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반도체·IT업계는 성과급 잔치⋯대구경북 제조업 노동자들은 생존 압박 고물가·고금리·청년 유출 겹치며 “지역 중산층 기반 흔들린다” 우려
“성과급 수억 원”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 1인당 최고 6억원에 달하는 특별성과급 지급 합의 소식이 쏟아질 때마다 중소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허탈감이 번지고 있다.
◇삼성·SK하이닉스 vs 상위 500대 기업 임금 격차 7배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25일 매출 기준 상위 500대 기업 중 분석 가능한 211곳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직원 1인당 성과급을 포함한 실질 평균 연봉은 1억280만원이었다.
반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1억5800만원, SK하이닉스는 1억6800만원이었다. 여기에 올해 임금협상 합의로 지급받게 될 성과급을 합치면 1인당 7억원이 넘는 급여(세전 수준)를 받는다. 500대 기업의 거의 7배 수준이다.
통상적인 대기업 직원과의 격차가 이런 상황인데 중소기업이 산업의 거의 대부분인 대구경북 소재 기업에 다니는 직원들은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고, 갈수록 ‘넘사벽’이 되는 임금 복지 격차에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대구경북 중소기업 임금, 삼전의 10%에도 부족
서울과 수도권 AI·반도체 업계가 연봉 인상 경쟁을 이어가는 동안 대구경북 제조업 현장에서는 “버티는 것도 한계”라는 말이 나온다.
수도권 첨단산업과 지방 제조업 간 격차가 단순히 임금 수준을 넘어 삶의 안정감 자체를 갈라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구 달서구의 한 자동차부품업체에서 12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41)의 연봉은 4200만 원 수준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0%에 턱없이 부족하다. 성과급은 남의 나라 얘기다. 김씨는 대출 이자와 교육비 부담까지 커지면서 체감 생활 수준은 몇 년 전보다 더 낮아졌다고 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적게 벌어도 미래 계획은 세울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며 “아이 학원비와 대출 이자를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나아질 거란 기대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산업 현장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경북은 자동차부품·기계·금속·섬유 등 전통 제조업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상당수 중소기업은 원청 납품 구조에 묶여 있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부담이 올라도 납품단가 인상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갈수록 커지는 상대적 박탈감
지역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대구의 산업체에 근무하는 추모씨(40대)는 “지역 대학서 학창시절 아무리 A+학점을 받아 지역 최고 기업에 취직해도 내 삶은 그자리”라며 ”눈치보다는 그냥 이 지역 살면 이렇게 만족하고 사는게 중소기업 현실”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반면 수도권은 AI·반도체·플랫폼 산업 중심으로 임금 상승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업계는 대규모 성과급 지급 논의가 이어지고 있고 주요 IT기업들도 개발자 확보 경쟁 속에 연봉 인상 기조를 유지 중이다.
직장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커지고 있다.
취업 플랫폼 인크루트 조사에서는 직장인 10명 중 7명 이상이 IT·게임업계 연봉 인상 소식에 박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중소기업 재직자의 체감도가 가장 높았다.
성과급 격차도 뚜렷하다. 사람인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직장인의 평균 성과급은 중소기업의 두 배 수준으로 조사됐다. 성과급 자체를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 직장인 비율도 적지 않았다.
◇심각한 사회 갈등 야기할 수 있어
문제는 이런 격차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구경북에서는 청년층 수도권 유출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역 대학 취업 현장에서도 공기업이나 지역 제조업 대신 수도권 반도체·IT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구 한 대학 취업지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지역 중견기업 취업만으로도 안정적인 삶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며 “연봉과 복지 격차가 온라인과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면서 지방 제조업 기피 현상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물가와 고금리 역시 지역 직장인들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대출 이자와 생활비 부담은 급격히 늘었지만 임금 상승률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월급만으로는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 경제계에서는 수도권 첨단산업과 지방 제조업 간 격차가 장기화할 경우 지역 소비 위축과 인재 유출, 산업 공동화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대구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역 제조업 일자리만으로도 중산층 유지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산업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금과 자산 격차가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며 “지방 제조업 경쟁력 회복과 미래 산업 육성이 함께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 경제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경북 경산에 있는 한 대학 교수는 “거대기업에 종사하고,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것만으로 임금 격차가 이렇게 벌어지는 것은 심각한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기업 이윤의 사회적 배분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욱기자 kimjw@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