 수소환원제철 도입은 포항을 국내 탄소중립 산업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끌어올릴 중요한 발판이 될 전망이다. 포항은 이번 사업을 ‘제2의 포항 신화’로 기대하고 있다. 철강산업으로 성장해온 도시인 만큼, 수소환원제철은 지역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완공 이후에는 ‘탄소제로 기반 녹색철강 중심지’라는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확보함으로써, 외국 기업 유치와 수출 확대는 물론 R&D 산업 확장까지 다양한 파급효과가 기대된다. △ 포항시의 ‘수소 생태계’ 청사진 포항시는 포스코의 로드맵에 맞춰 수소 공급·인프라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한 그린 수소를 암모니아 형태로 도입한 뒤 크래킹(분해) 공정을 거쳐 제철소에 공급하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2050년 연간 3847만t의 수소환원제철 생산에는 약 350만t의 수소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시는 수소복합화물터미널과 배관망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제철소 공급뿐 아니라 산업 전반과 수소 모빌리티 분야로도 공급망을 확장할 방침이다. △ 지역경제 회복의 ‘청신호’ 수소환원제철소 건설은 완공 전부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향후 5~7년간 기술 개발, 시공, 인력 확보 과정에서 수천 명의 고급 기술 인력과 협력사가 포항에 유입, 인근 식당·주거·소매업 등 상권 전반에 새로운 활기가 돌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수소환원제철 건립은 포항을 다시 한번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으로 뛰게 할 것이다.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phw@steelnsteel.co.kr

2025-08-18

동국제강 포항공장, 원가 압박 속 ‘맞춤형·친환경’ 전략 가속

동국제강 포항공장(이하 ‘동국제강’)은 변화하는 철강 환경 속에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뿐만 아니라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에도 적극적인 행보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D-메가빔’과 ‘그린바’가 대표적이다. 초대형 건축에 적합한 D-메가빔은 최대 3m까지 제작 가능해 설계 자유도와 시공 효율성을 높였고, 비전도·내부식성 소재의 그린바는 철도 궤도나 전기차 인프라 등 차세대 시장에 대응 가능한 강점을 지닌다. 동국제강은 물류 부문에서도 AI 기반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적재 순서와 동선을 효율화해 물류비를 절감하고 출하 속도를 향상했다. AI는 수천 건의 데이터를 학습해 안전과 효율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하며 현장 작업의 정밀성을 높인다. 인력 구조 측면에서는 구조조정 이후 협력업체 인력의 정규직 전환 확대로 고용 안정성을 강화했다. 전 협력업체 인력의 95% 이상을 직접 고용해, 1994년 무파업 선언 이후 지금까지 분규 없는 현장을 유지해왔다. 이 같이 변화와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상재 포항공장장은 지속가능한 산업 전환을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탄소 저감과 에너지 효율 향상 설비 지원은 국산·외산 여부보다 실효성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며, 검증된 고효율 설비 도입을 통해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각 기업이 강점을 살릴 수 있도록 정부가 산업 구조조정의 큰 그림을 제시하고, R&D 지원과 제도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인 기술 고도화와 상생을 위한 기반 마련은 포항 철강 산업의 새로운 도약을 예고한다. 동국제강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미래 경쟁력을 키워가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틸데일리 김영대 기자 kyd@steelnsteel.co.kr

2025-08-18

미래를 준비하는 힘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포항이 다시 한번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오랫동안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심장’으로 불리던 이 도시는 이제 산업 구조와 경제 체질을 새롭게 바꾸려는 거대한 흐름 속에 서 있다. 전통 산업의 구조조정, 신기술 도입, 벤처 생태계 확장까지 과거의 영광을 지키면서도 미래를 향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편집자 주> △ 입주와 졸업, 그리고 선순환 체인지업그라운드는 창업 초기 기업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사무공간, 연구 인프라, 멘토링, 투자 연계를 종합 지원한다. 현재 포항에는 70여 개 기업이 입주해 실리콘밸리에 견줄 유니콘 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스코에 따르면, 체인지업그라운드는 2020년 서울, 2021년 포항에 이어 2025년 말 광양에도 개소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183개 기업을 육성, 1900여 개 일자리를 창출했고, 입주·졸업한 기업가치 총합은 2조 3000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다수의 입주기업이 졸업 후에도 포항에 정착하고 있다. 특히 기술력과 시장성을 갖춘 기업들은 지역 고용 창출과 세수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 벤처 육성센터, 왜 포항인가? 포스코는 입지보다 첨단 기술과 연결된 인프라를 중시한다. 신물질·신약 개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활용한 AI 연구 등에서 포스텍(POSTECH)은 체인지업그라운드의 든든한 후원자다. 축적된 연구성과와 기술력은 입주사의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된다. 포스텍 중심의 세계적 연구 인프라, 수도권 대비 저렴한 임대료와 생활비, 지자체·기업이 함께 마련한 지원 프로그램이 창업 성장의 기반이 된다. 특히 소재·에너지·바이오·해양 등 특화 산업과 연계된 창업 생태계는 산업 클러스터와 시너지를 확대하고 있다. △ 또 하나의 포항의 미래 체인지업그라운드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포항에서도 가능하다.” 철강산업이 여전히 도시 경제의 중심이지만, 포항은 이제 기술 창업이라는 또 다른 성장 엔진을 장착했다. 앞으로도 포항시와 포스코는 체인지업그라운드를 기반으로 창업–투자–기술 상용화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하며, 철강과 벤처, 신산업이 어우러진 복합 경제도시로 도약할 계획이다. 철의 도시에서 혁신의 도시로 변모하는 포항,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체인지업그라운드가 있다. <체인지업 그라운드 포항 외관 및 실내.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스틸데일리 박현욱 기자 phw@steelnsteel.co.kr

2025-08-18

산업도시서 미래도시로… 포항 ‘새 100년 도약’ 본격화

포항시가 반세기 넘게 지역경제를 지탱해온 철강산업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신산업 중심 도시’로의 전환에 본격 나섰다. 2025년을 ‘산업·도시 대개편 원년’으로 선포한 포항시는 이차전지·수소·AI(인공지능)를 축으로 한 혁신 삼각축과 관광·사회적경제를 아우르는 다층적 정책을 병행하며 위기 돌파에 나서고 있다. 산업구조 다변화와 도시 공간 재편,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활성화가 맞물려 ‘산업도시에서 미래도시’로 전환하는 ‘포항 르네상스’의 청사진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포항시, 이차전지·수소·AI·관광·사회적경제 ‘5각 혁신축’ 가동 산업 다양화·도시공간 재편·일자리 등 지속적 산업생태계 구축 관광·문화 도시브랜드 재창조… 혁신·재생 결합, 성장기반 강화 △ ‘신산업 드라이브’로 포항 경제 새판 짠다 포항시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산업전환 1축은 이차전지와 수소산업이다. 배터리 핵심 소재부터 생산, 리사이클링까지 전주기 생태계를 구축하며 ‘배터리 허브’로 도약을 노리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 등 국내 대표 배터리 소재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포항 배터리 리사이클 규제자유특구’ 2단계 실증사업을 통해 배터리 해체·금속 회수 기술 고도화가 추진되고 있다. 수소산업은 ‘그린 수소 경제권’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항시는 블루밸리국가산단을 중심으로 수소환원제철, 수소연료전지 실증, 수소모빌리티 인프라 구축을 집중 지원해 생산-저장-활용의 수소 클러스터 완성을 서두른다. 친환경 에너지 전환 시대를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 철강산단 스마트화·AI 융합도시 조성 기존 철강산단도 ‘산단 대개조’ 사업을 통해 친환경·저탄소 기반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고로 중심의 전통적 생산 방식을 에너지 고효율 설비와 스마트 물류 플랫폼, 폐열 회수 인프라 등으로 혁신해 ‘탄소중립 선도 산단’ 시범지구로 지정받았다. 이에 맞춰 철강 생산 공정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된다. 포항시는 AI 가속기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기업이 연계한 민관협력 모델을 구축해 AI 융합도시로의 도약을 추진 중이다. 생성형 AI 행정시스템 시범 적용, 데이터 산업 인프라 조성, 청년 인재 육성 체계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포스텍·한동대·포항테크노파크 등이 AI 창업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디지털 전환의 핵심 동력이 되고 있다. △ 해양관광·문화산업으로 도시 브랜드 리모델링 포항은 해양관광 인프라 확충으로 도시 브랜드 재구축에도 힘쓴다. 18년 만에 재개장한 송도해수욕장을 단순한 관광지 복원 차원이 아니라 해상 짚라인, 야간 경관 조명, 지역상권 연계 프로그램을 가미해 체류형 해양관광 거점으로 탈바꿈시킨다. 영일대해변과 운하 관광, 영일만항 해양레저복합단지 조성도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또 호미반도를 중심으로 복합 관광레저타운의 조성계획도 차질없이 순항중에 있다. MICE 산업 육성에도 속도를 낸다. 포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는 대규모 국제행사 유치의 핵심 거점으로, 유엔기후변화 글로벌 혁신허브 등 굵직한 행사를 유치할 발판으로 활용된다. 원도심 재생과 연계한 철길숲, 중앙상가 등 관광 콘텐츠도 ‘100년 도시 설계’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았다. △ ‘일자리 창출’과 ‘사람 중심’ 정책 집중 포항시는 2025년 일자리 창출 실행계획에 6000억원 이상을 투입, 3만 3800개 일자리 마련을 목표로 한다. 신산업 분야 전문인력 양성, 청년·여성·신중년 등 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확대, 디지털 직업훈련 체계 정비 등이 주요 전략이다. 특히 청년 창업 활성화에 주력한다. 청년창업LAB, 포항청춘센터 등 인프라를 활용해 단계별 취·창업 지원을 강화하고 ‘로컬솔루션 프로젝트’, ‘일자리공감페이’ 등으로 청년의 지역 정착을 유도한다. 일자리종합센터, 자투리시간 거래소 운영, 연례 취업박람회 개최 등 고용 매칭 플랫폼 구축도 병행해 정책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 사회적경제 자립 생태계 구축 본격화 포항시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직 육성, 시민 참여 확대, 실무 역량 강화 등 3대 전략과제를 중심으로 새 계획을 수립했다. 정부가 직접지원에서 간접지원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상황에 발맞춰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2025년 추진계획에는 전문교육, 컨설팅, 사회적기업 네트워크 활성화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국비 확보와 공공기관 협업 강화를 위한 모니터링 체계도 별도 구축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정책 핵심 과제로 선정한 만큼 국비 연계 사업과 공공기관 협업사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 ‘규제자유특구 2.0’·APEC 연계 글로벌 도약 모색 포항시는 배터리 리사이클링과 이차전지 소재 실증 R&D의 질적 고도화를 위한 ‘규제자유특구 2.0’을 추진 중이다. 2025년 APEC 정상회의 유치를 지역발전 기회로 삼아 글로벌 투자 유치에도 박차를 가한다. 바이오 특화단지, 포스텍 의과대학 설립, 스마트 병원 건립 등 의료·바이오 산업 기반도 조성 중이다. 전국 최초 민관 상생형 소상공인 금융지원 모델도 시범 시행하며 사회적·경제적 포용성을 확대한다. 청년친화도시 지정, 대학·기업 연계형 청년고용 플랫폼 확충 등도 인재 기반 구축의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단기 일자리에서 장기 생태계로의 전환을 꾀한다. △ 전문가들 “포항은 지방혁신 실험장” 산업구조는 철강에서 이차전지·수소·AI 등으로 다변화되고 도시공간은 관광·문화·정주 인프라로 재편되고 있다. 정책 집행도 시민 중심 일자리와 사회적경제에 집중돼 ‘산업도시 탈피→미래복합도시’ 전환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포항은 단순한 산업 다각화가 아닌 지방혁신의 실험장”이라고 평가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철강의 도시를 넘어 미래도시로 도약하겠다”며 “산업전환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실현해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 ‘철강산업 위기 극복’ 특별법 청원 열기 확산 포항상공회의소 나주영 회장은 지난 7월 ‘철강산업 지원특별법 제정’ 청원을 제안해 약 열흘 만에 7000명 이상 동의를 얻었다. 이 법은 급변하는 통상환경과 탄소중립 압박에 직면한 철강산업을 맞춤형으로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대전환을 요구한다. 나 회장은 “철강산업은 국가경제 기반산업으로, 친환경·디지털 전환에 천문학적 투자와 장기 인내가 필요하다”며 “특별법은 산업 붕괴를 막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도 긍정적 검토 의사를 밝혔다. 철강산업은 국가 제조업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친환경 전환 없이는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며, 철강 경쟁력 약화는 산업기반 붕괴로 직결된다. 특별법 제정은 산업과 지역의 동반 전환을 위한 국가 의지의 상징이라는 평가다. 포항시는 전방위적 혁신 전략을 통해 산업 위기와 도시 쇠퇴의 벽을 넘고 있다. 신산업 육성, 도시 재생, 일자리 창출, 사회적경제 활성화, 국제화 전략이 맞물려 지역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는 중이다. 철강도시의 틀을 깨고 ‘미래도시 포항’으로 거듭나는 변화의 흐름이 주목된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18

1만4900명 일하는 지역경제 근간… 폐업 공장 흉물 방치

스틸데일리는 지난 7월 포항철강산업단지 입주 기업과 관계 기관을 찾아, 지역 철강업계가 직면한 현안과 포항시·정부에 바라는 점이 무엇인지 청취했다. 관리공단과 포항시청, 그리고 스크랩·봉형강·판재·스테인리스·강관 등 다양한 철강업계 관계자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가동률 하락·유휴부지 방치 심각 수십억대 환경 관리 투자비 부담 철강 부진 인근 상권 침체로 직결 공단 전체 국가산단 승격 필요성 통상 공동 대응·수출 시장 다변화 △ 포항철강산단, 347개 공장 및 1.5만 명 근로자 근무 포항철강산업단지 관리공단(이사장 전익현, 이하 ‘철강공단’)은 산업 단지의 효율적인 관리·운영과 입주 기업체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업무 수행으로 국가와 지방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포항철강산업단지(이하 ‘철강산단’)의 총 면적은 약 1318만㎡(약 400만 평)로, 347개 공장과 1만4900여 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대한민국 철강 산업의 심장’이다. 철강공단 운영에는 포항시의 철강 대기업·관련 업체가 참여한다. 현재 17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를 두고 있으며, 당연직 이사 3명(경북도 공항투자본부장·포항시 부시장·포스코 포항제철소)을 비롯해 현대제철, 동국제강, 세아제강 등 14명의 비상임이사가 참여한다. 감사는 성진철강과 조선내화가 맡고 있다. 단지는 1~4단지와 청림지구로 구성되며, 2단지가 4005천㎡(104개 사 입주)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어 1단지(3930천㎡, 74개 사), 3단지(2612천㎡, 75개 사), 4단지(2047천㎡, 98개 사), 청림지구(589천㎡, 4개 사) 순이다. △ 가동률 저하·유휴 부지 확산…환경·법적 제약까지 최근 철강산단은 철강 경기 둔화, 환경 규제, 통상 리스크 등 복합적인 압박에 직면했다. 철강산단은 반세기 동안 지역 경제의 근간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 가동률 저하와 업체 폐업 등 구조적 어려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먼저, 가동률 하락과 유휴 부지 확산이 심각한 상태다. 단지 내 철강 업체들의 평균 가동률은 60~70%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폐업이나 휴업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대형 부지마저 장기간 비어 있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여파는 협력업체를 비롯해 물류·서비스업 등 연관 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환경 관리 부담도 크다. 오염 저감 설비, 오염수 재활용, 완충 조류 설치 등의 개선 사업이 추진되고 있지만, 수십억 원대에 달하는 초기 투자비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개별 중소·중견기업이 자체적으로 설비 투자와 인력 확충을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다음은 국가산업단지 지위의 불균형 문제다. 일부 단지만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돼 세제 혜택과 각종 지원을 받고 있지만, 나머지 단지는 일반 산업단지로 분류돼 지원에서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전 단지를 국가산단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한 스마트화 참여의 장벽도 존재한다. 철강산단에서는 스마트 물류 플랫폼, 에너지 관리 시스템, 안전 모니터링 등이 일부 추진되고 있지만, 영세 기업은 초기 투자 부담으로 참여율이 낮은 상태다. 현장에서는 공동 물류창고, 스팀·압축공기 공동 공급 등 기반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 철강산단 입주 기업들의 외침 “교통·주거·통상…현실적 지원 절실” 철강산단 입주 기업과 상권 관계자들은 교통·주거 인프라, 통상 대응, 설비 투자 지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먼저, 교통·주거 인프라 개선 요구가 나왔다. 강관 제조업체 A사는 산단에 입주한 기업들이 직원들의 출퇴근 편의를 위해 현재 버스 노선과 정거장 확대, 직원들의 포항 거주 유도를 위한 6개월~1년 단위 주거 지원 혜택 도입을 요청했다. A사 관계자는 “교통과 주거가 개선되어야 인력 확보가 수월해지고 현장 안정성이 높아진다”라고 힘주어 설명했다. 통상 대응력 강화도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다른 강관 제조업체 B사는 미국의 50% 고율 철강 관세로 미국으로의 강관 수출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율 관세가 사실상 미국 내 생산을 강제해 국내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으며, 정부의 대미 협상력이 불충분하다는 비판도 제기했다. B사 관계자는 “강관 수출의 경우 하반기에 집중되는 업계 특성상 주 52시간 제도의 유연성 확대 없이는 수출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호소했다. 철 스크랩 업체 C사 관계자는 “포항 철강 업계는 포스코 중심으로 경기 둔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이로 인한 제조업 가동률 하락·스크랩 발생량 급감·건설 수요 부진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 중”이라며 “업종을 막론하고 포항 내 산업 분위기 반전이 예상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D사 관계자는 “외국산 고효율 설비를 도입할 때 정부의 R&D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 상황이 있어 개선될 필요가 있으며, 국내 개발 장비만 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탄소중립 목표와 연계해 전력 절감, 탄소 저감 설비 도입 등은 기업만의 책임이 아닌 정부와의 공동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포항 철강 업계의 어려움이 장기화되면서, 포항시 소재 소상공인의 매출 타격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철강산단의 침체가 인근 상권 침체로 곧장 연결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철강공단내 한 카페 운영자는 “최근 1년 새 매출이 약 30% 감소했으며, 철강사 직원들의 회식과 미팅이 감소하면서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소상공인들은 포항시가 철강 대기업과 협력 업체뿐만 아니라, 2·3차 공급망과 자영자들까지 모두를 살리는 정책을 정부·지자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호소했다. △ 포항시 “철강·2차전지 동반 성장, 산업 다변화 추진” 포항시는 철강과 2차전지 산업의 동반 침체로 지역 경제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지난 7월 ‘철강산업 선제 위기대응 지역’ 지정 신청을 완료했고, 9월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산업 다변화 전략으로 ‘3+1’ 전략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항시는 기존 철강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산업 다변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3+1 전략으로써 우선적으로 ‘2차전지, 바이오, 수소’를 육성하고, 그 외 마이스(MICE) 산업을 발전시킬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포항시는 전시·컨벤션센터 1단계 공사를 진행 중(북구 영일대 인근, 2027년 초 준공 목표)으로, 향후 다보스포럼처럼 탄소중립·녹색성장 중심의 세계적 행사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했다. 또 탄소 중립 및 녹색 성장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수소·2차전지·철강 산업의 연결 구조를 강화하는 동시에,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발맞춰 포항시 차원의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밖에도 포항시는 바이오산업과 관련된 인프라는 시 차원에서 갖춰져 있는 반면에 임상·의사 및 과학자 숫자가 부족해 추후에는 대형 제약사와의 협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로써 포항을 ‘수소 시대의 선도 도시’, ‘녹색 성장 중심지’, ‘철강 기술의 메카’로 육성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 포항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삼각축’ 포항 철강산업의 회복을 위해 철강업계는 다섯 가지 우선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포항철강산업단지의 국가산단 승격이다. 포항철강산업단지 전 구역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해 세제·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 경쟁력과 지역 일자리 창출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둘째, 환경 인프라에 대한 국비 지원이다. 폐수 처리, 오염 저감, 재활용 설비 등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안정적인 국가 예산을 투입해 기업들의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셋째, 공동 물류·에너지 인프라 구축이다. 물류창고, 스팀·압축공기 공급망 등 공동 인프라를 마련해 영세 철강기업들의 스마트화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넷째, 통상 공동 대응 채널 운영이다. 미국의 고율 관세 등 통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업계·협회가 함께하는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수출 시장 다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탄력 근무제 도입 논의다. 계절별 수요 변동과 수출 집중 시기에 맞춰 노사 간 탄력적 근무제를 도입해 생산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제안이다. 철강업계는 이러한 법·재정·민관 협력의 삼각축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포항이 다시 ‘대한민국 철강의 심장’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포항시가 처한 현재의 복합 위기는 구조 전환의 기회가 될 수 있으며, 정부·지자체·기업이 속도감 있게 협력할 때 지역 산업 생태계는 회복 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화에서는 포항철강산단의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포항 내 철강사들이 어떤 전략과 청사진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스틸데일리 이명화 기자(lmh@steelnsteel.co.kr)·곽단야 기자(ykd230614@steelnsteel.co.kr)

2025-08-17

철강 도시 포항, 지난 10년간 생산·고용·수출 모두 ‘역성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강경 관세 정책이 재개되면서 한국 철강산업의 심장인 포항이 정면 충격을 받고 있다. 철강 일변도의 산업 구조에 글로벌 무역 질서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장기 침체에 빠진 포항 경제의 ‘시계’가 멈춰가고 있다. 이번 특집은 경북매일신문과 철강전문지 스틸데일리가 공동으로 철강산업의 심장, 포항의 현재를 진단하고 희망과 미래를 조망해보기 위해 3회에 걸친 기획특집을 마련했다. 1편 ‘포항의 현실을 직시하다’에서는 철강 침체가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고, 2편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기업과 정책을 조명한다. 마지막 3편 ‘희망과 비전을 말하다’에서는 지역 지도자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포항의 비전과 성장 전략을 전한다. <편집자 주> 1970년대 발전 이끈 ‘산업의 쌀’ 美 관세·中 경쟁 등 외부에 ‘취약’ 포항 산단, 10년 새 12.8% ‘생산 ↓’ 지역 유일 ‘석유화학’만 성장 기록 산업침체 따른 인구감소 변화 심화 철강 외 산업 육성·구조 전환 필요 △10년 역성장···‘철강 중심’의 구조적 취약성 노출 1970년대 고도성장기, ‘산업의 쌀’이라 불린 철강을 공급하며 한국 제조업을 이끌어온 포항은 지난 10년간 생산·고용·수출 모든 분야에서 역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올해 들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전보다 더 강도 높은 관세 정책을 시행하면서 타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번 관세 조치는 특정 품목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철강제품에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포항 지역 기업들은 수출 단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국내 판매마저 저가 중국산 철강재 공세로 잠식되고 있어 ‘내수·수출 이중 압박’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의 조강 생산량은 2014년 1640만t에서 2024년 1339만6000t으로 18.3% 감소했다. 연평균 감소율 -1.8%다. 설비 노후화와 재해(2022년 태풍 힌남노), 다품종 소량생산 전략 등 구조적 요인에 더해, 중국산 제품의 글로벌 시장 잠식이 생산 위축을 가속했다. 이는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산업 경쟁력의 체질적 약화를 시사한다. △산업단지 전반 침체···유일한 예외 ‘석유화학’ 포항철강산업단지 총생산액은 같은 기간 17조590억원에서 14조8810억원으로 12.8% 감소했다. 1차금속(-10.5%), 조립금속(-24.4%), 비철금속(-40.3%), 기타업종(-27.5%) 모두 줄었고, 석유화학만 45.2% 늘었다. 하지만 석유화학의 규모는 전체 산업단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회복 모멘텀을 만들기엔 역부족이다. 이 같은 업종별 편차는 포항 산업구조가 특정 품목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신호다. 1차금속의 부진이 곧바로 전체 생산 감소로 이어지는 ‘원-포인트 취약성’이 드러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를 방치할 경우, 향후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무역 규제 강화 시 포항 경제가 더욱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출 부진···시장 점유율 하락 가속 산업단지 수출액은 2014년 43억9900만달러에서 2024년 33억5000만달러로 23.8% 감소했다. 주력 품목인 1차금속이 24.8% 줄어든 영향이 컸다. 석유화학 수출은 같은 기간 97% 늘었지만 절대규모가 작아 전체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포항시 전체 수출액 역시 114억2100만달러에서 92억3300만달러로 19.2% 줄었다. 반면 수입은 4.1% 증가에 그쳤다. 이는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와 글로벌 수요 둔화가 동시에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철강제품의 대체재가 늘고,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포항산 철강재의 가격·품질 경쟁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고용·소비 위축···인구 구조 악화 산업 침체는 곧바로 지역 고용·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포항의 주택 매매 건수는 2014년 1만2057건에서 2024년 7350건으로 연평균 4.4% 감소했다. 내수 기반이 약화하면서 지역 상권의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나마 지역내 내수 기반이 취약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관광 등 유동인구가 늘어나면 다소 이를 보완 내지는 완충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포항 도심지의 핫플레이스로 초기에 관심이 컸던 포항운하 방문객수는 2014년 연간 43만1459명이 방문했었으나 2024년에는 89.1%가 감소한 7만7958명으로 쪼그라들었다. 포항운하크루즈의 탑승객수 역시 2014년 13만5052명이었으나 10년이 지나는 동안 55.9%가 줄어든 5만9596명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역 관광산업에 있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이를 통한 여타 관광유관산업으로 시너지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인구 감소세는 뚜렷하다. 2014년 52만4276명이던 포항 인구는 2024년 49만9352명으로 2만4924명 줄었다. 내국인 인구는 2만7787명 감소했고, 외국인 인구가 2863명 증가해 일부 감소폭을 상쇄했다. 지역별로 보면, 남구는 10년간 2만5704명이 줄었고 북구는 780명 늘었다. 북구의 경우 인구 변동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남구를 포함한 동지역 등에서 그동안 흥해읍과 장량동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아파트분양이 이루어지면서 지역내 인구이동이 일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북구의 경우에도 흥해·장량동 등 신규 주거지 개발로 해당 지역 인구는 늘어났지만 중앙동, 죽도동, 용흥동과 같은 도심의 ‘동’ 지역은 모두 인구가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는 결과적으로 전통시장인 죽도시장이나 중앙상가와 같은 도심 상권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실제 부동산통계정보(R-One)에 따르면 포항 중앙동의 2024년 3분기 집합상가 공실률은 32.45%에서 올해 2분기 39.08%로, 소규모상가도 같은 기간 16.32%에서 18.95%로 심각한 상태로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남구의 인구 유출은 철강산업 위축에 따른 타지역 전출이 주된 원인으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한 인구통계 변화가 아니라 지역 소비·교육·의료 인프라 전반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철강만으론 생존 불가···산업 다변화 시급” 전문가들은 포항이 철강 의존도를 줄이고 2차전지 소재, 고부가 기계부품 등 신성장 산업으로 수출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산업 다변화 과정에서 기존 철강 생태계와의 연계, 인력 재교육, 투자 유치 등 상당한 과제가 뒤따른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점에서, 중장기 로드맵과 재정·정책 지원이 필수적이다. 인구 유출 억제와 생활 인프라 확충, 고급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층 정착 유도도 병행돼야 한다. 산업과 도시 구조를 동시에 개편하지 않으면, 철강산업 회복만으로는 포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경고다. 포항은 지금, 철강산업 재도약과 신성장 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서 있다. 이를 놓친다면 포항의 미래 성장곡선은 다시 반등하기 어려울 수 있다. 다음화에서는 이러한 포항경제의 현실 진단을 기반으로 지역내 각 경제주체가 어떠한 방향으로 새로운 미래 포항 경제를 가꾸어 나갈 것인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2025-08-17

세종대왕 아들들의 ‘태’ 묻은 태봉을 지켜오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선석산 끝자락에 조용히 솟아오른 꽃봉오리 모양의 작은 산봉우리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자식들의 태를 묻은 태봉이다. 그 숫자가 놀랍게도 18명의 자식과 1명의 손자란다. 그 역사 현장을 나즐로 찾아 나섰다. 자동차를 주차장에 주차하여 놓고는 안내판의 설명에 따라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태봉으로 올랐다. 솔숲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고 발걸음이 저절로 느려진다. 마치 시간이 쉬어가는 길목이자,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억이 만나 속삭이는 풍경이다. 오솔길의 소나무들은 사람을 맞이하는 문이자, 왕자의 영혼들이 솔바람으로 합창하는 생명의 복도 같았다. 태봉에 제 올리러오던 왕실의 사신들 선석사 드나 드는 수행자·마을 사람들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그늘이 돼 주던 느티나무·소나무·팽나무의 가로 숲길 일제강점기 지나며 강제 이식·벌목 등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은 ‘귀한 존재’ 숲속 오솔길 돌계단을 따라 150m쯤 오르니, 세종대왕자 태실이 봉안된 태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발 258.2m의 완만한 봉우리에 조성된 이곳은 조선왕조의 혼이 담긴 성역이다. 태실은 태어나자마자 아기의 태를 담아 땅에 봉안하던 조선 왕실의 의례, 생명의 뿌리를 정성스레 모시던 신성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세종의 아들 18명과 단종을 합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그중에는 다섯 왕자의 태실이 사각형의 기단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있지 않았다. 나머지는 조성 당시의 형식을 간직한 채 생명의 출발점이자, 왕실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던 한 왕조의 기원이 담겨 있어 나를 숙연하게 했다. 왕자들의 태실 앞에 왕자보다는 세종대왕이 먼저 생각났다. 말과 글이 달라 뜻을 표현하기 어려운 일반 서민에게 빛과 희망이 된 한글 창제 때문이다. 대왕께서 반포하신 훈민정음은 백성의 입술에 빛을 내려 준 글이었다. 말은 있었으나 글이 없어 침묵하던 민중의 목소리에 문을 열어 준 그 위대한 한글 창제는, 단지 소리를 기록하는 도구를 넘어서, 마음을 전하고 사유를 나누는 문학의 뿌리를 틔운 생명의 씨앗이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시와 수필, 소설, 희곡 등 문학을 발전시키고 즐겁고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자연과 사람, 고통과 사랑, 역사와 꿈이 한글이라는 그릇 안에서 꽃을 피웠다. 조용한 백성의 가슴속에도 시심이 깃들게 한 그 위대한 애민의 문자, 그것은 조선이 우리에게 건넨 가장 고귀한 선물이자, 오늘 우리가 문학으로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었다. 태봉에서 내려와 선석산 아래에 있는 명찰 선석사를 찾았다. 고찰 선석사로 들어가는 가로수를 따라 걷는 길은 너무 인상적이었다. 느티나무, 소나무, 팽나무 등 오래되고 거대한 노거수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가로 숲을 이루었다. 그 늘어선 나무의 모습 또한 여느 나무 못지않게 괴이한 모습이 아름답고 멋진 산사의 풍경을 연출했다. 아마 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이곳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이 나무를 심어 인공 가로 숲을 만들었다기보다 기존의 울창한 숲의 나무를 베고 길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다양한 나무들로 멋진 가로 숲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길에서 문득 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살을 본다. 빗방울이 말라간 자리에 맑은 이슬이 맺혀 반짝인다. 느티나무의 주름진 껍질 사이로, 오랜 세월을 이겨낸 생명의 의지가 돋아난다. 500년을 버텨온 느티나무 앞에 섰다. 아득한 시간 속에서 자리를 지키며 사람과 계절을 품어 온 나무는, 마치 선석사로 들어서는 영혼들의 수호자 같다. 노거수는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한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 아래를 지나니, 300년은 족히 넘었을 소나무들이 바람결에 춤을 춘다. 하늘로 뻗은 가지는 자유롭고도 단정하며, 땅에서 솟은 줄기는 묵묵한 지조를 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옛 선비의 절개처럼 서 있다. 팽나무 노거수가 해안 지방이 아닌 이곳 조용한 산사에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게 남달라 보였다. 길을 따라 흐르는 개울물은 선석산에서 흘러온다. 맑은 물소리는 나무의 숨결과 어우러져 마치 한 편의 시처럼 들린다. 예로부터 선석사로 드나드는 수행자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태봉에 제를 올리러 온 왕실 사신들이 오르내리던 길이었다. 그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고, 비와 눈을 피할 그늘이 되어 주던 나무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느티나무는 민중의 신목으로 여겨져 마을 어귀나 사찰 입구에 즐겨 심었다. 느티나무의 펼친 가지는 품처럼 넓어 누구든 그 아래에서 쉼을 얻을 수 있었고, 소나무는 절개와 기개의 상징으로 우리 국민이 선호한 나무였다. 선석사 가로 숲은 그렇게 조선왕조의 예법과 백성들의 일상이 만나는 경계에 서 있었고, 오랜 세월 그 사연들을 묵묵히 품어 온 자연 가로 숲이었다. 역사적 기록으로 보면, 이 숲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강제 이식이나 벌목의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은 귀한 존재다. 태실이 전국적으로 훼손되거나 이전될 때도 성주 태봉은 예외적으로 원래 자리를 지켰고, 그 길목을 지키는 나무들 역시 뿌리째 뽑히고 베어지는 아픔을 면했다. 가로 숲은 침묵의 저항이자 살아남은 기록이며, 조용한 수호자였다. 오늘날 그 가로 숲길을 걸으면 바람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그 길을 걷는 이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조용히 옮기는 이유는 어쩌면 그 숲이 기억하는 것들이 너무나 깊고도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주 인촌리 선석사 가로 숲은 단지 오래된 나무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삶과 시간, 믿음과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생명의 서사시이다. 이곳을 걷는 이마다 나무로부터 위로와 깨달음을 얻으며 많은 것을 사유하게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나뭇잎처럼 흔들리다, 바람처럼 스며든다. 선석사는 신라 효소왕 692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래는 신광사로 불리다가 고려 공민왕 1361년, 나옹왕사 혜근이 이곳으로 옮겨오며 선석사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큰 바위(禪石)가 터에서 나와 절 이름이 되었고, 그 바위는 지금도 선석사에 서 있다. 임진왜란으로 불탔다가 다시 중창된 절은 조용하고 단아하다. 대웅전과 태장전, 명부전과 칠성각, 사천왕문과 산신각이 나란히 어우러져 있으며, 대웅전은 조선 후기 다포양식의 맞배지붕 구조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선석사 경내에도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 등 수백 년 된 벚나무가 살아가고 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태실이란 왕실의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씻어서 태항아리에 담아 봉안한 곳을 말한다. 태을 묻는 과정이 장태(藏胎)는 고려 시대도 있었으며 왕의 태를 묻었으나 조선 시대에 이르면서 왕자와 공주의 테를 묻었다. 조선 초기부터 장태 의례는 왕실의 주요 의례였으며 엄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태가 국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명당인 이곳의 태봉까지 태를 옮겨 태실을 조성한 것은 태어난 아기의 무병 장수를 기원하는 동시에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러한 장태 의례는 조선 후기까지 이어지면서 절차가 간소화되었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세종 20년 1438년에서 세종 24년 1442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세종의 아들 18명과 손자인 단종을 합쳐 모두 19기의 태실이 모여 있다. 보통 1기씩 조성되어 따로 떨어져 있는 태실과는 달리 이곳에는 많은 수의 태실이 모여 있는데 전국 어디에도 이런 규모의 태실은 없다. 일제강점기 전국의 태실이 일본에 의해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일부 옮겨졌을 때에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제자리를 지켜 옛 모습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 태실의 초기 형태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면서 왕실의 태실 조성 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자료이며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태란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이루는 말. 봉안이란 시신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그릇이나 봉안당에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는 아기의 태를 담아 모시는 것을 뜻한다.-(안내판 글 옮김)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13

석굴암, 제국은 어떻게 전리품으로 삼았나

■ 성전을 향하여 석굴암통일대종 전각은 물먹은 나무처럼 묵직하게 젖었다. 사방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운무가 피어 산등선을 기어오른다.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짙은 안개가 혼령처럼 밀려와 몸을 묶고 시야를 가린다. 눅눅한 공기 사이로 사람과 건물이 사라졌다 보이곤 했다. 계단을 오르고 길을 따라 걷는다. 돌계단을 오르던 중 앞서 걷는 소녀를 보았다. 각자 혼자인 우리는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 낯설었지만 낯섦이 마냥 불편하지는 않았다. 인사를 나누고 금세 길동무가 된다. 토함산 기슭, 나무 아래 석조유물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정제되지 못한 채 흙바닥에 놓인 석물은 장맛비에 젖어 눅눅한 기운을 한껏 머금었다. 감실벽석, 감실천정석, 받침석, 석상받침대, 용도를 알 수 없는 석재들까지, 빗방울은 가만히 표면을 적신다. 푸른 이끼가 낀 단면엔 연꽃무늬 조각과 아치형 구조, 미완의 기둥, 얕게 새겨진 음각의 곡선이 드러나 있다. 표지판엔 쓰인 ‘용도불명’의 글자 앞에 서자 시간의 결이 혼란스러워지는 듯하다. 소녀는 조심스레 석물 사이로 들어가 돌 하나하나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따라 석조의 결을 오래 들여다본다. 산은 잠잠했다. 소녀도 나도 말이 없었다. 미처 맞물리지 못한 돌들의 옛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토함산 기슭 운무에 잠긴 통일대종 석굴암 산길 따라 놓인 석조유물들 유리벽 너머 정좌한 석불의 웅장함 돌기둥의 미세한 문양·솟은 천개석 염불하는 스님 등 성스럽고 아늑해 1915년 일제의 석굴암 보존 공사 후 원형 등 훼손… 파괴에 가까운 ‘보수’ 조선의 문화유산, 정복의 상징으로 ■유리벽 안의 석불 우리는 묵묵히 발끝을 세우며 젖은 돌계단을 밟는다. 계단 위, 금속판에 새겨진 석굴도 앞에서 둘 다 한참을 들여다본다. 평면도와 종단면에 나누어 새겨진 선은 복잡하면서도 질서가 있다. 석실, 전실, 통로, 본존불, 감실, 궁륭의 구조까지 세밀하게 표시해 놓았다. 소녀는 금속판을 손가락으로 더듬는다. 구조의 정밀함에 마음을 뺏긴 듯하다. 석굴암 전각 입구 관람 안내문은 정중하게 우리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유리벽 너머로만 보라’는 당부다. 보존을 위한 거리의 간격, 허락된 틈으로 우리는 조심스레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른 숨소리도 죽인 채 우리는, 서로 다른 눈으로 하나의 풍경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손으로 다듬어진 석불은 조명 아래 환하게 빛난다. 정좌한 석불은 숨이 막힐 듯 웅장하다. 그 앞에 앉아 염불을 외는 스님은 정중하다. 웅장한 석불과 염불 속에 어떤 경외가 인다. 숙연한 마음이 저절로 따라왔다. 석불의 눈매는 고요하다. 묵언을 수행하듯 입가엔 미묘한 미소가 번지는 듯하다. 눈꺼풀은 반쯤 감긴 듯하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가라앉아 있는 듯하다. 어깨는 넓고, 가슴은 잔잔하게 부풀어 있으며, 손끝은 법계를 상징하듯 가지런히 모아졌다. 옷자락은 어떠한가. 바람 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매끄러운 주름을 이루었다. 돌의 결을 따라 흘러내린 유연한 곡선과 은은한 품격은, 바라보는 이의 숨을 조용히 멎게 한다. 홀린 것인가. 소녀는 말없이 서 있고, 이국의 성스러운 가르침을 따라 마음도 흐르는 듯했다. 석실 내부는 낮은 숨결들이 모여 점점 근엄해지고 있다. 본존불을 둘러싼 감실에는 보살상들이 석불을 향해 각자의 위치에서 경배하고 있다. 돔을 따라 새겨진 십일면관음과 사천왕상은 조명이 스칠 때마다 부드럽거나 때로는 거친 입체로 떠오른다. 돌기둥 위의 문양은 살아 있는 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결을 드러낸다. 성큼성큼 걸어와 나의 죄를 낱낱이 물을 것 같이. 천장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게 솟아오른 천개석이 받치고 있다. 밀폐된 느낌보다 아늑함이 먼저 인다. 석굴암은 지금도 종교와 과학, 조형과 정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머문다. 침묵이 감싼 석실 안에는 수백, 수천 번의 예경(禮敬)과 무언의 기도가 쌓였을 테다. ■‘보수·복원’이라는 이름 1912년 겨울,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 초대 조선총독) 총독이 토함산에 올랐다. 눈 덮인 봉우리 끝에서 마주한 석굴암은 폐허에 가까웠다. 돔을 덮은 봉토는 무너져 내렸고, 감실과 주실 사이에는 균열이 깊게 퍼져 있었다. 처참했다. 조선 병탄을 정당화하려 했던 제국에게, 동양 최고의 석굴사원이 무너지는 것은 자존심의 훼손이자 상징의 실추였을 것이다. 석굴암은 그해 총독의 명령 아래 ‘보수’라는 명분으로 완전히 해체되기 시작되었다. 1913년 여름, 설계 조사를 마친 총독부는 공사에 착수했다. 본격적인 해체가 시작되자 석굴암의 모든 부재가 완전히 분해되었다. 봉토는 벗겨졌고, 석실의 석재는 순서대로 땅 위에 내려졌다. 원형 그대로 남겨진 본존불과 천장을 꾸민 천개석 둘레를 비계와 작업 인부들이 둘러쌌다. 벽면을 가득 채운 감실의 보살상들은 모조리 떼어 땅으로 내려졌고, 판석들은 길게 늘어서 노출되었다. 해체된 석재 중 파손된 것들은 새로 다듬었다. 마모된 면은 치석했고, 균열 난 것은 덧붙였다. 그러나 떼어낸 감실의 석조들은 위치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전실 조각 배치는 흐트러지고, 원래의 유기적 질서는 재조립 과정에서 무너졌다. 아수라상은 옹벽 안에 갇혀 있었다. 일제의 보수는 파괴에 가까웠다. 전실과 진입 공간엔 시멘트와 자갈을 섞어 옹벽을 쌓았다. 돔 전체에는 1미터가 넘는 두께의 콘크리트가 입혀졌다. 그리고 흙으로 덮고 잔디를 심었다. 1915년 9월 15일, 석굴암 보존 공사 낙성식이 열렸다. 총독부 고위 관리들과 지방 관료, 기자들이 토함산 꼭대기에 모여 성대한 개안 법회를 거행했다.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저들끼리 자축하며. 석굴암 표면은 말끔해지고, 잔디 위에 심은 나무들은 자리를 잡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비가 스며들어, 콘크리트 벽면을 타고 흘렀다. 습기는 균열 사이 사이로 스며들어 곰팡이가 슬고 석태와 청태가 끼었다. 내부가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야욕과 훼손 1910년대 석굴암 1차 보수공사 기간 중, 총독부는 본존불 상부 천정석에 ‘日本’ 두 글자를 음각했다. 언제, 누가 새겼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공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만행이 아닌가 싶다. 조선총독부의 명시적 지시나 묵인 아래 진행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단지 나라 이름을 새긴 일이 아니었다. 제국 일본이 조선의 문화정신과 종교성 위에 자국의 우월성을 나타내기 위해 이름을 올린 만행이었다. 조선의 역사 유물을 제 것이라 여긴 자들의 야만은 침탈의 증거였고, 정신적 훼손의 절정이었다. 일제는 다 무너져 가는 석굴암을 구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새로 단장된 석굴은 완전 해체와 재조립을 하며 제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틈과 틈을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사용해 메웠다. 어쩌면 그들에게 보수는 위장이었을 것이다. 본질은 탈취된 채, 일본의 제국성을 상징하는 기념비로 만들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데라우치 총독은 경주 방문 시 ‘不二法門(불이법문)’ 2척 크기의 네 글자를 써주고 석굴 벽에 새기도록 명령했다. 자신의 글씨를 명작이라 칭하며 본토에서 석공까지 불러 새기도록 했다. 한나라의 성스러운 불전 위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었던 제국의 수장은, 문화유산을 하나의 낙서판으로 삼으려 했던 모양이다. 단순한 오만이 아니라, 문화유산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행동이었다. 데라우치의 만행은 일본인의 눈에도 낯부끄러운 일이었다. 오쿠다 고운은 석굴암 입구 바위에 새긴 데라우치의 글씨를 두고, ‘문화재를 훼손하는 몰지각한 낙서에 불과하다’고 일갈했다. 또한 ‘天下無雙(천하무쌍)의 名山靈地(명산영지)를 장식하려는 명필’이라는 백작의 의도는 헛되었고, 글씨는 정교하지도 않았으며, 감탄은커녕 조롱을 불렀다. (김진호역, 오쿠다 고운, ‘신라구도 경주지’, 1920, 217쪽.)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이 불전 위에서조차 멈추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치졸한 흔적으로 남았다. 신성한 바위 위에 새긴 네 글자는 제국의 오만을 드러낸 휘호였고, 일본인조차 얼굴을 돌릴 만한 부끄러운 흔적이었다. 어디 데라우치뿐이었을까. 석굴암 관광이 시작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가 앞다투어 석굴암에 이름을 새기려 안달했다. 안상석 위에, 감실 곁에, 신중상 밑에 자신의 이름과 염원을 남겼다. 그들이 남긴 낙서는 신성의 자리에 남긴 치욕이었다. 일제는 석굴암을 다양하게 촬영했다. 그리고 공사 전과 후의 사진을 나란히 붙였다. 무너진 조선의 유산과 단장된 일본의 석굴암을 대놓고 대비시켰다. 사진 속 단장된 석굴암은 식민의 무대였고, 조선은 무능의 상징으로 그려졌다. 제국의 위대함을 기념하듯 황족과 장군, 관리들은 석굴암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석굴암은 곧 선전물로 가공되었다. 엽서로 만들어 관광객을 상대로 팔았다. 석굴암은 순례지가 아닌 볼거리로 전락했다. 성소가 아니라 전리품이 되었다. 조선의 불전은 상품이 되었고, 침탈의 증거로 진열되었다. 일본제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함부로 의미와 가치가 바뀌고 있었다. *일제가 신라 문화유산에 집착한 이야기와 석굴암을 경성으로 이송하려 했던 이야기는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2025-08-13

여행자들의 발길 이끄는 바다와 숲의 매혹적인 결합

올해 1월 1일 운행을 시작한 ITX-마음 열차는 경북은 물론, 부산과 울산에서 강원도를 여행하길 원하는 이들에게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 두 가지 면에서 모두 그렇다. 그 사실을 한국교통연구원 철도교통연구본부 김경택 부연구위원의 논문 ‘동해선 개통의 영향과 교통 정책’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늘어선 기암괴석과 백사장이 아름다운 ‘추암해변’ 해돋이 명소 ‘추암 촛대바위’ 관광객들 끊이지 않아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무릉계곡’ 옛사람이 왜 ‘신선이 살던 곳’이라 했는지 절로 이해 철마다 얼굴 달리하며 관광객 반기는 다양한 명소 인심 좋은 상인들과의 만남이 여행의 즐거움 더해 글 싣는 순서: 1. 철도 왕국 일본에서 찾는 ‘지역 관광’의 미래 2. ‘당일치기 여행’ 맞춤 일본 철도 3. 관광으로 인구 소멸 위기 ‘호쿠리쿠’ 살리기 4. 일본 기차 여행의 꽃이 된 ‘도시락’ 5. 울산, 이제는 ‘유잼(U-재미) 도시’다 6. 철도 불모지 경북, 동해선 개통 후 새 역사 시작 7. 이번 역은 “천만관광 해양도시 삼척입니다” 8. 강릉, ‘철도 날개’ 달고 동해안 비상 “ITX-마음 열차는 태화강역, 포항역, 삼척역, 동해역을 거쳐 강릉역까지 운행된다. 부산, 대구, 경주 등에서 강릉까지 교통수단별 통행시간과 비용을 살펴보면, 부산-강릉 구간은 자가용 4시간 16분(8만8600원, 톨게이트 및 연료비 포함), ITX-마음 4시간 49분(3만4900원), 시외버스 6시간 3분(4만3700원)의 순으로 나타났다. 통행시간만 보면 부산-강릉 구간에서는 자가용이 가장 빠르나, 통행비용은 ITX-마음이 두 배 이상 저렴하다. 특히 통행시간을 시간가치로 환산한 후 통행비용을 합한 값인 일반화 비용을 보면 ITX-마음이 가장 경제적인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ITX-마음을 타고 포항에서 삼척으로 향한 건 지난 7월 19일. 적지 않은 비가 쏟아졌지만 기차 안은 쾌적하고 조용했다. 삼척은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서있는 해변과 울울창창한 청정 숲을 지닌 강원도 들머리의 관광도시다. ▲삼척, 바다와 숲의 행복한 결합 이뤄내고 여행자 반겨 삼척항에서 삼척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이사부길’은 매혹적인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이 높고, 은빛 모래가 10리를 이어지는 맹방해변 또한 발전 가능성이 높은 관광 명소다. 소나무, 유채꽃, 벚꽃이 철마다 얼굴을 달리하며 여행자를 반긴다. 왼편으로 바다를 바로 옆에 끼고 40여 분 유유자적 달리는 레일바이크도 삼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다. 기자 역시 직접 레일바이크에 올라 그 인기를 실감했다. 삼척의 환선굴, 대금굴, 이끼폭포, 소한계곡, 검봉산 자연휴양림은 바다가 가진 매력과는 또 다른 짙푸른 매혹을 여행자들에게 선물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삼척은 바다와 숲의 매력적인 결합을 이뤄낸 후 관광객을 기다리는 도시. “천만 관광도시로 성장시키고 싶다”는 삼척시의 의지는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여행의 추억은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완성되는 법. 기자의 경험에 한정시켜 말하면 삼척엔 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진심으로 손님을 대하는 상인이 몇 있었다. 일부 지역 관광지 상인들과 달리 목소리 높여 호객을 하지 않고, 바가지를 씌우지 않은 정직한 가격으로 활어를 판매하는 횟집 주인, 성실한 태도로 음식을 만들어 점잖게(?) 판매하는 두부요리 전문식당 상인을 삼척에서 만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개통된 동해선 철길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삼척으로 불러들일 게 분명하다. 손님이 많아지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종여일(始終如一)의 자세로 장사를 이어갈 상인이 비단 삼척만이 아닌 동해선이 통과하는 도시 곳곳에 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집’이 아닌 ‘길’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절대다수의 여행자가 같은 심정이리라. ▲동해 무릉계곡에서 만난 나비와 절경 자랑하는 추암해변 삼척역에서 동해선 기차를 타고 15~16분이면 가닿을 수 있는 동해역. 그 일대에도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풍경이 적지 않다. 먼저 추암해변. 어떤 곳이냐고? 간략하게 한국관광공사의 설명을 아래 옮긴다. “추암해변은 기암괴석이 늘어선 해안 절벽과 고운 백사장이 아름답다. 해변의 크기는 작지만 절경을 감상하기엔 충분하다. 추암해변은 해돋이 명소로도 유명한데, 그중 추암 촛대바위는 사계절 내내 여행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해선 기차를 타고 동해역에 갔다면 거리가 조금 멀어도 꼭 가봐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다. 무릉계곡(武陵溪谷)이다. 삼척의 숙소에서 일찍 일어난 새벽. 무릉계곡을 찾았다. 그리고 보았다. 너무나 화려한 색깔의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나비 한 마리를. 어떤 형용사로도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어째서 옛사람들이 호암소에서 시작해 용추폭포에 이르는 그 계곡을 ‘신선이 살았던 공간’이라 했는지 이해될 듯도 했다. 동해선 철길은 바다와 숲이 조화를 이뤄낸 삼척과 무릉계곡의 비경을 간직한 동해로 가는 길을 보다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강원도 관광산업의 효자’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기차·도보여행 마니아가 바라본 ‘동해선’⋯ 포항에 거주하는 김대균(65)씨는 기차와 도보여행 마니아다. 동해선이 개통된 후 10여 번을 기차에 올랐고, 경상북도와 강원도 곳곳을 오갔다. 지난 7월 말. 그를 만나 동해선 이용 소감과 함께 향후 개선됐으면 하는 점을 물었다. -올해 1월 1일 동해선이 온전히 열렸다. 상반기 통계를 보면 10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동해선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당신 역시 동해선 ‘단골 이용자’라고 들었는데. “6개월간 열 번 정도 동해선을 탔다. 직장을 다녔더라면 주말에 이용했겠지만, 이젠 퇴직한 상태라 주중에 자주 다녔다. 처음엔 토·일요일만이 아니라 평일에도 예약이 쉽지 않았다. 이젠 코레일 앱 사용법을 익혀 조금은 쉽게 예약을 하게 됐다.” -동해선을 타고 경북은 물론, 강원도 각지를 다녀온 것으로 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해선 여행지가 있다면 추천 부탁한다. “삼척, 울진, 강릉, 정동진 등 동해안 전체가 아름다운 풍경이 많은 곳이다. 어느 한 곳만을 특정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 경우엔 영덕을 추천하고 싶다. 갈 때는 포항에서 열차를 타고가 돌아올 때는 해안 둘레길을 따라 걸어서 온 적이 있다. 꼬박 1박2일이 결렸는데, 그 과정에서 동해의 자연환경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동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 하루라도 빨리 동해선이 강릉을 넘어 속초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동해선 철길을 오가는 요즘 기차와 예전 기차를 비교하면 어떤가.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있다. ITX와 누리로 기차는 최신형이고 깨끗하다, 연착도 거의 없다. 내가 예순다섯이다. 젊을 땐 중앙선 낡은 기차와 털털거리는 버스를 갈아타고 강원도에 다녔다. 단축된 시간과 쾌적함을 보자면 지금의 변화는 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동해선 애용자로서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차를 이용해 동해선이 지나는 조그만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관광지와 식당, 숙소 정보를 꼼꼼하게 담은 구체적인 여행안내서가 출간되고, 그게 역마다 무료로 비치됐으면 한다. 지역마다 있는 관광안내소 직원들이 더 친절하고 전문적인 관광 지식을 갖출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계속>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8-12

‘포항시 꿈드림’ 학교 밖·은둔 청소년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

관계 맺기, 영화 보기, 외출하기에서부터 검정고시 도전, 바리스타 등 자격증 따기···. 고립·은둔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것들이다. 이들이 단절했던 세상과 다시 연결해주는 ‘멘토’가 있는데, ‘포항시청소년재단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이하 포항시 꿈드림)다. 포항시 꿈드림이 지난해 8월 마련한 대학 입시설명회의 풍경은 여느 설명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교복 대신 편안한 옷에 검정고시 성적표를 손에 쥔 청소년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다. 입시 전략 특강에 나선 강사가 “검정고시 성적으로도 수시 전형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알리자 청소년들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설렘으로 바뀌었다. 막연하기만 했던 ‘대학’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어서다. 교재부터 단계별 검정고시 준비… 합격 이후 대입설명회·컨설팅·개별 진로 상담 지난해 포토샵·바리스타·베이킹 등 자격증 취득 32명·직업훈련 연계 17명 성과 ‘카페데이’ ‘무비데이’ 등 진행하며 고립·은둔 청소년’ 과 지속적 연결고리 만들어 상담 부스에서는 20여 곳의 대구 ·경북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이 검정고시 성적표를 토대로 학과별 특성과 입시 지원 전략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생생한 정보를 접할 절호의 기회였다. 신모양(18)은 “상담을 통해 막연하기만 했던 대학 입학 도전이라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면서 “덩달아 향후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포항시 꿈드림 관계자는 “입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은 아이들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줄 수 있었다”라면서 “올해도 8월 중에 2026학년도 입시설명회를 열겠다“고 전했다. 포항시 꿈드림은 검정고시 준비부터 도와준다. 인터넷 강의와 교재 지원에서부터 대면·비대면 멘토링, 모의고사와 오답 풀이까지 단계별로 체계적으로 돕는다. 합격한 이후에는 대학 입시설명회, 컨설팅, 개별 진로 상담도 해준다. 올해 제1회 검정고시에서 초졸 5명, 중졸 17명, 고졸 68명 등 90명이 합격증을 받았다. 지난해 같은 회차 대비 12.5% 늘었다. 지난해 전체로는 검정고시 합격자 131명, 대학 진학자 30명, 정규·대안학교 복귀자 4명이라는 성과도 냈다. 포항시 꿈드림 관계자는 “낯을 가리거나 불안해하면서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던 학교 밖 청소년들이 꾸준한 격려와 상담을 거치면서 점차 마음을 열고 검정고시 공부를 하며 자신감을 회복했다“면서 “공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합격 통지서를 직접 손에 들고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포항시 꿈드림은 포토샵(GTQ), 바리스타, 베이킹 등 자격증 취득도 돕는다. 경북도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경북꿈드림)가 주관하는 ‘직업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1단계 진로상담부터 4단계 인턴십까지 단계적으로 진행한다. 국민취업지원제도나 내일배움카드와 연계해 심화 과정으로 나아간다. 지난해 자격증 취득 청소년은 32명, 직업훈련 연계는 17명이다. 문화·관계 체험도 다양하다. 올해는 경주월드 수학여행(20명), 계명아트센터 뮤지컬 관람(11명), 영일대 인근 서바이벌 게임과 문화관광(10명) 등을 진행했는데, 새로운 경험과 또래 관계 형성이라는 성장의 자양분을 얻었다. 건강 유지 비법도 가르쳐준다. 9세 이상 18세 이하 청소년을 대상으로 3년 주기의 건강검진을 해준다. 지난해 35명이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 소견이 발견되면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사업과 연계해 치료까지 해준다. 포항시 꿈드림의 손길은 세상과 한 걸음 떨어진 고립·은둔 청소년에게도 닿는다. 포항에는 2023년 기준 431명의 학교 밖 청소년이 있고, 이 가운데 70~80명은 연락조차 끊긴 ‘고립·은둔 청소년’으로 분류된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대상자로 관리하는 청소년은 29명이다. 전국적으로는 고립·은둔 청소년이 14만 명에 달한다.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사회적 고립 청소년 비율은 5.2%, 만 13~18세 인구 기준 13만 9913여 명이다.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 4명 중 1명이 “10대부터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고립·은둔 청소년‘과 연결 고리 만드는 것부터 쉽지 않다. 중고거래 플랫폼 광고, 행정복지센터, 클래스 상담교사, 청소년 밀집 지역 아웃리치 등으로 끊임 없이 연결 고리를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 맺기’다. 고립·은둔 청소년과의 관계 형성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 데다 좀처럼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방에 숨어 있는 경우 대면도 어렵다. 상담사들은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간다. ‘네가 필요할 때 언제든 나와도 된다’, ‘나는 늘 여기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청소년의 관심사를 찾아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간식을 반기는지, 어떤 활동에 흥미를 느끼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맞춤형 홈키트를 건네면서 심리적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말없이 곁을 지키기도 한다. 노력이 쌓이면 청소년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 처음엔 현관문을 열고, 시간이 지나면서 거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상담사는 대화나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 조용히 함께 머무는 것 자체가 관계 형성의 시작이다. 거실에 익숙해진 이후에는 외출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카페 데이’다. 익숙하지 않은 외부 환경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사람이 적고 조용한 카페를 고른다. 처음에는 상담사가 음료를 대신 주문하고 다음 만남에는 청소년이 직접 주문하게 한다. 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외부 활동은 점차 확대된다. 단순히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적응을 위한 일종의 ‘리허설’이다. ‘무비 데이’는 부모와 함께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영화는 끊긴 가족의 대화를 다시 잇는 매개체가 된다. 버스를 타는 활동처럼 소소하지만, 일상적인 외출도 진행한다.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해보는 경험 속에서 청소년은 세상과 조금씩 연결되는 법을 배운다. 항상 순조롭게 관계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시 문이 닫히고, 연락이 끊기는 일도 생긴다. 이럴 때 상담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다시 문 앞에 선다. 이 꾸준함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부모 상담도 필수다. 지친 부모가 자녀를 이해하고, 소통법을 배우기 시작하면 그 변화는 자연스럽게 청소년에게 전해진다. 부모가 변하면 청소년도 서서히 마음을 열고 상담에 응한다. 결국 가족의 변화가 청소년 회복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는 셈이다. 포항시 꿈드림의 다양한 사업은 ‘고립·은둔 청소년 원스톱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시행한다. 지난해부터 전국 12개 지자체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경북에서는 포항이 유일하다. 지난해 포항시 꿈드림은 체험 키트 42명, 카페 데이 23명, 무비 데이 10명, 학습 지원 6명, 부모 교육 8명, 솔루션 협의회 9회를 진행했다. 유성재 센터장은 “청소년 복지는 단순히 보호가 아니라 자립으로 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도“라면서 ”관계의 끈을 놓지 말아야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설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이 있다면 언제든 센터의 문을 두드려 달라”고 당부했다.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

2025-08-07

경주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청백의 정신

경주 최진립(崔震立, 1568~1636) 장군의 생가 잠와고택 충의당은 상류층의 도덕성을 얘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뿌리이다. 곧 경주 최부잣집, 명문 가문의 출발지다. 45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최씨 가문을 빛나게 한 유훈 정신의 출발 선상에는 충의당 동쪽에 있는 최 장군이 직접 심은 회화나무가 있다. 나이 450살, 키 15m, 몸 둘레 4.7m의 거대한 노거수이다. 수많은 수난의 역사를 겪었지만, 아직도 건재하게 경북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234-2번지에 생을 이어가고 있다. 회화나무 노거수에 깃들여있는 최진립 장군의 충절과 청백의 정신은 여름 더운 햇살에도 불구하고 푸른 하늘 향해 가지를 뻗고, 잎들이 바람에 손짓한다. 역사는 침묵 위에 기록된 울림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어떤 이의 삶을 통해 더욱 맑고 깊게 퍼진다. 병자호란의 참담한 국난 속, 나이 칠십을 바라보던 한 노장은 말에 올라 창을 들었다. “내 비록 늙어 잘 싸우지는 못하지만, 싸우다 죽지도 못하겠는가!”라는 일성은 조선의 마지막 충의(忠義)를 밝힌 횃불이 되었다. 그는 바로 정무공 최진립 장군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뿌리 최진립 장군 생가 경주 잠와고택 충의당엔 최 장군이 심은 나이 450살·키 15m·몸 둘레 4.7m 거대한 회화나무가 함께해 그 나무 아래서 자란 후손들 ‘가거십훈(家居十訓)’ 유산 삼아 청부 정신 피워내 회화나무 노거수 주변은 익명의 기부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장군의 동상과 업적을 소개한 글들을 새겨놓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의병을 이끌고, 왜적과 싸웠다. 그리고 사십여 년이 흐른 병자호란, 이미 노쇠한 장군은 다시 칼을 들었다. 몸은 늙었지만 뜻은 굳세었고, 용인의 험천에서 끝내 적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절하였다. 벼슬길에 있을 때는 녹봉을 아껴 향교를 고치고 성곽을 보수하며, 백성을 자식처럼 돌보았다. 나라는 그의 절개와 청렴을 높이 평가하여 청백리(淸白吏)로 선정하였고, 불천위로 모셔 그 정신을 길이 전하도록 하였다.” 싸움터에 쓰러진 그의 마지막 모습은 한 줄 시처럼 뜨겁고 장엄했다. 그러나 최진립의 위대함은 단지 무사의 충절에만 머물지 않았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공직자들에게 장군의 삶은 단순한 옛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공직은 부귀의 수단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고, 권위가 아니라 신뢰로 세워져야 한다. 탐욕이 아닌 절제, 아첨이 아닌 곧은 소신,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향한 따뜻한 눈빛. 최진립 장군의 삶은 이러한 공직자의 자세를 온몸으로 증명한 교과서이며, 우리는 그분의 숨결을 통해 오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최진립 장군의 위대한 정신은 그의 생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숭고한 뜻은 혈맥을 타고 이어져 후손의 삶 속에서도 실천으로 되살아났다. 그의 아들 최동량은 집안을 다스리는 도덕적 지침으로‘가거십훈(家居十訓)’을 지어 후손들의 삶을 경계하고 이끌었다.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말 것,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할 것, 흉년엔 땅을 사지 말 것, 과객을 후히 대접할 것, 100리 안 굶는 백성이 없게 할 것… 십계처럼 빛나는 그 가훈은 물질보다 사람을 앞세운 삶의 윤리였고, 부유하되 청렴하고 넉넉하되 절제하는 삶의 태도였다. 이러한 정신은 장군의 손자 최국선에게로 이어졌다. 그는 실제 만석꾼이 되었으나, 그 부를 권력의 사다리로 삼지 않고 백성과 나눔의 다리로 삼았다. 모내기와 시비법을 도입해 농법을 혁신했고, 흉년엔 차용 문서를 불태우며 빈민을 구제했다. 재산을 쌓기보다 ‘청부(淸富)’를 실천했고, 윤리 없는 풍요를 부끄러워했다. 이 같은 삶의 자세는 이후 400년 넘게 이어져 오늘날 ‘경주 최부자집’이라 불린 가문의 명예로 도덕적 자산이 되었다. 그 시작점, 곧 최진립 장군이 태어난 집이 바로 경주 내남면 이조리의 잠와고택 충의당(潛窩古宅 忠義堂)이다. 충의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한국적 원형이 꽃핀 공간이다. 생가 뜰에 뿌리를 내린 회화나무는 장군의 화신과도 같이 ‘부는 나눔을 통해 빛나고, 권력은 겸손을 통해 완성된다.’라는 장군의 정신을 지켜온 존재가 아닐까 싶다. 최진립 장군이 손수 심었다는 나무는 사백 해를 넘는 세월을 살아냈고, 지금도 충의당의 마당 한가운데에서 그늘을 드리운다. “임진왜란 때 최진립 장군이 갑옷을 이 나무에 걸면 나무가 능청 능청하였다.”라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바람과 비, 전란과 평화를 견뎌낸 회화나무는 이제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군의 분신이자, 가문을 지켜온 살아 있는 유산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당시의 인물들이 모두 세월에 묻히고 잊혀가는 가운데, 회화나무는 그 옛날의 장군의 기개와 정신을 일깨워 우리에게 숭고한 정신을 전하고 있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자라난 자식과 손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나무를 조용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아버지 최진립 장군의 모습으로 여겨왔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한데, 장군의 절개는 나무의 줄기요, 잎의 푸르름은 장군의 청백 정신으로 여겨졌다. 넓은 그늘은 후손들에게 쉴 자리와 삶의 방향을 일러주는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나무를 보면 사람을 생각하고, 사람을 보면 나무를 닮는다.”이조리의 회화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철학이고, 유산이며, 삶의 태도였다. 장군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뿌리는 나무를 타고 살아났고, 그 나무의 기품은 후손들의 마음에 뿌리내렸다. 가거십훈(家居十訓)은 나뭇잎처럼 가지마다 매달렸고, 청부(淸富)의 정신은 사계절마다 다시 피어났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회화나무는 단지 한 장군의 흔적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함께 품고 살아온 신비로운 생명체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해, 나무는 갑작스레 잎이 마르고 고사하여 죽은 듯 보였으나, 1945년 해방과 함께 다시 싹을 틔워 살아났다고 한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추위를 피하려고 불을 피우다 불꽃이 나무 둥치에 번졌고, 겉은 타버렸지만, 그 해를 지나 다시 푸른 잎을 피워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나라의 혼이 되살아난 징조라며 감격했고, 그 나무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생겨났다. 나무에 금줄이 쳐져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 수호신으로 동제를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몇 차례의 죽음과 부활을 겪으며 살아온 회화나무 노거수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이는 장군의 기개가 뿌리로 살아 있었고, 나라의 영혼이 가지마다 깃들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람 불 때마다 나뭇잎은 떨림이 아닌, 조용한 대화처럼 울렸고, 나무 아래를 지나던 이들은 저마다 가슴 한편에서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그렇게 한 장군의 철학이자, 한 민족의 의지로서 오늘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주 최씨 가문의 육훈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벼슬을 하지 말라. :공직은 봉사의 자리이지 부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님을 강조.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부를 독점하지 않고 사회와 나누는 윤리. ▲흉년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남의 불행을 기회로 삼지 말라는 가르침. ▲과객을 후히 대접하라. :타지에서 온 손님, 특히 가난한 이들을 따뜻이 맞이하라는 뜻.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가문의 책임은 울타리 안에 있는 이웃 전체를 포괄한다는 선언.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겸손과 절약을 몸에 익히게 하는 교육.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8-06

철길 개설이 이끈 천년 고도 경주의 근대화 이면엔…

■근대의 길, 신작로 경주의 근대는 길 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신작로(新作路), 말 그대로 새로 만든 길이다. 1909년, 대구에서 경주를 잇는 길이 처음 놓였다. 대구에서 영천을 거쳐 서악과 서천교, 봉황대로를 지나 도심으로 닿는, 지금의 태종로다. 1912년엔, 경주읍성이 철거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경주를 방문한 총독 데라우치의 차량이 남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하여, 남문인 징례문(徵禮門)과 함께 성벽을 함께 철거했다 한다. 조선의 체면이 단지 통행 불편의 이유로 허물어진 것이다. 같은 해 불국사까지 신작로가 새로 깔렸다.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해 경주로 들어왔다. 경부선 기차가 대구역에 도착하면, 관광객은 오츠카 자동차회사의 버스를 탔다. 1920년대부터는 경주역 앞에서 오카모토 자동차회사의 차량이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불국사와 석굴암으로 향하는 수학여행이 가능해진 건 신작로 덕분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앞서 확충된 교통망 위로 경주의 근대가 달리고 있었다. 1918년 11월 경주~불국사 협궤구간 개통 현재 서라벌문화회관 자리에 역 들어서 1936년 중앙선과 동해남부선 교차점 인성동동 이전, 영남동해안 거점역할 맡아 일제의 통제·침탈 도구된 철도·신작로 신라고분·마을들 가로지르고 유적 훼손 첨성대는 증기기관차 진동·매연에 노출 2021년 12월 역사속으로 사라진 경주역 문화공간 ‘경주 문화관 1918’로 재탄생 ■쇳길, 조선을 누르다 1918년, 동해남부선과 경동선의 선로가 경주를 가로질렀다. 철로는 대구에서 경주를 지나 불국사까지 닿았다. 마을이 둘로 갈라졌다. 신라의 고분과 유적 사이를 굽어 돌긴 했지만, 유적지를 완전히 비켜 가지는 못했다. 선로가 놓였다는 건, 누군가의 땅이 잘려 나갔고, 누군가의 삶이 쫓겨났고,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다는 뜻이다. 철로 개설엔 땅과 노동력, 자갈과 흙 등 많은 자원이 필요했다. 일본은 먼저 조선 정부를 압박했다. 1898년 체결된 ‘경부철도합동조약’에는 기가 막힌 조항이 들어 있었다. 선로와 창고, 공작물에 필요한 토지를 조선 정부로부터 ‘무상으로 빌린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자금을 빌려주겠다는 명목으로 ‘차관(借款)’을 제공했고, 조선은 그 빚을 등에 진 채 스스로 백성의 땅을 빼앗아 넘겨주어야 했다. 겉은 조선의 이름이었으나, 속은 일본의 철저한 계획하에 이루어진 강탈이었다. 평양에선 한성판윤 박의병이 토지를 평당 7전으로 일괄 매입하라 명령했다. 백성들은 반발했다. 일본 헌병이 진압에 나섰고, 지방 관리들은 기회라 여긴 듯 사기와 횡령을 일삼았다. 거간꾼들이 백성의 눈앞에 흙먼지를 흩뿌렸다. 경의선은 조선 최초로 민간의 항거가 집단적으로 터진 철도였다. 교하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이 몰려들어 강제노동을 거부했고, 일본군은 병력을 동원해 포위했다. 노동자는 하루 12시간 이상을 무임금, 저임금은 물론 중노동에 시달렸다. 욕설과 곤봉, 발길질은 허다하고, 보란 듯이 총부리를 겨눴다. 철로는 계속 계속 놓였다. 조선의 땅에 조선의 노동력으로. ■쇳길의 기억 1918년 11월 1일, 경주~불국사 간 협궤철도 구간이 개통되며 경주는 관광도시로서 첫 선로를 갖추었다. 철도는 대구에서 시작해 영천을 거쳐 경주 시내를 가로질러 불국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경주역은 지금의 서라벌문화회관 자리에 있었다. 선로는 현재의 태종로를 따라 팔우정을 지나 불국사 방향으로 이어졌다. 시내 중심을 관통하는 철길은 일제의 경주 관광개발 전략과 맞물려 있었다. 도시의 거리 위를 협궤열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고, 철로 위엔 관광객의 시선과 일본 제국의 의도가 함께 달렸다. 1935년부터 공사가 진행되면서 선로는 개량되었다. 이듬해인 1936년 경주역은 시내 서편의 성동동 일대로 이전했다. 새로 이전한 경주역은 중앙선과 동해남부선(현 동해선)이 만나는 교차점이었다. 경부선에서 대구로 진입한 관광객은 중앙선을 타고 경주에 닿았고, 이후 포항이나 울산·부산으로 연결되는 철도망을 이용했다. 경주역은 한때 영남 동해안권 철도교통의 중간 거점이자 환승역으로 기능했다. 이 시기를 거쳐 경주는 철도의 도시로 자리매김했다. ■경주를 가로지른 쇳길 경동선 부설에 대한 경주의 명확한 기록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이 평화롭게 동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라의 고분을 지나 마을과 논밭을 가르며 들어온 철도는 지형을 틀고, 일상의 동선을 뒤엎었을 것이다. 유적의 파괴, 삶의 단절, 사라진 집들과 옮겨진 무덤 등, 그 자리에선 경주 사람들의 절망이 울렸을 것이다. 철로는 산업의 길이 아니었다. 근대화의 선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철도는 일제의 통제와 침탈의 도구였고, 조선을 수탈하는 병참의 길이었다. 조선은 철도망을 통해 일본 본토로 연결되었고, 조선의 곡식과 광물 등 많은 자원이 실려 나갔다. 경주의 철길은 유적의 숨결마저 갈라놓았다. 1918년, 동해남부선(현 동해선)과 경동선(폐지)이 경주를 통과하며 불국사역까지 뻗었다. 신라 고분군과 마을 사이를 무자비하게 가로질렀다. 사천왕사 터 일대는 철도공사로 일부 훼손되었다. 동궁과 월지도 본래 궁궐 후원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철도와 도로망의 개설로 배후 공간과 단절되면서 고립된 형태로 남게 되었다. 1910년대 개설된 초창기 신작로는 첨성대와 불과 5미터 남짓한 거리까지 근접해 있었다. 그로 인해 첨성대는 증기기관차의 진동과 매연에 노출되었다. 문화유산 보존의 관점에서는 큰 위협이었다. 1926년 서봉총 발굴이 이루어졌다. 일본인 모로가 히데오(諸岡秀生)는 서봉총 발굴에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건설업자를 끌어들였다. 발굴 과정에서 퍼낸 흙과 자갈은 경주역 기관차 차고지를 매립하는데 쓰였다. 이는 ‘유적 보호’라는 명분이 ‘현대화’라는 실익에 밀려났던 당시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1921년, 경주 읍성 남문인 징례문과 남쪽 성벽이 헐린 일이었다. 읍성의 석재는 경주 시내 곳곳의 도로·관공서 건축에 사용되었다. 경주 읍성 중심의 행정 체제도 이때 완전히 해체되었다. 1902년 경주 우편국, 1908년 경찰서와 법원이 차례로 들어서며, 조선시대의 동헌(府衙)과 객사(東京館) 건물은 반복적인 개축과 철거, 행정기능의 변화 속에 원형을 잃었다. 1937년, 김유신묘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철도 선로 부설 계획이 있자, 김유신의 49대 후손은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에게 탄원서를 올렸다. 국보급 유적의 정기를 훼손할 뿐 아니라, 김해 김씨 삼백만 후손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라는 항변이었다. 최소 364미터 이상 거리를 두고 선로를 조정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총독부는 “현지 지형상 선로 변경은 불가하며, 문화의 진전에 순응해달라”라고 답변했다. 이 ‘순응’이라는 단어 속에는 일방적 결정 통보만 있을 뿐, 협의와 고려는 없었다. 경주 사람들에게 신작로와 철로는 단지 근대화, 산업화의 의미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어른들은 조상의 머리 위로 쇳덩이가 달리니 조상이 누울 자리가 없다고 한탄했다. ■다시 경주 폐역이 된 경주역 담장 밖에 섰다. 더 이상 기차는 오지 않고, 사람의 기척도 닿지 않는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역은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다. 플랫폼에 울려 퍼지던 휘슬 소리는 멈췄지만, 역사의 잔향은 아직 바람에 머무는 듯하다. 오랜 시간 이별과 만남, 희망과 절망이 켜켜이 스며든 불국사역은 조용히 폐허의 기억을 더듬는다. 경주는 일제가 박아 넣은 철로를 과감히 걷어냈다. 침탈의 선로 위에 놓였던 근대의 궤적은 철거되고, 잃었던 도시의 형상을 되살리려 노력 중이다. 철길은 외곽으로 옮겨졌고, 도심은 본래의 숨결을 되찾는 중이다. 발굴과 복원을 거듭하며, 경주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폐역이 된 불국사역은 낡은 역명판 아래 풀만 그림자를 무성히 드리웠다. 도심 속 경주역도 2021년 12월 28일, 역사의 기능을 멈추었다. 구 경주역은 현재 ‘경주문화관 1918’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낡은 역사의 자리에 새로운 문화가 깃들고 있다. 내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마침 한 여성 서예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닫힌 창구 대신 펼쳐진 화선지 위로 흐르던 필획은, 멈춘 시간 위에 얹힌 또 하나의 기록이었다. 구 경주역은 이제 기차 대신 사람과 예술을 싣고, 조용한 문화의 열차가 이 도시의 기억 속을 유영하고 있다. 경주의 철도는 멈춤이 아니라 이제 속도의 상징이 되었다. 2010년 개통된 KTX 경부고속철도의 중간 정차역인 신경주역은 중앙선 복선전철, 동해선 전철, 경부고속철도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과거 경주의 중심을 가르던 기차는 이제 외동읍 건천리 들판을 가로질러 더 멀리, 더 빠르게 질주한다. 도심에서 멀어진 열차는 더 이상 풍경을 가르지 않는다. 그러나 멈춘 자리엔 여전히 사람들이 서 있다. 닫힌 승강장 아래, 수많은 작별과 재회의 순간이 겹쳐 흐른다. 경주의 철길은 멈추지 않았다. 내일을 향해 우리의 기술과 우리의 손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다.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