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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창간 35 특집] 수온 상승·해양 오염 걱정 NO, 스마트 김양식시대 활짝!

바다의 로또, 해양 반도체로 불리는 김이 산업 대전환 시대를 맞았다. 해양 오염, 해수 온난화라는 복병을 만나 김 산업 전반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 양식업자들은 전통적 바다 양식에서 벗어나 스마트 양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바다의 반도체 김, 스마트 양식 시대를 열다’ 시리즈를 준비했다. 김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부터 국내 김 산업의 변화, 일본의 양식장 탐방기까지 5회에 걸쳐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웰빙시대 맞아 힐링푸드 새롭게 주목 ‘바다의 반도체’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K-컬처 열기 타고 미·일·유럽서 인기 최근 해수온 상승·해양 오염 ‘복병’ 등장 바다 양식장 황폐화로 어민 수입 급감 전통적 양식 한계 극복 육상 재배 시도 정부 350억 투입 스마트 김산업 장려 지자체·식품업계 ‘육상김’ 본격 경쟁 투자대비 경제성 확보 사업 성패 좌우 글 싣는 순서 ① 바다에서 육지로, 김 산업의 변화 ② 국내 스마트 김 양식장 현장을 가다 ③ 일본의 김 양식장 세노수산 취재기 ④ 세노수산의 돌김 양식 성공 비결 ⑤ 경북도의 육상 김 양식 기술 개발 ‘흰 쌀밥에 김 한 장 얹어서 먹는 맛이란...’ 김은 오랫동안 우리의 입맛을 자극하는 미식(味食) 코드 중 하나로 자리 잡아왔다. 수많은 음식 중에 김이 이렇게 ‘국민 푸드’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를 넘어 우리 민족과 정서적 공감을 함께해 왔음을 뜻한다 하겠다. 그렇다고 인류사 측면에서 김이 항상 양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각국에서 김은 한때 해양 쓰레기, 가축 사료 취급을 받으며 식탁에서 멀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ESG, 웰빙 요리시대를 맞아 김은 ‘힐링푸드 아이콘’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우리 식탁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경제, 산업적 가치도 뛰어나다. 현재 한국에서 김은 ‘바다의 반도체’로 불리며 작년 수출 1조 원(7억 8000만 달러)을 돌파하며 코리아 슈퍼푸드의 대명사인 라면을 앞질렀다. 이처럼 꽃길을 걷던 김 산업에도 그림자가 드리웠으니 바로 해양 오염과 해수 온난화다. 현재 한국 김의 주산 생산지인 남해안에서는 수온 상승으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미세 플라스틱 등 오염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각 자치단체는 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육상 김 양식장’이다. 경북도도 돌김 양식장 개발, 동해안 특성에 맞는 종(種) 배양에 나서고 있다. 게장과 함께 밥도둑으로 유명한 김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보자. ◆K푸드 김밥, 세계의 소울푸드로 등장 2023년 미(美) 숏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 모녀가 김밥을 먹는 영상이 하나 올라왔다. 음식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세라 안(安)씨가 올린 이 영상은 조회 수 1100만회를 넘기며 K푸드 김밥의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세라 안씨가 김밥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된 후 미국 ‘트레이더조’ 냉동 김밥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 트레이더 조는 미국 전역에 500개 매장을 둔 식료품점. 당시 매진 사태로 식재료를 공급하느라 한바탕 소란을 떨어야 했다. 이 덕에 이곳 냉동 김밥을 납품하던 구미의 식품업체 ‘올곧’이 초대박을 터트렸다. 올곧은 김밥 250톤 초도 물량을 순식간에 완판 시킨 이 사건 때문에 주문 물량을 맞추느라 한 달 넘게 철야 근무를 해야 했다고 한다. 한국 김밥이 갑자기 미국에서 터져(?)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문가들은 우선 그 전조(前兆)를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일본인 관광객들의 ‘김 사재기’를 든다. 당시 TV에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시장에서 ‘김매장 털이’를 하는 장면은 사실은 K-푸드 김의 데뷔를 알리는 서막 이었던 것이다. 거친 방사형(放射形)에 두꺼워 식감이 질겼던 일본 김에 비해 얇고 감칠맛이 나는(가격도 30% 수준인) 한국 김에 관광객들이 열광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이 불을 지핀 한국 김 열기는 K-컬처 인기에 힘입어 미국,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스낵을 먹는 듯한 바삭한 식감과 환상의 조미(調味)는 단숨에 세계인들의 입맛을 빼앗아 버렸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해조류 열풍과 건강식에 대한 열기도 단숨에 한국 김을 판매고 최상위에 랭크시키는 데 기여했다. 김 요리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2021년 한국 김 스낵을 950만 달러나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53%나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물량 공세를 앞세우는 중국산 제품의 추격에 맞서 아직도 ‘아마존 프랑스’ 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수온 상승으로 바다-스마트양식장 전환 120여국에 수출되며 K푸드 위상을 떨쳤던 한국의 김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며 주춤하게 되는데 바로 온난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이다. 보통 김은 5~15도 수온에서 생육되는데 1년 중 이 온도가 유지되는 기간은 10월부터 다음에 4월까지 약 150일 정도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해수온이 상승하면서 채묘(採苗) 시기가 9월 초에서 9월 말로 2~3주 늦춰졌다. 이는 김 생산 시기가 한 달 가량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해 어가(漁家) 수입도 20% 가량 줄어들게 된다. 이렇게 기후 변화로 인한 해양 재해가 발생함에 따라 김을 바다가 아닌 육상에서 재배, 양식하기 위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스마트 김 양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바다 양식이 기후, 수온 등에서 제어가 불가능한 데에 비해 육상에서는 수온은 물론 염도, PH, 영양분 등 재배 환경을 자유롭게 콘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해양수산부가 2024년부터 5년간 350억 예산을 투자해김 육상 양식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 개발에 착수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육상 양식은 황색화, 갯병 등 감염을 예방할 수 있고 단위 면적당 생산량도 100배 이상 높일 수 있어 경제성에서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불붙은 육상 김 양식 전쟁, 대기업들도 앞다퉈 연구에 뛰어들고 있다. 먼저 CJ제일제당은 2018년부터 육상 김 양식 개발에 참여해 국내 최초로 육상 양식 전용 배지를 개발했다. 대상(주)도 2023년부터 고흥군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5년간 20억 원을 투자한다. 바이오리액터로 불리는 수조를 이용해 김양식에 나선 풀무원도 이미 월 10kg의 실험용 물김을 생산하고 있다. 풀무원의 이다정 연구원은 “양식장에 AI, IOT(사물 인터넷), 빅데이터 같은 스마트 기술이 접목되면서 생산 효율화를 앞당겼고 스마트 센서 기반 모니터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실험실 환경에서 많은 진척을 이루고 있는 스마트 김 양식이 과연 대량 생산을 거쳐 상용화로 이어질지가 앞으로 과제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생산량을 늘리려면 대규모 공간이 필요하고 초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갈텐 데, 과연 투자 대비 아웃-풋(경제성)이 나와줄 지가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한 김 유럽 고대 인골서 해조류 흔적 일본 조몬시대 패총서 김 발견 ‘연오랑세오녀’ 설화에도 등장 해조류의 일종인 김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 우리 식탁을 지켜왔다. 2023년 영국 요크대학은 유럽 전역의 28개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74명 유골의 치아를 분석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이 유골 치석(齒石) 분석에서 이들 대부분이 선사시대부터 이미 해조류를 섭취해왔음이 밝혀졌다. 이는 이제까지 김 소비의 주축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극동지역보다 3000년 이상 앞선 것이어서 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일본 조몬(繩文)시대 패총 유적지에서도 해조류의 흔적이 발견돼 기원전 1만3000년 무렵 일본에서도 김이 식용으로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인류들이 강가, 해안가에 거주하며 어로, 채집 생활을 했다고 볼 때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에도 ‘고대 중국인들이 해조류를 식용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우리 사서(史書)에 김이 처음 등장하는 건 삼국유사. 제1권 ‘연오랑세오녀’편에는 ‘연오가 바닷가에서 해초를 따던 중 갑자기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보인다. 물론 김을 뜻하는 ‘해의’(海衣) ‘해태’(海苔)라는 단어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이 ‘해초’(海草)가 전후 문맥으로 김, 미역 등을 지칭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이 기록을 통해서 볼 때 서기 157년 경 동해안 에서는 김이 식용으로 채취되었고 원시적 형태이지만 일본과 무역, 상업적 유통도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상갑기자 arira6@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25-06-22

지방 소멸 위기 속 청년 친화·역사 관광 도시로 힘찬 도약!

“젊은 고령, 힘 있는 고령”은 민선 8기의 군정 목표이자 핵심 슬로건이다. 지난 3년간 군민 중심의 군정을 위한 각 분야별 현안사업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는 등 고령군은 미래를 향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역량을 집중해왔다. 그 결과 민선 8기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 고도 지정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관광 도시로의 초석을 닦고 있다. 또한, 공격적인 국·도비 예산 확보와 각종 외부평가 결과 다수의 우수기관 선정 등 추진력 강한 군정 운영으로 도시경쟁력도 확보 중이다. 아래에서 군민과 더불어 그간 이뤄낸 고령군의 새로운 변화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대가야 고도 지정 민선 8기 최대 성과 뮤즈하우스·문화예술창작소 등 설립 지역 청년문화 거점 마련 스마트팜 등 과학영농시스템 구축… 그린 바이오 산업도 박차 교육·문화 결합 원스톱 돌봄서비스 제공, 저출생 극복 적극 대응 ▲청년 친화도시와 역사 관광도시로의 힘찬 발걸음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위기 속에서 고령군은 청년행복 임대주택 및 지역밀착형 임대주택사업, 청년농촌보금자리 등 청년층을 위한 주거인프라를 구축하고, 고령청년 드루와樂, 뮤즈하우스, 문화예술창작소 등 청년문화 거점공간을 마련하였다. 또한, 청년창업공간 조성, 일자리․청년창업지원센터 운영 등 내실 있는 일자리 연계․창출을 위해 노력한 결과, 지난해 ‘지방자치경영대상 일자리창출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출산장려금과 산후조리비는 물론, 다자녀가정 대상 양육장려금 및 학자금을 지원하고, 소아청소년과 진료 실시, 아이조아꿈놀이터와 어린이과학체험관, 실감형 체험도서관을 개소했다. 여기에 더해 창의 융복합 프로그램 및 교복․급식․교육비 3대 무상교육을 시행하면서 저출생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정책에도 발맞춰왔다. 민선 8기 최대 성과는 뭐라 해도 ‘지산동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 고도 지정’이다. 가야고분군 중 가장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지산동 고분군이 소재한 고령군은 세계유산의 도시로 거듭났으며, 20년 만에 대한민국 다섯 번째 고도로 지정되어 고령군이 대가야의 중심지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통해 고령군에서는 세계유산축전, 문화재야행, 미디어아트사업 등을 시행하고, 국립대가야박물관과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 건립, 역사문화클러스터 사업, 역사문화특화지구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100대 비대면 관광지’로 지정된 다산 은행나무숲 일원에 바래미 생태레저단지와 회천변 어북실 초화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야간경관 명소화사업과 대가야 빛의 숲 조성사업을 통해 낮과 밤이 모두 아름다운 매력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지역특산물을 활용한 고령멜빙축제를 신설하였으며, 지역의 대표축제인 대가야축제는 야간프로그램 도입과 함께 내실 있는 운영으로 ‘문화체육관광부 2024년 최우수 문화관광축제’, 3년 연속 ‘경상북도 최우수축제’에 선정되었다. ▲스마트 농업 육성과 산업 경쟁력 강화도 주요 숙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영농환경에 맞춰 고령군은 귀농․귀촌 통합플랫폼 임대형 스마트팜 및 시설 현대화사업 지원 확대, 딸기육묘장 및 실증시험포장 준공 등 과학영농시스템 구축으로 새로운 영농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특히 국가 전략사업인 바이오산업에 대응해 그린바이오 소재 산업화시설 조성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지역농업을 미래 성장산업으로 키워가고 있다. 부족한 농촌인력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 등 농촌인력뱅크를 운영하고,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확충하였으며, 청년복합귀농타운 및 클라인가르텐 조성, 농업근로자 기숙사 건립으로 새로운 농업인구 유입에 힘쓰고 있다. 또한, 고령딸기 농촌융복합산업지구 및 농산물 가공 종합처리장 조성 등을 추진하는 한편, 쿠팡 및 대형마트 등과의 연계를 통해 고령지역 농특산물의 경쟁력 향상과 판로 확대를 지원하고 있다. 열악한 농촌지역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새뜰마을사업을 추진하고, 기초생활거점사업을 통해 우곡 만세한마당, 개진 금천지구 온누리마당, 다산 도란도란 어울림센터를 건립해 농촌 정주여건을 향상시켰다. 고령군은 대구시와 연접한 이점으로 곽촌지구 도시개발을 비롯한 공동주택 건설, 천년건축 시범마을, 일자리 연계형 공공임대주택 등 신규 주거단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대구권 배후도시로 성장 중이다. 달빛철도 특별법 시행, 대가야 하이패스 조성, 대구․경북 대중교통 광역환승제 도입 등 광역교통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이러한 사업들은 도시의 접근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뿐만 아니라, 향후 고령군을 경남북-영호남 산업/물류, 교통의 중심지로 성장케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월성·열뫼 산업단지, 동고령IC 물류단지 준공 및 대구경북권 산업안전체험교육장 유치를 통한 대구-구미 지역 첨단산업과의 연계로 시너지 효과를 유발하고, 성장동력을 점진적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지나온 3년 고령군은 적극적인 세일즈 행정을 통해 약 1조 원의 투자유치 성과를 거두었으며, 그 결과 2023년 경상북도 투자유치대상 우수상, 2024 대한민국 지역경제대상 종합평가 종합대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모든 것의 중심은 ‘군민’ 그리고, 끊임없는 소통 고령군은 군민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주민의 목소리를 군정에 반영하는 ‘동행 행정’을 펼쳐왔다. 양질의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쌍림 상생교류센터를 준공한 데 이어 대가야읍과 성산면 신청사 건립을 추진 중에 있다. 여기에 더해 대가야읍 신청사에는 대가야권역 거점형 돌봄교육센터를 조성하여 돌봄․교육․문화 기능이 결합된 원스톱 완전돌봄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저출생 극복에 대응해 나갈 예정이다. 또, 난개발 방지와 체계적인 도시개발을 위해 성장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대가야역사공원과 지하주차장, 관광순환도로 정비 및 야간경관디자인 개선, 장애인 종합복지관, 군민체육관 및 우곡문화공원, 생활밀착형 숲과 맨발걷기 길 조성 등 주민편의와 화합,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생활SOC 확충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령군은 AI, 로봇 등 4차 산업 대비 인재 육성을 위한 창의 융복합교육 제공에도 힘쓰는 중이다 대도시와의 교육격차를 해소하고자 고민 중이며, 지난 4월에는 신규 평생학습도시로 선정돼 일상 속 학습문화 조성과 디지털 기반 학습체계 강화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 있다. 여기에 지역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평생교육 기반도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심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고령군은 대한민국 고도 지정, 세계유산 등재 등 역사문화도시 기반을 조성하고, 체류형 관광인프라 구축과 생활인구 유입 등 지방 소도시의 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를 위한 핵심사업 추진과 함께 신규 주거단지 및 산업단지 조성, 그린바이오 소재 산업화시설 추진 등 미래 성장을 위한 기반 마련에 행정력을 집중할 계획이다. 그것이 고령의 미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면 결정을 미루지 않는 과감한 추진력과 멈춤 없는 도전으로 작지만 강한 도시, 성장잠재력이 높은 지역으로 커가고 있는 고령군을 주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병휴 기자 kr5835@kbmaeil.com

2025-06-19

마을의 중심으로 600여 년 이어온 힘찬 생명력

경북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436번지, 도로변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면, 마을 어귀에 거대하고 오래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위풍 당당히 서 있다. 키 25미터, 몸 둘레 11.7m, 동쪽으로 10m, 남쪽으로 11m, 북쪽으로 8m 뻗은 가지들은 마치 하늘을 지붕 삼아 마을을 품고 있는 듯하다. 지상 3m에서 줄기가 세 갈래로 갈라져 올라간 모습은,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삼 형제가 등을 맞대고 선 듯하다. 나무 아래에 서면, 그 웅장함과 경외감에 놀라 자신도 모르게 숨을 고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400여 년 전 마을에 살던 엄 씨 성의 조상이 심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나무의 위용을 보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600여 년의 시간 속에서 뿌리내렸음을 느끼게 한다. 키 25m·몸 둘레 11.7m· 뻗은 가지 길이 10여m 삼 형제가 등을 맞대고 선 듯 우애롭게 마을 품어 매년 음력 시월 오일 동제 지내오는 경배의 대상 오일의 기운은 나무를 타고 사람에게로 전하고 사람의 기원은 나무를 통해 하늘로 닿아 보살펴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약 2억7천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 그 모양을 거의 바꾸지 않은 채 생존해 왔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번식하며, 수꽃이 피는 봄과 수분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을 사이의 긴 기간 동안 생명의 연결을 준비하는 특이한 생식 구조를 지닌다. 병해충과 공해에 강하고, 화재에도 잘 견디며, 생명력이 매우 강한 점은 도시의 가로수로 널리 활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무는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첫 열매를 맺는다고 하여 공손수(公孫樹)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긴 시간, 조급함 없이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 마을의 시간과 닮아있다. 은행나무는 그 자체로도 귀중한 자원이다. 열매는 고소하고 영양이 풍부하며, 약용으로도 쓰인다. 잎에서 추출한 징코민은 현대 의학에서도 성인병 치료에 쓰일 만큼 효능이 높다. 나무의 목질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바둑판이나 가구, 서책 보관함으로도 많이 쓰였다. 그러나 농소리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그 어떤 효능보다 공동체의 중심으로 존재하는 힘이 가장 크다. 농소리 사람들에게 있어 시간과 믿음, 삶과 기원의 상징이다. 특히 이 나무 아래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오일(午日)에 마을 제사인 동제(洞祭)가 열린다. 은행나무 아래서 농소리 공동체의 마을 제삿날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주민은 알게 모르게 마음을 정갈히 하여 제사 지낼 준비를 한다. 그 마음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오일(午日)은 십이지 중 일곱 번째 일지(日支)‘ 오(午)’에 해당하는 날이다. 오일은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인간 삶을 조화롭게 이끌고자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깃든 날이다. 하루 중 가장 양기가 강한 정오 11시에서 13시와 연결되며, 이는 곧 자연의 기운이 가장 높이 치솟는 순간이다. 오행으로는 불(火)의 속성을 띠고 있어 활력, 정화, 생명력을 상징하며, 전통적으로 잡귀를 물리치고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이기에 적합한 시점으로 여겨졌다. 특히 무오일(戊午日)은 오일 중에서도 가장 화기가 충만한 날로써, 이 날을 택일해서 혼례, 이사, 개업, 제사와 같은 중대한 일을 치르기에 길한 날로 꼽혔다. 오일(午日)이 갖는 음양 전환의 철학적 의미도 깊다. 하루 중 양기가 극에 달한 뒤 서서히 음기로 넘어가는 전환의 시점이 바로 오시(午時)이며, 오일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다. 오일에 행해지는 제사는 단순한 조상 숭배를 넘어, 삶의 흐름과 자연의 조화에 대한 인식이 담겨 있는 의례인 셈이다. 농소리 마을 사람들이 매년 시월 오일에 은행나무 아래 모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행나무는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기도와 기억, 희망과 두려움이 스며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손주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는 다음 해 농사가 무사하기를 빈다. 은행나무는 마치 마을 전체의 중심처럼, 그런 소원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말이 없지만 그늘로 대답하고, 잎의 흔들림으로 응답한다. 사람들이 이 나무를 ‘신목(神木)’이라 부르는 것은 단지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신성함은 수백 년의 공동체 합의를 통해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은행나무는 또한 마을의 세대와 세대를 잇는 다리이기도 하다. 지금은 몰라도 우리 어릴 적에만도 부모들이 자녀의 손을 잡고 나무 앞에 데려와 절을 시키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제사의 순서를 배웠다. 제례를 통해 전통은 말보다 몸짓과 공간, 향의 기억으로 전승되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사의 형식은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달랐다. 은행나무의 잎은 그 자체로 언어다. 싸락눈처럼 흩날리는 노란 잎은 마치 신의 응답처럼 떨어지고, 사람들은 그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한다. 누군가는 그 잎을 책갈피에 넣고, 누군가는 머리맡에 올려두기도 한다. 그 잎은 그냥 잎이 아니다. 그해의 기도, 바람, 햇살이 깃든 하나의 축복이다. 은행나무는 계절의 흐름을 붙들고 서 있다. 봄엔 잎눈을 틔우고,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며, 가을엔 황금빛 잎을 떨어뜨린다. 겨울이면 앙상한 가지로 계절의 침묵을 견딘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은행나무는 계절의 기록자이자 마을의 등불이다. 은행나무는 또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다. 현대 도시에서는 나무로만 인식하지만, 농소리에서는 여전히 은행나무는 공경의 대상이며,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오일(午日)이라는 날이 특별한 것도, 그날이 인간과 자연이 서로의 호흡을 확인하는 상징적 시간이기 때문이다. 불의 기운, 말의 상징, 정오의 절정, 이 모든 자연의 요소들이 오일에 집약되어, 공동체의 정신적 중심인 은행나무 아래로 모여든다. 은행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바람이 불고, 잎이 흔들리고, 계절이 흐르더라도, 마을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오일의 기운은 나무를 타고 사람에게로, 사람의 기원은 나무를 통해 하늘로 닿는다. 이 순환이 이어지는 한, 농소리 마을과 주민은 앞으로도 평화로울 것이다. 은행나무를 통하여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인간 삶을 조화롭게 이끌고자 했던 농소리 주민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오일(午日)이란…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시간이다. 오일(午日)은 십이지 중 ‘오(午)’에 해당하는 날로, 시간은 하루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정오 무렵인 11에서 13시를 말한다. 오행에서는 ‘화(火)’의 속성을 지녀 생명력, 열정, 정화를 상징하며, 이는 인간 삶의 전환과 새출발을 의미한다. 특히 무오일(戊午日)은 화기와 양기가 절정에 이르는 날로 여겨져, 혼례, 이사, 제사, 개업 같은 중대한 일을 치르기에 적합한 길일로 사용되었다. 출생년, 즉 띠를 말할 때‘오(午)’가 상징하는 말(馬)처럼, 이날은 민첩함과 진취성, 생명의 활력이 넘치는 날로 인식되었다. 방위를 말할 때는 정남을 또한 오일은 양에서 음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자연의 순환 속에서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시간으로 여겨졌다. 민속 신앙에서는 정화와 치유, 신령의 날로 삼아 굿과 제례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오일은 단순한 달력상의 날이 아니라, 자연과 생명, 기운, 인간 삶이 교차하는 전통적인 전환의 시점이다. 특히 단오의 풍속은 우리 민속에서 오일의 정수가 집약된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18

형상을 넘어, 마음을 빚다 경주, 고려 청자를 부르다

경주박물관, 신라의 도시 경주에서 8월 24일까지 고려청자 특별전시회 유리관 너머 상감청자·상형청자 통일신라 시대 형상토기가 기원 이야기 품은 신비로운 푸른 자기 고려시대 유물 실제로 볼 수 있어 ■경외의 비색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 앞, 사람들의 발걸음이 잠시 머뭇거린다.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청자 특별전을 마주하기 위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함이다. 제목이 먼저 시처럼 다가온다. 전시실 문턱을 넘는 순간, 모든 소리가 묻힌다. 사방으로 튀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말소리는 낮아진다. 전시실 내부는 고요하지만, 고요는 비워진 것이 아니라 꽉 채워진 무게를 품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 비색의 기물 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랄 것 없이 조용히 머뭇거린다. 침묵이 아니라 경외다. ■1부 그릇에 형상을 더하다 경주박물관은 언제나 새롭다. 그러나 이번은 새롭다는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고대 신라의 숨결이 배어 있는 박물관에서, 뜻밖의 고려 형상과 마주하고 있다. 도록 속 사진으로만 접했던 귀하디귀한 상감청자와 상형청자를 처음 만난다. 유리관 안에 놓인 푸른 도기들은 하나같이 신비롭다. 어떤 이야기를 품은 듯 시선을 강하게 끈다. 흙과 불, 빛깔의 언어로 건네오는 말들 속에 사람과 동물, 식물과 신령한 존재들이 고요히 말을 걸어온다. 전시의 서두는 고려청자의 뿌리를 통일신라의 형상토기에서 찾고 있다. 월지에서, 구황동 원지에서, 딱딱하게 굳은 흙이 되어 누워 있던 사자와 오리, 새와 말의 형상들이 청자의 몸으로 되살아난다. 이런 형상들은 단지 고대의 유산이 아니라, 고려인의 사유 속에서 다시 태어난 기억이다. 지금, 나는 고대의 어떤 시간의 곁을 지나고 있다. 옛사람들의 손끝에서 흘러나온 상상력이 실용을 넘어 조형미로, 조형미를 넘어 삶의 감각으로 번져가는 순간을 생생히 체감하고 있다. ■2부 제작에서 향유까지 시선은 역사의 흐름처럼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릇이 아니라 존재다. 조롱박의 부푼 곡선, 복숭아의 매끈한 살결, 석류의 탱탱한 껍질, 오리의 부리와 깃털까지도 지금 눈앞에서 생명처럼 숨을 쉰다. 고려의 상형청자들은 단지 자연을 본뜨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고, 실재하는 그릇의 형상으로 상상을 정교하게 붙잡는다. 귀룡은 비늘마다 왕의 권위를 두르고, 어룡은 물결을 가르듯 유려하게 휘어진다. 기린의 발굽 아래엔 구름이 감기고, 연꽃은 천상의 질서를 따라 피어난다. 신화의 동물들이 흙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광경 앞에서, 상상은 실재를 능가한다. 고려인의 조형 세계는 가히 경이롭다. 이처럼 눈앞에 놓인 도자기는 장식도, 단순한 생활 도구도 아니다. 그 안에는 상징과 실용, 욕망과 절제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다. 무늬는 정교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곡선은 아름답지만 흘러내리지 않는다. 화려함 속에 침묵이 깃들고, 과장이 아닌 균형이 선다. 청자의 선은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를 말한다. 삶과 죽음, 신과 속, 세계와 자아가 그 안에서 교차한다. 나는 지금 이 푸른 그릇들 앞에 서서, 고려인의 정신이 빚어낸 또 하나의 우주를 마주한다. ■3부 생명력 넘치는 형상들 고려 사람들은 물가에 사는 오리나 물고기, 흙에서 자라는 복숭아나 조롱박 같은 자연의 형상들을 청자 위에 올려두었다. 형상은 향로가 되었고, 연적이 되었고, 술잔과 주전자가 되었다. 고려 장인들은 형상을 조각하는 동시에 삶을 담아냈다. 상형청자에 등장하는 용, 어룡, 귀룡, 기린, 사자와 같은 상상 속의 동물들은 예로부터 상서로운 존재로 여겨지며, 왕실과 귀족의 권위, 복과 수호를 상징한다. 이러한 청자는 단지 장식품이 아니라, 왕실의 의례에 사용되거나 귀족들의 삶에서 특별한 물건으로 기능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을 형상화하고, 그 형상이 다시 실용의 몸을 입을 때, 고려 청자는 상상과 실용이 만나는 신비로운 그릇이 된다. 아름다우면서도 절제된 곡선 속에 고려인의 마음의 질서가 함께 깃들어 있다. 곡선은 장인의 손끝을 넘어서, 고려인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자 마음의 형식이다. 그 형식은 지금 우리의 시선 아래에서도 여전히 반짝인다. ■4부 신앙으로 확장된 세상 푸른 빛을 따라 전시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자, 형체 너머의 세계가 더욱 깊게 펼쳐진다. 불상과 향로, 도교적 상징이 새겨진 기물들이 유약의 광휘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릇이라 부르기에는 무언가 다르다. 푸른 형상들은 금속도 아니고, 목재도 아닌, 연약하지만 강한 흙과 불로 빚어진 신의 언어다. 신앙이란 무엇일까. 신에게 이르는 길이자,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깊고 넓게 확장해나가는 여정 아닐까.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서 인간은 손을 모으고, 마음을 다듬는다. 청자 위에 새겨진 곡선 하나, 그리움과 기도 사이에서 태어난 침묵의 문장이다. 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기물 하나하나의 조용한 형상 속에, 피어오르는 향의 바람 속에 숨어 있다. 신은 없음과 있음의 경계를 나누지 않는다. 세상의 모든 모호함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욱 자신의 내면을 일깨운다. 고려인은 흙 위에 신을 모시고,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상상과 믿음을 쏟아부었다. 이 믿음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맑고 투명한 청자의 빛을 탄생시켰다. 청자는 신에게 이르는 문이며, 동시에 인간의 가장 내밀한 기도가 스며든 그릇이다. 이 맑은 청빛은 단지 ‘아름답다’는 감탄이 아니다. 인간이 도달한 정신의 가장 높은 경지에서 피어난 하나의 형상이자 빛이다. 현실과 신비, 감각과 초월이 서로 뒤섞인 채로 투명하게 드러나는 기물이다. 그 푸른 빛 앞에서 우리는 문득, 인간의 본성이 가진 가장 정제된 형태의 사유와 감정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존재를 초월한 빛이며, 언어를 초월한 고요다. 눈으로 목도한 청빛 속에, 나는 경계를 허물고 내 안의 신을 만나고 있다. ■손으로 느끼는 고려청자 전시의 끝자락, 완성된 상감청자 세 점이 놓여 있다. 손을 올리니 비색의 유약이 매끄럽게 감도는 표면을 따라 손끝이 미끄러진다. 유약의 결은 촉감으로도 반짝인다. 조각된 형상과 무늬의 결마다 고려인의 숨결이 가만히 우러난다. 흙의 기억, 불의 흔적, 시간의 결이 지금 내 손 안에서 살아나는 듯하다.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시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도기를 만지며, 나는 어느새 그 시절로 스며든다. 도공이 되어 흙을 빚고 말리고 유약을 발라 가마 앞에 선 듯, 무늬 하나를 새기기 위한 호흡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 청자의 표면을 따라 흐르는 정제된 빛은 그저 유물의 표면이 아니라, 내가 잠시 빌려 쥔 과거의 감각이다. 그 빛 안에, 나는 청자를 빚는 손을 상상하고, 그 안에 깃든 마음을 만지고 있다. 비색의 곡선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곡선은 시간을 감싸고 나를 바라본다. 고려의 상형청자는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감각과 세계관, 그리고 고요한 사유의 그릇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 아름다움 속에서 묻혀 있던 정신의 깊이를 우리에게 비추어준다. 나는 한 줄 청빛을 품는다.

2025-06-18

‘두부와 송이버섯’ 혀와 코를 매료시킨 영남의 별미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편집자 주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 드셔보셨나요? “먹고살 만한 시대가 오면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난다”는 이야기가 떠돈 게 20세기 후반, 혹은 21세기가 시작되던 즈음이다. 내가 20대 말과 30대 초반을 살던 시절. 실제로 그랬다. 공중파 방송이 앞다퉈 전국의 맛집은 물론, 세계 각국의 별나고 특별한 요리를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정말이지 듣도 보도 못한 재료를 사용해 기이한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별미가 세상엔 많고도 많았다. 헌데,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 본 수백 가지 요리 중 기억에 또렷하게 남은 건 가격부터 사람을 깜짝 놀래키는 곰 발바닥으로 만든 요리나, 염장한 북해산 철갑상어알이 아닌 우리가 익숙하게, 자주 먹어왔던 평범한 음식을 소개한 프로그램이다. 대략 2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MBC였던지, KBS였던지 흐릿하다. 늦은 밤 TV 속에 등장한 70대 노파가 카메라를 마주 보고 한숨을 쉬며 이런 말을 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콩을 삶던 커다란 가마솥 앞에서였다. “아이고, 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 이번 생에서 두부를 만든다 아입니까.” 무슨 말일까? 흔해빠진 두부 가게를 운영하면서 ‘전생(前生)’까지 언급할 이유가 있을까? 그땐 나도 어렸으니 생각이 단순했고, 세상사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단편적일 때다. 말 그대로 동네 반찬가게에서부터 마트 식품코너까지 지천에 널린 게 두부지만, ‘제대로 된 두부’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알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세월이 흐른 뒤였다. 일견 단순하게 보이는 ‘두부 만들기’는 시작부터가 쉽지 않다. 두부 맛을 좌우하는 콩의 선택이 첫 번째 과제. 공기 맑은 산간 지역에서 기른 해콩을 찾기 위해 경상북도와 강원도 산간 농가를 뒤지는 일은 피곤하고도 사람을 지치게 하는 작업. 그럼에도 ‘두부 맛집’ 주인장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자, 이제부터 또 여러 난제가 등장한다. 선택된 콩을 얼마나 오랫동안 물에 불릴 것인지, 불린 콩을 삶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간수(습기 찬 소금에서 녹아 흐르는 짠 물)로는 어떤 걸 선택할지, 부드러운 두부가 엉기고 응고될 때까지는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지….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려면 밤을 꼬박 새우는 게 일상사라고 한다. 이쯤 되니 앞서 말한 그 할머니가 ‘전생의 죄’를 이야기하며 짙은 회한을 털어놓은 것일 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잘 만든 두부 한 모는 세계에서도 이름이 높은 와규(和牛) 맛에 뒤지지 않는다. 콩의 단백질이 고가의 소고기 단백질을 압도하는 것. 그 맛의 비결을 투여된 시간과 지극한 정성 외에 다른 어떤 방법으로 설명이 가능할까? 서너 해 전. 경북 상주의 유명 관광지를 취재하러 갔다. 밥때가 돼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을 서성거렸고, 동네 사람이 추천해준 고풍스런 옥호(屋號)의 식당 문을 열었다. 주방에서 비릿함을 누르는 잘 익은 콩의 구수한 냄새가 풍겨왔다. 식물성 단백질에서 건강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들기름에 구운 손두부는 영남은 물론 호남과 서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음식이 됐다. 그런데, 그 집은 두부를 ‘산초기름’에 굽는다고 했다. 두부와 산초라…. 생경한 조합이다. 음식에 관해 모험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맛은 어땠냐고? ‘천하일미’라고 하면 호들갑을 떤다고 욕을 먹을 터. 하지만, 산초기름 두부구이의 감칠맛은 아마 최소 10년은 혀와 코가 기억할 것 같았다. 딸려 나온 된장찌개와 더불어. 된장 역시 재료가 되는 건 콩이다. 허니, 그날 점심은 ‘콩의 향연’ 또는, ‘콩의 심포니’라 칭해도 무방했다. 협연자는 산초기름. 그 식당은 창업주가 40년, 물려받은 딸이 20년, 그러니 같은 자리에서 60년째 운영 중이다. ‘전생에 죄가 많은’ 두 여자의 고생이 만들어낸 ‘두부’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그저 진미(珍味)라는 흔하디흔한 표현만으로 모자랄 것 같다. ▲송이버섯, 이 향기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아우라(aura)’는 무시무시한 단어다. 무슨 뜻이냐고? 백과사전의 설명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이러니, 아우라란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카리스마(charisma)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경지를 지칭하는 것일 터. 올해 여든다섯이 된 영화배우 알 파치노. 그의 연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휘는 ‘아우라’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하다. 시시껄렁한 싸구려 건달로 분했을 때, 뉴욕으로 옮겨간 이탈리아 마피아의 우두머리를 연기할 때, 20세기 말 세상을 절멸시키려는 악마로 등장했을 때…. 그는 배역에 따라 눈빛과 몸짓을 능수능란 바꾼다. 때론 젊은 깡패 같고, 어느 땐 조직폭력배 두목 같고, 드물게는 진짜 악마 같다. “배우로서의 그는 돌올하고 탁월하다”는 영화평론가의 말에 감히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2004년이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전인권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내 나이 서른셋, 전인권은 공자가 말한 바 지천명(知天命). 쉰이었다. 대상포진으로 입술 아래가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최악의 컨디션임에도 전인권은 ‘당장 죽어도 좋다’는 듯 절규했다. 그날, 전인권의 노래를 들으며 어떤 짐승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효를 멈추면 숨이 끊기는 운명을 지닌 아마존 정글의 전설 속 맹수.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 속에선 내내 아우라가 번득였다. 전인권이 아니면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음식 이야기’를 한다면서 잡설이 길었다. 폐일언. 경상북도 영덕과 봉화, 울진 등지에서 귀물(貴物)로 대접받는 ‘어떤 버섯’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서설이 과했다.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오늘은 ‘송이(松耳)’ 스토리다. 혀와 눈이 아닌 코로 먼저 맛보는 버섯. 서양엔 훈련된 돼지가 냄새를 맡게 해 채취하는 버섯이 있다. 참나무 뿌리에 붙어사는 트러플(truffle·송로버섯)이다. 이 버섯 역시 향이 좋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향기에 비할 수 있을까? 울울창창 짙푸른 소나무 숲에서 자라는 송이는 경북 북부와 강원도, 북한과 중국 등이 주산지인 귀한 식재료다. 버섯이지만 기이하게도 생선처럼 비늘이 있고, 옅은 갈색의 몸통은 사방 백리로 오묘한 냄새를 뿜어댄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이야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송이의 가장 큰 미덕은 ‘아우라가 깃들어있다’ 말해도 좋을 향기. 이게 먹는 버섯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유다. 한국엔 음식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작가가 몇 있다. 소설가 성석제도 그중 하나다. ‘숨겨진 맛집’을 찾아다닌 그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끼니때가 한참 멀었음에도 배가 고파온다. 바로 그 성석제가 쓴 산문 가운데 하나엔 서울 신촌의 일식집에서 ‘엄지손톱만 한’ 송이버섯 조각이 발산하는 향에 놀랐다는 경험이 담겼다. 그것에 비하면 내가 겪은 ‘송이 섭식’ 체험은 스케일이 폭력적(?)일 정도로 크다. 대략 20년 전. 경상북도와 강원도 경계에 신당을 차린 늙은 무녀(巫女)를 만났다. “당신 사주를 봐주겠다” 하길래 “난 그런 걸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눈가에 주름을 만들어 웃으며 “그럼 송이에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 했다. 달콤한 제의를 왜 거부하겠는가? 무녀가 가마솥만한 커다란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콸콸’ 붓고 어마어마한 양의 송이버섯을 가져다 넣었다. 일행 셋이서 kg당 80만 원이 넘는 송이를 족히 2kg은 먹었던 듯하다. 괴발개발 기사나 쓰는 한빈한 월급쟁이가 평생 맛볼 송이버섯을 하루에 다 먹은 셈이었다. 그 송이는 ‘놀라운 향’이 없었겠는가? 그럴 리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난봄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산불 탓에 올해는 물론, 향후 30년 가까이 영덕, 봉화, 울진의 송이버섯을 맛보기 힘들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비단 미식가만이 아니다. 3등품 송이의 향기라도 맡고 싶은 이들의 실망감이 클 것 같다. 이 상황은 ‘아우라가 깃든 버섯의 비극적 절멸’인가? 조금 슬프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17

경주박물관 100년, 제국의 전리품에서 민족의 자존으로

■총독도 놀라게 한 경주, 민심 경주 사람들의 저항에 총독부는 당혹했다. 문화정치를 내세우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조차 민심의 폭발 앞에 흔들렸다. 경북지사는 “경주 주민이 유물이 경주고적보존회에 보관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문장을 보고서에 실어 총독부에 올렸다. ‘지방민의 의향을 고려해 보관을 결정하겠다’는 모호한 회신이 도착했다. 경주 사람들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진정위원이 경성으로 올라가 총독과 정무총감을 직접 면회했다. 결국 총독부는 금관의 경주 보존을 약속했다. 경주의 저항은 단순한 금관의 보존이 아니라, 역사적 정체성과 자존의 수호였다. 경주 시민의 피땀어린 모금으로 지은 ‘금관고’ 마침내 경성으로 갔던 금관 다시 돌아와 안치 금관 존치 운동 민족의 뿌리 확인시키는 계기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 경주분관’ 우리 품으로 1975년 7월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시대 열어 명칭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변경 올 10월말~11월초‘2025 APEC 정상회의’ 열려 국립경주박물관 또 한 번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시민의 모금으로 지은 금관고 ‘금관은 경주에 있어야 한다’는 경주 사람들의 외침에, 일제는 ‘보관할 곳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곧장 대답했다. ‘우리가 돈을 내겠다.’ 금관고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되었다. 금관고는 경주 시민이 피와 땀으로 지은 기념비였다. 일본이 설계하고 자재를 공급했을지언정, 경주 사람들의 뜻으로 세워진 저항의 건축이었다. 1923년, 마침내 금관고가 세워졌다. 조사와 기록을 위해 경성으로 갔던 금관이 다시 경주로 돌아와 안치되었다. 금관고는 침탈의 시대에 솟아오른 민중의 반격이었다. ‘우리는 위대한 왕조의 후예다’라는 의식이 비로소 구체적인 형태를 얻은 순간이었다. 금관 존치 운동은 경주 사람들의 의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후 동아일보가 나섰다. 금관의 발굴과 의미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영화사들은 신라의 유물과 예술을 주제로 영사대를 조직했고, 사진과 설명이 담긴 강연이 전국을 돌았다. ‘조선의 문화’가 사람들의 가슴속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학교들이 움직였다. 수학여행 1순위로 경주를 정했다. 학생들의 끊임없는 발길이 석굴암과 불국사, 금관과 마주했고, 민족의 뿌리를 확인 시켰다. 경주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물어온 눈부신 질문이자, 위대한 민족의 후예들이라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1923년 5월까지 금관고를 찾은 관람객은 약 2만3천여 명이었다. 금관고가 주요 관광지로 자리를 잡자, 일제는 확장에 나섰다. 1926년 6월 30일, 진열관 처마 밑엔 일장기가 펄럭였고, 검은 글씨로 음각된 새 현판이 정문 위에 걸렸다.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명칭만 바뀌었을 뿐, 야욕은 그대로였다. 진열관의 유리는 윤이 나도록 닦였고, 전시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된 모습으로 손님을 기다렸다. 제복의 순사들이 절도 있게 어깨를 펴고 서 있었고, 마당엔 초대 인사들의 자리가 미리 정돈되어 있었다. 총독부 고관들, 경북의 관료들, 고적보존회의 인물들이 삼삼오오 천막 아래 모였다. 그날 경주의 하늘 아래, 신라의 기억은 일장기 그림자 속에 숨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가 그 자리의 주인이 되었다. 모로가 히데오(諸鹿央雄, 제록앙웅).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초대 분장 대리가 되었다. 그의 발밑에는 조용한 약탈의 자국이 겹겹이 밟혀 있었다. 그는 1908년 조선으로 건너와 1910년부터 경주에서 사실상 도굴을 통해 유물을 수집했다. 필자가 쓴 ‘『경주의 재발견』 2편 「신라 금관(상)」’ 편에서도 언급했듯, 1921년 금관총 발굴에 직접 관여했으며, 도굴한 유물을 팔거나 고관들에게 선물하며 경주의 문화 권력자가 되었다. 결국 만행이 드러나 1933년 5월, 유물을 도굴·판매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박물관’ 개관과 함께 고적지 정비와 경주역 확장도 이어졌다. 경주의 문명화는 급속히 진행되었다. 불국사와 석굴암, 대릉원 일대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어느새 경주는 ‘조선 최고의 고적 관광도시’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는 문화유산의 힘이자, 기억이 머무는 장소가 가진 흡입력이었다. ■두 얼굴의 도시, 생계와 상처가 교차한 박물관 경주 사람들은 박물관 앞에서 복잡한 감정에 싸였다. 금빛 관이 유리 진열장 안에서 찬란히 빛날 때, 어떤 이는 조상의 영광이 되살아나는 듯 감격했고, 또 어떤 이는 무덤을 파헤쳐 세운 전시장이 야만처럼 느껴졌다. 손에 돈을 쥐고 조상의 유물을 바라보는 일은 낯설고 서글펐다. 그 유물은 원래 대가 없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것들이었으니까. 진열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웃는 모습은 경외와 이질감이 동시에 일으켰다. 경주의 삶은 확연히 달라졌다. 진열장 주변에 골동품 가게가 생기고, 여관과 식당이 문을 열었다. 조상의 흔적이 남긴 길 위에서 삶을 도모해야 했다. 신라의 유산은 경제가 되었고, 민족의 자긍심은 상품 속에 녹아들었다. 박물관은 제국이 만든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일제는 신라 유적, 조상의 유물을 제국의 전리품처럼 전시하며, 찬란함을 조선 지배의 정당성으로 포장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표면 아래에는 조선을 문명화시켰다는 왜곡된 역사 의식을 퍼뜨리려는 제국의 속셈과 야욕이 숨겨져 있었다. 경주가 ‘민족 관광도시’로 불린 건 바로 이런 두 얼굴 때문이었다. 한 손에는 생계, 다른 한 손에는 상처와 긍지가 들려 있었다. ■광복 이후, 경주박물관의 재탄생 광복의 함성이 전국을 뒤덮던 1945년 10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이 문을 열었다. 최순봉 관장과 직원들은 일본인들에게서 박물관 건물과 유물을 인수했다. 그해 겨울, 미군정의 협조 아래 부산과 대구에서 문화유산 회수 작업이 이뤄졌다. 사라졌던 유물들이 하나둘 경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경주박물관은 국립박물관 체계의 일원으로 활동을 이어갔다. 호우총과 은령총 발굴에 참여하며 고고학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발굴의 역할은 단지 유물을 찾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과거를 되찾는 행위였고, 우리 손으로 역사를 쓰는 첫 줄이었다. 그러나 박물관은 위태로웠다. 경주문화원 자리에 세워졌던 옛 건물들은 대부분 한옥을 개조한 것이어서 화재에 취약했다. 유물은 늘어나고, 전시 공간은 턱없이 좁았다. 1950년대 중반, 연간 5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며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유물을 보호하고 새로운 유물을 선보이기 위한 변화가 절실해졌다. 1961년, 온고각 뒤편에 2층 규모의 신관이 세워졌다. 경주박물관의 첫 확장이자, 자생적 발전의 신호탄이었다. 신관은 점점 복잡해지는 유물 보존과 전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금방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1960년대 중반, 도시 개발과 도로 확장이 이어지면서 경주 각지에서 유적 발굴과 함께 유물이 쏟아졌다. 유물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동부동의 박물관은 모든 것을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했다. 박물관은 더 넓고 안전한 공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1966년, 박일훈 관장은 박물관 신축 계획을 세웠다. 여러 부처에 청원서를 보냈다. 1967년 4월, 대통령 지시각서 11호로 경주박물관 신축이 공식 결정되었다. 그해 가을, 새로운 터전을 위한 부지 조사도 시작되었다. 수많은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월성 남쪽 인왕동 들판이 새 부지로 정해졌다. 1968년 10월 4일, 첫 삽이 인왕동 땅을 갈랐다. 단지 건축의 시작이 아니었다.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이 담을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 시대를 열다 인왕동 들녘에 신라의 심장을 다시 세우는 박물관을 지어야 했다. 단지 유물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신라의 정신을 품은 공간이어야 했다. 건축가 이희태는 고뇌 끝에 설계도를 그렸다. 이희태는 해답을 탑에서 찾았다. 불국사의 불탑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지붕은 신라의 기와를 본떴고, 근정전 초석의 곡선이 바닥에 깔렸다. 뒤뜰에는 모조된 석가탑과 다보탑이 상징처럼 섰다. 원본에 쓰인 돌을 찾아 경주 외동의 화강암과 울주의 응회암을 가져왔다. 돌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당대를 대표하는 석공 김부관이었다. 공사는 6년 넘게 이어졌다. 마침내 1975년 7월 2일, 국립경주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한 달 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인왕동 시대의 문이 활짝 열리며, 경주는 세계의 중심임을 알렸다. 1982년 7월 19일, 제2 별관인 월지관이 문을 열었다. 안압지에서 발굴된 통일신라의 삶과 예술이 들어섰다. 2년에 걸친 발굴은 3만 점이 넘는 유물을 쏟아냈고, 그 유물을 품는 새로운 집이 월지관이 된 셈이었다. 2002년 5월엔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신라의 불교미술, 그 정갈하고 깊은 흐름을 담은 공간이 지금의 ‘신라미술관’이다. 돌과 흙에서 피어난 신라의 미학이 이곳에서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더는 과거의 창고가 아니다. 역사가 현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2025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국립경주박물관은 또 한 번 세계의 중심이 된다. 2005년 부산 회담 이후 20년 만에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가 경주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국가 정상급 인사들이 모이는 역사적 회담의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경주박물관은 뜨거운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하> 편에는 경주박물관 고려상감청자전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2025-06-11

마을의 과거와 미래를 품고 살아갈 생명의 상징

지속 가능한 지구 시스템에서 나무는 지구를 지키는 초병으로써 최전선에 서 있다. 지구에 나무가 없다고 상상해 보면, 지구는 의미 없는 먼지에 불과할 것이다. 생명체가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나무 덕분이다. 나무는 생명체가 필요로 하는 물과 공기, 흙을 정화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한다. 또한 온도와 습도, 바람 등 미기후를 조절하고, 토양 유실과 홍수를 예방하여 지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나무는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생명체를 품고 키우며 지구를 부양하고 보살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며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이다. 650살·높이 20m·둘레 6m 노거수 1982년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 고려 공민왕 때 전쟁에 나간 효자의 “나무를 자식처럼 가꿔 달라”는 전설 오늘날 마을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져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해 온 민족이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깃든 숲을 ‘당산 숲’ 또는 ‘마을 숲’이라 불렀고, 그 숲의 나무를 ‘신령이 깃든 당산목’, ‘성황나무’, ‘신지핌나무’라 하여 신성시하였다. 이러한 나무는 액운이나 잡귀의 침입을 막는 마을의 신목으로 여겨졌으며, 훼손은 신체 훼손과 동일시될 만큼 금기시되었다. 이 가운데 역사적·문화적·학술적으로 가치 있는 당산목, 정자목, 풍치목 등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이러한 법적 보호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 제정된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 제6호에서 비롯되었고, 해방 이후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는 국가유산청에서 관리하며, 산림청은 100년 이상 된 노목, 거목, 희귀목 등을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1972년에는 전국의 노거수를 일제 조사하여 요건에 부합하는 나무를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보호 대상으로 삼았다. 보호수로 관리되던 나무 중 민속문화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승격된 나무가 있다. 바로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번지의 회화나무 노거수이다. 이 나무는 “나무를 자식처럼 가꾸어 달라”는 유언이 전해지는 전설의 당산나무다. 나이는 약 650살, 높이는 20m, 둘레는 6m에 이르는 노거수이다.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안내판에는 나이가 400살로 기록되어 있으나, 전설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시대(재위 1351~1374)에 심어졌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 재임 연도로 계산하더라도 650년이 된다. 전설을 뒷받침하듯, 마을 중심부에 노거수가 자리 잡고 있다. 회화나무 노거수는 나이만큼이나 몸은 노쇠하여 큰 원줄기는 속이 비어 있었다. 주민들은 외과수술과 짐승이나 새, 곤충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촘촘한 방충망 설치와 나무 주변 아스팔트 도로에 유공을 뚫고 지팡이도 선물하였다. 마을 제사를 지내는 당산목임을 표시하는 바윗돌 제단과 금줄이 쳐져 그 위엄만은 아직도 건재하게 살아있었다. 육통리 회화나무 앞에 서면, 마치 한 세기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흘러오는 듯하다. 속이 비고 몸이 휘어진 나무는 늙은 신령처럼 말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생명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가. 줄기 속 공동은 상처지만, 그 틈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가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해 뻗었다. 공존이란 이름 아래, 나무도 사람도 서로의 시간을 감싸 안는다. 생명은 혼자가 아니다. 나무는 말없이 이 마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품고 있다. 회화나무에는 예부터 내려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이라고 하지만, 마을의 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려 공민왕 때에 부모님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는 김영동이란 젊은 청년이 마을에 살고 있었다. 당시 북으로부터 홍건적이 침입하고 남으로부터 왜적이 침입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는 바람에 백성들은 편안할 날이 없었다. 19세의 젊은 나이로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갈 것을 결심하고 회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하며 ‘소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나무를 자식으로 알고 잘 가꾸어 달라’라고 하였다. 그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하자 부모는 그 슬픔을 이겨내려고 아들의 소원대로 회화나무를 보호하고 잘 가꾸었다.” 육통리 마을에서는 전쟁터에서 잃은 귀한 아들처럼, 부모의 마음으로 오늘날에도 정월 보름날 마을에서 가장 정결한 사람을 제주로 뽑아 제사를 지내고 있다. “나무를 심고 귀한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달라고 유언한다.” 이보다 더한 노거수 사랑이 있겠는가 싶다. 우리 조상들의 나무 사랑과 지혜는 이 고사와 전설을 통해 더욱 빛난다. 국가유산청이 시행하는 2022년 자연유산 보존에 앞장선 마을 대표에게 수여하는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육통리 김상동 이장이 받았다고 마을 주민 한 분이 귀띔해 주었다. 육통리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는 단순한 노거수를 넘어, 수백 년간 마을 사람들의 정성과 믿음을 품고 자라온 살아 있는 역사이자 문화유산이다. 고려 시대 청년의 효심과 나라 사랑에서 비롯된 전설은 오늘날까지도 마을 제사와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지며, 나무를 자식처럼 보살피고 가꾸어 온 조상들의 지혜와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을 보여준다. 국가유산청이 ‘당산나무 할아버지’ 상을 수여한 것도 이러한 공동체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며, 회화나무는 앞으로도 마을을 품고 또 다른 백 년을 살아갈 생명의 상징으로 남을 것이다. 필자의 시 ‘회화나무 앞에서’ 바람은 묻는다 그대는 몇 해를 살아왔느냐고 줄기 깊숙이 숨은 옛 전설이 잎사귀마다 흔들린다 전쟁터에 나선 아들의 유언처럼 나무는 자식이 되고 부모는 나무와 함께 세월을 견뎠다 속이 텅 빈 몸 지팡이 몇 개에 의지하며 그늘을 나눠주는 노거수 마을의 기둥은 쓰러지지 않는다 신령이 깃든 나무 아래 주민의 기원이 피어난다 또 다른 백 년을, 육통리 마을을 품고.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11

이야기와 함께하면 더 깊은 맛 나는 ‘영남 음식’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해 엮은 것이다. 홍 기자는 한국기자협회 미디어 리터러시 위원장이다...편집자 주 포항의 별미 ‘물회’… 고추장 본연의 맛으로 양념, 맹물·과일즙 부어 먹으면 일품 뱃일로 고된 시절 갓 잡은 생선에 찬물 붓고 훌훌 말아 넘긴 한끼, 삶이 담긴 음식 영남 북부 양반들이 귀하게 먹던 음식 ‘안동국수’… 고급 생선 ‘은어’로 끓인 한 그릇 투명하고 깔끔한 국물·매끄러운 면발… 별다른 고명 넣지 않아도 시원한 맛 자랑 ▲어부의 고단한 살과 일상이 만들어낸 별미 ‘물회’ ‘물’과 ‘회(膾)’는 어울리는 단어의 조합인가? 최소한 내겐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진. 제법 열정적인 연애가 지속되던 날들이었다. 30대 초반인 사내와 20대 중반인 여자가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경북 안동까지,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짙푸른 파도 일렁이는 동해안 영덕 바다로 여행을 갔다. 대게가 맛있는 철이었다. 비싼 갑각류를 잔뜩 먹고 두주불사로 마신 다음 날. 해장 음식을 찾아 영덕 강구항 조그만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난생처음 ‘물회’란 걸 만났다. 크고 붉은 모조 보석이 박힌 금반지를 낀 호호백발 할머니가 잘게 썬 가자미 위에 양배추와 파, 고추장인지 초장인지 모를 시뻘건 양념을 듬뿍 올린 커다란 스테인리스 그릇을 가져왔다. “시원하게 찬물을 부어 먹어봐. 속이 확 풀릴 거야.”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유년과 소년기를 보냈기에 회는 낯선 음식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백부를 따라다니며 자갈치와 마산 어시장에서 수십, 수백 차례 먹어본 익숙한 것이니까. 그런데, 멀쩡한 횟감에다 뜬금없이 물을 붓는다? 처음 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게 맛이 나쁘지 않았다. 방금 손질한 날생선 특유의 쫄깃한 식감을 지닌 회가 아닌 물컹이며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는 회라니... 색다르고 생경한 요리 체험이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도, 여자 친구도 달게 한 그릇씩 비웠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는 독특한 맛이었다. 그리고, 덧없이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40대 중반에 삶의 터전을 경북 포항으로 옮겼다. ‘물회’로 유명한 도시다. 바닷가는 물론, 시내에도 물회를 주된 메뉴로 파는 식당이 흔전만전이다. 당연지사 거기서 살게 된다면 누구나 자주 물회를 먹게 된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는 포항의 물회 음식점들. 각각의 식당마다 조금씩 다른 레시피를 가졌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양념장을 만들 때 고추장, 식초, 설탕을 섞는 비율과 철마다 달라지는 생선의 종류, 횟감에 붓는 물을 만드는 방식 등. 10년쯤 살다보니 다수의 관광객들은 자극적인 ‘단맛’이 강한 물회를 선호하고, 나이 지긋한 바닷가 어르신들은 과일즙이나 청량음료를 섞지 않은 전통 방식 고추장으로 양념해 맹물을 부은 물회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두어 해 전이다. 구룡포에서 반세기 이상 뱃일을 해온 건장한 노인을 만났다. 취재를 핑계 삼아 지척에서 물결 일렁이는 포구 목로에 술병을 놓고 마주 앉았다. 그날 안주가 우연찮게도 물회였다. 서너 잔 낮술에 취한 늙은 어부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흑백 테레비를 보던 시절부터 배를 탄 사람 아입니꺼. 지금이야 이렇게 멀끔한 식당에서 물회를 먹지만 옛날에야 그랬겠습니까. 뱃일이 생각보다 무지하게 힘들어예. 새벽부터 바다 나가서 그물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다 보믄 제대로 밥 챙겨 묵을 시간이 없지예. 그저 잡아 올린 가자미, 볼락, 청어 같은 걸 손에 잡히는 대로 뼈째 칼로 썰어서 물 붓고, 찬밥 한 숟가락 말아 훌훌 마시듯 1~2분 만에 한 끼 때웠다 아입니꺼. 힘든 시절이었지예. 그때 생각하믄 세상 참 좋아졌다 아입니까.” 말을 마친 어르신이 젊은 시절 추억에 잠긴 듯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서야 제대로 알았다. 물회는 지난날 바닷가 뱃사람들의 고단한 노동과 힘겨운 일상이 만들어낸 음식이란 걸. 물회에 얽힌 ‘20세기 뱃사람들의 역사’를 말해준 그를 만난 이후부터다. 포항 죽도시장 식당 테이블에 오른 양념장 얹힌 가자미회나 청어회를 보면 물을 붓기 전 먼저 마음속으로 고마움과 바람부터 전한다. “세상의 모든 생선을 우리의 식탁에 올려주는 어부들의 고된 삶에도 행복과 웃음이 깃들기를. 그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기를.” ▲‘안동국수’냐? ‘안동국시’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확히 기억한다. 2019년 여름이다. 지금은 어울리지 않게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인 음식평론가 황광해(1957~2024) 선생과 안동역 인근 허름한 국숫집에 들었다. 점심은 먹었고, 저녁 먹기엔 이른 어중간한 시간. 뭘 모르는 내가 괜한 폼을 잡았다. “요즘은 어딜 가나 제대로 된 국수 맛을 보기 힘들어요. 밀가루 냄새가 풀풀 나서요. 그렇지 않나요?” 마주 앉았던 황 선생이 가소로운 듯 씨익 웃더니 짤막하게 한마디 했다. “밀가루로 만들었는데 밀가루 냄새가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냐?” 그날 우리가 먹은 걸 ‘안동국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좀 더 지역색을 드러내며 고풍스럽게 ‘안동국시’라 불러야 될까. 무어라 칭하든 그날 내가 맛본 건 ‘생애 최고의 국수’라 해도 과장이 아닐 듯하다. 영남 북부는 이른바 ‘반가(班家)’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곳이다. 종택(宗宅)이라 불리는 멋들어진 기와집이 적지 않고, 거기엔 아직도 조선시대 유교적 전통을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섬기는 종손과 종부가 살고 있다. 안동 김씨, 의성 김씨. 진성 이씨, 풍산 류씨…. 16~18세기 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던 집안의 후손들이 각자 가문의 자긍심을 지키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 가문들의 종택을 찾아가 나이 지긋한 종손, 범절 깍듯한 종부와 만나는 기회를 몇 번 가질 수 있었다. 취재를 업으로 하는 기자가 누릴 수 있는 기쁨 가운데 하나였다. 먼지 한 톨 없이 걸레질 된 반질반질한 대청마루에 앉아 그해 여든셋이 됐다는 종부가 가져다준 안동식혜를 받아들었다. 식혜에 고춧가루가 보이다니…. 영남 남부에선 보지 못한 스타일이다. 그러면 또 어때. 한 모금 마시니 땡볕에 달아오른 이마부터 시원하게 식는다. “손님이 오셨는데 아무 것도 드릴 게 없어 송구하다”는 단아하게 나이 든 종부의 겸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려는 듯 쪽진 머리의 팔순 넘긴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비취색 고운 비녀가 햇살에 반짝였다. “처음 시집와선 힘들었니뎌. 열여덟에 아무 것도 모르고 남편 하나 보고 여기로 왔으니까예. 사내들이 은어 잡아오믄 끓여서 국물 만들고, 밀가루에 콩가루 쪼매이 섞어 국수 반죽 밀어 철마다, 때마다 오시는 수십 명 손님상을 차려내야 했다아입니껴. 아마 젊은 양반은 모를낍니더. 우리 동네에선 제사 때도 국수를 쓴다 아입니껴.” 시간을 투자해 ‘안동국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찾아본 건 그 종부 할머니 때문이었을 것이다.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도 뒤졌다. 실제로 ‘안동국수’라 불리는 음식은 과거 영남 북부의 양반들이 먹던 별식이었다. 은어로 국물을 냈다는 것도 고문헌에 남아 있는 사실이다. 은어는 ‘수중군자(水中君子)’로 불리는 물고기. 조선 시대엔 왕에게 진상하던 생선이었다. 한양으로 은어를 특급배송(?)하는 하위직 벼슬아치가 있었을 정도. 은어 배송이 실패하면 치도곤을 맞았다는 기록도 전한다. 그 귀한 물고기를 사용해 국물을 내고, 옛날엔 지금처럼 흔치 않았던 밀가루로 면을 만들었으니 수백 년 전 국수는 지금과는 그 위상 자체가 판이했을 터. 그해 여름. 취재를 함께 간 황광해 선생을 채근해 ‘제대로 된 안동국수’를 만드는 식당에 찾아갔던 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예전처럼 은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국물은 투명하며 깔끔했고, 면발은 더없이 매끄러웠다. 별다른 고명을 얹지 않았음에도 특별하지 않은 국수가 내는 ‘특별한 맛’에 매료됐다고 해야 할까?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게 분명하다. ‘국수’라고 이름 한 걸 만나는 끼니때면 언제나 여든셋 키 작은 안동 종부와 수중군자 은어를 먼저 떠올리는 건.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10

늦둥이 어린 자식 데리고 오백 년 긴 세월 주민과 동고동락

경북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번지, 넓은 들판 가운데 황목근(黃木根)이라는 노인이 늦둥이 어린 자식을 데리고 오백 년이라는 긴 세월을 주민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이름 황목근, 나이 500살, 키 15m, 몸 둘레 3.2m라는 거인의 노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1998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 제400호로 지정되어 국가 보호를 받는 팽나무 노거수이다. 주민들은 그보다 먼저 ‘황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민등록증까지 발급해 주어, 명실상부하게 재산을 보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도 아닌 나무가 이름을 가지고 재산을 소유하며 세금까지 내는 일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특별한 사례이다. 500살·키 15m·몸 둘레 3.2m 팽나무 1998년 12월 2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 주민들 이름 붙이고 주민증까지 발급 ‘황만수’라는 27년된 자식도 하나 있어 정월대보름 당제·백중 잔치 화합 도모 나무이면서 사람이며 신적인 존재로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공존 금남리 넓은 들은 마을 주민은 물론, 인근 마을까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는 식량 창고이자 삶의 터전이다. 이 들판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황목근 노인은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함께 기원했을 것이다. 들판의 푸른 물결이 황금빛으로 출렁일 때, 주민들과 함께 웃음을 짓지 않았을까.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마을의 중대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마을 행사 중심에는 늘 황목근 노인이 있었다. 주민들은 이 팽나무를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에서 ‘목근(木根)’이라 부르고, 봄마다 노랗게 피는 꽃에서 ‘황씨’라는 성을 붙였다고 한다. 넓고 깊게 뻗어나가는 뿌리처럼 마을이 번창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에겐 자식도 하나 있다. 1998년 봄, 팽나무 앞에 세워진 마을 제단 주변 석축 사이에서 싹이 터 자란 어린 팽나무를, 2002년 봄에 주민들이 이름을 공모해 ‘황만수(黃萬樹)’라 지었다.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이다. 어미 품에서 떼어내 지금의 자리에 옮겨 심었고, 이제는 한창 흙 맛을 본 27세가 되었다. 500살 어미를 바라보는 감회는 어떨까.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일 것이다. 대부분 팽나무 노거수는 잠재 자연식생 정보를 포함하는 자연적 기원에 잔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인공적으로 식재된 것으로부터 기원하는 문화적 기원은 드문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황목근 팽나무는 인공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보인다. 들판 한가운데, 누가, 왜 이 팽나무를 심었을까? 팽나무는 본래 바닷가 포구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포구나무’라 불린다. 내륙 깊숙한 이곳 들판에 심어진 이유는 농경지 한가운데,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잎이 무성한 팽나무가 농부들에게 더없이 좋은 쉼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성한 가지, 병충해에 강한 체질, 넓게 뻗은 뿌리. 팽나무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누군가 함부로 훼손하지 못하도록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나무로 모셨고, 이는 조상의 자연관과 나무 사랑을 잘 보여준다. 20여 년 전, 황목근 팽나무 노거수를 처음 마주했을 때 ‘황목근 보존회’의 엄영우 씨로부터 나무의 유래와 삶의 이야기를 들었다. “황목근 팽나무는 약 12,232㎡(3,700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재산을 보유한 나무 중에서도 가장 많습니다. 1939년에는 이름과 함께 등기이전까지 했고요.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에는 행정자치부로부터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특별 등기 번호(3750-00735)를 부여받아 1995년 4월 29일 등기할 수 있었습니다. 2001년 12월 29일에는 마을회관 부지 690㎡를 황목근 팽나무 명의로 등기이전했고, 주민 권오인 씨와 권대윤 씨가 자신의 땅 239평을 희사하기도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황목근계’를 조직해 이 토지를 경작하고 연간 약 여섯 가마니의 쌀을 수확합니다. 이 수익으로 마을 제사와 백중 잔치 비용을 충당하며, 남은 돈은 장학금으로 사용합니다.” 미담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황목근 팽나무는 ‘담세목(擔稅木)’으로도 불리며, 세금을 성실히 내는 ‘모범 납세목(納稅木)’으로 유명하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 자정에 당제를 올리고, 백중날에는 나무 아래에서 잔치를 벌이며 마을의 화합을 도모한다. 이처럼 나무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주민의 삶과 문화, 민속 신앙이 깃든 존재로,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한 그루의 나무는 나무이면서 사람이며 또한 신적인 존재로 주민들의 삶에 깊숙이 스며들어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공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노거수의 과잉보호는 오히려 건강을 해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건강했던 황목근은, 주민들이 옹벽을 쌓고 주차장을 만들면서 토지 환경이 바뀌자 급속히 쇠약해졌다. 이는 나무의 뿌리가 다칠 수 있고 또 뿌리가 뻗어나가는 데 방해가 되어 자람에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일 수 있다. 지난 환경에 오랫동안 최적화되어 있는 나무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특히 노거수의 경우에는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주민들과 방문객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황목근 팽나무 노거수는 치명적인 결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현상이 오늘날 뚜렷이 나타났다. 현재 황목근 노인은 많이 아프다. 나뭇잎은 지고, 앙상한 몸에는 상처가 선명하다. 팽나무의 임계 수령은 보통 300년이라는데, 이 나무는 200년을 더 산 셈이다. 속은 썩어 비어 있고, 쓰러지지 않게 굵은 철심을 박아 지탱한다. 주민들이 선물한 10개의 지팡이에 의지하고, 가지는 서로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주차장, 피뢰침, 돌탑, 제단, 방책까지 만들어졌다. 이는 나무 주변의 환경 변화를 초래하여 주민과 방문객들에게는 편리하여 필요할지 모르지만, 나무에는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일 지도 모른다. 또한 황목근과 황만수 팽나무 주변에 은행나무, 이팝나무 등 자람이 빠른 다른 나무들을 심어 놓아 자칫 황목근과 후계목 황만수를 가릴 수 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겨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의 시 ‘황목근 앞에서’ 예천 용궁면 금남리 들판 한가운데, 이름을 가진 나무 한 그루 서 있다. 오백 년을 견디며 마을과 함께 웃고, 울고, 살아온 생명. 속은 비었어도 지팡이 열 개에 몸을 싣고, 어깨를 맞대어 하늘 끝을 우러른다. 그 빈 속을 지나간 바람마다 이야기 한 자락씩 스며들고, 그늘 아래선 사람들이 모여 전설을 다시 짓는다. 그 곁엔 대를 잇는 황만수 팽나무 한 그루. 묵은 그늘 아래 빛을 배우고, 바람 속에서 나이테를 키우며 말없이 뿌리를 내린다. 잎은 여리고 가지는 가늘지만 세월의 숨결을 기억하며 조용히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작은 잎으로 노래한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6-04

‘제국의 진열장에서 민중의 저항으로’ 경주박물관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경주고적보존회 금관총 유물진열관_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은 신라의 빛이 제국의 손에 들려 타오르던 공간이었다. 경주의 유산은 일제의 유리장 안에서 빛났고, 그만큼 어둠도 짙게 드리워졌다. ■햇무리 진 박물관 뜰 햇살이 뜨겁게 떨어진다. 박물관 정문은 숨조차 땡볕에 잠긴다. 사람들은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친다. 박물관 뜰 오른편엔 성덕대왕신종이 우람하게 서 있다. 청동빛은 햇살 아래서 더욱 단단해진다. 종은 더 이상 울리지 않지만, 보는 이의 가슴 한가운데를 두드린다. 경주엔 오늘 햇무리가 생겼다. 태양을 감싸고 도는 무지갯빛 고리가 신비스럽다. 사람들은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천체의 이변을 구경한다. 예로부터 하늘은 인간 세상을 관장하는 신의 영역이라 여겨졌다. 하늘 위에 펼쳐진 모든 천문 현상은 신들의 말이었고, 해는 그중에서도 왕의 징표이며, 하늘에 생겨난 빛의 환(環)은 하늘이 보내는 신호로 여겨졌다. 경주 하늘에 떠오른 햇무리를 보며 신라인의 믿음이 잠시 되살아난다. 인간이 작아지고, 신라가 다시 머리를 드는 순간이다. 박물관 뜰은 폐허를 딛고 온 절터 같다. 누가 따로 배치하지 않은 듯, 탑과 석불과 석등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언덕엔 탑이, 뜰엔 유물이 서로 제빛을 낸다. 귀부는 등을 돌린 채 말이 없고, 봉로대 위 연꽃 문양은 향로를 기다리는 듯 허공을 응시한다. 어쩌면 태초에 돌덩이였던 것들이 천 년을 품은 살아있는 영혼 같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오히려 스스로의 침묵이 깊어진다. 바람조차 걸림 없이 자연스레 스쳐 가는 걸 보면, 이 풍경이 깨나 오래 여기 있었던 것만 같다. 1913년 조선 총독 데라우치 의해 수탈 공간 경주고적보존회 시작 경주부 관아 ‘내아’ 건물에 진열관 이차돈 순교비·석조 반가사유상 사찰 문화 유산·고미술품 등 전시 1921년엔 황금빛 ‘금관’ 처음 발견 “유물이 사라진다” 소문 떠돌더니 도쿄국립박물관 컬렉션의 목록에 분노한 경주 시민 “천고의 귀중품 천년의 땅에 있어야” 저항의 함성 서라벌전역 뒤흔들어 관람객들은 각자의 시선대로 문화유산을 바라본다. 누구는 돌 앞에 손을 모으고, 누구는 눈을 감는다. 아이는 종각 주변을 뛰어다니고, 노부부는 석불이나 석등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국의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조차 뭣하나 대충 보지 않는다. 언어는 흩어지지만 시선은 신라에 머무른다. 그러고 보면 시선은 고요한 서사를 껴안는 마음이다. 신라역사관은 자체로 하나의 서사다. 끝없이 푸른 하늘 아래, 지붕은 좌우로 길게 뻗어 유연한 곡선을 자랑한다. 바람이 불듯 자연스럽고 유려하다. 마치 이 땅의 능선이 박물관 지붕 위로 이어진 듯하다. 처마는 그늘을 드리우고, 햇빛은 천천히 지붕 위로 떨어진다. 나무와 돌, 유리와 그림자가 함부로 다투지 않는다. 모든 건축과 문화유산이 오래된 미감으로 제자리를 찾아 서 있는 것만 같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거대한 박물관은 찬란한 유물들로 가득하지만, 어느 한때,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 함께 놓여 있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긴 침묵의 시간을 살던 땅을 들추고 식민 권력의 박물관이 세워졌다. 그러나 오늘의 박물관은 어두운 시간을 딛고 다시 세워진 우리의 거룩한 표상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존’이라는 이름의 그늘, 일제강점기 경주의 침묵과 시선 1913년의 봄, 경주의 골목엔 바람결마저 낯설었다. 흙먼지가 이는 길을 따라 총독의 전용차가 석굴암을 향해 굽은 길을 올랐다.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1852~1919), 조선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던 인물이 경주에 닿은 것이다. 그는 석탑과 불상의 균형을 바라보며 말을 아꼈고, 일본 관리는 수첩을 펴놓고 수시로 눈을 맞추며 그의 언어를 읽고 기록했다. 세밀한 시선이 고적을 더듬었다. 신라 천 년의 숨결 위에 새로 깃드는 통치의 질서가 그려지고 있었다. 경주고적보존회는 그렇게 태어났다. 신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던 터에 일본은 ‘보존’이라는 명패를 내걸었다. 속내는 과거를 지키려는 의지보다 과거를 해석하려는 야망이 더 컸다. 경주에 터를 잡은 일본인들과 행정 관리들은 ‘보존’을 이야기하며 권리를 확보해 나갔고, 경주는 점차 하나의 ‘박물관’으로 변해갔다. ■경주고적보존회, 빛을 가둔 진열관 경주고적보존회는 조선 왕조 행정의 흔적인 경주부 관아 내아(內衙) 건물을 택해 진열관을 열었다. 현재 동부동에 있는 경주문화원 자리다. 1915년에는 조선시대 부사청과 양무당을 이축해 전시 공간을 넓혔다. 조선 총독 데라우치의 휘호 ‘온고각(溫古閣)’ 현판도 내걸었다. 논어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에서 따온 ‘옛것을 익혀 새로움을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제의 새로움은 일본 제국의 권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단순한 유물 전시관이 아니라 과거의 권위를 대놓고 수탈하려는 공간이었다. 그들의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를 수집하는 장소가 아니었다. 식민 권력으로 역사마저 노골적으로 소유하려는 시도였다. 경주는 더 이상 우리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침묵하는 과거와 웅변하는 제국이 동시에 일어서는 도시가 되어 갔다. 경주고적보존회 진열관은 역설의 공간이었다. 신라의 빛이 제국의 손에 들려 타오르던 공간이었다. 민족의 정수가 낯선 말로 해설되던 시절, 진열장은 과거를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미래를 빼앗는 창이었다. 경주의 유산은 일제의 유리장 안에서 빛났고, 그만큼 어둠도 짙게 드리워졌다. 낡은 기와 아래에 전시된 것은 단지 토기나 금관이 아니었다. 해체된 조선의 얼과 넋, 그리고 그들대로 함부로 해석된 조선의 정체성이었다. 유물은 일본말로 쓰인 설명문 아래 유리장 너머에 놓였고, 관람의 시선은 권력과 맞닿았다. 경주의 사찰과 능지에서 가져온 문화유산과 개인이 기증한 고미술품들이 전시되었다. 백률사에서 옮겨온 이차돈 순교비와 송화산에서 출토된 석조 반가사유상 등이 대표적이었다. 경주의 혼이 깃든 유물들은 유리 진열장 안에서 차갑게 식어갔다. 사람들은 감탄했지만, 감탄 너머에는 약탈된 자산의 통증이 도사리고 있던 셈이었다. 1916년, 경주 읍성 남문 밖 봉황대 옆에 있던 성덕대왕신종이 종각과 함께 진열관으로 옮겨졌다. 종각은 아직도 남아 있다. 종은 신라의 아침을 울리던 음색을 잃고, 관람객을 맞는 하나의 구경거리로만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신라의 빛, 금관의 출현 1921년, 하나의 관(冠)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금관총에서 찬란한 황금빛 유물과 함께 금관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이다. 경주고적보존회는 새로운 전시관, ‘금관고(金冠庫)’를 지었다. 경주 시민들의 기부로 세워진 금관고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찬탈된 유산을 간직한 보루가 되었다. 그러나 금관고는 일본의 문화 침탈을 은폐하는 가면이기도 했다. 금관고는 경주의 명소가 되었다. 반짝이는 황금 유물들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퍼졌다. 많은 관람객이 경주를 찾았다. 금관은 권력의 상징이었고, 권력은 제국주의의 빛으로 조명되어 갔다. 진열장의 조명이 밝아질수록 민족의 기억은 그림자 속에 묻혔다. ■문화유산을 향한 경주 사람들의 분노와 사수 1921년 9월, 금관이 처음으로 발굴된 이후 10월 14일과 15일, 일반인에게 임시 공개되었다. 4천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유물보다 사람들의 눈빛이 더 뜨거웠다. 이후 경주 골목마다 소문이 흘렀다. 유물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과 신라의 왕관을 경성으로 가져간다고 했다. 경주 민심은 흔들렸고, 거리엔 융숭한 기운이 감돌았다. 어떻게 사라졌는가. 누가 가져갔는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것들은 도쿄국립박물관 오쿠라 컬렉션의 목록에 실렸다. 분노는 커졌다. 유물의 실종은 기폭제가 되었고, 금관을 경성으로 가져간다는 소문은 불씨가 되었다. 경주의 민심이 불붙기 시작했다.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시대와 민족을 지키려는 저항이었다. 경주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두고 볼 수 없었다. ‘왕의 무덤을 왜 파헤치냐’, ‘우리 조상의 금관을 왜 가져가느냐’는 항의가 이어졌다. 장터에서, 학당에서, 사찰 마당에서도 말들이 이어졌다. 시민대회가 열렸다. 장정과 노인, 유생과 상인들이 하나로 모였다. ‘천고의 귀중품은 천년의 땅에 있어야 한다’는 구호가 종처럼 울렸다. 한마음 한뜻으로 모인 군중의 함성은 서라벌 전역을 뒤흔들었다. 이는 단지 유물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체성의 사수였다. 경주 사람들은 단호했다. 전보를 쳤고, 진정서를 보냈다. 청원서를 손에 들고 대표자 열 명이 경성으로 향했다. 그들의 행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침묵으로 꾹 눌러 담은 조상의 분노와 무너진 자존의 무게가 함께 실려 있었다. * 시민 모금으로 만들어진 ‘금관고’와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국립박물관’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다음 주 경주박물관 <중> 편에 펼쳐집니다.

2025-06-04

달리는 지하철에 불지른 60대… 대형 참사 막은 기적

지난주와 이번 주는 때가 때이니만치 대부분의 이슈를 대통령선거가 집어삼켰다. 신문은 물론, TV와 인터넷에서도 대선 관련 소식과 화제가 여타의 다른 뉴스를 압도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무시할 수 없는 사건과 사고도 없지 않았다. 가장 크게 네티즌들의 주목을 끈 뉴스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방화였다. 자신의 이혼 소송 결과에 실망한 60대 남성이 달리는 지하철에 불을 질렀고, 자칫하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와 또 다른 서울 지하철 방화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방화 혐의자가 보인 인면수심(人面獸心)의 태도도 네티즌들의 비난을 불렀다. 그는 결국 공용건조물 방화 등의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21대 대선을 목전에 둔 시점에 인기 걸그룹 멤버인 카리나가 특정 후보를 떠올릴 수 있는 숫자와 색깔이 프린팅 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 것도 네티즌들의 설왕설래를 야기했다. 이는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게 옳은가, 그른가’라는 논쟁까지 불렀다. 중국의 한 대학이 구내식당 관리자를 구하면서 박사 학위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외신에 보도되며 한국 네티즌들까지 관심의 촉수를 곤두세웠다.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 이를 반영하듯 많은 이들이 그 대학에 비난의 화살을 날렸다. 대학 측은 해명을 내놓았으나 네티즌의 조롱과 비판은 그치지 않았다. 21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한 시기 인터넷에서 화제와 논란을 부른 사건들을 아래에서 간략하게 정리한다. ▲ 이혼 결과에 불만 품은 60대 남성 ‘위험천만’ 지하철 방화 무언가 억울해서 그걸 분풀이하거나 세상에 알리려고 어떤 행위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불특정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자신의 이혼 소송 과정과 결과에 불만을 품은 60대 남성이 다중이 이용하는 지하철에 불을 질렀다. 명백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이 난 지하철에 탑승했던 승객이 “당신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항의하자 대뜸 “안 죽었잖아”라고 대꾸했다니, 이건 인면수심 아닌가. 지난달 31일 60대 원모씨는 오전 8시 43분경 서울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를 달리던 지하철 안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방화범 원씨를 경찰이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손에 많은 양의 그을음이 묻어 있는 걸 의심의 눈길로 유심히 관찰했기에 가능했다. 경찰에 잡힌 원씨는 방화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열차가 여의나루역을 출발한 직후 유리병에 담긴 2~3리터 가량의 휘발유를 옷가지에 뿌리고 가스 점화기로 불을 붙인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에 의하면 그는 유서를 준비하지 않았고, 그을음 묻은 손 외에는 본인의 피해가 크지 않기에 극단적 선택을 하려던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의 악몽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잊히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또 일어나다니...”라고 놀라며 “다수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린 방화범에겐 동정이나 용서가 필요 없다”는 말로 일벌백계를 요구했다. 반면,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예기치 못한 방화에 침착하게 대응한 지하철 관계자와 승객들에겐 칭찬과 위로의 의견을 전했다. 원씨의 방화로 모두 23명이 부상을 입었고, 129명은 현장에서 응급 처치를 받았다. 재산 피해도 컸다. 지하철 1량이 소실됐고, 2량엔 그을음 피해가 생겼다. 피해액은 3억3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서울교통공사는 향후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예고했다. 방화범 원씨를 조사한 경찰은 CCTV와 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현주건조물 방화, 공용건조물 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이영광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일 원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후 “도주와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연예인은 정치적 지향 드러내면 안 되나?...네티즌 설전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대중 파급력이 엄청난 아이돌이 대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어떡하나?” “자기가 좋아하는 옷 입고 사진 찍어 SNS에 올린 게 무슨 죄인가? 하여간, 한국 사람들은 별스러워.” 21대 대통령선거를 얼마 앞둔 시기. 걸그룹 에스파의 카리나가 붉은색과 2라는 숫자가 프린팅 된 점퍼를 입고 찍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가 수많은 비난과 욕설에 시달렸다. ‘붉은색’과 ‘2’가 특정 후보 지지를 의미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촉발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시 6월 3일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극성 지지자들은 몹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진 유명 가수가 특정 정당의 상징 색과 기호가 선명한 옷을 입고 등장했으니 인터넷 공간이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카리나의 소속사가 “일상의 모습을 SNS에 게시한 것으로, 다른 목적이나 의도는 없었다. 해당 게시물은 즉각 삭제했다”고 재빨리 진화에 나섰으나, 논란은 꽤 오래 지속됐다. 카리나를 비판하는 이들은 “왜 특정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암묵적 메시지를 던진 것인가”를 물었지만, “아무 의미 없이 올린 사진 한 장을 두고 이렇게 질타하는 건 온당치 않다”며 카리나를 두둔하는 네티즌도 적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드러내 욕을 듣거나, 박수를 받는 연예인은 카리나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 가수와 배우 등이 선거 때 특정 정당의 상징색과 번호를 떠올릴 수 있는 옷을 입었다고 반대자들에게 곤욕을 치르거나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은 바 있다. 이와 관련 “연예인은 아이가 아니다. 멀쩡한 성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를 밝히는 게 왜 나쁜가? 유럽과 미국에선 일상적인 행동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지탄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한 네티즌의 의견이 눈에 띄었다. 그게 진보건, 보수건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 성향을 표시하는 문제는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도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구내식당 관리자에게 박사 학위 요구한 대학...이유는? “학생들 먹는 요리 만드는데 박사 학위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네. 대체 무슨 학위를 따오라는 이야기인지?” 다소 황당해 보이는 구인광고 하나가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의 한 대학이 구내식당을 관리할 사람을 모집하면서 ‘박사학위 필수’라는 조건을 내세운 것이다. 지난 2일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중국의 지방 명문대학인 난징에 위치한 동남대학교가 지난달 하순 구내식당 매니저를 구한다는 채용 공고를 내면서 조건의 하나로 박사 학위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고학력에 좋은 스펙을 가지고도 직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이 한국이나 중국이나 적지 않은 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상황을 반영하듯 중국 네티즌은 “대체 언제부터 구내식당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박사 학위가 필요했었나”라는 비난을 쏟아냈고, 소식을 접한 한국 네티즌들 또한 “구내식당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왜 요리 자격증이 아닌 박사 학위를 요구하냐”고 의아해했다. 동남대학 측은 “음식 개발과 준비는 물론 계약자 관리와 식품 안전 감독, 행정 서류 처리 등의 업무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박사 학위 요구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은 “이해가 어려운 처사” “박사 학위 가지고 거길 왜 가냐”는 등의 비판 의견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6-03

‘세계유산 등재’ ‘대가야 고도 지정’ 발판, 역사·문화도시 도약

강력한 국력과 빼어난 문화예술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대왕국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다시금 조명하고, 이를 관광 활성화를 위한 역사문화자원으로 복원하려는 고령군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23년 지산동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2025년 대가야 고도 지정 등 그간의 노력이 결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이런 기회를 발판으로 고령군은 대가야의 정체성 확립사업과 대가야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을 더불어 추진 중이다. 2024년 ‘大王’ 명문토기 발견, ‘고대 국가급’ 정치적 위상 확인 대가야 역사 복원·저변 확대 위해 ‘국립대가야박물관’ 건립 추진 국가유산 야행·토크 콘서트·고분 탐방 등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올 하반기 토기가마유적·지산리 석실묘 조사 등 추가 발굴도 계획 ▲지산동 고분군의 가치 알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고령군은 이미 대가야의 대표유산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자 2011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이 노력은 12년만인 2023년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로 가시화됐다. 지산동 고분군은 1500년 전 고대국가 대가야의 실체를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고령은 등재 이후 세계유산도시 고령을 조성하기 위한 74개 사업을 발굴·계획했고, 현재는 대부분의 사업을 완료했다. 그 결과 지산동 고분군의 방문객은 세계유산 등재 이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했고, 이에 더해 고령군도 활력을 얻었다. 2024년 3월엔 대가야궁성지 북벽 일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대왕(大王)으로 추정되는 글자가 인장(印章)으로 찍혀있는 토기가 출토됐다. 역사 전문가들은 대왕명토기의 출토가 대왕(大王)을 표방했던 대가야왕의 권위의식과 정치적 지위를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했다. 고령 지산동 5호분은 ‘금림왕릉’으로 불리며, 대가야권 최대 고분으로 알려져 있다. 피장자 역시 대가야 최전성기 대가야의 왕일 것으로 추정된다. 5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발굴·조사됐는데, 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고분의 내용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많이 없다. 이에 고령군은 사적 지정 60주년이자 세계유산 등재 1주년을 맞아 재발굴조사를 기획했고 2024년 사업에 착수했다. 현재는 복원된 봉토부를 조사 중에 있고, 내부조사는 2026년에 시작된다. 이번 재발굴조사는 일제가 파헤쳐놓은 우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재조사함으로써, 대가야 고분문화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 본관리 고분군은 두 차례의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대가야 왕도 내 지산동 고분군에 이은 차상위(次上位) 계층의 무덤군으로 밝혀졌다. 이에 2025년 4월 17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향후 본관리 고분군에 대한 추가 발굴조사와 학술연구를 통해 고분군의 성격을 규명하고, 축조집단의 실체복원도 이뤄질 전망이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현재 보물로서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암각화 중 하나다. 장기리 암각화는 규모와 보존상태가 잘 남아있어 한반도 암각화 유적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등 학술적 가치가 높다. 1976년 8월 보물에 지정된 이래 고령군은 이를 국보로 승격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은 국보 승격 신청 후 국가유산청의 승격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대가야 역사를 복원하고, 저변 확대 위한 사업도 추진 고령군은 대가야사 복원사업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토기생산유적의 연차 발굴조사도 기획했다. 대가야권역 최대의 토기생산유적으로 확인된 고령 합가리 토기가마유적을 2024년과 2025년에 걸쳐 두 차례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그 결과 대가야 토기가마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외에도 2025년 하반기에는 고령 외리 토기가마유적과 지산리 석실묘에 대한 발굴조사도 예정돼 있다. 또 고령 사전리 도요지의 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시대 문헌인 ‘경상도 속찬지리지’에 기록된 하며리 자기소의 실체와 1600년대 초 풍수지리와 관련해 축조된 조산을 확인하는 등 학술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령군은 대가야의 왕도로 520년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고장이다. 국가유산청은 2025년 7월 고령군을 대가야 고도로 지정 의결했다. 고도(古都)는 2004년 ‘고도 보존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경주, 공주, 부여, 익산 4개의 역사문화도시가 지정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가야 고도 지정은 20년 만에 이뤄진 신규 고도 지정이자, 가야권 유일의 성과다. 고령군은 고도 지정에 따른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대표 역사문화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변화의 기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가칭 국립대가야박물관의 건립은 가야의 큰 축인 대가야문화의 항구적 향유공간 부재를 해결하고, 지역 균형발전과 지방문화 창달을 위한 과제다. 가야문화는 영호남에 걸친 넓은 범위에서 확인되며, 특히 대가야문화는 경북, 경남, 전북, 전남 등 넓은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 온전한 대가야 역사문화유산의 대국민적 가치 향유를 위해서는 국립대가야박물관의 건립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발맞춰 고령군은 적극적 발굴조사를 통해 대가야 연구복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고령군은 향후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중앙박물관 등 중앙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대가야문화를 중심으로 한 가야문화권의 새로운 국립박물관을 건립하고자 한다. 고령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 건립은 가야고분군 가치 설명을 위한 거점공간을 조성하고, 미디어 및 실감콘텐츠 전시관을 건립해 방문객들에게 다채로운 가야문화 향유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지산동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와 대가야 고도 지정을 통해 대가야 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고령 세계유산 탐방거점센터가 그 중심공간으로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가야 역사문화권 정비사업은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시행되는 사업이다. 대상유산은 고령지역 최대 규모의 토기생산유적인 합가리 토기가마다. 대상유산과 인접한 곳에 ‘점필재 종택’이 자리했는데, 김종직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이 고택마을은 전통가옥 등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이 분포해 있다. 이에 정비권역명을 대가야 생산권역으로 설정하고 합가리 토기가마 정비, 토기생산 체험관 조성, 한옥스테이, 청년정착 프로그램 실행, 마을주민공동체 형성을 통한 지역 활성화를 추진 중이다. ▲이남철 고령군수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유산도시로 성장시킬 것” 과거 대가야의 왕도였던 고령군엔 이와 관련된 다양한 유산들이 산재했다. 그 중심에 대가야궁성지가 있다. 조선시대 기록과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대가야궁성지에 대한 흔적을 확인했다. 와중에 2024년 3월 대가야 북성벽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로 토성의 성벽흔적을 확인했고, 성을 보호하는 시설인 해자도 조사됐다. 이는 대가야궁성지에 대한 논란을 종결짓는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고령군은 향후 역사문화유산의 발굴조사와 연구, 정비 외에도 다양한 활용사업을 추진한다. 2024년 9월엔 ‘2024 세계유산축전 가야고분군’을 개최했고, 2025년 9월에는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인 ‘2025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외에도 매년 가을 국가유산야행, 대가야사 토크콘서트, 지산동 고분군 탐방프로그램, 어린이해설사 양성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용사업으로 고령군민과 고령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가야문화 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고령군은 향후 역사문화유산의 발굴조사와 연구, 정비 외에도 다양한 활용사업을 추진한다. 2024년 9월엔 ‘2024 세계유산축전 가야고분군’을 개최했고, 2025년 9월에는 국가유산청 공모사업인 ‘2025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외에도 매년 가을 국가유산야행, 대가야사 토크콘서트, 지산동 고분군 탐방프로그램, 어린이해설사 양성프로그램 등 다양한 활용사업으로 고령군민과 고령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가야문화 향유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위에 언급된 각종 사업과 관련해 이남철 고령군수는 “앞으로도 대가야 고령의 역사문화자산을 적극적으로 발굴·조사·연구·정비하고 역사문화적 가치를 확산해 군민들의 자긍심과 전국적 인지도를 높이겠다”며 “고령군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세계유산도시이자 역사문화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약속했다. /전병휴 기자

2025-05-29

스승의 정신을 세운 옥산서원

조선학자 회재 이언적 서거 스무해 뒤 경주부윤 이재민이 유림 뜻 모아 창건 2년 뒤 1574년 선조로부터 사액 받아 영남 유학의 정수 고수란히 간직한 채 흥선대원군 사원 철폐령에도 남겨져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회화나무 그늘 길 옥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마치 나무들이 지켜주는 오랜 골목 같다. 회화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굴참나무, 이팝나무···. 이름만 불러도 그늘이 젖어든다. 가지는 하늘을 덮고, 뿌리는 땅을 움켜쥐었다. 특히 회화나무는 하나같이 백 년을 훌쩍 넘긴 듯 기품을 지녔다. 회화나무는 중국에서는 출세의 상징이고, 서양에서는 학자의 나무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길상목, 행운목으로 불린다. 예로부터 양반가에서만 심을 수 있던 귀한 나무였다. 집안에 학자가 나고 부자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궁궐이나 고택, 서원의 뜰에 이 나무가 자리를 잡았고, 나무는 집의 품격이 되었다. 또한 회화나무는 마을의 수호목이기도 했다. 잡귀를 막고 복을 부르기 위해 마을 어귀에 정자나무로 심었다. 옥산서원의 회화나무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길을 걷는 일이 아니다. 학문의 기운과 삶의 지혜를 함께 지나가는 일이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걷던 유생들, 글을 배우러 모였던 발걸음들이 아직 나무 아래에 남아 있는 듯하다. ■정신의 집 옥산서원 옥산서원에 이르렀을 때, 역락문(亦樂門)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른 아침, 닫힌 문 너머로 속세와 단절된 듯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자계천 세심당에서 한참 놀고, 독락당을 사색한 후 다시 왔을 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햇살이 문 위 편액을 부드럽게 비췄다. 독락당과 양동마을은 2010년(한국의 역사마을)에, 옥산서원은 2019년(한국의 서원)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은 조선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李彦迪·1491~1553)을 기리는 정신의 집이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스무 해, 선비들이 뜻을 모아 기둥을 세웠다.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이 유림과 뜻을 모아 창건한 옥산서원은 단지 제향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평생 닦은 학문의 격을 다시 세우는 일이었고, 그를 스승으로 섬기려는 이들의 간절함이었다. 사액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이 년 뒤였다. 선조 임금이 옥산서원에 이름을 내려줌으로써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후학들이 스스로 터를 닦고 예를 세워 스승을 모셨다. 회재는 사후에 그런 존경의 이름이 되었다. 부드러운 학문이 아니라 엄격한 수양, 권력의 의지가 아니라 물러남의 품격으로 자신이 걷던 길 위에 후학들을 불렀다. 흥선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도 옥산서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남은 예로부터 글이 법이 되고, 예가 삶의 뼈가 되는 땅이었다. 들판마다 선비가 있었고, 골짜기마다 책 읽는 소리가 울렸다. 학문은 벼슬을 위한 계단이 아니라, 인간 됨의 바탕이었다. 서원은 한 시대 정신의 화석이었고, 스승과 제자의 약속이었으며,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한 작은 세계였다. 조선의 육백여 개 서원 가운데 무려 이백여 개가 넘는 서원이 경상도 땅에 있었다. 조선시대 서원철폐령으로 폐쇄한 뒤에도 전국 오십여 서원 중 열네 곳이 영남 지역에 남았다. 이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지역의 기개와 정신이 얼마나 깊게 뿌리내렸는지를 말해주는 역사적 증거다. 그만큼 유학은 생존을 넘어 저항이었고 실천이었으며, 정신 그 자체였다. 옥산서원은 그런 영남 유학의 정수가 고스란히 서린 곳이다. ■역락문과 무변루 역락문을 들어서자마자, 곧장 무변루(無邊樓)의 뒤태가 시야를 가로막는다. 무변루는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끝이 없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편액은 조선 최고의 명필 석봉 한호가 썼다. 붉은 기둥과 녹청색의 문살, 그리고 닫힌 문들 사이로 스며드는 어둠이 조용히 말을 건다. 마치 발걸음을 멈추라는 듯, 그 너머로 나아가려는 마음에 제동을 건다. 숨이 턱 막힌다. 닫힌 문이 하도 웅장하여 위압감마저 든다. 무언가를 단호히 막아선 듯한 정면의 구성은 단순한 구조가 아니다. 여기에 모신 이의 정신, 그 절도를 다시 한번 가다듬고 오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허투루 들어올 수 없다는 듯, 위엄과 침묵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래서일까. 몸보다 마음이 먼저 엎드리게 된다. ■강학 공간 구인당과 암수재, 민구재 무변루를 지나면 강학 공간이다. 강의와 토론이 오가던 서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정면에 구인당이 단정히 서 있다. 구인당은 회재 이언적이 쓴 글귀 ‘구인(求仁)’에서 이름을 따왔다. 구인당 좌우의 양진재(兩進齋)와 혜림재(蕙林齋)는 교수와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오늘날의 교무실이나 연구실에 해당한다. 구인당은 1836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다시 지어졌다. 햇살이 마당을 넓게 비추고, 구인당 현판 아래가 유독 환하다. 검은 기와지붕 아래 걸린 ‘옥산서원(玉山書院)’ 현판 네 글자는 상당한 무게로 읽힌다. 앞에 서면 어느새 자세가 조심스러워진다. 단정한 기운, 절제된 구조다. 공간이 먼저 예를 요구하는 자리다. 강당 앞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학문을 닦으며 머물던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암수재(巖守齋)와 민구재(敏求齋)가 서로 마주 본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목재들이 몸을 낮춘 채, 정면의 구인당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유생은 동재에, 어린 유생은 서재에 기거했다. 유생들은 나이에 따라 위계가 있었다. 마치 학문 앞에 엎드린 제자 같고, 정신의 중심을 받드는 두 팔 같다. 좌우의 건물이 높지 않은 이유, 곧고 단정하게 뻗은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이곳이 스승을 모신 자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옥산서원의 깊숙한 한켠, 전적들을 보관하는 경각이 조용히 문을 닫고 있다. 이곳에는 회재 이언적의 저술과 관련 기록, 유생들의 학문 흔적이 고요히 보존되어 있다. 누가 읽고 누가 필사했는지 모를 붓 자국들이 책 속에 남아, 긴 세월을 지나 지금도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굳게 닫힌 제향의 공간, 사당 서원 안쪽으로 더 들어서면, 굳게 닫힌 문이 나온다. 회재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제향의 공간이다. 이곳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리지 않는다. 사람의 말보다 침묵이 무거운 공간, 제사의 손길과 정갈한 마음으로만 닿을 수 있는 자리다. 경외감은 그 자체로 경계선이 되어, 이 공간을 감히 넘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정신이 깃든 자리다. 담장은 높고 길게 둘러쳐져 있다. 위엄을 막연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성함을 지키기 위한 울타리다. 담장 안쪽은 제사 때를 제외하고는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스승을 모신 제향 공간은 그 자체가 법이었고, 침입할 수 없는 신성의 영역이었다. 담장 너머의 고요는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수백 년을 지켜온 절제의 목소리다. 고요는 서원의 다른 공간들에도 번져 있다. 강당이며 재실이며 마당까지, 모두가 그 사당의 중심을 향해 기운을 모으고 있다. 바람결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발걸음마저 조심스럽다. 사람들은 말없이 담장 바깥에서 손을 모은다. 숨소리조차 가볍게 뱉고, 눈빛조차 가라앉는다. 신을 모시는 공간이기에 앞서, 스승을 모시는 곳이기에 그 앞에서 사람들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회재 이언적 신도비 서원의 끝자락, 신도비가 있다. 회재 이언적의 생애와 사상을 새긴 돌이다. 옥산서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묵언의 무게가 한결 선명해지는 비석이다.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서원은 조용히 말하고 있다. 겸손하라, 조심하라, 무릇 배운다는 것의 시작은 스스로를 낮추는 데서 비롯된다고. 옥산서원은 그 가르침을 담은 거대한 침묵의 서책이다. 서원을 나서려 돌아 나오는데, 무변루 좌우에 우뚝 선 향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수백 년 세월을 품은 듯 굵고 묵직하다. 향나무는 오래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무변루를 사이에 두고, 마치 경계라도 하듯 서 있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스승과 제자의 자리, 학문과 침묵의 자리를 누가 감히 어지럽힐 수 있을까. 아까부터 알 수 없는 기척이 자꾸만 목덜미를 건드리고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아 발끝을 낮췄고, 숨도 조심스레 내쉬었다. 그 기척의 정체가 향나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높고 무성한 가지 사이로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이었다. 다행이다. 무례한 말도, 요란한 소리도 내지 않았으니. 안도의 숨을 쉬어낸다. 나무 아래를 지날 때조차 괜스레 허리를 굽히게 된다.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다. 향나무는 다시 고요해지고, 나는 나무를 뒤로한 채, 천천히 서원을 떠난다. 회화나무 그늘이 처음보다 한층 더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2025-05-28

안동댐, 낙동강 수계 상류에 있고 우수한 수질 관리 ‘1급수’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 대구시민들이 갈망하는 이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는 그동안 고군분투를 이어왔으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현재 추진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취수원 이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진단한다. 그 말은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은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본지는 대구시가 추진해 왔던 취수원 이전 노력과 현재 추진 중인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퇴적물 중금속 농도 3~4등급 해당 수질 검사서 단 한번도 검출 안돼 용출 수질오염 가능성 거의 없어 최근 10년간 8개 항목 모두 1등급 의성군 풍지교 하천 유지량 분석 최대가뭄 기준 산정 물 부족 없어 생·공·농업용수 법적 유지량 충족 글 싣는 순서 ①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이란 ② 댐의 물이 가장 안전하다 ③ 대구 안동댐 취수원 이전⋯지역 상생의 모델이 되다 ④(인터뷰)“30년 이상 끌어온 취수원 이전, 지금이 마지막 기회” △댐의 물을 식수로 이용해야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수자원은 강물과 댐 물이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댐 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다. 강물 지표수를 식수원으로 하는 곳은 낙동강 수역이 유일하다. 강물이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강물은 수질 오염 사고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지표 위의 오염 물질들이 빗물에 섞여 유입되기 쉽고, 하천이 흐르면서 상류 지역에서 발생한 생활하수나 공장폐수의 처리수와 섞이기 때문에 우수한 수질을 보장하기 어렵다. 이에 반해 댐 물은 수백 ㎞에 걸쳐 흐르는 하천에 비해 길이가 짧고 댐 인근 지역의 관리가 용이하다. 또 대부분 수계 상류에 위치해 있어 우수한 수질을 유지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구시는 낙동강 강물이 아닌 안동댐에서 공급되는 청정 1급수 댐 물을 대구로 공급하는 ‘대구 취수원 안동댐 이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실제 서울과 인천은 팔당댐(7%)과 팔당댐 직 하류(93%)에서 100%, 대전과 세종은 대청댐에서, 광주는 주암댐(42%)과 동복댐(58%)에서 100% 댐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그에 반해 대구는 가창댐·공산댐(7%), 운문댐(27%)에 불과하다. 안동댐 하류 166㎞ 지점에 위치한 문산·매곡 취수장에서 취수한 강물(66%)을 이용하고 있다. △안동댐이 중금속에 오염됐다? 1976년 준공된 안동댐의 퇴적물에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안동댐 퇴적물의 중금속 농도는 3~4등급에 해당하는 나쁜 수준이다. 그러나 퇴적물 중금속 농도와 달리 안동댐 수질은 1997년부터 27년이나 지난 현재까지 수질검사(연 4회 실시)에서 단 한번도 중금속이 검출된 바가 없다. 이는 퇴적물에 포함된 중금속이 수중으로 용출돼 수질을 오염시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혹여 미량의 중금속이 검출되더라도 응집·침전 등의 정수처리 과정을 통해 충분히 제거가 가능하다. 취수예정지인 안동댐 직 하류에 인접한 수질측정망(안동1) 지점의 측정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매월 조사) 조사한 일반수질 8개 항목 모두 Ⅰ등급(매우 좋음~좋음)을 받았고, 카드뮴, 비소 등의 조사에서도 전 항목에서도 수질기준을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6년간(주 1회 이상 조사) 조류(녹조) 발생농도 및 기간 조사에서도 안동댐이 낙동강 본류(문산취수장 인근)에 비해 양호한 것으로 드러났다. △ 안동댐 취수로 인해 하천유지 용수 부족과 수질 악화가 우려된다? 대구시는 당초 안동댐 계약량 하루 63만5000t을 취수하는 것으로 정부에 건의했으나, 환경부의 검증 결과에 따라 하루 46만t을 공급하는 방안으로 확정했다. 특히, 환경부는 과거 발생한 최대 가뭄을 기준으로 안동댐 직 하류 취수 시 가장 물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성군 풍지교 지점에서 하천유지량을 분석해 적정 취수량을 산정한 만큼 물 부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가 최대가뭄을 조건으로 물수지 분석 세부 산정한 결과에 따르면 용수공급량 (댐방류+지류하천)은 319만 5000t으로 하천수 사용량(생·공·농업 용수 + 취수량 46만 t) 196만 2000t을 사용하더라도 사용용수 회귀량(56만 4000t)을 포함하면 법적 하천 유지유량인 179만 7000t을 충족한다. 하루 46만t의 취수로 수질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 3월 검토한 결과 BOD 0.1~0.2ppm, T-P 0.001ppm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돼 수질에 대한 영향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1년 이후 취수가 실제 이뤄지게 되는 시점에는 본류 수질 개선 사업 등이 추가로 반영되기에 수질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이러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생·공·농업용수 및 하천유지 용수 부족과 수질이 악화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5-28

세월의 풍파 속 잎 틔우며 열매 맺는 모습 부모의 삶과 닮아

초록으로 나날이 물들어가는 오월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함께 들어 있다. 어린이날이면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아이들을 공원의 놀이터로 데리고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버이날에는 부모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용돈도 드렸다. 이는 소소한 일이지만, 부모는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도리를 행한 것이고, 자식은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아닐까, 역시 마땅한 도리이다. 이제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부모님은 하늘로 떠나 먼 추억으로 남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러한 일들이 바로 행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은 어버이날이면 성장한 자식들이 멀리 있어 직접 카네이션 꽃을 달아 드리진 못하지만, 용돈만은 꼬박꼬박 보내 주어 기쁘게 한다. 속이 텅텅 비도록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주고 희생을 감내한 부모의 은혜를 자식은 효도로 보답하고 있다. 이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이나 자식이 부모에게 드리는 효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간 삶의 진리이고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닐까 싶다. 회재 이언적 선생 제사 받드는 별서 ‘독락당’에 자리잡은 500살 노거수 韓·中 교류 등 역사문화 가치 뛰어나 천연기념물 제115호 지정 보호 받아 밑동 줄기가 텅 빌만큼의 상처에도 아름답게 가지 뻗은 모습 대견스러워 조각자나무 노거수 또한 그러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여름의 끝자락에 아내와 함께 경주 안강읍 옥산리 옥산서원 숲을 거닐다가 독락당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 노거수 앞에 멈춰 섰다. 천연기념물이라는 품격의 자연유산에 걸맞지 않게 노거수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밑동 줄기의 속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텅텅 비어 있었다. 분명히 속이 꽉 찬 튼튼한 나무였을 터인데,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가진 에너지를 비바람의 외세에 맞서고 꽃과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느라 소진했을 것이다. 썩어 문드러진 자국도 없이 조용히 속을 비운 채 푸른 가지들을 높이 올리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 부모님을 떠올리게 했다. 자식에게 웃음과 사랑, 삶의 에너지를 몽땅 쏟아부은 분들, 웃음과 사랑을 다 주고도 정작 본인의 속은 그렇게 비워졌다는 걸 나 또한 어른이 되어서야 알았다. 속이 텅 빈 나무처럼 부모님도 그러셨다. 말없이 견디고, 꺾이지 않고, 우리를 푸르게 키워내셨다. 독락당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제사를 받드는 옥산서원 북편 600m 거리에 있는 별서이다. 이언적(1491~1553) 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 거처한 건물이라고 전해진다. 옥산리 1600-1번지 건물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된 나이 500살, 키 14.5m, 몸 둘레 4.9m의 조각자나무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나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우나 밑부분과 두 개의 가지만 살아 있고 속은 비어 있었다. 텅 빈 속을 깨끗이 외과 수술하여 튼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하였다. 조선 중종 1532년, 회재 이언적 선생이 잠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문에 전념할 때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온 친구로부터 종자를 얻어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오래되고 희귀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교류 관계와 독락당의 역사를 알려주는 문화적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었다. 나는 이처럼 속이 텅 빈 노거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끈질긴 생태적 삶의 모습에서 꼭 우리 부모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조각자나무로부터 그 오래됨과 아름다움을 넘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 삶을 반추해 볼 수 있어 더 의미 있었다. 조각자나무는 살아오면서 비바람과 곤충으로 인해 속이 썩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다시 가지를 뻗고 잎을 틔우며 열매를 맺어 후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상처를 받고 때로는 속이 무너질 듯한 고통을 겪지만, 그 모든 흔적을 품은 채 여전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다시 웃으며 사랑하고, 새로운 열매를 맺으려 한다. 나무는 마치 상처를 품은 채 더 넓게 가지를 뻗는 사람과 닮았다. 삶의 아픔이 단지 고통으로만 남지 않고, 더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각자나무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가시가 굵고 억세며, 주엽나무와 잎, 가시, 열매 등이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어렵다. 주엽나무는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인 반면, 조각자나무는 중국 중남부 지방이 원산지이다. 꽃은 5∼6월에 암꽃과 수꽃이 한 그루에서 피며,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열매는 9∼10월에 익으며 약재로 사용된다. 열매에는 사포닌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비누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줄기 겉면에는 이끼가 무성했는데, 이는 습하고 그늘진 환경에서 자라는 나무의 특성을 보여준다. 줄기의 속은 텅 비었지만, 잎은 풍성하고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도 많이 달려 있었다. 나뭇잎이나 열매를 문지르면 강한 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도덕산과 어래산에 떨어지는 빗물이 모여 옥산천이라는 계곡을 이루어 흐르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경관과 유명한 사적지를 품고 있다. 독락당과 접하고 있는 계곡에는 느티나무, 팽나무, 소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가 살아가고 있다. 그 옛날, 계곡의 아름다운 명소를 옥산구곡이라 명명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특히 옥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계곡 가운데 자리한 너럭바위 일대, 세심대(洗心臺)는 작은 폭포와 용소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회재 이언적 선생이 주변 산과 계곡에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사산오대(四山五臺)라 하며, 그중 하나가 세심대이다. 세심대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며,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라고 전한다. 사산은 도덕산, 화개산, 무학산, 자옥산이고, 오대는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세심대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천천히 걸으며 울창한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선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시면서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조각자나무 노거수는 사람과 다름없다. 500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온 생명체이다. 독락당이 세워질 무렵부터 오늘날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 조선의 학자들이 이곳에서 글을 읽을 때도, 후손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락당의 정취를 더욱 깊게 만들고, 사람들에게 쉼과 사색을 제공하는 안락한 품속이 되었다. 바람이 불 때면 조각자나무의 잎사귀가 속삭인다. 그 소리는 독락당의 오래된 기와 아래에서 들리는 옛 학자들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독락당을 오가며 입구에 세워진 경청재(敬淸齋)와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에 관한 안내판을 읽으며 부모님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의 우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경청재, 화의문약설, 옥산구곡… 경청재(敬淸齋)는 회재 이언적 선생 손자 두 형제가 독락당을 보존키 위하여 화의문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으로 선생은 청백리에 가자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 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라 이름하였다. 화의문약설(和議文略說)의 내용은 독락당은 회재 선생의 별서이고, 이외 유택에는 우리 부모님의 혈설이 가득하다. 당우와 담장을 수호하기 위하여 우리 형제가 약간의 토지를 출현하였다. 후손들 가운데 혹 궁벽하여 토지에 대해 다투는 일이 있으면 불효로써 논단한다는 것이다. 옥산구곡(玉山九曲)은 회재 사후에 하계 이가순이 회재 은거지에 구곡 원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옥산천을 따라 아홉 곳을 선정하고 명명하였다. 옥산천(옥산구곡)은 회재의 시(詩) 임거십오영(林居十五詠)의 창작 공간이며 옥산서원길에는 3곡∼7곡까지를 포함하고 있어 옥산천을 오르며 굽이굽이 존재하는 회재의 자취를 유람할 수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5-28

“가축 분뇨 자원화 통해 온실가스 감축·친환경 농업 활성화”

봉화군이 가축분뇨를 친환경 연료로 재활용해 경축순환 농업을 실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경축순환농업은 축산농가의 가축분뇨로 만든 양질의 퇴비와 액비를 경종농가에 공급해 농작물의 비료로 활용하는 농법으로, 탄소중립 시대의 환경친화적 순환농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농경지 면적은 점점 축소되고 있지만 가축분뇨 발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가축분뇨는 악취와 각종 환경오염을 일으켜 골칫덩이로 취급받아왔다. 악취·오염 골칫거리 축사 분뇨 고부가·친환경 연료로 재활용 ‘2025 분뇨처리사업공모’ 선정 4년간 총 224억원 사업비 확보 축분유기질비료 수출 활성화 작년 538t 판매, 올 주문도 밀려 베트남에 ‘비료 전진기지’ 육성 이런 가운데 봉화군은 깨끗한 축산환경 조성을 통해 축산업의 환경보전기능을 증대하고 지역 축산업의 안정적 발전과 가축분뇨 자원화 촉진을 통한 고부가가치 축산업 육성 실천에 노력하고 있다. 자연순환농업 활성화와 수질·토양·대기 등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가축분뇨의 자원화, 가축분뇨 처리 시설·장비 지원, 가축분퇴비의 해외수출 확대, 축분바이오차 농가이용 활성화지원, 가축분퇴비부숙제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친화적 축산업의 지속적 발전과 축산분뇨의 자원화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및 2050 탄소중립 정부 시책 실천을 위해 신규사업 발굴도 적극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 가축분뇨 ‘에너지화 + 탄소감축’ 두 마리 토끼 잡는다 봉화군은 최근 ‘2025년 가축분뇨처리지원사업(공동자원화-민간형)’ 공모에 선정돼 4년간 총 224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했다. ‘가축분뇨처리지원사업’은 농가단위 가축분뇨처리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가축분 퇴비로 인한 환경오염 방지와 가축분뇨의 자원화를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퇴액비화 및 에너지화(고체연료, 바이오차)를 위한 시설‧장비를 지원하며 봉화군에서는 봉화읍 도촌리 소재 농업회사법인 늘푸른 주식회사가 민간형 사업대상자로 선정됐다. 봉화군에서는 하루 783t의 가축분뇨가 발생하지만 이를 처리하는 공공시설 및 민간시설(퇴비공장)의 처리용량은 하루 192t에 불과해 가축분뇨 처리시설 확충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사업으로 시설이 완공되면 봉화군 288호 농가의 소‧돼지 5만3천마리와 닭 160만마리에서 발생하는 축분 중 하루 200t, 연간 6만t을 자원화해 고체연료 33t/일, 바이오차 28t/일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고체연료 : 가축분뇨를 건조해 석탄처럼 고체로 만든 연료화 물질 *바이오차 : 바이오매스(Biomass)와 숯(Charcoal)의 합성어로 바이오매스를 산소가 없는 고온(350℃ 이상)에서 열분해해 만든 고체 물질 향후 사업장에서 생산되는 바이오차는 경종농가에 토양개량 및 작물 생육 촉진용으로 활용 보급될 예정이며, 고체연료는 발전소의 전력생산을 위한 연료로 판매할 예정이다. 특히 바이오차는 연간 온실가스 1만 2915t CO2eq(이산화탄소 환산톤)의 감축으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정책에 기여하고 탄소배출권 판매로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친환경 축산농업 실현을 위한 노력 봉화군은 가축분뇨공동자원화시설사업 외에도, 가축분뇨의 적정 처리를 통해 농가의 생산성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축산업을 육성하고자 축산환경개선장비지원, 깨끗한축산환경지원, 축분바이오차이용활성화사업 등 13개 사업에 약 13억 6000만 원을 투입하고 있다. 가축분뇨 처리를 위한 스키드 로더, 밀폐형 고속건조발효기, 농업용 굴삭기 등을 지원해 축산농가가 가축분뇨를 효율적으로 자가 및 위탁 처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가축분뇨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지속 가능한 축산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아울러 친환경 농업실현에 필수적인 가축분뇨 악취발생 저감을 위해 양돈농가환경개선사업, 친환경악취저감제지원을 통해 물리적‧화학적으로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최소화한다. 봉화군에서는 축사바닥에 분뇨악취를 덮을 수 있는 약제를 뿌리는 방법과 분뇨를 미생물과 반응시켜 악취를 줄여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병행해 추진 중이다. 또한, 밀폐형 고속건조발효기(콤포스트) 지원을 통해 축산농가에서 발생한 분뇨를 1차로 자가 처리할 수 있도록 애쓰고 있으며, 돈사에서 발생하는 악취로 인한 주변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돈사환기구 악취저감설비 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축분바이오차 이용활성화 지원사업은 정부 2050 탄소중립 정책의 일환으로 농축산분야 탄소저감을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축산농가에서 발생하는 가축분뇨를 바이오차로 변환해 다시 토양에 환원시키는 경축순환의 일환으로 봉화군에서는 2025년도 사업비 1억원을 확보해 농작물 재배지 50ha에 보조 지원할 계획이다. □ 가축분 유기질비료 수출 새지평 봉화군에서는 관내 가축분뇨를 활용한 축분유기질비료를 수요가 많은 성수기(겨울, 봄 등)에는 국내시장에 판매하고 비수기(여름철 등)에는 해외수출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관내 축분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수출 대상국으로 베트남 시장을 개척해 2024년도에는 4차례에 걸쳐 538t을 수출했으며, 올해에는 1차로 125t을 수출했다. 지난 3월 7일부터 9일까지는 베트남을 방문해 베트남의 칸투그룹 등과 수출협의를 하고, 호찌민에 위치한 경상북도 해외사무소에서 베트남 SITTO그룹과 축분유기질 비료 수출계약을 체결해 분기당 500t 이상 공급하기로 협의했다. 봉화군은 경상북도, 유기질비료 제조업체 늘푸른(주), 베트남 SITTO그룹과의 다자간 협약을 통해 베트남을 동남아시아 축분유기질비료 수출의 전진기지로 육성할 기반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국내 축산농가의 축분 처리 문제를 해결하고, 봉화군의 선진 축산분뇨 처리 기술을 해외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울러 봉화군에서는 축분유기질비료 수출 활성화를 위해 가축분뇨이용촉진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봉화군 자원화공동체에서 관내에서 발생하는 축산분뇨를 수거해 생산한 축분유기질비료를 베트남 등 해외에 수출할 경우 수출물류비를 지원하고 있다. 2025년도에는 사업비 2억4000만원을 확보해 4800t의 해외수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박현국 봉화군수는 “청정지역 봉화군의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축산업의 발전을 위해 농가 단위의 가축분뇨 처리 문제를 해결하고, 원활한 축분 처리를 통해 안정적인 가축 사육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가축분뇨 자원화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과 자연순환 농업 활성화를 실현함으로써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경축순환농업 정책 수립과 실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종화기자 pjh4500@kbmaeil.com

2025-05-28

우승의 단맛·사생활의 쓴맛… 천당·지옥 오간 손흥민

모든 인간이 마찬가지다. 즐거운 일만 생기는 삶, 시종일관 눈물 흘릴 사건만 발생하는 삶이란 없다. 생이란 즐거움과 괴로움의 끊임없는 반복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축구선수 손흥민은 얼마 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마음이 그랬다는 이야기다. 지난 22일 영국 토트넘 홋스퍼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던 손흥민이 프로축구 선수로 활동한 지 15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한국의 팬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것. 손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하는 모습이 전 세계로 중계됐다. 이후엔 카퍼레이드까지 있었다고 한다. 개인으로선 더없는 영광이었을 터. 손흥민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일도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났다. “임신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해 손 선수에게 3억 원이란 거금을 뜯어간 여성과 또 다른 협박으로 손흥민을 위협한 남성이 구속된 것이다. 그날 손 선수는 어떻게 표정 관리를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듯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의 ‘감원 폭풍’ 관련 소식도 지난주 네티즌들이 주목한 기사였다. 사원 복지와 임금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두 회사가 대규모 감원을 계획한 이유는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이에 ‘혹시 나도 AI로 인해 직장을 잃지 않을까’ 걱정한 사람들이 많았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판결 이후 47일 만에 첫 공개 행보를 보인 윤석열 전 대통령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날 부정선거 의혹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관람한 윤석열을 향해 네티즌들의 질타와 비난이 쏟아졌다. “반성 없는 지도자에겐 미래도 없다”고 직격한 댓글도 눈에 띄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간 축구선수 손흥민,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며 성장하는 AI, 네티즌들의 비판을 부른 전 대통령 윤석열의 외출…. 아래 지난주와 이번 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소식을 요약해 전한다. ▲ 같은 날 천당과 지옥을 오간 축구선수 손흥민 세상을 살다보면 알게 된다. 행운과 불행은 멀리 있지 않고, 삶이란 즐거움과 슬픔의 무한 반복이란 사실을. 이 명제에선 축구선수 손흥민도 예외일 수 없는 모양이다. 얼마 전이다. 영국 축구팀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해온 손흥민이 프로 데뷔 15년 만에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개인의 영광인 동시에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외신과 국내 언론은 일제히 손흥민이 소속된 토트넘이 한국 시간 22일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결승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대0으로 누르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경기를 마친 후 손흥민은 허리에 태극기를 감은 채 감격의 시간을 즐기며 인터뷰에 응했다고 한다. 축구선수로서 최고의 즐거움을 맛본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생에는 즐거운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최근 한 여성의 “임신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3억 원을 준 사실이 드러난 손흥민은 이와 관련해 경찰에 진술서를 제출하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일도 겪어야 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강남경찰서는 22일 오전 8시 손흥민을 상대로 협박과 공갈을 일삼은 혐의로 2대 여성 양OO씨와 40대 남성 용OO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같은 날 ‘무관의 제왕’이란 아쉬움을 털어내는 것과 함께 사기협박 혐의자들의 구속 소식을 들은 손흥민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마음속으로 웃었을까? 그게 아니면 찡그린 표정을 지었을까? 두 가지 뉴스를 함께 접한 네티즌들은 “축하받을 일과 위로받을 일이 동시에 생겼다. 어쨌건 손흥민이 앞으로도 스포츠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길 기대한다”며 “협박당했다는 사실은 이제 잊고 자신의 미래에 집중했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AI가 인간 일자리 뺏는 상황 현실로...네티즌 “어떡하나?” 복지와 근무 환경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했기에 직장을 찾는 이들 절대다수에게 ‘꿈의 회사’로 불렸던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 감원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주요 빅테크 기업들이 수만 명에 육박하는 감원을 진행하고 있어 전 세계 네티즌들의 주목을 끈다. 최근 미국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인텔은 2만2000명의 직원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직원 중 3%에 해당하는 6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직면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회사가 감원을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짐작하다시피 AI(인공지능)가 쫓겨나는 직원들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 이는 “머지않은 시기에 대량 실업의 폭풍이 몰아칠 것“이란 미래학자들의 예견이 현실화하는 것이라 그 충격의 여파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해직이 예고된 이들 가운데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절반에 가깝고, 제품 관리와 기술 프로그램 관리를 하는 이들이 그 뒤를 이었다. “해고는 곧 살인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직장을 다니면서 받는 월급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에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말. 그러니, 미국 첨단기업의 대량 실업사태를 지켜보는 한국 네티즌들도 걱정도 적지 않다. “저 정도 규모와 기술력을 가진 초거대 기업도 사람을 추려 낸다는데 한국 IT기업은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당장 내 일자리부터가 걱정”이라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이 있었고, “늦기 전에 AI는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하나? 근데 그런 직종이 있을까”라며 한숨을 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부정선거 의혹 다룬 다큐 상영된 극장에 모습 드러낸 윤석열 “정말이지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스럽네. 이 판국에 영화를 보러 가다니... 윤석열을 석방시킨 사람들부터 반성해야 한다.” “억울함을 풀어줄 영화가 만들어졌으니 그걸 관람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내 마음 속에선 아직 윤석열이 대통령이다.” ‘내란을 주도한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다시 한 번 네티즌들의 설왕설래 가운데 섰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이른바 ‘부정선거 의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된 극장에 나타났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판결 이후 47일 만의 첫 공개 행보였다. 영화 상영 직전인 오전 9시 40분경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 윤석열이 모습을 보이자, 지지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등을 외치며 그를 반겼다. 영화의 공동 제작자인 역사강사 전한길 씨와 이영돈 PD도 윤 전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 현장에선 환호가 쏟아졌지만, 같은 시간 인터넷에선 윤석열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의견 역시 넘쳐났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줄도 모르는 인간이구나” “얼굴만 봐도 구역질이 난다”는 최악의 힐난도 없지 않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도중에도 윤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관객들은 화면에 비친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향해 손가락질과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는 게 극장을 찾은 이들의 전언이다. 이날 윤석열은 여러 차례 요청이 있었음에도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와 현재 자신이 처한 입장에 관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도 재판정에 출두할 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모습과 같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5-27

김천시 ‘k보듬 6000’ 프로그램 가동, 육아 친화도시 선도 한다

김천시가 ‘K보듬 6000’ 돌봄 시설에 원어민 외국어 수업, 친환경 과일 간식 지원, 아동 동행 귀가 및 순찰 등 특화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돌봄서비스 지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K보듬 6000은 경상북도에서 시행하는 저출생 극복 시책으로, 돌봄 시설을 신규로 설치하거나, 기존 돌봄 시설을 보완(평일 24시, 주말·휴일 연장)해 특화 서비스를 제공·운영하는 돌봄 정책이다. 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K보듬 6000 사업을 시작했으며, 올해에는 15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하고 있다.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K보듬 6000 지정시설은 총 7개소로 어린이집 4개소, 다함께돌봄센터 2개소, 공동육아나눔터 1개소가 지정되어 3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배낙호 시장은 “초저출생시대인 지금, 돌봄과 보육 문제는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극복해야 할 숙제다. 김천시는 저출생 극복을 위해 돌봄과 보육 환경 조성에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누구나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육아친화도시’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원어민 외국어 수업·친환경 과일 간식·아동 귀가 동행 등 서비스 모암·개령 등에 국공립 어린이집 4개소 운영 주말·휴일 보육 책임 주말·휴일 서비스 1600여명 이용, 맞벌이 부부 돌봄 공백 해소 기여 올해 지례·아포에도 어린이집 추가 지정, 농촌까지 육아 서비스 확대 □ K보듬 6000 특화 서비스 본격 가동 K보듬 6000 특화 서비스는 원어민 외국어 수업, 친환경 과일 간식 지원, 아동 동행귀가 및 순찰 서비스를 제공한다. 돌봄 시설별 원어민 외국어 수업은 지난 3월부터 시행 중이며, 5월부터 친환경 과일 간식 제공으로 돌봄 퀄리티를 높여 학부모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더불어 시설 이용 아동의 안전을 위해 율곡마을돌봄터에서는 의용소방대가 귀가 동행 서비스, 황산마을돌봄터 주변 일대에는 자율방범대가 근무조를 편성해 야간 순찰을 하며 아동의 안전한 귀갓길을 돕고 있다. □ 율곡마을돌봄터, 경북 최초 ‘어린이 식당’ 운영 시는 율곡동 혁신도시 내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한 K보듬 6000 율곡마을돌봄터를 지난 3월 개소했다. 현재 월 500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으며 대기인원도 수십 명에 달하여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아울러, 경북 최초로 마을돌봄터에 ‘어린이 식당’을 설치하여 평일 석식과 방학 기간 중식을 제공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인 학부모 A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돌봐주는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이었는데, 율곡마을돌봄터에 쾌적한 환경과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게 되었다.”며 “아이 저녁 식사까지 해결되어 퇴근길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높은 만족감을 보였다. □ 황산마을돌봄터, 토요 돌봄과 귀갓길 순찰 황산마을돌봄터는 주이용층인 지좌동 동부초등학교 아이들에게 2024년 10월부터 토요일 운영과 간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지난해 조성된 인근 황산공원 덕분에 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게다가 이용 아동들의 안전을 위해 자율방범대에서 돌봄터 인근을 돌며 늦은 시간까지 순찰 활동을 하고 있으며 학부모들이 스스로 자원봉사 활동에 재능기부 형태로 참여하면서 더욱 풍성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 주말 ․ 휴일 보육 어린이집 운영 주말·휴일 보육을 책임지고 있는 국공립어린이집 4개소(모암, 개령, 율곡, 센트럴자이)는 2024년 10월 1일부터 K보듬 6000 지정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K보듬 6000과 별개로 2024년 하나금융그룹 공모사업 ‘하나돌봄어린이집’으로 선정되어 5년간 5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게 되는 국공립 이솝키즈어린이집 또한 주말․휴일 보육과 시간제 전용 보육실 제공으로 학부모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 K보듬 6000 어린이집 비율‘경북 1위’ 어린이집 5개소의 주말·휴일 보육 서비스는 현재까지 1,600여 명의 아동이 이용하고 있으며 특히 맞벌이 부부의 주말 근로나 긴급 상황(질병, 사고 등) 발생 시 돌봄 공백 해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일반 가정 양육자에게도 육아 중 충전의 시간을 줄 수 있어 학부모들이 높은 만족도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시의 K보듬 6000 지정 어린이집 4개소는 지정시설 중 40%의 비율로 경북 도내 11개 추진 시군 어린이집 지정 비율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 농촌(읍면)지역까지 휴일 보육 확대 시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올해 4월 K보듬 6000 어린이집이 2개소(지례어린이집, 아포어린이집)가 추가 지정되어 하반기에는 주말·휴일 보육이 더욱 확대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읍면 지역까지 틈새 돌봄 지원이 이루어져 그동안 농번기에 자녀를 맡길 곳이 없던 농촌지역 학부모들도 자녀 돌봄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민간어린이집인 제일어린이집에서는 2025년 농림축산식품부 사업인‘농번기 아이돌봄방’사업에 선정되어 토요일 보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돌봄 ․ 보육 여건 조성에 노력 지난 4월 시는 「K보듬 6000 지정시설 운영자 간담회」를 개최하여 시설별 운영 현황과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고, 애로사항과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또한, 육아와 문화생활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복합문화센터 ‘맘지원센터’가 오는 10월 준공 예정이다. 센터 내에는 다함께돌봄센터 1개소와 장난감도서관, 생활문화센터, 다목적 홀 등이 설치되어 원도심을 중심으로 하는 돌봄클러스터의 새로운 중심축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채복기자 ncb7737@kbmaeil.com

2025-05-27

안동댐 직 하류~ 문산 매곡정수장까지 약 110㎞ 관로 신설

30년 넘게 해결하지 못한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 대구시민들이 갈망하는 이 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대구시는 그동안 고군분투를 이어왔으나,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현재 추진하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취수원 이전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진단한다. 그 말은 지금 해결하지 못하면 대구취수원 이전 사업은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본지는 대구시가 추진해 왔던 취수원 이전 노력과 현재 추진 중인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이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이유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봤다. 2023년 정부 공식 제안·2024년 환경부 검토로 하루 46만t 취수 결정 낙동강유역물관리위 심의만 남겨 TK 신공항 개항 맞춘 완료 박차 구미 해평취수장 하루 30만t 비해 경제성 높고 수질 식수에 더 적합 글 싣는 순서 ①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이란 ② 댐의 물이 가장 안전하다 ③ 대구 안동댐 취수원 이전⋯지역 상생의 모델이 되다 ④(인터뷰)“30년 이상 끌어온 취수원 이전, 지금이 마지막 기회”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 추진 배경 대구시가 취수원을 낙동강 상류 지역으로 이전하려는 이유는 ‘안전한 식수’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낙동강은 경상권 지역의 식수 뿐 아니라 공업·농업 용수까지 담당하고 있다 보니 식수로 적합한가에 대한 문제 제기가 항상 있어왔다. 특히, 지난 1991년 3월 14일 발생한 페놀 유출 사고는 대구시민들에겐 낙동강 식수의 두려움으로 남아있다. 더욱이 1991년부터 2018년까지 대구 취수원 상류에서 발생한 9차례의 유해 화학물질 유출 사고는 대구시민들에게 먹는 물에 대한 불안감을 고착화 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구시는 취수원을 낙동강 상류 지역으로 이전하기로 하고 상류 지역들과 논의를 거듭해 왔다. 낙동강 상류 지역으로 이전키로 한 것은 대구의 취수원이 대규모 산업단지와 너무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시의 취수원 이전 노력은 낙동강 상류 지역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해 왔다. 그러다 2021년 장세용 구미시장과 권영진 대구시장이 극적인 합의를 이루면서 그 다음해인 2022년 4월 대구-구미 맑은물 나눔과 상생발전 협정이 체결됐다. 하지만 그해 지방선거에서 새롭게 당선된 구미시장의 반대의사 표명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이에 대구시는 새로운 취수원으로서 안동과의 상생협약 체결을 통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이란 대구시는 구미 해평으로의 취수원 이전이 무산되자 안동댐으로 이전을 위한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나갔다.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안동댐 직 하류에서 문산, 매곡정수장까지 약 110㎞의 관로를 신설하는 사업이다. 시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2023년 12월 정부에 공식 제안했고, 2024년 7월 환경부의 기술 타당성 검토를 받아 안동댐 직 하류에서 하루 46만t의 취수가 결정됐다. 약 1조 5000억 원의 사업비가 들어가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현재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의 심의만 남겨두고 있다. 대구시는 안동시와 상생협력으로 추진되는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을 TK 신공항 개항 시기에 맞춰 완료될 수 있도록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제성까지 갖춘 ‘맑은물 하이웨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에 1조 50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사업비가 예상되자 일각에서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지만, 이는 단순 논리에 불과하다. 구미 해평으로의 취수원 이전 비용이 초고도 정수처리 시설을 포함해 8000억원에 달하고, 매년 400억 원 이상의 운영비가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충분히 경제성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구미 해평취수장 이전의 경우 하루 30만t(대구 28만 2000t, 경북 성주·고령 1만 8000t)을 취수하지만, 안동댐 이전은 하루 46만t(대구 40만 9000t, 신공항 3만 3000t, 경북 성주·고령 1만 8000t)을 취수할 수 있어서 경제적이다. 더욱이 수질도 안동댐 직 하류 취수가 구미 해평지역 보다 더 뛰어난 점도 경제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국가물환경정보시스템(2020~2024)에 따르면 안동댐 직 하류의 수질은 BOD(생물화학적 산소 요구량) 0.74㎎/ℓ,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 5.22㎎/ℓ, TOC(총유기 탄소량) 2.95㎎/ℓ 등으로, 구미 해평취수원의 BOD 1.91㎎/ℓ, COD 5.85㎎/ℓ, TOC 4.10㎎/ℓ 보다 낮아 수질 면에서도 식수에 더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연간 경제적 가치가 4960억원(한국문화관광연구원/2009년)에 이르며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유력한 울산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필요한 수량을 공급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은 문화역사 보존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 할 수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5-27

문경시, 천혜 관광자원 연계 융복합 스포츠 메카로 ‘발돋움’

문경시는 2013년 국가스포츠의 요람이자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국군체육부대의 문경 이전과 함께 2015 경북문경세계군인체육대회의 성공적 개최로 국제적 스포츠 인프라를 구축, 국내외 스포츠대회는 물론 전지훈련의 메카로 우뚝 서 있다. 문경은 대한민국의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서, 전국 어디에서나 2시간대에 접근이 가능한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지난해 KTX 문경역 개통은 문경시에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성장의 새 국면을 맞게 해주었다. 이러한 접근성 향상을 비롯해 문경은 국군체육부대의 우수한 스포츠 인프라와 함께 천혜의 자연환경과 관광자원을 연계한 융복합 스포츠 산업에 스포츠·전지훈련의 메카로 발돋움해 앞으로도 더 많은 대회와 전지훈련 유치가 가능할 전망이다. 앞선 임기에 국군체육부대와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유치한 신현국 문경시장은 “앞으로도 문경의 스포츠·관광도시 브랜드 가치상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10년 안에 도내 최고의 체육도시로 자리 잡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각종 굵직한 체육대회 유치 문경시는 국제규격의 최신 시설을 갖춘 국군체육부대, 시민운동장, 영강체육공원의 축구장, 문경국제소프트테니스장, 배드민턴 전용경기장, 온누리스포츠센터, 국제클라이밍센터, 문경야구장, 그라운드골프장 등 다양한 스포츠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문경시는 민선8기 신현국 시장의 취임 이래 연간 스포츠대회 70여 개를 유치하며 인구 50만의 포항시와 함께 경북도내 최다 유치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7월 55개국 450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한 ‘2024 문경 세계태권도 한마당’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세계 태권도인들의 소통의 장을 열었다. 25개국 600여 명이 참가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된 유도엘리트 대회인 ‘2024 문경 아시아 유·청소년 유도선수권대회’ 또한 성공적으로 치러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였다. 이 밖에도 전국휠체어럭비선수권대회, 전국한마음태권도대회 등의 50여 개의 굵직한 국내대회도 열려 명실상부한 스포츠 메카로의 입지를 다졌다. 올해는 ‘돌리네습지배전국남여9인제배구대회’, ‘아시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 국가대표선발전’ 등 다양한 전국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특히, ‘2025 제9회 문경아시아소프트테니스선수권대회’가 9월에 개최될 예정으로 있어, 문경시 전 정구인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면, 지난해 ISTF(국제소프트테니스연맹) 임시총회 현장을 문경시 관계자가 직접 방문하며 간절하게 유치를 확정지은 ‘2027 제18회 문경세계소프트선수권대회’ 또한 자신감 있게 성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파크골프 대중화 최근 시니어 세대에서 낮은 진입장벽에 힘입어 새로운 생활스포츠로 ‘파크골프’가 각광받고 있다. 문경시내에도 파크골프 회원 수가 1600여 명으로 급증하면서 그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춰 문경시는 시민건강 증진을 위해 파크골프장을 확대 조성하고 있다. 읍면동마다 파크골프장이 조성돼 시민들이 이동 부담 없이 누구나 건강한 신체활동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존에 가장 큰 규모인 45홀로 조성된 문경파크골프장을 활발히 운영 중임은 물론, 지난해 1월에는 농암 대정 숲에 9홀 규모로, 2월에는 동로 황장산에 9홀 규모로 파크골프장을 신규로 조성해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농암대정숲파크골프장은 최근 ‘렛츠고 파크골프’ 촬영장소로 선정돼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로 전 국민으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올해 1월에는 9홀 규모의 가은청솔공원 파크골프장을 개장하면서 관리사무실,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도 갖춰 주민화합의 장을 마련했으며, 오는 12월에는 산양 반곡, 영강체육공원(온누리), 산양 금천에도 9홀 규모의 파크골프장을 준공해 시민들의 건강한 여가활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 ‘2031 세계군인체육대회’ 도전 마지막으로, 현재 문경시의 가장 큰 중점 과제 중의 하나인 ‘2031 세계군인체육대회’ 유치는 내년 유치 신청에 앞서 올해 만반의 준비를 갖출 예정이다. 지난 ‘2015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으나, 지역발전과 충분히 연계하지 못한 아쉬움을 상쇄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도전하는 대회다. 문경시는 지난해 2008년 이후 16년 만에 태권도 종주국에서 개최된 ‘제27회 세계군인태권도선수권대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통해 글로벌 스포츠 도시로 인정받은 후, 지난 7월 국방부를 방문해 ‘2031 세계군인체육대회 문경 유치’를 건의했다. 특히, 세계군인태권도대회에서는 대회 개최뿐만 아니라 폐회 이후에도 문화의 날 행사를 통해 외국 선수들에게 문경의 맛과 멋을 알리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해 각국 참가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 바 있다. 문경시는 국제규격 24개 종목의 최신경기장을 갖춘 국군체육부대와 2015년 종합대회와 2024년 단일종목대회, 그리고 앞선 2015년 세계군인체육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을 전면으로 내세워 유치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2031 세계군인체육대회’ 유치가 확정된다면, 문경시는 단순히 스포츠 도시로의 이미지를 넘어 세계평화와 외교 증진에 기여하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05-26

입양부터 자립까지 …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 ‘행복할 권리’ 찾아준다

2020년 수원에서 발생한 ‘정인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입양을 통해 새 가족을 만난 생후 8개월 된 여아가 장기간 학대를 받아 16개월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입양 제도의 허점과 가정 내 아동학대의 참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사건 이후 정부와 지자체, 민간 단체들은 아동 보호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관련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다. 대구시 역시 입양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고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방면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대구시는 아동 문제만큼은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대구시가 추진 중인 아동 보호 정책들을 살펴봤다. 단순신고 의존 않고 빅데이터 활용 분기별로 위기 아동 사전조사 나서 위험군 조기발굴 현장 대응력 강화 전국 신고 건수 증가와 대조적으로 2019년 1887건→2023년 1801건↓ 아동학대 조사업무 구·군으로 이관 긴급전화·현장조사 등 24시간 대응 전담 공무원 2인1조 경찰 동행 출동 전담 의료기관인 ‘새싹지킴이병원’‘ 수도권 제외한 전국 최다 30곳 지정 7월 19일부터 입양 절차 ‘공공 전환’ 위탁가정에 양육보조금·심성관리비 대학 입학·등록금 각각 1회씩 지원 보호 종료후 자립정착금·수당 등 제공 교육 등 실질적 자립 역량 강화 도와 △아동 학대, 조기 발견과 예방이 핵심 아동학대는 피해자가 어리기 때문에 스스로 피해 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주위의 지속적인 관심 없이는 학대를 알아채기 어렵다. 정인이 사건 이후 신고 의무자 범위가 확대되고 신고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강화되면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크게 늘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9년 3만8380건에서 2020년 3만8929건, 사건 직후인 2021년에는 5만2083건으로 급증했다. 2022년에도 4만4531건에 달했다. 대구시는 단순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빅데이터를 활용해 분기별로 위기 아동을 사전 조사하고 고위험군 아동을 유관기관과 함께 점검하는 등 조기 발굴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구시 아동학대 신고 건수도 2019년 1887건에서 2021년 2013건으로 증가했지만, 2022년에는 1800건, 2023년에는 1801건으로 다시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국적으로 신고 건수가 19.2% 증가한 것과 대조되는 수치로 대구시가 아동학대 대응을 공공 중심으로 전환하고 현장 대응력을 강화한 결과로 분석된다. △대구시의 아동학대 예방 정책 대구시의 아동학대 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지자체가 직접 개입하는 공공 중심 시스템이다. 시는 그동안 민간기관이 맡아오던 아동학대 조사업무를 구·군 등 공공기관으로 이관했다. 이에 따라 학대 현장 조사와 보호조치는 구·군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경찰이 담당하고, 피해 아동의 회복 지원과 사례 관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맡게 됐다. 아동학대 현장 조사 24시간 대응체계도 구축했다. 112와 구·군 긴급전화 운영으로 야간·휴일에도 상시 대기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찰과 동행 출동 및 아동학대전담공무원 2인 1조로 조사를 진행한다. 대구에 배치된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은 총 47명이다. 학대 피해 아동 보호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선, 재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은 관계기관(구·군,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합동점검을 통해 아동 분리 보호와 수사 등 즉각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 시는 구·군에 아동보호전담요원 33명을 배치하고, 비공개시설인 학대 피해 아동 쉼터 운영과 더불어 아동보호전문기관 3개소 운영으로 상담, 치료, 교육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지정 확대 대구시는 학대 피해 아동의 신체적·심리적 회복을 위해 ‘새싹지킴이병원’이라는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운영하고 있다. 시는 일찍부터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의료기관들의 참여를 독려해 왔다. 아동학대에 있어 심리치료 등이 늦어지게 되면 피해복구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구시는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 가장 많은 30개의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 칠곡경북대병원을 신규 지정했다.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은 29개 지역 전담의료기관과 협력해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고 전문적인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칠곡경북대병원은 이번 선정으로 전문의, 법률, 사회복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아동보호위원회를 설치·운영하게 된다. △입양 업무, 민간에서 공공으로 전환 오는 7월 19일부터 국내외 입양 관련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대구시는 입양 절차를 민간 중심에서 공공 중심으로 전환한다. 기존에는 지자체가 입양을 결정하면 민간의 입양기관이 아동보호, 양부모 결연, 입양 완료 및 사후관리를 해 왔으나, 이제는 지자체 입양 결정 후 입양 전까지 지자체에서 보호를 맡게 된다. 또 복지부(입양정책위원회)가 양부모 조사, 결연, 아동 적응 상황 점검 및 사후관리까지 책임을 진다. 대구시는 이러한 입양체계 개편에 맞춰 위탁가정·시설 등 보호 인프라 현황을 파악하고, 구·군, 가정위탁지원센터, 아동 생활시설 등과 연계해 아동 배치를 지원하는 등 종합적인 관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공적 입양체계 개편 준비 시도 국장 회의 참석을 시작으로 아동 그룹홈 대표 업무협의, 입양기록물 보존 및 현황조사, 공적 입양체계 개편 대비 유관기관 간담회 개최, 대구권역 아동보호 체계 합동 워크숍 등을 통해 입양 아동보호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보호에서 자립까지, 끊김 없는 지원 대구시는 입양 결정전까지 위탁가정에서 보호받는 아동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살피고 있다. 2025년 4월 말 기준 대구의 위탁가정에서 보호받고 있는 아동은 모두 334명이다. 시는 위탁가정에 양육보조금, 심성관리비, 생활용품 구입비,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각 1회)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 가정위탁아동과 위탁부(모) 1인에 상해보험 가입, 특수한 가정의 경우 전문아동보호비(월 100만 원) 및 아동용품구입비(신규위탁 월 100만 원, 위탁유형 변경 월 50만 원) 등을 지급하고 있다. 시는 공적 입양체계로 전환되며 위탁가정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구·군 소식지와 현수막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모집 홍보에 나설 계획이다. 또 일시보호시설, 아동양육시설 등을 통해 아동보호를 강화할 방침이다. 대구시는 보호 종료 이후에도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자립지원전담기관과 자립통합지원센터를 통해 자립정착금(1인당 1000만 원)과 자립수당(월 50만 원, 최대 5년)을 지급하고, 취업·진로 교육, 금융교육, 멘토링 등 맞춤형 지원을 제공한다. 자립통합지원센터는 32실의 자립생활관을 운영하며 연령대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보호 종료 아동들의 주거, 자립 체험, 교육 등 실질적 역량 강화를 돕고 있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05-25

홀로 사색의 뿌리를 내린 집 독락당

■자계천을 따라 흐르는 정신 햇살이 아침을 채운다. 기와가 반짝이고, 소슬한 바람이 담장을 넘는다. 자계천을 감싼 산그늘이 물러가고, 이른 아침 찬란한 빛이 골짜기마다 스며든다. 옥산서원 기개 높은 역락문과 담장이 눈앞에 펼쳐지지만, 서원의 위엄은 잠시 미뤄두고 곧장 계곡으로 내려선다. 바위가 넓게 펼쳐지고 물은 돌에 부딪히며 흘러내린다. 사람들은 너른 바위 전체를 ‘세심대(洗心臺)’라 부른다. 바위는 수천 번의 물결을 맞아낸 듯 반들거리지만, 여전히 층층을 이루며 기개를 자랑한다. 물은 흘러내리며 작은 폭포를 만들고, 그 아래엔 둥그런 용소가 된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세속의 소음을 밀어낸 듯 일정한 소리가 시끄럽지 않다. 백색소음에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진다. 회재 이언적은 벼슬을 내려놓고 자계골로 들어와 일대를 다니며 뜻을 품은 장소마다 이름을 붙였다. 세심대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바위’라는 뜻이다. 한 선비의 생각이 머문 자리이기도 하다. 흐르는 물에 마음을 헹구듯 이언적은 바위 앞에서, 흐르는 물 앞에서 생각을 다듬고 뜻을 새겼을 것이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지우고, 내면의 고요 속에서 독락(獨樂) 하였을 것이다. ■홀로 즐기는 독락(獨樂)의 길 이른 시각, 아무도 걷지 않은 길 위에 발을 얹는다. 나무 그림자는 아직 길지 않다. 고요한 숲길에 몸을 들이며 독락당을 향한다. 계곡을 이웃하여 크고 작은 밭이 펼쳐지고, 밭을 일구는 촌로들이 하나둘 나와 흙을 뒤집는다. 손끝으로 흙을 문지르고 씨앗을 뿌리고, 괭이질이 한창이다. 이른 봄의 기척이 땅 위로 번진다. 군데군데 마른 잎이 깔린 길, 수런거림은 없고 혼자 걷는 객의 발소리만 또렷하다. 길은 계곡을 따라 가늘게 이어진다. 홀로 걸으며 사색에 잠기기에 그만이다. ■계곡 너머 자연에 은거한 집 옥산서원에서 자계천을 따라 약 1km 오르면, 물길 너머 기와를 인 집이 보인다. 자연에 조용히 스민 집이다. 계곡을 향해 공간을 틔워 놓은 집, 바람과 물소리가 지천으로 드나드는 풍경은 굳이 붓을 들지 않아도 이미 수묵의 정취를 머금는다. 자계천을 가운데 두고 바라만 보아도 독락에 이른 듯하다. 경주 동쪽, 옥산서원의 안쪽 자옥산 아래 독락당이 있다. 물 흐르고 숲이 드리운 자계골 한켠에 앉힌 집은, 조선 중기 대학자 회재 이언적이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한 공간이다. 1530년, 중종 치세 혼란 속에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세속의 소란을 뒤로하고 이곳에서 삶을 다듬었다. 그리고 7년 뒤, 다시 조정에 불려 나가기까지 골짜기에서 고요한 시간을 쌓았다. 회재의 낙향은 도피가 아니었다. 유교적 이상을 품은 그에게 현실 정치는 번번이 좌절을 안겼다. 무너지는 정의, 흔들리는 조정 속에서 끝내 마음 둘 자리를 잃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곳에서 다시 묵향을 피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사유를 다졌다. 독락당은 그렇게 한 사람의 상처와 성찰, 그리고 사상의 근거지가 되었다. 침묵을 선택한 삶이었지만, 그 침묵은 조선 성리학의 깊은 물줄기로 이어졌다. 자계천을 건너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행랑채가 먼저 마당을 막아선다.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처럼 조심스러워진다. 외부를 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대로 돌아 나갈까 싶다가도 다시 조심스레 발을 들인다. 두 번째 좁은 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내부로 들어설 수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은 더 좁아지지만 사색은 더 깊어진다. 마치 문을 통과하며 스스로 마음을 비워야만 본심을 만날 수 있는 집 같다. 독락당은 땅 위에 낮게 눕듯 지어져 있다. 기단은 낮고 처마는 겸손하다.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듯, 겹겹이, 첩첩이 모여있다. 맞배와 팔작이 뒤엉키듯 얹힌 지붕이며, 권위와 격식을 따르기보다는 사람의 삶에 맞추려 한 집의 형식은, 집을 지은 이의 마음이 모인 구조인 듯하다. 독락당은 회재 선생의 학문과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자, 인간적 고뇌와 성찰이 담긴 곳이다. 그러니 선생의 삶이자 숨결인 공간인 셈이다. 집 구조 너머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이 집이 자연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분리되었다고는 하나 닫히지 않았고, 닫히지 않아 자유로울 수 있다. 독락당은 외부를 밀어내고 혼자 즐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호흡으로 세상과 숨을 맞춘다. ■계정과 양진암 사랑채 안마당 건너 작은 정자가 있다. ‘계정(溪亭)’은 이 집의 진심이 머무는 곳이다. 정자인 듯 방인 듯, 속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계곡을 한껏 들어 앉힌 작은 세계다. 퇴계 이황이 써준 ‘양진암(養眞庵)’은 인근 정혜사 주지 스님이 절집처럼 묵었다는 사랑채다. 한석봉 썼다는 ‘계정’ 현판은 바람이 드나드는 마루의 이름이 되었다. 마루 끝에 서서 내다보는 바위와 물, 허공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은 나를 잠시 인간이 아닌 바람 한 줄로 허공 위에 띄워놓는다. 개울 건너에서 바라보면, 독락당은 계곡 위에 잠시 걸터앉은 풍경 같다. 세속에서 물러나 삶을 가다듬고자 했던 한 선비의 정신이, 지금도 그 자리에 조용히 머물고 있음이다. 풍경에 젖어 넋을 놓을 무렵, 단정한 음성이 들린다. “이른 시각인데, 혼자 오셨습니까.” 돌아보니 한 어른이 미소를 지으며 서 계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른은 잠시 눈빛을 맞추고는 “이렇게 이른 시각에 오는 분은 드뭅니다. 독락당을 보여주기엔 참 귀하고 고마운 걸음이네요.” 하신다. 어른은 회재 이언적의 이야기며, 이 골짜기로 들어와 세속의 시끄러움을 등지고 살았던 이야기, 그가 물소리와 바람결에서 사유를 키웠다는 말을 차분히 건넨다. 마루에 앉아 개울을 바라보면 회재가 왜 이곳을 택했는지 알게 될 것이라며, 스스로를 낮추는 사랑채의 품격과 계정에 얹힌 퇴계의 마음도 전한다. 마치 먼 길을 돌아와 스승의 집을 찾은 제자에게 건네는 깊은 마음의 인사 같다. 계정은 집의 끝, 마루의 끝, 사유의 끝에 놓여 있다. 바위와 물, 나무와 기둥이 어우러진 작은 공간은 거창한 의미를 걸치지 않아도 온전히 완성된 세계다. 좁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사계절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집은 스스로를 열어두었다. 바람이 찾아와 벽을 쓰다듬고, 물소리가 문턱을 넘는다. 혼자 있어도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기다림이 아닌 반김으로 충만해진다. 계정은 방이면서도 정자이고, 몸을 누이는 안락의 처소이면서도 마음을 바로 세우고 다잡는 교육의 자리다. 외부에서 보면 언뜻 허공에 뜬 듯, 바위 위에 잠시 얹힌 허허로운 마음 같으나 직접 집에 들어보면 생각은 곧 달라진다. ■어서각과 사당 집 안 깊숙한 곳엔 ‘어서각(御書閣)’이 있다. 임금이 내린 어필을 보관하는 특별한 공간이다. 권위가 아니라 경외의 상징이며, 회재의 학문이 시대를 건넜다는 증표다. 어서각 옆으로는 사당이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제향의 공간은 제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격식을 따르되, 자랑하지 않는 선비의 태도 그대로다. 마당 한켠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긴 세월 동안 이 집을 지켜온 살아 있는 문장처럼, 줄기마다 고요한 기품이 서려 있다. 자줏빛 목단도 우아하게 피어 있다. 절정을 막 넘어선 꽃은 한껏 넓게 퍼진 꽃잎을 바람에 내리는 중이다. 깊고 짙은 빛은 처마 끝의 부드러운 곡선과 맞닿으며 풍경에 운치를 더한다. 뭣하나 한순간도 경박하지 않고, 지나치지도 않다. 북쪽 담장 아래엔 좁은 쪽문이 있다. 이 문은 오직 정혜사 주지 스님만이 오갔다. 스님과 회재는 오랜 시간 사상적 동반자였다. 유학과 불교, 학문과 수행, 글과 깨달음이 두 사람 사이에서 교차했다. 회재는 때로 정혜사에 기거하며 글을 썼고, 스님은 이 집에 들어 고요히 차를 마셨다. 계정의 마루도, 어서각의 문살도, 주엽나무의 그림자도 회재의 마음과 말씀과 걸음을 기억한다. 이 집은 그저 오래된 고택이 아니다. 정신의 집이다. 사상의 길잡이였던 한 인간이 자기 삶을 오롯이 내려놓은 자리다. 그래서 독락당은 여전히 말이 없고, 그래서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군자가 홀로 즐긴다 함은 속세의 즐거움을 좇지 않고, 학문과 도를 닦으며 그 자체로 기쁨을 얻는 것이다.’ 회재의 말씀이 스친다. 그는 진정한 즐거움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완성을 통해 얻어진다는 것을 깨우친 어른이었다.

2025-05-21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시간의 통로’

태초의 지구는 끊임없이 융합되고 분리되며 단단해져 왔다. 지각 변동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산과 평야, 계곡과 강을 형성하였다. 빗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며 흙을 깎고 돌을 다듬어 아름다운 계곡을 만들었다. 이러한 자연의 손길은 인류의 터전이 되었고, 쉼과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조상들은 계곡 주변에 다양한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정자를 세우며 서원과 별서를 지어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 대표적인 곳이 경북 경주 옥산서원 숲이다. 신록의 계절 오월, 영덕 영해의 동해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돋이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수평선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햇무리와 함께 태양은 파란 하늘에 펼쳐진 흰 구름바다에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붉은 용 같았다. 그 풍광의 황홀함을 가슴에 담고, 경주 안강읍 옥산리에 위치한 옥산서원 숲을 찿았다. 이른 아침이라 초록의 숲에는 자연의 소리와 진한 녹색 향기가 몸을 감싸며 나를 반겨 주었다. 계곡을 따라 난 호젓한 서원 숲길에서는 가슴속 감정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바람에 실려 나뭇잎을 흔들고, 은은한 흙냄새는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소나무, 회화나무, 이팝나무, 느티나무, 참나무, 말채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등 다양한 노거수들로 구성된 혼효림의 숲은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유독 나의 시선을 끈 것은, 땅 위로 드러난 계곡의 느티나무와 숲길 옆에 살아가는 회화나무의 뿌리들이었다. 계곡에서 살아가고 있는 느티나무의 뿌리는 이웃한 나무와 생명을 나누고 있었다. 주름지고 비틀어진 채 돌 틈을 비집고 나온 뿌리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때로는 두 나무의 뿌리가 서로를 감싸며 하나가 되어 자라는 ‘연리근’도 볼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 되어 살아가는 모습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 같고, 고단한 삶을 함께 이겨낸 가족 같았다. 회화나무의 뿌리는 마치 굼틀거리는 뱀 같기도 하고, 용틀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절대 꺾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의지를 떠올리게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버티며 지탱하는 뿌리처럼, 인간도 흔들려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뿌리를 품고 살아간다. 뿌리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며, 묵묵히 존재의 본질을 지탱한다. 하지만 간혹 땅 위로 솟아오른 뿌리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본디 있어야 할 곳을 벗어난 뿌리는 그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칼도 마찬가지다. 칼집에 있을 때 날카롭고 위엄이 있지만, 무방비로 드러나면 오히려 무용해진다. 뿌리는 흙 속에 있어야 한다. 그 자리가 뿌리가 뿌리답게 숨 쉴 수 있는 자리다. 사람도 그러하지 않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보다는 마음속 깊이 품은 책임과 사랑, 침묵의 결심이야말로 진정한 뿌리일 것이다. 아버지의 굳은 등, 어머니의 굳센 두 손처럼 말없이 삶을 지탱해 주는 존재들이야말로 우리 삶의 진짜 뿌리다. 연리근을 바라보며 떠오른 가정의 모습, 함께 버티고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이 그랬다. 혼자 설 수 없을 때 곁을 지켜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숲은 단지 풍경이 아니다. 숲은 또한 기억의 저장고이기도 하다. 수백 년 전 이언적 선생이 옥산서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음성과 책장 넘기는 소리가 숲의 결 사이에 스며들어 지금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잎새의 속삭임은 그때 그 시절의 숨결을 불러내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잊고 있던 삶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나무마다 품고 있는 세월의 결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굴곡져 있고, 가지마다 고인 햇살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숲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잇는 조용한 시간의 통로다. 그 안에는 조용한 가르침이 있다. 바위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처럼, 꿈틀거리며 힘차게 뻗어나가는 회화나무처럼,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흔들림 없는 강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드러나지 않아도 삶을 지탱하도록 그러한 튼실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또한 숲은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모든 자연물상에는 고유의 파동이 있고, 나무에서 나는 파동은 사람의 자기 치유력을 높인다. 어머니가 아이의 아픈 부위를 쓰다듬거나, 두 손을 비빈 후 통증 부위에 얹을 때 통증이 완화되는 것도 파동의 교감 때문이다. 예수가 손으로 병을 고쳤다는 것도 이러한 원리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정서적 불안으로 생긴 질병은 숲에서 치유할 수 있다. 특히 여름 숲은 매미 소리와 녹음으로 가득 차 힐링의 공간이 된다. 자연의 음악, 청정한 향기, 넘치는 기운은 그 자체로 에너지를 충전시켜 준다. 사계 중 봄과 여름 숲은 활발한 증산과 광합성 작용으로 에너지를 풍성하게 하여 우리의 마음도 넉넉해진다. 가을과 겨울 숲은 그 풍성함을 비우는 비움의 지혜를 가르친다. 미국 식물육종학자 댄 칼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을 들은 식물은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라며, 엽록소와 ATP 생산이 증가한다고 한다. 이는 숲이 단순한 나무의 집합이 아니라 건강의 보고임을 보여주는 예다.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나도 그 숲에 흐르다 머물며 내 삶의 뿌리를 되새긴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나를 붙잡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또 다른 누군가의 뿌리가 될 수 있을까. 나무는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뿌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을 이어 간다. 나 또한 내 자리에서 조용히 살아가며, 언젠가 내 뿌리에서 또 다른 가지가 뻗어나가길 바란다. 옥산서원 숲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은 내게 말해 준다.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조용히, 깊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라고. 옥산서원(玉山書院)은… 사적 제154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7에 위치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언적의 학설이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학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이 서원을 처음 세웠고, 이듬해에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유지되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은 초기 건물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형식을 갖추었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동·서재가 있고, 구인당 뒤편에 제향 공간으로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가 있다. 동재 오른쪽의 여러 건물은 서원의 살림을 맡아보던 곳이고 그 뒤편 건물은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아계 이산해와 추사 김정희가 썼다. 2010년 7월에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9년 7월에는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다시 등재되었다. 옥산서원에서 북쪽으로 약 700m 떨어진 곳에 회재의 별장이자 서재(書齋)였던 독락당(獨樂堂)이 있다. 조선시대 대표 서원 9곳은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장성 필암서원, 정읍 무성서원, 함양 남계서원, 논산 돈암서원, 영주 소수서원이다. 이 서원들은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5-21

달아오르는 대선 열기…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의 계절’

세칭 ‘정치의 계절’이 무르익고 있다. 21대 대통령선거가 눈앞으로 다가온 것. 대선에 후보로 출마한 이들은 물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정치계를 떠난다고 선언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 SNS 라이브방송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한동훈 전 법무장관, 역사강사 전한길 씨, 여기에 배우와 가수 등 연예인들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밝히며 ‘대선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지난주와 이번 주 네티즌들의 관심도 정치에 쏠렸다. 인터넷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정치 관련 이야기를 아래 정리한다. ▲국민의힘 질타했던 홍준표, 김문수 후보 지지로 입장 선회 지난달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 경선에서 패한 후 ‘정계 은퇴’를 선언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 그럼에도 정치에 관심을 가진 네티즌들은 아직 홍 전 시장의 SNS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일 출국을 앞두고도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로부터 “이번 선거를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은 그는 이를 거부하며 출국했다. 하지만, 미국으로 가서도 페이스북을 통해 지금의 한국 상황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내온 홍준표는 15일에도 인터넷을 통해 정치권 안팎에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글을 올렸다. “그 당(국민의힘)이 내게 베풀어 준 건 없다. 3년 전 윤석열에게 민심에서 압승하고 당심에서 참패했을 때 탈당하려고 했으나 마지막 도전을 위해 보류했는데 이번 경선에서도 사기 경선을 하는 것을 보고 내 청춘을 묻은 그 당을 떠났다. 30년 전 정치를 모를 때 노무현 전 대통령 권유 따라 꼬마 민주당에 갔다면 이런 의리, 도리,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당에서 오랫동안 가슴앓이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홍준표 전 시장이 털어놓은 속내. 이를 두고 네티즌들 사이에선 설전이 벌어졌다. 혹자는 “더 이상 정치를 안 한다고 했으면, 정치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고 홍준표를 질타한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일흔을 넘기고서야 제대로 한국 정치계가 보이는 모양이다. 더 고민하지 말고 빨리 돌아와서 더불어민주당을 도우라”고 조언했다. 한국은 정치도, 정치인도, 정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들도 너무나 에너지 넘치고, 변화무쌍해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한치 앞도 쉽사리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를 반영하듯 이번 주 들어서는 홍준표 전 시장이 다시 입장을 바꿔 김문수 후보 지지 의사를 표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국민의힘 김대식 의원 등은 홍 전 시장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그가 머물고 있는 미국 하와이로 출국해 짧지 않은 시간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전쟁’에 참여 선언한 연예인들 갈수록 늘어 6월 3일 열릴 대통령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어느 지역,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선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연예계도 다르지 않다. 배우와 가수 등 장르 불문한 연예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맞춰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지지를 선언하며 한마디씩 던지는 말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형국. 지난 13일 가수 김흥국은 김문수 후보 지지를 밝히며 “이번 6·3 대선에서 대한민국과 보수우파 국민을 위해 전국 유세장에 돌겠다. 목숨을 다할 각오로 김 후보를 돕겠다”고 했다. 그는 우파 연예인들이 분위기 메이커가 돼 힘겹게 사는 국민들과 친해진다면 선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김흥국 외에도 탤런트 최준용과 노현희, 개그맨 신동수 등이 이미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 지지를 선언한 상태다. 이재명 후보와 함께 하겠다는 연예인들도 적지 않다. 배우 이원종, 김의성과 가수 이은미 등이 이 후보에게 힘을 보태겠다고 나선 것. 영화감독 이창동과 사학자 유홍준, 시인 황지우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편에 섰다. “이번 대선은 단순하게 한 명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게 아니라 국민의 질문을 담아 대통령이 해야 할 과제를 설정하는 공론화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라는 게 그들의 견해다. 지난 2022년 대선 때 “밥줄이 끊겨도 이재명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배우 박현권은 이번 대선에서도 이 후보를 도울 것으로 관측된다. 연예인들의 말과 행동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와 이재명 후보 지지 의사를 표한 연예인들에 관한 뉴스를 접한 사람들의 의견은 극명하게 갈렸다. 일부는 “내란 세력 중 한 명을 돕겠다는 건 인정할 수 없다”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형수에게 패륜적인 욕을 내뱉는 사람과 더불어 가겠다는 것인가”라는 등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단 떠나는 역사강사 전한길...비난과 위로 엇갈려 고액 연봉을 받으며 오랜 기간 역사강사로 활동했던 전한길 씨가 강단을 떠난다는 소식이 14일 전해졌다. 같은 날 메가공무원 홈페이지엔 ‘전한길 선생님 은퇴에 따른 강좌 수강 안내’라는 공지가 떴다. “수강생 여러분과 메가공무원 회원분들께 아쉬운 소식을 전하게 됐다. 전한길 선생님의 은퇴로 인해 메가공무원과의 계약을 종료하게 됐다”는 게 게시물의 내용. 실상 전한길 씨의 강의계 은퇴는 이미 지난달 8일 유튜브를 통해 알려져 있었다. 이와 관련 전씨는 “강단에선 물러나지만, 이는 은퇴가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전한길 뉴스’ 발행인으로 언론인의 길을 걸으며 국민의 대변인이 되겠다”는 향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른바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지나며 전씨는 출연하던 방송사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았고, 친구 관계도 악화됐으며, 제자들의 악플도 쏟아졌다고 한다. 뉴스를 접한 네티즌들 가운데 몇몇은 “그러기에 판단을 잘 했어야지. 자승자박이다”라는 의견을 보였고, 또 다른 이들은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 강사를 지나치게 괴롭혔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강의계 은퇴 후 정치권으로 갈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 전씨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네티즌들 사이에선 “고향인 경북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할 것”이란 풍문이 여전히 떠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철수 의원 질타에도 ‘마이 웨이’ 가는 한동훈 “정치 참 재미있네. 자기나 열심히 할 일이지 돕지 않겠다는 사람을 왜 비난하나? 그건 한동훈 마음인데.” “당의 대통령 선거 경선까지 나왔다면 안철수처럼 선대위에 합류하는 게 옳은 것 아닌가.” 안철수 의원이 다가오는 6.3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직 제안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비판했다. 안 의원은 15일 국회에서 “김문수 후보가 고독하게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당내 인사들이 적극 나서 이재명 후보 당선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안 의원은 한동훈 전 법무장관을 지목해 “과자 먹으며 인터넷 라이브 방송할 때가 아니다.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아면 이제 당과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에 나서달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최근 한 전 법무장관은 SNS를 통해 사람들과 활발하게 소통 중이다. 현실 정치에 관한 이야기도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영화 등도 시청자들과의 이야기 소재다. 식사를 하거나, 좋아한다는 과자를 먹을 때도 라이브 방송은 계속된다. 안철수 의원의 비판과 한동훈 전 법무장관의 태도를 두고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절체절명의 시기에 저러는 걸 보니 아이 같다”고 한 전 장관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탄핵에 대한 입장이 다른 사람을 당만 같다고 도울 수는 없지 않는가”라는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편 20일 한동훈 전 장관은 부산에서 지원 유세에 나섰다. 국민의힘 선대위와는 조율이 없었고, 독자적 결정에 따른 것이었고 한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5-20

피해 주민에 임시주택 제공·관광객 유치 선물꾸러미 마련

자연이 가져오는 재해는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영역 바깥에 있다. 그렇기에 예측이 어렵고, 번져가는 재난의 속도를 감당하기가 힘겨우며, 또한, 재난 이후 일상으로의 복구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산불과 홍수 등 천재지변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 그러한 재난과 재해를 이겨내고, 향후 그와 유사한 불행을 막아내는 지혜를 모으는 건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몫이다. 지난 역사를 돌아봐도 언제나 그러했다. 850여 이재민 발생·관광객 40% 줄며 주왕산 상가 개점휴업 숙박·식사·체험 등 일정금액 소비하면 지역 농특산품 증정 “올해만큼은 고향 방문을” 출향인들에게도 간절한 마음 호소 ‘악마의 불길’ ‘경북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미증유의 화마’로 불린 경북 산불. 크나큰 재해를 겪은 이후 졍상북도 각 지자체들은 고통의 오늘을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미래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적지 않은 산불 피해를 입은 청송군의 입장도 다를 수 없다. 아래에서 청송이 어떤 방식과 자세로 ‘재난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에도 다시 일어서려는 몸부림 지난 3월 25일. 청송군을 덮친 대형 산불은 자연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일상까지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파천면, 청송읍, 진보면 일대로 번지며 4명의 인명 피해와 850여 명의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청송의 주요 경제적 기반이자 관광자원인 과수원과 산림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막대한 재산 피해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맑은 공기와 청정 자연으로 ‘산소카페’라 불리던 청송은 한순간에 상처 입은 땅이 되었고, 그 여파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청송은 주저앉지 않았다. 군은 산불 진화 직후부터 신속한 복구에 행정력을 집중했다. 특히 피해 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기존 생활 반경 내에 임시주택을 설치하는데 주안점을 둬 주민들이 낯선 환경이 아닌 익숙한 이웃과 장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주택 철거, 폐기물 처리와 함께 산사태 방지 등 2차 피해 예방 사업도 촘촘히 진행되고 있다. 청송군은 “끝까지 책임지고 주민 한 분 한 분이 조속히 일상으로 복귀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물리적 복구 이상의 과제가 남아 있다. 바로 관광 회복이다. 청송은 매년 주왕산, 주산지, 달기약수탕, 송소고택 등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다. 그러나 이번 산불은 관광산업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청송군에 따르면 2025년 3~4월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약 40% 가까이 급감했다. 주왕산 탐방로는 산불로 인해 한 달가량 통제돼 주왕산 상가는 개점휴업 상태였으며, 특히 달기약수탕 상가는 식당 대부분이 화재로 전소돼 영업조차 할 수 없는 상태다. ▲청송의 주요 관광지 예전처럼 되살릴 방안 찾아야 관광객의 부재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생계 위협으로 직결된다. 이에 청송군은 ‘여행이 곧 기부’라는 구호를 내걸고,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에 나섰다. 산불 피해 지역을 찾는 일이 혹시 피해 주민에게 부담을 줄까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걱정에 청송군은 단호하게 답한다. “오히려 지금 외지인들의 발걸음이야말로 주민들에게 가장 큰 위로이고 희망이다.” 실제로 군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외식은 민폐가 아니라 공동체 회복을 돕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문자를 발송하며 침체된 지역 소비를 다시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이는 한 끼의 외식, 여행이 누군가에겐 생계의 끈이고 공동체의 회복을 이끄는 실질적 기여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호소다. 청송군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책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 기존의 단체관광객 인센티브 사업과 별도로 올해 4월부터는 ‘개별관광객 인센티브 지원사업’을 운영 중인 것. 2~5명 규모의 가족 단위나 소규모 방문객을 대상으로 청송의 주요 관광지 2곳 이상을 방문하고 SNS에 인증한 후, 숙박·식사·체험 등으로 일정금액 이상을 소비하면 지역 특산품을 증정하는 방식이기에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다. 7만 원 이상 소비 시 2만 원 상당, 14만 원 이상 소비 시 4만 원 상당의 꾸러미를 제공하며, 이 꾸러미는 청송 사과를 비롯한 지역 농특산물로 구성됐다. 해당 사업은 청송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청송군은 이번 산불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크게 느꼈을 출향인들에게도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올해만큼은 고향을 찾아달라. 고향의 밥상 한 끼가 큰 힘이 된다.” 청송군의 이 호소는 단순한 초청이 아니라 지역의 회복을 함께해달라는 공동체적 연대의 요청으로 해석된다. 현재 청송군은 산불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이 최우선인 상황이기에, 대규모 행사는 당분간 자제할 방침이다. 하지만 청송의 상징이자 자부심인 ‘청송사과축제’만큼은 조심스럽지만 예정대로 개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는 10월 말 열릴 청송사과축제는 ‘위로’ ‘희망’ ‘재도약’ ‘용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구성해 피해 농가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외지 관광객들을 다시 청송으로 불러 모아 침체된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전망이다. ▲“혹시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번엔 청송으로...” 지금 청송은 상처를 꿰매며 다시 녹음을 틔우고 있다. 주왕산의 등산로는 대부분 다시 열렸고, 상당수 관광지도 안전하게 개방됐다. 무엇보다 청송 주민들도 관광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매일 닦고, 손질하고, 방문객을 기다린다. 봄을 놓쳤지만 여름이, 가을이 기다리고 있고 그 계절을 함께 해줄 사람들을 애타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경희 청송군수는 “혹시 여행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번엔 청송으로 와주면 좋겠다. 여러분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청송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할 수 있다”는 말로 청송 방문을 호소하고 있다. 여행과 관광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산불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 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가 모인다면 청송을 비롯해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의 여러 고장들이 보다 더 아름답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김종철·홍성식 기자

2025-05-20

첨단베어링국가산단 활성화로 활력 넘치는 미래형 도시 도약

영주시는 대선이 실시되는 6월 3일까지 투표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선거와 관련해 정치적인 중립과 공직기강에 세심한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시는 공무원들의 부당한 선거 영향력 행사 근절과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는 공정한 선거를 위한 기초라며 직무와 직위를 이용해 선거에 개입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공직기강 확립에 역점을 두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고용 창출·청년 인구 증가 도시로 성장 도모 소백산·부석사·선비촌 등 문화자산 바탕 힐링도시 인프라 구축 노벨리스코리아·SK머티리얼즈 등 기업 미래 성장 동력으로 육성 영주시가 3월 13일부터 이재훈 부시장 권한대행 체제로 시정이 운영되고 있다. 영주시장 권한대행 체제 돌입은 영주시장이 대법원 판결로 귈위 됨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선출돼 임기를 개시할 때까지 이재훈 부시장이 시장 권한을 대행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이재훈 부시장은 법령과 조례, 규칙에 정해진 자치단체장의 권한에 속하는 모든 사무를 관장하게 됐다. 시는 현재까지 추진해 온 분야별 사업과 효율적인 운영 전략을 기반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창조경제와 미래형 도시 비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주시는 자연 자원을 활용한 산림치유형 관광, 산업화, 농업 등이 어우러진 도시라는 강점을 이용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 창출, 청년이 늘어나는 도시로의 성장을 기획하고 추진 중이다. 영주시의 특징인 유불·문화의 도시라는 특성을 살려 불교·유교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현대 문화와 접목하는 미래형 문화자산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주시는 선비사상의 중요성과 우리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선비문화 포럼 및 학술대회 개최, 선비정신을 몸소 실천한 사람과 단체에게 선비대상을 시상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볼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영주시는 차별화된 문화산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또, 문화산업을 주요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소백산과 부석사, 선비촌, 선비세상, 무섬마을, 영주댐 등이 있는 역사문화 관광도시 영주는 자연 문화자산을 바탕으로 힐링도시로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성장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에 전력하고 있다. 영주시에는 노벨리스코리아, 일진 베어링, sk머티리얼즈와 같은 굴지의 기업이 활동 중이다. 특히 첨단베어링국가산단의 확정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영주시장 권한대행에 들어간 시는 시정 운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중요한 시기로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행정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영주시 자체로서 빛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시는 스스로가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와 함께 진화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변화와 발전을 위해 현재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이 영주시의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며 모든 공직자가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며 진취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는 영주시는 활력 넘치며 누구나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 활력이 넘치는 경제도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명품 미래형 도시를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는 시정을 운영함에 있어 어떠한 경우라도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과 시민들의 불편 사항을 선제적으로 점검하고 신속히 대응해 시정 공백을 염려하는 시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내부적으로도 공직기강 확립과 주요 현안 및 정책이 차질 없이 추진 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또, 업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를 정비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다. 권한대행 체제에 들어간 2개월 만에 열린 영주선비문화축제는 성공적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정 운영의 안정성과 유연성을 보여준 첫 사례가 됐다. 특히 역세권 주차타워, 뉴빌리지 사업, 더이음 어울림센터 건립, 인구활력센터, 상망동 우리동네 살리기 사업, 농기계 임대사업 거점센터 신축, 지역활력타운 대상지 등 주요 사업 현장을 찾아 현장 행정에 적극 나서면서 사업 기반을 견고히 다져가고 있다. 영주시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명품도시로서의 성장과 함께 신성장 동력 확보에 따른 경쟁력 있는 도시, 복지와 산업, 명품 교육이 있는 도시, 시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도시재생사업 추진 등 발로 뛰는 행정으로 복지가 있는 행복도시 견인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주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조직이며 공직자들이 지금까지 쌓아 온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을 확보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재훈 영주시장권한대행 인터뷰 ‘시장 궐위’ 상황 맞아 시정 연속·안정성 확보 최우선 -권한대행으로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시장 궐위라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해 시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로 시민 우려 불식을 위해서는 법과 원칙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시정을 운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주시가 지금까지 추진해 온 주요 현안 사업들과 정책들이 차질 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연속성과 안정성 확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행정 차질 해소를 위한 대응책은.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지금까지 추진해 온 사업들을 연속성 있게 이끌고 사업들이 차질 없이 운영될 수 있도록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시정의 각종 현안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해 시민들이 조금의 불안감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전국의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영주시 또한 인구 감소, 지방 소멸, 경기침체 등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는 지속 가능한 성장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꾸준히 추진해 온 만큼 지금까지의 성과가 빛을 잃지 않도록 정책적 연속성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내부적으로도 공직기강 확립과 주요 현안과 정책이 차질 없이 추진 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또한 업무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를 정비해 시민 불편을 최소화 하는데 집중하겠다. -영주 시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시민들께서 많은 걱정과 우려를 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이야말로 모든 공직자가 더욱 하나로 뭉쳐 단단하게 시정을 이끌어야 할 때다. 시민 여러분께서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영주시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조직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직원들이 각자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원칙과 절차를 통해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을 확보해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다. 영주의 미래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해 나가며 영주시정에 멈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 이재훈 권한대행은 1996년 포항시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경북도 산림산업관광과장, 환경정책과장, 경제정책노동과장 등을 거쳐 2024년 7월 영주시 부시장으로 부임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5-05-19

낙동강 품에서 자란 느티나무… 500년 역사와 품격

경상북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3대 문화권이 있다. 경주를 중심으로 한 불교문화권, 안동을 축으로 한 유교문화권, 그리고 고령을 중심으로 한 가야 문화권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고령의 가야 문화권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어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이 문화권은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 중하류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낙동강은 오랜 세월 동안 영남 내륙을 휘돌아 흐르며 수려한 자연경관을 창조함은 물론 영남의 젖줄로 곳곳에 기름진 땅과 생명이 깃드는 쉼터를 만들어왔다. 그 낙동강을 따라가다 보면 고령군 다산면 노곡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거대한 느티나무 노거수가 마을의 들판과 낙동강을 굽어보고 있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그 위용은 한눈에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낙동강의 생명력, 그리고 그 곁에서 반 천 년을 훌쩍 넘긴 삶을 지켜온 나무와 마을 주민들이 얽힌 이야기가 이 마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경상북도청 자연보호 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고령군 다산면 낙동강 변의 모래사장을 찾은 적이 있었다. 때마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세계적 희귀종, 철새인 흑두루미들이 그곳에서 노닐고 있었다. 흑두루미는 시베리아와 몽골의 습지에서 번식한 후, 일본 가고시마의 이즈미 평야로 이동한다. 그 긴 여정의 오고 가는 중간 기착지 중 하나가 바로 이곳, 다산면 낙동강 둔치이었다. 노곡리 ‘새창재’ 꼭대기에 뿌리를 내린 마을의 정신적 중심·수호신 같은 존재 반 천 년 동안 마을과 낙동강을 굽어봐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에서 더위 식히고 정월 대보름이면 나무에 동제를 올리며 공동체 안녕과 마을의 풍년 농사를 기원 다른 새들이 숲속에서 짝을 지을 때, 흑두루미는 공중에서 사랑의 유희를 펼친다. 암컷이 먼저 날아오르면, 수컷이 그 뒤를 따라 솟구쳐 오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그 장면은 마치 고요한 자연 속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 신비로운 춤사위처럼 느껴졌다. 이곳은 흑두루미에게 먹이와 휴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생태적 거점으로, 낙동강의 너른 둔치는 조용하고 안전한 환경 덕분에 해마다 수많은 철새가 찾아드는 생명의 오아시스이었다. 그 강을 바라보고 있는 고령 노곡리 마을 언덕 위에 우뚝 선 한 그루의 나무 앞에 섰다. 바로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장수한 느티나무 노거수다. 1982년 10월 29일 보호수로 지정되었으며, 당시 이미 460년의 세월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었다. 지금은 500살에 이른 장수목으로, 다산면 노곡리 산 37번지, ‘새창재’라 불리는 구릉지 꼭대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주민들은 이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숲을 가꾸었고, 1986년 4월에는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도 세워 두었다. 팔각정자와 풍경 조형물, 나무 의자가 설치되어 쉼터의 역할을 하며, 주위에는 15년생 느티나무 다섯 주와 배롱나무 열 주가 심겨 있어 노거수의 품격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느티나무는 누군가 마을 주민이 인공적으로 심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오랜 세월 고령의 바람길을 따라 계절마다 다른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살아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느티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마을의 정신적 중심이며 수호신 같은 존재다.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정월 대보름이 되면 나무에 동제를 올리며 공동체의 안녕과 마을의 풍년 농사를 기원하였다. ‘노곡동의 유래’에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유좌묘향(酉坐卯向)’이라 하여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바라보는 형세다.”라고 했다. 느티나무를 ‘사정수(射亭樹)’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경치가 수려하고 바람이 시원하여, 이곳에서 활쏘기 행사가 자주 열렸다고 한다. 성주 목사가 행차 도중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지금도 나무 아래에 서서 들판을 바라보면, 주변의 형세가 한눈에 들어와 이 같은 전설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노곡리는 단순한 시골 마을을 넘어, 지형과 역사, 생태와 풍수의 의미가 어우러진 특별한 공간이다. 마을 입구에 ‘노곡동의 유래’가 새겨진 큰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비봉산의 맥이 동쪽으로 뻗어 멈춘 자리이자,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만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마을의 옛 이름은 ‘영천동(靈川洞)’이었으며, 이후 ‘백자촌(白子村)’으로 불렸다. 백 가지 약초가 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이 일대는 전국 향부자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향부자는 다년생 식물로, 뿌리를 약재로 쓴다. 은은하고 독특한 향 덕분에 한방차나 한약재로 귀히 여겨졌다. 고령 낙동강 변의 모래 둔치는 배수가 잘되고 햇볕이 풍부하여 향부자 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노곡리는 자연과 생약이 조화를 이루는 풍요로운 땅이 아닐까 싶다. 500년을 살아온 고령 노곡리의 느티나무 노거수는 단순한 경관 물이나 쉼터가 아니다. 그것은 마을의 역사와 공동체의 삶을 지탱해 온 살아 있는 문화재, 자연유산이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어주고, 마을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가 되며, 마을 사람들의 삶과 교류를 이어주는 중심이 되어왔다. 마을 주민들은 나무 아래서 힘든 삶을 내려놓고,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살아왔다. 나무는 모든 계절과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마을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느티나무 노거수 앞에 서니, 오랜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존재의 기품과 품격을 느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했다. 경북 고령 노곡리의 느티나무 노거수는 우리에게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지혜와 경외심을 일깨워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느티나무가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쉼과 영감을 주는 노거수로 남기를 기원했다. 노곡동의 유래 비봉산의 한줄기 맥이 동으로 달려 멈춘 곳과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흘러 서로 만난 곳이 노곡리인데 옛 지명은 영천동(靈川洞)이라 하였으나 그 후 백자촌(白子촌)이라 불렀으며, 백자촌이란 백 가지 생약이 생산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한약재인 향부자는 노곡리를 중심으로 전국의 90%나 생산되고 있다. 그 후 답곡동(畓谷洞)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에 노곡동으로 개칭되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산천 정기가 준수하여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에 앙심을 품은 어떤 사람이 산천 정기를 절맥하고 다녔는데 아시현 고개를 절맥 시 땀이 난다고 하여 땀고개라 불렀으며, 우리 동네 노현고개 절맥 시 이슬이 맺혔다고 하여 이슬고개라 하였고, 우리 동네 동편에 선달산이 있었는데 산이 서서 달아나 강을 막는다고 하여 못 가게 당겨 잡은 손자국 흔적이 바위에 남아 있었는데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하여 손자국이 없어졌다. 노곡리 앞산에 수령 500년 정도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경치와 활쏘기에 너무 좋아 사정수(射亭樹)라고도 불렸다. 현재로서는 마을 정자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 성주 목사가 출두하면 사정수에서 쉬어가기도 했다고 하며 나무가 서 있는 방향이 유좌묘향(酉坐卯向)으로 고개 정상에 서 있어서 삼복더위에 노인들이 상의를 탈의하고 앉아보면 더위를 한 번에 식힐 수 있는 풍광이 좋은 절경이다. 동으로 낙동강이 마을 앞 들판을 감싸 기름지게 하며 마을 뒷산에는 중록당과 할매능이 있어 매년 정월 보름날 주민들의 마음을 모아 동제를 지내고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2025-05-14

용장골에서 시작된 판타지 신화

■ 자연을 품은 탑, 침묵을 품은 시간 숨을 고르며 숲의 끝자락을 막 빠져나오려는 찰나, 시야를 가르며 새하얀 탑 하나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 진달래의 분홍빛과 나무숲의 초록빛에 취해갈 무렵, 능선 끝에 우뚝 선 탑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다. 석탑은 용장골에서 가장 높은 벼랑 끝, 아찔한 암반을 기단 삼아 곧게 서 있다. 바람과 구름이 먼저 다녀가는 곳. 탑은 누군가의 기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연의 일부인 듯 하다. 기단을 따로 놓지 않고 자연 암반 위에 그대로 올렸으니, 산이 탑이고 탑이 산을 이루는 셈이다. 어쩌면 이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전이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탑의 몸체에는 어떤 문자나 장식도 없다. 밋밋한 여백, 그 자체로 완결된 탑이다. 기단도, 몸체도, 옥개석도 어디 하나 군더더기 없다. 비록 도굴과 파손은 겪었으나, 완벽에 가까운 모습이다. 일제강점기 때 복원되었지만, 탑은 사람의 손이 아닌 바람과 햇살이 다듬은 듯 자연스럽다. 석탑의 뒤편으로는 고위산과 용장골, 은적골의 능선이 물결치듯 흘러간다. 앞으로는 경주의 드넓은 들판과 형산강이 펼쳐진다. 탁 트인 시야 속에서 모든 경계는 허물어진다. 이곳에 서면, 과거와 현재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하다. 탑은 천 년 전의 바람과 오늘의 햇살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모든 것을 다 품는다. 탑은 오랫동안 보아 왔을 것이다. 들판이 농지로, 마을로, 도시로 변해가는 과정을. 전쟁과 평화, 황폐와 풍요를 말하지 않지만, 탑은 다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자리에 와 절을 하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간다. 탑 앞에 선다는 것은 단지 돌 앞에 서는 일이 아니다. 무언의 정신과 믿음, 역사의 침묵,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의 흔적 앞에 서는 일이다. 보물 제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벌판·형산강 바라보이는 벼랑 끝 문자·장식 하나 없이 그 자체가 완결판 보물 제187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 삼단 좌대 위에 앉은 머리 없는 부처상 보는 이의 마음으로 부처의 얼굴 완성 보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 병풍처럼 펼쳐진 화강암에 새긴 불상 1924년 조선총독부 복원 기록 남겨져 ■석조여래좌상의 불두는 어디에 조금 내려오니 공중에 떠 있는 부처의 등이 보인다. 보물 제187호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이다. 3단 좌대 위에 웅장하게 앉아 있는 부처는 머리가 없다. 그러나 불두의 부재는 공허함이 아니라 오히려 강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서쪽을 향한 부처는 가슴으로 바람을 안는다. 가볍게 흘러내린 가사의 주름은 조각의 정밀함을 넘어 바람의 결을 담아낸다. 옷고름은 마치 방금 묶은 듯 단정하며, 매무새가 살아 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금방이라도 풀어질 듯 가볍다.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는 수백 년의 무게가 깃들어 있다. ‘삼국유사’는 이 부처에 관한 전설을 전한다. 경덕왕 시절, 용장사의 주지였던 대현이 매일 탑을 돌며 염불하자, 석불의 얼굴도 함께 따라 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여래좌상을 미륵불로 보기도 한다. 석불의 목덜미에는 내리친 듯한 흔적이 있다. 불두의 상실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어떤 이는 일제강점기의 만행으로, 또 어떤 이는 조선시대 숭유억불의 여파로 보기도 한다. 시대는 늘 신을 두려워했고, 동시에 제거하려 했다. 머리가 없다는 것은 곧 표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얼굴은 단지 눈, 코, 입으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보는 이의 마음이 부처의 얼굴을 완성한다. 내가 슬플 때 부처도 슬퍼 보이고, 내가 웃을 때 부처도 웃는다. 어쩌면 얼굴은 잃었지만 더 많은 얼굴을 품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부처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과 마주해온 존재일 것이다.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마애불 손으로 그린 불심 석불 뒤, 병풍처럼 펼쳐진 암벽에는 보물 제913호,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여래의 형상은 암벽에서 살짝 도드라져 ‘앉아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느슨한 경계 속에서도 풍겨 나오는 기운은 오히려 단단하고 고고하다. 옷자락엔 잔잔한 주름이 물결치고, 가사의 선은 여울처럼 흘러내린다. 화강암의 자연스러운 무늬와 가사의 결이 겹치며, 언뜻 호랑이 무늬처럼 보인다. 금방 잠에서 깬 듯한 두 뺨과 통통한 입술, 긴 귀와 오뚝한 코는 아이 얼굴처럼 해맑다. 마애여래좌상의 손은 마주 보는 나의 손 높이에 있다. 어쩌면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이 자리에 앉은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부처의 손에 내 손을 올려본다. 따뜻하다. 부처의 손은 이미 수많은 손을 받아들였고, 그 온기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이름 모를 기도자들, 이 길을 지나며 눈물 흘리는 누군가의 마음이 손 위에 얹혔을 것이다. 마애여래불이 새겨진 바위 한켠에는 명문이 남아 있다. ‘三層石塔 大正 十一年(삼층석탑 대정 11년), 三層佛塔 大正 十二年(삼층불탑 대정 12년), 小石毾 殘部 大正 十三年 春 再建(소석탑잔부 대정 13년 춘 재건)’. 삼층석탑은 대정 11년(1922), 삼층불탑은 대정 12년(1923) 도굴로 무너진 상태였지만, 부재를 모아 대정 13년(1924) 봄에 다시 쌓았다는 내용이다. 식민의 그늘 아래 조선총독부가 남긴 복원 기록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약탈과 파괴의 시대, 그들의 손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는 것 자체가 역설로 읽힌다. ■바람으로 기억되는 용장사터 용장사터로 내려와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바람이 고요하게 골짜기를 훑고 지나간다. 사찰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기도하는 땅’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골짜기에 법등을 밝히던 용장사는 어디로 가고, 지금은 까마득한 빈터만 남아 객을 부르고 있을까. 눈을 감으면 법당의 기둥이 우뚝 서고, 그 앞에 부처가 놓여 있던 풍경이 되살아난다. 석불좌상과 마애여래, 그리고 삼층석탑은 능선을 따라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용장사는 더 이상 절이 아니라, 기억이고 기원이다. 석불과 석탑은 신라의 믿음을 보여주는 유물이자, 오늘날 나의 믿음이 머무는 상징이다. 사람은 떠났지만 부처는 남았고, 지금도 바람을 타고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신앙이든 사유든, 이 땅은 여전히 무언가를 품고 있다. 그것은 말 없는 위로이며, 손대지 않은 정의다. 문득 새가 되고 싶다. 날개를 퍼덕여 금오봉과 고위봉을 훨훨 날아다니고, 능선을 따라 부처들의 얼굴을 한 번씩 어루만지고 싶다. 머리 없는 석불의 목에 잠시 앉아 사라진 얼굴이 되어보고, 마애여래좌상의 손바닥에 앉아 한 송이 꽃이 되어보고 싶다. 삼층석탑의 지붕 위에 내려앉아 천 년을 바라보다, 끝내는 탑이 되어 세월을 지키고 싶다. 다 사라지지 않아도 좋다. 다 남지 않아도 괜찮다. 없는 것은 가고, 남은 것은 그저 남는 대로 머물렀으면 한다. 꾸밈없이, 스스로의 자리에서. ■금오신화, 숨어서 쓴 이야기 용장사, ‘갑술삼월일용장사(甲戌三月日 茸長寺)’라 새겨진 기와 한 조각이 발굴되며, 오래도록 잊혔던 절의 이름이 다시 불렸다. 깊은 골짜기에 불을 밝히고 마음을 모으던 사찰이다. 신라의 유가종 종조 대현 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라 전하나, 언제 어떻게 폐사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홀로 남은 석축과 탑의 부재들이, 사람 없는 절의 시간을 묵묵히 감싸고 있다. 조선 초, 세상이 무너졌을 때 김시습은 책을 불살랐다.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성통곡하며 벼슬길을 끊고 속세와 등졌다. 유유자적 떠돌던 시습은 마침내 이 골짜기에 이르러 은둔한다. 용장골, 시습은 이곳에서 ‘금오신화’를 지었다. 현실과 전설, 인간과 신령이 겹쳐 흐르는 이야기다. 문장은 골짜기 바위처럼 무심했고, 계곡물처럼 끊임없었다. 세조가 그를 데려가려 했으나, 그는 몸을 감췄다. 김시습은 골짜기마다 미친 척 희희낙락하다가, 결국엔 산기슭 꽃 한 송이, 바람 한 점에도 슬퍼하며 북향화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가 서성였을 벼랑에는 키 작은 소나무 한 그루가 그를 대신한다. 상상해 본다. 바위 벼랑 아래 작은 암자 하나, 그 속에 몸을 누인 김시습. 바람이 문을 두드리면 “뉘시오? 그저 시나 한 수 읊고 가시오” 하고 웃을 것 같은 키 작은 탁발승. 용장사는 무너졌지만, 김시습의 발자취는 여전히 이곳에 있다. 요요하고 적적한 풍경 속에 남은 것은 오히려 더 깊다. 사라진 절보다도, 살았던 이의 숨결이 더 생생하다. 진짜 절은 바위와 물과 바람 사이가 아니었을까. ■시(詩)가 흐르는 용장계곡 용장계곡에는 물소리와 함께 과거가 흐른다. 설잠교를 건너 바위에 걸터 앉는다. 햇볕은 사위어가고, 저무는 빛이 계곡물에 부서진다. 흐르는 물소리 위로 매월당의 시가 흐른다. 시간은 이 골짜기에서만큼은 직선이 아니다. 굽이치며 지난 것을 끌어안고, 다가오는 것을 품는다. 용장골은 여전히 살아 있다.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 마음속에 깃들고, 나는 그 속에서 또 한 줄의 시를 읊는다. 용장사 경실에 머물던 감회 김시습 용장산 골짜기가 아주 고요해서 사람의 왕래를 볼 수 없구나 가랑비가 시냇가 대나무를 일깨우고 저녁 바람이 들판의 매화를 감싸는구나 집안의 작은 창도 잠에 빠져 있고 마른 가래나무도 여전히 회색을 띠고 있네 초가 처마 쪽 밭두둑이 알지 못하는 사이 마당 꽃밭에 꽃이 지고 또, 피는구나 설잠교를 건너니 길이 순하고 연하다. 물소리, 바람 소리 벗하며 한가로이 걷기에 더없이 좋다. 물가에도 진달래가 한창이다. 정신이 어질하다. 과거의 그림자를 따라 걷던 나의 발걸음이, 드디어 현재라는 빛 속으로 스며든다.

2025-05-14

벤처 유치·육성 선순환 구조 ‘튼튼’… 창업도시 구미로 ‘도약’

구미시와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이 창업기업 유치와 육성에 획기적 성과를 거두며 구미의 창업도시특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첨단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의 유입과 창업 △지역기업과의 기술협력 △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며 트리플 융합효과가 확산되고 있다. 정밀 컬러렌즈 ‘컬러렌’ 구미 입주 수술 내비 ‘에이포렙’ 상용화 성공 에프에스엔메디컬코리아 美 진출 골프업체 ‘엑스빅’ 북미 수출 계약 市 ‘스타트업 필드’ 조성 벤처 지원 유망 기업·기술, 市 차원 뒷받침 □ 초정밀 컬러렌즈 제조기업 ‘컬러렌’, 구미에 새 둥지 지난 3월 구미에 새로 설립된 ‘컬러렌’은 세계 최고 수준인 20,000DPI급 초정밀 인쇄 기술을 활용해 고해상도 컬러 콘택트렌즈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대구에서 사업을 시작한 컬러렌은 공장 부지 확장을 검토하던 중 구미시의 적극적인 유치 제안을 받아 구미 인동22길로 이전을 결정했다. 현재 구미 지역 내 공장 매입과 장비 구축이 진행 중이며, 구미형 스타트업 TipTop 육성사업을 통해 클린 룸 구축비 2억 원을 지원받아 하반기 초도 생산 물량 20만 개를 국내에 납품할 예정이다. 향후 일본 등 해외시장 진출도 계획 중이며, 하반기까지 20명의 신규 채용을 추진하고 있다. □ 수술용 내비게이션 ‘㈜에이포랩’, 상용화 가속 ㈜에이포랩은 수술 정확도 1mm 이하, 영상 정합 100%를 구현하는 혁신적인 수술용 내비게이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미형 TipTop 사업에 선정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을 통해 기술력과 제품 안전성을 입증했고, 하반기에는 서울 S병원 구강외과에 안면 수술용 내비게이션을 납품할 예정이다. 구미시와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은 구미형 TipTop 사업으로 ISO13485, GMP 등 필수 인증 확보를 위한 2억 원 규모의 지원뿐만 아니라, 인건비 지원, 중기부 사업화 지원 등 국비 확보 정보 제공, 현장 실무자 매칭 등을 통해 사업화 전 단계를 밀착 지원하고 있다. ㈜에이포랩은 지난 4월 중기부 초기창업패키지(1억 원), 신용보증기금 퍼스트펭귄 프로그램(20억 원 보증)에 잇따라 선정됐고, 2억 원 규모의 벤처투자 유치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 TIPS 프로그램 연계 국비 R&D 과제(5억 원) 수주도 준비 중이다. 또 2025년까지 총 10명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또 구미지역 대학 및 고교 졸업생 유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박재영 대표는 “경북 의성 S/W 마이스터고 졸업생 3명을 채용해 2개월 내 구미로 전입시키겠다”고 밝혔다. ㈜에이포랩은 수술 정확도 1mm 이하, 영상 정합 100%를 구현하는 혁신적인 수술용 내비게이션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구미형 TipTop 사업에 선정돼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대학병원 등)을 통해 기술력과 제품 안전성을 입증했고, 하반기에는 서울 S병원 구강외과에 안면 수술용 내비게이션을 납품할 예정이다. 구미시와 구미전자정보기술원은 구미형 TipTop 사업으로 ISO13485, GMP 등 필수 인증 확보를 위한 2억 원 규모의 지원뿐만 아니라, 인건비 지원, 중기부 사업화 지원 등 국비 확보 정보 제공, 현장 실무자 매칭 등을 통해 사업화 전 단계를 밀착 지원하고 있다. 이에따라 ㈜에이포랩은 지난 4월 중기부 초기창업패키지(1억 원), 신용보증기금 퍼스트펭귄 프로그램(20억 원 보증)에 잇따라 선정됐고, 2억 원 규모의 벤처투자 유치와 함께 중소벤처기업부 TIPS 프로그램 연계 국비 R&D 과제(5억 원) 수주도 준비 중이다. 또 2025년까지 총 10명의 신규 채용을 계획하고 있으며, 구미지역 대학 및 고교 졸업생 유입도 함께 추진 중이다. 박재영 대표는 “경북 의성 S/W 마이스터고 졸업생 3명을 채용해 2개월 내 구미로 전입시키겠다”고 밝혔다. □ ㈜에프에스엔메디컬코리아, 글로벌 시장진출 성과 톡톡 구미형 TipTop 사업으로 2억 원의 지원을 받은 ㈜에프에스엔메디컬코리아는 미국 자동차 및 의료기기 시장에서 라이트필드 3D 디스플레이 기술로 주목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이 기술은 시점추적 AI와 무안경식 3D 기술을 결합해 기존 제품의 단점을 보완하며,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24년 기준 매출 53억 원(수출 12억 원 포함)을 달성했으며, 3억 원 의 투자유치에 성공해 생산시설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구미시는 기술보증기금, 신용보증기금 등 보증기관 매칭, 중기부 창업도약패키지 등 국비사업 연계지원을 통해 ㈜에프에스엔메디컬코리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대를 지속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 구미시 스타트업 필드를 통해 초기 벤처기업 성장지원 본격화 구미시는 창업 5년 미만 초기 벤처기업을 위해 구미시종합비즈니스센터에 ‘스타트업 필드’를 조성하고 전국 최저 수준의 임대료와 전방위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구미로 이전한 기업에는 임대료 전액 무상 지원, 입주공간 인테리어 지원 등 파격적 혜택이 제공된다. 스타트업 필드는 인근에 지역대학·연구센터가 밀집해 있어 기술협력, 인재수급, 연구개발 환경에서 탁월한 입지를 자랑한다. 지난 4월 실시한 입주기업 사전모집(1차) 결과 총 42개사(관내 25, 관외 17)가 신청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구미시는 이 공간을 기반으로 제품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의 핵심 생산거점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 구미시 최초 CES 2025 혁신상 수상기업 ‘(주)엑스빅’북미 수출계약 체결 구미시의 스타트업 해외 전시회 참가 지원사업을 통해 CES 2025 혁신상을 수상한 ㈜엑스빅의 AI 기반 골프 타겟팅 솔루션 ‘에이밍뷰’와 ‘퍼팅뷰’가 본격적인 글로벌 진출에 나섰다. ㈜엑스빅은 구미시 최초 CES 혁신상 수상 이후, 미국 PGA 골프쇼 참가와 현지 바이어 미팅 등 글로벌 시장 개척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 결과, 지난 5월 3일 미국 시애틀에서 1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북미 시장 진입의 신호탄을 쏘았다. 이번 계약은 ㈜엑스빅의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이 세계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시는 2025년 신규사업인 ‘New Venture 지원사업’(1억원)을 통해 ㈜엑스빅의 차세대 신모델 개발과 글로벌 판로 확대를 집중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유망 기술기업으로의 성장을 적극 뒷받침할 계획이다. 구미시는 ‘초기–혁신–글로벌’로 이어지는 3단계 창업지원 전략을 바탕으로 지역 내 기술 스타트업을 유치하고, 상용화와 해외 진출을 연계한 실질적 성과를 창출하고 있다. 문추연 구미전자정보기술원장은 “스타트업의 성장은 지역의 미래 경쟁력”이라며 “혁신 기술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과감한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유망 스타트업을 대거 유치하고, 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창업 거점을 만들겠다”며 “기존의 틀을 깨는 과감하고 실효적인 지원을 전면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5-14

“TK신공항 건설 ‘공자기금·국비’ 확보 대선공약 반영 총력”

지난달 11일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대선 출마를 위해 2년 10개월 만에 임기를 내려놓으면서 대구시는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했다. 이로인해 김정기 대구시장 권한대행은 내년 지방선거가 열리기 전까지 역대 가장 긴 1년 여 동안 권한대행 직무를 수행하게 됐다. 김 권한대행은 홍 전 시장 사퇴 이후 한 달여 동안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많은 우려 속에서도 그는 현장 중심 행정과 체계적인 공직 시스템을 기반으로 시정 공백을 메우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김 권한대행을 만나 대구시의 현안과 최장기 권한대행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들어봤다. 함지산 산불, 전 기관의 체계적인 대응과 시민의 적극적 협조 덕분에 피해 최소화 취수원 이전 대구시민의 숙원사업으로 정치적 여건 관계없이 반드시 추진돼야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철도 건설 남부 거대경제권 조성을 위한 핵심사업 지방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 “국가 위기 상황서 대행… 무거운 책임감 대구발전 진정성 있는 행보 응원해달라” -한 달 동안 권한대행을 맡아 본 소감은? △ 지난 한 달여 동안 시의회 추경, 대형 산불 대응, 공약 발표 등 굵직한 현안들이 많았다. 큰일들을 치뤄내면서 ‘직업공무원 체제하에서도 안정적으로 시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또 불확실한 정국 상황에서 현안 하나하나를 챙기면서고민을 제일 많이 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대구시의 현안들을 정책적·정치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많이 고민했고, 고민하고 있다.또 행정이 시스템으로 운영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장, 과장, 팀장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고 시스템에 따라 업무 수행을 하는 데 중점을 두면 시민들의 행정공백 우려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 매일 현안 점검회의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언론 보도 등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 행정공백 우려는 지난번 대구 산불의 신속한 진화작업으로 상당히 해소됐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 북구 함지산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은 선제적으로 교통을 통제하고 주민을 대피시키고 민가 확산 방지 방어선을 구축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야간 수리온 헬기 2대, 산림재난기동대 등을 투입하면서 발생 23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될 수 있었다. 이는 전 기관의 체계적이고 일사불란한 대응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도움 덕분이다. 행정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행정공백 없이 시정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이때 가장 크게 느꼈다. -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TK신공항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현재 상황은 어떤지? △ TK신공항건설은 건국 이래 최초·최대 민·군공항 통합이전사업으로, 당초 민·관 공동개발방식(SPC)으로 추진하려 했으나 불합리한 기부대양여 사업 방식으로는 사업성이 부족해 저금리 공자기금을 활용한 공영개발 방식으로 변경해 추진 중이다. 지난 1월, 1차 개정된 TK통합신공항특별법의 시행(1. 31.)으로 공영개발을 위한 지방채 한도 초과 발행, 민간공항 위탁 등이 가능해지면서 사업 추진에 탄력을 얻게 됐다.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공자기금 확보와 정부의 국비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대선공약에 반영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공자기금 조달은 대선과 차기 정부의 국정방향 등에 따라 다소 시일이 걸리나 8월에 확정되는 ‘정부기금운용계획안’에 반영시키고, 최종적으로 12월 말, 국회 최종안에 반드시 반영되도록 할 것이다. 또 사업비 전체를 공자기금으로만 조달할 수는 없는 상황을 고려해 전문기관 자문, 지역 금융기관 협조 등을 통해 공자기금 외 다양한 재원 조달 가능 여부를 검토 중이다. - 경북도가 TK신공항 건설사업에 공동 시행자로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했는데 대구시의 입장은? △ 대구시는 지난해 TK신공항 건설을 위해 다양한 사업방식을 면밀히 검토해 대구시가 직접 시행하는 공영개발 방식을 확정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TK신공항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북도가 제안한 공동사업시행자 지정은 우선 특별법 개정 및 합의각서 변경을 위한 국토부, 국방부 등 중앙부처와 협의가 필요하고, 이후 특별법 개정, ‘기부 대 양여’합의각서 변경 체결 등 이미 완료한 선행절차를 다시 거쳐야한다. 그러면 상당 기간 사업지연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TK 신공항 건설 사업비의 국비 지원 및 공자기금 융자 등 대선후보 공약 및 국정과제 채택을 위해 경북도와 협력해 나가겠다. -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군부대 이전,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 추진에 난항은 없는지? △ 올해 3월, 군위군을 이전지로 최종 확정한 후 국군부대 후적지(4개) 개발 구상을 발표했다. 현재, 국방부, 육군‧공군본부와 TF를 구성해 통합이전지 마스터플랜을 수립 중이며, 최근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사업성 확보를 위해 노력 중이다. 국방부는 대선 후 신임 장관 부임하면 마스터플랜 진행상황을 보고할 예정으로 사업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적정 기부가 산출되도록 긴밀히 협력 중이다.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면 내년에 합의각서(안) 작성 및 국방부·기재부 심의 등을 거쳐 연말에 합의각서를 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구 취수원 이전은 대구시민의 숙원사업으로 정치적인 여건 변화와 관계없이 반드시 추진되어야한다. 대구 취수원 이전은 지역 간 합의를 이뤄 국가사업으로 시행되는 만큼 중앙부처인 환경부의 사업 추진 의지가 중요한데 환경부는 주요정책과제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안동시도 업무협약 이후(2022. 11.)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지난 13일 안동시장님과의 면담에서도 안동시의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올 상반기는 국가계획으로 확정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인 물관리위원회 심의 의결을 목표로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또 신속하고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예타 면제가 포함된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특별법’(2024.9. 국회발의)도 연내 제정을 목표로 병행 추진 중이다. 내년에는 기본계획 수립 등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될 수 있게 하겠다. - 최근 달빛철도 예타면제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움직임은 없는 것 같다. 앞으로의 전략은 무엇인지? △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철도 건설 사업은 TK신공항 건설과 함께 남부 거대경제권을 조성하기 위한 핵심사업으로 지방소멸위기 극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해 2월 헌정사상 최다인 261명의 국회의원 공동발의로 ‘달빛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으나, 기재부의 예타면제 확정이 지연되고 있다. 조속한 예타면제 확정을 위해 지난 4월 23일 국회에서 대구·광주시장 및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뜻을 모아 예타면제 확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도 발표했고, 5월 1일에도 영·호남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달빛철도 조기 착공의 염원을 담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달빛철도 건설사업은 영·호남 1800만 명이 이견 없이 한 뜻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대선공약에 반영시켜 다음 정부에서 조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 - 마지막으로 대구시민들께 한 말씀. △ 27년간 중앙과 지방에서 공직 생활을 했는데 태어나고 자란 대구에 오게된 것에 감사하고,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권한대행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전임 시장님께서 확정한 대구시 주요 정책들은 민선 8기 출범 시 기조실장으로서 함께 참여해서 만든 것이다. 침체된 대구의 혁신 모멘텀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들로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맞춰 사업의 실현 가능성, 재정, 법적타당성, 시민 수용성 등을 고려해 탄력적이고 유연하게 추진하겠다. 그 과정에서 시민·언론·의회 등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구시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들은 중앙정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대구시와 시민들이 한목소리를 내주시는 게 매우 중요하다. 대구발전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보를 적극 응원해 주시고, 지지해 주시고, 힘을 모아주시길 바란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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