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충북 괴산 적성리 천연기념물 소나무 노거수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입석 고갯마루에 이르는 길은 조용했다. 시루봉휴게소 뒤편의 옛길을 따라 오르면 문득 세월이 꺾인 듯한 고요한 능선이 펼쳐진다. 650m 남짓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발밑을 스치는 바람은 뒹구는 낙엽 소리와 함께 오래전 이곳을 넘나들던 길손들의 숨결을 되살려낸다.
영남에서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향하던 과거의 선비들, 장짐을 둘러멘 보부상들, 생의 희망을 안고 먼 곳을 향하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발자취가 층층이 켜진 고갯길이다. 지금은 고갯마루 아래를 지나는 터널과 새 도로가 생겨 사람들의 발길은 끊겼지만, 고갯마루에는 여전히 그 옛날부터 장엄한 소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과거의 역사를 품은 채 그 자리를 지키며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듯, 물결처럼 너울거리는 가지 사이로 오후 한낮의 햇살이 푸른 솔잎 위에 반짝인다.
놀라웠다. 몸의 오각이 열리고 오감이 땅속에서 꼬물꼬물 솟아나는 맑은 샘물처럼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경외감의 발로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거대한 몸집과 근육질의 건강한 수형, 장수의 기운 앞에서 이 나무는 내 삶의 스승처럼 느껴졌다. 보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내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가치였다. 대지를 움켜쥔 채 노출된 뿌리의 꿈틀거리는 끈질긴 모습 또한 내 삶으로 반추되었다.
우리 삶 역시 뿌리, 곧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이 나무는 말없이 일러 주고 있었다.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나무 가까이 다가가 그를 안아 보았다. 그리고 잠시 나무가 되었다. 그사이 뒤따르던 대붕 아우가 도착했다. 그 역시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같은 행동을 했고, 소나무를 안은 채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나무와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은 나무와 닮아가고 있었다.
마주 보이는 백두대간의 경관은 한 편의 시이자 그림이었다. 백두산 천지에서 시작된 한반도의 등줄기가 금강산과 설악산, 태백산의 고산준령을 지나 소백산과 속리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조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남의 관문 백두대간 문경새재 고갯길을 넘어 이곳 적성리 고갯마루에 섰던 옛 길손들은 떠나온 고향을 바라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꼭 성공하여 금의환향하여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아들로 처자식에게는 믿음직스러운 남편과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그 원대한 꿈을 괴나리봇짐에 숨겨놓고 결기를 다졌을까.
입석마을이 생기기 백 년 전부터 이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는 천연기념물 제383호 소나무 노거수는 충북 괴산군 연풍면 적성리 산 26-4번지에 살아가고 있다. 나이 약 500년, 키 21.2m, 가슴높이 둘레 3.48m에 이른다. 마을 동제를 지내던 국사당 소나무는 이미 고사했지만, 그 흔적은 아직 남아 있다.
대신 이 천연기념물 소나무가 살아남아 지금까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속리산 정이품송과 형제처럼 닮은 모습이다. 줄기 윗부분은 붉은빛을 띠고 아랫부분은 검은빛을 띠어 소나무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원래는 가지가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어 있었으나, 2003년 설해(雪害)로 동쪽 가지 일부를 잃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낭당이 있어 당제를 지냈으나, 한국전쟁 이후 당집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조선의 길손들은 먼 길을 떠나며 마음 한켠에 두려움과 기대를 함께 품었으리라. 산을 넘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형을 건너는 일이 아니라, 고단한 삶의 무게를 딛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일이었다. 고갯마루는 그 길 위에 놓인 경계이자 시험대였다. 발목에 묻은 흙먼지가 무겁게 내려앉을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지기를 바랐고, 낯선 계곡의 바람에도 스스로 다독여야 했다.
험한 고개를 앞둔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며 언젠가 이 길 끝에서 다시 웃을 날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충북 괴산 적성 고갯마루에 우뚝 서 있는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수백 번의 사계를 견디며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 어쩌면 이곳을 지나며 옷깃을 풀고 쉬어 가던 길손들의 침묵을 오래도록 들어온 존재일 것이다. 고개를 넘기 전 무거운 마음을, 밤바람 속에 스미는 외로움을, 짚신에 구멍이 나도 되돌아갈 수 없었던 발걸음이었을 것이다.
소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았고, 그 아래를 지나는 나그네를 말없이 품어 주었으리라. 흔들리는 가지 끝마다 나그네의 사연이 걸리고, 껍질에 새겨진 세월만큼이나 간절한 기도들이 차곡차곡 쌓였으리라. 나이테의 연륜만큼이나 그 사연 또한 깊었을 것이다. 길손의 삶의 애환을 고갯마루에서 풀어헤친 보따리들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에 흩날리며 통한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노거수를 찾는 이만이 느낄 수 있는 바람의 전설이 되었다. 고갯마루에 서서 나무가 되어 푸른 그늘을 올려다보면, 길을 떠난 모든 이들의 숨결이 바람결에 되살아난다. 어쩌면 이 소나무는 길과 사람, 삶과 희망을 잇는 수호목이었을 것이다. 도적이 나타날까 두려워 서로를 기다리던 손, 낯선 이에게 내밀던 따뜻한 보리밥 한 숟가락의 정, 넘어야 했던 수많은 인생의 고비들. 그 모든 사연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어 지금도 은은히 내려앉는 듯하다.
길을 걷다 지친 마음을 잠시 멈춰서 쉴 때, 소나무는 묵묵히 말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인생 또한 그러하다고, 희망을 품고 계속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면 떠나는 길 위에 펼쳐진 고개는 끝이 없다. 언젠가 목적을 이루고 금의환향하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인생길은 되돌아올 수 없는 외길이기에 고갯마루에서 쉬면서도 앞만 보고 가야 하는 숙명의 길임을 깨닫는다. 내 또한 늘 힘든 고갯마루를 넘으면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란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아픈 다리 끌면서 인생 고갯길을 넘어왔다.
본래 적성리 고갯마루 소나무 주변에는 숲이 있어 고갯길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 역할을 했다. 그러나 어느 날 토지 소유주가 나무들을 베어내고 경작지로 바꾸어 버렸다. 주민들은 강풍으로 인해 소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실제로 괴산군 삼송리 천연기념물 왕소나무, 일명 용송(龍松)이 2012년 태풍 볼라벤의 거센 바람에 뿌리째 뽑혀 땅을 베고 눕고 말았다.
그와 같은 일이 이 소나무에도 되풀이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서, 토지 변경을 허가한 관계기관에 대한 원성도 컸다고 한다. 이에 충북 괴산군과 국립환경산림과학원은 송홧가루가 날리기 전 건강한 꽃가루를 채취해 유전자은행에 장기 보존하고, 후계목 육성에 활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군민들의 깊은 나무 사랑이 추운 겨울날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고사한 삼송리 왕소나무 노거수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삼송리 산 250번지. 왕소나무는 1982년 11월 4일 천연기념물 제290호 지정, 나이 600살, 키 12.5m, 둘레 4.7m이다. 숲에서 가장 커서 왕소나무라 부르며, 줄기의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용송(龍松)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이와 비슷한 노송 3그루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삼송리라 한다. 매년 1월에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제사를 지내며 새해의 풍년과 마을의 평화를 기원했다고 한다.
2012년 8월 28일 태풍 ‘볼라벤’이 동반한 강풍에 쓰러졌다. 쓰러진 상태로 보존하기로 하고 괴산군은 나무병원 직원들을 동원해 뿌리 부분 복토, 석축 작업, 새 뿌리 발생을 돕기 위한 약품 처리, 햇볕을 막기 위한 차광망 설치 등을 진행했다. 나무 주사를 놓고 병해충 방제 작업을 벌였다. 노력이 1년 정도 계속되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2014년 12월 5일에 천연기념물 지정을 해제했다. 충북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청주시 미원면 미동산수목원 뒤편 산기슭에 후계목을 기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