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포 기행] 길성관-짜장면 한 그릇에 담긴 화교의 애환③
어느 일요일 오후 1시쯤 길성관에 들렀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데 테이블 여섯 개 중 빈 테이블은 하나만 남아 있었다. 길성관은 포항 원도심의 하나뿐인 중화요리점인 데다 SNS에 맛집으로 소개되면서 장사가 잘되는 편이다. 포항 손님이 대부분이지만 주말에는 외지에서도 많이 온다. 필자가 자리를 잡은 후에도 손님이 계속 들어오며 “짜장면 됩니까”라고 물었다. 카운터를 보는 분이 “짜장면은 다 떨어졌습니다”라고 답하자 손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장사가 안 돼 빈 점포가 수두룩한 원도심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지금 길성관은 강봉기 전 대표의 동생 가족이 운영하고 있다. 강봉곤 현 대표가 주방, 아들이 주방 보조, 부인이 서빙과 카운터를 맡고 있다. 길성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이다. 짜장면은 6000원, 짬뽕은 7000원으로 요즘 고물가를 고려하면 ‘착한 가격’이다. 짜장면을 만드는 방법이 화교 1세대와는 달라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돼지기름을 프라이팬에 두른 다음 돼지비계와 양파, 무말랭이, 늙은 호박 등을 넣고 볶았는데, 지금은 콩기름 식용유를 프라이팬에 두른 후 돼지고기 살코기와 양파, 생강, 마늘 등을 넣고 볶는다.
달걀지단에 버섯·양파 등 볶은 채소 넣고
말아서 튀긴 ‘겉바속촉’ 대표메뉴 짜춘결
솜씨 뛰어나 ‘생활의 달인’에 소개될 정도
강봉곤 대표 중국문화대학교서 비법 전수
길성관의 대표 메뉴 짜춘결
중화요리는 불맛이라고 한다. 짜장면도 재료를 고온에서 적당한 시간 볶아서 향을 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가정에서 짜장면을 만들기 힘든 것은 강한 불에서 재료를 볶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짬뽕도 강한 불로 가열해야 특유의 매콤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온에서 고춧가루를 볶아 향을 낸 다음 채소와 해물을 볶고 육수를 섞는다. 이때 채소와 해물을 볶는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육수는 닭고기와 다시마, 돼지 뼈를 오랜 시간 끓여서 만든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정통 짬뽕의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수돗물을 끓여서 조미료로 간을 맞추면 짬뽕 흉내만 내는 것이다.
과거에 연탄불로 요리할 때는 주방장이 불을 다루기 힘들어 고생을 많이 했다. 가스불로 바뀐 뒤에야 주방장이 원하는 대로 불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면을 뽑는 방식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수타식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기계로 뽑아낸다. 드물게 수타식 짜장면을 만드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에서는 주방에 에어컨을 설치해야 한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해서 땀과 열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길성관의 대표 메뉴는 짜춘결이다. 짜춘결은 달걀지단에 버섯, 양파 등 볶은 채소를 넣고 말아서 튀긴 요리로 껍질은 바삭하고 고소하며 속은 부드럽다. 강봉곤 대표는 SBS의 <생활의 달인>에 소개될 정도로 이 별미를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강 대표가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중국문화대학교 음식조리학과에 다닐 때 짜춘결 비법을 전수받은 것이다.
길성관은 과거에 신선한 닭요리를 내놓기 위해 닭을 키우기도 했다. 깐풍기 같은 닭요리 주문이 들어오면 곧바로 닭을 잡아서 요리했으니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길성관은 지금도 매일 죽도시장에 가서 신선한 채소와 해물을 구입해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예전엔 신선한 닭요리 위해 직접 키우기도
지금도 매일 죽도시장서 채소·해물 공수
중화요리 배우려고 문 두드렸던 젊은이들
철가방부터 시작 훗날 독립해 요리점 운영
중화요리점의 문을 두드렸던 젊은이들
길성관은 과거에 손님이 많고 종업원도 여럿 있을 때는 코스 요리와 출장 요리를 했다. 지금은 손님이 줄어 종업원을 채용할 형편이 안 돼 코스와 출장 요리를 접었고 메뉴도 간소해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종업원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일 좀 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중화요리점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급여를 얼마 받고 싶다는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사장이 주는 대로 군말 없이 받았다. 세끼를 해결하며 중화요리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가출한 청소년이 중화요리점 문을 두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처지에 숙식을 해결하고 일을 배우며 내일을 도모해보자는 각오로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사연이야 어떻든 중화요리점을 제 발로 찾아온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철가방 배달부터 시작해 주방 보조를 거치며 차근차근 중화요리 만드는 기술을 배워서 훗날 독립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은 화교가 운영하는 곳에서 배워서 독립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970년대 포항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은 서른 곳 정도였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은 열 곳도 안 되었다. 지금은 화교가 운영하는 중화요리점은 네 곳(길성관, 부산각, 동순관, 동해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한국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중화요리점도 변해야 살아 남을 수 있어
신세대 맞는 새로운 메뉴 개발하려 애써"
중화요리점도 변해야 살아남아
길성관에는 중국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이 곳곳에 놓여 있다. 그중 청룡언월도를 들고 있는 관우상, 여러 아이가 노는 장면을 그린 백자도(百子圖)가 눈길을 끈다.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서빙 로봇을 바라보던 강봉기 전 대표가 말을 꺼냈다.
“중화요리점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옛날 메뉴만 고집하면 손님들이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둘 떨어져 나가겠지요. 그래서 신세대에 맞는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짜장면, 짬뽕, 탕수육만 익숙한 사람에게 신세대에 맞는 새로운 중화요리가 무엇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그것은 화교 3세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중앙상가에 길성관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노포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시민제과(1949년 개업), 시정당(1953년 개업한 금은방), 코주부사(1953년 개업한 마크사)가 아직 간판을 달고 있을 뿐이다. 이 중에서 중앙상가의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은 강봉기 전 대표뿐이다.
음식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중국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중화요리 짜장면. 오랜 세월 숱하게 삼킨 그 검은 면 속에 우리의 빛바랜 추억이 스며 있다. 그 특별한 맛을 간직한 중화요리점이 우리 곁에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란다. 〈끝〉
글 : 김도형(작가)
사 진 : 김 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