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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정이품송과 부인 정부인송

등록일 2025-11-12 18:17 게재일 2025-11-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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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속리산 법주사 정이품송과 서원리 정부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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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숲길.

우리가 흔히 짐승이라 부르는 동물이나 새들은 타고난 본성에 따라 목숨을 걸고 자신의 영역을 지킨다. 수천 년 동안 대를 이어 마치 개미가 쳇바퀴 돌 듯 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러나 인간은 계절을 맞고 보내는 사이, 특히 갈바람이 나뭇잎을 물들이는 가을이면 어딘지 모르게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럴 때면 어느 때보다 생각이 깊어지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나 또한 그렇다. 가을이 짙어가던 어느 날, 아우 대붕과 함께 대구에서 출발해 속리산 법주사 천연기념물인 정이품송과 그의 부인 정부인송을 만나러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속리산(俗離山)은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중간 허리에 솟은 해발 1058m의 명산이다. 이름 그대로 ‘속세를 떠난다’는 뜻을 지녀 예로부터 수행과 깨달음의 도량으로 여겨졌다. 병풍처럼 둘러선 산세 속에는 천왕봉과 문장대 등 고봉이 즐비하고, 문장대에 오르면 백두대간의 능선이 파도처럼 굽이친다. 사시사철 다른 빛깔의 숲과 계곡이 어우러져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보은 장안면 600살 된 소나무 ‘정부인송’
치맛자락처럼 두 갈래로 펼쳐진 줄기들
천연기념물 제352호… 평안 품은 名木
세조의 벼슬을 받은 소나무 ‘정이품송’
600년 세월 외줄기 곧은 자태 ‘남성적’
천연기념물 제103호, 정부인송과 부부

산기슭에는 1500년 역사의 신라 고찰 법주사가 자리하여 불심의 중심을 이루고, 그 속의 팔상전은 우리나라 유일의 목탑으로 보물처럼 남아 있다. 이렇게 속리산은 자연과 불심, 그리고 문화가 어우러진 성산으로, 지금도 사람들에게 세속을 벗어나 마음의 고요와 깨달음을 찾게 하는 영산이다. 속리산의 치맛자락 아래, 마치 가을 하늘의 별빛처럼 박혀 있는 정이품송과 정부인송을 만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갈바람을 헤치며 달리는 고속도로 위로 펼쳐진 황금빛 들판과 붉게 물들어가는 숲의 풍경은 내 지나온 세월처럼 아득했다. 자연은 ‘가을’이라는 이름 하나로 세상을 물들이고 있었고, 그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또한 노거수를 찾아가는 순례길 같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자동차는 순식간에 고속도로를 벗어나 보은군 장안면 서원리 49-4번지로 향했다. 그곳에 정부인송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 선비의 아내답게 풍채는 점잖고 단정하여, 한 집안의 맏며느리처럼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가지들은 동서남북을 고루 감싸며 너그럽게 품어주는 여인의 품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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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송.

나이 600살, 높이 15.2m, 가슴둘레 4.7m. 높이 70cm 지점에서 두 갈래로 나뉜 줄기 하나는 3.3m, 다른 하나는 2.9m였다. 동서로 23.8m, 남북으로 23.1m나 되는 치마 품의 그늘에 서면, 부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한 평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속리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의 삼가천을 안고, 법주사로 이어지는 장안로를 곁에 두고 살아간다. 지나가는 이들을 굽어보며 유유자적 세월을 이어가는 품이 건강하고 고요하다. 사람들 또한 정부인송의 미모와 하늘로 뻗은 두 줄기의 힘찬 기운에 매료되어 많이 찾고있다. 

 

마을 사람들 역시 경외감이 들어 매년 음력 초이튿날, 정부인송 아래에서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마을은 평화롭고 주민들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라에서도 1988년 4월 30일 천연기념물 제35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정부인송의 치맛자락 속에는 세월의 나이테만큼이나 깊은 연륜과 지혜가 깃들어 있다. 지난 폭설에 몸이 다소 상했지만, 곧 회복해 다시 아름다운 자태를 되찾았다. 그 회복력은 놀라우리만큼 강인했다. 그래서 보은 사람들은 정이품송과 부부의 연을 맺어주어 ‘정부인송’, ‘보은의 딸’, ‘보은의 며느리’라 부르며 아끼고 사랑한다. 그 곁에 서면 누구라도 따뜻한 가족의 품에 안긴 듯한 평안을 느낀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조선 세조로부터 정이품 벼슬을 받은 정이품송이다. 법주사 입구, 이곳에서 7km 떨어진 곳에 서 있다. 수많은 나무 가운데 나라로부터 벼슬을 받은 나무는 아마 이 정이품송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그 사연은 이러하다. 세조 10년(1464),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였다.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려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가마가 걸릴 듯했다. 세조가 “가마가 걸리는구나” 하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했다. 또 다른 날, 세조가 비를 피하려 이 나무 아래 머물렀고, 그 충정을 기리기 위해 정이품, 곧 장관급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정이품송은 한때 삿갓처럼 둥글고 단정한 자태였으나, 1993년 강풍에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많이 상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의연히 서 있다. 나이 600살, 높이 16.5m, 가슴둘레 5.3m. 1962년 12월 3일, 천연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어 오늘도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정이품송이 외줄기로 곧게 자란 남성적이라면, 정부인송은 우산 모양으로 치맛자락을 드리운 여성적이다.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모습으로 세월을 견디며 부부의 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두 그루의 인연을 맺어준 중매자는 다름 아닌 충북 보은의 주민들과 산림청이다. 천지자연의 모든 존재가 이들의 장수와 평화를 축복했으리라. 오늘도 많은 사람이 정이품송 앞에서 부부 인연의 중요함을 인식하며 그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부부의 인연이란 무엇일까. 우연처럼 시작되지만, 실은 오랜 세월의 실로 꿰어진 인연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연이 있을까. 젊은 날의 설렘이 생활의 언어로 바뀌어도, 그 속에는 서로의 웃음과 눈물이 켜켜이 쌓이며 단단해진다. 옛사람들이 부부를 ‘천지지합(天地之合)’이라 한 것은, 하늘과 땅처럼 서로의 햇살과 그늘이 되어주는 삶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으면서도 결국 서로의 얼굴 속에서 자신을 비추어 본다. 

 

부부는 소유나 지배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며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늙어가는 동행자다. 젊은 날의 사랑이 불꽃이라면, 세월의 사랑은 서로의 숨결로 켜지는 등불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일이다. 오늘 속리산 법주사의 정이품송과 서원리 정부인송을 마주하며 나는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나무를 부부의 연으로 맺어준 보은인(報恩人)의 나무 사랑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부부는 말없이 눈빛으로 약속한다. “내일도, 알콩달콩 함께 걸어가자.” 
/글·사진=장은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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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품송.

속리산 국립공원 기념비문의 내용은…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고 옛 문물을 숭상함은 문화 민족의 자랑이다. 웅장하면서도 청아한 영봉과 기암괴석이며 첩첩이 굽이도는 절묘한 계곡과 하늘을 덮는 울창한 숲은 찾는 이로 하여금 한 여름에도 옷깃을 여미게 하고 신라 진흥왕 때 창건한 천년 향기 그윽한 법주사가 그 중턱에 자리 잡아 여기에 불교문화의 정수인 값진 문화제를 간직한 우리의 속리산은 역조의 왕이 행어 하셨고 많은 문인재사에 의하여 시와 노래로 읊어져 천하의 절승으로 널리 알려진 지 오래이다. 

 

이 유서 깊은 지역은 1966년 6월 24일 사적지 제4호로 지정되었고 1969년 1월 21일에는 관광지로 1970년 3월 24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자연보호와 국민의 보건 휴양에 이바지하는 바 지대하다. 1970년 5월 4일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이곳에 이르시어 국민 정서 순화의 요람지로서 속리산 국립공원 보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시고 공원 환경 조성과 사찰 정화에 관하여 구체적 개발 방향을 지시하심과 아울러 정부에서 적극 지원토록 조처하심으로써 1970년부터 사내리 신도시 건설 등 국립공원 연관 사업을 이룩도록 하였고 친히 공원 표제를 써 주시었기 우리는 조상의 얼이 담긴 이곳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고 가다듬을 것을 다짐하고 이에 속리산 국립공원의 연역을 밝힌다. 

 

1970년 10월 3일 충청북도 지사 정해식 엮음

수필가 장은재의 명품 노거수와 숲 탐방 기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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