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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길을 걸으며 여행을 떠나요"

최병일 기자
등록일 2026-05-26 09:21 게재일 2026-05-2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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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책 ‘내 젊은 날의 숲’에서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속의 먼 뿌리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드은 살아 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고 말했다.  자연을 벗삼아 맨몸으로 길을 걷는 것 만큼 좋은 여행이 있을까? 여행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푸르른 산들바람을 쐬며  나무그늘 우거지고 풀향기가 물씬 풍기는 녹음방초의 계절을 느껴보자. 숲의 청량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할 것이다. 그순간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포항 내연산 숲길 

내연산 숲길_한국관광공사 제공 

청하골 코스의 시작은 대개 보경사 에서 열린다. 신라 진평왕 시절 창건됐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은 내연산의 깊이를 설명해주는 첫 문장 같은 공간이다. 절집을 지나 숲으로 접어들면 길은 본격적으로 계곡을 따라 흐른다. 물은 맑고, 바위는 오래되었으며, 숲은 사람보다 느린 시간으로 움직인다.

청하골ㅇ는 다양한 폭포들이 즐비하다. _한국관광공사 제공 

청하골은 흔히 ‘12폭포길’로 불린다. 이름 그대로 폭포가 이어지는데, 각각의 표정이 다르다. 상생폭포는 부드럽고, 보현폭포는 단정하며, 관음폭포는 신비롭다. 특히 관음폭포는 세 개의 굴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내연산의 백미로 꼽힌다. 그 아래 감로담에 햇빛이 스며드는 순간, 물빛은 옥색과 비취색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마침내 길은 연산폭포에 닿는다. 높이 약 20m. 거대한 암벽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한여름 더위를 단숨에 지워낸다. 폭포 아래 서 있으면 물보라가 얼굴에 닿고, 귓가에는 바위에 부딪히는 굉음이 가득 찬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조용해진다. 청하골이 사랑받는 이유는 단순히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연산에 있는 보경사 _한국관광공사 제공 

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일대와 소금강전망대로 이어지는 구간은 내연산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깎아지른 절벽 위 정자에 서면 청하골 계곡이 발 아래 펼쳐지고, 숲과 바위와 물길이 겹겹이 이어진다. 예부터 시인묵객들이 이곳을 찾았다는 이야기가 괜한 말이 아니다. 겸재 정선 역시 이 풍경을 ‘내연삼용추도’에 담아냈다.  

청하골 코스는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계곡을 따라 데크와 흙길이 이어져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 특히 여름철에는 계곡 바람 덕분에 더위를 피하기 좋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며 전혀 다른 산으로 변한다.  

내연산 청하골을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좋은 여행지는 결국 사람을 자연 앞으로 겸손하게 만드는 곳이라는 것. 빠르게 소비되는 관광지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자기 마음의 속도를 되찾게 하는 길 말이다. 동해의 바람은 산으로 스며들고, 산의 물은 다시 계곡이 되어 흐른다. 그리고 사람은 그 사이를 걸으며 오래 잊고 지냈던 감각들을 하나씩 되찾는다.

내연산 청하골은 그런 길이다. 단순한 트레킹 코스가 아니라, 마음속 먼지를 씻어내는 한 편의 숲길 여행이다.

△ 소나무 원시림의 원형 울진 금강송숲 

시원하게 뻗은 소나무의 숲길 울진 금강소나무길 _한국관광공사 제공 

금강송이 시원하게 뻗어 있는 울진 소광리 금강송숲은 들어서는 순간 시원한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소나무의 바다다. 소나무 원시림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했다는 이곳에는 금강송이 100만여그루 이상 자라고 있다. 수령만 해도 200~300년이 넘는다. 금강송은 궁궐 등 문화재 복원용으로 사용되는 최고 목재다.

이 때문에 금강송은 ‘소나무의 제왕’으로 불린다. 속이 황금빛을 띠어 ‘황장목’으로도 일컫는다. 궁궐과 천년고찰의 대들보로 쓰이니 살아서도 영광이요, 죽어서 목재가 돼도 천년을 이어 영화를 누린다.

울진 소나무 길을 걷다보면 보이는 맑은 소 _한국관광공사 제공 

생태숲 초입에는 최고 금강송인 530년 된 금강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가장 어른 소나무다. 조선조 제9대 임금 성종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되니 그야말로 조선시대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역사 그 자체다.

울진금강소나무길을 걷는 등산객들 _한국관광공사 제공 

금강송이 귀한 소나무다보니 예전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 황장금표가 바위에 새겨진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금강송을 1그루만 베어도 곤장 100대에 3년을 복역할 정도였다. 요즘으로 쳐도 중범죄에 해당할 정도니 조선시대 사람들이 얼마나 금강송을 귀하게 여겼는지 능히 짐작이 간다.

울울창창한 소나무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빽빽한 소나무숲 틈틈이 들어오는 햇살이 얼핏얼핏 얼굴에 닿으면 그지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입구에서 산책로를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2시간30분. 숲해설가가 금강송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심신을 치유하는 최적의 공간 장성 편백숲

피톤치즈가 소나기 처럼 쏟아지는 축령산 자연휴양림 _한국관광공사 제공 

숲은 일상에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전남 장성의 편백숲은 산세가 부드럽고 야트막해서 트레킹을 하거나 나들이 삼아 걷기 좋은 곳이다. 특히 항균물질인 피톤치드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최적의 힐링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축령산 숲은 인공으로 만들어진 조림지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헐벗은 산에 임종국 선생이 사재를 털어 250만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고 가꾼 것이 시작이다. 가뭄이 심할 때는 선생 가족이 물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에 물을 줬다고 한다. 다른 지역에도 편백나무 조림지가 몇몇 있지만 규모로는 축령산 조림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숲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란다. _한국관광공사 제공 

장성 편백숲에서 트레킹을 하려면 문일면 문암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평평하고 넓은 임도를 따라 산책하듯 걸으면 금곡영화마을이 나타난다.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드라마 ‘왕초’ 등의 배경이 됐던 산골마을로 1950~1960년대 시골 농촌의 전형을 보여준다. 마을에는 20여가구 1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마을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면 솔내음숲길(2.2㎞), 산소숲길(1.9㎞), 건강숲길(2.9㎞), 하늘숲길(2.7㎞)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장성 치유의 숲_한국관광공사 제공 

임도를 중심으로 나무가 울창한 숲은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내리는 임도 양쪽에는 수령 20~50년의 편백나무와 삼나무, 측백나무가 빽빽하다. 숲 트레킹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린다. 근처 홍길동 우드랜드도 같이 가볼 만하다

△ '성곽 아래 느리게 흐르는 시간…인왕산 자락길

성곽으로 이어진 인왕산 자락길 _한국관광공사 제공 

서울은 이상한 도시다. 빌딩 숲 사이를 걷다가도 어느 순간 조선의 시간이 불쑥 튀어나온다. 자동차 소음이 가라앉는 자리에 오래된 돌담이 나타나고, 골목 끝에서는 시인의 문장이 바람처럼 흔들린다. 그 풍경이 가장 선명하게 살아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왕산 자락길 이다.

인왕산은 높이 338m 남짓의 크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산은 언제나 특별한 존재였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이 능선을 따라 이어졌고, 겸재 정선은 이 산을 화폭에 담았으며,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 산 아래에서 세월을 건넜다. 인왕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성곽마다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_한국관광공사 제공 

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사직공원에서 시작해 수성동계곡, 청운문학도서관, 윤동주문학관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은 산책하듯 걸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럽다.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된 구간도 많아 남녀노소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걸음을 옮기다 보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의외의 표정을 발견하게 된다.
성곽 아래로는 서촌 골목이 펼쳐지고, 오래된 주택 담장 너머로 커피 향이 새어나온다. 바람은 소나무 냄새를 실어 나르고, 화강암 바위 틈 사이에서는 이름 모를 풀이 자란다. 도심 한복판인데도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인왕산 자락길을 걸으면 서울 시내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진다_한국관광공사 제공 

특히 수성동계곡 부근에 이르면 풍경의 결이 달라진다.
겸재 정선의 그림 ‘인왕제색도’를 떠올리게 하는 바위와 물길이 등장한다. 한때 복개도로 아래 묻혀 있던 계곡은 복원 이후 다시 시민들의 쉼터가 됐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가에 발을 담그고, 여행자들은 돌 위에 앉아 한참 동안 흐르는 물을 바라본다.

인왕산 자락길은 문학의 길이기도 하다.
윤동주문학관 에 가까워질수록 풍경은 조금 더 사색적으로 변한다. 낡은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문학관은 크지 않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윤동주의 시처럼 공간은 조용하고 담백하다. 문학관 뒤편 언덕에 서면 서울의 지붕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길의 속도다. 인왕산 자락길에는 사람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없다. 빨리 올라야 할 정상도 없고, 꼭 인증해야 할 포토존도 없다. 대신 오래된 돌계단 하나, 성벽 위 바람 하나, 골목에서 들려오는 생활의 소리가 여행의 기억이 된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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