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 도시’의 경계에 선 포항. 이 숫자는 단순한 인구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도시의 행정 권한과 위상을 가르는 기준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준을 지탱하는 전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올해 10월 기준 포항에 거주하는 외국인 8615명이 없다면 이 도시는 지금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국인 감소와 고령화가 누적되는 현실에서 외국인의 존재는 통계를 넘어 도시 지속 가능성과 직결되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포항시는 최근 몇 년간 인구 감소가 고착화되며 50만 명 회복이 점점 더 어려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인구절벽 충격이 현실화하는 지방 중핵도시 포항에서 외국인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1. 포항의 8615명 외국인은 오늘의 도시를 지탱하고, 내일의 한국을 묻는다
2. 포항에 산다는 것, 외국인의 하루
3. 환영과 불안 사이, 완벽한 이민은 없다 - 다문화 도시로 넘어가는 포항의 ‘감정 지도’
4. 정책도 다문화로 - 도시의 변화 속도를 제도가 따라가고 있는가
5. 이민 시대, 지속 가능한 길을 찾다
◇ ‘8615명’의 존재, 도시를 지탱하다
올해 10월 기준 포항시 총인구는 49만 7578명으로 이 가운데 내국인은 48만 8963명, 외국인과 외국국적동포는 8615명이다.
외국인은 전체의 1.7%에 불과하지만 인구 구조 변화 속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의미는 단순 비율로 설명되기 어렵다.
지난해 말 50만 명에 근접했던 포항의 인구는 1년 새 약 2600명 감소해 49만 명대 중반으로 내려왔으며 자연 감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외국인 인구만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전체 감소 폭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
세대 구조 역시 변화가 뚜렷하다. 포항의 총 23만 8324세대 가운데 1인 세대는 9만 9719세대로 41.8%를 차지하고 세대당 인구는 2.05명에 머문다. 평균연령은 46세이며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1만 5939명으로 전체의 23.5%를 차지해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처럼 청년층과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구조 속에서 외국인은 일부 노동인구 공백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외국인의 비중은 더욱 중요하게 나타난다. 수산물 가공업, 제조 하청업체, 항만·물류업, 농축산업, 건설 보조 등에서 외국인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외국인이 빠지면 공정이 지연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실제 수산물 가공업체는 일정 규모의 외국인 인력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도계·선별·가공 라인의 가동률이 즉각 낮아진다고 설명한다.
항만 물류 작업 또한 배정 인력 변화가 처리 속도로 이어지는 만큼 외국인 노동력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외국인은 단순히 부족 인력을 보충하는 수준을 넘어 도시 기능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데 기여하는 실질적 축으로 자리 잡았다.
◇ 외국인이 빠진다면
외국인을 제외한 포항의 모습을 가정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영역은 도시의 행정적 지위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제118조는 주민등록인구에 외국인등록과 거소 신고 외국국적동포를 합산해 2년 연속 50만 명 이상을 기록할 때 대도시로 인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재 포항은 주민등록 인구만으로는 기준에 미달하며 외국인을 포함하더라도 50만 명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외국인 8615명이 제외될 경우 총인구는 48만 명대 중반으로 감소해 향후 50만 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도시 지위는 단순한 명칭을 넘어 도시가 행사할 수 있는 정책 자율성과 직결된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인구 50만 이상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계획시설 결정, 공원녹지 기본계획 수립, 주택건설사업 승인, 노인복지시설 설치 등 27개 사무를 지방정부에 이양했다.
이 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정책 집행 범위가 달라지는 만큼 외국인 인구는 행정 체계의 안정성을 지탱하는 현실적 변수로 작용한다.
산업 현장에서의 영향은 더 직접적이다. 고용노동부 ‘2024년 외국인 고용현황’에 따르면 제조업 외국인 근로자 비중은 전국 10.6%, 경북 12.4%로 나타났다. 철강·가공·물류 산업이 밀집한 포항은 본 공정보다는 협력업체와 연관산업에서 외국인 비중이 높다는 것이 산업계의 공통적인 설명이다.
외국인 인력이 빠질 경우 생산라인 가동률 저하, 항만 물류 지연, 농축산업 계절 작업 차질, 수산 가공량 감소 등 공급망 여러 지점에서 가시적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역 고용과 소득, 소비에 영향을 미치며 중소 제조업체와 수산업 기반 약화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인구 구조 측면에서도 외국인의 역할은 중요하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이 이미 23.5%를 넘는 가운데 외국인은 대부분 20~50대 노동 연령층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이탈하면 생산가능인구는 추가로 줄고 고령층 비중은 더 두드러지게 된다. 이는 도시 활력 약화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 재정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외국인 인구는 포항의 산업, 인구 구조, 행정 지위를 동시에 떠받치는 핵심적 요소로 기능하고 있다.
◇ 그러나 ‘유입’만으로는 부족하다
외국인 유입은 도시 활력의 중요한 변수지만 단순히 인구가 늘고 줄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법무부 ‘2024 체류 외국인 통계’에 따르면 전국 체류 외국인은 약 233만 명이며 이 중 60% 이상이 체류 기간 3년 미만으로 분류되는 단기 체류자다. 이는 장기 정착까지 이어지는 비율이 높지 않음을 보여준다.
경상북도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법무부 통계에서 경북 체류 외국인의 52.1%가 고용허가제 근로자(E-9)로 집계되며 E-9 비자의 기본체류 기간은 3년, 연장해도 4년 10개월을 넘지 않는다.
즉, 이 인력은 구조적으로 ‘장기 정착’보다는 ‘기간제 노동력’의 성격을 갖는다. 정착 기반 부족 문제는 삶의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여성가족부 ‘2023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다문화·이주민 가구의 27.8%가 “주민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고 응답했다. 단기 체류 비중이 높고 지역사회와의 접촉면이 제한적일수록 공동체에 편입되는 속도는 늦을 수밖에 없다.
이는 외국인이 지역에 유입된다는 사실만으로는 도시의 인구 구조와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외국인 유입이 산업 현장의 인력난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지만 정착을 뒷받침하는 주거·의료·교육·언어·지역사회 교류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포항이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남기 위해서는 외국인이 ‘일하러 오는 도시’를 넘어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도록 정착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인과 지역사회가 함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될 때에야 비로소 인구절벽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 도시의 선택
“49만 7000명 중 외국인 8615명이 없다면”이라는 물음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포항의 현재 인구 구조와 행정적 지위를 동시에 가늠하게 하는 질문이다.
외국인의 존재는 산업 현장의 인력난을 메우는 것을 넘어 고령화와 내국인 감소가 심화하는 포항에서 생산가능인구를 보완하는 현실적 해법이다.
실제로 외국인은 도시가 대도시 기준선을 유지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유입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의 정착이다. 법적 지위, 산업 현장, 생활 기반 중 어느 하나라도 취약하면 외국인의 체류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포항이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남기 위해서는 ‘일하러 오는 도시’를 넘어 ‘살아갈 수 있는 도시’로 변화해야 한다. 지금 포항은 그 변곡점에 서 있다. 다음 2편에서는 ‘포항에 산다는 것, 외국인의 하루’를 통해 숫자 뒤에 숨은 삶의 얼굴들을 따라가 본다.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