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대응 패러다임 전환] 숲을 태우지 않기 위한 국가의 전략②
“불은 경계가 없다.”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Boise)에 위치한 국가 산불 공동 대응 센터(NIFC, 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 관계자의 말이다. 그 말 그대로다. 불은, 특히 산불은 걷잡을 수 없이 뻗어나간다. 올해 초 경북지역에 발생한 산불도 소백산맥을 타고 하염없이 타들어갔다.
때문에 산불재발방지를 위해선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 미국은 산불을 ‘진압’이 아닌 ‘관리’의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여러 기관이 모여 서로의 자원을 공유하고, 정보와 인력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컨트롤타워조차 오락가락인 한국과 비교되며, 배울 점 또한 적지 않다.
화재대응정보 통합·자원조율기구 운용
중앙서 진화 자재 투입 등 ‘신속한 대처’
산불예측데이터 제공 기상 시스템부터
항공적외선탐지기 등 고도화 장비 갖춰
지역사회 교육·협력 네트워크도 ‘탄탄’
한국은 ‘전문기관 설치’ 논의만 수년째
NIFC: 아홉 기관이 모인 ‘협력 본부’
NIFC는 9개 연방기관(△미국 산림청:USFS △토지관리국:BLM △국립공원관리청:NPS △미국 어류 및 야생동물청:FWS △미국 토착민 업무국:BIA △연방 비상관리청:FEMA △미국 국방부:DOD △국립기상청:NWS △미국 해양대기청:NOAA)이 협력하는 기구다. 이들이 협력하고 있는 NIFC는 직접 진화 현장에 투입되지는 않지만 전국의 화재 대응 정보를 통합하고 자원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다.
보이시 현지에서 만난 NIFC관계자는 “NIFC는 처음 군부와 국토부, 기상청 등 3개 기관이 뭉쳐 시작했는데 화재는 경계가 없기 때문에 점점 더 여러 기관들이 힘을 합치게 됐다”면서 “연방기관들이 속해 있어 신속한 대처가 가능하고, 군부가 함께 하기에 비행기 및 헬기 등도 빠른 투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실시간 자원 조정의 중심, NICC
NIFC 센터 내 핵심 조직인 전국 산불 조정센터(NICC·National Interagency Coordination Center)는 전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고, 250개의 지역 디스패치 센터(비상 상황에서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되는 소방대원들을 조정하는 센터)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는다. 이 곳에서는 화재 진화를 위한 소방차, 헬리콥터 등 모든 자재들을 관리하고 있다. 일례로 항공 진압 요청 등도 모두 NICC를 거친다.
센터 매니저인 션 피터슨(Sean Peterson)은 “전국에 10개로 나뉜 지역구마다 소규모 센터가 있는 구조다. 총 250개 로컬 디스패치가 있으며, 각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들은 로컬센터를 통해 산불의 위치, 규모, 기상 상태, 필요 인력 등이 NICC로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즉, 현장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올라오는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중앙에서 장비, 인력 배치 등이 이뤄져 현장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A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A지역이 가진 자원이 모두 소진됐을 때 2단계로 인근 B주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으며, B주의 지원 여력도 소진되면 NICC 지원이 이뤄진다.
상세하게 각 대응 단계를 나눠 빠른 판단이 이뤄질 수 있는 데다 꼭 필요한 곳에 자원이 투입될 수 있도록 설계한 시스템이다. NICC 매니저는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시즌엔 모두가 헬리콥터를 원한다”면서 “그럴땐 산불 진화 중요도와 필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NICC의 역할”이라 설명했다. 우선순위를 정해 자원을 배정하고 지원하면서 보다 효율적인 진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기상·통신·탐지…과학기술이 뒷받침하는 산불 대응
NIFC는 기상, 통신, 탐지 등을 통해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우선 RAWS(Remote Automatic Weather Stations)에서는 미국 전역 331개의 자동 기상 관측소가 산불 예측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RAWS의 앨런 헤스터(Alan Hester)필드 섹션장은 “RAWS는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이동식 장비로, 산불이 나면 현장 근처로 직접 가져다 놓는 이동식 장비”라며 “기상청의 도심 기상관측과 달리 사람이 없는 위험 지역을 관측할 수 있어 보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전역에 331개의 RAWS가 설치돼 있으며, 이를 통해 기온·습도·풍향·풍속·강수량·자외선 등의 자료가 수집된다.
이처럼 보다 고도화된 기상 시스템을 올초 발생한 경북산불에 적용할 수 있었다면 보다 빠른 진화가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북 산불 당시 국내 기상청도 보관·관측차량 현장 파견, 실시간 강풍 정보 제공 등 총력 지원을 펼쳤지만 산불 진화 후 기성청 실시간 대응 한계가 명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상청도 초고속 대형산불 대응을 위한 시스템 개선, 재난 발생시 신속한 분석과 전달 체계 마련 등 계획을 밝힌 바다.
화재 현장에서 필요한 통신장비도 NIFC가 강조하는 시스템 중 하나다. NIICD(National Interagency Incident Communications Division)는 1만 2,000대의 무전기와 중계 장비 등을 갖추고 산불 현장에서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는다. 마크 힐튼(Mark Hilton) 국장은 “깊은 산악지대에서는 통신이 생명”이라며 “현장에 관련 기기를 설치해 소방대 간 통신망을 확장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현장 투입 소방관들은 보다 넓은 지역에서, 보다 많은 인원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힐튼 국장은 “거대한 산불이 발생하는 곳은 통신망이 약하기에 이런 기기는 필수적이며, 기기를 더 설치하면 무전 거리를 더 넓힐 수도 있다”면서 “주파수 교체, 중복 주파수 관리 인원 등도 배치돼 현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Infrared Scanner(항공 적외선 탐지기)도 효율적 도구로 꼽힌다. 항공기에 장착해 사용하는 이 탐지기는 1만4천피트(4.2672km) 상공에서 작은 불씨까지 감지해 화재의 중심·확산 방향을 지도와 겹쳐 분석하고 산불화재 현장의 온도까지 파악해줘 정확한 화염지도를 만들고,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게 돕는다. 또 GBISC(Great Basin Incident Support Cache·물자 창고)는 약 2000평 부지에 텐트, 호스, 식사 키트, 장비 등 산불 대응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다. 이같은 물자창고는 15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산불이 많이 발생한 지난해 기준 8300만 달러(약 1000억원) 규모의 재고량을 확보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갖추고 있다.
연방 토지관리국(BLM) 운영은 국내 도입시 산불 예방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NIFC에 속한 BLM은 미 내무부 산하 최대 규모이자 가장 복잡한 화재 대응 프로그램인 ‘BLM Fire’을 운영한다. 공공 토지 산불 관리를 직접 담당하면서 선제적 토지 관리 및 대국민 공공 교육까지 병행하고 있는데 특히 인간에 의해 발생하는 산불이 전체 산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인식, 대중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 산불 보호계획(CWPP), Firewise 프로그램, 대중 교육 행사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또 화재 위험이 높은 시기에는 지역사회와 협력해 일시적인 활동 제한, 공공 토지 폐쇄도 시행하고 있다. BLM 관계자는 “산불은 행정 경계 또한 가리지 않기 때문에 이 ‘all-hands, all-lands’(모두의 손으로, 모두의 땅을) 접근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화재는 자연현상이지만, 사람의 부주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 지역사회 교육과 협력 네트워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NIFC 센터 내 추모 공간에는 임무 중 순직한 350명 이상의 소방관을 기리는 보라색 리본이 걸려 있다. 그 리본은 단지 기억의 상징이 아니라, 미국이 산불과 싸워온 긴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거치며 미국은 산불 대응에 있어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교훈을 배웠다.
한국은 어떨까.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각종 대책이 거론되지만 실제 실행 단계에 들어서는 경우는 극히 적다. 일례로 진화대원 교육을 철저히 하겠다며 거론된 훈련 센터 설립은 3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난 4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 현안보고에서 민주당 문대림 의원도 “산림청 특수진화대원에게 들어보니 필요한 기술은 선배들에게 구두로 전수받고 있다고 한다”며 “미국은 전국화재합동센터(NIFC) 등 전문기관이 있지만 우리는 논의만 수년째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견고한 시스템은 우리에게 던지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다. 여러 기관이 한 데 모여 과학과 데이터와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숲은 푸르름을 잃고 까만 재로 뒤덮일 수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박형남기자 7122love@kbmaeil.com