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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ㆍ특집

“맞춤 양복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양복업자들은 대개 인물도 몸매도 좋았어요.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근무하니 다들 멋있다고 했죠. 그런데 속은 다 문드러져 있었어요. 선배들 중에 70대에 세상 떠나신 분이 많아요. 양복지(洋服地)에 워낙 먼지가 많으니까요.” 1980년대 이후 기성복 선호 경향이 뚜렷해졌다. 88올림픽 이후 국내 양복의 역사가 맞춤식에서 기성복 시대로 바뀌면서 맞춤 양복점은 쇠퇴기로 들어섰다. 한창때에는 150여 곳에 달했던 포항의 맞춤 양복점은 지금 죽도시장, 중앙동 등에 서너 곳만 남았다. 그 많던 양복 기술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권창화 재단사에 따르면, 포항 시내 양복점 절반 정도는 세탁업으로 전환했다. 손재주가 뛰어난 양복사는 수선을 병행하는 세탁소로 성공하기도 했고, 일부는 프랜차이즈 양복점으로 업종을 바꿨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업종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맞춤 양복업 호황 대기업 뛰어들며 급변 멋진 배우 기성 양복 광고… 고객들 이탈 결정타는 IMF 사태… 업종 사라질 위기 “내 몸에 딱 맞는 옷 어디서도 찾기 어려워” 맞춤 양복을 경험한 이들 그 매력 푹 빠져 기성복과 달리 한 사람을 위한 작품이기에 재단사로 일한 지 올해로 48년째인 권씨 첫 직장이자 지금까지 이어온 그의 인생 “값을 매길 수 없는 정성, 인정받는 날 오길” 맞춤 양복, IMF 때 결정타 맞아 권 재단사는 맞춤 양복업의 호황이 계속될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젊을 땐 술을 좀 했습니다. 해만 빠지면 친구 예닐곱이 가게 앞에서 기다렸어요. 권창화한테 가면 술 얻어먹는단 소문이 돌았거든요.” 당시 그의 가게 앞 풍경은 호황을 상징적으로 알려준다. 권 재단사는 “88올림픽 이후 이삼 년은 그래도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LG패션, 반도패션 등 대기업들이 양복업계에 뛰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텔레비전 광고에 멋진 배우들이 나와 기성 양복을 광고하면서 맞춤 양복 고객이 대거 빠져나갔다. 초기에는 이른바 메이커 양복이 비쌌지만, 시간이 지나자 가격이 역전되고 격차도 벌어졌다. 결정타는 1997년 IMF 사태였다. 맞춤 양복 종사자 수가 급감하면서 업종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매년 발간되는 『한국직업사전』에는 1950년대부터 맞춤 양복 관련 직종이 수록되어 있다. 1980년대 『한국직업사전』에는 맞춤 양복공, 의복가봉공, 맞춤 양복 견습생이 수록되어 있지만, 2000년대에는 양복 관련 직업으로 ‘양복제조원’만 수록되어 있다. 세분화한 양복 관련 직종을 모두 합쳐 부르는 말이다. 2010년에는 ‘양복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재단사와 봉재사가 모두 합쳐진 직종이다. 견습생 직종이 사라진 것에서 맞춤 양복의 흥망과 직업 선호도를 가늠해볼 수 있다. - 정붓샘, 「노포의 탄생」, 『100년의 테일러, 종로양복점』, 국립민속박물관, 2014, 130쪽. 1990년대에 기성 양복이 전체 양복 소비의 8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맞춤 양복업계는 급격히 위축되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양복점 1500여 곳이 폐업하고, 업계 종사자 약 18만 명이 이탈했다. 권창화양복점도 예외가 아니어서 IMF 이후 다섯 차례나 자리를 옮겨야 했다. IMF 이후 구 포항역전으로 이전했다가, 2000년에는 건물주가 건물을 매각하면서 구 역전파출소 앞으로 옮겼다. 이후 중앙상가 확장으로 2002년 신흥동으로 내쫓겼다가, 2007년 구 포항전화국 앞 현 위치에 정착했다. 가게를 옮겨다니는 과정에서 상패를 모두 내버렸다. 현실이 팍팍하니 한때의 영광이 부질없어 보였다. “노포가 인정받는 시절이 올 줄 알았으면 남겨둘 걸 그랬어요.” 권 재단사는 지난 20년 동안 양복업을 접을지 말지 수없이 고민했다. 돈이 되는 업종으로 전환해보려고 가족이 나서 신시가지 유동 인구를 조사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내에게 큰 병이 찾아와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기성복과의 가격경쟁 위해 ‘반맞춤’ 방식 도입 현 위치에 정착한 뒤에야 비로소 숨을 고른 권 재단사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며 명맥을 이어왔다. 먼저 꺼낸 카드는 고급화 전략이다. 그는 과감하게 이탈리아 명품 원단을 들여오고, 실력 있는 기술자에게 공임을 더 얹어주며 품질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역에서 300만 원에 이르는 맞춤 양복을 구매할 만한 고객층이 두텁지 않았던 것이다. 원단 공급업체는 최소 열 벌 이상을 구입해야만 견본 책자를 제공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부담은 늘어갔다. 끝내 판매하지 못한 원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다. 한편으로 기성복과의 가격경쟁을 위해 새로운 시스템도 도입했다. 재단된 옷감을 전문 재봉회사에 위탁해 제작하는 MTM(Made to Measure) 방식, 즉 반맞춤 방식이다. 이지오더(easy order)라고도 불리는 방식으로 미리 정해진 디자인과 원단으로 체형별 표준 치수에 맞춰 옷을 생산한다. 가봉 과정이 생략되니 신속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권 재단사는 한국기능올림픽과 일본기능올림픽 수상 경력의 재봉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품질 좋은 양복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국산 원단 기준 120만∼150만 원대 맞춤 양복을 절반 비용에 제공할 수 있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물론 시스템이 아무리 좋아도 베테랑 재단사의 눈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표준 체형은 무리가 없었지만 특수 체형은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단사의 손이 일일이 닿지 않는 시스템으로는 고객이 100퍼센트 만족하는 양복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맞춤옷이란 좋은 자리를 빛내기 위해 큰맘 먹고 해 입는 옷입니다. 그러니 더더욱 허투루 작업할 수 없죠. 고객이 좋은 자리에서 귀한 대접을 받도록 하는 일이니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포항의 최고령 현역 재단사 누군가의 옷을 만들어 입히는 일은 수없이 해온 작업이지만 여전히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의 연속이다. 미세한 주름 하나를 다듬고 고쳐 세우느라 세월 가는 줄 몰랐다. 원단을 재고, 자르고, 꿰매고, 다시 뜯기를 거듭하는 동안 손가락은 늘 얼얼하고 시렸다. 그렇게 50년을 매달려왔지만, 지금도 한 벌 한 벌에 온 힘을 쏟아붓는 긴장감은 변함없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찾아주는 고객들이 있어 힘들고 고된 시간을 잊게 된다. 얼마 전에는 포항 해병대 청룡회관에서 근무했던 고객이 15년 만에 연락을 했다. “이리저리 유명한 곳을 다녀봐도 내 몸에 딱 맞는 옷을 찾기 어렵다”며 다시 주문을 의뢰한 것이다. 이처럼 한번 맞춤 양복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몇 가지 패턴으로 만들어지는 기성복과 달리 단 한 사람을 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랜 단골손님들을 마주하면 그들에게도 여지없이 흘러간 시간의 흔적을 발견한다. 처음 발길을 했던 청년이 중년으로 접어들고 이제는 장성한 아들을 데려와서 양복을 맞춰주는 모습을 본다. 대를 이어 맞춤 양복의 품격을 입혀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 더 정성을 들인다. 재단사로 일한 지 올해로 48년인 권 재단사에게 맞춤 양복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면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군 제대 후 첫 직업이었고 모든 걸 바쳤어요. 지금까지 먹고살아온 것도 양복 덕분이죠. 그래서 정리해야 할 나이인데도 붙잡고 있어요.” 권 재단사에게 양복은 인생 그 자체다. 양복점이 첫 직장이었고 가족을 먹여 살렸고 지금까지도 놓지 못하니 마지막 직장이 될 것이다. 권 재단사는 포항의 현직 재단사 가운데 최고령자다. 그는 돈으로는 값을 따질 수 없는 정성이라는 가치가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권창화양복점을 지킨다. 〈끝〉 글 : 배은정(소설가) 사 진 : 김 훈(작가)

2025-10-22

천년고도 불국사의 가을, 불국토를 품다

경주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천년고도의 깊은 숨결이고, 그 중심에 우뚝 선 토함산과 남산은 마치 거대한 역사박물관과도 같다. 토함산 자락을 따라 오르면 불국사의 장엄한 기와가 햇살을 받아 빛나고, 다보탑과 석가탑은 천년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지혜의 상징처럼 서 있다. 토함산 정상에서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석굴암은 고요히 부처의 미소를 간직한 채 세상의 번뇌를 감싸안는다. 토함산과 남산은 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신라인의 정신과 예술, 그리고 우리 민족의 혼을 품은 살아 있는 시간의 성전이다. 불국사 가는 토함산 끝자락에 뿌리내려 키 17m·몸둘레 6m·앉은자리 폭 29m 700년 오랜 세월 살아온 마을의 큰 어른 정자·복지회관 품고 사람들 삶 속에 녹아 나누는 담소·두 손 모아 기도하던 간절함 아이들 해맑은 미소까지 고스란히 스며 토함산 자락에 자리한 가을의 불국사는 그 이름처럼 불국토를 옮겨 놓은 듯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이다. 단풍잎이 금빛과 붉은빛으로 물들어 경내를 수놓으면, 청아한 기와지붕 위로 흩날리는 낙엽은 천년 세월을 품은 고즈넉한 숨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이룬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가을 햇살 속에서 더욱 단단히 빛나며, 경내를 거니는 발걸음마다 신라인이 꿈꾸던 이상향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불국사의 가을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불심과 평화의 빛을 일깨워 주는 순간이다. 불국토의 상징인 불국사로 가는 토함산 끝자락 마동 588번지, 하천 변에 뿌리를 내린 느티나무 노거수 한 그루가 살아가고 있다. 그는 700년 세월을 살아온 마을의 어른이다. 키 17m, 몸 둘레 6m, 앉은 자리 폭 29m나 되는 거인의 노인이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는 정자와 복지회관을 품고 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든 존재가 되었다. 주민들은 그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세 개의 지팡이를 선물하여 노령의 몸을 지탱하게 했다. 그리고 작은 원통형 돌담을 경계로 함부로 접근을 금지했다. 나무 아래 제단을 만들어 매년 정월 대보름날에 동신제를 지내며,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한다. 세월 앞에 조금씩 속을 비워내며 쇠약해지는 듯 보이지만, 느티나무는 여전히 제 역할을 잃지 않는다. 한 줄기에서는 먼저 잎이 돋고 꽃이 피어나고, 다른 줄기에서는 늦게 잎과 꽃이 터져 나오니, 같은 뿌리이되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묘한 대비가 눈길을 끈다. 보기에 따라 한 나무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나무가 하나의 나무로 된 연리목 같기도 하다. 뿌리는 분명히 하나로 연결된 연리근 나무일 것이다. 나무줄기 높이 2미터에서 다섯 가지가 뻗어 올라 서로 얽히고 합쳐진 연리목의 나무임이 분명해 보였다. 주민들은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크기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회상하고 있다. 잎의 크기와 무성함이 줄어든 것을 보며 나무의 나이를 실감한다. 비 오는 날이면 줄기 속에서 스며 나온 물이 고여 흐른다는데, 그 빈속조차 생명을 품은 흔적처럼 여겨진다. 불국사가 가까이 있는 이곳에서, 마동 느티나무는 세월의 집, 사람들의 기도를 담아온 신목(神木)으로 남아 지금도 조용히 마을을 품고 있다. 뿌리에서 갈라져도 결국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닮았다. 나무의 곁에 앉으면 자갈이 깔린 바닥 너머로 잔잔히 흐르는 하천의 물소리와 함께 천년고도의 숨결이 들려오는 듯하다. 마을이란 집들이 모여 있는 거주지만은 아니다. 세월의 결을 따라 전통과 기억이 겹겹이 쌓여 형성된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노거수는 마을의 얼굴이자 품격을 드러내는 기둥으로, 수백 년 동안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마을의 역사를 증언한다. 지도 위의 작은 점에 불과한 마을은 노거수를 통해 이름과 이야기를 얻고, 외부에 그 존재의 위상을 드러낸다. 노거수가 없는 마을은 제단 없는 의식과 같아 중심이 희미하고, 광장이 없는 도성처럼 모임의 자리가 비어 있다. 그러나 노거수가 있는 마을은 그 자체로 풍경이 되어, 아늑한 그늘과 푸른 수관이 마을을 감싸안으며 사람들에게 안도와 휴식을 준다. 웅장한 수형은 마을의 품격을 한층 높이고, 사계절의 빛을 담아내며 마을 경관을 풍성하고 풍요롭게 한다. 결국 한 그루의 노거수는 마을의 정신을 세우고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문화적 상징이자 공동체의 심장이다. 마을의 노거수는 오랜 세월 한자리에 서서 주민들의 삶을 지켜본 따뜻한 증인이다. 그늘에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들의 웃음소리, 제의를 올리며 두 손 모아 기도하던 간절한 마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까지 모두 나무의 가지와 잎새 속에 고스란히 스며 있다. 노거수는 바람과 비를 막아주는 보호막이자, 사계절마다 색을 달리하며 주민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건네는 마을의 큰 품이다. 그 존재만으로도 노거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다. 굵은 줄기와 드넓은 수관은 마을의 품격을 높이고, 그 아늑한 그늘은 언제나 열려 있는 쉼터가 된다. 농사일에 지친 어른에게는 평온을, 뛰노는 아이에게는 자유를, 외지인에게는 마을의 아름다움과 따스한 기운을 선물한다. 이렇듯 노거수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의 마음을 한데 모아주는 살아 있는 기둥이자 감동의 근원이다. 노거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교육적이고 정서적인 스승이 된다. 그 그늘에 어른들은 옛이야기를 들려주며 역사를 전하고, 아이들은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자란다. 세월을 견뎌온 굳건한 줄기는 인내와 끈기를 가르치고, 사계절 따라 변하는 수관은 삶의 무상함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또한 그 아늑한 품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평온을 주어, 마음을 달래고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정서적 균형을 길러준다. 마을 노거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은 우주이자 생명의 집합체이다. 굵은 줄기의 갈라진 틈은 올빼미와 딱따구리의 보금자리가 되고, 무성한 수관은 여름의 햇볕을 가려 새와 곤충들에게 그늘을 내어준다. 떨어진 잎은 땅으로 돌아가 흙을 살찌우고, 그 속에서 곤충과 균류가 자라나 또 다른 생명의 터전을 마련한다. 한 그루의 나무가 품은 공간은 수많은 종에게 삶을 잇는 다리가 되어, 보이지 않는 생명의 사슬을 이어준다. 이렇게 느티나무는 마을 생태계의 심장으로 뛰고 있다. 바람을 흡수하고 뿌리로 물길을 잡아 토양을 지탱하며, 그늘은 미세 기후를 조절해 사람과 생물 모두에게 안온한 환경을 마련한다. 거대한 수형 속에서 이어지는 생명들의 공존은 마치 교향곡처럼 조화롭고 서정적이다. 그래서 노거수 앞에 서면,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거대한 순환과 자연의 질서를 마주하게 된다. 경주에서 열리는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세계가 모여 미래의 협력과 지속가능성을 논의하는 자리이지만, 그 무대 뒤에는 천년고도 경주가 품은 자연자산이 살아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노거수들은 인간의 문명을 넘어선 생명의 시간과 기억을 간직한 존재들이다. 경주의 노거수와 숲을 세계에 드러내는 일은,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지구 공동의 유산임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언어가 아닐까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노거수의 외과 수술 지역에 잔존하는 노거수는 그 지역 삼림의 임령(林齡)보다도 훨씬 수령(樹齡)이 오래된 경우가 많다. 지역에서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유일한 고령의 잔존 생물체이며, 고령의 생물체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생물 종들에게 유일한 삶의 터전으로 기여하는 핵심 서식처 자원(생물 종과 개체들의 서식을 제어하는 생태적 요소는 조건과 자원이며, 조건이 무제한이라면 자원은 소모되어 버림으로써 제한적 요소임)이다. 올빼미류와 딱따구리류는 노거수를 필요로 하는 조류들이며, 엄청난 수의 분해자들은 노거수에 의존한다. 향토 문화적 요소로서 잔존하는 노거수일지라도 노거수 개체에 대한 생태학적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늙은 개체는 필연적으로 분해자들에 의하여 썩어가는 부위가 발생할 수 있다. 이처럼 보다 노쇠한 노거수 개체에서 관찰되는 생태적 메커니즘에 ‘외과수술’이라는 인위적 노거수 관리는 그러한 조류들의 서식을 크게 위협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민속적 목적에 의한 노거수의 경우 적절한 외과수술이 적용될 수도 있다. 해당 노거수에 대한 주요 생물종의 서식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한 면밀한 생태적 조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2025-10-22

외국에선 어떤 닭 요리를 먹을까

한국은 닭을 맛있게 요리하는 나라다. 몇 해 전부턴 세칭 ‘K-푸드’의 하나로 조각내 튀긴 닭에 매콤달콤한 양념을 바른 게 지목됐고, 적지 않은 외국인들이 서울과 부산, 경주와 제주에서 그걸 맛보며 만족해하는 모습이 TV 전파를 타기도 했다.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 몇 개 도시엔 최근 들어 한국식 양념통닭을 판매하는 식당이 생겨나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닭은 한국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 어느 곳에서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다. 그렇기에 동서양을 불문하고 다양한 닭 요리는 수백 년 전부터 있어 왔다. 일본의 닭튀김인 ‘가라아게’는 한국에도 안주로 판매하는 주점이 적지 않고, 중국 남부에서는 오래전부터 닭고기에 팔각, 육두구, 생강 등의 향신료를 더해 ‘자지가이(炸子雞)’를 만들어 먹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이 많은 인도네시아도 닭을 통째 튀겨 ‘아얌 고렝’이라 부르며 맛있게 먹는다.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는 닭고기의 주요 소비국이다. 닭 날개를 매운 후추 소스에 발라 튀긴 ‘버펄로 윙’은 미국에서 시작된 요리로 알려졌고, 인도는 각종 향신료와 버터를 넣어 오랜 시간 끓인 닭 스튜를 즐긴다. 붉고 선명한 토마토의 주요 생산지 가운데 하나인 스페인에선 ‘토마토 닭조림’을 만들고, 이건 유럽인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코코뱅, 필리핀의 아도보(Adobo) 역시 닭을 재료로 만들어지는 요리. 앞으로는 또 어떤 새로운 닭 요리가 만들어져 사람들의 미각을 유혹할지 궁금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0-21

청도 별미 ‘옹치기’를 아시나요?

몇 해 전이다. 고색창연한 운문사 풍광이 좋고, 끈적끈적 달콤한 반시가 혀를 녹이는 경북 청도에 갔다. 군청 직원을 만나 물어볼 게 있었다. 일 때문에 갔고, 급히 돌아와야 했으나 점심을 굶을 수는 없는 노릇.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행위가 다 먹고살자고 버둥대는 짓인데. 옹그리고 있는 닭에서 비롯된 ‘옹치기’ 맹물에 삶은 닭을 간장 양념으로 조려 찜닭과 비슷하지만 당면은 넣지 않아 청도 방문땐 ‘옹치기 조림닭’ 맛보길 청도군청 직원에게 물었다. “점심때가 좀 지나긴 했는데, 어디 괜찮은 식당 없나요?” 질문을 받은 사람이 옆 자리 동료를 힐끗 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옹치기가 좋겠지?” 처음에는 옥호(屋號)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란다. 음식 이름이라고 했다. 50년 넘게 살아오며 먹어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음식이다. 궁금증이 일었으니 당연지사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옹치기? 그게 뭔데요?” 흔한 재료로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어의 지느러미나 거위의 간, 이탈리아 특정 지역에서 채취한 송로버섯 등은 이미 재료의 희귀성과 이름값만으로도 만들어질 요리에 관한 기대치를 높인다. 그리고, 솔직히 고가의 재료를 사용하면 비단 일류 셰프가 아닌 누구라도 그럴듯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정성 들여 잘 기른 한우나 일본 와규가 숯불에 구워도 맛있고, 가스불에 구워도 근사한 맛을 내는 것처럼. 이야기가 멀리 갔다. 다시 청도군청으로 돌아가자. 옹치기가 뭔지 묻는 우리 일행에게 돌아온 대답은 “안동찜닭하고 비슷한데,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였다. 주인장에게 요리 이름을 그렇게 붙인 이유가 뭔지 물어보려면 가볼 수밖에 없었다. 군청 공무원과 인사하고 차에 올랐다. 다행히 ‘옹치기’를 파는 식당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닭은 지구 위에서 가장 흔해빠진 식재료 중 하나다. 어느 정도냐? 최근 조사에 의하면 1년 동안 도축돼 사람들의 입 속으로 들어가는 닭은 약 600억 마리. 한국에서만 1억2천만 마리가 넘는다. 길러서 잡아먹기까지 걸리는 기간도 짧아서 1~2개월이면 충분하다. 종교적 금기 탓에 무슬림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힌두교도는 소고기를 안 먹는다. 그러나, 그들 모두 닭고기는 사양하지 않는다. 육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 가운데 하나 아닌가. 2005년 초여름엔 인도를 한 달쯤 돌아다녔고, 2011년 5월엔 이란을 17일간 여행했다. 알다시피 인도는 힌두교도가,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이 국민의 절대다수다. 그랬기에 인도에선 소고기구이 식당을 보지 못했고, 이란 사람들은 “한국인은 돼지고기를 즐긴다”는 기자의 말에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지사 이란엔 삼겹살집이 없다. 그래서였다. 누구보다 육식을 좋아하는 기자는 ‘꿩 대신 닭’ 아니, ‘소·돼지 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인도에서도 이란에서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닭고기를 먹었다. 한국과 비슷하게 두 나라 모두 닭 요리법이 다양했다. 기름에 튀기고, 큰 솥에 삶고, 탄두르(tandoor)라는 화덕에 굽고, 걸쭉한 양념을 더해 졸이고…. 맛은 어땠냐고? 예상대로 한국 닭 요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옹치기’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말해줄 때가 됐다. 예상과는 달리 특별하고 유별난 사연을 가진 호칭은 아니었다. 식당 주인이 어느 날 털이 벗겨진 채 ‘옹그리고 있는’ 닭을 봤고, 그게 식당 메인 메뉴의 이름인 ‘옹치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맹물에 한 번 삶아낸 닭고기에 간장을 베이스로 만든 양념과 육수를 넣고 바특하게 조려낸 옹치기. 기억에 남을 대단한 맛은 아니었으나, 다시 청도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은 더 들르고 싶을 정도의 맛이라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란의 수도 테헤란과 중세 사파비 왕조의 고도(古都) 이스파한을 잇는 고속도로엔 몇 개의 휴게소가 있다. 그 휴게소 가운데 한 곳에서 페르시아 스타일로 요리한 ‘닭다리 조림’을 먹은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청도의 별미 ‘옹치기’와 너무나 비슷한 맛이었다. 맞다. 닭고기라는 같은 재료로 ‘사람이 만들어 사람이 먹는 음식’이 달라봐야 뭐가 얼마나 다르겠는가. 아주 먼 옛날에도 신라 사람들은 페르시아까지 걸어서 가곤 했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0-21

문경시 ‘닻별 테마길’, 6000여 명 노란 물결

가을밤 문경의 도심이 노란 별빛으로 물들었다. 문경시는 19일, 점촌점빵길 ‘닻별 테마길’에서 열린 ‘점촌점빵길 가을음악회’가 약 6000여 명의 관람객이 운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고 밝혔다. 이날 현장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트로트 가수 박서진 팬클럽 ‘닻별’ 회원 1500여 명(대형버스 38대 규모)의 참여로 열기와 함성이 가득했다. 문경의 골목길은 노란 닻별풍선과 깃발로 수 놓였고, 공연장에는 가족 단위 시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져 진정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이번 음악회는 문경시가 추진 중인 ‘닻별 테마길 조성사업’의 첫 성과로, 지역 상권 재생과 문화 활성화를 목표로 기획됐다. 시는 점촌역전상점가·행복상점가·문경중앙시장을 잇는 점촌점빵길 130m 구간에 노란색 간판과 어닝을 새롭게 단장하고, 상징 조형물 13점과 조형벤치 20개, 18m 은하수 조명과 360여 개의 파티등을 설치해 도심 속 ‘빛의 거리’를 완성했다. ‘닻별’은 트로트 가수 박서진의 공식 팬클럽 이름이자, 이번 거리 조성의 상징이 된 문경의 새로운 문화 브랜드다. 문경시는 팬덤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지역경제와 결합해 문화도시형 상권 회복 모델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무대에는 문경시 홍보대사인 박서진을 비롯해 윤윤서, 장혜진, 장현욱, 김수찬, 윤수현, 지원이, 이수호 등 인기 트로트 가수들이 총출동해 화려한 무대를 꾸몄다. 박서진은 이날 마지막 엔딩무대를 맡아 히트곡 ‘문경이 좋다’와 ‘닻별의 노래’를 연이어 선보이며 관객들의 환호 속에 ‘별빛 피날레’를 장식했다. 공연 중에는 관람객들이 휴대폰 불빛을 흔들며 ‘닻별 물결’을 만들어내, 거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황금빛 파도처럼 반짝였다. 공연이 끝난 후에도 팬들과 시민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사진을 찍고, ‘닻별 포토존’과 ‘체험부스’를 찾는 등 열기가 이어졌다. 같은 날 운영된 ‘닻별(노랑)마켓’은 점촌상권 활성화의 중심 무대였다. 지역 상가 10개 팀이 참여한 특설 장터에서는 문경사과빵, 오미자청, 수공예품 등 지역상품이 판매되었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울리며 활기찬 장터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닻별 색상’을 활용한 체험부스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별모양 장식품을 만드는 체험을 즐겼고, 길거리 포토존은 전국 각지에서 온 팬들의 인증샷 명소로 인기를 끌었다. 행사 이후에는 숙박·음식업계 매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으며, 상가 주변 거리의 유동인구도 평소 대비 3배 이상 늘어나 ‘문화형 경제선순환’의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문경을 찾아준 박서진 가수와 전국의 닻별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점촌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고,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또한 “중앙시장과 연계한 점촌점빵길 구간에 노란 닻별 테마길 조성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문화·경제가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도심재생 모델을 완성하겠다”고 강조했다. 문경의 ‘닻별 테마길’은 단순한 팬테마 공간을 넘어, 지역문화·청년창업·관광콘텐츠를 결합한 새로운 도심 재생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문경시는 내년 상반기까지 점촌중앙시장과 행복상점가 일대를 연결하는 추가 구간을 조성하고, 정기적인 버스킹 공연과 야간 조명 축제를 통해 ‘365일 즐기는 문화거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10-21

영천 가을축제 8만 2000명 방문 다채로운 즐길거리로

영천시의 대표 축제들이 동시에 열리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축제는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다채로운 즐길거리와 풍성한 먹거리를 선사했다. 이번에 동시 개최된 축제는 △제22회 영천보현산별빛축제 △제23회 영천한약축제 △제13회 영천와인페스타·한우 명품구이축제 △제51회 영천문화예술제다. 축제들은 영천의 자연과 과학, 전통, 예술, 식문화를 한데 모아 보여주며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 산업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천의 별빛 아래, 토성의 고리를 찾아’를 슬로건으로 열린 보현산별빛축제는 보현산천문과학관 일원에서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개막식에서는 별빛어린이무용단 공연과 초청가수 김필의 무대, 드론 라이트쇼가 펼쳐졌으며, 별자리 강연과 아마추어 천문동아리의 ‘스타파티’, 과학 체험 프로그램 등이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후원으로 운영된 드론 시뮬레이터, 레이저 사격, AI 오목로봇 체험 부스도 인기였다. 특히 보현산댐 출렁다리 야간 개방은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특별한 추억을 선물했다. 영천강변공원과 한의마을에서 열린 한약축제는 한방 명의 진료, 약초전시터널, 희귀약재 전시 등 전통 한방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꾸며졌다. 약초 향주머니 만들기, 어린이 갓 만들기, 조선시대 캐릭터와의 전통놀이 등 가족 친화적 체험도 마련됐다. 룰렛 이벤트와 스탬프 투어를 통한 경품 행사도 인기를 끌었다. 영천와인페스타와 한우 명품구이축제는 영천강변공원에서 동시에 열렸다. 와인페스타에서는 지역 10개 와이너리의 50여 종 와인을 시음·구입할 수 있었으며, 와인 담그기·병입체험 등 참여형 프로그램도 운영됐다. 한우축제장에서는 할인된 가격의 한우를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첫날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우불고기버거, 돼지육포 등 축산물 시식 행사도 진행됐다. 영천문화예술제는 풍물·난타 경연대회, 품바 페스티벌, 전통 줄다리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시민과 관광객의 참여를 이끌었다.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왕평가요제가 피날레를 장식했으며, 주현미와 박구윤 등 트로트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흥겨운 분위기를 더했다. 시민 정미숙(43·영천완산동) 씨는 “한자리에서 와인도 즐기고 한우도 맛볼 수 있어 가족 모두 만족스러웠다”며 “밤하늘의 별빛축제까지 이어지니 영천이 정말 활기찬 도시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은 “도심 가까이에서 전통과 과학, 문화가 어우러진 축제가 열린 건 오랜만”이라며 “매년 이런 축제가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최기문 영천시장은 “이번 축제는 영천의 자원을 활용한 특색 있는 행사로,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기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었다”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조규남기자 nam8319@kbmaeil.com

2025-10-21

한 집 건너 한 집이 양복점이었던 시대

1960년대 한국을 찾은 한 외국인 재단사는 “한국은 양복점의 천국”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맞춤 양복의 시대는 30여 년간 절정을 이루었다. 도심 곳곳에 맞춤 양복점이 즐비했고 포항도 예외는 아니었다. 포항은 철강도시로 변모하면서 인구가 급증했고 양복을 찾는 사람도 증가했다. 1980년대에 포항에 150여 개의 양복점이 들어섰으니 맞춤 양복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48년간 포항에서 양복점을 운영해온 권창화 재단사는 당시 지역에서 규모가 컸던 양복점으로 권창화양복점을 비롯해 대일라사, 보성라사, 동양라사, 연일라사, 강은라사, 신고사양복점 등을 꼽았다. 당시에는 ‘양복점’보다 ‘라사(羅紗)’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었다. ‘라사’는 일제강점기에는 모직과 견직물 판매점 이름으로 사용됐고, 1950~60년대에는 양복점 상호로 자리 잡았다. 양복지가 귀하던 시절, 좋은 양복점은 곧 질 좋은 원단을 갖춘 곳과 같은 의미로 통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양복점일 정도였어요. 양복협회 일을 오래 맡은 대일라사가 가장 규모가 컸고, 그다음이 우리였죠.” 60년대부터 30여 년 맞춤양복시대 절정 80년대 포항도 도심 곳곳 150여 곳 성업 ‘세일즈맨’ 둔 업계 1위 ‘대일라사’와 달리 양복대금 지불은 ‘일시불’ 원칙 고수해와 전성기 맞은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엔 기능대회 메달리스트 영입 직원만 20여명 대일라사와는 계절별 축구경기 펼치기도 포항시조합 중심으로 복련 경북지부 구축 경북 동해안 양복업계 성장 함께 펼쳐와 ‘세일즈맨’을 두었던 대일라사 권창화양복점보다 10년 먼저 개업한 대일라사의 위세는 대단했다. 권 재단사가 존경하는 선배인 권의술 대일라사 대표는 포항 양복업 종사자들의 모임을 이끌며 지역 양복업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도 권의술 대표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복장기술협회(大韓服裝技術協會) 경북지부(지부장 유시석)는 지난 16일 포항에서 단위조합 합동이사회를 열었다. 포항시 조합장 권의술 씨(대일라사 대표)는 회의 비용을 거의 전담하면서 주문복 업계의 활성화를 촉구했으며 앞으로도 양복업에서 얻은 수익은 모두 복장인(服裝人)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 임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 「신사복기술 경기대회 집행사항 논의」, 『매일경제』, 1980년 6월 23일자. 대일라사는 포항제철에 ‘세일즈맨’을 두고 매달 350벌 이상씩 양복을 만들어냈다. 세일즈맨은 줄자와 양복지 견본 책자를 들고 회사를 직접 방문해 양복을 판매했다. 신용카드가 없던 시절이라 양복값을 한 번에 치르는 것이 부담스러운 월급쟁이를 위해 ‘할부 양복’이 등장하기도 했다. 제철소나 공공기관 근무자가 주요 고객이던 대일라사는 할부 판매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반면 권창화양복점은 일시불 원칙을 고수했다. 세일즈맨은 따로 없이 사무실 1층에 직원과 경리 등 네 명이 직접 고객을 응대했다. 단골손님 가운데 서너 번 이상 거래한 이들에게만 두 차례 분할 납부를 허용했다. 시계를 담보로 맡기는 고객도 있었는데, 미수금은 골칫거리였다. 맞춤 양복 가격은 원단값과 공임으로 나뉘었다. 가게에 비치된 양복지를 선택하면 전체 금액을 내야 했다. 당시 양복지는 귀한 선물로 여겨져, 선물 받은 원단을 가져오는 손님도 있었다. 이 경우에는 공임만 받았다. 견습 재단사 수입이 7급 공무원 월급보다 많아 권 재단사가 누렇게 바랜 스프링 노트를 꺼내 보였다. ‘미수금 장부’라고 적힌 노트에는 수백 명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옷이 맞지 않는다면서 트집을 잡으며 돈을 안 내려는 손님도 적지 않았다. 당시에는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해 문을 닫는 양복점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권 재단사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잘 못 해 부친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맞춤 양복업은 고객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업종이다.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해야 고객이 원하는 양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재단사는 옷을 만드는 정성만큼 고객들에게 마음을 기울였다. 일 년에 대여섯 차례 고객에게 손수 쓴 감사 카드를 월간지 『샘터』와 함께 소포로 발송했다. 결혼기념일, 생일, 첫 주문일, 설날과 추석, 큰 재난이 닥칠 때마다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맞춤 양복을 지어준다는 건 단순히 옷을 만드는 일을 넘어 고객에게 멋과 자부심을 선사하는 일이다. 몇 년 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기성 양복업체가 유사한 고객관리 시스템을 도입하는 걸 본 권 재단사는 ‘본인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권 재단사는 그의 양복점에 “안 온 고객은 있어도 한 번만 온 고객은 없다”고 자부한다. 지역 양복업이 전성기를 맞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는 업체 간 경쟁도 치열했다. 기술자 스카우트는 흔한 일이었고, 권 재단사 역시 부산까지 가서 기능대회 메달리스트를 영입했다. 1980년대 후반에 이런 기술자들은 100만 원씩 더 얹어줘야 할 만큼 몸값이 높았다. 권 재단사는 “견습 재단사 수입이 7급 공무원 월급보다 많을 정도였으니 양복 기능공은 선망의 직업이었죠”라고 회상했다. 중저가형 기성 양복이 나오면서 맞춤 양복 시대는 저물어 양복업계가 성장하면서 종사자 수도 급증했다. 기술 교류와 권익 보호를 위한 단체 활동도 활발해졌다. 1980년대 전국의 양복업 종사자들이 돈을 모아 복지회관을 짓고 매년 기능대회를 개최했다. 기술자들의 모임인 ‘대한복장기술협회(기협)’와 사업자 모임인 ‘대한복장상공조합연합회(복련)’가 대표적이었다. 포항에도 협회가 조직돼 30∼40명씩 참석하는 모임이 열렸다. 직원이 많은 양복점은 친목 활동도 벌였는데, 대일라사와 권창화양복점은 분기마다 축구대회를 열었다. “대일라사와 권창화양복점의 직원이 각각 20여 명이었어요. 두 양복점이 상금을 내걸고 계절마다 축구 경기를 했지요.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대구에서 열리는 대회에 포항팀을 만들어 참가했어요. 제일모직이 협찬하는 대회였는데, 상금도 있고 가전제품이나 양복 원단 등 상품이 많았습니다.” 지역 양복업계 종사자가 늘어나자 조직화가 이루어졌고, 경북 동해안 지역 전체로 점차 확산되었다. 1980년 복련 경북지부는 포항시조합을 중심으로 지역조합 체계를 구축했다. 당시 복련 경북지부의 활동은 경북 동해안 양복업계의 성장과 함께 포항이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대한복장상공조합연합회(大韓服裝商工組合聯合會) 경북지부는 동해안 지역구를 조직하고 단합대회를 가졌다. 동해안 지역구는 포항시조합(조합장 권의술) 산하 지역조합으로 영해, 영덕, 축산, 강구, 흥해 등지의 양복점이 조합원사가 되었다. - 「복련, 각 지부 조합에 전달」, 『매일경제』, 1980년 8월 25일자. 경북 동해안 지역 양복업 종사자들은 경쟁 관계이면서도 기술을 교류하고 정보를 나누었다. 이들은 협회 회원들의 이익을 지키고자 단체 행동에 나서기도 하고, 기성복이 양복 시장에 진출하자 맞춤 양복업을 살리기 위해 힘을 모으기도 했다. 대량생산에 의한 중저가형 기성 양복이 시장에 진출하자 맞춤 양복 시장을 찾는 소비자가 급격하게 줄었다. 이러한 추세는 맞춤 양복점의 위축을 불러왔다. 창업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던 권창화양복점 역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 손님이 줄어들자 직원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독립하는 기술자가 있었고 세탁업으로 진출하는 이들도 있었다.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사 간 갈등도 빚어졌다. 맞춤 양복의 시대는 이렇게 저물어갔다. 글 : 배은정(소설가) 사 진 : 김 훈(작가)

2025-10-19

'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 ⋯ 청송사과축제 29일 개막

청송사과축제가 ‘청송-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라는 슬로건으로 오는 29일부터 11월 2일까지 5일간 청송읍 용전천 현비암 일원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청송사과축제는 온라인 축제와 병행하고 축제 전용홈페이지를 구축해 행사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더욱 높였다. 이는 사과축제장의 생동감과 온라인 축제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 축제 형태를 다양화해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자리매김 한다는 것, 올해 사과축제 주제인 ‘청송-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와 대한민국 대표브랜드 13년 연속 대상을 연계한 태극무늬의 이미지를 활용한 홍보관을 운영해 청송을 상징한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산소카페 청송군, 산소카페 청송정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국제슬로시티, 국립공원 주왕산 등 주요 관광자원을 최고의 청정 관광도시로 축제를 통해 부각시켜 나간다. 청송사과를 소재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하는 참여형 문화관광축제로서 전시·판매·관람의 위주가 아닌 모든 관광객이 참여해 즐기는 축제로 구성해 나가며 청송사과 생산자와 소비자의 소통과 공감의 장을 마련해 소비 신뢰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올해의 청송사과축제는 하이브리드 축제를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축제로 병행시켜 축제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대면 축제의 한계를 벗어나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글로벌 축제로 도약한다데 중점을 두고 있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을 최대한 활용해 사과축제의 영상 노출을 극대화하고 청송군 SNS 홍보단을 통해 축제 숏폼을 수시로 업로드 시켜 대대적 홍보에도 주력한다. 이에 앞서 청송군은 한국관관공사와 협업해 수도권 중심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축제 사전 홍보를 통한 사과축제 인지도 제고를 위해 지난 8월 팝업 이벤트 복합문화공간인 ‘리얼월드 성수’에서 팜어스토어도 운영하고 있다. 또 방송사의 대표 저녁 프로그램인 전국시대 프로그램과도 협업해 청송사과축제를 지상파 노출로 홍보 효과도 극대화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사과축제와 청송을 상징하는 스템프 아이템을 고안해 주왕산과 축제장을 연결하는 스팸투어를 현장에서 진행하고 주왕산 등산객과 축제장 방문객의 교차 방문을 통해 축제의 만족도를 높여 나간다는 것. 특히 용전천 섶다리 하류부인 용전천 수변공간에 기존 조형물과는 별개로 청송과 사과축제를 상징하는 대표조형물을 설치해 사과축제를 더욱더 부각시켜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도 제공한다. 여느 축제장도 마찬가지로 골칫거리로 떠오르는 불공정 상행위에 대해서도 특별 대책도 마련했다. 각 파트별 파트장 선임과 구성원을 편성해 평가기준표에 의해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향후 사과축제 입점 선정시, 인센티브 및 페널티를 부여해 입점자들에게 부스 운영의 책임감 부여와 경각심도 고취시켜 나갈 계획이다. 올해에도 사과축제장 내에 축제현장 불편 신고센터를 2개소를 설치해 공무원이 전담 상주해 바가지요금 자체를 근절하고 관람객들에게 축제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해 나간다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제19회 청송사과축제는 초대형 산불과 개화기 이상 저온이라는 아픔을 이겨내고 개최되는 축제인 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방문객 수도 약 40만 명이 찾는 대한민국 대표축제인 만큼 다양한 문화체험도 준비돼 있다. 이밖에도 각종 사과체험을 골고루 할 수 있고 유명 연예인들도 출연해 이번 청송사과축제는 ‘청송-다시 푸르게, 다시 붉게’란 주제 아래 가을을 맞아 주민과 관광객들에 큰 기대가 모아진다. /김종철기자 kjc2476@kbmaeil.com

2025-10-16

'맑은 바람처럼 사리사욕 버린 재상'을 닮은 나무

오늘날 언론에 비치는 선출직 고위 공직자, 소위 말하는 의원 나리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비리에 연루된 소식을 들을 때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실망과 허탈감을 느낀다. 나라의 앞날을 이끌어야 할 이들이 책임과 도리를 저버린 채 개인의 이익을 좇는 현실은, 공동체 전체를 어둡게 만들고 신뢰를 흔들어 놓는다. 이럴 때 나는 세종을 도와 나라의 기틀을 다졌던 황희 정승을 떠올린다. 청렴과 인자함으로 백성을 보듬고, 사리보다는 공익을 좇으며 청백리의 모범이 되었던 그의 삶은 오늘에도 깊은 울림을 준다. 세월은 흘러 시대와 제도는 달라졌지만, 참된 정치의 본질은 여전히 ‘깨끗한 마음’과 ‘곧은 뜻’에 있음을 그는 일찍이 몸소 증명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길 역시 그 맑은 정신과 청백의 자세 속에 있음을 절실히 느낀다. 조선 황희 정승 7대손 황시간 선생이 심은 장수황씨 종택 마당 400살 넘은 탱자나무 청렴·절개의 상징으로 수백 년 자리 지켜 1982년 보호수·1999년 경상북도기념물 2021년 천연기념물로 승격돼 보호 관리 날카로운 가시로 집안 지킨 탱자나무 옆 배롱나무 연리지도 함께 가문 지탱해 와 조선 초 명재상 황희는 자는 구부(懼夫), 호는 방촌(厖村), 시호는 익성(翼成)이다. 본관은 장수(長水)로 황군서(黃君瑞)의 아들로 개성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 27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관으로 관직을 시작한 뒤, 조선조에 들어와 판서, 대사헌 등을 두루 거쳐 세종 13년, 영의정 자리에 올라 무려 18년 동안 세종을 보좌하여 훌륭한 공적을 남겼다. 그는 평소 인자하고 깨끗한 관직 생활로 청백리로서 귀감이 되었다. 권세보다 도덕을 숭상하고, 탐욕보다 청렴을 지켰으며, 인자하고 포용력 있는 태도로 신하와 백성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청백리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삶은 세속의 욕망에 물들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향한 곧은 뜻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후세에는 그를 두고 ‘맑은 바람처럼 사리사욕을 버린 참된 재상’이라 칭송한다. 저서 방촌집은 그의 학문과 사유를 남겨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황희의 7대손 황시간 선생(1558-1642)은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집을 짓고, 마당 한가운데 탱자나무를 심었다. 이 탱자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려 단단히 버티며, 날카로운 가시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 작고 쓴 열매를 꿋꿋이 맺었다. 화려한 풍요가 아니라 정신의 올곧음을 중히 여기는 가풍처럼, 탱자나무는 청렴과 절개의 상징으로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비의 삶이란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공정과 의리를 좇으며, 학문과 도덕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길이다. 황시간 선생은 말이 아닌 탱자나무를 가훈으로 삼아 후손들에게 가문의 기둥이 무엇인지를 전하고자 했을 것이다. 권세와 이익 앞에서도 마음을 흐리지 말고, 맑고 곧은 길을 걸으라는 무언의 가르침, 그것이 탱자나무에 담긴 정신이 아닐까 싶다. 탱자나무는 마당 한가운데 서서, 세월을 넘어오는 바람 속에서 후손들에게 조용히 뜻깊은 가훈을 전하고 있다. 탱자나무 노거수의 나이는 약 400살, 키 6.3m, 몸 둘레 2.1m, 앉은 자리 폭은 동서 9.2m, 남북 10.3m이다.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1번지 장수황씨 종택 마당에 살아가고 있다. 1982년 10월 26일 보호수로 시작하여 1999년 11월 2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135호, 마침내 2021년 10월 29일 천연기념물로 승격하여 자연유산으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 탱자나무는 경계 울타리로 짐승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담장용이나 논밭 두렁이나 옛날 군사적 요충지에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하여 또는 중한 죄수를 가두어 두는 위리안치에 주로 심었다. 그러나 탱자나무를 가훈으로 삼아 마당에 심고 늘상 보면서 가문의 유훈처럼 마음에 새기도록 한 예는 실로 보기에 드물고 흔치 않은 일로 그 지혜로움이 돋보인다. | 장수황씨 종택은 사정공파 종가로 세월을 품은 담장 너머로 고요한 기품을 뿜어낸다. 황시간 선생이 거처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집은 안채와 사랑채, 고방채와 사당이 정연하게 어깨를 맞대며 서 있다. 방촌 황희 정승의 분재기와 벼루가 보존된 유물관은 이곳이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공간임을 일깨운다. 탱자나무와 오래된 기와 한 장마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한 가문의 뿌리를 지키는 상징이자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고택의 고즈넉한 마당에 서면, 옛 선비들의 청렴한 기상이 바람결에 스며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묵묵히 말을 건넨다. 문경 대하리의 장수황씨 종택은 수백 년 세월을 품은 채 선비 정신을 지켜온 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고즈넉이 서 있는 마당 한가운데에는 천연기념물 탱자나무와 연리지 배롱나무 노거수가 어른처럼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서 있다. 노거수는 한 가문의 역사와 정신을 묵묵히 지탱해 온 상징이다. 사계절의 햇살과 비바람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탱자나무와 배롱나무는 조상의 숨결이 깃든 종택과 한 몸처럼 어울려 있다. 굳건히 뻗은 뿌리는 가문의 뿌리를 닮았고,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순환은 선비 정신의 끊임없는 계승을 떠올리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로 집안을 지켜낸 탱자나무는 가문 울타리로 그리고 여름마다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 연리지는 꺾이지 않는 기개와 효도, 사랑의 상징물이 되었다. 지난 시절 공직에 있을 때 동료이며 친구인 황조연 교수는 황희 정승의 직계 후손임을 늘 자랑스럽게 여기며 그 또한 청렴을 몸소 실현하였다. 황희 정승의 청백 정신을 품은 탱자나무는 후손들의 삶을 묵묵히 지켜오는 가훈으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슴에도 맑은 바람 같은 울림을 전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문경 장수황씨 종택, 숙청사(肅淸祠)와 숭모각(崇慕閣)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236호.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6에 위치했다. 문경 장수황씨 종택은 경북 문경에 있는 양반 가옥으로 장수황씨 사정공파 종택(長水黃氏 司正公派宗宅)이며 조선 초기 재상인 황희 정승의 후손 황시간 선생(1558∼1642)이 살았던 곳이다. 이 건물은 안채와 사랑채, 중문채, 고방채가 있고 우측에 별도로 사당 및 유물관이 담장 내 배치되어 있으며 유물관에는 방촌 황희 선생의 분재기와 벼루 등 유물을 보존하고 있다. 문경 장수황씨 종택 내 숙청사(肅淸祠)는 ‘방촌(厖村) 황희(黃喜)’의 영정을 모신 곳, 숭모각(崇慕閣)은 유물을 보관하는 곳이다. 16세기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위치는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사묘가 있는 곳에 있었으며 1960년대에 종택 내의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황방촌유물(黃厖村遺物)은 경북 유형문화유산 제123호. 조선 전기 황희 정승의 유물로서 옥으로 된 종이 누르개(옥서진) 1쌍, 산호로 된 갓끈 1종, 옥 벼루 1개, 코뿔소의 뿔로 된 띠(서각대) 1개, 재산 분할문서 1매(분재문서) 들이다. 홍치(弘治) 13년 경신년(庚申年) 연산군 6년(1500년) 황희(黃喜)의 증손인 정(庭)은 아들 사웅(士雄)에게 특별히 논, 밭을 지급하고 상국(相國)의 유물이 몇 점뿐이나 종가에서 잘 보존하여 잃어지지 말도록 하고 후일 다른 자손 중에 이를 두고 다투는 자가 있으면, 재산분할 문서(분재문서)로 해결하라고 밝혔다.

2025-10-15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양복점을 열다

1980년대 권창화양복점은 포항의 사회 초년생이 꼭 들르는 곳이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이들에게 양복은 필수품이었으니 양복점은 통과의례 같은 곳이었다. 양복점 앞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옷 선택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흔했다. 연배가 있는 이들은 권창화양복점보다 10여 년 먼저 문을 연 대일라사를 선호했다. 아버지가 전통적인 스타일을 고집하면 아들은 세련된 ‘핏’을 내세운 권창화양복점을 찾았다. 포항 신사들의 옷맵시를 책임진 양복은 권창화(73) 재단사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반세기 동안 양복을 지어온 그는 일흔을 넘는 지금도 멋스러운 감각을 유지했다. 1977년의 전통 잇는 포항 ‘권창화양복점’ 고교시절 의복 기술 배운 권창화 재단사 과거 타자기로 찍은 상표에 자부심 담아 부친 권학주씨, 일본인에 의복 기술 배워 광복 후 오천 미군부대서 군복 세탁·수선 1956년 포항 중앙상가 ‘중앙양복점’ 오픈 군 제대 후 부친의 건강 악화로 가업 이어 중앙상가서 시작 5년만에1982년 전성기 직원 20여명과 월 250~300벌 주문 소화 세련된 맞춤 핏으로 승부… 손님들 발길 포항 북구 신흥동에 위치한 권창화양복점은 전성기에 비해 규모는 줄었지만, 내부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작업대 한쪽에는 ‘TAILOR’S KWON CHANG HWA, SINCE 1977’을 찍던 낡은 타자기가 놓여 있다. 옷감 위에 직접 글자를 인쇄하는 방식인데, 지금은 잉크를 구할 수 없어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게 인쇄된 상표는 바지와 상의에 하나씩 꿰매 붙였다. 오랜 역사를 품은 상표는 재단사에게도 고객에게도 자부심이 되었다. 옷본이 그려진 재단 종이를 지그시 누르는 둥근 누름쇠는 제철소에 다니는 한 고객이 선물한 것이다. 그 누름쇠는 단추 구멍을 뚫을 때도 사용하는 것인데, 낡은 걸 보더니 회사에서 직접 만들어 가져왔다. 손때 묻은 무쇠 다리미, 무쇠로 만든 소매 다리미판, 날이 다 닳은 묵직한 가위, 누렇게 바랜 고객 명단이며 미수금 장부까지 저마다 세월의 흔적이 배었다. 권 재단사의 빈틈없는 솜씨는 부친 권학주 씨로부터 이어졌다. 경북 군위 출신으로 1920년생인 권학주 씨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양복사한테 양복 기술을 배웠다. 재단과 양복(서양식 남성 정장), 양장(서양식 여성 정장), 두루마기를 두루 섭렵한 의복 장인이었다. 한복과 양복을 만드는 방식이 다르지 않은지 물으니, 1990년대까지 한복을 맞출 때 두루마기만은 양복지(洋服地)로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한다. 양복이 우리나라 복식에 적용된 예가 두루마기라는 것이다. 양복지 두루마기는 한복이 아닌 양복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양복점에서 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군 제대 후 가업을 이어받아 권학주 씨는 광복 후에 오천 미군 부대에서 군복 세탁과 수선으로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1956년 포항 중앙상가 무궁화백화점 자리에 ‘중앙양복점’을 열었다. 뛰어난 기술 덕분에 주문이 몰렸다. 포항 도구리 동해면사무소 앞에 400평 저택을 지을 정도로 부를 쌓았다. 친척들에게 하숙방을 제공할 만큼 늘 북적거리는 저택에서 권 재단사는 태어났다. 부친은 솜씨만큼이나 인물이 출중했다. 주위에서 “네가 아버지만큼 생기면 영화배우도 했을 것”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선친은 지역 유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부를 누렸으나 재산 관리를 잘 못 하여 가세가 기울고 말았다. 권 재단사는 고등학생 시절 부친 곁에서 재단 기술을 배웠지만 평생의 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고령의 부친이 더 이상 가위를 잡을 수 없게 되면서 양복점의 대가 끊어질 처지가 된 것이다. 가업을 잇느냐 끊느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양복사의 길을 선택했다. 1977년 7월 7일, 권 재단사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권창화양복점’을 개업했다. 당시만 해도 주인의 이름을 내세운 양복점은 드물었다. 군 제대 후 무일푼이던 그는 형수에게 빌린 100만 원으로 중앙상가에 작은 가게를 마련했다. 선풍기 부품을 조립해서 판매하는 ‘한일정’ 옆자리였다. 권 재단사의 뛰어난 솜씨 덕에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자 한산하던 골목은 순식간에 활기를 띠었다. 그러자 한 골목에 양복점만 열 곳 넘게 새로 문을 열었다. 권 재단사 덕분에 상권이 살아났다며 상인회에서 감사패를 전했을 정도다. 한적한 골목에 4평짜리 점포로 시작했는데 불과 5년 만에 옆 가게와 뒤쪽 주택을 매입해 확장했다. 1982년 가게 확장을 기념해 친척들과 촬영한 흑백 사진 한 장이 현재도 가게 입구에 걸려 있다. 이 시기가 권창화양복점의 최전성기였다. 양복점 전성기 때 직원 20여 명을 고용해 한국 남성 맞춤복의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80년 중반까지로 본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양복 문화가 보편화되고 토착화한 시기다. 양복 수요가 급증하면서 권창화양복점도 성황을 이루었다. 결혼을 앞둔 손님은 예복으로 일곱 벌에서 열 벌까지 맞췄다. 신랑 양복만 계절별 정장에 코트까지 최소 네 벌이 기본이었다. “한 달에 250벌에서 300벌씩 주문을 받았습니다. 문만 열면 주문이 밀려왔으니까요.” 한창때에는 2층 건물에 직원이 20여 명이었다. 주문과 경리, 재단 보조, 상의 담당, 바지 담당, 수선 등 분업 체계가 철저했다. 맞춤 양복은 분야별 전문 기술자들이 숙련된 솜씨를 발휘해 완성되었다. 한 벌을 제작하는 데에는 재단사, 상의 재봉사, 바지 재봉사, 마무리 전문 담당 등 최소 네 명이 협업했고, 다림질 담당과 가봉사 등의 분야가 추가되었다. 맞춤복 산업은 어린 견습생이 밑바닥부터 기술을 익히는 전형적인 도제 시스템이었다. 초등학교를 막 졸업한 ‘꼬마’는 심부름부터 시작해 가봉, 수선, 바지, 상의 담당으로 단계를 밟았다. 수선 전문가를 ‘수리공’이라 불렀는데 유일하게 월급을 받는 자리였다. 월급이 25만 원으로 당시 공무원 월급의 다섯 배였다. 기술이 쌓이면 상의나 바지 한 장당 돈을 받는 기술자가 되었다. ‘바지공’을 거쳐 ‘조끼공’, ‘상의공(上衣工)’을 지나야 전체 공정을 지휘하는 재단사가 되었다.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수리공보다 기술자를 선호한 이유는 수입 차이였다. 실력이 뛰어나면 일한 만큼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매달려야 상의 한 벌을 완성할 정도로 강도 높은 노동이었다. 그러나 다른 업종에 비해 소득이 높다 보니 씀씀이도 컸다. 음주와 노름으로 봉급을 미리 당겨 쓰고, 생활비를 겨우 챙기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소공동 양복 거리에서 최신 유행 익혀 재단사의 위상은 남달랐다. ‘재단사 손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재단사가 양복점을 옮기면 단골들이 따라나섰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치인이나 경제인, 방송인 등 단골도 제법 있었다. 권 재단사의 솜씨를 믿고 지인들을 데리고 오는 손님도 많았다. 권 재단사의 양복점이 사랑받은 비결은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감각’이었다. 그는 해마다 서울 소공동 양복 거리를 찾아 선배 재단사들과 교류하며 최신 유행을 익혔다. 덕분에 중후한 멋과 세련된 옷 핏, 편안함을 두루 갖춘 옷으로 신뢰를 얻었다. 당시 권 재단사가 도입한 디자인은 몸의 곡선을 유연하게 드러내는 ‘콘티넨탈 룩(Continental Look)’이었다. 허리를 조이고 바지 끝을 가늘게 처리해 슬림해 보이면서도 여유 있는 품으로 편안함을 살리는 유럽형 디자인이었다. 상의에는 ‘심(interlining)’을 넣어 모양을 잡았다. ‘심’은 동물의 머리카락이나 순모를 섞어 만든 소재로 옷의 골격을 단단히 지탱해주었다. 포항 지역에는 이 기법을 구현하는 기술자가 없어 서울과 부산에서 스카우트해야 했다. 그런데 웃돈 주고 스카우트한 기술자들이 점심시간에 몰래 작업하며 기술을 숨겼다. 권 재단사가 설득해 기술 전수를 하려니, 이번엔 직원들이 자존심을 내세워 반발했다. 기술자들 사이에 자존심 경쟁이 그만큼 치열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맞춤 양복은 단순한 옷이라기보다 기술자들이 한 땀 한 땀 자부심으로 공들인 결과물이다. 사람을 단정하고 당당하게 세워주는 도구이자 삶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는 동반자다. 권 재단사가 옷을 결코 허투루 만들 수 없는 이유다. 글 : 배은정(소설가) 사 진 : 김 훈(작가)

2025-10-15

“호국도시 칠곡” 스마트 기술 더한 ‘신개념 민군 통합 축제’로

호국과 평화를 기치로 한 국내 유일의 민군(民軍) 통합 축제인 ‘제12회 칠곡낙동강평화축제’와 ‘제16회 낙동강지구전투 전승행사’가 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칠곡보생태공원 일원에서 열린다. 올해 축제는 ‘평화, 칠곡이 아니었다면’이라는 주제로 열리며, 경상북도와 칠곡군, 대한민국 국방부가 후원하고 (재)칠곡문화관광재단과 제2작전사령부가 주최·주관한다. 칠곡군은 ‘디지털 2.0 시대’에 맞춰 축제 운영 전반에 첨단 기술을 접목한 ‘신개념 스마트 축제’를 선보인다. 관람객들은 팔찌형 ‘컴인핏(Com-In Fit)’을 착용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입장할 수 있으며, 행사 중에는 실시간 안내 시스템을 통해 일정 변경이나 공지사항을 즉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2.0 시대’ 맞춰 첨단 기술 접목 ‘신개념 스마트 축제’ 선보여 ‘평화, 칠곡이 아니었다면’ 주제 경북도-칠곡군-국방부 등 주최·주관 박서진·홍진영·임창정·자우림·이승기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 출연 지뢰 탐사·모의 소총 체험·드론 로봇 장비 관람 등 군 문화 체험도 이번 축제는 ‘평화를 위한 음악(Music for Peace)’과 ‘평화의 힘(Power of Peace)’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됐다. 주요 프로그램은 △보물찾기328 △오십오게임 △960톤의 숲 △이프칠곡 △낙동아일랜드 △미스터트롯TOP7콘서트 △피스뮤직페스티벌 등이다. 평화공연에는 △16일 박서진·홍진영·박지후 △17일 미스터트롯3 TOP7 △18일 임창정·이재훈·민경훈·손승연 △19일 자우림·이승기·다이나믹듀오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이 출연해 평화를 노래하는 감동 무대를 펼친다. 칠곡보 오토캠핑장에서는 ‘평화의 힘’을 주제로 KUH-1 수리온, UH-60 블랙호크, K-2 전차, K-9 자주포, 자주도하장비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첨단 무기를 전시한다. 또 칠곡보생태공원과 오토캠핑장을 잇는 낙동강 위에는 국내 최장 430m 부교가 설치되며, 도하장비를 타고 강을 건너는 ‘문교(們橋) 체험’도 진행된다. ‘오십오게임’은 6·25전쟁 당시 55일간 이어진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모티브로 한 대형 체험 프로그램이다. 4개의 대형 콘텐츠를 통해 당시 치열했던 전투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보물찾기328’은 유해발굴 1호 지역인 ‘328고지’를 배경으로 한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유학산 328고지에서는 6·25전쟁 당시 12일 동안 15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만큼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관람객들은 이를 기리며 호국영령의 넋을 추모할 수 있다. ‘960톤의 숲 ECO존’은 전쟁 당시 960톤의 폭격으로 초토화된 땅이 평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생명의 터전’으로 되살아난 모습을 상징한다. ‘꿀맥펍(꿀맥+Pub)’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벌꿀로 만든 ‘칠곡 꿀맥’을 즐기며 낙동강의 평화를 위한 건배가 이어진다. 오토캠핑장에서는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주관하는 ‘군 문화 체험존’이 운영된다. △과거존(6곳)=적 장비 전시, 6·25전쟁 사진전, 워커 장군 사진·영상전 △현재존(16곳)=지뢰 탐지, 모의소총 체험, 태극기 바람개비 만들기, 드론 축구장 등 △미래존(10곳)=전쟁 VR, 신병교육 메타버스 체험, 드론봇전투단 장비 전시 등으로 구성된다. 칠곡군은 축제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7곳의 주차장을 마련하고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주차장은 △제1주차장(1000대·칠곡보 야외물놀이장) △제2주차장(400대·칠곡호국평화기념관) △제3주차장(200대·칠곡 사계절썰매장) △제4주차장(500대·칠곡보생태공원) △제5주차장(800대·칠곡보생태공원) △제6주차장(300대·칠곡종합운동장) △임시주차장(300대·석적읍 중지리) 등이다. 18~19일 양일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칠곡보 야외물놀이장, 왜관북부정류장, 칠곡종합운동장, 북삼읍사무소, 석적읍사무소, 지천면사무소, 동명·가산평생학습복지센터, 약목면사무소, 약목농협(기산지점)에서 축제장까지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또 16일 밤 9시부터 20일 새벽 2시까지는 약목면 관호리 칠곡보 서편~약목면 덕산리 무림배수장 구간의 교통이 통제된다. 한편 칠곡군은 같은 기간 18~19일 양일간 왜관시가지 1번 도로에서 ‘205칠곡문화거리페스타’를 함께 연다. 이 축제는 대형 가수 공연 위주가 아닌 마술·버블·서커스 등 거리공연 중심으로 진행된다. 마칭밴드와 인형탈 퍼레이드, 시니어 모델쇼, 지역 청소년·아동이 참여하는 개막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거리 곳곳에서 풍물과 난타공연이 이어진다. 개막무대에는 세계적 마술사 유호진이 출연해 스토리텔링 공연을 선보인다. 19일에는 독일 베르너 홀츠바르트 원작의 아동뮤지컬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가 무대에 오르고, △아크로바틱(브레이커스 컴퍼니) △서커스 밴드(팀 퍼니스트) △태권도 시범 △라인댄스 △스턴트 치어리딩 △마임과 코미디 마술 등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에코존’에서는 △공기정화식물 행잉 △업사이클링 키링 제작 △환경비누 만들기 △폐현수막 공예 등 친환경 체험이 가능하다. ‘인문학 마을존’에서는 화덕피자 만들기, 떡메치기, 식혜 체험도 마련됐다. 특히 ‘205 놀이터’에서는 7개 구역에서 이틀간 7회 프로그램이 교차 진행된다. △분필 낙서 거리 꾸미기 △버블 놀이터 △랜덤플레이댄스 △못박기·신발던지기 등 가족 체험형 순서가 이어진다. ‘205칠곡문화거리페스타’는 무대를 중심으로 한 행사를 넘어, 거리 전체를 참여형 축제 공간으로 확장했다. ‘럭키 칠곡’의 상징성을 담아낸 이번 행사는 공연과 체험이 어우러진 시민 참여형 축제로 왜관 시가지를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스마트 시스템을 도입한 이번 칠곡낙동강평화축제는 넓은 주차장과 편리한 셔틀버스로 방문객 편의를 높였다”며 “많은 국민이 참여해 호국평화의 의미를 나누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호평기자 php1111@kbmaeil.com

2025-10-15

문경사과축제 20주년 ‘인생감홍’ 카운트다운

문경시는 ‘2025 문경사과축제’를 오는 18일부터 26일까지 9일간 문경새재도립공원 일원에서 개최한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문경사과축제는 문경사과의 명성과 함께 성장해온 축제로, 새롭게 도약하는 문경사과의 미래를 선포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판매행사는 축제 이후인 11월 2일까지 연장 운영된다. □ 감홍사과 숙기에 맞춰… “가장 맛있는 시기” 이번 축제는 문경의 대표 품종인 감홍사과가 가장 맛있게 익는 시기에 맞춰 열려, 방문객들에게 최상의 맛을 선사한다. 감홍사과는 과피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고두병 피해로 타 지역에서는 재배가 어려운 품종이었지만, 문경에서는 칼슘비료 활용 재배법과 동록 방지 기술 개발로 피해를 대폭 줄이고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1993년 문경에서 시험 재배를 시작한 이후 지속적인 품종 개량과 재배법 개선으로, 지금의 감홍사과는 크기(350g 이상)와 당도(16.5Brix 이상)가 뛰어나고 신맛이 적어 전국적으로 사랑받는 프리미엄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도 안 먹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별칭처럼, 문경 감홍사과는 ‘인생감홍’으로 불리며 전국 재배면적이 800ha에 달하고, 이 중 65%인 520ha가 문경에서 재배된다. □ 개막 퍼포먼스·인기가수 축하공연 축제 개막식에서는 문경 농업의 결실인 감홍의 ‘비상(飛上)’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이어 김용빈·안성훈·전유진·손태진 등 국내 정상급 가수들의 축하공연이 열려 현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20주년을 맞아 문경사과홍보관도 새 단장했다. 외부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는 투명 에어돔으로 조성했으며, 사과품평회 수상작 전시, 프리미엄 감홍사과 특별홍보, 포토존 등을 갖춰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강화했다. □ 가족 위한 체험 공간 ‘문경사과 플레이그라운드’ 축제 기간 동안 문경새재 1관문 앞 잔디광장은 ‘문경사과 플레이그라운드’로 변신한다. 감홍노래방·사과모자 만들기·인생네컷·에어바운스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돼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이 기대된다. 맛있기로 소문난 감홍사과는 시중 가격이 비싸지만 축제장에서는 무료 시식이 가능하다. 17농가가 참여하는 판매장에서는 모두 시식을 제공하며, 농가별로 미세한 맛의 차이를 느껴본 뒤 원하는 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19농가가 참여해 전국 어디서나 주문이 가능하며, 시나노골드와 부사도 축제 후반부에 판매될 예정이다. □ 사과 따기·나눔 행사로 풍성함 더해 문경의 13개 농장이 참여하는 사과 따기 체험은 무료로 진행되며, 수확한 사과는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다. 특히 25일에는 ‘일곱난쟁이 사과밭’에서 1인당 2개씩 무료 수확 체험이 진행돼 인기를 끌 전망이다. 또한 사과 나눔 이벤트는 게릴라 형식으로 수시 진행되며, 24일 ‘애플데이’와 26일 폐막식 이후에도 사과가 무료로 배부된다. 문경오미자·표고버섯 등 문경특산물 32개 업체가 참여하는 특산물 판매장도 함께 운영된다. 축제 종료 후에도 직거래 장터는 11월 2일까지 연장 운영돼 가을 단풍철 문경새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풍성한 구매 기회를 제공한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문경의 자랑인 감홍사과는 오직 10월에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사과”라며, “깊어가는 가을, 문경새재 단풍 길을 걸으며 제철 ‘인생감홍’을 맛보고 가족과 함께 축제를 만끽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10-15

마늘, 장구한 역사의 식재료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가 있었다. 열망을 이루기 위해 신(神) 앞에서 읍소했다. “100일간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고 마늘과 쑥만 먹는다고 약속해라.” 신의 주문이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동굴을 나갔고, 곰은 약속한 기간을 지켜 사람이 됐다. 그 사람이 된 곰이 낳은 것이 단군이다. 위는 한국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단군신화’의 줄거리. 여기에 ‘마늘’이 등장한다. 이는 우리 민족이 까마득한 옛날부터 마늘을 먹었다는 이야기가 아닐지. 한국만이 아니다. 중앙아시아가 원산지로 추정되는 마늘은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의 주요한 먹을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던 고대 이집트에선 육체적으로 힘겨운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마늘과 양파를 먹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먼 옛날 그리스에선 마늘을 특정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마늘. 한국에선 2가지 종류의 마늘이 재배되는데 중국에서 유입된 한지형과 스페인에서 온 난지형이 그것들이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김치, 각종 국과 찌개, 무침 등을 만들 때 마늘을 빼놓을 수 없는 재료다. 제주도 사람들은 마늘의 여린 잎을 간장에 담근 ‘마농지’도 즐겨 먹는다. 마늘은 스태미나 증강에도 사용됐다. 고대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에겐 빼놓지 않고 마늘을 먹였다. 항암과 고혈압,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전해진다. 마늘의 최대 생산지는 중국이다. 지구 위에서 생산되는 마늘의 78%를 중국이 재배한다. 한국인들은 어느 나라 사람보다 마늘을 좋아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재배지가 줄어들고 있다. 값싼 중국산이 대량으로 수입되는 탓이 아닐까?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0-14

의성 맛집들의 비결은 바로 ‘이것’

2019년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인 9월이었다. 지금은 여러 구설수와 논란에 휩싸여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얻어먹는 처지가 됐지만, 그때는 백종원의 위상이 ‘요식업계 황제’라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보통의 시청자가 보기엔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TV 출연이 잦았고, 그가 언급하거나 찾아간 식당은 당장 매출액에 0이 몇 개 더 붙을 정도로 손님들이 밀려들었으니. 마늘닭, 기름에 튀긴 특유의 느끼함 없이 미묘하게 미각을 자극하는 마늘의 풍미 입과 더불어 코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줘 석쇠에 구운 소고기 옆에는 마늘 한 접시 누구랄 것도 없이 식당 안 사람들 모두가 소고기 한 점에 마늘 한 쪽을 더해 ‘꿀꺽’ 의성은 한국서 손꼽는 ‘맛있는 마늘’ 산지 경상북도 의성. 튀긴 닭에 양념을 해서 파는 가게가 있다고 했다. 백종원이 다녀간 곳이었다. 시골의 여느 식당과 다르지 않은 입구와 실내. 문은 열려있는데 주인장이 없었다. 가게 안 구석에 전화번호를 적어놓았기에 통화를 했다. “곧 갈 테니 10분만 기다려요”란다. 긴 시간이 아니니 “네 천천히 오세요”라고 답했고. 잠시 후 나타난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뚝딱뚝딱 자른 닭을 기름솥에 튀겨 꺼낸 후 불그스레한 양념을 꺼내왔다. ‘훅~’하고 풍겨오는 알싸한 마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양념에 들어간 마늘의 엄청난 양이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옥호(屋號)가 ‘양념통닭’이 아닌 ‘마늘닭’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짐짓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백종원이 이 마늘양념에 반했나봐요?” 기대와 달리 자랑이 아닌 심상한 대꾸가 돌아왔다. “그 양반? 뭘 엄청나게 아는 척 하던데, 자기가 닭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어.” 오랜 세월 닭을 고르고 만지고 튀겨내고, 거기에 어떤 양념이 어울리는지 수십 년 골똘하게 고민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프라이드였을까? ‘의성 마늘닭집’ 주인의 말에선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 자긍이라면 까짓 백종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사 고든 램지(Gordon Ramsay)도 우습게 보일 듯했다. “닭튀김이라면 내가 너보다 훨씬 잘 알아”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유명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날 맛본 마늘닭은 기름에 튀긴 음식 특유의 느끼함이 없었고, 자극적이지만 미묘하게 미각을 자극하는 마늘의 풍미가 입과 더불어 코까지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영어로는 갈릭(Garlic)이라 부르고, 중국인들은 산(蒜)이라 쓰는 마늘의 역사는 유구하다. 드라마틱한 소설처럼 재밌는 역사책 ‘삼국유사’에서도 곰과 마늘에 얽힌 토픽이 확인된다. 이 책은 자그마치 800여 년 전인 고려왕조 말기에 승려 일연(1206~1289)이 쓴 것이다. 더 멀리 가보자.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파라오(Pharaoh)가 지배하던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에도 ‘건강하려면 마늘을 먹어야 한다’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 점심으로 ‘마늘닭’을 먹은 그날. 저녁은 의성군에서 유명하다고 이름난 소고기구이집에 갔다. 채식주의자라면 치를 떨 일이겠으나, 기자는 ‘육식주의자’에 가깝고, 다행히 일행 중에도 베지테리언이 없었으니. 듣기로 의성에서 식용으로 키우는 소에겐 마늘을 먹인다고 했다. ‘얼마나 지천이면 사람 먹는 마늘을 소에게까지 먹일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헌데, 그런 생각은 의성군 재래시장마다 주렁주렁 널려있는 수천 접 마늘을 보며 사라졌다. 의성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맛있는 마늘’ 산지가 아닌가. 그걸 증명하듯 석쇠에 구운 소고기 옆에는 의성마늘이 한 접시 가득 놓였다. 굽지도 않은 생마늘이. 누구랄 것도 없었다. 식당 안 사람들 모두가 소고기 한 점에 마늘 한 쪽을 더해 꿀꺽꿀꺽 삼키고 있었다. 소고기구이집 주인에게 물었다. “왜 모두에게 마늘을 주는 거죠? 마늘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대답이 금방 돌아왔다. 반문이었다. “네? 마늘 싫어하는 한국 사람이 있나요?” 맞다. 한국 사람인 기자도 마늘을 누구보다 좋아한다. 그러니까 그게 2011년이다. 한 달쯤 남부 유럽 북마케도니아의 호숫가 마을 오흐리드(Ohrid)에 머문 적이 있다. 그 기간 숙소였던 조그만 게스트하우스에선 가끔 유럽 각국에서 온 청년들의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라제 파마코스키, 알렉산더 몰코스키란 이름을 가진 동네 청년들은 그 파티에서 구운 고기보다 생마늘을 더 많이 먹는 기자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자의 별명이 ‘미스터 갈릭맨’이 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마늘은 맛있다. 의성마늘은 특별히 더 맛있다. 그렇지 않은가?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10-14

포항시민의 자부심이 되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어

남들은 막걸리를 술이라지만 내게는 밥이나 마찬가지다 천상병의 시 「막걸리」의 한 구절이다. 시인은 막걸리가 “술이 아니고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말했다. 또한 막걸리 한 병을 작은 잔으로 나누어 하루 종일 마신다고 했다. 이처럼 적당히 마시는 막걸리는 즐거움이 되고, 피로를 잊게 하는 노동주가 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끼니가 된다는 사실을 양민호 대표는 한 단골손님에게 배웠다. 어느 날 매번 양조장에 직접 와서 막걸리를 사 가던 손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손님의 아버지가 위암 수술을 받은 후 음식을 삼키지 못했는데, 유독 양 대표네 막걸리는 잘 드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데, 그 손님의 인사가 양 대표의 심금을 울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막걸리를 허투루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양 대표는 술인 동시에 영양이 풍부한 발효식품인 막걸리를 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연구와 개선을 거듭하여 2017년에 경상도 지역 양조장으로는 최초로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을 획득했다. 동해명주 3대 대표가 된 지 불과 1년 만의 성과였다. HACCP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가장 높은 수준 인증제로, 식품 원재료 생산부터 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 요소가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 관리 시스템이다. 체계적인 공정과 위생 관리로 안전한 막걸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막걸리가 끼니가 된다”는 손님의 한마디 덕분이었다. 쓴맛·단맛·감칠맛·톡 쏘는 맛·새콤함 五味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 외국 술에선 찾아보기 힘든 고유한 맛 전통 잇는 젊은 양조인들의 현재 화두는 ‘프리미엄’ 최근 포항의 회와 어울리는 맑은 약주 개발에 몰두 양민호 대표, 2017년 경상도 최초 HACCP인증 획득 동해명주 3대 대표 맡은지 불과 1년 만에 이룬 성과 아일랜드 국가브랜드 ‘기넥스 맥주 양조장’ 최종 모델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만들어 관광명소화” 포부 막걸리는 ‘오미(五味)의 예술’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술은 백약의 장(長)이고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화를 부르는 법이고 과음도 마찬가지다. 술도가에서 태어나 술을 생활처럼 접하며 살아온 양 대표의 철학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양조장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막걸리를 배워서인지 술에 대한 기억도 남다르다. “옛날 주입기는 자동으로 멈추지 않아 병에서 술이 흘러넘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우유 같아서 바가지로 받아 맛을 보곤 했습니다.” 양 대표에게 막걸리는 목이 마르면 떠 마시는 발효음료와 비슷했다. 조기교육 덕에 음주를 호기심이나 모험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수학여행지 숙소에서 선생님 몰래 술을 마시는 일탈을 해본 적도 없다. ‘술은 편한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즐기며 마시는 것’이라는 철학을 일찍부터 세웠기 때문이다. 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비결은 ‘페어링(pairing)’이다. 그날의 기분과 상대방 그리고 음식과의 조화가 중요하다. 양 대표는 “술은 음식과 함께할 때 비로소 제맛을 낸다”고 강조한다. 술과 음식의 조화는 술 자체뿐 아니라 음식의 풍미까지 좌우한다. ‘적게 마셔도 제대로 즐기자’는 요즘 술 문화 흐름과도 상통한다. 양민호 대표는 상황에 따라 술을 달리한다. 깊은 대화에는 소주, 더운 날에는 맥주, 가벼운 분위기에는 와인 그리고 출출하거나 마음이 허할 때는 막걸리를 찾는다. 막걸리는 종류에 따라 음식도 달라진다. 구수한 밀막걸리는 매운 음식에, 알코올 풍미를 강한 동동주는 기름진 전과 잘 맞는다. 당도를 낮춘 가벼운 쌀막걸리는 해산물과 어울린다. 막걸리는 ‘오미(五味)의 예술’이라 불린다. 알코올의 쓴맛, 당분의 단맛, 발효에서 비롯한 감칠맛, 탄산의 톡 쏘는 맛, 유산균이 남기는 새콤함이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낸다. 외국 술에서는 찾기 힘든, 한국만의 고유한 맛이다. 양 대표는 “첫 잔이 맛있는 술보다 음식과 오래 잘 어울리는 술이 좋은 술”이라고 말한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마셔도 쉽게 취하지는 않지만, “25도 소주 7병도 거뜬했다”는 부친의 주량에는 미치지 못한다며 웃었다. 포항의 신선한 회와 어울리는 약주 개발에 몰두 물론 술 앞에서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 번은 과음으로 관능검사(미각,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이용해 식품의 특성을 평가하는 방법)를 놓쳐서 원료 하나를 빠트린 채 5000병을 용기에 넣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 결국 직원 일곱 명이 달라붙어 병을 다시 따야 했고, “5초면 될 일을 하루 종일 다시 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고 말했다.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도 배울 것은 늘 있는 법이다. 현재 막걸리 시장의 화두는 ‘프리미엄’이다. 젊은 양조인들이 전통 제조법을 익혀 새로운 맛을 내고, 도시 소비자들이 이를 즐긴다. 이제 막걸리는 ‘막 걸러 만든 술’이 아니라 ‘신선하게 걸러낸 술’로 인식되는 시대다. 신선하게 걸러낸 막걸리는 양조장에서 떠난 뒤에도 쉼 없이 살아 움직인다. 출시 직후에는 달콤함이 강하지만, 보름이 지나면 산미가 돌고 한 달이 되면 입맛을 돋우는 시큼한 맛이 완성된다. 양 대표가 즐겨 찾는 시점은 출시 후 20일 무렵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옛 막걸리 맛이 오히려 그리울 때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누룩 냄새가 강하고 과발효로 맛이 일정치 않았지만, 계절마다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었다. 지금은 균일한 맛이 보장되지만, 특별한 맛을 우연히 만나는 멋은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그러한 아쉬움은 ‘옛 막걸리 프로젝트’로 이어졌고, 자전거에 말통을 싣고 배달하던 시절의 맛을 복원해 출시하기에 이른다. 양 대표는 전국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양조장이니 바닷바람이 술맛의 깊이를 더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포항의 신선한 회와 어울리는 맑은 약주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양 대표의 이름을 건 제품이다. 6개월의 숙성 과정을 거치지만, 만족스럽지 않으면 과감히 버린다. 지금까지 버린 술만 10여 톤에 이른다. 무언가에 이름을 걸었다는 건 막중한 책임감을 의미한다. 하기야 막걸리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한 사람이니 이름을 거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양조장을 관광명소로 키우고 싶어 양민호 대표가 막걸리에 인생을 걸기로 다짐한 건 해병대 복무 시절이었다. 우연히 참석한 장성들의 술자리에서 “포항에서 제일 좋은 막걸리”라는 찬사를 들었고, 그 순간 습관처럼 빚던 술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허물없는 시간을 만든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양 대표는 제대 후 대학에 복학해서도 장거리를 통학하며 양조장 일을 도왔다. 그 이후 단 한 번도 흔들림 없이 막걸리에 인생을 건 한길을 걷고 있다. 양 대표가 그리는 최종 모델은 아일랜드의 기넥스 맥주 양조장이다. 아일랜드를 맥주의 나라로 만든 곳으로, 여행자들의 필수코스다. 기넥스 맥주 양조장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국가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것처럼, 양 대표는 포항시민의 자부심이 되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다. 포항시문화관광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양조장을 관광명소로 키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도구해수욕장에서 막걸리 축제를 열었고,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담은 프리미엄 막걸리도 준비하고 있다. 양 대표는 “막걸리는 한민족의 애환이 담긴 술”이라며, “전통을 계승하는 사명은 있지만, 옛 방식을 답습할 필요는 없다”고 밝힌다. 현대인의 입맛에 맞는 막걸리 연구가 필요하며, 이는 전통주 계승자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지역에서 내공을 다지면 반드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양 대표는 관광과 문화,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접목해 포항의 막걸리를 새로운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나아가 세계 시장에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포항에서 빚은 막걸리가 머지않아 세계인의 술잔을 채울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끝〉 글 : 배은정(소설가) 사 진 : 김 훈(작가)

2025-10-12

노란 닻별이 빛나는 거리, 문경 점촌 원도심에 활력 불어넣다

문경시가 점촌 원도심 문화의 거리를 ‘닻별 테마길’로 조성하며 새로운 희망의 불빛을 밝혔다. 문경시는 별자리 카시오페아자리의 다른 이름인 ‘닻별’을 테마로 한 조형물·조명·마켓을 설치하고, OBS경인TV 특집 가을음악회를 마련해 침체됐던 점촌 구도심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거리는 닻별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화사하게 꾸며, 마치 별빛이 내려앉은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노란색 간판·어닝 단장, 조형물13점·벤치 20개·파티등 360개 설치 “트로트 스타 팬덤·에너지를 구도심 활성화에 접목” 긍정적 평가 역전상점가-행복상점가·중앙시장·점촌점빵길 한 흐름으로 연결 닻별 테마길 조성 이후 주말마다 유동인구 급증, 상권도 살아나 □ 닻별의 노란빛으로 다시 태어난 문화의 거리 문경시는 점촌원도심상권 130m 구간을 정비해 ‘닻별 테마길’을 완성했다. 노란색 간판과 어닝을 새로 달고, 상징 조형물 13점, 조형벤치 20개를 설치했으며, 은하수 조명 18m와 360여 개의 파티등으로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특히 거리를 수놓은 색상은 ‘닻별’의 상징인 노란색이다. 조형물은 황금빛 별 모양을 형상화했고, 벤치와 가로등에는 노란색 포인트가 더해졌다. 밤이 되면 파티등과 은하수 조명이 노란빛으로 거리를 밝히며, 시민들은 “거리 전체가 별빛 속에 잠긴 듯 황홀하다”고 감탄한다. 문경시 관계자는 “닻별의 노란색은 희망과 따뜻함을 의미한다”며 “시민과 방문객이 언제든 밝은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색채 계획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 팬덤문화, 원도심에 생기를 불어넣다 ‘닻별 테마길’의 출발점은 트로트 스타 팬덤이다. 팬클럽 ‘닻별’은 전국적으로 결속력 있는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문경시는 이들의 에너지를 구도심 활성화와 접목시켰다. 닻별 회원 이정은 씨(42)는 “닻별 덕분에 문경까지 오게 됐다”며 “거리 이름이 팬클럽 이름과 같아 자랑스럽다. 노란 닻별 조명이 너무 예쁘고, 팬으로서 마음이 벅차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팬클럽 회원 김민서 씨(38·서울)는 “문경이 닻별의 고향처럼 느껴진다”며 “도시 전체가 팬덤의 따뜻한 정성과 열정으로 물든 것 같아 감동받았다. 앞으로도 문경을 자주 찾고 싶다”고 했다. 시민들도 이 같은 변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점촌동 주민 박성호 씨(57)는 “예전에는 어둡고 한산하던 거리가 요즘엔 젊은 사람들로 북적인다”며 “닻별 덕분에 우리 동네가 밝아진 느낌이다. 상권도 되살아날 것 같아 기대된다”고 미소 지었다. 이처럼 트로트 팬덤의 문화적 열정이 지역 재생의 불씨로 이어지면서, ‘닻별 테마길’은 팬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점촌역전상점가·행복상점가·중앙시장을 잇는 점촌점빵길 상생전략 문경시는 테마길 조성과 함께 점촌역전상점가·행복상점가·문경중앙시장을 잇는 점촌점빵길을 활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거리에서 공연과 쇼핑을 즐긴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인근 상권으로 발걸음을 옮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문경중앙시장에서 20년째 식당을 운영 중인 김모 씨(56)는 “코로나 이후 손님이 줄어 어려웠는데, 거리가 환하게 단장되니 다시 북적일 것 같다”며 기대를 전했다. 행복상점가 상인회 관계자도 “닻별마켓을 계기로 시장 특산품과 점촌점빵길 상품까지 자연스럽게 홍보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점촌역전상점가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는 이은정 씨(45)는 “닻별 테마길이 생긴 뒤 주말마다 젊은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사진 찍고 놀다 쇼핑까지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상인들도 거리 분위기에 맞춰 진열대를 새로 꾸미는 등 활기를 되찾고 있다”고 전했다. □ 가을음악회와 닻별거리 첫 축제 오는 10월 19일 낮 12시 30분, 문화의 거리 공영주차장에서 OBS경인TV 특집방송 문경 문화의 거리 가을음악회가 열린다. 방송은 2주 뒤 방송 될 예정이다. 출연진은 화려하다. 문경 홍보대사 박서진, 윤윤서, 장혜진을 비롯해 김수찬, 윤수현, 지원이, 이수호, 그리고 문경 트롯가요제 대상 장현욱이 무대를 꾸민다. 이날 박서진은 마지막 엔딩 무대를 맡아, 별빛 같은 피날레를 장식한다. □ 닻별마켓, 청년 창업과 상인들에게 활력 같은 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리는 ‘닻별마켓’은 지역 상가 10팀이 참여하는 특설 장터로, 노란 닻별 색상을 활용한 체험 부스도 준비돼 있다. 점촌 행복상점가에서는 “문화행사와 시장 소비가 연결되어 상생이 된다”며 “닻별마켓이 지역 상권에 새로운 기회를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문경중앙시장에서 청년카페를 운영하는 최유진 씨(29)는 “닻별마켓을 통해 젊은 창업자들도 고객과 직접 만나 교류할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SNS 홍보 효과도 커서 손님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앞으로는 지역 청년들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장터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점촌역전상점가에서 생활용품점을 운영하는 박진호 씨(52)는 “마켓이 열릴 때마다 거리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며 “외지 손님들이 많아지고, 상인들끼리 협력하는 분위기도 좋아졌다. 닻별마켓이 문경 상권의 새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보여주기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거리” 문경시는 닻별 테마길과 가을음악회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정기공연·콘텐츠 프로그램 개발, 체험행사 등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닻별 테마길은 보여주기 식이 아닌, 장기적으로 시민·상인·관광객이 함께 살아가는 거리로 운영할 것”이라며 “점촌 원도심 전체가 활력을 되찾는 모델로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박모 씨(67·점촌동)는 “예전엔 거리가 늘 썰렁했는데 요즘은 다시 활기가 도는 것 같다. 노란 닻별 조명이 켜진 밤거리를 걸으면 젊은 시절 생각이 난다.” 청년 상인 이모 씨(33)는 “닻별마켓을 통해 제 상품을 알릴 기회를 얻게 돼 기쁘다. 문화와 경제가 함께 어울리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노란 별빛이 수놓은 ‘닻별 테마길’. 시민과 상인의 땀방울이 모여 문경 원도심이 새롭게 숨 쉬고 있다. 점촌의 밤하늘에는 닻별이 빛나고, 그 길을 걷는 발걸음마다 지역 상생과 부활의 희망이 반짝이고 있다. □ 닻별 ‘닻별’은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말한다. 가을철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북두칠성의 맞은편에서 볼 수 있는 ‘W’ 모양의 별자리다. 우리나라에서 북두칠성과 함께 비교적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별자리인데, 그 별자리의 생김새가 닻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닻별’이라 불렀다. 북두칠성의 국자 바가지 끝을 이어가다 보면 붙박이별인 북극성이 나오고, 다시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닻별이 있다. 글·사진/고성환기자 hihero2025@kbmaeil.com

2025-10-09

드라마 따라 포항으로… 감성여행 가볼까

역대급으로 긴 추석 연휴에 국민 10명 중 4명이 여행을 계획(한국교통연구원 조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도 막상 어디로 떠날지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 최근 인기를 누린 드라마를 따라가 보면 어떨까. 첫사랑의 설렘이 남은 해변, 싱글맘의 눈물이 스며든 계단, 판타지의 저주가 깃든 전망대 모두 포항을 배경 삼아 만들어낸 드라마 속 명장면이다. 포항의 매력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다. 삼국유사의 전설이 살아 있는 해안, 일제강점기의 흔적을 간직한 골목, 그리고 철과 빛이 공존하는 현대적 야경이 한데 어우러진다. 바다와 숲, 시장과 철길, 도시와 항만이 교차하는 포항은 그 자체가 거대한 오픈세트다. 배우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면 스크린 속 장면이 여행자의 발자국 위에서 다시 살아나고, TV에서만 봤던 동해의 푸른 결이 코끝과 피부로 스며든다. 이번 연휴, 드라마 제목을 손에 쥐고 길을 나서보자. 삼정해수욕장의 잔잔한 파도, 청하공진시장의 노란 불빛,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의 붉은 기와, 송도송림테마거리의 솔향, 장길리 복합낚시공원의 은빛 잔교, 이가리 닻 전망대의 일출, 철길숲의 초록 터널, 포항운하의 반짝이는 수면···. 카메라가 담았던 모든 장면이 여행자의 두 발과 시선으로 완성된다. ◇ 동백꽃 필 무렵 –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싱글맘 동백(공효진)은 세상의 편견과 맞서 아이를 키우며 순박한 경찰 황용식(강하늘)의 사랑을 받는다. 동백꽃 필 무렵은 작은 마을의 상처와 연대, 치유를 촘촘히 그린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과 아픔을 감싸 안았던 무대가 바로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1920~30년대 일본식 목조 건물이 약 500m 구간에 80여 채나 남아 있으며 붉은 기와와 낡은 나무 문살, 좁은 골목길이 시간의 결을 그대로 품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직접 자재를 들여와 지었다는 ‘하시모토의 집’은 현재 ‘구룡포근대역사관’으로 운영돼 당시 생활의 흔적을 다다미와 부츠단, 란마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골목 초입에는 모형 우체통과 옛 심상소학교를 재현한 전시가 있어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상상하게 한다. 드라마 속 동백과 용식이 사랑을 확인하던 계단은 지금도 연인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사진을 남기는 포토존이다. 언덕 끝자락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면 짭조름한 바람이 역사와 현재를 함께 데려온다. ◇ 갯마을 차차차 – 청하공진시장 도시 치과의사 윤혜진(신민아)은 바닷가 마을에서 만능 이웃 홍두식(김선호)을 만나 ‘함께 사는 기술’을 배워간다. 극 중 ‘공진시장’의 실제 무대는 포항시 북구 청하시장이다. 드라마 방영 이후 시장은 ‘청하공진시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여행객을 맞는다. 1·6일마다 열리는 오일장에는 활어와 해산물이 넘치고 연탄불 위에서 고등어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냄새가 골목을 채운다. 해가 기울면 시장 천장에 매단 전구가 하나둘 켜져 노란빛의 긴 통로가 된다. 식당 한편에서는 따뜻한 국물 한 숟갈을 들이키면 순간 드라마가 말한 ‘동네의 온기’가 체온으로 스며든다. 시장 입구의 카페 세트장과 골목 끝 슈퍼마켓은 지금도 팬들의 발길을 사로잡는 명소다. ◇ 나의 완벽한 비서 – 송도송림테마거리 일 ‘만’ 잘하는 헤드헌팅 회사 CEO 강지윤(한지민), 일 ‘도’ 완벽한 비서 유은호(이준혁). 업무와 감정의 경계에서 서로에게 스며드는 두 사람의 로맨스는 송도송림테마거리의 숲길 위에서 완성됐다. 이곳은 포항시가 ‘그린웨이 프로젝트’로 조성한 보행 중심의 숲길로 해변을 따라 솔개천·바닥분수·벽천이 이어지고 스틸아트와 트릭아트가 곳곳에 배치돼 낮에는 햇살이 반짝이며, 밤에는 조명이 솔숲을 은은히 물들인다. 황혼 무렵 벤치에 앉으면 솔향 사이로 포스코 야경이 별처럼 스며들고 계절마다 열리는 거리예술제와 버스킹은 숲 전체를 무대로 변신시킨다. ◇ 런온 –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육상선수 기선겸(임시완)과 영화 번역가 오미주(신세경)가 서로의 언어로 달려가는 청춘 로맨스 런온. 이들의 감정선이 동해의 수평선과 만나는 장면은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서 촬영됐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전설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이 공원은 해와 달의 조형물, 출렁이는 억새밭, 일월대 전망대가 어우러진다. 입구의 벽화 거리에선 연오랑과 세오녀의 여정이 펼쳐지고, 전시관 ‘귀비고’에서는 VR과 영상 체험을 통해 설화를 생생히 만날 수 있다. 산책로를 따라가면 바다 위로 튀어나온 일월대 전망대가 동해를 한눈에 담아내며 해질 무렵이면 바다가 금빛에서 보랏빛으로, 다시 진청색으로 변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 이 연애는 불가항력 – 이가리 닻 전망대 저주로 얽힌 두 남녀 장신유(로운)와 이홍조(조보아)가 운명에 맞서는 판타지 로맨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결정적 장면은 이가리 닻 전망대가 만들어낸 공간 덕에 더 선명해졌다. 푸른 해송 숲 사이를 지나 바다로 길게 뻗은 스틸 데크는 위에서 보면 ‘닻’ 모양이 선명하다. 높이 약 10m, 길이 약 102m의 전망대 끝은 독도를 향하고 있으며 발아래 투명 데크를 통해 치솟는 포말을 내려다볼 수 있다. 새벽이면 닻 끝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듯 일출이 열리고 난간을 타고 울리는 파도 소리와 해풍의 금속 차가움이 극의 ‘필연’을 촉각으로 전한다. ◇ 모래에도 꽃이 핀다 – 장길리 복합낚시공원 20년째 떡잎인 씨름 신동 김백두(장동윤)와 골목대장 출신 오유경(이주명)의 재회와 성장담. 주저하던 청춘이 다시 걷기 시작하는 장면이 바로 장길리 복합낚시공원에서 탄생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바다 위로 약 170m 뻗은 보릿돌교. 데크 틈새로 파도가 들고나며 염분이 미세한 안개로 흩어지고 해가 지면 해상 펜션의 불빛이 물결 위 별처럼 깜박인다. 보릿돌은 과거 미역이 풍성했던 바위로 알려져 마을의 ‘식탁’을 지켜온 기억을 품는다. 난간에 손을 얹으면 금속의 촉감이 파도의 리듬을 손바닥으로 전하고 금속 그림자와 물결이 겹쳐 은빛 물무늬를 만든다. ◇ 마이유스 – 삼정해수욕장 남들보다 늦게 평범한 삶을 시작한 선우해(송중기), 뜻하지 않게 그 평온을 흔들어야 하는 성제연(천우희). 첫사랑의 기억과 후회, 화해를 다루는 감성 로맨스 마이유스의 무대는 구룡포 남쪽 삼정해수욕장이다. 만곡형의 포근한 포켓 비치, 곱고 잘 드는 모래, 완만한 경사 덕에 파도의 호흡이 낮다. 해수면이 얕아지는 구간이 길어 해질녘 얇은 물막 위에 노을이 거울처럼 반사된다. 마을 고깃배가 돌아오는 이른 저녁이면 하늘과 바다의 색이 서서히 뒤섞이고 해변 뒤편 작은 포구와 횟집이 노을빛을 받아 붉게 달아오른다. 카메라가 없어도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 철길숲 한때 도시의 대동맥이었던 옛 철도선로가 지금은 시민의 허파 같은 숲길로 환생했다. 아이돌 출신 리포터가 의뢰인의 사연을 안고 길을 대신 걸어주는 ‘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의 따뜻한 정서와 맞닿는 공간이 바로 포항 철길숲이다. 4.3km의 선형 공원으로 실개천·분수·인공폭포가 걷기의 리듬을 만들어 준다. 왕벚나무·느티나무·메타세쿼이아 등 수천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밤이면 은은한 조명이 길 전체를 터널처럼 밝힌다. 초여름이면 수국이 만발해 색색의 꽃길이 이어지고, 가을이면 단풍이 레일 위로 내려앉아 “기차는 없지만 여행은 계속된다”는 감상을 선사한다. ◇ 여행 동선 팁 추석 연휴에 포항을 찾는 이들을 위한 여행 동선을 한눈에 정리해 본다. 먼저 북부 코스는 청하공진시장에서 싱싱한 해산물의 활기를 느낀 뒤 푸른 해송 숲 사이로 길게 뻗은 스틸 데크를 걸으며 동해 일출을 맞이할 수 있는 이가리 닻 전망대로 이어진다. 이어 도심 코스에서는 옛 철도선로를 숲길로 재탄생시킨 철길숲을 천천히 거닐고 해변을 따라 조성된 송도송림테마거리에서 스틸 아트와 야간 조명을 즐기며 포스코 야경까지 한눈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남부 코스는 1920~30년대 일본식 목조 건물이 남아 있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에서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보고 부드러운 모래와 잔잔한 파도로 ‘포켓 비치’의 매력을 품은 삼정해수욕장에서 여유로운 산책으로 마무리한다. 일출과 일몰 명소도 빼놓을 수 없다. 해가 바다 수평선 위로 솟는 장관을 보려면 이가리 닻 전망대, 석양이 금빛과 보랏빛으로 물드는 황혼을 담고 싶다면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 일월대가 제격이다. 다만 해안 데크와 전망대는 강풍이나 결빙 시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니 방문 당일 포항시 관광 안내를 통해 최신 정보를 확인하고 안전을 챙기면 더욱 알찬 추석 여행이 될 것이다. 포항은 단순히 드라마의 배경이 아니다. 전설·근대·현대가 켜켜이 겹쳐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구룡포의 오래된 목조 가옥에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연대의 시간을, 청하공진시장에서 함께 사는 기술을, 송도송림테마거리에서 일상 속 로맨스를, 장길리 끝에서 다시 걷기 시작하는 청춘을, 철길숲에서 기차 없이도 계속되는 여행을 배운다. 그리고 이가리 닻 전망대에서 일출을 맞으며 이번엔 우리가 주인공인 장면을 한 컷 더 찍는다. 카메라는 꺼져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번 추석, 포항에서 화면 밖의 장면을 완성해보자. /단정민기자 sweetjmini@kbmaeil.com

2025-10-01

물안개·가을꽃 물드는 고즈넉한 풍경속으로

가을은 한국의 사계절 중 가장 짧지만 가장 깊은 계절이다. 여름의 열기를 식히는 바람이 불고, 나뭇잎은 붉고 노랗게 물들며, 하늘은 높고 푸르다. 이 계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는 단연 경북이다. 산과 강, 고택과 서원이 어우러진 경북은 가을이 되면 그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추석 연휴는 가족과 함께 자연을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다. 하지만 유명 관광지는 인파로 북적이기 마련이다. 경주 불국사, 안동 하회마을, 청송 주왕산 등은 이미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다. 이번 특집에서는 사람들에게 덜 알려졌지만, 경치와 분위기, 체험 요소까지 두루 갖춘 경북의 숨은 명소 10곳을 소개한다. 조용한 가을 여행을 원하는 이들에게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1. 청송 주산지-물안개와 단풍이 어우러진 신비의 호수 청송군 주왕산면에 위치한 주산지는 조선시대 인공적으로 조성된 저수지다. 하지만 그 풍경은 자연 그대로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호수에 비친 왕버들나무는 마치 동양화 속 풍경처럼 고요하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10월 초에는 붉은빛과 안개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산지는 관광객이 몰리는 시간대를 피해 이른 아침에 방문하면 고요한 자연과 마주할 수 있다.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특히 인기 있는 장소이며, 삼각대를 세우고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기다리는 이들의 모습도 흔하다. 주산지의 가을은 말없이 깊고, 그 고요함이 여행자의 마음을 정화시킨다. 2. 고령 다산 은행나무숲-황금빛 산책로의 낭만 고령군 다산면 낙동강변에 위치한 은행나무숲은 수령 100년 이상의 은행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가을 햇살 아래 황금빛으로 물든 나뭇잎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1km 이상 이어지는 산책로는 강변 벤치와 어우러져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입장료 없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으며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부담 없는 힐링 공간이다. 특히 해질 무렵 강 너머로 떨어지는 햇살이 은행잎 사이로 스며들면 그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3. 문경 봉천사 개미취 꽃밭-연보라빛 가을의 정원 문경시 가은읍에 자리한 봉천사는 가을이면 개미취 꽃으로 뒤덮인다. 1만여㎡(3000여평) 규모의 꽃밭은 연보라빛 물결이 일렁이며, 절 주변을 수채화처럼 물들인다. 이곳에서는 차와 묵이 제공되는 힐링 공간도 마련돼 있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명상과 휴식의 장소로 손꼽힌다. 개미취는 국화과 식물로 가을에 피는 연보라빛 꽃이 특징이다. 봉천사에서는 이 꽃을 중심으로 사찰과 자연이 어우러진 정원을 조성해 방문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꽃 사이를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절의 종소리가 들려오면 그 고요함은 더욱 깊어진다. 4. 영주 죽계구곡-선비의 길을 따라 걷는 단풍 트레킹 영주시 풍기읍에 위치한 죽계구곡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사색하던 계곡길이다. ‘구곡’이란 이름처럼 9개의 굽이 마다 고유한 이름과 풍경을 지닌다. 약 6.6km의 트레킹 코스로 단풍과 청량한 물소리를 즐기며 걷기 좋다. 죽계구곡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선 철학적 공간이다. 선비들은 이곳을 걸으며 자연 속에서 도를 닦고 삶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과 계곡의 맑은 물이 어우러져 깊은 정서를 자아낸다. 붐비지 않는 한적한 길에서 가을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5. 칠곡 가산수피아-가을꽃이 피어나는 테마정원 칠곡군 가산면에 위치한 가산수피아는 핑크뮬리, 구절초, 댑싸리 등 다양한 가을꽃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테마정원이다.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가족 나들이나 커플 여행에 적합하며 꽃과 함께 사진을 찍기에도 좋은 장소다. 가산수피아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과 포토존은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꽃 사이를 걷는 길은 마치 동화 속 정원처럼 느껴진다. 10월 초에는 꽃들이 절정을 이루어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6. 경주 운곡서원-은행나무 아래 고즈넉한 서원의 풍경 경주시 강동면에 자리한 운곡서원은 400년 된 은행나무가 서원 앞을 지키고 있다. 단풍철이 되면 노란 은행잎이 서원 마당을 뒤덮으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조용한 산책과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운곡서원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그 역사적 가치도 크다. 서원 내부에는 퇴계 이황의 정신을 기리는 공간도 있어 전통과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가을의 서원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시간과 사색이 흐르는 공간이다. 7.울진 금강송 숲길-걷는 길이 곧 힐링이 되는 곳 울진군 북면에 위치한 금강송 숲길은 국내 최대의 천연 금강송 군락지다. 금강송은 곧게 뻗은 기품 있는 자태로 조선 궁궐의 목재로 쓰였던 나무로 그 숲을 걷는다는 건 역사와 생명의 흐름 속을 걷는 일이다. 가을이면 금강송 사이로 단풍이 물들고, 숲길은 붉은빛과 초록빛이 어우러진 오묘한 색채로 변신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발끝에 닿는 낙엽의 감촉, 그리고 피톤치드 가득한 공기는 도시에서 잊고 지낸 감각을 되살려준다. 금강송 숲길은 총 13km에 달하는 탐방로이다. ‘금강송 생태탐방로’는 자연 그대로의 숲을 보존한 구간으로 인위적인 시설 없이 오롯이 숲과 마주할 수 있는 길이다. 가족 단위 방문객은 평탄한 숲길을 따라 가볍게 산책할 수 있고,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은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 금강송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8. 영덕 창포말등대공원-바다와 등대가 어우러진 산책 코스 경북 영덕군 창포리에 위치한 창포말등대공원은 동해의 푸른 바다와 하얀 등대가 어우러진 조용한 산책 명소다. 이곳은 관광지의 화려함보다는 바다와 하늘, 바람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조화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가을철에는 높고 맑은 하늘과 선선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져 걷기 좋은 날씨가 이어진다. 창포말등대는 영덕 블루로드의 일부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와 연결돼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공원 내에는 등대를 중심으로 작은 광장과 벤치, 전망대가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쉬어가기 좋다. 해질 무렵에는 붉게 물든 하늘과 등대가 어우러져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은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하고 바다의 너른 품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9. 청도 운문사 은행나무길-이틀만 공개되는 황금빛 절경 청도군 운문면에 위치한 운문사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곳의 은행나무길은 단풍철에 단 이틀만 일반에 공개되며, 그 희소성 덕분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수령 300년이 넘는 은행나무들이 절 입구를 따라 늘어서 있다. 노란 은행잎이 바닥을 덮는 풍경은 마치 황금빛 융단을 깔아놓은 듯하다. 운문사는 비구니(여성 승려)들이 수행하는 사찰로도 유명하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은행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자연과 수행의 기운이 어우러져 마음이 차분해진다. 단풍과 은행잎이 어우러진 절경은 짧은 가을을 더욱 깊고 진하게 만들어준다. 10.안동 물길공원-낙동강과 가을빛이 흐르는 도심 속 쉼터 안동시 성곡동에 위치한 물길공원은 낙동강변을 따라 조성된 도심 속 자연공원이다. 이름 그대로 ‘물길’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중심이며, 강변의 풍경과 계절의 색이 어우러져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힐링 공간이다. 가을에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노랗고 붉게 물들며, 강물에 비친 색채가 또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공원 곳곳에는 유교문화권의 상징물과 조형물이 설치돼 걷는 동안 안동의 정신적 뿌리를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다. 강변 데크와 전망대, 쉼터가 잘 정비돼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적합하다. 해가 지는 시간에 물길공원을 걷다 보면 낙동강 너머로 붉게 물든 하늘과 강물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도심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어 추석 연휴에 잠시 일상을 벗어나기 좋은 장소다. 안동댐과 월영교, 유교랜드 등 인근 명소와 연계해 하루 코스로 즐기기에도 알맞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경북의 숨은 명소에서 자연과 전통, 체험과 감성을 모두 담아보자. 붐비지 않는 조용한 공간에서 진짜 가을을 만날 수 있다. 단풍 아래서 걷고, 은행잎 사이에서 사색하며, 물안개 속에서 가을을 느껴보는 여행. 그 길 끝에서 당신은 아마도 잊고 있던 계절의 감성을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피현진기자 phj@kbmaeil.com

2025-10-01

다양한 전시·공연·체험 ‘문화와 재미’로 채워진 도심 곳곳

대구시는 추석 연휴 기간 시민들과 대구를 찾는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전시, 공연,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도심 곳곳에서 운영한다. 우선, ‘The Pulse of Life – 생명의 울림’을 주제로 30여 개국 200여 작가의 70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사진전시회인 대구사진비엔날레를 추석 당일을 제외한 연휴 기간 내내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대구 사진비엔날레 30여 개국 작품 700여 점 선보여 토요시민콘서트•대구예술제•청년버스킹 공연 풍성 ‘호러 축제’와 함께 진행되는 국제힐링공연예술제 근대역사관•방짜유기박물관 등 체험 프로그램 마련 이월드, 귀성길 승차권 등 인증•가족 특가 할인 진행 4일 가스공사 페가수스 vs 삼성 썬더스 프로농구 도심 속 독서 휴식 공간 ‘신천문화마당’•‘신천 시네마’ 고산도서관 이융남 교수 특별 강연 ‘공룡학자의 삶’ 수성아트피아 ‘이은결의 더 일루션-마스터피스’ 상영 수성못 수상무대서 국제오페라축제 ‘프린지 콘서트’ 이번 전시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넘어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고 공존하는 ‘공생세(Symbiocene)’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선보인다. 참여 작가들은 생명을 변화·연결·공명하는 힘으로 재해석하며, 관람객에게 지구와 공동체 속에서의 위치와 역할을 다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대구미술관은 지역 출신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인 이강소 화백의 회고전 ‘곡수지유(曲水之遊)’를 통해 지역의 문화 자긍심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대구간송미술관은 광복 80주년 기념 기획전 ‘삼청도도(三淸滔滔)-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힘을 담은 작품을 소개해 많은 관람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공연으로는 토요시민콘서트(신천 수변무대), 판타지아대구페스타 가을 축제인 2025 대구예술제(코오롱 야외음악당)와 청년버스킹(동성로 일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야외 도심 무대에서 열린다. ‘토요시민콘서트’는 시립교향악단, 합창단, 국악단, 무용단, 극단, 소년소녀합창단 등 6개 시립예술단이 참여하는 정기 야외 공연이다. 오는 8일까지 대구 코오롱야외음악당에서 열리는 ‘2025 대구예술제’와 ‘2025 청소년무대예술페스티벌’에는 대구예총 9개 회원협회와 3개 특별회원 단체, 대구예술문화대학 원우들이 참여한다. 특히 대구·광주 달빛동맹 예술교류와 대구·베트남 다낭 국제 예술교류 등을 더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가을밤 색다른 공연을 즐기고 싶다면, 2025 대구국제힐링공연예술제를 찾으면 된다. 비수도권 유일 공연 거리인 대명공연거리와 도심 곳곳의 공연장에서 다양한 연극을 접할 수 있어 공연문화도시 대구의 진수를 느낄 좋은 기회다. 호러 축제와 함께 진행되는 이번 예술제는 12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과 대구 내 소극장에서 열린다. ‘다시, 공연에 빠지다’라는 슬로건 아래, 해외 및 수도권 작품부터 지역 극단의 우수 레퍼토리까지 다채로운 무대가 마련된다. 특별초청작 2개, 지역 극단 공식 초청작 6개, 해외 초청작(튀르키예·영국) 2개, 자유 참가작 2개로 총 12개 작품이 관객들 앞에 선다. 추석맞이 체험 프로그램과 이벤트도 다채롭게 준비돼 있다. 대구시립박물관인 대구근대역사관과 대구방짜유기박물관, 대구향토역사관은 추석 당일(6일)을 제외한 연휴 기간(3~9일)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연다. 경상감영공원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은 ‘2025 대구근대역사관에서 보내는 즐거운 한가위 연휴’라는 주제로 체험행사를 진행한다. 3일부터 5일까지 우리나라 전통 장신구인 노리개를 만들며 전통 문양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마련한다. 하루에 50명의 어린이가 참여할 수 있다. 7~9일은 하루 100명씩 한글 책갈피 꾸미기를 하며 한글날의 의미를 느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 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근대 대구 섬유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대구 도심 공장 굴뚝, 기계 소리’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1층 ‘대구 근대여행 길잡이방’에서 진행 중인 ‘100년 전 여류 비행사 권기옥·박경원, 대구와의 특별한 인연’ 전시와 ‘명예의 전당’ 앞에서 진행 중인 기증유물 작은전시 ‘박물관으로 온 두 책 –대구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와 파리만국박람회’도 관람할 수 있다. 팔공산국립공원에 위치한 대구방짜유기박물관은 ‘팔공산 달빛에 물든 풍요로운 한가위’라는 주제로, ‘보름달과 토끼’ 스티커 붙이기와 회오리 나무 팽이 놀이를 박물관 로비에서 펼친다. 연휴 기간 매일 선착순 90명을 대상으로 한다. 기획전시실에서는 현재 성황리에 진행 중인 국가 무형유산 이봉주-이형근- 이지호, 3대로 이어지는 방짜유기장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3대로 피어나는 방짜유기의 생명력’ 특별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으며 유리 벽 전시실에서는 고지도와 옛 그림에 보이는 팔공산 역사 문화를 살펴보는 ‘옛 지도 속의 국립공원 팔공산’ 작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올해 개관 28주년을 맞이한 달성공원 대구향토역사관은 △향토역사관 생일 축하 메시지 쓰기(1~9일) △한가위 행운의 룰렛(1~3일) △전통의 멋, 갓과 호랑이 그림 알기(5~8일) 등의 체험을 준비했다. 2일에는 건국대 김해경 교수를 초청해 근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달성공원에 대한 특강을 개최한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대구달성(달성공원) 변천을 소개한 ‘대구 역사의 중심, 대구달성(달성공원) 몇 장면’ 작은 전시를 관람할 수 있으며 경상감영 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기와·도자기 편을 직접 만져보며 체험하는 ‘대구야, 고고(GoGo)유물과 놀자’도 진행된다. 지역 대표 유원지인 이월드는 귀성길 버스, 기차 등 이용 승차권 인증 할인과 가족 특가 할인을 진행하고, 대구문화예술진흥원은 스탬프투어 앱을 통해 대구 주요 관광지 스탬프 인증 시 추첨을 통해 치킨, 커피 쿠폰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다면 4일 대구체육관에서 열리는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대구)와 삼성 썬더스(서울)의 프로농구 경기 관람을 추천한다. 여름철 도심 속 휴식처였던 신천 물놀이장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가을철 꽃 정원으로 꾸며졌던 ‘가족풀’은 도심 속 독서와 휴식 공간인 ‘신천 문화마당’으로 탈바꿈했고, 야간 조명이 돋보였던 ‘유수풀 포토존’은 대구시 마스코트 ‘도달쑤’를 활용한 ‘대형 벌룬 포토존’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또 지난해 영화관람 장소로 큰 인기를 끌었던 ‘파도풀’은 형형색색 우산이 물결치는 그늘 쉼터와 함께 ‘신천 시네마’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신천 문화마당’은 잔디 매트, 1인용 소파, 파라솔, 그리고 아동도서 200여 권을 비치해, 도심 속 자연에서 누구나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북 쉼터’를 조성됐으며, 놀이공간 내 풋살 골대, 농구 골대, 놀이 블록을 마련해 가족과 어린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광장’도 마련돼 있다. 영화관람 공간과 우산 그늘이 물결치는 쉼터를 겸한 ‘신천 시네마’를 선보인다. 매주 토요일 총 6회에 걸쳐, 12m×5m 크기의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을 통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야외 영화관’을 제공한다. 야외 영화관은 오후 5시부터 8시까지 운영한다. 연휴기간 상영작은 4일 ‘지금만나러갑니다’, 11일 ‘극한직업’ 등이다. 이 밖에도 수성구에 있는 고산도서관에서는 우리나라 최초 공룡 박사로 알려진 이융남 교수의 특별 강연 ‘공룡학자의 삶’이 열려 어린이와 학부모에게 유익한 시간을 선사한다. 또 수성아트피아에서는 세계적인 마술가 이은결의 ‘더 일루션-마스터피스’ 공연 실황 영상 상영,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 상영, 극단 솥귀의 창작 연극 ‘화몽’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연휴 기간(7~9일) 야외광장에서는 윷놀이, 제기차기 등 전통 놀이 체험도 가능하다. 5일 수성못 수상무대에서는 제22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프린지 콘서트’가 열리고, 10일 울루루문화광장에서는 ‘또 다른 시작’을 주제로 한 야간 상설 공연이 펼쳐진다. 대구시는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대구시티투어를 정상 운영하고, 관광안내소 4개소(대구공항, 동대구역, 동성로, 이월드)는 연휴 기간 내내 정상 운영하여 지역 관광명소를 찾는 방문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할 예정이다. 또 연휴 기간(2~12일) 귀성객과 방문객들의 주차 편의를 위해 공영주차장을 전면 무료 개방한다. 무료로 개방되는 공영주차장은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 직영주차장(61개소, 8128면)과 민간 위탁주차장(34개소, 1401면)으로, 총 95개소, 9529면이다. 공영주차장 95개소 중 59개소는 2일부터 12일까지 11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민간 위탁주차장 중 33개소는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시청 동인청사 부설주차장의 경우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개방되며, 서대구역 남편주차장과 동대구 맞이주차장의 경우 6일 추석 당일만 개방된다. /김락현기자 kimrh@kbmaeil.com

2025-10-01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국내 유일의 카르스트 습지

하천 주변도 아니고 산 정상에 람사르가 지정한 습지가 있다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표정으로 반문한 대붕 아우와 함께 직접 그 현장을 답사하기 위해 문경 돌리네 습지로 향했다. 돌리네 습지가 위치한 도리실 마을은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읍실 마을에서 산 정상으로 1.2km 더 올라가야 했다. 우곡리 읍실 마을만 해도 그렇다. 대승사로 가는 도로를 벗어나 산자락을 부여잡고 굽이 돌고 돌면서 산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었다. 옛날 같으면 전쟁이 일어나도 모를 깊은 산골에 숨은 마을이었다. 산속 마을답게 마을 어귀에는 수백 년 넘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군집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줄기 둘레만도 5m나 되는 느티나무 노거수에서 마을의 힘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노거수는 마을의 상징물이며 수호신으로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도리실 마을은 이제 태고의 습지로 돌아가 전설로 남고 음실 마을이 돌리네 습지의 주인이 되었다. 돌리네 습지 2017년 람사르 습지 지정 희귀식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지질학·생태학적으로 가치 인정받아 한때 과수원과 논밭으로 쓰이던 땅 이제는 생명의 숨결을 품은 보고로 습지와 사람, 두 세계 나란히 걸으며 자연과 인간 공존하는 삶의 길 일깨워 돌리네 습지는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국내 유일의 카르스트 습지로서, 2017년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돌리네라는 독특한 지형 속에 희귀식물과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며, 지질학적, 생태학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람사르 지정은 습지가 지닌 생물다양성과 수문학적 기능을 국제적으로 공유하고 후세에 전승해야 할 자산으로 보존할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또한 지역 주민들에게는 지속 가능한 이용을 통해 생태관광과 교육 자원으로 발전시킬 기회를 열어 주어, 자연 보전과 지역 사회의 공존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었다. 문경 돌리네 습지는 한때 과수원과 논밭으로 쓰이던 땅이 이제는 생명의 숨결을 품은 보고가 되었다. 농약이 사라진 자리에 풀꽃이 돌아오고, 새와 곤충이 다시 날아들어 자연성이 회복되자 마을은 활기가 넘쳤다. 주민들은 습지를 중심으로 생태관광과 환경교육에 나서며 새로운 소득을 얻었고, 마을은 행정의 지원 속에 주거와 생활 인프라가 정비되어 삶의 질도 한층 빛을 더했다. 습지와 사람, 두 세계가 나란히 걸으며 서로를 살리는 윈윈의 길이 열린 것이다. 습지의 생태적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 지난 시절, 습지를 메워 주택, 산업단지, 공용지로 사용하여 가뭄과 홍수가 빈번하였고 생물다양성 감소 등 안타까운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석회암 지대가 품은 습지는 빗물을 저장해 맑은 물을 선물하고, 홍수와 가뭄을 완화하며 천연의 방패가 되어 주었다. 멸종위기 생물이 깃들고 희귀식물이 자라는 곳, 그 풍경은 자연의 장면을 넘어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생태계의 어머니와도 같다. 또한 고요히 잠든 습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씻어 내고, 역사와 시간이 새겨진 풍경은 마음의 쉼터가 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의 길을 일깨워 주었다. 습지 숲은 물과 숲이 만난 신비로운 세계이다. 물에 잠긴 뿌리와 습지에 기대어 자라는 나무들, 그 사이를 누비는 새와 양서류, 곤충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다양성은 생태계의 든든한 기둥이 된다. 그 풍요로운 생명력은 인간에게 식량과 의약품, 맑은 공기와 물을 내어주며, 동시에 영감과 문화, 정신적 위안을 건네준다. 돌리네 습지는 그렇게 다양성과 조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서사시이다. 돌리네 습지는 굴봉산 정상부에 아늑히 자리한 산지형 습지다. 이곳은 육상 초원 습지 생태계가 공존하는 드문 공간으로, 좁은 면적에도 꼬리진달래, 낙지다리, 쥐방울덩굴, 들통발 같은 희귀 식물이 피어나고, 삵과 수달, 담비가 숲을 누비며, 새매와 붉은배새매, 원앙, 수리부엉이, 소쩍새, 황조롱이 같은 멸종위기 조류가 살아왔다. 처음 조사에서는 산림청이 지정한 위기 식물 3종을 비롯해 731종의 야생생물이 확인되었으나, 주민들의 보호와 보전의 손길이 더해지면서 지금은 200여 종이 늘어난 932종의 생명이 해발 290미터 바닥 위에서 어우러진다. 돌리네 습지는 그렇게 작은 그릇에 큰 생명을 담아낸, 풍요로운 생태의 무대가 되었다. 돌리네 습지가 품은 마을의 옛 지명들은 세월을 넘어 살아 있는 이야기로 전설이 되어가고 있다. 동그랗게 돈 모양에서 비롯된 돌실(도리실) 마을, 제사를 지내던 제궁골, 참새가 지저귀던 참새골, 그리고 천 년 된 팽나무의 이름을 남긴 팽나모리까지 이름마다 마을 사람들의 삶과 신앙이 깃들어 있다. 옥황상제의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의 옥녀샘, 나뭇가지가 동서로 갈라져 나무꾼들의 쉼터가 된 동서나무, 습지를 넘어가는 돌재 고개, 바다라 불린 서긋바다와 가파른 암벽 서긋이마, 성황나무가 있던 서낭굿재 또한 기억 속 풍경으로 남아 있다. 옹기를 굽던 정골, 참나무가 빽빽하던 참나무배기, 소의 입을 닮은 우구지골과 소의 뿔에 비유된 각골에 이르기까지 그 옛날 사람들의 눈과 마음이 빚어낸 이름들은 삶의 흔적이자 전설처럼 지금도 습지와 마을에 숨 쉬고 있다. 그 옛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한웅 문화해설가의 목소리에는 세월을 꿰뚫는 향수가 배어 있었다. 과수원이던 땅, 아이들의 놀이터였던 습지, 겨울이면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던 추억 등 모두가 생생한 삶의 무대였다. 버드나무 껍질로 키와 소쿠리를 엮고, 메기와 붕어를 잡아 시장에 내다 팔던 시절, 습지는 마을의 생명줄이자 보물창고였다. 장마철 두 달 동안 잠긴 물 때문에, 농사는 대마와 담배밭으로 변하고 그로 인해 물동이를 등에 지고 또 머리에 이고는 힘든 비탈길 논밭을 오르내렸다. 그뿐만 아니다. 황토에 발이 빠져 오르내리던 고단한 삶은 이제 이 땅의 기억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70가구의 마을은 23가구만 남아 노년의 주민들이 조용히 지켜가지만, 주말이면 수백 명이 이곳을 찾아오고 서울에서 먼 길을 달려오는 발걸음도 있다. 식당 하나 없는 불편함조차 오히려 순박한 정취로 어우러지고, 무료로 열려 있는 습지는 여전히 마을과 사람을 품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 있는 이야기의 무대가 되고 있다. 머루와 다래, 으름과 오미자가 얽히고설켜 만든 300미터의 초록 터널은 한 걸음마다 향긋한 내음을 흘려내며 우리를 맞았다. 그 길 끝에 모습을 드러낸 돌리네 습지는 산 정상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세계, 마치 하늘이 내려앉은 신천지 같았다. 연못 위에 걸린 구름은 물결에 흔들리며 빛을 쏟아냈고, 그 곁을 산책하는 우리는 잠시나마 신선이 된 듯 가벼웠다. 전망대에서 대붕 아우와 나란히 사진을 찍으며, 전설로만 남은 도리실 마을의 고단한 삶을 떠올렸다.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추억이 되어, 우리 마음속에 한 장의 그림처럼 새겨졌다. 전동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 다시 지나던 덩굴 터널 속에서 차를 세우고 주워 먹은 다래 한 줌은 달콤하고 향긋했다. 아우가 “이 맛은 잊을 수 없겠다”라며 웃었을 때, 돌리네 습지는 이미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무는 풍경이 되었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람사르 습지 지정 협약의 주요 내용은… 정식 명칭 : 습지에 관한 특별히 중요한 국제협약 채택 : 1971년 2월 2일, 이란 람사르에서 채택 목적 :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보전하고, 지속 가능한 이용을 촉진 행정 기구 : 스위스 글란(Gland) 소재 IUCN 사무국 주요 내용 : 습지는 철새 이동 등으로 국제 협력이 필수, 공동 연구, 정보 교류, 공동 관리 돌리네 습지 지정일 : 2017년 6월 15일 (환경부 고시 제2017-117호)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우곡리 굴봉산 정상부. 지정 면적 : 49만 4434㎡

2025-10-01

탁주의 공급구역 제한이 풀리면서 날개를 달아

동해명주의 역사는 1955년 도구양조장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양조장은 읍면동 단위로 대개 하나씩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 양조장 대단위화 정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지역 단위로 양조장이 통합되었다. 포항의 경우 12개 동이 합쳐져 합동 양조장이 탄생했다. 이 시기 양조장 주인은 지역에서 대표적인 부자로 통했다. 1970년대만 해도 포항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막걸리 소비 도시였다.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전국 1인당 막걸리 소비량이 38리터였는데, 포항은 105ℓ나 되었다. 그리고 서울에 비하면 10배 가까이 되었다. 아래 『매일경제』 기사를 보자. 1970년대 손꼽히는 막걸리 소비도시로 전국 1인당 소비량 38ℓ, 포항은 105ℓ나 70년 역사 이어온 ‘동해양주’가 산 증인 1992년 지역 최초 100% 쌀막걸리 출시 2000년 들어 ‘포항의 제1 양조장’ 급성장 양수길 대표 전국 최초 합동 양조장 제쳐 포항TP•포스텍 공동 개발 ‘영일만 친구’ 과메기와 함께 포항시 공동브랜드 등극 포항 쌀 최다 사용, 업계 1위 기업에 올라 2011년 양조공장 현대화… 새 도약 전기 발효탱크 술 온도 관리 자동화시스템 전환 양조 품질•생산 효율성 동시에 향상 계기 국세청에 의하면 1970년 한 해 동안 막걸리의 국내 총소비량은 122만 6800㎘로, 맥주 소비량보다 13배 이상을 앞지르고 있다. 막걸리의 1인당 평균 소비량은 38.6ℓ로, 서울은 이보다 훨씬 적은 11.5ℓ로 나타났다. 막걸리의 소비량은 지역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 각 도별로 보면 경북이 52.9ℓ로 가장 높고 제주도가 7.3ℓ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지역별로 막걸리를 가장 많이 마신 지역은 경북 김천시로 1인당 106ℓ를 마셨고, 다음이 경북 포항으로 105ℓ를 마셨다. 가장 적게 마신 경북 안동은 3.2ℓ를 마셨다. - 「막걸리 소비 여전히 수위 맥주보다 13배 많은 22만 ㎘」, 『매일경제』 1971년 5월 3일자. 양민호 대표는 70년 역사의 동해명주 자체가 산증인이 아니겠냐고 자부했다. “포항은 복합적인 도시잖아요. 농업과 어업 그리고 공업까지 고루 갖춰진 데가 많지 않은데, 거기에 해병대도 있고요. 전국적으로 양조장이 존속되는 지역이 많지 않은 현실에서, 70년 역사의 동해양주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포항은 양조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1992년 포항 최초로 100% 쌀막걸리 출시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동해명주의 역사는 바로 지역 양조사가 된다. 동해명주에서 가장 오래된 막걸리는 밀막걸리다. 1965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쌀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되자 밀가루로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쌀막걸리가 우세한 지금은 밀막걸리를 포기한 양조장이 많지만, 동해명주는 꾸준히 전통을 지켜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밀 누룩이 아닌 쌀누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이야 쌀이든 밀이든 원하는 대로 고르면 되지만, 선호하는 막걸리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막걸리의 재료 선택은 정부의 방침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66년 막걸리 제조에 쌀이 금지된 뒤, 1977년 대풍이 들어 일시적으로 허용되었지만 가격이 비싸고 맛이 싱거워 반응이 좋지 않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서민층에 각광을 받으며 되살아난 막걸리의 인기가 갈수록 떨어진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포항세무서가 집계한 주세 징수 실적에서 나타난 쌀막걸리 출고량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쌀막걸리가 처음 선을 보였던 1977년 12월엔 210만 리터가 출고돼 이에 부과된 주세가 1228만 원이었던 것이 지난 1월엔 162만 ℓ에 주세가 1009만 원으로 크게 줄었고, 지난달에는 117만 ℓ에 주세가 731만 원밖에 안 돼, 두 달 만에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쌀막걸리에 대한 외면은 소비성향이 높은 도시보다 농촌이 더욱 심하다. 포항주조협회에 따르면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로 술을 빚었을 때는, 농민들이 쌀 한 되를 가지고 막걸리 3~4되를 바꾸어 마실 수 있었으나 요즘은 맛도 떨어진 데다 2~3되밖에 바꿀 수 없어 거의 소주를 즐겨 마신다는 것이다. - 「전국실태-포항」, 『동아일보』 1978년 3월 25일자. 1979년 다시 쌀이 부족해지면서 쌀막걸리 제조가 중단되었고, 1990년이 되어서야 다시 허용되었다. 당시 동해양조장은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다. 1991년에 낡은 목조 양조장을 철거하고 시멘트 건물로 공장을 신축했다. 이듬해 포항 최초로 100% 쌀막걸리를 출시하며 쌀막걸리 시장에 신속하게 진입했다. 연구와 개발을 이어온 덕분에 규제가 풀리자마자 출시했고, 불티나게 팔렸다. 특히 내연산 보경사 앞 식당 거리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합동 양조장을 이긴 전국 최초의 개인 양조장 2대 양수길 대표는 양조장을 ‘도구’에서 ‘동해’로 이름을 바꾸고 면 단위를 대표하는 양조장으로 키웠다. 그랬던 양조장이 2000년 들어 포항 제1의 양조장으로 급성장한다. 정부의 ‘막걸리 공급구역 제한 해제’ 덕분이다. 막걸리의 공급구역을 제한하던 시기에는 다른 양조장과 경쟁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낙후된 주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막걸리의 공급구역 제한제도가 폐지되었다. 양조장의 선택에 따라 전국 어디든 막걸리를 유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전국의 양조장이 경쟁하게 되는 상황이 되자 많은 양조장이 문을 닫았지만, 동해명주는 오히려 이 시기에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양민호 대표는 “구역제에 막혀 판로가 답답하던 시장이 뚫리기 시작하니 날개를 단 셈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양조장 구역제 시절에 포항에서 5위 남짓한 양조장이 자율화되자 2위에 오르더니 합동 양조장을 제치기에 이르렀다. 양 대표는 “합동 양조장을 이긴 전국 최초의 개인 양조장”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동해명주의 성장은 도전과 연구의 결과였다. 포항테크노파크와 포항공대의 공동 연구로 개발한 ‘영일만 친구’가 그것이다. 가수 최백호가 부른 노래를 막걸리 이름으로 붙인 것으로, 막걸리와 우뭇가사리의 조합이 눈길을 끌었다. 포항 과메기가 전국 브랜드가 되고 겨울 술안주로 각광받으며 포항시 공동 브랜드가 되었다. 100퍼센트 포항 쌀로 만들었다는 점도 주목을 끌었다. 이로써 동해명주는 전국에서 포항 쌀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업으로 등극했고, 포항 시장에서 업계 1위로 올랐다. ‘영일만 친구’는 여전히 동해명주의 효자 품목으로 “전국의 민관 협업으로 만들어진 막걸리 중 가장 성공적이고 오래 지속된 막걸리”로 평가받는다. 발효실과 숙성실을 원격으로 관리 ‘영일만 친구’의 선전은 그즈음 불어닥친 막걸리 열풍과도 맞아떨어졌다. 2008년부터 막걸리는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금융 위기로 저렴한 술이 소비되는 풍조, 웰빙 열풍, 문화 전반의 복고풍 영향, 일본에서의 막걸리 인기 등 복합 요인이 작용했다. 동해명주는 2011년에 또 한 번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다. 양조 공장의 확장과 현대화를 목적으로 2층 규모의 공장 건물을 신축했다. 2층에는 원료 처리실과 발효실이 있고, 1층은 제성실과 병입실, 창고가 자리한다. 이때 발효 탱크의 술 온도 관리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발효조의 온도 센서 패널을 디지털로 바꾸고, 원격 시스템을 연동해 온도를 제어했다. 막걸리 양조 작업이 고되어 일손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고안한 방안이다. 외부에서도 휴대전화로 발효실과 숙성실을 원격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통해 작업 관리의 부담을 줄인 것은 물론, 양조 품질과 생산 효율성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글 : 배은정(소설가) / 사 진 : 김 훈(작가)

2025-10-01

여유로운 긴 연휴···안방을 책임질 영화 한 편 어때요?

추석에 개천절과 한글날이 더해져 긴 연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고향에 가서 부모님을 뵙고, 오랜만에 어릴 적 친구를 만나고도 며칠이 남을 것이다. 가을 날씨를 느끼며 캠핑 의자를 펴고 벽돌보다 두꺼운 고전을 도장깨기 하듯 독파해 보고, 또 폰을 열어 지나간 영화를 보며 여유를 부려봐도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하지 않던가. □'어느 가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8년)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가족 모두가 툇마루에 나와서 할머니처럼 오래된 집 지붕과 나무 때문에 좁은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밖에는 불꽃놀이로 시끌시끌하다. 그런 바깥 분위기와 다르게 조용히 흘러가는, 연세 많은 할머니처럼 공기도 느려진 어느 가족. 아이들이 불꽃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안 보이지만 소리를 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다들 보이지 않는 불꽃을 들으려 하늘을 올려다본다. 자식이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나쁜 부모가 아닌 어느 가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게 더 강한 거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피가 안 이어져서 더 좋은 점도 있다. 괜한 기대를 안 하게 된다고. 마지막으로 가족으로 합류하게 된 유리가 앞니가 빠지자 지붕 위로 던지는 장면, 우리나라 풍습과 닮았다. 언론을 통해 국내에서는 ‘들치기(만비키)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었으나 국내 개봉 명은 ‘어떤 가족’이었다가 ‘어느 가족’으로 바뀌었다. 고레에다 감독은 노부부가 사망하자 그 자녀와 자손들이 사망 처리를 하지 않고 연금을 받아 생활하다 체포된 가족의 뉴스를 보고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한편, 방구석 1열에서는 처분하지 않은 낚싯대 때문에 검거된 좀도둑의 뉴스를 보고, 왜 낚싯대를 처분하지 않았을까? 남자 어른과 남자아이가 낚시하는 모습, 둘이 부자가 아니라면?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쿄의 마트와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며 생활해 가는 생계형 도둑 쇼타, 그리고 그의 아버지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여느 때처럼 생계를 위한 물건을 훔치고 귀가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하츠에 할머니의 집. 고로케를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밖에 혼자 나와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게 되고, 측은한 마음에 고로케를 건네주고 집에 데려온다. 아이의 이름은 유리로, 잠시 돌봐준 뒤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처음 만난 유리의 집 앞으로 돌아갔으나 안에서는 유리의 부모가 아이가 사라진 일로 심하게 싸우면서 내가 (유리를)낳고 싶어서 낳았냐는 폭언을 퍼붓고 있었고, 측은함에 다시 집으로 데려와 유리를 자식처럼 키우게 된다. 할아버지가 가게 주인인 가게에서 오빠 쇼타가 유리와 함께 물건을 훔치고 나올 때, 할아버지가 불러세우고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과자 두 개를 손에 쥐어주며 동생에게는 도둑질하는 것 가르치지 말라고 한다. 그동안 불쌍한 쇼타의 행동을 다 알면서 내버려두는 모습은 마치 신과 같다. □'퍼팩트 데이즈'(빔 벤더스 감독, 2024년)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는 매일 반복 되지만 충만한 일상을 살아간다. 오늘도 그는 카세트테이프로 올드 팝을 듣고, 아들과 저녁 먹으며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틀어놓으니 익숙한 음악이 나온다. 제목은 검색해야지만 많이 들었던 노래, 아들은 잘 모르겠단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 'Pale Blue Eyes’,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Redondo Beach’, 'Walkin‘ Thru the Sleepy City’, '青い魚‘(푸른 물고기), ’Perfect Day’, ‘Sunny Afternoon’, ‘Brown Eyed Girl‘, ’Feeling Good’. 한 번 들어보시라. 음악 우리가 들어 익숙한 것들. 영화에 삽입하려면 다 판권 샀겠죠?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에 비치는 햇살을 찍고, (일본어로 ‘코모레비’라고 한단다.) 딱 그때만 볼 수 있는 햇살,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이 사는 지금, 지금을 말하는 영화의 주제이다. 다음은 다음일 뿐, 지금은 지금이다, 조카랑 돌림노래 하듯 말하는, 요즘 내가 느끼는 낱말이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을 주세요 늘 기도 한다. 지금 같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 잔(레몬소주?)을 마시고, 헌책방에서 산(문고판 책이 100엔이라 가면 사고 싶다. 책방 주인이 책을 다 읽고 비평가 수준인 것도 좋았다.)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늘 혼자서 대화 없는 하루, 그래도 늘 만족하는 하루다. 그러던 어느 날, 사이가 소원한 조카가 찾아오면서 그의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니코, 고양이를 네코라 하는데 조카 이름이 니코다. 일본어로 니코니코는 우리말로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뜻한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라고 한다. 조카가 오면서 주인공의 첫 대사가 나온다. 웃기도 하고. 니코니코한다. 공중화장실을 일부러 여러 곳 찍은 거 같다. 독특해서 보는 맛이 있다. 화장실 변기와 벽 사이 빙고 게임을 그려놓은 누군가의 쪽지를 버리려다, 거기에 한 수 한 수 놓으며 다시 제자리에 꽂아 두는 배려. 땡큐라는 인사를 하자 윗옷 주머니에 넣는다. 좋다!! 이런 조용하고 늘 똑같은 일상 루틴이 좋다. 그러다 조카와 다카시의 빈자리, 단골집이 문을 안 열고 일상이 깨지니, 그의 얼굴에 웃음이 난다. 부잣집 도련님이 아버지랑 인생관이 안 맞아서 혼자 독고다이 하는 삶, 청소부도 전문적으로 열심히 하는 삶, 멋진 삶 같다. ‘퍼팩트 데이즈’ 좋은 영화다. 영화 내내 내 삶을 생각하게 만드니까. □'모나리자 스마일'(마이크 뉴웰 감독, 2004년) 편지 형식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인공이 입학한 학교 같은 분위기의 기숙사. 새로운 물결을 받아들이는 것이 학점 따는 것과 먼 일이 되는 곳이다. 캐서린이 준비한 강의를 챗봇처럼 외워 교수의 코를 납작하게 하겠다는 학생들, 교재를 외워 오는 학생들에게 교재에 나오지 않는 추상화에 대해 강의하자 학생, 학부모, 학교와 다른 교수들까지 캐서린을 내쫓고 싶어 한다. 그 자세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때의 모습이다. 잘 아는 현재에 만족하며 새로운 지식이 일으킬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싫어도 밀려오는 물결을 막을 수 없듯,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 새로운 물꼬를 터 준 교수, ‘모나리자 스마일’ 역할에 잘 어울리는 줄리아 로버츠의 젊은 시절의 영화이다. □'리빙:어떤 인생'(올리버 허머너스 감독, 2023년) ‘어바웃 타임’, ‘러브 엑츄얼리’에 나온 배우 빌나이가 주연했다. 그는 명품 연기자다. ‘나, 다니엘 브레이크’에서 보면 영국 공무원은 일하는 속도가 엄청 느리다. 이 영화에서도 일 안 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책상에 서류가 많이 쌓여있을수록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한다니 웃프다. 주인공도 매일 같은 루틴으로 그럭저럭 살다가, 삶이 시한부 삶이 되자 일분일초를 의미 있게 살다 간다. 삶이 지루할 때 보면 좋은 영화다. /김순희 수필가

2025-10-01

‘탕’ ‘찜’으로도 먹어봐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아니다. 하지만, 개복치를 한 번 맛본 사람들은 거듭해서 찾게 된다. 여타의 생선들이 구이, 조림, 찜, 어탕 등으로 만들어지듯 개복치 역시 그렇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개복치 묵’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커다란 냄비가 필요하다. 여기에 물을 붓고 껍질을 벗긴 개복치를 삶아낸 후 차가운 물에 넣어 식힌다. 그러면 도토리묵이나 창포묵처럼 부들부들하고 쫄깃한 식감으로 굳어진다. 거의 무미(無味)에 가까운 개복치 묵엔 새콤달콤한 초장을 찍어 먹는 게 어울린다. 낯설고 독특한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개복치의 머리나 뼈를 찜으로 만들어 먹는 걸 권한다. 의외로 연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매료될 것이 분명하다. 지역에 따라선 드물게 ‘개복치 맑은탕’을 판매하는 식당도 있다. 복어 맑은탕이나 아귀 맑은탕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파와 마늘, 멸치와 후추, 다시마 등으로 국물을 내고, 여기에 개복치를 넣어 끓여낸다. 무, 콩나물, 미나리를 넣어 깔끔한 맛을 더한다면 전날 과음한 모주꾼의 속풀이에도 그저 그만이다. 개복치 껍질은 질기다. 그러나, 그 질긴 식감을 좋아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개복치 껍질무침’은 그래서 만들어진 또 하나의 개복치 요리다. 양념장과 여러 채소를 더해 무쳐 먹으면 좋다. 때로는 ‘개복치 회’를 찾는 미식가들이 있는데, 이건 단단한 개복치의 살을 오징어 숙회처럼 익혀서 먹는 게 일반적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9-30

이게 ‘물고기 내장’을 구운 거라고?

아래 기사는 본지 홍성식 기자가 한국기자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는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영남 음식’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편집자 주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물어댔으면 저런 궁여지책을 찾아냈을까? ‘이 물고기의 이름은 개복치입니다’. 경상북도 포항 죽도시장을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붉은 글씨의 푯말이다. 1톤 트럭에 겨우 1~2마리만을 실을 수 있는 거대한 회색빛 물고기가 모로 누운 것도 장관이지만, 막부시대 사무라이가 사용한 일본도보다 더 큰 칼로 개복치를 해체하는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보기 힘든 흥미로운 구경거리다. 장터를 찾은 관광객들이 궁금해 하고, 신기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한국·일본·대만 등지서만 식용 가능 껍질 삶아 굳혀 만든 ‘묵’ 형태가 일반적 대창구이·수육으로도 색다르게 즐겨 원조 포항에서도 귀한 음식으로 대접 자, 그럼 개복치는 어떤 물고기일까? 기자는 생물학자가 아니기에 백과사전의 설명을 짤막하게 요약한다. 다음과 같다. ‘학명은 몰라몰라(Mola mola). 길이는 2~4m, 무게가 평균 1톤에 이르는 물고기다. 최대 2000kg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다. 몸은 타원형으로 옆으로 납작하다. 눈, 입, 아가미구멍이 작다. 움직임이 거의 없으며, 피부는 두껍고 무두질한 가죽 형태다. 온대성 어류로 바다 중층에서 활동하지만, 맑고 파도가 없는 날엔 수면 위로 등지느러미를 보이며 헤엄치기도 한다. 무리를 짓지 않는 것도 특성이다. 주된 먹이는 해파리 따위. 몸길이가 60cm 이상이 되면 수컷은 주둥이가 튀어나오고, 암컷은 수직형이 된다. 수명은 약 20년. 살은 희고 연하며 맛은 담백하다’. 우선 ‘몰라몰라’란 학명이 재밌다. 라틴어로는 맷돌을 의미한단다. 매일매일 “저 물고기 이름이 뭐예요?” “우와 크다. 저건 무슨 생선인가요?”라고 묻는 구경꾼들에게 시달리는 개복치 해체 전문가가 들려주고 싶은 대답도 실상은 “몰라몰라~ 나도 몰라~”가 아닐지. 같은 말을 하루에 10번, 100번 반복한다는 건 고역이 분명하니까. 지구 위에서 개복치를 먹는 나라는 한국, 일본, 대만 정도가 거의 전부다. 유럽은 아예 ‘식용금지’ 딱지를 붙였다. 먹기 위해 사고파는 건 불법이라고 한다. 개복치는 여러 가지 요리로 만들어질 수 있는 식재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껍질을 삶아 흐물흐물해진 걸 굳혀 만든 ‘묵’ 형태의 개복치 요리만을 먹어봤을 터. 그걸 맛본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입을 모아 말한다. “도토리묵처럼 씁쓸하지만 깊은 맛이 나는 것도 아니고, 메밀묵처럼 혀에 감기는 감칠맛도 없네. 쇠 젓가락으로 잘 잡히지도 않는, 아무 맛도 안 나는 이걸 왜 먹지?” 기자 역시 그랬다. 1990년대 후반 청년시절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개복치 묵’을 처음 먹었을 땐 “이게 뭐지? 보드카도 아닌 게 무향무취군.” 이런 혼잣말을 한 후 초장을 듬뿍 묻혀 소주와 함께 어거지로 삼켰던 기억이 있다. 맛이 없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반전이 찾아왔다.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2015년 서울에서 포항으로 집을 옮겼다. 포항은 다양한 형태로 개복치를 조리하는 도시다. ‘개복치 묵’은 상갓집과 결혼 피로연장에 곧잘 등장하는 인기 메뉴. 자꾸 먹다보니 밋밋한 그것이 혀끝으로 미세하게 전달하는 ‘독특한 맛’을 시나브로 알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우거(寓居) 지척에 늙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거기선 ‘개복치 대창구이’와 ‘개복치 수육’을 판다. 개복치를 상식(常食)하다시피 하는 포항에서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음식점이다. 기자는 음식 먹는 것에 터부가 거의 없다. 그래서다. 소, 돼지, 양, 닭은 물론 개의 내장도 먹어봤다. 그럼에도 ‘개복치 내장’의 식감과 향은 필설로는 형용하기 힘든 ‘특별함’이 담겨있다. 요즘 애들이 하는 말로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다. 그게 살인지, 껍질 아래 피하지방인지, 내장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개복치 수육’ 또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운 ‘신묘한’ 맛이다. 이렇게 쓰고 나면 “그걸 파는 식당이 어디죠?”라고 묻는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사진은 보여줄 수 있으나 포항 개복치 요리점 옥호를 알려주진 않겠다. 왜냐? 앞으로도 혼자만 다니고 싶으니까. 북적거리는 식당 앞에서 줄을 서기엔 너무 나이를 먹었으니. 아, 궁여지책으로 이렇게 답하면 되겠다. “몰라~몰라.” 앞서도 말했지만, 몰라몰라는 개복치의 학명이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2025-09-30

건강·맛·영양·듬뿍 ‘영주 농특산물’ 한가위 선물로 딱이네!

청정지역 영주시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농산물과 이를 가공한 식품들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농산물은 생산 과정에서 자연 환경적 요소 등이 중요하지만 이를 키우고 가꾸는 농심 또한 큰 몫을 한다. 영주시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은 환경적 요소에 농심이 더해져 우수 생산물이 생산되는 곳이다. 500년 역사 풍기인삼 약효 탁월 소백산맥 선물 영주사과 당도 ↑ 거세 우량소 사육 한우, 육질 으뜸 아토피•알러지 피부에 좋은 인견 국내산 고구마 활용한 ‘고구마빵’ 영주 産 찹쌀 원료 도너츠도 인기 영주시 농특산물이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도를 높여나가는 것은 농가소득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영주시의 특화된 농업정책과 이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농가들의 기술 접목, 우수제품 생산을 위한 관계기관 및 작목반들의 연구와 노력의 성과가 모인 결과다. 특히 1차 산업에서부터 6차 산업에 이르기까지 생산된 제품에 대해 국내외 판로 확보와 소비자 신뢰도가 소비로 이어지기까지 유통 관련 지원업무가 적극 뒷받침된 것도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영주시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 중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몰이를 하는 품목은 풍기인삼, 영주사과, 영주한우, 영주기능성 쌀, 풍기 인견, 단산 포도, 순흥 기지떡, 고구마 빵, 정 도너츠, 소백산 오정주, 벌꿀, 순흥 복숭아, 영주 계란, 부각, 한과 등과 이를 활용한 다양한 가공식품이 있다. □ 풍기 인삼 국내 최초 재배삼의 시배지인 영주 풍기 지역은 500여년의 재배인삼 역사를 통해 품질이 우수한 인삼을 생산하고 있다. 소백기슭의 풍부한 유기물과 대륙성 한랭기후와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로서 인삼이 생육하기 좋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어 육질이 단단하며 유효 사포닌 함량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풍기인삼의 특성을 살린 인삼가공제품은 20여종으로 전국에 유통되고 있다. 풍기인삼의 특징은 육질이 탄탄하여 중량이 무겁고 약효가 뛰어나고 같은 분량을 달여도 다른 인삼보다 훨씬 진하며 약탕기에 끊여 재탕, 삼탕을 해도 물렁하게 풀어지지 않는다. 피로를 빨리 회복하고 식욕을 돋구어 주고 적혈구 증가 등 신진대사를 원활히 해준다. 인삼의 효능은 많은 연구결과 장기적 복용 시 면역력을 높여 체내에서 병 발생에 대한 위험도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의학적 효능은 당뇨병, 암, 동맥경화 및 고혈압, 빈혈, 노화방지, 피로 및 스트레스 해소, 한방적 효능으로 신체허약 개선, 강장효과, 간기능강화, 체력증진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삼 가공식품은 절편삼, 홍삼절편삼, 홍삼차, 홍삼정과, 홍삼정, 홍삼타브렛, 홍삼액, 홍삼분말, 인삼분말, 홍삼정, 홍삼캡슐, 황금홍삼비누, 홍삼벌꿀비누, 홍삼우유비누, 홍삼제리, 홍삼캔디 등이 있다. 문의 풍기인삼공사영농조합법인 054)638-2304 풍기인삼협동조합 054)636-2714 □ 영주사과 영주시는 전국의 사과 생산 중 14.5%를 차지하는 제1의 사과 주산지로서 백두대간의 주맥인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분기하는 지역의 소백산 남쪽에 위치한 산지과원에서 생산돼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공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덕택에 맛과 향이 뛰어나며 성숙기 일교차가 커 당도가 높다. 쓰가루 품종은 품질의 우수성이 입증돼 농산물 도매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고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품종이다. 영주사과는 포장단위를 5kg, 10kg와 소비자들의 다양한 구매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봉지 사과를 출시하는 등 소비 다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저장시설의 현대화로 연중 질 좋은 사과를 출하하고 있다. 문의 영주농협공판장 054)636-8594 풍기농협공판장 054)636-3209 □ 영주한우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소백산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에서 사육된 영주한우는 개량된 암소에 1등급 정액으로 인공 수정해 생산된 우량 숫송아지를 5-6개월에 거세하고 한우고급육 표준사양관리프로그램에 의거 사육하며 비육 후기에는 영주시와 건국대학교 축산대학 정태영 교수팀이 협력해 1996년부터 1997년 2년에 걸쳐 개발한 아마종실을 첨가한 특수사료 급여와 초음파 육질 진단을 해 출하적기를 판단, 고품질의 육질만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영주한우는 부루세라병 등의 악성가축전염병을 완전차단하고 축산물의 위생,안정성에 대한 소비자 신뢰 확보를 위해 사육·도축·가공·판매에 이르기까지 정보를 기록·관리하는 쇠고기이력추적시스템을 2006년부터 시범실시해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축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문의 영주축협유통센터, 054)630-6710, 하나로마트 630-6740 횡재먹거리 한우 054)638-0094 □ 풍기인견·고구마빵·찹쌀 도너츠 이 밖에도 식물성 자연섬유로 피부가 여린 갓난아기, 알레르기성 피부, 아토피성 피부 등 피부가 약한 분들에게 좋은 풍기인견과 전국 최초로 지역에서 생산된 순수 국내산 고구마를 활용해 만든 고구마빵, 영주지역에서 생산된 국내산 찹쌀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찹쌀 도너츠 등이 있다. □ 단산포도·순흥복숭아 계절 과일로는 맛과 향이 뛰어나고 당도가 높은 순흥복숭아와 단산 포도가 인기다. 특히 순흥복숭아는 국내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인기가 높아 동남아 지역 7, 8개국에서 매년 수입하고 있다. 영주시는 추석을 맞아 농특산물 쇼핑몰 영주장날에서 9월 한 달간 추석맞이 할인전을 진행한다. 이번 할인 기간에는 축산류와 양곡류는 20%, 그 외 품목은 30%까지 할인하고 예산 소진시 행사가 조기 종료 될수 있다. 이번 행사에는 믿을 수 있는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130여개 농가·업체가 입점해 3000여 개 품목 제품을 판매 중이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2025-09-29

전국에서 파도소리와 가장 가까운 양조장

포항 도심에서 동해안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탁 트인 바다 마을이 나타난다. 영일만의 넓은 품에 안긴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 이곳에 70년을 이어온 양조장이 자리한다.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깃든 땅, 근대 한의학의 한 축을 이룬 석곡 이규준(1855∼1923)의 정신이 깃든 곳에 터를 다진 동해명주다. 손님을 맞으러 나온 양민호 대표는 유서 깊은 노포의 이미지와 다르게 40대의 젊은이다. 전국 수백 개의 양조장을 이끄는 이들 중에서 젊은 축에 속한다. 나이는 젊지만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돕기 시작해 일반사원에서 공장장을 거쳐 대표 자리에 올랐으니 보통 내공은 아닐 터이다. 동해명주의 도로명인 일월로 51-1번지에는 건물 두 동이 있다. 70년 된 전통 양조장에 증류실을 마련해 증류주 연구를 본격화하면서 막걸리 생산은 2011년에 신축된 양조장에서 전담하고 있다. 막걸리 양조장 외벽에 설치된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술 항아리에서 잔으로 한 줄기 술이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양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미관상 고민거리이던 도시가스 배관이 취기에 올라서 보니 술 줄기로 변해있더란다. 그야말로 ‘술기운이 만든 작품’인 셈이다. 양 대표는 양조장의 핵심 시설인 발효실부터 안내했다. ‘양조장의 주방’이라 불리는 발효실은 양조장의 중심축으로 술의 성패를 좌우하기에 신성시되는 공간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여름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인데도 발효실 안은 서늘함이 감돌았다. 내부에는 1톤 용량의 스테인리스 탱크 35기가 자리했는데, 각각 냉각관을 통한 온도 조절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었다. 1t 탱크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무려 2000여 병이다. 전통을 잇되 자동화 설비를 꾸준히 도입한 결과다. “지금이야 세월이 좋아졌지만, 옛날에는 장독대에 선풍기를 틀어 온도를 내렸습니다. 지금처럼 무덥지 않아서 장독대 하나에 선풍기를 집중적으로 틀어주면 20도까지 떨어졌지요.”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는 지하수를 흘려 온도를 낮추고, 겨울에는 연탄불을 피워 발효 조건을 맞추었다. 양 대표는 장독이라 온도 관리가 수월했다고 말했다. 장독이 숨을 쉬면서 스스로 온도 관리를 했기 때문이다. 장독에서 술을 익히는 게 낫지 않냐고 묻자 양 대표가 손사래를 쳤다. 대형 장독대 세척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란다. 가슴 높이의 항아리를 기울여 세제 없이 오직 손힘으로만 닦아야 하는 것이다. 또 항아리를 운반하려면 핸들을 돌리듯 굴려서 움직여야 했기에 파손될 위험도 컸다. 포항 도구에 70년 이어온 ‘양조장’ 자리해 1955년 서영수 대표의 ‘도구양조장’ 시작 2대 양수길 대표 인수 ‘동해양조장’ 명명 3대 양민호 대표 다섯 살부터 아버지 도와 일반사원서 공장장 거쳐 대표 자리 올라 전국 확장 의지 담아 사명을 ‘동해명주’로 매일 새벽 마당에 술을 뿌리며 기도 올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 막걸리 한 잔의 여운, 정성과 철학의 결실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 양민호 대표가 망사로 된 뚜껑을 열어서 탱크 안을 보여주었다. 발효된 쌀알이 표면에 떠 있고, 알코올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냄새는 시큼하기보다 구수한 쪽에 가까웠다. 보글거리며 올라오는 기포는 생명력을 알리는 듯했다.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이 양조장을 찾는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독립영화가 있었다. 감독이 직접 막걸리 제조법을 배우다 아이디어를 얻은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2024)인데, 발효 과정에서 생긴 기포를 일종의 ‘신호’로 해석한 설정이 독특했다. 영화처럼 신비한 기운을 가진 막걸리가 “톡톡……, 톡톡톡……” 로또 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특별한 메시지를 전할지 모르니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반면, 양 대표는 슬쩍 보더니 냄새로 술의 상태를 판단했다. 발효실에서 40년 가까이 있다 보니 후각으로 도수와 산미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단다. 도수를 0.5도 단위까지 알아낼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능력이다. 양 대표는 마치 알코올 도수 측정기가 눈앞에 있는 듯 현재 도수는 약 14.5도이고, 하루만 더 발효시키면 출고할 수 있다고 했다. 1톤 탱크의 3분의 1은 쌀이 차지한다. 뜨거운 증기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밥을 섞어주고 뒤집어준 고두밥이다. 쌀을 찌고 나면 균사를 고두밥에 뿌려 손으로 비벼주는 작업이 이어진다. 발효가 제대로 이루어지면, 양 대표의 표현대로 “쌀에서 꽃이 핀다.” 막걸리의 모든 공정에 정성이 들어가지만, 특히나 발효만큼은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기술만으로 맛을 낸다면 대기업 제품이 가장 맛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유다. 동해명주의 뿌리는 도구양조장 효모가 제대로 활성화되어 고두밥 분해가 충분히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발효 지점은 알코올도수 15도다. 반면에 발효가 덜 된 상태, 즉 ‘미주(未酒)’ 단계에서는 구수한 맛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무에서 충분히 숙성된 과일이 풍부한 맛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걸리도 탱크 안에서 충분히 발효될 때 가장 좋은 맛을 낸다. 맛의 품질과 생산 수율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한 수많은 시도 끝에 도출한 최적의 조건이다. 목표치에 도달하면 물을 섞어 도수를 약 6도 수준으로 조정한다. 물을 더해 원하는 도수를 맞추는 방식은 위스키나 맥주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막걸리는 청주를 걸러내고 남은 침전물이었지만, 지금은 원주(原酒) 그대로 사용한다. ‘대충 막 걸러낸 술’이라는 막걸리의 어원은 오늘날에는 통하지 않는다. ‘이제 막 갓 빚어낸 술’이라는 해석이 현대의 막걸리를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 동해명주의 역사는 1955년 ‘도구양조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대 서영수 대표가 운영하던 양조장을 1985년에 2대 양수길 대표가 인수해 ‘동해양조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도구리를 넘어 동해면 전역을 대표하는 양조장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였다. 2016년, 양민호 대표가 대를 이어 취임하면서 브랜드 이름은 ‘동해명주’가 되었다. 전국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양 대표의 부친인 고(故) 양수길 대표는 포항시 연일읍 태생이다. 그는 떡방앗간을 처분하고 도구양조장을 인수하면서 포항시 도구리로 터전을 옮겼다. 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양조장을 인수했지만, 재정적 기반이 부족한 터라 가내수공업 형태로 가족 모두가 힘을 보탤 수밖에 없었다. 양민호 대표는 한옥 2층 살림집 아래 1층 양조장에서 성장했다. 아침에 문을 열면 곧장 양조장이었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막걸리 상자 앞에 앉아 고사리손으로 비닐 마개를 씌우며 일을 도왔다. 당시 막걸리 병마개는 밀봉을 위해 비닐을 사용했다. 비닐 100개가 한 세트였는데 하나씩 벗겨내 병에 꽂고 열로 지져 수축시키는 방식이었다. 양 대표는 스스로의 성장을 ‘병뚜껑을 닫을 수 있는 높이’로 체감했다. 처음엔 2단만 겨우 가능했지만, 어느새 3단, 4단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키가 크는 걸 알았다. 매일 새벽 마당에 술 뿌리고 기도 올려 막걸리 냄새에 취해 살았다고 회고하는 양 대표. 어린 시절에는 ‘술도가’라는 놀림을 받기도 했다. 맥주와 소주에 비해 막걸리가 상대적으로 덜 대우받던 때였다. 고등학생이 되니 그제야 친구들도 하나둘씩 양조장이 마을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에 누룩 냄새가 배어 빠지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놀려도 막걸리집 아들로서 자부심이 있었죠. 한 톨의 쌀이 밥이 되고 막걸리가 되는 과정이 어린 제게는 신비로웠습니다.” 고(故) 양수길 대표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평소 “남은 1등, 나는 2등”이라는 말을 자주 했으며, 이는 배려와 책임의 철학을 보여준다. 겨울이면 쪽잠으로 버티며 서너 시간마다 밤새도록 연탄불을 확인했다. 세심하게 술을 지켰던 집념은 아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이셨죠. 너부터 챙기지 말고 장독을 더 들여다보고 수억의 생명체를 먼저 챙기라는 말씀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1941년생 아버지가 45세에 인수한 양조장에서 같은 나이가 된 1981년생 아들이 전통의 맛을 지키고 있다. 양민호 대표는 매일 새벽 발효실에 들어가기 전 마당에 술을 뿌리며 기도를 올린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술에도 정성이 깃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양조장은 전통과 경험, 기술과 철학이 맞닿는 지점이라는 그의 말은, 양조장이 술을 빚는 공간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한 잔의 막걸리에 담긴 오랜 여운은 이 같은 정성과 철학의 결실이다. 글 = 배은정 소설가·사진 = 김훈 작가

2025-09-28

구미시, K-방위·항공산업 글로벌 중심지 도약 가능성 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중동국가간 긴장고조로 세계 곳곳에 군비경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K-방산은 오늘날 국가 안보의 영역을 넘어 새로운 경제질서를 만드는 게임체인저가 되고 있다. 특히 경북·구미 방산혁신클러스터는 경남·창원 클러스터 및 대전 클러스터와 함께 한국 방위산업을 이끄는 3대 중심축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구미컨벤션센터와 금오공과대 등 구미에서 열린 ‘2025 항공방위물류박람회(GADLEX)’와 ’제3회 제2작전사령관배 드론봇 전투경연대회’ 등 방위산업 행사는 구미를 위시한 창원·대전 등지 K-방산의 현주소와 미래 성장 잠재력을 조명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내외 기업 94곳 204개 부스 설치 VR 등 군 기술 체험 프로그램 운영 금오공대서 열린 드론봇 전투 관심 가공할 파괴력에 ‘게임 체인저’ 실감 市, 8개 기업 5841억 투자유치 성과 □ 2025 항공방위물류박람회(GADLEX) 지난 24일부터 26일까지 3일간 구미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항공방위물류박람회는 세계적 방산업체로 발돋움하고 있는 한화시스템과 LIG 넥스원 등 국내외 94개 기업·기관이 참여해 204개 부스를 운영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박람회에는 △10개 해외기업이 참여하는 절충교역 연계 수출상담회 △방위산업공제조합·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한국산업기술시험원이 진행하는 정부지원 사업 1:1 컨설팅 △대구경북공항 물류산업 육성 정책토론회, GDIP 포럼, UAM·드론방호돔 세미나, 구미시 투자설명회, 기술교류회, 2025국제드론산업포럼 등 각종 포럼과 세미나가 마련돼 산업계·학계·기업 간 협력과 교류가 활발히 이뤄졌다. 올해 처음 선보이는 ‘청년·대학(원)생 인재채용 상담 및 설명회’는 청년층에 취업 기회와 진로 탐색의 장을 제공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HD현대중공업, ㈜대한항공, 한화시스템, LIG넥스원, 퍼스텍, 위드포스, 한국우주항공산업(KAI), 한국항공서비스(KAEMS), 모아소프트, 넥스트에어로스페이스 등 국내 유수의 항공·방위산업 기업들이 참여해 현장에서 대학(원)생과 직접 소통하며 미래 인력 확보와 우수 인재 발굴에 나섰다. 또 박람회 기간동안 △안티드론건 재밍훈련 시뮬레이터 △헬기 조종 VR 시뮬레이터 등 다양한 군·항공 분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돼 참관객들이 직접 최신 기술을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와함께 구미시는 한국방위산업진흥회·경상북도와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세 기관은 △방산기업 교육 지원을 통한 전문인력 양성 △방위산업 분야 협력 및 공동교육·연구·정보교류 △방위산업 수출진흥 및 국제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 구미 방산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방위산업 발전을 이끌 계획이다. □ 가공할 드론봇의 운영 시험무대, ‘드론봇 전투경연대회’ 금오공대에서 진행되는‘제3회 2작전사령관배 드론봇 전투경연대회’는 모두 7개 종목으로 나뉘어 ‘군사적 활용’분야와 ‘스포츠 참여형’ 분야로 운영됐다. 군사적 활용 분야는 드론의 군사적 활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감시정찰, 폭탄 투하, 기체창작, 로봇 챌린지 총 4개 종목으로 진행되고 스포츠 참여형 분야는 드론축구, 드론 레이싱, 드론 배틀 3개 종목이 개최됐다. 이 대회는 △작전사 AI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구축을 위한 기반 조성 △드론봇 운용 고등 기술 숙달 및 전투발전 소요 창출과 대학의 첨단과학기술 연구분야 중 군내 활용 가능한 분야를 접목시키고 △민·관·군·산·학·연의 협력을 통해 첨단과학기술을 활용한 도시지역 작전수행 체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마련됐다. 시민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수리온 헬기전시 및 탑승, 항공·드론 시뮬레이터, 로봇 제작, 3D프린팅, 팝드론 배틀, 드론 조종, 레이저 각인, 모의사격 체험 등이 선보였고 군악연주, 의장대 시범, 버스킹 공연 등 다채로운 문화행사도 선보였다. 드론봇 대회 운영관계자는 “드론봇은 수십만원 또는 수천만원의 제작비만으로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전차 군함 항공기를 파괴하는 가공할 위력을 지니고 있다”며 “드론봇의 뛰어난 성능은 최근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증된바 있어 국제 무기시장에서 주요 트랜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 삼양컴텍 등 8개기업 5841억원 방위산업 투자유치 앞장서 온 구미시 구미 방산혁신 클러스터는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반도체·반도체·통신 등 IT 기술을 방산 장비및 무기에 접목하는 핵심방산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AI(인공지능)가 조종사와 함께 전투기를 조종하고 로봇 병사가 인간 병사를 지원하는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구미에는 지난해 세계 100대 방산기업에 진입한 한화그룹(24위)의 일원인 한화시스템과 LIG 넥스원(76위) 등 방산전자 대표 기업과 130여개 중소기업이 방산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LIG 넥스원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인 천궁과 중거리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함대공 유도무기 해궁등 유도무기에 특화된 방산기업이다. 또 한화시스템은 군위성통신 및 전술정보통신 체계구축과 30mm 차륜형 대공포로 세계방산시장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밖에 K2 전차 특수장갑 생산업체인 삼양컴텍, 소형전자전장비와 함정용 방향탐지장치 전문업체인 빅텍, 유도무기 구동장치를 만드는 엘씨텍 등 중소기업들이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 등 대기업과 협력체계를 가동중이다. 2026년 2월 구미 공단동에 준공예정인 ‘첨단방위산업진흥센터’는 260억원의 사업비 투입으로 무기 및 방산장비개발부터 양산, 운용까지 방위산업 전 주기에 걸친 통합 시험 인증 시스템 서비스를 중소·벤처기업에 제공할 예정이다. 또 지난 8월 낙동강 수상레포츠 체험센터 인근에 완공된 ‘무인 수상정 테스트베드’는 계류장, 진수장 등을 갖추고 해양무인체계 기술의 실증테스트를 위한 환경시설을 완비해 해군 전력의 고도화에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구미시는 지난 24일 항공방위물류박람회 개막에 앞서 삼양컴텍으로 부터 239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삼양컴텍은 방탄소재 분야 선도 기업으로 이번 투자를 통해 K2 전차와 K21 장갑차의 해외수출 물량 증가에 대응할 계획이다. 폴란드 튀르키에 등 해외수출을 위해 공장증설에 나선 삼양컴텍은 2026년까지 투자를 늘려 56명 가량의 신규 고용도 창출할 예정이다. 이번 투자는 지난 2022년 387억원 투자에 이은 후속 투자다. 경북도와 구미시가 부지 확보 등 기업의 애로사항을 적극적으로 해결한 것이 추가 투자를 이끌어냈다. 9월 현재 구미시는 방산분야에서 한화시스템, LIG넥스원을 포함한 8개 기업과 모두 5841억원 규모의 투자 MOU를 체결하는 성과를 올렸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방위산업의 해외 수주는 한건 체결만으로도 수백억원 또는 수천억원의 수출효과를 낼 수 있다”며 “구미가 대한민국 방위산업과 항공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 할 수 있도록 지원역량 확대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 글·사진 류승완기자 ryusw@kbmaeil.com

2025-09-28

대서마늘 ‘씨마늘’ 성공 재배… ‘안정적 종구 보급’ 돌파구 찾았다

한국인의 ‘마늘 사랑’은 유별날 정도다. 각종 음식 관련 서적과 백과사전 등을 펼쳐보면 이런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유럽에서 마늘 소비량이 가장 높은 국가는 이탈리아다. 이 나라 사람들은 1년 동안 약 1kg의 마늘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은 1인당 연평균 소비량이 5kg이 넘는다. 유럽 사람들의 5배 이상을 섭취하는 것이다. 마늘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이집트. 그럼에도 ‘마늘 사랑’은 이집트에서 멀고 먼 나라 한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격이다. 3년 만에 우량종구 증식 성공… 170t 생산 공모농가 26곳과 협업 ‘균일한 품질’ 확보 타 지역보다 1세대 앞선 ‘주아 1세대 종구’ 가격마저 저렴… 경쟁력 강화·자급률 제고 ‘한국 마늘산업 박람회’ 우수상 수상 쾌거 요리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한식에서의 마늘은 단순한 향신료가 아니다. 모든 요리를 망라해 그 저변에 깔리는 가장 주요한 재료”라고.“한국 요리의 시작은 마늘이고, 끝 또한 마늘”이란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란 건 주변 식당과 평범한 가정의 주방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식품학자들은 “마늘은 혼자 지내는 독거생활인이나 편식이 심한 사람에게 유용한 식재료”라고 말한다. 마늘은 칼륨, 인, 칼슘 등의 무기질 함량이 높고, 비타민 B도 다량 함유됐기에 건강을 유지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는 것. 대중적으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령군은 경상북도에서 영천시, 의성군에 이어 마늘 재배 면적이 3번째로 넓은 마늘 주산지다. 농업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리적으로 인접한 경상남도 창녕군, 합천군과 함께 전국 대서마늘 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도 인식돼 있다. 그런 현실을 감안해 고령군은 이미 오래전부터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단일 작물 중 연매출액이 가장 높은 것 중 하나인 마늘 산업의 활성화와 안정적인 보급과 생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 마늘 특성 연구와 종구 구입 문제점 해결 위해 노력 그 중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대서마늘 우량 종구(씨마늘) 보급사업이 손꼽힌다. 고령은 이 사업을 3년에 걸쳐 추진했다. 그렇다면 우량 종구 보급사업의 추진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는 마늘은 인편(쪽)을 통한 영양번식 작물이다. 그렇기에 재배 연수가 길어질수록 병해충 및 바이러스에 감염돼 종구가 퇴화하고, 이로 인해 수량 감소와 품질 저하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하였다는 것.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이 필요했다. 둘째는 일부 농가에서 중국산 종구를 구입함으로써 국내 마늘 산업이 위축되고, 불량 종구로 인한 피해 사례가 빈번히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도 농가 발전을 위해 선결돼야 할 문제였다. 셋째는 농가가 자체적으로 주아재배 종구를 생산하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번거로움이 컸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적이고 체계적인 도움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넷째는 타 지역에서 들여오는 종구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매년 수억 원의 자금이 외부로 유출되고 있어 지역 경제 측면에서도 대책이 필요했다. 그뿐 아니라 농가에서 믿고 사용할 수 있는 안정적 종구 보급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 2022년부터 사업 본격화...올해 씨마늘 170t 생산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고령군농업기술센터는 2022년부터 대서마늘 ‘우량종구 증식체계 구축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주아재배 종구 생산의 시작 단계인 주아 채취를 실시했고, 2024년에는 단구(씨마늘 전 단계) 생산을 거쳐, 올해는 최종적으로 주아 1세대 씨마늘 170t을 생산하는 성과를 이뤘다. 우량종구 증식체계 구축사업은 3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로 이남철 군수의 의지와 농업기술센터의 자체 역량을 결집해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하지만, 파종 및 수확 작업 등 기상 여건과 인력 수급 등의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씨마늘 생산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공개 모집된 26명의 증식 농가와 협업해 균일한 품질을 확보하는 등 민간과 지자체의 노력이 합해져 순조롭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고령군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령군은 지난 7월 고령군농산물산지유통센터에서 ‘2025년산 주아1세대 씨마늘 수매 및 농가 보급 행사’를 통해 101명의 농가에 총 4772망의 씨마늘을 보급했으며, 거래금액은 모두 4억4989만원에 달한다. 이번에 보급한 종구는 타 지역보다 1세대 앞선 ‘주아 1세대 종구’로 가격 또한 저렴하게해 고령군 마늘 재배 농가의 경쟁력 강화와 자급률 제고에 적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 마늘산업 박람회서 품질의 우수성과 경쟁력 인정받아 또한 지난 8월엔 경북 영천시에서 열린 ‘2025년 제1회 한국 마늘 산업 박람회’에 고령군농업기술센터가 실증시험포장에서 생산된 조직배양 마늘을 출품했다. 이 마늘은 품종별 품질 평가회에서 ‘대서종 부문 우수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고령군 마늘의 우수성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성과인 동시에 품질 경쟁력을 증명하는 사례로 기록됐다. 마늘은 건강에 좋은 식품 가운데 하나다. 항암 효과가 있고, 전립선 건강에도 좋으며, 피부의 노화도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한의학계에서도 “마늘을 익혀 먹으면 음기가 강해진다”는 말이 전한다. 마늘에 함유된 알리신은 피로 회복과 스테미너 증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한다. 현재 고령군은 기존 주아재배 종구보다 품질이 뛰어난 조직배양 종구 생산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증시험포장 내 조직배양 종구 생산 및 증식 시설을 갖춘 ‘대서마늘 우량종구 증식보급센터’ 구축을 위해 국도비 공모사업도 추진 중이다. 2027년부터 연간 10t 규모의 조직배양 종구를 농가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대서마늘 산업의 고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남철 고령군수는 “마늘 주산지인 고령의 명성에 걸맞게 사업 규모와 품질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가겠다”며 “마늘 뿐 아니라 고령군 주요 농산물의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고 약속했다. /전병휴 기자 kr5835@kbmaeil.com

2025-09-25

장인의 자존심, 열쇠점을 지키는 힘

열쇠업이 전성기였던 1990년대, 포항에는 열쇠집이 70여 곳 있었다. 지금은 열쇠를 복사하려면 수소문해야 할 정도로 줄었다. 그러나 죽도열쇠 김건식 대표는 ‘사라질 산업’이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열쇠 제작은 기술입니다. 로봇은 사람의 손 기술을 이기지 못해요. 도어록이 보편화되어도 열쇠는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의 출장 범위는 아파트와 상가를 넘어 은행, 선박, 군부대, 교도소까지 다양하다. 해병대 출장도 예사다. “군대도 문이 있고 열쇠가 있거든요.” 문이 있는 곳이라면 예외가 없다는 말이다. 전성기던 1990년도 중반 부도 겪었지만 기술 하나 믿고 가업 지켜 ‘완벽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 신념으로 날마다 새 기술 정진 직접 개발한 디지털 도어록 전국 100여 군데 대리점서 1만개 판매 사양사업이라는 말에 고개 저으며 오늘도 ‘죽도 열쇠’ 역사 써내려가 열쇠 기술자의 하루는 종종 긴박한 구조 현장이 된다. 한여름 차 안에 갇힌 아이를 구한 적도 있고, 현관을 따고 들어가 쓰러진 노인의 목숨을 살린 적도 있다. 119구급대가 활동하지 않던 시절이라 급한 상황에서는 열쇠공이 곧 구조대였다. 반대로 어두운 순간을 마주하기도 했다. 경찰과 함께 들어간 집에서 자살 현장을 목격하거나, 부부싸움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예전엔 손님이 발을 동동 구르면 무조건 달려갔어요. 그런데 지금은 먼저 상황을 살펴요. 자칫하면 큰일 납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나쁜 일에 휩쓸리기도 한다. 김 대표는 ‘문을 따는 기술’이 곧 ‘신뢰의 문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요즘은 집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경찰을 대동하지 않으면 거절한다. 대화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단다. 구체적인 내용은 ‘영업 비밀’이라면서, “은연중에 실수하도록 유도하면, 본인 집인지 아닌지는 몇 마디만 해봐도 나온다”고 했다. 오래 일하다 보니 사람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부도 맞고 큰 시련 겪어 김건식 대표의 성실함은 주위에서 정평이 나 있다. 성실함은 신뢰로 이어졌다. 출장 중에 만난 장모가 딸을 소개할 정도였다. “장모님이 제가 못생겼어도 편하게 해줄 거라며 아내를 설득했죠.” 지금도 장모는 든든한 사위 편이다. 아내 역시 든든한 지원군이다. 집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그를 위해 사무실 한쪽에 마련된 부엌에서 매 끼니를 정성껏 챙긴다. 김 대표의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남의 문을 척척 열어주는 열쇠 기술자이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먹통인 시절도 있었다. 1990년도 중반, 한창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를 맞았다. 열쇠 도매상을 비롯해 주차장, 세차장, 식당 등 이곳저곳으로 확장해나가던 사업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사람을 지나치게 믿은 탓에 보증 문제가 터진 것이다. 그때 이미 아버지와 방송에 출연하며 이름이 알려져 도망가기도 숨기도 싫었다. 빚더미에 앉은 그는 좋아하던 술을 끊고 오직 빚 갚는 데 매달렸다. “30억 빚을 지고 나니 돈에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돈은 잃었지만 인생 공부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건강마저 무너졌지만, 그는 기술 하나를 믿고 다시 일어섰다. “어려운 시기가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기술이 있는데 왜 못 살아, 하고 오기가 생기더군요.” 결국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다시 열쇠 앞에 섰다. 지금 와서 하는 얘기지만, 당시 그는 어머니에게 가게를 팔아 빚을 갚자고 졸랐다. 흔들리지 않고 가게를 지킨 어머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눈물로 버티던 어머니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디지털 도어록 기술 연구에 매진 이후 그는 오로지 일에만 몰두했다. 그가 일을 대하는 원칙은 단순하다. ‘완벽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는다.’ 열쇠는 정밀 기술이기에 작은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공부하고, 새로운 장비와 기술을 익힌다. 김 대표 스스로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라고 털어놓았다. ‘쌓아온 기술 값’이 더해지니 당연하단다. 열쇠 일은 완벽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직종이기 때문이다. 정밀도를 높이고 오차를 줄이려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된다. 디지털이 보편화된 오늘날, 열쇠업은 사양산업일까. 많은 종사자가 열쇠업이 사양사업이라며 떠났지만 김 대표는 오히려 디지털 도어록 기술 연구에 매진했다. 실제로 수요가 많아지면서 설치나 수리 문의가 증가했다. 문제가 생기면 제작사보다 설치 기사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 김 대표는 애초에 고장이 안 나게 만들면 안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예 ‘열쇠 기술자가 만든 도어록’을 직접 개발했다. 회원들과 힘을 합쳐 브랜드를 만들고, 3년간 무상 교환을 내세웠다. 현재 전국 100여 군데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만여 개를 판매했지만 AS 요청은 극히 적어 품질이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장인의 자존심을 건 결과다. 김 대표는 디지털 도어록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한다. 여전히 보조 열쇠와 병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어록은 사실 보안 수준이 열쇠보다 약해요. 드릴 하나면 뚫리죠.” 그러니 요즘은 디지털 도어록이 마모되면 교체하고, 보조 열쇠를 덧붙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열쇠 자체가 복잡하게 진화 중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열쇠 전문가인 김 대표는 도어록과 자물쇠 중 무엇을 선호할까? 그는 도어록을 쓰지만 무심결에 문을 열어놓고 다닐 때가 많다며 웃는다. 예전에는 낮에는 열어두고 밤에만 문을 걸어 잠갔다. 열쇠를 우체통이나 담장 위에 올려두는 일도 흔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문을 잠그지 않고 사는 문화였다. 자물쇠 추가 설치를 원하는 고객을 만나도 불필요한 곳이 더러 있단다. 불안하니까 설치해달라고 하지만 사실 시대가 달라졌다. CCTV가 보편화되면서 20년 전과 비교해 도둑 범죄가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열쇠업에 타격을 준 건 디지털 도어록이 아니라 엄밀히 말해 CCTV일지 모른다. “세상 모든 자물쇠를 열어야 직성 풀려” 생각해보면 열쇠업은 사람들의 불안이 만들어낸 직종이다. 열쇠 기술자의 일은 결국 그 불안을 덜어주고 편안히 잠들 수 있게 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그의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출근은 아침 8시, 퇴근은 대중없다. 열쇠 하는 사람 두 명이 와서 못 따고 헤매는 걸 김 대표가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한 적이 있다. 그럴 때는 보람이 크다. 하루 수십 건의 출장, 밤까지 이어지는 일과. 몸이 고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는 말한다. “노는 게 더 아픕니다. 옛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린 거 없어요.” 그에게는 취미가 따로 없다. 젊어서는 당구나 골프를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기계를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딸과 사위가 퇴직하고 가업을 잇겠다고 약속했다. 구순이 넘은 노모도 여전히 정정하고, 10년 넘게 함께하는 제자가 있어서 든든하다. 죽도열쇠가 지켜온 장인정신은 어느덧 76년이 넘어섰다. 벽면에 걸린 수천 개의 열쇠부터 최신의 각종 전자키까지 세월에 따라 자물쇠도 변해왔다. 변치 않은 것은 언제든 달려가 닫힌 문을 열어주는 열쇠공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자물쇠를 열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김건식 대표의 말처럼, 죽도열쇠의 역사는 지금도 힘차게 이어지고 있다. <끝> 글 : 배은정 소설가 사 진 : 김 훈 작가

2025-09-24

신라 고갯길, 천년고도 문경 하늘재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지만, 여름의 더위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며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없다. 대구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달리며, 우리는 삼국시대 신라·백제·고구려가 서로를 오가던 고갯길,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삼국시대 신라가 처음으로 개척한 문경 하늘재로 향했다. 그 옛날에는 봇짐을 지거나 말을 타고 넘던 길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의 바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거리를 줄인다. 그러나 길을 오르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고갯마루에 닿자, 흰 구름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푸른빛을 가르며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숲속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 주고, 우리는 정자에 앉아 옛사람들의 자취를 생각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하늘의 구름과 땅의 숲,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인간 삶의 시스템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포암산 베바위를 바라보며, 이 재를 넘나들던 옛사람들의 역사와 애환을 그려 보았다. 신라 아달라왕 3년 북진 위해 길 열어 한강과 낙동강 잇던 가장 이른 고갯길 사람·사상·물자와 함께 불교도 전해져 오늘날엔 배움과 치유 공간으로 발길 잘 다듬어진 숲길 나무들로 울창하며 오솔길은 굽이치는 물길처럼 이어져 “민족의 숨결과 역사가 함께 흐르던 길 우리에게 시련을 넘어설 힘 일깨워줘” 하늘재는 신라가 처음 개척한 역사의 길로 삼국의 군사들이 오르내리며 흘린 땀과 한숨이 배어 있었을 것이다. 고구려 온달 장군은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평강공주의 내조와 자신의 노력을 바탕으로 장군이 되었다. 신라와 맞서 싸우던 그는 결국 전장에서 쓰러졌지만, 그의 죽음은 나라를 되찾으려는 고구려의 간절한 뜻을 상징했다.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토 회복의 열망과 민족의 충정을 일깨워주는 서사로 지금까지 전해오면서 가슴을 저리게 한다. 또한 고구려 실권자 연개소문은 백제와 함께 반(反)신라 동맹을 맺고 신라를 공격했다. 이에 신라는 당나라와 손을 잡아 나당 연합군을 형성하여 여제 연합군에 맞섰다. 645년, 당 태종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연개소문은 안시성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당의 침략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고구려는 결국 나당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다. 온달이 빼앗긴 국토를 되찾기 위해 맞선 신라와 갈등은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났다면, 연개소문의 대립은 국가의 흥망으로 이어져 삼국시대의 거대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신라 태종 무열왕 김춘추는 이 고개를 넘어 삼국통일의 뜻을 이루었으나 통일신라 말에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안고 이 길을 넘어갔다. 이렇듯 하늘재는 통일의 꿈과 망국의 설움이 교차한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왕 3년, 서기 156년 북진을 위해 이 길을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던 가장 이른 고갯길, 사람과 사상과 물자가 오가던 통로였다. 불교 또한 이 길을 따라 전해졌다. 고구려 승려 아도(阿道)가 불법을 전할 때, 지형상 가장 그럴듯한 길목이 바로 이 하늘재였을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고개 남쪽의 관음리와 북쪽의 미륵리라는 지명은 불심을 전하는 이름 그대로다. 관세음을 찾고 미륵을 기다리던 신앙의 기운이 고개에 서려 있다. 지금도 관음사와 포암사의 법고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지며, 폐사 터의 기왓조각과 옛 주막터의 흙냄새가 옛 발자취를 떠올리게 한다. 신라 이차돈의 순교 이전부터 이미 이 고개에는 신심의 불씨가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문경새재에 자리를 내어주었지만, 고개와 산사, 마을들은 오래된 길이 품은 위안과 인연을 오늘까지 간직하고 있다. 하늘재 고갯마루 정상에는 ‘백두대간 하늘재’라 새긴 비석이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계림령 유허비’가 빼곡한 글자를 품은 채 옛 역사를 증언한다. 높이 520m에 불과한 고개지만, 백두대간의 포암산과 탄항산 사이에 자리하여 한반도의 등줄기를 잇는 요지이다. 하늘과 맞닿은 듯한 이름처럼, 이 길은 초월의 상징으로 읽혔다. 지금은 명승 49호로 지정되어 그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 고개란 늘 인간의 삶을 비유한다. 높은 산이 가로막아도 그 너머로 길은 이어지고, 사람은 언젠가 그 고개를 넘는다. 그래서 ‘재’를 넘는 일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극복과 인내의 상징이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문턱이다. 이 길은 단절을 잇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며, 낯선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깊은 강을 건너는 다리처럼 험준한 산을 넘는 재였다. 하늘재를 넘던 발걸음마다 고난과 희망, 슬픔과 기쁨이 함께 배어 있는 아리랑 고갯길이 되었다. 고갯길만을 줄기차게 찾아다니며 그 뜻을 음미하고 살아가는 마니아도 있고 보면 고갯길은 곧 삶의 여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늘재 숲길은 사단법인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 사람들과 남부지방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가 협약을 맺어 ‘단체의 숲’으로 관리되고 있다. 안내판에는 숲 가꾸기 체험, 휴양과 문화 체험, 산림보호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었다. 하늘재는 옛날에는 길이었지만, 오늘날에는 배움과 치유의 공간으로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많은 사람이 숲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 또한 주차장에서 출발해 관음정사와 포암사를 지나 표지석까지 올랐다. 그 길은 2.9km였고, 충주 미륵리까지 이어지면 5.4km에 달했다. 잘 다듬어진 숲길은 나무들로 울창했고, 오솔길은 굽이져 흐르는 물길처럼 이어졌다. 고갯마루를 찾는 발걸음은 사람의 흐름이자 세월의 흐름처럼 느껴졌다. 숲은 쉼 없이 하늘에 물을 뿌려 더위를 식혀 주었고, 나뭇잎은 바람의 부채가 되어 에어컨과 선풍기가 따로 필요 없게 했다. 자줏빛 물봉선화는 호젓한 숲길을 지나는 이들을 반기듯 피어 있었다. 오늘은 대붕 아우와 함께 하늘재를 찾았다. 동생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걷지 못했지만, 다음에 다시 와서는 마음껏 걸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은 숲의 위안처럼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숲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보약이 숨어 있는 듯했고, 매미 소리와 풀벌레 소리는 서로 어울려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이루었다. 나는 그 순간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고 싶어 가만히 심호흡했다. 풀잎 향은 맑았고, 흙냄새는 오래된 시간의 기억을 끌어올렸다. 몸도 마음도 최상의 상태로 정화되는 듯했다. 하늘재는 민족의 숨결이 오가던 고갯길, 역사가 흐르던 고갯길이며, 지금도 우리에게 시련을 넘어설 힘을 일깨워주는 숲길이다. 언젠가 다시 찾아, 이 길 위에 쌓인 이야기와 초월의 숨결을 더 깊이 마시고 싶다. /글·사진=장은재 작가 하늘재는… 하늘재 옛길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서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로 넘어가는 경계에 있는 고개로 높이 525m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로 삼국시대 156년대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하였다. 고구려 온돌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였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전에는 계림령(鷄林領),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렀으나 요즘에는 거의 모든 지도에 하늘재라 표기하고 있다. 오래된 세월만큼 길 양쪽에는 전나무 굴참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