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으레 일본 정신사의 ‘심장’으로 호명된다. 한때 수도였다는 역사적 위상 때문만은 아니다. 천년 세월을 견딘 절과 신사, 인간의 욕망과 금욕이 교차하는 정원, 그리고 게이샤와 가부키 같은 문화 콘텐츠까지 겹겹이 쌓인 도시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1600여 개의 사찰과 400여 개의 신사, 그리고 17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자리한다. 서구 여행자들이 이 도시를 두고 ‘21세기에도 살아 있는 전통의 박물관’이라 말하는 이유다
△교토의 상징 금박으로 빛나는 킨카쿠지
교토의 상징을 꼽으라면 단연 킨카쿠지다. 흔히 금각사(金閣寺)로 불리는 이 사찰은 교토의 이미지와 거의 동의어처럼 쓰인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경호지라 불리는 연못이 시야를 연다. 그리고 그 수면 위에 금빛 누각이 떠오른다. 3층 구조의 건물은 층마다 건축 양식이 다르다. 1층은 귀족 주택풍, 2층은 무사풍, 3층은 선종 불전 양식이다. 권력과 종교, 귀족과 무사가 한 몸처럼 얽혀 있던 무로마치 시대의 질서가 건축으로 형상화된 셈이다.
킨카쿠지는 금이나 화려한 것에 매료되는 중국인관광객은 반드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킨카쿠지는 몇 번을 보아도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 홀로 빛을 내는 금각을 보는 순간 관광객의 입에서는 저절로 경탄이 터져 나온다. 킨카쿠지 앞에 있는 호수는 경호지(鏡湖池)라고 한다. 거울 못이라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킨카쿠지 3층 누각 건물이 마치 호수에 빠진 것처럼 그림자가 되어 일렁거린다. 유홍준 교수는 킨카쿠지가 ‘시각적 관능미’를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우아하고 날렵하면서도 가볍지 않은 모습을 보면 시각적 관능미라는 말이 실감이 간다.
이곳의 본래 이름은 로쿠온지다. 무로마치 막부 3대 장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조성한 별장 기타야마전이 그 기원이다. 그는 정치적 권위를 미적 권위로 치환하는 데 능했다. 천황을 초청해 연회를 열고, 명나라 사신을 맞이한 장소가 바로 이 금각이었다. 외교의 무대이자 권력의 극장이었던 셈이다. 찬란한 금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대의 야망을 반사하는 표면이었다.
그러나 영원해 보이던 아름다움도 불길 앞에서는 무력했다. 1950년, 한 승려 지망생의 방화로 금각은 전소됐다. 21살의 학승이었던 범인은 미시마 유키오 소설처럼 금각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신분열 때문에 화재를 저질렀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고, 작가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모티프로 소설 ‘금각사’를 집필했다. 그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파괴 충동을 교차시키며, 미와 광기의 경계를 파고들었다. 현실의 화재는 복원을 통해 수습됐지만, 문학 속 금각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복원된 누각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눈부신 금박을 두르고 서 있다. 파괴를 통과한 미학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견고해졌다
△독특한 정원의 절제된 모습 료안지
교토의 또 다른 얼굴은 절제다 사찰 순례지로 빼놓을 수 없는 료안지에 가면 절제의 의미를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료안지는 절 자체보다 석정(石庭)이라 불리는 돌 정원이 명성을 떨친다. 1450년 건립한 선종사찰로 전라과 화재로 인해 대부분 소실되어 지금은 현관 겸 본당역할을 하는 방장과 일부건물만 남아 있다. 석정은 일종의 가레산스이 (枯山水)양식이다. 일종의 마른 정원이다. 나무도 꽃도 없다 일본의 전통적인 정원양식인데 돌과 모래로 산수의 풍경을 표현하는 정원이다. 중국의 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차경기법이라고도 한다.
료안의 석정은 하얀 모래(白砂)와 돌만으로 구성된 약 250㎡ 넓이인 작은 정원이다. 처음에는 돌과 모래만 남겨두고 정원이라고 하는 것이 의아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앉아 돌 정원을 바라보자니 화려한 정원보다 더 고졸한 맛이 풍겨왔다.
관광객들은 정원 바로 앞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정원을 바라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엄숙하게 돌을 바라보며 지긋이 눈을 맞춘다. 석정에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5개, 2개, 3개, 2개, 3개씩 무리지어 있는 합쳐서 15개의 크고 작은 돌이 배치되어 있다. 물을 상징하는 자갈이 전체 15개의 돌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이 놓은 위치 때문에 한눈에 돌은 14개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한 개는 깨달음을 얻어야 보인다고 하지만 이는 말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사람이 지은 이야기 같다.
추상적이면서 해석이 어려운 석정이지만 긴장감이 없고 편하게 마음에 다가온다. 그것은 석정을 둘러싸고 있는 흙담 때문이다. 낮고 갈색인 아부라도베이(油土?)라고 불리는 이 흙담은 자체가 유명하다. 유채나 찹쌀을 씻고 생긴 물을 섞어 반죽한 흙으로 만든 이 흙담이 이렇게 함으로써 더욱 강고하게 되고 방수성(防水性)도 높아진다고 한다. 멋지면서도 실용성이 있는 담장이다. 만약 담장이 높고 흰색이었다면 석정 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모른다.
료안지의 석정은 지금까지 누가 만들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15세기 유명화가였던 소아미라는 사람이라는 설도 있고 료안지 주지였던 선승 도쿠호 젠케쓰라는 이도 있다. 료안지는 어느 계절에 와도 색다른 맛을 풍기지만 벚나무가 만개하기 시작하는 봄에 와야 제 맛을 느낀다고 한다. 료안지 석정은 세계적인 명소가 된 것은 1975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곳을 방문해 크게 칭찬하면서 부터다.
호류지 북문으로 나가면 대숲이 나온다. 한 아름도 넘는 굵은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솟구쳐 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며 유명세를 탔고 이후 드라마와 CF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숲이다. 대략 450m 남짓한 길이 깔린 이 대나무 숲은 일본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외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자주 찾는 곳으로 전통 복장인 기모노를 입고 데이트를 하거나 웨딩촬영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특히 연인과 함께 찾는다면 인연을 맺어준다는 노노미야 신사에 들러 소원을 빌면서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
△ 수상가옥 후나야와 아마노 하시다테의 절경
교토의 북쪽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펼친다. 교토부 이네만에 자리한 이네는 ‘후나야’라 불리는 선박가옥으로 유명하다. 마치 홍콩의 란타우 섬에 있는 수상 가옥 마을인 타이 오(Tai-O)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새다. 후나야라는 말이 ‘배의 집’을 말하는 것이니 선박가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1층은 배를 대는 선착장, 2층은 생활공간으로 구성된 독특한 구조다. 5킬로미터 해안선을 따라 200여 채가 줄지어 서 있다. 만조 때면 집들이 물 위에 떠 있는 듯 보인다. 바다와 삶의 경계가 흐릿하다.
마을 중앙의 양조장 무카이주조는 붉은 빛의 사케 ‘이네만카이’로 이름을 알렸다. 흑미로 빚은 이 술은 달콤한 향과 산뜻한 산미를 동시에 지닌다. 작은 어촌의 양조장이 빚어내는 한 잔에는 바다의 기후와 마을의 시간이 스며 있다. 지역의 개성이 곧 브랜드가 되는 순간이다.
이네에서 바닷길을 따라 30분정도 가면 일본의 3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아마노 하시다테가 나타난다. ‘하늘에 닿는 다리’라는 별명이 붙은 곳으로 길이 3600m 폭은 40~110m 의 바다 위 소나무 길을 볼 수 있다. 자연적으로 생긴 8000여 그루의 소나무가 바다위에 기분 좋은 산책길을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 가로수길 좌우로 바다가 보이는 백사청송의 길은 교토사람들의 자랑이다. 이곳에 가면 머리를 다리 사이로 숙이고 하시다테의 풍경을 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다리 사이로 거꾸로 풍경을 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거나 하늘에 닿는 다리로 보인다고 한다.
인근의 모토이세 고노 신사는 오랜 세월 지역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울창한 숲과 바다, 모래톱과 신사가 어우러진 장면은 교토가 결코 내륙의 고도에만 머무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산과 바다, 화려함과 절제, 권력과 수행이 한 도시 안에서 공존한다.
교토는 과거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다. 오히려 과거를 현재의 언어로 번역해내는 공간이다. 금빛 누각의 찬란함도, 돌과 모래의 침묵도, 대숲의 수직선도, 바다 위 가옥의 일상도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시간은 어떻게 공간이 되는가.
그 질문에 대한 교토의 대답은 단순하다. 허물어지면 다시 세우고, 비워두되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 화려함은 절제와 균형을 이루고, 고요함은 내면의 울림으로 확장된다. 그래서 교토는 천년의 도시이면서 동시에 오늘의 도시다. 과거가 현재를 밀어내지 않고, 현재가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여행자는 비로소 시간을 걷는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