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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빈곤 속에서 꽃핀 울릉도 음식문화

등록일 2025-12-09 17:20 게재일 2025-12-1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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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담길에서 만나는 울릉도 - (23) 울릉도 별미음식

쌀·보리 귀했던 궁핍한 옛 시절엔

 

나물·해초 넣은 ‘옥수수죽’이 주식

 

옥수수로 만든 떡·범벅조차 귀해

△ 옥수수에 감자 넣어 죽으로 끓여 먹어 

부지갱이 밭.

“문턱에 다다르니 주렁주렁 엮어서 달아놓은 미역취가 눈에 띈다. 부지갱이나물을 말려 항아리에 담아 놓은 것도 여기저기 있다. 부잣집에서 볏섬을 쌓아 놓듯 어느 집이나 두 가지 나물 준비가 돼 있다. 장씨가 점심으로 죽 그릇을 가지고 나와 기자의 눈앞에 내민다. 나물 건더기만 빽빽한 푸른 죽이다. 이 죽을 숟가락으로 뜨면 한 술에 곡식 알맹이라곤 강냉이 두세 조각이 얹어진다. 감자 조각 삐져 넣은 것은 세 술 만에 한 조각 담길까 말까….“

1934년 12월 12일 자 동아일보 기사다. 옛날 울릉도의 궁핍이 눈앞에 선해지게 만드는 기사다.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이 부족하던 울릉도에서는 옥수수나 감자가 주식이었다. 그러나 감자나 옥수수도 넉넉지 않아 죽으로 끓여 먹었지만, 그마저도 감자나 옥수수보다 푸성귀가 더 많이 들어갔으니 그 시절 울릉도 주민들이 겪었을 가난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저려온다.

옥수수를 맷돌에 쌀알 절반 크기로 갈아 감자와 함께 넣고 물을 부어 끓여낸 것이 옥수수죽이다. 옥수수는 주로 감자와 함께 죽을 끓여 먹었는데 그래야 포만감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옥수수나 감자도 부족해 부지갱이나 대황 같은 나물, 해초 등을 넣고 죽을 끓여 먹기가 다반사였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칡을 캐다 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울릉도 풍경

칡뿌리는 방망이로 한껏 두들겨서 물에 풀면 앙금이 가라앉고 녹말이 만들어진다. 그 녹말로 떡을 하면 까만색이 나고 쫄깃쫄깃하다. 다른 재료를 섞지 않고 오로지 칡 녹말만으로 떡을 하면 감자떡보다 더 맛있다. 칡 녹말로는 밀가루를 섞어서 수제비를 끓여 먹기도 했다. 하지만 칡 녹말을 만드는 일은 품이 아주 많이 든다. 칡을 캐다가 껍질을 씻고 찢고, 빻아서 물에 며칠을 우려야 한다. 7~8번을 우려야 하얀 녹말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라도 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여유가 있는 집은 옥수수떡도 만들어 먹었다. 옥수수는 맷돌로 갈아서 만들었는데 쌀이 귀한 울릉도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었던 떡이었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마른 옥수수를 물에 불린 뒤 갈아서 가루로 만든다. 팥은 삶아서 건진다. 찹쌀은 물에 불려 가루로 만든다. 옥수숫가루, 찹쌀가루, 삶은 팥을 버무리고 소금 간을 한 뒤 찜 솥에 쪄낸다. 다른 말로는 강냉이떡이라고도 한다.

울릉도산 나물로 만든 비빔 재료. 

옥수수는 식혜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울릉도 옥수수 식혜 조리법은 어렵지 않다. 옥수수 알은 잘게 갈아서 4-5시간 정도 불린 후 찜통에 찐다. 엿기름은 따뜻한 물에 주물러서 불린 후 채에 곱게 걸러 가라앉힌다. 찐 옥수수는 뜨거울 때 펴서 엿기름물을 붓고 따뜻한 곳에 놓아둔다. 4~5시간 후 옥수수 알갱이가 몇 알 떠오르면 찬물을 더 붓고 중불로 한번 끊인 후 식혀서 먹는다. 단맛을 더하려면 설탕을 약간 첨가하기도 한다.

이제는 섬 상징 같은 ‘호박엿’ 대신
 

‘옥수수엿’ 고아 팔던 산막도 여럿

△ 울릉도의 귀한 음식 취급했던 범벅 

울릉도에서는 범벅도 귀한 음식이었다. 범벅은 쌀이나, 밀, 메밀 등의 곡식 가루에 감자, 옥수수, 팥, 고구마, 호박, 콩 등을 섞어서 풀처럼 되직하게 쑤거나 푹 삶아서 만든 음식이다. 울릉도는 옥수수나 감자로 범벅을 만들어 먹었다. 

울릉도 옥수수 범벅은 마른 옥수수를 절구에 넣고 물을 뿌려 껍질이 벗겨서 만든다. 껍질이 벗겨진 옥수수를 솥에 넣고 물을 넉넉히 부어 옥수수가 툭툭 터질 때까지 삶는다. 여기에 팥을 넣고 계속 끓이면 옥수수에서 나온 전분에서 끈끈한 점성이 생겨나 옥수수와 팥이 고루 잘 섞인다.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춘다.

울릉도의 상징 같은 호박엿이 있었지만, 주민들은 옥수수엿도 만들어 먹었다. 인류가 엿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것은 무려 2천여 년 가까이 된다. 후한 말 유희(劉煕)가 지은 ‘석명(釋名)’에는 ‘묽은 엿은 이(飴), 된 엿은 당(餳), 당보다 딱딱하면서 탁한 엿은 포(餔)라 한다.‘는 기록이 있다. 6세기에 저술된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서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싹이 푸른 엿기름은 검은 엿을 만들 때 사용하고, 희게 싹을 틔운 엿기름은 흰 엿을 만드는데 사용한다.’는 기록도 있다.

엿에 대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나온다. ‘행당맥락(杏餳麥酪)’이라고 해 ‘당(餳)‘은 단단한 엿이고 ‘락(酪)‘은 감주의 일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때부터 엿기름을 만들어 엿이나 감주를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엿 만들기가 민간에서 보편화됐다.

울릉도 음식 

엿은 쌀,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등의 곡물에 엿기름을 넣어 삭혀서 만든 음식이다. 곡물에 들어있는 전분이 엿기름의 효소 성분에 의하여 삭으면서 당분으로 변하는데, 전분의 당화(糖化)를 이용해서 만드는 것이다. 

밥을 지어 한 김을 식히고, 그 위에 엿기름을 섞은 다음 8~10시간 정도 따뜻한 아랫목에 덮어두면 엿물이 된다. 엿물은 베자루에 퍼 담아 찌꺼기는 거르고 물만 받는다. 이 정제된 엿물을 가마솥에서 고면 엿이 된다. 물엿이다. 물엿을 밀이나 콩을 볶아 만든 가루를 깔고 펼쳐놓은 엿판에 부으면 굳어져 엿이 된다.

옛날에는 울릉도의 산막에서 옥수수엿을 만들어 파는 집도 여러 곳 있었다. 쉽지 않지만 지금도 레시피대로만 따라 하면 옥수수엿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먼저 말린 보리를 3~4일 정도 물을 뿌려주면 하얀 뿌리와 촉이 나온다. 이것을 3일 정도 말리면 엿기름이 된다. 이 엿기름에 물을 넣어가며 맷돌에 간다. 빻아둔 옥수수 가루와 엿기름 가루를 함께 넣고 한 시간 정도 끓인다. 

솥이 팔팔 끓으면 두 시간 남짓 식힌 다음 엿기름을 더 넣는다. 4시간 정도 그대로 두었다가 다시 불을 때서 팔팔 끓인다. 이것을 자루에 담아 엿 틀에 짜서 물을 받아낸다. 이 엿물을 솥에 붓고 4분의 1가량 남을 때까지 졸이면 물엿이 완성된다. 이 물엿을 엿판에 담으면 옥수수엿이 완성된다. 쌀 3말, 옥수수 2말, 엿기름 1말이면 30kg 정도의 엿이 나온다.

엿물에 누룩 넣어 발효시킨 탁주

 

용수 박아 만든 엿 청주까지 즐겨 

△  옥수수로 술 만들어 먹기도 

울릉도 엿 탁주 

옥수수로는 술도 만들어 먹었다. 엿과 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엿 만들기가 술 제조의 전 단계에 해당된다. 엿물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키면 술이 된다. 옥수수 엿 탁주를 만든 뒤 용수 박아 떠내면 엿청주가 된다. 전통적인 울릉도 엿탁주는 밑술에 덧술을 넣고 두 번 빚은 술이다. 

밑술은 멥쌀 1말 기준, 껍질 벗긴 생감자 4kg 정도를 섞어 감자고두밥을 쪄서 차게 식힌 뒤 잘게 부순 누룩 4kg을 섞는다. 여기에 감자고두밥이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따뜻한 방안 아랫목에 술독을 놓고 베 보자기로 술독을 살짝 덮어 2~3일 지나면 밑술이 완성된다.

덧술은 옥수수 가루 5말에 물 5말, 엿기름 2되를 섞어 가마솥에서 끓인 뒤 차게 식힌다. 여기에 다시 엿기름 4되, 양조용수 3말을 섞어 넣고 불을 지펴 엿물이 살짝 데워진 상태로 보온을 해 주면서 7~9시간 정도 삭힌다. 엿밥이 충분히 삭으면 기포가 올라올 때까지 한 번 더 팔팔 끓인 뒤 삼베 자루에 담고 눌러 짠다. 

찌꺼기는 버리고 엿물은 다시 솥에서 졸여서 차게 식힌다. 식힌 엿물에 발효가 된 밑술을 붓고 고루 섞이도록 저어준다. 술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방안에 이불로 싸서 덮어둔다. 술을 안친 지 하루 반나절이 지나면 술이 익는다. 이것이 엿탁주다. 여기에 용수를 박아 떠내면 엿청주가 된다. 계절에 따라 술을 빚는 시간이 다르다. 짧게는 4~5일 길게는 10여일이면 완성된다.

남쪽이 아니지만 울릉도에는 동백나무가 많다. 해양성 기후 덕분이다. 그래서 동백 송편도 만들어 먹었다. 추석에 먹는 음식인 동백 송편은 육지에서 만드는 송편과 비슷하지만, 송편에 참기름 대신 동백기름을 바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울릉도에서는 1970년대까지도 동백 열매에서 기름을 짜 등잔불을 밝히는 데 사용하였다. 동백기름은 부스럼을 치료하거나 머릿기름으로도 사용했다. 이 또한 재현해 내면 좋을 울릉도의 소중한 문화다.

/강제윤(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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