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정책도 다문화로 - 도시의 변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고 있는가
◇ 변화한 도시, 뒤따라가는 제도
올해 10월 기준 포항의 외국인 인구는 8615명이다. 산업·교육·가족 등 체류 목적이 다양해지면서 외국인은 도시 곳곳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으며 전체 인구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인력 공백을 메우는 역할까지 맡고 있어 그 존재는 단순한 비율을 넘어 도시 운영을 지탱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수산물 가공업, 제조 하청업체, 항만·물류, 농축산업, 건설 보조 등 현장은 외국인 노동력 없이는 공정 가동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 반복된다. 도시가 이미 다문화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에도 행정과 정책은 아직 기존의 분류 체계와 지원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 거주외국인 조례는 포괄적이지만 현실을 모두 담지 못한다
‘포항시 거주외국인 지원 조례’는 90일 이상 포항에 거주하며 생계활동을 하는 외국인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고 공공시설 이용 보장, 한국어 교육, 기초생활 적응, 고충·법률 상담, 응급구호 등 기본적인 정착 지원을 시장의 책무로 명시한다. 제도적 선언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크다.
그러나 조례는 제조업 생산직, 항만·물류 근로자, 계절근로자, 연구 인력, 유학생, 결혼이민자 등 체류 목적과 생활 조건이 서로 다른 다양한 외국인을 하나의 범주로 묶어 지원한다. 현실에서 각 집단이 겪는 문제와 필요는 크게 다른데 조례 안에서는 이를 구분하는 세부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사업 집행이 대부분 위탁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조례가 규정하는 기본 지원이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근로계약 분쟁, 임금 체불, 산재, 숙소 안전 문제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포항에서 외국인의 역할이 단순 생활 적응을 넘어 산업·고용·인구 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확대된 상황에서는 조례의 포괄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선언은 있었지만 실행의 정교함은 여전히 부족한 셈이다.
◇ 다문화가족 지원 정책은 촘촘하지만 ‘대상 편중’의 벽
2023년 개정된 ‘포항시 다문화가족 지원 조례’는 결혼이민자와 귀화자를 중심으로 한 정교한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방문교육, 자녀 언어발달·취학준비·성장지원, 관계향상 프로그램, 인권감수성 교육, 통·번역 서비스, 다문화엄마학교, 자조모임(6개국 227명), 이중언어 환경 조성, 학위취득비 지원, 취·창업 교육 등 20여 개가 넘는 사업이 운영되며 지역사회 인식 개선 사업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예산 규모도 작지 않다. 다문화가족정책 예산 10억 128만 원 중 실제 사업비가 8억 4183만 원에 달하고 건강가정·다문화센터 통합서비스 예산 13억 7103만 원까지 더하면 연간 약 24억 원이 투입된다. 지방 도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재원이며 사업의 내용과 범위도 촘촘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체계가 결혼이민자와 귀화자라는 비교적 좁은 범위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법무부 2025년 통계에 따르면 포항의 거주 외국인 7575명 중 외국인근로자는 5303명으로 전체의 약 70%에 이른다. 즉, 포항 외국인의 다수는 노동 목적 체류자이며 이들은 언어·노동환경·주거·의료 등 복합적인 문제를 동시에 겪는다. 하지만 이들을 포괄하는 지원체계는 상담센터 외에는 사실상 부재하다. 외국인 지원 체계가 결혼이민자 중심으로 설계된 구조에서 노동 목적 체류자 다수가 제도 밖에 놓이면서 정책의 설계와 실제 현장의 필요 사이에는 뚜렷한 간극이 발생한다.
◇ 김지원씨의 인터뷰가 드러낸 ‘정책과 현실의 거리’
베트남 출신 귀화자 김지원씨(34)의 경험은 제도의 공백을 가장 일상적인 차원에서 보여준다. 2016년 결혼을 계기로 포항에 정착한 그는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적응했고 올해 9월부터 출산도우미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루 2~3시간씩 주 4일 근무해 받는 월급은 80만 원. 그는 “아이 키우고 생활하기에는 부족하다. 30만 원만 더 있으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센터를 통해 언어교육과 일자리 연계를 받았지만 “센터 말고 시에서 직접 지원받는 건 거의 없다”고 했다. 시내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경험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국어가 제일 중요하다. 소통이 안 되면 오해가 생긴다”고 강조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와 시간이 제한적이라고 했다. 결혼이민자조차 이러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노동 목적 체류자가 겪는 어려움은 더 광범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상담센터는 현장의 최전선이지만, 제도적 연결은 약하다
포항에는 외국인근로자 상담센터가 남구·북구·여성센터 등 3곳 운영되고 있다. 이들 센터는 노동·산재 상담, 통역, 생활 문제 조정 등 외국인이 당장 부딪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전선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운영 체계는 구역과 성별에 따라 분리돼 있으며, 다문화센터와 연계해 문제를 함께 처리할 수 있는 통합 매뉴얼도 부족하다.
노동·주거·가족·교육 문제는 실제 삶에서는 한 사람에게 동시에 얽혀 나타나지만 행정은 이를 분야별로 나눠 관리하고 있어 복합적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단절은 결국 지원의 공백으로 이어지고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 계절근로자 조례는 세밀하지만 ‘정착’이라는 개념이 없다
‘포항시 외국인 계절근로자 지원 조례’는 통역료, 외국인등록비, 마약검사비, 숙소 점검, 교육비 등 필요한 지원 항목을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단기 노동력을 확보하고 근로 기간 중 최소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에는 충실한 조례다.
그러나 구조는 어디까지나 ‘입국-근로-관리-귀국’이라는 단기 순환을 전제로 한다. 지역사회 편입이나 장기 정착을 고려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근로 기간이 끝나면 관계 또한 종료되는 방식이다. 농어촌의 노동력 의존도가 매년 높아지고 있음에도 정책이 다루는 범위는 여전히 ‘단기 관리’에 머물러 있어 지역이 실제로 겪는 구조적 인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 정책도 다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포항의 외국인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지원 대상자’가 아니라 도시 운영을 함께 떠받치는 핵심 구성원이다. 외국인이 빠지면 생산라인이 느려지고 물류가 지체되며 농어업 현장은 즉각 인력난에 직면한다. 변화한 도시 구조에 맞춰 체류 목적별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상담센터-다문화센터-행정의 연계를 강화하며 의료·주거·언어 등 생활 기반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 제도와 행정이 이 변화를 따라갈 때 포항은 외국인과 시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