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회 철강산업대상 수상자
철강 히어로 상 - (주)디에스아이 김윤수 대표이사
김윤수 대표이사는 철강산업 기반 중소기업의 기술 자립과 국산화를 선도하는 한편, 부산물 재활용을 통한 환경개선으로 지속적인 일자리 창출에 앞장섰다.
또한 포항 철강산업 생태계의 상생과 협력, 안전문화 확산은 물론, 방산과 철강 융합기술 개발을 통해 지역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했으며,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소감
이처럼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어 송구하며,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상은 철강산업의 기술자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온 모든 철강인과 관계기관의 노고에 대한 격려라 생각합니다.
비록 대외 여건이 어려운 시기지만, 지혜와 협력으로 철강산업이 다시 부흥의 길로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기술혁신과 상생, 책임경영의 가치를 실천하며 대한민국 철강산업의 위상을 높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철강 프런티어 상 - 엠에스파이프(주) 박력 대표이사
박력 대표이사는 수출국 다변화와 기업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기술력 강화에 힘써 글로벌 경기 침체와 미국의 철강 고관세 정책 속에서도 매출 성장세를 이어갔다.
신기술·신제품 개발에 적극 나서 회사는 물론 국내 철강산업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이끌었고, 이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산업 발전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소감
수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계 경기 침체와 무역 장벽으로 철강업계 모두가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번 상을 수출 기업에 대한 격려와 기대의 뜻으로 받아들이며, 앞으로도 우수한 품질의 한국산 철강이 해외 시장에서 더욱 안전하게, 더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더 넓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철강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동반성장 상 - (주)세아제강 홍만기 대표이사
홍만기 대표이사는 ‘협력사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확고한 동반성장의 철학 아래, 상생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건강한 철강 생태계 조성에 힘써왔다.
또한 협력사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확대하고, 투명하고 상시적인 소통을 통해 공정하고 신뢰 높은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국내 철강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동반성장 모델 확립에 기여했다.
소감
2025 포항철강산업대상 동반성장상을 수상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는 헌신적으로 동행해주신 협력사 여러분과의 상생 협력,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실천으로 지역 사회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상생을 통한 건전한 동반 성장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 - 현대종합금속(주) 김용덕 대표이사
김용덕 대표이사는 투철한 직업관과 안전의식을 바탕으로 무사고·무재해 사업장을 조성해 산업재해 예방에 공헌하며 공정안전관리(PSM) 우수사업장으로 ‘S’등급 인증을 획득했다.
평소 노사 간 소통을 통한 신뢰를 기반으로 상생의 노사문화를 실천하는 한편, 책임 있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도 앞장서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기업문화를 구현했다.
소감
“ 자기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준 현대종합금속 임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대내외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도 노사화합과 신제품 개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기업 경쟁력 확보에 힘쓴 결과, 매출 증대와 고용 안정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 지역에 기여하는 책임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경상북도지사상 - 동국산업(주) 박종결 팀장
박종결 팀장은 체계적인 안전보건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안전보건 의무 이행 상태를 상시 점검하고, 아차사고 제안제도 등을 운영해 예방활동을 강화함으로써 중대재해 방지에 힘썼다. 본사·현장 합동 순회점검을 통한 위험요인 개선을 주도했으며, 타 사업장의 중대 재해 사례를 공유해 재발 방지 대책 수립과 전사적인 안전문화 정착에 기여했다.
소감
“안전이 최우선 핵심가치”임을 비전으로 삼고 사업장의 다양한 유해∙위험요인을 발굴하고 개선조치를 시행한 결과, 산업재해율이 전년 대비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안전 관련 모든 구성원의 관심과 참여를 바탕으로 자기규율체계 고도화하여 지속가능한 무재해 사업장을 실현하겠습니다. 이 모든 것에 헌신한 관리·감독자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포항시장상 - (주)광우 신현민 수석팀장
신현민 수석팀장은 근면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맡은 직무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수행함으로써 매출 증대와 생산성 향상은 물론, 원가 절감에도 크게 기여했다. 꾸준한 기술개발과 솔선수범하는 봉사정신은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지역사회 공헌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의 성장에만 몰두하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상생과 동반 발전에 힘썼다.
소감
어려운 대외 여건 속에서 매출 감소 위기에 직면했으나, 무엇보다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객만족도 향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고객사도 이러한 노력과 기술개발 의지를 적극 지지 협력함으로써 매년 성장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고객과의 협력과 공동의 위기극복 자세로 제품개발, 품질향상, 원가절감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김진홍경제에디터 kjh25@kbmaeil.com
제 8회 스틸에세이 공모전 - 인간적 온기 소재 진상용 씨 ‘청동 낙타, 한마리’ 대상
전국서 모인 스틸과 관련한 추억 담긴 수필 작품 600여 편 출품
일반 진상용 대상·청소년 정희강 금상·포토에세이 임기순 대상
경북도, 포항시가 주최하고 경북매일신문이 주관하는 철(스틸·steel)을 소재로 한 창작 문학작품 공모전 ‘스틸에세이 공모전’ 제9회 수상자들이 결정됐다.
제9회 스틸에세이 공모전 심사위원회는 지난 15일 심사를 진행, 진상용(72·인천시 부평구)씨가 응모한 수필 ‘청동 낙타, 한마리’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일반 부문 대상 작품 ‘청동 낙타, 한마리’는 중동 건설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며 동료와 쌓은 유대감과 전쟁 속 인간적 온기를 청동 낙타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란 벼룩시장에서 나눈 낙타 한 쌍은 황무지를 오아시스로 바꾸는 희망의 상징으로, 철근 작업과 대비돼 인간 내면의 순수함을 드러낸다. 제목은 물질적 유산 대신 정서적 연대를 강조하며, 개인적 경험을 역사적·사회적 보편성으로 확장한 점에서 높이 평가받았다.
금상은 김용수(포항시 북구 흥해읍)씨의 ‘철근 더미에서 일궈낸 금메달’, 은상은 정현우(포항시 북구 죽도동)씨의 ‘그 녹을 걷어내도’, 동상은 신명순(경기도 여주시 산북면)씨의 ‘철, 따뜻한 숲의 재생을 꿈꾸다’, 차민재(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씨의 ‘뜨겁게’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백브리가(서울시 마포구 연남동)·김병윤(제주도 제주시 노형동)·김유환(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차성환(포항시 북구 두호동)씨가 뽑혔다.
청소년 부문 금상을 수상한 정희강(포항영신중 1년) 학생의 ‘시험지보다 무거운 철, 그보다 가벼운 웃음’은 놀이터의 녹슨 철 구조물이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다짐을 학생다운 시선으로 담아내며 성찰적이고 단단한 울림을 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은상은 조준호(경기도 분당대진고 2년) 학생의 ‘모루의 기억’, 동상은 박지민(대구 천내중 3년) 학생의 ‘가장 따뜻한 온도의 주전자’, 김단아(충남여중 1년) 학생의 ‘세상의 모든 경첩들에게’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진주한(포항 대동중 1년), 김태민(포항 대동중 1년), 권태훈(포항 대동중 1년) 학생이 뽑혔다.
포토에세이 부문 대상의 영예를 안은 임기순(62·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씨의 ‘어울림의 미학’은 사진과 글이 조화를 이루며 관계가 엮이는 삶의 방식을 따뜻하게 담아냈고, 시각적 메시지와 서사의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호평받았다.
금상은 김미옥(대구시 동구 반야월)씨의 ‘너와 나의 시간’, 은상은 김은희(포항시 남구 대잠동)씨의 ‘신생의 얼굴’, 동상은 정미영(포항시 북구 흥해읍)씨의 ‘철 위에 새겨진 땀’, 황보민준(포항 영신중 3년)군의 ‘자전거 체인’ 등이 최종 수상작으로 각각 결정됐다.
가작은 장병연(경기도 과천시 원문동)·이은정(포항시 남구 오천읍)·문시화(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곽동근(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씨가 뽑혔다.
포항스틸에세이 공모전은 현대문명의 상징이자 한국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돼온 철강산업의 소중함을 함께 나누고 재도약을 기원하기 위해 마련한 전국 유일의 철(鐵·Steel)을 소재로 한 수필 작품 공모전이다. 포항시·경북도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치러진 공모전은 올해가 아홉 번째다.
지난 7월 21일부터 9월 30일까지 국내외 거주자를 대상으로 미발표된 순수 창작품을 접수한 올해 공모전에는 경북을 비롯 서울, 강원 등 전국에서 스틸과 관련한 추억이 담긴 수필 작품 600여 편이 출품돼 △일반부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4점 △청소년부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3점 △포토에세이부 대상 1점, 금상 1점, 은상 1점, 동상 2점, 가작 4점 등 모두 25점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회는 “수상작들은 차가운 금속의 이미지를 인간적 이야기로 재해석해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낸 훌륭한 작품들로 평가받았다”며 “삶을 치열하게 마주하며 글을 써낸 모든 참가자들의 작품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단단한 울림으로 남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제 9회 스틸에세이 대상 수상 작품
■ 제9회 스틸에세이 일반부 대상 수상 작품 - 진상용씨 ‘청동 낙타, 한 마리‘
이룬 것도 없이 일흔 줄의 나이, 생업 일터에서 물러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가사의 절반을 맡고 있다.
재활용품 분리수거일을 앞두고 집 청소 겸, 생활용품 정리를 시작했다. 자식들 모두 가정을 이루어 나가고 부부만 있다 보니 살림을 줄이게 되는 시기, 쓸모 없어져 내다 버릴 것과 챙겨둘 것들 구분을 두고 생각이 서로 달라 갈등을 빚기 일쑤다. 둬봤자 거추장스러울 뿐이라서 아내 모르게 처분한 것도 꽤 있다.
베란다 안쪽 구석을 정리하던 중, 폐품 더미 속에서 심하게 녹슨 청동 주물 낙타를 발견하였다. 수십 년 전, 수천수만 리 밖의 머나먼 땅에서 왔고 수십 번 옮겨 다닌 이삿짐에 악착같이 따라다니다가 기억에서조차 잊힌 기념품, 금붙이는 아니더라도 잡철보다야 값 낫게 쳐주는 쇠붙이이니 고물상에다 넘기려고 따로 모아두었으리.
1980년대 초, 건설회사 철근 직종으로 해외 취업한 곳은 이라크 북부의 키르쿠크였다. 유프라테스강물을 황무지로 끌어들여 농지화하는 관개수로 공사 현장, 미리 들은 바 있어 단단히 각오하고 왔지만 맞닥뜨린 현실 앞에선 지레 주눅 들고 만다.
잉걸불 태양은 아래 세상 모든 걸 불쏘시개 삼아 태워버릴 기세요, 혹독한 대기 온도 때문에 들숨 날숨마저 괴로울 지경, 지평선 끝에서 내달려온 열풍과, 대지를 뒤덮은 황사와, 갈가마귀 떼 그늘조차 만날 수 없는 극한의 자연환경 속에서 모든 생명들은 절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각종 공구를 챙긴 다음 허허벌판에 야적된 철근 더미 앞에 마주 선다. 고국의 어느 철강회사에서 생산돼 해양선박으로 터키의 항구에 도착한 뒤, 육로로 운송된 국산 쇳가락들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떠나온 처지라 반가우면서도 애틋하다.
설계 도면대로 철근을 절단하고, 규격에 맞춰 가공과 배근한 다음 결속선으로 묶어 조립해 나간다. 건축물의 뼈대이자 힘줄 쇠(鐵筋)를 용도에 맞춰 다뤄야 하므로 온몸 근육을 일으켜 세워야 감당될 만큼 노동 강도가 세지만, 그렇다고 완력만으로 상대하려 들면 안 된다. 무거운 데다 땡볕에 달구어진 걸 만지다 보니 물집이 잡혔다 터진 손바닥이 덧나며, 아물며, 굳은살은 점점 단단해진다.
거대 공룡의 골격 같은 철근 구조물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고, 최종 작업 끝냈을 때의 성취감. 어떤 ‘쟁이’인들 자기 손끝으로 만든 것들에 대해 나름의 자긍심이 없으랴마는 내 열정 다 쏟아부은 작품이라 더 멋져 보이고, 조감도 없이도 완공 후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숙소 캠프는 물론, 현장엔 장갑차며 대공포 진지를 갖춘 수백 명의 군 병력이 24시간 경비를 해주고 상황이 악화하면 중무장한 탱크들이 이동 대열 앞뒤에서 호위한다. 전쟁 상대국인 이란의 공격도 막아야 하지만 빈발하는 내전 때문이다. 이 지역 토착 종족인 쿠르드 민병대가 자치 독립을 요구하며 대정부 압박 차원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납치 살상, 중장비 방화, 공사 방해 등의 테러를 저지르곤 하니 우리 역시 그들에 대한 인식이 좋을 리 없다.
그날 우리 철근 작업조 몇 사람이 구조물 작업을 위해 수십km 떨어진 현장으로 가게 됐는데 버스에서 식수통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한번 지나간 순환버스는 점심때나 돼야 들른다. 열풍은 점점 뜨거워지고 혀가 타들어 가는 갈증을 견뎌낼 재간이 없다.
꽤 떨어진 곳에 현지인 가옥이 보였고 현장 막내인 내가 그리로 향했다. 진흙집 안엔 검은 천을 두른 여인이 아궁이 앞에 앉아 뭔가 끓이는 중이다. 변변한 부엌살림도 없는 어둡고 좁은 공간, 그을음 찌든 주전자를 황토 화덕에 얹어놓고, 말린 가축분뇨를 밑불 삼아 온 정성을 쏟는 안주인의 주름진 얼굴.
손짓발짓으로 물을 얻어 현장으로 돌아온 나는 휴식 시간을 이용해 작업하고 남은 자투리 철근을 자르고 구부리고 결속해서 도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있는 거라곤 철근토막뿐이고, 내가 가진 재주라곤 철근 다루는 기술밖에 없다. 어머니가 숯불화로 위에 뚝배기 얹어 끓이던 구멍쇠를 떠올리며 화덕에다 걸쳐놓기 좋도록 기능과 모양을 여러 차례 바꾸고서야 그럴듯한 아궁이용 석쇠가 완성되었다.
빈 물통과 함께 내 솜씨 몽땅 바친 철물을 가져다주었다. 차도르 사이로 고마워하는 진심의 눈빛이 보인다. 얼마 뒤, 여인이 주전자와 컵을 쟁반에 받쳐 들고 온다. 현지어로 ‘챠이’인 홍차다. 내가 만들어준 석쇠 덕분에 조금이나마 끓이기 편해진 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까.
이열치열이라곤 해도 한여름 사막의 뜨거운 음료가 고마울 리 없지만 그들의 손님 대접 문화인 걸 알기에 여럿이 돌아가며 후룩후룩 다 마셨다. 오후 쉴 참에도 난 사막 살림에 편리할 몇 가지 간단한 부엌 기구를 더 만들어 건네줬고 노파는 집 뒤 대추야자와 텃밭의 방울토마토를 새참 시간 맞추듯 내왔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여러 날을···.
소외된 곳일수록, 핍박당해 온 사람들일수록 본성은 순수하다. 늘 점령군만 보아왔음에도 낯선 우리를 반갑게 대한다. 착취자가 아니라 도움 주러 왔다는 생각에 더 그럴 것이다. 이곳은 쿠르드족의 거주지역이고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 중의 누군가는 반군일지도 모르지만 참 평화로운 정경이다. 인간 한계의 시험장처럼 혹독한 땅일지언정 자신들의 조국이기에 목숨 걸고 지키며 살고 있는 그들, 이방인인 우리도 거기 적응하고, 땀방울로 사막을 적시면서 애증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지상 어느 곳, 기후 차이가 얼마든 사람 체온은 36.5℃임을 실감하면서.
공정 순서대로, 가장 먼저 일을 시작한 철근공은 손도 일찍 떼지만 인력 수급이 쉽지 않은 현지 사정상 계약 기간에다 2년 연장근무까지 해서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귀국을 앞두고 동료와 마지막 쇼핑을 나갔다. 전쟁 중인 나라라서 썰렁한 시장 모퉁이에 펼쳐놓은 벼룩 장터, 초라한 행색의 현지인이 내놓은 낙타 한 쌍이 눈에 들어온다. 흥정 없이 구매한 뒤 동료와 하나씩 나눠 가졌다. 사철 흐르는 ‘인공의 강’ 덕분에 불모의 사막이 푸른 오아시스로 바뀌는 미래를 상상하며 귀국길에 올랐고, 수십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사는 중간에 연락이 끊어진 동료와 다른 낙타 한 마리는 잘 있을까. 이미 용광로에 들어가서 이 땅의 무엇으로든 재생되었을지도 모를 일.
철 수세미로 낙타 몸통을 정성껏 닦는다. 푸른 녹이 벗겨지고 본디 색깔 서서히 드러난다.
내세울 것 별로 없는 내 이력서 한 칸 증명해 줄 청동 낙타를 장식장 선반 맨 윗칸에다 자리 잡아준다. 움푹 눈 슬퍼 보이지만, 입은 빙긋이 웃고 있다.
■ 청소년부 금상 수상 - 정희강(포항영신중학교 1학년) ‘시험지보다 무거운 철, 그보다 가벼운 웃음’
시험지를 내던 순간, 손끝이 덜덜 떨렸다. 계산 과정이 빼곡히 적힌 종이는 결국 오답으로 가득했다. 교실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며 마음을 짓눌렀다. 머릿속이 텅 비고, 온몸이 무거운 철덩이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방향을 바꾸었다. 무의식처럼 향한 곳은 오래전에 친구들과 웃으며 놀던 녹슨 놀이터였다. 기억 속의 철 구조물들이 나를 불러내는 듯했다.
놀이터에 들어서자, 삐걱거리는 그네와 벗겨진 페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한때 반짝이던 철봉은 이제 붉은 녹이 스며들어 있었다. 미끄럼틀의 표면은 갈라진 금속 결처럼 거칠었고, 철제 울타리는 휘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 낡음 속에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완벽했던 기억이 아니라, 상처 입고 변한 모습이 오히려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실패의 흔적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철이,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조심스레 철봉을 잡았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냉기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맑게 했다. 그 철은 예전에도 분명 차가웠을 텐데, 어린 시절에는 그 차가움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오르내리며 몸을 흔드는 재미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그 차가움이 현실의 무게처럼 다가왔다. 시험, 성적, 기대. 어릴 적에는 몰랐던 쇳덩이 같은 단어들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철봉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철은 강하지만 영원하지 않다. 시간 앞에서는 녹슬고 갈라진다. 그러나 그 흔적조차 하나의 무늬가 된다. 나는 철의 그 상처에서 묘한 위로를 받았다. 시험에서 실패했다고 해서 내 삶 전체가 무너지는 건 아니었다. 녹슨 철이 여전히 구조를 버티고 있듯이, 나도 버틸 수 있었다. 철의 단단함과 녹의 연약함이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인간 같았다. 나는 그 사실을 철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네에 앉아 발을 굴렀다. 삐걱거리는 체인이 내 몸을 위아래로 흔들며 낡은 철문이 열리듯 소리를 냈다. 어릴 때는 그 소리가 음악 같았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분을 주었다. 지금은 어쩐지 내 마음을 두드리는 위로의 종소리 같았다. 쇠사슬이 오래되어 불안정해 보였지만,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다. 마치 불완전한 나를 지탱하는 힘처럼. 나는 눈을 감고 바람을 맞으며, 그 삐걱임에 몸을 맡겼다.
햇살이 놀이터 철골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금속에 부딪힌 빛이 반짝이며 녹과 함께 빛났다. 누군가 보기에 낡고 버려진 풍경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살아 있는 듯 보였다. 시험의 실패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풀어졌다. 금속에 부딪히는 빛은 마치 내 안에도 아직 가능성이 있다는 듯 신호를 보냈다. 철이 빛을 머금듯, 나도 새로운 의미를 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철은 단단해서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약해진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닮아 있었다. 완벽할 거라 믿었던 자신감이 조금씩 녹슬고 있었다. 그러나 철이 녹이 슬어도 제 자리를 지키듯이, 나 또한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강함은 완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오래 버티는 데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놀이터의 철 구조물은 그 단순한 진실을 묵묵히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네를 매달고 있는 철사 줄을 올려다보았다. 곳곳이 갈라져 있었고, 금속이 닳아 있었다. 아이였을 땐 그 위태로움조차 모르고 하늘 끝까지 올라가려 했다. 지금 다시 타보니, 그 위태로움이 삶과 닮아 있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불안정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철사 줄은 삐걱대며 흔들리지만 여전히 나를 지탱했다. 그 불안정한 버팀이,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놀이터 한쪽에는 쓰러진 철제 울타리가 있었다. 그 위에 누군가 분필로 낙서를 남겨 두었다. “웃어라.” 단순한 두 글자가 녹슨 철판 위에 하얗게 새겨져 있었다. 낡은 철과 대비되는 그 글씨는 오히려 선명했다. 시험지의 붉은 X표보다 훨씬 힘 있는 문장이었다. 웃으라는 명령은 억지 같지만, 그 순간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녹슨 철이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진심이었다.
나는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섰다. 철제 계단은 삐걱이며 불안정했지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익숙한 기억이 따라왔다. 꼭대기에 서니, 작은 놀이터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무대처럼 보였다. 철판은 여전히 차갑고 불편했지만, 그 위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마음이 환해졌다. 아이처럼 두 손을 벌리자 실패의 무게도 바람결에 흩날렸다. 철은 그대로인데, 그 위에서 바라보는 나는 변해 있었다.
시험 점수는 종이 위의 숫자로만 남는다. 잉크로 새겨진 그 숫자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그러나 놀이터의 철 구조물은 차갑지만 따뜻하게 다가왔다. 같은 금속인데도, 하나는 나를 억누르고 하나는 나를 품어준다. 나는 그 차이를 손끝으로 느끼며 앉아 있었다. 시험이 나를 규정하는 철장 같았다면, 놀이터의 철은 나를 기억 속 자유로 이끌었다. 그것만으로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녹슨 볼트를 주워 들었다. 작고 쓸모없어 보였지만, 한때 거대한 구조물을 지탱하던 힘의 일부였을 것이다. 작아도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나 역시 지금은 실패에 눌려 있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볼트를 주머니에 넣으며 다짐했다. 철이 완벽하지 않아도 제 역할을 하듯, 나도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놀이터 철봉 위에 새겨진 이름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 글씨는 희미했지만, 여전히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어린 날의 우리도, 그곳에 존재했다는 증거였다. 시험 점수는 사라져도, 이런 흔적은 오래 남는다. 철이 기억을 붙잡아 두듯, 놀이터는 내 안의 웃음을 붙잡아 주었다. 나는 그 흔적들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잊고 있던 나의 일부를 되찾는 기분이 들었다.
해가 기울며 철 구조물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여전히 작은 아이처럼 느껴졌다. 실패도, 성적도, 미래도 잠시 멀어졌다. 녹슨 철 놀이터는 내게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었다. 하나는 차갑고 낡은 현실의 흔적, 다른 하나는 여전히 나를 품는 따뜻한 기억의 그릇. 나는 그 두 얼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놀이터를 떠나려 할 때,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닫혔다. 마치 나를 보내기 싫다는 듯한 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실패는 철처럼 무겁지만, 시간 속에서 녹슬어 흔적이 될 것이다. 그 흔적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철 놀이터가 버텨왔듯, 나도 버틸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철 같은 기억이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이라 믿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포토에세이 부문 대상 작품 - 임기순씨 ‘어울림의 미학’
바늘꽂이에는 굵은 바늘, 가는 바늘, 긴바늘, 짧은 바늘들이 서로 어울려 빛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역할과 가야 할 길이 있듯이, 우리도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 나는 작고 뾰족한 바늘이었다. 존재감을 찾으려고 혼자 발버둥 칠수록, 그저 날카로움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만 줄 뿐이었다.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깊은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의 반짇고리에는 바늘과 실, 헝겊이 늘 함께 있었나 보다. 혼자 앞만 보고 달리던 나는 헐떡이며 뒤돌아보았다. 지나온 길마다 상처 구멍만이 빠끔빠끔했다. 그때,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나는 실과 인연이 되었다.
실과 한 몸이 되니 따스함이 찾아온 듯하였으나, 곧 답답함에 빠졌다. 우두커니 붙어있자니 서로 엇갈리고 엉키고 꼬일 뿐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맞잡은 손길에 의해 헝겊을 만났다. 헝겊은 일구고 가꿔야 할 대평원이 되어 눈앞에 펼쳐졌다. 헝겊 위에서 한 땀 한 땀 나아가다 보니, 엇갈림도 얽힘도 사라지고 제 위치와 속도를 찾으면서 부지런히 걸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헝겊 조각을 잇대어 만든 조각 보자기, 상보, 이불, 원피스 같은 창작품이 빛나고 있었다. 한 소녀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기만의 원피스를 입고 사뿐사뿐 춤을 춘다. 우리네 어머니는 이런 창작활동을 통해 우리를 키워주셨다.
혼자가 아닌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것. 바늘이 실과 어울려 헝겊 위에서 한 땀 한 땀 이어간 길들이 결국 아름다운 창작품으로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어울림의 미학이라는 것을 바늘은 이제야 깨달았다.
심사평 - ‘철’을 소재로 다채로운 서사 꽃피워
‘스틸에세이 공모전’은 ‘일상에서 만나는 철의 다양한 모습과 철의 숨은 이야기’라는 분명한 주제를 제시한다. 이 공모전은 차가운 금속에 불과한 ‘철(鐵)’이 어떻게 인간의 일상과 감정에 스며들어, 또 다른 언어와 서사로 태어나는가에 주목한다. 철이라는 소재를 통해 삶의 장면을 포착하고, 이를 문학적 언어로 끌어올리는 과정이 곧 작품의 깊이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제9회 스틸에세이 공모전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중심에 두고 작품을 탐독하였다.
일반부 작품은 철을 단순한 소재가 아닌 삶의 상징으로 재해석하는 데 집중했다. 대상작인 진상용(인천)의 ‘청동낙타, 한 마리’는 해외 파견 노동자의 경험을 통해 철을 인간적 존엄과 공동체적 기억으로 승화시켰다. 개인의 체험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한 통찰력이 돋보인다.
청소년부는 철을 성장과 관계의 상징으로 재해석해 신선한 시각을 보였다. 금상 정희강(포항영신중 1년)의 ‘시험지보다 무거운 철, 그보다 가벼운 웃음’은 녹슨 놀이터에서 불완전함과 대면하는 청소년의 내면을 섬세히 포착했다. 특히 철을 삶의 균열과 성장의 은유로 풀어내 눈길을 끈다.
포토에세이는 사진과 글이 함께 동반되는 장르로, 시각적 이미지와 서사가 어떻게 어우러져 하나의 메시지를 완성하는지에 중점을 두고 심사했다. 사진이 시선의 출발점이 되고, 글이 시선을 깊이 있게 확장하며, 철의 다양한 얼굴과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해 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번 공모전은 ‘철’을 소재로 서로 다른 삶과 시선이 만나 다채로운 서사를 꽃피웠다. 차가운 금속 위에 각자의 온기를 새긴 응모작은 이 시대의 흔적이며, 삶을 기록한 소중한 기억의 조각이다. 수상자의 성과뿐 아니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치열하게 삶을 마주하며 문장을 빚어온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울림으로 남기를 바란다. 철이 세월을 견디며 본연의 자리를 지키듯, 그 문장들도 오랜 시간 기억 속에 살아 숨쉬리라 믿는다.
/심사위원 양진오(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신용목(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박시윤(답사기행에세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