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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만추, 대둔산 자연휴양림 숲길 걸어보세요

등록일 2025-11-19 19:17 게재일 2025-11-2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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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충남 금산 묵산리 대둔산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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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가을 풍광.

대둔산 자연휴양림의 숲길을 걷는다. 잘 익은 가을빛 속에서 단풍놀이의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사)한국산림문학회 가을 문학기행에 회원들과 함께 호젓한 숲길을 걸으며, 청명한 하늘 아래 가을의 향연에 몸을 맡긴다. 하늘은 높고 푸르며, 산과 들은 풍성한 결실로 가득하다. 나무들은 계절의 세월을 견디며 익힌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고, 노란 국화는 이제야 피어나 벌과 나비 대신 사람들의 눈길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풍경이 시가 되고 생각이 여운이 된다.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자연에 인간의 손길을 보탠 하나의 공동 예술 작품이나 다름이 없었다.
 

화강암 봉우리 병풍처럼 기암괴석 솟아
입암대·낙조대·마천대 등 웅장한 절경 
春 철쭉·夏 녹음·秋 단풍·冬 설경 장관


사시사철 계절이 그린 한 폭의 동양화
불교·유교·도교 어우러진 정신문화 산 
신라 말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도량과
조선시대 왜군을 통쾌하게 무찌른 곳 
그 역사의 현장서 감동의 여운 느끼자

예전 전북도청 파견 근무 시절, 완주 대둔산의 가을 단풍을 실컷 즐긴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이번에는 충남 금산 쪽에서 그 산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니 감회가 새롭다. 대둔산(大芚山, 878m)은 충남 논산과 금산, 전북 완주에 걸쳐 있는 명산이다.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수려하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봉우리마다 병풍처럼 기암괴석이 솟아 있다. 입암대·낙조대·마천대 등은 웅장한 절경을 자랑한다. 봄에는 철쭉, 여름엔 짙은 녹음, 가을엔 불타는 단풍, 겨울엔 설경이 장관을 이루니, 사시사철 그 자체가 계절이 그린 한 폭의 동양화이다.

 

대둔산은 불교, 유교, 도교가 어우러진 정신문화의 산이기도 하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도량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권율 장군이 임진왜란 때 진을 치고 왜군을 물리친 역사 현장을 바라보면서 장군의 지휘소 앞에 섰다. 특히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 이치 곡 일대는 이치대첩의 성스러운 땅이다. 1592년, 연전연패로 패퇴하던 조선군과 의병이 권율·황진 장군의 지휘 아래 왜군을 통쾌하게 무찌른 곳, 나라의 명운이 뒤바뀐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단풍빛처럼 붉은 감동의 여운을 느꼈다.

 

자연휴양림은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한 생태공간이다. 나무와 흙, 물과 공기, 빛의 순환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곳,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쉼터이다. 숲의 피톤치드 향기 속에서 스트레스를 덜고, 숲의 고요함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회복하게 하는 치유의 공간이다. 도시의 소음과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자연휴양림은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명상의 자리이자, 잃어버린 생명 감각을 되살리는 가장 순수한 안식처이다. 

 

서울에서 아침 일찍 한 대의 버스를 전세 내어 타고 온 회원들과 지방에서 온 회원들이 자연휴양림을 조성한 끈기와 집념의 산림인 유승열 회장의 조성 과정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한 편의 무용담이었다. 그는 나무의 나이테에 새겨진 기후 환경처럼 자연휴양림에 새겨진 지난한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놓을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감동의 물결로 출렁이었다.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3대에 걸쳐 숲을 가꾸어 온 유숭열 회장의 가문이 일군 산림 명문가의 유산이다. 선대의 땀과 헌신 위에 세워진 이 숲은 한 가족의 역사이자, 한 시대의 산림 문화의 기록이며, 자연을 ‘자산’이 아닌 ‘생명의 터전’으로 바라본 숭고한 정신의 결실이다. 숲길마다, 나무 한 그루마다 세대를 이어온 손길이 스며 있어, 오늘의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삶’과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무엇인지 묻고 일깨운다. 충남 금산 묵산리의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산림경영의 모범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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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둔산의 기암괴석.

80여만 평에 이르는 면적에 11km의 숲길을 무료로 개방하고, 오토캠핑장, 편백나무 숙소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어 숲의 품격을 높였다. 2022년 하반기에는 ‘자랑스러운 혁신 한국인’과 ‘파워브랜드 대상’을 수상하며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산림 명문가’로 이름을 올렸다. 휴양림 한편에는 유성준(柳成準) 선생의 산림 공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산림계원 일동이 뜨거운 마음을 모아 기념비를 세웠고, 당대의 문호 육당 최남선 선생이 그 비문을 써주었다. 또한 이곳은 전(前) 소련 대통령이자 세계환경포럼 총재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제1회 세계환경포럼 기념비 제막식을 열고 1박을 묵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대둔산의 숲은 세대를 이어온 한 가문의 철학과 정신이 깃든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1925년 조부 유성준 선생이 씨앗을 뿌리며 산림을 일구었고, 부친 만취(晩翠) 유영창(柳永昌) 선생은 6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조로 일기를 써 내려가며 산과 인생을 노래한 시인이며 동양화가이다. 그는 “인삼으로 부를 좇지 말고, 감나무를 심어 마을을 지켜라.”라고 가르치며, 자연 속에서 삶의 도리를 일깨웠다. 그 뜻을 이어받은 유숭열 회장은 100만 평의 산림에 38종의 나무를 심고, 수익보다 숲의 미래를 앞세워 국민과 나누는 산림 문화를 꽃피웠다.

 

대둔산의 단풍이 붉게 타오르는 가을을 맞이하여 한국산림문학회 김선길 이사장은 한 시대의 문학혼을 불러냈다. 만취 유영창 선생이 마침내 시조 시인으로 등단을 추서 받은 것이다. 이는 예우의 절차가 아니라,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예술혼이 다시 깨어나는 순간이다. 1915년 7월 17일부터 1974년 3월 29일까지, 60여 년 동안 그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조 한 수를 써 내려갔다. 평생을 이어 쓴 시조 일기의 편수가 무려 1만여 편, 그중 2000여 편이 박헌오(제5대 한국시조협회 이사장)의 노력으로‘만취 유영창 회고록 - 만취 일기’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와 빛을 보았다. 시조 한 수 한 수가 그의 삶이자 시대의 기록이었고, 그것은 곧 한국 시조 문학의 산 역사였다. 

 

그가 남긴 시조는 숲처럼 깊고, 세월처럼 유장하며, 나무처럼 묵묵히 시대의 바람을 견뎌냈다. 자연과 인생, 신념과 철학이 한 몸으로 엮인 그의 시조는,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속의 나무 한 그루를 다시 세우게 했다. 그의 삶은 ‘산림 명가의 혼이자 한국문학의 유산’으로 길이 남았다. 사후 110년이 지나서야 정당한 자리를 찾은 이 추서는, 그 숭고한 예술혼에 바치는 시대의 경의였다. 이날 이서연 한국산림문학회 부이사장은 만취 유영창 선생의 뜻을 기리는 ‘청소년 녹색 문학상’ 제정을 제안했고, 유숭열 회장을 비롯한 모든 회원이 뜻을 함께했다. 이는 만취 선생이 가꾼 숲의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전하려는 약속이었다.

 

그가 남긴 대둔산 자연휴양림은 나무의 집합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신념의 숲이다. 그 속에는 나라 사랑과 자연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흐른다. 대둔산 자연휴양림의 숲길을 걸으면, 나무마다 그가 남긴 시조 한 구절이 들려오는 듯하다. 

 

“1954년 12월 27일. 저마다 입 벌리면 나라 사랑한다 건만/ 돌아서서 하는 짓은 이 나라의 좀이로다/ 저게 다 새 일꾼이라니 가슴 아파 하노라/ 산이 벗어지면 벗을수록 한숨겨워/ 산이 푸르러지면 푸를수록 잘 사오리/ 나라가 서고 못 섬이 저 산에 있다 하리.” 

 

대둔산 휴양림은 하나의 시조이며, 한 가문의 철학이고, 생명의 노래다. 오늘의 우리는 대둔산 자연휴양림 숲에서 문학의 본향을 다시 배운다. 하루하루를 시로 살았던 한 사람의 고결한 기록이, 이제 우리 모두의 숲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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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유성준 비문 앞을 지나고 있다.

유성준 기념비의 내용은…

산이 있어 옛날 민둥산에서 나무 심어 이불 덮으니 울창함이 막대해서 “소나무 방패 같다”고 이르더라. 공은 인자함과 더불어 근면하였으니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은혜를 새로 돌이켜 보았더라. 공적이 많아서 비석을 다듬고 말씀을 새겨서 영원히 이 세상을 연마하는 데에 쓰리라. 

 

삼림계장 유공 성준 기념비( 森林係長 柳公 成準 記念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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