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노포 기행 시민제과-시민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제과점①
인생이란 빗속을 달리고 문고리를 잡는 것 그 이상이다.
서로 얼굴을 스쳐 지나가고 냄새를 기억하는 것 이상이다.
독일의 작가 볼프강 보르헤르트(Wolfgang Borchert)의 「이별 없는 세대」라는 에세이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끝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쏟아지는 비와 바람에 저항하고 비로소 도착한 목적지에서 문고리를 잡는 지난한 과정이 인생이라면, 그 과정에서 스치며 만난 많은 얼굴과 뇌리에 남아 있는 냄새는 우리의 과거를 현재로 형성시키는 중요한 장치임에 분명하다.
나는 냄새를 기억한다는 말에 주목한다. 그것이 첫사랑이든 아픈 기억이든 냄새에는 분명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불의 소인(消印)으로 남은 상처가 아니라 뇌의 깊은 곳에 스며든 특별한 냄새는 과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연결고리가 되어 아득한 상념에 잠기게 한다. 그때 행복했다면 지금도 행복하다는 뜻이다. 상처는 어느덧 훈장이 되어 그 사람을 반짝이게 한다.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좋은 기억으로만 각인된다.
창업주 진석률 옹 일제강점기때 日 건너가
수없이 반복되는 차별에도 묵묵히 노력
우연한 기회에 고국에 왔을 때 광복 맞아
日서 일군 재산 없이 난전으로 다시 시작
찐빵과 단팥죽 팔며 1949년 ‘시민옥’ 개점
이후 ‘시민양과홀’, ‘시민제과’로 명맥 이어
6·25 피난 후 돌아왔을 땐 가게는 폐허로
난관 속 가게 열고 찹쌀떡으로 영역 넓혀
오늘날 시그니처 제품은 도전의 산물인셈
1949년 ‘시민옥’이라는 상호로 개점
‘시민제과’는 이름에서부터 내공이 느껴진다. 외래어투성이의 빵집과 베이커리, 디저트 카페, 공장형 커피숍이 도처에 널려 있다. 자기완성형이면서 정체성을 잃지 않은 이름의 이 제과점은 내공만큼이나 저력을 자랑한다. ‘시민’을 이름으로 내걸 만큼 시민을 대표한다는 단단한 자존심으로 80년 가까운 세월을 더해 찬란해진 이름이다. 이런 제과점 하나쯤은 도시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민제과는 1949년에 처음 이름을 내밀었다. 창업주인 진석률 옹은 일제강점기 때 변변한 재산이 없어 일찌감치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돈을 벌려고 했다. 그는 수없이 반복되는 차별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생업을 유지하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도 노력하면 그런대로 살 만했다고 한다. 배달과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에 몰두했다. 성실에는 이길 장사가 없다고 했다. 우연한 기회에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마침 광복을 맞아 일본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때까지 일본에서 일구어놓은 재산도 챙길 수가 없었다.
먹고살아야 했다. 진석률 옹은 대흥동 근처 금은방이던 신정당과 수양다방 부근에서 난전을 벌였다. 손재주가 있었던 터라 찐빵과 단팥죽을 만들어 팔기로 했다.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누구라도 달콤한 군것질을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설탕은 중독이자 에너지였다. 김이 폴폴 피어오르는 하얀 찐빵과 고소하고 진한 향기가 나는 단팥죽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과 늘 배가 고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그만인 품목이라는 데 착안한 아이템이었다.
애초의 이름은 ‘시민옥’이었다. 방앗간을 운영했던 창업주의 경험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한 것이었다. 일본에서 일할 때 어깨너머로 배운 팥 제조 기술은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로 시민옥은 ‘시민양과홀’로, 지금의 ‘시민제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된다.
한국전쟁 후 폐허에서 만든 찹쌀떡
그 와중에 한국전쟁이 발발해 피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지붕이 날아가 버려 폐허가 된 가게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래도 신세 한탄이나 하면서 망설이고 있을 틈이 없었다. 최선을 다해 주위를 정리하고 다시 가게를 시작했다. 갖가지 난관에도 다시 빵을 만들고 단팥죽을 팔았다. 거기에 더해 찹쌀떡으로 영역을 넓혔다. 오늘날 시민제과의 시그니처 제품인 찹쌀떡은 그런 도전의 산물이었다. 앙금이 살포시 보이는 영롱한 빛깔의 찹쌀떡은 대표상품이 되었다. 입시철에는 밤새도록 일을 했다. 2대 진상득(70)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팥을 씻는 것은 내일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오늘의 상품은 그 전날에 준비해야 한다. 무쇠솥이든 양은 재질의 큰 냄비이든 팥을 가득 넣어 찬찬히 끓이는 노동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디 당장 눈앞의 대가가 있으랴. 숙명과 운명의 쳇바퀴 같은 삶일지라도 지금의 생에 충실하고자 했다. 어머니의 모시 적삼에 밴 땀의 흔적을 그는 선명하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말없이 생업에 종사하면서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좋은 음식을 만드는 일은 군것질에 불과하더라도 배부름과 더불어 문화적 감각과 정신적 포만감을 보충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실용과 실리를 생각했다고 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고 했는데, 지금 시민제과의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망라하여, 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약간의 허기를 사람들은 질병처럼 앓고 있다. 문화적이면서도 지적 호기심을 뒷받침하는, 혹은 증명할 수 없는 부의 가치를 평가받는 그 오묘한 지점에서 시민제과는 그 역할에 앞장섰다. 지금에야 흔한 상품으로 빵의 존재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먹는 것에서부터 생활의 위치가 달랐던 시절이기도 했다. 약간의 특권과 부의 과시가 존재했었다는 말이다. 식생활의 변화와 문화적 가치를 선도하는 사회적 기업의 역할을 시민제과가 창출했다는 의미에서 단순한 빵집의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맛이 미학(美學)이 될 수 있다는 그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이야기다. 밥의 존재는 여전하지만, 그 대체재로 빵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이다.
진상득 대표는 불을 조절하는 어머니의 둥근 어깨를 한시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마당을 치우고 정성을 다해 오늘의 장사를 준비하고 조심스럽게 불을 지펴 팥을 삶고 찹쌀밥을 지으며 손 모아 치성을 드리는 끝없는 간난의 여정을 잠시도 잊지 못한다. 요즘은 이스트를 사용해 간단하게 발효시키지만, 그 시절 어머니는 밀가루를 잘 반죽해 아랫목에 모셔다 놓고 이불을 두르면서 밤새 정성을 들였다. 그리고 새벽마다 무거운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생업 전선으로 떠났던 작은 체구의 어머니를 평생 그리며 살고 있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없이는 인생이란 그림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 깊이와 넓이는 아무도 측정하지 못한다.
불 조절을 잘하는 것이 완벽한 팥을 만드는 지름길
그 한없는 정성은 추운 겨울에도 침묵의 웅변으로, 순수의 결정체인 땀방울로 흘러내렸다. 어머니의 정성은 자식들의 배부름이었다. 아버지의 묵묵한 헌신은 일가를 완성하는 신성한 노동이었다. 그러므로 잘살아야 한다고 어린 마음에도 꼭꼭 다잡았다고 한다.
찐빵과 단팥죽은 팔이 주원료다. 당연히 좋은 팥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된다. 물론 밀가루도 중요하다. 하루 전에 반죽해 숙성시키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다음 날 새벽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한다. 팥앙금을 만드는 것은 기술과 정성이 어우러져야 완성되는 결과물이다. 좋은 팥은 짙은 붉은색을 띠는 것이 우선이며 낱알이 굵은 것, 가운데의 띠가 노르스름하면서도 흰색으로 선명해야 한다. 그리고 덕지덕지 붙은 하얀 가루가 없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팥을 고르려면 최대한 발품을 파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어머니는 매의 눈으로 시장을 누비며 좋은 품질은 물론 적절한 가격으로 팥을 구입했다. 또한 팥은 영양분이 뛰어난 재료라서 벌레가 많은 것이 흠이라면 흠인데, 그만큼 완벽한 식재료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선한 빛깔 좋은 팥을 물에 불려 은근한 불에 끓이고 나서 찧고는 체에 걸러 숙성과 건조를 반복하면 앙금이 탄생된다. 찐빵용의 앙금과 달리 단팥죽의 앙금은 손이 많이 간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삶은 팥을 베자루에 넣고 지렛대로 압력을 가해 고운 가루로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만 부드럽고 고소하며 감칠맛이 입안을 감싸는 앙금이 된다.
찐빵용 앙금과 단팥죽 앙금은 다시 꾸덕꾸덕한 앙금과 맑고 곱게 정제한 앙금으로 나누어져 단팥죽의 원재료가 된다. 단순한 과정 같지만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일이다. 도구도 화력(火力)도 손으로 제어해야 하므로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특히 불 조절은 많은 경험을 쌓지 않으면 안 되는, 순전히 누적된 시간의 산물이다. 뒤꼍에 쌓아놓은 장작과 마른 솔잎은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 땔감을 활용해 불 조절을 잘하는 것이 완벽한 팥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진상득 대표는 잘 마른 나무 냄새와 마른 솔잎의 향기가 아직껏 머리에 남아 있다고 회상한다. 그것은 냄새로 각인된 원형의 추억이자 삶을 지탱하게 하는 에너지가 되었다고 한다.
글 : 이우근(시인) 사 진 : 김 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