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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식물원 살려낸 은혜 갚는 낙우송 3父子

등록일 2025-12-03 15:55 게재일 2025-12-0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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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경북 포항 기청산식물원 낙우송과 정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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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산식물원의 낙우송 삼형제.

카톡으로 보내온 이삼우 원장님의 기청산식물원 동영상을 보고 불현듯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 포항 기청산식물원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원장님께서 지난 11월 8일 개통된 포항-영덕 동해안 고속도로 한번 자동차로 달려보고 싶다고 하셨다. 월포․청하 IC를 통하여 영덕 방향으로 향했다. 창밖의 동해 풍경을 즐기도록 천천히 운전했다. 그러자 원장님께서 고속도로는 쾌속의 재미도 있다며 빨리 달리기를 원했다. 

 

영덕에서 되돌아서 고속도로 ‘포항휴게소’에 들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창밖으로 내다본 동해 뷰는 정말 환상의 풍경이었다. 바다의 경관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과 몸이 힐링 되었다. 식사를 끝내고 곧장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월포, 청화 IC를 빠져나와 기청산식물원에 도착했다. 오늘 함께 기청산식물원을 관람하기로 약속한 진원대 전 구룡포 읍장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기청산식물원을 오늘날까지 꾸미고 가꾸어 온 주인공은 바로 이삼우 원장이다. 그는 온화한 성품으로 서울대학교 농대 임학과를 나온 전문 나무 사랑꾼이다. 졸업 후 바로 소년 시절의 꿈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왔다. 1968년 청하중학교 재단 농장 관리인으로 부임하여 과수 농업을 하면서 독자적으로 농장을 확장하고서 향토 고유 수종 연구개발 보급 테마로 하는 기청산식물농원을 설립하였다. 지금까지 일평생을 나무와 인연을 맺고 나무와 함께 익어가는 삶을 살고 있다. 이제 그는 정원의 나무와 닮아 있었다. 나무 백과사전과 같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원장님과 함께 우리는 정원 숲의 가을 정취에 빠졌다.

 

이삼우 원장은 차향처럼 잔잔한 목소리로 기청산식물원의 존재 이유를 들려주었다. 식물을 배우는 일은 곧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며, 자연을 이해하는 일은 인간이 다시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깨우치는 길이라는 그의 말은 오래된 진리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식물원은 이 땅 고유의 자생종을 연구하고 되살리며, 희귀하고 멸종위기에 놓인 생명들을 서식지 밖에서 보듬어 지키고, 다양한 전시와 문화 행사를 통해 식물의 언어를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는, 묵묵한 시간의 숲이었다. 원장님은 이곳을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한국적이며, 무엇보다 인간에게 가장 유익한 숲”으로 만들고자 했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 청하로 175길 50번지 기청산식물원 울타리 안은 아직도 가을을 붙잡고 있었다. 단풍 든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세상과는 달리 아직도 감태나무의 붉은 단풍잎, 은행나무의 노란 단풍잎, 풍향수의 푸른 잎이 어울려 정원의 숲은 아름다운 세계를 연출했다. 아름다움은 모두가 자연스러움에서 나오는 자연 숲의 느낌이었다. 

 

정원 숲은 마음과 몸을 힐링하기에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나무와 교감은 아픔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의 손길이 가슴을 쓰다듬어준다. 우리의 날숨 공기는 나무가 들숨으로, 나무의 날숨 향기는 우리의 들숨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연인의 입맞춤과 무엇이 다르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나무 특유의 치료 향기를 나누어 준다. 기청산식물원은 토종의 다양한 식물로 구성된 인공 정원이었으나 이제는 그들 스스로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 정원으로 변모했다. 

 

대나무 울타리를 배경으로 언덕배기에 우뚝 서 있는 장엄한 낙우송 3 부자(父子)는 키 15미터, 몸 둘레 3.5미터의 거목으로 식물원의 가장 오래된 존재이었다. 마치 ‘정원의 왕(king tree)’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움은 물론 장중한 품위까지 지녔다. 샘물이 흐르는 골짜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지면 위로 밀어 올려 호흡근을 키운 모습은 하나의 신화적 풍경이다. 땅 위로 솟아난 뿌리들은 오백나한이 수행을 위해 모여든 듯 기묘한 형상을 이루고, 그 앞에 서면 식물의 생명이 얼마나 영묘한 방식으로 뿌리에서부터 호흡하고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멀리서는 메타세쿼이아와 비슷해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잎이 어긋나고 가지가 수평으로 뻗는 낙우송만의 세계가 드러난다. 미국 미시시피강 습지에서 시작된 그 원형질은 깊고 오래된 생명의 지혜를 품고 있다.

 

그러나 낙우송 3 부자(父子)는 생태학 이상의 이야기, 인간과 나무가 주고받은 소박한 기적이 숨어 있다. 한때 이곳의 땅은 식물원 소유가 아니었고, 주택단지 공사가 시작될 위기에 놓여 있었다. 굴착기가 다가오는 모습을 본 원장님은 공사를 멈추게 하고 빚을 내어 토지를 사들였다. 무거운 이자에 지치던 어느 날, 그는 나무 앞에서 넋두리처럼 고단한 속을 털어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방송에 소개되면서 뜻밖의 수익이 생겨 1년 치 이자가 모두 해결되었다. 

 

그 후로 원장님은 낙우송을 ‘은혜 갚는 나무’라 부르며 매년 막걸리 한 사발을 올린다. 세월을 견딘 생명의 의지, 생태적 원리, 그리고 인간과 나무 사이에 흐르는 조용한 인연까지, 기청산의 낙우송 3 부자는 그 모든 이야기를 고요한 몸짓으로 품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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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감태나무 단풍.

정원 숲길에 첫 발을 들이는 순간, 어디선가 흘러나온 새소리가 은은한 경음악처럼 발끝을 따라붙는다. 그 소리는 마치 숲이 오랜 침묵 위에 올려두었던 서곡(序曲) 같아, 한 걸음 한걸음에 부드러운 숨결을 더한다. 

 

나무 사이로 어린 햇살이 비스듬히 흘러내리면, 길 위에 흩어진 낙엽들은 발바닥의 가벼운 압력에 응답하듯 제 나름의 음계를 토해낸다. 높고 낮고, 길고 짧은소리들이 켜켜이 겹쳐, 숲의 자연 화음에 하나의 목관악기가 새로 참여한 듯한 깊이를 만든다. 낙엽을 밟는 소리가 추임새처럼 스며들 때, 새들의 짧은 기척과 바람의 숨결은 다시금 한데 더해져, 숲은 더없이 정교한 즉흥곡으로 변모한다.

 

정원의 나무들은 그 음악의 무대 뒤에서 천천히 호흡하며, 피톤치드의 향을 내어 마치 악보의 여백처럼 공기를 정화한다. 나뭇잎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숲에서는 하나의 섬세한 악절이 된다. 때로는 물결처럼 멀리서 미묘한 저음을 보내오고, 가지 끝에 잠시 앉았다가 날아오르는 작은 새의 기척은 곡 마지막에 찍히는 가느다란 쉼표처럼 흘러간다. 

 

숲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과 나 사이의 경계가 천천히 풀어지고, 발걸음은 음악의 일부가 되어 숲과 함께 호흡하기 시작한다. 꽃 앞에 멈추면 마음은 꽃의 색채를 닮아 단정해지고, 나무 아래 서면 마음속 오래된 그림자마저 제 자리를 찾아간다. 숲이 들려주는 이 음악은 치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오히려 존재의 본래 리듬을 되돌려주는 회복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정원의 숲을 빠져나오기까지 여전히 발목을 스치며 따라오는 새소리와 낙엽의 여운 속에서 문득 깨닫는다. 치유란 거창한 기적이 아니라, 새 한 마리의 노래와 낙엽 한 장의 울림이 한 몸처럼 흐르는 이 숲길 위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 몸은 알고 있다. 정원의 낙우송과 숲의 감동 여운을 안고 우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왔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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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청산식물원 앞에 선 이삼우 원장.

기청산식물원은…
 

기청산식물원은 자연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자생식물 중심으로 꾸며진 독특한 식물원으로, ‘쇠솔이 흐르는 천년의 숲’처럼 조성되어 명상과 치유를 위한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환경부가 지정한 서식지 외 보존기관이기도 해서, 울릉도를 비롯해 경상도 지역의 희귀하고 멸종위기 식물을 20년 넘게 조사하고 보전해 왔다. 식물원 내부는 자생식물 전시원, 울릉식물 관찰원, 약용식물원, 수생식물원, 향기식물원, 희귀종 전시원 등 여러 테마별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생식물의 다양성을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다. 

 

전화 054-232-4129.
개장 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겨울철은 5시) 매주 월요일은 휴원. 
식물 해설 및 안내 제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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