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기획ㆍ특집

시간을 거슬러 올라 신라의 황금빛 ‘금관’ 과 마주하다

□ 신라의 빛 금관 경주의 대지에는 봄기운과 신라의 향기가 함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저 멀리 무덤들이 웅장하게 솟아 있다. 그곳엔 신라의 왕들이 누워 있고, 나는 신라의 왕들이 걸었고, 지금의 경주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을 따라 우리들의 빛을 만나러 간다. ‘금관’, 떨림이 일었다. 과연, 천 년의 시간을 넘어 그 찬란한 빛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 황금빛 시간의 조각을 만나기 위해 신라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국립경주박물관 어둑한 전시실, 차분한 어둠 한가운데 금관이 빛나고 있다. 유리관 속 금관은 마치 천년의 시간이 그대로 걸어 나온 듯하다. 시간의 틈새에서 흘러나온 신비로운 빛. 신라 왕들은 왜 이토록 화려한 금관을 머리에 썼을까. 권력의 상징이었을까? 아니면 하늘과 신에게 가닿고자 하는 염원의 상징이었을까? 금관의 가지는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뻗었고, 가지 끝에 달린 푸른 곡옥(曲玉)은 신라 사람들이 꿈꾸던 영원의 세계를 담은 듯 푸르다. 죽어서도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었을까. 죽어서도 나라를 다스리며, 하늘과 신에게 기원하고자 했을까. 황금으로 빚은 금관은 태양이 녹아내린 듯 강렬하다. 그러면서도 섬세하다. 빛을 머금은 금판 위에 새겨진 작은 무늬들은 마치 신라의 바람과 빛과 아지랑이와 물결을 담아낸 듯 일렁인다. 신라인들은 금으로 태양을, 옥으로 생명을 표현했다고 한다. 흔들리는 곡옥은 풀처럼 흔들리고, 금관을 둘러싼 장식은 별처럼 반짝인다.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금관은 단순한 치장의 장신구가 아닌 하늘과 땅, 생명과 죽음, 온 우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성한 상징물이었으리라. 신라 금관은 현재까지 모두 6개가 발굴되었다. 1921년 집터 수리 중 나온 최초의 금관총금관을 시작으로 금방울이 장식된 금령총금관, 그리고 스웨덴 황태자가 발굴에 참여한 서봉총금관, 셋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세상에 나왔다. 천마총금관과 황남대총금관은 1970년대 초, 우리 고고학 기술로 세상에 나온 금관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1972년쯤 도굴범들이 교동의 폐고분을 도굴하여 숨기고 있던 것을 되찾은 교동금관이다. 이중 금령총금관과 황남대총금관은 중앙박물관 소장이고 나머지는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그럼, 금관은 어디서 어떻게 발굴되어 현재의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걸까. 천천히 금관이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 노서동 집터 공사 중 나온 첫 금관 -금관총 금관(金冠塚 金冠, 국보 제87호) 일제강점기인 1921년 9월, 경주 노서동 중심가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구슬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파란빛을 띠는 게 아주 고급스러웠다. 지나던 일본 순사 미야케 요산(三宅與三·삼택여삼)이 눈여겨보고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봉황대 아래 언덕을 가리켰다. 미야케는 다급히 그곳으로 갔다. 인근에서 주막을 운영하던 박문환(朴文煥)이 주막 뒤뜰을 넓히고 돋우느라 언덕의 흙을 파다 쓰고 있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심상치 않은 파편들이 섞여 나오고 있었다. 미야케는 박문환에게 더는 흙을 파지 못하게 하고 곧바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경주경찰서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경찰서장 이와미 히사미쓰(岩見久光·암견구광)는 바로 조선총독부 고적조사 촉탁 직원인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제록앙웅)에게 연락했다. 둘은 곧바로 현장을 둘러보았다. 둘은 지독한 유물 수집가로 현장에서 심상치 않은 촉을 느꼈다. 규정상 현장을 보존하고 총독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이와미와 모로가는 모든 절차를 무시했다. 그리고 경주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 경주고적보존회 촉탁 와타리 후미야(渡理文哉·도리문재)와 경주보통학교장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대판금태랑)를 불렀다. 그리고 넷이 직접 연장을 들고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 발굴에 들어갔다. 모로가와 와타리가 직접 채굴하고 경찰서장 이와미와 경주보통학교장 오사카가 채굴 상황을 기록하고 발굴된 것의 분류와 정리를 맡았다. 매장 주체부가 드러났다. 모로가의 눈에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기대 이상의 것이었다. 금관이었다. 가슴이 벅찼다. 막 드러난 신라능묘의 황금관을 눈앞에 두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꿈같았다. 뒤이어 비취색 곡옥과 금사슬, 금허리띠, 금귀걸이 등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황금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유리그릇 편과 구슬목걸이 등 매우 귀중한 유물도 뒤를 이었다. 횡재도 이런 횡재가 없었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경주 군수 박광렬(朴光烈)이 다급히 현장을 찾았다. 파헤쳐진 능묘는 처참했다. 피장자가 묻힌 곳까지 마구 연장질을 해댄 현장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었다. 조상숭배를 금과 옥조로 여기며 살아왔거늘 조선의 정신을 뿌리째 흔드는 야만적인 행태에 치가 떨렸다. 군수는 상부에 보고하여 지시와 절차에 따라 진행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조선인인 경주 군수의 말은 무의미했다. 그들은 보고 선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군수를 철저히 따돌렸다. 군수는 이를 두고 볼 수만 없어 경상북도지사에게 긴급 보고했다. 도지사는 도청 직원을 급히 파견하는 동시에 조선총독부에도 긴급 전문을 보냈다. 하지만 이와미와 모로가의 막무가내 행실보다 모두 한발 늦었다. 발굴은 2~3일 만에 비전문가들에 의해 졸속으로 끝이 났다. 경주경찰서장이 법령에 따라 경무총장을 거쳐 조선총독에게 즉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모두 무시하고 연장부터 들이대 무단 채굴한 후 덮어버린 것이다. 그러니 현장 보존은 더더욱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때 모로가는 마치 모든 권한을 쥔 것처럼 주도했다. 뒤늦게 총독부에서 정식 파견된 일본인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매원말치)와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소천현부)는 절차와 방법을 무시한 난폭한 수습에 적잖은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과정이야 어떻게 됐든 ‘신라 금관 최초 발굴’이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특종감을 찾았으니, 일제의 입장에선 대만족이었을 것이다. 일제는 환호했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세계 유일한 낯선 형태의 금관을 두고 일제는 자신들의 세기적 최고의 고고학 성과물로 자랑했다. 세계의 이목이 일본이 식민 지배하고 있는 조선, 조선의 경주라는 도시에서 출토된 신라 금관에 쏠렸다. 금관의 출현은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인들에게도 뜨거운 관심사였다. 모로가는 흡족했다. 금관은 자신의 촉이 이루어낸 최고의 성과물이었으니까. 일제의 야욕은 경주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고분들을 향했다. 그들의 목적은 학술적 조사와 가치에 중심을 둔 게 아닌, 오로지 묻혀 있을 부장품에만 쏠려 있었다. 많은 전리품과 자신들의 잇속을 채우기 위한 보물찾기에 혈안이 돼 있었다. □ 식리총과 금령총을 열어라 -금령총금관(金鈴塚金冠, 보물 제338호) 한번 재미를 본 모로가의 고분에 대한 야욕은 더 커졌다. 1924년 4월, 사이토 마코토 총독(齋藤實·재등실, 제3·5대 조선총독)이 조선 남부 시찰차 경주로 왔다. 모로가는 사이토 총독과 봉황대에 올랐다. 그리고 남쪽을 바라보며 섰다. 봉토가 많이 손상된 고분 2기가 보였다. 옹기종기 들어찬 민가 사이의 고분은 미관에도 좋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을 못 이기고 이미 많이 파괴된 고분을 두고 모로가는 넌지시 발굴의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1923년 9월, 일본 본토 관동대지진으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던 조선총독부는 소극적이었다. 모로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로가의 집요한 계책에 총독이 그리하라 일렀다. 이는 총독이 사적 자금을 내어 허락한 것이었다. 또 다시 고분들은 마구 파헤쳐졌다. 총독이 허락한 발굴이라는 명분 아래 모로가는 기세등등했다. 1924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 위원이자 현장 책임자인 우메하라 스에지와 고이즈미 등이 인부들을 대동해 노동동의 고분(식리총(飾履塚), 금령총(金鈴塚)) 2기를 파기 시작했다. 원형이 크게 손상된 고분이었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 번째 금관이 나온 것이다. 금관엔 금방울(金鈴·금령)이 달려 있었다. 금령총금관(金鈴塚金冠, 보물 제338호)으로 이름 붙였다. 다른 한 곳에서는 장례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신발인 금동식리(金銅飾履)가 나왔다. 어디 이뿐인가. 금제관드리개·가는고리금귀걸이·유리구슬목걸이·은제허리띠와 띠드리개·은팔찌·철제고리자루큰칼 등도 함께 쏟아졌다. 금관이 작은 걸로 봐서 어린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이처럼 많은 황금이 쏟아진 것이다. 자신의 예측이 적중하자 모로가는 환호를 질렀다. 짜릿했다. 황금 유물에 심취한 모로가는 점점 경주에서 절대적인 문화 권력자가 되고 있었다. 한편 경주에는 일본인들이 들끓었다. 모로가 외에도 관학자를 비롯하여 황금이 쏟아진다는 소문을 듣고 자칭 고고학자라며 떠들고 다니는 아마추어 유물 수집꾼들이 득실댔다. 금관의 출현으로 경주는 유명세를 탔지만, 반면 도굴범들이 들끓는 도시가 된 것도 사실이다. *스웨덴 황태자가 참여한 ‘서봉총’ 이야기와 ‘신라금관 모독’ 등의 이야기는 ‘신라금관’ (하) 편에서 계속됩니다.

2025-04-02

서울 한복판 싱크홀 깜짝… 산불 속 새끼 지킨 ‘금순이’ 감동

산불이 사람들의 두려움과 걱정을 부른 지난주였다. 재산 피해는 물론, 적지 않은 이들이 불길과 연기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 안타까움 속에서 화마에 위협당하는 새끼들을 구한 진돗개의 사연이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예기치 않은 재난은 서울 강동구에서도 일어났다. 도심 한가운데 생겨난 싱크홀이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던 오토바이 운전자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 많은 네티즌들이 그를 추모했다.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금값에 투자자가 몰린다는 뉴스와 치명적인 기생충 감염을 불러올 수 있는 민물고기 섭식에 대한 위험성도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한 주였다. ▲ 극악한 산불 속에서도 새끼 지킨 진돗개의 모성 자식에 대한 사랑과 보호본능은 비단 인간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닌 모양이다.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쉽사리 잡히지 않고, 주변 일대를 지옥처럼 만들고 있었던 상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줄 소식 하나가 전해져 네티즌들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얼마 전 동물구조단체 ‘유엄빠(유기 동물의 엄마 아빠)’는 “산불이 타오르는 곳에서 쇠줄에 묶인 진돗개가 새끼를 지키려고 자신을 희생하며 안간힘을 다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렸다. 사연을 요약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쑥대밭으로 변한 의성 화재 현장에서 새끼들과 함께 발견된 진돗개 한 마리. 그 개는 뜬장(바닥까지 철조망으로 만들어 배설물이 그 사이로 떨어지도록 만든 공간) 속 쇠줄에 묶여 있었다. 그러니, 불을 피하기가 힘든 상황. 그럼에도 그 개는 뜨거운 불길에 위협당하는 새끼들을 지키려고 피부가 찢길 정도로 필사적 몸부림을 친 흔적이 보였다고 한다. 어미 개의 그런 노력과 희생 때문이었을까? 새끼 한 마리는 죽었지만, 살아남은 나머지 강아지들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안전하게 이송됐다고. 유엄빠 회원들은 모성을 지킨 이 진돗개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새끼들을 지켜낸 엄마”라며 ‘금처럼 귀하게 살라’는 뜻을 담아 ‘금순이’라는 이름을 선물했다고 한다. 뉴스를 읽은 네티즌들은 “인간을 향한 개의 충성심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자식 사랑까지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금순이와 새끼 강아지들이 고통스런 기억을 잊고 새 삶을 시작하길 바란다”는 등의 의견을 기사 댓글을 통해 남기고 있다. 극단적 상황에선 사람이나 짐승이나 본질이 드러난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모성(母性)’이란 동물의 보편적 본성에 가까운 게 아닐지. ▲ 오토바이 운전자 삼킨 ‘싱크홀’… 안타까운 죽음 나라를 걱정하는 비탄의 목소리가 지난 주 다시 한 번 인터넷 공간을 뒤흔들었다. 이런 의견이다. “경북, 경남, 경기 할 것 없이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발생해 심각하게 어지러운데, 싱크홀은 또 뭔가. 거기서 사람이 사망했단다. 대체 우리나라엔 안심할 곳이 한 군데라도 있는 걸까?” 인재라고 해도 부정하기 힘든 경북 의성과 경남 산청 산불에 적지 않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또 다른 불의의 사망 사고가 발생해 네티즌들이 추모의 말을 남기고 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생긴 싱크홀 탓에 그곳에 빠진 오토바이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이와 관련 강동소방서는 지난 주 화요일 오후 1시경 “싱크홀에 매몰된 30대 남성이 오전 11시 22분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관계 당국은 사고 직후 17시간에 걸친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싱크홀(sinkhole)’이란 지반이 침하돼 지면에 커다란 구멍이나 웅덩이가 생기는 현상을 지칭한다. 싱크홀의 크기는 지질의 특성과 발생 원인에 따라 다양한데, 작게는 폭 1m 이내에서부터 큰 경우 도시 지면 하나를 전체적으로 덮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게 생기기도 한다. 싱크홀의 위험성은 이미 할리우드와 한국에서 제작된 여러 편의 재난영화를 통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온 오토바이 운전자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관련 기사의 댓글을 통해 “죽음은 누구도 예상 못한 곳에서 불현듯 닥친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며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오토바이 운전자분의 명복을 빈다”는 의견을 전했다. ▲ 연일 오르는 금값… 당분간 ‘불패신화’ 이어갈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기엔 현금보다는 금에 투자하는 게 상책이 아닐까?” 금값이 지속적으로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과열 양상을 경계하는 전문가들이 없지 않지만, 그것도 잠시뿐. 걱정 섞인 목소리는 연일 오르는 금값에 소리 없이 묻히고 있는 상황이다. 불과 얼마 전엔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先物·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가격은 온스 당 3040달러를 넘어섰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444만원에 육박하는 거래가다. 이 수치는 연초보다 14%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금값의 최고가 경신은 올 한 해만 14번이나 있었다. 미국에서의 거래가가 치솟자 그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는 국내 금 투자자들도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중순 국내 금값 폭등 이후 “곧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예측된다”는 전망이 없지 않았으나 그 예측은 무색했다. 3월 말 한국거래소에서의 금값은 1g당 14만3000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가파르건 완만하건 매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 한 달쯤 오르고 내리는 걸 반복하던 한국의 금 시세는 이제 국제시장에서의 거래가와 거의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부연. 그러나, 이것도 단기 예상에 불과하다는 평가와 함께 “금값의 상승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서민들은 한 돈짜리 금반지를 돌잔치에 선물로 가져가는 것도 부담스런 시대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것일까? “사두면 오를 걸 뻔히 알면서도 금을 살 돈이 내게는 없구나. 결국 큰손 투자자들만 금으로 떼돈 버는 세상이 온 것 같네”라고 자조하는 네티즌도 있었다. ▲ 민물고기, 익혀 먹지 않으면 심각한 감염병 부를 수도 “요즘도 민물에 사는 잉어를 날것으로 먹는 사람이 있나? 위험한데…” 얼핏 보기엔 맑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강물 속에 서식하는 민물고기를 익혀 먹지 않으면 심각한 기생충 감염병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최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5대강 주변 지역민 2만6958명을 대상으로 ‘장내 기생충 감염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생충 감염률이 4.5%로 집계됐다고 한다. 기생충별 감염률은 간흡충 2.3%, 장흡충 1.9%, 편충 0.2% 순으로 드러났다. 특히, 낙동강과 섬진강 유역 일부 지역(경북 안동, 경남 하동, 전남 구례)은 10% 이상의 높은 감염률을 드러내 경계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 자료에 의하면 하동 주민의 장내 기생충 감염률은 12.6%, 구례 주민은 11.7%, 안동 주민은 10.3%로 조사됐다. 이중 간흡충은 식품을 매개로 하는 기생충으로 유행 지역 하천의 자연산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 감염될 수 있다. 간흡충은 만성적인 담도 관련 질환을 일으키며, 악화되면 담관암까지 불러올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5대 강은 한강·낙동강·금강·섬진강·영산강이다. 질병관리청은 올해도 장내 기생충 감염병을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5대강 주변 지역 39개 시·군 주민 2만4000명을 대상으로 간흡충 등 장내 기생충 감염 실태를 조사할 방침이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감염 걱정을 없애려면 강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익혀서 먹는 게 최선의 방법”이란 말을 전하고 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4-01

KTX 개통으로 더 가까워진 문경… ‘찻사발 축제’도 한걸음에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명예문화관광축제인 ‘2025 문경찻사발축제’가 오는 5월 3일부터 5월 11일까지 ‘문경찻사발, 새롭게 아름답게’라는 주제로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일대에서 열린다. 매년 4월 말에 축제를 시작했던 기존 찻사발축제와 달리 이번 축제 일정은 5월 첫째 주 토요일부터 시작되고, 중부내륙고속철도인 KTX 문경역 개통과 시내버스 무료화로 더 많은 관람객이 이번 축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 망댕이 가마와 발물레를 문경 도자기의 정체성으로 하고, 일상생활 자기 대중화를 목표로, 새롭고 다양한 도자기를 선보이고, 도자기 빚기 시연, 전시·체험, 특색있는 부대 프로그램으로 축제장을 가득 채울 계획이다. □ ‘문경시 홍보대사’가 참여하는 알찬 개·폐막식 문경새재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대망의 축제 첫날인 개막식에는 문경시 홍보대사인 웅산, 박군, 영기, 주미, 윤윤서가 출연한다. 문경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홍보대사들로 구성된 알찬 스타 출연진들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며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문경새재 오픈세트장 안 광화문 주무대에서 열릴 폐막식에는 최근 현역가왕2 우승을 차지한 박서진이 참여하며 축제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달래줄 예정이다. □ MC와 함께하는 양방향 소통 도자기 시연 ‘사기장의 하루’ 축제의 주인공으로서 오랜 시간 축제에 참여해 온 문경 도예가들의 시연 행사가 더 크고 잘 다듬어진 공간에서 진행된다. 기존의 작고 일방적인 무대 시연에서 더 나아가 MC와 문답하고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작가들의 개성과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광화문 주무대에서 ‘사기장의 하루’가 열린다. 또한 이번 축제의 외국 작가 초청을 통해 참여하는 ‘자사호의 도시’ 중국 이싱시 작가들과 ‘도자기 도시’ 중국 경덕진시의 작가들의 시연도 함께 준비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 새로운 기획 찻그릇 ‘우려나눔이’와 생활자기 판매 확대 작년부터 시작된 기획 도자기인 커피 사발에 이은 새로운 기획 도자기 이벤트를 올해도 준비했다. 이번 축제에서는 작가들의 공모를 통해 개완 형태의 기획 찻그릇이 선정돼 ‘우려나눔이’라는 별칭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 또한 요장별로 한층 더 다양하고 실속 있는 가격대의 생활자기 라인업을 선보이며 관람객들의 눈길을 이끌 예정이다. □ 더 새로워진 ‘축제패스권’과 체험·쉼터 공간 확대 요즘 축제의 트렌드인 ‘체험’과 ‘역할 부여’를 위해 축제패스권(판매가 1만 5천 원)에는 찻사발 테마를 접목한 야외방탈출 미션과 요장투어가 새롭게 추가됐다. 또한 축제장과 문경새재 일대의 소비 진작을 위한 문경사랑상품권(1천원)도 지급해 패스권 구성을 다양화했다. 광화문과 저잣거리 일대에는 편하게 쉴 휴식 공간과 체험거리를 확대, 오랜 시간 축제장에 머물며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준비했다. □ 야간 프로그램 도입과 가족 친화 행사 확대 친환경 캠핑과 피크닉을 합친 새로운 야간 프로그램인 친환경 캠크닉을 문경새재 1관문 앞에서 어린이날에 선보인다. 문경새재의 고즈넉한 날씨와 함께 분위기 있는 무대 공연까지 예정된 이번 야간 프로그램은 현장 접수로 관람객들에게 보고 쉬며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어린이 행사로 ‘EBS 이벤저스’ 특집 공연과 가족 참여형 게임인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찻사발 테마에 접목돼 축제장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어버이날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할 스냅사진찍기 이벤트도 준비하며 가족친화형 행사를 확대했다. □ 축제장 전역 활성화 오픈세트장 전체를 사용하는 넓은 축제 공간의 장점을 더욱 살리기 위해 축제장 활성화 방안도 마련됐다. 축제장 입구와 광화문 주무대에 설치될 키오스크는 주요 작가들의 프로필과 축제장 안내 지도를 표현하며 더 편하고 쉽게 관람객들이 축제장을 찾을 수 있도록 새롭게 설치했다. 특히 광화문 주무대 중심으로 행사가 이어지되 전시존과 판매존, 쉼터, 먹거리까지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질 수 있도록 배치하고, 주요 길목의 바닥에 표시될 로드웨이는 주요 지점에서 더 나아가 축제장 구석구석으로 방문할 수 있도록 기능하며 관람객들의 세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준비됐다. 김선식 축제추진위원장은 “축제의 변화와 도약을 위해 우리 작가들부터 나선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축제를 기획하여 준비했다”며 “올해는 기획찻그릇인 ‘우려나눔이’와 새로운 개성 있는 작품들로 도예 산업의 부흥과 지속적인 축제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작년 말 KTX 문경역 개통과 올해부터 시작된 시 단위 최초 시내버스 전면 무료화 정책으로 더 많은 분이 축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축제는 투자라는 기조하에 적극적인 관광 수요를 발굴하여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경찻사발축제는=경북도 문경시에서 매년 4월에 열리는 전통 축제. 문경 지역에서 생산되는 찻사발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행사와 체험 활동을 제공한다. 찻사발 만들기, 전통차 시음, 공연 및 전시, 찻사발 경매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관광객들은 한국 전통 차 문화와 도자기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3-31

영강 59km 굽이마다 늘어선 벚꽃, 하얀 감성에 여심도 ‘흠뻑’

영강(潁江)은 낙동강 발원지 마지막 큰 지류로 문경의 젖줄이다. 상주시 화북면 소재지에서 입석천과 용유천이 만나 영강이 되고, 곧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로 든다. 그리고 농암면 쌍용구곡을 설정하고, 농암면과 가은읍 경계에서 회룡포요, 하회인 ‘섬안’을 만들고, 상강정과 영류정을 짓고, 견훤 후백제왕도 탄생시킨다. 그리고 먹배이를 지나 마성면으로 들어 구랑리 적벽을 어루만지며 동남으로 흐른다. 그 물은 진남교에서 소야천을 만나 완전한 영강이 된다. 거기에서는 영강과 소야천(조령천) 두 물이 만나 ‘용소’가 되고, 깎아지른 절벽에 토끼비리 잔도(棧道)를 내고, 또 다른 회룡포요, 하회인 ‘된섬’을 만들어, 경북제일경을 낳는다. 그리고 불정협곡을 휘돌아 호계면으로 들면 ‘개여울’에 징검다리를 놓고, 신기공단의 용수가 되며, 창동 뱃나들에 배를 띄우고, 우지동 벌판에 물을 댄다. 그런 후 산양면과 흥덕동 사이에 딴봉을 낳고, 영강체육공원을 만들고, 영신숲 유원지를 감돌면서 화천(花川)을 이루어 곶내라는 새 이름도 짓고, 영신도령 이야기로 밤을 새우며, 150리 사연을 풀어놓는다. 영강의 59km, 150리 길은 때로는 굽이쳐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때로는 고요하게 거울을 펼치기도 하며, 산과 나무와 풀과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흐른다. 그리고 상주시 이안천을 만나 영순면 말응리에서 낙동강으로 들면 낙동강은 ‘완전한 낙동강’이 되어 여기서부터 부산 다대포까지 700리 여정을 시작한다. 영강은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꽃길이다. 수많은 절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겨우내 얼었던 물과 대지가 녹으면서 그 희고 냉랭한 기운이 벚꽃으로 흐드러지고, 사람들의 마음도 따라 활짝 피기 시작한다. □ 강둑길 20리 영신 벚꽃길 점촌시내 앞 영강 강둑길은 영신동에서 창동까지 20리. 길 양쪽에는 봄기운이 퍼지는 4월 초가 되면 문경에서 가장 먼저 벚꽃을 피운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자전거길’로 나온다. 바람을 가르며, 겨우내 시린 칼바람이 언제 왔던가? 묻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삼삼오오 걷는다. 각기 다른 생각으로 같은 길 위를 걷지만, 벚꽃의 정취에 취하는 것은 모두 같다. 벚꽃이 벌어지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도 열리고, 생각도 열린다. 활짝 핀 벚꽃 아래 사진 찍는 이들의 얼굴을 보면 안다. 벚꽃의 꽃비도 여기서 제대로 맞을 수 있다. 나비가 날아다니듯 하늘대는 벚꽃의 춤사위는 4월 중순까지 이어지고, 남녀노소 가릴 것도 없이 몸도 마음도 봄이 된다. □ 점촌시내 모전천 벚꽃축제 그 사이 영강의 작은 지류인 점촌시내 모전천 ‘반쟁이’. 도심을 가르는 도랑 가에 벚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어디선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각설이가 축제를 연다. 포스터도 없고, 현수막도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귀신같이 안다. 벚꽃이 피면 봄의 한 구색(具色)으로 이 축제가 열리는 것을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문경시민 모두가 안다. 특히 저녁이면 춘정(春情)을 못 이기는 사람들로 500m 거리가 북적거린다. 엿 사달라는 각설이의 입담이 외설의 담장을 아슬아슬 걸어가면, 더는 못 배기고 주머니를 끌러 엿을 사는 사람들. 그러면 꺾고 굴리며 “봄이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 나물 캐러 간다고 아장아장 들로 가네........” 한 곡조 노래를 선물한다. 그 옆에는 닭발·족발·파전·소주·맥주·막걸리에 노래도, 엿도, 만담도 듣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사가 붉고 푸른 전등 빛에 또 다른 벚꽃을 피운다. □ 진남교반 산벚꽃 영신 벚꽃길을 지나 북으로 오르면,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 모두 모이는 불정협곡부터 10리 길은 외통수다. 산도, 물도, 길도 한 줄기씩, 서로를 안고 돌 뿐이다. 가파른 산이 동서에서 깎아 질러 산문을 만들었고, 그 사이로 물과 길과 사람이 드나든다. 산문을 들어서면 영강을 따라 진남교 10리 벚꽃 길이 옛 3번 국도를 따라 펼쳐진다. 그리고 어룡산 안부(鞍部)와 고모산성, 토끼비리에는 산벚꽃, 산 복숭아꽃, 산 살구꽃이 ‘봄의 게릴라’처럼 여기저기 피다가 이내 ‘봄의 혁명’을 성공시켜 온 산하를 봄으로 점령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봄으로 진군하는 꽃들의 맨 앞에 벚꽃이 있다. 약수 받는 사람, 민물매운탕 먹는 사람, 휴게소에서 커피 마시는 사람, 오미자테마터널을 감상하는 사람, 토끼비리를 걷는 사람, 고모산성을 오르는 사람. 그들 모두 벚꽃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 봄의 나그네들이다. □ 조령천 20리 벚꽃길 진남교반을 돌아서면 ‘봉생정’에서부터 또 다른 20리 벚꽃길이 펼쳐진다. 영강의 큰 지류인 조령천(소야천)을 따라간다. 바쁜 국도에서 벗어나 멀리 주흘산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면서 아늑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먼 산에서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을 부르는 소녀가 잔잔하게 손짓한다. 주지봉을 배경으로 ‘목고개마을’이 꽃 대궐을 이루고, 성주봉을 배경으로 ‘솥골마을’이 꽃 잔치를 벌이는 장관. 주흘산과 영강과 들판과 마을이 벚꽃을 매개로 봄의 왕국을 형성한다. □ KTX문경역-문경온천 벚꽃길 조령천 20리 벚꽃길이 끝나는 문경읍 마원리. 옥녀봉 꽃 잔치 아래 ‘철마(鐵馬)’가 멈춘다. 수도권에서 뻗어오는 중부내륙철도의 KTX 종착역, ‘문경역’이다. 주흘산은 이마에 닿아 있고, 문경의 고도(古都)가 역사와 문화를 펼친다. 바로 앞 온천지구에는 영강의 또 다른 지류인 신북천을 따라 겹벚꽃이 좋다. 서울대학교병원인재원 쪽부터 문경골프장 입구인 고요리까지 10리에 펼쳐져 있다. 단산 활공장과 모노레일, 문경새재리조트, 수많은 크고 작은 펜션들, 벚꽃 아래 이 마을들은 유럽풍을 자아낸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3-30

봄이 걸어오며 반기는 백석 산수유꽃 향연

□ 흰 돌이 많았다는 경주 백석마을을 아시나요 산수유가 봄보다 먼저 내려앉는 마을이 있다. 이 꽃 저 꽃 벌들이 바삐 쏘다니는 동안 마을엔 모처럼 화색이 돌고 인기척도 함께 든다. 봄이 온 게다. 어디서들 알고 찾아온 것인지 객지 사람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사람들은 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 듯하다. 경주역에서 차로 5분 남짓 달리면 백석마을에 이른다. 경주역과 지척인데도 백석마을엔 폐가와 빈집이 많다. 한때는 80호가 넘는 큰 마을이었다. 지금은 전부 객지로 나가고 밤에 불이 켜지는 집은 겨우 3~5채뿐이라고 한다. 풍경은 오래된 기억 속 한 장면처럼 낯설고도 아늑하다. 낮에는 봄볕 아래 노란 산수유꽃이 흔들리고, 밤이면 불이 켜지는 집이 손에 꼽힐 만큼 적다. 정적이 내려앉은 마을, 하지만 봄이 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을은 봄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쉰다. 겨우내 굳게 닫혔던 빈집마다 문이 열리고, 객지로 나가 살던 이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그리고 밭고랑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 삽질 소리, 농기계 소리가 마을을 울린다. 묵은 땅이 뒤집히고, 굳은 마음도 풀린다. 저들끼리 핀 산수유 꽃도 사람 구경을 즐긴다. 건천읍 화천 3리 백석길 16, 백석마을에 이른다. 흰 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단석산 자락 아래, 신라 장군 김유신이 이곳을 지나다가 냇가에 꽃이 많은 걸 보고 ‘꽃내’라고 부르다가 ‘화천(花川)’으로 불렀다. 약 350년 전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데, 개척 당시 뒷산에 흰 돌이 많다고 해서 ‘백석(白石)’으로도 부른다는 마을 어른의 이야기다. □ 봄이면 사람보다 산수유꽃이 먼저 드는 마을 모처럼 따스한 기운이 감돈다. 마을 군데군데가 노랗다. 꽃들은 무더기무더기 피어 저들끼리 즐거웁다. 열흘 전까지만 해도 겨울 기운이 강해 바람이 시리더니 며칠 새 봄기운이 완연하다. 꽃은 꽃망울 여는 걸 저들끼리 터득했나 보다. 절정이다. 꽃들은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다. 바람이 불면 새파란 하늘에서 하늘거리는 모습은 별처럼 영롱하다. 마을 어귀 저수지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사이에 두고 저들 편한 대로 가지를 뻗어 꽃을 피웠다. 주인을 기다리는 나무, 혹은 기다림 그 자체가 나무가 된 것처럼 말이다. 마을 초입에 서 있는 수령 300년을 자랑하는 신목 앞에도 산수유는 가지를 뻗었다. 아직 채 봄을 맞지 못했는지 잎사귀 하나 돋우지 않은 신목에게 노란 산수유꽃이 해맑은 아이처럼 찬란한 봄 인사를 건넨다. 한낮의 햇살이 산수유꽃을 투과하며 그림자는 더 길고 짙게 마을로 내려앉는다. 마을 구석구석, 걷다 보면 어느새 꽃 속에 파묻힌다. 돌담이 살아있는 마을이다. 그 사이로 산수유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사람 손길이 미친 산수유는 표가 난다. 꽃이 많고 색깔도 선명하다. 그러나 저절로 무시로 난 것들은 가지만 무성할 뿐 꽃이 적다. □ 한때는 자식들 공부시킨 든든한 밑천 봄이 오면 백석마을은 노랗게 물든다. 아니 햇빛을 머금어 찬란한 금빛으로 빛난다. 마른 가지 끝에 작은 꽃망울들이 터지기 시작하면, 마을은 하루가 다르게 환해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꽃잎은 마치 비단을 두른 듯하다. 산기슭을 따라 여기서 저기서 산수유꽃들이 마을을 감싼다. 봄은 그렇게 산수유꽃과 함께 마을에 스며든다. 마을을 찾은 이들의 마음에도 한 줄 따뜻한 빛을 남긴다. 꽃잎 하나하나, 오랜 세월을 품은 듯 기품마저 느껴진다. “옛날부터 유명했어. 저 위쪽 산만디(산기슭) 거기서부터 여기, 질까(길가)까지 전부 노랬어.” 열아홉에 시집와 예순하고도 네 해를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최순자(84세) 어른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때는 꽃이 고븐 지도(고운지도) 몰랐어. 그냥 다 일로만 보였으니까.” 산수유는 매화가 필 무렵 함께 피었다. 빠르면 2월 중순께 눈을 덮어쓰고도 샛노란 꽃을 피워냈다. 며칠 만에 일찍 저버리는 매화에 비해 산수유는 봄 동안 지천을 꽃등(燈)으로 밝혔다. 꽃이 지면 그 자리에 새파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단풍이 물드는 10월엔 산수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갔다. 새빨간 보석같이 빛났다. 이 또한 꽃 못지않게 장관을 이뤘다. 11월엔 터질 듯 통통하게 물이 올라 반짝거렸다. 그리고 서리가 내리면 쪼글쪼글 마르기 시작했다. “생 거를 따서 소쿠리에 담아 며칠 골긴다(시들게 한다). 아니면 첨부터 서리를 마차가(맞게 해서) 몰캉한 걸 따던가.” 육질이 홍시처럼 몰캉해지면 씨앗 빼는 게 훨씬 수월하다. 생육에서 씨앗을 뺄 수 없어 터득해 낸 지혜다. “그걸 이빨로 하나하나 깠어. 열매 하나하나 낱낱이 입에 물고 이빨로 깨물어 씨앗을 발라내는데, 애들 학교 갔다 오면 전부 매달렸어. 산수유 농사를 많이 하는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일거리를 대주기도 했어.” 최순자 어른과 함께 서 있던 일흔넷 공진국 어른이 말을 잇는다. “한 깡통에 이백 원인가 쳐줬어. 한 깡통이 한 되, 그러니까 껍데기로만 한 근 600g이 나오는데 200원 쳐줬어요. 많이 까는 사람은 하루 꼬빡 6근씩 까냈어요.” 이빨로 까면 이빨이 닳았다. 그래서 산수유 철이 되면 미리 손톱을 길렀다. 손톱도 닳았다. 그래도 돈 생각하면 놓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당시 학교 등록금이 한 삼천 원 했을 때니까, 한 보름 까면 삼천 원, 등록금은 나오는기라. 그러이 죽을 동, 살 동 모르고 까는기라. 훗날 까는 기계가 나왔는데 품질이 입으로, 손으로 까는 것만 못해요.” 돈이 됐다. 삼 남매, 사 남매, 많은 집은 오 남매, 육 남매 전부 산수유를 해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떠난 자식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점점 조용해졌다. 빈집이 늘고, 폐가가 생겼다. 하지만 산수유나무들은 여전히 피고 산수유를 붉혔다. □ 귀한 한약재, 산수유 산수유는 예부터 귀한 약재로 쓰였다. 한방에서는 산수유를 ‘구기자, 오미자와 함께 세 가지 보약 열매’라 칭했다. 신맛이 강하지만 몸을 따뜻하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효능이 있어, 술을 담그거나 끓여 차로 마셨다. 이 마을에서도 가을이면 산수유 열매를 말려 두고, 겨울을 나기 위한 차를 만들곤 했다. ‘본초강목’에는 오래 먹으면 몸에 힘이 붙고 눈이 밝아지며, 뇌골통과 이명(耳鳴)을 치료하고, 오래 산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유기산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미네랄, 항산화 성분이 있어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것과 동시에 속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수유 열매는 백석마을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열매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삶의 일부였고, 계절의 순환 속에서 이어지는 유산이기도 했다. □ 도처로 팔려나간 백석마을 산수유 KTX 경주역 위쪽부터 백석마을까지 전부 노란 산수유 군락이었다. 논두렁 돌무더기에도 집 마당, 뒤란에도 그랬다. 그때에 비해 나무는 턱없이 줄었다. “경지정리 한다고 뽑아내기도 했지만, 관광단지 조성한다고 관상목으로도 엄청 사 갔어요. 대구나 서울 경기도 전국 조경업자들이 나무 사러 엄청 왔어요. 이른 봄에 꽃 하나 없고 황량하니 볼 게 없는데 산수유는 일찍 노랗게 꽃이 피고 보기 좋거든. 어디 노랗기만 하나. 여름에 조롱조롱 열린 열매가 보기 좋고, 가을 되면 빨가이 이쁘거든. 그러이 호텔 뜰이고 관광지마다 한 나무씩, 두 나무씩 가져가 심은기라.” 꽃 향이 온 마을로 번진다. 밭과 마당, 때로는 빈집이나 폐가 구석구석까지 파고든다. 오래된 집들이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다 폭삭 주저앉았다. 인적이 끊긴 마을에 꽃이 피자 낯선 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답고 갸륵한 풍경을 이야기하며 최순자 어른도 공진국 어른도 꽃처럼 환하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처음 걸었던 신목 앞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나는 오래전부터 백석마을 기억하는 일부인 양 정겨웁다. 아마도 봄을 알리는 산수유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알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 건가보다. 백석마을은 봄이 가장 먼저 걸어오는 길목인지도 모르겠다. 노란 산수유 꽃 속에서 잠시나마 따뜻한 봄기운을 품는다.

2025-03-26

푸른 창해·창공 바라보며 해돋이 즐기는 행복한 나무

나는 변하지 않는 큼직한 바위를 품고, 누구보다 먼저 동해 아침 해돋이를 하는 나무이다. 거칠고 험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손으로 바위를 움켜쥐고 살아가지만, 외롭지 않다. 새벽이 오면 나는 가슴을 활짝 펴고 동쪽 하늘을 바라본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태양이 서서히 얼굴을 내밀면, 나의 심장은 벅차오르고 온몸이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인다. 밤새 바닷바람에 시린 몸을 맡겼던 나는 태양이 보내오는 부드러운 빛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두 팔을 벌려 환호한다. 황금빛 햇살이 이마를 스치고, 어깨를 감싸며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지는 태양으로부터 받은 귀한 하루의 보따리를 설레는 마음으로 푼다. 아침 태양 빛이 여기까지 1억4960만㎞의 광활한 우주를 쉼 없이 달려왔음을 생각하면 더욱 경이롭다. 초속 30만㎞로 질주한 태양의 빛이 8분 20초 만에 마침내 나의 가슴에 닿는 순간, 나는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신비를 온몸으로 실감한다. 그 빛은 단순한 아침 햇살이 아니다. 태양과 지구의 정교한 균형 속에서 탄생한 기적 같은 선물이다.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돌며 1년에 한 바퀴를 완성하고, 기울기는 계절을 만들어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백 년 동안 그 변화를 지켜보며 살아왔다. 또한, 지구는 하루 한 바퀴 자전하며 낮과 밤을 바꾸고, 태양을 향하는 각도에 따라 그 길이를 조율한다. 그렇게 태양과 지구는 서로 맞추어 가며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태양은 아버지, 지구는 어머니, 우리는 그들로부터 태어난 생명체, 아들딸들이 아닌가. 어찌 하늘의 태양과 대지인 지구를 경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먼 수평선에서 달려 온 파도는 철썩이며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자!”며 격려라도 하듯 바위에 입 맞추고 하얀 메밀꽃을 토한다. 바람은 신선한 공기를 가득 안고 와 나를 감싸 안으며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나는 두 팔을 흔들며 기쁘게 화답한다. 향긋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바다로, 하늘로 보낸다.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은 아침은 없다. 매일 새롭고 소중하다. 아침 해맞이 순간, 나는 다시금 깨닫는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또 새로운 빛으로 시작될 것임을. 그렇게 나는 어디에 찾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매일 새로운 선물을 받으며 기적을 맞이한다.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한다면, 나는 영덕군 축산면 경정리 647번지의 거대한 바위 위에 터를 잡고 천 년을 살아온 섬향나무이다. 나는 직접 받는 햇살뿐만 아니라 바다 수면에서 반짝이는 윤슬의 별빛도 함께 받아 누구보다 더 많은 축복의 빛을 받는다. 이러한 강한 햇살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살아가는 나에게 광합성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증발로 스트레스도 받는다. 그러나 잎과 뿌리가 수분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구조로 특화되어 있어 그런 걱정은 붙잡아 매라 한다. 비늘잎이 둥글고 길게 모여 삐죽한 형태를 이루는 것은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또한, 열매가 하얀 왁스로 덮여 있는 것도 수분 증발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육질 방울열매는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특히 3월이면 직박구리 소리로 아침은 활기차게 시작된다. 야생 먹이자원이 달리는 잔인한 봄, 3월에는 활기찬 새들의 장마당이 선다. 시끌벅적한 아침이다. 내가 스스로 살아가는 자생지랄까 생존 지역은 동해를 내려다보는 절벽으로 쉬이 다가갈 수 없이 가파르며, 바위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그런 절벽 바위를 은밀하다고 표현한다. 이른바 숨은 서식처로 비밀스러운 피난처, 미소 피난처이다. 최고령 나무로 울릉도 도동의 향나무는 2500~3000년을 살아왔다고 한다. 나의 동료 향나무는 극한의 환경에서 자라며, 자연이 빚어낸 듬성듬성 그루 숲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의 오래된 매향(埋香) 문화와도 연결된다. 매향 문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걸쳐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어 후손들이 다시 발굴해 사용하도록 기원하는 독특한 종교적·민속적 풍습이다. 이러한 매향 문화는 불교 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금강산 삼일포 매향 비문은 “강릉, 삼척 등에 향나무를 베어 포구마다 물속에 묻었다”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다. 동해안 깎아지른 절벽의 향나무 해안 경관은 세계 자연유산이고, 매향은 자랑스러운 인류 문화유산이 아니겠는가? 동해안 향나무 자생지는 한국인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다. 동해안을 따라 남하한 북방 선사인이나 남해안을 거쳐 동해안을 따라 북상한 남방 선사인은 우리 조상을 분명히 만났을 것이다. 향기 나는 우리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적어도 동해안 신석기인은 향나무 풍광을 무대로 살았다는 사실을 옛 해안(古海岸)에 위치하는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가장 오래된 선사 기록이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곳은 도시의 빌딩 숲에서 겨우 몇 조각의 햇빛을 구걸하는 나무와는 다른 세상이다. 푸른 창해와 창공을 바라보면서 해변에서 아침 햇살을 맞이하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나무임을 깨닫는다. 봄의 바닷가 아침 햇살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해안의 파도 소리와 신선한 아침 공기는 나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감싸준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한 빛이 바다를 가르고 해안으로 한 줄기 뻗친다. 윤슬이 반짝인다. 항구 어민들의 고깃배가 만선의 희망과 기쁨으로 출항과 귀항을 서두르고 갈매기가 호위하고 있다.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암괴석에 붙어 살아가는 따개비의 안간힘과는 달리 미역은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다. 그 신비로움에 두 손을 모아 경건한 마음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세포가 깨어나고,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방해도 없이 축복의 선물, 태양 빛을 오롯이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아침 해돋이는 희망이고 또 하루의 출발선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훼손된 몸과 살아가는 바위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어망 쓰레기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고 있음이다. 매향(埋香) 문화 매향 문화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한국에서 행해졌던 독특한 종교적·민속적 풍습으로, 향나무(沈香木)를 땅에 묻어 후손들이 다시 발굴하여 사용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이 풍습은 불교적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주로 바닷가에서 진행되었다. 매향(埋香)이란 ‘향나무를 묻는다’는 뜻으로, 주로 신앙적인 목적에서 수행되었다. 특정한 장소(주로 해안가)에서 불교 승려와 신도들이 모여 매향 의식을 거행했다. 향나무를 정성스럽게 땅속에 묻고, 불경을 외우며 신성한 의미를 부여했다. 매향문(埋香文)이라는 비석이나 기록을 남겨 후대에 알릴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한국에는 여러 곳에서 매향과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었다. 강원도 양양은 고려시대 매향비가 발견되었다. 경기도 화성은 매향 의식이 이루어졌음을 기록한 유물이 있다. 오늘날 매향 문화는 단순한 민속 신앙이 아니라, 향나무와 관련된 전통적인 의례로서 중요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3-26

결혼생각 없는데 ‘비혼식’ 열어 축의금 돌려 받을까

경북 의성군과 경남 산청군, 울산 울주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큰 화재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사망자도 나왔다. 적지 않은 시간 불길을 잡는데 매달린 산불 진화대원들의 피로도 누적되고 있는 상황. 빠른 시간 안에 화마(火魔)가 잡혀 재해에 신음하는 주민들이 일상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산불이 최대 이슈가 된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까지 산불 진화 관련 뉴스 외 몇몇 다른 소식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사망한 배우 김새론이 미성년자일 때 교제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배우 김수현 관련 논란이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그 논란 탓에 거대한 광고시장 중국도 김수현과의 결별을 고민하는 듯하다. 30~40대 한국 여성들이 비혼식을 하고 있다는 외신의 보도와 열흘 동안 물침대에 누워있으면 790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가 프랑스에 생겼다는 소식 역시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최소 2차례 성범죄를 저지른 파렴치범이 “아내에겐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해 여성들의 공분을 부른 사건도 있었다. ▲미성년자 교제 논란 김수현, 중국서도 ‘손절 움직임’ 스물다섯에 극단적 선택을 한 영화배우 김새론과 관련된 각종 의혹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는 배우 김수현. 한국 대중예술계에 이어 중국에서도 김수현 ‘손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지난주 화요일 쿠쿠차이나는 “김수현과 관련된 브랜드 홍보 활동을 전면 중단하고 모든 공식 플랫폼에 게재된 김수현의 이미지 자료를 교체한다”고 선언했다. 연이어 “현재 준비된 김수현 관련 마케팅 계획도 중단하고, 향후 (김새론과 관련된 각종) 사건의 진행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김수현의 중국 홍보활동이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듯하다. 그의 얼굴이 인쇄된 이미지 광고도 위에 언급된 플랫폼에서 지워졌다. 김씨의 과거 사생활이 세칭 ‘한한령(한류 금지명령)’이 완화된 중국에서의 활동을 가로막은 것이기에 그의 고심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통상 연예인에게 광고 관련 수입이란 간과하기 힘든 큰 돈벌이다. 김새론 사망 이후 김수현은 한 유튜브가 제기한 ‘미성년자와의 연애’, ‘급박한 채무 상환 압박’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아 왔다. 그게 김새론의 죽음에 영향을 끼쳤다는 추문에도 휩싸였다. 김수현의 소속사인 골드메달리스트는 수차례 김새론 유족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으나, 그게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지는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에서도 ‘김수현 손절’이 가시화됐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네티즌은 “미성년인 여배우에게 몹쓸 짓을 했으니, 지금 처한 상황은 자처한 게 아닌가? 누군가에게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왜 축의금을 내기만 할까? 돌려받을 방법은… “나도 비혼식이라도 열어 그간 낸 축의금을 돌려받아야 하나?” 혹한의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꽃들이 앞 다퉈 피어나는 봄이 목전에 도착했다. 예로부터 이 계절은 ‘화혼(華婚)의 시기’. 지난 시절보단 결혼하는 사람들이 대폭 줄었지만, 그럼에도 3~5월은 예비 신랑과 신부의 설렘이 있는 때다. 헌데, 미혼자들은 이 시기가 예상치 못한 지출이 가장 많은 달이기도 하다. 적지 않은 숫자의 축의금 봉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 결혼하지 않은 남성과 여성이 늘어나면서 적게는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 남의 결혼식에 내놓았던 축의금을 자신은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그래서일까?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21세기형 궁여지책’이 나왔다는 뉴스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결혼하지 않은 한국 독신 여성들 사이에서 비혼식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국에서도 한국의 ‘비혼 세태’에 주목한 것이다. 2023년 말 현재 한국 30대 가운데 51%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 지난 2000년과 비교했을 때 비혼자가 4배 가까이 늘어난 것.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비혼식’이란 단어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앞으로도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선언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또한, 비혼식엔 일부 기업에서 제공하는 ‘비혼 축하금’을 지인들에게도 거둬들이고 싶다는 은근한 바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전 생각’이 아닐지. 갈수록 결혼식이 줄어드는 상황. 이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의 “40세건, 45세건 일정한 연령이 되면 비혼식을 공식화해 그때까지 사용된 친척과 친구들의 결혼 축의금을 반의반이라도 돌려받게 해줘야 한다”는 의견이 마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된 듯하다. ▲인면수심 대리운전 기사… 성범죄 후 “아내가 알면 안 돼” 여성 네티즌들의 혈압을 상승시킬 게 분명한 사건이 발생했다. 성범죄 전과가 있는 남성이 출소 2개월 만에 또 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피의자가 대리운전 기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이젠 무서워서 대리운전도 못 부르겠다” “여성에겐 여성 대리운전 기사를 매치시켜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여러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린 보도를 종합하면 사건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한 여성이 친구와 술을 마신 후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앱을 통해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차에 탄 후 잠이 든 여성이 정신을 차렸을 땐 대리운전 기사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이에 여성이 극렬하게 저항하자 문제의 그 대리기사는 차에서 내려 도망쳤다. 경찰이 사건 현장 주위에 있던 대리기사를 체포해 알아보니 그는 전직 군인으로 이전에도 강제추행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전과가 있었다. 출소한 지 2개월 만에 다시 성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 대리기사는 성폭행 과정에서 불법 촬영을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실상 대리운전 업체는 대리운전 기사들의 범죄 관련 전력 조회가 어렵다. 그런 까닭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업체가 대리운전 기사를 뽑을 때 최소한 성 관련 범죄 전과자인지는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도 개선 요구도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어치구니없는 사실 하나 더. 성폭행 피의자인 대리운전 기사가 “내 아내에겐 범행이 알려지면 안 된다”며 피해자와의 합의를 시도한 사실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를 질타하는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희한한 ‘꿀 알바’… 열흘간 침대에 누워 있으면 790만원 “세상에 그런 꿀 빠는 아르바이트가 있다니. 내가 프랑스 산다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 지원하고 싶어지네.” 10일 동안 물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있으며 된다. 그러면 5000유로를 준단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790만원이다. 이런 ‘꿀알바’라니 한국 네티즌들도 유쾌한 댓글 달기에 나섰다. “왜 우리 동네엔 비슷한 알바가 없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얼마 전 영국 데일리메일은 ‘유럽우주국이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메데즈 우주병원에서 우주 비행이 사람의 몸에 미치는 영향 연구를 위해 3번째 실험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 실험은 20~40세 남성 20명이 대상이다. 실험에 지원하려면 담배를 피우지 않아야 하고, 신체에 특별한 병이 없어야 한다. 일정한 선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물침대에 누워 열흘을 있어야 한다고. 추적 관찰과 회복 단계까지 모두 21일을 병원에서 보내면 앞서 언급한 790만원을 받게 된다. 유럽우주국은 “물침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국제우주정거장에 있는 우주인이 체험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실험의 목적은 ‘우주에 체류하는 우주 비행사의 건강 연구’인 것 같다. 어쨌건 침대에 누워 컴퓨터 화면으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적지 않은 수입을 얻을 수 있다니, 프랑스가 아닌 어느 나라라도 지원자가 적지 않을 게 분명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3-25

지역사회·어르신 함께 성장하는 ‘글로벌 평생학습 모델’ 구축

포항시는 202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1만312명(전체 인구의 22.4%)에 달하며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노인 인구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노인일자리와 돌봄서비스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포항시 평생학습원은 “배움으로 삶을 채우고, 미래를 키워 나가는 평생학습도시 포항!” 전략을 기반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특별한 교육과 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평생학습원은 기본적으로 전 시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고령층을 위한 통합교육 플랫폼을 구축하여 건강관리와 평생학습 강좌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다양한 평생학습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여가를 즐기며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場)이 될 수 있도록 지속 노력하겠다”며, “아울러 시민들이 배움을 통한 자아실현으로 삶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지속가능한 평생학습 도시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맞춤형 교육 및 어르신관 운영 확대 지난해 평생학습원이 운영한 전체 교육 프로그램은 1374개로, 이 중 정규 시니어 강좌 114개, 신중년사관학교 8개, 동경대학(동네경로당대학) 15개 등의 노인 대상 강좌를 개설해 폭 넓은 학습기회를 제공했다. 또한 일 평균 700여명이 이용하는 뱃머리교육관 내 어르신 맞춤형 공간을 조성하여 당구장, 노래방, 물리치료실, 바둑실, 포켓볼장, 장기실, 탁구장, 헬스장 등 기존 시설과 함께 도서열람실, 심리상담실 등 총 10개의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중단되었던 물리치료실이 올해부터 운영을 재개하며 기존의 찜질기와 샌드베드 외에도 돔 온열기, 손 지압기, 공기압 마사지기 등 새로운 물리치료 기기를 구비하여 하루 평균 8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건강체크 키오스크를 설치해 어르신들이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올해 도서열람실을 신설하여 일반도서 500여 권과 함께 큰 활자책 150권, 돋보기 안경 등을 비치해 작은 글씨를 읽기 어려워 독서를 하지 못했던 노인들의 독서활동도 돕고 있다. □체계적인 회원관리시스템 구축 및 일자리 창출 평생학습원 어르신관 운영의 가장 큰 어려움은 시설 규모에 비해 이용자가 많다는 것이다. 현재 북구에는 포항시 노인복지회관이 있지만, 남구에는 노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60세 이상 시니어들이 이용 가능한 어르신관이 실질적 남구 노인복지회관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고 해마다 어르신관 이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어 이용자들의 불편 민원 및 관리의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평생학습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보다 많은 어르신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올 해 어르신관 회원관리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고 자율이용 예약 키오스크를 도입할 계획이다. 또 시설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각 실별로 시니어일자리단을 활용한 지원인력을 배치하고, 이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정기적 간담회와 인식개선 교육도 추진하고 있다. □노인심리 상담 및 정서적 지원 강화 지난 1월 23일 개소한 은빛쉼터 노인심리상담실은 어르신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상담실에는 노인심리상담사 1급 과정 수료생 15명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정기적인 심리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노인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정서적, 심리적, 사회적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며, 이러한 현실속에서 외로운 어르신들을 친구가 되어 마음을 어루만지고 삶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전문 심리상담사들과 함께 고민하고 어르신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공간을 포항시가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선배시민교육으로 세대 간 연대 강화 포항시는 평생학습원 방문 어르신을 대상으로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는 선배시민 교육을 3월 한 달 31회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그동안 주로 노인복지회관에서만 진행해 오다가 이번에는 지역사회 문제 전문가인 장혁란, 안은희, 김경미 교수와 협력하여 1600여 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다음 세대를 위한 책임감 △공동체에 대한 헌신 △선배시민의식 부족 원인과 여러 사회적 갈등해소 △지속가능한 사회문제 발전 등의 내용을 다룬다. 이를 통해 노인들이 젊은 세대의 성장을 돕는 멘토링 역할을 수행하고,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이다. 또한 젊은 세대의 성장을 돕고 어르신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하는 멘토링 역할을 부여함과 동시에 지역사회 문제해결에 적극 참여하는 공동체 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이석윤기자 lsy72km@kbmaeil.com

2025-03-20

삼라만상으로 스며드는 불음, 서라벌을 깨우다

‘마침내 신종이 완성되니 그 모양은 마치 산과 같이 우뚝하고, 소리는 용의 울음과 같았다. 위로는 하늘 끝까지 울려 퍼지고 아래로는 지옥에까지 스며드니 … 소리를 들은 사람은 복을 받을지어다.’ -성덕대왕신종 명문 중에서- □ 범종 소리 ‘둥~ 둥~ 둥~’, 사람들이 홀린 듯 한곳을 바라본다. 장중한 소리다. 맑은 음이다. 무념의 세계로 들어가듯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국적과 종교를 굳이 따지지 않고 그저 거룩한 마음으로 소리 앞에 서 있다. 막히지 않는 여음이다. 1200년을 살았다는 육중한 쇳덩이가 뿜어내는 소리다. 속인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다. 법계에 두루 임하여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을 밝히며 축생의 고통을 떨치고, 지옥을 무너뜨리며 모든 중생을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소리다. 어떠한 절정도 없이 삼라만상으로 장엄하게 스며드는 불음(佛音)이다. 여운은 또 다른 여운과 이어져 끝내는 저 멀고 아득한 피안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 봉덕사와 성덕대왕신종 높이 3.75m, 지름 2.27m, 무게 18.9톤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은 법구사물(法具四物) 중 하나인 범종(梵鍾)으로 원래 ‘봉덕사종’으로 만들어졌다. ‘삼국유사’에 봉덕사는 성덕왕이 태종대왕을 위해 706년에 창건했다는 것과 효성왕(孝成王, 제34대 왕)이 부왕인 성덕왕의 복을 위해 738년에 세웠다는 두 가지 내용이 있다. 봉덕사종은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함께 한국 최고의 범종으로 꼽힌다. 성덕대왕신종 주조는 왕명에 따른 거사였다. 경덕왕(景德王, 제35대 왕)이 부왕 성덕왕(聖德王, 제33대 왕)의 공덕을 기리고, 나라의 태평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게 했다. 그러나 경덕왕은 살아있는 동안 종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 경덕왕이 죽고 8살의 어린 혜공왕(惠恭王, 제36대 왕)이 즉위 7년(771년) 되던 해에 완성해 봉덕사에 안치했다. 어찌 됐건, 종은 경덕왕이 부친을 위해 시주한 황동 12만 근으로 주조했기에 ‘성덕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鍾之銘)’이라 하여 종의 몸체에 이같이 돋을새김해 놓았다. □ 고단했던 여정 771년 주조된 성덕대왕신종은 조선기 들어 고난을 겪는다. 1424년(세종 6) 때 ‘전국 각 사찰에 있는 종을 거두어 다른 용도로 주성하라’는 명이 내려진다. 이때 경주 촌로가 신종만은 녹이지 말고 보전해 달라며 죽음 각오하고 상소를 올린다. 세종은 촌로에게 지필묵을 하사하고 ‘경상도 경주 봉덕사와 개성 유후사 연복사의 큰 종은 헐지 말도록 하라’는 명을 내린다. 이후 홍수로 북천이 범람하여 북천가에 있던 봉덕사가 폐사된다. 수풀에 버려지다시피 한 신종을 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애석한 마음을 시로 남겼다. 절은 망해 모래와 자갈에 묻히고/ 이 물건은 잡초 덤불에 맡겨졌네/ 주나라 돌 북과 같이/ 아이들은 두드리고 소는 뿔을 가는구나/ 매월당시집 권12 ‘유금오록’ 봉덕사종 중에서 1460년(세조 5)에 이르러 풀숲에 있던 종을 수습해 영묘사로 옮긴다. 그리고 50여 년 후인 1507년(중종 2)쯤 ‘경주부윤 예춘년이 종을 봉황대 옆으로 옮긴다. ‘동경잡기’에 군사를 모을 때나 성문을 여닫을 때 종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지은 ‘종각중수기’에는 타종의 회수와 관리 규정을 기록해 놓았다. 밤에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인정(人定)에 28번, 통행금지가 풀리는 파루(罷漏)인 새벽 4시에 33번을 쳤다. 이밖에 도성 안에 화재가 나거나, 큰일을 알릴 때 종을 쳤다. 신종은 400여 동안 관종(官鐘)으로서 봉황대를 지켰다. 그러다 1915년 5월, 일제강점기 경주고적보존회에 의해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인 옛 경주박물관(현 경주문화원) 종각으로 이봉한다. 하지만, 하나의 유물처럼 전시·관람의 대상으로 자리매김한 듯 타종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975년, 현재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지기까지 무려 네 차례나 자리를 옮기는 고단한 여정이었다. 이제 종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2003년 개천절을 마지막으로 녹음된 소리로 대신한다. □ 육중한 종, 어떻게 이봉했나?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15년 봉황대 옆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을 경주고적보존회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관 인 옛 경주박물관으로 옮기는 모습이다. 사진 속 조선인은 삿갓, 갓, 패랭이를 쓴 남성과 치마를 입은 여인과 아이들이다. 모두 흰옷을 입었다. 오른쪽 여섯 명은 일본인이다. 순사와 감독자 및 관련 사람들과 하수인으로 보인다. 일본인은 모자를 쓰고 양장이나 제복을 입어 다소 위엄 있는 모습이다. 일본인은 감독자이고 조선인은 지렛대와 동아줄을 잡은 걸 보면 인부일 것이다. 변변한 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종을 옮길 때 사용한 건 다름 아닌 통나무와 동아줄이다. 인부들은 흙길에 둥근 통나무를 침목처럼 깔았다. 종의 몸체 아랫부분에 동아줄을 둘러 묶고 줄을 나무 틀에 감았다. 그리고 연자를 돌려 종을 당겼다. 종을 통나무 위에 올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쪽을 쳐들어야 하는데, 자칫하면 무게가 반대로 쏠려 넘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까스로 종을 통나무 위에 올렸다. 장정들의 함성과 함께 종은 조금씩 통나무를 밟고 앞으로 나아갔다. 통나무를 옮겨가며 밀고 당기기를 1달, 드디어 보존회에 도착했다. 봉황대 종각에서 보존회(현 경주문화원)까지 약 400m의 거리, 그리 먼 거리가 아닌 듯해도 18.9t의 쇳덩이를 변변한 장비도 없이 옮기자면 무척 고단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존회로 옮긴 신종은 60년 후인 1975년 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아이를 공양해 만들었다는 에밀레종 성덕대왕신종의 또 다른 이름은 ‘에밀레종’이다. 어머니를 부르는 어린아이의 슬픈 소리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종을 만들어도 소리가 나지 않자, 아이를 넣었더니 소리가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국유사’나 신라의 전설이 망라된 ‘동경잡기’ 어디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다. ‘鐘(종)’, 한자를 보면 쇠 ‘金(금)’과 아이 ‘童(동)’이 합쳐진 글자다. 종을 만들 때 인(P)을 넣으면 주조성이 좋아져 종소리가 맑아진다고 한다. 인은 사람의 뼈에 많은 성분이다. 포항산업과학기술연구원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성분을 검사했으나 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종에는 없는 0.2%의 유황이 검출되었다. 종이 1,200년 넘는 긴 세월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유황 성분일 것으로 본다. 그럼, 종을 만들 때 아이를 공양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아이를 공양해 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중국에도 전해진다. 중국 베이징의 오래된 종을 모아놓은 고종박물관에는 이런 그림이 있다. 커다란 종을 만드는데 소리가 잘 나지 않자, 아이를 바치기로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끌려가던 아이가 이글거리는 쇳물을 보자 발버둥을 쳤다. 아이 둘을 쇳물에 넣었는데 급히 넣다가 신발이 밖으로 떨어졌다는 내용이다. 종을 완성하여 타종하니 ‘신 달라’는 소리가 났다는 이야기의 그림이다. □ 아름다운 문양 성덕대왕신종은 형태와 무늬, 주조기법, 소리에 이르기까지 예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세계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다. 종의 꼭대기에는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과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龍9215)가 있다. 음통은 한국 범종에만 있는 독특한 구조다. 용뉴의 용머리 조각은 제왕적 위엄을 나타낸다. 종신 위쪽에는 네모난 띠 모양의 연곽(蓮廓)이 있고, 연곽 내부에 연꽃 봉오리를 규칙적으로 새긴 연뢰(蓮857E)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에는 연꽃 모양의 당좌(撞座) 두 개를, 그 사이에 네 구의 비천(飛天)을, 그리고 마주 보는 비천 사이에 명문을 새겼다. 종신의 상단과 하단에는 넝쿨무늬 띠를 새겼다. 연꽃 위에 무릎을 꿇은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은 돌출되게 새겼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쌍이 모두 명문을 향하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는 얼굴에 눈코입이 없어도 존경의 눈빛과 경건한 언어를 짐작게 한다. 향로를 받쳐 든 두 손에는 부처의 높은 덕을 찬양하는 듯 거룩함이 묻어난다. 천의(天衣)와 영락(瓔珞)은 유연하게 하늘을 향하고 덩굴풀이 꼬여 뻗어가는 당초(唐草) 모양의 구름은 하늘거리며 피어오른다. 가인의 자태처럼 보드라운 선의 흐름에 아득한 속살거림마저 묻어난다. 당목이 종신을 때리는 2개의 절제된 연꽃무늬 당좌(撞座) 역시 크고 선이 활달해 대담한 인상을 준다. 비천상 가운데 명문이 있다. 총 1037자로 왕의 지시를 받고 한림랑 김필해가 종의 이름을 지었다는 것과 제작 시기, 제작 이유, 종의 의미, 주조에 참여한 여덟 명의 이름과 관직, 기술자 네 명의 직책과 이름을 기록했다. 종의 바닥엔 울림통을 파 놓았다. 울림통은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며 끊어질 듯 이어지는 맥놀이 현상을 만든다. ‘둥~’ 소리는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가 어디에 머무는가. 가히 측량키도 어려운 깊이와 무게로 다가오는 여운, ‘둥~’ 웅장한 타격음과 함께 대지를 밀치듯 하늘을 울리듯 뻗어간다. 어떠한 매듭도 없이 그저 천지로 뻗어간다.

2025-03-19

“해외 지자체와 MOU·공공형일자리 도입으로 일손 걱정 해결”

봉화군이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따른 농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해온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외국인 인력 부족과 인건비 상승, 농업 인력 고령화 등으로 농촌의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봉화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프로그램 확대와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 도입 등 다각도의 지원책을 마련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이러한 결과 농촌의 인력 공급이 원활해짐에 따라 농업경영의 변화가 두드러졌다. 고추와 수박 등 노동집약적인 작목의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이모작이 활성화함에 따라 농가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아울러 농업 은퇴시기 연장, 휴경농지 감소, 농촌 빈집 감소 등 그간 농촌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효과도 나타났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농촌 인력 수급이 안정화되어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농가에 일손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어 큰 힘이 됐다”며 “앞으로도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외국인 계절근로자 국가 다변화 봉화군은 국제적 환경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의 인력 수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국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안정적인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급에 힘써왔다. 2022년 외국인 계절근로자 수급은 146명이었으나 2023년 557명, 2024년 692명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879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할 예정으로 2022년 대비 6배나 증가했다. 기존에는 베트남 하남성 단일 지자체에서 인력을 수급했으나 2023년에는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과 추가 MOU를 체결했고, 2024년에는 베트남 화방현과 스리랑카 등으로 MOU 체결을 더욱 확대했다. 올해는 5개국 6개 지자체에서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봉화군에 입국해 일손을 보탤 예정이다. 상반기에는 총 705명의 외국인 계절근로자가 입국한다. 20일 베트남 하남성에서 38명, 캄보디아에서 16명 등 총 54명이 입국하는 것을 시작으로 올해 계절근로자 입국이 이어진다. 봉화군은 이러한 노력으로 인력 수급이 원활해짐에 따라 농촌 인건비도 자연스럽게 안정됐다. 2022년 농촌 인건비는 일급 13~15만원까지 상승됐으나 현재는 11만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 공공형 근로자 중소농가 지원 하루나 이틀 단위의 단기간 고용인력이 필요한 중소 농가를 위해 운영 중인 공공형 계절근로자 제도도 농가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기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은 농가가 외국인근로자를 3~5개월 동안 직접 고용하는 방식만 허용돼 단기 고용인력이 필요한 농가는 이용하기 어려웠다. 군에서는 단기간 일손 지원을 위해 2023년부터 봉화농협을 사업대상자로 선정해 공공형 계절근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20명의 공공형 계절근로자를 시작으로 2024년에는 24명으로 확대했으며, 인력 중개 실적도 연인원 1187명에서 366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에 대한 농가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재신청률이 99%에 달한다. 올해는 공공형 계절근로사업 예산 2억3000만원을 확보했으며 수요 증가에 대비해 춘양농협을 신규 사업대상자로 추가 선정했다. 봉화농협과 춘양농협은 50여 명의 공공형 계절근로자를 올해 운영할 예정이며 근로자들은 오는 5월부터 본격적으로 농작업에 나서게 된다. □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속도 봉화군은 농업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과 인력 중개 활성화를 위해 민선 8기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 사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사업은 5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옛 봉성중학교를 리모델링해 기숙사 18실(72명 규모), 인력중개사무실, 다목적실, 근로자 휴게시설 등으로 조성된다. 실시설계 용역을 마무리하고 오는 5월에 착공해 12월 준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기숙사가 건립되면 현재 3곳으로 흩어져서 운영 중인 근로자 숙소와 중개사무실, 식당이 한 곳으로 통합돼 농업근로자 운영의 효율성과 농가 편의가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 내외국인 혼합 농작업반 운영 봉화군은 내국인 농업근로자 보호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내국인 고용인력은 외국인에 비해 나이가 많아 신체 능력이 부족하지만 농가 소통과 영농 경험이 풍부해 내국인을 찾는 농가 수요도 꾸준하다. 농촌인력중개센터 사업 확대를 위해 매년 약 2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외국인 근로자에 집중된 인력 운영을 분산하고, 내·외국인이 혼합된 농작업반을 운영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앞으로 봉화군은 농가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더욱 현실적인 인력중개센터를 운영하고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농촌 인력 안정화에 더욱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5-03-19

향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범종각 울림이 깨달음 주는 듯

자연유산인 노거수에도 품격이라는 등급이 있다. 어떤 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어떤 나무는 기념물 또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법적인 보호 아래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품격에 해당하지 않는 노거수들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어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 생활의 편리함에 밀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노구의 몸으로 자연의 눈비와 바람을 맞으며 환경 악화로 인한 병해충의 위협 속에서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실정이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저 같은 나무로 보일 수도 있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이러한 구분이 이루어지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실제로 품격이 정해진 나무 못지않은 노거수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 법관이 같은 법조문을 놓고도 해석에 따라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처럼, 노거수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다. 노거수와 숲을 탐방하면서 매번 느끼는 점은, ‘노거수’라는 이름만으로도 존재 가치와 법적 보호를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 늘 아쉬울 따름이다. 노거수의 품격이라는 등급은 민속문화적, 역사적, 경관적, 생태학적 가치에 따라 보호와 보존의 필요성이 판단된다. 가장 높은 품격은 천연기념물(天然記念物), 그다음으로 기념물(記念物), 그리고 보호수(保護樹)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 역시 인간이 정한 잣대일 뿐이며, 지구의 식물사회학적 관점에서는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듯이, 노거수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는 중요한 나무일뿐이다. 천연기념물, 기념물, 보호수 모두 자연유산에 속한다. 자연유산이란 자연환경 속에서 형성된 문화적,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유산을 뜻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역사적·학술적·경관적·생태적 가치를 포함하는 살아 있는 유산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노거수는 자연유산이 아닐까? 법적인 잣대로 보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한 기준이 반드시 옳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노거수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생명의 증인이자, 우리 민속과 역사, 문화가 깃든 자연유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천연기념물, 기념물, 보호수 등으로 구분하여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분류는 관리와 보호를 위한 기준일 뿐, 나무 자체의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 사회에서도 신분이나 직업이 존재하지만,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등하다.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 지위나 재산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노거수 또한 크기나 지정 여부에 따라 그 존재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나무가 지닌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법적 보호를 받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자연 속에서 살아온 시간과 생태적 가치는 모두 소중하다. 더욱이 인간의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상대적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특정 나무를 국가적 보호 대상으로 삼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저 평범한 나무로 여길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문화권에 따라 특정 인물이 영웅으로 평가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나무를 등급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거수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된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여기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 나무는 그 자체로 한 시대를 살아온 존재이며, 우리와 공존해 온 자연의 일부다. 특정 나무만 보호하고 다른 나무는 무관심하게 대한다면, 이는 자연에 대한 편협한 태도가 아닐까.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보호 기준의 차이를 넘어, 모든 노거수가 소중한 생명체이자 역사적 존재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사람과 나무 모두 자연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며, 시간 속에서 흔적을 남긴다. 인간이 삶의 여정을 거치며 경험과 기억을 축적하듯, 나무도 수백 년의 바람과 비를 견디며 생명의 기록을 남긴다. 우리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무도 그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거수를 법적으로 구분하여 보호하는 제도는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태도다. 우리는 모든 노거수를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고, 인간과 자연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법적 보호 여부와 관계없이 노거수를 우리의 자연유산으로 인식하고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오늘도 안동시 안기동 276번지 석수암 사찰 경내에 있는 향나무를 찾아 나섰다. 나이 420살, 키 8.4m, 밑둥 둘레 4m이다.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하면서 심었다는 전설과 1995년 6월 30일 도 기념물 106호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이 안내판에 적혀 있었다. 향나무는 범종각과 함께 사찰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범종은 세상의 고통을 씻어주고 중생을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향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범종각의 영적인 울림이 조화를 이루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과 깨달음을 주는 듯했다. 향나무는 불교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나무다. 한국 불교에서 의례, 건축, 상징적 의미 등 여러 방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사찰에서는 향나무를 신성한 나무로 여기며, 공간을 정화하고 부처에게 공양하는 신성한 재료로 사용한다. 향을 피우는 행위는 불법에 대한 공경을 표하며, 수행자의 정신 집중을 돕는 수행의 일부로 여겨진다. 또한, 향나무는 내구성이 강하고 특유의 향을 지녀 불교 사찰의 불상, 목탑, 불단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한다. 향나무로 만든 불상은 시간이 지나도 부패가 덜하고 향기를 유지하여 성스러움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2022년 10월 26일 국보로 지정된 해인사 대비로전의 비로자나불 양위는 향나무 목불(木佛)이다. 사찰에서 향나무가 자주 사용되는 것은 정화 작용과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향나무는 자신을 찍어 내는 도끼날에도 향내를 묻히고, 갈기갈기 찢긴 속살 조각마저 태워 인간의 심신을 향으로 위로하며 마침내 하얀 재만 남고, 바람을 거스르며 시공간을 넘어선 방향(芳香)은 향나무의 진면목이다. 특히 석수암 향나무 연리지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오랜 세월을 거쳐 하나로 이어진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연리지는 사랑, 인연, 조화를 상징하는 자연의 기적 같은 존재로, 마치 두 사람이 긴 세월을 함께하며 깊은 정을 나누는 것 같았다. 거친 나무껍질과 휘어진 가지는 시간의 흔적을 담고, 그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하나가 된 모습은 운명적인 연결과 깊은 유대감을 떠올리게 했다. 주변에 걸린 소원지는 사람들이 나무에 바라는 희망과 사랑을 담아 기원하는 듯하여 더욱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향나무 노거수와 범종각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마치 시간의 흐름을 담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향나무 노거수에서 뿜어 나오는 향기를 맡으면서 연리지가 상징하는 의미를 마음속 깊이 새기며 경외감에 고개를 숙였다. 천연기념물·기념물·보호수의 구분은… 각기 보호하는 개념, 보호 범위와 지정 주체가 다르다. 천연기념물은 학술적, 역사적, 경관적 가치가 있는 동·식물, 지형, 광물 등 자연물 중 국가가 지정해 보호하는 문화재다. 지정 주체는 국가유산청. 대상에는 희귀 동식물, 특별한 지형·지질, 자연환경 등이 포함된다. 기념물은 각 지방자치단체(광역지자체)가 지정한다. 국가 지정 문화재보다 지역적으로 중요한 자연물 및 유적이다. 지정 주체는 각 시·도지사고, 대상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해당 지역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 및 자연물이다. 보호수는 역사적,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있는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정한 나무다. 지정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시·군·구청)이고, 대상은 수령 100년 이상, 보호할 가치가 높은 나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3-19

방송·광고계 ‘김수현 지우기’ 갈수록 커지는 설왕설래

연예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스물다섯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 그녀가 선배 배우 김수현과 오랜 시간 만남을 이어갔다는 주장이 김새론 유족에게서 나오면서 이를 둘러싼 온갖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네티즌들의 설왕설래도 뜨거운 상황. 영국에선 “공중화장실에 갔을 때 비치된 화장지를 조심하라”는 경고가 발령됐다. 화장지에 마약 사용자의 혈액이 묻어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기사가 나온 것. 키우던 반려견이 죽자 슬퍼하다가, 결국 거액을 들여 반려견을 복제한 중국인 이야기도 네티즌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 역시 어느 나라보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외신 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화재 위험성에 더해 불매운동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테슬라의 앞날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주와 이번 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이야기들을 정리한다. ▲사망한 배우 김새론과 김수현을 둘러싼 논란 얼마 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배우 김새론과 생전 그녀와의 교제설이 불거진 배우 김수현을 둘러싼 잡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가 김새론 유족에게 제공받은 둘의 ‘스킨십 사진’을 공개하자 네티즌들의 의구심은 더 커졌다. 그때까지 김수현 측은 “고인과는 동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었지만, 볼에 입을 맞추는 사진이 나옴으로써 “해명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김새론 유족에 의하면 공개된 사진은 2016년 촬영된 것으로 김새론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김수현은 28세였다. 유족은 “김새론이 15살이었던 2015년 11월부터 2021년 7월까지 김수현과 교제했다”고 주장한다. 사진 공개는 자신들의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한 방편으로 해석됐다. 여기에 김수현의 소속사에게 돈을 빌린 김새론이 “당장 7억원을 달라고 하면 나는 정말 할 수가 없어. 꼭 소송까지 가야만 할까. 나 좀 살려줘. 부탁할게”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자 김수현을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했다. “참으로 점입가경”이란 반응부터 “어린 배우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등의 댓글이 SNS에 쏟아졌던 것. 한동안 김수현 측은 김새론과의 교제 사실을 부인하며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선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하지만,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사진과 관련 증거들이 공개되자 김수현 측은 “김새론의 어머니를 만나 해명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현재 다수의 네티즌들은 김수현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계와 광고계도 ‘김수현 지우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논란의 뇌관이 아직 온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라 향후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영국 공중화장실 괴담…화장지를 조심하라” “세상이 참 무섭다. 이제 영국에선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 그나저나 한국도 마약중독자가 적지 않다는데, 우리 공중화장실은 안전할까?”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의 걱정이 하나 더 늘었다. 영국 공중화장실에서 시작된 괴담(?)이 언론 보도와 인터넷을 타고 한국까지 도착한 것이다. 얼마 전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공중화장실에 비치된 휴지를 사용할 땐 눈여겨 봐야한다. 수상한 얼룩이 있거나 움푹 팬 자국이 보인다면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는 기사를 실었다. 그 얼룩이나 자국이 마약을 주사하는데 사용된 바늘 흔적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한 것. 마약중독자가 사용한 바늘엔 피가 묻어 있고, 그 피는 각종 질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 아직까지 공중화장실 휴지에서 마약 사용자의 혈액이 검출됐다는 뉴스는 없지만, “매사 불여튼튼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의견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온다. 영국엔 한국인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가 흔하다. 그런 유명관광지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조차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일까? 영국 여행을 계획했다는 한 네티즌에게서 “주머니나 가방에 내가 쓸 휴지부터 잊지 않고 챙겨야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다. 마약 문제가 영국과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너무 사랑해서”…3200만원 들여 죽은 반려견 복제 “얼마나 아끼고 귀여워했으면 그 큰돈을 쓰면서까지 강아지를 복제했을까. 나도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이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최근 중국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실었다. 중국 항저우에 거주하는 O씨가 자신의 죽은 반려견을 복제했다는 것. 복제에 사용된 비용은 한국 돈으로 약 3200만원. O씨는 지난 2011년 반려견(이름 조커)을 입양했다. 반려견으로 인해 독신자인 O씨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었고, 둘은 10년 이상의 세월을 친구처럼 지냈다고. 하지만, 인간도 강아지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2022년 11월 반려견이 심장마비로 죽자 이후 O씨는 심각한 면역력 저하 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됐다. 결국 O씨는 반려견 조커의 복제를 결심했고, 반려견의 복부와 귀 등에서 피부 샘플을 채취한 후 배아를 발달시켜 대리모 역할을 한 개에게 이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외모와 행동이 모두 ‘조커’와 빼닮은 복제 반려견이 탄생했다. O씨가 이 복제견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엇갈렸다. “사람과 강아지 사이의 사랑을 보여준 감동적인 사연이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습은 똑같아도 개의 본질과 영혼까지 복제할 수는 없다”는 비판적 견해를 드러낸 이들도 없지 않았다. 과학의 발달이 가져온 이런 에피소드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려견과 함께 하는 한국에서도 곧 생겨나지 않을까? ▲불매운동, 주가 폭락…곤경에 처한 일론 머스크와 테슬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내각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얼마 전 ‘연방 공무원 대량 해고’ 등 가혹하게 보이는 각종 정책에 앞장서면서 적지 않은 이들에게 미운털이 박혔다. 유럽에선 일론 머스크가 오너인 테슬라가 생산하는 전기자동차의 불매운동 조짐도 나타났다. 유럽 현지 판매량이 감소하고, 미국 중고 전기자동차 시장에서의 가격도 떨어졌다. 전기자동차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식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화재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높은 성능과 긴 주행거리를 위해 전기자동차에 탑재된 NCM 리튬이온 배터리는 임계점을 넘어서면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쉼 없이 연소된다. 단시간에 1000℃가 넘는 ‘열 폭주’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있으니 전기차 구매 의사를 철회하는 고객도 적지 않은 상황. 불매운동과 화재 위험성 탓일까? 테슬라의 주가도 연일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외신을 통해 들려온다. 지난주 주식시장에서 테슬라의 주가는 15% 이상 하락했다. 스스로도 위기를 감지한 것인지 일론 머스크는 “정부효율부 수장 역할과 기업 운영을 병행하는 게 매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자들의 걱정은 더 커지고 있는 상태다. 한국 네티즌들도 이런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약자들에게 냉혹한 칼날을 휘둘렀으니 그게 자신에게도 돌아간 것”이란 비판이 있고, “일시적 하락세를 보인다고 테슬라 주가가 바닥까지 가진 않을 것”이란 낙관론을 펼치는 사람도 있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3-18

고분 출토 유물 1만여점 한자리, 고대 압독국 위용 한눈에

경산은 고대의 압독국(押督國)이 자리 잡은 곳으로 일찍부터 고대인들의 생활문화 공간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임당·조영동 고분군 등의 각종 고분군이 존재하고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전진기지로 삼았던 유서 깊은 고장으로 지금까지 봉분형태의 20기 봉분 중 15기가 발굴돼 출토유물도 1만여 점으로 방대하다. 고총·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금동관식, 은제 허리띠, 고리자루칼(環頭大刀) 등 최고 지도자를 상징하는 유물들은 압독국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다. 고분 중 출토된 유물들로 왕이나 왕비의 무덤으로 추측할 수 있지만 확실하지 않으면 고총이라 한다. 이러한 압독국의 문화유산을 정리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곳이 임당유적전시관으로 5월 개관한다. 경산은 자연 자원과 문화재, 기타 문화·역사자원 등 다양한 관광자원은 많으나 수익 창출과 지역을 알리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임당유적전시관은 지나가는 관광지에서 찾아오는 관광지로 지역을 알리는 대표적인 공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고대부터 경산의 중심지 임당 대구와 경산을 이어주는 대구지하철 2호선은 대구 사월역을 지나 종착지 영남대역으로 이어진다. 영남대역은 학원 도시 경산답게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지역대표 핫플레이스로 영남대역에서 도보 8분 거리에 새로운 명소 임당유적전시관이 자리 잡았다. 영남대역에서 임당유적전시관으로 가는 길은 국가 유산 사적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의 위용을 느낄 수 있는 길(1번 출구)과 활기 넘치는 대학촌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길(5번 출구)이 있어 학생뿐 아니라 가족 단위 관람객들도 많이 찾을 것으로 보여 대구에서도 흔치 않은 지하철을 이용한 박물관 관람 시대가 경북에 처음으로 열린다. 경산 임당(林堂)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압독국(押督國)’ 또는 ‘압량소국(押梁小國)’으로 기록된 고대국가 압독국의 중심지로 대량의 유적과 유물이 발굴된 지역이다.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은 ‘임당유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으며, 임당동·조영동, 압량읍 부적리·신대리 등을 포함하고 있다. 1982년 첫 발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00여 기의 고분과 마을 유적, 방어시설인 토성, 저습지 등에서 다양한 희귀 고고학 자료가 출토되어 한국 고대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손꼽힌다. 특히 당시 사람을 복원할 수 있는 359여 개체의 인골자료, 수천 개체의 동물 뼈, 생선 뼈, 어패류 등 한국 고대사회 모습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풍부해 고대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고분을 닮은 임당유적전시관 현재 임당동 언덕의 무덤들은 4~6세기경 조성된 대형 고분군으로 당시 최고 지배자의 안식처이다. 임당유적의 역사적 흔적과 흐름을 담은 임당유적전시관의 건축은 고분 토층의 단면을 형상화해 고분군과 주변 자연환경을 이어주는 조화로운 건축물로 ‘시간과 공간이 쌓이다’는 주제를 반영해 디자인되었다. 국가 유산과 어울리도록 고분군과 주 출입로에서 바라보면 낮고 소박한 건축물이지만, 다소 넓은 내부공간에서 반전 매력이 있는 전시관이다. 전시관의 상징인 MI(Museum Identity) 역시 고분을 닮은 전시관을 모티브로 ‘현재는 과거로부터, 미래는 현재로부터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아 하나로 이어진 역사의 길은 유구한 시간을 간직한 ‘임당’을 상징하며, 이를 반영한 다양한 교육과 학술 프로그램이 관람객과 만날 예정이다. □ 반전 매력 1 : 로비 미디어 아트월 대다수 박물관에 들어서면 중앙로비 안내대의 안내에 따라 상설전시실 전시 유물과 연출물 관람으로 이어지지만 임당유적전시관은 중앙로비에서부터 색다른 매력에 빠진다. 이곳 전시의 첫 번째 반전 매력이 바로 LED 디스플레이로 만들어진 대형 미디어 아트월이다. 미디어 아트월은 가로 25m, 세로 8.5m의 초대형으로 인근에서는 보기 어려운 규모로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임당유적과의 공존 느낌이 들고자 핵심 키워드인 ‘고총·고분’과 ‘인골’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고대의 기억’, ‘임당유적의 발견’ 그리고 ‘고대인의 삶의 흔적’ 등 모두 3편의 뛰어난 실감형 콘텐츠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주입식보다는 시각적인 느낌을 중시하는 MZ세대 관람객들에게 큰 반향이 기대되는 코너다. □ 반전 매력 2 : 전시관 뷰 포인트 국가 유산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는 전시관은 장소로서의 가치가 높은 곳이다. 낮고 소박한 건축물이지만 옥상 전망대에 엘리베이터로 오르면 탄성이 절로 난다. 탁 트인 시야에 한번, 압독국의 영역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에 두 번, 지역 중심부답게 교통 인프라(지하철 2개 노선, 경부고속철도, 대구선, 하늘길)와 자연환경이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에 세 번째 탄성을 발하게 된다. 전망대는 압독국 최고 지배자의 무덤군이 조성된 임당동 구릉보다 낮지만, 최대 높이 12m로 당시 지배자의 통치 영역을 직관도 하지만 증강현실(AR)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2층 실내 노출 정원인 ‘하늘길 정원’도 매력적인 뷰포인트 지점으로 주목되는 공간이다. □ 반전 매력 3 : 4단식 出자형 금동관 지난해 가을 임당동 고분군 학술발굴 과정에서 경주에서도 흔치 않은 ‘4단식 出자형’ 금관이 재질만 다를 뿐 경산의 석실묘에서 금동관이 출토되어 학계에 주목을 받았다. 돌방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금동으로 만들어진 관으로 신분과 계층이 상위임을 방증하는 권위적인 상징물이다. 형태는 2개의 엇가지 세운 장식과 3개의 맞가지 세움 장식 및 관테로 구성되어 있으며, 맞가지 세움 장식이 4단인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출토된 금동관은 기존에 경산지역에서 확인되었던 3단식 出자형 금동관과 달리, 처음으로 4단식 出자형 금동관이 출토돼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도 처음으로 출토된 것으로 개관기념 특별기획전시회에서 처음 공개될 예정이다. □ 임당유적전시관의 진정한 매력 그동안 고고학적 발굴성과는 유물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공개되고 이 유물을 사용한 옛사람의 연구(풍습, 생활 등)는 다른 유적과 유물의 사례를 통해 추론했다. 이러한 연구 경향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단일유적 국내 최대 인골 개체 수(359개체)와 가까운 시대가 아닌 1500년 전의 사람 인골이라는 특수성으로 실제 무덤의 주인공과 순장자의 뼈(인골) 분석과 연구에 여러 학문의 학자들이 참여한 ‘압독국 문화유산 연구·활용 프로젝트’이다. 이 융합연구로 이어진 결실을 임당유적전시관에서 만날 수 있다. 2022년 미국 스미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에서 교류한 폴 테일러 박사는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고인골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로 보존상태와 개체 수가 탁월한 편이고, 남녀노소, 계층이 다양하게 확인된다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임당유적전시관은 ‘임당유적을 고고학에서 과학 영역으로 확장’해 전시·연구·교육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충실한 전시관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한식기자 shs1127@kbmaeil.com

2025-03-18

‘자연·공간 어우러진 매력 도시 청송’ 건설에 모든 행정력 집중

청송군이 올 한 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할 목표는 ‘자연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살고 싶은 농촌공간 구축’이다. 이를 위해 36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복안.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체계적인 농촌공간 정비 및 살고 싶은 농촌마을 조성’ ‘쾌적하고 계획적인 도시건설’ ‘낙후된 시가지의 도시재생을 통한 지역 발전’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공공디자인 구현과 공공건축물 건립’의 4가지 전략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사업들을 통해 안정적인 정주환경을 제공하고 체계적인 공간 정비로 ‘살고 싶은 청송’을 조성한다는 것. 계획적인 도시건설과 창의적인 도시재생을 통해 지역 활성화 역시 도모할 예정이다. 아래에서 그 세부적인 내용을 순서대로 소개한다. ◆지역사회에 긍정적 변화 가져올 다양한 사업 추진 2019년부터 추진해 온 ‘청송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이 올해 말 완료될 예정이다. 이는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2월 착공한 청송읍 행정문화센터가 연말에 준공되면,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청송읍이 경쟁력 있는 농촌중심지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지난해 농식품부 공모에 선정된 ‘농촌협약 사업’은 올해 기본계획을 수립해 농식품부에 승인 신청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농식품부와 청송군이 협약을 통해 지역이 스스로 수립한 발전 방향에 따라 투자를 집중하는 사업이다.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총 383억 원을 투입해 청송읍을 제외한 7개 면에 각종 다목적 시설 건립, 리모델링, 주민역량강화사업 등을 추진한다는 것이 청송군의 설명.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하속1리, 신점1리, 거대리, 천천1리)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개조사업엔 마을회관 리모델링, 담장 정비, 슬레이트 지붕 철거, 주민역량 강화 교육 등이 포함된다. 지역 특성에 맞는 마을만들기 사업(각산리, 송강1·2리, 고와리, 장전2리)도 추진해 안전한 생활 인프라 확충과 주거환경 개선을 도모할 계획이다. 아울러 주민 맞춤 교육으로 군민의 기본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고 지역의 특성이 돋보이는 마을을 만들어 나간다는 방침이다. 2023년부터 추진 중인 ‘덕리지구 농촌공간사업’도 원활하게 진행 중이다. ‘농촌중심지활성화사업’ ‘농촌협약’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 등 각종 농촌개발사업과 연계해 정주서비스 개선과 살고 싶은 농촌마을 조성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쾌적한 도시환경 위한 도로 정비와 청년 관련 정책도 쾌적하고 계획적인 도시건설을 위한 도시계획도로 정비도 추진한다. 2023년 공모에 선정된 ‘현서·안덕면 전선지중화사업’은 현재 설계 마무리 단계이고, 상반기 중 착공 예정이다. 이를 통해 현서면과 안덕면 소재지(L=2.2km)의 전선(통신선)을 지중화해 쾌적한 도시미관을 조성하게 된다. 낙후된 시가지 활성화와 지역발전을 위한 도시재생 사업으로는 ‘진보진안지구 도시재생뉴딜사업’과 ‘청송금곡지구 도시재생인정사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착공한 진보 복합커뮤니티센터는 내년 상반기 준공될 예정이며, 진보면 소재지의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한 진보로 전선지중화사업도 올해 상반기 완료된다. 아울러 작년 청송읍 중앙로 및 청송시장 앞 월막교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해 불법 주차로 인한 교통불편을 해소했다. 진보면 우회도로 사거리(국도34호선)에도 원활한 교통 흐름과 신호대기에 따른 불편 해소를 위해 회전교차로를 설치해 상반기 준공할 예정이다. ‘청송금곡지구 도시재생인정사업’의 ‘5080 청춘삶터’ 복합센터도 8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창업지원, 건강문화, 취미활동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세대간 사회통합과 공동체 활성화를 도모할 계획. 이를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경희 군수 “자연과 공간이 조화 이루는 청송 건설” 청송군의 가장 큰 문제였던 청년 주거이탈을 해소하고,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정주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립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청송읍 월막리에 총 44세대 규모의 ‘청년빌리지’를 올해 말 준공 예정이며, 여성 교도관과 청년들을 위한 100세대 규모의 ‘진보면 공공임대주택’도 진보면 진안리에서 실시설계 중인 것. 청송군은 앞으로도 주거 안정화를 통해 청년 생활인구를 확보하고, 침체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공공임대주택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한, 청송읍 현비암 일대에는 경관조명을 설치하고 산책로를 개설할 예정이다. 이 사업으로 읍면 소재지의 노후되고 난립한 간판을 재정비해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미관을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제반 역점 추진사업에 대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새로운 인구를 유입하고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정주환경과 충분한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난개발을 방지하고 청송의 자연과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살고 싶은 청송군을 건설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작종 사업도 추진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최근 농촌 지역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송군이 ‘자연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살고 싶은 농촌공간 구축’을 목표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청송군은 체계적인 농촌 정비와 정주환경 개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고, 이를 위해 도시재생, 농촌공간 정비, 생활환경 개선, 정주여건 개선 등의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청송군의 노력은 주민들이 살고 싶은 농촌을 조성하고, 도시로 떠나는 인구를 되돌리며, 새로운 인구 유입을 촉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청년층과 신중년층이 머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문화·복지·경제활동이 어우러진 농촌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청송군 추진 사업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청송군은 주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생활환경 개선사업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부남면 하속1리 등 4개 행정리에서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 진행되며, 마을회관 리모델링, 담장 정비, 생활 인프라 확충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은 노후화된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또한 진보면과 청송읍에서는 ‘전선 지중화 사업’이 추진돼 도시 미관이 개선되고,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 환경이 조성됐다. 전선 지중화는 주민들의 생활 속 안전을 강화하고, 청송군이 쾌적한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 경관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전망이다. 청송군의 다양한 농촌활력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함께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정책들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향후 청송군은 ‘누구나 살고 싶은 농촌’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김종철·홍성식 기자

2025-03-17

만년송 향나무 향기 아래 선조들의 절개와 충절 되새겨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으로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속되게 말해서 과학 문명의 도움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꾀할 수 있다. 시간과 돈만 있다면 왕권 국가의 임금도 부럽지 않다. 그런데도 자신의 노력은 하지 않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느니 하면서 늘 세상을 탓하며 입에는 불평불만이 가득 찬 사람도 있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라면 이러한 이유는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라며 무시할 것이다. 옛날 같으면 어디를 가려고 하면 몇 시간을 기다려 버스나 기차를 타야하고, 아니면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황혼에 조금의 여유만 있다면 생각나는 대로 자가용으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서 마음껏 즐기고 또 바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모두 하루 생활권으로 가능하다.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는 언제, 어디서나 전화로 연락을 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해 주어 똑똑한 여비서를 두고 있는 회사의 사장과도 같다. 오늘도 똑똑한 여비서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고 의성 점곡면 사촌리 마을에 살고 있는 만년송 향나무와 사촌 가로숲을 하루 일정으로 찾아 나섰다. 대한민국은 도로 왕국이라는 말처럼 잘 포장된 도로 위를 자동차는 미끄러지듯 질주했다. 구불구불한 옛길은 곧은 선형의 길로 정비되고, 산 고갯길은 산의 허리를 뚫어 터널로 건설되었으며, 중간중간 쉴 수 있는 휴게소에는 먹거리도 있고 화장실도 잘 마련되어 있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향긋한 카페라떼 한 잔은 운전 졸음까지 쫓아주니 친한 길동무와 진배없다. 자동차 안의 잔잔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고, 창밖의 풍경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을 즐겁게 해 주어 도로 위 자동차 실내 음악으로 ‘나즐로’ 행복감을 느꼈다. 경북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205번지에 향나무 앞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향나무는 조선시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사원(金士元) 선생이 3년에 걸쳐 지은 만취당 건물 뒤편에 서서 만취당과 마을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취당은 198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보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연배의 살아있는 만년송 향나무는 아직 천연기념물로 승격되지 못함에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거대한 향나무는 만년송(萬年松)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자신을 소개했다. “내 나이는 500살, 키 8m, 몸 둘레는 2.3m라오. 아직도 매년 나이를 먹으면서 키도 자라고 몸 둘레도 늘어난다오. 조선시대 송은(松隱) 김광수(松隱金光粹) (1468~1563) 선생이 심고 스스로 나를 만년송(萬年松)이라 불렀다오. 모두 선조들의 식수관과 자연 애호 사상을 본받을 수 있는 현장 학습자료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뜰에 심어온 정원수 식재의 흐름과 향나무 생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면서도 나의 모습에서 장수와 절개, 생명력과 충절을 보고 닮도록 노력한 선조들의 지혜는 보지 못하고 있으니 섭섭하네”라고 안내문은 은연중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촌리는 만년송과 함께 노거수로 울창한 마을 숲이 있다. 이는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서편에 남쪽과 북쪽을 이어놓은 긴 띠형의 인공 숲이다. 길이만도 약 1000m나 되며 넓이 또한 40m에 달하는 경상북도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마을 숲이다. 주민들이 마을의 허한 부분을 보완하고자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에 울력으로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였다. 이는 방풍림으로 완벽한 조건을 갖추어 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 제405호로 지정하여 그 뜻을 기리며 보호하고 있다. 숲은 나이가 300살에서 600살 된 느티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왕버들 노거수 등 다양한 수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를 ‘사촌리 가로숲’이라 부르며 의성군에서는 매년 ‘점곡 가로숲 둘레길 걷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가로숲은 마을의 품격까지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경관을 아름답게 해 주고 있었다. 잘 조성된 숲길은 건강을 다지는 힐링의 장소로 최적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둘레길에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공룡 발자국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가장 큰 공룡의 발자국은 1.1m에 이르고, 다리의 길이는 4.4m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니, 공룡이라는 집채만 한 동물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그를 숨겨주고 먹여주는 나무와 숲은 얼마나 크고 울창할까 하는 생각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사촌 마을은 신라 때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혀왔다고 한다.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안동권씨 삼성의 집성촌으로 의성 북부의 반촌이다. 특히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숱한 유학자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마을에서 태어나 대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무려 49명이나 된다고 하니 흥미로운 마을이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마을에서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라시대 나천업, 조선시대 류성룡에 이어 한 사람이 더 나올 것이라고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그래서 마을 어른들은 출가한 여인들이 친정으로 돌아와 아기를 낳는 것을 원치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어느 고을이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훌륭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는 교훈적인 이야기로 선조들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사촌리 마을은 영남 8대 명당으로 선비와 학자들의 고장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전국의 3대 장수촌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1970년에는 70세 넘는 노인들이 5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물론이고 일제 강점기에도 의병을 일으켜 구국 항쟁의 선봉에 섰다. 이 모두는 향나무와 가로숲 등 나무를 사랑한 자연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찾다 보면 아름다운 풍경뿐만 아니라 내면의 삶까지 볼 수 있어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무아지경에 빠진다. 오늘날에도 안동김씨 문중 회의는 이곳 향나무와 함께하고 있는 만취당에서 열린다고 한다. 늘 푸른 향나무의 향긋한 향기를 맡으면서 절개와 충절의 정신을 본받고자 노력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가이스카 향나무와 우리 향나무 한국의 향나무는 동해안 지역(강원도, 울릉도, 독도 등)에 자생하는 반면, 일본의 가이스카 향나무는 자연 자생지가 없다. 이는 한국 향나무를 일본에서 조경용으로 개량한 변종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가이스카 향나무를 단순히 일본 나무로 배척하기보다는, 한국과의 연관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백제는 조경, 건축, 도자기, 불교문화 등을 일본에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식물 역시 이러한 교류 속에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가이스카 향나무를 단순히 일본 나무로 여기고 배척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3-12

‘쾅’ 민가 덮친 폭탄 8발… 공군 “피해배상 등 모든 조치”

지난 한 주도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었다. 경기도 포천의 한 마을엔 폭탄이 떨어져 주민들이 혼비백산했다. 군사훈련 중이던 공군 전투기의 오폭 탓이었다. 부상자가 적지 않았고, 주택과 차량도 파손됐다. 국방부와 공군은 국민들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람들은 합당한 피해 보상과 철저한 재발 방지책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흉악범 양정렬이 재판에서 사형을 구형받았다. 양씨는 김천의 한 오피스텔에서 일면식도 없던 사람을 죽이고, 그의 지문을 사용해 거액의 대출까지 받은 혐의를 받는 범죄자다.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50대 남성도 네티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그는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기고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졌다. “죄질이 불량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세상이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듯 잔잔한 감동을 전한 뉴스도 있었다. 미국에서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100세 할머니가 들려준 ‘3가지 건강 비결’이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다. 그 비결이 뭔지 궁금한가? ▲ ‘공군 오폭’으로 민간인 다치고, 마을 부서져 ‘아닌 밤중에 날벼락’이란 말은 이런 상황에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지난 주 목요일(6일) 경기도 포천 한 마을에 폭탄이 떨어져 사람들이 다치고 가옥이 부서졌다. 한미연합훈련 중 공군의 오폭으로 인한 것이었다. 관계 당국은 “주민과 군인 등 7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고, 통증과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후 국방부는 “사고 부상자는 민간인 15명, 군인 14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애초 파악된 숫자보다 피해자가 더 늘어난 것이다. 폭탄은 오전 10시쯤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낭유대교 인근에 떨어졌다. 목격자에 의하면 “갑작스레 큰 폭음이 들렸고, 이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고 한다. 사람이 다친 것 외에도 건물 8개 동과 차량이 부서지는 피해도 있었다. 군은 장병들을 현장에 투입해 잔해 수거와 피해 주택의 정리를 지원했다. 사고 원인은 공군 비행기의 ‘폭탄 비정상 투하’로 파악됐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 군은 이날 경기 포천 승진과학화훈련장 일대에서 공군, 육군, 주한미군이 참여한 합동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훈련에 투입된 전투기는 F-35A·F-15K·KF-16·FA-50 등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KF-16에서 MK-82 폭탄 8발이 비정상 투하된 것으로 군 당국은 설명하고 있다. “사고로 인해 민간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걸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발표한 공군은 “향후 피해자 치료와 배상 등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오폭에 대한 비판과 군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갈수록 거세지자 10일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이번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은 참모총장인 내게 있다”며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이 과정을 지켜본 네티즌은 “철저한 훈련 준비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군 측에 전하고 있다. ▲ 미성년자와 성매매 한 50대 에이즈 감염자 “상대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는 감염병을 숨기고 성매매를 하다니, 그것도 미성년자와. 정말이지 인면수심(人面獸心)이 아닐 수 없다.”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감춘 채 미성년자와 성매매를 한 50대 남성의 재판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이 비판과 질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광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김송현 부장판사)는 미성년자의제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된 50대 O씨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O씨는 지난해 여름 16세 미만 미성년 여성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체포됐다. O씨는 현금 5만원과 담배 2갑을 주며 위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선 O씨의 과거 행적도 드러났는데, 그는 이미 청소년 성 매수 전력이 있었다. 게다다 에이즈 감염자임에도 이 사실을 상대에게 숨겼다. 재판에서 검찰은 O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더불어 신상 공개·고지 명령과 취업제한 5년도 요청했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기고 7개월 동안 피해 아동과 1주일에 3~4회 성관계를 가져 죄질이 불량하다”는 것이 검찰이 밝힌 구형 이유다. O씨의 에이즈 감염 사실은 수사 도중 O씨가 평소 복용하던 약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발각됐다. 이에 경찰은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위반 혐의도 함께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O씨와 성매매를 한 미성년 여성은 성병 검사에서 음성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재판에서 O씨의 변호인은 ‘O씨가 뼈저리게 반성 하고 있다’고 했으나, 여론은 싸늘하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감추고 한 번도 아닌 여러 차례 미성년자와 관계를 가졌다. 엄벌에 처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아무리 생각해봐도 용서하기 힘든 행위”란 게 네티즌들의 중론이다. O씨에 대한 선고는 오는 21일 열릴 예정이다. ▲ 검찰, ‘김천 오피스텔 살인범’에 사형 구형 한편, 지난 주 화요일(4일)엔 이른바 ‘김천 오피스텔 살인범’에게 사형이 구형됐다. 작년 말. 김천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생면부지의 남성을 살해하고, 죽은 사람의 지문으로 대출까지 받은 양정렬(31)이 강도살인 혐의로 체포됐고, 신상이 공개됐다. 대구지검이 수사 단계에서 피의자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한 최초 사례였다.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라는 특정 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른 것이었다. 검찰은 지난 4일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1부 심리로 열린 양씨에 대한 강도살인 혐의 결심공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더불어 전자장치 부착 30년 명령도 청구했다. 앞서 언급처럼 양씨는 지난해 11월 김천시 오피스텔에서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 A씨를 살해했고, A씨의 지문으로 6000만원을 대출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범행 전 살해 도구를 검색하고, 범죄에 사용된 물품을 인터넷으로 주문한 양씨는 ‘계획 살인’이라는 수사기관의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검찰은 그날 “인간이 인간에게 한 행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렴치하며, (양정렬의) 교화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구형 이유를 밝혔다. 기사를 접한 네티즌들 역시 “인과응보다. 악행에 대한 정당한 벌을 받아라” “같은 사람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등의 의견을 인터넷 공간에 남겼다. ▲ 마트 계산원 100세 할머니의 건강 비결은? 기이지수(期頥之壽)라 칭하는 ‘100세 노인’이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근무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과연 그런 경우가 있을까”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겠지만, 이는 가짜 뉴스가 아닌 사실이다. 미국 켄터키주에 거주하는 할머니 조클레타 윌슨이 바로 ‘일백 살의 마트 계산원’. 최근 워싱턴포스트는 윌슨 할머니의 사연을 기사로 소개했다. 그녀는 미국 대형 마트 홈디포의 최고령 직원이다. 2021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4년째 근무 중인 윌슨 할머니는 주 2~3회, 오전 6시부터 10시까지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서서 일하지만, 지친 모습 없이 언제나 고객들과 유쾌한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돈이 아닌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위해 일한다”는 그녀는 근무가 있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 화장을 한 후 직접 운전까지 해서 마트로 출근한다. 관련 보도를 접한 네티즌들은 윌슨 할머니가 직접 말한 ‘건강 비결’에 주목하고 있다.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첫째 ‘지속적인 신체 활동을 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라’, 둘째 ‘삶을 어둡게 바라보지 않는 낙관적인 태도를 가져라’, 마지막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존감을 가지고 자신감 넘치게 살아가라’는 것.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1세기를 살아온 어르신의 생활 속 지혜가 담긴 세 가지 조언에 공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3-11

꽃내음 ‘살랑살랑’ 봄마중 하러 남도로 가요

봄의 서막을 알리는 꽃 소식이 남도에서 시작해 북상 중이다. 이제 막 피어오른 봉오리마다 생명이 깃들고 봄의 기운이 달콤한 숨결을 내보낸다. 동백의 붉은 꽃, 순결한 하얀 매화, 아찔한 노란 유채가 화사하게 피어오르면 사람들의 눈도 마음도 환해진다. 아쉽게도 한파의 영향으로 올해는 제철꽃들이 벙글지 못했다. 그래도 봄은 막을 수 없는 법 3월 중순이면 지각한 꽃들이 더 화사하게 제모습을 비출 것이다.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에 맞춰 전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봄꽃축제도 시작된다. 꽃의 정령들이 화사하게 너울대는 남도로 사랑하는 이와 여행을 떠나보자. 봄의 교향곡을 듣게 될 것이다. □ 홍매화 향 아찔한 양산 통도사 매화는 봄을 알리는 꽃이다. 매서운 추위를 뚫고 피어 강인함과 지조를 상징하기도 하고, 기품 있는 자태로 고고함을 대표하기도 한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절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긴 겨울이 지난 양산 통도사 도량에는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마치 어둡고 긴 터널을 뚫고 나온 것처럼 매화가 핀 통도사는 봄의 기운으로 환하다. 많은 매화 중에서도 역대 선지식들을 모신 영각 앞 홍매화가 해마다 통도사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운다. 마치 오랜 세월 수행으로 일군 향기처럼 매화는 그윽하고 맑은 향을 내뿜는다. 순백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백매는 홍매화 옆에 서니 조금은 빛을 잃었다. 매화야 남도에서 지천으로 피지만 통도사의 홍매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수령이 350년이나 된 이 홍매는 통도사를 창건한 신라시대 자장율사(590~658)의 법명에서 비롯됐다고 하여 자장매(慈藏梅)라고도 부른다. 매화는 사군자 중 하나다.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절개를 상징한다. 홍매화는 매화 중에서도 으뜸으로 친다. 사찰에 핀 꽃인데도 통도사의 홍매화는 묘하게 자극적이다. 어떤 이들은 화장한 여인의 모습과 비교하기도 한다. 여인의 상큼한 미소를 닮았다는 것이다. 홍매화와 어우러진 경내는 천년 고찰답게 고풍스럽고 우아하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스님들은 무심하게 홍매화 나무 아래로 합창한 채 지나간다. 홍매화 주변에는 사진작가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다. 꽃잎이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 어김없이 셔터 누르는 소리가 고요한 경내를 자극한다. 양산시 원동면 일대도 매화 명소다. 영포마을을 비롯해 쌍포·내포·함포·어영마을 등에 매화 밭이 조성되었다. 특히 영포리 영포마을에는 매화나무 2만 그루에서 폭죽이 터지듯 꽃이 피어난다. 개인 농원인 ‘순매원’도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 낙동강 변에 있어서 매화 밭과 강, 철길이 어우러진 장관을 만날 수 있다. □ 여린 꽃그늘 아래 매화 향기 가득한 순천 선암사 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 핀 경치를 찾아가 구경하는 탐매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전남 순천 선암사의 매화는 ‘선암매’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불린다. 수백년 동안 꽃을 피워낸 고목이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돼 있다. 매서운 겨울 추위를 견디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나무들이 종정원 담장을 따라 고운 꽃그늘을 드리우고, 여행자는 그 아래에서 짙은 매화 향기에 취한다. 순천 향매실마을에는 선암사와 또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아직 꽃은 덜하지만 3월 중순을 넘어서면 산자락을 따라 자리한 마을이 하얀 매화로 구름바다를 이룬다. 마을 단위로는 전국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매화나무 재배지로, 주민들은 매화가 만개하는 시기에 축제도 연다. 음력 1월에 피는 ‘납월매’로 이름난 금둔사와 조선 시대 읍성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낙안읍성 민속마을도 봄날을 만끽하기 좋은 탐방지다. □ 화선지에 물감 번지듯 화사한 매화마을 매화는 봄의 전령사다. 이른 봄에 떨쳐 일어나 섬진강 일대를 흰색으로 채운다. 섬진강 하류 백운산 자락의 광양매화마을은 이른 봄이면 새하얀 매화로 눈부시다. 10만 그루에 달하는 매화나무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하면 마을 일대에는 흰 꽃의 띠가 형성된다. 매화가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마치 화선지에 물감 번지듯 매화가 화르르 퍼지고 있다. 매화는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주로 양반집 정원에만 심었던 귀한 꽃이었다. 섬진강을 여행하는 시인들은 매화마을을 세 가지 색을 가진 곳이라고 했다. 푸른 하늘과 은빛 모래, 흰색 매화가 조화를 이루는 곳. 마을 중심에는 청매실농원이 있다. 산 중턱에 있어 매화마을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인 ‘취화선’을 비롯해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자주 등장한 곳이다. 청매실농원 중앙에 있는 2000여개의 항아리도 진귀한 볼거리다. 따뜻한 봄 햇살과 함께 마당에 펼쳐져 있는 항아리 사이로 벌들이 웅웅거리며 날아다닌다. 매실을 곁들인 된장과 고추장 속으로 매화의 기운이 담겨 더욱 향기롭다. 청매실농원으로 향하는 언덕길에는 매화와 관련된 시를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 해안선 따라 수줍게 핀 동백, 거제 지심도 ‘수줍은 봄’은 경남 거제의 바다에 먼저 깃든다. 붉게 핀 동백꽃이 3월이면 해안선 훈풍을 따라 소담스런 자태를 뽐낸다. 장승포항 남쪽의 지심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 군락지다. 원시림을 간직한 지심도의 식생 중 50%가량이 동백으로 채워지며 동백 터널을 만든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3월 중순까지가 구경 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지심도에서는 100년 이상 된 동백이 숲을 이룬다. 수백살짜리 동백이 자생하고, 전국에 몇 안 된다는 흰 동백꽃도 이곳에서 핀다. 흰 동백꽃은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행운의 꽃이다. 동백꽃에는 ‘하나뿐인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오붓하게 산책하며 만나는 꽃이다. 선착장에 내리면 지심도의 주요 관광지를 잇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고, 동백 꽃망울은 길목에서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 절벽이 있는 마끝, 포진지, 활주로를 거쳐 망루까지 두루 거니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도다리쑥국, 물회 등은 거제의 봄을 더욱 향긋하게 채우는 별미다. 지심도 동백꽃의 붉은 기운 뒤로는 장승포 바다가 펼쳐진다. 섬 정상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고, 맑은 날이면 남쪽 대마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3월 동백꽃의 향연이 마무리되면 4월은 유자 향이 섬을 채운다. □ 단아한 아름다움 장흥 묵촌리 동백림 전남 장흥의 봄은 정남진 바닷가에서 시작된다. 따뜻한 남쪽 바다에서 불어온 봄바람은 묵촌리(행정구역 접정리)에 이르러 동백 꽃망울을 터뜨린다. 용산면 묵촌리 동백림은 수령 250~300년의 고목 140여그루가 모인 아담한 숲이다. 이곳 동백나무는 붉은 꽃잎이 5장 달리는 토종 동백이다. 꽃송이가 작아서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 여인네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닮았다. 동백림은 풍수적인 이유로 조성됐다. 마을을 감싸는 산자락이 청룡의 등에 해당하는데, 그 길이가 짧아 마을에 액운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꽃은 3월 중순에 만개하며, 3월 초~4월 초 꽃과 낙화를 즐길 수 있다. 나뭇가지에 달린 동백꽃도 좋지만, 송이째 떨어져 붉은 융단이 깔릴 때 더욱 볼 만하다. 묵촌리는 동학 농민군의 장흥전투를 이끈 이방언의 고향이기도 하다. 광활한 동백숲을 보려면 천관산 동백생태숲에 가자. 계곡을 따라 약 20만㎡에 걸쳐 동백 군락지가 형성돼 있다. 장흥삼합을 비롯해 먹거리 천국인 정남진 장흥토요시장은 토요일과 오일장(끝자리 2·7일)이 서는 날 열린다. 장흥 특산물이 알뜰한 가격에 거래된다. 야생 차밭과 비자나무 숲을 통과하는 길이 인상적인 보림사, 밤하늘의 신비를 엿볼 수 있는 정남진 천문과학관, 정남진 전망대 등 봄꽃을 찾아가는 길에 들러볼 여행지가 많다. □ 아찔하고 향기롭게 구례 산수유마을 노란 꽃이 마을을 온통 덮어버렸다. 산수유가 그렇게 눈부신 줄 미처 몰랐다.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눈이 아찔해질 정도로 노란 꽃잎은 멀리서 보면 마치 개나리 같은데 가까이 다가서면 쌀알처럼 작은 산수유들이 모여 노란색을 이룬다. 산수유가 가장 화사하게 핀곳은 구례군 산동면이다. 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중국 산동성 처녀가 지리산 산골로 시집오면서 산수유 묘목을 자지고 와 심은 곳이라 해서 마을 이름이 산동이 됐다. 산동면에서도 대표적인 산수유마을은 위안리 상위마을. 무려 3만 그루의 산수유가 마을 곳곳을 엄호하듯 빽빽하게 심어져 있다. 이웃한 하위마을, 반곡마을, 대평마을까지 2㎞가량 길마다 산수유를 볼 수 있다. 소박한 초가집 마당에도 산수유꽃이 파고 들었다. 하나 둘씩 대처로 떠나 빈집이 된 곳에도 어김없이 피어 있는 산수유는 적막한 풍경을 밀어내고 한폭의 수채화로 남는다. 상위마을 아래 반곡마을은 한류드라마의 원조가 된‘봄의 왈츠’의 무대이기도 하다. □ 유채꽃의 향이 가득한 제주 나들이 표선면 가시리의 녹산로 유채꽃길은 가시리마을 입구에서 10㎞ 정도 이어진 2차선 도로다. ‘시간을 더하는 마을’이라는 뜻처럼 가시리 녹산로는 시간을 더 내어 드라이브하고 싶은 길이자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이름나 있다. 녹산로 근처에 솟은 따라비오름, 큰사슴이오름 등 높고 낮은 오름의 능선을 따라 유채꽃밭이 드넓게 펼쳐진다. 제주의 유채가 여기에 다 모였나 싶을 정도다. 3월 말이면 녹산로 양옆 길가에 유채꽃과 더불어 벚꽃이 팝콘처럼 꽃망울을 터트린다. 두 꽃이 만나는 순간은 제주 봄날 최고의 장면이다. 제주의 봄을 느낄 수 있는 또다른 곳은 애월읍 곽지리 한담해안산책로다. 한담해안산채로는 애월리 마을에서 곽지리 곽지해수욕장까지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꽃길이 이어진다. 소담하게 핀 유채꽃을 감싸는 돌담과 에메랄드빛 바다 사이로 난 길을 걷다 보면 이 길이 가장 제주다운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섬의 서쪽 하늘에 해가 저물면 노을이 내리는 바다와 돌담 너머 핀 유채꽃도 금빛으로 물든다. 노란 봄꽃은 석양속에서 다른 어투로 말을 건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

2025-03-10

세월의 손길이 빚어낸 예술작품이 전하는 ‘위로의 선율’

노거수를 찾아 떠나는 길은 마치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기는 것과 같다. 오래된 나무는 수백 년을 살아오며 그 자리에서 세월을 견디고, 바람을 맞고, 비를 머금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품어왔다. 그런 나무를 직접 찾아가 손으로 쓰다듬고, 나무와 마주하여 숨을 고르는 일은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되새기는 순간이며, 우리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경험이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화려한 공연이나 값비싼 여행이 곧 여가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정한 여가는 꼭 돈을 들여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노거수 앞에서 느끼는 경이로움과 숲속 자연에서 느끼는 감동의 물결은 비싼 티켓이나 화려한 무대 없이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수백 년을 한자리에서 지켜온 나무는 마치 삶의 스승처럼 우리를 맞이한다. ‘너의 어려움과 슬픔도 인내하면 곧 지나가리라’고 하는 듯한 여유로운 자태를 뽐내며,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깊이 있는 내면임을 조용히 일깨운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야 비로소 자연이 주는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젊었을 때는 속도와 성취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눈에 보이는 성공이 우선시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느린 것의 아름다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위로를 점점 더 크게 느끼게 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인생의 전반부는 본문을 쓰는 과정이고 후반부는 그것을 되새기며 주석을 다는 과정이다. 노거수와 마주하는 순간, 우리는 인생의 주석을 달아가며 지나온 길을 돌아볼 수 있다. 노거수는 시간을 품은 존재이며, 인간이 쌓아온 문화와 감정을 품고 있는 하나의 역사다.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여가를 즐길 수 있다. 값비싼 티켓을 손에 쥐지 않아도, 여행의 흔적을 인스타그램에 남기지 않아도, 노거수와 함께하는 순간은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 된다. 진정한 여가는 스스로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일이다. 노거수를 찾아 떠나는 길에서 우리는 자연의 품 안에서 한걸음 멈추어 서고, 바람과 대화하며,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펀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사람들은 여가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남기며 자신을 표현한다. 이제 여가 활동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명품 노거수와 숲을 탐방하면서 보고 느낀 감정을 글로 표현하여 신문에 연재하는 것 또한 일종의 여가 활동을 소셜 미디어에 남기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신라문화의 본고장으로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 가는 곳마다 문화재로 가득 찬 볼거리의 고장이다. 그래서 경주시는 도시 전체가 국립공원이고 노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도 경주에는 살아있는 문화재인 많은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경주 양동마을은 고택마다 집의 품격을 높여주고 집 지킴이로 향나무, 회화나무, 느티나무, 왕버들 등 노거수가 살고 있다. 특히 서백당 향나무 노거수는 그 오래됨과 아름다움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 봄볕을 머리에 이고 오르막 내리막 마을 길을 걷다 보니 또 다른 관광객들을 만나 그들과 합류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등줄기에 맺힌 땀방울은 내의를 적시었다. 삼삼오오 양산을 받쳐 들고 햇볕을 가렸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렇게 그리워하던 따뜻한 햇볕이 오늘따라 외면당하고 있으니 이 무슨 변고일까. 나이 드신 문화 해설가는 종갓집 고택으로 안내하여 조선시대 양반 집 구조와 살림살이, 생활의 애환 등을 재미나게 설명해 주었다. 입담 좋은 문화 해설가의 설명에 웃으면서 전통 마을의 고택을 둘러보는 재미는 또한 짭짤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 가문과 여강 이씨 가문이 정착해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살아온 유서 깊은 조선시대의 양반마을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마을은 500여 년이 넘는 오늘날까지 전통의 향기를 품은 채 150여 호의 기와집과 초가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건축은 한옥, 서당, 정자, 영당 등 20여 채나 되었다. 두 가문은 사돈지간으로 협력과 보이지 않는 가문의 경쟁으로 조선시대 문신과 성리학자 등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하였다고 했다. 역시 발전을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위에 있는 국가민속문화재 서백당 고택에 들어섰다. 고택 건축물의 아름다움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향나무 노거수였다.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고택은 그 옛날의 건물을 위한 담벼락이 아니었다. 바로 향나무를 품고 보호하는 담벼락으로 변신했다. 향나무로 다가가기보다 먼저 그 웅대한 자태에 놀라 한참을 톺아보다 카메라 렌즈에 고상한 품위를 담았다. 평지에 축담을 세우고 집을 짓는 것처럼 축담 위에 앉아 있는 향나무의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처음부터 향나무를 배려한 식재가 놀라웠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고즈넉한 뜰 한가운데, 수백 년을 살아온 향나무의 웅장한 자태는 성인의 모습을 연상했다. 굵고 뒤틀린 줄기마다 세월이 새겨져 있고, 마치 세상의 풍파를 묵묵히 견뎌온 듯한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서백당의 주인인 손소(孫昭)가 심은 향나무는 나이 600살, 키 15m, 몸 둘레 3.6m, 수관 폭 14.7m로 민속 문화적 가치로 보아 천연기념물 반열에 올려놓아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따스한 햇살이 나무의 거친 결을 따라 부드럽게 스치며 반짝인다. 비틀리고 꼬인 줄기는 마치 세월의 손길이 빚어낸 예술 작품처럼 신비롭고도 장엄하다. 짙푸른 가지들은 하늘 향해 힘차게 뻗어 나가고,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초록빛 물결을 만들어낸다.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향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든다. 방문객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나무를 바라본다.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이들의 발길을 맞이한 나무는, 마치 묵묵한 현자처럼 아무 말 없이 모든 이야기를 들어준다. 마치 세월을 지나온 나무가 전하는 오래된 이야기, 자연이 들려주는 위로의 선율 같다. 서백당(書百堂)은… 국가민속문화재 제23호다. 경주손씨 입향조인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 1433~1484)가 조선 세조 때인 1459년에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손소는 청송부의 속현인 안덕현(安德縣)에서 태어나, 25세인 1457년에 풍덕류씨(豊德柳氏) 류복하(柳復河)의 사위로 양동마을에 정착하였다. 서백당 편액이 보이는 사랑채는 손소의 아들 문신인 우재(愚齋) 손중돈(孫仲暾, 1463~1529)과 외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이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손소 선생은 세조 5년(1459)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주부·병조좌랑을 역임했으며, ‘이시애의 난’ 때 종사관으로 출정하여 적개공신 2등에 책록되었으며. 이후 안동부사·진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484년 양동마을 자택에서 별세했는데 조정에서는 매계 조위(梅溪 曺偉, 1454 ~1503) 선생을 치전관(致奠官)으로 양동마을 손소 빈소에 보내 조문하게 하였다고 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3-05

출렁이는 ‘가상화폐’ 시장… 투자자들 고심도 깊어져

모험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하는 2030세대의 관심사 중 하나인 가상화폐. 대표적 가상화폐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등락이 지속되고 있다. 폭락했다가 반등하고, 폭등했다가 조정 국면으로 가고….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의 고심도 깊어진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오늘도 “그만 팔아야 한다” “아니다. 더 적극적으로 매수해야 한다”는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AI가 생활 깊숙이 들어오면서 기상 예측의 정확도도 높아질 전망이다. 영국의 한 언론매체는 ‘이전보다 정확도를 최대 20% 이상 높인 AI 기상예보 시스템이 개발돼 시험 단계를 거쳤다’고 보도했다. 앞으론 “허리가 뻐근하니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이 줄어들 수 있을까? 봄이 눈앞임에도 여전히 추운 날씨가 ‘난방비 폭탄’으로 날아들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힘들어하는 서민들의 고충이 더 커졌다. 국내외 상황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난방비 인상이 불가피해 보이니 더 큰 문제다.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오른 것처럼 느껴진다는 ‘체감 난방비’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네티즌들도 많다. 걸그룹 멤버 한 사람이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단발로 공항에 나타난 카리나를 본 언론사 기자들이 사진을 찍어 전송했고, 그날 보도된 카리나의 ‘단발 사진’은 단박에 인터넷 공간으로 퍼져나갔다. 21세기 대중들은 연예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한다. ‘좋다, 나쁘다’의 가치 판단 이전에 어쩔 수 없는 세태로 보인다. ▲폭락과 폭등 반복 ‘비트코인’, 그래도 사야할까? 북한 해커로 추정되는 이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비트(ByBit)를 공격해 15억 달러(약 2조1577억원)를 탈취해간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사건 직후 거래자들이 대규모 인출로 눈앞에 닥친 위험에 반응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그 파장은 몇몇 경제신문의 ‘바이비트 해킹 이후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4개 가상자산 20%대 하락세’라는 기사로 이어졌다. 해킹 사고 발생 후 불안해진 투자자들이 돈을 가상자산 거래시장에서 빼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가상화폐 전문가들은 지난주 비트코인의 급락을 ‘돌출한 악재가 투자 심리의 약화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인터넷 공간에선 “하락세는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을 사두는 게 효과적 투자 전략”이라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현재는 공격적 투자보다 일정 시간 지켜보는 게 좋을 시기”라는 신중론도 곳곳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호시절’을 맞았던 가상화폐 시장. 그러나, 비트코인은 지난주 국내 거래소에서 작년 말 이후 처음으로 1억2천만원선까지 하락했다. 또 다른 주요 가상화폐인 이더리움과 솔라나 등도 가격이 떨어졌다. 지금 상황이 조정 국면인지, 더 큰 하락을 예고하는 징후일 것인지를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설전이 거세지고 있다. 3월 들어서는 다시 반등하는 걸 보면 비트코인에 대한 미래 가치의 정확한 예측은 매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위험자산’으로 불리는 가상화폐. 그런 이름을 얻은 건 가상화폐의 등락 예측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일 터다. 그러니, 비트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듯하다. ▲일기예보의 정확도 대폭 높인 AI 시스템 개발 오래 전 이야기다. TV에서 일기예보를 진행하는 기상청 직원이 “오늘은 날씨가 맑겠습니다”라고 예보를 전한 직후 거리로 나서자 굵은 소나기가 쏟아졌다고. 건물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그는 자신을 알아본 사람들이 “일기예보는 매일 틀려”라고 소곤거리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고 한다. 당시는 기상 예보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이제 위에 언급한 것과 유사한 에피소드가 대폭 줄어들 것 같다. 최근 AI를 기반으로 한 보다 정확한 기상예보 시스템이 개발된 것이다. 영국의 한 외신은 얼마 전 ‘AI를 활용한 새로운 일기 예보 시스템을 출시한 유럽은 향후 최대 15일까지의 날씨 예측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AI 예측 시스템은 현재까지 사용 가능한 머신 러닝을 활용해 가장 광범위한 매개변수를 생성한다”는 것이 기상 관측 전문가의 전언이다. 기술의 발달이 기상청 직원이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어준 것이다. 지난 1년 6개월간의 테스트를 거친 결과 새로운 AI 기상 예보 시스템은 이전 방식에 비해 최대 20% 이상 향상된 정확성을 보였다. 앞으로는 한국 역시 AI 전문 인력과 관련 인프라 확충, 데이터 활용 개선과 기술력 강화로 진일보한 기상관측 시스템이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몇 년 후, 아니 짧게는 몇 개월 뒷면 “아직은 맑은데, 비가 올 수도 있겠지. 우산을 챙겨가는 게 좋을까?”라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생활의 편의성 확대를 반기는 네티즌들이 적지 않다. ▲27평 아파트 난방비 40만원, ‘폭탄 난방비’ 원인은... “예년에 비해 큰 추위가 없었고, 실내온도를 21도에 맞춰 지냈는데도 난방비가 40만원이 나왔어요. 이 정도면 폭탄 수준 아닌가요?” 1월분 난방비 고지서를 받아본 서민들은 깜짝 놀랐다. 지난해에 비해 대폭 오른 요금에 “도시가스 계량기가 고장 난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네티즌이 있을 정도. 올해는 입춘, 우수가 지나고도 2월 꽃샘추위가 대단했다. 당연지사 난방 온도를 올렸을 테고, 그 요금 고지서는 3월에 받아들게 된다. 아직도 또 한 번 폭등한 난방비에 놀랄 일이 남은 것이다. 주택용 난방 요금은 지난해 7월 1일부터 M㎈당 101.57원에서 112.32원으로 9.8% 인상됐다. “그 여파가 사용량이 늘어나는 겨울에 이르러 현실화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 난방비 상승의 가장 큰 요인은 국제시장에서의 액화천연가스(LNG) 가격 상승이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와 기후의 급격한 변화가 가뜩이나 팍팍한 월급쟁이와 소상공인의 주머니 사정을 더욱 옥죄고 있는 형국. 옛날부터 ‘겨울은 가난한 사람이 힘든 계절’이란 이야기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젠 가파르게 오른 난방비가 서민들의 한숨을 부르는 시대가 됐다. 도시가스 요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선 “집을 비울 땐 보일러의 외출 기능을 사용하고, 겨울철 실내 적정온도인 20도를 지킬 것”을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번 주도 전국적으로 눈과 비가 내리고 춥다는 예보다. 따스한 봄기운과 함께 ‘폭탄 난방비’ 걱정이 사라질 날은 언제가 될까? ▲걸그룹의 바뀐 머리 스타일 하나에 인터넷이 시끌벅적 “언니 너무 예뻐요.”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카리나(유지민·25)가 헤어스타일을 바꿨다. 연예인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모방이 일상화된 21세기 한국. 긴 머리칼을 단발로 자른 카리나의 스타일 변화에 지난 주말 내내 인터넷 공간이 시끌시끌했다. 카리나는 얼마 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패션 위크에 참가하려 인천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 달라진 카리나의 외모에 어느 매체 할 것 없이 언론사의 카메라 플래시가 쉼 없이 터졌다. 촬영된 사진은 즉각 방송국과 신문사로 보내졌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등 인터넷 SNS를 통해 무한 확산됐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너무 귀여워요” “황금 비율 몸매에 똑 떨어지는 단발까지. 역시 카리나!“라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줄을 잇는 상황. 귀밑이나 목덜미 언저리에서 머리털을 가지런히 자르는 걸 ‘단발’이라 한다. 이건 사전적 의미. 헌데, 그 사전적 의미를 압도하는 게 연예인의 헤어스타일 변화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당분간 미용실에선 “단발로 해주세요”라는 젊은 여성들의 주문이 쏟아질 듯.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치렁치렁한 여성의 긴 머리칼이 사랑받던 시절.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숏커트로 남성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당시 사람들은 짤막한 머리칼을 가진 예쁘장한 여성을 ‘헵번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했다. 인터넷에서의 화제와 인기를 감안하면 카리나의 단발 역시 오드리 헵번의 숏커트에 준하는 ‘새로운 스타일’로 꽤 오랜 시간 주목받을 듯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3-04

신라 문명과 문화 흔적이 곳곳에 자리한 애증의 ‘시마네현’

지난 2월 22일,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며 다케시마의 날 20주년 행사를 야단스럽게 치른 일본 시마네현 마츠에시. 20년 전 2005년, 시마네현이 어이없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기 전까지는 경북도와 자매관계를 맺으며 돈독한 우의를 다진 곳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고대 국가 신라와 신화를 공유하고 신라의 문명과 문화를 받은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선덕여왕경모회가 폭설 속 일본여행탐방을 다녀왔다. 시마네현에서 한일 간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재우고 깨닫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선덕여왕경모회가 기획하고 회원 15명이 함께한 일본 속 신라 흔적을 찾은 여행기를 본지에 보내왔다. □ 선덕여왕의 즉위와 일본 신라 27대 선덕여왕(재위 632년~647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이다. 진평왕(재위 579년~632년)은 적장자인 아들은 없지만 대신 명민한 딸 덕만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이를 위한 다양한 명분과 사례를 수집했다. 성골 남성이 없다는 명분만큼이나 좋은 또 하나의 사례를 일본에서 찾았다. 진평왕은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해 사신을 보내기도 하고 불상과 까치를 선물하기도 했다. 당시 일본에는 최초의 여성천황인 스이코 천황(재위 592~628년)이 있었다. 진평왕은 이를 참고하여 덕만공주의 왕위 계승을 진행했으리라는 학계의 주장이 있다. 여자도 왕위에 오를 수 있는 명분이 축적되고 이를 강력히 지지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이 즉위했다. 신라가 현재의 일본 문화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보고자 일본으로 향한 선덕여왕경모회는 일본여행의 명분을 또 하나 획득했다. □ 연오랑세오녀 설화와 스사노오노미코토 신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157년)에 포항 바닷가에 살던 부부가 바위배를 타고 차례로 일본으로 간 연오랑세오녀 설화가 있다. 이들은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되었으나 신라에서는 빛이 사라졌다. 왕이 사신을 보내어 오라고 했으나 하늘이 시킨 운명이라며 대신 세오녀가 짠 비단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 빛을 찾았다는, 우리나라 유일의 일월신화다. 일본에도 비슷한 신화가 있다. 일본 신화의 주인공인 스사노오노미코토가 신라에 가서 살다가 흙배를 타고 동해를 건너, 이즈모국(出雲國)에 도착했다는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기록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연오랑세오녀’가 단순히 설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포항의 옛 소국이었던 근오기국의 지배층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 신라는 동해를 통해 일찍부터 일본과 무역교역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신라는 일본에 제철, 직조, 농사기술을 전파하였고, 과거 신라인들은 일본 문명의 개척자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타국으로 건너가 성공한 최초의 이민사일 수도 있다. 성(姓)이 ‘비단짜다(錦織)’이니 세오녀의 후손임에 틀림없다는 니시코리 아키라(錦織明) 선생님은 그 몇 대 손일까?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시메나와(注連繩·신사에서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는 금줄의 일종)를 가진 이즈모타이샤는 800만이 넘는 일본 신들의 신사라고 한다. 매년 음력 10월이면 전국의 신들이 이곳에 모여 한 달간 회의를 한다며, 신들이 머무는 호텔이 있다고 했다. 과연 본전으로 들어가기 전 동서편으로 방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15년 전, 이즈모타이샤 마츠리에서 목도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신사 부근 바닷가에서 신라의 연오랑을 신으로 맞이하는 것으로 마츠리가 시작됨을 보고 느낀 뿌듯함에 다시 전율한다. □ 일본 속의 신라신사, 한국신사 시마네현에는 연오랑세오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신사가 여럿 있다. 오키군의 작은 어촌마을에 있는 가라카미시라기진쟈(한신신라신사·韓神新羅神社)는 이름부터 대놓고 신라(新羅)다. 도리이에 새겨진 ‘신라(新羅)’를 발견하는 순간 가슴이 웅장해졌다. 신사엔 스사노오노미코토 신화를 그린 액자가 있어 한신(韓神)인 연오랑과 스사노오노미코토를 동일시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히노마사키신궁(出雲日御碕大神宮)은 매우 아름다운 주홍빛 신사다. 떡갈나무 잎의 문장을 쓰는 이 신사는 일본 태양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와 동생 스사노오노미코토와 그의 아들 이소다케루노미코토를 제사하고 있다. 이즈모풍토기에 의하면 이 신사는 원래 한국신사였다고 한다. 이름이 바뀌어 없어진 것을 안 재일동포 김호수씨가 1996년 7월, 신사 본당 오른쪽 산면에 조그마한 신사 가라쿠니진쟈(韓國神社)를 새로 지어 올렸다. 우리 일행은 본당엔 일별도 주지 않고 먼저 찾은 이 한국신사에서 절절한 마음의 참배를 올렸다. 가슴 아프지만 동시에 가슴 뭉클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과거 어느 땐가는 일본에 선진문명과 고급문화를 전파한 우리나라였고, 이를 역사나 이야기로 전승해오면서 신격화하는 일본인의 신앙처를 가까이 들여다 본 심사는 복잡미묘했다. 신화를 공유하며 가까운 이웃 나라였던 두 나라가 가깝지만 먼 나라가 된 작금의 한일 관계를 곱씹게 된다. □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일본의 현장 마쓰에성 옆엔 시마네현청이 있고, 그 옆 옛 시마네현청 건물에 다케시마자료실(竹島資料室)이 있다. 작은 네거리 한켠엔 독도 사진을 박아두고 ‘다케시마는 시마네의 보물 우리 땅’이라고 커다랗게 쓴 현판도 있다. 그 아래 글씨를 읽으니 더욱 기가 찼다. “다케시마는 남도, 여도 등 2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면적은 0.20km이다. 시마네현 오키군 오키노섬에 속하지만, 오늘날 반세기 동안 한국에 불법 점거되어 있다. 시마네현에서는 다케시마의 영토권의 조기 확립을 향한 조사 연구, 홍보 계발 활동에 임하고 있다. 다케시마 문제에 대한 이해와 지원을 부탁한다. - 시마네현·시마네의회, 다케시마·북방영토 반환 요구 운동 시마네현민회의 -” 우리 일행이 간 날은 2월 18일이었는데, 2월 22일이 다케시마의 날이라 극우 세력이 많으니 자료실 방문을 자제하라는 지인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자료실 입구 표지판 앞에서 사진만 찍으며 우리 모두 속으로 외쳤다. “독도는 우리 땅!!” □ 일본 소설가 아베 고보의 문학 현장, 돗토리 사구 시마네현과 돗토리현은 일본에서도 동해에 접한 현이다. 두 현을 합해서 인구수가 110만 명 정도로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그러나 한때 고대국가의 중심지였으며 신들의 땅, 신화의 땅이라 불릴 정도로 고대도시의 면모를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앞서의 신사들이 시마네현에 있었다면 돗토리현에는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자연경관이 있다. 3만년의 세월이 만든 일본 최대의 모래언덕, 사구(砂丘)가 바닷가에 바싹 면해 있다. 바람결이 만들어낸 모래무늬가 시시각각 달라 자연이 창조한 예술로 찬탄할 정도라 했다. 우리 선덕여왕경모회에서는 일본 현대문학의 기수라 칭송받는 소설가 아베 코보(安部公房, 1924~1993)가 이 모래언덕을 배경으로 쓴 ‘모래의 여자’를 모두 사서 읽었다. 아베 코보를 전공한 이정희 위덕대 교수의 추천 덕이었다. 때문에 세 시간의 폭설을 뚫고 간 눈 쌓인 모래언덕에 발을 묻으며 우리들은 모두 모래의 여자가 살던 집을 찾기도 했다. 눈 오다 바람 불고, 또 잠시 해가 비치는 순간 순간, 억겁의 세월과 바람이 만든 모래언덕을 기어오르고 내려오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만끽했다. □ 가장 일본다운 정원 아다치미술관 아다치미술관은 이즈모 출신 사업가 아다치 젠코(足立全康, 1899~1990)가 1970년에 세운 일본 근대화 컬렉션으로 일본화, 도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더 유명하다. 미국의 일본정원전문 잡지에서 여러 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잘 가꿔진 정원이 사계절 아름답다. 특히 겨울 정원이 볼거리라 했는데, 마침 눈 오는 날의 정원은 매혹적인 그림 그 자체였다. 액자같은 통창으로 감상한 정갈하기 이를데 없는 정원은 그 자체가 치유였다. 넋놓고 정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근심 다 날릴 수 있을 것 같았다. □ 만화가 거리에서 경주가 벤치마킹할 것은? 돗토리현의 작은 항구 시카이미나토시에는 일본 요괴만화의 거장 미즈키 시게루(1922~2015)의 만화에 등장하는 요괴 백 수십 개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미즈키시게루 로드라 이름 붙였다. 작은 도로 양편으로 세워진 동상들마다 기증자나 기증단체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지역민들의 기부로 만들어진 거리임에 더욱 부럽고 감탄스럽다. 이 길이 만들어지자 쇠락해진 소도시가 관광도시로 재탄생했다고 하니 문득 경주 출신의 만화가 이현세가 떠올랐다. 한때 우리나라 만화계를 풍미했던 이현세를 기리는 무언가가 경주에는 왜 없을까. /이정옥 선덕여왕경모회장(위덕대 명예교수)

2025-02-26

고고한 향과 웅장한 수형… 그 신성함에 홀리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소비 심리가 변화하면서 그중에도 여가 비용 상승이 증가하고 있다. 제한됐던 사회적 활동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작용한 탓일까 ‘지금 제대로 즐기자’라는 태도로 높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특히 현장성을 중시하는 공연과 스포츠 이벤트의 인기가 급증하며 2024년 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중을 기록했다. 또한, 젊은 세대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경험을 중시하며 고가의 소비를 망설이지 않는다. 이는 특별관 영화, 팝업스토어, 체험형 전시 등의 인기를 견인하고 있으며, 여행 또한 단순한 휴식이 아닌 개성과 가치를 반영한 경험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나즐로(나 홀로 즐거운)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 체험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작은 여가 비용으로 큰 즐거움의 개성과 가치를 반영한 체험을 하고 있으니 일찍부터 트렌드 변화의 감을 잡은 탓일까. 오늘도 경북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산 190번지 천연기념물 향나무 노거수와 마주하고 서 있다. 향긋한 향기가 몸을 감싸면서 혈류를 타고 나의 가쁜 숨소리를 잠재운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숨이 찼다. 심호흡으로 숨 차는 것이 진정되고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분도 또한 상쾌했다. 웅장한 향나무를 톺아보았다. 거대함과 묘한 줄기의 뒤틀림에서 나오는 곡선의 아름다운 미가 눈을 사로잡고 무한한 즐거움에 감정선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이 일어나 몸에 저절로 소름이 돋는다. 웬만한 아름다움에도 쫓기는 일상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나친 일들이 부지기수인데 이렇게 고요한 나무 아래에서 나 홀로 흥분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무슨 괴이한 일인가. 공활한 푸른 가을 하늘처럼 내 마음 또한 그같이 한량없다. 화성리 마을 뒷산 자락 중턱에 살아가고 있는 향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로 추정되며, 키는 14m, 가슴 높이 둘레 4.5m의 우산 모형의 수형이다. 외과 수술을 하였지만, 아직도 건강한 모습이다. 향나무는 측백나뭇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 노송나무라고도 불린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세로로 얇게 갈라지며,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는 9-10월에 자흑색으로 익는 나무이다. 주로 정원수나 관상용으로 가꾸며, 목재는 특유의 향기가 좋아 귀중한 가구재나 약재로 사용된다. 우리나라 중부 이남과 울릉도에 주로 자생하며, 중국, 일본 등에도 분포한다. 향나무는 전국에 골고루 분포하고 널리 심었던 자원식물이다. 한반도 동해안의 나무이고, 한국인의 나무라는 것을 노거수 탐방으로 알 수 있었다. 향나무 자생 개체군은 오랫동안 남획되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향나무는 모두 심은 것으로 유래 되는데, 이는 민속 생활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결과이다. 고급 향의 재료로 향나무를 주목했던, 유교문화가 창성한 조선시대에 더욱 성행했다. 향교, 서원, 사찰, 무덤, 우물가 등 사람이 관리하는 장소에서 흔히 보는 크고 작은 향나무는 그런 맥락의 문화적 소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식물생태보감에 김종원 교수는 “일본열도에서 향나무 자생지라고 알려진 사례는 여태껏 없다. 오히려 식재 기원이라는 방증만 차고 넘친다. 모두 6세기 백제에서 전래된 불교문화가 크게 번창했던 곳이다”라고 기술하여 향나무는 동해안의 나무이고 한국인의 나무임을 말하고 있다. 가이즈카(Kaizuka) 향나무를 일본 나무로 알고 배척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는 잘못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한편으로 얼마나 맺힌 원한이 많으면 그럴까 싶다. 향나무 노거수가 무슨 요술을 부리는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고요한 수림 속에 향나무와 마주하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데 왜 이렇게 기분이 상쾌하고 좋을까? 나무가 뿜어내는 향기를 내가 들이마시고 사람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받아 마시며 교호 작용하는 탓일까? 그 동안 도시의 혼탁한 공기 속의 양이온에 몸의 균형은 깨어지고 찌들어 그로 받은 스트레스는 일상의 생활을 그리 유쾌하지 못하게 했다. 양이온 과다 흡수로 우리 몸의 신경전달 물질의 일종인 세로토닌의 분비가 과다 촉진되어 자극에 대한 반응을 무디게 만들었다. 신체에서 보내는 여러 가지 정보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니 늘 몸이 무겁고 마음도 개운하지 못했다. 세로토닌의 생성을 막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자연에서 지내는 것이 최상이 아닐까 싶다. 음이온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는 숲에 많고 특히 향나무,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림에 더 많다고 한다. 향나무에서 나는 향기는 우리의 심장과 신경, 근육 등 자율 신경을 진정시키고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이는 세포의 장기 기능을 강화하여 혈액을 정화하고 혈액 순환도 잘 되어 혈색까지 좋아지니 즐기면서 건강도 챙기는 이보다 더 좋은 여가 체험이 있을까 싶다. 우람한 줄기의 거친 질감에서 세월의 흔적과 강인함을 느끼고, 독특하게 휘거나 꼬이거나 구부러진 모습에서 곡선의 아름다운 미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중앙 원 줄기에는 갈라진 틈이나 옹이가 오랜 세월 동안 자라면서 형성된 특징적인 무늬 또한 특별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가지가 땅으로 처져 있었다. 그러나 일부 가지는 그와 반대로 하늘 높이 쭉 뻗어 자란 모습에서 자유 분망함과 힘찬 삶의 생기를 느꼈다. 처진 가지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받들어주기 위하여 지지대를 무려 10개나 세워 놓았다. 주변에 철제 울타리를 설치하고 천연기념물이라는 안내 표시판도 설치해 놓았다. 주민들의 나무사랑 자연관을 엿볼 수 있었다. 동해안에는 향나무 노거수가 많다. 보호수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돌보는 노거수가 부지기수다. 서해안과 남해안 마을과는 색다른 풍광이다. 동해안 마을공동체는 뜻을 모아 특정 공간에 향나무를 심어 기르며 마을 안녕과 평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성한 곳을 지켜 내는 일을 향나무에 의탁한 셈이다. 이는 매향(埋香) 문화의 시발점 혹은,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 울진 화성리 천연기념물 향나무 노거수 줄기는 상록 교목성으로 곧게 자란다. 잎의 조건에 따라 둥치에서 구분되기도 한다. 약간 적갈색이고, 세로로 잘게 갈라지면서 떨어지는 껍질 질이 발달한다. 굵고 늙으면 속이 빈다. 잎은 길이 약 1.5mm. 비늘잎은 묵은 가지에서 나고, 긴 원통형으로 빼곡하게 모여 달린다. 길이 약 1cm 비늘잎은 보통 2~3개씩 돌려나면서 달리고, 닿으면 다칠 정도로 날카롭다. 비늘잎은 어린줄기나 상처를 심하게 입은 줄기 또는 가지에서 주로 나고 협한 생육 조건일수록 많다. 노간주나뭇잎은 길이 2cm 정도로 예리한 비늘잎이 있다. 측백나뭇잎은 비늘잎이 붙어서 납작하고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꽃은 4~5월에 피고, 암수딴꽃이지만 암수한몸도 흔하다. 비늘잎이 변형된 묵은 가지에 피며 암꽃은 짧은 비늘 잎줄기 끝에, 수꽃은 눈에 띌 정도로 긴 비늘 잎줄기 끝에 달린다. 열매는 방울열매로 씨가 2, 3개 들어 있고, 겉이 흰 가루 같은 것으로 덮인다. 서식처는 해안단구 및 해식애 절벽 바위, 내륙 하식애 석회암 등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2-26

계엄수사 받는 ‘4스타’·성범죄 저지른 군인… “軍 위상 바닥”

모자와 군복에 번쩍이는 별을 단 장성들이 줄줄이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거나, 국회와 헌법재판소에 침울한 표정으로 출석하는 요즘이다. 거기에 군대와 군인들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는 미성년 대상 성범죄까지 인터넷 공간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현역 군인 한 명이 여중생과 숙박업소에 있다가 체포된 것. 많은 이들이 혀를 찰 만한 사건이다.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국가들이 ‘마약 단속’에 경찰력을 쏟아붓고 있지만, 마약 관련 범죄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 적지 않은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연예인의 마약 사용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를 반영하듯 마약류 투약으로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배우 유아인 씨 관련 뉴스에 대한 네티즌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다소 반가운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 스타일의 ‘삼겹살 구이’가 유럽과 일본, 북미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뉴스. 예약을 하지 않으면 맛보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세칭 ‘K컬처 열풍’이 음식에까지 미치고 있는 듯하다. 아래 지난주와 이번 주 네티즌들이 주목한 뉴스를 정리한다. ▲ 장성은 ‘별들의 수난시대’… 현역 군인은 성범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어깨에 별을 단 장성(將星)의 위상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 명 장병들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이른바 ‘군대의 스타’들. 일반 사병은 입대에서 제대까지 가까이서 얼굴을 마주하기도 쉽지 않다. 바로 그 장성들이 수난시대를 맞았다. 얼마 전 국방부가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경찰 등에서 ‘12·3 비상계엄’과 관련된 수사를 통보받은 현역 군인은 모두 30명. 이 가운데 장성이 17명이나 된다. 위에 언급된 같은 자료엔 세칭 ‘4성 장군’인 대장(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1명, 별을 3개 단 중장이 5명, ‘투 스타’ 소장 3명이 수사 대상이라 적시됐다. 별 하나 준장 5명과 준장으로 진급이 예정된 3명에게도 수사 통보가 갔다. 계엄 사태 이후 국회와 헌법재판소 등에 출석해 네티즌들에게 익숙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등이 수사 통보를 받은 중장이고,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박헌수 국방부 조사본부장은 소장. 이들 대부분은 재판에서 죄가 인정되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의 혐의를 받고 있다. 그들 개인적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형국이니 “한국 군대의 위상이 급전직하했다” “당당해야 할 장군(장성)들이 구차한 자기 변명에 급급한 모습을 보니 한때 군인이었던 사람으로서 참담하다”는 네티즌들의 푸념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여기에 더해 군대와 군인의 자존감을 떨어뜨린 사건이 연이어 또 일어났다. 현역 군인이 여중생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것.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는 그 죄가 무겁다. 한 통신사는 지난주 목요일 ‘서울 용산경찰서가 현역 군인 신분인 20대 O씨를 미성년자 의제강간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O씨는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의 숙박업소에서 중학생 X양과 성관계를 가진 혐의를 받고 있다. 여중생 아버지의 가출 신고를 받고 X양의 위치를 찾던 경찰은 앞서 언급된 숙박업소에서 X양과 함께 있던 군인 O씨를 찾았다. 면식이 없던 둘은 SNS를 통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은 둘의 SNS 대화 내용 등을 분석해 O씨의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조사하는 중이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지 않아야 한다” “별을 단 고위급 장성들이 내란에 참여하거나 방조한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는 이 시국에 또 군인이 여중생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다니…”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 유아인, 석방됐지만 “마약사범은 영화 홍보행사 나오지 마” 수많은 청소년에게 연예인은 닮고 싶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기에 대중의 사랑으로 부(富)를 이루고 이름을 얻은 배우나 가수들은 보통 이상의 도덕성을 요구받는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절제되지 않은 마약 사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21세기. 유명 영화배우나 인기 가수가 마약을 상용해 구속·처벌 받았다는 뉴스는 어린 학생들에게 미치는 나쁜 영향이 작지 않다. 깔끔한 외모와 좋은 연기로 대중적 인기를 모은 영화배우 유아인이 지난해 9월 마약 상습 투약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는 소식은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지난주 열린 2심 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돼 일단 석방됐지만 유씨에게서 ‘마약사범’이란 딱지가 떨어지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 것일까? 얼마 후 개봉하는 유아인 출연 영화 ‘승부’의 배급사는 “시사회와 기자간담회 등 마케팅 행사에 유씨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배우 이병헌, 조우진, 고창석 등이 함께 출연한 ‘승부’는 원래 넷플릭스가 2023년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유아인이 마약 관련 수사를 받으면서 개봉이 미뤄졌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 개봉이 결정된 날은 내달 26일. ‘승부’의 제작사와 배급사 모두 거액이 투입된 영화가 “마약사범이 출연한 작품”이라는 손가락질 속에 관객들의 외면을 받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속이 탈 듯하다. 마약은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유럽에선 예약해야 먹을 수 있는 ‘삼겹살’의 인기 ‘돼지의 갈비 부근에 붙은 뱃살 부위를 지칭한다. 세겹살이라고도 한다. 비계가 세 겹으로 겹쳐 보이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 생김새를 보면 비계-살코기-비계-살코기 순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섭취할 땐 사겹살. 배바깥빗근, 배속빗근, 배가로근 이렇게 근육 세 층으로 구성된 배벽을 먹는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이게 삼겹살에 관한 설명이란 걸. 직장인의 회식 자리나, 식구들이 모여 앉은 주말 저녁 밥상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메뉴. K팝과 K드라마를 앞세운 한국의 문화가 유럽과 남·북 아메리카, 아시아 전역에서 인기를 끌면서 ‘K푸드’의 위세도 갈수록 세계인들의 입맛을 점령해가는 추세다. 최근 ‘위키트리’는 K푸드의 인기를 주도하는 아이템 중 하나인 삼겹살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 “포르투갈의 한식당에선 예약 없이는 삼겹살을 먹기 어렵다. 손님이 많아 웨이팅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 일본 오키나와의 삼겹살 전문점도 호황을 누린다. 한국에선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해외에선 한 달 전에 미리 예약해야 맛볼 수 있는 게 삼겹살 구이다.” 사실 유럽에선 삼겹살의 인기가 높지 않았다. 비계 부위를 꺼리는 식습관 탓. 그렇기에 프랑스와 덴마크 등 축산업이 발달한 국가에선 예전부터 삼겹살의 상당량을 한국으로 수출했다. 일본 역시 ‘본격화된 육식’을 하기 이전엔 지방이 과도한 돼지의 삼겹살과 내장 부위는 꺼리는 음식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시대와 판이 바뀌었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여러 분야에서 높아진 가운데, ‘음식 문화’ 역시 유럽과 남·북미 사람들에게 호기심과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한국의 ‘독특한 섭식 스타일’로 부를 수 있는 ‘쌈’은 고기와 함께 채소를 섭취함으로써 영양적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에서 외국인들이 매력을 느끼는 듯하다. 이런 추세이니 TV에서 삼겹살 구이를 앞에 두고 “코리안 바비큐 넘버 원!”을 연발하는 유럽인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화려한 샹들리에 매달린 미국과 프랑스, 포르투갈과 도쿄의 고급 식당에서 ‘한 달을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고 있는 한국 스타일 삼겹살 구이의 인기. 어쨌건 우리로선 반가운 소식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2-25

삼국시대부터 군사 요충지, 대구 軍부대 이전 ‘軍위’가 최고!

군위군이 대구 도심 군부대 이전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부각되는 데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은 군사적 위세를 뜻하는 ‘군위(軍威)’라는 지역 명칭이 시사하듯 역사적으로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삼국통일을 위해 나당연합군의 김유신, 소정방, 이무 장군이 군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통일의 의지를 다진 곳이라는 배경이 담겨 있다.  이후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도 왕건의 부대가 이곳을 지나며 군사적 위용을 떨쳤다. 장군리, 무성리, 국통산 등 군사적 지명을 다수 보유해 그 정체성을 증명한다. 특히 효령면 장기리의 365고지는 6·25 전쟁 당시 대구 방어의 핵심 거점이었으며, 이곳에서 국군 6사단 7연대가 북한군을 격퇴하며 중요한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군위군은 군민과 함께 힘을 모아 군부대 이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며, 대구 군부대가 군위군으로 이전되면 지역 경제의 꽃을 피우고, 동시에 군사적 전략의 중요한 거점을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대구 내 30분 생활권,  접근성 편리군위군은 대구 도심과의 접근성이 뛰어나다. 교통망의 발전으로 군위군을 대구 도심과 연결하는 핵심적인 허브로 만들면서 지역 내 생활 편의성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대구 도심과 직접 연결되는 수성~동군위 구간 30km에 4차로 도로가 신설되고, 일부 구간은 6차로로 확장하는 팔공산 관통 고속도로 신설과 중앙고속도로 동명동호JC~군위JC 고속도로 구간의 6차선 확장 사업이 추진된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수성IC에서 동군위까지 이동 거리가 10km 단축되고, 소요 시간이 약 30분 단축되며 상습 정체 구간도 현저히 해소될 것이다.  2027년 준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 중인 조야~동명 광역도로 7.9㎞ 구간의 4차로 확장 사업이 완료되면, 국지도 79호선 팔공산 터널 4차선 도로와 연결돼 군위로의 접근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또한, 대구경북 광역철도(서대구~의성)와 지난해 개통된 중앙선(의성~영천), 대구선(영천~동대구)을 연계하면 시속 180km급 광역 급행철도(GTX)가 운행돼 서대구에서 신공항까지 40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하다. □  대구 학군, 뛰어난 교육 인프라군위군은 대구 학군을 그대로 이어받아 우수한 교육 환경을 자랑한다. 국제 바칼로레아(IB) 교육과정 도입과 교육특구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글로벌 인재 양성을 위한 기반이 마련돼 있다. 또한 군위군은 314억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몰입영어 등 다양한 무상교육과 장학사업을 통해 최상의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 특히, 유아부터 아동, 청소년까지 성장 단계별 교육 인프라가 2027년까지 완료될 예정이며, 아이 1명이 성인이 될 때까지 1억3000만원 이상을 지원하는 등 최고의 교육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  군위 2030 미래 복합도시 건설군위군에는 항공특화도시 스카이시티 건설이 계획돼 있다. 2030년 개항을 목표로 인구 14만명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주거, 상업, 산업,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기능을 갖추게 된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메디컬센터, 국제 항공학교, 첨단기술산업단지(대구TP) 등이 포함돼 있으며, 민군상생타운과 5분 거리에 위치해 군사적 중심지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또한, K-2 영외관사와 인접해 군인 가족의 정주 환경을 지원하며, 76만평 규모의 복합레저단지가 2030년 완공된다. 복합레저단지는 레저, 문화, 상업(아울렛), 숙박(리조트), 공무원 연수시설을 포함하며, 다양한 체육·문화 인프라도 갖춰져 더욱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군위군은 대구·경북 지자체 중에서 골프장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골프 인구 유입도 기대된다. 전국 최대 규모의 180홀 파크골프장도 조성될 예정이다.  □ 국방 트라이앵글 구축, 핵심 거점군위군은 이미 대구 민·군 공항 통합 이전지 선정 과정에서 군사작전의 적합성을 면밀히 검토 받았다. 특히, 대구 도심 군부대의 군위 이전을 통해 밀리터리타운과 K-2, 공군 8196부대를 연결하는 ‘국방 트라이앵글’이 구축되면, 국가 방위력 강화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구축된다. 대구 도심 군부대 통합 이전을 계기로 군사 시설들이 한 곳에 집중될 경우, 그 협력 효과는 더욱 극대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행정 효율성과 우수한 사업성군위군이 대구광역시 소속이라는 점은 군부대 이전 사업이 더욱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다. 도시관리계획의 입안과 결정이 동일한 기관에서 이뤄짐에 따라 협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 지연이 최소화되고, 사업 추진 속도가 한층 가속화된다. 불필요한 행정 절차가 줄어들어 실질적인 추진이 용이해진다. 이를 통해 사업의 효율성과 실행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 군부대 갈등, 군민 소통으로 해결군위군이 대구 군부대 이전 신청 후, 우보면 16개 민간단체가 궐기대회를 열고 국방부, 대구시, 군위군에 유치 촉구문을 전달했다. 이는 군위군만의 독특한 사례다. 군부대 밀리터리타운 예정지인 우보면은 과거 TK신공항 유치 투표에서 76% 찬성률을 기록하며 외부 시설 유치에 대한 높은 수용성을 보였다. 또한, 군위군은 무열과학화 친환경 훈련장 제안과 관련해 주민들의 찬반 의견을 수렴하며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2024년 주민의식 및 행정수요 조사’에 따르면, 군부대 이전에 대한 긍정 응답이 77.8%에 달해 군민 지지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군위군은 역사적 정체성과 군사적 전략 요충지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군민들의 지지, 뛰어난 교통 접근성, 정주 환경, 교육 인프라 등을 두루 갖추고 있어 군부대 이전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군위군이 대구 도심 군부대 이전의 가장 적합한 지역임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환영 속에 군부대가 이전된다면, 군위군은 군부대와 지역사회가 상생하는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군위군은 군사 요충지로서 역사적 당위성과 촘촘한 교통망을 통한 도심 접근성, 군인과 군 가족을 위한 최적의 정주여건을 모두 갖춘 곳이다. 우리 군민들의 뜨거운 염원과 함께 반드시 최종 이전지로 선정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상진기자 csj9662@kbmaeil.com

2025-02-24

매서운 바람도 꺾지 못한 건각들의 뜨거운 열정

세계 최고 수준의 우승 상금이 걸린 ‘2025 대구마라톤대회’가 23일 대구 도심에서 펼쳐졌다. 이날 대회 출발점인 대구스타디움의 체감 온도가 영하 6도를 기록할 정도로 매서운 날씨 였지만, 참가 선수들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이번 대회는 15개국 158명의 정상급 엘리트 선수들과 40개국의 러너 4만130명 등 4만288명이 참여해 국내 최대 규모로 치러졌다. 우승 상금도 지난해부터 16만 달러(2억3000여만원)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리면서 2시간 3분에서 5분대 기록을 보유한 정상급 마라토너 8명이 참가했다.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엘리트 풀코스 남자부 1위 게브리엘 제럴드 게이(탄자니아) 선수, 국내 남자부 1위 박민호(코오롱) 선수, 국내 여자부 1위 최정윤(충남도청) 선수, 여자부 1위 메세레 베레토 토라(에티오피아) 선수가 각각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회는 3년째 세계육상연맹(WA)이 인증하는 골드라벨 대회로 엘리트 풀코스, 마스터스 풀코스, 하프코스, 10㎞, 건강달리기 등 총 5개 종목으로 진행됐다. 올해 대회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개최 시기가 4월 초에서 2월 말로 앞당겨졌다. 대회 코스도 변경했다. 그동안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출발해 같은 코스를 도는 루프 코스였지만, 2024년부터 대구스타디움에서 출발해 청라언덕, 서문시장, 수성못 등 대구를 대표하는 곳을 거치며 한 바퀴 도는 순환 코스로 바꿨다. 특히 작년 대회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출발지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출발 간격을 40분에서 1시간 30분으로 벌려 편성했다. 또 참가자가 역대 최대 인원을 기록함에 따라 도착지를 3곳으로 분산하고 안전요원 등 5800여 명을 배치했다. 셔틀버스 노선도 확대 운영해 참가자들을 지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참여해 주신 선수, 시민 여러분 감사드리고 환영한다”며 “오늘 마라톤대회는 골드라벨 대회로, 세계 최고 상금과 대회로 거듭나고 있다. 모든 선수들이 안전하게 완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육현표 대한육상연맹 회장은 “대구마라톤 골드라벨 대회가 참가자가 많아 내년에는 플래티넘 대회로 승격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구하면 마라톤’인 만큼 내년, 내후년에도 꼭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추운 날씨에도 대회 신기록 수립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회 신기록이 나왔다. 이날 엘리트 부문에서 탄자니아의 게브리엘 제럴드 게이 선수가 2시간 5분 21초로 완주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는 우승상금으로 13만 달러를 받았다. 또 지난해 마라톤에 데뷔해 두바이에서 우승했던 신예인 에티오피아의 아디수 고베나 선수가 2시간 5분 24초로 2위를 차지했다. 고베나 선수 역시 기존 대회 기록(2시간 5분 33초)을 앞섰다. 여자부에서는 에티오피아의 메세레 베레토 토라 선수가 2시간 24분 10초로 우승을 차지했다. 게브리엘 제럴드 게이는 “날씨가 춥기도하고 바람도 많이 불었는데 열심히 준비했고, 이번 대회에서 무조건 이겨야되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우승을 차지해 너무 행복하다”며 “재미난 대회였다. 끝까지 뛰어서 이겼더니 매우 행복하고, 다음에도 대구를 방문해 대회에 참여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여자부 우승자 메세레 베레토 토라는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기쁘다. 추운 날씨가 걱정됐었는데 실제로 뛰니까 걱정한 것보다 더 힘들었다”면서 “(대구마라톤)코스는 너무 좋은데 추운 날씨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1등으로 마무리 할 수 있어 감사하며 힘이 되어준 남편과 모든 가족 코치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선수들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 코오롱 소속 박민호 선수는 2시간 12분 38초를 기록하며 국내 남자부 1위를 차지했고, 충남도청 소속 최정윤 선수는 2시간 32분 22초를 기록하며 국내 여자부 1위에 올랐다. ◇대회보다 빛난 시민의식… 전국서 온 이색 참가자 대구마라톤대회 참가자들은 ‘DAEGU’라고 적힌 빨간색 참가 티셔츠에 참가번호표를 붙인 옷을 입고 설렘과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대구스타디움으로 향했다. 이들은 도시철도 2호선 수성알파시티역과 3호선 용지역에 도착하자 행사장 셔틀버스를 탑승하기 위해 길게 줄지어 순서를 기다렸다. 역대 최대 인원이 참여하다보니 셔틀버스 대기 시간이 상당히 길었지만, 시민들은 순서를 지켜 줄 지어 서 있었고 차례 대로 버스에 탑승해 안전하게 경기장으로 도착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자신의 기록이나 점수보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2살 자녀를 태운 유모차를 밀면서 건강달리기에 참가한 하진화(29·대구 수성구)씨는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 참가했다”며 “지난해 부산 미니언즈런에 이어 대구마라톤에 출전했는데 아이와 함께 즐겁게 뛰었다”고 말했다. 하프코스에 출전한 곽민석(35·대구 북구)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져 즐겁게 참여했다”면서 “부인은 10㎞에 참여해 함께 뛸 수는 없지만 완주한 뒤 영상통화를 하기로 했다. 경기에 앞서 서로를 응원하고 왔다”며 엄지를 들어올렸다. 마라톤 참가자 중 정장과 캐릭터 차림 등 이색 복장을 입고 달리는 이들도 있었다. 지역의 경북대학교에서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 캐릭터 분장을 하거나 학교 잠바와 모자 등을 맞춰 착용하고 경기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경북대 점퍼를 착용하고 마라톤에 참가한 경북대 허영우 총장은 “대구마라톤 참가자들의 열정이 인상적이었다. 추운 날씨에도 참가자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며 “덕분에 경북대가 대구의 대표적인 국제 스포츠 축제에 참여해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실천하고 대학 구성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전했다. 만화 코스프레를 한 김재영(33·경기도 성남)씨는 “‘갱갱수월런’ 달리기 크루가 다 함께 참여했는데 대구마라톤은 코스가 좋아 만족스럽다”며 “힘들 때마다 대구 시민들이 응원을 해 주어 완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스 곳곳에서는 응원단과 자원봉사자들이 참가자들에게 풍물패 응원 및 음료를 나눠 줬으며, 대회가 끝난 뒤에는 자원봉자들이 코스를 돌며 청소를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빈병과 비닐 등을 가득 모아 담았고, 이들이 지나간 거리는 깨끗했다. 조용태(47·경북 김천시)씨는 “김천 율곡성당 ‘율스런’이 1㎞ 뛸 때마다 100원씩 모아 행사 후 기부하기 위해 함께 참여했다”며 “유명한 행사에 참여하고 기부도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웃음 지었다. /김재욱·장은희·황인무기자

2025-02-23

‘청렴과 지조’ 선비 닮은 나무 곁에 두고 쉼에서도 배움 찾아

청송 월정리 침류정에 올라서니 주변의 다채로운 경관이 어울려 한 폭의 수채화 같다. 나지막한 산자락 끝, 하천에 발을 담근 경사진 언덕에 석축을 쌓아서 그 난간 위에 전망대와 같은 누각을 올려놓았다. 나뭇가지 새들의 노랫소리, 맑은 물 흐르는 하천, 주렁주렁 달린 빨간 사과는 나의 귀와 눈을 사로잡고 침샘을 돋게 했다. 도로변 따라 뿌리줄기에 매달린 고구마처럼 옹기종기 모인 농촌 마을은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다닐 뿐 조용히 낮의 끝자락 아니 밤의 시작 저녁을 맞이하고 있다. 서녘 하늘 붉은 노을에 포물선을 그리며 서산으로 달려온 붉은 태양이 산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쉬고 있다. 고즈넉한 농촌의 평화로운 풍경 속에 나 또한 풍경 속 자연의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을 그리면서 회광반조에 눈시울을 붉힌다. 여름에도 이곳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아래에서 힐링을 한 적이 있다. 그 여름의 열기와 열정, 풍성한 에너지는 누구에게 돌려주었는지, 텅 빈 침류정 나뭇가지들이 갈바람에 이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늘 또다시 침류정 난간에 기대어 옛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면서 또 다른 정취와 감흥에 빠져 들었다. 청송 월정리 침류정은 하천 건너 낮은 언덕 좌측으로부터 침류정(枕流亭), 오월헌(梧月軒), 동와정(東窩亭)에는 향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가 살아가고 있다. 오월현 서당 앞뜰에는 도 기념물로 지정된 나이 350살, 키는 10m, 몸 둘레는 4m 50cm인 우람한 향나무와 동와정 서당 앞뜰에 100년을 훌쩍 넘긴 향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있다. 그리고 침류정 누각 주변에는 나이 200살, 키 15m, 몸 둘레는 3m 40cm이나 되는 회화나무 네 그루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 노거수는 침류정을 지은 김성진의 제자들이 심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주변의 노거수는 조경수로써 침류정과 서당의 품격을 높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학문과 충효 정신을 길러주었을 것이다. 침류정과 오월헌, 동와정은 조선시대의 별서이며 서당이다. 별서는 본가와는 별도로 마련된 집이나 정원으로 휴식과 사색,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단순히 생활 공간을 넘어,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심미적 가치관이 반영된 독특한 건축물과 정원이다. 오늘날 아름다운 경관이나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정자나 전망대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자연경관이 뛰어난 산기슭, 강변 등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에 터를 잡고 침류정을 짓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곳에 의성김씨 김성진의 월정리 문중은 서당을 세워서 젊은이를 독서와 시문을 짓고 학문을 탐구했다. 그러한 덕분에 학문과 소양을 겸비한 의성김씨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어 국가와 지역사회에 큰 공헌을 하고 있다. 침류정 향나무는 경관을 꾸미는 요소뿐만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향나무는 사시사철 푸른 잎을 유지하여 청렴함과 불변의 의지를 상징한다. 유생과 선비는 향나무의 삶과 마주하면서 자신도 향나무의 상징처럼 청렴하고 강직한 삶의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특히 향나무는 제사와 같은 의식에서 향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조상 숭배와 경건함을 표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유학 사상과 맞물려 은연중에 마음에 새기고 몸에 배었을 것이다. 회화나무 또한 예로부터 선비 나무라 하여 유교적 학문과 관계가 깊으며, 문묘에 회화나무를 심는 전통이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나무들은 단순한 조경의 역할을 넘어 학문적 영감과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도 중요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그러한 것을 유도하기 위하여 향나무와 회화나무를 선택하여 조경수로 심었지 않았나 싶다. ‘침류정기(枕流亭記)’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곳의 풍광 속에서 왜 흐르는 물만을 취하여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잔에 넘치는 물이 천리를 흘러가며 무궁한 이로움을 준다. 작은 집이 잔에 넘치는 물의 근원과 같다. 오래 갈수록 더욱 많아지고, 멀리 갈수록 더욱 빛날 것이다. 흐름을 이어가고 맑음을 유지하는 것이 침류(枕流)의 교훈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낮이면 태양은 정열을 불태우고, 밤이면 달과 별은 전설을 노래한다. 태양이 어둠을 살라먹고 동쪽 하늘에 솟아올라 서쪽 하늘 아래로 숨어들면서 그 어둠을 토해낸다. 밝음으로써 가까운 주변의 사물이 보이고 어둠으로써 먼 하늘의 별들이 보인다. 밝으면 보이고 어두우면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어불성설인 것 같다. 낮의 시작은 새벽이요, 그 끝은 저녁이다. 그러나 밤의 시작은 저녁이요, 그 끝은 새벽이다. 서로를 물고 이어주면서 낮과 밤, 밝음과 어둠이 하나가 되어 하루를 이룬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하루의 시작은 새벽이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렇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자기만의 생각이 옳다고 우기고 주장하며 편을 가르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산기슭 강변에 자리 잡은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노거수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특별한 경관을 창출하여 학생들에게는 학문과 예술의 전당 역할을 했다. 이는 산림 문학의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선비들은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아름다움과 생동감을 문학적 소재로 삼았다. 이는 자연을 노래하는 산림 문학의 시작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산림 문학은 자연을 중심으로 한 문학으로,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철학적, 유교적 사유를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예술과 문학의 소재이며 학생에게는 배움의 교재이다. 그러나 오늘날 조선시대 별서와 서당은 그 역할의 꼭짓점을 찍고 퇴색된 지도 오래되었다. 이렇게 허물어져 가는 별서와 서당을 힐링과 문학, 예술의 창작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면 하는 바람을 해 본다. 서서히 어둠의 그림자는 드리워지고 침류정 향나무, 회화나무 노거수는 반짝이는 별들의 노랫소리에 잠이 들면서 옛 영광의 꿈을 꾼다. 청송 월정리 침류정, 오월헌, 동와정은… 침류정(枕流亭)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264번지에 있는 정자다.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6호로 지정됐다. 조선 중기 학자인 김성진(1558∼1634)이 후배 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다. 김성진(金聲振)은 학식이 높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후학을 위해 문집 목판각을 만들고 책을 인쇄해 널리 보급했다. 임진왜란(1592) 뒤인 1600년대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성진은 의성김씨 청송 입향조인 김한경(金漢卿)의 증손으로 임진왜란 때 동생들을 창의케하고 자신은 노모를 피난시켰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오월헌(梧月軒)은 ‘오동나무에 걸린 달’을 뜻하며 김성진(金聲振)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오른쪽 방은 강학재(講學齋)이고 왼쪽 방은 돈의재(敦誼齋)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대청을 중앙에 놓고, 그 좌우에 각각 온돌방 1칸을 배치했다. 동와정(東窩亭)은 조선 선조 때 통정대부장악원정(通政大夫掌樂院正)을 지낸 김흥서(金興瑞)가 후학을 가르치며 말년을 보낸 정자다. 동와(東窩)란 동쪽에 있는 움집이란 뜻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집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2-19

‘軍 친화도시’로 오랜 기반, 교통·메디컬·교육 등 여건 완비!

대구시가 도심에 위치한 군부대 외곽지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이전 군부대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 제50사단사령부, 제5군수지원사령부, 공군 제1미사일방어여단, 방공포병학교 등 5개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대구 군부대 이전 예비후보지로 영천시, 상주시, 군위군을 선정했다. 최종 이전지 선정은 대구시에서 사업성 및 수용성 평가를 통해 3월 초 결정할 계획이다.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예비 후보지 3개 시군의 지역 유치 당위성과 유치 전략 등을 점검해 본다. 대구 군부대 이전 영천이어야하는 이유, 다섯 손가락도 모자란다? 영천시는 지난 2022년 10월 군부대 유치에 발벗고 나선 이후 영천시의 강한 유치 열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9월 3일 국방부와 육군본부 관계자가 영천시 훈련장 후보지를 방문했을 당시 영천시민들은 박수를 보내며 크게 환영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대구 군부대 이전은 왜 영천이어야 하는지 살펴본다. □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 영천시는 팔공산, 보현산을 기반으로 한 우수한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중앙선, 대구선 복선전철, 대구도시철도 1호선 금호연장 확정(2030년 개통예정)과 하양 연장선 개통, 3개 노선의 고속도로(8개 나들목)가 이어진 사통팔달 교통의 중심지이다. 포항, 울산과 인접해 해상지원작전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현재 2작전사령부(잔류세대 고려)와도 1시간 이내 접근이 가능하다. □ 다양한 생활서비스 완비 예비후보지 중 유일하게 대학병원인 영남대영천병원이 소재하고 있고, 국군대구병원도 15km 이내 인접해 있다. 또한, 영남의 3대 시장으로 불리는 영천공설시장, 이마트와 롯데시네마, 스타벅스, 버거킹, 맥도날드, 롯데리아, 써브웨이 등 유명 프랜차이즈가 즐비하다. 체육센터와 시립박물관이 올해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러한 부분들은 군인 가족들이 마음 편하게 정주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다. 영남대 영천병원으로 시내버스가 직통 연결되고, 대구-경북 광역 환승제 확대 시행, 6 ~ 18세 학생들의 대중교통 교통카드 무료화, 대구도시철도 하양 연장선 개통에 맞춰 555-1 심야버스 노선 신설, 고등학생 안심귀가 택시비 지원 확대 등 모두가 누리는 생활서비스 확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군인자녀 맞춤형 교육 인프라 지난해 7월 교육발전특구로 선정돼 미래교육도시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0월에는 영천고등학교가 일명 제2한민고라고 불리는 ‘군인자녀 자율형 공립고’로 선정됐다. 전국 명문인 파주 한민고를 롤모델로 정원의 60%를 군인자녀로, 나머지 40%는 경북도내 중학생을 선발한다. 파주 한민고는 2024년 입시에서 서울대(21명), 카이스트, 포스텍 등 다수의 학생을 보낸 전국에 으뜸가는 명문고다. 그리고 중학생 자녀를 위한 기숙형 ‘별빛중학교’도 운영되고 있어 군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군자녀 교육문제를 영천시가 유일하게 해결했다. □ 군사시설이 소재한 ‘군친화도시’ 영천시는 오랜기간 군(軍)과 함께 해오고 있어 군부대이전을 가장 뜻깊게 염원하고 있다. 제2탄약창과 육군3사관학교, 영천호국원, 오미부대, 21항공단, 1117공병단, 국립호국원 등 다수의 호국·군사시설이 소재있다. 대구 군부대가 이전해 올 경우 기존 부대와의 협력체계 구축 및 다양한 시너지·상생효과를 기대 할 수 있다. 또한 전입지원금 30만원, 지난 23년부터 경북에서 처음으로 ‘군 장병상해보험 시행’ 등 군인장병을 위한 다양한 전입시책을 펼쳐 명실상부 ‘군친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호국도시, 국난극복의 DNA 입증 역사적으로 영천은 호국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대규모 육지전 전투 중 최초로 읍성을 되찾은 영천성 수복전투가 있었고, 구한말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산남의진 의병 중심지이기도 하다. 6·25전쟁 당시 수세에 몰린 국군이 영천에서 대반격을 시작했다. 인민군 3799명을 사살하고 9·15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토대를 마련했던 ‘영천대첩’의 승전지이기도 하다. 국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빠졌을 때, 특유의 국난극복 DNA로 극복한 호국의 도시가 바로 영천이다. □ 시민들의 강력한 유치 의지 2022년 11월 대구 군부대 유치 민간추진위(100여명)가 출범해 다양한 유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구 군부대 유치 전시민 서명운동에는 10만555명이 참여했다. 영천시의회 군부대 유치 지지선언, 대구 군부대 유치 여론조사(98% 찬성), 지역종교계(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합심해 공개적으로 대구 군부대 유치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8월 야외종합훈련장이 공개된 후, 칠곡군은 대구 군부대 유치 철회가 있었고, 그 외 예비후보지에서는 사격장 반대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반대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다. 하지만 영천시는 대구 군부대 유치에 있어 반대여론이 전무하며, 전 시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더 강력하게 군부대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또한 지난 상반기 영천시의 생활인구는 평균 41만3788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4배가 넘었다. 이는 교통 접근성이 뛰어나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의 비중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 바 있다. 국군부대 후보지와 민·군상생복합타운 후보지까지 거리는 4km 미만, 이동시간은 7분 정도로 군인 및 가족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대구 군부대 이전이 최종 이전지 확정의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에서 영천시는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고, 시민들의 하나 된 유치 의지를 보여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봉규 대구 군부대 영천유치 추진위원장은 “국가안보사업인 만큼, 대구시에서는 명확한 평가 절차와 평가기준을 공개하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2025-02-19

“너무 가혹” 25세 젊은 배우의 죽음에 애도·자성의 목소리

인터넷 공간은 지난주와 이번 주에도 뜨거웠다. 젊은 여배우의 극단적 선택은 TV와 신문의 선정적 보도에 관한 반성과 동료 연예인들의 추모를 불렀다. 지난해 필리핀에서 체포된 외국인 범죄자 중 한국인의 숫자가 가장 많다는 부끄러운 사실도 알려졌다. 대전에서 자신이 다니던 학교 교사에 의해 죽음을 맞은 여덟 살 아이의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이 부모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딥페이크 성범죄에 연루된 14세 미만 촉법소년이 적지 않다는 소식도 충격적이었다. 일주일간 네티즌 사이에서 논란을 부른 뜨거운 뉴스를 소개한다. ▲‘주홍 글씨’ 새겨진 채 죽음 맞은 배우 김새론 “미성년자가 술과 담배를 한 건 분명 옳지 않다. 하지만, 그게 스스로 죽음을 택할 정도로 큰 범죄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누구보다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의 영전에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배우 김새론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성동구 자신의 집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맞은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의 추모 의견이 인터넷상에 퍼지고 있다. 김새론은 2014년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듯한 사진이 SNS를 통해 공개되며 미성년자 음주·흡연 논란 속에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3년 전인 2022년 5월엔 서울 강남구 도로에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켜 다시 한 번 여론의 돌팔매를 맞기도 했다. 음주 사고 이후 짧지 않은 자숙의 시간을 가지며 복귀를 준비해온 김씨는 연예 활동을 중지했던 기간에도 구설수와 네티즌들의 비난에 시달리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과 얼마 전엔 연극과 영화를 통해 활동을 재개하려 했으나 비판의 목소리가 낮아지지 않아 그마저도 어려움을 겪었다. 연예인에게 ‘사회적 낙인’이 한 번 찍히면 컴백이 쉽지 않은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 이에 일부에선 “지은 죄에 비해 과도하게 큰 벌을 오랜 기간 받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새론의 집에서 외부 침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고,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김씨의 죽음은 극단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젊은 배우의 죽음에 연예인 동료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함께 연기했던 시간이 그립다” “저세상에선 슬픔 없이 행복하기를” 등의 추모 메시지를 올리고 있고, 영화팬들도 “악플로 당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의견을 전하고 있다.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유명 배우들은 김씨의 빈소를 찾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그간 김새론에 관해 선정적인 보도를 지속해온 언론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 체포자 숫자 1위 한국… 필리핀에서 당한 나라 망신 해외에 나가 국위 선양을 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 중국 하얼빈에서 열린 제9회 동계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이 그렇고, 위험에 처한 현지인을 도와 신문에 미담 사례로 보도된 한국 여행자 등이 그렇다. 이는 개인의 명예인 동시에 국격을 높이는 일이기에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불명예스런 일에 한국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고 있어 네티즌들의 끌탕을 부른다. 최근 필리핀 현지 신문들이 주목할 만한 기사 하나를 보도했다. 필리핀 이민국에 따르면 지난해 범죄를 저지르고 필리핀으로 도망친 외국인 180명이 관계당국에 체포됐다. 체포된 사람은 2023년 128명보다 41% 증가했다. 그런데, 체포된 외국인 범죄 혐의자 중 한국인이 74명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이는 중국인 범죄 혐의자 62명보다 12명이 많은 숫자다. 체포된 한국인은 1년 사이에 2배 가까이 늘었고, 전체 체포자 중 30%의 비중을 차지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나라 망신이다. 한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체포된 범죄 혐의자가 많은 국가는 대만(12명), 일본(11명), 미국(7명) 등. 실제로 경제 범죄와 보이스 피싱, 강도와 마약 관련 강력범죄를 저지른 한국인이 필리핀에서 은신하다가 현지 경찰이나 한국에서 파견된 수사관에게 붙잡혔다는 뉴스는 이전에도 심심찮게 보도돼왔다. 필리핀은 7000개가 넘는 섬으로 형성된 나라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숨고자 한다면 수색이나 신병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이 필리핀에 ‘범죄자 도피처’라는 오명을 씌운 건 아닐지. “우리나라는 외국인 범죄자의 피난처가 아니다”라고 일갈한 필리핀 이민국장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 여덟 살 초등학생이 교사에 의해 죽다니… “어린 아이가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너무 슬프다.” 지난 주. 자신이 다니던 학교에서 교사에 의해 살해된 여덟 살 대전 초등학생 관련 기사가 세간의 뜨거운 관심이다. 네티즌들도 이 사건의 진상 규명과 향후 수사 진행 과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 사람들은 숨진 초등학생과 살인 혐의자인 교사, 유족 반응을 다룬 기사를 접한 후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한 네티즌은 “사태가 이렇게 되도록 방관한 학교 관계자, 동료 교사들, 교육청도 처벌해야 한다”며 분노를 드러냈다. “왜 자신의 불만을 연약한 어린 학생 살해로 해소하려 했나”고 살해 혐의자 교사에게 묻는 목소리도 있었다. 상당수 사람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로서 너무나 큰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자식 키우는 부모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몇몇 네티즌은 향후 재발방지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제 망설이지 말고 교사들이 앞장서 아이들 보호를 위해 교내에 CCTV를 달자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또는, “지금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때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을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하루 종일 학교에 두어야 하나?”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 증가하는 ‘촉법소년 범죄’ 해결책은 없나? 미성년자 범죄의 심각성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는 이미 오래 전. 법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죄책감 없이 절도나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는 촉법소년(형사미성년자) 관련 사건이 신문과 방송에 오르내리는 경우도 흔해졌다. 이는 분명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제9조의 악용 사례다. 최근 경찰청에 의해 촉법소년 범죄 문제가 다시 한 번 현실에서 불거졌다. 지난해 검거된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로 사람의 얼굴과 특정 부위를 합성한 영상물) 성범죄’ 피의자 수는 682명. 경찰청 발표에 의하면 이 가운데 10대가 548명이고,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 10세 이상 14세 미만 촉법소년도 104명이나 됐다. 검거된 딥페이크 성범죄 피의자 중 80% 이상이 10대라는 사실은 사람들의 추측을 뛰어넘는 수치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딥페이크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지난해 하반기 이후론 하루 평균 사건 접수 건수도 이전의 3배 이상 많아졌다는 게 경찰청의 부연. 상황이 이러함을 감안해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엔 이에 관한 구체적 논의가 진행되는 듯한 모양새도 보인다. 중국의 경우엔 살인·중상해·상해치사·강간·강도·마약 밀매·방화 등의 범죄에 관해선 촉법소년 연령을 12세로 낮췄다. 다수의 아랍 국가에서는 누구도 나이를 이유로 형사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고 강력한 처벌을 하는 게 딥페이크를 포함한 디지털 성범죄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을 지에 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사실은 나이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인간이면 누구나 인지해야 할 당위가 아닐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2-18

‘바다의 반도체’ 돌김 양식장, 포항 영일만이 최적지죠

‘블랙 페이퍼’ ‘블랙 칩’ ‘바다의 반도체’…. 김을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표현들이 부쩍 많아졌다. 해조류의 일종인 김이 식품을 넘어 하나의 경제 가치, 문화코드로 부상하고 있다는 증거다. 해양 문화권에서 언제나 채취가 가능했던 김은 역사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와 함께 했으며 원시, 고대부터 인류의 식탁을 지켜왔다. 김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延烏90CE細烏女) 편. 사서(史書)는 김 출현의 공간적 배경을 경북도, 그것도 포항(영일)으로 지목하고 있다. ‘검은 반도체’ 김이 고대부터 경북 동해안에서 채취, 유통되었다는 증거다. 얼마 전 경북도가 돌김 양식 기술을 개발해 동해안 김 생산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보도가 경북 동해안 주민들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해조류 양식, 가공을 위해 지자체가 나섰다는 사실보다 1800년 동안 경북민들의 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해양식품 DNA를 깨웠다는 사실일 것이다. ◆ ‘연오랑세오녀’ 편에 김 최초 등장 앞서 언급했듯 김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 연오랑세오녀 편. 사서에는 ‘연오(延烏)가 바닷가에서 해조(海藻)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곳 사람이 비상한 사람으로 여겨 왕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학자들은 이 설화를 신라, 경주 세력에 밀린 동해안 근기국(勤耆國) 유민들이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을 떠나는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 역사가들은 김과 관련해 두 가지 점에서 이 설화를 주목한다. 첫째는 동해안에서 서기 157년 당시에 이미 해조(海藻, 김·미역)를 채취했다는 점이다. 1800여년 전 포항에서 이미 김을 식용화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김 채취와 관련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료다. 또 일본에서 바로 왕으로 추앙될 정도 힘을 가진 동해안 지배층이 직접 김 수확에 나섰을 정도면, 이것은 단순 채집을 넘어 국가적으로 장려되었거나, 상업적 단계까지 이르렀음을 추측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연오가 일본으로 이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이 해산물들이 무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시적 상업, 유통 단계까지는 진행되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포항과 일본 시마네현 오키섬은 최단거리로 연결되는데 해류와 계절풍 등 조건만 충족되면 쉽게 왕래가 가능해 이 같은 가설에 힘을 실어 준다. 정리해보면 2세기 이미 동해안 포항에서는 김이 생산 되고 있었고, 초보적 수준의 해외유통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포항에서 돌김 생산, 양식 기록 고대에 해조류를 매개로 이어진 한일 양국의 인연은 일제강점기에 다시 나타난다. 이번엔 암해태(巖海苔) 즉, 돌김의 생산과 관련된 자료로서다. 1930년대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경북도 포항, 영일지역에 돌김 생산과 관련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난다. 1933년부터 1934년까지 대략 10여 회 이상 보도 내용이 보인다. △‘지방비를 보조해 경북 포항의 암해태(돌김) 생산을 장려 한다’(1933년 6월 18일) △‘암해태 양식 최적지 조사를 통해 포항이 어촌 부업지로 유망하다’(1933년 7월 23일) △ ‘연 생산 5만원을 목표로 돌김 대증산에 나서자’(1933년 8월 29일) △ ‘포항 지역 3곳에 연 생산 10만원 돌김 개량밭을 만들자’(1933년 12월 10일)는 보도 등이다. 본사 경제에디터 김진홍 기자가 쓴 ‘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에 보면 더 구체적인 내용이 등장한다. 이 책 276쪽엔 ‘일제는 1923년부터 돌김 양식을 시도했는데 품질이 우수한 결과를 낳았다. 이에 총독부에서는 보조금을 주고 장려했다. 바위에 시멘트를 도포(塗布)하여 양식을 도모한 결과 지금은 어촌 부업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경북도 산업과에서는 10개년 계획으로 각 어업 조합에 3600원씩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김진홍 에디터는 ‘일제는 1920년대부터 포항에서 피조개, 대합조개 양식을 시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시작한 돌김 생산에서 큰 성과를 보이자 포항, 울릉도, 영해, 축산, 강구, 영덕, 구룡포, 감포, 청하 등 어업조합에 보조금을 주어 돌김 양식을 장려했다’고 강조했다. ◆김 산업 선점을 위한 자치단체의 노력 작년 우리나라 김 수출은 1조원(7억 8000만 달러)을 기록하며 본격 K-푸드의 출발을 알렸다. 지난 10년 동안 10배 넘게 성장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표 격인 라면 수출액을 앞질렀다고 한다. ‘바다의 로또’로 성장한 김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정부나 지자체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정부는 2027년까지 ‘김 수출 10억 달러 달성’을 목표로 ‘김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라 해양수산부는 △김산업 규모화, 스마트화로 가공, 유통 효율성 제고 △K-김 브랜드 가치 향상을 통한 시장 확대 △거버넌스 구축 및 연구 역량 강화 등 사업을 추진한다. 경북도도 5억원을 투입해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 시스템 구축에 들어갔다. 대량 생산 기술이 완비되면 대기업 가공공장 유치 등 본격적인 김 산업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인천시도 정부 ‘육상(陸上) 김양식 기술 개발 사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김양식 산업 육성에 나섰다. 이 사업에 선정되면 인천시는 향후 5년간 총 350원의 국비를 확보하게 돼 종자 생산, 양식 설비 구축에 나서게 된다. 2023년 김산업 전문기관으로 선정된 목포수산식품지원센터도 올해 안으로 대양산단에 전국 최초로 ‘마른 김 거래소’를 건립한다. 목포시는 이런 인프라를 기반으로 내년도에 ‘김산업 특구’ 지정을 추진하고 ‘김 박람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돌김 양식 최고 후보지는 포항 영일만 해양수산부와 경북도가 김 양식과 관련한 정책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그 후보 지역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김진홍 에디터는 동해안 김양식 후보지로 영일만 지역을 주목하고 있다. 대부분 동해안 지역은 파도가 강해 엽체(葉體)의 바위, 콘크리트 구조물 활착이 어려운데 비해 영일만 지역은 육지로 깊숙이 들어간 덕에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또 동해의 수온이 김양식에 적합한 10-15도를 유지해 해태의 생육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김 에디터는 영일만 지역 중에서도 남쪽 방향인 도구해수욕장 근처를 주목하고 있다. 신항만 쪽에서 내려온 파도가 에너지를 잃고 잔잔한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동해안 청정구역 입지를 바탕으로 수질 악화나 해수 영양 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고수온, 수질오염, 중금속 오염, 황백화 현상에서 자유로운 ‘육상 김양식법’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다. 해상 김 양식이 태풍 등 자연재해, 해양오염에 취약한 데다 노동집약적 산업의 한계 등 많은 핸디캡 때문에 사양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수온과 광량(光量), 품종, 해수 영향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육상 양식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자연 재해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품질 관리가 쉽고 국제 식품 위생 기준에도 맞는 대안”이라고 말하고 “아파트식 대량 양식장에 ICT, AI 등 스마트 농법을 적용해 인력, 인건비 문제에서도 자유롭다”고 강조했다. ◆철강, 이차전지 잇는 포항 산업화 동력으로 포항시는 고대부터 해초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을 간직하며 김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중일전쟁 준비로 여념이 없던 일제가 동해안의 각 지역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김 양식을 지원했던 사실도 독특하다. 이런 역사적 서사(敍事)와 김과 관련된 역사, 전통을 바탕으로 포항시도 정부, 경북도의 김 산업 정책 공모에 나서고 있다. 이런 시도와 도전이 결실을 거둔다면 포항시는 철강, 이차전지, 수소산업만큼은 아니지만 ‘블랙 반도체’라는 또 하나의 산업화 동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2025-02-16

신비로운 건국 신화의 나라 ‘가야’

(사)가야연구원 원장인 김성문 시민기자는 우리고장 역사를 바로 알리고 고장의 자부심을 고취하고자 가야사 이야기를 60회 연재한다. 나라가 건국될 때는 위인이 나타나 나라를 세우고 신화로 꾸며진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주로 난생 신화로 꾸몄다. 우리나라 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이거나, 인간의 몸을 거친 알에서 태어났다. 박거세왕, 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고구려의 시조 고추모(고주몽)왕과 신라의 석탈해왕은 인간의 몸을 거친 알에서 태어났다. 하늘에서 내려온 알은 성스러운 빛과 더불어 내려온다. 성스러운 빛은 주로 자색으로 나타난다. 자색은 천자를 상징한다. 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고 천신의 아들이거나 또는 태양의 아들임을 의미한다. 신화에서는 인간 생명의 근원을 하늘에 두고 있다. 주인공의 탄생 자체를 하늘에 두고 있으므로 처음부터 신성시하고 있다. 신기롭고 이상한 징후에 의해 태어난 주인공은 곧 혼인과 더불어 왕위에 오른다. 가락국의 수로왕도 삼국유사 ‘가락국기’조에 보면, 계욕일(첫 사일·巳日)에 김해 지역 구간들이 시냇가에 모였다. 그들은 재앙을 없애기 위해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있었다. 그때 북쪽 구지봉에서 오색찬란한 서광이 하늘 높이 이어지고 기운이 천지에 가득해졌다. 이어서 이상한 음성이 들렸다. 구간들은 2~300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구지봉에 가서 구지가를 불렀다. 한문으로 된 구지가의 통상적인 해석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만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김의박의 ‘옛말산책’에서는,“신이시여, 신이시여, 쉬이 나타나소서. 아니 나타나시면, 번쩍여주소서.”라고도 해석한다. 잠시 후 하늘에서 자줏빛 밧줄이 내려와 땅에 닿았다. 그 끝을 찾아보니 붉은 보자기에 황금 상자가 싸여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 해와 같이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들어 있었다. 모두 놀라고 즐거워서 황금알을 향해 절을 백번하고, 황금 상자를 다시 보자기에 싸서 아도간의 집 탁자 위에 정중히 놓고 각각 헤어졌다. 그 이튿날 아침에 다시 모여 황금 상자를 열어보니, 여섯 개의 황금알은 여섯 동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은 용모가 매우 거룩하여 걸상 위에 받들어 앉히고 절하며 극진하게 모셨다. 여섯 동자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십여 일이 지나니 신장이 2미터가 넘었다. 얼굴은 용과 같고, 눈동자가 둘이며 눈썹은 여덟 색깔이었다. 금상자의 알에서 나온 여섯 동자 중 제일 먼저 나온 동자를 수로라 했다. 변한 지역을 중심으로 수로는 김해에서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나라 이름을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 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섯 형제인 고로는 경북 상주 함녕에 고녕가야를, 벽로는 경북 성주에 성산가야 또는 벽진가야를, 대로는 경북 고령에 대가야를, 아로는 경남 함안에 아라가야를, 말로는 경남 고성에 소가야를 건국하고, 각각 임금이 되었다. 그리고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을 중심으로 대가야 세력의 권역인 비화가 있었다. 가야국 전체의 경계는, 동쪽은 황산강(현재 낙동강), 서남쪽은 넓고 큰 바다인 창해(현재 남해), 서북쪽은 지리산, 동북쪽은 가야산이며 남쪽은 대마도 서북부 국미성까지다. 계속 /김성문 시민기자

2025-02-16

한국인에 진심인 도시 ‘마쓰야마’의 매력 속으로 ‘풍덩’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한다. 감정적으로 쌓인 것이 많아서 마음이 먼 것이다. 가깝고의 그 거리가 부산에서는 더 가까운 일본이다. 도쿄와 오사카 같은 번잡한 도시보다 조용한 소도시 여행을 더 좋아해서 우리 가족은 일본을 자주 다녀왔다. 대마도는 엄마와 한 번, 친구들과도 다녀왔다. 10년 전 동해에서 배를 타고 갔던 도토리현을 시작으로 교토, 나라, 오키나와, 가고시마를 고루 살폈다. 지난봄에는 우동에 진심인 다카마쓰를 다녀왔다. 마스코트 머리가 우동으로 꽉 찬 모습에 웃음이 나왔는데, 여행안내 책자에 우동 맛집만 표시하고, 우동택시투어가 운행 중이다. 예전부터 맛집 앞에 줄 서는 것은 질색이라 고개를 저었는데, 다카마쓰에서 우동을 먹고는, 다음날 또 가자고 남편을 졸랐다. 매일 한 끼는 우동 맛집을 찾아다녔다. 면발이 달랐다. 겨울에 들며 마쓰야마 여행을 계획할 때, 마쓰야마에서 다카마쓰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물었다. 남편은 포항에서 대전까지 거리라고 하기에 그래도 우동 먹으러 하루 다녀오자고 졸랐다. 유명 연예인이 아침에 일본행 비행기를 타고 가서 우동 한 그릇 먹고 되돌아 온다기에 돈도 많다했더니, 이제 그 심정을 알게 되었다. 마쓰야마는 한국인에게 진심인 도시다. 그래서인지 최근 여행객이 늘었고 직항이 생겼다. 설레는 마음으로 부산에서 출발하는 비행기에 올라 좌석을 찾아 앉았더니, 포항 사는 친구가 뒤따라 탔다. 반가워서 어디 가냐고 우문을 던지니 마쓰야마 간다고 현답을 했다. 남편이 비행기가 완행도 아니고 가다가 어디 들르냐며 같은 비행기 타고 어디가냐고 묻는 사람이나 답하는 사람이나 똑같다며 웃었다. 여행 내내 한국인들 목소리가 어딜 가나 들리고, 그동안의 소도시 여행에서 느끼는 조용함은 기대하지 말아야 했다. 공항 안내에 가서 한국 여권을 보여주면 여권 한 장당 무료 쿠폰 한 꾸러미를 준다. 마쓰야마 중요 여행지에서 한 장씩 뜯어서 내밀면 입장권으로 교환해 준다. 꼭 받아야 한다. 여행하기 전 트래블카드를 만든 남편이 공항 ATM기에서 환전하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가보니, 자꾸만 안된다며 땀을 뻘뻘 흘렸다. 아버지 환갑이라고 이번 여행비를 낸 아들이 보더니, 잃어버릴 때 대비해 막아놓은 것을 풀라고 하니 돈이 나왔다. 처음 써보니 생기는 일이다. 셔틀버스가 있다고 해서 밖으로 나가니, 버스 머리에 한국인 전용이라고 한글로 써있다. 비행기 안에서 본 사람들로 꽉 찼다. 버스는 JR마쓰야마역, 마쓰야마시역, 오카이도, 도고온천, 도고프린스호텔, 오쿠도고이치유노모리에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우리는 오카이도에 내려 호텔에 체크인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75년 된 초밥집 스시마루에 들어갔다. 카운터에 할머니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것만 같은 모습으로 우릴 맞았다. 식당에 손님도 대부분 한국어로 대화 중이다. 음식은 일본 맛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다음날 일찍 트램을 타고 도고온천으로 향했다. 다음 정거장에 시각 장애인이 기다리니, 기관사가 내려가서 모시고 자리에 앉게 한 후 제자리로 가서 출발했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에 감동이었다. 도고온천역에 내리니 역사가 스타벅스점이었다. 1971년부터 그 자리에 있던 건물이라니 오래된 것을 쉽게 부시지 않고 간직하는 일이 우리에겐 힘든데 일본은 일상 같다. 커피를 주문해 2층으로 올라갔다. 갑자기 뿌뿌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오래되고 낡아 전시용인가 하던 봇짱열차가 칙칙 소리를 내며 달릴 준비를 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일본인들이 번호를 부르니 표를 내민다. 어릴 적 차장 아저씨가 표에 또깍 하고 구멍을 뚫어주던 그것을 눈앞에서 다시 보았다. 주말만 운행한다는 걸 뒤늦게 알아서 기차는 떠나버렸다. 역 앞에 또 다른 볼거리는 30분마다 봇짱카라쿠리시계가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시계를 향해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벤트가 곳곳에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은 신사로 오르는 계단이 보이는 우동집에 첫 손님으로 들어갔다. 주문하려다 말고 깜짝 놀랐다. 가슴 앞으로 크로스해서 메고 있던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거기엔 여권과 어제 엔화로 바꾼 지폐가 들어있었다. 당황한 남편이 어디서부터 없던 것일까 되짚어 생각하다, 스타벅스 2층 우리가 앉아 커피를 마시며 벗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평소 달리기하면 뒤에서 일등인 남편이 스타벅스로 향해 달리는 모습은 100미터 국가대표급이었다. 가방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며 달리니 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가방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다른 나라였으면 우리의 여행은 엉망이 되었겠지 생각하니 아찔했다. 도고온천 주위로 귤을 재료로 하는 선물 가게와 음식점이 줄을 이었다. 인형 뽑기 대신 귤을 뽑는 기계가 있어 한참 구경했다. 숙소에서 내려다보이는 반스이소는 유럽의 어느 성 같다. 가는 길에 안도다다오가 설계한 언덕의의 구름뮤지엄에 먼저 들렀다. 반은 공사중이고 1, 2층은 무료이고 3층부터는 유료다. 반스이소는 무료 쿠폰이 없어서 입장료를 냈다. 이 동네서 수세식 화장실이 제일 먼저 만들어진 곳이라 한다. 우리가 들어가니 피아노 연주회 중이었다. 사람이 드나들고 행사가 있어야 건물이 오래 보존되는 것이다. 마쓰야마성도 숙소 근처라 걸어서 찾아갔다. 산 위에 위치해서 올라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걸어서, 케이블카, 1인 리프트를 타고 가는 것 중에 우리는 추워서 케이블카로 정했다. 무료 쿠폰 꾸러미에서 성 그림이 있는 것으로 뜯어 내밀었다. 모네의 그림이 있다는 마쓰야마 현립미술관도 설이라 휴관이다. 다음날 멀리 차를 빌려서 외곽으로 나갔다. 무치코 고택도 문이 닫혔고, 우치고자 가부키 극장은 공사 중이라 휴관, 가류산장과 시모나다 간이역을 둘러보았다. 돌아오는 날, 짐을 맡기고 검색대에 들어가기 전에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아들은 마트에서 산 일본 초밥이 맛있다고 좋아했다. 공항에는 한국에서의 사고 소식으로 긴장감이 돌았다. 한국인 지점장이 직접 나와 일일이 신경 쓰며 점검했다. 부산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 후 걱정했었다고 말하니, 공대 오빠인 아들은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웃었다. 일상으로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묘미임을 온몸 가득 느낀 여행이었다.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