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와 포항시 주최, 경북매일신문 주관으로 열리는 ‘스틸에세이 공모전’은 산업도시 포항의 대표 문학 행사로 자리 잡았다. 철을 소재로 삶의 순간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차갑고 단단한 철의 이미지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문화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기획된 이번 공모전은 올해로 9회째를 맞는다.
지난 24일 발표된 ‘제9회 스틸에세이 공모전’에서 일반부, 청소년부, 포토에세이 부문 대상 및 금상 수상자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일반부 대상 진상용씨 -“ 철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체의 삶에 올바르게 쓰이길…”
"올가을, 근래 가장 풍성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뜻밖의 수상 소식에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설레었지요. 하지만 일흔의 나이에 마주한 인터뷰 요청은 여전히 떨리고 조심스럽습니다. 함께한 이들의 냉소 어린 시선이 귓가를 스치는 듯해 더욱 그렇습니다. 미처 다듬지 못한 글이 선택받도록 살펴주신 심사위원께 감사드리며, 전쟁 속에서도 검게 그을린 주전자에 정성껏 끓여주던 그 땅의 차이 한 잔이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수상작이 ‘청동 낙타, 한마리’이다. 청동 낙타에 대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70세를 훌쩍 넘기면서 운전면허증 반납부터 시작해 하나씩 줄이고 버리는 시기에 접어들어섰습니다. 이는 소중히 간직할 것과 쓸모가 적어진 사물을 구분 짓는 세대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집안 청소를 하던 중 눈에 띈 청동 낙타는 1980년대 중동 근무 후 귀국길에 챙겨온 기념품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묻혀 있던 이 낙타를 ‘철’을 주제로 한 에세이 공모전을 통해 세상 밖으로 꺼내주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글의 주요 소재는 철근이지만, 굳이 제목을 ‘청동 낙타’로 정한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철근은 사막으로 수출되었고, 그 땅의 청동 낙타가 저를 따라온 셈이니까요. 어쩌면 저 자신도 한 마리의 낙타였는지 모릅니다.
-글을 쓰는 과정과 작품을 통해 남기려는 메시지를 소개한다면.
△젊은 시절 한동안 ‘철근쟁이’로 불리며 현장을 누볐습니다. 철근(鐵筋)을 우리말로 풀어쓰면 ‘힘줄 쇠’ 또는 ‘쇠 힘줄’이 되겠지요. 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철근은 단단한 콘크리트 속에 갇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를 악용해 부실 공사를 저지르는 이들이 있지만, 결국 수명을 다한 건축물이 철거될 때 끝까지 저항하는 것도 철근의 가닥입니다. 최근까지도 빈번히 들려오는 건물 붕괴 사고 소식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순살 아파트’라는 최악의 신조어가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철이란 무엇인가.
△인류사에서 가장 필수적이며, 시대별 문명의 척도가 되는 물질입니다. 진흙과 돌이 전부였던 사막 지역에 유입된 신문명은 탱크와 무기 같은 살상용 무기로 변질되기도 했지만, 현지인들 역시 철을 생활 도구로 삼아왔습니다. 선과 악의 경계 없이 활용되는 철이 세계 평화와 인류 공동체의 삶에 올바르게 쓰이길 소망합니다.
-좋은 산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6·25 전쟁 직후 태어난 우리는 험난한 시대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을 글로 옮기면 책 몇 권 분량은 된다고 말하지만, 저 역시 살아온 만큼의 이야깃거리만 있을 뿐입니다. 과장하거나 포장하려 들면 겉치레 허울이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세상사에 대한 푸념이나 넋두리로 흐르지 않으려면 더욱 그렇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온 경험 자체가 소중한 글감이 된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문학작품의 장점이란 뭐라고 생각하는가?
△솔직히 말해 저는 저는 문학 세상에 대해 어둡습니다. 생업에서 물러난 뒤에야 글 읽기와 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창작 수업이나 문학 동호회, 강좌 등에 참여한 적은 없습니다. 특정 문학인과 교류한 경험도 없고요. 다만 글쓰기는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 믿습니다. 쓰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교정하게 되니까요. 글감은 삶의 관찰력에서 순간 포착되지만, 내용은 정제될수록 빛을 발합니다. 또한 타인의 글은 나보다 뛰어난 이가 썼다는 마음으로 경청하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 능력의 범위 안에서 겸손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을 써나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말과 글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남기고 싶고, 남은 생 동안 기록의 본능을 잃지 않겠습니다. 비록 영원한 늦깎이 습작생으로 남을지라도 말입니다.
청소년부 금상 정희강 군 - “녹슨 철 구조물은 삶 속에 마주하는 위로이자 가능성”
“저는 이 글에서 “괜찮아, 넌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살면서 실패나 실망 앞에 자신을 작고 부족하다 느낄 때도 있지만, 녹슬고 낡은 철 구조물도 제자리를 지키듯 우리 역시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버텨낸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시험 점수나 결과가 전부가 아니라 그 너머의 기억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수상 작품 ‘시험지보다 무거운 철, 그보다 가벼운 웃음’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작품에서 ‘녹슨 철 구조물’은 단순한 놀이기구가 아니라, 실패 속에서도 버티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상처 입고도 제자리를 지키는 철은 삶 속에서 마주하는 위로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가능성을 상징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철’을 좋아합니다.
-놀이터 녹슨 철 구조물이 작품 구상에 도움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녹슨 철 구조물을 마주했을 때, 실패로 주저앉은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다. 상처 입고도 자리를 지키는 철처럼 저 역시 버틸 수 있다는 위로를 받았고, 이를 글로 표현하고 싶어 작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희강 학생에게 문학작품은 무엇인가요.
△문학작품은 다양한 인물의 삶과 갈등을 통해 인간의 선택과 그로 인한 후회,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얻는 성장을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공감하며,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받는 동시에 언어적 표현력도 길러집니다. 또한 문학은 시대와 문화를 반영해 사회를 이해하게 하고, 때로는 위로와 치유를 전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수상작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삶에서의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며, 그 순간은 마치 무거운 철처럼 우리를 짓누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실패의 경험조차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흔적으로 남아 결국 우리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는 점입니다.
-정희강 학생이 생각하는 좋은 수필이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좋은 글이란 단순히 문장이 아름답거나 표현이 화려한 글이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에 닿아 공감과 울림을 주는 글입니다다.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와 분명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하며,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과 표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글은 읽고 난 후 마음에 무언가를 남기며, 생각을 움직이고 감정을 흔드는 힘을 가진 글이 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바람이나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작성하고 실력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발전하는게 목표입니다.
포토에세이부 대상 임기순씨 - “개인주의 팽배와 소통 부재… ‘함께’ 의미 전하고 싶어”
“저는 이 글에서 “함께하는 삶”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공동체가 약화되고, 소통의 부재와 갈등 증가 등 사회적 문제가 심화된 현실 속에서 ‘함께’의 가치가 더욱 절실하다고 느꼈습니다. 옷을 만들 때 없어서는 안 될 바늘도 결국 혼자서는 완성된 작품을 만들 수 없듯이, 우리 사회도 타인을 포용하며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상작 ‘어울림의 미학’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외출을 앞두고 옷에 단추를 달기 위해 바늘과 실을 찾았는데, 옷에 맞는 색상의 실이 없어 난감했던 경험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바늘이라도 그에 맞는 실이 없으면 멋진 옷을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요. 특히 요즘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성공을 우선시 하는 이들에 대한 걱정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결국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아 아들에게 편지를 썼고, 그 과정에서 제 삶 전체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남기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글은 ‘혼자가 아닌 가정을 이루면서 시작되는 여정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날카로운 바늘(불완전한 혼자)이 실(배우자)을 꿰고 천(자녀, 후손)을 만나야 비로소 진정한 삶이 펼쳐지며, 그 책임감과 더불어 사회생활에서도 ‘진정한 어울림’이 무르익는다는 비유를 담았습니다. 저는 어린이집 원장으로서 일하며, 아이들(바늘)과 교사(천), 학부모(실)가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며 협력할 때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일상 속에서 ‘어울림’의 미학을 실천해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펼쳐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철(鐵)’이란 어떤 소재로 기억되는가.
△어린 시절 철은 생활의 근본이자 창조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가마솥, 칼, 농기구처럼 살림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스케이트나 장난감을 만들고 싶은 간절한 꿈이기도 했습니다. 즉, 철은 삶의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픈 열망이 담긴 소재였습니다. 지금도 철은 거대한 건축물부터 미세한 의료기기까지, 모든 창작물의 핵심 뼈대로서 그 가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
△독자에게 공감과 성찰의 기회를 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보편적인 소재와 경험 속에서 삶의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진솔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독자가 글을 읽으며 “내 삶도 그렇다”고 공감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글의 조건이 아닐까요?
-문학 작품의 장점 또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학은 일상의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켜 타인의 마음에 울림을 전하는 힘이 있습니다. 마치 철이 생활 속에서 빛을 발하듯, 문학은 개인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갈고닦아 독자와 공유하며, 독자는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학이 지닌 가장 큰 가치이자 힘이라고 믿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이번 수상은 제게 큰 격려이자 동시에 더 나은 글을 써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앞으로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발견한 소중한 가치를 독자들과 나누며, 따뜻하고 진실한 글로 소통해 나가겠습니다. ‘어울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 작품 활동을 지속하며, 독자들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