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길에서 만나는 울릉도 (24) 울릉도 호박엿
섬 개척 초기 구황작물이던 호박
옥수수 전분·엿기름 등과 배합해
국민간식 ‘호박엿’으로 인기 상승
△ 호박, 척박한 땅에서 잘자라는 구황식물
호박엿은 오징어와 함께 울릉도의 상징이다. 울릉도 호박엿이 유독 사랑받는 것은 엿에 늙은 호박(청둥호박)이 30% 이상 들어가 지나치게 달지도 딱딱하지도 않고 부드러워 먹기 좋은 까닭이다. 일설에는 울릉도에서 많이 자생하는 후박나무 껍질을 달여서 엿을 만들어 먹어 후박엿이라 했는데 발음이 변하면서 호박엿으로 되었고 나중에는 후박나무 껍질 대신 늙은 호박으로 엿을 만들게 되면서 호박엿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기도 하지만 근거는 미약하다. 후박 껍질보다 흔한 것이 호박이었기 때문이다.
호박은 덩굴성 1년생 박과 식물로 아메리카대륙(북중미)이 원산지다. pumpkin은 해독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학명 ‘Cucurbita’는 오이를 뜻하는 라틴어 ‘Cucumis’와 둥글다는 ‘orbis’에서 유래했다. 호박은 척박한 땅에도 잘 자라고 땅이나 가뭄, 병충해에도 강하고 저장성도 좋아 옛날부터 구황 음식으로 널리 쓰였다. 호박은 동양계 호박, 서양계 호박, 페포계 호박 등 3가지로 나뉜다.
동양계 호박은 애호박과 늙은 호박이, 서양계 호박으로는 단호박과 밤호박이, 페포계 호박으로는 쥬키니와 관상용 색동 호박이 잘 알려져 있다. 늙은 호박은 가을이 제철이며 익으면 황색으로 변하는데 잘 익을수록 당도가 높다.
호박은 임진왜란 이후 남쪽으로 들어왔다 해서 남과(南瓜)라 불렸다. 호박은 1613년에 출간된 『동의보감』에는 실려 있지 않으며 1884년에 발행된 ‘동의보감’ 의 축소판인 ‘방약합편’에는 ‘남과‘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울릉도에서는 울릉도 개척 당시 주민들이 호박 종자를 가지고 와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곡식이 부족했던 울릉도 개척 초기 구황작물로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80년대 중반부터 관광객에 판매
울릉농협, 1991년 생산공장 지어
지역 특산물로 본격 상품화 나서
△ 호박엿과 관련된 전설도 남아 있어
울릉도 호박엿 제조법도 전해진다. 주재료는 옥수수 전분과 엿기름, 늙은 호박이다. 먼저 말린 옥수수를 물에 불린다. 불린 옥수수를 멧돌에 넣고 갈아낸다. 갈아낸 옥수수는 다시 물에 불렸다 갈기를 반복한다. 옥수수의 하얀 전분이 나오면 물에 넣고 약한 불에 끓이다가 엿기름을 넣고 섞어 준다.
약한 불에서 서서히 엿기름이 전분을 잘 삭히도록 저어준다. 적당히 우러나면 무명 보자기에 넣어서 전분과 엿기름의 찌꺼기를 걸러낸다. 곱게 걸러낸 물을 다시 솥에 넣고 약한 불에 졸인다. 여기에 껍질 벗긴 늙은 호박을 잘게 잘라서 넣고 저어주며 졸아들도록 푹 고아낸다. 엿이 굳어지면 길게 늘였다가 접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엿 속에 많은 공기구멍이 생긴다. 엿에 공기구멍이 많을수록 이에 달라붙지 않고 먹기 좋다.
울릉도에서는 옥수수 가루 전분이 아니라 옥수수를 쪄서 자루에 담아 즙을 짜낸 뒤 엿기름과 호박을 넣고 엿을 만들기도 한다. 또 호박 조청에 옥수수 물엿을 배합해 호박엿을 만들기도 한다.
울릉도 호박엿이 생기게 된 전설도 있다. 울릉도 개척 무렵 태하마을 석달령 근처에는 열댓 가구가 살았다. 그중 한 집에 과년한 처녀가 있었는데 이른 봄 육지에서 가져온 호박씨를 심었다. 여름이 되자 호박은 열매를 맺었는데 호박이 익기도 전에 처녀는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고 말았다.
부모는 호박을 따먹었는데도 호박은 자꾸 열렸다. 가을이 되자 누렇게 익은 호박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겨울이 되자 부모는 그 호박으로 죽을 쑤었는데 엿과 같이 달았다. 호박죽이 아니라 그대로 엿이었다. 그 후부터 울릉도 사람들은 호박으로 엿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울릉도 호박엿에 대한 또 다른 유래도 있다. 1882년 개척 당시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과년한 처녀가 육지로 시집갈 날을 받아놓고 호박범벅을 끊이고 있었다. 자신이 시집을 가버리면 혼자 살아갈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다가 졸다가 호박범벅이 너무 많이 끓어서 졸아들어 버렸다. 호박이 졸아서 굳어진 것을 지나가던 이웃이 맛보고 ‘이거 호박엿이네’ 했던 것이 울릉도 호박엿이 생기게 된 기원이라고도 전해진다.
식량으로 호박을 먹다가 간식으로 엿을 만들어 먹게 된 내력이 전설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육지에 이주해 온 이들은 이미 엿을 만들어 먹을 줄 알고 있었는데 울릉도에 흔하게 나는 호박을 이용해 달달한 간식으로 호박엿을 만들었던 것이 오늘에는 울릉도를 대표하는 음식이 됐다.
울릉도 호박엿은 주민들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이웃끼리 나누어 먹다가 1980년대 중반 경부터 관광객들에게 팔기 시작하면서 울릉도 특산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울릉도 호박엿은 보통 호박 30%, 옥수수 물엿 70%를 배합해 엿을 만들고 있다.
울릉 농협이 호박엿을 지역특산물로 상품화 한 것은 1990년도 정부에 의해 전통식품개발사업자로 선정된 후 한국식품연구원의 자문을 받아 1991년 11월 울릉읍 도동리406-1일대에 생산 공장을 건립하면서 부터다. 울릉농협의 호박엿은 1992년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울릉도의 늙은 호박 음식은 호박엿 외에도 장아찌, 범벅, 죽, 즙, 엿, 젤리, 빵, 조청, 막걸리, 케익, 쇼콜라 등의 가공제품으로 다양화 되고 있다.
장아찌·죽·즙·젤리·빵·케이크 등
각양각색 호박 가공제품 쏟아져
민간선 조청·전·동동주로도 개발
△ 호박엿 울릉도 주민들이 즐겨먹던 간식거리
늙은 호박으로는 조청도 만든다. 천연의 꿀은 청(淸)이라 하니 조청은 인공 꿀이라는 뜻이다. 곡물의 전분은 찌거나 삶으면 익어서 호화(糊化: 전분에 물을 더하고 열을 가하면 팽윤하고 점성이 증가해 전체가 반투명한 풀 상태가 되는 현상. 즉 소화하기 쉬운 상태로 변한다.) 되는데, 여기에 엿기름 물을 섞고 따뜻하게 중탕을 하거나 묻어두면 밥알이 삭아서 당화되어 풀어지게 된다.
이것을 자루에 담아 단물을 짜낸다. 자루에 남은 것은 엿밥이라 하고 단물은 엿물이라 한다. 솥에 엿물을 붓고 진하게 조려낸 것이 조청이다. 호박 조청은 곡물가루 대신 늙은 호박을 이용해 만든다.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낸 다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푹 삶는다. 여기에 엿기름을 넣고 5시간 정도 달이면 반고체 상태가 된다. 이것을 식히면 호박 조청이 된다.
외래 작물인 호박이 이 땅에 유입된 시기는 부정확하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와 함께 들어 왔다는 설도 있고 남아시아에서 당나라를 거쳐 들어왔다는 설도 있다. 곡식이 귀한 울릉도에서 호박은 소중한 식량이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는 호박은 최고의 구황식품이자 효자식품이었다. 그래서 호박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들이 만들어졌다.
늙은 호박을 갈아서 부친 전인 호박전은 울릉도 주민들이 즐겨 먹던 간식거리였다. 울릉도식 호박전은 늙은 호박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긁어낸 뒤 강판에 곱게 간다. 여기에 찹쌀가루와 튀김가루를 혼합하여 걸쭉하게 만든다. 실파와 홍고추는 채 썰어 준비해 둔다. 달궈진 후라이팬에 반죽을 한 국자씩 올린 뒤 실파와 홍고추를 얹어 부쳐낸다.
쌀이 귀한 울릉도에서 호박은 옥수수와 함께 술을 빚는데 흔한 재료였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울릉도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토속 술이 호박 동동주다. 울릉도 사람들도 일을 하거나 잔치 때 즐겨 마시던 술이다. 호박 20kg을 기준으로 호박 동동주를 만드는 법은 이렇다.
호박20kg, 쌀1되, 누룩1되, 엿기름 1되를 준비한다. 쌀로 고두밥을 찌고 물 2되와 누룩 가루 1되를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따뜻한 방에 3일 정도 발효시킨다. 호박은 쪼개서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 죽을 끊인 후 식힌 뒤 엿기름을 넣고 거름망에 짠다. 호박 짠물을 끓여 엿물을 만든다. 발효시킨 밑술에 끊인 호박엿물을 섞고 여기에 끓여서 식힌 물 10리터를 붓는다.
따뜻한 곳에 2일 정도 놔둔다. 발효가 활발히 일어나고 쌀알이 동동 뜨면 술을 걸러낸다. 이 방법을 따라 하면 누구나 집에서도 울릉도 호박 동동주를 빚어 먹을 수 있다. 흔한 호박 하나가 그토록 다양한 음식들을 선물했다. 호박은 흔한 것이 귀한 것이라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준다.
/최병일기자 skycbi@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