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경북 경주 마동 느티나무 노거수
경주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천년고도의 깊은 숨결이고, 그 중심에 우뚝 선 토함산과 남산은 마치 거대한 역사박물관과도 같다. 토함산 자락을 따라 오르면 불국사의 장엄한 기와가 햇살을 받아 빛나고, 다보탑과 석가탑은 천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지혜의 상징처럼 서 있다.
토함산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석굴암은 고요히 부처의 미소를 간직한 채 세상의 번뇌를 감싸안는다. 토함산과 남산은 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라인의 정신과 예술, 그리고 우리 민족의 혼을 품은 살아 있는 시간의 성전이다.
불국사 가는 토함산 끝자락에 뿌리내려
키 17m·몸둘레 6m·앉은자리 폭 29m
700년 오랜 세월 살아온 마을의 큰 어른
정자·복지회관 품고 사람들 삶 속에 녹아
나누는 담소·두 손 모아 기도하던 간절함
아이들 해맑은 미소까지 고스란히 스며
토함산 자락에 자리한 가을의 불국사는 그 이름처럼 불국토를 옮겨 놓은 듯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이다. 단풍잎이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경내를 수놓으면, 청아한 기와지붕 위로 흩날리는 낙엽은 천년 세월을 품은 고즈넉한 숨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룬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가을 햇살 속에서 더욱 단단히 빛나며, 경내를 거니는 발걸음마다 신라인이 꿈꾸던 이상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불국사의 가을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불심과 평화의 빛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다.
불국토의 상징인 불국사로 가는 토함산 끝자락 마동 588번지, 하천 변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살아가고 있다. 그는 700년 세월을 살아온 마을의 어른이다. 키 17m, 몸 둘레 6m, 앉은 자리 폭 29m나 되는 거인의 노인이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는 정자와 복지회관을 품고 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든 존재가 되었다. 주민들은 그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세 개의 지팡이를 선물하여 노령의 몸을 지탱하게 했다. 그리고 작은 원통형 돌담을 경계로 함부로 접근을 금지했다. 나무 아래 제단을 만들어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동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
세월 앞에 조금씩 속을 비워내며 쇠약해지는 듯 보이지만, 느티나무는 여전히 제 역할을 잃지 않는다. 한 줄기에서는 먼저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고, 다른 줄기에서는 늦게 잎과 꽃이 터져 나오니, 같은 뿌리이되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보기에 따라 한 나무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나무가 하나의 나무로 된 연리목 같기도 하다. 뿌리는 분명히 하나로 연결된 연리근 나무일 것이다. 나무줄기 높이 2미터에서 다섯 가지가 뻗어 올라 서로 얽히고 합쳐진 연리목의 나무임이 분명해 보였다. 주민들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크기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잎의 크기와 무성함이 줄어든 것을 보며 나무의 나이를 실감한다. 비 오는 날이면 줄기 속에서 스며 나온 물이 고여 흐른다는데, 그 빈속조차 생명을 품은 흔적처럼 여겨진다. 불국사가 가까이 있는 이곳에서, 마동 느티나무는 세월의 집, 사람들의 기도를 담아온 신목(神木)으로 남아 지금도 조용히 마을을 품고 있다. 뿌리에서 갈라져도 결국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닮았다. 나무의 곁에 앉으면 자갈이 깔린 바닥 너머로 잔잔히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와 함께 천년고도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마을이란 집들이 모여 있는 거주지만은 아니다. 세월의 결을 따라 전통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노거수는 마을의 얼굴이자 품격을 드러내는 기둥으로, 수백 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역사를 증언한다. 지도 위의 작은 점에 불과한 마을은 노거수를 통해 이름과 이야기를 얻고, 외부에 그 존재의 위상을 드러낸다. 노거수가 없는 마을은 제단 없는 의식과 같아 중심이 희미하고, 광장이 없는 도성처럼 모임의 자리가 비어 있다.
그러나 노거수가 있는 마을은 그 자체로 풍경이 되어, 아늑한 그늘과 푸른 수관이 마을을 감싸안으며 사람들에게 안도와 휴식을 준다. 웅장한 수형은 마을의 품격을 한층 높이고, 사계절의 빛을 담아내며 마을 경관을 풍성하고 풍요롭게 한다. 결국 한 그루의 노거수는 마을의 정신을 세우고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문화적 상징이자 공동체의 심장이다.
마을의 노거수는 오랜 세월 한자리에 서서 주민들의 삶을 지켜본 따뜻한 증인이다. 그늘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의 웃음소리, 제의를 올리며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간절한 마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까지 모두 나무의 가지와 잎새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노거수는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보호막이자, 사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며 주민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건네는 마을의 큰 품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노거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굵은 줄기와 드넓은 수관은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그 아늑한 그늘은 언제나 열려 있는 쉼터가 된다. 농사일에 지친 어른에게는 평온을, 뛰노는 아이에게는 자유를, 외지인에게는 마을의 아름다움과 따스한 기운을 선물한다. 이렇듯 노거수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의 마음을 한데 모아주는 살아 있는 기둥이자 감동의 근원이다.
노거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교육적이고 정서적인 스승이 된다. 그 그늘에 어른들은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역사를 전하고, 아이들은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자란다. 세월을 견뎌온 굳건한 줄기는 인내와 끈기를 가르치고, 사계절 따라 변하는 수관은 삶의 무상함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또한 그 아늑한 품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온을 주어, 마음을 달래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정서적 균형을 길러준다.
마을 노거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이자 생명의 집합체이다. 굵은 줄기의 갈라진 틈은 올빼미와 딱따구리의 보금자리가 되고, 무성한 수관은 여름의 햇볕을 가려 새와 곤충들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떨어진 잎은 땅으로 돌아가 흙을 살찌우고, 그 속에서 곤충과 균류가 자라나 또 다른 생명의 터전을 마련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품은 공간은 수많은 종에게 삶을 잇는 다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 생명의 사슬을 이어준다.
이렇게 느티나무는 마을 생태계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바람을 흡수하고 뿌리로 물길을 잡아 토양을 지탱하며, 그늘은 미세 기후를 조절해 사람과 생물 모두에게 안온한 환경을 마련한다. 거대한 수형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들의 공존은 마치 교향곡처럼 조화롭고 서정적이다. 그래서 노거수 앞에 서면,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거대한 순환과 자연의 질서를 마주하게 된다.
경주에서 열리는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세계가 모여 미래의 협력과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그 무대 뒤에는 천년고도 경주가 품은 자연자산이 살아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노거수들은 인간의 문명을 넘어선 생명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존재들이다. 경주의 노거수와 숲을 세계에 드러내는 일은,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지구 공동의 유산임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노거수의 외과 수술
지역에 잔존하는 노거수는 그 지역 삼림의 임령(林齡)보다도 훨씬 수령(樹齡)이 오래된 경우가 많다. 지역에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유일한 고령의 잔존 생물체이며, 고령의 생물체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생물 종들에게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 기여하는 핵심 서식처 자원(생물 종과 개체들의 서식을 제어하는 생태적 요소는 조건과 자원이며, 조건이 무제한이라면 자원은 소모되어 버림으로써 제한적 요소임)이다.
올빼미류와 딱따구리류는 노거수를 필요로 하는 조류들이며, 엄청난 수의 분해자들은 노거수에 의존한다. 향토 문화적 요소로서 잔존하는 노거수일지라도 노거수 개체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늙은 개체는 필연적으로 분해자들에 의하여 썩어가는 부위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보다 노쇠한 노거수 개체에서 관찰되는 생태적 메커니즘에 ‘외과수술’이라는 인위적 노거수 관리는 그러한 조류들의 서식을 크게 위협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민속적 목적에 의한 노거수의 경우 적절한 외과수술이 적용될 수도 있다. 해당 노거수에 대한 주요 생물종의 서식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한 면밀한 생태적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