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용역 통해 역사적 가치 학술조사, 동굴 현황 정밀 조사 추진 장기적으로 전쟁 상흔·평화 의미 체험 ‘다크투어리즘형 역사 관광 모델’ 완성
포항시가 남구 오천읍 일대에 방치된 일제강점기 인공동굴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전쟁 등 비극적 역사현장 탐방을 통해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 역사 관광지로 활용하기로 해 관심이 쏠린다.
19일 경북매일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오천읍 세계리와 광명리 일대에는 20곳의 인공동굴이 확인됐다. 이중 절반은 해병대 1사단 부지 안에 있고, 나머지는 농지와 민가 담장 사이에 흩어져 있다. 성찬문 광명리 이장은 “제대로 보존된 동굴은 거의 없고, 일부 창고로 쓰이거나 아예 방치돼 무너진 것도 있다”면서 “대부분 사유지 안에 있어 접근조차 어렵다”고 전했다.
이상준 포항문화원 부원장은 “일제강점기 오천읍 일대에는 일본 해군 항공대가 전쟁 대비를 위해 건설한 ‘영일항공기지’가 있었다”면서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조성된 이 기지의 도면을 일본 아시아역사자료센터에서 직접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중에서 적함에 돌진해 자폭하는 인간어뢰인 ‘가이텐’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된 사실도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이 부원장이 확보한 도면과 자료가 결국 "인공동굴의 역사적 가치가 문헌으로 확인돼야 한다”는 입장인 포항시를 움직였다.
포항시는 내년 초 용역에 착수해 인공동굴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학술조사와 더불어 동굴의 수·규모·위치·를 정밀 조사할 계획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해 5~10년 단위의 단계별 정비계획도 세울 예정이다.
김규빈 포항시 문화유산활용팀장은 “전쟁의 상흔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크투어리즘형 역사관광지’로 발전시키는 구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의 인공동굴 대부분이 사유지 또는 군부대 부지에 묶여 있는 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사현지 경북연구원 박사는 포항시·해병대·사유지 소유주·전문가·주민이 참여하는 상설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보존·운영·활용이 하나로 이어지는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사 박사는 특히 “군부대나 사유지 내 동굴은 협약(MOU)을 통한 제한 탐방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해병대와 협력해 소규모 예약제 탐방을 운영하면 보안문제를 해결하면서도 ‘특별 탐방’이라는 관광적 차별성을 확보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없는 구간은 VR·AR 기반의 가상탐방 콘텐츠로 대체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국가등록문화유산은 규제 위주가 아니라 소유자의 자발적 보호와 활용을 유도하는 덕분에 구조 변경이나 내부 개조가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법적 보호와 예산 지원은 제한적이다. 사 박사는 “단기적으로는 등록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는 핵심 동굴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 /김보규기자 kbogyu84@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