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포 기행] 제일국수공장-구룡포의 바람과 햇살 그리고 굽은 손가락②
‘해풍국수’는 배합과 건조의 기술로 탄생한다. 원재료도 중요하다. 브랜드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지만 최선의 제품을 엄선하여 쓴다. 소금도 그렇다. 물도 정제하여 쓴다. 하룻밤 묵힌 물을 쓴다. 재료를 함부로 선택하면 제품이 반항한다. 싼값을 고집하면 싼 음식이 된다고 믿는다. 그것을 뛰어넘어 손수하는 공정에서의 모든 노력이 국수를 완성하는 기본이 된다. 그중 바람의 영향이 크다.
밀가루를 반죽해 재래식 기계에서 면을 뽑기까지 반나절이 걸린다. 야외 건조장에서 바닷바람으로 반건조시켜 창고에 넣는다. 그렇게 숙성시키는 데 한나절 넘게 걸린다. 이를 다시 꺼내 햇살에 건조시킨다. 바람의 종류도 다양하다. 샛바람이 있다. 이는 동풍을 말한다. 하늬바람이 있다. 서풍이다. 마파람(동풍), 된바람(북풍)도 있다. 이 중에서 서풍인 하늬바람이 최고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바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연을 이기는 인간은 없다.
하룻밤 묵힌 정제된 물로 밀가루 반죽
바닷바람에 반건조, 창고서 한나절 숙성
자연과 정성으로 전 과정 세심하게 관리
남편 친구가 선물한 제일국수공장 간판
56년 된 간판 아래 ‘더불어 사는 삶’ 실천
본분에 충실… 전통적 국수의 맛 지켜와
2017년 구평리에 현대식 제2공장 건립
바다·솔숲 등 좋은 환경에서 제품 생산
‘해풍국수’ 기본 바탕 품질 향상에 집중
밀가루 사기를 당하기도
국수공장이 자리를 잡아가고 이름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경주에서 밀가루 공장을 운영한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생산한 제품이 너무 많아 밀가루 500포대를 염가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다. 국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밀가루가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500포대는 너무 많았다. 주위에 있는 일곱 군데 국수공장과 의논해 그 밀가루를 구입하기로 했다. 남편이 나섰다. 돈을 모아 경주 근화여고 뒤편의 다방에서 그 업자를 만나기로 했다. 당시로서는 거금을 들고서였다. 돈을 지불하면서 차 한 잔을 마셨다. 그리고 밀가루가 있는 창고로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다리를 하나 건너는데 몸이 휘청거렸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풀밭에 쓰러져 있었다. 돈은 온데간데없고 맨몸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돈을 들고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이순화 여사는 애가 탔다. 그때 경주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사람을 데리러오라는 것이었다. 남편은 사태를 수습하느라 경찰서에 들러 신고했는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일로 큰 손해를 입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벌어가며 애걸복걸하면서 돈을 갚아야 했다. 한참 뒤에 다행히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을 잡았다는 것이었다. 그날 상황을 지켜본 똑똑한 다방 레지가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해 그 사람을 체포한 것이었다. 남편은 그 길로 경찰서로 쫓아가 범인에게 분노의 귀싸대기를 날렸다고 한다. 빼앗긴 돈 일부를 돌려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본인은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다른 공장에 골고루 나누어주었다. 혁혁한 공을 세운 레지 아가씨에게도 사례금을 주었다. 남편은 그런 사람이었다.
오직 본분만 생각해
인터뷰 내내 ‘밀까리’라는 경상도식 발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학교는 ‘가는’ 곳이고 핵교는 ‘댕기는’ 곳이라는 농담이 생각났다. 아무래도 ‘다니는 곳’보다 ‘댕기는 곳’이 훨씬 정감 있고 몸에 맞는 낱말인 듯하다. ‘밀가루’든 ‘밀까리’든 본질에서는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본질이 변함없으니 조금 잘나간다고 더 큰 이익을 추구하거나 무리해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이순화 여사는 바르게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는다. 오직 본분만 생각한다.
제일국수공장에는 오래된 간판이 있다. 그 간판은 남편의 친구인 구룡포우체국장에게 개업 기념 선물로 받은 것이다. 정갈하고 산뜻한 필체의 간판은 56년째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 오랜 세월은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었다. 밀가루 사건 이후 절대 욕심을 내지 않았다. 팔리면 팔리는 대로,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국수를 끓여 식구들을 먹이고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그만하면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웃과 어깨동무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정성껏 나누며 살았다. 그래도 손해나는 사업은 아니라서 먹고살 만했다.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자신은 가게라도 있으니 괜찮지만 좌판을 하는 사람들의 형편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도우며 산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순화 여사는 구룡포시장 상인연합회가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시장이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라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희생이 필요한 세상이라고 했다. 묵묵하다는 말이 있다. 침묵의 묵(黙), 고요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마음의 동요 없이 침묵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견디는 것은 수행자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생활인의 삶에 더욱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구평리에 현대식 제2공장 건립
2022년 초강력 태풍 힌남노가 몰아닥쳤을 때 구룡포는 큰 피해를 입었다. 마을이 온통 물에 잠겼다. 공장 뒷마당과 옥상에서 국수를 말리던 시절의 마지막을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재래식 공정은 원래 조금은 원시적인 방법이다. 공장이 바다와 맞닿아 있어 바람이 거세거나 파도가 맹렬할 때는 마당까지 물이 차올라 국수를 몽땅 버려야 했다.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판자를 세우고 집에서 사용하고 남은 비료 포대를 모조리 거두어 덧대고 덧댔다. 그러나 파도의 힘은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바닷물에 젖어 못 쓰게 된 국수를 내다 버린 양이 얼마였던가. 그러나 구룡포의 바람은 맑고 투명했고 햇살은 차고 넘쳤다. 그런 환경이 정말 고마웠다.
구룡포의 도로가 개선되고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분진 등의 환경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제일국수공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일국수공장의 자연건조 방식에 위생적인 문제가 있다는 민원이 제기된 것이다. 낡은 시설도 미관상 좋지 않았다. 전통을 고집하며 고유의 방법으로 국수를 만든다는 자부심만으로 마냥 버틸 수는 없 없었다.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야 했다. 그것 또한 새로운 생존 방식이었다.
국수 가게는 읍내에 그대로 두고 구룡포 구평리에 생산을 전담하는 제2공장을 2017년에 만들었다. 이 공장에는 현대식 설비를 갖추었다. 이순화 여사의 장남인 하동대(55) 대표가 제2공장 부지를 처음 방문해보니 바다가 눈앞에 있고 솔숲이 일렁거렸다. 마을보다 조금 높은 둔덕에 위치해 바람이 자유롭게 흘러다녔다. 주위에 건물이 없으니 햇살이 풍부했다. 더 나은 조건에서 더 좋은 국수를 생산할 여건이 마련되었다. 읍내의 좁은 장소에서 국수를 만드느라 물량 부족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더 품질 좋은 국수만 생산하면 되었다. 전성기의 판매량에 비하면 반토막도 안 되지만 이제는 품질에 집중할 수 있다. 하동대 대표가 행복한 이유다. 가업을 잇고 생업에 충실하니 이보다 더한 행복은 없을 것이다. 공장을 지키며 자유롭게 산책하는 삽살개 해풍이도 그 주인공의 일부다. 마당 가득 바람과 햇살이 차고 넘친다.
글 : 이우근(시인) 사 진 : 김 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